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동해시에 오다 : 죄에서 해방이 참 해방

mamuli0 2022. 1. 29. 20:52

 어제 김제에 들려 평택에서 쉬고 오늘 동해시에 와서 속초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영동지역을 돌아보게 된다.

 

삼척항 어시장에 다녀오다.

죄에서 해방이 참 해방

1982.08.15 정인세 원장

‘지금 생각하면 여러분들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는 일들밖에 없지 않았습니까? 그런 생활은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여러분은 거룩한 사람이 되었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의 대가는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저주시는 은총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거기까지 읽겠습니다. 찬송가 하나 더 부르십시다.
2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여러분은 거룩한 사람이 되었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 죄에서 해방 되었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은 8.15 해방일이고 또 온 민족이 해방 절을 지키는 날입니다. 참 해방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또 누가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여기 대답이 벌써 나와 있지요? ‘죄에서 해방되어’죄에서 해방되는 것이 참 해방이다. 사실은 결론은 이미 다 지어진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아까 읽은 성경 본문 가운데도 이미 말씀하고 계시지만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남에게 맡겨서 복종하게 되면 곧 그 사람의 종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마귀의 소리만 들으면 마귀의 종이 되고 세상에서도 남의 집에 세경 얼마에 몸을 팔아버렸으면 그 사람의 말을 들어야 되는 것이지요. 누구에게든지 그 사람에게 종속이 되어버리면 종살이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다른 나라에 속박이 된 것은 우리가 36년 동안 일본 나라에 속국이 되어서 일본 사라들에게 거의 종살이 같이 해왔지요. 그렇게 그런 것을 정치적으로 종살이 한다.

세계적으로 그런 역사가 아주 깊은 시대가 있었습니다. 지구 덩어리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해 지는 날이 없다고 영토를 자랑하는 영국 나라의 속국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번에 아르헨티나도 그 한 끄트머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될 때는 그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느냐? 정치적 해방을 원합니다. 정치적으로 남의 나라에서 종살이하던 거기에서 해방이 되어서 우리 민족은 우리 민족대로 내 나라는 내 나라대로 자유하고 주권을 행사하고 그러고 살아보자. 왜 우리나라는 참 마음은 원했지만 실제로는 타의에 의해서 다른 사람의 힘에 의해서 해방이 된 그 날이 오늘 8월 15일 날 아닙니까? 그런 것을 정치적 해방이라 이렇게 말하지요. 사람이 죄를 지으면 감옥에 가칩니다. 감옥살이를 안 해 본이들은 몰라요. 저는 짧은 기간 동안 해봤지요. 그 속에 들어가 앉아있으면 1년이 바깥세상이 그리워지고 그 감옥살이에서 해방되기를 원합니다. 거기서 해방되기를 아주 주사야몽(晝思夜夢)으로 그렇게 바라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서 해방되는 길도 있을 것입니다. 또 남의 집에 머슴살이를 한다든지 어떤 방법으로든지 포로 생활을 했다든지 그런데 매이는 사람은 거기서 해방되기를 바랍니다. 부엌에서 밤낮 밥이나 짓고 빨래나 하고 부엌살림 하는 여자들은 어휴 여기서 언제나 해방이 되는가? 아마 그런 신세타령을 하는 이들 여기도 계실 겁니다. 지금도 그런 이들이 많이 있지요? 그래서 요즘 신여성들 공부를 핑계로 부엌에서 해방되어 나온 여성들은 아주 참 여성 해방이라. 그러나 이왕이면 여성이 철저히 해방이 되어서 남자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나자. 그걸 여성해방 운동자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참 여러 가지에요. 해방도 여러 가지입니다. 어떻든지 사람이라는 건 본성적으로 남에게서 남에게 종살이 하는 것을 싫어해요. 개가 저렇게 목을 잡아매 놨지만 개가 좋아하는 개는 하나도 없을 겁니다. 그저 어떻게 하던지 이놈의 쇠사들에서 처음에 잡아매 놓으면 미칠 듯이 쇠사슬을 깨물고 날뛰거든요. 그것이 다 생물의 본성입니다. 심지어 식물까지도 그렇습니다. 그래 다 자유를 원한다. 그 말이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상하게도 사람은 자유를 원하지만 스스로 종살이를 합니다. 가령 여자가 절대로 남자의 종살이를 안 하려면 시집 안가면 되지 않소? 그런데 왜 시집을 가가지고 그렇게 종살이를 자청해요? 남자도 그렇지, 남자도 사실은 왕 노릇을 하는 것 같지만 한번 가정에 들어가서 부부생활을 맺어놓으면 양인상각(兩人相脚)이야. 한쪽 다리를 여자에게 잡아매고 이렇게 둘이 뛰는 것 같이 돼서 자유가 없어요. 이러면 이렇다고 쫑쫑거리고 저러면 저렇다고 바가지를 긁고 밤낮 그러거든. 그러면서도 혼인 하는 거 아니요? 자식 낳으면 자식의 종살이 하는데도 자식을 자꾸 낳지 않소? 없으면 섭섭해요. 그것뿐 아니에요. 우리 사람들은 먹으면 좋지요? 그러나 대부분은 배의 종이 되어 먹는 것 때문에 살아요. 이거 사람이 살기위해서 먹는 것인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인지 여러분 대답해 보시오. 여러분들은 아마 살기위해서 잡숫는 양반들이지 먹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나는 여기는 하나도 없기를 바라요. 그러나 대부분은 그래요. 그래서 옛날 사람도 식이위천(食以爲天)이라고 그랬어.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고 먹기 위해서 산다고 먹기 위해서 사는 건 짐승이 먹기 위해서 사는 건데 사람이 그렇게 돼. 그건 밥의 종이 된 거지요. 하나만 더 예를 들고 그만 두겠소. 제 아주 가까운 친척 하나 있었어요. 여러 번 여기서 이야기 한 것 같은데 이 사람이 알콜 중독자야. 술에 그냥 중독이 되어버렸어. 그런데 주머니에 돈이 없지 않아? 그런데 술집 앞을 그냥 못 지나와요. 술집 앞을 지나가면 발이 가지 말라고 그래. 내 매부에요. 솔직히 말하면 발이 딱 붙어서 안 떨어진대. 그런데 주머니에 돈은 없고 그러면 정신이 어찔해서 들어가 버린답니다. 돈도 없이 들어가진대. 그러면 딱 한잔 내라고 호통을 하지. 그러면 돈 있거니 하고 주지 않아? 먹고 나면 어떻게 될 거야? 아 그래가지고 한번은 제가 그때 스물한 살 적인가? 몇 살적인가 몰라. 제가 서대문 밖에 살면서 종로로 유도를 하러 다녔거든요. 그럼 밤 열한시나 되면 나와요. 유도가 끝나면 나오다 보니까 술집에서 싸움이 났는데 어떤 사람을 두들겨 패고 야단이 났어. 아 가보니까 그런데 하필 내 매부로고만. 이거 참 그런데 내 성질이요, 예수 믿기 전부터 아주 술 먹는 사람을 싫어했어요. 그래서 술 먹은 사람이 길에 쓰러져있으면 나 못 본척하고 그냥 왔어. 그럴 수가 있소? 그러고 다녔는데 참 정말 생전처음 내 주머니에서 막걸리 값 물어줬다니까. 그리고 데리고 갔어. 그리고 나중에 참 미안 하네. 내가 죽을죄를 지었네. 내가 다시 술을 먹으면 자네 아들일세. 뭐라고 처남보고 아들이라고 그거 소용없다니까 그러니까 술에 종이 된 거야. 다 사람마다 그 무엇인지 약점을 지니고 있고 거기 종살이를 살아. 말로는 자유니 뭐니 하지만 뭐 그렇지 않은 사람 있는 줄 알아요? 공부하는 사람은 지식의 종이 되기도 하고 또 지금 권세의 종이 된 사람은 얼마나 많은데 그 대통령자리 영영 불만이 되어서 나중에는 총알이라도 얻어맞아야 떨어져 나가는 사람도 있지 않아? 그럼 그 권세에 종이 된 사람이야. 명예의 종이 된 사람 뭐 거의가 다 그걸 말하는 거예요.

 

 

다른 이야기 아니에요. 여기 아까 읽은 전반은 그거에요.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남에게 맡겨서 복종하게 되면 곧 그 사람의 종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그렇지요? 이거 자꾸 이런 나 이 이야기를 하는 게 시간이 아까운데도 자꾸 나오네. 우리 양심을 찾기 위해서 내가 해요. 그 유명한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가 내가 본 것 같기도 하고 들은 것 같기도 해. 어려서 그때는 전차라는 것이 있었지요. 전차를 타고 가다가 어떤 점잖은 신사가 타는데 보니까 은전 한 푼이 전차 간에 떨어져있어. 그래 인제 이걸 갔다가 참 점잖은 체면에 집을 수도 없고 남의 이야기로 듣지 말아요. 구두 발로 넌지시 그걸 밟고 있습니다. 아 꼼짝을 못하고 있으니 구두 발로 돈을 밟고 있는데 차마 집을 수도 없고 발을 비키고 그냥 갈수도 없고 우습지 않소? 그렇지 않은 게 얼마나 있는지 아시오? 비슷한 게 많아요. 오늘 세상을 보면 맨 그런 거야. 그 점잖은 체면에 하찮은 거 아무것도 아닌 거 코흘리개 어린애 웃음거리가 되는 거 그거에 마음들을 빼앗기고 있는데 저도 그렇고 그런 것이에요. 다음단계로 이야기를 진행시킵시다. 하나님이 이걸 보셨다는 그 말이지요. 그걸 이제 강조하는 거야. 하나님이 이것을 보니까 이것들이 평생 종살이를 해. 결과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전부 죽음으로 가는 거야. 그걸 종합적으로 말 한 것이 죄야. 전부 죄에 속하는 거야. 그런데 그것이 결과는 죽음으로 가져가는 거지요. 여기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아요? 죄에 대가는 죽음입니다. 죄의 대가는 죽음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죄에 종살이를 한다. 그 말은 모든 사람이 죽음의 종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신 것은 그 사망의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죽음에서 해방시키려고 하는 근본적 해방이었거든요. 죽음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죄에서 해방을 시켜야겠다. 그래서 예수님이 죄를 전체로 짊어지시고 그래서 무덤에까지 들어가시고 그리고 무덤 문을 헤침으로서 죄의 문제도 해결해주시고 사망의 문제도 해결해 주신 것 아니요? 그러니까 그걸 갈라디아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갈라디아서에 뭐라고 그랬어? 5장 1절에 보면 이거 잘 들으셔야 해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키셔서 예수님이 우리를 해방시키셨다 는 거 잘 알아요? 그 뜻? 이 요절 모르는 사람은 없어도 이 뜻을 아는 이는 참 드물 거예요. 드물 것이 예수님이 나를 해방시키셨다는 건 첫째는 죄에서 해방시켰다. 그 말 아니요? 그 죄라는 것이 무엇이요? 직접으로는 모세의 율법이야. 그러나 전체를 가리켰어. 죄 아까 제가 몇 가지 예만 들었지만 아마 그 예를 들자면 삼백예순다섯 날 앉아서 예를 들어도 이것도 종살이다. 저것도 종살이다. 다 지적할 수 있을 거야. 거기서 전체적으로 예수님이 해방시키셨지요? 그러나 여기서 근본적으로 말하는 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키셔서는 죽음에서를 말하는 거야. 죽음에서 죄에서 죽음에서 사망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셔서 그 말이야.

 

 

 

그런데 여기 해방 이라는 말은 쉽지만 우리가 1945년 어제 밤에도 조금 나옵디다마는 해방 될 때까지의 그 쓰라림이 얼마나 심했어? 가령 최소한도 3.1 운동으로부터 시작해서 굉장히 36년 동안 애를 쓰고도 우리 힘으로 해방이 안 됐지. 물론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그 2차 대전이 일어났는지 그건 모르겠어. 결과적으로는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그러나 2차 대전 중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이 되고 물질이 소모가 되었어요? 그 막대한 희생을 치룬 뒤에야 겨우겨우 실낱같은 반쪽 독립을 했거든요. 우리 한국이 그 해방이라는 것이 정치적으로도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걸 여실히 말해주는 거야. 다 그래요. 어떤 나라든지 독립운동을 할 때는 피 안 흘리고 독립이 된 나라가 없어. 막대한 희생을 하고도 그런데 여기서 해방이라는 말이 쉽지, 예수님이 우리를 해방시킨다는 말이 쉽지, 예수님이 우리를 해방시키시는데 하나님이 얼마나 애를 쓰셨는지 아십니까? 구약 4천년 동안을 아담 이후로 예수까지 그 굉장히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하셨지요. 예고를 하시고 선지자를 통해서 그러다가 하나님이 몸소 오셨지요. 하나님이 직접 온 거야. 암만해도 누구를 시켜서는 안 되겠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어려웠길 레 에베소서에는 하나님이 크게 실수하셨다고 그렇게 나와 있어. 해방이라는 것이 말이 쉽지 쉬운 것이 아니야. 하나님이 우리를 해방시키시는데 굉장히 힘이 드신 것 같아. 그러니까 크게 힘쓰셔서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지. 오셔서 갓난 애기 때부터 죄와의 싸움 아니었소? 애급으로 피난을 간 거라든지 헤롯왕의 학살의 손을 피한 거라든지 계속해서 예수님도 그 죽음 죄악의 그 권세 그것과 다투러 오셨거든. 일생 동안에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어떻게 보면 예수님이 잡혀 죽으신 거 같이 되지 않았소?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죄수로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니까 그런 정도로 어려워 해방이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그래서 우리들에게도 그걸 지적한 거야. 히브리 저자는 말하지 않았소? 히브리서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하라고, 죽기까지 싸우지 않으면 죄가 끊어지지 않는다. 그걸 말하지 않아요? 그래서 성경에는 지금은 그런 걸 이야기하는 시간이 아니야. 그러나 아주 대단히 어렵다는 거 너희가 믿을 뿐만 아니라 고난도 겪어야 한다. 또 너희가 그런 선한 일을 위해서도 고난을 겪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 너희를 부르셨다고 베드로 서에는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던지 우리는 해방 된 거야. 일단 해방된 사람으로 우리가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 시키셔서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믿는 사람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지요. 잘 들으시오. 이제 오늘 정말 해방 절을 그냥 형식으로만 지내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되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랬는데 여기 이제 문제가 걸려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해요? 자유라고 생각해요. 여러분은 지금 자유라고 생각해요? 어디 얽어매어진데 없어요? 얽어매어진데 없이 나는 완전 자유입니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어요? 아마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저를 비롯해서 없을 거야. 무엇에든지 우리는 종노릇을 해요. 완전 자유가 없어요. 우리는 완전 자유가 그렇다면 그것은 아직도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지지 않아서 그렇다. 결론이 내려져요. 여기 보니까 그리스도 안에서는 완전히 자유가 되요. 그 자유가 무슨 자유입니까? 그 다음에 아래로 내려가면 알지요. 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지요. 형제 여러분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 하나님께서는 자유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 또 하나님이 만세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그 적당한 시기가 돼서 우리를 예수를 믿게 해서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어주시고 그렇게 한 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했다는 거야. 그래 그 자유가 무엇이야? 무슨 자유를 말하는 거야? 자유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여러분의 육정을 만족시키는 기회로 이용하지 마십시오. 육의 자유를 주시려고 그런 게 아니야. 극단으로 말하면 정치적 자유도 기독교에 의해서 많이 얻었습니다.

 

 

가령 아브라함 링컨이 남북전쟁을 일으켰지요? 그건 노예를 해방시키기위해서 그랬지요? 그건 예수의 이름으로 전쟁 한 것이거든요. 그것을 보면 예수의 이름으로 정치적 자유도 많이 있지요. 또 경제적 자유도 많이 부여했고 그런 것이 있으나 여기는 그것이 아니야. 여기는, 예수님이 너희를 자유하게 하신 것은 육에서 고깃덩어리에서 이 육적 생활에서 또 좀 더 범위를 넓히면 세상 생활에서 세속적인 생활에서 물질적인 생활에서 그런데서 너희를 해방시키려고 그러신 것이다. 그 말이야. 그랬으니 다시는, 다시는 거기 종노릇을 하지 말아라. 육정을 만족시키는 기회로 여기지 말아라. 그런데 기독교가 요새 남원에서 목사님들이 많이 지적하셨듯이 모세의 율법에서 해방시켜놨더니 지금 신교나 구교가 모세의 율법을 많이 만들고 있거든요. 그걸 이번에 아주 통열히 비난 하셨는데 감당들이 안 되니까 막 그냥 치기만 한다고 불평들을 했지요. 그거 아니에요. 내가 보기에는 그분들도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야. 여러분이 이 승훈 선생의 사랑이 여러분 사랑만 못한 줄 아시오? 그분 참 눈물이 있는 사람이야. 또 거기 온 분들이 하나같이 다 사랑이 있는 사람들이야. 사랑하기 때문에 내 사랑하는 양떼들이 그냥 다시 그 율법에 종살이 하는 것이 슬퍼서 그렇게 막 책상을 치면서 소리들을 지르신 거야. 그 심정들을 모르니까 그냥 그랬다고 나는 그 방법이 다 옳다고 그러는 건 아니야. 그건 아니지만 다시 교회가 죄에서 해방시키고 율법에서 해방시키고 해서 영적으로 자유를 누리게 하려고 기독교가 해야 할 텐데 다시 교회의 여러 가지 법으로 십일조를 내라 주일날 안 나오면 지옥으로 간다. 뭘 안하면 망한다. 해서 막 공포감을 주고, 이래서 다시 사람을 종살이 시킨다. 그걸 치신거야. 그렇지 않소?

 

 

가령 우리가 여기 쉽게 우리는 여기 십일조 제도가 없으니까 자유롭게 이야기 합시다.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한데가 어떻게 생각을 하시오? 막상 그러면 십일조를 내면 지옥에 안 간다. 그 말이요? 그럼 십일조 낸 사람은 전부 천당으로 가고 십일조 안낸 사람은 다 지옥으로 간단 말이요? 그건 마귀소리야. 새빨간 거짓말이야. 그럴 리가 없거든. 그래 그건 십일조 잘 내게 하기 위해서 얽어매는 거야, 사람들이. 그러니까 다시 율법으로 사람을 몰아넣는 거야. 그런데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되는 거야. 십일조가 뭐야? 몸둥어리 바치려면 다 바쳐야지 원래는 로마서 12장에 있듯이 몸으로 거룩한 산제사를 드리라고 그랬는데 원은 다 바쳐야지, 지금 여기 가령 지금 우리 한국에서 백억 갖은 부자가 있다고 그럽시다. 백억 갖은 부자는 적어도 십일조를 바치면 십억을 바쳐야지요? 그럼 십억 바친다고요. 누가 그러지 않아요? 그런 사람은 일억만 바쳐도 온 교회가 일어서서 박수를 치고 야단을 할 거야. 환영을 하고, 그런데 그런 문제가 아니거든. 십일조냐? 십 이조냐? 십 삼조냐? 저 이스라엘 나라 사람들은요, 지금 십삼조 십 사조까지 바쳐요. 전 민족이 그러기 때문에 그렇게 강한거야. 이스라엘 군대가 강한거야. 그러니까 십일조냐 십 이조냐 그걸 따지면 벌써 율법이 되는 거야. 율법이 돼. 또 교회법으로다가 사람을 꽉 얽어매놓으면 율법이 되는 거야. 그런데 그건 그런 것도 영향을 미쳐요. 다시는 육정을 만족시키는 기회로 삼지 말라는 것은 육체의 자유를 이런 우리 수도단체에서 그러기 쉬워요. 우리가 안식에 대한 것을 하나 예로 들어봅시다. 안식일 날은 쉬라는 거지요? 그런데 무엇을 위해서 쉬라는 거예요? 안식일 날은 하나님만을 예배하기 위해서 쉬는 것이야.

 

 

또 내 영혼이 육체의 일에서 해방 되어서 전적으로, 전적으로 하나님만 생각하기 위해서 안식일 제도가 생긴 것 중에 하나에요. 정신가운데 하나인데 적어도 그런 거야. 그런데 이제 안식일 날 노는 것을 이용해서 이건 조금 예가 잘 안 들어맞는지 몰라도 일주일 엿새 동안 꽝꽝 잡아매었던 사람이 가령 직장 있는 사람 말이에요. 주일날이 되면 무엇을 해야겠소? 주일날이 되면 무얼 해? 원 제대로 하면 기도를 하고 예배를 본다던지 그러고 그렇게 영적인 일만 해야 하지 않아? 그런데 지금 일주일 제도가 그래서 하나님이 참 만드신 것 같은데 주일날 되면요, 전부 극장으로 몰리지요. 그렇지 않으면 등산 가지요? 이제 그렇지 않으면 뭘 해? 여자들은 밀렸던 빨래도 하는지 몰라. 어찌되었든지 그럼 뭐해요? 육은 쉬라고 그러는데 그런 것도 여기 속해.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라. 예를 들면, 너에게 일껏 자유를 주었더니 그 자유 하는 시간을 죄 먹어버리는구나. 이제 그러기 때문에 사실은 그것만이 아니에요. 그 모세의 율법에서 해방시켜놓은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를 믿었다. 가령 가정을 합시다. 그랬더니 다시 자꾸 그 예루살렘을 비롯해서 율법학자들이 바울사도가 전도만 해놓고 돌아다니면 그 뒷자리에 가서 아니다. 그렇게 예수도 믿어야 하지만 율법도 지켜야 한다. 율법도 지켜야 한다. 이러고 자꾸 율법의 굴레를 씌우려고 그랬거든요. 그걸 바울사도는 아주 애를 먹었어요. 그런 뜻도 있지요. 그런 것도 있어요. 다시 예수 이름으로 다시 내가 그 쇠사슬에서 끊어놨는데 해방을 시켰는데 또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는구나. 그런 것도 있지요. 또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그 자유라는 것을 정상하게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참 어렵습니다. 완전히 성신 충만히 받고 내 육정을 죽이고 욕심도 죽이고 명예욕도 없어지고 그런 사람이 사실은 그 자유를 제대로 쓸 수 있는 거야. 그 다음에 한군데 읽고 다른데 가서 그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육정을 만족시키는 기회로 이용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십시오. 이러지 않았소? 사랑으로 종이 되십시오. 영적으로 해방을 받은 사람은 도리어 종이 돼. 바울사도가 그러지 않았소? 자기 자신이 도리어 종이 되는 거야. 내가 저 사람을 위해서 희생을 하기 때문에 유대 사람에게 가서는 유대사람같이 안 믿는 사람에게 가서는 안 믿는 사람같이 내가 저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사랑 때문에 종살이가 되는 거야. 자유가 없어져 그래서 그런 걸 구체적으로 그런 것을 많이 이야기 했지요. 먹는 것도 이야기하고 안식일 문제도 이야기하고 안식일 문제라든지 그런 것도 네 자신은 어느 정도 자유해도 좋지만 다른 사람이 걸려 넘어질까 조심을 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율법 같지만 그런 것도 다 지켜줘라. 이렇게 가르치고 있어. 그러니까 나는 어느 정도 자유 할 수 있지만 그 자유를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내 자유 한 것을 보고 걸려 넘어 질까 봐 그 우상의 제물을 이야기 하면서 바울사도는 고린도서에 그렇게 말했지요? 그렇기 때문에 네가 너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우상이라는 게 마음에 없으면 먹어도 괜찮다. 그러나 약한 사람들이 너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보고 시험에 들고 타락되면 안 되니까 그럴 경우에는 너도 먹지 말아라. 이것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는 거야. 약한 사람을 위해서는 아주 초보적인 신앙도 지켜줘라. 그 말이야. 믿음이 장성한 사람은 안 지켜도 좋은 게 많은 거예요 그렇지만 믿음이 유치한 사람을 위해서 어린애 노릇도 좀 해라. 그 말이에요. 어른이 아버지나 어머니가 돌쟁이 어린애가 말 노릇을 해 달라고 그러면 엎드려서 그 장관도 네 집 안방에 가서는 말 노릇을 하거든요.

 

 

그러면 어린애는 거기타고 좋다고 그거 우습지 않소? 그렇게도 해라. 그 말이야. 사랑으로 종노릇 하라는 건 그런 뜻도 포함되는 거야. 물론 더 큰 차원에서 영적으로 전부를 바치는 거지요. 그런데 제가 이야기가 조금 순서가 바뀌는지 몰라도 우리가 차분히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사실은 구체적으로 그런 것을 다 알려주셨는데 우리가 그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도 담 넘어온 도적놈 모양으로 때문에 항상 우리는 영적 자유를 못 누리는 거지요. 가령 마태복음 4장을 보십시다. 이것이 예수님이 맨 먼저 받으신 시험이지요. 광야에 가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지요? 그런데 거기 무슨 시험을 받았어요? 맨 먼저, 얼른 대답해보시오. 무슨 시험을 받았어요? 무슨 시험? 돌로 떡을 만든다. 그랬지요? 첫 번째 시험이 돌로 떡을 만든다. 그때 예수님이 가서 이번에 오 목사님이 와서 복잡하게 풀이를 하십디다만 보통 예루살렘 동편에 있는 광야로들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 광야에 가서 돌멩이가 많이 있는 들판이 있다고 그래요. 가본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러니까 얼른 보이는 것이 돌이야. 이 많은 돌이 다 빵이 되면 아 이 약소민족 가난한 민족 빵 문제가 해결이 되겠구나. 그것뿐 아니라 온 세계 인류가 빵 문제가 해결되겠구나. 그러면 자기 스스로 마음대로 할 수가 있지 않아? 그것도 있어요. 그렇지만 인류 전체가 달려있는 게 빵이지. 늙은이로부터 젊은이까지 심지어 짐승까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첫째 문제가 빵문제야. 그것까지도 시험 받으신 거야. 다시 말하면 먹는 것, 먹는 거 때문에 죄를 짓고 먹는 거 때문에 점잔 차리고 체면도 못 차리고 뭐 예수도 잘 못 믿고 그런 게 많거든요. 그 문제 가지고 예수님이 딱 걸린 거야. 이 인간들을 이 빵에서 해방시켜줘야겠다. 배에서 해방시켜줘야겠다. 먹는 거에서 해방시켜야겠다. 여기 걸린 거야. 그것 보니까 예수님은 철저하시지 않아? 가장 보편적이고 큰 문제 그런데 거기대해 무엇이라고 대답해?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그 마귀는 그 약점을 탄 거지. 예수님의 그런데 예수님은 마귀에게 아니다.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거다. 이게 해방의 길이야. 예수님은 말씀으로 해방시킨거야. 그 말은 이 말입니다. 요건 누구든지 알아듣는 말이니 잘 들으시오. 도둑질을 해서 배를 불리는 것보다 굶어 죽어도 양심대로 살아라. 그 말이에요. 그 말 아니요? 죄를 지어가면서 돈벌이 하는 것 보다 차라리 거지가 되어도 죄는 짓지 말아라. 그 말이야. 말씀대로 말씀이 먼저다. (끊김)

 

 

그 열쇠를 이렇게 풀어주신 거야. 어떻게 생각하시오? 풀렸어요? 우리가 먹는 문제에 종살이 자기가 지금 먹는 문제에 종살이를 하는지 아닌지도 모를 거야. 왜 그러냐하면 하루 종일 하루 세 때 밥그릇이 굴러들어오는 사람은 종살이 하는 건지 아닌지도 몰라요. 모릅니다. 그러나 어떻든지 그 둘째 문제 셋째 문제는 일일이 다 풀 필요가 없어요. 권세 명예 모두 그런 것들, 그런데서 하나씩 하나씩 예수님은 해방시켜 주신거야. 전부 말씀으로 신명기 말씀을 가지고 했지요.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하나님께만 경배해라. 그것도 진리에게만 순종해라. 믿어라. 그 말 아니요? 이 세 가지, 세 가지 시험을 이기실적에 전부 말로 쉽게 말하면 믿어라. 그 말이야. 믿어라. 그걸 무엇을 보고 아느냐? 6장에 가봅시다. 마태복음 6장 끝에 가보면 이런 말이 있지요? 그러므로 31절,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이거 의식주야. 일반으로 사람들이 제일 많이 걸리는 문제들이야. 그런데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시오. 참 이것같이 비현실적인 말씀은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사람이 먹을 걱정 안하고 입을 걱정 안하고 입을 걱정 안하고 어떻게 살아? 고기 덩어리 갖은 사람이 그거 걱정하지 말라는 거야. 거기 전부 지금 종살이를 하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양심도 팔아먹고 목숨도 팔아먹는데 무엇을 입을까하고 걱정하지 마시오. 그러면서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 사람들 이방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이야.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먹을 걱정하지 믿는 사람은 먹을 걱정해서 못 쓴다. 이 말인데 어떻게 되요? 그러면 좀 우리가 얼른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목사나 신부나 또 모두 저 같은 소위 선생이나 먹을 걱정 안 하나요? 안 하나? 이방인들이나 하는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런 걱정 하는 거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건 믿지요?

 

 

하나님이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지혜를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다면 내가 배고픈 거 모르시겠소? 그렇지요? 여러분이 벌거벗고 다니는 걸 모르시겠소? 여러분에게 옷이 필요하다는 것쯤은 아실 테지? 그렇지요?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육신의 아버지가 여러분의 옷이 필요해서 아이고, 저놈의 자식 옷이 모두 헤어졌구나. 또 옷 해 입혀야겠구나. 그렇게 걱정 하듯이 하나님도 걱정 한다. 그 말이야. 어떻게 되요? 곧이 들려요? 곧이들려? 하나님보고 옷 뭐라고 그래요? 점방에 가서 옷감 떠주시오. 그렇게 해보시오. 다 알고 계시니까 다 아신다는 거예요. 걱정하지 말라는 거야. 하나님이 너희들 입을 것이 필요한지 먹을 것이 필요한지 믿어져요? 이거 안 믿는 것이 오늘 큰 병폐들이야. 심지어 배가 아프면 배 아픈 것도 아신다. 그 말이에요. 어째요? 하나님보고 소화제를 달라고 가스명수라도 한 병 달라고 이를 우리가 믿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보시오, 보시오. 걱정하지 마시오. 이런 것들이 모두 다 이방인들이 하는 겁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요. 잘 잘 알고계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부모나 친척이나 선생이나 이런 사람들이 알아도 몇 푼어치나 알겠소? 부분적으로 알지요. 저는 밤낮 여기 있는 사람의 사정 주일날 아침 한번 뺑뺑 돌아다니면서 보면 부엌에서부터 방구석까지 얼른 봐도 힐끗 힐끗 봐요. 뭐 잘못되지나 않았나? 그러나 몇 푼어치나 본다고? 하나님은 벌써 다 보고 계신데 여러분의 장 속까지 옷 보따리 속까지 다 보고 계신다니까요. 왜 옷 보따리 훔쳐 놨는지 그 욕심으로 세 가지 옷만 있으면 될 것을 다섯 가지 옷을 넣어 놨는지 다 보고 계신다니까 또 지금 이 먹고 입는 것도 저거 지금 안 먹을 것을 먹고 있구나. 하나님이 그러고 계신다니까 그저 욕심으로 필요 이상으로 그런다고 밤낮 영양 부족이니 뭐니 걱정을 하지만 하나님은 알아요. 저 정도는 괜찮다. 이러실 런지 참 저건 못 쓰겠구나 정말 영양부족이니 조금 비타민이라도 먹어야겠구나. 그게 믿어지냐? 이 말이에요. 그거 믿어져야 신자야. 그러니까 영양섭취도 하나님께 맡기는 거야. 한번 맡겨 봐요. 영양부족이 돼서 쓰러져 죽나 안 죽나 맡겨 봐요. 저희들이 가지고 있으면 밤낮 해결 안 되요. 솔직히 말하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계십니다. 잘 알고계십니다. 아이고, 한국 기독교인들이 최소한도 우리 동광원 사람들이 이것만 믿으면 세계문제 해결을 해요. 그렇지 않소? 세계문제도 해결을 해. 잘 알고계십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했어. 너희는 먼저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아라. 하나님의 나라, 그럼 우리 인생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내시고 택하시고 세우신 것은 밤낮 그런 걱정 하라고 그런 것 아니야.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해라. 그러면 그 말은 뭐야? 그 다음에 가보시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덧 붙여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데만 열심히 하면 먹는 건 저절로 생긴다. 그 말이야. 어때요? 곧이 들려요? 정말로 믿으면 그러게 의인의 자식이 굶어죽는걸 보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지, 사실은 의인의 자식은 굶어 죽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지요. 굶는 거 정말 믿는 사람이 굶는 걸 무서워 하간데? 굶어 죽는 걸 도리어 영광으로 생각을 하지. 그렇지만 여기는 친절하게도 모든 것을 덧 붙여서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 점만 사실은 오늘 듣고 그만둬도 괜찮은 거예요. 잘 생각 하시오. 먼저 하나님의 나라 정의 믿는 것 사랑을 실천하는 것 어떻게 하면 더 사랑할까? 어떻게 하면 더 잘 믿을까? 그것만 생각하라는 거야. 그것만 생각 하라는 거야. 쉽게 말하면 그러면 하나님이 굶겨죽이지 않는다. 굶겨 죽이시지 않는다. 벌거벗기지 않으실 거다. 뭐 얼어죽이지 않으실 거다. 걱정 말아라. 그거야. 예수님 말씀대로 걱정 말아라. 그것이 믿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그게 해방이고 자유 아니요? 생각을 해보시오. 모든 문제를 하나님을 먼저 놓고 믿음을 먼저 놓고 사랑을 실천하는 걸 먼저 하라는 거야. 먼저, 그런데 오늘 교회가 경제운동을 하지요? 괜찮아요. 경제 원리는 제시해 줘야지. 경제운동은 이렇게 해야 한다. 또 교회가 교육사업 하고 저런 의료선교 사업을 하지요.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니야. 그러나 거기서 믿음과 사랑을 보여주지 않으면 그것은 쓸데없는 일이고 어찌 하든지 교회가 기독교가 육신의 일 많이 합니다. 많이 하지만 그거 잘못하면 이 말씀을 범하게 됩니다. 먼저 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생각해야 해. 먼저가 무엇이냐? 그걸 생각을 해. 우리 믿는 사람은 또 야고보서 같은 데는 그렇게 되어있지요. 네가 사랑은 말로만 하고 형제가 헐벗고 있는데 배가고파 있는데 그걸 말로만 하면 쓰겠느냐?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줘야하지 않느냐?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줘야하지 않느냐? 그렇게 말 했거든. 야고보서에는 그럼 먼저 먹을 것 주라는 거야. 그러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우리가 일상생활을 할 적에 밤낮 그런 문제 때문에 방황을 하지요? 그런 문제 때문에 방황을 해. 이번에도 연수원 원장도와서 한 이야기야. 그것은 백성들 먼저 안정시켜놓고 볼일 아니냐? 그 다음 이야기 아니냐? 그럼 우리는 채워놓아야 하지 않느냐? 이제 그렇게 방법에 있어서 차가 생겨. 실제로 인제 그럼 이런 때는 어떻게 될 거야?

 

 

이제 여기 지금 길을 가고 있습니다. 길을 가고 있는데 이 두 길을 가고 있는데 내가 서울을 한 번도 안 가봤고 서울 소리만 듣고 가는 거야. 그런데 서울을 가다보니까 길이 두 갈래가 나왔어. 그러면 이 길로 가야 서울인가? 저 길로 가야 서울인가? 그럴 때는 어떻게 되지요? 어떻게 되요? 이 길로도 가고 저 길로도 가고 두 길 갈 수 있소? 못가지요? 잘됐던지 못됐던지 한길밖에 못 가는 거야. 우리가 영적문제하고 육적문제하고 항상 일상생활에 부닥치면 어느 것 택하느냐? 하는 것을 예수님이 보여주신 거야.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요새 교회에서도 그런 걸 가르치지요. 요것도 좋고 요것도 좋고 육도 좋고 영도 좋고 두 가지 다 붙들고 그리고 한 다리는 세상에다 걸치고 한 다리는 천당에다 갖다놓고 그런 사람은 어떻게 되요? 가랑이가 찢어지지. 그것이 문제야. 지금 이걸 분간해 주시는 거야. 그거 아니라는 거야. 차라리 굶어죽을 생각하고 얼어 죽을 생각하고 세상에서 망할 생각을 하고 이쪽을 먼저 취해라. 그렇게 말했어. 영적인 문제 기독교가 그걸 안 가르쳐주면 기독교인가? 그러면 이제 그렇게 하면 어떻게 돼? 핍박이 생기고 난리가 나는 거야. 그래 내가 땅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내가 칼을 주러 왔다고 집안에서 만일 남편이 예수밖에 모르는 사람이면 막 집안에서 아내를 난리가 나는 걸 처음에는 공갈을 했다가 울었다가 사정을 했다가 조롱을 했다가 천로역정에 그런 대목이 나오는데 그렇게 되는 거지? 그리고 거기 큰 전쟁이 있게 되는 거야. 이거 말로 쉬운 거 같아도 실제로는 어려운거야.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해라 하나님 말씀이 쉬운 거 같아도 어려운거야. 그런데 그걸 얻어놓으면 그때가 자유야.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 한 사람이야. 그걸 알아야 되요. 거기 들어가기 전에는 자유 없어요. 밤낮 이렇게 저렇게 이랬다저랬다 금식을 해도 해결이 안 되고 얼굴에서는 주름살이 필 날이 없고 밤낮 예수 믿는다고 예수 믿어갈수록 걱정이 더 많아지지.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아 그거 술집에 앉아서 막걸리나 한 사발 들이키면 천하태평인데 뭐, 그러나 양심이 살아나고 예수를 믿게 되면 아 이거 뭐 맨 끊어야할게 많으니까 끊을 수는 없고 끊어지지는 않고 그러니까 고민이 생기는 거야. 이기는 거 뭐야? 이기고 나가는 걸 지금 그래 나 해방을 이야기하는 거야. 해방 절이니까 거기서 해방 받아야 한다. 그 말이야.

 

 

어떻든지 믿는 사람은 거기서 해방을 받아야해. 그럴 때 신앙에 용기가 필요하다고. 그래 용기 없는 사람은 예수 못 믿어요. 비겁한 사람은 예수 못 믿어요. 용기가 있어야 해. 딱딱 끊어버려야 해. 우리가 좋은 견본을 이거 해방 노래 좀 불러야 할 텐데 시간이 다 돼서 어렵네. 우리가 이 선생님의 예를 하나들고 그만 둡시다. 너무 많이 한 이야기지만 이 선생님 참 잘 끊었거든. 여러분들 보시지 않았소? 나는요, 나 지금 고운 거 안 입었네. 그 하얀 거 예쁜 다우다 천 옷 입었지요? 여기 전도부인 오셨나? 그 전도부인이 해 준거야. 암만해도 그놈을 입기가 싫어요. 타락되는 거 같아서 그래서 안 입었습니다. 한 일 년 간 버텼습니다. 안 입고 버텼어요. 그랬더니 언제가 하루아침에 수종하는 사람이 다른 옷을 싹 없애버리고 그놈만 갖다 두었더라니까, 아 이거 벌거벗고 나올 수도 없고 그래서 입었지. 졌어, 이 선생님 같으면 어떻게 하는지 알아요? 그냥 나와요. 벌거벗고 나와. 그런 양반이야. 나는 그걸 못해. 그게 이 선생님과 내 차이거든. 또 이 선생님은 요, 어디 가서 이렇게 음식을 잡수시는데 굉장히 이 선생님이 가면 언제 십년 전에 못해줬던 것 일 년 내내 못해줬던걸 알뜰살뜰 음식을 차립니다. 뭐 이 선생님의 상에는 곁에 있는 사람이 질투가 나요. 나한테는 안 해놓더니 여기서는 내놓는가 하고, 굉장하지요. 그러니 다 차려서 거의 음식이 돼서 나올 쯤 되면 아무소리 안하고 일어나버리셔. 그럼 주위에서 선생님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또 따라간 사람들은 배가 고프니까 먹고 싶고 혀가 동애서 죽겠는데 항상 잡수시고 가시라고해도 아무 말도 안 하십니다. 그러고 눈을 실죽 하게 뜨면 아주 무섭거든요. 아무소리 못하고 따라 나와. 그럼 차리는 사람들은 울어요. 차리는 사람들 기가 막힐 것 아니요? 잘 끊어. 그러니까 그 양반은 잘못 되지 않아. 잘 끊어요. 이 이야기도 너무 알지만 내가 공개석상에서 잘 안하는데 오늘 해방 절이니 하나 해요. 저 능주로 한번 가셨어. 그런데 이 선생님을 따라다니는 이가 아주 진짜로는 안 믿었지. 어떻게 타락이 되가지고 첩을 뒀어. 그런데 이 여자는 이 선생님이 곁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그 집에는 안가시지. 곁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그냥 사모가 되고 자기 생활은 뉘우쳐지고 그래서 인제 음식을 아주 잘 차렸어요. 그래가지고 몰래 갔다가 그 옆집 구장님 댁이지요. 그리 갔다가 놨어. 아, 따라간 사람들은 먹고 싶을 것 아니요?

 

 

그런데 인제 기도를 합시다. 그러니까 기도를 했어요. 이 선생님이 뭐라고 기도했다는 거 알지요? 여러분들 이 음식을 먹는 사람은 이가 썩어빠지기를 바랍니다. 어째요? 그거 누가 먹겠소? 그 음식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나와 버렸어요. 첩 노릇해서 몸 팔고 육신팔고 남에게 남자 피 빨아서 만든 음식 안 먹겠다고, 그 못해요.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불쌍해서 그 여자를 이제도 그럴 거야. 마음 약한 사람들은 그 여자가 한번 타락했지만 저렇게 애통을 하고 애절하니 그 마음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도 조금 들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럴 거 아니요? 속에서는 회가 동해서 들어갈지라도 그렇게 말로라도 그렇게 핑계들을 하고 먹거든. 보통은 그런데 아니야. 그 양반을 잘 끊었다니까. 그래 그 양반 보면 무서워요. 그 양반 보통으로 보면 무섭기는 무엇이 무서워? 내가 주먹으로 한 대 때리면 거꾸로 넘어질 걸. 무서운 거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그 양반 그것이 무서워. 우리는 절대 못하는 거야. 아주 뭐 끊는 데는 사정머리가 없지 않아? 뭐 그런 이야기 하자면 끝이 없지요. 여러분들도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을 거야. 이래야 예수 믿어져요. 그 이야기 하려고 그래. 그래야 예수 믿어. 그렇지 않고 보시오, 여기도 좋고 저기도 좋고 팔방미인 노릇하면 예수 믿어진다. 어머니도 좋고 며느리도 좋고 사위도 좋고 손주에게도 좋고 그래서 하늘나라 가실 것 같소? 안 되는 거야. 안 되는 거야. 그렇게 하면 바른말이지 신앙도 아니에요. 뭐든지 안 되는 거야. 그렇다고 또 오해하지 마시오. 반대쪽으로 아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라.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자유하게 하셨으니 그 자유로서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아라. 참 해방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서 해방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해방은 죄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죄에서 해방 받은 자가 죽음에서 해방됩니다. 죽음에서 해방된 사람만이 영생을 얻습니다. 지옥을 면하고 하늘나라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까짓 거 지금 음식 한 그릇 나오는 것이 그거 율법이 아니냐? 하지만 아닙니다. 먹는데서 잘 끊어질 줄 아는 사람이 그 영혼이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가? 여러분들 기도하면서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찬송 하나 부르시고 오늘 8.15 해방이 되니까 꼭 해방 노래를 불렀는데 그거 모두 부르자고. 그러나 나중에 부릅시다. 213장 부르십시다.

 

 


여기 해방 노래가 있지요? 36년 해방된 조선 민족이 되어있는데 대한이라고 고쳐야지요. 대한 민족이 8월이라. 15일 날 해방 되었네. 그런데 우리 정말 해방된 것 같소? 나 요새 그 교과서 문제 난 것보고 이거 큰일 났구나. 생각이 들어. 일본 사람이 모두 국민들에게 아이들에게 특별히 초등학교나 중학교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교과서에 전부 뜯어 고쳤어요. 저희들이 한국에 잘못했던 것 보다 아닌 걸로 했어. 아주 순 거짓말 교과서야. 그런데 그래가지고 하니까 저렇게 모두 사방에서 야단들을 하고 세계 신문들이 떠들고 이제 그러고 하지 않소? 그런데 그러면 그 나라 일이니까 저희들 마음대로 할 수 있지. 그러나 우리나라 일이니까 꼭 그렇게 말할 권리 있지. 그런데 이쪽에서 어느 정도 효과를 내고 강하게 하느냐가 이제 그것도 강하게 못나오는 이유가 하나있어. 지금 일본나라에서 돈을 40억 달라를 빌려와야 살림을 꾸려나가. 이것 때문에 그래, 돈 때문에. 만일 일본을 정말 발길로 차버리면 40억이 안 온다. 그 말이야. 그러면 당장 옹색하거든. 그래서 정부는 약한 거야. 그러면 이거 해방이요? 진정한 해방이야? 해방 못 받았어. 아직도 그런 게 많아요. 아쉬운 거야. 물론 기술 같은 거 일본에서 안 들어오면 미국에서 가져올 수 있지. 잘 생각해요. 우리가 경제적 독립이 꼭 정신적 독립이냐? 그러는 건 아니지만 이야기가 어려우니까 좌우간 불러봅시다. 불러보면서,

 

 

 

해방가

삼십육 년 압박받은 조선민족이 팔월이라 십오일 날 해방 되었네.
징병 징용 의용대로 다 죽을 동족 하느님의 은혜로 다 살아났네.

영자조차 볼 수없는 우리 태극기 백일청천 저 공중에 펄펄 날린다.
조선 독립 만세라 부르는 소리 벽력같이 온 세계를 진동하노라.

죽기만 기다리던 옥중 지사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 못하고
옥문을 차고나와 춤을 추면서 하느님의 은혜를 찬송 하노라.

나라를 위하여서 죽은 충신들 혼이라도 기뻐하고 즐거워하소.
당신들의 뿌린 피와 흘린 눈물이 하느님께 호소되어 응답 하셨네.

전문대학 가진 청년 학병 만들고 보통 지식 가진 청년 억지지원병
훈련양성 받은 청년 징병 실시로 조선 안에 청년 하나 없게 되었네.

시들고 메마른 남은 지사들 팔월이라 십구일 날, 마저 죽이려
곳곳마다 전기장치 준비 하다가 소화황제 항복소리 헛꿈 꾸었네.

천조대신 승배하여 신사당 짓고 억지로 참예시켜 교회 핍박해
하느님이 없다고 선전 하더니 하느님을 모른 백성 진노 받았네.

징병 징용 의용대로 다 돌아오고 죽게 되기 전 모든 지사 다 살아났네.
천년만년 살듯이 준비 하다가 빈손 들고 현해탄을 건너가노라.

하느님의 은혜를 받은 연합군 여지없이 독재주의 멸절시키고
세계에 약소민족 해방 시켰네. 존경하고 감사하세. 삼천만 민족

반갑고도 기쁘도다. 팔월십오일 삼천만민 억척만년 못 잊을 이날
축하하자. 기뻐하자. 날 살린 이날 대대손손 기억하자. 기쁜 이날을

세계의 모든 민족 평화 사랑해. 만물의 영장됨을 명심하여서
행여나 꽃동산에 피 내지 말고 이웃사랑 하기를 내 몸 같이해

 

미국에 간 연이가 보내준 마이래미 해변 동영상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