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초복 지나고 : 모든것을 버리라

mamuli0 2023. 7. 13. 19:54

 초복 지나고 이틀째다. 장마중이라도 무더위는 이어진다. 능소화에 이어 하국과 연꽃이 피기 시작한다. 소나무 숲속에 시래기 덕장 본공사가 시작 되었다. 금년 장마는 무척 길고 강수량이 많다. 표토 유실이 심하다.

 

 

모든 것을 버리라

1996. 12. 29

‘나는 그대를 허무에서 불러냈다.’ 허무에서 절망에서 허무를 깨달은 상태에 있을 때 불러냈다. 우리는 아직 허무를 모르죠? 체험을 안했다 말이야. 허무에서 불러냈어요. 불러냈다. 내 아들이 되라고. 뭐 할라고 불러냈다고요? 허무에서 뭐 할라고 불러냈어요? 하느님의 아들이 되라고.

나는 온 우주를 버무려 온 우주를 손에다 버무린다. 흙 주무르기. 흙 버무린다 말이야. 반죽 밀가루 반죽하듯 버무린다. 게요. 버무려. 온 우주를 버무려. 그대의 몸을 만들었어. 빚었다. 그러면 우리 몸에 안에서 온 우주가 다 들은 거여. 몸만 해도 이 꽃 하나 속에서 온 우주를 배울 수 있다 말이야. 진리가 다 있다. 그런데 모르죠? 나는 온 우주를 버무려가지고 그대의 몸을 빚어냈다. 나는 내 신성을 본떠서 그대의 정신을 만들었다. 하느님의 신성을 고대로 되도록 우리 정신을 만들었는데 근데 왜 타락한 인성을 지녔냐 말이야. 그런데 신성이 있을 리가 없죠? 인성까지도 타락했어요. 우리 감정의 요구는 타락한데서 요구하는 거예요. 그게 또 뭐 주시오. 뭐 주시오. 그래요.

그걸 깨달았다면 아 이거 버리게 해 주시오. 버리게, 버리게 해 주시오. 그래야 할 텐데 말이야. 버려야 할 텐데. 버리게 해 주십시오. 해 줄 거 없이 자기가 버리는 것이 자기 책임아녀? 그런데 왜 못 버리는가 말이여. 버리기 아깝다. 세상에 더 살고 싶다는 거에 살되 오래 살고 싶다. 그 욕심이라 안 버렸어요. 마음을 안 버렸으니 몸도 안 버린 거예요. 바치라 했는데 버리기 싫으니까 안 바쳐요. 바치란 말은 버리라는 말이거든요.

 

‘나는 내 정신을 본떠서 그대의 정신을 만들었다.’

또 이런 몸이라면 얼마나 입니까?

우주를 버무려가지고 하나로 뭉쳐가지고 우리 몸 하나 됐다. 이 땅에서 흙으로 지었응게 땅의 것만이 아니야. 우주 전체가 다 들어간다. 또 예수님의 신성을 본떠서 우리 정신을 만들었다 말이야. 이렇게 귀한 건데. 그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었다고 그 말이야. 하느님의 형상, 하느님은 몸으로 형상은 없죠? 예수님이 몸으로 나타낸 것뿐이지.

그러니까 그 정신까지 하느님의 정신, 신성, 정신을 만들었다. 인자 그 담이요.

 

나는 그대에게 살기 위해서 하느님은 우리 안에 와서 사시기 위해서 말이야. 나는 그대에게 살기 위해서 스스로 사랑에 호소하였다. 사랑, 그 요걸 위해 성경에 한 번 대보면 어디 일까요? 사랑에 호소했다. 나는 그리스도 아뇨? 나는 그대 안에서 살기위해서 사랑의 예수님은 사랑이신 하느님께 아버지께 호소했다 말입니다. 어디 있어요? 예수님이 하느님 앞에 어떤 호소를 했어요?

나는 그대에게 가서 살기 위해서 한 살림하기 위해서 스스로 사랑에게 하느님에게 호소했어요.

 

 

누가복음 23:34

‘아버지여 저 사람들은 하느님을 몰라서 그런 것이니 용서해 주십시오.’

내가 저 사람들을 잘못을 죄의 짐을 내었다. 십자가에서 하신 다 회개, 저 사람들의 죄를 내가 지고 십자가 지겠습니다.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이에요. 십자가에 달려서, 십자가 우에서 일곱 가지 말씀하신 중에 하나에요. 칠언이라는 것. 십자가상의 칠언 중의 하나야. 저 사람들은 몰라서, 하느님 몰라서 나를 지금 십자가 지웁니다. 그러니 용서해 주십시오. 그래요.

 

그러고는 인자 40절 44절이다

그래 그 오른편 강도는 강도의 영혼 안에 예수님이 같이 산거에요 내 낙원에 함께 있을 것을 약속한다. 내 장 바로 깨달았다. 좌편 강도에게 꾸지람을 했죠? 우리 당하는 것은 우리 행위에 마땅하다. 오히려 더 받아야 된다. 사형보다 더 받을 건 없죠? 죽으면 끝나니깐 하지만은 이 분이야 무슨 잘못이냐? 인류 죄 때문에 지금 당하는 것이지. 아무 잘못한 것 없는데 흠도 죄도 없는 분이 인류의 죄 짐을 지고 당하는 것 아니냐? 그러고 좌편 강도를 꾸지람 하고는 애원했어요. 나를 불쌍히 여기라. 그래 그 약속했다 말이야. 실수했지만 그 사랑의 호소야. 예수님이 사랑이신 아버지께 호소를 했어. 인류의 죄 짐을 다 없애주시오. 내가 지금 혼자 다 당합니다. 혼자 다 당하고도 남죠. 그에 남은 거나 조금 남겨 놓은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으라고요. 실지 져보고 깨달으란 겁니다. 십자가를 져보고 깨달으란 겁니다.

 

‘나는 온 우주를 버무려 그대의 몸을 빚었다. 나는 내 신성을 본떠서 그대의 정신을 만들었다. 나는 그대에게 가서 거하기 위해서 스스로 사랑에 호소하였다.’

살 거(居)자가요. 주검 시(尸) 밑에다가 예 고(古)한 살 거(居) 자다. 예 고(古)자는 따먹으면 죽는다. 십자가 진다. 그 말이 요. 글자야. 옛적에 그 말씀 했어요. 따먹으면 죽는다. 먹는다. 입 구(口)자니깐 열 십(十)밑에 입 구 한 거 옛 고(古)자 말이야. 옛적에 그 말씀했어요. 따먹으면 죽는다. 왜 따먹어 내가 죽는다. 그 말이지. 아담이 따먹어도 안 죽었지. 몸은, 이 영이 죽은 거나 다름없어요. 자유가 없어요. 쫓겨났어요. 항상 만족이 없어요. 그러니까 범하고 쫒겨 난 거 세 가지 큰 귀한 것 잊어버렸어요. 인자 그 때 부터는 쫓겨난 후로는 하느님의 자녀의 특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특권을 예수님이 인자 요한복음1장에12절에 그 특권을 찾아주러 오셨어요.

 

에덴동산에서는 그 때 그런 낙원에서는 그런 권위가 없죠. 인자 예수를 찾아 안 뒤로는 그게 천국이야. 엇다 비할 데 없는 천국이야. 영원한 천국이고 에덴낙원은 없앨 수 있고 잠깐 훈계허기 위해서 잠깐 보인 것뿐이죠. 또 그 동산이 어디 실지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면 지금 다 있을 텐데 어디가 있어? 뭔 뭐냐? 저 이스라엘? 아니에요. 우리마음의 에덴동산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어기니까 쫓겨난 거 에요. 하느님의 자녀의 특권 잃어버렸어. 그러고 그 낙원 잃어버렸죠? 행복한 길 잃어버렸죠? 또 쫓아내야 돼요. 거기서는 항상 죄 가운데 오래 살면 뭣합니까? 더 불행해지죠. 회개를 해야 말이지. 쫓아 낸 것은 가서 회개하라. 이마에 땀을 흘리도록 고생을 해보고 깨달아라. 그거에요. 요거는 사랑허기 때문에 도로 얻으려니까 쫓아낸 겁니다.

하느님 살아계신데 왜 버린 것 아니 예요. 거기서는 회개 못해서 좋은데 서는 너무 좋으니까 고생이 없으니까, 아무 노동 안 해도 먹을 수 있거든 먹기는, 이 마음만 불안하지 살수는 있어요. 그러나 그런데는 회개를 못하니깐 쫓아낸 겁니다. 회개하라고, 근본 된 토지를 갈기 위해서 신령한 몸을 갖도록, 동시에 완전한 자유를 잃어버렸어요. 그런데 인자 하느님의 자녀가 되면 자유에요. 여기 자유란 말이 나옵니다.

 

‘내가 그대에게 거하는 지금 그대도 나의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나도 그대의 주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도 성경 엇다 하나 대봐야 되는데, 시간이 없어 대보려다가 왔어요. 인자 앞으로 대봐야죠.

회개하고 돌아온 탕자는 항상 주님이 주인이죠. 자신이 머리가 됐다 말이야. 회개하면 회개하기 전에는 제가 머리고. 주고, 주인이고 회개하면 그리스도가 머리고 주인이고 우리 머리가 된다 말이야. 임금이고, 주께서 인자 마음을 다스려 지배해요.

‘내 사람이 되라.’ 요 말을 네 번 했는데요.

‘내 사람이 되라. 그대를 갈수록 내 것으로 삼을 수 있게 하라.’

갈수록 예수그리스도, 자꾸 내 것을 챙기니깐 더 멀어져요. 내 몸, 내 것, 내 집, 내 살림, 내 모두 이 내 옷, 뭐 내 방, 내 책, 내 것이라고. 그러곤 멀어져. 자꾸 비워버려야 할 텐데. 자꾸 자꾸 더 채우니까 더 멀어져요. 내 것을 더 든든하게 하려니까. 또 돈도 마 은행에다 꽉 꼽쳐 재여 놓고. 저금해놓고. 숨 딱 끊어지면 누가 가져 갈 거여?

 

모든 물질은 아무리 우주를 다 가져 봐도 말이야. 아까 우주를 다 있다고 하지, 우리 몸 안에 우주를 빚어가지고 만들었으니까 다 있어. 근데 불만헌가 말이야. 우리도 전체 속에 살면서 왜 불만해? 하나 같이 원인은 죄 하나뿐이다. 죄가 주인이 되거든 죄의 지배를 받고 있거든 불순종의 결과다. 그 이제는 순종해야 돼요. 순종, 순종이 뭐이죠?

예수님은 어떻게 순종했죠?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가지고 십자가 달려 죽기까지 순종이여. 죽는 것이 순종이에요. 완전 자기부정이 순종이에요. 자기 두고는 순종 없어요. 한 번 자기 뜻에 맞아 순종한 것이지. 가면 갈수록 내 것으로 삼을 수 있게 하라는 말이에요. 또 두 번째는 내 사람이 되라. 또 두 번째 했거든, 첫 번째 내 사람이 되라고 두 번째도 그대를 늘 내 곁에 둘 수 있게 하라. 껴 앉듯, 항상 일 분 일초도 떠나지 않게 하라. 또 세 번째 내 사람이 되라. 뭐냐? 그대를 나처럼 자유로운 자로 만들 수 있게 하라. 그 예수님 얼매나 자유, 성경에 대봐요. 얼매나 자유 했던가? 예수님이 자유로 할 수 있는 그 원인이 뭐냐? 자 자유란 말 하나보고 그만 해야겠는 데 다 볼라면 다 좋은데. 이자 한 장 다 못 다 봐요. 한 십분의 일밖에 못 본거요.

 

 

자유 요한복음8:31~36 공동번역으로 보겠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에 순종해야 자유를 얻지. 진리를 거 스리면 자유가 없어. 거스릴수록 매여요. 진리가 뭐냐? 진리는, 진리가 뭐이냐? 성경이라 말이야. 진리의 성경 삼위가 진리에요 하느님이 진리고, 그리스도가 진리고, 성경이 진리란 말이야. 참이란 말이야. 참, 성령을 거스리는데 어떻게 자유가 있겠느냐 말이야. 참을 거스린데 어떻게 거짓이 자유가 있겠냔 말이야. 거짓을 버리고 참에 들어와야지. 나는 거짓이거든. 죄 가요.

 

예수께서 당신의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내 제자가 된다. 참으로 마음속에 말씀을 새기고 살아야지. 말씀하고 상관없는 생활을 하는 것이 뭐이 제자가 될 수 없다. 마음에 새기라는 말이야. 머리에만 기억도 안 하지만은 고것만은 안 된다. 마음에다 기록해야 된다. 새겨버려요. 닦을 수 없도록, 다른데다 두면 닦아버리고 없앨 수 있죠. 마음에 있는걸 누가 닦아요? 어떻게, 말씀을 마음을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내 제자이다.

 

 

32절

그러면 어쩌면? 예수의 말씀을, 진리를, 참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제자가 되고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다.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진리를 거스리면 거스릴수록 매인 것뿐이고 진리대로 살면 풀어지고 자유롭다. 진리는, 진리는 빛이죠? 빛, 나는 어둠이니까, 어둠을 비취러 가면 어둠이 없어져 버려. 풀어지지. 어둠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될 까닭이 없어. 이래 봐도 안 되고. 저래 봐도 깜깜한데 말이야. 안 풀려. 빛 안에서 되지. 예수 안에서 해결되는 거지. 진리 안에서, 거짓 안에서 풀릴 리가 없어요. 거짓은 뭐냐?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이야. 암만 들어도 헤매지 않은 거 거짓이단 거여. 이해가 안 된 그 자체가 거짓이에요. 성령은 이해할 것 아닙니까? 성령이 인자 성령께 순종하면 이해가 되는데 거스리는데 어떻게 이해가 되냐는 거여. 늘 순종하는 생활, 성령을 순종하는 생활 어떻게 되죠? 자기를 거 스리는 생활이요.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여러분은 아무한테도 종살이 한 적이 없는데 선생님만 우리더러 자유를 얻을 것이다. 하시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못 알아듣는다. 못 알아, 하고 따졌다. 예수께서는 겸손하게 묻는 말이 아니고 따져요. 따져, 어찌 그래. 어리석은 소리를 하냐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죄를 짓는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의 종이다.’

너희는 지금 죄도 모르고 산다. 죄의 덩어리면서도 죄를 모른다. 노예는 자기가 있는 집에서 끝내 살 수 없지만 아들은 영원히 그 집의 상속 상속권이 있다. 집에서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아들이 예수께서 너희에게 자유를 준다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그랬다 말이야. 예수님이 자유를 준다면 그러면 왜 자유를 못 이루죠? 요대로 보면 안 주기 때문 아녀? 몸을 안 바쳤다 말이야. 내 몸 내도록 쓸라고 내 자유야. 육적 자유란 말이야. 예수는 예수 몸이 되어야 할 텐 데. 그러면 예수 따라가면 자유롭게 될 텐데. 바치면 될 텐데. 안 바쳐요. 그래 육으로 자유하려는 게 되겠느냐는 거예요. 그게 원리를 어긴다 말이야. 진리를 거스린다는 말이야.

 

 

이 우리는 매일 사사건건이 진리를 거스리고 산 줄을 알아야 된다고, 순종을 안 해요. 거스리고 살아요. 거스린 증거가 뭐냐? 불안해. 불안, 불안 불평 진리를 순종한 결과는 뭐이냐? 감사뿐이래야 돼요. 자기가 없다는 거여. 자기 있고는 감사가 없어요. 자기 자체가 진리를 거스린 생활인데요. 탕자 형에게 감사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어요, 회개한 탕자에게만 감사죠. 사사건건이 하느님 아버지 사람을 깨달았어요. 털끝만치도 그 정신 안에만 있다면 불평이란 건 있을 수 없어요. 입으론 감사 안 해도 전체가 감사죠. 완전히 회개했으니까. 일 생활을 완전히 청산했어. 줘버렸어요. 도로 챙길 것이 없어요. 형은 그거 염려했죠? 아버지 재산 다 없앴다고 거짓말도 하고. 거짓말이 다 없앴으면 왜 내 것이다. 네 것 아니냐? 하는 말해요. 다 없앤 것 아니거든. 자기 목숨만 없앴지. 게 그거다 거짓말했고 그런 거짓말 하는데다 무슨 만족이 있겠냐 말이야. 그나 또 그렇게 거짓말 하는 것은 탕자가 돌아왔으니까 아버지 재산 조금 또 덜어질 것 아닌가? 안 돌아 왔으면 몽땅 자기 것이 될 턴데 또 돌아왔으니깐 아버지 재산 좀 덜어질 것 같아서 그런 말 한 겁니다. 그래 그 마음이 어떤 무엇으로 만족이 있을 리가 없단 말이야. 그런 마음은 항상 불안이지.

 

인자 돌아온 탕자는 그런 살림, 물질적인 세계를 초월해 버렸어요. 다요. 다 없애버렸으니까. 그리고 인자 새 정신 사랑에 사랑을 깨닫고 아버지 성품을 가졌어요. 창조주의 마음이야. 인자 똑같아요. 그리고 창조주가 무엇이 아쉬운 것이 있겠어요? 참 그런 아버지의 아들이 되었다면 전능하신 하느님 창조주가 아버지라면 무엇이 부족한 거 있겠냐 말이야.

입으로는 하느님 아버지라고 하지만은 악마의 자녀에서 못 떠나는 거여. 회개를 안했으니까. 긍게 불만뿐이란 거야. 참 하느님 아들이 된다면야 무엇이 부족한 것 있겠는가? 그 말입니다. 왜 못됐냐? 나를 안 버렸다 말이야. 회개하고 돌아오지 안했다. 회개를 안했다 말이야.

모든 안 되는 원인이 내게 있는 거지. 불평의 원인은 내게 있는 거지. 하늘에 있는 거 아니에요. 누구 사람 탓 할 거 아니에요. 시간이나 장소나 탓할 거 아니요. 어디서든지 문제가 있다면 원인은 내게서 찾아야 된다.

그러니까 그 불평의 원인을 또 뿌럭지를 내게서 찾아야 한다 말이야. 인자 그거 다 말하려면 시간이 없고, 많이 들었어요. 그러면 그거하나 자 언자 요나의 감사. 고 말합니다. 여러분 많이 봤던데요.

 

요나 1:11~12

‘그러는 사이에 바다는 더욱더 심한 파도가 일었기 때문에 그들은 요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저 바다가 잔잔해지려면 우리가 그대를 어떻게 해야 옳겠소?’

존경어를 썼네요. 경어를 썼어요.

이 고약한 놈들 너를 어째야 되냐? 이놈, 그래야 할 텐데, 너 때문에 봐 풍파가 일어났으니 너를 어떻게 해야 되냐? 그래야 할 텐데 경어를 썼어요. 어떻게 해야 옳겠소? 요나가 그들에게 대답했어요. 나를 들어서 저 바다 속에 던지시오. 그러면 파도는 여러분을 위해서 잔잔할 것입니다. 했다 말이요. 나만 치워버리면 돼요. 내가 있기 때문에 문제란 거여. 나란 거, 바다에 넌다고, 완전히 부정, 완전히 죽어야 된다 말이에요. 바다에 빠지면 죽는 거 아닙니까?

 

16절~18절

‘항상 기뻐하십시오. 언제나 기도에 힘쓰십시오. 어떠한 처지에 있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바라시는 뜻입니다,

 

요 18절만 같이 한 번 해요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여러분에게 뜻입니다. 바라시는 뜻입니다.’

 

다시 한 번.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뜻입니다.’

그 우리 그렇게 살죠? 어떤 처지든지 감사만, 그렇게 해요 불만 불평이 없어야 된다. 그럼 어찌해야 그렇게 될까? 감사보다 불평이 더 많은데 어쩌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23절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완전히 깨끗하게 하셔서 하느님께 헌신, 바친다 말이야. 드리는 몸, 하느님께 헌신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한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흠 없게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24절

‘여러분을 불러 자녀가 되게 하신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약속한 대로 이루어 질것입니다’

이걸 믿어요. 하느님께서 하시는데 사람은 순종만 해야 돼. ‘아니오.’가 없어야 돼, 모두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에요. 나쁜 일이다. 내 감정으로는 나쁘지만은 깨닫고 보면 영혼으로는 기쁜 일이거든요. 이 감정 육신으로 나쁜 것이 안 맞는 것이 영혼으로는 맞는 거 에요. 영과 육이 맞을 순 없어요. 한 쪽이 좋으면 한 쪽이 싫은 거거든요 근데 육체 좋게 산 사람이 누구죠? 부자라 말이야. 결과는 어째요? 나빴죠? 음부로 가버렸죠?

 

나사로는 육체는 좋게 안 살았어요. 온갖 불행은 다 독차지 했어요. 그래 결과는 어쨌죠? 천국에 갔지. 천국 낙원에 갔다고 천국, 영원한 천국이라 말이야. 근데 달라져버리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육체만 좋도록 살아야 됩니까? 영이 좋도록 살아야합니까? 영이 좋도록 그래야죠? 육체의 고생을 좀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해요? 없애기를 원해야 돼요. 감정은 없으면 좋겠지만 하느님의 뜻은 그거 아니다. 그러니까 이 여러분들은 얼매나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 말이야. 세상에서 있다면 육체적으로만 살라고 막 죽을 고생만 하고 싸움하고 이 놈 저 놈 이 년 저 년 하고 싸움만 할 텐데. 이렇게 다 이렇게 불러주신 것은 얼매나 행복한지요. 세상 그런 거 다 끊어 버리고 하고 싶어도 못 하도록 우리 몸을 그렇게 해 주신 거라 말이야. 그래 이 자리까지 와서 하느님 말씀 듣고 마음에 평화를 얻고 내세에 대한 희망이, 희망에서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달게 받으라 말이야. 그런 뜻으로 모아 진 것이지.

하느님께서 다 이루실 일이니까 순종해야 된다. 예수님같이 거룩하고 깨끗하고 할라니깐.

 

 

여기 23절 다시 보면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완전히 깨끗하게 하셔서, 다른 데는 거룩하게 하셔서, 하느님께 헌신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것이 우리 목적이거든요.

‘또한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흠 없게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을 불러 자녀가 되게 하신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이 약속 반드시 약속한대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거 믿어 란 말이요. 그러면 인자 이 말씀만 들으면 기억이 좀 남을 텐데. 또 다른 말 하면 곧 고 말도 잊어버리고, 또 감사가 성경에 많이 있어요. 예수님은 어느 때 감사했죠? 예수님의 감사 한 두 간데 찾아보시죠.

 

마태복음 11:25에 있잖아요? 25절서 30절까지 내용이라 말이요.

예수님을 기도가 그것뿐이고 감사는 그것뿐이에요. 뿐인데, 전 생활이요.

‘그렇습니다. 아버지 그 때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다.’

기도, 기도인데 간단해요. 한 마디로 하면 감사뿐이요. 기도가, 하느님의 역사하심에 긍정하고. 어쩌면 그렇게 내 맘하고 똑같습니까? 하느님의 역사가 어쩌면 저하고 똑같습니까? 이 우리 기쁨이 있을 때는 자기 욕심이 맞을 때 기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욕정인 기쁨은 잠깐 사라 질뿐이다. 또 맞지 않는 환경이 되 있으면 또 불평하고 어떤 처지 감사 할 수 있어야 돼요.

 

‘그 때 예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다. 오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며 스스로 슬기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이 진리를 감추시고 어린 아이들, 어린 아이들이요. 어린 아이들 어린 아이들 진리를 감추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그 감사해요. 여러분 하느님 앞에 어린 아이에요. 요 꼬까 옷 갖고 요, 빠알간 옷도 입고요. 어린 아이에요. 마음도, 어린 애가 돼요. 하느님 앞에 어른이 되면 안돼요. 백세가 되어도 하느님 앞에 어린 아이에요. 이 마음이 어리도 어른이 돼버린다 말이야. 나이는 아직 어린데 어른이 되어버려요. 그 뭣인가요? 불평을, 왜 그래? 왜 그래? 감사도 그만, 왜 자기가 들으면 벌써 자기 생각이 안 맞다 는 것이다. 왜 그런 거, 범사에 긍정을 하잖아? 하느님의 섭리로 믿지를 안 해.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아버지 원하신 뜻이라 말이야. 거기에 긍정하고 감사한 거라 말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내게 맡기셨습니다. 아버지만이 아들을 아시고. 아들과 또 아들이 아버지를 드러내 보이려고 가르쳐주려고 택한 사람들만이 아버지를 압니다. 예수께서 택해서 철부지 어린애를 택해가지고 하느님의 사랑이란 걸 알려주니까 알았어요. 스스로 안거 아니고. 예수께서 알려주심으로 살아라. 이럼으로서 구주가 됨과 동시에 스승이라 말이야. 예수님은 스승, 에 이 말씀 받아진 자는 제자고 스승이 있으니깐 제자가 있는 것 아니요? 또 제자가 있을 때 스승이 있어야 할 거 아니요? 가르쳐준 사람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거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오라 할 때는 어찌 오라고 했죠? 무엇 가지고 오라고 했죠? 아무것도 가져 오란 것 없어요. 자기 생명까지 다 버리라 말이야. 내 것이란 것 털끝만치도 없어야 된다. 내 몸도 내 것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이지. 내 것 아니라 말이야. 쉬라. 가지고는 쉴 수가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야 쉬는 것이지 한 가지라도 가지고 있으면 그 지켜야지 않아요? 염려가 되고 잊어버릴까 염려가 되고. 아무것도 없으면 염려할 것이 없잖아? 아주 쉽죠? 내 몸이라 할 때는 그것도 짐 아니요? 무거운 짐, 내 몸 하나 엇다 둘 데가 없고 간수할 데가 없어요. 이렇게 넓은 지구위에라도 실상은 내 몸 엇다 둘 곳이 없는 거예요.

 

근데 이 자리에는 여러분이 하느님께서 딱 이 자리에다 두셨다 말이요. 두셔서 순종한 거지, 쉬게 하겠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제자가 되라. 근데 어린애는 배우려고 하는 것이 어린애 인데. 아직 어린이니까 어른이 되면 배우려고 안 해요. 그것이 어른, 잘못된 어른이라 말이야. 영적인 어른이 아니라 겸손 하라. 겸손은 자기가 없는 것이 겸손이지. 예수님 안에 가서 겸손이지. 예수님만이 겸손이니까 사람은 예수 안에서 자기가 없어야 겸손이지. 자기가 있는 만큼 교만입니다. 배워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안식, 참 안식 마음의 안식이 되어야지. 날짜만 안식을 지키면 뭣하냐? 또 날짜 맞추어 지키면 뭣한가? 항상 수요일이고 항상 안식이 되어야지. 내 짐은 가볍고 쉽다 편하다.

 

예수님이 또 한군데 감사.

요한복음 11:38 다시 살아난 나사로.

예수께서 침통한 마음으로 무덤으로 가셨다. 무덤은 동굴로 되었다. 동굴이었으며 입구에는 돌로 막아 있었다. 돌을 옆으로 옮겨 놓으라 하고 말씀하시자 죽은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가 말했다. 아 열기 전에 벌써 냄새가 납니다. 제일 독한 냄새가 송장 썩은 냄새거든. 지금은 냄새가 가득할 것입니다. 열으면 그 냄새 뭐하려고 맡으려고 하십니까? 그 안 믿는 못 믿는 다는 거야, 죽은지가 벌써 나흘이나 되었으니까요.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왜 그렇게 의심하느냐? 못믿냐? 말이야.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27절 보면. 믿겠습니다. 해놓고도 그래 안 믿어요. 사람이 돌을 옆으로 굴러 놓자 예수께서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제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느님과 예수와 사이에는 그 소리 낼 필요가 없는 거예요. 영이니까 영과 영으로 통한데. 예수님은 몸을 가졌죠? 몸을 가졌지만 하느님과 영원한 영체니까 소리 낼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근데 이 소리는 둘러선 사람들이 들으란 말이에요.

 

42절

‘감사합니다. 언제나 제 청을 들어주시는 아버지께 새삼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여기 서 있는 사람, 소리 내서 하는 것은 여기 서 있는 사람들에게 아버지께서 저를 보낸 것을 믿게, 믿게, 예수를 하느님께서 보내신 것을 믿게, 믿게 하려는 것이다.’ 소리 내서 감사하는 것, 예수님도 몸은 가졌지만은 몸 가진 사람들에게 할라니까 소리를 내야 되죠. 예수를 믿게 하려면, 그렇습니다.

또 인자 바울사도 늘 편지서 감사한 말 적 빼놓을 수 없죠? 근데

 

에베소 5:20에 보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골로새 2:6

‘여러분은 이미 여러분을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믿었으니 일상생활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생기 넘치는 생활을 하십시오. 생기가 넘친다하면 팔팔 살았다. 그에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께 깊이 뿌리를 내리고 그 분의 터 위에 기초위에 서서 살아가십시오. 주님 안에서 성장하고 진리 안에 서서 강하고 건전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일에 감사하며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하십시오. 감사,’

 

또 빌립보서는 전부 그게 돼 순수한 죄로 가는데요.

에베소나 빌립보서는 한마디로 하면은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는 생활입니다. 영혼이 기뻐 뛰는 생활이에요.

 

하나 인자 예를 듭니다. 감사하단 말은 안했지만은 하느님의 사랑이 깨달아져야 감사가 나오니깐 성경 상 복음서에 어떤 영혼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아서 감사하단 말은 없어요. 누군가요? 막달라 마리아 제일 감사할 사람이죠. 표현을 한다면, 또요? 예 대답 잘했어요. 그 생활이 전부 감사하죠? 거기서 뭐 털끝만치도 불평이란 건 찾을 수도 없어요. 전부 감사덩어리죠. 그 감사한데 말로 소리 낼 필요가 없는 거예요.

왜 그러는가? 예수마음과 똑같으니까 마냥 예수 마음을 가졌으니깐 그에 죄에 속한 마음은 죽어버렸어요. 없어요. 땅에 속한 마음이 털끝만치도 없어요. 예수의 마음을 온전히 점령해버렸어요. 하나죠, 예수와 한 몸이 되고 한 마음이 되었어요. 그랬고 또 누구일 까요? 예, 나사로도 되고, 또 누굴까요? 서로 나사로 나온 전(前) 장(章), 탕자 형과 회개한 탕자와 대조해보라고 형의 위치에서는 항상 사사건건이 불평의 원인이 있어요. 자기중심이니까. 회개를 안했어요. 그러니 아버지 앞에 항상 불평한다. 증거가 아우 돌아왔을 땐 드러나잖아요? 죄가 뿌리가 있다는 거 뿌리가 있던 것이 열매가 나타나버렸어. 현저히 부인할 수 없도록 나타나는데도 몰라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나타났는데, 죄의 뿌리, 그 마음에는 감사할 때가 하나라도 있을 수가 없어요. 맨 쪼끔 감정에 맞기는 맞았지만 또 쪼끔 안 맞으면 불평이죠. 그것뿐이에요 회개 안했다 말이야. 자기가 자기 그대로 있는 거여.

탕자가 돌아온 탕자는 자기가 없어요. 죽었어요. 인제 뭐, 죄에 속한 자기는 죽었어요. 참 하느님의 아들이에요. 영에 속한 영체가 된 거요. 그거는 말은 없어도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았어요. 아버지 사랑을 깨달았어요. 출가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회개하고 돌아와서 보니까 그렇게 자기 아버지가 그렇게 사랑한 줄은 몰랐어요. 아버지 마음하고 한 마음이 된 거야. 형은 그 동안에는 외부사람 아녀? 외부사람, 하느님 아들이 아니에요. 아버지하고는 안 맞아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라버려. 인자 회개하고 돌아온 탕자는 아버지 성품을 가졌어요. 사랑뿐이에요. 누구하나 미운 사람 없어요. 다 좋게 보이고 사랑이야. 완전 실패를 얻고 알거지가 됐어요. 완전 절망에서 새로운 희망을 얻었어요. 하느님의 사랑을 아버지 있는 것 하느님을 비유한 거거든요. 탕자 따로 있고 형 따로 있는 거 아니에요. 형이 씌어서 죄를 깨달으면 탕자가 되는 거예요. 누구든지 그러면 아버지는 하느님이니까, 한 아버지 앞에 와서 하느님의 성품을 가져요. 사랑이신 자비의 성품을 가지는 거예요. 그것이 믿는 거라고 그 비유로 설명했잖아요? 비유로,

누구든지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오면 참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죄를 회개 안 하니까 마귀의 자녀노릇 밖에 못해요. 악마의 자녀라, 항상 더 얻으려는 생각 수단껏 뺏으려는 생각 내 몸만 위하는 생각 그것뿐이에요. 그것은 사사건건이 쪼끔 좋았다 하면 또 불평, 떠날 수 없어요. 그래 감사란 거 일 년에 한 번도 없어요. 있을 리가 없죠? 영이 맞지 않은데 어떻게 있어요? 영혼이 깨어나야 뭐 알죠. 영혼이 잠자고 있는데 감정만 이게 좋다 나빴다 하고 하는 거뿐이지. 육이 살아있는데 죄가 살아있는데 어떻게 감사가 있어요? 입에 붙은 감사는 그거 소용없는 거요. 물론 감사도 언자 입으로도 훈련이 해봐야하는데 훈련도 안 되어있죠. 훈련정도로는 안 되어요. 완전히 자기를, 옛사람을 죽어야죠. 그리스도 마음으로 바꿔져야죠.

 

여기서 쪼끔 요 아버지께 바치는 책입니다. 48페이지인데요.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입니다. 제목이 그렇게 됐어.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엇다 내 던지든지 말이야. 죽이든지 살리든지 좋게 나쁘게 하든지 그저 결론은 감사뿐입니다. 이런 정도가 되어야 한다 말이야. 이 간단하게 언자 제목인 동시에 언자 그건 목적인데 ~~ 언자 그 내용을 언자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가는 거예요.

주님 나를 어떻게 하시렵니까? 주님의 성령께서 주님의 성령께서 내게 말씀하신 바 있고 그 뒤로도 거듭 말씀하십니까? 그래 인자 그 다음에 답이 나온다말, 그대를 내 아들로 삼고자 한다고 참 하느님의 아들이 되려면 지금까지는 지금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까지는 악마의 자녀거든요. 감정에 매인대로 사는 것은 죄에서 해방을 받아야 하느님의 자녀가 된 거지. 아직 죄의 종살이 하는 동안은 마귀자녀라 말이야. 이 믿는 것은 마귀의 자녀에서 죄를 깨닫고 하느님께로 언자 회개하고 돌아온 것이 하느님 자녀라 말이야. 탕자 비유로 한다면 형은 아직 악마의 자식이고 회개한 탕자는 인자 하느님의 자녀라 말이야. 회개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