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여기저기 다녀오다 : 자다가 깰때

mamuli0 2023. 7. 11. 17:45

 9일 영현네와 함께 곡성 길농원에 갔는데 마침 영윤이가 있어 반가웠다. 다음날 대전과 남원 동광원에 들려 다시 길농원에 와서 자고 다음날 11일 진도에 돌아왔다. 장마중이라 가끔 비가 내렸다.

 

 

자다가 깰 때

1996. 12. 28

나사로의 영혼 안에 활동하신 하느님을 볼 수 있다. 육안으로 암만 봐봤자 저저 지옥감이여. 지금 저런 것이 뭐 예수를 믿느냐? 아주 불쌍하다. 그렇게는 볼지언정. 아, 아 그 동광원은 행복하다. 그렇게 볼 사람 하나도 없다. 단지 예수님의 눈만이 그렇게 보는 거야.

 

성령으로 거듭난 영혼만이 그렇게 볼 수 있다. 영안이 있는 사람만 그렇게 볼 수 있다. 행복으로, 이 육안으로는 아이 불행하다. 어쩌면 저렇게 복도 뭐, 뭐 못타고 났어. 팔자도 기박하고 저럴까? 그렇게는 볼지언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잖아요? 있겠어요? 외모로 봐서 그런데 천국으로 일등으로 간 거 뭐 때문이냐? 마음으로 믿은 거여. 마음으로, 우리가 행동만 믿는 것만 믿은 것으로 안다.

 

교회 가서 전도 받아 가지고 뭐 세례 받고 뭐 직분가지고 그것만 믿는 줄 안다 말이야. 아무리 목사라도 믿음 없어도 목사 될 수 있지 않겠어요? 시험에 합격하면 되니까,

행동, 행동 필요한 거 없고 그것도 몸의 행동만 생각한다 말이야. 우리가 노동, 노동 한다. 육체노동만 노동으로 안다는 말이야. 정신노동은 모른다. 정신노동이 더 귀한 거 아니요? 영의 영적 사명이니까. 영혼에게 알려줄 사명을 가졌으니까, 진리를 사모하는 영혼에게 알려줄라니까 더 귀한거지. 영적이잖아? 육적활동은 요다 다 썩을 거 아뇨? 결국은, 먹으면 똥 되고, 다 버려버릴 것이죠? 그리고 그것이 무슨 기계죠? 뭣이 좋은 일이냐 말이야.

 

 

전 지구상에 있는 다 행복하게 살게 해준다. 하더라도 그럴 수 없지만은 하더라도, 결국은 다 회개 안하면 다 지옥인데, 회개 안한 동안이 지옥이라 말이야. 뭣이 행복하냐?

아 저번에 저도 들은 말인데 이 사회복지 시설이 제일 잘 된 나라가 그래 나 얼른 그 말은 못 들었어요. 정말인가 모르긴 해도 살인 자살률이 제일 많다 그래요. 왜 그럴 수 있을까? 또 제일 지금 지구상에 미국이 제일이니까 강국이라 그라는데 그 이면에는 얼찬 게 좀 들었습니다만 보통 함부로 어데 못 간다. 그 말이야. 흑인이 오데 많이 산 데에는 백인이 못 살고 피해주어 비껴줘 버려. 못 살겠다 흑인들 세계를, 정신을 휘어잡는 것은 어떤 세력도 못한다. 이 나중에 인제 흑인이 이 대통령 그거 하련지 모른다. 투표로 되니까. 좋은 것이 있냐하면 그 반면 이면에는 나쁜 것이 많다.

 

그러게 영적으로 평화여야지. 그러게 복음이 들어간 가정에는 불화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분열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그렇잖아요? 복음이 한 가정에 들어가면 다 영적인 거 사모한 거 아니거든요. 또 그렇게 불화가 일어나야 복음의 정신이 바로 선 사람이 드러난 거요. 똑같이 세상에 속했으면 불화가 있을 수가 없죠.

 

그래 하늘이 속하는 영혼과 땅에서 그대로 아직 매이는 영혼하고 분열이 생기기 마련이라 말이야. 예수께서는 이 땅의 평화를 주러 온 거 아니다. 마 칼을 주러 왔다. 마 전쟁하고 싸우라고, 칼은 말씀이에요. 싸우라고, 이기고 나와 라고. 그럼 내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그 원수를 손으로 죽이고 나와라 그 말이에요? 자기 안에 원수가 있다 말이야.

어떤 전도사는 그렇게 깨달았어요. 식구가 원수라 그라니까 내 오히려 다른 식구가 아니고, 요 입이 원수라, 먹고 자하는 입 그럼 입이 원수인데 입을 없애버리면 되잖아요? 어떻게 없애느냐? 먹는 것에 매여 버린다. 배로 하느님 삼는다. 세상은 입이 둘이 아니요. 먹어야 산다. 사람이 먹어야 산다. 그 다음에 쪼금 배부르면 이제 향락 식색이 세상의 주인이에요. 그거 다 매여 살아요. 그것 빼버리면 세상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천국은 요 반대에요. 식과 색을 초월한 거라 말이야. 그 세상을 이용하고 살아요. 그 딛고, 딛고, 발판삼아요. 그 왜 한 이유가 안돼요? 기름이 되어가지고 물위에 떠서 산다. 기름은 물보다 가벼우니까 우에 항상, 물 밑으로 가라앉지도 안 해, 성령 받은 영혼은 이 세상에 빠지질 안 해. 기름이 있으니까 뜬다는 말이야. 그걸 초월해가지고 땅에 속한 영혼들을 깨우치는 사명을 한다.

 

 

‘복음을 남김없이 전파하였다. 그리고 나는 남이 닦아 놓은 터전에 집을 짓지 않으려고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만 복음을 전하려고 애써 왔습니다.’

‘나는 그 분의 소식을 들어 보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그 분을 보여주고 그 분의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그 분을 깨닫게 하여 주리라고 한 성서 말씀대로 실천할 것입니다.’

이 말이 어디서 이끌어 왔냐면 이사야 52:13~15 요 밑에 주석란 이 있습니다. 이사야 51장15절요. 그러면 거기로 잠깐 현대어 성경으로 보자면 13절서부터 보기는 하나 주로는 14절입니다.

 

복음이 어떤 것인가? 이사야가 탄식한 것이 뭐냐? 누가 우리가 전한 복음을 받아 줄 사람이 누구 이겠느냐? 없다는 게야. 복음이 뭐인지도 모르고 그냥 성경말씀만 들고 전하면 된 것으로 안다. 그러면 왜 바다와 육지로 다녀서 겨우 하나 만나면 왜 배나 지옥에서 산다 말이야. 그런 전도는 안해야 쓰지 않아요? 배나 지옥자식 만들 바에야, 배나 그 말은 자기와 똑같은 세월 밖에 못한다. 자기 생활밖에 겨우 올려놓지 못해요. 이끌어 내립니다. 올라가야 할 사람을 내려버려요. 못 가게, 그이 하느님의 일의 방해뿐이야. 일을 한다는 것이, 방해하면서 또 수고비를 받아가.

 

13절 요 네 번째가 종의 노래라 말인데 여호와의 종의 노래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종을 보아라. 그는 내가 시킨 대로 할 일을 다 할 것이다.’ 시킨 대로 해요. 복음 전하는 거 하느님 명령받아서 이 말 전하라. 고고 사명이에요. 내 생각대로 전해라는 것 아니고 시킨 대로, ‘이제 모든 사람이 그를 높이며 아주 높이 존경할 것이다.’

 

 

14절

그날 보는 사람마다 놀라준 거여. 어찌 몰골이 험하든지 놀래요. 아주 뭣일까? 짐승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뭣일까? 놀라서 고개를 돌려버려. 아이 못 보겠다, 너무나 험하고 징그럽고. 얼굴을 고개를 돌릴 정도로 몰골이 상하였어요. 그는 이미 사람과 비슷한 모습도 없어요. 그게 복음입니다. 그런 걸 누가 전해요? 누가 받아드릴 것이냐? 말이야. 암만 전해 봐도, ‘비슷한 모습도 지니고 있지 않다.’

 

15절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세계만민이 그를 보고 감탄할 것이다.’ 아주 몰골이 험하고 보잘 것 없고 얼굴을 돌려 버릴 정도에서 영적 눈이 열리려고 내게는 와야 감탄한다. 가장 짐승우리 간에 말구유에 난다 말이야. 가장 높은데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배하신 하느님이 그렇게 내려와 버렸다 말이야. ‘그런 간난 아기를 보고 누가 구세주라고 믿어지겠는가?’ 왕궁에서 났다 하면 혹 믿어질런지 모르지만은 그렇게 천한자리 그렇게 가난한 형편, 돈 있으면 여관에나 가서 낳지만은, 돈도 없으니까, 감탄할 것이며 세상에 모든 왕들도 놀랜다 말이야. 놀라서 입을 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들어보지도 못한, 들어보지도 못한 일을 체험한다. 체험하고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을 눈으로 직접 바라볼 것이다. 요 15절이 로마서 15장21절이여.

 

이사야 53장2~3절

‘우리가 들은 소식을 아무나 믿겠느냐? 여호와의 권능과 승리가 그토록 비천하고 멸시 받은 사람에게 나타난다.’ 이게 복음이라니까. 막달라 마리아의 가장 죄 많은 여인에게 부활한 예수께서 가장 성스럽고 깨끗하시고 높으시고 몸으로 계실 때도 흠도 티도 없는 그런 분이시지 만은 언자 부활한 몸이니까 제자들도 못 알아 봤잖아요?

그런데 가장 죄 많은 여자에게 나타났다니까 이것이 복음이에요. 제일 부러웠기 때문에 제일 죄 많은 사람을 먼저 만날 것 아니요? 죄 많은 사람이 얼마나 선을 사모했겠냐 말이야. 자기가 제일 악한 줄 알았으니까 선을 그리워했다 말이야. 자기가 선한 줄 알면 선을 사모할 것이 없잖아요? 가장 죄인이니까 죄인이었기 때문에 가장 선을 그만큼 갈망했다는 증거야.

 

 

‘멸시 받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을 도대체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호와의 종이 실지로 마른 땅에서 돋아난 연한 순같이 형편없는 모습으로 자라났다. 여호와께서 그토록 기막힌 꼴이 되게 하셨다. 그의 모양은 아름답지도 않고 장엄한 것도 없었다.’ 도대체 우리가 두려워하고 매력을 느낄만한 것이 그에게 하나도 없어요. 얼굴을 돌려버려 그만, 아이 못 보겠다. 모든 사람이 그를 깔보고 피해 가버려요. 피해가, 아이고 그 더러워서 못 간다. 어서 피해 가야겠다. 그랬다.

 

‘그는 중병에 걸려 온갖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선지자들도 여인네들도 우리가 모두 그를 미워했어요.’ 미워해. 예를 들면 탕자 형이 아우라는 말 물론이지만은 아버지도 미워요. 저런 놈을 받아준 아버지가 미워요. 그냥 막 화가 머리까지 나타나. 벌써 마음으로 죽인 겁니다. 아버지를 죽인 거예요. 미움이 살인 아뇨? 미움이, 그러니까 기회만 오면 죽인 거요. 죽일 거니까, 또 탐하는 마음이 도적이고 도적, 또 기회만 여기면 훔쳐 갈 것이니까. 또 음탕한 마음이 곧 다 이미 간음했다. 마음이여. 그 죄는 마음에 있는 거지. 밖에는 인자 마음에 있던 게 나타나니까 죄라고 한 거지. 마음에 다 있어요.

우리는 더 이상 그를 사람으로 여기지도 안했어요. 짐승은 다 좋은 새끼 때는 더 좋고 그런데 무슨 싫어 한 거 있습니까? 어떤 짐승은 죽일 놈이니까 죽일 놈이야. 죽일 놈, 쥐는 키운 사람 없어요. 죽여 버리려고 그러지 , 다람쥐는 사다가도 키우고 그랬지만은 쥐는 다 싫어 허잖아요? 왜 그런가? 그 죽일 놈이라니까, 그래서 밤 열두 시를 자시라 자정, 자시, 그 쥐 자(子)자, 아들 자(子)자가 쥐 자(子)자여 아들 낳아놓고 쥐새끼 낳아놓고 좋다. 그래요.

도적질을 꾀 뚫려 밤에만 일하잖아요? 구멍에서 들락 날랑, 양식 담아 논 푸대 가서 입으로 쪼아버리고, 그런 말 있어요. 쥐는 쌀독(아지)에다 넣어 놓으면 굶어 죽는다고요. 그래 벼의 그 껍질이 있는 거기 있으면 살아요. 이빨이 이이 쪼아 뭐를 까먹지만은, 그 왜 그런지 몰라요.

 

52장14절 53장1절서 3장 그게 복음 내용인데 그걸 누가 받아지겠냐 말입니다.

세상과 정반대인데 말이야. 가장 낮은 생활이 복음인데 높은 생활 허고 싶은 사람에게 들리겠냐 그 말입니다. 복음은 세상에 대해서 허무를 느낀 영혼만이 받아들여요. 아직 미련이 있는 영혼에게는 쪼금이라도 있는 영혼은 아직 거리가 있다 그거에요.

 

자 그럼 마가복음 도로 갑니다. 15절까지 봤죠?

그러니까 이건 지상명령이라고 허나 그 상태 가지고는 변할 수 없어요. 그런게 16절서 18절까지가 언자 기적이 있어요? 자격, 고대로 하면 한 다섯 가지나 되는데 한 여섯 가지 일곱 가지 돼요.

 

16절 봅니다.

믿고, 믿어진 것이 벌써 기적 아니요? 아까 9절서 14절까지 내용 보면 분명히 본 사람 말도 안 믿었거든요. 3년 동안 귀가 닳게 들은 제자들도 안 믿었어요.

자기들이 직접 성령으로 마음, 귀를 열림을 받아야지. 암만 본 사람들이 와서 증거 해도 믿어지질 안 해요. 아직 죄가 가렸거든요. 귀도 막고 있고 눈도 가려있고. 입도 벙어리고. 입은 있으나 참말 못해요. 세상 모두 쥐고 싶은 맘 그 맘 밖에 못한다.

 

말한다고 모두 불평불만만 토하지 평화를 말 못해요. 평화가 있어야 말하지. 믿고 하신 건 벌써 그 기적이에요. 믿어진다는 거, 하느님이 믿게 허셔야만 믿으니까 기적 아니요?

이거는 다섯 가지 안 들어갔지만은, 믿고 세례를 받아 세례는, 옛사람은 죽었다. 회개했다는 표현이니까. 세례한 건 회개했다 말이야. 회개는 뭐냐? 옛사람은 인자 죽었다는 거여. 물에 풍덩 빠졌다 물에, 노아방주, 방주 배에 들어오지 않은 영혼은 다 죽었잖아요?

 

옛사람은 인자 죽었다. 그러고 이렇게 도로 잡아 올린다. 이게 침례교나 안식교나 세례 줄때 어떻게 주냐? 물에 풍 빠졌다는 거야. 풍 빠졌다가 일어나. 그 받은 사람 얘기 들응께 그 때는 아주 정신이 아찔해 잊어버린다. 그래 폭,폭 했다 다른 사람들 얼른 일으켜주어야, 그럼 그 의식이라 말이야. 옛사람 죽었고 저 끌어올린 것은 인자 부활했다. 옛사람 죽고 부활하신 예수의 마음을 갖고 부활하신 예수의 몸이 됐다 그 말이야. 이 의식뿐이니까 그 백번 해봐도 마음은 변화 없잖아요? 세례를 백 번 만 번 받아 봐도 마음은 변화는 없거든요. 좀 조심을 하려고 할지언정, 요 마음은 어찌해야 변하냐 ?그것도 좀 봐야죠.

 

히브리9장14절요 마음은 변한다.

이 하느님 말씀 다 잊어버리더라도 그 말만은 기억해도 좋다 말이야.

하물며 성령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하느님께 흠 없는 제물로 바친 그리스도의 피는 세 가지입니다, 우리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데나 그리스도의 피, 깨끗하게 하는 데나, 죽음의 행실, 나면 죽고 나면 죽고 이 행실, 죽음의 행실을 버리게 하고 세 번째는 살아계신 하느님을 믿게 섬기게 하는 데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죽음의 행실을 버리면 양심을 깨끗하게 한다. 양심을, 요 세가 지만 이루어지면 되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닫고 그 사랑을 깨닫고 양심이 깨끗해졌다. 그러면 그 영혼에는 아무 법이 필요 없다. 말이야. 대통령도 필요 없고 다 필요 없어요. 양심, 그 인자 예수님이 머리시니까 예수님 따라 예수님 몸으로 살 것뿐이다. 어두운 세상에 빛만 비추고 살아요.

빛 아래서 사는데 뭐 법이 필요합니까? 깜깜한 데야 법이 있죠? 그러지 말라. 그러지 말라. 그러나 암만 일러 봐도 소용이 없어요. 깜깜하고 안보인데 어째요? 그 그대로 가면 지옥이다. 죽는다. 아무리 해도 알 수가 있어야지. 양심은 인제 빛이라 말이야. 양심은 깨끗해요. 오히려 세상의 빛이라 말이야. 양심에 인자 빛이 비쳤다 말입니다. 다 분별할 수 있다 말입니다. 양심은 첫 째 깨끗하게 하고. 죽음의 행실, 완전히 생활이 바꾸어져버린다. 죽는 일 나는 일 안한다 말이야. 나면 죽게 돼 있잖아요? 아예 낳지도 말자. 불교에서 먼저 깨달아요. 기독교보다 왜 저리 사람이 죽느냐? 아 죽을 바에야 낳지도 않으면 쓰겠다. 낳았으니 죽은 것이다.

 

 

이 기독교는 뭐이냐? 낳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니까 인자 회개 시키면 되겠다 그거여. 또 죄를 지어보고 깨달으란 거여. 깨달아, 못 깨달은 영혼은 짐짓 죄를 짓게 해가지고 깨닫게 해요. 무엇을 하든지 자유지만은 아 해보고 깨달으란 것이 목적이요. 깨달으란 말은 영혼이 깨라. 그 말이여. 깨요. 영혼이 잔데서 인자 자다가 깰 때라. 그 말이지. 영혼이 깰 때에요.

육체의 죄의 잠은 자고 영혼은 깨라. 깰 때 자고 있으면 되겠어? 끊김

 

제자들이 제일 많이들은 말이 뭔 말이냐? 하면 내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한다. 그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깜빡 잊어버린 거야. 그런데 인자 막달라 마리아는 귀로 가만히 제자들의 말을 들었던 거야. 숨어서 들어. 그 쪽에 들어가 나갈 수 없으니까, 들었는데 그러고도 잊어버리지 안했는데, 똑똑한 남자들은 잊어버리고 슬피 울어, 잊어버렸으니까 부활한다는 말을 믿어지지 안 하니까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찾아가 이 소식을 전하여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과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으려 하지 않아. 그 말 들었으면 아이고 잊어버렸다. 그래야 할 텐데, 전혀 생각도 없어요. 아주 까마득히 잊어버린 거야. 믿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12절

그 뒤에 여자들 가운데 두 사람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 두 사람 중에 하나 이름은 글로바라 글로바, 하나 이름 없어요. 두 사람이 시골로 가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그런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그 두 사람도 돌아와서 다른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으나 그들은 그 말도 두 사람의 말도 엠마오로 가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든 절망하고 돌아가다가 예수를 잠깐 모셔 들여지는 동안에 축사하는 동안에 눈이 떳 거든, 잠깐 번개같이 보이시고는 또 번개같이 사라졌어요. 그까지 하시려고 눈 잠깐 뜨여주고 살아났다는 증거를 보여주시고 떠난다.

확실히 인자 대화중에도 점점 마음이 뜨겁고 이상하긴 했지만은 그 때 인자 아아 이 예수구나. 잠깐 했는데 그냥 떠나 버렸어. 봤으니까 인제 엠마오라는 고향을, 자기 고향인데 완전히 포기해 버렸던 고향을 또 포기한다. 버려버린다. 내동댕이쳤다. 엠마오라는 말이 뜻이 있거든. 그 이름 뜻이 그렇대요. 내동댕이 쳐버린다. 완전 포기한다. 그 인자 인자는 또 인자 돌아갈 필요가 없지. 완전히 인자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으니까 가서 예루살렘으로 가보니까. 그때는 모두 예수 봤다는 사람끼리만 모여 있어요. 긍게 그때는 확신하죠? 혹 자기들만 봤다고 이거 뭐 우리가 잘못 봤는가? 환상을 봤는가? 그렇지 할긴데 모두 다 봤다니까 인제 확신하죠? 그 말도 믿지 않았다.

 

14절 제자들의 사명

그 뒤에 열 한 제자가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마음이 완악하여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다 말이야. 음식 먹고 있을 때는 뭐이냐 하면은 의식주에 매여 있을 때 그 말이야.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 그들을 꾸짖으셨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신 것을 분명히 본 사람들, 분명히 본 사람들의 말도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이건 길이 아니냐 말이야. 사람이 아무리 증거 해도, 본 사람이 증거 해도 안 믿어줘요. 자기들이 인자 눈으로 직접 봐야, 봐야지, 또 육안으로만 봐가지고는 안 믿어져요. 영안이 있어야지. 살아나신 것을 분명히 본 사람들의 말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히 본 사람은 누구든지 증거하면은 다 믿을 줄 알거든요. 그러고 또 산 사람은 안 믿어요. 그 말 듣고도 안 믿어요. 믿게 하셔야 믿어지기 때문에.

 

사마리아 사람들도 사마리아 여인의 말을 듣고 가기는 갔는데 그 만큼 예수님과 대화한 결과니까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만큼 가지. 그러기 전 같으면 신용하지 않아요.

남편이 다섯 여섯이나 있는 여자를 누가 믿겠어요? 그러나 대화한 끝이니까 그만큼 달라졌을 거 아니요? 그 말을 믿고 가서 직접 들어보니까 과연 옳거든요. 그 나중에 그래 우리가 믿는 것은 당신 말만 듣고 믿는 것 아니다. 그거, 우리가 직접 보니까 과연 구세주더라고. 이 증거 있잖아? 본 사람들의 말도 믿지 않았던 것이다.

 

 

15절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마음이 아직 완악해요. 그런데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 하나도 빼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전하여라.

이것을 지상명령이라 그래요. 절대적인 명령이라. 땅위에 아니고 땅위에 라는 말이 아니고 절대적인 명령이라 말이야. 이 말을 순종하면 사는 것이고. 거역하면 죽는 것이에요. 절대, 꼭 그대로 해야 하는 문제여. 그리 완악한 상태 그대로는 안 되잖아?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는 한 다섯 가지가 더 되지만 거기 나타난 대로면 한 다섯 가지 기적이 있어야 한다. 다섯 가지 기적이 이뤄진 사람이 한해서 명령이 복음을 전하란 것입니다.

전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 여기 저 두 분 전도사여. 전도사 자격이라 말이야. 언제 그런 문제 조금 얘기 하다가 말았네.

 

자 내가 지금 성경을 가르쳐야 하는데 가르칠 참인데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합니까? 그리 물은 거야. 그 때 성령의 지시대로 가르치는 것이지. 사람이 이렇게 말하시오.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그 때 질문하는 사람들이 배운 사람들이 요구에 따라서 그 사람 배울 사람들 속에 하느님 역사가 있을 거 아니요? 그러면 그 역사와 자기 안에 전한 사람의 가르칠 사람에게 하느님 또 계시니까, 그러면 받을 사람 안에 역사하신 하느님의 요구와 전할사람의 하느님의 요구가 맞아야 된다. 말입니다.

 

사람은 심부름에 불과하지. 자기가 전한 거 아니라 말이야. 너 이 영혼들에게 이 말을 이렇게 가르쳐줘라 예 그거 순종이야. 그 말은 언자 여기서 성경에서 조금 참고해왔다 말이야. 요구하는 사람에게 배우고자 하는 사람 속에 역사하신 하느님.

배울라 하는 사람들도 하느님이 역사하시니까 뭔 문제를 어떻게 가르쳐 주십시오. 그 요구가 있다 말이야. 그 요구에 따라서 대답을 해줘요.

 

로마서 15장14절서 바울로의 사도직. 전도사명이라 말이야.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너그럽고 지식이 풍부하여 서로 총고할 만한 능력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신앙적인 조회가 깊고 어떤 성경에서는 조회가 깊고, 신앙적인 복음적인 지식이 풍부하고, 회개 전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요구한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또 예수님은 뭔 말할까 말이야. 실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또 뭔 말 하냐는 거야. 거기다 뭣을 또 그게 인자 15절입니다. 다만 충고하지만은 다만, 이것만은 다만, 내가 이 편지에서 가끔 지나칠 정도로 강조해, 것이 있다는 말이야. 강조해서 말한 것은 하느님께서 내게 은총으로 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기억을 새롭게 하잔 거야. 그 실력이 자격이 충분하지 만은 다만, 여기 새롭게, 새롭게.

 

우리가 성경을 봐도 아무 뜻을 모르면 오히려 쉽죠? 성경을 수면제가 수면제라 그래 눈 똑똑히 뜨고 다른 데는 그러다가 성경 딱 떠들면 잠이 온다. 그 수면제라 왜 그럴까 말이야.

무엇이 새로운 뜻이 발견이 되어야 봐지지. 그래야만 아 뭐 볼 맛이 없다. 이게 우리가 인제 영혼이 자란 증거가 뭐냐? 어제 본 말씀인데 오늘 보면 또 새로워져야 한다고. 아까 본, 쪼금 전에 본 말인데 이제 보니까 또 새로워져요. 날마다 시간, 시간 새로워지는 것이여. 그 말이, 한 말씀 긍게 뜻이, 예수님은 곤솔랏다에게 한 말씀을 가지고 종일 설명을 해도 시간이 모자란 데요. 또~~~

 

그런 말씀인데 다 이거 들었다. 귀가 닳게 들었다. 그래버린다. 아무 것 발전이 없고 생명이 정지 됐다. 나는 알았다. 그러면 벌써 생명이 정지된 거여. 끝났어요. 자꾸 그건 언자 후퇴해가요. 썩어가요. 날로, 날로 새로워야 돼, 일신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 말이야. 또 새롭고 또 새롭고, 새롭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사명은 내가 이방인들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제의 직무를 맡아 성령으로 거룩 게 된 이방인들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실 제물이 되게 하는 거예요. 그게 사명이요, 되게 하는 것입니다.

 

 

17절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 예수와 한 몸이 되었다 말이야. 한 몸, 사명이 첫째 예수의 몸으로, 몸을 가진 사람들에게 전하려니까 몸으로 전해요. 몸을 가져야 그 사람들을 상대하지. 어떻게 신령한 영체로 어떻게 대할 수 있습니까? 똑같은 몸을 가지고 머리는 마음은 그리스도고, 몸은 그 전 몸이고, 예수와 한 몸이 된다. 한 몸이 되어 하느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이 사명, 직분 중에 제일 영광스럽고 행복스러운 직분 안보이냐? 복음을 전한 직분이거든. 그런데 복음을 전하냐? 무엇을 전하냐가 문제란 거야. 또 전할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 그것도 문제라 말이야.

 

이방인들을 하느님께 복종시키신 분입니다. 이것까지 바울사도가 한 것 아니에요. 영혼은 하느님께로 복종시킨 것은, 이방사람들의 영혼을 그리스도여. 복종시키신 분은 그리스도고, 바울사도는 그리스도의 몸, 몸으로 안계시니까 그리스도시고 나는 다만 그분의 몸 노릇을 할 따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말이야. 아까 15절과 18절이요.

 

나는 여러분과 똑같은 몸이요. 몸을 가졌어. 그러나 이 사명을 받았어. 전하라는 은총에 의해서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그게 구별되잖아요? 영혼을 이방인들에게 인도하신 분은 그리스도고. 자기는 그리스도 몸 노릇을 하는 거야. 몸으로는 안계시잖아요?

그러니까 인자 그 바울사도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거여. 그런 이렇게 확실한 전하란 사명을 받아졌어야 전할 수 있다.

 

아직 방언과정에서는 전할 수 없다. 방언 과정에서는 자기가 먼저 믿고 자기가 먼저 바로 서야 된다는 거야. 자기가 먼저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생각을 가지고 말씀을 받아서 전한 거라 말입니다. 받지 않고 어떻게 무엇을 전합니까? 사랑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의 심부름꾼이 된다는 말입니다. 따름이라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일꾼 노릇을 했을 따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강조란 말은 강하게 요구를 한다. 말이야.

 

15절과 18절 보세요.

나는 그분에게서 기적과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받았다 말이야. 힘을 할 수 있는 힘 곧, 성령의 힘, 혈육의 힘 말고, 베드로가 장담했던 그런 힘이 아니고, 성령의 힘이요. 힘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니면서 말과 행동 말만도 아니고 행동만도 아니라 말이야. 그러게 여 믿음에서 기적의 힘을 받아서 행동하는 그 행동이 말이라 말이야.

영이 깨어있는 영혼에게 전할 말이에요. 세상 어두운데 매여 사는 영혼에는 암만 소리를 내도 뜻을 모르고 영혼이 깨어 있으면 소리 없어도 그 말은 듣는다 말이야. 영의 그런 이야기 듣는 사람에게도 성령이 귀를 열어줘야 된다. 열어서 듣게 하신다 말이야.

 

 

누가복음 24장45절부터

성경을 깨닫도록 마음을 열어 가지고 말씀하신 거 그 때까지는 미리 그 길에서 오면서 자꾸 대화중에 마음이 조금씩 뜨거워졌고 뜨였다 말이야. 그런 체험을 해가지고 객관적 눈을 띄워주었다. 그리고도 마음을 열어줘야 되는 거지 그리 안하면 암만 들어도 몰라요.

또 바울사도 보면 사도행전 22장14절 보면

아나니야가 증거 했잖아요? 그대를 하느님께서 부르신 것은 뜻하신 바를 깨닫게 하시고 하느님의 계획 섭리, 우리 하느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이 계획이 있다 말이야. 뜻이 있어요. 그것을 깨닫게 하시고 죄 없으신 그리스도를 알아보게 했다. 하시고 친히 하신 말씀을 듣게 하시려고 그대를 택했습니다. 그게 증거입니다. 세 가지 중요한 거, 하느님이 나 같은 죄인 부르셔가지고 미리 정하셔 가지고, 뽑아서 엇다 쓰시고, 뭐들 하려나? 어떤 사명을 주실 것인가? 계획이 있다 말이야. 그걸 깨달았어. 깨달았고 예수를 확실히 알아요. 죄 없으신 예수를 확실히 알아보아야 한다. 알아야 그 말 전하죠? 누군지도 모르고 어떻게 전합니까? 그리고 친히 하신 말씀은 직접 들어야 돼요. 사람에서 들은 것 갖고는, 그 때 바울사도 전도라면 율법으로 흠도 티도 없는 사람이요. 아주 정의감에 불탄 사람이고 가장 양심적이고 이 그것은 안돼요.

 

귀를 열어서 듣게 하셔야 돼요. 세 가지 중요한 문제가 그래가지고 들은 대로 전파 하는 거죠. 들은 것을 전파 하는 거야. 듣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전파합니까? 예루살렘을 떠나서 가서 전하라 하니까 그때도 쪼금 예 그러겠습니다. 그러지 안했거든요. 아니 시방 그 사람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알고 그 사람에 접촉 못하고 도망해 버릴 텐 데요. 아니다. 변명하지 말고 어서가 전하라. 그럼 예루살렘을 떠나라. 그러면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네가 증거 한 말은 안 믿는다 말이야. 다 그 사람들 알고 있는데 믿겠느냐? 그새에 언자 바나바가 먼저 좀 바울사도하고 친하거든 정신이 신앙이 통했다 말이야. 나중에도 바나바의 소개를 듣고 예루살렘 사람들이 쪼금 용납했죠. 그리 안하면 용납 않아. 그러면 예루살렘 떠나라. 말은 모든 예식과 제도를 초월하라. 그 말이야. 거기서는 그런데서는 거기 매인 동안에는 예수 만날 수 없다. 제대로 사명 못한다. 그 말이야. 초월하라. 꼭 몸만 떠나란 말이 아니고 몸은 그대로 있더라도 여기 19절 덜 봤지요?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니면서 말과 행동 그러게 믿음 행동으로 보여야지 말로만 해서 어떻게 믿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