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농막 터 만드는 날 : 고통에서 영광으로

mamuli0 2022. 1. 27. 08:17

 농장일군 숙소가 필요해서 농막을 만들 터를 만들었다. 아직도 일이 많아 외부 일군들이 온다.

 

 

고통에서 영광으로 

1982.08.01 정인세 원장 

 로마서 8장 18절서부터 30절까지에 있는 말씀 제가 봉독 하겠습니다. 
 고통에서 영광으로,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제 본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장래를 위해서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도 부패의 쇠사슬에서 풀려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에 참여할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다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피조물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첫 열매를 받은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날과 우리의 몸이 다시 살아날 날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을 희망 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할 때는 참고 기다릴 따름입니다. 성령께서는 어떻게 기도해야할지 조차 모르는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대신해서 간구해 주십니다. 그리고 마음속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을 잘 아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잘 되게 해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택하신 사람들을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가 되도록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 부르신 사람들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된 사람들에게 영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30절까지 있는 말씀 읽었습니다.  
 찬송가 하나 부르십시다. 422장 

 


 읽은 말씀의 제목은 ‘고통에서 영광으로’ 그랬는데 이것은 기독교 중심사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 믿는데 신앙생활을 간추려서 말하면 예수 믿으려면 고통을 받고 누구든지 고통을 받고 그리고 반드시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것은 대표적으로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일생동안 고통을 받으시고 부활하셔서 지금 영광을 누리고 계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아서 영광을 누리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까닭은 왜 그러느냐? 하는 것은 인생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통이 오기 마련입니다. 사람이 도둑질을 하면 감옥에 들어가야 하고 어린애가 실수를 하면 부모에게 매를 맞아야하듯이 인생들은 에덴에서부터 죄를 짓고 쫓겨나고 그 뒤로 반드시 사람들은 죄 가운데서 태어나서 죄 가운데서 살다가 죄로 말미암아서 죽게 마련이 되었습니다. 그래 도저히 고통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 고통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을 오늘 이야기 하려고 그러고 그러면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인생이냐? 예수님은 오셔서 그 고통을 영광으로 바꿔주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총이고 하나님의 계획이십니다. 그래서 그것을 분명히 알면 우리가 예수를 어떻게 믿어야 하나 하는 것과 믿는 가운데 여러 가지 생기는 일을 지혜롭게 잘 처리할 수가 있고 또 욕심으로 무조건 천당이나 예수 재림이나 고통 이렇게 그렇게 영광만 받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우리가 어떻게 고통을 치루고 어떻게 영광으로 들어가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미혹에 빠지지도 않을 것이고 방황하지도 않게 됩니다. 교회를 조금만 다니던지 예수교를 조금만 알면 성경을 조금만 보면 더군다나 10년 20년 예수를 믿고 더군다나 수도를 한다고 그러고 성인 전을 본 사람이면 그것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다. 고난의 종교다. 하는 것쯤은 다 알고 동시에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영광이 주어진다는 기독교는 영광의 종교라는 것도 다 압니다. 그것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그러나 보면 확실히 아는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은가? 그래서 이 문제를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조금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그 18절에 보면 사도바울은 지금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요.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생각하면 이것은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그 묵시록에 있는 21장 22장 또 그 앞에 20장 중간 중간에 14장이라든지 그런데 모두 성도들이 마지막 받을 영광 그것도 생각을 하고 말씀한 말 이지요.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고통 뒤에 위로가 있고 영광이 있다는 그 사실 까지를 포함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기는 생각한다고 그랬어요. 그러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이라는 거는 직접으로는 사도바울이 그렇게 감옥에 갇히고 여러 가지 매 맞고 그런 고통이고  또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 이름으로 고통을 받기 때문에 그 말인데 이 고난에 대한 것은 여기앉아 계신 여러분과 같이 많이 성경을 알고 들어보신 분이 드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몇 군데를 우리가 찾아 봐야겠어요. 왜 그런가 하니 사람이라는 건 이상하게 고통을 싫어하기 때문에 누가 배고픈 걸 좋아하고 누가 몸이 아픈 걸 좋아하고 누가 매 맞고 감옥에 갇히고 핍박받고 그러는 걸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마음속 깊은데서 부터 고난을 피하려고 그래 특별한 은혜 받은 이  성인들 그런 이들 외에는 보통 사람들은 자꾸 고난을 피하려고 하는 그러지 않습니까? 겨울이면 누구든지 따뜻한데 드러눕고 싶지 추운 데를 골라서 드러눕고 싶은 사람은 드물 것이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이 문제는 계속 생각을 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 그것은 바울사도께서 직접으로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이라는 걸 잠깐 생각해봐야겠습니다. 4장부터 바울사도가 받은 고난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요. 4장 9절서부터 봅시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거 지금 고린도교회에 하는 편지인데 우리 사도들을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맨 끝에 세워놓으셔서 우리는 세상과 천사들과 뭇 인간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우린 여기 있는 우리는 그렇게 된 사람 혹 있는지 몰라도 드물 겁니다. 예수이름 때문에  예수 이름 때문에 자기 잘못해서 고통 받는 것 말고 예수이름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과 같다. 맨 끝머리에 놓고 세상 사람들 천사들에게 모두 구경거리가 되도록 되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바보가 되고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어 유식하게 되었다. 우리는 약자가 되고 예수이름 때문에 약자가 되었다. 바울사도는 강자였지요. 지위나 문벌이나 학식이나 무엇으로든지 그러니까 예수 믿은 뒤로는 약자가 되지 않았소? 아주 나는 벌벌 떤다. 그래 또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으며 집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여기 그런 사람 있나요? 그래도 다 옷은 보니까 걸치고 앉아있는데 헐벗고  굶주리고 밥도 제대로 못 찾아먹고 밤낮 굶고 헐벗고 굶주리고 매 맞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고 여러분들 중에 집 없는 사람 많다고 대답하려는지 몰라. 그래도 오늘 밤에 주무실 방은 이렇게 들어앉아있으니 방은 있고 그런데 바울사도는 사실 그렇지 못하지 않았소? 얼마나 쫓겨 다니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손발이 부르트도록 노동을 하고 지금 목사님들보다도 사도바울이 더 훌륭한 분 아니요? 그런데 지금 교역자들이 호강하는 거에 비하면 사도바울은 얼마나 손발이 부르트도록 밤중까지 일을 해서 저희 먹을 것을 벌어먹어가면서 어디 여기 아마 여기 다 여러분들은 저보다는 수고를  많이 하시는 줄 압니다. 그러나 사도바울과 같이 이렇게 손발이 여러 번 이야기 했지만 바울사도는 천막 짓는 일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천막감이라는 건 아주 거친 베보다 더 거칠어서 손이 껍데기가 벗겨지고 피가 나고 그런 일이에요. 그걸 그저 편지 쓰면서 전도하면서 손님대접하면서 틈만 나면 그걸 해서 그걸로 돈을 벌어서 일행이 밥을 먹고 그러고 전도를 하러 다녔거든요. 그걸 말하는 거지요. 손발이 부르트도록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지요. 우리를 욕하는 사람을 축복해주고 우리가 받는 박해를 참아내고 비방을 받을 때는 좋은 말로 대답해주고 누가 욕을 하면 같이 욕도 못 했어. 예수의 이름 때문에 누가 욕을 해도 아무소리 못하고 듣고 뺨을 때려도 아무소리 못하고 맞고 그런 거예요. 이리 끌리면 이리 끌려가고  갇히라면 갇히고 그렇게 했어. 비방을 받을 때는 좋은 말로 대답하고 그래서 지금도, 지금도 우리는 이 세상에 쓰레기처럼 인간의 찌꺼기처럼 살고 있습니다. 여기 아마 여기는 아무리 뭐해도 그렇게까지 된 사람은 없어요. 이 세상의 쓰레기처럼 이런 것들을 말하는 거지요. 바울사도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이라는 것은 그런 것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생각해야겠어요. 또 같은 이건 예수님도 그랬는데 사도바울도 그러고 그런데 고난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을 했지요.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대표적인거 하나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인데 내가 이런 말을 한 것은 당신들이 내 안에서 평화를 얻기 위해 하려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아주 딱 끊어서 말해. 너희 예수 믿는 사람들 내 제자들은 누구든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이렇게 틀림없이 고난을 당할 것이라고 또 그 아까 고린도서를 보았는데 15장에 내려가서 보십시다. 15장에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31절 30절서부터 봅시다. 또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있습니까? 형제여러분 무엇 때문에 예수 이름으로 그러지 않소? 형제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내가 여러분을 자랑으로 생각하면서 나는 이 말씀을 드립니다. 나는 날마다 죽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죽음에 직면하고 있어요. 이걸 그전 성경에는 내가 날마다 죽노라. 그랬지요. 죽는 것만큼 어려운 일을 계속 당하고 있다는 거야. 우리가 육이오 때를 겪어보고 왜정 때를 겪어보고 요새 일본 사람들은 참 염치없고 뻔뻔스러운 소리를 합디다만 굉장히 수없이 죽을 뻔 했거든요. 수없이 죽을 번했어. 그러나 바울사도는 날마다 죽을 뻔 했다고 얼마나 그 마음이 참 어렵겠어요? 날마다 죽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내가 설혹 에베소에서 맹수 형을 받은 것 같은 위험을 겪었다 해도 그것이 인간적인 동기에서 당한 것이라면 내게 얻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나는 다른 사람처럼 먹고 마시고 그러고 지내자고 하겠다. 그렇게 말하고 있어. 무엇 때문에 자기가 그런 일을 모두 당했느냐? 이런 말씀이지요? 사실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그 아래 가서 우리가 참고할 데가 더 많이 있어요. 생략합시다. 그리고 바울사도가 고난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 중에는 아주 대표적인 절수가 한군데 있지요. 빌립보서 1장에 보면 이런 말이 있지요. 29절에 이것도 여러분들 꼭 외워두시는 게 좋아요. 빌립보서 1장 29절 말씀입니다. 29절에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해서 고난까지 당하는 특권 고난까지 당하는 특권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특권을 받았다. 예수를 섬기는 것이 신자의 특권인데 고난까지 받는 특권이라고 그럼 고난이 꼭 따라오게 되어있어. 고난을 받는 것이 그게 분명이라든지 그게 아니고 특권이라고, 그런데 요새 고난은 받지 않고 십자가는 없이 하늘나라만 갈 생각을 하는 신자들이 많아요. 그게 좋거든. 또 그렇게 가르쳐요. 그거 거짓선지자라고 그랬어요. 거짓 선지자에요. 믿는 사람들은 고난 안 치르고 예수님 오시기전에 공중으로 들어올린다. 하니까 좋거든. 그렇지 않아요? 고난을 받는 특권이라고. 특권 우리가 이왕에 고난에 대한 이야기를 봤으니 조금 더 보고 지나가야겠어요. 베드로전서 1장에서 바울사도가 잘 가르쳐 주셨는데 베드로전서에서 몇 군데 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에 1장 19절서부터 볼까요? 흠도 티고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피로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기전에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미리 정하셨고 이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위해서 그분을 세상에 나타나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리시고 그분에게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희망을 두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진리에 복종함으로서 깨끗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19절인데 이거 제가 잘못 읽었습니다. 2장입니다. 2장 19절,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괴로움을 참으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죄를 짓고 매를 맞으면서 참으면 영광스러운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선을 행하다가 고통을 당하면서도 참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그런 생활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착한 일을 하면서도 고통 받고 핍박받도록 부르셨다는 거야. 우리를 그런 생활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심으로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본보기를 남기셨습니다.  이것이 아주 도저히 우리는 피할 수가 없는 길이야. 예수님도 우리들에게 본보기가 되셨는데 우리들도 예수님을 따르려면 고난을 받으면서 따라야 한다. 그래 본보기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죄를 지으신 일이 없으면서도 그렇게 당하시지 않았어요? 그러면서도 모욕을 당하면서도 모욕을 갚지 않으셨고 고통을 당 하시면서도 위협하시지 않고 정의대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서 고통을 받으셨다. 그랬지요? 또 3장에 가보면 거기는 이렇게 나와 있어요. 13절에서부터 베드로전서에요. 여러분이 선한 일을 하는데 열성을 낸다면 누가 여러분을 해치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정의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다면 이 정의에는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되어있나 봐요. 옛날이나 오늘이나 우리가 보는 거와 같지 않아요.  정의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협박 하더라도 무서워하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정의를 위해서 싸우라고 저 아래로 내려가서 보실까요? 17절 18절로 내려가 봐야겠어요. 하나님의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더라도 그것은 악을 행하다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사실은 밤에 추운겨울에 도적질만 하려도 힘들지 않아요? 장바닥에 나가서 폭양에 장사하는 사람, 논바닥에 나가서 농사짓는 사람에게는 고통이 있지 않습니까? 그건 뭐 장사하나 농사하다 해를 받는 것은 악을 행하다가 받는 거는 아니지요. 악을 행하다가 받는 고통도 많은데 그 말이지요?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더라도 그것은 악을 행하다가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의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고난은 의를 위해서 고난을 받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까지 고난을 받는 거 그것이 신자의 고난이지요. 이 세상에 죄가 있고 악이 있는 동안에 고통이 없을 수가 없다니까요. 내가 깨끗하고 죄 안지면 고통이 없다 그거 안 될 말이에요. 예수님은 우리보다 더 깨끗하셨는데 고난이 따랐는데 고난을 당하더라도 그것은 죄 없으신 분이 죄인을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번 죽으심으로서 여러분을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그 고난을 받는 일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 했지요. 한군데 얼른 더 봐야겠어요. 조금 더 우리가 꼭 알아두어야 할 고난에 대한 절수가 있지요. 베드로전서 그 아래로 내려가면 4장입니다. 이 말은 잘못하면 오해받는 이야기인데 이것도 외워두시면 좋지요. 4장 1절 그리스도께서는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알지요? 여러분이, 여러분도 이와 같은 정신으로 무장하십시오. 그래서 그리스도가 육체적으로 이런 것을 할 적에는 생각들 해요. 부잣집 딸로 태어난 사람은 마음대로 먹고 마음대로 돈쓰고 공부도 하고 아 그러고 예배당에 다니면서 구원도 얻을 수 있지 않소? 그런데 아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나면 먹을 것도 못 먹고 그냥 학비하나도 제대로 못 대고 그냥 심지어 고학이나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무슨 왜 이렇게 팔자가 뭐 하냐? 그런 소리 할 거야. 그런데 인제 가만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여러분도 이와 같은 생각으로 무장을 하십시오. 육체적인 고통을 받은 사람은 이미 죄와 인연을 끊은 것입니다. 이게 오해받는 거야. 그러면 고생을 많이 하면 죄가 없어지냐? 이렇게 되거든. 예수 안 믿어도 육체적인 고난을 받는 사람은 죄와 인연이 끊어졌다. 그랬어. 이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하는 거예요. 죄와 인연을 끊은 것입니다. 그러니까는 이제 여러분은 지상에 남은 생애를 인간적인 욕정에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따라서 살아야합니다. 그랬지요? 그 아래 12절 근처로 가보면 거기 그리스도인의 받을 고난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여러분을 시험하려는 것이니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시오. 예수 잘 믿으려고 하면 자꾸 시련이 있어. 그 이상해 세상 쪽에서 예수 안 믿으려고 해도 예수를 모르는 사람도 많은 고난을 치르게 해서 예수님 앞으로 몰아넣을 적이 많더라니까, 그래 믿는다던지 교회 나오는 사람이나 수도 기관에 들어온 사람을 보면 아주 요걸 해도 안 되고 저걸 해도 안 되고 낙심을 하고 자살을 하려고해도 안되고 하던 사람이 들어와서 예수 믿게 된 사람이 많아요. 그렇게 이상하거든. 그리스도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을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때에 기뻐서 뛰며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그때 가서는 큰 즐거움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 뒤에 가서 끝머리만 봅시다. 19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건 꼭 외워야 하는 절수예요. 잘 들으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받는 사람들은 선한 일을 행하면서 자기 영혼을 진실하신 창조주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들은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한번 따라 읽어 보실까요? 이거 지금 베드로전서 4장 19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받는 사람들은 선한 일을 행하면서 자기 영혼을 진실하신 창조주께 맡겨야 합니다. 이제 이런 것 말이지요. 이런 것들이 우리가 그럼 여기서 보면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을 보면서 고난이 왜 생겼느냐? 반드시 받을 수밖에 되어있다. 이왕 고난을 받으면 선한 일을 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낫다. 그럼 선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의미로 예수님이 받으신 것을 생각을 하고 모든 선지자 성인들이 고난을 받은 것을 생각을 하고 그런 선한 일을 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 그걸 얼마나 더 영광스럽고 귀한 것인지 모른다. 이걸 여기서 지금 말했어요. 이걸 말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고난을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받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보시오. 그럼 고난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그랬는데 만일 이 세상에서 예수 이름으로 선한 일을 하다가 고난을 받지 않는다던지 또는 전혀 믿음 밖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받는 고난이 있는데 그 고난에 대한 이야기는 묵시록에 가서 제일 많이 나오지요. 그런데 거기서 제가 그럼 한군데만 읽어드리고 싶어요. 나팔을 불고 대접을 쏟고 그렇게 재앙이 계속 내리지요. 인을 떼고 맨 먼저 인을 떼고 나팔을 불고 대접을 쏟고 그러지요. 요새 이것이 상당히 말들이 되고 있어요. 지금이 그런 때가 아니냐? 그래서 여기를 많이 보니까 참고로 조금 우리 보고 깊어요. 나는 요 시간에다 맞추는 걸 덜 좋아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가 않아요. 자꾸 틀릴 데가 있으니까 묵시록 16장을 봅시다. 여러분들 성경 갖은 이들 펴보세요. 요새 예수 재림하는 게 가깝다고 굉장히 말들 하는 사람이 많아요. 곧 오실 것처럼 우리들 죽기 전에 온다. 그런데 그걸 잘 생각들 해요. 잘못하면 그게 좋은 것 같으면서 속아요. 거기도 16장에 보면  (끊김)
 큰소리가 들렸다. 너희는 하나님의 분노위에 일곱 대접을 땅에 쏟아라. 그걸로 시작을 했어요. 마지막 재앙입니다. 천사들이 일곱 대접을 땅에다 쏟아요, 그런데 

 


 첫째 천사가 나가서 자기 대접에 있는 것을 땅에 쏟았다. 그러니까 짐승의 낙인을 받은 자들 우상숭배하고 예수 믿지 않고 죄를 짓고 정과 욕에 끌려서 살고 그런 사람들이에요. 짐승의 낙인 이라는 건 짐승에 복종하니까 짐승의 낙인을 받은 자들과 그 짐승의 우상에게 절한 자들에게 끔찍하고 독한 종기가 생겼다. 옛날 애급에서 나올 적에 열 가지 재앙이 있듯이 종기가 생겼다. 그런데 오늘 요새 이상스러운 일이 생겼거든요. 하나만 예를 들까요? 요새 미국서 독종이 생겼어. 종기가, 그런데 미국서 대개로 이 종기에 걸린 사람이 한 이천만 명 된다고 합디다. 이천만 명 되는데 무슨 종기인지 처음에는 입술에도 생기고 여러 군데 생기고 물집 같은 게 생기는데 그런데 약이 없대요. 절대로 못 고친대요. 그래가지고 온 몸으로 퍼진다는 거야. 아주 괴롭대. 그래 가지고 그래가지고 이 아래 국부 뭐 아주 이상스러운 홈 테기 이런 데로만 생겨가지고 심지어 부부생활도 못해. 그런데 그 병이 슈퍼진이라고 신문에는 그렇게 났지요. 그렇게 났는데 대개 성관계 그럼 성적으로 타락되어서만 그런 게 아닌데 그렇게 된다는 거야. 내가 지금 그 병을 자세하게 그래서 나는 옛날에 그 조금 병원관계를 하고 있던 사람이니까 유심히 읽어봤어. 또 우리 여기 단체로 사니까 언제 여기 들어올지 알겠소? 그래서 내가 유심이 그 증상이라든지 치료법이라든지 그런 걸 내가 읽어봤거든요. 읽어봤는데 참 괴상한 병이야. 그전에는 듣지도 못하던 병이지 그런 병이 생겼어. 여기도 독종이 났다니까 그 생각이 나. 그럼 그걸 본 사람은 봐라 저거 독종이 생기니까 예수님 오시려고 그래, 지금 마지막 때야. 이럴 거야. 그런 거 아니야? 어떻게든지 그렇게 해보려고 하는지 그런데 있는 것은 사실이야. 아마 저것이 대개 불결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 남녀관계 이상한 사람들에게 많다고 합디다. 성년이 많고 이상스럽게 어른에게 많고 또 부자들에게 많다. 또 이상스럽게 유식 층에 많고 그것이 이상한 병이야. 이거 들어와요. 미국서 일어나면 대개 얼마 안 되서 금방 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 고치지 못하는 병이 전염도 잘되니 사람들이 얼마나 들어오겠소? 일본도 들어오고 한국도 들어오고 세계를 한번 휩쓸겠지. 이런 증상이 자꾸 일어나니까 아 예수님 오실 때가 가까운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 나쁘지 않아요. 또 그 다음에 봅시다. 이제 
 둘째 천사가 자기 대접에 든 것을 바다에다가 이번에는 쏟았어. 바다는 이 세상을 가르치고 전쟁도 가르치고 실제 바다도 가르친 거지요. 그런데 그러자 바다가 죽은 사람의 피처럼 되었고 바다에 있는 모든 생물이 죽었습니다. 이것도 보면 요새 꼭 들어맞지요. 요새 그 폐수오염 모두 그런 것 때문에 물고기가 바닷가에서 엄청나게 나와서 낚시 이런 거 할 필요가 없어. 그런 거 먹으면 사람도 해되지요. 바다의 물고기들이 엄청나게 죽어가고 있거든. 그 뿐이에요. 꼬부라진 허리가 이렇게 꼬부라진 물고기가 있어요. 별게 다 생기고 그 농약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데 농약만이 아니에요. 폐수관계도 있어. 그래 그런지 저래 그런지 이상하게 맞아 들어가는 것 같은 일이 자꾸 생긴다. 그 말이지요. 또 
 셋째 천사가 자기 대접에 든 것을 강과 시냇물에 쏟았습니다. 그러자 강물이 전부 피로 변했다. 다 읽고 나서 이야기를 합시다. 이제 그런데 거기 이런 말이 한마디 나오지요? 옳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주님의 심판은 참되고 올바르십니다. 하는 소리가 하늘에서 소리가 아멘, 아멘. 하나님 하시는 일이 옳습니다. 이렇게 한쪽으로 자꾸 찬송을 해. 그런데 그 다음에 8절에 가보면, 


 넷째 천사가 또 대접을 쏟습니다. 넷째 천사가 자기 대접에 든 것을 이번에는 해에다가 쏟아요. 하늘 해에다가 이렇게 대접을 쏟으니까 그 결과 해는 불로 사람을 태우는 권한을 받았다. 굉장히 뜨거워서 사람이 타죽겠다고 야단이야. 요새 그것도 맞지. 인도니 저런 동남아시아로부터 아프리카 같은데 이번 여름에 굉장히 많은 사람이 더워서 죽지 않았소? 전에 없던 혹설이니 뭐니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지요? 지금 원자탄 뭐 수소탄 이런 거 때문에 엄청난 사람이 불에 끄슬릴 날이 오니까 그 넷째천사가 아마 대접을 해에다 쏟는다는 건 불 심판을 가르친 것이 아니냐? 또 그럴 런지도 몰라. 그럴 런지도 몰라. 그래 해에다가 쏟으니까 이렇게 태우는 권한이 불로 태우는 권한 몹시 뜨거운 열이 사람들을 지져댔습니다. 이 말이지요? 여기 보시오. 몹시 뜨거운 열이 사람들을 지져댔습니다. 그러자 그런데 이거 보시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회개해야 할 거 아니야? 이거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 해주십시오. 그럴 텐데 그러지를 않고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치거나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 하기는 커녕 이 재난을 지배하는 권세를 갖으신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였습니다. 막 뜨거운 가운데서 타죽으면서도 하나님을 저주를 해. 동경 대지진때 광동대지진 이런 건 세계적으로 모두 뜨거워서 죽으면서도 하나님을 저주하면서 죽는다. 사람들의 마음이 아주 완악해 져요. 어린애들 길러본 분들은 알지요? 어린애가 잘못하면 매를 때리면 어머니들 어떻습디까? 막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그러는 아이들이 있어요. 다시는 안 그런다고 그런데 어떤 모진 아이는 그러지 않더라니까. 죽어라하고 이를 앙다물고 항복하지 않는 아이, 그런데 어머니는 죽어라하고 때리지. 혈기를 내어가지고 저러다가 자식 죽이겠다. 징그럽게 항복하지 않는 어린애가 있더라니까 그렇게 되요. 사람들도 그렇게 되요. 회개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죽어라하고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저주하는 사람 지금도 그렇지 않아? 악한 사람은 점점 더 악해진다고 나오지요? 이번에는 
 다섯째 천사가 자기 대접에 든 것을 짐승이 앉은 자리에 쏟았다. 이 짐승이라는 것은 세상 권세를 주로 가르친 거예요. 그러자 짐승이 나타나서 나라가 어두워지고 뒤덮어져. 이 정치에 대 혼란이 일어나 사회 질서에 혼란이 일어나 그건 가깝게 근세사에 와서는 히틀러나 일본에 와서는 도조 일본나라 보시오. 이렇게 징그럽게 악독을 범하고도 교과서에서 그걸 죄 빼버리려고 그래 저희들이 나쁜 짓 한 것을 그리고 한국이 나빠서 우리가 어쩔 수 없어 들어가 줬다. 아주 그렇게 써버렸어요. 그건 왜 그런 고 하니 속에 가서 일본 군국주의가 다시 일어나 그렇게 되면 그놈이 만일 득세를 하면 정말 큰일 나요. 또 전쟁이 나 한바탕 그건 다른 이야기고요. 어떻든지 어두움에 뒤덮여서 암흑세계로 변했고 사람들은 괴로움을 못 이겨 보시오. 자꾸 어려운 때가 와요. 지금도 요새 서울이나 이런데 가면 아주 돈이 귀해지고 생활이 곤란해지고 뭐 좋아진다고 밤낮 떠드는데 좋아지는 건 하나도 없거든요. 이상하거든. 그러면 점점 어려운 일만 생겨요. 금방 장 여사 사건이 지나가더니 이번에는 일본 교과서 사건에 때문에 이렇게 아주 뭐 서울에서는 길거리에서 데모들 하게 생겼어요. 그런데 그러니까 자꾸 어려운 일이 생기는데 사람들은 괴로움에 못 이겨 자기들의 혀를 깨물면서 어떻게 괴로운지 혀를 깨 물으며 고통의 상처 때문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저주한다. 아 그 혀를 깨물면서도 하나님을 저주한다고 저주하며 이걸 남의 일로 듣지 말아요.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거야. 일어나는 거야. 하나님을 저주하며 자기들의 악한 행위들을 뉘우치지 않습니다. 또 그 다음에 

 


 여섯째 천사가 이번에 대접을 쏟는데 이것 때문에 지금 말세라고 그러는 거야. 요새 오는 사람들 이걸 하나 드는 거야.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까 어떻게 되었소? 대접에 든 것을 유부라데 강에 쏟았습니다. 유부라데 강이 무엇이야? 지금 이 아랍전쟁 가운데 이락하고 이란이 전쟁을 하고 있지요? 이락 있는데 거기 유부라데 강 거기다가 쏟았다. 거기다가 쏟으니까 강물이 말라버렸다. 인제 그 강이 유부라데 강하고 티그리스 강하고 큰 것이 그 아주 파사평야를 만든 굉장히 비옥한 땅을 만든 큰 강입니다. 중국의 양자강 같은 큰 강이야. 그런데 그 강이 이렇게 막혀있어서 군대가 지나갈 수 있는데 그걸 말려버렸다. 그 강을 말려버렸어. 대접을 쏟으니까는 그래서 말려버려서 해 돋는 곳에서부터 오는 왕들이 길이 마련되었어. 그러니까 이제 동쪽에서 강이 말라버리니까 마음대로 온다는 거야. 해 돋는 데는 동쪽 아니야? 일본까지 한국까지 죄 들어가지 중공까지 다 들어가지 그런 나라에서 군대들이 몰려들어. 어디로? 예루살렘으로 그것들을 보고 있어요. 성경학자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옳은 길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또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예언자 요새는 거짓 예언자들이 여러분 속지 말아요. 요즘 모두 예수가 호남에 왔다 어디가 왔다 지금 미국서는 몰몬 교에서는 미국 무슨 주인가 거기 예수가 오실 데라고 꽉 정해놓고 굉장하게 준비를 하고 있어요. 예수님 맞을 준비를 거기 몇 해 전부터 있어요. 우리에게도 와서 나도 그 책 하나 받았어. 몰몬 교 책 거기 딱 받았어요. 거기 예수님 오신다고 예수님이 뭐라고 그랬어요? 말세가 되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그런다고 속지들 말라고 그래서 여기 지금 보는 거예요. 살기는 괴롭고 곤란하고 참 지금은 이거 호강이지요. 우리 뭐 어려운거 별로 있어요? 그런데도 점점 더 어려운 가운데서 그러니까 예수가 오셨다면 그리로 몰려들 수밖에  아이고, 이제는 주님 주님한테 가면 되겠다. 그것도 속인다는 거야. 그래 여기 보니까 세 가지가 나타났어요.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예언자 입이라고 짐승의 입과 용의 입과 거짓 예언자의 입을 통해서 사람들을 꾀이고 고난을 일으켜 악령 셋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들은 기적을 행하는 악마로부터 나와요. 굉장히 이적을 해 교회 안에서 이적 행하는데 둘려서는 안 되어요. 거짓 선지자도 이적을 해요. 나는 지금 이적 행하는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라고 말 하는 거 아니에요. 잘 분간해서 들으세요. 그래서 악령들이었습니다. 그 악령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큰 날에 전쟁을 위해서 왕들을 모으려고 나갔습니다.  온 세계 대통령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을 꼬여서 전쟁해라. 전쟁해라. 지금 무기장사들이 얼마나 꼬이고 다니는지 알아요? 전쟁하는 나라마다 가야 저희가 만든 무기 신병기 비행기 탱크 다 그런 거 모두 팔아먹겠거든. 자꾸 꾀어요. 전쟁을 일으켜야겠어. 그래야 부자가 되기 때문에 참 무서운 세상이 되요. 전쟁을 위해서 온 세계의 왕들을 모으려고 나갔습니다. 그때에 다음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잘 들어라. 내가 도둑같이 오겠다. 그때가 되면 온다. 그러니까 올 때가 되었다. 예수가 오실 것 아니냐? 그거 맞아요. 맞을 런지 몰라요. 그러나 예수님이 어느 날 어느 시에 오는 건 모른다고 예수님도 모른다고 누구든지 언제 온다는 말은 곧이들어서는 안 되어요.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들은 그것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하나님이 하실 문제야. 그냥 막 다급하게 몰아쳐도 속아서는 안 됩니다. 마음 준비는 언제든지 하고 있어야 하지만 그러므로 보시오. 잘 들어요. 잘 들어라. 내가 도적같이 오겠다. 벌거벗고 다니는 수치를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벌거벗고 다닌다는 건 뭐예요? 여기 옷은 뭐예요? 예수님의 피예요. 성경은 두 가지를 가르쳤어. 흰옷을 입은 무리들이 하늘나라에 있는데 그 흰옷은 하나는 예수님의 피로 씻음 받은 거야. 하나는 착한 행실이라고 그랬어요. 계시록 19장에는 착한 행실로 그래서 벌거벗고 다닌다는 거는 피로 씻음도 받지 않고 맨 나쁜 짓만 하고 착한일은 하나도 하지 않은 사람은 벌거벗고 다니는 거야. 그의 영혼이 벌거벗고 다니는 수치를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정신을 차리고 자기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행복하지. 예수님이 언제 오시느냐는 것은 알아서 무엇해? 번개 불이 비치면 동에서 서에 번쩍 하는 것 같이 인자가 오는 날도 그렇다고 그러셨는데 미국에 와도 여기서 번쩍하고 알 것이고 천사가 나팔을 불어서 다 불러낸다고 그랬는데 여러분이 저 무등산 산골짜기에 가서 숨어 있어도 나팔소리는 다 믿는 사람에게는 들려요. 그리고 번쩍하는 빛도 보게 돼. 아 그런데 왜 이것들이 뭐 호남에서 어쨌느니 광주에서 어쨌느니 그거 모두 거짓 선지자들이야. 그런 말에 속아서는 안 되어요. 왜냐하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요? 그 성경을 잘못 알아서 그런 거야. 마귀가 들려서 그런 거야. 사귀가 들려서 그런 거야. 그런데는 들려서는 안 되어요. 오직 문제는 정신을 차리고 정신을 차리고 자기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것을 기억해. 자기 옷이 뭐예요? 항상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서 사는 것 그 피는 사랑이고 의(義) 아니야? 믿음 아니야? 그걸 힘입어서 사는 그런 사람은 행복하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시험에 들지 말도록 기도하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깨어서 항상 기도하면서 항상 사랑가운데서 불쌍한 사람을 돌보고 봉사하고 그냥 어찌되었든지 자기 죄를 짓지 않도록 항상 기도하면서 자기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여기도 한번 따라 읽읍시다. 잘 들어라. 내가 도적같이 오겠다. 벌거벗고 다니는 수치를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정신을 차리고 자기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제 그 다음에 조금 더 봐요. 그 세 악령은 히브리말로 하루마게돈 이라고 그랬지요? 그전 성경에는 아마겟돈 이라고 그랬어. 하루마게돈 이라는 곳으로 왕들을 모았습니다. 이걸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그래요. 우리 어려서부터 이거 들은 이야기야. 이제 마지막에 인류의 역사가 끝나게 되면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난다. 그때 가서는 온 세계가 전부 이 전쟁에 가담된다. 한 나라도 빠지지 않고 세계 군대가 이 아마겟돈으로 모인다. 그러는 거야. 요새는 3차 대전이 그렇게 일어나지 않을까? 지금 같아서는 그런 가능성이 깊지요? 그럼 아마겟돈이 어디냐? 아마겟돈은 다른 거 아니야. 예루살렘 골짜기에 아마겟돈이라는 데가 있어요. 그곳으로 모인다는 거야. 그러니까 꽉 들어맞지 않았소? 그대로 된다면 아마겟돈 골짜기로 모여요. 

 

 

그래서 또 성경 보면 그렇게 되어있어요. 여러분 인제 그 예언서를 보면 묵시록과 다니엘서를 종합해서 보는데 에스겔서에도 그런데 있지만 이스라엘 나라를 전 세계 군대가 둘러싼다는 거야. 포위를 해. 요새 이스라엘 하는 짓 보면 그렇게 생겼어. 그래서 이제 둘러싸. 그래가지고 모여 있는데 하늘에서 불비가 내려와서 전체를 멸망하고 살리는 거야. 예루살렘에다가 새 도성을 건설하고 그렇게 된다는 거야. 그렇게 되어있어요. 말세에 그 재앙이라는 것은 지금 여기 묵시록 16장에 보면 그 대접을 쏟는 사실 대접 재앙이 마지막 재앙이거든요. 그 다음에 일곱째 대접을 쏟는 게 나오지만 사실은 시간이 벌써 넘어버렸어. 나는 이 고난에 대한 이야기만 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에요. 그 다음에 영광에 대한 이야기 까지를 해야 이 시간에 이야기가 맞아져요. 그런데 어찌되었든지 고난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을 말하는 거야. 내적 고난 외적 고난 또 영적인 고난과 역사적인 고난 그것을 그렇게 말해요. 그럼 우리는 이 둘을 다 해야 하는데 요새는 그 역사적인 고난만 자꾸 강조들을 하니까 병폐가 있어요. 정신적인 고난 육체적인 고난 이렇게 다 한꺼번에 이야기를 해야 되지.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우리가 요전에 오신 김 장로님 그 양반이 그걸 많이 연구하는 분이야. 연구하는 분인데 요새 목사들 중에 전공하는 분이 많아요. 또 교회적으로도 그렇고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다 그런 것은 아니야. 바로 푸는 이도 있지만 편파적으로 푸는 것 같아. 한쪽만 푸는 것 같아.  그렇다고 나는 똑바로 알고 잘한다. 그 말 아니야. 무엇인지 잘못되어 가지 않나? 이때 여러분들은 조심해요. 말세가 되면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여러분들은 모를 거예요. 나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이들 많아요. 예수님이 광주에 왔다는 말을 듣고 왔다고 내가 그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 했지요? 정읍인가 금산사에 지하실에 왔다고 어디가 왔다. 그러고 그거 다 거짓 선지자야. 그런데 한국사람 잘들 둘리거든. 실례지만 여자들은 더 잘들 둘리거든. 어디 뭐하면 줄줄이 따라 나가고 정신없이 따라다니고 이 사람 말 들으면 그냥 모두 소문을 내고 그래. 그런 사람 여기서는 한사람도 생기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천국 옷을 입고 깨어서 준비하고 있으면 되는 것 아니요? 그러면 어련히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은 다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신다고 그랬는데 어련히 찾아내서 그리고 그 다음에 가서 마지막으로 거기 집어넣는 고통이 있지 않소? 거기 죄 짓는 사람들이 받는  그 영원한 형벌에 대한 것 거기는 이 시간에 다 못 읽지요. 그 천사가 낫을 땅에다가 휘둘러서 다 거둬들여. 아주 곡식이 익는 것 같이 알이 꽉 차면 그런 때라고 사람들이 악할 대로 악해져서 요새가 참 그런 때야. 악할 때로 악해지면 천사가 와서 낫으로 거둬들인다고 그랬어요. 그래가지고 휘둘러서 땅에 포도를 이건 악의 포도에요. 악인들이야. 하나님의 큰 분노의 포도주를 만드는 확에다 던져넣고 그 확은 성 밖에 있었고 포도가 그 속에 짓밟혔습니다. 그러니까 그 악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막 짓밟아요. 거기서부터 피가 흘러나와서 한길이나 되는 홍수를 이루어 근 천리까지 어떻게 피가 많이 흐르는지 한길이나 넘는 피가 천리를 강처럼 흘러나가고 있더라. 심판에 대한 게 아주 징그럽고 무서운 게 설명을 못 하는 게 여러 가지로 일어나지를 않소? 이것이 다 이루어지기는 이루어져요. 우리가 그걸 알아야 해요. 그래서 인제 자꾸 성경에서는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냐? 그렇게 자꾸 반문을 하시면서 이야기를 하시지 않아요? 이제 그러면 그 다음으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하나 있지요? 그런 고난은 반드시 받아놓은 밥상이고 우리에게는 반드시 두 가지 그렇게 양면으로 고난이 닥치는 것이고 거기서 영광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성경에 있지 않아요? 그런데 그 영광을 받는 사람들의 자격과 그것을 사도바울은 여러 가지고 이야기 했거든요. 그래서 성경은 전부 영광에 들어가려면 너희들은 이렇게, 이렇게 해야 된다. 첫째 사랑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점도 티도 험도 없이 자꾸 회개하고 살아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자꾸 하고 있지 않아요? 바울사도께서는 그런데 또 에베소서에 요전에 본 데 같은 데는 모두 여러 가지로 무장을 하고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고 항상 그러면서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걸 묵시록에서만 한두 군데 읽어보고 그만 둡시다. 묵시록 19장에서 볼까요? 거기 보면 19장 처음에 보면 이런 일이 있으매 큰 재앙이지요? 큰 군중이 우렁차게 떠드는 음성이 하늘에서 들려왔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권세가 우리 하나님의 것이다 그분의 심판은 참되고 공정하시다. 음란으로 세상을 망친 이것은 17장 18장에 가서 바벨론 탕녀가 심판을 받은 비유의 이야기지요. 세상을 그렇게 마귀에게 음란하도록 한 사람들을 다 망쳤으니까 당신의 종들의 피를 흘리게 한 그 여자에게 벌을 내리셨다. 그들은 다시 이렇게 외쳤다. 할렐루야 그 여자를 태우는 불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간다. 심판의 불 그러자 스물네 마리의 생물이 옥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며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이제는 알겠어. 이제는 분명히 알겠어. 그렇게 할렐루야 아멘 하는 거예요. 그때에 옥좌로부터 소리가 들렸다. 하나님의 모든 종들 영광을 주려고 하나님의 종들을 찾으시는 거야.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높고 낮은 모든 사람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또 나는 큰 군중의 소리와 같은 큰 폭포소리와 같은 요란한 천둥의 소리 같은 것을 들었다. 할렐루야. 우리 주 하나님 전능하신분이 통치하신다.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어린양 혼인날이 왔다.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내고 하나님의 허락으로 빛나고 깨끗한 모시옷을 입게 되었다. 그 고운 모시옷은 성도들의 올바른 행위라고 그러지요? 올바른 행위 올바르다는 것은 직접으로는 믿음을 가리켰고 또 착한 행실을 가르친 것이지요. 그런 흰 옷 입은 무리들만 모아놓고 영광을 주시는 거야. 그 또  어린양들에게 초대받은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렇게 말했지요? 그리고 사실은 이것은 천년왕국을 이룰 때 하시는 일이야. 그래가지고 천년동안 이제 예수님 모시고 왕 노릇 한 뒤에 마귀가 잠깐 풀려나서 다시 한 번 혼란을 일으키지 않소? 이제 그런 뒤에 신천신지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거든요. 그 후에 나는 21장 처음에 그 후에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으니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무섭던 바다 그거 모든 징그럽던 것 다 없어지고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맞는 신부가 단장한 것처럼 하늘로 올라간다. 그런데 그것이 굉장한 장식을 한 새 예루살렘이 내려온다. 그러지 않았어요? 그건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것을 말해요.

 

 

 그런데 거기는 말이에요. 거기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때는 하나님이 친히 우리가 막연하게 하나님을 생각하던 것이 생생하게 하나님과 같이 살게 되어 하나님이 계셔서 그때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씻겨주셔요. 다시는 눈물이 없이 있을 필요가 없이 항상 영광과 은총이 가득하니까 눈물을 씻겨주실 것이다. 그리고 거기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없고 울부짖음도 없고 고통이 없고 추운 것도 없고 배고픈 것도 없고 해도 쓸데가 없어요. 왜 그런가 하니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 가지고 있는데 무슨 낮과 밤이 있을 필요가 있어요. 달도해도 필요가 없어요. 그때 옥좌에 앉으신 분이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하시고 이것이 정말 영원한 신천지야. 기록하여라. 이 말은 확실하다. 하고 말씀하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다 이루었다.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이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생명의 샘물을 거저 마시게 하겠다. 이기는 자 승리하는 자 이것들을 차지하게 될 것이고 마지막까지 참고 이기고 견디는 자에게는 이걸 차지하게 될 것이고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가서 이걸 꼭 하나 붙였어요. 그러나 비겁한자 믿음이 없어서 항상 흔들리고 부들부들 떨기만한 사람 또 믿음이 없는 자 흉측스러운 자 살인하는 자 간음하는 자 마술쟁이 우상숭배자 거짓말쟁이들 그런 것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자이다. 이것이 둘째 죽음이다. 그리고 이제 그 다음에 가서 9절 이하에 가서 새 예루살렘이 나오지요. 그것이 성도들이 받는 영원한 영광이야. 그래서 그걸 바울이 말하는 거예요. 사실 이런 아까 로마서를 8장 33절까지 다 설명하려고 그랬는데 지금 18절 19절을 설명 하느라고 시간이 다 가버렸어요. 거기 그걸 말하는 거예요. 보시오,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은 그걸 묵시록에 그걸 말하는 거예요.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이라는 것은 아까 말한 그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리되었든 저리되었든 나는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제 지금 모든 피조물이 신음을 하면서 그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서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회개 시키고 영원한 영광으로 이끌어줄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그런 말로 계속이 되지요. 그 다음은 시간이 있으면 다음으로 이야기 하십시다. 우리 산곡의 백합화 성가 하나 부릅시다. 또 찬송가로도 거기에 대한 찬송가 여러분들 많이 불러 보세요.  423장도 좋은 찬송이고 산곡의 백합화 성가 부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