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율도 폐교 답사기

mamuli0 2024. 8. 17. 13:58

 2012년 여름 신안에 있는 율도 폐교 답사를 했는데 그 기록이 없어 이제야 올리게 됩니다. 고 김준호 선생께서 장수 지지리에 계실 때  남반 수도처로 삼고자 사두었던 자리입니다.

 

태양광 발전소



 

(1) 율도 폐교 답사 보고서

 

정리 : 이영우

 

참 가 자 : 김용숙(글라라) 원장수녀, 김마리아 수녀, 김종북 이사장, 이영우

답사지역 : 전남 신안군 장산면 마진2구 율도 내 폐교

이 동 : 김종북 장로님이 자신의 차를 손수 운전하심(육로) / 여객선(바다)

일 정 : 2012년 7월 29일 06:15~18:40

06:15 소화수녀회 출발(김종북 이사장 차량 이용)

08:30 목포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율도 경유 배승선(75T급 여객선)

10:40 율도 도착, 이장님 댁 방문 및 선물 전달

11:00 폐교 답사

11:40 중식(준비해 간 도시락 / 이장님 댁)

12:10 율도 내 태양광발전소를 둘러봄

14:00 목포 북항행 배 승선(150T급 섬사랑10호 카페리)

16:20 목포 출발(김종북 이사장 차량 이용)

18:10 소화수녀회 도착

18:40 다과 및 좌담. 일정 종료

 

배에서 바라본 율도 마를

 

배경 및 취지

 

김준호 선생은 십 수 년 전 호남 서남부 여러 곳을 둘러보며 수도처를 찾으셨다고 함. 율도 폐교는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자연 조건과 많지 않은 주민, 관광객이 몰려올 만한 경관 자원이 부족하고 주민들의 경제활동이 주로 농업이어서 천연적으로 봉쇄수도원과 유사한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음. 이곳을 수차례 둘러보신 선생께서 주로 남자 수도자들이 관상 수련을 하는 수도처로 삼을 만하다 판단하시고 약 15년 전 일금 4천만 원에 구입한 것임.

이 폐교는 구입 이후 현재까지 방치되어 왔음 수도자들의 수도처로 활용된 적이 없고, 최소한의 관리 이외로 방치되어왔음. 그 이유로는 육지로부터 거리가 멀고 교통편도 불편하여 접근성이 좋지 않고, 다른 수도처들도 여러 곳에 있고(무등산의 소화수녀회, 장수군 지지리 김준호 선생 거처, 완도군 보길도 수도처 등),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편리와 쾌락을 좇는 풍조가 만연하여 고행수도를 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 점 등을 꼽을 수 있겠음.

최근 예수의소화수녀원 평의회에서 율도 폐교를 매각하기로 결정한 후 총원장 주재 하에 매각이 추진되고 있음. 그렇지만, 오랫동안 김준호 선생을 따르고 모셨던 김글라라 수녀, 김마리아 수녀 등 몇몇 분들은 이곳이 보존되어 김준호 선생의 뜻대로 쓰여 지기를 바라고 있으며, 설사 매각이 되더라도 선생의 뜻을 이해하는 지인이 구입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음.

매각 관련 진행상황은 다음과 같음. 율도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의 아들로 충청도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이가 8월중에 대금 지급을 하겠다는 등으로 총원장과 구두 계약을 한 상태이고(매각 예정가 2천5백만 원), 진도에 사는 모 인사도 구매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함.

이번 답사는 김준호 선생의 염원과 자취가 어려 있는 율도 폐교를 매각이 완료되기 전 둘러보고자 한 것임.

 

마을에서 학교 가는 길

 

율도 폐교 관련 지번 및 면적

총 5개 필지, 건물 4개 동(교실, 관리동, 변소, 회관)

등기상 소유주 : 김마리아 수녀

지번 지목 면적(㎡) 비고
신안군 장산면 마진도리 327, 327-1 학교용지 1559, 235 학교
336 대지 215 회관
산83-3 임야 99 임야
산83-4 임야 694 임야

 

그 당시 이장님

 

연락처(김상운 이장)

전화. 061)261-9252

주소. 전남 신안군 장산면 마진2구 율도 52번지

 

폐교 들어가는 길


 

 

율도 일반 현황

 

(가구·주민 수) 총 5가구(4가구 독거노인, 1가구 부부노인) 6명임

마을 이장님은 발전소를 또 하나의 가구로 셈하고 있음(2인 교대근무)

(주소지) 율도인데 실제로 율도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도 있음. 그분들은 실제 주민으로 보기는 어려움

(산 업) 전통적으로 농업이 주업이며, 주로 밭농사임

현재 마을에서 가장 젊은 72세 할아버지 부부가 톳 재배를 하고 있음

(기반시설) 주요 생활 기반시설은 이러함

∙ 전력 : 마을 전담 태양광발전소가 있음(전우실업율도사업소)

∙ 식수 공급하던 시설 : 지하수를 끌어올려 가구별로 공급하는 시설이 여러 곳에 있는 데 현재 사용하지 않음(상수도 이전 식수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됨)

∙ 생활용수 : 빗물 받아서 사용함

∙ 들샘 : 마을 뒤편 이장님 논에 있는 들샘은 수량이 많고 가뭄 때도 물이 마르지 않아 학교 샘으로 사용해왔는데, 현재는 그 위쪽 농경지에서 농약을 살포하기 때문에 오염 가능성이 있음

∙ 부두와 길 : 마을 앞에 바다와 접하여 부두가 있고, 부두에서 발전소까지 도로가 나 있음. 마을 안길은 모두 좁고 경사와 굴곡이 심한 골목길임. 논과 밭 사이로 난 들길 또한 유사함

율도에서 차량은 거의 의미가 없음. 경운기, 트렉터 등의 농기계가 이동할만한 농로가 없고, 농기계를 사용하지도 않고 있음

∙ 여객선 : 미리 연락을 해야 율도를 들러 감. 목포에서 오는 배(오전)와 목포로 나가는 배(오후) 1일 1회씩. 그 중에 카페리가 1회(격일로 들고 나감). 요금은 외지인 7,800원, 주민 4,500원

∙ 마을주민 소유 배 : 2척(그중 1척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음)

∙ 진도 가는목~율도는 서내기로 약 15분 소요(운임은 5~10만원 흥정)

∙ 기타 : 고라니가 다수 서식하고 있어서 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있다 함

 

교실 내부

 

답사기

 

7월 25일 경 김종북 어르신께서 전화로 율도 둘러보러가는 데 함께 가겠느냐고 물어오셨다. 너무 고마우신 말씀이셨다. 어디를 왜 가느냐 하는 것은 어르신께서 판단하신 부분일 것이고, 영적 승화와 순결의 삶을 살고 계신 어르신들을 친견할 수 있는 큰 복을 누리는 일이어서 따라가겠다고 말씀드렸다. 답사 일자도 소화수녀회의 수녀님들이 미사를 앞당겨 드리면서까지 내가 참석할 수 있도록 일요일로 잡아주셨다.

29일 일요일 아침, 간단하게 소지품을 챙겨 집을 나섰다. 짙푸른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살랑거리는 무등산 숲길이 상큼하다. 소화수녀회 분원에 도착하니 벌써 길 떠날 준비를 끝내고 계셨다. 저 홀로 온종일을 보내기가 심심하다는 듯 줄을 풀고 뛰쳐나간 개를 찾아와 묶어놓고 출발하였다.

차량 운전은 김종북 어르신이 몸소 하셨다. 목포를 향해 가는 동안, 김준호 선생이 수도처를 찾아 여러 곳을 돌아다니셨고 율도 폐교도 그 결과물로 마련된 것인데, 현재 매각이 추진되고 있어서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에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는 말씀을 듣고 오늘 일정의 취지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안의 통일이 중요하고 우선이다. 그것이 곧 귀일(歸一)이다’, ‘진정한 생명평화는 세속적 차원의 접근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등의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

타고 간 승용차를 목포세무서 주차장에 세워두고, 율도 마을에 사시는 분들에게 줄 선물(김종북 이사장이 율도 거주 가구 수에 맞춰 생닭 5팩을 준비하심)과 점심 도시락 등 짐을 챙겨들고 배를 타러 목포 연안여객선터미널로 갔다. 승선표를 사고 신상명세서를 작성하고 나니 시간이 넉넉하다. 두 분 수녀님은 부두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시고, 김종북 어르신은 사진을 촬영하시고, 어제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나는 의자에 앉아 쉬었다.

75T 규모의 그렇게 크지 않은 배에 탔다. 승객은 약 50여명. 선실은 두 개였는데, 비좁았고 먼저 탄 승객들이 거의 다 앉거나 누워있다. 앞 선실에 자리를 잡고 두 분 수녀님이 자리를 잡으셨고, 김종북 어르신을 따라 선상으로 올랐다. 햇살은 따갑지만, 배가 출발하자 바람이 서늘하다. 배는 섬과 섬 사이로 푸른 물살을 가르며 달리고, 멀고 가까운 섬들은 마치 하얀 뭉게구름과 어울려 장관이다.

 

학교 건물

 

작은 섬에 배가 정박했다. 젊은 부부들과 아이들 15~6명이 배에서 내렸다. 나중에 사람들에게 말을 듣고 오신 마리아 수녀님 말씀이 그 섬에는 할머니 한 분이 사시는 데, 그 분의 자녀들이 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작다고 하지만 섬 하나에 사람 하나란다. 물질문명의 풍요와 편리를 좇아 상대적으로 물질문명의 번성이 더딘 농어촌을 버리고 도시로, 도시로 젊은이들이 떠나 가버려, 저리 텅텅 비어버린 것이다.

시원한 선상에서 구경을 하다가 여전히 찌뿌듯한 몸을 달래볼 요량으로 선실에 내려와 잠을 잤다.

율도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린 사람은 우리 일행 네 사람과 마을 출신 젊은이 등 모두 다섯 사람이다. 길을 아는 마리아 수녀님이 앞장서 골목길을 가로질러 이장님 댁으로 향했다. 골목길을 오르는 데 할머니 세 분이 그늘에 바다를 향해 앉아계셨다. 자그마한 집들이 좁고 비탈진 터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데 그나마 대부분 빈집이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한 끝에 김상운 이장님 댁이 있었다. 이장님은 키도 체구도 작고 거동도 불편한 분이셨는데, 그래도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인사를 나누고 가져온 선물을 드리고 물 한 모금씩을 마시고는 바로 학교로 향했다. 어느새 마리아 수녀님이 풀과 칡덩굴이 얽힌 길을 낫으로 정돈하고 계셨다. 나도 좀 거들었는데 땀이 물 흐르듯 흘러내렸다.

학교는 마을 위 산자락 숲속에 푹 파묻혀있었다. 칡넝쿨, 자리공, 쑥 등으로 학교 입구부터 운동장과 건물 주변이 덮여있고, 여러 가지 나무들도 사람 손을 타지 않아 절로 자라 울창하다.

학교 부지에 있는 건물은 모두 3개 동인데, 가운데가 교실, 오른쪽이 화장실, 왼쪽이 숙소였다. 건물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고 방치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꼴을 갖추고 있었다. 유리창도 깨진 것이 눈에 뜨이지 않았고, 천정도 물이 샌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교실 뒤편에는 대형 물탱크 1개가 있었고, 숙소에는 호스를 깔았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름보일러로 난방을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뒤편은 산이어서 숲이요, 양 옆도 숲이 우거져있다. 바로 앞은 밭과 마을이요, 눈을 들면 바로 바다가 보인다. 아늑하고 조용하다. 물정 모르는 내 생각에도 공부터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나오는 길에 등성이에 서자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좋았다. 여기저기 경작을 하는 밭들보다 방치된 묵정밭이 더 많이 보인다. 밭에서 자라고 있는 작물로는 고추, 도라지, 콩, 깨 등이 보이는 데 작황이 별로 좋지 않다. 김종북 어르신 말씀이 섬의 토질은 좋지 않아 대부분 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데 고구마 등 잘 어울리는 작목을 선택하면 된다고 하신다.

이장님 댁으로 왔다.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수녀님들이 정성으로 도시락을 준비해오셨다. 찰밥과 반찬 등을 꺼내놓고 이장님께도 함께 잡수실 것을 수차례 권해도 마다하신다. 2년 전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거의 날마다 술을 마셨고, 밥은 가끔씩 잡수신다고 했다. 기력이 떨어지니 밖에도 거의 나가지 않고 술 마시고 TV 보고 주무시고 어쩌다 밥은 먹고…….

점심을 먹고 나서 짐을 챙겨서 이장님 댁을 나섰다. 태양광발전소도 구경하고, 여객선 오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고 하니 미리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태양광발전소의 정식 명칭은 ‘전우실업율도사업소’라고 하는데 한국전력의 협력회사라고 한다. 80W짜리 집열판 450장이 설치된 35KW 규모의 발전소로 1일 평균 약 60KW의 전력을 생산하여 율도 내 전력 수요에 부응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전력량은 율도의 사용량에 얼추 부합하는 수준이어서 전력 소비가 많은 심야보일러 등은 설치할 수 없다고 한다. 발전소 관리운영 인력으로 2사람이 교대근무를 하고 있는데, 모두 율도 출신이고(2사람 중 소장이 이장 아들) 목포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 출신들이고 주민들보다 젊은 분들이어서 이 두 사람이 마을의 대소사에 여러 가지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목포로 나가는 배가 빠르면 오후 1시에도 들어오고 늦을 때는 3시에도 온다고 한다. 발전소 직원이 우리 일행이 배를 기다린다고 연락을 했으니 들어오기는 올 터인데, 좀처럼 배가 들어오지 않았다. 마리아 수녀님은 부둣가에서 바다 바라보기를 하시고, 김종북 어르신은 톳 양식을 하는 마을 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신다. 나는 마을에 가서 할머니 한 분 댁에서 시원한 물을 얻어다 마시기도 하고 했지만 언제 올 지 알 수 없는 배를 기다리는 일은 지루하기만 하였다. 나는 몸 상태가 별로여서 부둣가 평상에 누워 잠을 잤다.

배가 들어왔다. 카페리다. 승선 인원은 우리 일행 네 사람과 마을 출신 젊은 분 5명이다. 배에 타니 오전에 들어올 때 탄 배에 비해 2배 정도 크고 시설도 좋은 데 손님들은 몇 사람 되지 않는다. 나중에 다른 섬에서 탄 분 들까지 합해도 4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배에 실린 차량도 모두 2대 뿐이다.

들어올 때와 비슷한 장면이 재현된다. 푸른 물이 넘실대는 바다와 가끔씩 눈에 뜨이는 배, 가깝고 먼 여기저기에 있는 섬과 그 자락에 둥지를 튼 마을과 집들, 가을 하늘처럼 맑고 푸른 하늘과 하늘가로 뭉게뭉게 피어있는 흰구름들……. 김종북 어르신은 대자연이 연출하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장면들을 카메라로 담아내셨다. 바다는 잔잔하고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선상 위에서는 바람이 시원하다.

선상에서 어르신께 어설픈 생각을 말씀드려보았다. 지금 세태가 물질문명에 젖어 풍요와 편리를 좇고 온갖 욕심과 이기심이 만연하고 있지만, 바로 그렇기에 참다운 삶, 영적 승화를 갈구하는 도도한 흐름이 머지않아 시작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리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전개되면 좋겠다. 예를 들면 영적으로 승화되시고 이를 삶 속에서 구현하고 계신 여러 어르신들과 선생님들이 계시고 여러 곳에 수도처들도 있으니 그 별처럼 빛나는 분들을 친견하고 수도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요지였다. 어르신께서는 누가 할 것인가? 계속 꾸준하게 할 수 있는 것인가? 하고 물으신다. 자신의 영적 승화도 어려운데 남들 걱정 하느냐 하는 되물음이시다.

눈을 들어 여기저기 둘러보고만 있어도 참 좋다. 그런데, 불쑥불쑥 어설픈 생각들이 솟아난다. 율도에 들어가고 나오면서 할머니 세분을 보았었다.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골목길 그늘 가에 바다를 향해 부두를 향해 앉아계셨다. 이제 늙고 병들어 농사일도 버겁고, 별다른 소일거리도 없다보니 저리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혹시 도회지에 살고 있는 피붙이들 소식이라도 들려올까 싶어 저리 부두를 향해 앉아계셨을 것이다. 문득 율도에서 논밭을 일구며 저 할머니 할아버지 심부름도 하고 말벗이라도 되어드리며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떠오르는데, 진짜 그래볼 거냐? 하고 자문해보고는, 당면해 있는 아비로서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그리고 세상살이 인연 속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고자 그럴싸한 명분과 멋으로 포장된 황당한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방금 전 어르신의 크신 가르침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이 모양이다.

배에서 내려 광주로 향했다. 오는 길에 김종북 어르신과 글라라 수녀님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셨다. 그런데 그 내용은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귀하고 중한 말씀이었고, 앞서 가신 선생님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이었다.

김준호 선생이 생전에 수도처를 마련하시고도 이전등록 등의 법적 절차에는 통 관심이 없으셨고 매입 등기 등등 사무적인 제반 일은 윤영윤 수사가 했다고 한다.

김준호 선생이 목포 디아코니아 대모이신 여성숙 선생(제중병원: 현재 광주기독병원, 흉곽전문의로 이현필 선생과 그의 제자 김준호 선생을 치료한 주치의였음)과 각별하게 지내셨는데 파도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말씀을 듣고 선생이 해남 어느 곳에 여선생을 위해 땅을 마련하셨다는 예기를 들으셨다는데 그 장소도 모르겠고 지금 여선생님은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휠체어를 타고 거동하시더라, 그 분이 수양딸 삼아 키운 분이 현재 교사인데 수녀님과 함께 생활하실 거라…….

잘 판단이 서지 않는 경우를 당하면 이현필 선생님이라면 어찌하셨을까 하고 생각해보자…….

무등산 소화수녀회에 도착하니 오후 6시 경이다. 꼬박 12시간 정도의 일정이었던 셈이다. 바로 돌아오려다가 수녀님들이 시원한 음료수 한 잔 먹고 가라고 하신다. 준비하시는 동안 김종북 어르신과 밭을 둘러보았다. 두 분 수녀님께서 가꾸신 것인데, 어떤 작물이든 잘 자라고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밭길에 심어놓은 들깨와 돌로 쌓은 밭둑에 심어놓은 오이 등이었다. 공연히 놀 땅을 활용하는 지혜와 그런 세세한 곳까지 손이 미치는 부지런함은 밭 자락에서 놀고 있는 내가 꼭 배워 잊지 말아야 할 덕목이다.

수박과 토마토 쥬스를 차려놓으셨다. 토마토를 삶아 으깬 쥬스에 콩을 삶아 으깬 것을 더하고 매실 효소 한 수저를 넣으셨다는 토마토 쥬스는 처음 먹어본 별미였다.

수녀님들과 어르신 모두 오늘은 참 즐겁고 좋은 시간이었다는 감사의 말씀을 하셨다. 나도 당연이 너무 좋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시들거려서 죄스러웠지만.

다음 기회에 보길도 수도원, 지지리 등도 들러보자는 말씀을 끝으로 자리를 파하였다. 방에서 나오는데 마리아 수녀님이 옥수수를 챙겨주셨다.

성스럽게 살고 계시는 분들을 직접 뵙고 좋은 말씀을 듣고 선인의 자취를 살피는 시간을 보냈으니 참으로 큰 복을 누린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