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단오 다음 날 : 친히 하시는 말씀

mamuli0 2023. 6. 23. 10:14

 금년 하지날에는 비가 조금 왔고 단오에는 흐렸다. 오늘은 날씨가 맑다. 둘째 손녀가 와서 반찬과 빨래를 해주었다. 안방 앞 화단에 백합이 활짝 피고 향기를 풍긴다.

 

친히 하시는 말씀

1997. 2. 9

두 번째 세 번째 장에 있는데, 첫 번째 수난을 한번 봅니다.

마태복음16장21절서 23절인데,

첫 번째 수난에 대한 예고하니까 예고란 말은 미리 미리 고한다. 미리 말해둔다 말이야. 미리 말하는 것은 그 준비를 하라 그 말이야. 그 때 승리할 수 있도록 그 준비하라. 근데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일과 거기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제자들에게 비로소 말씀하셨다. 그 일이란 예수께서 유대인 지도자들인 장로들과 대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과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다는 것이었다. 끝나버린 게 아니라 오히려 다시 살아난다 말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절히 말하였다. 주님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런 일이 주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 편에서 생각지 않고 인간 편에서 생각하는구나. 어떤 데는 구역에는 하느님의 뜻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뜻만 생각한다. 사람의 뜻이라면 무엇일까요? 무엇은 사람의 뜻, 하느님의 뜻은 무엇이고 사람의 뜻은 뭐인가? 뭣이 다를 것인가 말이야. 사람의 뜻과 하느님의 뜻이 무엇과 다를 것인가? 예? 그 사람의 뜻은 한문으로 하면 쉬워요. 인정이거든 인정, 인정머리 없다. 인정이 많다. 그러잖아? 또 인정에 끌렸다. 그러고 말이야. 인정, 감정에 매어있다 말이야. 감정, 인정, 한문으로 하면 쉬운데 사람의 뜻이라고 하면 몰라 뭔 말인가. 육이 요구하는 뜻이란 말이야. 육정이라 말이야. 육정, 정욕이라 말이야. 욕, 육정이 요구하는 거 정욕, 하느님의 뜻이라면 거룩이죠. 거룩, 성(聖), 거룩한 뜻, 뜻 의(意)자를 써요. 정자를 안 써요.

자 뜻 의(意)자는 어떻게 쓰냐? 어떻게 쓰죠? 소리 음(音)자 밑에 마음 심(心), 소리 음(音)자는 어떻게 쓰죠? 설 립(立) 밑에 날 일(日), 날이 밝게 밝다 말이야. 그런데 날이 인자 밝게 서 있으니까 해가 떴다는 말이야. 떴으니까 밝죠? 밝은 소리라 말이야. 밝은 소리, 흑암이란 말은 깜깜하다. 깜깜하다, 깜깜은 소리들이 없어요. 깜깜해, 알 수 없다, 근데 소리 음자에는 날 일(日) 우에다가 설립(立)을 했고 그 밑에다 마음 심(心) 하는 것이 인자 그 마음으로 들었어요. 소리를. 하느님은 우리 마음속에 계시잖아요? 마음에, 마음에 계시면서 우리 육체도 돌보신 것이다. 마음에는, 마음의 요구를 생각지 않고 육의 요구 밖에 모른다. 그 말이야. 사람의 뜻 이란 거는 육정 그거 매여 산다. 이 믿는 것은 육정을 초월한 것 아닙니까? 하느님 뜻에 따라서. 그러니까 그 육의 뜻만 생각한 것을 사탄이라 그래. 사탄, 사적이라 말이야. 사람으론 인제 겉, 겉 사람, 몸에 보이는 것만 아는 사람, 물질적인, 물질에 매어있다. 몸에 매어있다. 몸이 물질 아닌가? 이 믿는 것은 언자 겉 사람 버리고 속사람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 아닙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거라 말이야.

근데 몸은 모인다는 말이고, 모았다 이 흙으로 지었으니까 흙에서 난 것을 모은 것이 몸이다. 내 마음이란 건 언자 모으는 일을 그만 말자. 말면. 인자 무엇을 모으냐? 맘만 모이자. 맘, 하느님의 뜻만 뜻으로 하나 되자.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해져. 간단해. 긍게 몸으로만 모이려는 거는 사탄이라. 사적이야. 우리말이 아니지만은 우리말로도 된다. 사(厶), 사(厶), 나라 말이야.

 

 

그러니까 그 다음가서는 24절이라 말이야.

예수를 따르는 길.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버리라 말이야. 나를 버려라 사를 버리라, 사(厶).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이다. 버릴 뿐만 아니라 십자가 져. 십자가 지라는 말은 늘 자기 부정하라. 죽어라. 그 말이지. 십자가는 죽는 일이니까 자기 버리는 훈련을 하라는 말이야. 자 언자 새해는 됐고 일 년은 갔고 인자 완전히 음력으로도 인자 새해라 말이야. 새해인데 거년에 얼마만큼 자기를 부정했냐? 하면은 아 못했다 말이다. 못 했는데 금년은 언자 또, 또 해야겠다. 그 일뿐이에요. 자기 부정하는, 그걸 다시 말하면 회개하는 일이라 말이야. 금년 음력 금년 들어서 세배를 많이 받았는데요. 이거 감정으로는 얼듯 기쁘기도 하고 좋긴 한데 생각해 보면 뭐들 하는 것이냐? 하느님의 교훈을 받는 거라. 하느님의 뭔 교훈이냐? 회개하는 것밖에 없어요.

 

또 사실 부끄럽다 말이야. 나는 받을 일이 없어. 그러니 예수를 존경하는 뜻에서 인자 허수애비가 인자 받는 것이죠. 근데 제 안에 계신 예수님은 받아야 되요? 하지만은 껍닥 나는 받아야 할 것 아닌데, 껍닥 나에게서는 회개하라. 왜 절을 하지 말라. 그런 말 있냐? 절하지 말라. 우상 앞에 절하지 말라. 그랬거든요. 인자 그걸 이해를 못하면 그냥 이런 절도 안하거든 인자 쪼금 인자 유교정신을 훈련시키지 않습니까? 세배하는 거 모두 인자 그것도 뜻도 모르고 하는 거여. 절하지 말란 말은 죄짓지 말라. 그 말이거든요. 그러게 요런 인사도 안 하면 어떻게 되나?

 

그러니까 그전은 나는 참 인정적인 이로 태어난데 그리스도 아주 순전하더라. 순전하다. 그러니까 내세운 걸 생각하면은 참 비참하고 어리석고 슬프고, 왜 나는 거짓인데 흉내만 내는데 진짜로 받는다 말이야. 너무 황송하고 너무 과분하고 말이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버리란 거야. 제일로 첫 번 예수 따르는 조건이 첫 째가 자기 버리라는 건데 이것부터 순종한 예수를 믿는다고 60년이 넘도록 나도 순종 못해. 자기를 못 버려요. 인제 64년째 된가 모르겠네요. 신앙한지가, 근데도 지금 못 버리고 있거든. 여 순종은 이 말씀을 순종하는 거 아니야? 버리라. 이 버려야 겠는데 순종을 안 하고 자꾸 달라고만 하면 어떻게 됩니까? 기도는 뭣이냐? 순종이에요. ‘해라.’ 했으면 ‘예’ 순종을 해야지 순종을 안 하고 무엇을 더 달라는 거야? 순종하면 구할 것이 없이 다 이미 줘 있다는 거야.

받은 것도 감당을 못하는 거여. 다 그러면서 더 받아놓으면 다 더 못 감당 못할 거 아냐? 치어서 죽지, 치어서. 받은걸 감당해 나가면 인자 또 더 필요한 걸 주실 것 아니냐? 거야. 그런 게 우리가 하느님 앞에 구한다 하면 무엇을 구해야 되겠습니까? 성경에 있는 대로 보면? 하느님이 제게 요구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물어야 되네. 그럼 뭐라고 대답했죠? 여호와께서 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뇨? 겸손과 공의와 사랑이라. 겸손이 네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니냐? 그 하나 속에 다 들었어요. 공의를 해야 한단 말은 가장 낮은 생활, 천한생활 한다 말이야. 그게 공평하거든요. 내 것이라 있으면 불공평, 내가 있응게 내 몫이 또 있어. 내 몫이, 내가 없으면 다 인자 다른 영혼을 위해서만 희생할거 뿐이죠? 다른 영혼이 곧 나거든요. 긍게 예수님을 그 생활 보여주러 오신 겁니다. 제일 멸시천대 받는 생활, 아담으로부터 이어받은 재산은 인자 완전히 포기하고 그리스도께 받은 재산은 멸시천대야.

 

 

성도의 재산도 그러지 안 해. 히브리11장25절, 26절이요.

성도가 가져야 할 재산은 있는데 그런 재산을 가치를 몰라요. 싫어한다 말이야. 믿는 사람의 재산, 성도의 재산.

히브리 11장 24절서부터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파라오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인자 거기서 오래 있으면 인자 왕이 될 것 아니요? 왕이 아들이 없으니까 그 딸에게서 딸의 아들이 왕이 된다 말이야. 공주의 딸은 있었으니까 인자 왕의 자리를 포기했다 말이야. 애급왕이 될 텐데 말이야. 그 영광의 자리를 포기한 거여.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파라오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이 왕 될 것을 고만두고, 도리어 하느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능욕을 애급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능욕이라 말이야. 멸시 천대 업신여김을 받는 거 능욕, 그것이 애급의 모든 왕 되는 것보다 좋은 재산보다 명예와 그것보다도 더 값진 거라 말이야. 이것이 믿는 사람의 재산은 이것인데, 세상 물질에다가 목적을 뒀다 말이야. 애급의 모든 보화보다도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니라.

믿음으로 애급을 떠났다. 애급을 떠났다. 세상 모든 것을 버렸다.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않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으며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할 것이며 29절은 여 다른 성경은 어떻게 되었지요?

 

29절

믿음으로 믿음은 뭐이냐 믿음으로 저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급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다. 믿음이 있으면 세상욕심 다 없으니까 죽었으니까 세상에 안 빠져요. 믿음이 믿는다 하면서 실지는 믿지 안 해요. 자기가 있기 때문에 빠진다 말이야. 믿음은 자기가 없으니까 안 빠진데 믿는다 하나 자기가 있으면 빠진다는 거야.

이 믿음은 자기가 없는 것이고 그리스도만 있는 것이 믿음 아니에요? 그러면은 첫 번째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라. 이 말씀만 순종하면 된다 말이야. 자기 버리고 자기 십자가 지고 예수 따라가면, 이 말씀 하나만 순종하면 다 되는 거지. 뭔 말씀 써 놔요? 이 첫 째 이 말씀을 순종을 못한다고.

여 금년 계획은 이렇게 각각 세워보고 또 버려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거야. 인자 섣달 그믐날 딱 청산을 해봐요. 버려졌는가? 다 안 버렸으면 또 시작해야 된다. 또 새해에는 인자 정월이거든 음력으로 하면 총 며칠인가? 정월, 정월이라 말이야. 초사흘인가 정월, 두 째달은 정월이라고 않거든요. 또 초하루 그러면 초하루 아침 조(朝)자도 있고 아침 단(旦)자도 있고 아침 단(旦)자는 날 일(日) 밑에 한 일(一) 하는 겁니다. 초하로부터 어찌 하(何)자. 길 로(路) 자 어느 길로 가야하나? 바로 정해야 한다. 영이 요구하는 길로 가냐? 육이 요구하는 길로 가냐?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이 이상 더 다른 진리가 없다 말이야. 이 말씀만 순종하면 되는, 그걸 불순종하고 다 이렇게 얻으려고 하니까 헛수고 밖에 안 된다. 이 구절 말씀만 순종하면 되는데 너희가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육적생명도 중요 하지만 영적생명이라 말이야. 생명의 가치를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 성경에 어디가 그 생명의 가치를 잘 모르는 사람 비유가 있죠? 누군가요? 엇 저녁에도 말씀 나왔는데 탕자 형이라 말이야, 형. 송아지와 아우 생명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살진 송아지 잡았다는 바람에 더 화가 났거든. 자기가 가장 좋아하고 길렀던 건데 살을 찌워놓고 늘 송아지를 재미있게 기른 판국인데 아 그것마저 잡아 버렸다니 말이야. 이 생명의 가치, 소는 그거는 어렵고 인자 사람한테 맺힐 거 아닙니까? 사람이 먹기 위해서 있는 것이거든요. 그것은 요새는 뭐 기계로 농사지어버리니까 별로 안 쓰이고 가치를 모른다. 이게 육적인 그 정신이 모두 물질에 매인 동안에는 속사람은 모르니까 영적인 생명을 몰라요. 가치를 모른다. 인자 회개하고 온 탕자는, 잃어버렸던 사람이라고 그러잖아? 한 사람, 탕자는 탕자 형 한 사람이라고 형이 회개를 하면 탕자가 돼서 그 뒤로 인제 생명의 가치를 알죠? 아버지도 달리 보고 집을 떠나기 전에 아버지와 회개하고 돌아온 후에 아버지가 내 그 아버지지만은 달리 본거요. 이제 자기 마음이 변화를 받으니까 모든 것을 언자 달리 보는 거야.

 

 

가령 하나 예를 들면 마가복음8장22절. 26절 봅니다.

벳새다의 소경

예수의 일행이 벳새다에 이르렀을 때에 사람들이 소경 한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대어 고쳐주시기를 바랬다. 예수께서는 소경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고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좀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는 눈을 뜨면서 나무 같은 것이 보이는데 걸어 다니는 걸 보니 아마 사람인가 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사람은 항상 자기가 같이 살았고 했지만은 눈으로 보지는 못했거든요.

자기 얼굴이나 자기 몸은 다루어보고 사람도 그렇게 생겨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길 것이다. 하는 것뿐이죠? 긍게 이제는 눈으로 본다는 거야. 나무토막인데 나무가 걸어 다니면 뿌리는 안보이니까 위에 몸하고 가지하고는 만져봤을 것 아냐? 아아 나무가 요렇게 생겼구나. 그런 게 인자 눈을 떠서 보니까 나무가 인자 걸어 다닌다. 한 게 거꾸로 아닙니까? 거꾸로, 가지가 거꾸로 다닌다. 그 눈은 어떤 눈인가? 부자가 가졌던 눈이에요. 부자가 나사로가 볼 때는 거꾸로 여. 부자의 생활이 또 부자의 눈으로 볼 때는 나사로가 거꾸로 고, 서로 거꾸로 보인 거여. 이 누가 잘 맞나 하면은 나사로의 눈이 더 영의 눈이 아닙니까? 부자 세상과 모두 거꾸로 라. 욕심은 모두 천국 간다고 하는데 지옥으로 가고 있다 말이야. 처음에 눈은 그렇게 남의 잘못만 보이는 눈이에요 눈.

 

그 다음에요 25절

예수께서 다시 그의 눈에 손을 대시자 눈이 밝아서 언자 아주 밝아서 완전히 성해졌어. 완전 성해졌어.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됐다. 똑똑히, 긍게 인자 그 다음에 예수님의 지시가 뭐라고 했는가?

예수께서는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말라. 저 마을이 어떤 마을이야? 자기 살던 마을이에요. 왜 들어가지 말란 거야? 들어가지 말라 하시며 그를 집으로 보내셨다. 아 그 마을에 있는 집인데 마을 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집으로 가라고 그래요. 그러면 비행기를 타고 가더라도 집에를 가야 될 거 아니요? 그의 집은 그 마을 안에 있는 집이에요. 그 이 말씀은 뭔 뜻일까요? 모든 것을 똑똑히 봤다는 말은 뭔 뜻일까? 봤다면 죄가 보인다면 자기 죄만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 나타난 건 자기 죄 그림자에 불과하고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대로 되어간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그런데 마을은 지나가지 말란 말은 과거의 생활하지 말란 말이야. 인자 그 말은, 인자 집은 자기 그전 집인데 인자 새집이에요. 예수와 같이 사는 집이에요. 세상세속을 초월했다는 거야. 영의 눈이지. 영의 눈, 첫 번째 눈은 비판적인 눈, 다른 사람 허물을 잘 보는 눈인데 나중에 때는 언자 자기 허물만 보고 다른 사람은 다 높이 보는 눈이라 말이야. 겸손의 눈이란 거야. 처음 눈은 교만의 눈인데 나중에 눈은 겸손이다. 모든 걸 초월했다 는 거야. 물질에 매이지 안 했다는 거야. 인제 그거 자기 입으로 인자 우주적이 우주도 초월하고 그리스도 안에 자기, 그리스도 안에.

그렇게 자유로운 거야 마을에 안 들어가고 집으로 갔으니까 초월한 거 아닙니까? 그 집은 과거의 집이 아니란 말입니다. 껍다구(껍질)는 그 집일지라도 내용은 그렇지 안 해요. 모든 만물이 외짝은 없어요. 아 아 그러겠다. 다 그렇게, 다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26절 다시 봅니다.

너희가 온 세상을 다 얻는다고 해도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생명의 가치를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 가치, 근데 아까 거기 완전히 눈을 똑똑히 뜬 눈은 모든 것이 가치를 알지. 참가치를 알아. 가치 있는 것과 무가치하는 것 분별할 줄 아는 눈이라 말이야. 불의와 정의를 분별할 줄 안다.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안다. 영의 눈이라 말이야. 거기는 인자 사랑만 가진 눈이잖아? 이 27절은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과 함께 올 텐데. 그 때 각 사람이 살아온 대로 심판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인자가 자기나라의 영광으로 보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은 한번 생각해본다. 뭔 뜻인가? 자신들이 한 번 몸을 떠나가지고 몸이 지상에서 땅에서 떠나기 전에 그런 체험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말 아닌가요? 이것은 오순절에 성령과 강림, 그것을 말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해 본거요. 성령을 받은 영혼은 다 그런걸 체험할 수 있지 않냐 말이야. 자기나라의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볼 사람도 있을 것이다. 거기 언자 그 다음에는 아 이 마태복음에서 첫 번째는 뭐, 뭐 어느 문제가 있는 다음에 그 있었냐? 그 말은

<~끊김>

 

하 여러 번 들었는데. 그러니까 오늘 그 들은 말씀을 기억하는 지요?

여러 번 들었어요. 들었어도 이 16장에 그 열쇠는 4절에 있다. 요나의 기적은 이뤄지지 안했다. 예수께서 그랬잖아요? 나는 요나의 기적밖에 보일 것이 없다. 너희들이 기적을 원하는데 나는 그것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 그것 하나 요나의 기적 이루려 오셨다 말입니다. 십자가 부활, 거기 전부 아니에요. 십자가 부활, 이 우리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느냐? 십자가의 신앙, 부활의 신앙을 믿느냐는 거야. 죽으면 산다는 걸 믿느냐? 아 믿는다면서 왜 죽지도 않고 살지도 못하냐? 죽으면 산다는데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건데 못해요. 자기는 죽기 싫으니까 버릴 마음도 안가지고 버리려고도 안하고 버리려고 해도 버리지도 않은 건데 버리려고 조차 안하는데 어떻게 돼요? 마음도 안 가진데 마음 갖고라도 숨 끊어지는 동안에도 노력할 일이거든요. 버린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 마음조차도 안 먹어버리고 현재 되는대로 살자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그래 결국 시간낭비 뿐이야. 버린 거, 그 버리는 것이 순종하는 거여 순종, 예수님도 죽음으로 순종했어. 순종, 죽기까지,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했다 십자가에 죽는 것이 순종이다. 그 말입니다.

옛사람 아담의 성품이 살아가지고는 순종이 없어요. 욕심이 많은 대로 흉내만 냈지 진짜 순종은 아니야. 자기가 살아 있으니까 자기가 없고.

 

 

이 사탄이란 말은 자기를 안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 칭찬을 받을 때는 성령의 감동으로 그렇게 대답한 거뿐이지 자기가 그 혈육을 초월한 것은 아니다 말이야. 혈육은 그대로 살아 있어요. 예수님의 물음에 답변하기 위해서 하느님이 가르쳐 주신 것뿐이지. 자기 본심은 아니라 말이야. 계시에 따라서 입으로 그 말이 나온 거뿐이지. 그런 게 도로 혈육이 나타나잖아요? 혈육은 안 죽었다. 혈육이 나타나서 죽지 마시오. 하는 거야. 그게 사탄이라. 왜 반석이 사탄이 되느냐는 거야. 요나의 기적은 참 회개를 안했단 말입니다 .

 

마가복음에 8장31절서 9장1절까지

그러면 언자 고 안에가 뭔 문제가 있느냐 하면은

4천명 먹인 기적이 있었고 또 그 여기도 아까 요나의 기적. 11절,13절까지가 요나의 기적 밖에 보일 것이 없다. 그러고 그 다음에는 마태복음에도 그랬고요. 그들이 누룩을 조심하라 건 뭔 말입니까? 누룩을 조심하라 하나 성경으로 예를 들어야죠. 엇다 대 봐야죠? 누룩을 조심하라. 그 교훈을 바리새인과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이 없다고 한 사람들이다. 사두개파는, 또 바리새인들은 부활은 있다고 믿기는 해도 말뿐이고, 실상 부활이 될 수 있는 생활을 안 하거든요. 죽음이 있어야지. 부활이 있는 것이지. 죽지도 않고 어떻게 부활입니까? 인제 그 교리적으로 인정을 하고 안다고 해서 구원은 아니거든요. 실지로 그대로 행해지는 것이 구원이거든요. 죽으면 살줄을 알지만은 죽어야 말이죠. 자기를 완전히 부정해야 할 텐데 부정을 안 해요. 언제까지나 자기를 세운다. 그럼 언자 그 교훈을 주의하라.

 

 

하나 예를 들면 빌립보3장2절입니다.

교훈이 뭣인가? 개를 조심하라. 그 말이야. 천륜이 아니고 인륜이라 말이야.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 그 말 아니냐? 천륜을 인륜으로 전락시키지 말라. 그 말이야.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식과 색에 팔지 말라. 색, 식 둘이라 말이야. 이 감정의 요구에 끌린다 말입니다. 그게 세상이라 말이야. 배부르면 인자 색이다. 그걸 기초로 하고 교훈을 가지니까 세속원리에다가 기초를 둔거라 말이야.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지 않는 거라 말입니다. 게 거기서는 아무리 떠들어대도 애써봤자 소용이 없어요. 헛수고라고. 또 씨 뿌린 비유가운데 씨는 이미 새가 주워 먹어버렸고 또 악한 자가 빼가버렸고 길가에 떨어진 씨,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악 한자가 빼가 버렸어. 아무리 가꿔봤자 소용이 없어요. 씨가 없는데 말이야. 있으리라 하고 가꿔봤자 소용없다 말이야. 말하자면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가버린데 거기서 열매가 기대하는 거와 똑같다 말이야. 말라버린 나무에서 무슨 열매가 있겠느냐 말이야. 뿌리가 말라버렸는데 저주를 받았고 씨가 없는데 뭐 가꿔봤자 뭔 소용 있느냐? 씨는 말씀인데 참 말씀, 예수님자신이고 하느님이고 성령이고 삼위가 말씀이라 말이야. 그런 인제 옥토래야 인자 삼십 배, 육십 배, 백배가 된다. 옥토란 말은 뭔 말인가? 옥토 옥(沃)자가 삼수변에 뭣 있어요? 일찍 죽을 요(夭), 정과 욕심을 일찍 십자가에 못 박은 영혼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그게 옥토에요. 그 외에는 세 가지 땅 아무리 가꿔 봐도 헛수고라. 옥토란 말은 언자 완전히 자기 부정하고 성령 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사랑, 평화, 기쁨,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있지만은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평화와 기쁨이란 말이야. 거기서 언자 또 여덟 가지 열매가 맺죠?

 

갈라디아 5장에 21절서 25절까지가 성령의 열매인데

그 열매가 아홉 가지가 있는데 세 가지는 자기가 갖춰야 할 것이다. 주관이라 말이야. 주관, 거기서 인자 세 가지에서 인제 여섯 가지가 나온다. 여섯 가지를 또 둘로 나누면 대인관계 사람을 대할 때 행동, 세 가지, 또 대신관계 하느님을 대할 때에 세 가지 행동이라 말이야. 그래서 게 여섯 가지는 인자 객관적이고 주관적은 세 가지, 사랑, 평화, 기쁨 요걸 갖춰 놓으면 사람을 대할 때 행동이 나타난다.

객관적으로, 또 하느님을 대해서 어떤 행동을 그서 한번 구비해보고 고만하죠.

 

갈라디아5장21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평화, 기쁨평화 세 가지가 갖춰 지면은 언자 먼저 객관적이라 그래 객관적, 나 이외 다른 사람을, 그러면은 오래 참는 거요. 참는 거, 또 이건 대인관계니까 대인관계, 오래 참아, 다른 사람이 아무리 잘못해도 그건 내 잘못의 그림자가 내 탓이다. 그러고 참아, 참아, 참고, 또 자비, 자비, 양선, 어질고 선하다. 요 세 가지가 인자 대인관계라면 언자 대신관계에서는 하느님 앞에는 충성, 온유, 절제, 자기를 제거해요. 자기를 부정해. 항상, 자기를 버린 거요. 자기를, 자기감정의 요구를 억제한다고. 그럼 인자 요것이 아홉 가지 열매거든요.

 

이와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은 없어요. 어느 법이 이걸 금지 못해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24절에 이렇게 못 박아진 사람은 이렇게 아홉 가지 행동이 행해진다 말이야.

첫째 세 가지만 갖춰지면 여섯 가지는 필연적으로 된다는 거야. 문제는 세 가지가 문제 주관적으로, 참사랑, 원수도 사람을 사랑하라. 그 다음에는 평화, 기쁨, 희락이라고. 기쁠 희(喜) 즐거울 락(樂) 희락. 평화. 요 세 가지만 갖춰지면 사람을 대하나 하느님을 대하나 누구를 대하나 원만하다. 그 내용이 24절, 다시 말하면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만이 그렇게 된다 그 말입니다.

 

또 25절은

만일 우리가 성령 따라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하여 성령만 순종하면은 성령으로 행해진다는 거야.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하셔요. 성령께 절대 순종만 할 것뿐이라. 내가 할 것은 없다. 나는 없으니까 기쁘고 순종할 거 감사할 것뿐이지 없다. 자기란 없으니까 자기가 있을 때 염려가 있고 모두 핑계가 있고 이유가 있지. 자기가 없으면 이사야 선지자는 아무 핑계가 없잖아? 자원하잖아요? 누구를 보낼 꼬? 하 아아, 제가 여기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소서. 이 자원한 거야. 그것이 복음적인 태도입니다. 자원은, 기쁨으로 한 거야. 그래 어디가 했냐면 말도 안 듣고 죽임을 당하고 그럴 때거든요. 그런데만 나 보내주시오.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니까 백번 만 번 죽을 것도 없습니다. 만 번 죽을수록 더 좋습니다. 모세는 왜 사양을 하느냐? 자기는 안 죽었어요. 자기 생각하니까 안 갈라 그래요. 자꾸 사양해. 내가 있느냐 없느냐 그게 문제란 거야. 모든 문제는 내가 하려는 건 안 되는 거고 그리스도가 하면 된다. 자기 없고 자기 안에 그리스도면 다 된다 복음적인 태도는 항상 자원하는 것이고 기쁨이고 율법적인 태도는 항상 핑계를 대고 이유를 붙이고 안 할라고 그러고 따지고 그거에요. 그게 달라요. 자기가 있단 거야. 율법을 제대로 하려면 자기 부인하라 는 말이야. 갇히라. 자유 말라는데 자유를 해요.

찬송합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런 변모

변화를 받아야 된다. 변화, 땅에 속한 마음이 영에 속한 마음으로 바꿔진다는 거야. 변화, 엿 새 후에 예수께서는 베드로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만을 데리시고 바로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다. 그 때에 예수의 모습이 그들 앞에서 변하여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났고 옷은 빛과 같이 눈부셨다. 그리고 난데없이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람의 말만 듣지 말고 주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들으라는 거야.

우리들은 아직 주께서 친히 하신 말씀 못 들었다 말이야. 사람들이 증거 하는 말만 들었지. 또 친히 보고 성경보고 사람한테 듣고 그 뿐 아니죠? 그러면 인자 친히 하신 말씀을 들어야 된다고.

 

그 다 봅시다.

하나님 말씀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분명히 계실 것 아닙니까? 계시니까 숨을 쉬고 말을 하고 또 나쁜 짓도 하고 선한 짓도 하고 살아서 움직이는 자체는 하느님이 계시다는 증거라 말이야.

우리 숨 쉬고 있죠? 살았다는 증거 숨을 쉬어 숨이 딱 막히면 죽죠? 숨 속에 예수님은 계시다. 누구든지 계신데 내가 그걸 깨닫지 못 한 것뿐이에요. 하느님의 모든 말씀이 아니 만물이 하느님 말씀으로 됐으니까 만물 속에 다 계시지 안 해요?

그래도 못 본다는 거야. 그걸 볼 수 있는 눈이 예수님 눈이고 영안이라 그래요. 그렁게 우리 생활은 예수만 보여야 한다.

 

 

이것 여기 세 간데 다 봅시다.

마가복음9장2절~8절 변모 마가복음9장2절~8절.

누가복음엔 나오거든요. 뭔 말했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다른 제자들과 함께 겁에 질려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입으로 퉁 나와서 했기는 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까 내가 어찌 이 말을 했는고? 바로 그 때에 구름이 일며 그를 덮더니 더 보태졌구만. 잘 들어라. 그의 말을 잘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자들은 곧 여기는 하나 빠졌네요. ‘두려워 말고 일어서라’ 그 말이 없네요. 제자들은 곧 주위를 둘러보았으니 예수와 자기 이건 하나 더 보태졌습니다. 아까 저기는 예수밖에 안 보였는데 언자 자기도 보이네요. 예수와 자기들 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 생활이 예수를 참 믿는 사람은 자기와 예수밖에 안보여야 된다고. 자기 외에는 전부 예수라 그래. 그렇게만 보이어야 되는데 잘못 본다 말이야. 욕심의 눈으로 보니까 모두 잘못 보여. 자 그러면 아 함께 겁에 질렸다 말 없구만요.

누가복음 9장으로 갑니다. 28절서 36절인데 여기는 제일 절수도 많고.

28절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이 말씀을 하신 뒤에 여드레 쯤 지나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다. 예수께서 멀지 않아 예루살렘에서 이루시려고 하시는 일, 곧 그의 죽음에 관하여 예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기 내용은 뭐에요?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멀지 않아 십자가 진다. 전 인류의 대표로 예수님이 죄 짐을 진다. 전 인류의 죄를 예수님이 혼자 도맡아 져요. 죄는 내가 지었는데 죽게 생겼다 말이야. 인제 살길은 인자 예수님이 대로 벌을 받으시고 죽으시고 우리를 살린다 말이야. 이것이 믿는 거여. 이것이, 예수님이 내가 죽을죄를 지었는데 죽을죄는 내가 지었는데 예수님이 죽으셨구나. 우리를 살리려고 전 인류를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인류대표로 죽으신다. 우리 지금 예수를 믿는 땅에 지구상에 있는 사람만이 아니고요. 구원은 창세전에부터 이루어놨으니까 창세전에 태어난 영혼이나 앞으로 인제 몇 년이 될 런지 모르죠? 지구가 마지막에 몇 억 만 년 후에 일일 런지? 내일일 런지? 그 상황은 몰라요. 그러나 하여간 지구가 마지막에 태어난 영혼도 다 들어간다. 그렇게 봐야 한다 말입니다. 다 구원해놨어요. 놨는데 우리에게 아직 믿지도 안하니까 통지도 안 왔어요.

 

예루살렘에서 이루시려고 하시는 일 곧 그의 죽음에 관하여 예수와 함께 이야기 하였다. 세 사람이 함께 이야기하는 내용이 뭐냐? 십자가 진다. 얼마 안 되어서 십자가 진다. 그 얘기를 했는데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깊이 잠 들었어요. 긍게 그 얘기소리 못 들었어요. 그동안에 잠이 들어버렸어요. 잠들었다가 깨나서 보니까 예수님의 얼굴이 막 찬란했죠? 빛났죠? 예수의 영광을 에러 이거 말씀을 했기 때문에 못 알아들었어요.

 

33절

두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십자가 질 일.

떠나려 할 때 베드로가 나서서 선생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선생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습니다. 하고 예수께 말하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자기도 모르고 한 말이었다. 요 33절이요.

 

금방 자기가 말해놓고 그 말이 뭔 말 했는지 잊어 버렸다는 그 말 아니죠? 그러면 여기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자기도 모른다. 그 말은 금방 자기가 발표한 말을 모른다. 그 말이 아니고 제자들은 대개 어부들이니까 그물이나 배나 어구들을 다 버렸고 부모 친척, 형제, 자매, 다 자녀도 다 버린 거여. 내놨다 말이요. 내놓고 예수의 생활을 그대로 하겠다고 따라 나선 사람들이거든요. 근데 그 그런 제자로써 또 땅에다 무엇을 초막을 셋을 짖냐는 거야. 막상 초막을 셋을 지어서 세 선생님을 모셔 논다 하며는 무한한 그 영계에 가서 있다가 온 분들을 초막에다 딱 가둬 놓는다고요. 그 마음이 얼마나 좁아요? 우주 어디다 비할 데 없는 넓은데 사신 분들이 왔다가 인자 잠깐 마지막으로 말씀하고 올라가는데 올라갈 것인데 땅에다 초막 속에다 딱 가둬놔요? 생각이 좁죠? 그만큼 마음이 좁아요. 좁아, 이 보이는 우주만 해도 한계가 없는데 천국이 어떻겠는가? 천국은, 천국이 이 우주가 천국 안에가 지구도 있고 이 우주가 다 있는 것 아니에요? 이 우리는 천국 안에 살면서도 모르는 거예요. 지금 다 뭣이 가려있으니까 눈만 떠버리면 그가 천국인데 눈을 감고 있는 거예요. 뭣이 가리고 있다 천국이 어디 한계가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다 천국 안에 있는 거라고요. 긍게 그 생각 좁아요. 그리고 제자로써 다 버리고 따라온 사람으로서 무엇을 또 땅에다 세운다는 거. 집을 진다는 거 다 어리석다고 말이야. 좁아요. 좁아. 그리고 또 아까 깊이 잠들었기 때문에 못 들었는데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이야기했잖아요? 십자가 진다 말이야. 그런 게 자기 스스로의 태도가 아닌 소리, 다 버리고 따라다닌 사람들이 또 땅에다 무엇을 하느냐? 그 무엇을 하냐? 게 세상에서 무슨 바라는 욕심은 안 버렸다 말이야. 물질은 몸 자체가 물질이니까 몸에 따른 모든 것 다 버려야 하고 자기 마음도 버려야 하고 그런 건데 하나도 안 버렸다는 거야.

이때에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아들 내가 택한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어라. 주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36절

제자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자기들이 본 것을 얼마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안했다 그 얼마동안이 어느 때일까요? 기간이 어느 동안? 오순절에 성령받기 전, 받기 까지, 성령을 받으면 언자 성령이 말을 해요. 그 제자들의 입을 성령이 쓰셔가지고 그리스도를 증거 하죠? 그러기까지는 말을 안 한다. 그 말입니다.

 

자 그러면 친히 들은 말씀 그거 하나 어이 찬송하나 듣고.

주께서 하신 말씀을 친히 듣고 그대로 사는 사람의 예를 하나

사도행전22장6절 이하에서요. 친히 하신 말씀을 들은 사람의 생활 어떻게 살았는가?

자기 개종을 설명하는 바울로.

길을 가다가 오정 때 즈음에 갑자기 하늘에서 찬란한 빛이 나타나 내 주위에 두루 비쳤습니다. 내가 땅에 거꾸러지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 하느냐? 하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나는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다. 하는 대답이 들려 왔습니다. 그 때에 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그 빛은 보았지만 나에게 말씀하신 분의 음성을 듣지 못했어요. 같이 동행했지만은 바울사도만 들었어요. 듣지 못했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베드로사도는 부자가 천국가기가 뭣같이 어렵다. 어려우니까 죄는 다 버리고 따라왔는데 무엇을 얻으리까? 그랬거든. 얻고자하는 마음보니까 다 안 버렸어요. 무엇을 안 버렸겠습니까? 자기를 안 버렸어. 자기, 자기 원, 원한 거 무엇을 원하고자 하는 원을 안 버렸어요. 생각, 그러니까 자기 몸도 다 안 버린 거죠. 자기 마음, 안 버렸다 말이야. 얻고자 하는 거 소원을 소원은 마음에 소원이 있다 말이야. 땅에 뭣이 있어. 땅에, 그러니까 그 초막 셋 짓는다는 말이 나온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밥은 어째서 먹죠? 살랑 게먹죠? 살아서 뭣하게요? 아 일하죠. 그럼 일하기 위해서 먹느냐? 살기 위해서 먹느냐? 힘을 얻어, 뭔 먼저 힘을 얻어야 되니 일할 힘은 먹어야 되니까. 응 목적이 일이 아니고 먹는 거만 목적하면 짐승만 못해요. 사람다운 일, 하느님의 자녀다운 일,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일,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자 무슨 일을 하면 쓰겠습니까? 내가 이렇게 물었더니 예수께서는 일어나라. 먼저 일어나라 말이야. 일어서서 일어나서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그제 가면 네가 해야 할 일을 모두 알려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이는 능력이야. 눈이 떠서 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14절

그 때 아나니야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뜻하신 바를 깨닫게 하시고 그 죄 없으신 분을 알아보게 하시고 이 세 가지 아주 중요한 말씀이에요. 또 친히 하시는 말씀을 듣게 하시려고 당신을 택했습니다. 이렇게 갈쳐준다 친히 하신 말씀, 그의 말만 들으라는 거야. 친히 하신 말씀만 듣고 예수밖에 안보여야 한다 말이야. 모두가 예수로 보이어야 한다. 예수의 눈을 가졌으면 모두 예수에요. 당신 몸이라 말이야. 만물이 그리스도의 몸이에요. 몸으로 보인다. 요 세 가지 첫째가 뜻하신 바를 깨닫는다. 그러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하느님이 다 계획이 있어요. 뜻이 있어요. 섭리가 있다 말이야. 설계해놨어요. 영혼은 엇다가 어느 장소에서 단련시켜 가지고 데려와야 한다. 데려올 것이다. 계획이 있다고 자기가 있는 위치가 제일 하느님이 딱 작정해놓은 장소라고 믿어야 돼요. 다른 장소 탐낼 필요가 없어요. 그 자리가 내게 있어서는 가장 적절한 자리요. 내 정도에 딱 맞도록 허락한 장소라고 믿어야 된다고 어디 바꾸려고 할 필요도 없고 거기서 인자 잘 마치면 또 더 좋은 과정 허락이 된다 말이야. 허락된 대로 내가 스스로 만들 것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