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밤콩 타작 : 히아찐따

mamuli0 2021. 11. 25. 16:30

 소설 지나고 삼일째, 모처럼 날이 개었다. 더 미룰수 없어 넝쿨콩을 타작했다. 아침 일찍 하우스에서 밖으로 널었다가 14시 쯤 타작했다. 잘 마르지 않아 시간이 좀 걸려 오후 늦게 걷어들이고 더음날 마감하기로 했다. 산다화가 제법 피었다.

 

 

히아찐따 

1986. 08. 13. 김준호 선생 

 그러니 이 세종 선생님은 거룩하시고 사모님은 죄인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이 시간에 다릅니다. 해설이, 그 증언이 달라진 것입니다. 이 세종 선생님이 성인이 되셨다면 그 사모님도 성녀가 되신 다음에 이 세상을 떠나신 것입니다. 누가 시켜서 이 공님을 쑥을 쑤어서 밥을 해드리려고 오신 것은 아닙니다. 자기 가슴에서 자원해서 자기 마음에 북 바쳐서 개가한 데를 다 버리고 세속을 버리고 다시 입산하시고 그 이 공님이 너무 불쌍하기 때문에 돌아가시기까지 쑥을 뜯어서 해드렸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그러면 이 공님이 돌아온 그 부인을 산속에서 맞이하고 계실 때 그 숨이 가쁘시니까 몸이 진하고 이렇게 병이 드셔서 숨길이 가쁘고 대개 간호하시는 분은 아십니다. 누워서 숨이 막히면 몸을 일으켜 드리면 숨이 통합니다.  그러니까 하룻밤이 아니고 한 달 두 달 석 달 이 공 이 세종 선생님이 거룩하신 그 어른이 부인의 치마폭에 싸여가지고 석 달 동안 이렇게 품고 앉아계셨답니다. 숨을 쉬기 위해서 일으켰다가 눕혔다가 그러니까 애기를 품듯이 사모님이 이 공님을 뒤에서 품고 이렇게 보듬고 사셨다고 그래요. 그러면 꼭 성모님이 예수님을 남자지만 젖을 먹이시고 키우듯이 실상은 소문 듣기 보다는 본인 말씀을 들어보면 꼭 어머니같이 성모님같이 이 세종 선생님이 너무나 불쌍하고 가련해서 오셔서 밥도 한 달 해드리고 쑥을 잡수셨지만 그만 먹겠습니다. 그러시고 오늘부터는 물만 마시겠습니다. 한 달 동안 찬물 마시시고 또 찬물도 다 끊으시고 오늘부터는 공기만 먹으렵니다. 그리고 공기를 한 달 잡수시고 그러니까 석 달 동안 그렇게 간호하시고 세상을 떠난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제 엄동설한이기 때문에 또 화학산 높은 산이기 때문에 얼마나 춥습니까? 영하15도 20도 내려가지 않습니까? 그 언제든지 밥해 잡수시오. 그러면 사모님 혼자 밥을 해먹어요. 안 해 잡수시면 꾸지람을 하십니다. 왜 건강한 사람은 먹어야지 안 먹느냐고 그러면 부엌에서 밥을 해가지고 방으로 밥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추우니까 문을 닫고 밥을 잡수셨답니다. 그러니 세종 선생님께서 웃으시면서 그랬는지 알 수 없어요. 왜 나는 밥을 못 먹게 하시오? 아니 왜 밥 주면 안 먹으면서 그러십니까? 아니 나는 공기를 먹지 않소? 문을 닫아버리면 숨이 가쁘다고 문을 열어놓으라고 그래서 엄동설한에도 석 달 동안 문을 안 닫았답니다. 세종 선생님이 식사하시라고 공기 잡수시라고 문을 닫지 않고 그 눈 속에서 그렇게 간호를 하셨다는 말씀을 하실 때 얼굴이 환히 빛나십디다. 거룩하세요. 너무 제자들이 분별을 해요. 남자 어른은 거룩하시고 여자는 죄녀다. 분별을 하고 죄를 준 다음에 아마 오늘 제가 처음으로 이렇게 말씀 드립니다. 그러면 제가 그 사모님을 찾아가던 해는 그 말씀을 하던 해는 가을 가을이든가 봄이든가 알 수 없네요. 도토리를 넣어가지고 보리하고 도토리하고 밥을 해서 아침 해서 먹고 점심 먹으려고 두었습니다. 드셔보시오. 하시는데 밥그릇이 아니고 도사리입니다. 도사리라고 산에 가서 비사리를 갖다가 노끈으로 짠 것 모시나 삼으로 엮어 가지고 조그마한 도사리를 만들어 가지고 도사리에다가 밥을 담았습디다. 도토리 반 보리 반 수저를 내는데 보니까 수저가 반발 다시 말하면 자루가 부러졌어요. 그것을 어머니 잡수시던 수저에요. 반찬은 된장국 뚝배기에다가 조금 끓여 놓았던 것 남겨놓으시고 그리고 방은 그때 그날 가보니까 방은 흙이 나와 있어요. 그분은 나는 죄녀라고 생각이 되어서 한번 떨어진 자리를 바르지 않으시고 또 그렇게 말씀 합디다. 이 죄녀가 어떻게 하늘을 보고 잠을 들겠소? 벽에는 거기 거울이 하나 있어요. 옆으로 게 모양으로 한숨 잡니다. 그러셨어요. 이 죄녀가 어찌 하늘을 보고 팔을 벌리고 잠이 들겠습니까? 밤이 되면 그냥 모로 게 모양으로 한숨자고 일어납니다. 참회하는 성녀지요. 내가 젊어서 남편을 버리고 개가했던 죄녀 입니다. 참회하는 죄녀의 모습, 이불은 처음부터 없으세요. 그러니까 조그만 애기 애기가 깔만한 떨어진 누덕 방석하나 그것이 요도 되고 이불도 되고 전부야. 그 하나 아랫목에 있으시고 그러면 살림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 옆에는 깨진 항아리 누가 줬는지 하나 가져다 놓으시고 그 전 재산 그리고 치마는 십년을 입으셨는지 십오 년을 입으셨는지 이 무릎 팍 밑에는 다 떨어져가지고 다 떨어져 버렸어요. 헤어진 것 치마폭 위에 옛날에 옛날 치마폭은 폭이 많지 않아요? 폭만 이렇게 남아있어요. 늘 주워 입기 때문에 요새 같으면 그 참 미니, 그냥 장단 모양으로 다리가 다 나오고 그렇게 철두철미한 회개하시고 참회하시며 사신 이 세종 선생님의 부인 얼마나 성스럽습니까? 그런데 그 제자들은 율법이 강해가지고 오늘날까지도 내 스승 우리 이 공님만 거룩하시지 그 부인은 남편을 배반하고 개가했다. 그것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본인 말씀을 제가 들어볼 때는 너무나 거룩하셨어요. 이미 죄를 용서 받으시고 깨끗해진지 오래야. 그리고 이 공님의 그 사랑이 가슴에 가득 차 있어요. 자나 깨나 그 이공님의 말씀이 가슴에 사무치고 기억하시고 이 공님이 당신은 언제든지 손수 일해서 밥을 잡수십시오. 행여 라도 제자들이 나무를 해오면 받지 마십시오. 그 말씀 하셨던가 봐요. 엄동설한에 나무를 해다 드리면 나는 죄녀 입니다. 나는 받을 수 없습니다. 말이 아니야. 울면서 사정을 했다고 해요. 한 번도 제자들이 나무 해다 드리지 못했다고 그래요. 철두철미하게 살아가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당신들의 그 수고를 받겠소? 이 공님은 나더러 나무 해다 때라고 하셨습니다. 꼭 그러셔. 그런 이야기를 제가 그분 세상 떠나신 다음에 서울에 가서 유 영모 선생님한테 말씀 했더니 그냥 눈물이 글썽글썽 하시고 허 허 허 허 그냥 감격하셔서, 그러니까 남편만 거룩하고 여자는 버린다고 할까? 그렇게 평판하는데 그 부인이 성화를 받고 거듭나시고 선종하셨어요. 나는 예수님 품으로 갑니다. 그랬지요. 거기 계신 화순 도곡면 도장리 두 분이 참 효녀들입니다. 밤새도록 임종하기 위해서 지켜 계시다가 숨이 딱 끊어지니까 울어버려요. 왠지 눈물이 나서 울어버렸답니다. 세분이 그때 과부들 세분이 아 한분은 남편 계셨지요. 숨이 끊어졌다가 숨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한 몇 분 만에 우는 소리가 들리니까 모기소리만 하게 목에서 나온 소리가 그 말이야. 왜들 우시오? 그래 깜짝 놀랐어요. 죽은 송장이 말하니까 왜들 우시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부녀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손을 위해서 울어라.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예수 따라 갑니다. 나 위해서 울지 말고 당신들 위해서 우시오. 그랬어요. 그러시고 다시 눈 딱 감으시고 임종하셨어요. 그런 이야기 다 해드렸어요. 선생님한테, 그러니까 허 허 감격하셔서 그러니까 그 모니카 성모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이 성인이 되게 하셨지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이 공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부인이 회개하시고 성화 받고 돌아가신 것은 진리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결코 믿는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주시고 이루신다. 어진분의 기도는 들어주신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그냥 우시는지 감격하시는지 허 허 허 그러세요. 그분 일기에 보면 그 사연이 있어요. 아 이 세종 선생의 부인이 그렇게 거룩하게 돌아가셨다는 말씀 듣고 기쁘다고 일기를 쓰셨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오늘은 우리가 눈으로 본 바요. 귀로 들으셨지요. 이 세종 선생님도 보신분도 계시고 또 그분, 부인도 보신분도 계세요. 그러면 이것 참 친히 본 분들은 새롭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종 선생님 부인이 성화 받으신 어머니로 우리가 그렇게 존경하고 시험이 올 때는 그 어머니 입에서 기도도 해야 하지만 나 위해서 기도 드려주십시오. 그렇게 기도를 부탁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늘 본바 요한복음 21장인가 제가 보겠습니다. 20장, 마리아가 예수님 부활하실 때 상봉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까? 11절 요한복음 20장 11절부터 봐드리겠습니다.  
한편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던 마리아가 몸을 굽혀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의 시체를 모셨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또 한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왜 울고 있느냐? 하고 물었다. 누군가가 제 주님을 꺼내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뒤를 돌아다  보았더니 예수께서 거기에 서 계셨다. 그러나 그분이 예수인줄은 미처 몰랐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이 동산지기인줄 알고 여보세요, 당신이 그분을 옮겨갔거든 어디에다 모셨는지 알려 주세요.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자 마리아는 예수께 돌아서서 히브리말로 랍오니 하고 불렀다. 이 말은 선생님이여 라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에게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붙잡지 말고 어서 네 형제들을 찾아가거라. 그리고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의 아버지 곧 내 하나님이며 너의 하나님이신 분께 올라간다고 전하여라. 하고 일러주셨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만나 뵌 일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일러주신 말씀을 전하였다. 이 말씀을 그 상황을 이 세종 선생님이 이 세종 선생님의 부인의 품에서 치맛자락 속에서 3개월 간호 받으시고 임종 하셨다는 것을 아마 자존심 있는 사람은 별로일거예요. 어떻게 우리 거룩한 선생님이 죄녀의 치마폭 속에서 임종했을까? 그러나 복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그것이 복음이에요. 그러면 이 장면은 꼭 이 세종 선생님 부인과 이 세종 선생님 관계와 같은 조명이에요. 그렇게 볼 수 있어요. 한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고 몸을 갖고 있을 때에는 소똥도 밟고 발에 닭똥도 묻었지만 부활하신 몸이니까 이슬이나 묻었던지 깨끗하신 거룩하신 몸, 막달라 마리아는 몸을 너무 굽게 갖고 다녔기 때문에 똥도 묻고 그랬는데 죄 많은 여자에게 부활하신 분이 가장 처음으로 상봉하신 그 마당, 남자 제자들도 많고 사랑하는 어머니도 계시고 친척도 있으련만 가장 버림받은 막달라 마리아를 보신 그날, 전무후무한 꼭 해야 할 말을 선언하신 것이지요. 가사 논이 천마지기 이것을 누구에게 주어라. 유언하듯이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의 아버지 이 말을 어떻게 입이 있어서 그 말씀을 예수님 심정 그대로 누가 해설하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가 그렇게 가치 없는 분이십니까? 예수님의 아버지가 그렇게 값이 없는 남자에요? 아버지니까 하나님 아버지가 바로 네 아버지다. 가장 땅위에서 버림당하고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하고 버림받은 여자, 땅위에서는 그렇게 사람들이 쓸어버린 여자를 찾아오셔서 하늘 아버지가 바로 너의 아버지다. 가사 임금께 걸인 소녀가 시집갔다면 자기 임금님 아버지 제복을 보고 이분이 네 아버지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거짓말일까요? 자기 남편의 아버지가 자기 아버지이지 결혼한 여자로서는 그러면 예수님은 하나님을 이렇게 보이시면서 바로 이분이 당신 아버지이십니다. 그 얼마나 무슨 재산이 더 큰 재산이 있을까요? 하나님보다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류를 창조하시고 인류의 생사화복을 다 주관하시는 아버지를 마리아 당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당신 아버지입니다. 정배 중에 정배지요. 예수님의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면 더 사랑하는 여자가 또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사랑했던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사람들이 보기에 그렇게 존경받은 여자가 아니라고요. 다 없이 보고 멸시했던 여자입니다. 그런데 그 여자에게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의 아버지, 남자가 그런 말 안 했어요. 이 말을 열두제자들에게 전하라. 그렇게 말씀 하시지요.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의 아버지, 또 곧 내 하나님이며 네 하나님, 그러니까 예수님의 하나님이 바로 막달라 여자 마리아의 하나님이라고 일인칭이에요. 바로 너의 하나님이다. 너의 하나님이다. 그 사랑을 받아보지 않고는 그 사랑을 알 수가 없어요. 우리가 입으로 이 말을 말해도 실감이 안가요. 그러니까 성인이 성인 이라는 말씀인데 성인이 된 후에야 성인을 안다. 예수님 같이 되기 전에 어떻게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가 알겠습니까? 예수님은 내 아버지가 바로 너의 아버지이고 내 하나님이 바로 너의 하나님이시다. 그 말씀 그러니까 전부 모든 것을 모든 것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 주신 것이지요. 아버지도 하나님도 이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다 주어버린 것입니다. 분께 올라간다고 전하여라. 하고 일러주었다. 막달라에 살다가 온 여자 마리아는 남자 제자들한테 가서 자기가 예수님을 만나보고 예수님이 내게 이렇게, 이렇게 유언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하고 주님께서 자기에게 일러주신 말씀을 전하였다. 이건 요한 사도가 본대로 들은 대로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뭐 이 장면은 거룩하신 이 세종 선생님과 죄녀로 지목받았던 사모님이 그 석 달 동안 그렇게 지극한 사랑으로 일치하셨다고, 바로 내 몸이 네 몸이요. 네 몸이 내 몸이요. 내 생명이 네 생명이요. 네 생명이 내 생명이라고 할 만큼, 그러면 보십시오. 그 사모님이 미워했다. 남편을 미워했다면 이 숨이 콱 막혔을 때 이렇게 해 주십시오. 하면 안 해주면 죽어버려요. 일으켜 줘야 살지, 일으켰다가 숨이 막히면 눕혀주십시오. 눕혀야지요. 그러기를 석 달 했다고 하세요. 쑥 좀 잡수실 때 또 물만 잡수실 때 또 공기만 잡수실 때 그것이 사랑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예수님이 그러셨어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도 서로 사랑하라. 그 사랑을 이 세종 선생님과 사모님 사이는 이루신 거다. 남자의 자존심상 거룩하게 사신 남자로서 아내가 한번 두 번 개가를 했다가 돌아왔는데 만일 그 혈기 있는 남자라면 방에도 못 들어오게 할 것입니다. 굶어 죽어도 그 여자가 해준 것을 안 먹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 흔적이 없어요. 흔적이 없어. 그것이 용서와 사랑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다 용서해도 개가했다가 온 여자는 안 받아요. 남자들은, 그렇지 않습니까? 이 말이 쉽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에요. 그래 성령의 사랑입니다. 거룩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거룩한 사랑을 마리아에게 주었기 때문에 죄녀인 마리아는 거룩한 성녀가 되었습니다. 사랑은 주는 사랑이 거룩하다면 받은 사람도 거룩해져요. 그것이 사랑의 신비입니다. 가사 제가 무슨 설명을 더하겠습니까? 그것은 믿음입니다. 그것은 동의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자기가 동의해야 합니다. 아멘, 옳은 말씀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 죄를 지금 다 용서하신 것입니다. 이 세종 선생님이 자기 아내의 그 치마폭에서 임종하신 그 사랑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가장 죄 많은 여자 마리아에게 내 아버지가 너의 아버지다. 내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이다. 아버지와 천국을 다 상속 그 마리아에게 주었다는 그 사랑이 우리를 용서하신 사랑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곧 구원입니다. 그 믿음이 곧 평화입니다. 평화, 그 믿음이 곧 우리의 소망입니다. 무슨 말을 더하면 좋겠습니까? 그 사랑을 믿어야지요. 제가 설명 더하면 잘못이지요. 성령이 여러분 마음속에 오셔서 그 사랑을 믿게 되기를 빕니다. 한번 따라 읽어주십시오.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의 아버지 곧 내 하나님이며 너의 하나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너의 하나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고 전하여라. 그러니까 이 복음은 열두 사도가 전하는 복음이 아닙니다. 이 사랑의 복음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처음에 받으신 복음을 열두제자에게 전했고 그 들음으로 우리한테 전해진 것입니다. 참 너무나 어찌 보면 참 이해가 안 되어요. 이왕이면 이 거룩하신 복음을 이 사랑의 선언을 남자 제자를 하나 택해 가지고 말씀 하시고 그 다음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한테 전하시지 그렇게 안 하셨어요. 그것이 사랑이라. 그 말씀이에요. 사랑이야, 상식으로는 알 수가 없어요. 도덕이나 우리 상식으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또 이 세종 선생님의 사모님 생각을 아까 말 했어요. 그것도 갑자기 생각이 나서 말씀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들어야하기 때문에 그건 제가 안전해주면 안전해지거든요. 제가 혼자 들었으니까 그 사모님한테 이 공님 사랑이 사모님을 도와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사모님의 사랑이 이 세종 선생님을 도와주고 임종을 해드렸다. 그 점입니다. 그것을 믿어야 해요. 그 말을 여러분들이 듣고 믿어야 믿음입니다. 어디까지든지 아 그 여자는 죄녀라고 시집간 여자가 무슨 음탕한 소리야. 우리 거룩하신 선생님을 자기 죄녀가 간호했다고 창피하게 그 누가 들으면 큰일 난다고 쉬쉬하고 말 안했지요. 그것이 율법이지요. 인간 도덕률 아니겠습니까? 차라리 강태공은 자기 부인이 개가했다가 돌아오니까 물을 땅에 부으라고 해가지고 다시 동이에 담으십시오. 그랬지요. 못 담으니까 물을 엎질렀으면 다시 못 담는 것이 천륜인데 나는 당신을 맞이할 수 있습니까? 그랬다는 것 아닙니까? 한번 부부관계를 끊어버렸는데 어찌 돌아와 다시 부부가 되겠느냐는 거예요. 천리가 그런데 나는 당신을 용납 못하겠습니다. 강태공은 자기 부인을 용납 안했어요. 그것이 도덕이거든. 그래야 군자 아닙니까? 이 세종 선생님은 그렇지 않았어요. 돌아온 부인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임종한 뒤를 보면 부부일체에요. 한 몸이 되신 것이지요. 한 몸 한 몸 한뜻 그래 믿음으로만 믿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직제자가 있으면 창피할거예요. 저 사람이 그런 말 안해야 하는데 한다고 거룩한 우리 선생님 모독한다고 그럴까요? 그 율법을 초월해야 예수지요. 끝까지 이 세종 선생님은 거룩하다 하고 그 사모님을 죄를 주고 멸시하고 그런 마음속에는 예수님이 안 오세요. 예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옛날에 예수님이 그랬다. 그 말씀은 참말이고, 20세기 나타나 예수 잘 믿는 이 세종 선생님이 부인을 성녀같이 하나님의 딸로 존경하고 사랑했다. 그 말을 믿어야지요. 그것이 예수 믿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기회 있을 때마다 증언했습니다. 그 똑 부러지게 성녀가 된 사람은 믿어져요.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전주에 계신 오 기선 신부님이 유학을 마치시고 로마에서 돌아오실 때에 그분도 돈이 없는 사람이라 완행 화물선을 타고 가난한 학생이기 때문에 하루면 올 길을 한 달인가 두 달 걸려서 겨우 바다를 건너오실 때에 어느 그 열대지방 그 더운 나라에 당도하셔가지고 상선이니까 짐을 싣고 푸고 할 시간이 많이 남아서 잠깐 그 부둣가에 있는 성당을 들어가셨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성당은 석조 건물이 아니고 야자수로 기둥을 세우고 야자수 껍질로 지붕을 잇고 하루에 한 번씩 비가 온답니다. 그 열대지방은 비가 오면 야자수 껍질이 늘어져서 비가 안 새고 비가 그치면 따뜻함이 몰리니까 바람이 들어오고 벽을 막을 수가 없어요. 너무 더워서 숨이 막히니까 결국은 야자수 잎사귀를 이렇게 군데군데 끼여 놓고 그런 성당이라고 그래요. 성당 앞에는 대리석 비석이 있고 대리석 옆에는 예수님이 둥글둥글한 물체를 이렇게 품에 안으시고 남루하시는 눈물을 글썽이시는 대리적 조각인데 그 영문을 알 수 없어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비문을 읽어보니까 ‘여기 히아찐따와 히아찐따를 살해한 원수인 추장을 합장하다.’ 그 합장한 무덤이다. 그 말이야. 무덤위에 비석이 세워져 있지요. 대개 그렇지 않습니까? 그 비문의 사연은 히아찐따가 어린 소녀 시절에 사 서원 사적으로 예수님께 몸을 바쳤습니다. 예수님과 약혼을 했다. 그 말입니다. 예수님과 사 서원을 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기로 서원한 다음 추장에게 청혼을 받았어요. 추장의 부인이 수십 명이지만 후실로 청혼하는데 추장하고 결혼 하는 것이 그 지방에 태어난 여자로서는 가장 행복하답니다. 그 추장이 히아찐따를 고맙게 봤던지 청혼했어요. 그러니까 나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래도 나와 결혼하자. 나는 예수님과 약혼 했습니다. 그건 눈에도 없는 귀신인데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나하고 결혼하자. 나는 한번 예수님께 다 내 생명과 몸을 바쳤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절개를 자기는 지키겠다고 말했어요.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는 남편이 참말로 사랑스러운가 보자. 시험 삼아 손가락 하나만 떼어버리면 항복할 줄 알고 손가락 하나를 떼었어요. 요거 세 마디니까 한마디 두 마디 세 마디 차근차근 하나 둘 셋 넷 다섯 손가락 열 손가락을 다 떼어내요. 어디 그래도 사랑하니? 예 그래도 사랑하니? 예 안 보이는 귀신은 그만 사랑하고 나하고 결혼하자. 그래도 사랑하니? 그러니까 자꾸 물어보면서 떼니까 열 손가락 다 뗐지요. 발가락 다 뗐지요. 항복할 줄 알고 그런 거예요. 추장은 미워서 그런 것 아니야. 사랑을 이렇게 자기가 받고 싶어서 그 거룩한 소녀의 사랑을 추장이 탐냈어요. 그러니까 차근차근 다 어깨 떼어냈어. 다리 다 떼어내고 그러니까 둥 그래 둥그런 거예요. 그래 죽었지요. 그때 그 히아찐따는 추장 아저씨 나는 당신을 영으로 사랑합니다. 꼭 예수 믿고 하늘나라에서 같이 만납시다.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사랑합니다. 내가 죽은 다음에 추장님이 회개하면 나와 같이 무덤에 묻어주십시오. 나는 이 추장의 영혼을 사랑합니다. 이 추장의 영혼은 참 귀하신 영혼입니다. 그 히아찐다의 기도와 부탁과 사랑 때문에 그분이 추장이 그 자기가 사랑을 그렇게 빼앗으려다가 못하고 죽은 히아찐따의 무덤에 와서 하루 이틀 사흘 한 달 두 달 석 달 밥만 먹으면 와서 울고 통회하고 잘못했다고 빌고 내가 잘못했습니다. 그래 너무 거기서 많이 울고 너무 통회하고 너무 그 자기의 참회의 생활이 진해서 회개해서 거기서 무덤 앞에서 임종했다지 않습니까? 그렇게 권세 당당한 사람이, 그래서 성교회에서는 그것을 인정하고 그 무덤에 히아찐다와 추장을 합장해 주고 또 거기 무덤은 그 사연을 써놓은 것을 읽고 오셨다고 사랑의 명상이라는 책에 사연이 쭉 나와 있어요. 제가 그 글을 본지가 벌써 10년이 넘지만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요. 아니 무슨 성녀도 많지만 원수를 그렇게 자기 몸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말이에요. 자기를 죽인 원수를 그렇게 자기 생명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이 예수님의 사랑 아닌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도 서로 사랑하라. 그것을 어떻게 마음으로 지어서 할 수가 있겠느냐? 말이야. 배워서 할 수 없지요. 그래 성령 하나님의 영이 히아찐따의 가슴에 오고 예수님의 영이 히아찐따의 가슴에 같이하시고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아 나는 사랑 없다고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우리는 구하십시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 어찌 구하는 자식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세상 아버지도 자식이 고기를 달라하면 뱀을 안주는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찌 거룩한 성령을 구하는데 안주겠느냐? 말씀 하셨어요. 반드시 구하면 주신다. 우리 감정으로는 안 되어요. 어떻게 원수가 사랑스럽겠습니까? 밉지,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가능합니다. 주신다는 말씀이 여기 있습디다. 에스겔 36장 25절로 27절, 구하면 주신다. 하나님이 주시마고 약속했어요. 사랑을 구하십시다. 절대의 사랑을 우리는 구하십시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를 사랑하던 사랑을 구하십시다. 이 세종 선생님이 사모님을 사랑하던 그 사랑이 우리는 꼭 필요합니다. 만일 그 사랑을 구하지 못하고 이렇게 환자를 수백 명 모시고 자선사업을 하고 죽으면 예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나는 너 모르겠다. 너의 취미대로 너의 영웅심으로, 네가 네 자랑으로 한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 사랑이 없는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 그러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제일 급한 것이 절대의 사랑입니다. 어서어서 우리는 빌고 또 빌어서 사랑의 은혜를 받읍시다. 자나 깨나 열망이 되어야 해요. 에스겔 36장, 제가 봐드리겠습니다. 25절 27절 까지요. 정화수를 끼얹어 너희의 모든 부정을 깨끗이 씻어 주리라. 우리가 죄를 씻으라면 씻어지겠습니까? 전능하신 분이 씻어 주시마고 약속하셨습니다. 온갖 우상을 섬기는 중에 묻었던 때를 깨끗이 씻어주고 옛날에는 만든 돌이나 쇠가 우상이지만 지금 우리들의 우상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우상입니다. 자선사업하면 자선사업이 우상이지요. 농사하면 농사가 우상이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 일 때문에 때가 묻어요. 정신고통이 일어나고 양심이 괴롭고, 그런데 그 양심문제 정신고통을 만일 안 닦아 주면 우리는 죽습니다. 죽어요. 정신고통이 너무 진하면 소화가 안 되어요. 잠이 안 오고 닦아주셔야 해요. 이것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절대로 필요해요. 여기 모인 사람은 대체로 공동체 안에서 직분이 있는데 선생님 아니면 보모 스승이신데 문제가 커요. 아무리 내가 나를 깨끗하게 하려고해도 안 되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씻어주셔야 합니다. 그것이 약속되어 있어요. 죄를 씻어주마. 이것이 희망입니다. 구원입니다. 솟아날 구멍입니다. 회개해야해. 해결, 이 시간에 믿어야 해요. 지금 때를 씻어 주십니다. 사업 관계로 고민하시고 구제 사업으로 번민하는 분이 있다면 지금 씻어 주세요. 이 시간에, 지금 약속 하셨으니까 정화를 끼얹어 너희의 모든 부정을 깨끗이 씻어 주리라. 온갖 우상을 섬기는 중에 자선 사업하는 중에 묻었던 죄를 씻어 주리라. 때를 깨끗이 씻어주고 새 마음을 넣어주며 새 마음 여기 예배 보러 올 때까지는 캄캄한 마음이에요. 이 시간에 믿으면 나갈 때 마음이 환해요. 기뻐요. 희망이 있어요. 희망, 새 마음을 넣어주며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리라. 아멘, 하십시오. 얼마나 기쁩니까? 옛날에 아니지만 지금은 예수님이 오셨어요. 지금 씻어 버렸어요. 죄가 없어요. 믿어야 죄가 없지요. 의심하면 죄가 있지요. 그러니까 지금 예언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그렇게 해주마고 예언을 읽고 있어요. 자 새 마음을 넣어주며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리라. 너희의 몸에서 돌처럼 굳은 마음을 도려내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 주리라. 주시마고 했어요. 나의 기운을 너희 속에 넣어 주리니 동정녀 성모님의 속에 성령의 기운이 불어넣어 질 때는 예수님이 잉태되었습니다. 지금 신학자는 그럽디다. 성모님만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 성령을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의 사랑이 잉태되는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된다는 겁니다. 믿어야지요. 이미 애기가 컸으면 낳아지고 이 순간에 잉태되어야 해요. 거룩한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잉태되어야 합니다. 열 달 후에는 사랑이 완성 되어야해요. 이 구체적인 잉태되는 순간이에요. 이런 순간이 관련이 아니에요. 옛 이야기가 아니에요. 구체적인 기운이 성모님의 속에 들어갔을 때는 배었지요. 애기가 뛰어 놀아요. 생명이 약동해요. 새 마음을 넣어주며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리라. 너희 몸에서 돌처럼 굳은 마음을 도려내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 주리라. 나의 기운을 너희 속에 넣어 주리니 그리되면 너희는 내가 세워준 규정을 따라 오늘날의 규정은 예수님의 계명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도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예수님의 규정이에요. 규정을 사랑하라는 규정을 따라 살 수 있고 나에게서 받은 사랑하라. 하는 법도를 실천하게 되리라. 이 예언을 하신지가 수천 년 전인데 지금은 예수님이 오셔서 막달라 여자한테 선언하신 그 사랑이 우리에게도 절대 그 사랑이 이미 와계신 것입니다. 그 성경 말씀을 찾아보면 전부 그 말씀 아닙니까? 더 찾아봐도 그 말씀 또 찾아봐도 그 말씀 그러면 이 요절은 외워야 되겠습디다. 듣고 가지 마시고 이 말씀을 금년 12월 말 까지 외우셔야합니다. 자꾸 명상은 외워야 해요. 예언이니까 예언이 지금은 응했지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도 서로 사랑하라. 그 말씀이 지금은 응했어요. 그러면 예언을 우리가 보는 것은 보증 보증을 받는 것입니다. 자 따라 읽읍시다. 25절로 27절까지 정화수를 끼얹어 너희의 모든 부정을 깨끗이 씻어 주리라. 온갖 우상을 섬기는 중에 묻었던 때를 깨끗이 씻어주고 새 마음을 넣어주며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리라. 너희 몸에서 돌처럼 굳은 마음을 도려내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 주리라. 나의 기운을 너희 속에 넣어 주리니 그리되면 너희는 내가 세워준 규정을 따라 살 수 있고 나에게서 받은 법도를 실천할 수 있게 되리라. 에스겔 36장 25절로 27절 말씀, 그래 이렇게 예화를 든다던지 옛날에 들었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참고하시라는 뜻 아닙니까? 또 성경말씀을 우리가 보고 한번 읽어보는 것은 이것은 복음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복된 소리입니다. 그래 이 예언이 믿어져야 예수님의 말씀이 믿어지지요. 그러면 아까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 다시 봅시다. 요한복음 15장 9절부터 봤지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왔다. 지금 장로님 보신책에 그런 증언이 있습디다. 그 신부 이름이 나옵디다. 어느 신부님은 믿음이라는 것은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사랑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을 받아야 사랑할 수 있어요. 참 사랑의 비밀은 거기에 있습니다. 사랑을 받아 본 경험이 있어야 사랑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자기가 받아들일 수 있는 체험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네 죄를 용서했다. 하는 감격스러운 속죄의 사랑에 감격해야 해요. 그 사랑의 경험이 있어야 내가 사랑하게 되어요. 예수님이 나는 네 죄를 다 용서했다. 그 음성으로 들었던지 영으로 들었든지 확신을 얻지 못한 사람은 사랑이 안 되어요. 자기가 체험이 없거든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랑을 먼저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도 자기가 그 경험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예수님이 사랑하는 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가 먼저 예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아버지의 영원한 나라에서 받았기 때문에 자기의 사랑의 체험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왔다. 어떠한 형태로 지금 이 공동체 안에서 어머니들의 사랑이 지극하다는 것은 친히 이 선생님의 사랑을 받은 분들입니다. 그거에요. 무식하신 어머니들이지만 그 아프신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 친히 그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였느냐? 이렇게 설명해야해요. 선생님이 저희들을 피가 터져 죽었다. 어머니들은 그랬거든. 그 어머니들이 지방에서나 교회에서 영웅이 참 영웅들입니다. 자기 교회에서는 샛별같이 빛나는 집사들이거든요. 그런데 이 선생님한테 왔을 때 이 선생님 말 안 들었어요. 꼿꼿하고 고집에 세니까 선생님이 피가 마르도록 금식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한나 어머니 고집이 꺾어지도록 금식하셨어. 그러니까 선생님이 죽을 성 싶으니까 그 집사님이 회개했거든. 귀주 어머니랄지 한나 어머니가 그겁니다. 제가 무등산에서 목격했습니다. 이것도 증언입니다. 인제 이 선생님은 광주 YMCA강당에 계시다가 무등산 최 흥종 목사님 별장에 가서 계세요. 또 한나 어머니는 식구들 한 10여명 데리고 산에 기숙하고 계십니다. 어머니를 불러 내려와요. 좀 오십시오. 그러면 선생님 이것 좀 잡숴보십시오. 하고 선생님은 식사는 안하시니까 식사는 안 하시니까 안 드리지요. 보리 가루나 밀가루 조금 죽에 풀어서 갖다드려요. 그러면 안 잡수시지요. 그러면 한나 어머니 이렇게, 이렇게 하십시오. 그러면 어머니가 아주 강하지 않아요? 절대 말 안 들어요. 자기주장이 강하니까  (끊김)

 

 


죽어 버리는데요. 참말로 굶어 죽어버려요. 잘못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이제는 회개를 하니까 밥을 그래 한분, 한분 다 거의 그래요. 한분, 한분 그래서 녹아난 것이지요. 그 사랑에 옛날에 갈보리 어머니랄지 물 어머니랄지 수레기 어머니랄지 또 수림이 어머니 가사 한분, 한분 영혼을 피로 산 것이지요. 피를 주고 샀어요. 지금 우리 동정녀들이 여기서 공동체 안에서 보모로 계신데 나이도 많고 몸들도 약하고 그렇게 왜 희생하시냐? 그거에요. 이 원장님 피가 녹아나서 영혼을 샀지요. 자 어느 보모 이거 하십시오. 말 안 들어요. 원장님 굶지요. 하루 굶지 이틀 굶지 사흘 굶지 나는 뒷방에 이래 몸이 크시고 이 폐활량이 크니까 어험, 소가 자빠질 뻔해. 어험, 폐활량이 크시니까 꼭 소가 쿵 자빠지는 소리를 해. 밤중에 그러니까 며칠 굶어. 한 사흘이나 굶으면 막 울어. 보모가 잘못했다고 빌어. 선생님 식사하시오. 나 선생님 말씀 순종하겠습니다. 그거에요. 피 피가 달아져서 이렇게 이 영혼들이 사랑하고 살지 그냥 말로 이렇게 설교해서는 안 되어요. 물에다가 돌에다가 물주면 들어가겠습니까? 생명 콩나물에다가 물을 줘야 크지요. 생명 피로 옛날 예수님이 피를 흘렸다는 것은 사실이에요. 현실에 있어서도, 이 세종 선생님이 식사를 안 하시고 부인을 나를 다 껴안으라고 몸을 다 줘버리지 않아요? 그래 사모님이 항복한 것이지요. 이 더러운 년 나 보지마라. 강태공 모양으로 그러면 사모님이 회개하겠습니까? 그 거룩하신 이 세종 선생님이 그 죄짓고 온 부인한테 탁 몸을 줘요 품으라고 나를 안으십시오. 나를 꼭 껴안으십시오. 꽉 껴안고 그래 성인과 죄인이 일치가 돼. 하나가 되어버려. 그러니까 이 공님이 사랑을 줬지요. 그래 사모님이 사랑을 받았지요. 그 사랑에 감격해서 또 드리지 않습니까? 그 이 세종 선생님의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도 이 세종 선생님을 바로 본 제자가 없어요. 그 절개 지켰다고 독신생활 했다고 주장하고 그 오늘날까지 씨가 안나요. 씨가 안나, 선생님을 오해 한 것이지요. 선생님의 사랑을 너무 잘못 오해한 것이지요. 어떠한 뜻으로는 예수님의 사랑과 이 세종 선생님이 그 동질이라 하겠어요. 사랑은 같아요. 절대 용서에요. 말이 아니에요. 관념이 아니에요. 실제 피를 주었어요. 몸을 다 줘버린 거예요. 부인한테, 그 자기 몸을 다 줘버렸어. 그래도 부인은 항복하고 감화 받아가지고 회개하고 하늘나라 가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사랑이라는 그 말씀입니다. 그러면 히아찐따가 그 피를 본 추장을 미워하지 않았어요. 절대로 사랑했어요. 저 추장이 회개하고 죽거든 내 무덤에 합장해 주십시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사람의 감정으로, 추장이 자기야. 자기를 죽인 원수 추장이 바로 자기 몸이야. 히야찐따의 자기혁명이에요. 그러니까 두 몸이 한 몸이야. 사랑은 두 사람이 한사람이다. 예수님과 우리를 사랑했다는 것은 우리도 예수님 이예요. 우리가 사랑이에요. 나는 네 속에 너는 내 속에 있다고 예수님이 그렇게 전하셨어요. 예수님이 우리 속에 와계십니다.  우리는 예수 속에 들어갈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한 몸입니다. 그것이 사랑이에요. 그것을 믿는 것이 구원이고 그것을 믿는 것이 해방이고 믿음이 곧 사랑이라 그 말씀입니다. 사랑 그 자체가 믿음이에요 믿음 사랑을 믿어야지요. 그래 지금 우리 식구 가운데 그것이 모자라요. 믿음, 그 절대의 사랑을 믿음으로 자기가 그 믿음을 얻는 것 아니겠습니까? 믿음으로 그 사랑을 우리가 서로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곧 예수님의 사랑이 내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랑 없이 어떻게 우리끼리 사랑하겠습니까? 그 사랑 어제 이야기 했어요. 우리는 달입니다. 사람은 달과 같습니다. 달은 빛이 없습니다. 그러나 해를 햇빛을 받아들이면 달빛이 밝습니다. 그러니까 숯덩이 같은 우리 몸이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면 우리 몸에서 사랑이 동합니다. 절대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서 우러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기억하는 동안에는 우리는 사랑할 수 있어요. 예수님의 피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뜨거운 그 사랑에 우리 마음이 딱 이렇게 바라보고 있을 때만 우리 가슴에 사랑이 일어나지요. 사랑이 동합니다. 그러니까 24시간 예수님 사랑하라는 말이 무슨 말씀입니까? 항상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깨어있으라. 그 말씀 아니겠어요? 만일 그 사랑이 우리 몸속에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 많은 좋은 말씀 들어봐야 종이호랑이 아니겠어요? 종이에 그려놓은 호랑이가 아무리 무서워도 어떻게 하겠어요? 종이인데 또 종이에 그려놓은 물이고 종이에 그려놓은 생명수, 나와 아무 관계없지요. 믿어야지요. 실제 예수님의 사랑을 믿어야해. 절대의 사랑을 믿읍시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아까 그 말씀 했어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왔다.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후에 형제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것이 부탁이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있게 될 것이다. 아주 구체적이야. 10절, 구체적이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너는 내가 너를 사랑한 것처럼 너는 이 인류를 사랑하라. 하신 계명을 받고 오셨지요?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들도 내 계명 예수의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내가 이 말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이 말씀이 그 말씀이지요.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내 멍에는 가쁜 하고 쉽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그것이 사랑이에요. 사랑의 멍에는 쉽고 가볍답니다. 기쁩니다. 사랑 사랑의 멍에는 기쁜 것이다. 내가 이 사랑의 멍에를 지라는 것은 내가 사랑하라는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이 예화와 소재는 복잡한 것이 없어요. 꼭 하나, 있는 것을 그것을 같이 이야기하면 되겠습니다요. 그 이번에요. 그런 이야기를 제가 듣고 전하겠습니다. 산에 어느 분이 깊은 산에 가서 점심을 먹고 있었어요. 어느 청년인지 알 수 없어요. 배는 고프고 점심을 먹고 있는데 그 옆에 또 등산을 했던지 산에 와서 며칠을 굶고 길을 못 찾고 헤매 던 죽어가는 사람이 있어요. 밥을 먹는 것을 보고 자기가 살았다싶어서 막 기어가요. 기어가요. 나 좀 살려주시오. 내가 이 깊은 산에서 길을 잃고 밥 굶은 지가 며칠이 되었습니다. 밥 한술만 주십시오. 조금만 먹으면 내가 살 것 같습니다. 하고 아주 눈에 피가 나도록 빌었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밥을 먹는 사람도 사정이 있어요. 자기는 무슨 부모형제 부탁을 받고 약을 캐러왔던지 자기는 그 밥을 먹고 힘을 얻어야 무슨 참 약을 캐어가지고 갈 모양인데 밥을 줘버리면 자기가 힘이 없겠거든. 그러니까 자기 앞만 생각하고 눈 질끈 감고 먹어버렸어요. 그러니까 며칠을 굶고 이제 힘이 진해가지고 밥을 한술 얻어먹으면 살겠다는 희망이 끊어지니까 피리르 하니 죽어버려요. 그냥 임종했지요. 청년은 희망이라는 것이 무서운 건데 희망이 끊어지니까 죽어버려요. 그랬는데 그런 사건이 있답니다. 그런데 그 자기 이 사람도 효자가 효자인지 몰라도 부모의 약을 캐다캐다 못 캐고 또 왔어요. 한 일 년 후엔가 이년 후에 또 왔어요. 그날도 자기가 원하던 것이 다 안 되고 또 길을 헤매다가 밥을 또 먹어요. 그때는 밥을 좀 주십시오. 그런 사람 없지요. 몇 년 후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물을 안가지고 왔어요. 그러니 목이 마르니까 산에 있는 옹달샘을 발견 했어요. 풀도 이렇게 있고 목이 마르니까 입을 대고 물을 마셔요. 큰 독사가 와서 입을 딱 물어버려요. 그러니까 입을 꽉 물고 안 놔주니까 죽었어요. 그런데 이것은 비유고 우리 예수 믿는 사람 이야기 아닙니다. 그 배고파 죽은 청년이 한을 품었어. 내 이놈 보자. 세상에 사람이 죽어 가는데 그렇게 사랑이 없단 말이냐? 한을 품고 죽어가지고 독사가 되었답니다. 그래 그 사람이 다시 오기를 기다려 독사가 되어가지고 그래 물 먹으로 온 것을 꽉 물어버렸어. 네 이 독한 놈 독사 같은 놈아 너 혼자 잘 될라고 네가 그때 밥 한술만 주었으면 내가 살 것 아니냐? 한을 풀고 그런데 그 청년은 죽었어요. 죽어가지고 또 한을 품어 알았어. 아 독사가 옛날에 내가 밥 안주니까 이놈이 앙심을 품는구나. 너 보자. 그러고 멧돼지가 되었어. 그리고 몇 년을 돌아다녀. 그 독사 어디가 사는가 보자. 그러고 몇 년 매일 돌을 들어요. 물가에서 돌을 들어. 그러니 그 안에 있거든. 독사가 꽉 물어서 죽였어. 독사를 죽여 버렸어. 그래 자기가 먹어버려. 그냥 이 원수 이놈 내가 너를 삼킨다. 독사를 와삭와삭 자기가 먹어버렸어요. 그 멧돼지가 독사가 죽으면서 보니까 그놈이 옛날 밥 안주던 청년이거든. 옳다, 이놈 내가 원수 갚는다고 자기가 사람이 되어가지고 포수가 되었어. 포수, 몇 년 후에 일이야. 이 늙은 돼지가 어디있냐하고 청년이 되어가지고 총을 가지고 왔어요. 그리고 그 산을 막 돌아다녀. 아 저 우물가에 있구나. 그러고 막 총을 놓으려고 그래. 그러나 돼지가 내뺐거든. 돼지가 내빼, 쫒아가. 그런데 거룩한 청년이 나무를 하고 있어. 산을 넘어가버리니까 여보 청년 포수가 쫓아갔어. 멧돼지 안 넘어갔소? 그러니까 청년이 알아요. 알아, 여기 좀, 앉으십시오. 조금 앉으세요. 멧돼지는 나는 온데 간데 모르겠다고 알기는 알아요. 좀 앉으세요. 진정하고 앉혀놓고는 그 이야기를 다 했대요. 밥 안준 이야기 독사가 된 이야기 당신이 옛날에 밥 안준 청년 아니요? 깜짝 놀래가지고 퍽퍽 울더라고 그래요. 아 내가 나쁜 놈이라고 그때 깨달아요. 내가 나쁜 놈이라고 내가 무정한 놈이라고 내가 잘못했다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은 누구입니까? 화목하게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지요. 하나님의 아들이 거기 나타났지요. 화목을 시킨다고 그래, 거기 나타난 거야. 보복은 안 된다. 섭섭하면 또 욕하고 섭섭하면 또 욕하고 또 더 보태서 욕하고 서로 욕하고 서로 섭섭하고 안 돼.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님이 오셨어요. 화목을 시켜요. 안 된다. 탓은 저쪽 탓이 아니라 네 탓이다. 그전 일을 생각해 봐라. 그전 일을 실상 이쪽이 먼저 잘못한 것이다. 그래 저쪽이 그렇게 보복한 것이니까 네가 먼저 회개하라. 그렇게 이르시는 그것이 동화지요. 동화 옛날 어진 어른들이 그런 이야기 만들었지. 꾸몄지. 실감 있게 깨달으면 그것이 보배야. 무슨 잘못이던지 저쪽 탓은 아닙니다. 결국은 내 탓이야. 가사 이 세종 선생님은 부인 탓 안 했어요. 내가 40넘고 늙은 총각으로서 어린 소녀한테 결혼한 것은 내 잘못이다. 이 공님은 자기 탓을 했어요. 절대 사모님 탓 안했어요. 사모님은 28청춘 젊은 큰 애기이고 자기는 늙어서 장가갔으니 늙은 남자를 누가 좋아하겠어요? 다 자기 탓이지 그 꽃 같은 젊은 아내가 개가한 것을 절대 탓하지 않아요. 내 탓이야. 내 탓이다. 한 번도 부인을 미워할 이치가 없어요. 자기를 탓하시고 자기를 복종했지요. 그렇게 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도 서로 사랑하라. 그 계명을 받은 분이 이 세종 선생님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이 세종 선생님이 얼마나 혈기가 많고 아주 단기이던지 살림 하실 때 자기 집에 남의 닭이 오면 훠이 하지 않고 막 가지로 확 때려서 죽여 버렸어. 훠이 하지도 않고 때려서 죽여 버렸어요. 남의 닭을, 그렇게 무서운 분이다요. 예수 안 믿었으면 자기 부인이 오면 주먹을 확 때려서 죽여 버릴 거 아니요? 그렇게 무서운 분이야. 그런데 예수 믿고 영을 받았거든. 그렇게 부인이 개가를 두 번이나 했다가 왔어도 내 몸을 안으십시오. 내 몸을 안으십시오. 자기 몸을 다 줘버려요. 그 예수님이 좋으신 분 아닙니까? 이 계명을 지킨 분이에요. 이 계명이 살아있어요. 그러면 이 세종 선생님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절대 번민하지 않았어요. 기뻤어요. 자기 원수인 아내가 돌아왔을 때 기뻤던 것이고 사랑할 때 기뻤던 것이지 절대 마음속에 섭섭함이 없었습니다. 그걸 믿어요. 내가 이 말하는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의 마음에 기쁨을 넘치게 함이라. 아니 기뻤으니까 석 달이나 임종을 하며 몸을 맡기지, 기분이 나쁘면 참고 참다가 네 이년 그러고 발로 차 버릴 것 아니에요? 참다 참다 네 이년 나 버리고 갔지? 마음속에 있는 것이 드러날 것 아니요? 생명이 사랑이 약동해 선생님 마음속에 절대 아내 탓 안 해. 모두 내 탓이야. 내 탓. 아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내 탓이오. 

 

 

그래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예수님이 아까 막달라 마리아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도 서로 사랑하라. 제일 못 난 여자, 제일 죄 많은 여자, 제일 버림받은 여자에게 내 하나님과 내 아버지를 준 것처럼 너희들도 서로 네가 장상이고 윗사람이고 보모고 선생이거든 제일 말 안 듣는 제자 제일 속 썩이는 제자에게 네 피와 살을 주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하지 않았어요? 생명을 주라. 그것은 절대 고민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은 기쁜 것입니다. 내가 이 말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이 성경구절은요. 듣고만 말지, 아니요. 지금 여기 참석한 분들은 이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받아가지고 나가도록 되어있어요. 이 순간에 하나님의 계획이 이것을 받아야 살아요. 이 사랑을 안 받고 어떻게 믿어요? 번민, 번민 의무적으로는 안 되어요. 정신고통만 심하지요. 기뻐야지요. 사무를 보던지 간호를 하던지 환자 대소변을 가리던지 환자에게 밥을 맡던지 가사 기뻐야지. 사랑이 충만해야 해요.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마음에 기쁨을 너희와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사랑이 충만하여 너희에게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옛날이야기가 아니지요. 이 세종 선생님의 제자가 이 현필 선생님입니다. 또 이 현필 선생님이 우리를 가르쳤습니다. 우리 귀로 들은 것이요. 우리 손으로 만진 바에요. 옛날 예수 이야기가 아니거든. 예수님이 나타나신 근대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가능한 일이에요. 그렇게 불벼락같이 혈기가 많던 이 세종 선생님이 그렇게 양순한 양같이 그렇게 순하시고 부인을 그렇게 선대하셨다는 이야기는 실제로 사건이거든요. 그렇게 하신 것이에요. 내가 이 말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 됩디다. 어떠한 뜻으로 인류를 위해서 예수님이 살을 주시고 피를 흘리시고 대속하고 죽으신 것이지요. 그러나 아까 성경말씀을 그 대목을 보면 막달라 여자 그 여자 한사람 때문에 피를 흘리고 죽었다고요. 구체적으로는, 그 문맥이 그렇지 않습니까? 사건이 그렇게 되어있어요. 그때 이야기는 실제 그 여자 하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몸을 줘버린 거예요. 생명을 줘버린 거예요. 그 사건 때문에 비방도 많고 교계에 쑥덕쑥덕 말도 많았어요. 죄인을 사랑한다고 죄녀를 사랑한다고 죄녀를 용납한다고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아버지와 하나님을 다 줘버리니 얼마나 말이 많았겠어요?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내 아버지에게 들은 것을 모두 다 알려 주었다. 다 알려 주었다는 것은 절대의 사랑입니다. 아무리 잘못했어도 살과 피를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절대의 비밀이에요. 천상의 비밀, 아무리 죄가 많고 잘못했어도 회개한 자식을 나는 내 살과 피를 준다. 그것이 모두다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비밀입니다.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다 알려주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는 열매를 맺어라. 썩지 않는 열매는 곧 절대의 사랑입니다. 절대의 사랑입니다. 썩지 않는 사랑 그러면 이 세종 선생님이 부인을 용납하고 사랑했다는 그 사랑은 영원히 썩지 않을 열매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전했어요. 여러분은 그 말씀을 또 전할 것입니다. 한국에도 그런 절대의 사랑을 완성하신 분이 있다. 그러면 아버지에게서는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실 것이다. 절대의 사랑을 구하면 이루어 주세요. 절대의 사랑, 은총의 사랑 은총의 사랑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 그러니까 12절이 계명이지만 요약해서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 여기는 피가 묻었어요. 마음이 아니야. 피가 뚝뚝 떨어져요. 내 살을 먹으라. 내 피를 마셔라. 그렇지 않으면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니까 11절부터 17절까지는 한 단어지요. 한 말씀이지요. 그러나 그 요절은 12절이지요. 따라 읽으세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한번 따라 읽고 외우십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요한복음 15장 12절 말씀. 외우십시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그러면 요절 외워도 안 되지요. 사랑이 안 될 것입니다. 앞으로 그러면 지금 주신다고 그랬어요. 약속하고 계세요. 안 될 것을 아세요. 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준 것이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믿으라고 택한 것입니다. 사랑을 주시기 위해서 계획 적이에요. 절대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택하신 겁니다. 아쉬운 것은 예수님이에요. 우리가 아쉬운 것 아니에요. 자기가 아쉽지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아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는 열매를 맺어라. 그 말씀 하신 다음에 썩지 않는 열매는 절대의 사랑인데 안 돼. 안 돼. 안 돼.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다 들어주실 것이다. 절대의 사랑을 열망하고 구해요. 그러면 이루어 주세요. 그걸 하나님께서 약속했어요. 예수님께서 약속했어요. 

 

 

따라 읽으세요.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실 것이다. 이 예수님이 약속하신 거니까 만일 안 들어 주시면 예수님이 거짓말 시키신 거지요. 구해서 안주는 것 있으면 와서 예수님께 항의해 보세요. 새벽에도 구하고 밤에도 구하세요. 가사 인제 밥을 차려가지고 싸우지 않아요. 애기들이 그러면 그냥 꾸지람 말고 그냥 엎드려서 빌어요. 애기가 밥을 안 먹고 싸웁니다. 주님 사랑하는 마음 주십시오. 그러면 곧 사랑이 일어나요. 그러면 밥 주지요. 기도 않고 간섭 하니까 싸움이 일어나요. 기도하면 주신다고 하시는데 왜 안 주세요? 그건 필요 없는 것 같이 안 구한 것뿐이에요. 다시 말하면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이건 피다. 생명이다. 계명이다. 11절부터 봐야 17절 말씀이 끝나는 말씀이에요. 11절 말씀 따라 읽읍시다.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참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아까 해지기 전에 아 해가 질 무렵에 오 장로님하고 저하고 둘이 있었어요. 그러나 이건 누구라고 비밀로 합시다. 정신 아프신 자매들하고 같이 사신 경험인데 명령하면 말 안 듣는다. 그건 경험담 입디다. 밥 먹으시오. 세수하시오. 목욕하시오. 하면 그냥 말 안 들어. 사정할 때 그저 눈을 보지 말고 눈을 아래로 뜨고 죄인 모양으로 언니 빌어, 언니 목욕합시다. 언니 밥 잡숩시다. 그러면 눈치를 가만히 보다가 응 하고 가. 그러니까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세요. 빨리빨리 밥 먹어. 안 먹어? 그게 정신병이야. 반항하는 것이, 그러니까 빌어 언니 식사하십시다. 열 번이고 백번이고 늘 빌어. 언니 식사하십시다. 그러면 빙긋이 웃고 밥을 먹어요. 그러니까 막 싸울 때 싸우지 말라고 때리면 더 싸워요. 그러니까 아이고 언니 나 죽겠어. 죽겠어. 같이 우는 시늉 하고 빌어. 어린양하면서 아이고 싸우면 나 죽겠어. 가슴 아파. 아이고 아이고 막 다시 말하면 애기가 되어가지고 빌어. 그러면 싸움을 안 한다고 그런 경험을 다 이해하고 나가신 분이 있어요. 비밀이야, 그건 학교 배워서는 안 돼. 학교 배워서는 안 되고 실제 해봐야 돼. 세수를 안 하려고 죽어도 안하려고 하지요. 물을 제일 무서워요. 목욕탕에가 목욕하자고 하면 죽어도 안 해. 그러니까 자꾸 빌고 언니, 언니 아 냄새나. 아 냄새나. 옆에서 아이고 목욕 합시다. 목욕 합시다. 그러면 백발백중이야. 다 들어. 그것이 비밀이야. 나도 해 봤어요. 옛날에 저도 이말 할 자격이 있어요. 나도 얼마나 똥 치웠다고 꼭 똥을 누면 내 이거 자랑하지요. 똥만 누면 딱 손으로 잡고 사탕 별명이 사탕이야. 그러니까 똥 눌 때 얼른 빼앗아 버려야지. 잠깐 뭐하고 있다가 똥 누면 꽉 잡고 먹어요. 먹고 사탕, 사탕 그러니까 어찌했던지 24시간 그 옆에 있었어요. 이 선생님이 맡겨 준 청년인데 사탕 청년인데 꽉 같이 있어서 똥 누면 한번 누지만 쭉 지켜야 해요. 그동안 놓쳐버리면 똥, 큰일 나. 똥을 안주지요. 손으로 꽉 잡고 사탕, 사탕 하고 막 주물 럭, 주물 럭 하고 그러니까 막 눌 때 빼앗아야 돼. 몇 년 데리고 살았는데 같이 한방에서 둘이 저도 체험이 있어요. 한번 아니꼬 와서 사탕 왜 그러냐니까 여기를 탁 때려버려요. 그냥 눈에 불이 번쩍해요. 그 다음에 나는 절대 지배 안했어. 아 이 사람은 지배 안 되겠다. 사탕 사탕하고 사정을 해야지 법 먹어. 그러면 팍 때려버려. 어떻게 아픈지 권리가 안 돼. 사랑뿐이야. 사랑 겸손히 주를 섬길 때 찬송 부르십시다. 당신의 사랑 이 목숨보다 소중하기에 이 입술로 당신을 창양 하리이다. 한번 따라 읽어 주십시오. 당신의 사랑 이 목숨보다 소중하기에 이 입술로 당신을 찬양 하리이다. 일단 외우십시다. 

 

 

그러면 시편은 참 사랑의 노래 참회의 노래 그 희망의 노래 그런 시편 아닙니까? 여러 말씀 많이 보면 기억하기 어렵고 할머니들 이거 외우세요. 오늘저녁에 외우세요. 이 시편도 누가 썼습니까? 다윗이 썼습니까? 다윗의 노래 유다 광야에 있을 때 부른 노래라고 그랬어요. 그 참 이분도 싸움도 많이 하시고 광야에서 어려운 일도 당하시고 예수 사랑에 몸을 의탁하시고 얼마나 희망을 품었지 않아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당신의 사랑 이 목숨보다 소중하기에 문제는 이것입니다. 무엇이 목숨보다 소중한가? 옛날에 열녀라는 것은 한 남편을 섬기기 위해서는 목숨을 버리고 사랑을 표현한 것 아니겠어요?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 사랑이거든요. 실상은 이것은 그냥 성경말씀 보다는 실제 체험이 있어야해요. 체험이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바치기까지 그런 체험이 있어야지, 하나님의 사랑 우리로 하면 예수님의 사랑 당신의 사랑 이 목숨보다 소중하기에 이 입술로 당신을 찬양 하리이다. 그래 모든 문제 있지 않아요? 공동체나 개인이나 문제는 사랑이 동난 것이라 그 말입니다. 사랑에서 그 병이 나서 그런 것뿐이에요. 사건이 병난 것 아니에요. 결국은 내 가슴에 병이 나서 사랑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박았다. 그것이 이유거든요. 그래 탓이 없어. 다 내가 예수사랑을 못 받은 탓입니다. 이유는 그것뿐이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그렇게 귀하게 깨달았다면 예수님의 사랑을 그렇게 생명보다 귀하게 깨달았다면 이 목숨보다 그 사랑이 귀하기 때문에 이 입술로 당신을 찬양 하리이다. 역시 사랑밖에 없구나. 하는 감격 그 희망 그 소망 그것 하나뿐이에요. 자나 깨나 그 찬양해야 해요. 사랑을 주십시오. 제게는 사랑이 모자랍니다. 아 제게 사랑을 주십시오. 세 번 따라 읽고 외웁시다. 당신의 사랑 이 목숨보다 소중하기에 이 입술로 당신을 찬양 하리이다. 당신의 사랑 이 목숨보다 소중하기에 이 입술로 당신을 창양 하리이다. 당신의 사랑 이 목숨보다 소중하기에 이 입술로 당신을 찬양 하리이다. 시편 63편 3절 말씀 한번 외우십시오. 당신의 사랑 이 목숨보다 소중하기에 이 입술로 당신을 찬양 하리이다. 시편 63편 3절 말씀, 여러분들께서 찾아서 찬송을 올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