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 무 이야기

월동무 마지막 작업:어떤 처지에서도 감사

mamuli0 2025. 1. 14. 18:59

 24년도 월동무 마지막 작업을 보았다. 평택에서 기차로 목포까지 내려와 자동차 검사를 마치고 옆밭 월동무 작업을 보고 읍에 다녀왔다. 그간 방에서 주로 생활을 하다가 처음으로 밖에서 활동을 했다.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

1981. 1. 1

 

마가복음1장1절

‘그 때의 세례요한 이 이르러 유대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셨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이 요한은 약대의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다.’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의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파사람과 사두개인이 부활이 없다는 사두개인이 세례를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세례만 받으면 임박한 진노 재앙 이것을 피할 줄 아느냐 회개하라 독사의 행동을 회개하라. 그 말이다. 독사의 자식들아 해서 지금까지 생활이 전부 독사의 생활을 했다. 서로 독을 주는 물어뜯고 헐뜯고 그런 생활을 했다. 그런 것을 이제는 회개하라. 그런 게 그 공동번역에 7절서 다시 봐요.

 

그러나 많은 바리세파 사람들과 사두개파의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 독사의 족속들아 닥쳐올 징벌을 피하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여라. 행실로 보여라. 그러면 행실이 어떤 것이 회개했던 거니까 어떤 것인가? 회개한 증거는 이 창세기1장같이 말입니다. 범사에 감사해야 되잖아요? 평소에 뿐 아니라.

 

 

여기 데살로니가전서5장16절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 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어떤 처지든지 감사하는 것이 회개한 증거여, 물론 항상 기뻐해야 되지만은 어떤 처지든지, 그러면 어떤 그 재난이 닥쳐도, 어떤 환난이 부딪쳐도 어떤 재앙이 와도 어떤 불행이 닥쳐도 어떤 고난이 접해도 그럴수록 또 병들수록 더 감사하고 또 죽으면 더 감사하고 마치고 가니까 세상을 졸업하고 가버리니까, 그러니까 감정의 육의 본능으로는 아주 불행으로 생각하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것이 회개인거지. 그 육적으로 본능으로는 아주 쓴 것이 달게 여겨지는 것이 회개한 증거다. 항상 기뻐하시오. 늘 기도하시오. 어떤 처지이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 준 하느님의 뜻입니다.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천국에 간다. 그랬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이냐? 어떤 처지든지 감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이다.

 

어떤 처지든지 감사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뭣이 하느님의 뜻이에요? 창세기1장 같지요. 다 좋다 병들어도 좋고 가난해도 좋고 배고파도 좋고 헐벗어도 좋고 맞아죽어도 좋고 다 그리 좋다. 그렇게 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그것이 회개한 증거라고, 요걸 지금 그렇지 못하니까 어쩌지요? 회개됐어요? 안됐죠? 인자 오늘부터 안 된 줄을 압시다.

 

그래 인자 회개를 하지. 지금까지 회개한 줄로 알았어. 속았어. 회개 안됐는데, 아직 물질에 속해 사는데, 땅에 속해 있는데, 아담에게 속했는데, 아직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았는데, 인자 아담에 속했던 허물을 벗고 그리스도에게 속해야 된다. 그러면 인자 이렇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말고 성령에 감동을 받아 감동을 받아 전하는 말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이 본문은 진짜 성령의 감동의 말씀을 멸시하는 것 싫어해요. 모든 것을 시험해보고 좋은 것을 꼭 두어두십시오.

 

그리고 ‘악한 일은 어떤 종류든지 멀리하십시오.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온전히 거룩한 사랑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여러분은 신념과 영혼과 육체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완전하고 흠 없게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을 불러주신 분은 진실하셔서 이 일을 다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이 우리는 걱정할 필요 없잖아요? 예수님이 다 이루어 주실 것이니까 하느님이 다 이루어 주실 것이니까 걱정할 것이 없고 그러면 무엇이냐? 하느님의 뜻대로 하는 사람 범사에 감사하라. 어떤 일이 닥쳐도 감사만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거여. 인제 죽겠다는 말 하지 말아요. 회개한대서 해야죠. 아멘. 심령이 죽겠다. 몸에 죽겠다는 것은 좋아해하고, 아휴 요렇게 됐으면 육체욕망 따라가니까 내 심령이 죽겠다. 그걸 깨달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회개니까 영혼상태가 죽게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요. 육은 만족한 삶을 살수록 영혼은 갇히는 거죠. 지옥생활이죠.

 

우리 뭐 세상이 있는 거라고 우리 뭣을 가지고 요만하면 됐다 만족하다는 거 느껴봤습니까? 그것 느껴본 분 손 한번 들어봐요. 세상 물질을 가지고 요만하면 넉넉하다. 그런 사람 하나도 없을 거여. 내 물어보지는 안 했어도 많으면 많을수록 거기 종노릇하느라고 정신 못 챙긴다. 걱정 안 잊어버리려고, 어디 은행에다가 돈도 맡기고 그래도 시원치 않으면 그냥 은행도 타져버리고 그러면 또 인자 어따 믿을 데가 없어요. 어디 외국 은행에다 딱 맡겨도 언제 드러나도 드러나요. 물질을 가지고 만족은 없습니다. 그것은 다 경험을 안 해봤어도. 성경 상으로 봐도 아담 하와 모두 그렇지 않습니까? 어디에 에덴동산보다 더 좋은 동산이 또 있으면 더 못살겠어? 못 살아. 그렇게 좋은데서 만족이 없으니까 하느님의 음성도 듣기가 싫고 쓸쓸한 찬바람도 불고, 그러니까 하느님을 떠나지 않습니까? 하느님이 어떻게 떠나겠습니까? 자기마음이 떠났지. 하느님이 어디를, 안 계시는 곳이 없는데,

 

 

2장21절

‘또 내가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끝내는 회개치 아니 하는 도다.’ 무엇을 회개 하냐? 음행을 회개한다. 음행은 지금까지는 꼭 남녀문제만 음행이라고 알았지만은 인자 그것이 아니라 이 자연계 물질계 애착을 가지고 사는 것이 모두 음행, 신앙은 없어, 예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과 한 몸이 돼야 할 텐데 말입니다. 믿지 않은 그 생활은 전부가 음행이라, 이 이걸 회개하라. 예수하고 하나 되지 않은 생활은 만물보다 더러운 것이 사람 마음이라 말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무얼 주면 좋다하고 싫어하면 뺏어 가면 싫다하고 아 그러지 않아요? 이 타락한 본능이야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근데 거기서 무엇을 해가지고 만족을 하겠냐? 에요. 회개를 해야지 초자연의 세계 절대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사랑뿐이고 감사뿐인 세계로 들어가야지. 이 물질계에서는 밤낮 무엇이 있다하면 또 무엇이 부족하고 또 고것 좀 채우고 나면 다른 것이 부족하고 한도 끝도 없어요. 공부하는 것도 그렇고 그리 인자 논리적인 공부는 금년에 졸업해버렸어요.

 

인자 내가 제가 인자 그 사람들한테 얻어먹을 것 밖에 없어요. 제가 하는 말은 다해버렸어. 할 말도 없어요.

 

그런다고 까마귀는 안 갖고 왔지. 까치가 그런다든가? 그 지금 새끼를 먹여줬는데 어미가 먹여 주면은 인제 자기가 커서 낳은 어미를 새끼가 먹인다는 구만요 그래서 까마귀 할 때가 있어.

 

그러니까 자기들이 인자 가서 먹고 느껴보고 체험하고 그 인자 그것을 먹어야 돼요.

 

그럼 인자 또 회개해서 뭣하냐? 묵시록16장8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느니라.’ 사람들이 크게 태워진지라. 사람들도 태워버려 그러니까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느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인자 회개해야 항상 어떤 처지든지 감사할 수 있다. 회개, 회개하고 나면 이 음행을 회개하다 믿지 않은 그 전 생활 전부 감정적인 물질계에 속해있는 땅에 속해있는 이 마음 이걸 회개한다는 거여. 해서 예수를 환영해드린다. 예수님만 짜고 살아야해. 진리와 짜고 살아요. 그런 세계는 아무것이 매이지 않아요. 그럼 회개만 하면 하느님께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려야 한단 말이야. 돌리지 않은 것이니까 회개안한 생활, 음란한 생활 못 떠난다.

 

의식주문제에 종살이하고 있다. 하느님은 공중에 나는 새도 먹이시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에게 굶어죽일 리가 있겠냐? 근데 그게 그냥 부채가 되어가지고 종살이한다. 불의의 종살이한다. 죄의 종살이, 죄의 종살이서 벗어나는 것이 구원이에요. 현재 구원,

 

절대세계

초자연의 세계에 사는 영혼, 여러분 신교 구교가 막론해서 대 성자, 세계적인 성자 성 프란치스코 잔 꽃송이 8장입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레오형제와 함께 길을 가면서 참된 기쁨을 가르쳐준 일이 있다. 참된 기쁨, 성 프란치스코가 어느 겨울날 레오형제와 함께 페루지아로부터 천사의 성 마리아성당으로 향해 가고 있었는데 살을 베어내는 듯한 추위 때문에 몹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였다.

 

성인은 조금 앞서 가던 레오형제를 불러 ‘레오 형제여, 가령 작은 형제들이 가는 곳마다 성덕과 감화의 훌륭한 모범을 보여준다 하여도 그러나 그런 것은 완전한 기쁨이 되지 않는다고 잘 기록해 놓으시오.’ 가는 곳마다 말입니다. 가는 곳마다 말입니다. 성덕, 거룩한 덕, 덕과 감화 많은 감화를 준다. 감화의 훌륭한 모범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런 것은 완전한 기쁨이 되지 않는다고 잘 기록해놓으시오 하고 말했다.

 

조금 더 가다가 성 프란치스코는 그를 두 번째로 다시 부르며 ‘레오형제여 가령 작은 형제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곱추를 고쳐주고 마귀를 내쫒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고 다 위대한 일로 죽은 지 나흘 된 사람까지도 부활시킨다 할지라도 그러한 것은 완전한 기쁨이 되지 않는다고 잘 기록해 놓으시오.’ 하고 말했다

 

그건 왜 그럴까요? 그렇게 굉장한 일을 했는데 어찌 기쁨이 완전한 기쁨이 안 될까요? 왜 그러겠어요? 한 번 대답해 보아요. 왜 그럴까요? 뭐 알기 어렵죠? 쉽죠? 그러면 왜 그럴까요? 누구든지 대답해 봐요. 왜 그럴까? 한 번 생각해보고 간다 말이야. 아 그렇게 위대한 일을 했는데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서 냄새가 나는데 말입니다. 근데 그럼 냄새가 난 시체가 말이여 살아나버렸어. 아 그런 기적도 했어.

 

그런데 어째 완전한 기쁨이 없겠냐? 왜? 대답해. 대답 좀 해봅시다. 아 물어보면 대답 해봐요. 대답해야 보지. 그러면 안 믿어. 하하

 

다 맞아요. 그럼 또 해봐요. 틀릴까봐 염려 말고, 왜 완전한 기쁨이 없을까? 이상하지 안 해요? 왜 그럴까요? 물어봐야 알 것 같아요. 그건 은총의 힘을 힘입어서 한 것뿐이에요. 자기가 한 것 아니거든 하느님이 해 주신 거요. 자기가 한 건 없거든요. 거두어 가면 그만이여. 그게 완전한 기쁨만 아녀. 나중에 나와요. 그러한 것은 완전한 기쁨이 되지 않는다고 기록해 놓으시오. 라고 말했다.

 

또 좀 더 가다가 성 프란치스코는 큰 소리로 얘기합니다.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여 형제여러분, 크게 불렀어요. 가령 작은형제가 모든 나라말과 온갖 지식과 만 가지 책에 능통하고 어느 책인지 보면 그냥 딱 다 볼 것도 없어. 뭘 봐버리고 끝 봐 버리면 다 알아버린다. 그렇게 잘한다 말이야. 그냥 또 보다 안하고도 다 알아버려. 그런다고 하면 성경도 볼 것 없이 다 보지 않고도 알아버린다. 그런다고 봐요 능통하고 장래일 뿐만 아니라 예언, 인간양심의 비밀까지도 꿰뚫어볼 수있다하여도 그러한 것이 완전한 기쁨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기록해두시오.

 

뭣이 유명한 그 점쟁이는 뭣을 잘 알아준다고 하죠? 귀신도 잘 알아맞힌다. 그러죠? 귀신도 아니까 그러나 봐요. 그러나 그래도 그 기쁨은 없어요. 자기 것 아니야. 다 은혜니까.

 

그리고 또 좀 더 가다가 성 프란치스코는 다시 큰소리로 불렀다. 하느님의 어린 양 레오형제여 가령 작은형제가 천사들의 말을 하고 별의 궤도, 별이 어디로, 어디로, 북극성을 엇다 중심으로 해가지고 뭣이 어디로 돌고 뭐 그러죠? 궤, 다니는 길 궤도와 약초의 효력 무슨 풀은 어디에 약, 어디 약 뭔 풀은 어디에 약, 효력을 알고 또 땅의 보물을 다 찾아내, 어디가면 보물이 숨어있다. 내가 되고 새와 물고기와 온갖 짐승, 사람, 돌, 초목의 뿌리와 물의 효능을 알고 있다하여도 그러한 것이 완전한 기쁨이 되지 않는다고 잘 기록해두시오.

 

역시 이건 하느님의 음성이지. 그렇게 알게 해 주신 것뿐이지. 자기 것은 아니다. 이 완전한 기쁨입니다.

 

좀 더 가다가 몇 번인가 가다가 셈해 세어보시오. 이 몇 번째여? 세 번째여? 성 프란치스코는 큰소리로 레오형제여, 가령 작은형제가 전도에 아주 능하여 한 번 설교에 그냥 오천 명, 삼천 명, 오천 명이 회개를 했다 그거야. 이교도 불신자들을 모두 회개시켜 그리스도의 신앙에로 이끌려 들인다 해도 그러한 것이 완전한 기쁨이 되지 않습니다. 참 이상하지 않아요? 어찌 그럴까? 어찌 그럴 수 있을까? 그 이상 기쁜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왜 저 그럴까? 이 모른단 말이야. 나중에 나와요. 대답이. 그런 건 왜 완전한 기쁨이 아닌가?

 

3Km 족히 되는 거리를 가면서 레오형제는 계속 생각했다. 내 생각에는 자기 생각에는 참 그렇게 기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완전한 기쁨이 안 된다니 당체 이해가 안 된다. 그러니 좀 가르쳐주십시오. 하고 물으니 성 프란치스코는 대답하기를 우리가 비에 젖고 추위에 얼고 진창에 빠져 형편없이 되고 배고파 기진맥진하여 인자 다 쓸어져버렸어. 자기 기운을, 배가 고프고 춥고 얼고 한걸음도 걸어갈 수도 없는 처지라. 천사의 성모마리아 성당에 도착해 겨우 인자 자기 집이요. 자기 집과 같은, 인제 도착했어요. 도착해 수도원 문을 두드릴 때 아이고 형제여 어서 열어줘 어서 어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죽어가고 있어. 어서 어서 근데도 말입니다.

 

거절할 때, 문지기가 화를 내며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묻고 그 때 당신들의 형제 두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면 참 누구요 할 때. 예, 오해 마십시오. 당신의 형제 두 사람입니다.

 

그러면 얼른 열어줄 줄 알았거든요. 대답하면 문지기가 말하기를 거짓말마라. 거짓말, 그때 어떻게 참겠어요? 그럴 수가 있어요? 저 같으면 말입니다. 그런 형편이 됐으면 막상 고렇게 됐으면 무얼 거짓말이냐고 따질 것 아니오? 거짓말마라. 너희들은 사방을 돌아다니며 세상을 속이고, 가난한 사람이 구걸한 것을 빼앗아 먹는 두 명의 악당이지. 강도로 몰린 거요. 악당이지 썩 물러가거라.

 

그리고는 문도 열어주지 않고 추위와 굶주림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바깥 쏟아지는 빗속에 우리를 밤중까지 내버려둘 때 그런 욕설 인정 없는 무자비한 대우, 매정한 거절도 우리가 인내로써 달게 받아야한다. 이것이 인자 초자연위에 사는 영혼이란 말입니다. 이것이 진짜 완전한 회개여. 회개한 상태 물질계를 떠났어. 의식주 문제를 초월 했어. 땅에 속해있지 않아요.

 

인내로써 달게 받고 그 사람과 맞서서 싸우거나 불평하지 않고 겸손히 애덕으로 문지기가 말한 것은 정말입니다. 옳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도적입니다. 그러고요, 옳습니다. 그 받아줘요.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도록 하느님께서 시킨 것이다 하고 생각한다면 하느님이 그 문지기를 우리

 

 

너 물질계에 매여 사냐? 초월 했냐? 시험해 보란 거여. 그래서 문지기 그렇게 시킨 거 에요. 하느님이. 생각한다면 레오형제여 그것이 바로 완전한 기쁨이라고 기록해놓으시오.

 

이 감정으로 타락한 본능으로 이건 상상도 못할 일이고 전연 안 될 말입니다. 요 감정을 갖고 이런 장면을 닥쳐 놓으면 그냥 기절해 죽어버려. 기가 맥 혀 죽어버려. 억울해서요. 그리고 우리가 끝내 문을 두드리면 문지기가 더 화를 내. 더 화를 내, 화를 내며 튀어나와 우리가 나쁜 불량배나 되듯이 욕설을 퍼붓고 뺨을 때렸다.

 

그래도 안 간다. 뺨을 때려 내 쫒으며 여기서 썩 물러가라. 가지 못해. 이 더러운 도적놈들아 병원 그 근처에 있던 나병환자, 병원을 말함. 병원에나 찾아가라. 나병환자 병원에나 찾아가라. 그 혹 떨어지면 부스러기나 주워 먹어라. 여기서는 먹여주지도 재워주지도 않는다. 하고 말하게 될 때 우리가 만약 애덕의 숭고한 정신에서 인내와 기쁨으로 이 모든 것을 달게 참아 받아낸다면 레오형제여, 그것이 완전한 기쁨이라고 기록해 놓으시오.

 

다른 것 기록한 것 싹 없애버리고 요것만 기록해 놓으시오. 그리고 우리가 굶주림과 추위와 어두움 때문에 하는 수없이 다시 문을 두드리고 울부짖으며 제발 문 좀 열어달라고 애원할 때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문지기가 말입니다. 이 파렴치 족속들, 아까 전에는 독사의 족속들 염치도 없는 놈들아 이가 파렴치 족속들 혼 좀 나봐라 하고 고함치며 옹이가 공이죠? 전라도 사투리로는 공이가 가득 베긴 몽둥이를 들고 나와 수도복의 모자를 잡아 쥐고는 우리를 땅에 내 동댕이친다. 엠마오가 동댕이쳤 단말이오. 내동댕이, 땅에 내동댕이쳐. 눈 속에 몽둥이의 옹이로 사정없이 매질한다고 할 때, 이 실제 있는 것 아니요. 지금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할 때 그래도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달게 참아 받고 복되신 그리스도의 가난을 생각하고 즐거워한다면 레오형제여 그런 것이 완전한 기쁨이라고 기록해 놓으시오.

 

레오형제여 자 이제 결론을 들어보시오. 왜 기쁨인가 아까 네 번짼가 다섯 번짼가 그 기쁨이 없는 것이 거기 나와요. 결론을 들어보시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친구들에게 베푸시는 성령의 온갖 은총과 선물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것은 바로 자기를 눌러 이기고 자기를 이기고 부정 자리를 눌러 이기고 고통, 모욕, 수치, 불쾌한 것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때문에 달게 참아 받는 그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느냐 야. 그리스도야 말로 애매하게 그렇게 당했어요. 이거 지금 그리스도를 비유한 것이죠. 그리스도가 그렇게 당한 것이다. 뺨을 맞고 하느님이 피조물에게 더러운 인간에게 뺨을 맞았다는 말이야. 아 그래 참으셨어요. 그러니 그 그리스도의 고난에 나도 거기 인자 예수를 사랑해서 그 만분의 일이라도 거기 동참했다는 기쁨이 있다면야 얼매나 달게 받겠냐? 그 말입니다.

 

복되신 그리스도의 가난을 생각하고 즐거워하시오. 즐거워한다면 레오형제여 그런 것이 완전한 기쁨이라고 기록해 놓으시오. 레오형제여 자 이제 결론을 들어보시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친구들에게 베푸시는 성령의 온갖 은총과 선물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것은 바로 자기를 눌러 이기는 것이에요. 자기, 이 우리가 날마다 지금 생활 가운데 닥치는 것은 뭐하는 거여? 뭐든 시험해보는 것입니까? 죽었냐? 살았냐? 하는 시험입니다. 자기를 부정했냐? 자기가 있냐? 하는 시험이에요. 근데 부딪쳐 톡톡 드러난 건 살아있다는 것 아니요? 무아경이 아니란 말이야. 무아경지에 이르러야 자기가 없으니까 보다가 가는 거야.

 

하느님의 영광만 드러나니까 감사하고 기쁜 것뿐인데 자기가 있으니까 아이고 쓰다. 맵다. 춥다. 덥다. 괴롭다. 싫다. 누구는 미웁다. 누구는 사랑스럽다. 모두 피안적이란 말이야. 자기가 있어서 그래요. 무아, 자기가 없으면 그리스도뿐인데 감사뿐일 텐데 말이야. 모든 건 편당이 생긴 것도 나가 있응게 생겨. 나, 나 좋은 것만 모두 내이로운 게 좋다, 그래 당파가 생긴다. 원하는 사람이 원하지만은 당파 없앱시다. 있어선 안돼요. 온 우주가 하나가 되어야 된다. 근데 왜 있냐? 그러면 왜 있냐? 없애려도 없애질 못해요. 내가 있은 한은 없앨 수 없어요. 없애려면 각각 내가 없어요. 자기를 부정해. 자기가 있는 한은 이건 안돼요. 무엇을 해도 안돼요. 베드로 장담했어도 왜 안됐지요? 자기가 하려고 하니까 나는 죽어도, 다른 사람은 다 예수를 안 따라간다고, 베드로는 ‘나만은 따라가겠습니다.’ 장담했지만 어디 자기가 하려고 한 것 실패해버렸다. 자기가 못해, 자기가. 제일 큰 은혜는 그래 자기가 없고 긍게 그리스도가 다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다른 선물은 자랑거리 삼을 것이 못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차마 받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다른 선물은 자랑거리로 삼을 것이 못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 매일 기적을 바램이 없고 죽은 지 나흘 만에 죽어서 썩은 냄새가 나는 그런 사람을 살렸다 하더라도 그건 하느님의 은혜지, 선물이지, 하느님의 것이지. 잠깐 내게서 인자 좀 맡겨 논 것뿐이지, 찾아가면 그건 고만이야. 내 것은 아니야. 내 것은 뭐이냐? 자기 이긴 것 밖에 없어. 자기를 이기고 고통, 모욕, 수치, 불쾌한 것을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달게 참아 받는 그것이 그것만이 우리 것이 된다. 그것만이 천국에 갖고 갈 것이다. 그 여기 오신 분들도 아 그렇다면 나도 천국에 가져갈 거 많구나. 큰일 난다. 큰일 나요. 못나요. 애매한 것들도 참고, 다리도 병신도 되고 아 아 요거 에요. 어떠한 처지에서도 애매한 억울한 일을 달게 참았다. 누가 멸시를 하고 뺨을 때리고 해도 아이고 감사합니다. 고것만 재산이에요.

 

 

히브리서11장25절. 성도의 재산

‘도리어 하느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다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급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세상부귀영화 대통령 왕 된 것 보다도 더 예수를 통해서 같이 수치, 치욕을 받는 것이 더 재산이다. 이거 재산이 성도의 재산은 그거요. 무슨 논이 많고 돈이 많고 명예가 많고 크고 그런 것 아니라는 말이에요. 그건 세상이고 성도 믿는 사람의 재산은 반대에요. 정반대, 제일 천한 것, 세상 사람들에게 모도 멸시를 받고 뺨도 맞고 천대를 받고 그것이 재산이다. 예수 이름 땜시 그것이 영광 돌리는 거라. 그럼 다 그런 재산은 있건만 다 만족으로 안 여긴다 말이야. 만족한 가 몰라도, 모두 여 병신 많이 모였잖아? 병신? 그것이 재산이여. ‘그러므로 사도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느님의 다른 선물을 자랑거리로 삼을 것이 못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것에는 아까 자기를 이기고 멸시, 천대를 받는 것만이 우리의 것이다. 그리고 사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로 받은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다 받은 것인데 왜 받은 것이 아니고 자기 것 인양 자랑합니까? 자기 것이 아니 여.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고통의 십자가는 바로 우리 것이기 때문에 자랑할 수 있습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를, 그리스도를 자랑하라. 갈라디아 6장 13절이 구만요.

‘읽어 보십시오 자랑할 수 있습니다 사도께서는 내게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라디아 6장13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러면 십자가 인제 암만 천대받는 일이고, 뺨맞는 일이고, 멸시받는 그거란 말이요. 십자가가 뭐 성당에 높이 교회에다가 매달았으니까 모신 줄 아시오? 뭣 인줄 알아요? 가장 큰 죄인을 사형하는 사형 틀이에요. 이 세상 그 부끄러운 일인데 말입니다. 왜 달아만 놓고 오히려 십자가 져요? 그 십자가는 우리 안 달고 댕기도록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져야 한다 말입니다.

 

로마서8장29절

‘하느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절. 제가 보죠.

하느님의 말씀 사랑 하느님의 사랑, ‘그러니 이제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 하느님이 우리 편이요. 그럼 모두 하느님 그 외의 것들은 하느님의 피조물 아닙니까? 다 피조물의 편인데 뭐하려고 당파가 있냐? 그거에요 하느님이 우리아버지신데,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느님께서 독생자까지 주셨단 말이요. 다 받은 것 중에도 특별히 받은 것 중에 예수까지 주셨다고, 그게 십자가야.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느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럼 아들과 함께 주셨응게 무엇을 주셨겠어요? 돈을 줘요? 밥을 줘요? 옷을 줘요? 뭣을 주지요? 십자가겠죠? 멸시, 천대 그것입니다

회개안하고 죽으면 못쓰죠. 회개하고만 되면 죽어도 좋다.

 

예수 믿으면 뭐 무엇이든 복 받는다고 하니까 그 말이면 아 물론 복 있죠? 없어도 좋으니깐 가난해도 좋으니까 복은 복이에요. 영 육간에 복이요. 없어도 좋으니까 가난할수록 좋으니깐 예수 믿으면 바로 믿으면 좋다고 해요. 아 여기 창세기1장까지 다 좋다. 단지 밑에 있을 동안만 쪼금 좀 안 좋지만 그 또 결국 좋다는 것이에요.

 

하느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하겠습니까? 그들에게 무죄를 선언하신분이 하느님이신데, 죄 없다 선언하셨는데 왜 내가 죄를 죄에게 매여 사느냐? 그럼 바쳐버려야지. 예, 오늘 그런 말 들었습니다. 죄가 하느님의 것이랍니다. 나는 내 것인 줄 알았어. 이때 까지 그런데 하느님의 것이라니까 아 그렇습니까? 그럼 맡겨 버리자. 그래 아 그럼 인자 다 해결이여. 죄가 내 것인 줄 알았어요. 아 그랬더니 하나님의 것이래요. 하느님이 내셨대요. 그래서 하느님이 책임지세요. 이 독생자 당신 주를 죽였죠? 당신의 것이니까 당신이 죽었어요. 독생자를 죽였어요. 십자가 지면서 긍게 인자 죄 때매 걱정할 것이 없다. 하느님의 것인 게 바쳐버려. 십자가에 내놓아.

 

이 인자 그 말이 믿어지면 오늘부터 인자 춤추고 살 거 여. 걱정할 것이 없단 거여. 뭐 때매 걱정 하냐? 아 죽을 것 땜시 걱정하죠? 아 죽으면 그냥 가버린데 뭐하려고 걱정 하냐? 무엇이 미련이 있어서 세상에 무엇을 더 살고 싶어요? 긍게 죽으면 더 좋고 좀 살아도 좋고 다 좋다.

 

무죄를 선언하신 분이 하느님이신데 누가 감히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죄 없다고 하느님이 하셨는데 너 죄인이다 누가 그러겠어요? 금방, 그리스도 예수께서 단죄 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해 주신다. 간구해 주신다. 간구해 주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대신 빌어주신다.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환난이 뗄 수 있겠습니까? 왜 못 떼요. 떨어진 것은 왜 떨어지죠? 조금만 환난이 조금만 환난이 닥치면 왜 떨어집니까? 누가 신앙 받지 말라고 했어요? 그 말 없죠? 내가 안 믿었지. 내가 안 믿었지. 내가 안 믿었잖아요? 맡겨야 믿지, 희망이란 말은 맡긴다는 말이야. 죽든 살든 알아서 하십시오. 죄가 당신의 것입니까? 아 그럼 받아야 쓰겠습니다. 아 인제 시원합니다. 내놔버리지 뭣 때문에 그렇게 회개를 안 해서 그래요? 안하고 썩을 것이 붙어있어서 그것만 놓기가 싫어서 그래요. 그걸 놔버리면 뭣이 되겠냐?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이냐? 이거여. 뭣이냐? 그 내 지금까지 설명을 안 해주었어요?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이냐? 멸시 천대 받는 것이라니 까요. 이 그 사랑을 몰라 우리는 그저 감정적인 그저 딱 맞는 것만 사랑인줄 알아요. 감정으론 쓴 것이에요. 하느님의 사랑은, 썩을 사랑은 육적에는 좋지만은 그건 영혼에는 쓴 것이고 영혼이 죽는 일이고,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우리의 처지는 우리는 종일토록 당신을 위하여 죽어갑니다. 이것이 사랑이에요. 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에요. 당신을 위해 죽어갑니다. 도살당할 양처럼 천대받습니다.

 

이것이 사랑인걸 알아야 된다. 이것이 초자연의 세계에서 산사람. 절대사랑 절대자비, 절대적인 사랑 속에 사는 사람의 태도라는 말입니다. 그렁게 이 물질계에 자연계에 매여 사는 과정은 이것은요. 여기서 벗어나려면 요것을 달게 받아져야 돼요. 멸시 천대를 달게 받아짐에 따라서 벗어나는 완전한 자리에 완전한 기쁨 속에 삽니다. 예수와 같이 사는 것 초자연의 세계서 산다. 상대세계를 벗어나서. 상대세계는 항상 배부르다. 배고프다. 춥다. 덥다. 만날 이거에요. 이 상대세계라고 어둡다 훤하다. 미웁다. 곱다. 좋다. 나쁘다. 맹 이거요. 이 절대세계는 그냥 아주 영광뿐이고 좋은 것뿐이고 하느님의 영광은 못 믿는 것이고 거기는 털끝만치도 불안 불평이 없는 세계라는 말이야.

 

도살당할 양처럼 천대받습니다. 라는 성서의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은총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영혼을 사랑해서 보옵소서! 우리에게 고통을 떠안은 것은 평화를 주는 주입니다. 영혼을 사랑하시는 주, 우리 영혼을 죄에서 해방시켜준다. 역사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분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이 은총의 힘으로, 나의 감정적인 자기 힘으로는 못 이겨요. 그냥 기절을 해버려요. 당하지를 못하고 그런 멸시를 못 당해요. 그러나 은총 그리스도와 같이 하시면 된다 말이야. 믿으면 된다. 능력 주신 자 안에서 능치 못한 것이 없다. 예수님이 하시니깐 된다. 사람은 감사하고 찬송할 것뿐이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도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높음도 기쁨도 그 밖에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가 없습니다.

 

 

샘내할머니 가사낭송입니다. 옛날 올렸는데 나오지 않아 다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