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하지고 모래가 단오다. 오래동안 비가 오지 않다가 비가 내린다. 봄갈이가 이제야 끝났다. 농사일이 일군없이 하다보니 늦어졌다. 들깨 모종이 시원찮아 직파를 했다. 처음 해보는 거다. 검은 비닐 멀칭을 하고 씨앗을 직파했다. 씨앗 선종을 하지 않아 농사가 염려된다. 힘이 부치고 농사일이 버겁다.
세속의 원리
1997. 8. 15
그것은 이것입니다 성숙한 자는 모든 재산의 주인이지만 그가 어릴 때는 종이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버지가 정해준 때가 올 때까지 보호자와 관리자의 지시를 받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는 자연숭배에 얽매여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찰 때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시어 율법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을 구원해 내시려고 또 우리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당신의 아들의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씌워 주신 상속자인 것입니다.
계속 보겠습니다. 갈라디아 인들에 대한 바울로의 걱정, 걱정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을 모르고 있을 때에는 본래 하느님이 아닌 신들의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분이 하느님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알고 계신데 왜 또다시 그 무력하고 천한 자연숭배로 되돌아가서 그것들의 종노릇을 하려고 합니까? 여러분이 날과 달과 계절과 해를 숭상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여러분을 위한 내 수고가 허사로 돌아가지나 않았나 염려됩니다.
12절
내가 여러분과 같은 사람이 되었으니 여러분도 나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나에게 잘못한 일은 조금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전에 내가 병을 앓았던 것이 기회가 되어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몸이 건강해서도 복음을 전하지만은 특히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있어서는 몸에 병이 있어서 갈라디아 교인들을 접촉하게 된 겁니다. 이 병이 영적으로는 축복이 될 수도 있단 말입니다. 복음 전에도 오고 또 병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약하게 돼서 하느님을 의지하게 됐다 말입니다.
나의 신체조건이 여러분에게는 괴로운 짐이 됐어요. 아프니까 짐이 돼 있지만 여러분은 나를 외면하거나 멸시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의 천사와도 같이 또 그리스도 예수와도 같이 연결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같이 연결해 주었어요. 굉장한 열심이죠? 그 때 여러분의 그 감격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그런 감격이 있는데도 또 변질이 된다 말입니다. 신앙이, 눈이라도 빼줄라는 열성을 가졌는데도 말입니다. 그 감격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분명히 말하지만 그 때 여러분은 만일 할 수만 있었다면 눈이라도 그 때 바울사도는 안질, 눈병이 있었어요. 잘 못 보는 거야. 그러니까 의사 진단에 따라서 성한 사람 눈을 갈았다 하면 잘 보겠습니다. 그런 진단을 내렸다면 아니 두 눈이라도 빼서 줬어. 쓰십시오. 그럴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자기들은 생각 안했다 말입니다. 눈이라도 뽑아서 나에게 주지 안했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열성을 가졌고 예수와 같이 맞아준 사람들인데 바울사도는, 그런데도 이제 내가 진실을 말한다고 해서 나를 원수로 여기는 것입니까? 어쩌면 이렇게 변합니까? 눈이라도 뽑아서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있던 사람들이 참말을 하니까 혹은 거짓말을 했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참말을 했는데 원수시게 본다 말이야. 요거는 신앙이 그 우리가 표준을 엇다 두느냐? 행동으로 열심히 하는 거 보고 잘 믿는다고 그러거든요. 그 마음은 모르니까.
또 그 아첨을 겸손으로 알고요. 비겁한 아첨인데 그게 겸손 아니거든요. 또 사람에게는 겸손도 없는 거예요. 예수님만이 겸손이에요. 내가 진실을 말한다고 해서 나를 원수로 여기는 것입니까?
17절
그 사람들이 있느냐? 갈라디아 교인들을 꾀어간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그러니까 우리가 기왕 믿을 바에는 그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또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그건 확실히 깨달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또 예수를 믿는 그 우리 목적이 뭐냐? 그것도 희미하거든요. 예수 믿으면 육적인 어떤 행복을 바라고 믿는 것인가? 세상 물질적인 것은 완전히 허물을 깨닫고 영적인 것만 찾기로 출발했는가? 그 믿는 동기부터가 확실치 않거든요. 뭣 때문에 예수를 믿느냐 말이야. 여러분에게 열성을 보이는 것은 결코 선한 뜻에 나온 거예요. 그래 나온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나에게서 바울사도에게서 떼어 바울사도에게 뗀다 말은 그리스도에게서 뗀다 말과 같거든요. 떼어내어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열성을 품도록 하려는 술책입니다.
그 이런데 유혹을 당한다 말입니다. 신앙적인 건전한 지식이 없어요. 그들이 좋은 동기로 여러분에게 열성을 보인다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동기가 불순하다. 그 유혹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성령의 역사는 그렇지 않거든요. 근디 왜 그렇게 눈이라도 빼줄라고 하는 열성을 부린 사람들이 그렇게 돌 변하냐는 거야. 참으로 진리를 말하는 사람을 떠나서 말이야. 배반 하고,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언제나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자녀인 여러분 그도 어찌 영적으로 자녀니까 아무리 원수진다 하더라도 부모 편에서 자녀를 원수 시 하겠습니까?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가 형성되기 까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기 까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격을 지닐 때까지 또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겠습니다. 이것이 아버지다운 마음이라 말이야. 아무리 자녀들이 원수지더라도 아버지까지 원수지겠어요? 아버지 까지도 자녀를 원수지겠어요? 그런 게 또다시 해산의 고통을 하는 날까지라도 더 원만하게 되지요?
이 성경에는 없는데 이 배반하고 유혹을 당해서 간 동안이 지옥살이 하는 거라 말이야. 자유가 없어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그랬으니까 예수님의 마음만이 생명으로 가는 참 길이라 말이야. 예수를 바로 알았다면 그럴 수가 없잖아요?
언자 고만 두고 아까 6절에서 다시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하느님의 자녀란 증거가 뭐냐? 예수님만이 하느님의 참 자녀죠? 아들이죠? 같은 하느님인데 땅에 오셔서 우리 당신의 자녀를 우리가 본래 하느님의 자년데 유혹을 당해가지고 악마의 자녀로 변해 버렸거든요. 예수님 인자 그걸 돌이켜서 죄의 빚을 갚고 십자가로 통해서 언자 도로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라고 오셨거든요. 이 하느님인데 하느님의 자녀로 땅에 와서는 말씀이 육신을 가진 것이 예수요. 자녀라 말이야. 아들이라 말이야. 근디 인자 예수님은 맏형이죠? 첫째 제일 큰 형이에요.
그러면 예수의 동생으로서 인자 하느님 앞으로 가야 돼. 마귀의 자녀 고대로는 못 간다. 마귀의 자녀 된 자리를 예수님이 빚을 갚았어요. 몸으로 피로 생명으로 갚고 우리를 샀어요. 그래서 인자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데 그래 로마서 1장3~4절 보면 자녀라는 증거가 뭐냐? 자녀 되는 특권이 뭐냐 거야.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 아들에 관한 소식입니다. 하느님의 인성으로 말하면 다윗의 후손인거야. 후손으로 태어나신 분입니다. 실상은 몸도 혈통으로도 다윗과는 상관이 없는 거예요. 마리아와 요셉이 다윗의 혈통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은 성령으로 마리아의 배만 빌린 거예요. 그러나 그 아들로 오셨으니까 그분은 인성으로 말하면 다윗의 후손으로서 태어나신 분이며 거룩한 신성으로 말하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의 능력을 나타내어 하느님의 능력을 나타내어 하느님의 아들로 확인되신 분입니다. 게 우리도 인제 하느님의 아들이 되려면 예수님같이 십자가에 옛사람을 장사지내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을 가져야 하느님의 자녀가 돼. 일단 우리도 한 번 죽음을 통해야 돼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전 인류의 십자가에요. 대표죠? 또 예수의 부활도 전 인류의 부활입니다. 긍게 같이 십자가에 죽고 같이 부활해야 돼.
그게 예수와 같이 사는 것이 신앙생활 이라는 거야. 현재도 예수님이 머리시고 나는 예수님의 지체로서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라 말이야. 믿음은 자기가 죽는 것이고 아직은 살아 있응게 아직 완전히 믿음이 아니라 말이야.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하느님 편에서는 예수님이 다 죽을 것이 죄 값을 지불했으니까 하느님은 우리를 예수로 본다는 말이야. 예수, 그 영혼에 예수가 계시니까 그래도 예수님과 나와 관계는 아직 십자가를 치러야 돼요. 과거구원은 다 돼 있어요. 창세전에 벌써 돼 있어요. 그래, 미래도 틀림없는데 현재가 지금 뭐냐? 긍게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기 위해서 회개하고 다 구원받기 위해서 하느님은 기다리신다고 그러잖아? 베드로후서3장19절에 있잖아요? 이 지금 현재는 죄에서 종살이서 벗어나야 된다 말이야. 이 자기에서 속사람 자기가 벗어나야 돼. 속사람, 영이 육에서 해방을 받아야 된다. 그렁게 현재 불완전한 그 상태에서는 항상 자기감정에 매여 살아요. 인자 십자가를 치르신 만큼 그서 해방을 받고 옛사람을 장사지낸 만큼 해방을 받고 예수와 같이 사는 거다. 우리가 이 현세에서도 지옥, 연옥, 천국을 다 경험한다 말이야. 자기가 살아서 움직이는 동안, 아직 땅에 속해 있는 동안은 지옥이에요. 지옥, 그래서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능력 안에 살면 그대로 천국이다.
로마서14장17~18절요.
세상은 먹고 마시는 것이지만 하늘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정의와 평화와 기쁨을 가진 것이 천국이라. 마음이 천국이야. 한문으로 하면 심중천국(心中天國)이라지요. 마음 가운데 하늘나라, 그런 정신으로 그리스도를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느님께 로서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다는 거야.
1장4절까지 봅니다.
거룩한 신성으로 말하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어 하느님의 아들로 확인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럼 우리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려면 인자 완전히 예수와 같이 옛사람은 장사지내고 부활하신 예수와 같이 사는 것이 인자 하느님의 자녀가 돼. 이것도 골로새2장9절,12절이거든요. 9절 보기 전에 8절 봅니다.
여러분은 헛된 철학의 속임수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요즘 성경이 좀 잘못된 것이 있나봅니다. 어찌 철학을 헛되다고 했을까? 철학자체가 헛된 게 아니라 철학자체를 바로 이해 못한 거 아닙니까? 그런데 무엇이 다르냐? 는 거야. 헛된 철학의 속임수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것은 세속의 원리를 기초로 인간이 만들어서 전해준 것이기에 그리스도를 시초로 한 것은 아닙니다. 요것이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세속원리가 기초냐? 그리스도가 기초냐? 고것을 확실히 분간을 해야 한다. 분별을 해야 한다. 세속원리를 기초로 하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항상 모래위에 집을 진거여. 모래위에,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는 신앙생활은 반석위에 기초로 둔거라 말입니다. 베드로라. 게바라. 반석이라. 그 말이야. 반석이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다. 그런 신앙위에다가 기초를 두고 집을 짓겠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는 그 확신, 그 신앙에서 인격이 건설된다 말이야. 집을 진다 말은 인격건설, 그 요 이제 이 8절반대가 어디냐면 고린도전서3장9절서부터 되죠? 그 한번 보죠.
우리는 하느님을 위해서 함께 일하는 일꾼들이고 하느님하고 같이 일한거야. 하느님을 위해서 함께 일하는 일꾼들이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집이요 집, 나는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으로 능숙한 건축가가 되어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은 그 위에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집을 짓는 방법에 대해서는 각자가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가 놓여 있으니 아무도 다른 기초는 놓을 수 없습니다. 세속원리를 놓아서는 안 된다 말이야. 그러면 세속원리가 무엇이고 그리스도로 기초한 것이 뭐이냐 거야. 굉장한 차이가 있어요. 이거는, 하늘과 땅 차이가 이상이 있어요.
그리스도라는 기초가 놓여 있으니 아무도 다른 기초는 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 기초위에 기초위에다가 어떤 사람은 금으로, 어떤 사람은 은으로 어떤 사람은 보석으로, 어떤 사람은 나무로, 어떤 사람은 마른 풀로 어떤 사람은 짚으로 집을 짓는다고 합시다.
이제 심판의 날이 오면 모든 것이 드러나서 각자가 한 일이 명백하게 될 것입니다.
심판의 날은 불을 몰고 오겠고 그 불은 각자의 업적을 시험하여 그 진가(眞價), 참이냐 거짓이냐 진가(眞價)라 말이야. 진가(眞價)를 가려 줄 것입니다. 만일 그 기초위에 지은 집이 불을 견디어 낸다면 그 집을 지은 사람은 상을 받아요. 만일 그 집이 불에 타버린다면 그는 낭패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불 속에서 살아나오는 사람같이 구원을 받습니다. 이 건 영이 아니에요. 몸만 구원이지. 몸은 안타졌죠? 나무나 짚이나 풀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 세속원리에요 그러고 금, 은. 보석은 그리스도를 기초로 한 겁니다. 그것은 불로 시험해봤자 안타거든요. 타질 안 해요. 그러면 이렇게 봅니다. 나무나 짚이나 풀은 율법적인 행위에요. 아담 때부터 이어받은 타락 성을 지니고 인간의 노력으로 세우는 거 다 불타버려요. 금은보석은 믿음이요. 하느님의 은총을 입은 거예요. 은총, 은총을 입어서 은총 안에 역사하신 생활이라 말이야. 그건 다 은총이니까 옛사람은 장사지냈고 그리스도가 머리로 보는 생활이에요. 그리스도가 기초니까 세속원리는 자기가 머리고 자기혈통 모두 족보, 현재 자기 지위, 모두 세속적인거야. 우상이야. 우상, 겉치레만 해 논 거야. 그 인간적인 노력은 다 허물어져 버려요. 불타버렸어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는 기초로 하고 하는 생활은 어떤 시험에 더 타지를 안 해요. 그런 말입니다.
세속원리는 창세기19장30절서38절인데 세상도리를 따라서 인종을 퍼지자. 그래가지고 놋의 두 딸하고 놋 사이에서 인종을 퍼졌거든요. 그 것이 세속이라 아버지와 딸, 그 딸들이 아버지와 딸들에서 아들만 나았거든. 하나는 딸을 낳았어야 또 될 텐데 둘 다 다 아들만 낳았어요. 그러면 아들만 가지고 또 인류 못 퍼지죠? 그렁게 인자 어머니와 사이에서 또 퍼지겠죠? 그거이 세상이에요. 인류시조가 아담이라면 아담의 우리가 자손 아닙니까? 다 형제간 아닙니까? 육으로도 모두, 영적으론 물론 말할 것도 없지만은 예수께서 너희는 다 형제라 그랬거든, 이 형제다운 사랑을 하라 거야. 히브리23장, 근디 형제다운 사랑은 안하고 육적사랑으로 기우러졌다 말이야. 영적형제는 떠나 버리고 말이야. 세속원리입니다.
그러면 인자 갈라디아4장6절이.
이제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왜 자녀가 됐느냐? 그리스도 영을 가졌으니 그리스도, 참 아들의 영을 가진 게 하느님의 자녀요. 아직 내 마음 회개 못한 내영,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야. 아직도 악마의 자녀라는 거야. 죄의 종살이는 우리가 구원은 현재구원은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난 것이 구원이거든.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려면 십자가 져야하고 옛사람을 장사지내야 되거든요. 죽지 않으면 해방 못 받아요. 자유도 없고요. 죄의 종살이서 현재구원은 죄의 종살이서 벗어난 것이 현재구원입니다. 그건 자기 힘으로 안 되어요. 은총을 입어야 되고 죄를 확실히 회개를 해야 되지. 성령 삼위가 다 은총이시고 하느님이 은총이시오. 그리스도가 은총이시오. 성령이 은총이시오. 자 하느님이 은총이라는 데는 베드로전서5장10절에 있고요. 모든 은총의 하느님, 또 그리스도가 은총이란 데는 성경에 전부 다 통하지만은 누가복음1장 있죠?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난다. 은총을 크게 받은 이여 네가 태어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예수라 하라 그랬잖아요? 그래 예수가 은총이에요.
또 성령이 은총이라는데도 여러 군데 있지만은 히브리10장29절입니다. 성령의 은총, 삼위가 은총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은총을 받았다. 그러면 삼위의 역사 성령을 받았다. 그 말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다 되는 거예요. 성령은 하느님이시니까 실상은 간단한 것인데 사람들 복잡하게 만들어 가지고 말이야. 이 66권을 다 외란 것도 아니고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옛사람 장사지내고 성령의 인도만 받으면 해방이 돼. 죄에서 죄의 빚 갚고 성령 따라 사는 것이 해방이여. 자유고 구원이라 말이야. 그러기 간단한 건데 왜 그렇게 복잡 하느냐는 거야. 그럼 어째 성령을 받느냐? 회개를 해야 되어요. 사도행전2장33절 성령을 직접 못 받아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께 로서 받아가지고 사람에게 주는 거야. 예수께서는, 33절 읽었고 38절에는. 33절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예수를 높이 올려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주셨어요.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성령을 지금 여러분 우리에게 회개한 영혼에게 여러분에게 성령을 지금 여러분이 보고 듣는 그대로 우리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37절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형제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회개하시오. 회개, 자 회개는 또 무엇을 회개하는가? 막 땅바닥을 뚜들고(두들기고) 막 통회하고 그 회갠가? 산에 가서 기도하다가 소나무 뿌리를 뿌리잡고 막 다 뽑아 버렸단 거야. 그렇게 막 기도하면 그게 회개인가? 마루를 꺼지게 뚜드려 대고 하면 그게 회갠가? 그 아니란 말이야.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 만은 무엇을 회개하느냐 말이야. 회개는 뭐 할 건 많지만은 죄는 많으니까 죄 속에 살아. 많지만은 그 중에서 대표적인 거 무엇을 회개하느냐? 그것도 문제고 또 이것도 입니다.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십자가를 지었느냐? 우리 자범(自範)의 죄(罪) 때문에 죽었다는 그게 아니라 말이야. 죄(罪) 때문에 죽었다. 뭔 죄(罪)냐? 그걸 대답 못해요.
그 대답을 보시려면 있다 말이야. 누가복음23장26절, 29절 있어요. 뭣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뒤에서 여자들이 특별히 울고 따라가니까 돌아서 뭣 때문에 우느냐 말이야. 내가 그렇게 불쌍하냐? 그만큼 내게 대한 그런 연민의 정이 그렇게 불쌍해서 우느냐? 너희 땜시 지금 내가 십자가 지니까 너나 네 자녀들을 위해서 울라는 거야.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나 십자가 지는 일 하지 말라. 너희가 낳고 네 자녀를 낳고 했기 때문에 십자가 진다. 인자 낳는 일 하지 말라. 그 말입니다. 젖도 먹이지 말고 먹일 것도 없이 하라는 거야. 낳고 젖먹이는 여자가 불행할 것이다 젖을 먹여 보지도 않은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그랬다 말이야. 또 참고 하려면 히브리6장4절, 6절에게
다시 십자가 지는 일 하지 말라 게야. 그것이 회개에요 또 회개는 뭐이냐면 묵시2장5절서부터 21절 있고 26절.
21절에요 음행을 회개하란 거여. 다른 건 다 회개해봤자 저 나무 이파리 하나 뜯은 것뿐이에요. 뿌럭지(뿌리)가 없어요. 뿌럭지, 뿌럭지가 있는데 또 나오고 또 나올 거 아닙니까? 쑥을 잎파리만 뜯어봤자 또 나. 또 나. 그것 뿌리 채 없애버리어야지. 근본을 회개, 죄의 뿌리를 없애야 해. 뿌리,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라 말이야. 완전히 장사지내라 말이야. 옛사람은, 의식적인 제례 뭐 머리에 한 방울 떨어트리고 그런 게 아니고. 또 물속에 풍덩 빠졌다 나온 거 그것도 의식이야. 빠져나와 봐도 빠지기 전에 맘, 빠진, 건진 뒤에 맘,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죠. 예수님이 받은 세례를 받아야죠. 내가 받을 세례가 있다. 세례를 받기까지 얼마나 답답하겠냐? 나는 땅에 불을 지르러 왔다 말이야. 불이 붙었으면 좋겠다는 거야. 근디 불이 안 붙어요. 타버려야 할 텐데. 죄가, 게 예수님 먼저 십자가 져. 세례에요. 죽어요. 그도 우리도 참 세례는 옛사람 죽는 거 십자가 지는 거예요. 죽고 부활하신 예수와 같이 사는 거다. 아무리 무슨 수양하고 고행을 한다하더라도 그 옛사람만 살아있으면 무엇을 해? 사람보기는 아무 것도 안한 거 같아도 옛사람만 죽었으면 되지 않냐? 외모로는 지옥 갈 놈이라고 욕을 한다 하더라도 누가, 마음은 그렇지 않거든 우리는 외모로 보고 판단하는 행동, 부자가 무슨 지옥갈 일이 있습니까? 외모로 행동에, 나사로가 무엇 때매 천국갈 일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어요. 외모로는 마음이 정신문제지. 나사로는 진짜 신앙을 비유한 것이고 부자는 가짜 신앙 진짜라 말이야. 외모로만 행동만 있지. 마음은 안 믿은 거야. 회개를 안 한 겁니다.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 했다 말이야. 연락, 부부생활도 다 연락이에요 연락, 회개 안 했어요. 나사로는 마음으로 믿는 겁니다. 표현은 거지고 형편없죠? 불행하죠? 근데 마음으로 믿으니까 그 마음은 항상 천국이죠. 부자는 실상 외모로는 모두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지만은 마음은 지옥이죠. 영혼을 고통을 인제 모르죠.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또 사도행전 5장32절 보면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더라. 그 말입니다. 순종이 순종, 예수님은 순종을 우리에게 보였거든.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거든요. 하느님이시지만은 고난은 순종을 배웠어요. 게 우리 죄인들이 안배우고도 되느냐 거야. 제자대표로서 가장 순수한 순진한 깨끗한 제자 대표로서 열두 제자 대표로서 사도요한이 그리스도의 인내를 배웠습니다. 묵시2장9절이요. 순종하는 영혼에게 주신 성경이란 말은 순종이란 말은 죽는 십자가에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순종을 보였잖아요?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셔가지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했다. 순종은 옛사람을 죽는 것이 일단 순종이지. 옛사람 살아가지고 순종이란 없어요. 가짜야. 가짜, 극도에 달해서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불순종 해버린다. 육신이 좀 잇속이 있을 때 순종하고 손해 볼 때 불순종한다 말이야 순종은 뭐이냐? 완전히 자기 부정한 거여. 죽은 거여 죽은 옛사람, 예수님이 순종을 우리에게 본을 보였다 말이야. 당신은 죽을 일도 없는데 인류대표로 죽고 순종하고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셔서 순종을 보였다 말입니다.
그렇고 시간은 서너 시간 가져도 못 하겠다. 한 시간 딱 밖에 안 되니까 실은 이런 모임이라면 첫 번부터 어떤 제목으로 발표하니까 저는 시작부터 한 제목을 가지고 계속하니까 첫날부터 들어야 되거든요. 그런 게 인제 중간에 오면 그 사람 중심으로 이거 말하려면 또 그 말을 반복해야 되니 시간이 많이 걸려버리잖아? 그런 게 기왕 참석 할 바에는 물론 사건, 어떤 이유가 있어 그러겠지만 미리 준비를 해야 된다 거야. 정월 초하루부터 요 집회에 대해서 준비를 해요. 마음에 그럼 틀림없이 오는데, 인자 한 달 전이나 일주일 전이나 서둘러서 안 된다 말이야. 요 집회를 희망을 가지고 살아요. (끊김)
계시적인 말씀을 듣기 위해서 살아야 돼요. 사도행전22장14절.
그 때 아나니야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뜻하신 바를 깨닫게 하시고 그 죄 없으신 분을 알아보게 하시고 또 친히 하신 말씀을 듣게 하시려고 당신을 택했습니다. 그 우리도 그리요 바울사도만이 아니라 우리도 뭐하려고 택했는가? 그리스도께서 친히, 요 사람 통해서 아니고 간접이 아니고 직접 예수께서 내게 아무개야 일어나 그 말씀 듣기 위해서 살아야 한다. 게 어디서 어느 때, 또 누구 사람의 입을 통해서 하죠? 입을 통해서 하든지 그냥 계시적으로만 직접 하든지 아아 이 말씀이야. 참, 내가 꼭, 내 영혼이 바로 받아들일 말씀이다. 하고 바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 기회에 내가 참석을 못했다면 이 말씀을 참아 이 말씀 못들을 건데 그 이런 기회를 항상 준비를 해야 돼요. 늘, 어느 때 그럴 라면 인자 길을 가다가도 또 요런 어느 집회를 간다하면 가는 도중에라도 가기 전에도 받아볼 수 있다 말이야. 항상 준비만 해 놓으면 언제든 잘 때라도 꿈에라도 길을 가다가도 긍게 세 가지입니다.
뜻 하신 바 깨닫게 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영혼 영혼에 대한 계획이 다 있다 설계가 요 영혼은 조금 고집이 세니까 어떤 엄격한 훈련을 시켜야겠다. 좀 매도 좀 맞고 그래야 한다. 실패도 많이 시켜야겠다. 베드로도 좀 고집이 세었다. 솔직하긴 하지만은 매를 많이 맞아. 그 수준이다 야. 실패를 제일 많이 했어요. 많이 한 만큼 자기 약함을 알았어요. 약함을 한 만큼 의지를 해요. 또 그러냐하면 대인관계에 있어서 자기가 가장 실패를 많이 한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 쪼금 실패한 거 동정이 된다. 아무 문제가 아니다 고 나보라고 괜찮다. 바울사도도 그러거든 죄인의 괴수인 걸 체험했으니까 어떤 죄인도 용납할 수 있단 거야. 아무리 큰 죄인 그건 내 죄이다. 아무 것도 아니다. 어서 오라. 우리 신앙생활은 실패를 많이 통해야만 되는 거지. 그전에 꾸준히 잘할 수는 없어요. 콩나물이 아니에요 콩나물, 콩나물은 꾸준히 자라죠? 물만 잘 주면 되지만은 씨는 못내요. 씨를, 땅에다 심어서 갖은 역경을 통해야 되잖으니까 그러니까 베드로 사도는 많은 실패를 했으니까 다른 사람 실패하는 것을 사정을 알아요. 또 베드로사도는 죄인 중에 괴수란 걸 체험했기 때문에 어떤 죄인도 용납할 수 있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자기 죄에다 대면 그러면 여 도덕적인 죄를 지었는가? 바울사도, 도덕적으로는 털끝만한 죄도 안 지었어. 아주 양심적인 사람이야. 누구 물건 거저 훔친 일이 없어요. 공짜로 받은 일도 없고요.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신앙에 있어서 예수를 몰랐다는 것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더 은총을 받은 거야. 도덕적인 죄가 아니에요. 긍게 우리 죄가 뭐냐? 한마디로 하면 믿지 않은 것이 죄거든요. 선은 뭐이냐? 믿는 것이 선이에요. 믿음 안에 다 있어요. 그리스도니까 안 믿는 건 자기니까 죄여. 나란 자체가 이 죄 덩어리에요. 무엇을 허물고 죄가 면해지냐? 그렇지는 안 해요. 죄는 이건 근본적으로 이건 바꾸어져 버려야죠. 예수님이 머리가 되어야지.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지. 내 맘 가지고는 항상 죄에요. 게 나한테 매여 사는 거야. 내 감정에 끌려 살아. 우상이 끈대로 끌려 사는 거야. 나한테서 벗어난 것이 구원이에요. 나한테서 해방 받는 거요. 내게서 해방을 받아야 한다. 겉 사람한테, 그렇고.
뜻하신 바를 깨닫게 하시고 죄 없이 죽은 예수를 아는 거 예수를 알아보고 또 친히 하신 말씀, 친히 하신말씀, 어느 때, 어디서, 혹 여기서 그럴랑가? 어딜랑가? 또 여기선 못 들어. 돌아가는 길에, 항상 마음만 준비하고 있으면 어느 때든지 장소는 상관없어요. 혹 이래요. 요 시간에 참석하려고 했는데 다른 사건이 생겨가지고 못 왔다. 그렇더라도 못 왔더라도 그 뜻이 어디 있냐? 진리를 구하는데서 그리됐냐? 우린 뜻이 중요해요. 행동보다도 뜻이, 시간과 행동보다도 뜻이, 진짜 하느님의 뜻대로만 살기로 탁 결단을 내렸느냐 그겁니다. 또 내 뜻이 털끝만치도 있느냐 그겁니다. 제가 팔십이 돼서 육의 나이로 팔십이 됐을 때 좀 생각하니까 헛되게 살았다. 그거여. 확실히도 모르지만 하여간 헛된 거야. 왜 그러면 인자 팔십 떼버리고 한 살로 시작하자. 다시 시작하자. 그러고 보니까 쪼금 낫더란 말이요. 인제 아홉 살 째 돼가요.
그런데 쪼금 좀 자기 뜻을 버리는 훈련 하느님의 뜻을 대로 순종하는 훈련, 내가 무엇을 앞으로 한다. 그 뜻 가지고는 안 되겠더라 그 말입니다. 어쨓던 내 뜻은 포기를 해야 된다.
자 그러고 에 우리생활 목표는 우선 성령을 받기 전까지 생활은 어느 때, 어디서, 직접, 내게 대한 하느님의 계획 알게 하시고 죄 없으신 예수를 알아보게 하시고 친히 하신 말씀은 듣게 하신다. 그런 목표를 해야 된다. 어디서 들을랑가? 그런 마음만 있으면 장소야 하느님의 자녀 허락될 거 아닙니까? 어디 가라 그랬다고요? 성령을 받은 분들의 경험을 통하면 성령을 받을 장소도 있다 그래요. 보통으로는 언자 참 신앙은 환경의 지배를 안 받는 거죠? 그러나 약할 때는 지배를 받거든요. 이 환경이 잘 중요해요. 인자 건전해 같고도 지배 받는 건 아니죠? 그걸 초월하니까 신앙이 건전하면 환경을 창조해 가는 거라. 창조, 지배할 뿐 아니라 창조 새 창조 자꾸, 약한 신앙은 환경에 끌려가버려. 누가 장에 가면 나도 가고 그냥, 누가 교회가면 나도 가고 끌려가는 거라 말이야. 형편없게 끌려가버려. 그 환경에 무진 사무에 끌려버리고 이 진리를 찾는 사람은 생명을 걸고 출발한 사람이니까 무슨 사건에 매이겠습니까? 그걸 초월해버리는데 그러지 않을 때는 어자 그도 매어가더라도 길을 찾아야죠. 율법의 본뜻을 모르면 그냥 율법을 무시해버리거든요. 반드시 율법의 과정을 통해서 회개해 버려가지고 복음 안에 들어간 건데 이 율법은 딱 갇히란 건데 자유 말라는 건데 자유를 해버려요. 무시해버리고 그냥 무양 성경만 들으면 복음인줄 알아요. 뭐이 복음이냐 그게 아니다. 복음은 바로 말하면 예수의 마음이다. 마음, 율법은 자기마음이고 자기 맘, 맘대로 모두 이러고, 저러고 방법 만들어 다 불타져버려요. 긍게 율법의 과정은 율법 자체는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고 또 모든 인류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안내자야. 안내자, 율법은 또 하나는 자기 죄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깊이 깨달았으면 용서하신 하느님의 은총을 깊이 발견한단 거야. 이거 참 바로 쓰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거예요. 요건, 법대로만 쓰면 뜻대로만 쓰먼, 이 뜻을 모르니까 잘못 써버려요 외려 그리스도와 관계 끊어지게 된다 말이야.
갈라디아5장4절 보면요 .인자 낼 아침에 볼 차롄데. 뭐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려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끊어졌고 은총에서도 벗어났습니다. 얼마나 손해입니까? 율법을 행함으로 자기 공로를 씌우므로 자기가 좀 선한 일을 하므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은 예수와 관계가 끊어져 버렸으니까 간판은 그리스도인이다. 간판은 달고 다니지만은 그리스도인은 아냐. 그리스도하고 관계는 없어요. 또 은총을 받을 길도 끊어져 버렸어. 예수하고도 상관없어. 버리니까 그리스도가 은총인데 성령이 은총이지. 뭐 하느님이 은총이신데 관계가 끊어져버린다 말이야. 그 그건 인자 그런 태도가 뭐이냐면 뿌리째 말라버린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바라는 거여. 이 의식 종교에 그것만 목적으로 삼은 거는 그것뿐이에요. 뿌리째 말라버렸는데 이미 저주받아서 그거서 무슨 열매가 맺어요? 또 씨 뿌린 비유 같으면 씨는 이미 씨는 이미 뺏겨버렸는데 새가 주워 먹어버렸고 악한 자가 빼가버렸는데 암만 가꿔봤자 헛수고여. 옥토가 돼야지. 옥토, 옥토는 뭣이냐? 일찍 자기는 죽었어야죠? 십자가에 장사지냈어야죠? 그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어야 옥토에요. 내 맘 가지고는 항상 헛수고뿐이에요.
그러고 갈라디아4장에서는 아들이란 데 조금 보고. 4장에서는 그 외모로 열성태도, 외모로만 마음으론 상관없고 그런 태도는 세속원리를 기초로 한 것이다 말이야. 그러니까 헛수고 뿐이고, 그리스도를 기초로 한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예수의 마음을 갖지 안했다. 그 말입니다.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 말입니다.
그렇고. 27절 .
성서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즐거워하여라. 아기 못 낳는 여인이여 아기 못 낳은 여인, 소리 높여 외쳐라. 해산의 고통을 모르는 여인이여 여인이라 하면 꼭 여자만 말한 게 아닙니다. 아까 바울사도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겠다. 하지 않습니까? 여 인자 홀로 사는 여인의 자녀가 남편 있는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으리라. 아브라함 자손이 얼마나 많으냐? 셀 수 없지. 하늘에 별수 셀 수 없죠? 바다에 모래 수 셀 수 없죠? 그러니 많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영의 아들이지. 육의 아들이겠습니까? 영적으로, 그러니까 이것이 어데서 나오느냐면 이사야54장1절입니다. 요 갈라디아4장27절이요. 그게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거기 말씀 보면 인자 54장1절 있고 5절까지 보면 하느님이 남편입니다. 하느님이 남편, 남편이라 하면은 영적지도자라 말입니다. 지도자, 그리스도가 남편이란 말은 영적지도자여. 참스승도 한분, 지도자도 한분, 그 땅에 있는 자를 스승이 라고 말고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고도 말라 아비도 하나, 스승도 하나 그랬다 말이야.
그렇고 언자 갈라디아2장에서는 뭐이냐면 그 배울 것이 있다 말이야. 나는 율법의 손에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았다. 그 신앙이라.
2장19절,20절이에요. 그 말을 우리 신앙은 뭐이냐?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거 신앙이라 말이야. 그걸 기억해야 되고 또 베드로의 바울사도에게 면책 받은 거 책망을 받았어.
이 어제 아침에도 말씀드렸고 그제께 아침 말씀드렸는데 다른 데는 그 말이 없어도 이 가톨릭에서 먼저 본 성경가운데는 바울사도에 전한 복음이 베드로사도에게 인정을 받았다 말이야. 인정, 아 책망은 바울사도가 베드로사도에게 책망을 했는데 책망을 받은 사람이 인정을 해줘요. 그 무엇과 같으냐면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은 거와 같다 말이야. 그 세례요한이 처음에는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되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아 이번에는 이렇게 하라. 허락하라. 이것이 하느님 뜻이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은 것은 세례요한에게 권위를 주는 거야. 권위를, 자기자리를 낮추어버리고 세례요한에다 주는 거여. 그래야 세례요한이 인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사람이니까 모든 사람이 그 권위를 보고 믿고 예수를 믿게 되죠?
자기가 높임을 받을라면 무조건 다른 사람을 높여줘야 높임을 받지. 무시해 버리면 무시를 받는 거라. 누구든지 나는 예수대접을 받는단 말이야. 성인으로 되면 성인대접을 받는 거야. 누구든지 죄인이라면 내가 죄인이여. 죄인 대접밖에 못 받는다. 이 높여주라고 낮아지란 거야. 바울사도가 베드로사도를 면책했을 때 후배가 선배를 면책했을 때 책망했을 때, 바울사도 자신은 더 녹은 거여. 더 녹아. 덜 죽는 거여. 덜 죽는 거 게 그것이 복음적인 태도야. 책망을 하고 자기가 더 죽어요. 더 책임을 져요. 베드로사도는 책망을 받은 것이 기쁘고 높임을 받는 거야. 그래서 소화 데레사 성녀께서 사람을 꾸지람하는 것보다 꾸지람을 받는 것이 몇 천배 낫다는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여 감정으로 그 이해가 될까요? 안 된다 말입니다. 이 베드로 신앙을 소화데레사 성녀가 통한 것이라면 같다면 베드로사도 그렇게 책망 받는 것이 몇 천배 낫지 않겠어요? 소화 데레사가 그랬다면 꾸지람하는 것보다 꾸지람 받는 것이 몇 천배 낫다 그게 신앙이라니까요. 저 어떤 사람은 쪼그만한 좀 무시한다고 하면 그냥 기가 막히죠. 무시당해도 마땅할 몇 천배 당해도 마땅할 존재인데도 내 죄를 생각하면 그서 쪼금만 푸대접하면 싫다 그래요. 그건 아직 멀었다 거야.
복음적인 것은 꾸지람하면 자기가 더 죽고 더 녹아난 것이고 율법적인 건 꾸지람하면 높아지는 것이고 그래요. 널뛰기라니까 널뛰기, 하나 칵 타락 했죠? 떨어지면 매 떨어진 만큼 높이 올라가거든요. 또 갚아야죠? 탁 높이 올라갔으니까 또 매 떨어지겠죠? 또 매 떨어진 게 요사람 또 올라가요. 그래 그 널뛰기는 그게 좋다. 탁 낮아지면 얼마나 세게 낮아졌느냐에 따라서 막 높여줘요. 얼마나 겸손하냐에 따라서 다른 높여줘요.
예수님은 얼마나 겸손했냐 하면은 하늘 위치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서 그 자리를 내놓으시고 지옥밑바닥까지 내려갔다. 왜냐 그 밑바닥에 떨어진 영혼은 밑으로 더 내려가야 하니까 그 이상 내려 갈 데가 없을 때까지 내려가니까 올려줘요. 올릴려니깐 내려간다는 거야.
그런 게 만물에게 영광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거야. 만물을 다 높여주니까 곤충이나 뭣이 다 찬양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겸손의 은총이 살린다. 아무리 성공을 했어도 교만하면 실패고, 아무리 죄 덩어리라도 겸손할 수 있다면 성공이에요. 겸손이냐 교만이냐 그것뿐입니다. 무엇을 했냐? 안 했냐? 그거 아니고 죄를 지었냐? 아니냐? 그것도 상관없고 얼마나 자기가 죄인이냐? 떨어졌냐? 겸손하냐? 얼마만큼 자기가 죄인인지를 알았냐? 그거여. 겸손이여. 저는 죄인인줄 알았기는 알았는데 아직 교만해요. 내가, 내가 있어요. 여러분한테 이리 말하는 것도 교만해요. 그건 알아요. 그래 시간이 허락돼 있으니 하는 거예요. 교만하다.
그러니까 그 말 베드로사도가 책망 받은 것은 바울사도의 복음을 인정해준 거라니까. 인정해줘. 옳다고. 사울아 또 어제아침에 봤지만은 사도행전10장에 보면 베드로 사도가 고넬료 이방사람이거든.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계시를 받지 안했습니까? 게 이방사람들 교제하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 그랬지만은 아직 율법을 초월하지 못한 연약한 신자들이 오니까 예루살렘으로 오니까 사람들을 책망할 수가 없어요. 너무 어리니까 긍게 맨 만은 베드로사도를 책망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 책망 받을 것을 받아 준거입니다. 그것보고요.
어제도 언자 오늘 시간 늦겠습니다만 적은 모임에서 서로 토의하고 뭐냐? 그 대화하는 대화, 그서 요번모임에는 특별히 영은 좋게 생각합니다. 그런 시간이 있어야한다. 그런 시간에 내가 참여해보면은 아 인제 말할 제목이 나온다 말입니다. 그래서 그 교육자들끼리 서로 비난한 문제랄지 잠깐 쪼금 여기 나오기 전에 쪼금 적어놓고 왔어요. 책을 갖고.
‘그와나’ 책3권에서 56페이지, 57페이지에서 쪼금 적었어요.
내가 사랑하는 벗에게 온종일 바친 후에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기억하느냐? 사랑하는 벗에게 온종일 바쳤다 말이야. 행복했던가를 기억하느냐? 네 혼자 있는 시간을 우리 여 여럿 있어도 항상 예수와 나 혼자로 봐야한다. 고독, 암만 대중 속에 있어도 고독해야 해요. 거기서 고독을 지킨다는 거 예수와 나와, 너 혼자 있는 시간을 더 큰 기쁨으로 여기며 내게 다오. 너 혼자 갖고 있지 마라. 나하고 갈라지면 안 되니까 내게 다오. 네가 가지고 있으면 까닥하면 나하고 갈라지기 쉽다. 그러니 내게 다오. 내게다 맡겨라. 그리 아니면 나 잊어버린다. 거기서 하나 되는 거야. 나 하고 너의 주인인 신랑의 집, 신랑의 집 그분의 마음, 마음에 살라. 예수의 마음속에 항상 살라. 너는 그를 믿느냐? 참으로 그리스도를 믿느냐? 나를 믿느냐 거야. 내게 사랑을 구하라. 나를 구하라. 그리스도를 구하라. 그리스도는 나는 나를 내게 주기를 열망 한다. 예수님은 내게 주시려고 열망하시는데 왜 내가 그걸 기억도 안하고 생각지도 안하고 또 쪼금 느낀다 하더라도 마다하는 거야. 마다해. 이 감정이 싫어해요. 빛을 싫어해요. 어둠은 낮이 어둠이니까 어둠이 좋지, 빛을 싫어해요. 죄인은 어둠이 좋지, 밤이라야 일을 하지. 밝은 날 일을 못해요. 강도는 할 수 없잖아? 이 빛을 싫어한 자체 이 말씀을 갈망하지 않은 자체 말씀은 하느님인데 말이야. 사람의 소리 아니고 하느님인데.
나는 나를 내게 주기를 열망한다. 네가 성직자들에게서 비난할 만한 것을 발견 했을 때 성직자, 목사가 좀, 너무 좀 이건 말이 상대가 안 된다. 걱정이다. 그서 어제까지는 그랬어. 결론은 그런 문제는 말하지 말고 하느님이 이루어 주실 테니까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 기도하는 거라고 그게 결론을 내려줬어요. 기도해요. 하느님이 그걸 해결을 시켜줘. 내가 고칠 수 없어요. 이 말로 이런 방법으로 가르쳐봤자 헛수고로요. 각기 다 자존심이 있어서 그 억지로 받는다. 하더라도 내용은 그렇지 않거든. 네까짓 것이 그래요. 그러니까 완전히 자기란 것이 서로 있는 동안에는 안돼요. 말로 안돼요. 자기가 없어야 말이지. 인제 그리스도끼리 말이지.
이 설교란 건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에게 헌거에요. 제가 설교를 한다면 최소하게 그리스도께서 듣는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가 듣게 했어야 들어져요. 내 생각으로 안 받아진다고, 게 듣는 편도 책임이 있고 전하는 편도 책임이 있지만은 내가 그리스도를 전하냐 내말을 전하냐 뭣을 전하냐 따랐습니다.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듣는 편에서도 그리스도께서 귀를 열어주시고 들어 주신다거야. 이 말 책에 그 말 있어요.
네가 기도하라. 나를 통해서 말씀하소서. 기도하라고 그러면은 내가 귀를 귀울여서 듣는 형제가 되겠다는 거야. 이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하시고 또 그 사람 속에 그리스도께서 들어요. 율법은 사람끼리 서로 말한 거야. 자꾸 막혀요. 복음은 그리스도끼리 말한 거야. 그러니까 막달라 마리아의 영혼 안에 그리스도여 그리스도 긍게 통하죠. 뭐 이유가 없죠.
너 왜 그렇게 많은 죄를 지었냐? 그런 죄를 지고 뭐 그것 갖고 죄 면할 줄 아냐? 기름 그것 갖고 그런 말 없어요. 무조건 갖다 기름을 붓는 거여. 무례하죠? 물어보지도 않고 또 초청하는 주인에게도 승낙도 안 받고 그냥 뿌려요. 세상도리는 그러지만 뜻이 하나여. 무례가 없어. 그거는 어쩌면 네가 내 뜻을 그렇게 내 마음을 그렇게 알았냐? 그래 또 막달라 마리아편에서는 예수님만이 내 마음 알지. 땅에서는 내 맘 알아줄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게 마음과 마음이 하나야. 극악 극성이 하나여. 하느님하고 죄인하고 하나 되어버린 거야. 이게 복음 아닙니까? 복음에는 하나지. 이유가 없어. 말이 없다는 거야. 율법이니까 항상 말이 묻고 따지고 그냥 문제가 많죠? 이 말로 해결이 안 된다 말이야. 네가 성직자들에게 비난할 만한 것을 발견했을 때 그들을 비난하기 보다는 너는 그를 위해 기도했던가 말이야. 그 영혼을 지금 생각하고 기도를 했던가? 비난하는 것은 벌써 저하고 나하고 상관없는 거라 한 몸이 아니 거든. 예수께서 비판하지 말라 그 뭐이냐 비판한 자체는 너나가 있다 말 아닙니까? 한 몸으로 생각 안한 것이라 말이야. 게 그 사랑이 아니라 사랑,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데 내 몸이 아니니깐 비판하잖아? 게 이건 다른데서 듣습니다. 만은 이 세종 선생, 저는 그걸 못 들었어요. 그랬지만은 언자 다른데서 그 말 하더라니깐.
어떤 형제가 누구에 대해서 비판하면은 이세종 선생님은 아이고 큰일 났습니다. 가서, 교회에 가서 그 사람 영혼을 위해서 기도 합시다. 그랬다 그래요. 큰일 났다. 한 몸인데 왜 비판하느냐? 지체끼리 싸우는가? 손하고 발하고 싸워요? 긍게 따져 보면 어리석거든.
그를 비난하기 보다는 너는 나는 그를 위해기도 했던가? 자문해보라 스스로 자기한테 물어보라. 네 자신을 벗어나라. 왜 비판하게 되느냐? 자기를 벗어나지 안 했어요. 자기란 거 있다 그 말이야. 벗어나라. 그러면 벗어날 방법은 어떠냐? 네 삶의 모든 움직임을 내게 맡겨라. 예수께 맡겨라 거야. 내 영혼이 네 영혼 안에서 타져버리라. 내 영혼이 예수의 영혼 안에 가 타져버리라. 없어버리라. 막 있는 동안에 이건 뭐 별 방법을 해도 소용이 없어요. 또 나오고 나와요. 이 길밖에 없다. 완전히 자기는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지. 조금만 떨어지면 뭐 나란 거 있어서 안 된다 말이야.
내게 맡기라. 네 영혼이 내 영혼 안에서 타버리도록 하라. 왜 네가 모든 것을 하려고 하느냐? 내 영혼이 타버리지도 않고 내 영혼이 타버리지도 않고 예수 영혼 안에서 타버려야 할 텐데 안 탓은 게 또 하려고야 내가 또 있으니까 하려고 하느냐? 내게 네 마음을 다오. 게 내 마음이 없어야 돼요. 예수께서 합해버려 하나 돼 마음이 하나야 돼요. 막달라 마리아하고 마음하고 예수마음하고 하나여. 둘이 아니라 말이야. 따로 있는 거 아니라 말이야. 갖다 바쳐버렸으니까 총재산, 총 생명까지 다 쏟아버렸어. 하나야. 언자 그 뒤로 막달라 마리아가 없어요. 하나다. 내게 다오. 그리고 내가 너를 어디로 데려가든지 그대로 맡겨라. 어디로 가게 요 파하고는 각각 자기 처소로 가겠지만 또 어디로 가든지 맡겨라 야. 내가 어디로 가야겠다. 앞으로 내 계획은 아아 여기저기 어디로, 어디로 금년 저는 한 달은 어디 어디데 이 인제 팔월은 그럭저럭 여기서 마친다 하더라도 구월 달은 작정이 없거든요. 그러면 언자 그때, 그때 어디가 있으라. 있으라. 그래. 내 생각대로면 언제든 만족을 했다는 거야. 이 하느님의 계시대로만 하면 그대로 좋다는 게야. 어디든 좋다. 맡겨다오.
인자 조금 다릅니다만 57페이지인데.
물론 나는 네 찬미를 받기위해 여기 있지만 그것은 무엇보다도 나는 너를 섬기기 위해서 너와 함께 있다. 예수님은 섬기러 오셨어요. 섬기러, 섬김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섬기러 오셨어. 우리 예수를 따라가는 사람은 어디로든지 좋은 역할을 해요. 섬겨요. 얼마만큼 섬기냐에 따라서 권위가 서잖아? 다스리게 된다. 자기감정을, 섬기는 자가 다스린다. 으뜸이 되려는 자는 종이 되어라. 똑같은 사건, 으뜸이 되고 높아지고 싶으면 종이 먼저 되어라. 내려가 보라. 섬기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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