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계묘년 팔월 중순 : 믿음

mamuli0 2023. 8. 13. 08:34

긴장마와 제6호태풍 카눈도 지나가고 폭염이 다시 시작 되었다. 영윤이가 입대 인사차 다녀가고 시래기 덕장 운반 선반을 만들어 가지고 곡성에서 다녀갔다. 영지버섯이 영글어간다.

 

 

믿 음

1999. 2. 26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특별한 사명 특별한 사명이다. 이런 사명을 띤 사람입니다. 이 복음은 성서에 있는 바와 같이 일찍이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아들에 관한 소식이에요. 복음은 성경 66권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 책이에요.

그것도 예수님이 오셔서 또 하느님의 증거죠. 성령은 성부와 성자를 소개하고 서로 증거 해요. 소개를, 인제 다른 세속적인 그 인륜적인 교훈이 아니에요. 오직 그리스도에 관한한 진리.

 

인자 4절에

‘거룩한 신성으로 말하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서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어 하느님의 아들로 확인되신 분입니다. 그 분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란 그 증거가 뭐냐? 또 신성을 지녔다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 신성을 지녔는데 아들이란 증거가 죽어도 산다 이거야. 몸은 죽는데 다시 살아 부활했어요. 그것이 아들인 증거야.

이 우리도 예수같이 아담의 성품은 예수와 같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예수의 마음을 가진 것이 우리 믿는 사람이야. 하느님의 아들이 돼요. 그러기 전엔 악마의 아들이야. 그것도 부활을 체험해야 되지만은 인자 또 이 4절에 ‘그리스도는 신성을 지녔다’ 우리는 신성을 잃어 버렸어요. 인성마저도 타락해버렸어요.

 

골로새 2장8절

‘여러분은 헛된 철학의 속임수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왜 철학이 헛되냐? 이건 참된 철학이 아니니까 그래요. 그것은 세속의 원리를 기초로 한 것이지. 인간이 만들어서 전해준 것이지. 그리스도를 기초로 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는 하느님의 완전한 신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인성 안에는 완전한 하느님의 그 성질, 신성, 이게 몸도 인성 안에 인성도 깨끗하잖아요? 하느님의 신성이 들어있으니까. 우리는 인성은 갖고 있어도 타락한 인성이라는 말이에요. 아담 때부터, 예수님은 아주 하느님 그대로 깨끗한 인성에다가 깨끗한 신성이 있다 말입니다. 우리는 인성마저 타락해버리니까 신성을 거의 잊어버리는 거여. 저기 로마서 3장20절~22절 보라고 23절, 거의 잊어버렸어. 인자

 

로마서 3장19절

‘우리가 알다시피 율법아래 사는 사람들은 율법이 명령하는 모든 것에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결국 모든 사람은 말문이 막혀요. 할 말이 없어요. 막히게 되고 온 세상은 하느님의 심판에 복종하게 된 것입니다. 언자 다가올 것은 매 밖에 없어. 심판.

그러므로 율법은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아무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율법은 단지 무엇이 죄가 되는지를 알려 줄 따름입니다.

 

율법은 지키란 거 아니고 죄를 알리자는 것이 율법의 목적이야. 한 세 가지로 요약해요. 율법은 죄가 알려진 것이고 또 자신의 죄를 깨달으면 용서하신 하느님의 은총을 발견해요. 이 얼마나 좋죠? 희망이 생긴다. 희망이 용서 받는다. 어떤 큰 죄라도 용서 받는다. 회개만 하면 용서받는다.

그런 희망을 지켜 주고, 세 번째는 뭐냐 하면 죄가 드러나면 인자 구조를 갈망해요. 구조를, 죄에서 해방시켜주는 구조가 필요하다 말이야. 우리 죄를 모르니깐 구조를 필요도 이해 안 해. 입으로만 부르제. 그러면 인자 율법은 죄인 줄 알았으면 딱 갇히란 거든.

 

자유로 말란 거여. 감정적인 자유를 말란 거여.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옥문을 열어줄 때까지 갇혀 있으라는 말이야. 그래 나는 갇혀도 안 하고 그냥 뭐 자유로 해버린다. 그러면 예수를 못 만나요. 갇혀야 하는데. 갈라디아 3장인데.

 

 

로마서 3장21절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는 길이 드러났어요. 올바른 관계에 맺은 길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없습니다. 율법서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 없이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줍니다.’

율법을 지켜서 하는 거 하고 또 뭐 있느냐? 오히려 반대에요. 하느님과 멀어지는데 믿음으로, 믿음으로 은총의 힘을 입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어요.

본래의 영광스런 모습을 본 죄 결과로 잃어버렸어요. 그러면 로마서 1장 다시 봐요. 근데 4절에 명심할 것은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증거가 뭐이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거예요. 근데 우리도 예수를 믿으면 똑같이 예수와 같이 죽고 예수와 같이 부활한다. 그 실제 체험을 해야 돼, 죽은 뒤에 인제 나중에 몸이 완전히 죽을 때가 아니라 지금 현세에서 믿음으로 그걸 체험해야 한다. 죄에서 해방 받아요.

 

그럼 인자 4절하고 5절 쭉쭉 볼라.

5절

‘내가 은총으로 사도직을 받은 것도 그 분을 통해서입니다. 그것은 모든 이방인들에게 하느님을 믿고 복종을 하란 거야. 믿고, 믿었으면 복종 되는 거예요. 믿고 복종할 것을 가르침으로써 그 분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셔서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불러주신 로마의 교우 여러분에게 문안드립니다. 하느님과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깃들기를 바랍니다.’

 

8절 감사기도입니다. 뭣 때문에 감사하냐? 감사의 조건이 뭐냐?

‘나는 먼저 여러분의 믿음이 온 세상에 널리 퍼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의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믿음이 널리 퍼진 거 그걸 보고 하느님께 감사한다. 이 하느님의 역사죠? 역사, 나는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분을 기억하며 여러분을 찾아갈 기회를 하느님께서 나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보통 생각하면 아 가고 싶으면 가지. 뭐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잖아요? 그런데 바울사도 그래요. 한 걸음도 자유로 안 해요. 허락 하에서 해요. 또 자유를 조끔 주다가 막아버려. 안 된다. 사도행전 16장인가 거기 있잖아요? 그도 자유로 하려니깐 성령이 막아. 단도리 하려니깐 또 예수가 막아. 그 나중에 하느님이 환상으로 보인다. 마게도니아 교인들이 와서 환상 중에 ‘우리 지방으로 오시오.’ 소원이 이루어진 거야. 허락을 받아 가야돼. 왜 그러냐면 가도 헛걸음만 해요. 헛걸음, 말씀을 받을 때가 준비가 돼야죠. 아 다 준비가 돼 있잖아? 바울사도는 준비가 안 되어 있어요. 헛 시간 보내. 헛 시간. 그런데 준비가 될 때 딱 허락할 거 아니야? 그러니까 허락을 받아갖고 와야 한다.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하느님께서 잘 알고 계십니다. 그 하느님은 내가 그분의 아들에 관한 복음을 전함으로써 성심껏 섬기고 있는 바로 그 분이십니다. 내가 여러분을 애타게 만나고 싶지만은 뭣 하려고 애타게 만날까? 그냥 가서 만나버리지. 그것도 허락이 돼야 하니까. 마음으로는 애타게 사모하지만 허락은 안 해. 지금 가야하는데 허락할 때까지 참아야 하는 거야.

그만큼 하느님의 사랑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한다 말이야. 애타게 만나보려는 것은 여러분과 함께 영적인 축복을요. 뭐 물질적인 거 헌거 주고받고 하는 게 아니라 영적인 축복, 영적인 축복을 나눔으로써 여러분에게 힘 힘을 주려는 것입니다. 힘을, 힘을 북돋아 주려는 것입니다.

 

죄를 이기는 힘이에요. 무슨 다른 일 잘하는 힘이 아니고 물론 일도 잘하죠? 일이 아니고 죄를 이기는 힘 야곱에게는 있어야 되었거든요. 하느님과 씨름해서 하느님을 이겼잖아요? 하느님이 져주었어요. 내가 힘을 줄 테니까 이렇게 사탄을 이겨라. 그런 게 그 져주신 것은 요렇게 이와 같이 이기라. 그 말이지. 근데 이스라엘아 이스라엘이 승리자라, 승리 이겼다, 어찌 승리했냐? 자기 약함을 발견해. 약함, 약하면 얼마나 약했나? 약한데 따라서 의지를 해요. 자기가 강해버리면 의지를 안 해요.

그러면 약함, 첫째 약함의 의식 발견할 것이고 약함을 알았으면 그 만큼 의지를 한다 말이야. 의지를 하면 하느님 안에서 승리. 하느님이 이겨준다. 하느님이, 승리를 해요. 반드시 승리를 하는데 내 맡기지를 안 해요. 맡기질 안 해, 승리 못한 건 내 책임이에요. 사람이 했어요. 이게 왜 먹히지 않냐? 자기가 해보려는 거여. 자기가, 힘을 북돋아 주려고 전한 것입니다.

사탄을 이기는 힘이에요. 힘, 말하자면 자기를 이기는 힘이에요. 겉 사람을 속사람이 이긴다는 말이야.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함께 지내면서 마음만 사모해도 안돼요. 실제 인자 몸으로도 같이 지내면서 어떻게 하냐?

 

여러분과 내가 피차라 말이야. 로마 교인들과 바울사도 피차, 피차에 믿음을 통하여, 이 믿음이 있어야 돼요. 한 쪽만 믿음 있고 한쪽 다른 사람 믿음 없으면 안돼요. 피차 믿음이야. 그것을 받아라. 믿음이 있으면 믿음이 있다 그 말은 그 사람 속에도 그리스도고, 이 사람에게도 그리스도 그리스도끼리 통하는 거야. 한 쪽에는 그리스도가 계시지만은 자기가 믿지 않을 때는 엄한(엉뚱한) 짓 하니까 줄 수가 없어요. 피차에 믿음으로 통해서 은혜를 받아요.

내가 피차의 믿음을 통하여 서로 격려를 받는다. 격려, 서로, 일방적이 아니에요. 격려하면서 또 저쪽으로도 주고받고 해. 피차 그리스도니까 주는 사람도 그리스도요. 받는 사람도 그리스도니까 피차 격려를 받아요. 우리가 일방적으로만 생각 한 게 그 착각을 하는 거야. 그렁게 사람한데 받으려고 사람한테 받으려는 사람도 그 사람 속에 그리스도가 주는 사람도 그 사람 속에 그리스도로 주는 거야. 그리스도, 그리스도끼리 대화가 되는 거죠. 그럼 이제 손이 없어도 통하죠.

 

그러나 몸을 가졌으니까 어리니까 소리를 또 해야 돼요. 할 때는 아주 장성하면 필요 없지만은. 아직 어리니까 아직 어리니까, 피차의 믿음이란 말 그 말이야 피차 믿음, 피차의 그리스도 믿음을 통하여 서로 격려를 받으려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찾아 가려고 여러 번 계획을 세웠으나 지금까지 길이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저번에 김 선생님도 함평에도 한번 가야할 텐데……. 그랬어요. 제가, 근데 그 말은 뒤에 제가 두 번 간 셈입니다. 두 번, 그래 정확히 기회가 그리 되더란 말입니다. 여기서 간다고도 안하고 거기서 오란 말도 안했지만은 그렇게 됐어요. 그래서 두 번 다 요번 더 좋았죠. 서로 다 비슷비슷, 그래도 그 쪽에가 더 신뢰가 더 있거든요. 저는 말 뿐이고 이게 피차 받아요.

인자 함평은 아주 인자 딴 세계에요. 정신적으로, 제일 사람문제 이었거든. 가서 있을 사람도 없고 일은 많은데 그래 거기서 산 사람은 애 탔죠. 뭐 사람 그런 사람은 보내도 말라고도 하고 막. 제일 까다로운 데여. 근데 인자는 다섯 분인데 하나도 반대되는 사람이 없어. 다 똑같아요. 그러면 그 전에 다 땀을 흘려놓은 결과죠. 피차, 다 누가 되어도, 그 때는 모두 드러나도 모르고 했지만은 수고 해 논만큼 그 결과가 나타난 거 아니냐?

예를 들면요. 직접 우리 지도하시는 이 현필 선생 내 보기는 항상 싸왔잖아? 뭐 칼을 품고 다니면서 기회만 되면 죽이려고 까지도 했어요. 저는 많이 목격했거든요. 저는 싸움 속에 한 방에 또 자기도 했어. 지금 생각하면 어째 그랬던고? 나도 그가 있는데 동네사람과 싸웠단 말이야. 아 젖을 먹을 사람 젖을 먹이어야지. 안 맞잖아? 젖 물 사람이 밥을 먹어도 되냐고. 막, 아 이제는 인자 인정시리 완전히 밥 먹은 거야. 완전히 또 이현필 선생 항상 예언했어요. 돌아온다고. 근데 인자 완전히 회개하고. 또 서로 섬기는 분들하고는 처음에는 자꾸 충돌이 많이 생긴다. 고만 두어 볼라고도 까지 해버리고, 세 분이 다 손을 들었어.

근데 인자 만장일치 아주 화목이 되어버려. 서로 인자 존경을 하고, 안 맞을 때는 멸시를 한다. 멸시를, 그래 인자는 아주, 요번에 그 이 목사님이 또 그 장소 어쩌면 또 딱 적절하게 이 선생님 친구가 와서 딱 해결해버려. 내일 사십일 졸업 날이잖아요?

 

그 수종드는 이들 보고. 성녀라고 말하잖아? 피차 높여 버려야. 뭐 거짓말 하겠어요? 그 느낀 거야. 그 장소가 어쩌면 그래 마음에 맞고 좋다는 거야. 이 보름 있다가 너무 좋으니까 거기서 사십 일 있고자. 처음 여기서 컸어요. 처음 왔을 때는, 김 선생보고 아 김 선생은 내 제자였었는데 인자 그 수준 높아요. 차원이 높아요. 요번 몇 해 전에는 그런데 이선생이 그 전에 제자였었는데 인자 내 스승이요. 그렇다 스승이요. 그래 난 그렇게 생각해요. 제자라고 할 때도 사실은 스승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섭리가 그 분을 이렇게 인도하려니까 가서 제자가 같이 됐죠. 그렇잖아요? 하느님의 섭리가 참 오묘하다.

그래 어떤 방법을 영혼을 이끌어 온다. 사람을 통해서, 여기 까지 올 때도 그래요 당신들 인자 마음이 하아 이거 바쁘다. 준비를 한데 어찌 하냐? 서둘러 가지고 이거 참 나 준비는 빼앗아가 버리고 가져가 버리고 하거든. 반대에 있죠? 반대에 있는데 반대 듣고 왔거든요.

 

 

고린도전서 7장5절

서로 의견 합의 가운데 동의 가운데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서 얼마나 분방하라 그랬어요. 기도에 전념해야겠다. 그래 인자 사십 일 마쳤으니까 인자 합방해야죠? 인자 그러면 인자 뜻은 하나 되어야 돼요. 분방할 때도 동의 있어 했던 원만하죠? 그니까 그렇게 된 거 아니라 인제 그렇게 했는데 김 선생님 먼저 다른 몇 분을 심방을 해보고 또 나중에 김 선생님 딱 하고 때가 되니까 딱 고쪽에서 준비가 되고 요쪽에도 딱, 그거 알아보지 안했지만 가서 딱 적절하게, 적절하게, 긍게 사십일란 것이 뭔 뜻인지 모르나 하여간 뜻이 있을 것이다. 그러고 온 거요.

긍게 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변화가 온 거죠. 다, 이 자꾸 변했죠. 다르게 보면 성령으로 받아 보는 눈이 변한 것 아니요? 사실은 영혼으로 보면 다 이루어진 것 되겠습니까?

 

13절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찾아 가려고 여러 번 여러 번 계획을 세웠으나 지금까지 길이 막혔어요.’ 아 그 자기가 할 수 있을 텐데 꼭 허락에 한해서만 갈란 거야. 허락이 돼야 그 쪽에 가서 결과가 있지. 자유로 해 보는 건 아직 한 쪽은 준비가 안 됐는데 허사가 돼요. 헛수고가 돼 버린다. 길이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랍니다. 왜 알아주기 바라요? 알면 뭣 하고 모르면 뭣한가? 그 만큼 사랑을 깨달아요. 사랑을.

 

나는 다른 이방인들에게서처럼 이방인들과 같은 전도의 성과 효력, 성과를 여러분에서도 거두려고 했던 것입니다. 나는 미개인에게나 유식한 사람에게나 무식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전도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개역에는 똑같이 빚을 지고 있다 게요. 빚, 그리고 인자 빚을 무엇으로 갚느냐? 복음으로 갚아요. 15절은 인자 복음 그 비싼 복음으로 갚습니까?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 그 복음으로는 말로가 아니고 참사랑, 왜 빚졌냐 말이야. 왜 빚졌냐? 모든 사람이 나놔지라고 특별한 은혜를 받았거든요. 나놔지라고 누구에게나 골고루 나놔주라고 받았은게 주어야 되지요? 안 주면 어떻게 돼요? 참 삶이랑 못 하잖아요?

자기 삶이 그래요. 특별히 은혜 받은 것은 자기만 누리란 거 아니라 주라는 거여. 필요한 사람에게, 그런데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 문제란 거야. 왜 느끼지 않냐? 세상 물질적인 것이 재미를 보니까 그런 거 생각 여지가 없다는 거야. 인자 세상물질에서 그냥 허무를 느껴야 되는데 아직 느끼지 안 해요. 그 때는 죽을 것을 선택하거든.

끝까지 전도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빚졌다 그래. 그러므로 로마에 계신 여러분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의 본분이에요. 간절한 소원입니다. 탄생의 본분이라고 복음을 전한 거요. 로마에도 빚졌어요. 세계 인류 두 군데 빚졌으니까 복음을 전하는 거를 갚는다. 복음전하는 생명 생명이니까 물질적인 빚이 아니거든요.

나누어 주라는 것이니까 그 만큼 책임이 있다는 말이야. 그런데 받을 사람이 있어야 말이죠.

 

믿음을 통한 구원,

나는 그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요 말을 왜 썼냐? 그 말이야. 복음을 모셔야지. 왜 부끄럽냐?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에 부끄러워서 얘기 안한다. 말이 됐거든, 믿음이 아닌 상태에서는 부끄러운 거야. 믿음 안에서는 부끄러운 것이 아닌데. 영광인데. 믿음 없는 세계에서는 부끄러운 일이란 말이야. 왜 그러냐면 제일 천대받는 생활이니까 제일 끝자리니까 제일 낮은 자리니깐 그건 육적으로 보먼 부끄럽다 말이야. 없이 여긴다 말이야. 없다. 이 복음 안에서는 그것이 영광인데 말이야. 그것을 달게 받을 수 있는 것이 복음이에요.

 

예를 들면 제일 죄 많은 여자가 막달라 마리아 아닙니까? 그런 죄 많은 여자가 어떻게 예수 앞에 나와요? 아주 부끄러운 일이죠. 근데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제일 대담하잖아요? 예수 앞에 대담히 나가요. 쪼금도 뭐 거리낌이 없다는 말이야. 부끄럽거나 어색한 거 없이 아주 활발해요. 이 예수 마음하고 같다 말이야. 통했어. 너나 없으니까 뭐, 뭐 물어 볼 것도 없고 그냥 다 말없이 통한다. 또 여자 편에서는 좋은 생명을 다 쏟아요. 바치고 싶다 말이야. 예수님도 그걸 알고 받아준 거예요. 모두 은총으로 바꾸어 영적으로 죄하고 은총을 바꾼 거야.

이게 복음을 부끄럽게 한다 말은 인간적으로 보면 감정적으로 볼 때는 부끄러운 일이라 말입니다. 멸시받는 일이니깐. 복음은 먼저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까지 믿는 사람은 누구나 누구에게나 구원을 받는 일입니다. 복음,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갖다 주시는 것이 복음이라.

 

그 인자 17절은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진 길을 보여줘요. 길만 보여요. 복음은 하느님과 부자관계랄지 예수와 형제관계랄지 여기에 그 길만 보여주지. 복음은, 믿음은 아주 구체적으로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해준다. 그게 다릅니다.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놓아준 길을 보여주지만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복음은 길만 보여준 것이고 믿음은 직접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해주신다. 그러면 믿음은 어찌되겠냐? 복음은 길만 보여주고 믿음은 직접 하느님과 올바를 관계를 맺게 해주신다. 어째서 그래요? 믿음은?

아 믿음은 자유 없어요. 이 우주에서는 죽었다 말이야. 그리스도니까 하느님이 그리스도니까 뭐 뗄 수없는 관계 아닙니까? 당신 아들이고 하느님 자신이 그리스도거든 예수거든. 이게 하느님은 우리가 볼 때, 그리스도로 볼 때, 겉 사람 또 그리스도로 상대하지. 이 겉 사람하고 상대할 수가 없어요. 믿음은 자기 안에 그리스도니까 하느님은 그리스도하고 상대해야 되거든.

그러니까 올바른 관계를 맺어버리잖아요? 그리스도니까 믿음은 바로 그리스도라. 그리스도,

자 이 또 봐야해. 늘 해도 그렇게 기억을 안 해요?

 

갈라디아2장19~20 자 여 공동번역으로 봅니다요.

나는 이미 율법의 손에 죽어서 죽었다 말이야. 죽어서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났습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살게 되었습니다.

율법에서 지배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위해서 살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옛 사울은 죽었어. 사울, 사울은 죽었어요. 몸은 그 몸인데 달려 죽었습니다.

 

20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리스도로 산다. 내게 그리스도, 나는 없어 몸은 그 몸인데 이 정신은 그리스도요. 마음은 그리스도라 말입니다. 땅에 속한 마음은 죽었습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십니다. 왜냐하면 죽었으니까.

 

또 그리스도 설명해요. 다음에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몸 건강하니까 이유는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일이며 아들을 믿는,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가 머리라 말이야. 나는 죽고 내 머리가 없어. 인자 몸은 그 몸인데 머리도 그 머리지만은 속에 역사는 언자 그리스도라 말이야. 내 정신이 없고 그리스도여. 이 그리스도 마음을 가졌어요.

 

빌립보서 2장5절의 말씀

그리스도 정신이 있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인제 내 마음 치워버리고 예수님의 가졌던 마음을 갖는 것이 인자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인자 그 그리스도니까 모두가 한 몸으로 여길 것 아닙니까? 한 몸같이 여겨라 하지만은 아 내가 있는데 어떻게 여겨 주냐 말이야. 마음은 그래도 실제로 되지를 안 해. 오늘 함평에서 김 선생님이 아 참는 것 참아볼라고 해도 안 된다. 그 말이야. 아 안돼야지 예수님이 있지. 되어 버리면 어떻게 있겠냐? 안 되어야 된다. 참는 것은 그리스도 인내라 그리스도 인내, 그 말이 어디 있어요? 그리스도 인내라야 참는 것이지. 내 인내는 이건 한도가 있다 말이야. 목숨이 위태로우면 부인해버려. 사람 인내, 욕심이 사라질 때 인자 좀, 견딜 만할 때 참지. 아 죽게 생겼으면 아이고 도져버렸네. 그리스도 인내를 가져야지.

 

 

살후3장 데살로니가후서 3장5절에 있어요.

‘주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인도하셔서 하느님을 사랑하게 해 주시고 그리스도의 인내를 본받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인내를 가져야지. 내 인내로는 안 된다는 거야. 한도가 있어. 이거 피란 때 봤어요. 저 경기도서 여기 내려올 때, 사람만 꽉 길에 꽉 차버렸어. 빡빡해. 쪼금만 늦게 따라 오면 잃어버려요. 우리는 조금 떨어져도 알 수 있어요. 구루마 우에다 지게를 실어 놓았었어요. 지게, 아 보이거든, 이 멀리 떨어져도 찾아올 수 있는데 다른 사람 잃어버리면 찾다가 못 찾아. 우리는 소 구름마를 보아 다른 데로 가버리지 않아. 그렇지 않으면 못 찾아버려 잠깐만 떨어져도 못 찾아. 그때 그 지게가 참 좋았어.

그럴 때 어떤 여자가 업고 가던 애기를 내 던지고 가. 그 것을 보고 모두 사람들 욕을 해요. 저 여자가 자기 새끼까지 잊어버리고 가가지고 어디가 살 것인가? 말이다. 양심이 편하게 살 것이냐? 그에 미쳤지 사람이 할 짓인가? 또 욕한 그 사람도 그 처지에 만나면 또 그럴 수 있어요? 그리되면 환장해버렸거든. 제 정신이 아니야. 자기 생명만 생각할 때는 뭐 귀찮은 거 다 내버리잖아? 이게 그럴 수 있다.

좋을 때 자식이고 뭣 하고 하지. 자기가 없어. 미칠 때는 마음대로 해버린다. 인내, 그리스도 인내

 

또 현대어성경으로 묵시1장9절

가장 제자들 중에 사랑을 받는 제자요. 사도 요한 제자가 인내를 배웠어요. 배웠어.

‘이 편지를 쓰는 나 요한은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겪어온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특별히 다른 게 아닙니다. 형제입니다.

나 역시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예수께 인내를 배웠으며 그 분의 왕국에 들어갈 특권을 받았습니다. 인내만 배운 것이 아니라 배운 결과가 그리스도 왕국에 그리스도 왕국에 들어갈 특권, 누가 이 뺏을 수 없어요. 특권을 받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일을 증거 했다 해서 밧모라는 섬에 갇혀 있는 몸이 되었습니다.’

갇혀있어요. 이 오직 하느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어요. 이 아마 무인도일거여. 사람도 못사는 데여. 그러니 물도 없죠? 오직 믿음으로 하잖아요? 그 왜 이 밧모라 섬으로 유배 다녔냐? 전설에 의하면 그래요. 아무리 죽이려고 해도 죽일 방도가 없어요. 기름가마에다가 삶아 죽여 버리려고 큰 솥에다 기름을 넣고 불을 때는데 그 뜨거운 솥에 집어넣는데 춥다고 불 때라고 하잖아? 그런 기적이 어디 있어? 펄펄 끓은 물인데 얼음이가 얼어 얼어버려 춥다. 이러니 도저히 죽일 수가 없어. 그러니까 그 저 굶어 죽든지 알아서 해라. 그래서 밧모라는 섬으로 보냈는데. 그 그렇게 좋은 데야. 거기서 묵시록 계시를 받아요.

이 하느님의 역사는 아 좋잖아요? 결과는 자꾸 좋아. 아무 사람이 방해하려고 해도 그러면 그럴수록 더 좋게 된다. 자 오늘 치 그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