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제79주 광복절 : 정경옥과 이세종의 만남

mamuli0 2024. 8. 15. 10:41

 어제는 말복, 일주후면 처서 오늘은 광복절이다. 장마후 가물어 울금밭에는 물을 주고 있다. 연 방죽에 연꽃이 화려하다.

 오늘은 이덕주 교수의 '정경옥과 이세종의 만남' 글을 올려본다.

 

 

정경옥과 이세종의 만남

 

★ 이덕주 교수의 <이현필, 그 말씀과 영성회복> 강연에서 옮긴 글입니다.

 

정경옥 교수가 낙향해서 단순한 생활을 하며 성경을 읽고 있을 그 무렵, “화순 땅에 성자가 있다.”는 소문이 그의 귀에 들렸습니다. 화순군 도암면 등광리 개천산 밑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던 이세종(1880-1942)이었습니다. 득도한 후 이름을 이공(李空)으로 바꾼 이세종은 고아로 자라나 억척같이 일해 마을 큰 부자가 되었으나 나이 사십에 성경을 구해 읽고 혼자 독수도(獨修道)하면서 말씀을 깨우쳤고 말씀대로 실천하였습니다. 득도한 후 자기 재산을 처분하여 반은 교회에 바치고 반은 동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아내를 누이로 여겨 성생활을 중단하고 정결을 지켰으며, 하루 한 끼만 먹되 육식은 금하였고, 생명을 소중히 여겨 짐승이나 곤충은 물론 살아있는 풀까지도 함부로 꺾지 아니하였고, 걸인이나 나그네를 천사처럼 대접하였고, 한 벌 옷에 구멍 뚫어진 모자를 쓰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해도 그것을 오히려 감사하였습니다. 이런 그에게 ‘기인’, ‘도사’, ‘광인’, ‘성자’ 등등 칭호가 붙었고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예수를 믿으려면 이공처럼 믿어야지.” 할 정도로 그의 철저한 ‘말씀 생활’은 모든 이에게 본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았지만 묵상과 기도로 깨달은 성경 풀이가 독특하고 깊이가 있어 말씀을 배우러 찾아오는 제자들이 생겨났고 광주의 최흥종․강순명․백영흠 목사 등도 자주 찾아와 성경을 논했습니다.

 

 

정경옥 교수는 이런 소문의 주인공을 등광리로 찾아가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었고 그 이야기를 “숨은 성자를 찾아서”란 제목으로 정리하여 <새사람>(1937.7)에 기고하였습니다. 미국에서 최첨단 신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정경옥 교수의 눈에 비친 이공의 모습입니다.

 

 

“그[이세종]는 과연(果然) 자기를 이긴 사람이오 참된 사랑의 사도(使徒)이다. 그에게는 깐디의 정책(政策)도 없고, 싼다싱의 이론(理論)도 없고, 내촌씨(內村氏)의 지식(智識)도 없다. 그러나 나는 깐디보다도 싼다싱보다도 내촌씨(內村氏)보다도 이공(李公)의 인물을 숭경(崇敬)하여 마지아니한다. 나는 이러한 위인(偉人)들보다 그를 이 세상에 자랑하고 싶다. 물론 그는 설교가(說敎家)도 아니오 신학자(神學者)도 아니오 경리가(經理家)도 아니오 사업가(事業家)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의 가장(假裝)없는 인물을 존경(尊敬)한다. 공(公)은 몸 갈피가 호리호리하고 키는 다섯 자도 되지 못한다. 그의 목소래는 옆 사람이 겨우 알어 들을 수 있으리만치 적고 부드럽다. 나는 이 소박(素朴)하고 순후(醇厚)한 성자(聖者)를 대할 때는 마음에 넘치는 감격(感激)을 금(禁)할 수 없었다.”

 

 

낙향 이후 ‘단순한 삶’에서 성경을 읽어가며 진리를 깨달아 가고 있던 정경옥은 한 벌 옷에, 구멍 뚫린 모자를 쓰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이공에게서 ‘소박하고 순후한 성자’의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과연 이공님은 ‘성경의 사람’이었습니다.

 

 

“공(公)은 성경(聖經)을 거진 외이다 싶이 잘 알었다. 무슨 말을 하든지 성경(聖經) 말씀을 인용(引用)하였다. 그의 성경(聖經) 해석(解釋)에는 너무나 상징적(象徵的)인 것도 없지 아니하고 세밀(細密)한 자구(字句)에 억매여 대의(大義)에 어그러진 것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아무에게도 지도(指導)를 받지 아니하고 단독(單獨)으로 받은 영감(靈感)이 비범(非凡)한 것을 부인(否認)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성경(聖經)을 학문(學問)으로 배우려고 하지 아니하고 신학(神學)을 이론(理論)으로 꾸미려고 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그를 존경(尊敬)하는 것이다. 그가 받은 영감(靈感)을 누가 부인하랴. 그의 엄숙(嚴肅)한 신앙(信仰)을 누가 거역(拒逆)하랴. 공(公)의 얼골은 창백하나 눈에는 밝은 빛이 비최이고 그의 외양(外樣)은 초췌(憔悴)하나 영(靈)은 산 기운이 있다.”

 

https://youtu.be/uQeyb4ae0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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