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밤콩 파종 : 순수한 사랑

mamuli0 2023. 6. 29. 10:17

 집뒤 꽃밭 공터에 삼년전 부터 대부도에서 가져온 넝쿨 강낭콩응 심고 있다. 밤콩은 하지 지나고 심어야 열매가 제대로 달린다.  그보다 일찍 심으면 넝쿨만 무성하지 열매가 그리 달리지 않는다. 섬나리가 활짝 피었다. 기장이 고개를 숙이고 울금이 활착 되었다. 장마전선이 남해상에 있고 전국에 비피해가 있다고 한다.

 

 

순수한 사랑

1996. 8. 16

디모데전서1장3절

3절서부터 읽습니다. 3절서. 형제들아. 우리는 항상 마땅하게 너희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감사하여야 할지니. 마땅하게. 이는 너의 신앙이 날로 더욱 성장하며 또한 너희 각 사람의 형제간 사랑이 더욱더 풍성하여 지니라. 신앙은 날로 자라나는 게 신앙이야. 자라나는. 한번 딱 믿었다 그러면 그대로 굳어있는 것이 아니라 날로, 날로 새롭게 자라는 거야. 날로 더욱 성장하며 또는 너희 각 사람의 형제간 사랑이 더욱더 풍성하여 지니라. 이리하여 우리는 너희들에게 대하여 너희들의 그 받은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 시련되는 이거 잘못 읽었네요. 그것도 맞기는 맞는데 용서하십쇼. 데살로니가후서 1장을 안 봤는데. 디모데전서1장이요. 1장3절. 나 마게도니아에 갔을 때 그대에게 청한 바와 같이 그대는 에베소에 머물러있어 몇몇 사람들에게 이 이설. 예수님의 이단지설. 이단 이단이란 말이여. 교리에 어긋나는 말. 몇몇 사람들에게 이설. 다르단 말이야. 예수님말씀하고 다른 거야. 이설을 가르치지 않도록 명령 했단 말이여. 명령한 것이며. 저들로 하여금 허망한 이야기. 근본도 없고 뿌리도 없고. 만날 들어도 그것이고. 허망하다. 허망한 이야기와 한없는 족보이야기. 역사. 개인 가정역사. 족보이야기 끝이 없어. 이것은. 족보에 관심치 말게 할지어다. 이런 것은 다 신앙에서 사랑을 촉진시키는 게 아니란 말이여.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에요. 조금 있으려고 쌈 나는 거죠? 고사시켜버려. 조금 나오려고 하는 것 마저 죽여 버리는 거예요. 촉진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무지한 쟁투. 투쟁 쟁투의 기회를 더욱 더 더욱더 많게 하느니라. 분쟁 논쟁하다가 끝내버려요. 아무 해결이 없어요.

전교는 전도 전도사님들 목사님들 전교의 목적이 뭐냐? 목적은 진리를 추구하는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깨끗한 양심 깨끗한 마음과 착한 양심과 거짓 없는 신앙에서 나오는 사랑이라. 그 믿음이 어디서 생기냐? 깨끗한 마음에서. 다음에는 착한 양심에서. 거기서 거짓 없는 신앙. 그 신앙은 그 신앙에서 나오는 사랑. 그런 신앙이라면 필연적으로 사랑이 나타날 것이 아니냐 말입니다. 예를 들면 사과나무 하나 예를 들어봅시다. 그 뿌리가 신앙이랍니다. 뿌리가 신앙이요. 소망 희망은 보이는 저 나무에요. 가지, 잎. 열매는 인자 본 사과란 말이야. 복숭아 어제 보았습니다. 뿌리가 없는 나무가 클 수가 없고 또 갖다 심어놔도 큰 것이 있다하더라도 죽어버린단 말이야. 그래서 열매를 맺을 수 없어요. 금년에 저기 영주에다가 뭐냐? 뭐지? 호두나무 호두나무를 심었는데 못자리에서부터 수해가 나가지고 묘목이 뿌리가 병이 들었단 말이야. 다른 사람들은 상하지 않은 거 한 7년생 그런 거는 다 살잖아요? 2년생이 제일 적절한데. 그걸 갖다 쓰면 아 이거 좋겠다. 키우는데 시간 안 걸리고 열매 쉽게 따먹겠다. 좋아 했단 말이여. 그런데 다 죽을 거 같았습니다. 근데 인자 좀 비가 오고 좀 그러니까 싹이 나데요. 다 난 게 아니야, 아닌데. 어떤 놈은 저 위에서 피고 밑에는 없고. 어떤 놈은 밑에만 조금 피고 중간에 죽어버리고. 근데 이제 저 위에서 씩씩하지 않고 밑에서 생긴 놈은 났다가 조금 가무니까 말라버려요. 처음부터 건전했어야 했는데 뭣이 좀 잘못되니까 또 그러고. 그게 잘 됐다하더라도 그럽디다. 잘 됐다 하더라도 그 마을사람들이 그래요. 다 이거 헛일이라고. 전문으로 한 사람도 있는데 다른 데 좋은 일만 하지. 사람 차지는 안 온다고. 산골이 그렇지마는. 뿌리가 건전해야 건전하면은 신앙이 뿌리란 말이여. 신앙이 건전해야 거기 열매를 바랄 수 있단 말이야. 그래서 여기 인자 요 성경을 보는 것은 고 말이 있어서 그래요. 전도의 목적은 깨끗한 마음과 착한 양심과 거짓 없는 신앙이 신앙에서 나오는 사랑이다. 요걸 사랑과 믿음과 순서만 바꿔주면 똑같은데. 갈라디아5장5절6절이요. 똑 같아요 똑같은데.

 

갈라디아5장5절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당신과의. 아니다. 다시 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6절.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할례를 받았다든지 받지 않았다든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만이 중요합니다. 요 끝만 순서만 바꿨지. 그리스도를 믿음에서 사랑이 나타난다. 이거는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만이 중요합니다. 의식과 그런건 아무런 목적은 여기니까. 사랑이니까. 다른 것이 방법이야. 다 달라도 괜찮단 말이야. 사랑만 있으면. 그렇고. 인자 그다음에 6절입니다. 디모데전서1장6절 봅니다.

 

 

 

디모데전서1장6절

그러나. 믿음은 이런 것인데.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것에서 떠났어요. 이 순수한 신앙에서 떠나. 순수한 믿음에서 떠났어요. 떠나, 전연. 무근지설. 뿌리 없는 말이에요. 믿음이 없는 말이에요. 사랑도 없는 말이죠. 무근지설에 기울어져 있느니라. 7절. 저들은 스스로 율법의 학자로 자임 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주장하는 것 그것조차도 깨닫지 못한다. 저도 지금 그런지 몰라. 이거야. 깨닫지도 못하고 말이 이시간이 허락되니까 하는 거예요. 기회 적 이예요 기회 적. 인격적은 아니야. 나오니까 하는 거야. 지금까지 생각해보고 많이 보고 나오는 대로 하는 겁니다. 비판은 인자 여러분이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거여. 무근지설. 그럼 인자 8절서부터 11절까지는 뭐이냐? 법이란 어째서 있게 됐냐는 거야. 그거여. 법이란 무엇이 필요 하는가? 양심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법이 필요 없어요. 그 양심이 법이니까. 참 말씀이 있으니까. 우리 사람이 말씀을 요 책에 있는 것만 말씀이 아니고 우리 마음속에 다 있어요. 말씀은. 양심에 새겨져 있다고. 성경이 여러 가지 될 수 있어요. 내 죄로 다 가려버리는 것뿐이지. 이 마음이 하느님 말씀인데. 근데 못 읽어요. 말씀같이 많은 것이 없죠. 만물이 다 말씀으로 되었으니까. 만물이 자연 속에 하느님 신성이 다 있다고 하잖아? 성경대로. 누구든지 마음만 열리면 다 볼 수 있다는 거여. 요 책에만 이거 말씀이래요. 예수님이 행하신 그 말씀 이적을 다 기록한다면 이 지구에서 못다 쓴다고. 그렇게 많은 거예요. 그러면 그거를 어떻게 분별 하느냐? 이거야. 근데 항상 하나야 하나. 말씀은 수없이 많은데 하나야. 많은 건 뭐이냐? 공기는 안보여도 제일 많은 건 공기죠. 그다음에는 물이고. 이 물은 보이지마는 공기는 안보여. 근데 있긴 있다고 우리가 시인하지 않습니까? 이게 이제 증거가 코로 숨을 쉬거든. 못 쉬면 죽는 거란 말이야.

 

인자 요기 여러 가지 종목이 있어요. 그거 다 볼 필요가 없고. 법은 어째서 지정 됐냐? 그러면 법을 어긴 자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야. 간단하게 말하면. 법대로 살면 법이 필요 없는데 법을 어긴다 이거야. 양심대로 살면 법이 필요 없는데 양심대로 못 산단 말이여. 그래서 법을 낸 거예요. 미개한 나라일수록 법이 더 엄해야 되잖아요? 다스리려면. 그러면 인자 법이 없던지. 없어도 되거든요. 있을 바에는 아주 엄하단 말이에요. 긍게 문명이라면 법이 자꾸 좀 너그러워져야 되죠? 근데 그래서는 안 되어요. 사람은. 이거 뭐 조문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런 게 8절에 보면 법이란 사람이 만일 그를 정당하게만 쓰면 좋은 것이란 말이야. 그 법 자체가 나쁜 게 아니란 말이야. 그 쓰는 사람의 정신에 따라서 나쁘게 쓰는 거여.

모든 물질이 다 좋은 것이지 나쁜 게 무엇이 있어요? 근데 이 쓰는 사람이 잘못 쓰면 나쁘다고 하는 거지. 돈이 일 만 악의 뿌리라. 돈을 탐하는 건 만이 일 만 악의 뿌리지. 돈 자체가 뿌리란 말 아니지요. 그거 마음이란 말이야. 양심이란 ‘어질 양(良)’자는 ‘밥 식(食)’ 밥. 방금 ‘밥 식(食)’은 사람(人)은 어질 양이고 밥(食)인데 말이야. 어진(良) 사람(人)이 먹는 밥(食)인데. 그게 어질 인(人)이 먹는단 말이야. 그럼 ‘어질 양(良)’자는 어떠냐. 한정할 한(限) 자야 한자는 ‘어질 양(良)’에서 한 점 빼버리면 한정할 간(艮)이야. ‘한정할 간(艮)’자입니다. 좌방에다가 쓰면 한도(限度)란 말이여. 도를 넘거나 분수를 넘으면 안 된단 말이야. 자기 한도(限度)에 맞도록. 밥도 그래. 밥도. 너무 지나치게 먹으면 병이 나죠? 또 너무 적게 먹으면 자기 정도에 그러면 또 약해지죠? 그러니 자기 한도(限度)에 맞게 먹는 게 잘 먹는 건데 그렇게 못 먹는 거죠. 정신적으로 따지면 밥을 내가 벌어서 먹는 게 아니거든요. 내가 만든 게 아니거든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서 내게 들어온 거 아니에요? 근데 그 은혜 깨닫지 못하고 먹잖아? 나는 밥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그러면 큰일 나요. 겸손하게 마음먹어야 돼. 자격이 없는데 모든 사람의 피와 땀을 통해서 지금 먹게 됩니다. 깨달으면 눈물 흘릴 정도 아니겠어요? 그렇게 보는 한자야. 또 ‘기를 양(養)’자. ‘기를 양(養)’자는 어떠냐? ‘양 양(羊)’ 밑에 ‘밥 식(食)’이거든. 우리 영혼이 날로 기르고 자라야 하는데 양은 예수거든 하느님의 어린 양. 희생 제물이란 말이야. 다 요리 요 한문 글자보면 어쩌면 그리 성경하고 똑같은지 몰라. 성경을 해석해줘요. 한문글자가. 또 성경이라야 그 한문글자 그 낱 풀이를 하는 거 통하는 데가 있어요. 성경이 아니면 그거 몰라요. 그런 글자가 있다고. '먼저 선(先)‘자입니다. 먼저 선. 선생. 근데 여기서 인자 그럴 시간이 없으니까는. 무근지설 그랑게 이 8절의 어떤 데는 정당하겠습니다. 그리 되었구요. 현대어 성경에는 뜻대로. 그럼 인제 그 뜻은 내 뜻이 아니야. 감정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에요. 하느님 뜻대로만 쓰면 좋다. 내 사사로 쓴 게 잘못되었다.

 

제가 그저께 밤인가 첫날밤에 아 어젯밤인가 모르겠어. 밤에 간단하게 말씀 드렸습니다. 인자 처음 들은 분들은 보세요. 복음은 뭐이냐? 신앙의 기초가 되어있다. 이거 성경에 있는 말입니다. 제가 짓는 말이 아니고. 다시 한 번 보죠. 고린도전서15장1절이에요. 많이도 아니고. 공동번역에만 그대로 되어있고 다른 데는 말이 똑똑히 안 되어 있어요.

 

 

15장1절.

형제여러분 전에 내가 전해준 복음을 여러분의 믿는 마음속에 되새겨 주려고 합니다. 한 번 전했으면 고만 마치는 것이 아니에요. 늘 되풀이 새기도록 데리고 자라도록 한번 증거 했더라도 또. 날로, 날로 새로워지도록 말씀을 들어야 신앙이 생긴다고 했죠? 근데 그리스도를 증거는 말씀이라 되고 증거인 사람은 그리스도의 명령으로 들어요. 명령으로. 마음속에 되새겨주려고 합니다. 이 복음은 여러분이 이미 받아들였다. 받아들였고 또 여러분의 마음의 믿음의 기초가 되어 있습니다. 이거여. 믿음이 뿌리란 말이야. 기초. 집을 지으면 기초란 말이야. 모래위에다 집을 지으면 홍수가 나면 떠나가 버린다고. 반석위에다 집을 지으면 끄떡없다. 베드로가 반석이라 그랬죠. 복음은 신앙의 기초. 신앙은 만사의 기초. 그 말은 조금 진짜 간단히 말하니까 그렇지 없는 말이 아니에요.

 

로마서14장 끝 절이에요.

이 공동번역도 시방 두 번째 되는데 먼저 공동번역이 그리됐어. 근데 공동번역 끝만 읽을 테니까요. 믿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행위는 행위 행동 행위는 모두가 다 죄가 됩니다. 믿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행위는 먼저 공동번역은 신앙을 기초로 하지 않는 행위는 모두가 다 죄다. 신앙은 뭐냐? 복음을 기초로 하는 신앙이어야 해. 그럼 이거는 이 시간에는 다 해석을 못하고. 복음은 뭐냐? 이게 지금 우리 교역하신 분들을 특별히 참고할 필요가 있단 말입니다. 아마 절대로 필요로 하지 않을 런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모르고야 어떻게 교역을 하느냐? 나 지금 참 수고한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모르고 교역하는 것은 복음과 율법을 분간을 못합니다. 혼돈해요 혼돈. 율법도 안 되는 것을 전하면서도 복음인줄 안다고요. 속아요. 스스로 속는 거예요. 율법도 제대로 안됩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고 동시에 은혜를 받게 하는 방편이 됩니다. 죄를 깨달을 수 있게. 인자 제가 말로만 하면 안 믿어지니까 성경을 찾지 않습니까? 로마서5장이요. 로마서5장20절이요. 다른 성경을 보면요 율법은 죄를 더 많게 하는 겁니다. 더 많이.

 

로마서5장20절

10계명을 받은 결과 모든 사람이 스스로 하느님의 율법을 지켜낼 수가 없다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0계명을 지키라고 준거 아니에요. 지키느냐는 걸 시험해 보라는 거여. 못 지켰다 손들라는 거야. 그라고 낸 거지 지키라는 줄 알고 야 지켜야 한다고 어떻게 지키느냔 말이야. 계명은 한마디로 하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 한 건데 어떻게 지켜요? 그걸 알아도 못 지키잖아요?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도 못하는 것도 많고 몰라서 못한 것도 많고 그래요. 그냥 그게 알고도 못해요. 그거 뭔 소용 있어요? 알고도 못하는 거 믿으면 한다는 거야. 믿으면 내가 아니고 그 사람 속에 그리스도가 하신단 말이야.

 

신앙만능이라는 말은 그 말이지. 그리스도가 전능하신 하느님. 그리스도가 하신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러면 인자 거기 지킬 수가 없다는 걸 깨달음과 동시에 알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지켜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죄가 깊다는 것을 알게 될수록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넘치는 은혜를 더욱더 깊이 깨닫습니다. 그러니 손해가 아니라는 거죠. 엄청난 이익이죠. 율법대로. 죄를 발견했다. 죄인을 발견하는 사람에게는 큰 축복이지 않는가? 하느님의 은총이 더욱 넘치는 것을 깊이깊이 깨닫는다. 그러게 율법은 죄를 자기만 경계하고 죄를 깨달으라는 것인데 다른 사람에 견주고 있으니까 잘못해버린다는 거야. 비판하고 정죄하고. 율법은 자기를 위해서만 자기, 자기 죄를 드러내가지고 딱 갇히란 거여. 갈라디아 3장에 가면 갇히란 거여. 죄가 깨닫기만 하면 큰 도움을 주잖아요? 율법 자체가 나쁜 게 아녀.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달으라. 그러면 넘치는 은혜가 얼마나 넘친다는 것은 깊이 깨닫는다는 거야, 깊이. 그렇게 깨달음이 오면 무엇이 문제가 있겠어요? 그대로 천국이지. 기뻐 뛰죠. 그런 영혼이 하느님은 아버지가 되시는데 뭔 문제가 있겠어요?

 

그럼 인자 로마서3장 9절서부터20절까지가 인데 그거 다 볼 수가 없으니까 처음에 조금 보죠.

9절.

그러면 우리 유대인들만이 훌륭한 사람들이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지적한 대로 유대인이나 일반인이나 모두가 다 죄인이다. 죄인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는 거예요. 유대인이거나 하느님의 선민이거나 야만인이거나 다 죄인이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들어야합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뻔뻔스럽게도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잘도 말하는구나. 하나같이 썩어빠져 흉측한 짓만 저지르고 혹시나 깨달음 있는 이 있을까 혹시나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 있을까 하여 찾아봅시다. 찾아보았으나 찾아보시나 모두 다 딴 길로 가요. 딴 길로. 그러게 법을 내야한단 말이여. 법에 끌려서 억지로 가요. 이유를 원인을 모르고. 다 딴 길로 걸어간다. 걸어가나 걸어가 하느님의 하늘같이 썩어버렸구나. 착한 일 하는 이 찾을 수 없어요. 한 사람도. 선한 사람 찾아. 선한 분은 하느님 한분뿐인데. 하느님의 것이지. 선 자체가 선하지. 사랑자체가 사랑한 거지. 죄인이 어떻게 사랑합니까? 그러면 인자 믿으면 하지, 믿으면. 옛사람이 없고 자기 안에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은 한단 말이야. 그리스도가 머리가 된 사람은 해요. 자기가 머리가 되어갖고는 못한다고. 내 생각 내 힘으로는 못한다고. 한번 십자가를 통한다는 말은 옛사람은 완전히 예수와 같이 장사지낸단 말이여.

 

 

그럼 인자 저 19절 봐요.

그래서 하느님의 심판이 유대인들에게 무겁게 내려진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먼저 믿는 사람들에게 유대인은 딴 게 아니라 먼저 믿었다 하는 사람들.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지킬 책임이 있어요. 책임이 있지만은 선민이니까 책임이행을 못해요.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모든 악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들 가운데 누구하나 변명할 여지가 없어요. 하느님 앞에. 단지 입을 봉할 뿐이여. 예, 죄인입니다. 변명해볼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온 세상이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 서서 입을 봉할 것뿐입니다. 말한다면 죄인입니다. 그 말밖에 없어요. 인자 하겠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 말만 하려면 해도 그러지 않으면 입 봉해버려야 된다는 거여. 저도 지금 내 자신을 보면 입을 봉해버려야 할 건데 지금 시간이 시간에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봉해야 돼. 입을 봉한 채 육의 선고 아 나만이 죄인이구나. 나만이 죄인이구나. 그래, 선고받을 처지입니다. 한사람도 옳다 인정받을 사람 없다는 거야.

 

20절.

이제 여러분도 아시겠습니까? 율법이 명령하는 것을 지킴으로써 하느님 보시기에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백 프로 죄인이지. 뭐 얼마만큼은 의롭다 그것 없어요. 백 프로 죄인. 한 사람도 없단 말이야. 바울사도가 거짓말 했어요? 그러면? 내가 있는데 어쩔 거야. 다 나 있죠? 나. 내가 옳으니까 다른 사람 비판하거든요. 자기가 죄인이라면 어떻게 누가 뭐 이래라 저래라 말이 나오고 되겠습니까? 하느님의 율법을 알면 알수록 우리 자신의 자신이 그것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결국은 그거에요. 그거 알면 알수록 아 나는 이렇게 어리석고 못 지켰다. 그걸 아는 거예요 그것 율법의 본 역할이 란 말이에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만 죄 있는 것으로만 생각해버리니까. 저 요새는 거 고속도로에 노정기. 여기서 어디까지가 몇 키로 그런 거. 사람이 노정기를 쓰면 붙여 있는 대로 얼마나 왔으니까 그러고 가지요, 그래. 그걸 보고 나는 움직이질 않 해. 또 그 길도 정확하게 놓으면 되지요. 알면 알수록 우리 자신이 그것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요. 하느님의 율법은 우리 스스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율법의 법대로 하면 나는 죄인이다. 율법을 알았다면 아 나만 죄인이다. 죄인이면 인자 그 벌을 받아야 할 거 아닙니까? 이 뭐 갇힌 거 아니야? 내가 스스로 갇히는 거 아냐? 자 그럼 인자 저기 갈라디아3장.

 

여기서 처음에 몇 절 읽겠습니다. 율법이 왜 아니 되느냐. 그런 제목이 있어요. 율법이 왜 아니 되냐. 그 혼돈하단 말이여. 율법도 제대로 아닌데 그건 또 복음이냐 하고 생각한단 말이여. 갈라디아 사람들이여 왜 그렇게 어리석습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여러분의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있다. 나타나있는데 누가 여러분을 미혹시켰단 말입니까? 스스로에게. 한 가지만 물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을 지켜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리 물었어. 우리가 대답을 어떻게 했겠습니까? 율법을 지켜서 받았습니다. 여기 손들어보세요. 받았다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이 복음을 알아야 돼. 복음은 뭣인가 들어야한다. 복음을 듣고 들어지면 믿음이라는 거지. 율법 들어가지고는 만날 되풀이고. 아 이거 안 되겠다. 되는대로 살자 그러고 있네. 되는대로 살자. 뭣 특별히 뭐 해봤자 소용없다. 그게 인자 여러분 집회도 참석 안 해버려도 되겠죠? 율법을 지켜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은 사람들입니까? 성령의 힘으로 성령의 힘으로 이게 은총이에요 성령의 힘으로 시작한 일을 지금 와서 인간의 힘. 율법이야. 인간의 힘. 인간의 힘으로 맞추려 드는 것입니까?

 

여러분이 겪은 그 모든 경험이 다 헛일이었단 말입니까? 설마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가운데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이 여러분이 율법을 지켰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입니까? 성서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그 참 신앙이에요. 독생자를 바쳐라. 예. 조금도 이의 없이. 그냥 믿고. 전능을 믿고. 하늘의 별수와 같이 많다는 말을 믿고. 하늘보다 더 많을 건데 뭐. 또 죽은 자도 능히 살릴 수 있다. 믿고. 또 무엇보다도 하느님은 나만을 사랑한다. 사랑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아무리 죄인도 용서하신다. 뉘우치기만 하면 용서하신다.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두 전 대통령도 딱 회개만 해버리면 천국일 텐데. 하늘 앞에서 나는 더 큰 죄인이요. 그러니 인자 회개하면 은총이야. 과거의 큰 죄 그거 상관없다 이거야. 오히려 큰 죄가 깨닫기만 하면 더 좋다는 거야. 더 큰 은혜 받으니까. 아 은혜를 많이 받기 위해서 죄를 많이 지어야 하겠다. 그런 결론은 아니고. 죄를 모른 것뿐이지, 깨달음은 자기가 제일 죄인이란 말이야. 모르는 것뿐이야. 왜 모르는가? 가렸어요. 무엇이? 내가. 나란 것이 가렸어. ‘그늘 음(陰)’자 아니여? ‘그늘 음(陰)’자. ‘그늘 음(陰)’자가 본 자는 ‘이제 금(今)’자야 ‘이제 금(今)’ 이제. 근데 인자 넉자를 합해가지고 석자를. 좌방(阝)변 좌방이에요 그것이 ‘언덕 부(阝)’자인데 위로 하나 삐친 것이 ‘삐침 별(丿)’자입니다. ‘삐침 별(丿)’ 그 하나 삐친 것이 글자에요. 그것은 뭐냐 하면 불순종입니다 불순종. 아담이 삐쳤어요. 그러고 명령 어겨 버렸어. 말라하니까 에잇 해버렸단 말이여. 삐친 거여. 그랬음으로써 인류에 손해가 왔냐하면 그렇지 안 해. 아담이 삐쳤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오는 것이에요. 아담의 범죄는 그리스도를 불러온 것이에요. 이게 좋잖아요? 아담이 큰 희생을 한 것이여. 육체의 아버지 아니 여? 조상 아닙니까? 그래서 ‘삐침 별(丿)’밑에다가 이거 인자 ‘서 이(以)’자입니다 ‘서 이(以)’. ~~~비슷하게 쓴 거예요. ‘서 이(以)’자에요. 밑에는 열 십(十). 삐쳤음으로서 십자가 왔다. 아담이 불순종함으로써 그리스도가 십자가 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다 구원이라는 거야. 인자 어떤 죄가 많이 있더라도 좋다 그거에요. 많이 범하고 많이 죄를 지었으며는 회개하면 좋다 그거에요. 그것이 복음입니다. 죄인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은. 의인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고. 의롭다는 사람 죄 없다는 사람에게는 복음은 상관없는 율법이제. 그게 이제 율법이제. 이게 기쁜 소식이에요. 복음은 죄인들에게, 죄인에게.

여기 3장 저 끄트머리 가서 보죠. 12절 봅니다.

 

 

12절.

율법은 믿음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닙니다. 그걸 분별해야 된다 말입니다. 복음은 신앙이 기초. 신앙은 만사의 기초. 율법에는 신앙이 기초가 아니에요. 그래놓으니까 회개가 없다 이거야. 십자가는 죽음이니까 죽음은 끝난 것이 단 말이여. 전 대통령 사형 끝난 거여. 무기가 더 징역이야. 아이고. 사람 거기서 죽어 버릴 거 아닙니까? 무기면. 사형 거기서 딱 죽어버리면 좋은데. 사형이 더 좋다. 무기가 두 사람이 더만. 긍게 광주사태가 16년 만에 끝났단 말이여. 그 광주에 희생당한 영혼들이 그 소원이 이루어졌죠. 그거이 영적인 소원이 아니에요. 또 16년 만에 끝난 게 16 사람이 끝나요. 그 우리에게 큰 교훈을 남겨 준거에요 세계적인 교훈입니다. 세계적인 위정자들이 깜짝 놀라죠. 아따 한국이 그런 데구나. 그래서 한국이 드러나요. 특별한 거 있다는 거야. 잘못 아는 사람들은 한국이 그렇게 미개하구나. 그렇게도 판단하지만은 한국은 인자 살아나겠다. 희망을 가져, 희망을. 인도의 타고르 그 시인이 예언한 대로 된 것이죠. 영적으로입니다. 인자 육으로는.

그럼 인자

13절.

나무에 달린 자는 누구의 저주를 받을 자다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저주받은 자가 되셔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이거야. 율법을 하나도 지킨 사람 없어요. 예수님이 혼자서 고것을 지켰어. 어떻게 지켜? 전 인류. 율법은 죄를 지적한 지적하는 것이니까. 인류의 죄를 도맡았거든. 제일 큰 죄인도 예수에요. 인류 죄를 당신 죄로 똘똘 뭉쳐서 당신 죄로. 앞으로 태어난 영혼이나 다 드러난단 말이여. 모든 문제는 인자 십자가에서 예수의 십자가에서 해결이 되는 거란 말이여. 영적 욕구가. 육적욕구도 다 되요. 아까 참 ‘그늘 음(陰)’자 설명을 아직 다 안했네. 삐쳤음으로써 인제 십자가 지게 되었다. 그 말인데. ‘이제 금(今)’하고 밑에는 ‘이룰 운(云)’자 랍니다. ‘이룰 운(云)’자는 낱자는 ‘두 이(二)’밑에 ‘사사 사(厶)’거든요. 두 사람이 사사(厶)로 돌아가지 말라고 있는 거예요. 아담 하와가 사(厶)로 돌아가 버렸어. 하느님 떠난다고. 그 예수님은 인자 와서 그래 사(厶)로 돌아가서 자기를 죽임으로써 사(厶)를 쪼개버렸다고 깨쳐버렸다고. 그 ‘여덟 팔(八)’자가 ‘깨칠 팔(八)’자여. 사(厶)를 이 공평히 다 하나다 한 식구다. 우주가 세계가 한 식구다. 다 형제다. 국경도 없어요. 깨버렸어요. ‘이룰 운(云)’자는 ‘구름 운(雲)’자 보인다. ‘이룰 운’자는 ‘구름 운’자. 하느님께서 구름 속에서 말씀하지 않았어요? 우린 지금 구름 안에 있어요. 양심이 지금 구름 안에 덮여있어요. 벗어나 버려야되는데. 환한 빛 속에서는 법이 필요 없단 말이여. 다 아니까. 깜깜할 때 는 모르지만. 마가복음 11장에 무화과나무 저주 있죠? 당신이 저주 받을 것을 미리 보여준 겁니다. 당신이. 동시에 율법을 지킬 사람도 없거니와 지켜가지고 절대 지켰다고 해서 구원은 없다 이거야. 동시에 평화도 없다는 거야. 해결이 없다는 거야. 항상 어두운데서 헤매는 것뿐이야.

 

그럼 23절.

시간이 다됐네요. 믿음의 시기가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의 감시를 받았어요.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으란 거야, 갇혀. 율법을 제대로 죄를 깨달았으면 제대로 갇히는 거예요. 갇힌단 말은 감정의 요구에 매이지 말란 거야. 딱 억제하란 거여. 몸이야 어디가 있든지 뭣을 하든지. 감정의 욕구에 끌리지 말고 양심이 치유하란 말이야. 감정은 타락해서 정화되지 못한 감정이란 말이야. 이 타락한 감정을 억제하라. 갇혀라 는 거야. 자유하지 말라. 양심이 지적한대로 살면 되는데 그렇게 안 해요. 양심이 저 좋은 대로만 살면 되는데 그게 왜 안 되냐면 나대로가 되어버려 양심도. 거의 양심을 잊어버렸어요. 성경대로 보면 양심이 살아서 산 사람은 한 사람 있어요. 나사로요. 살았어요. 부자는 죽었어요. 그리 생활 비양심적인 생활을 했죠. 뭐 자기 재산가지고 자기 잘 했죠. 뭐 아무 죄는 없죠, 죄는. 세상에서 정죄 받을 건 없어요. 뭔 도덕성 경계할 것도 없어요. 그러지마는 하느님한테는 죄란 말이야. 그 결과가 어떻게 되냔 말이여. ‘그늘 음(陰)’자. 음부로 갔단 말이여. 그 결과는 세상에서 산 고대로 거든. 나사로는 양심껏 살았어. 그 양심 그대로거든. 살았을 때 양심을 찾아오려고 하는 게 하늘, 양심. 매일 생활입니다. 사는 것은 사람이 누구든 보기에는 우리가 보기에는 참 복도 없고 저런 것이 무슨 천국 가려나 생각할 것도 없죠. 요 성경을 인자 봅니다. 그나저나 번역이 조금씩 다른데 구역성경이 더 세밀하게 되었어요.

 

갈라디아3장

율법은 자 죄를 깨닫게 함과 동시에 하느님의 은총이 넘친다는 걸 깊이 깨달을 수 있다. 동시에 또 어떻게 되느냐? 인자 진짜 하느님의 자녀 되게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안내자입니다. 율법의 궁극 목적은 거기에 있어요. 죄를 깨닫게 해가지고 죄를 많이 발견하게 하려고 그리스도가 절대 필요로 하게, 갈망하도록. 딱 갇혀서 감정의 자유를 얻게 함과 동시에 그리스도를 갈망하게, 아 주여 어서 오소서. 어서 오소서. 오셔야 해결됩니다. 그렇게 갈망 하는 거야. 그게 율법을 제대로 이해하는거란 말이야. 갇히는 거. 죄를 깨달았으면 딱 자유 말라는 거예요. 누가 뭐라고 하던지 ‘예’만 하라는 거여. 뺨을 때려도 ‘예 감사합니다.’ 하란 거여. 아무리 잘 했더라도 ‘왜 잘못했어?’그러면 ‘예 감사합니다.’그래야 돼. 그렇게 갇히라는 거야. 자유 말라는 거야. 그게 자기감정을 억제하는 방법인거야. 또 하느님의 뜻대로 살라는 방법인거에요. 내 뜻을 포기하려니까. 아무리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아 감사합니다가 나와야 된다는 거야. 억울한 소리를 반항하면은 내가 그대로 살아있거든. 살아 있는 거여. 안 버렸단 말이여. 뭣이 나쁘다 그러면 벌써 내가 있다 그 말아녀? 다 좋다 그러면 그건 자기 없고. 다 좋다. 어떤 역경 속에 사람으로 서면 어떤 헤어 나올 수없는 그런 처지에서 좋다 그러면 그게 사는 것이고. 나쁘다 아니다 뭐 그거는 아직 다 자기란 말이여. 비판이여. 누군 왜 그런가? 저런가? 그것도 다 비판이여. 내가 있단 말이여. 신앙이 오기 전에는 우리는 율법 안에 갇혔어. 갇혀서 장차 나타날 신앙이 오기까지. 덧 부쳐 말하면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딱 오면 여러분 안에서 나아져. 나오너라. 그것이 한문글자여. 석가 해 석(釋). 모일 석(釋). 보니까 여러 가지 있는데 용서할 석자가 있더란 말이야 용서라, 용서. 다 용서할 석자도 있어. 또 남원 이게 ‘남원 석’자입니다. 근원 원(原) 언덕 원(原) 용서할 원(原)이에요. 아따 글자 좋으네요. 진짜. 내가 남원 살겠다. 남원서 난께 진짜 좋구나. ~~~~ 유교에서도 보소, 어디서 왔소? 남원서 왔어. 아 좋은데서 왔구나. 남원서 왔다 그러니 다 좋다 그래. 춘향이 하나 땜시. 그 정절 하나 땜시. 용서할 원(原)자 더라니까요. 아 또 그것도 나중에 좀 보고. 용서할 석(釋)자란 말이여. 갇혀있어서 장차 나타날 신앙이 오기까지 얽매여서 기다리란 거여. 다 이거 사모하란 거여. 그리스도를 사모하란 거여. 주여 오소서. 오셔야 해결되지. 아니고는 안되겠습니다. 어디가 해방이 날 란가? 나 모르겠네. 해방. 육체해방 아니에요. 영혼이 해방을 못해요. 어디서? 자기 안에서. 자기감정이 꽉 매여있는데에서 해방을 못해요. 석방이다 석방. 영혼이 지금 긍게 옥옥(獄) 자가요 개사슴록변에다가 말씀 언(言)자에요. 말씀은 그리스도에요. 하느님인데. 내 령인데. 또 오른쪽에 개 견(犬)자 거든. 짐승 성품에 딱 갇혀있어요. 몸은 아무리 자유롭게 움직여도 령은 갇혀있어요. 마음은 자유가 없어요. 긍게 믿는 것은 인제 자유해방이에요. 자유해방은 뭐냐? 아무 의식주에 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천사와 동등이라 그거야. 메이지 않는 거. 그러면 인자 우상이 뭐냐? 밥 한 숟갈도 우상이 되어요. 요걸 먹으면 살고 안 먹으면 죽는다. 아 고거 밥 한 숟갈이 우상이란 말이야. 긍게 몸이 우상이에요. 영혼의 껍질인데 우상시한다이거야. 갇혔어. 그럼 어때 기한이 어떠냐? 갇혀서 장차 나타날 신앙이 오기까지입니다. 긍게 내가 조금 갇혀버리다가 내가 또 나와 버려. 기도나 산골서 기도나 좀 해보다가 아이 갑갑하다 이거야. 또 그대로 기도를 한다고 해결되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나한테서 해방을 받아야지 말하자면 죄에서 해방을 받아야지 그거이 구원이에요. 지금 죄의 종살이에서 못 벗어나요. 내가 내 종 이 껍딱 종노릇을 말해요. 영이 껍딱 종노릇을 해요. 육체 종노릇해요. 육체에 끌려 살아요. 감정에 매여 살아요. 그러면 이것이 기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옥문을 탁 열어줄 때. 용서한다. 인자. 다 용서한다. 용서했다. 신앙으로 말미암아 의가되기 위하여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서 율법은 우리에게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안내하는 안내자다. 이것이 율법의 목적이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안내자야. 율법에서 자기 죄를 깨닫고 딱 자유를 말라. 갇혀서. 어떻게 했냔 말이야. 누가 뭐라고 했는지 ‘예’란 말이야. ‘예’ 아무리 죄인이라고 해도 아이고 더 감사합니다. 해야 돼. 잘못했단 말을 들으면 다 기뻐한단 말이야. 소화 데레사 같은 성녀는 뭐냐? 꾸지람을 듣는 것이 칭찬받는 것보다 몇 천배 낫다는 거야. 꾸지람 듣는 게. 그 꾸지람을 달게 받으니까 무럭무럭 자란다이거야. 우리 칭찬만 받으려고 얌전하게 뭐 잘 해보려고 하면 사탄에게 칭찬을 받을지니 하늘 천사한테는 칭찬 못 받는단 말이야. 근데 인자 아담으로부터 유예 받은 재산은 뭐냐 하면 세상 부귀 향락이란 말이여.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유산은 뭐냐 하면 멸시 천대 가난이란 말이여. 그런게 사람들한테는 멸시받죠. 가난하고 바보고. 멸시받지만은 천사들은 인도하고 좋다한단 말입니다. 멸시 천대 가난이 하느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거야. 그것이 복음이에요. 가장 낮아지고 멸시 천대 받는 게 복음이야. 그런게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쓰거든. 존경받는 사람도 물론 부끄럽단 말을 안 한단 말을 쓰겠어요? 사람들 앞에는 멸시 천대 받는 거여. 믿는다면서 세상서 출세한다는 거 아니에요. 그거는 껍질이지. 내용은 없단 말이여, 내용은. 그림자여. 허수아비, 내용은 안은 없어요. 겁딱은 볼 것 없어도 알맹이가 있어야한단 말이여. 율법은 껍질이에요, 껍질. 껍질이 건전해야 또 알맹이가 되지 껍질이 또 병들어버리면 안되지 안 돼. 긍게 복음은 알맹이란 말이여.

 

 

 

그리스도의 안내자. 율법의 궁극적인 역할은 죄를 깨닫게 하고 또 동시에 하느님의 은총을 발견하게 하고 동시에 그리스도께로 가까이 썼으면 좋겠지 마는 쓰진 않겠습니다마는 ‘없을 무(無)’자가요, 무자를 세 가지로 씁니다. ‘하늘 천(天)’자 내려가지고 구부리는 거야. 그게 없을 무(无)자야. 또 어미 모(母)로 써가지고 어미 모(母)로 쓰면 여자에요 여자. 써가지고 점 위아래 찍고 가르고 하는 거야. 어미 모(母)자는. 없을 무(毋)자도 점만 없고 십자가로 썼어요. 어미 모랑 똑같이 써가지고 십자가 있어요. 그것이 없을 무(毋)자여. 그럼 인자 없을 무자 하나 인자 제대로 쓴 거 여러 가지가 있어 복잡하게 쓰지마는 하늘 천자 내려 약하게 쓰는 거 약하게 간단하게. 그게 없을 무(无)자인데. 왼쪽에다 점하나 찍으면 숨 막 힐 기(旡) 자야. 숨 막혀요. 밑에다가 불화 자. 점 넉 점을 찍으면 흙 막힌다. 불을 질러버리면 북 타져버려. ‘기운 기(氣)’자여. 기운이나요. ‘다섯 오(五)’자도 실상은 ‘두 이’변에서 찾거든요. 가운데에 ‘힘력(力)’이 들었어요. ‘힘력(力)’ 밑에 인자 ‘입 구(口)’하면 ‘나 오(吾)’자거든요. 성령의 힘 받아 살려는 나인데 사탄에 종살이한단 말이여. 그런 나면 안 된다는 거여. ‘나’에다가 여러 가지 쓰는데, ‘나 여(余)’자 여 만해도 두 가지로 씁니다. 하나는 ‘모털 미’자 쓰는 거거든. 하나는 ‘미리 예(豫)’자 오른편에 그거이 약자입니다. 약자인데. 취할 려 받아요. 나란 것이 나란 존재는 하느님께 은혜를 받아요. 또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줘라. ‘줄려’ 또 ‘다스릴 려’자여. 자기를 다스리다. 또 ‘다스릴 치治()’자는 어떻게 되냐면 ‘나 이’하고 ‘삼수 변’이다. ‘물 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나가 되어야 할 텐데. ‘나 이’자는 ‘사사 사(厶)’ 밑에 ‘입 구(口)’가 있거든. 사적인 나가 되어서는 안 돼. 그거 인자 성령으로 통해서 깨끗하게 씻어져버리는 거여. 그러면 그게 잘 자기를 다스려나가는 것이고 다스렸 단 증거고 앞으로 다스리는 겨. 이 나라 정치도 왜 잘 안 되느냐? 참 말이 많고 복잡 하느냐. 서로 싸움만 많고. 당파가 왜 그냐. 자기를 정치를 못해서 그래요. 자기. 속된 정보다 치우는 그게 정치야. 정치. 그 안치우고 욕심 부린 결과가 어떤 거냔 말이야. 그래요. 그러며는 이제 24절 본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으로 말미암아 의가되기 위하여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니라. 안내자. 그러나 이 신앙이 온 후인지라. 인자 온 후. 율법은 끝났거든요. 마쳤어요. 우리는 이미 안내자 밑에 있잖아요? 율법에 이제 매일 필요가 없어요. 일 다 해주고 갔으니까. 율법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주는 게 자기 역할이니까. 그리스도에게만 인도를 했으면 되어버리니까.

 

 

 

그리스도는 인제 율법의 마침이란 말이야. 종결 이였어. 종결. 그리스도가. 그것이 완성이야. 율법의 완성이라 함은 인자 완전히 종결지었다. 끝나버렸다. 사랑자체이신 그리스도가 오셨으므로 마음에 계시므로 법을 초월하지 법에 매일 필요는 없다는 거여. 법을 초월한 거여. 법을 초월하면 뭐 의식에 매일 것이 없다는 거여. 의식이라는 건 어린애의 걸음마 시키는 거여. 어른들이 뭐 그걸 할 필요가 없잖아요? 신앙에 장사했으면 그걸 초월했으니까. 매일 주일이고 매일 안식일이지. 꼭 날짜 일주일에 한번 그거 아니란 거야. 매일. 진리 안에 사는데. 하느님 안에 사는데. 그게 생활이 되는 거지. 진리로 사는 생활. 진리를 거스르는 건 암만 예배 봤자 소용없다는 거여. 그걸 지켜봐도. 날짜 지키는 것이나 의식을 갖춰보나 아무리 엄숙하게 해보나 다 허망한 거라. 그런 훈련 뿐이여. 훈련. 그런 방편은 그저 맘만 지금 붙들어놓고 하자야. 다른 데로 못 가게. 그런 것뿐이지. 가둬 논 것뿐이야. 왜 가둬 놉니까? 맨날 자유롭게 하면서 하느님 기쁘시게 해야지. 그이 율법은 법은 가둬놓은 것인데 제대로 뜻대로 갇히질 안 해요. 자기를 가둬놓지는 안 해. 자기감정을 억제하진 않는단 말이야.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서 결국은 그리스도를 갈망하게 하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안내자가 되나이다.

 

그러나 이제 신앙이 온 후인지라 우리는 이미 안내자 밑에 있지 안 해요. 있을 필요가 없어요. 초월했으니까. 이제 다른 사람에게 인도하려니까 법이 없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 있는 사람은 있는 것 같이 그 형태를 따라가는 거야. 그것이 전도죠. 그 사람 처지를 따라서 맞춰줘요. 맞춰주면서 먼저 신용을 얻어요. 신용. 저 사람이 나를 믿어줘야 돼요. 믿어주는데 그 사람 하는 거 똑같이 해줘야 믿지. 그냥 말로하면 믿겠어요? 너나 믿어라 이거야. 이제 복음을 제대로 복음 하는 사람은 죄인을 구원하려면 그 사람하고 생활을 같이 해야 되어요. 제대로 신앙인 사람은. 자 수녀라면 수녀. 하느님께 몸 바친 깨끗한 수녀라면 이 신교의 목사님에게 가서 식모를 해야 돼. 식모를. 그래서 목사의 영혼을 깨우쳐야 한단 말이여. 교만한 소리 한다. 살았으면 사회에 가서 봉사 하라는 거여. 봉사해요. 하되, 육체를 섬기는 봉사가 되지 말고 영혼을 섬기는 봉사해야한다 영혼을. 영혼을 일으키려니까, 그러니 육체의 종이 되지 말라는 거예요. 예수님은 종으로 오셨잖아요? 섬기러 오셨잖아요? 육체 섬기러 온 거 아니에요. 영혼을 섬기자야. 그런게 당신이 생 제물이 된 거야. 세상의 영혼을 위해서 썩어주는 것이야. 죽어주는 것이야. 소금이 되는 것이여. 희생 제물이 되는 거야. 육체의 종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혼을 건지려니까 다른 사람 보기에는 종이죠. 마음을 구해라는거야. 몸은 가서 종 같아 보이지만은 그렇지 않다. 육체 잘 살려고 예수님 오신 거 아닙니다. 그건 복음이 아니에요. 복음을 받아들이면 지금까지 살려면 완전히 망한 거죠. 영적인 참 축복이 온다는 거여. 아직 영적인 것의 맛을 모르니까 육적인 것만 어떤 수단을 써가지고 모으려고 하는 그건 허망한 거 란 말이에요. 바람에 날려버리는 먼지란 말이에요.

26절. 너희는 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자녀란 말이여. 자녀가 되니라. 대저 그리스도에게 세례 세례를 받아 세례라는 말은 옛사람은 죽었다는 말이여. 죽었다. 그리고 완전히 회개했다는 표, 세례는. 또 양심이 하늘을 향해서 올라간다는 표. 세례를 받은 너희는 다 그리스도를 옷 입었단 말이여. 입었어. 진리의 옷을 입었어. 입었나니 이에 유대인이나 이방사람이나 차별이 없어요. 야만이이든 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에요. 다 형제요 자매요. 노예나 자유인이나 자유로우며 남자나 여자 차이도 없어요. 하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다 형제요 자매요. 그리고 없나니 대저 너희는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있는 거여, 하나. 그려 인자 어떤 형제가 유일신은 참 믿기 어렵다. 다 이거 하나 되면 유일신아녀? 한 하느님 한 하느님의 자녀여. 다 하나란 말이여. 종파도 뭣도 없고 다 하나야. 다 한 형제다. 무어 차별할 거 하나 없다. 너 나가 없단 말이여. 복음은 너 나가 없는 거여. 하나야. 율법은 너 나가 있고 따지고 비판하고 남을 정죄하고 그것이 나쁘게 쓰는 거여. 법을 법대로 쓰질 안 해. 법은 자기 죄만 발려내고 자기만 갇히고 그러면 복음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빛이 되는 건데 율법으로 인도한다면 안 된다는 거야, 율법으로는. 하늘나라는 말이 있지 않단 말이여. 말로 교훈을 썼단 말이야. 아무리 말로 타일러 봐도 그건 소용없는 거야.

 

하느님이 그 영혼을 인도한 것이지 사람이 인도하는 것 아니에요. 내 힘껏 인도해봤자 오히려 하느님이 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지, 사람은. 내가 누굴 인도한다 하는 거는. 바다와 육지를 다니면서 겨우 하나 만나면 겨우 만나가지고는 배나 지옥자식 만든다. 자기하고 똑같은 사람 만들어버린다. 지옥이 뭐냐? 지금 내가 있는 것이 지옥이야. 나라는 거. 지옥. 자기. 자기 집이여 자기. 자기 몸이 갇혀있는 거. 불신은 지옥 신앙은 천국이여. 바로 믿어지는 순간 그리스도가 계신 그리스도가 계신 데는 천국이요, 사랑만이 내가 천국이요. 미움이 있다면 벌써 지옥이에요. 미움, 싫다 언짢다 괴롭다 그거 나여. 그거이 지옥이에요. 지옥에 살면서 지옥인지 몰라요. 뭐 지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자기에요. 자기감정에 매여 사는 거예요. 그럼 율법이란 건 인자 그만하겠습니다. 28절. 다 봤죠.

 

29절입니다.

대저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하나인 영혼 하나, 하나인 영혼이라. 이제 하나가 되요. 너 나 둘을 가릴 것이 없어요. 아담이 범죄 허고 둘이 되어버렸단 말이여. 둘이 가서 사(厶)로 돌아가 버렸단 말이여. 그것이 율법이지. 사(厶)로 돌아가지 말라. 또 살 거(居)자도 주검 시(尸)이 있다고 예고(古)했거든요. 예고했잖아? 옛적에 뭔 말 했느냐? 먹으면 죽는다. 그 말 했어. 너희가 범죄하면은 네가 거역하면은 내가 죽는다 그 말이야. 그리스도가. 아담은 거역했지마는 그리스도는 아직 아담은 안 죽었죠? 그럼 그때 내가 죽는다. 그리스도가 죽는다 그 말이에요. 긍게 인제 그리스도가 죽었죠? 죽었으니 인제 죄는 인자 개인에게 없어야 할거아녀요?

그런데 날마다 나타나는 것도 죄라는 거든. 이 나타나는 걸 있는 걸 인자 없애버려야 하거든. 긍게 나타난 거여. 성인이라면 제일 죄 많은 사람이여. 성 프란시스코 성인은 제가 제일 죄인이라는 거여. 그러니 나타나 버렸어.

그랬응게 인자. 이현필 선생이 뭐인가? 당신이 제일 죄인이라는 거야.

죄인이라 한 만큼 보여지는 것이 죄인이란 거여. 그게 신앙의 결과란 말이여. 내가 의롭고 잘해가지고 된다는 건 그건 율법이지 복음은 아니다. 율법이다. 찬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