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연이 졸업 하는 날

mamuli0 2023. 8. 18. 14:30

큰 손녀가 크루즈에 오르는 날 둘째는 대학을 졸업했다. 유치원 초등학교에 다닐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성인들이 되어 독립생활들을 하고 있다. 손녀들이 태어나기전 증조부께서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50여일 동안 시아버지를 그리는 글을 남겼는데 여기에 올려 그시절을 함께 생각해 보려한다.

 

 

1992년 4월 22일 수요일 맑음

밤새 비가 왔습니다. 호우주의보 내릴 정도로 많은 비가 왔습니다. 부엌 아궁이에 물이 괴었었으니까요. 지난밤엔 아버님 뵈었습니다. 살아오시어 저희와 같이 사셨습니다. 전보다 진지를 조금 잡수시고 힘이 없으시고 쇠약해지셨습니다. 주혈이도 아버님 꿈 자주 꾼답니다. 무덤에서 나오시는 꿈이랍니다. 아범은 아직 한 번도 없습니다. 서울에서랑 아버님 판소리 녹음해 놓은 것 아들딸들이 듣는답니다. 저녁에 아버님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납니다. 뵙고 싶습니다. 서른 세 번째의 아버님을 기억한 날입니다. 논둑 한쪽에 풀매고 돗나물을 심었습니다. 포도밭이 없어지니까 돗 나물 밭이 이사를 합니다. 진도읍 장이었습니다. 아버님 계실 땐 가끔씩 아버님 해드린다고 시장보아다 저희들이 잘 먹었습니다. 이제는 그럴일이 없으니 장에 별로 가지 않습니다. 주염이가 왔으니 생낙지 두 마리 꼬막 한 그릇 생홍합 샀습니다. 시장 보던 중 돈을 제일 적게 썼습니다. 주염이 위해서 과자도 제 손으로 사다 주었습니다. 그런 일이 없었는데요. 저희들도 녹음을 해 놓아야겠습니다. 읍에 나간 길에 조선일보지국에 가서 두 달 치 신문대금 끊고 사정하면서 그만 보기로 했습니다. 어렵게 끊었습니다. 시원합니다. 지금 열시 이십칠분입니다. 아범은 자고 건넌방엔 주혈이와 주염이가 도란도란 이야기합니다. 형제 우애가 아름답습니다. 밤이 짧아지고 날이 길어졌습니다. 아침 젖 짜고 나면 환합니다. 선환 어머니 마늘밭 끄트머리 김매고 양귀비씨 뿌리고 어성초 밭 김맸습니다. 

 


1992년 4월 23일 목요일 맑음

서른 네 번째 저희들만 이집에 머무른 날입니다. 젖 나가는 날인데 주혈이가 예비군 훈련 받으러 조도에 간다기에 일곱 시 이십분쯤 출발해서 읍에 데려다주고 훈아와 그 어머니 해남병원에 데려다주고 기다려 데려오느라 아범은 늦었습니다. 주염이 오전에 자고 오후에 풀 베었습니다. 저는 정월에 담은 장을 다 풀어졌는데 이제야 갈랐습니다. 생콩 두되 불려 압력솥에 삶아 절구에 소금 넣어 찧어서 메주 건진 것과 고추씨 빻은 것과 섞어서 한 항아리 그득히 만들었습니다. 또 아버님 생각했습니다. 해년마다 잘 띄워 주시던 메주 이젠 저 혼자서 하게 되니 재미가 없습니다. 항상 우리 집 장이 맛있어서 무슨 음식이든지 다 맛있다고 하시던 말씀도 이제는 못 듣습니다. 케일 작년 삼월에 효소 만든 것 오늘 주염이와 꺼내 걸렀습니다. 한 항아리는 다 새어 없었습니다. 주혈이 오후에 와서 풀 베었습니다. 단이네 예취기로요. 조도가 경치가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소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팔아보려고 아버님 가신 뒤로 의논을 했었습니다. 소 장사 두 번째 들어왔습니다. 스무 마리에 오천 이백정도 밖에 안 봅니다. 저는 일은 못 도우지만 소 키우면서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이제 흑자 보는지가 이년이 되었는데 좀 안정이 되니까 이제 하기 싫어 못하면 어떻게 살아갑니까. 주헌이도 학교 다니고 농사에서 나오는 것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섭섭하기만 합니다. 아버님 가시자마자 소도 없애버리면 집안이 쉽게 무너지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들 편하라고 하지만 한쪽이 허물어지는 것 같고 또 이제 저희들도 늙어서 일할 수 없는 아버님 같았던 처지가 되어 버린 듯싶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작년까지 그렇게 힘들어 하시면서도 논농사를 기를 쓰고 하셨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어떤 처지에서든지 나이가 든 다음엔 자기의 일을 찾아서 거기에 매달려 열심히 해야 함의 이유를 알았습니다. 

 


1992년 4월 24일 금요일 맑음
 
서른다섯 번째 날입니다. 모든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매일 변하고 있습니다.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한 아버님 생각으로 메워진 시간이었습니다. 아버님! 뵙고 싶습니다. 오늘은 유독 그렇습니다. 주혈이와 주염이가 논을 갈았습니다. 꿈틀대는 미꾸라지 잡는 것이 재미있겠지요. 감자밭 김매며 북을 주면서 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예전 아버님이 계실 때 같으면 아이들이 잡아도 저도 재미있고 저도 잡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때와는 정반대의 마음이었습니다. 아버님이 미꾸라지 잡수시고 탈이 나셔서 가셨기 때문입니다. 가실 때가 되셔서 가신 것이 되겠지만 미꾸라지 쳐다보기도 싫고 저걸 잡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있고 지금 남은 식구는 좋아하는 사람 하나 없습니다. 금년 들어 두 번째 논을 갈고 두 번째 미꾸라지를 잡았습니다. 그 미꾸라지 어떻게 할까요. 아버님 가시기 얼마 전부터는 제가 아버님 부르면 어이하고 부드럽게 대답해주신 이유는 가실 것을 아셨기에 사랑을 주신 것입니까? 아버님 방문을 열어 보았습니다. 아랫목에 계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불이랑 옷이랑 그냥 놓아두었습니다. 아버님 쓰시던 밀대모자도 오실레위에 얹혀있고 아버님이 매 놓으신 수수 빗자루도 여러 개 얹혀있습니다. 새것보다 쓰시던 물건이 더 정겹습니다. 아버님. 소 팔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늙은 소는 만삭시켜 팔기로 했습니다. 안파는 대신 아침저녁 저녁 젖 짜는 것 제가 거들어야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 오후 늦게 풀 베어 나르고 아범은 아버님이 하시던 그 일자리에 하나씩 둘씩 들어갑니다. 볍씨 싹 틔우는 기계를 시험하느라 볍씨 한 되 정도 시험하고 있습니다. 아버님 방문 앞에서 합니다. 오후에 선환 어머니 감자밭 골라 김을 내고 북주고 야콘 세고랑 같이 심었습니다. 

 


1992년 4월 25일 토요일 맑음

설흔 여섯 번째 날입니다. 아버님이 아니 계신 것이 당연한 것처럼 언제 계셨나싶게 저희들의 생활이 익숙해졌습니다. 언제나 가끔씩 크게 하품하시던 소리가 가끔씩 들리는 듯합니다. 오늘은 무척 바빴습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 젖 짜고 바로 아침 밥 준비하고 젖 담고 아침 먹고 주염이 아범과 떠났습니다. 의경생활이 고달파서 고생 많이 합니다. 양 엄지발가락 발톱이 새까맣게 죽어 있었습니다. 소리 나라고 발을 구루며 걷기 때문이랍니다. 항상 서 있어야하고 잠 잘 때는 반듯하고 누어야하며 다리개고 앉아서 하는 것 세 가지 자세밖에는 다른 것이 없답니다. 차 딱지 떼어야하고 서울 복판에서 매연 마시고 불빛 때문에 시력이 약해지고 교회도 갈수가 없답니다. 무척 고생하나 봅니다. 밥도 배부르게 못 먹는답니다. 주염이 위해서 기도 늘 해야겠습니다. 어려운 고난을 잘 참고 견디게 말입니다. 위에 삼십 명 제 아래로 다섯 명이랍니다. 논 흙 파간 데를 메운다고 작은 도자와 작은 포크레인이 하루 종일 했어도 다 못했습니다. 산집 아저씨는 못자리한다고 이 바쁜 중에 로터리 쳐 달래서 쳐주고 논에 물도 대고 야콘 여섯고랑 심고 아홉고랑 멀칭하고 건너 밭 아래쪽에 양주서 가져온 퇴비 폈답니다. 주혈이 정신없이 바빴답니다. 저는 양쪽 물 양동이 나르고 젖 닦는다고 발목이 시고 무릎이 아픕니다. 이제 소를 다시 기른다고 했는데 감당을 못하게 합니다. 교통사고 난 후유증으로 왼쪽머리와 목이 늘 아픕니다. 목침으로 저녁마다 문질러도 저는 안 아픈 데가 없이 아픕니다. 눈은 안약을 넣었더니 지금은 거의 좋아졌습니다. 안경은 너무 거추장스러워 못쓰겠습니다. 눈에 눈물이 없어 눈알이 빡빡합니다. 작은 티만 들어도 빠지지 않습니다. 티 안 들어가게 아주 조심합니다. 제 눈 생각할 때마다 아버님 좋은 눈 생각합니다. 아버님! 이번에 눈이 아픔으로 얻어진 것은 눈이 다른 곳보다 더 중하다는 것 어떻게 염려를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신 자비를 베풀어주셔서 성하게 해주셨습니다. 적은 티가 제겐 큰 들보였고 남의 눈의 죄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 눈에 큰 들보가 가끔씩 있어야 남의 것이 안 보이겠습니다. 

 


1992년 5월 3일 주일 맑음

아버님 오늘 마흔 네 번째 날입니다. 지난 주일부터 그쳤습니다. 힘들고 잠자기 바빴습니다. 이제 기억력이 급 하강하여서 기억을 더듬어 써질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창동 어머니 오랜만에 왔습니다. 광주에서 아들 밥 해주고 창동이 군에 보내고 와서 허전해 어려워합니다. 저희는 식구가 다 있고 아버님 가셔도 그런데 외로운 과부의 가난한 생활이 어떠하겠습니까? 천중할머니 목포에서 손자 밥해주는데 오셨습니다. 학진 할머니 선환 어머니 훈호 어머니 가을 어머니 저 주혈이 주헌이 아범 그렇게 예배드렸습니다. 말씀은 출 13:20~21 야훼께서는 그들이 주야로 행군할 수 있도록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앞서가시며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도 불기둥으로 앞길을 비추어 주셨다. 출14:19~20 이스라엘을 앞서 인도하던 하나님의 천사가 뒤로 돌아가 호위하자 그들 앞에 서 있던 구름 기둥도 뒤로 돌아가 이집트의 진과 이스라엘의 진 사이에 섰다. 지난 28,29일 아범이 동광원 식구 몇 사람과 임실 신 목사님 전주 진달래교회 목사님 장로님 열아홉 분이 남원 수지 갈보리 홈실 선인래 이현필 선생님이 기도하시던 곳을 다녀왔습니다. 다녀와서 느낀 말씀이었습니다. 화전민이 버린 곳 숯가마같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찾아가셨지만 이 선생님에겐 하나님의 품안에 포근히 감싸 안긴 생활이셨다고 느꼈답니다. 예배 시작하려고 하는데 김진규 전도사님 오셔서 함께 예배드렸습니다. 아버님 생각이 번뜩 났습니다. 언젠가 오셔서 아버님과 하룻밤 지내실 때 게시록 말씀해주셨는데 그 때부터 아버님께서 계시록을 열심히 읽으셨다고 가신 뒤에야 보시던 성경책 계시록이 손자국 난 것으로 알아졌습니다. 참 좋으신 분이신데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저와 주고받으면서 서로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아버님을 높게 평가해 주셨습니다. 오후 세시 예배엔 계시록 말씀을 보셨습니다. 계22:20 이모든 계실 보증해 주시는 분이 “그렇다. 내가 곧 가겠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오소서 주예수여. 이 말씀을 토대로 자세히 풀어주셨습니다. 주헌이는 장로님댁에서 잘 돌봐주어서 칠십 킬로가 넘게 살이 찌고 호강하고 있습니다. 성적도 조금 올라갔답니다. 부모도 감당하기 어려운 보살핌을 주시는 그 가정과 특히 그 어머니에게 감사합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인데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주헌이에게 있음을 보게 됩니다. 소뿔이 상해서 한 참 바빴습니다. 볍씨가 그제저녁에 물에 담갔다 어제부터 기계로 돌렸는데 점심때까지 싹이 덜났는데 예배드리고 보니 싹이 너무 나서 꺼내 물을 뺐습니다. 전도사님도 가시고 계시록 테이프를 14개를 선물로 주고 가셨습니다. 아범은 아버님 사진 든 것을 사진첩마다 갖다 놓고 다시 보고 빼냅니다. 저는 지난  밤에 또 아버님을 뵈었습니다. 살아오시어 저희와 즐거이 생활했습니다. 참 즐거웠습니다. 저녁에 부산에서 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누님뻘 되고 이북에서 월남한 할아버지의 형제중 손자라는 사람 장용무였습니다. 마흔 아홉 살이랍니다. 나이가 들으니 외로워 형제들이 그리워서랍니다. 아버님. 저는 얼마나 외롭게 살아왔는지 그런 것 저런 것 다 잊고 독하게 살아왔습니다. 아들이 군에 가도 다른 어머니들 같지 않는 담담한 맘으로 살아왔습니다. 무엇이 그리 기쁘고 무엇이 그리 그립고가 없이 모든 것 억누르고, 억누르고 살다보니 다 죽어졌나봅니다. 새삼 외롭게 살아온 저를 돌아보며 육촌형제들이 있어 보고 싶어 한다니 저도 골육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1992년 5월 4일 월요일 맑음 

마흔 네 번째 날입니다. 아버님이 계셨으면 지팡이 짚고 나오셔서 지휘하실 날입니다. 아침 일찍 산집 아저씨 오셔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어제 건져놓은 볍씨를 지오니시49kg 찰벼15kg 고시히카리10kg를 모상자 520개 넣어 못자리로 만들었습니다. 여섯 두렁 만들었습니다. 김 전도사님 어제 안 가시고 아침 일찍 오셔서 산집아저씨 전도사님 주혈 (미나어머니 오전만 해주었습니다.) 창동 어머니 선환 어머니 (선환 아버지 오후에만 했습니다.) (아범은 간간히) 그렇게 오후에 주혈 예비군 안농 친구와 일곱 사람이 한 셈입니다. 오후 세시에 마쳤습니다. 선환어머니가 사람 맞추었다 어그러지고 해서 애를 썼답니다. 힘든 못자리를 해서 시원합니다. 소가 어제 뿔이 다친 것이 오늘은 아주 빠져서 어제도 오늘도 피를 많이 흘렸습니다. 숯가루 뿌리고 설파, 칼슘 주사했습니다. 야콘은 쉽게 심었더니 말라 비틀어졌습니다. 어렵더라도 물주고 심고 멀칭하고 바로 비닐 뚫고 북을 주었어야했는데 잘못했습니다. 

 

 


4월 25일은 적은 수가 예배드렸습니다. 월요일은 주혈이가 예비군 갔다 늦게 왔습니다. 가을아빠와 금골에서 저녁에 술을 먹었답니다. 어떤 사람이 불러 차를 몰고 나가다 굴뚝에 부딪쳐 뒤가 깨졌습니다. 그날 저녁 제 가슴은 심장이 뛰었습니다.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모른 척 해주어야 하는 때인가 봅니다. 주혈이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기준에 주혈이를 맞추려고 합니다. 술, 담배 안하여야하고 가요 듣지 말아야하고 일 잘하고 성경보고 그대로 살아주기를 원하는 제가 주혈이의 마음을 이해하려하지 않습니다. 화요일도 주혈이 예비군 훈련이었습니다. 일찍 왔습니다. 주혈이가 베어놓은 풀 아범과 둘이서 걷어 무더기로 모았습니다. 주혈이 와서 혼자 묶어서 날라다 소막 안에 쌓았습니다. 주혈이 힘도 세고 일도 많이 치룹니다. 새새로 거름내서 펴고 밭 갈고 비닐 씌우고 새벽 젖 짜고 큰일은 다 합니다. 27,28 주혈 예비군 훈련이었고 29,30일은 아범이 동광원 유적지 남원 다녀온다고 강아지 가지고 임실 가서 자고 다음날 밤에 왔습니다. 강아지가 더워서 한 마리는 가다 죽었답니다. 다섯 마리 중. 주혈이는 논 갈고 5월2일은 주혈이와 아범이 모판을 만들었습니다. 5월1일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볍씨 냉온탕해서 찬물에 담그었다 싹 틔우는 동안에 넣고 그 물을 부어놓았다가 5월2일 새벽에 전기를 넣었는데 5월3일 오후 3시에 건졌습니다. 싹이 적게 트기는 했지만 호박모종하고 호박모 누런 잎과 호박꽃을 따주었습니다. 구기자 밭은 할머니 얻어 맸습니다. 밭에 그라스는 다 베어 먹여 논에 것 낫으로 베어 먹이니 시간이 없습니다. 한창 바쁜 늘 바쁘지만 그렇게 지냈습니다. 5월2일에 주헌이 왔습니다. 어찌나 장로님댁에서 주헌이에게 사랑을 베풀어주는지 살이 너무 쪘습니다. 주헌이도 형이 어떻게 사느냐고 미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식구가 없으니 어떻게 사느냐는 것입니다. 30일 주염이가 부대 귀대했다고 전화 왔습니다. 자두 매실 작은 감나무 잎이 다 피었는데도 전지해 주었습니다. 

 


1992년 5월 5일 화요일 흐리다 비

어제 못자리 한 탓에 긴장이 풀렸습니다. 아침 젖 나가는데 전도사님 그제저녁 오신다더니 아니 오셔서 읍내 안식일 교회 전화했더니 금골교회에 갔다고 거기에 전화하니 성경공부중이라고 내일 아침 일찍 여섯시 반 까지 집으로 오라 했는데 아니 와서 금골에 아침에 전화했더니 신동을 나갔다고 해서 젖 가지고 일찍 신동으로 가서 안식교인 만나니 광주 차 태워드렸다고 했습니다. 아범이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미안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전화로라도 연락을 주었어야하는데 저도 그런 일에 조심해야겠습니다. 단이네 집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도라지와 미나리 가지고 단이네 집으로 바로 가서 아침 먹고 장에 들려 알타리 무 한 단 반을 사고 물오징어와 이스트를 사와서 김치 담그는데 비가 옵니다. 부엌일 밀렸던 것 씻고 정리하고 나니 하루해가 갔습니다. 주혈과 아범은 논에서 풀 베어 날랐습니다. 많은 비가 왔습니다. 처음으로 저녁 일찍 먹고 자리에 누우니 일곱시 반이었습니다. 마흔 다섯 번째 날입니다. 

 


1992년 5월 6일 수요일 비

어제 저녁은 쌀을 내면서 아버님 몫까지 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아버님 밥쌀까지 꺼내고 나니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쓰시던 오강도 뚜껑 열린 채 놓아두셨던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으니 참 좋습니다. 아버님 생각은 음식 만들어 먹을 때가 제일 생각 많습니다. 좋아하시던 것 잘 잡수시던 것.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옵니다. 산집에서 며칠 전에 병아리 아홉 마리 깠는데 한 마리 죽고 여덟 마리입니다. 오늘 고양이가 새끼 한 마리 낳았습니다. 부엌에서 병아리를 까는데 잘 못 까 죽는 것이 많이 생깁니다. 지자나무가지 잘라 손질했습니다. 주광이에게서 어버이 날이라고 둘째 아들 주광이가 부모님께 감사드리며 보냅니다. ‘부모님 보십시오. 어버이날을 맞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주광이가 바라며 감사드립니다. 1992년 4월 24일’하고 조화 카네이션 두 개와 수건을 보내왔습니다. 극히 적은 것 같지만 주광이가 보내오니 큰 것을 받는 것 같이 즐겁습니다. 웃고 찍은 사진도 있었습니다. 아버님이 계셨으면 좋아 웃으셨을 텐데 말입니다. 마음으론 항상 아버님이 계시는 것만 같습니다. ‘주광아 오늘 네가 보내준 꽃과 카드 수건 잘 받았다. 네 사진이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극히 적은 것이겠지만 아들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어서 가슴 가득히 큰 기쁨을 받았다. 주광아 너를 생각하니 할아버지 생각이 또 나는구나. 네가 할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렸는데 할아버지 마음엔 주광이를 제일 사랑했는데. 5월2일 토요일 주헌이 시험 끝나고 왔었다. 너무 잘해주어 살이 쪘더구나. 주혈이형이 어떻게 심심해서 지내는지 미칠 것 같다고 형을 이해해주더구나. 그런데 이 엄마는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는다. 술 담배도 안 해야 하고 가요도 듣지 말아야 하고 자기의 삶의 목표가 분명하고 거기에 대해 열심히 성실히 살아가며 무엇보다 자기의 생의 길을 하나님께 의뢰하고 물어보고 응답받으며 깊은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신앙인이 되어주는 것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이다. 항상 너희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믿음이다. 믿음은 어렸을 때부터 젊어서 하는 것이니 나이 들면 힘들고 어려운 것이다. 아무도 너의 빈 곳을 채울 사람은 세상엔 없다. 형제도 사랑도 부모도 자식도 어떤 사상도 안 된다. 다만 하나님에게만 가까이 갈 때 만이다. 주광아 엄마가 바라는 것은 성경보고 기도하며 말씀을 지키고 사는 것이다. 주님도 사랑하여라. 주염이 휴가 왔다 갔다. 며칠간 집에서 형과 일 많이 하고 갔다. 힘들고 어려운가보더라. 들어가서 전화했다. 어렵지만 참고 견딜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다오. 소는 팔려고 내 놨더니 스무 마리에 오천 이백정도 밖에 보지 않아 아직 주헌이 공부하고 할아버지도 안 계셔서 허전한데 소마저 없애면 할아버지 계시다면 찬성치 않으실 것 같아 나는 좀 더 기다려 보자 했다. 형이 집에 있는 한은 하고 싶다. 형이 나갈 땐 처분해야겠지. 주광아 여기까지 쓰고 네 사진을 보고 싶어 보면서 너에게 입을 맞추어보니 담배 냄새가 진하게 난다. 웬일일지? 사진을 구석구석 전체를 냄새 맡고 있다. 네 입 있는 데서도 많이 났다. 한 일분이상 맡았다. 지금은 안 난다. 이상하다. 낮에 온 것인데 방바닥에 놓았다. 아버지 보고 앨범에 놓았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지금 꺼내온 것인데 그렇게 담배 내가 진하게 날까. 한 일분쯤 맡고 나니 냄새가 없어졌어. 내가 다 마셔서 없어져서 그럴까? 아무래도 이상하다. 이 글을 쓰면서 네 사진을 들고 몇 번씩 맡아보지만 지금은 안 난다. 주광아 여기에 성경구절도 적어본다.’ “아들이 옳게 살면 아비는 참으로 즐겁다. 제가 낳은 아들이 지혜로운데 어찌 기쁘지 않으랴. 그러니 네 아비를 기쁘게 해다오. 너를 낳은 어미를 즐겁게 해다오. 내 아들아 내 말을 명심하고 내가 일러준 길을 기꺼이 따라라.” 잠23장 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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