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금밭에 어제부터 물을 주고 있다. 지역에 따라 폭염주의보가 있다. 일하지 않는 나는 아직 더위를 모르겠다. 날마다 오이 덩굴이 힘차게 뻗어나간다. 오장로님의 글을 올린다.
겸손과 교만
1998. 1. 15
그 겸손과 교만. 겸손은 말이지. 빌립보서2장1절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
너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서로 격려해 줄 마음을 서로 격려해 줄 마음가짐이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은 나를 도울 마음이 일어날 만큼 나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까? 우리가 함께 성령을 받았고 주님 안에서 형제가 되어 있다는 참다운 의미를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애정이 있고 동정심이 있습니까?
2절 그렇다면 서로 사랑하고 서로 마음을 열어 화합하십시오. 마음을 열어 화합하십시오. 마음과 한 마음과 한 생각과 한 목적을 가지고 함께 일하여 내 마음을 기쁘게 해 주십시오. 이 바울사도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이죠. 이미 죽었으니까. 내 마음을 기쁘게 해 주십시오. 자기 본의가 되거나 자기중심. 자기 본의가 되거나 남에게 과장된 행동을 하지 말고 겸손하게 남을 존경해 주십시오. 겸손이 뭐냐? 남을 높이는 거예요. 자기는 내려가고. 남을 높이기 위해서 내려가야죠. 자기 본의가 아니 자기중심이 되거나 남에게 과장된 행동을 하지 말고 겸손과 남을 존경해주십시오.
4절.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지 말고 남에게도 눈을 돌려 그들의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십시오.
5절.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자세를 본받으십시오. 요거는 공동번역만 못하죠.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 마음은 여러분의 마음으로 가지십시오. 말하자면 예수의 마음을 가지자는 말이에요.
6절.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이면서도 하느님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거나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큰 능력과 영광을 버리고 종의 형상을 취하여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아니 훨씬 더 자기를 낮추어 죄인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인제 겸손하면 인자 온전히 예수는 죄가 없는데 너희들 죄 때문에 죽었다 이거여. 죽은 것이 겸손이야. 나라는 것이 있으면 교만이라. 이 모든 한계가 겸손과 교만의 한계가 뭐냐? 조금만 내가 있어도 교만이고 내가 없고 그리스도만 있으면 겸손이라. 이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하늘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일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의 이와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입을 모아 주 예수께서는 주 예수그리스도는 주인이시다 하고 고백하며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13절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 안에 계시면서 순종하는 마음을 일으켜주시고 하느님께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여러분을 도와주십니다. 순종도 나오고 겸손도 나오고.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을 하거나 다투지 마십시오.
이거 14절이여. 그러면 어떨 때 불평이 나오겠죠. 불평이 심하면 다툰단 말이여. 어느 때 여? 어째서 나오느냐 이거여. 내가 있으니까 그래요. 나란 것이 있으니까. 내 감정이 안 맞으니까 불평이 나오는 거거든. 음악회에 참석해가지고 불평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여. 감정이 모두 맞거든. 영에 맞는 것은 모두 불평을 해요. 영에 맞는 것은 감정이 싫어한단 말입니다. 쓰니까. 그래 인자 불평이라는 거는 내가 있은 만큼 나오는 거야. 땅에 속한 나. 영에 속한 나가 아니고요. 성령 안에서 불평이 있을 리가 없죠.
에베소서4장3절 봅니다.
평안의 줄로 하나가 되게 하는 성령이 성령께서 평안의 줄로 하나가 되는 것을 힘써 지키라잖아? 성령 안에서 불평이 있을 거 없어요. 육의 속을 맞추려니까 성령을 거슬러서 불평이 나와요. 불평이 없으면 좋겠는데 내가 있으니까 나와요. 나를 아직 십자가에 장사지내지 않았단 말이여.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지키라. 성령은 평화로 거룩 이고. 거룩 평화. 성령의 줄로 하나.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란 말이여. 성령은 주로 거룩한 영과 하나 되게 한다.
데살로니가후서2장13절.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느님께 감사할 것은 하느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니라. 성령은 주를 거룩하게 하고 평화롭게 하고 하나 되게 하는 거예요. 또 성령은 많은 환난 중에서 말씀을 받기 위해서 그 환난이 기쁨으로 바꿔진다야.
살전(데살로니가전서)1장6절7절 봅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모범이 되었더라. 믿는 것은 환난을 기쁨으로 받는다. 그것이 모범이란 말이야. 그것이 믿는 거여. 믿음이 모범. 믿는 것은 환난을 기쁨으로 받는다. 그러니 기쁨으로 못 받는 것은 감정으로는 못 받죠. 겉 사랑으로. 속사랑만이 받을 수 있다. 겸손. 교만은 나란 말이야. 나. 내가 있으니까. 성경 하나 더 봅니다.
미가6장8절
거기 겸손이 나와요. 6장8절인데. 6절서부터 봅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느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하느님은 예물이 아니란 말이여. 물품이 아니에요. 창조주가 무엇이 아쉬운 게 있겠어요? 다 당신 것인데.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히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물질로 봐서는 무엇이든지 당신의 것이지. 뭐. 내가 내 것이 또 없는데 하느님 것을 내가 바친다, 여.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인하여 내 몸의 열매 행동 안 된단 말이여. 마음으로 회개를 해야지. 인간의 행위 그런 거.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절이요.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선이 무엇인가? 하느님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거. 여기도 있지. 여기도. 요구하시는 거. 하느님이 내게 바라시는 거. 무엇을 요구 하시는가 말이여. 요구하시는 것이 오직 정의를 실천하라. 그러죠. 공동번역에 정의를 실천한다. 여기는 그럴 거여. 오직 공의를 행하며 요거여. 공의. 정의 공의. 공의(公義)가 무엇인가? 공의(公義)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인자는 ‘어질 인(仁)’ ‘예쁠 자(慈)’ 인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인자. 자비심이여 인자. ‘어질 인(仁)’ 어진 마음. 또 인자를 사랑하며. 공의(公義)를 사랑하며. 공의(公義)를 행하며. 공의(公義)가 뭐입니까? 말만 기억해가지고는 소용없다고. 공의가 무엇인가? 인자 공의대로 사는 사람을 성경에서 대보면 되요. ‘여덟 팔(八)’밑에다가 ‘사사 사(厶)’자야. 그게 공(公)자인데. ‘사사 사(厶)’는 삼각이여. 사(厶)를 딱 갈랐단 말이여. 깨쳤다. ‘여덟 팔’자는 깨쳤다. 선과 악을 딱 구별했다. 나눴다 여. 그것이 공(公)자여. 나라는 것이 없어요. 사가 없어요. 쪼개버렸어. 공은 이제 하나로 돼. 공. 말하자면 나사로 생활이 그렇잖아? 내 집 내 것이 없어요. 내 몸도 없어요. 내가 아무것도 소유가 없어. 그것이 공생활. 하느님의 죽은 뒤에 내가 없으니까 하느님의 자녀로서 이제 하느님의 가족이란 말이야. 하느님의 가족으로 들어가는 것이 공이에요. 이 땅에 속한 거는 아주 사적이란 말이야. 몸이에요. 사적이라. 땅은 몸이니까. 양상이 내 몸을 따라가는 거는 사야 사. 단체 안에 있어도 내 나를 위해서 있으면 사란 말이야. 그것이 공을 이용하는 것뿐이지. 공을 위해서 내가 없이 봉사해야 돼. 나를 가지고 봉사한단 말이야 항상. 이것이 사적이잖아? 이 단체 안에서도 또 출발해야 되어요. 나. 내게서 벗어나야 되요. 나를 초월해야 한다고. 내 감정에 내가 있으면 항상 사란 말이야.
제가 이 선생님 처음 만나서 쭉 교제한 중에는 한 번도 나란 말을 못 들어봤거든. 나. 사가 없다. 사가 없는 분이다. 나가 없다. 누구는 그렇지만 남이야기를 한다. 누가 이러더라. 누굴 비판하는 소리를 못 들어봐. 긍게 처음에 인자 그 이 세종 선생 밑에서 지도받는 사람도 여럿 있지 않습니까? 다른 분들도 모두 서로를 비판 하더란 말이야. 근데 이 선생은 아무 그런 말이 없어. 아 요거 옳다. 그거 진짜로 알 수가 있어. 나란 말을. 누구 비판하지도 않고 내게 대해서 뭐 세우는 것이 없어요. 그래서 아 사가 없는 분이구나. 참 지도자 되겠다. 한 번 말한 말을 들었거든요. 내가 죄를 고백할 때 저는 독사에 행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나는 독사의 왕이요. 그러거든. 긍게 가까워진단 말이여. 나는 죄인 중에 죄인이요. 그 말이야. 그게 복음, 복음 아니야? 왜 그랬느냐? 하면 반발이 생길 텐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는가 말이여. 근데 더 죄인이라 그래버리니까 가까워져버린단 말이야. 그럴 때면 아. 다른 사람에 죄에 대한 책임을 내가 진다야. 그러니 너 나가 있으면 항상 이것이 갈라진단 말이여. 그거 네 탓이다. 내 잘못이다. 아담부터가 처음부터 하느님잘못이요. 왜 그런 여자를 나에게 주었소? 인자 탓하는 거. 항상 나란 것이 있다. 땅에 속한 나. 복음적은 뭐냐? 모든 사는 사람의 죄는 내 탓이란 말이야. 나라가 부패하고 종교가 부패하고 그거 내 탓이라고 봐야 돼. 나가 겸손해야 되는 거여. 요 단체 안에 있으면 단체가 모두 잘못되면 내 탓이다. 그것이 되어야 하는데. 모두 누구 탓이다. 누구 탓이다. 환경 탓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잘못된 것은 전부 내 탓이고 잘된 것은 전부 그리스도지. 죄에 대한 것은 내가 책임져야하고, 의로운 것 선한 것은 다 예수야.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 내게는 선이 없어요. 그러니까 잘못했다는 말은 다 받아야 되고 아무리 잘했더라도 내 책임이니까. 그러면 그 있는 곳이 하늘나라 아니겠느냐 말이여.
모든 잘못은 내가 책임지고 잘한 것은 하느님께로 영광 돌리고. 환경 탓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어요. 공의. ‘옳을 의(義)’자는 어떻게 하냐? ‘옳을 의(義)’자. ‘양 양(羊)’밑에 ‘나 아(我)’가 있단 말이야. 옳은 것은 뭐이냐? 예수님과 하느님의 어린 양과 나하고 하나 되는 거란 말이여. 그것이 옳은 거야. 또 정의라 그러면은 ‘바를 정(正)’자는 한 일(一) 밑에 그칠지(止)하는 거여. 그것이 순종이란 말이여. 따먹지 마라. 예. 순종. 바를 정(正)이잖아? 순종이에요. ‘한 일(一)’ ‘그칠 지(止)’여. 한가지만은 순종하란 말이여. 따먹지 마라. 그것까지 어겨버리니까 세상이 어디로 가나? 전쟁. 싸우는 거야. 뺏으려고 그러고. 정의. 순종하면 예수와 하나 된다. 순종. 인자를 사랑하고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해. 인자. 자비심. 불쌍히 여기는 마음. 겸손이 네 하느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겸손은 뭐이냐? 예수와 예수 안에 만이 겸손이란 말이야. 예수 안에서는 빛이니까. 예수는 빛이란 말이야. 나는 어둠이거든. 어둠 안에 빛이 들어와 버리면 어둠은 없어지잖아요? 긍게 예수 안에만 겸손이란거야. 내가 있으면 교만이야. 부(富)고 악(惡)이고. 겸손.
그럼 인자 여기. 그쯤 보고요. 교만의 한계입니다. 교만은 고린도전서 8장1절서 3절.
고린도전서8장1절. 우상 앞에 놓였던 제물.
이제는 우상 앞에 놓였던 제물에 관하여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다 지식이 있다고 여러분은 말하는데 사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한다야.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 나다 하는 거. 그리스도 안의 지식은 겸손이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겸손하게 하고 그리스도를 모르는 지식은 내가 있으니까 교만하다. 고 한계여. 내가 안다 하는 건 교만이야. 나는 알았다. 지식 있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 멸시한단 말이야. 그것이 교만이야. 무식한 사람 속에가 참으로 겸손이 있고 올바른 지식이 있는데. 교만하게 합니다. 이것이 지식.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한다. ‘내심락원’을 쓴 분은 신학박사죠? 얼마나 겸손한지 몰라. 진리를 꼭 알아야 쓰겠다는 거여. 그러면 영혼의 생사가 있어. 진리를 모르고 하는 거는. 그 참이니까. 박사가 되어가지고도 진리를 알고 싶어 하는. 고민 이제 하는 거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어느 지방으로 가야 진리를 가르쳐줄 사람을 만나겠습니까? 고 한 가지 문제만을 18년 동안이나 구했으니까 말이야. 얼마나 진실하고 얼마나 겸손하냐는 거야. 그만큼 겸손하니 그 길이 안 이루어지겠습니까? 18년 동안이나 구했는데. 꼭 한 가지 문제만을. 신학박사가 되어가지고 말이야. 표면적으로는 신학박사인데 내용은 그렇게 진리를 알아야 쓰겠다. 이거야. 얼마나 겸손해. 참을 알아야 산다. 자기는 참이 못 된다. 이거야. 그 박사가 되어갖고도 뭣을 아느냐 야. 박사는 모든 걸 안다 통했다 그 말인데. 모든 건 아니죠.
그 하나. 전문적인 한 가지 통했다 그러면 박사가 돼. 의술을 가지고 있으면 의술의 의학박사면 의술에 대한거지. 인자 누군가. 슈바이처인가 어떤 사람은 한 댓가지. 박사가 있어. 음악박사도 되고 의학박사도 되고 여러 가지 박사. 여러 가지 박사 한 사람이 있지마는 대개는 하나이니까. 철학, 신학, 의학. 근데 자기란 것이 교만이야.
나라는 것이 교만하게 하고 반대로 빌립보3장6절 보면요.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핍박 박해하였던 사람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나는 조금도 흠이 없어요. 율법을 지키는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유익했던 것은 유익했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장애물로 여긴다. 장애물. 그 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장애물로 생각함이다. 나에게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 예수를 아는 지식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합니다. 그 이상 좋은 것은 없다야. 높은 것이 없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려는 것입니다. 긍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아주 겸손하게 하고 그리스도를 모르고 자기만 자기가 있는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자기가 있는 지식은 나란 것이 있는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자기가 없고 그리스도를 그리스도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겸손하게 하고 그래요. 자기가 없으니까. 자기가 있고 없는 만큼.
아까. 또 마태복음11장25절30절에 한번 봐요.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에게는 나타내보이심이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이게 공동번역 같으면 안다는 사람과 똑똑한 사람에게는 천국 비밀을 숨긴다 이거야. 숨기시고 철부지 어린아이에게 나타낸다. 이것이 아버지 뜻이니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다.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하느님만이 예수를 알아본단 말이여. 또 아들 예수님만이 아버지를 알고 하느님을. 알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습니다. 이 사람도 하느님을 아는 사람도 뭐냐? 철부지 어미에요. 또 예수님 하느님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택한 사람이 란 말이여. 예수님이 뽑은 사람이여. 하느님을 가르쳐줄라고.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겸손.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편안할 것이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 가벼워. 쉽고 가볍다. 여러분 말씀 드리는데 왜 쉽고 왜 가볍습니까?
예수님이 끼워준 멍에는 왜 쉽고 가벼워요? 편하고. 28절대로 보면.
무거운 짐 이제 달라. 그랬으니까. 짐을 가지고 오라고 안했거든. 다 버리고 오라고 했으니까. 들기에는 힘이 들지요. 있던 걸 놔버리는 건 힘이 안 들잖아? 예수 따라가는 건 다 놔 버리는 거예요. 가졌던 것도 놔 버리는 거예요 다. 이거 쉽잖아요? 들라면 힘이 드는데 이거 뭐 가진 것도 다 놔 버리란 말이야. 부자는 바늘귀로 낙타가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면. 이 베드로사도가 그 말을 듣고 모든 걸 버려야지 무엇을 얻으리까? 그랬단 말이여. 그 무엇을 안 놓았어요. 마음의 욕심은 안 놓았단 말이여. 다른 것은 모두 귀찮은 게 버렸다 하지마는 그 마음의 원 얻고자 하는 원은 안 버렸단 말이여. 높은 자리랄지 편한 자리랄지. 영광 받을 자리랄지 그런데는 안 버렸단 말이여. 멸시 천대받을 자리는 싫어하고. 안 버렸다. 마음에 있는 걸 버려야 하는데 그걸 안 버렸어.
마음이란 말은 만다는 말 쓰거든요. 몸이라는 말은 모았다 모아있다. 몸은 모두 이제 물질 요소를 모아 놨다 여. 흙이야 물이야 모두 합해져있다. 공기 전부 모아진 거여. 그것이 몸인데 마음은 인자 뭐이냐? 마음이란 말은 만다 해서 마음이여. 예수 믿는 것은 모든 일을 욕심 부리는 일을 말고 따라오라. 이거 쉽죠? 말은. 그러면 몸은 누가 돌보냐? 바쳐버렸으니까 예수님이 돌본다여.
고린도전서6장13절에 있잖아요? 몸은 누가 돌보는가? 누구나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해서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과연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무엇에게도 얽매이지 않아요. 뭘 하긴 하는데 거기 메이지 않아요. 우리는 일에 끌려 다니느냐? 일을 내가 처리를 하느냐? 그런 이야기입니다. 사무에 내가 매여 있어. 끌려가는가? 내 마음에 어떤 일이든지 착착 처리해 가는가? 고거 큰 차이가 있잖아? 마지못해 끌려가는 것 하고 내가 착착 지배하는 거 하고는 다르니까. 정신이 다르다 여. 무엇이든지 할 자유가 있지마는 거기 얽매이지는 않아요. 지배하지. 환경을 지배해야지 환경에 끌려가지 않는다 말이여. 신앙은 환경에 매이는 것이 아니거든요. 환경을 이끌어가고 또 변화시키고 새로 창조해 나가는 거여. 환경. 환경을 날로, 날로 새롭게 하는 것이 자기 일이에요. 억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란 말이여. 마지못해서 끌려가는 거여. 얽매이지는 않는 것입니다. 또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다고 말 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것도 저것도 다 없애버릴 거여. 몸은 음란하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님을 섬기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몸을 돌보아 주시는 분입니다. 섬기라고 바쳐버렸으면 말이여. 주님의 몸으로 바쳐버렸으면 얽매일 것이 없는데 몸에 대해서 얽매이는 것은 안 바쳤다는 거 아녀? 모든 문제는 내게 있어요. 내게. 내가 없으면 문제가 없고. 저기 하나 더 보고.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있나이다. 믿었나이다. 알고 믿었다. 믿고 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 안에 사는 자는 하느님 안에 살고 하느님도 그 사람 안에 사십니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완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 어떤 심판도 달게 받고 오기를 기도할 정도로 빨리 오기를 베드로서3장에 마찬가지로 심판을 미루려는 것이 아니라 빨리 닥치기를 기도한단 말이여.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이제 18절.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두려움이 없어. 온전한 사랑은. 하느님이니까. 두려움을 않는다. 쫓아낸다 말이여. 쫓아낸단 말이지.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완전한 사랑을 갖지 못했다. 그거 왜 두려움이 있는가? 그거에요. 완전한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는데 왜 두려움이 있겠냐 이거에요. 내가 있다야. 땅에 속한 내가 있어요. 내가 있고 없는 문제야. 하느님 안에 있으면 두려움이 없는데 내가 지금 하느님 밖에 있단 말이야. 나. 나란 것. 땅에 속한 나가 있다야. 그러니 죽을까 무섭죠? 두렵죠? 몸이 쓰단 말이야. 몸은 고통을 싫어한단 말이여. 병들까 무섭고 죽을까 무섭고 그렇다. 몸만 생각하니까. 참으로 믿는 사람은 병을 바라고 오히려 더 축복으로 알고 속으로 기뻐하는데 말이야. 기뻐하는데 나 같은 사람은 병을 무서워해. 아유 안 왔으면 좋겠고. 그건 내가 있다는 거야. 내가 있다하면.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였음이라. 이 사랑은 위에서 주신 사랑이여야지 감정의 사랑으로는 안 된단 말이야. 감정의. 누구든지 하느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이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단 말이여.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서 받았어. 주께로 받은 거여. 이 사랑. 사랑은 받아서 하는 것이지 내게는 없거든요. 믿음으로 받아가지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한문글자에요. ‘나 여(余)’자가 있어. ‘나 여(余)’자 두 가지로 쓰는데, ‘나 여(余)’ ‘취할 여(余)’ ‘줄 여(余)’ 또 ‘다스릴 여(余)’ 네 가지입니다. 또 뭐냐면 ‘미리 미(未)’자 약자로서도. 미리. 예정. 약자. 이렇게 너 댓 가지됩니다. 나라는 것은 은혜를 받아야 되거든요. 사랑을 받아야 돼. 취했어. 받았으면 거저 받았으니까 거저 줘라 이거야.
마태복음10장5절서8절서 보면. 마태복음10장8절에 있단 말이야.
거저 받은 것이야. 받았으니 거저 줘라. 또 돈을 들여서 자금을 들여서 얻었으면 또 도움을 받아야죠. 자금을 들인 것이 아니고 거저 받았응게 그저 줘라 에요. 준다. 아까 마태복음11장 쉽다. 쉽다. 쉽다는 ‘쉬울 이(易)’ 자랑 ‘바꿀 역(易)’자거든. 준다. 그러면 인자 ‘줄 사(사)’자가 있어요. ‘줄 사’ 그럼 인자 그걸 하나 써야죠. ~~~. 이거는 ‘나 여(余)’자여. 요렇게도 쓰고 요것도 ‘나 여(余)’자고 요것도 ‘나 여(余)’자여. ‘나 여’자인데 인자 이거는 ‘취할 려’여 ‘취할 려’ ‘줄 려’ 준다는 거여 또 ‘다스릴 려’ 다스린다는 거는 이거여. 요거 뭔 자야. 정치 ‘다스릴 치’자여. 무엇을 다스리냐? 요거이 뭔 글자냐? 태를 두고 ‘별 태(台’)이고 ‘나 이’자여. 나를 다스려. ‘나 이’자인데. 인자 ‘줄 여’ 요거는 ‘자기 폐’자 지마는 폐물 돈이란 거여. 돈. 이거는 ‘줄 사’자거든. 준다 여. 준다. 요것이 ‘바꿀 역(易) 쉬울 이(易)’ 이게 주고받아요. 바꿔요. 주고 바꿔. 이게 ‘줄 사’자에요. 내 죄는 십자가에 내주고 또 예수님은 은총으로 바꿔줘요. 내 죄하고 은총하고 바꿔요. 어때 쉽죠. 또 이거는 ‘나 이’밑에 ‘말 문’이에요 ~~~~~. 날이 밝으니까 말 것은 말죠. 자연히. 누가 말라고 해서 마는 게 아니라. 요거는 ‘바꿀 역(易) 쉬울 이(易)’ 내 몸에는 쉽고 가볍고 편하다. 쉽다. 왜냐면 바꿔버린다. 죄는 예수 앞에 내놓고 주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준다. 바꿔줘. 죄와 은총을 바꿔준다니까요. 바꿔준다야. 이것이 쉽다. 또 고린도전서47절50절 봐요. 요기서부터 봐야겠네. 요한복음3장13절36절이요.
요한복음3장13절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하늘에서 내려왔다. 예수는 내려왔죠. 내려와서 또 우리를 데리고 올라가요.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또 31절.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자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이거 인자 볼 텐데. 요한복음 6장 38절이란 말이여.
요한복음 6장 38절.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은 예수를 대하여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는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뇨? 42절. 또 6장 62절이요. 그러면 너희가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간단 말이여.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하려느냐?
또 고린도전서15장45절서 보면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 것은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이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단 말이야. 아담.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며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과거에는 흙에 속했어요. 지금도 흙에 속했는지 몰라. 속한 자의 형상을 입었어요. 이 몸은. 없었으나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이거 인자 믿는 것이야. 예수 닮아야 돼. 예수. 예수 맘을 가지야 한다. 그것이여.
요것을 한문으로 씁니다. 한문으로. ‘윗 상(上)’자가 좀 삐뚤어졌어요. ‘윗 상(上)’ 윗사람이란 거여. 윗사람. 보통 요렇게 쓰죠. 이렇게 쓰는데 이게 ‘윗 상(上)’자에요 ‘윗 상(上)’자. 옥편에는 그렇게 안 되어 있어요. ‘윗 상(上)’ 윗사람이라는 거예요. 윗사람. 이것을 ‘써 이(以)’그러죠? 요것도 ‘써 이(以)’자에요. 같아요. 그런데 여기다가 요것을 약해서 쓰면 요렇게 써요. 여기다 인자 ‘나 여(余)’다. ‘나 여(余)’자여. ‘나 여(余)’ 삐침서부터 십자가가 왔다. 삐침 불순종이라는 거예요. 불순종. 삐쳤음으로써 십자가가 왔어. 불순종. 따먹지 말라 했는데 따먹어 버렸단 말이여. 반드시 죽으리라 했잖아요? 그럼으로써 십자가가 왔다. 나는 요거 변해가 나를 제하다. ‘제할 제(除)’ 즐거워. ~~~~제할 거(去) 버릴 거(去) 그거에요. 제거해버린다. 나라는 걸. 제거. ~~ 버릴 거. 근데 요 별에다가 글자가 많지요. 삐쳤음으로써. 한문으로 쓰면요. 요 런 말 있어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거든. 마음에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한다. 이심전심(以心傳心). 성경에도 누구와 누구 사이에 마음과 마음으로 전했습니까? 마리아하고 예수님이란 말이여. 아무 말 필요 없어요. 그냥 마음으로서 통해버려. 마음으로 대화를 해요. 소리로 한 것이 아니라 소리 없이. 마음으로 알아들으니까. 그것이 참 대화거든요. 또 얼굴을 대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야. 천리 떨어져 있어. 몸은. 그래요. 이심전심(以心傳心). 하늘 위에서 오신 예수여. 윗사람 예수의 마음으로 마음을 예수의 마음 가진 사람에게 전한다. 이거에요. 말하자면 예수님 마음과 막달라 마리아 속에 예수님 마음이 있거든요. 통한다는 거여. 하나. 회개해서 이제 예수님 마음을 가졌어요. 똑같은 마음이야. 한마음. 그러니까 이 마음은 만 사람이 모여도 하나에요. 한마음이니까. 예수와 한마음 가졌으니까 몇 억만 명이라도 하나. 내 마음 갖고 가지고 있으면 두 사람 이여도 하나 안 되어요. 내 맘 갖고 있다면. 윗사람 예수의 사람 마음을 가져야 돼. 예수마음. 마음으로써 그러는데 써가 벌써 말미암아서 윗사람으로써 예수님 자신. 또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교훈하신다. 그러고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소리를 안 해도 서로 생각이 상대방에게 통한다이거야. 반대로 하면 인자 고집불통이란 말이 있어요. 서로 내 고집 내 주견만 꽉 갖고 있으면 통하질 않아요. 내 생각 포기를 해야지요. 내 주장만 할 때 요 고집불통. 그래서 오늘 요만큼 보아요. 자. 모든 한계는 내가 있느냐? 그리스도가 있느냐? 그것만 판단하면 되는 거예요. 인자 하나 더 볼까요? 하나. 거기 그 교만에 대해서 교만에 대해서.
사무엘상25장36절39절42절이요. 또 로마서7장4절.
거기 인자 시집갔다. 시집가기 적절하단 말이여. 고거 하나 봐요. 요것은 이 책 시집가기 적절해요. 33페이지에요. 제일 중요한 것이란 말이여. 중요한 거. 첫째 의무는 모든 일에 가장 적절한 시기. 적절한 시기. 시집가기 적절하니까요. 적절한 시기. 시기는 언제일까? 대답은 뭐냐? 바로 지금이에요 지금. 나중에 미룰 것이 아니야. 지금 현재. 지금 뿐이여. 지금 지나가면 나중에 한치 앞을 모르니까. 약속할 수 없어요. 한치 앞을. 전도서7장14 절이네. 공동번역은. 거기 한번 볼까요? 전도서. ‘일이 잘 되거든 행복을 누려라.’ 이거 누구든 할 수 없는 일이죠? ‘일이 틀려가거든 이 모든 것이 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인 줄 알아라.’ 아무도 한치 앞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아라. 약속을 못해요.
내일. 조금 후에. 약속을 못해. 모르니까. 때는 언제든지 적절한 때가 어느 때냐? 예수하고 하나 됐을 때가 적절한 때란 말이야. 때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모든 것이. 예수가 없이 하는 건. 첫째 의무는 세상에서 가장. 아 둘째는 둘째의무는 어떤 인물이 가장 중요한 존재일까? 어떤 인물. 또 셋째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중요한 일. 일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국사를 행할 때 항상 이 세 가지 일로 결정을 내리는데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과 신하들이 별별 대답을 제시하였지마는 임금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급기야 임금은 성인으로 잘 알려진 시골의 은자를 찾아갔어요. 소문이 났어요. 은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은자는 아무 대답 없이 말없이요. 밭만 갈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말 할 수가 없어요. 사건이 인자 먼저 딱 닥치고 닥쳐있을 때 설명할 것도 없잖아요? 근데 인자. 은자는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숲속의 한 청년이 피투성이의 몸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임금은 자기 옷을 찢어서 청년의 상처를 싸매주고 정성껏 간호해 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청년은 임금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젊은 신하였어요. 비로소 그 청년은 임금의 간호에 감격하여 원한의 감정을 풀고 더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겠다고 맹세를 했어요. 임금은 은자에게 세 가지 의문에 해답을 구했습니다. 은자는 해답은 이미 나왔단 말이야. 사건 속에서 이미 나왔다. 나왔다고 대답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을 했습니다.
성경도 우리가 체험한 것이라야 믿어지지 체험한 것이 아닌 것은 믿을 수가 없잖아? 믿어지지가 안 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적절한 시기란 말이야. 적당한 시기. 적기란 말이여.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에요. 그 신하에게 대한 태도. 지금이에요. 지금입니다. 사람이 지배하고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시간을 어떻게 쓰냐 이거야. 지금 뿐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제일 중요한 존재는 자신이 지금 대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 내게 지금 직접 관계하고 있는 사람. 직접 만나는 사람. 모든 사람이 직접 만날 때. 사람이죠.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일은 뭐이냐. 지금 대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에게 정성을 다해서 사랑을 베푸는 일이란 말이야. 뭐 이해타산 생각할 거 없이. 이 일을 하면 내가 손해를 보느냐 이익을 보느냐 그거 생각 없이. 상대편만 위하는 것이여. 자기 몸을 내어버리고. 자기 뭐 고생스러운 그런 거 초월해버리고. 그쪽에다 정성을 다 쏟는 거여. 왕이 되어가지고 옷을 찢어버렸으니 말이야. 옷을 주면서도 누군지도 모르고 말이야. 정성을 다 쏟은 거여. 베푸는 일입니다. 조금도 무슨 손해 이해타산이 없어요. 손해 볼 것인가? 이로울 것인가? 그런 거 없어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 이것이 바로 형제를 깨우치는 길이며 예수그리스도의 선하신 일꾼이 되어 믿음의 믿음, 믿음의 말씀과 선한 교육으로 양육을 받는 길이 아닌가 합니다. 여기도 선(善). 선은 우리 마음속에 하느님이 계시니까. 그 마음대로 마음에 있는 자로 양심에 있는 자로 쓰는 거야.
히브리10장22절. 하나 더 히브리10장22절.
우리의 마음에는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서 나쁜 마음씨가 없어졌다. 나쁜 마음씨가 없어지고.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씻겨 깨끗해졌으니 이제는 확고한 믿음과 진실한 마음을 가짐으로 하느님께로 가까이 나갑시다. 구역에는 독실히 믿고 그 말이 있고요. 또 양심이 자책하는 악을 깨닫고 스스로 자기 양심이 책망을 해요. 자책. 스스로. 자기 양심이 증거를 해요. 이게 아니다 고. 그 죄를 깨달아. 죄는 자기 양심의 말을 해요. 어디 배워서는 못한다. 자책하면 죄를 깨달아.
이제 9장14절보고 그만해요.
하물며 성령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흠 없는 제물로 바친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데나 죽음의 행실을 버리게 하고 살아계신 하느님을 섬기어야 하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세 가지.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힘. 죽음의 행실을 버리게 하는 힘. 하느님 섬기어야 하는 힘. 세 가지 알려주는 것이잖아? 예수의 보혈은 사랑을 깨닫는 마음은 깨달았다면 양심이 깨끗해져. 그 큰 힘이죠? 죽음의 행실. 남을 죽이고 남을 죽이고 이러잖아? 그거를 안 한다고요. 예수님같이 산다야. 그거(죽이는 일)를 끊고, 그것이 진짜 하느님을 섬기는 자란 말이여. 죽음의 행실을 버리고 양심 맑은 양심대로 사는 거. 아까 이 왕은 그 그렇게 산거 아닙니까? 자기 양심껏 간호를 했다. 정성껏 간호를 한 거여. 옷을 찢어서 까지 라도. 그것이 제일 적절한 시기고 제일 적절한 일이고 적절한 인물이고 그래요.
찬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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