월동 무 이야기

진도에서 이틀째 머물다 : 십자가로 마귀의 권세를

mamuli0 2025. 1. 16. 08:14

  고령운전자라 적성검사가 3년이 지나 또 신청했다. 먼저 보건소에서 치매검사 부터 밭고 일반 검사를 하고 고령운전자 교통운전센테에서 온라인으로 교육을 필한뒤 경찰서 민원실에 신청했다. 평상시같으면 일주후에 나온다고 한다. 진도에는 영상의 날씨이며 동백꽃이 만개하고 겨울풀들이 있어 중부지방과 사뭇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되어 ㅈ내란혐의로 구금 조사중이다.  갑진년 월동무 수확은 일새에 끝나고 뒷처리는 계속 이어질것이다 . 나무를 때는 온돌방에서 지나니 몸이 가벼운 느낌이다.

 

 

십자가로 마귀의 권세를

1981. 8. 14

 

이번의 기회 아주 좋지 않습니까? 일 년에 두 차례 두 차롄 데, 근데 좋아하는 사람은 잘 살린 사람의 운도 있고 아 무의미하게 보내는 사람도 있고 요런 좋은 기회는 흔하게 있겐 만은 이 자리까지 와서라도 그걸 잘 이용 못하고 있다. 그러면 어떤 것이 그 기회를 살리는 것이고 어떤 것이 그 기회를 상실해 버렸는가? 무가치하게 보내버렸는가?

어떤 것이 살리는 것이냐? 어떤 것이 죽이는 것이냐? 그에 대한 문제, 물음이 있다면 대답을 해야 하구요 묻는 사람에게 누구에게나 적절한 대답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물으셨다면 제가 대답을 해 드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또 제가 물으면 여러분이 대답해주시어야 되고. 자 먼저 묻겠습니다. 어찌해야 살립니까? 주어진 길을. 어쩌면 죽이는 것이 되고 어쩌면 살리는 것이 됩니까? 저번에 들어보신 분은 읽고 그대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 5장에서. 에베소 같으면 무슨 기회를 기도하라고 했습니까? 어떤 시간을 허락해서 주시라고 기도하라고 우리도 그런 중심에서 기도가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어떻던 여기에 참석하게 된 만큼 기도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꼭 여기 참여 여기 이 모임에 참석해 주시라고 기도해 주신분도 계시겠지만 입으로는 그렇게 안했더라도 무엇을 참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여기에 가서 한 번 들어보라 그리 허락하신 거 아니겠어요?

무얼 원한 것이 다 기도 아닙니까? 무엇을 원했든지 원하는 걸 하느님 앞에 원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육적인 걸 원했든지 영적인 걸 원했든지 원하는 건 어차피 원한 것이거든요. 원했던 대로 이루어져요. 영적인 걸 원했으면 허락할 것이고. 육적인 것을 원했으면 육적인 걸 허락할 것인데 썩을 것을 뿌렸으면 썩을 것을 거둘 것이고. 영적인 것을 뿌렸으면 영적인 걸 거둘 것이고. 평화를 추구했다면 평화의 열매가 맺힐 것이고. 원한대로 주시는 것 이니까 심은 대로 거두고, 구한대로 주셔요. 뭣을 구했냐가 문제입니다. 여기는 무슨 어떤 길을 원했습니까? 우리들의 기도도 이것이 되어야 됩니다. 요 모임만은, 다른 때만은 고만 두고라도, 이렇게 말씀 듣는 시간만은 요거 똑같아야 되잖아요? 다시 읽을 테니까 2절서부터.

 

‘항상 깨어 있으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기도하십시오.’

 

 

기도의 태도.

항상 범사에 감사해야 해. 시간도 덜 마쳐서 가신 분들은 불가피한 사정도 있을 것이고 또 감사할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가신 분들도 있을 것이고. 뭐 들을 것 없다. 나보고 증거 하라 했으면 나 잘하겠다. 그런데 아무 들을 것 없다 그럴 분도 계실 런지 모릅니다.

그러면 여기는 뭔 기회를 원했습니까? 다시 읽습니다. 항상 깨어야 기도를 하겠죠? 깨어야 깨어있어야 기도를 하죠? 잠자면 꿈이나 꿀까 뭐 어떻게 기도를 하겠어요? 그럼 항상 자다 말고 기도만 하는 겁니까? 그렇게 됩니까? 될까요?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시니까 잘 때도 안 쉬고 기도해요? 영혼이 깨어 있으면 기도하고 있죠? 육은 자지만은 영혼은 기도하고 있죠? 영혼이 깨어, 영혼이 자면 기도를 못 하죠. 혹은 육이 깨어서 육신이 깨어서 몸이 깨어서 말로는 기도 할 수 있을지언정 영혼은 자면 하느님께 기도는 아니죠? 이 영이 깨어나야 영이 깨어있으라 영이 깨어있는 그 생활은 항상 기도겠죠? 영, 영은 하느님 성령과 통하지 않겠어요? 영은 하느님의 것이거든요. 하느님의 형상이거든요. 영은 영으로 통해요. 방언으로 기도한다. 영으로 기도한다. 영과 영은 통해요. 그런데 자기의식은 못해요. 여기 성령의 통역이 있어야 의식을 해요. 아 무엇이 다 인제 활동 생활로, 마음의 평화가 있고 생활로 나타나. 시간 있으면 방언에 대해서 근자에 배운 거 최근에 배운 거 한 번 발표해 봤으면 합니다만 제 시간은 인자 이 시간 하고 내일 아침 시간만 있습니다.

그러고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해주십시오. 긍게 이 증거 할 바울사도겠죠? 사도들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뭣이냐? 기도의 내용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 기회 지금 허락된 거 에요.

 

기회 저는 이 자리 모두 앉아있는 게 뭐 할라고 앉아 있습니까? 그 지금 허락했어요. 말씀 들으라고 허락은 했지만 허락을 해서 오기는 왔지만 아이고, 영혼이 자버렸다. 몸도 자버렸다. 12사도 중에서 열심 한 사람 세 사람이든가 택해가지고 겟세마네 동산이든가 그것을 기도를 시켜봤지 않습니까? 너희들 한 시간 만이라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서 기도하라. 세 분 다 낙방이다. 춥기도 하거니와 그 때는 위기인데 그럴 때에 어찌 한 시간을 못 견뎌? 육이, 암만 깨어 기도 하고 싶지만 간절하지만 소원은, 또 특별히 예수님께서 선생님께서 구주께서 주께서 명령하신 것이니까 하기 싫더라고 마음에 없더라도 그 분 말씀을 의지해서라도 계속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명령했는데도 세 분 다 낙방이에요. 뭐 눈이 피곤하더라. 뭐 마음은 원이로되 몸뚱이가 말이 안 듣더라. 모두 그런가?

 

예수님은 잘 아셔. 마음은 원이로되 안 될 거를 아시면서 시험해본다. 그 자신들이 알라고. 예수님이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제자들의 실력을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너희들 자신들이 실제 자신의 실력을 알아봐라. 너희들이 한 시간인들 깨어서 있을 수 있는 실력을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 한 번 해보아라, 너희들 알아보아라. 그런 거 아닙니까? 열 두 제자 가운데서 가장 열렬한 사람 세 사람 뽑아서 해봐도 안 된다. 안되겠다. 그럼 뭐 육체야 못 했겠습니까? 죄송합니다만 저기 저 좌석에서, 교회를 가면 20분 설교 가운데 15분은 자고 5분밖에 못 듣는다고 그렇다고 그래. 그런데 여기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도 안자봤다. 왜 그러냐? 큰 말씀이 들어왔다. 말씀이 들어오면 그전 같으면 ‘예배 봅시다.’ 하면 졸았지만 이제 그렇지 않다. 말씀이 안 들어와 버리면 뭐, 뭐 뭔 말인고? 나하고는 상관없는 말. 그거 자고. 또 해도 그 말이겠지 다른 말 있겠느냐?

 

당신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요. 그러고 또 말씀은 또 무슨 말씀이냐? 말이여. 무슨 말씀 그냥 성경만 보고 말만 하면 다 말씀인가? 성경에는 악마의 마귀의 말이 또 있다. 예수님 시험받을 때도 마귀가 말하지 않습니까? ‘네가 절 한자리 하면 이 천하 영광을 다 주마.’ 그럴 수 있죠? 우리가 다 팔아 먹었으니까 내가 팔아먹었어요. 내가 팔아먹은 거 예수님이 그걸 다시 찾으러 오시지 않았습니까? 또 사탄에게 인자 그렇게 허락된 것이에요. 이웃이 인간이 다 팔아먹었으니까. 이제 그 빚은 갚아야 돼. 후에라도 갚지 않고는 구렁탕 못 나와요. 어떻게 갚느냐? 죽음으로 갚아요. 끝나요. 다른 방법으로는 갚을 길이 없습니다. 악마는 인간을 하느님과 떼어놓자는 것이니까 죽이고자는 것이니까 이 그리 죽어줘요. 그렁게 예수님이 십자가로 죽음으로 마귀의 권세를 깨트리지 않습니까? 죽음은 끝났다. 율법으로는 죽음은 끝난 거여. 죽음은 자유해방입니다. 죄 벌에서 해방 받습니다. 내일이 해방 절 이에요. 몸은 한국, 나라로는 해방받았다고 하나 개인 개인 죄의 법에서는 해방을 못 받았어.

 

우리 구원은 현재 구원 현재 구원, 과거 이 천년 전에 예수님이 모든 영혼을 대표해서 구원시켜놓은 사실을 믿고 현재 죄에서 해방 받아야 구원입니다. 그런 영혼이 미래 구원도 확실하지. 현재 구원이 없는데 미래구원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죄의 법에서 해방을 받는 것이 구원이에요.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받는 것이 구원입니다.

바울사도, 율법으로는 흠이 없지만은 죄의 종으로 팔린 몸이 무슨 자유가 있습니까? 죄의 종살인데 해방 못 받아요. 어느 때 해방을 받느냐? 8장에 가서는 해방의 노래 아닙니까?

로마서 7장 25절이 해방 절 8장으로 들어가는 다리죠, 다리, 율법에서 복음으로 들어가는 다리요. 7장25절.

자 말씀을 전하라. 하느님의 말씀 무슨 말씀을 그 말씀을 당신의 말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더 주소서. 그 말씀의 내용은 무엇이냐? 그리스도의 심오한 진리입니다. 아주 깊고 오묘하고 깊을 심(深), 깊을 오(奧), 아주 깊다. 또 높기는 또 높기도 하다. 높고 깊고 심묘막측하다. 측량할 수 없다. 심오한 진리 심오한 진리, 진리를 전파할 수 있게 기도해 주십시오.

 

 

골로새니까, 2장보죠. 2장보기전에 1장24절서

교회의 일꾼, 바울.

‘그래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꺼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있습니다. 남은 고난, 나는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따라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남김없이 하느님의 말씀. 25절이요. 하느님의 말씀을 남김없이 전하기 위해서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심오한 진리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이 심오한 진리는 과거의 모든 세대 모든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어요. 그러니까 오묘하죠. 아무라도 사람마다 다 나타낸 게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구약시대에 늘 감춰왔어요. 신약에 예수님 탄생하신 건 나타났어요. 말씀자체이신 사랑자체이신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어요. 말씀입니다. 신약에 인자 나타났어. 신약은 예수님이 말씀이 나타난 역사야. 구약은 오랜 세월 수천 년 동안 이 그리스도를 메시아를 기다린 역사고요. 구약은,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이 이제 메시아가 신약에 나타났어. 예수님이 나타나셨어요. 그리스도가 나타남으로서 율법은 끝났습니다. 끝났어요. 그런데 지금도 율법, 뭣을 해야 한다. 어째야 한다. 언자 그러면 율법이여. 예수님이 하실 거여. 나는 율법에서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서 그리스도가 하실 거여. 내가 한다는 건 교만이야. 되도 안하고, 나는 죄인이에요 죄인 중에도 괴수여.

 

그런데 괴수거든. 죄인 중에도 괴수는 바울사도 말입니다. 제 말 아니고요. 괴수를 사랑하셔서 오래 참으셔서 자비로서 불러주셨다 말이야. 오래 참아주셨다. 그것이 구원이 됐다.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말은 참말인가? 믿을 만한 말인가? 그것이 복음인가?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의인이 어디가 있습니까?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 다 죄인이다. 날 때부터 죄에서 났다. 인간은 죄의 덩어리입니다. 그런데 율법에서는 죽고 자기 안에 그리스도가 살았다. 내가 사는 것은 나는 예수와 같이 십자가에서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복음서는 전부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하실 것을 믿는 자의 영혼 안에서 사도들을 통해서 하실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우리보고 그렇게 너희들 그렇게 하라는 명령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모셔드릴 때 된다. 그리스도께서 할 것입니다 .사랑자체인 사랑이 하실 거여. 하느님이 하실 거여. 하나님께서 하실 거여. 나보고 하란 줄 알고 짐만 돼. 짐만 되고 걱정이여. 요번에 요런 모임에도 좋은 말씀 많이 들었건만 언자 실행의 문제다. 돌아가면서 아주 몽땅 짊어지고 가면 말씀 못 들었어요. 그것은, 복음은 못 들었어. 아 인자 살았다. 인자 되었다. 뭐 시작하면 걱정할 것이 없어. 주께서 하실 것이다. 나의 길은 내가 실행할 것은 포기할 자기부정할 일 뿐이다. 자기부정하고 자기 버릴 것뿐이에요. 그럼 한 번 외어봅시다.

 

성화에 관한 길에 방해꺼리는 자기만 버리면 주님의 지도만 따르면 따를수록 예수님의 지도만 따르면 따를수록 조속히 완전한 성인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될 길이 있지 않습니까? 성화에 관한 길에 방해꺼리는 자기여 자기, 자기만 버리면 예수님의 지도만 따르면 따를수록 조속히 완전한 성인이 된다 말이야. 고런 쉬운 길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기를 안 버리고 하려니까 불가능해져. 불가능, 괜한 헛된 시간만 보낸 거여. 귀한 시간을 허송세월해버려. 무가치 하게, 자기가 하려면 별 방법을 시도를 해도 소용없어요.

죄 낳는 방법은 자기부터 부정할 것뿐이야. 자 더 봅니다.

 

25절 다시 봐요.

‘나는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따라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남김없이 전하기 위해서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이 심오한 진리는 과거의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던 것인데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인자 드러났어야 될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 드러내신 이 심오한 진리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 것인가를 성도들에게 알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이 심오한 진리는 곧 이방인인 여러분이 우리도 다 이방인입니다. 유대인 외에는 이방인 이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사실과 또 영광을 차지하게 되리라는 희망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자라는 것이죠. 뭐 다른 증거 있으면 소용없어요.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말씀이어야 돼요. 그리스도를 증거 한다는 말은 뭐 다른 게 아니요. 그 생활로 몸소 사랑만 나타내야 한다. 희생해야 한다. 희생, 희생했다.

 

우리는 바로 이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고 성숙한 인간으로 하느님 앞에 서도록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경고하며 가르칩니다. 나는 이를 위해서 내 안에서 강하게 활동하시는 그리스도를 힘입어 애써 노력하노라. 먼저 성경 같으면 분투노력하노라 분투노력한다. 그럼 사람의 노력은 여기 있습니다.

신자의 노력은 여기 있어요. 이것만이 결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를 위해서 내 안에서 강하게 활동하시는 그리스도를 힘입어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힘을 입어서 그리스도의 힘을 입어서 내 안에서 역사하신 그리스도의 힘 안에서 입어서, 힘을 입어서 분투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내 안에 계셔서 활동을 안 하는데. 나 혼자 스스로 노력을 해봤자 허공에다 권투한 사람이 허공에다 힘을 써. 또 방향도 모르고 달리기만 해요. 문제로 달려놓니 이거 돌아오려면 더 시간 걸려. 서울 간다면서 저 멀리 목포로 가버렸다. 방향을 모르고,

오늘은 목포까지 가서 여기까지 오는 시간이 또 걸리지 않겠습니까?

저번에 어떤 분이 잘못해서 목포를 뭐 몇 번이라던가. 한 번은 함평 장에 갔다가 집 갔다가 목포를 몇 번인가 하여간 세 번 이상 왔다 갔다 해도 못 찾았대요. 돈만 몇 만원 차에 길에 던져버렸다. 방향을 잃어버렸어. 반대로 가버렸다 말이야. 목포로 가버렸다. 함평 우리 집에서 함평 장에 갔거든. 그냥 차만 있으면 타고 가 버렸다는 거야.

물론 거기 차는 영광서 목포행이니까 영광서 목포행이니까 그 차를 탔던가 봐. 갈 데 없고 다시 탔으니 또 타고 여러 번 갔데요.

누구보고 하는 말이 아니고 지금 우리가 다 그런 모양이야. 그래 목적지를 몰라. 남이 가니까 나도 가. 남이 장에 가니까 장에 가서 별로 볼 일도 없는데 갔어. 모두 예수를 믿는다고 하니까 그 무엇인가 나도 한 번 가볼까 한데 뭐 어디 방향도 모르고 간 것이여. 내용을 모르면.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심에 따라 내 안에서 강하게 역사하심에 따라서 나는 순응하는 거여. 그리스도께 의지해야 돼. 나 혼자 역사한 건 안 된다. 내 힘으로 그런 건 안 된다. 그건 율법이죠? 자기의 자기공로. 제 나름의 방법 그게 율법입니다. 예, 고 뒤에 조금 반대되는 데요.

로마서 9장

<~끊김>

 

 

로마서 9장14~18절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자비를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하고 싶은 사람을 동정한다 하고 말씀하셨듯이 하느님의 선택을 받고 안 받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선택을 받고 안 받는 거는 하느님의 자비에 있지, 인간의 노력에 있지 않다. 성서에는 하느님께서 바로에게 내가 너를 왕으로 내세운 것은 너를 시켜서 내 힘을 내 능력을 내 힘을 드러내고, 내 이미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하려는 것이다.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는 항상 하느님과 반대 했는데 어찌 바로를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힘과 능력과 권세와 영광을 드러내느냐? 이상하잖아요?

사사건건 바로는 반대로 했다. 하느님을 이스라엘 백성을 내 보낸다고 해놓고 막 죽게 생겼으면 내 보낸다 해놓고는 또 조금 숨쉴만한 여유가 있으면 또 반대로 안 내보낸다. 그 바로가 누군가? 우리가 다 바로 아니요? 바로, 제 나름대로 바로 간다. 그래. 내가 제일 바로 간다. 그게 바로에요. 우리만은 아니죠? 이건,

 

그러면 그럴수록 또 하느님은 권세를 반대 할수록 또 권세를 나타내고 또 힘을 나타내고 기적을 열 번인가 몇 번인가 이렇게, 그래서 아아 과연 하느님은 살아계시다. 하느님은 참 권세가 있구나. 드러난다.

결국은 이제 애급도 구원시킨다. 이스라엘만 구원 시킨 게 아니라. 평소에는 하느님께서 바로에게 내가 너를 왕으로 내세운 것은 너를 시켜서 내 힘을 드러내고 자꾸 반대하면 반대 할수록 또 더 나타내고, 하느님의 그 자비를 나타내고, 이스라엘 백성이 순종한다고 해놓고 또 반대여. 또 그러면 우리도 또 참으시다가 또 자비를 베푸시고, 하느님의 자비라는 것은 무한하다. 이 우리는 한다는 것이 하느님을 반대만 해. 반역만 해. 우리는 그래도 하느님은 끝까지 사랑해. 그러니 하느님의 사랑이 무한하단 거 드러낼 라니까. 그러니까 우리 범죄가 하느님의 은혜를 끌어당기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또 죄 안 지은 사람 어디가 있어요? 죄의 가능성은 아직 지니고 있으니까, 참 인자 그 말 한번, 아담은 불완전한 인간이고 또 죄의 가능성은 있다는 증거가 무엇으로 말합니까? 한 서너 가지 댈 수 있습니다. 대화를 좀 해야겠는데 뭣 때문에 뭣이 죄 지을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를 성경에서 창세기 1장에서만. 인자 3장에 먼저 나타나버렸으니까 가능성이 있던 죄 지은 것이 인자 드러난 것뿐이니까 3장에서는 인자 드러났죠? 2장까지는 안 드러났죠? 그러나 2장도 가능성도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말이야. 무엇을 봐서?

 

창세기 1장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느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혼돈 하는 거 빛이 있어요? 없어요? 빛이 없죠? 깜깜하지. 흑암 깜깜해요. 또 혼돈, 질서가 잡히지 안 했다 말이야. 혼돈 흑암 깊다 깊더라. 아주 캄캄하다. 흑암 깊다. 그 죄가 깊이 뿌리박고 있지. 어둠은 죄라는 거 아닙니까? 밤 죄 란 말인 거. 어둠에 잡히지 말라는 거 빛의 자녀가 되어라. 어둠 죄의 종살이에 팔렸어. 그런 게 그 자체가 벌써 1장2절에도 불완전하다는 거 들어가지 않습니까?

거기에 인자 복음이 있어요. 벌써 1장2절에서부터 복음이 1절 안에 다 들어 있지만은 1장은 인자 성경총론이라고 그럽니다. 1절 안에 다 들어 있다. 그런데 이제 2절3절까지는 들어가야 되겠다. 빛이 있어야 되니까. 그러니까 3절은 빛인데 그 일곱 번인가 기뻐하셨다는 것은 늘 빛을 보고 기뻐하시고 빛과 어둠이 갈라질 때 기뻐해. 빛의 역사에 기뻐하셨습니다. 흑암에 인제 이튼 날은 빛이 없어요. 이제 이튼 날은 기뻐하다는 말없어요. 그거는 쓰라린 시련이 있어야 돼. 윗물 아랫물 나누는 거 아아 고통이다. 친한 친구와 친구가 갈리면 참 섭섭하지요.

전화도 처음으로 걸어보고 누가 걸어줘서 걸어놨는데. 안 걸라면 걸 줄도 모른 게. 안 걸려도 언제 전화번호도 지금 기억도 못해. 전화기 갖고 있어도. 못 걸어, 절대로. 걸어보라고 그러면 걸어줄거나 그러면 해보라고, 지금 아마 근50이나 된가 모르겠어요. 아주 절친한 친구, 에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3년 전인가 작년인가 모르겠습니다. 역부로 어머니까지 모시고는 저는 길을 멀리가면 길을 잘 못 찾거든요. 어데 가는지 모르니까 사정해서 좀 갑시다. 그래, 바쁘신 분을 모시고 부산을 갔잖아요? 친구는 대구에 있거든. 갈 거다. 근데 부산역이 동생 보고 소개를 해서 갈 것인데 언자 그때사 가가지고 전화를 걸어보니까 서울 가고 없다. 아 그래서 어찌나 미안하든지요. 바쁘신 시간을 그렇게 신청했었는데 말입니다. 아 근데 헛걸음했어요. 그러고 인자 뭐 내심낙원이란 책 한권 가지고 갔는데 뭐 전하지도 못하고. 거기다 두 권 맡겨놨죠. 그래 어째 걸어봤어요. 있는가? 아직 이 맞더라니까. 목사한테 들었죠. 주소도 인자 알고. 그 마침 전화도 인자 번호도 알고. 그래서 인자 그래가지고 얘기도 하고 직통이 있다고 그랬었죠. 자기는 아주 반가워해요. 그러는데 저는 뭐 반가울 것도 없어. 저는 그리 냉정해요. 그 친구도 인자 저하고 믿는 것은 하룻밤 차이다. 제가 말씀 듣고는 햐아 이렇게 좋은 말씀 있더라고 가서 듣자 그래서 그에는 인자 하룻밤차이에요. 그래서 듣고 먼저 믿어서 장로가 됐는데 인자 몸이 약해요. 활동을 잘 못 한다고 그래서 인자 가보러 갔는데. 아 서울까지 갔으니까 뭐 활동은 대전이라나. 어디라나. 자기 아들 집에 갔대요. 인자 또 들어보니까 이 고향 순천. 거기도 다녀가셨다 그래요. 그러니까 아 그럴 정도라면 여기도 왔더라면 진즉에 오지 그랬느냐고 그래. 내일이라도 올 수가 없냐고 한 게, 아이 구, 촉박해서 그리로는 못가겠다고.

 

인제 요래 길이 갈라졌을 때는 그 사람은 울었대요. 아휴 잃어버렸다. 친구 잃어버렸다고. 그치 만 나는 나대로 내가 잊어버렸지. 뭐 걔가 자기를 잊어버렸지. 뭐 서로 어떻게 간다고.

인제 보라고 조금 전에 인자 가라고 만나보라도 가야 쓰겠다. 근데 몸이 그런 시간도 촉박하고,

여기 인간의 노력은, 노력은 내 안에서 강하게 활동하신 그리스도 힘이 아니고 그분도 아직 그 그런 몸이 약하고 그러면 자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은총 안에 들어가면 그게 좋은 생활이겠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저도 그 처지가 되면 그 만도 못하겠지만 그래도요, 인제 정신적으로도 인자 비참하다. 자녀 집에 가서 자녀들에게 부쳐 사니 말입니다. 그 참 그 있을 수 없지만 어디 갈 데가 있어야지. 몸이 그렇게 됐는데, 그래선 안 되거든요.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뜻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또 어떤 사람은 완고하게 하십니다. 그 어쩔 수 없어요. 완고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만해 버리고 완고해 버리니까 그렇겠죠. 임시, 그러면 그러기 때문에 또 복음이 이방에 왔죠. 세상이 이방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 받으니까 그러니까 또 이방인에게 왔어요. 또 이방인인 우리들이 교만해버리면 또 우리도 똑같죠. 교만은 안 된다. 하느님이 제일 싫어하신 것이 무엇이냐? 교만, 제일 좋아하신 것이 무엇이냐? 겸손, 이것도 믿음 안에만 겸손이지. 믿음 밖에 겸손은 없습니다. 그건 가짜야.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겸손이 있다면 그건 가짜지 참이 아닙니다. 그건 아첨이야. 겸손이 아니다. 우리가 아첨과 겸손과 혼돈해서는 안 돼. 그리스도만이 겸손입니다. 그리스도의 겸손을 받아야 겸손이야. 인간에게는 겸손이 없습니다. 교만덩어리뿐이고 죄 덩어리지. 말씀 드리려는 것이 많은데 시간이 갑니다.

골로새 2장1절

‘여러분과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들은 물론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내가 얼마나 애쓰고 분투노력하고 있는지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긍게 이 노력, 이래야 가치 있는 노력이다. 시간을 살리는 것이, 이런 노력만이 시간을 살린 것이고 자기 스스로 노력은 시간을 죽이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서 강하게 활동하시는 그 능력을 힘입은 곧 사는 생활만이 시간을 살린 것이고요. 자기 스스로, 자기 지혜로 노력은 다 헛수고입니다. 시간을 죽여 버립니다.

그러면 결과가 안에 있느냐? 1절도 벌써 결과가 있죠? 이 끝 절에 29절에 그 노력의 결과가 분투노력하는 그리스도께서 강하게 활동하시는 그 능력을 힘입은 노력의 그 결과는 1절에서는 무엇이죠? 2장1절에서는 그 결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나 결과를 하나 대면 얼굴을 보지 못한 이에게도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아시기 빕니다.

인자 그것은 그 결과는 그들이 마음의 힘을 얻는다, 힘. 얼굴을 직접 바울사도도 얼굴을 직접 보지도 못했다. 편지서 그 말을 얘기했다 소문만 들었어요. 소개만 받았어요. 편지서 봤던지, 소개만 들었지 얼굴은 못 봤어요. 그런 사람까지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활동한 힘 안에서 노력했다 말입니다. 이미 자기 주어져 있는 힘을 다 쓴 거여. 예수께서 활동하시는 그 힘과 또 이미 자기 주어진 힘이 있지 않겠어요? 합해서 다 썼다. 그에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라 얘기 아닙니까? 지혜도 다하라. 목숨까지 다해서 사랑하라 입니다. 제가 어제 그런 말씀 들었습니다.

구약이 신약에 다 들어서 그런 가 모르겠습니다. 아마 구약만이 겠죠? 그 계명입니다. 계명, 구약에서 ‘말라’ 하는 ‘이것 하지 말라.’ 하는 계명이 우리 일 년의 날 수 대로 365일 아닙니까? 365개나 있답니다. 긍정적인 거 적극적인 거 ‘하라’ 하라 그런 계명은 23은8, 6에48. 아주 기억하기 좋게 그렇게 말씀하지만 라디오에 나옵디다. 어떤 목사가, 참 그 잘 강의합디다. 그렇게 있는데 그러면 614갠가 얼마 되죠? 그 계명이 그렇게 많은데 600여개 되는데 그걸 다 지킬 수 없단 거요. 지키는 것보다도 기억도 못해요. 그런 계명은 아주 저 경건하게 들어가고 잘 믿는 사람이 인자 그걸 다 외운다. 다 외는 것뿐이지. 외기도 다 어렵지만 그렇게 외는 것만 되지. 그것을 실행하는 것 같아선 택도 없어요. 외기도 못해요. 우리 뭐 그렇게 다 외야 바로 믿는 거라 하면 어떻겠습니까? 노인들은 하나도 못 욀 거여. 하나도, 근데 실상 그것이 어떻게 되느냐? 인자 그게 줄여가지고는 요약한 것이 10개(쉽게), 십계명이 된답니다. 십계, 쉽게 해도 못 하거든요. 어쩌게 쉽게 해도 하나도 못 지켜. 계명을 다 지키다가 하나에서 못하면 다 못한 것이 돼요. 그러다 하나만 지킬 수 있으면 다 지킨 거 에요. 하나만 제대로 지키면, 십계명 중에 하나만 완전히 그대로 지키면 그건 다 들고 있어. 하나 중에, 여러 개 내놓은 것인데 여러 개가 결국 하나여. 인자 그걸 줄이면 인자 둘로 돼요.

 

하느님에게 사람에게, 몸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온전히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 다하라는 말은 벌써 남지 않았다는 말 아닙니까? 다 바쳐버리니까. 우리는 뭐 좀 했어도 남아있어. 자기 힘, 우리 뭐 다 바쳤다고 해도 내 생각이랑은 안 버려요. 내 몸뚱이까지 드렸다고 봅시다. 그렇지만 나라는 것에는 못 버려. 숨 끊어 질 때도 못 버려. 그 때나 버리지. 그 때는 할 수 없지. 그 때도 버릴 랑가 몰라. 나라는 것은 끝까지 고집 할랑가 몰라. 권 할 수 없죠. 숨 딱 끊어지면 하이구 나 인자 죄인입니다. 그러면 버린 거여. 그러지만 그 때까지도 못 버릴 랑가 몰라. 이건 불가능입니다. 제일 쉬운 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인 데도 못해요. 자 회개는 은혜로 회개가 되죠? 그러지만 자기가 할 일이요? 하느님이 하실 일이요? 회개란? 하고 싶은 마음은 은혜로 주시겠지만 하는 것은 자기가 해야 할 거 아니요? 이거 은혜도 안 받았으니까, 나 회개 할 은혜 안 받았으니까 모른다고 그런 핑계 할 수 있습니까? 성경상으로 그런 핑계 댈 수 있어요? 성경에 봐서봐서, 없다고 대답만 했지. 어디 성경을 대봐요. 어디가 그런 말이 있는가 할 수 없다. 핑계 할 수 없다.

 

 

로마서 1장19~20절 봐요.

‘사람들이 하느님께 관해서 알 만한 것은 하느님께서 밝게 보여주셨기 때문에 너무나도 명령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별한 은혜에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해놨어요. 창조물 가운데서요. 또,

‘그러니 사람들이 무슨 핑계를 대겠습니까?’ 아아 핑계만 댄다. 은혜 안줬으니까 나 회개 안했소. 못해요. 물론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안 지을 수도 있고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기계가 아니니깐 금수가 아니니깐 사람은 그것이 사람이요. 자유의지가 있는 게 사람이요. 같이 질수도 있고 안 질 수도 있고 우리 국민으로서 투표권이 있죠? 선거 투표권이 있어요. 그거는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자유죠. 그건 주워져 있는 것이니까 역시 자유가 있어야 되잖아?

그것이 인자 하나요. 둘이, 다 이루어져. 다. 힘도 다하고 지혜도 다하고 목숨도 다하고, 생각도 다하고, 생각도 해요. 했는데 없어, 내 생각도 없어. 다 해버렸어. 그러면 하느님도 다해서 하느님도 사랑하고 또 이웃을 그와 같이 사랑하라.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은 중요하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에요 사랑하라. 그렁게 고린도전서13장에 있지 않습니까? 별 것을 다해요. 재산을 다 팔아서 불 지르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람이 불 지르고 자기 자신마저 화제로 드린다 하더라도 그럼 사랑이 없으니까 소용이 없다. 사랑이 없으면 소용없다. 냉수 한 그릇 예수의 제자라 해서 형제라 해서 냉수 한 그릇 주었다 하더라도 사랑으로 줬으면 그 사람은 결단코 잊지 않는다. 사랑으로 했냐? 굉장한 큰 역사를 얘기 했어도 온 지구상에 있는 인류 가운데 인류들에게 다 존경을 받고 인류들에게, 대 칭찬을 받는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는 거 같으면 하느님 하고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욥에게 하느님께서 네 의무는 네 악은, 악은 일반에게 다 미치지만은 네가 의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일반 육체 사람에게는 이해돼도 영혼에게는 하등 상관없다. 우리 사람은 영혼이 있어서 사람이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영혼이 있는 만큼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영혼, 육체덩어리만 사람인줄 알아요. 이 겉 사람만 사람인줄 알아요. 속사람만 사람이요, 참사람. 사람은 속사람이 있어요. 겉 사람은 죄의 종이에요. 하나 남았다. 서로 사랑하라. 사랑하라 형제를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나에요. 다 그럼 하느님은 사랑안하고? 보이는 형제를 사랑치 못한 존재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 하느냐? 그 말씀은 보이는 형제 속에 계시는 하느님을 몰라보고 형체도 없는 어디 어디 가서 하느님을 사랑해요? 보이지도 안하는데 어디 가서 하느님 사랑해요? 아무리 안 믿고 악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 속에 하느님이 살아 계시 답니다. 저는 그것 모릅니다. 만은. 이 세종께서도 그렇게 증언을 하셨고 어린아이에게라도 경어를 썼고. ‘손자 놈아’ 그러면 ‘아아 그 말은 옳습니다. 뱃속에 있는 할아버지도 있으니까 그 말은 옳습니다, 만은 그건 아니, 그런 말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게 겸손이야. 애기들이, ‘손자 놈아’하고 ‘못 간다.’ 하고 들어 누워버려. 못 간다하면 가라고 거기까지 섰어. 그 속에 하느님이 그 어린애 영혼 안에 하느님이 계신다. 그 어린애를 통해서 하느님이 역사하신다. 이 하느님의 명령으로 듣지. 어린애 말로 들어요? 똑똑한 어른이 고 근방에 전도하지 말라고, 가도 말라고 새끼로 묶어놨어. 서있어라. 그러고 자기는 실컷 가서 주막에 가서 실컷 술 먹고, 해 걸음에 자고 와, 돌아와 본께 아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거든. 아이 인제 정신 차리고 말하길, ‘가지 왜 그러고 있냐?’ 하니 ‘당신이 하느님이 당신을 통해서 무슨 뜻이 있어 해놓은 것을 내가 자유라고 하느냐?’고 또 묶어 놓은 것을 여기 전도하지 말라고 그런 거여. ‘아 그것은 당신명령이 아닙니다. 전도하는 날 하느님 명령을 내가 듣고 하는데 당신명령 그럴 권리가 당신 있소? 그건 안 됩니다.’ 그 까지는 아녀도 못 가게 묶어 놓는 하느님이 어디 있어요? 그렁게 도로 가르치려고 다 참고 그랬어요. 그럼 또 나중에 그 사람이 믿었답니다. 그럼 전도요. 그 쯤 돼야 되지 않겠어요?

 

인자 2절

그것은 그들이 마음에 힘을 얻고 사랑으로 결합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