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소설과 대설 사이 : 동광원을 보호하심

mamuli0 2021. 12. 1. 08:08

 신축년 마지막 달력이 걸렸다. 소설과 대설 사이인데 비가 내렸다. 울금 수확이 중단되고 비바람이 불고 기온이 내려갔지만 이곳은 영상의 날씨다. 

 

 

 

동광원을 보호하심

1989.05.12. 김준호 선생

 약한 사람의 약점을 돌봐주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2절. 우리는 저마다 이웃을 존중하고 그 이익을 도모하여 믿음을 북돋아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이 좋으실 대로 하시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모욕하는 자들의 모욕을 내가 대신 다 받았습니다. 라는 성서말씀대로 하셨습니다. 15절 하반 절이지요. 은총이란 말은 우리가 늘 같이 생각을 같이해봤지요. 사람에게는 전무한 것을 주신 덕이다. 사람 쪽에서는 만에 한 칸도 없는 것인데 무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선물이다. 완전한 하나님께서 주신 위탁한 보물이다. 가사 그는 생리적으로 우리가 말하면 납득이 되어요. 처녀가 아이를 못 낳지요? 그렇지요? 아이 낳으면 은총이지요. 그 다시 말하면 초자연의 능력을 주셨다. 이거에요. 전혀 이 육신의 힘으로는 안 될 일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하실 일을 직접 위탁했어요. 내 지혜로 네가 일을 하라. 예수님께서 이 사도바울이란 사람은 예수님을 박해하던 다시 말하면 반대자지요. 예수님을 박해하던 원수지요. 그러나 원수한테 무슨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만에 한 칸이라도 있어요? 없어요? 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주셨습니다. 그 마음이 천도 사셨어요. 백도가 아니에요. 완전히 예수님의 종이 되셔가지고 심부름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은총의 입은 거예요. 은총을 가득 입은 마리아여 기뻐하십시오. 처년데 아이를 잉태한다. 그 사건이지요. 처년데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셨습니다. 은총을 가득 입은 마리아여, 기뻐하십시오. 사도바울께서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다는 것은 은총으로 되었다는 것을 자기가 아주 강조합니다. 자기는 본질상 예수의 원수요. 예수교를 막 말살하려던 원수였다고 자기 자신이 그런데 어째 이 사람이 이렇게 예수님의 충성된 제자가 된 것입니까? 그건 하나님의 초자연 능력이다. 은총이다. 사람의 상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힘이다. 그 말씀이고요. 18절 보면 이방인은 유대사람 아닌 사람이 이방인입니다. 우리들이여요. 이방인은 유대 밖의 사람들이 이방인인데 이방인들을 하나님께 복종시키신 분이 그리스도이시고 나는 다만 그분의 일꾼노릇을 했을 따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가사 어디를 가든지 사도바울이 가면 모두 순종하지요. 모두 순종해요. 그러면 그것은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이지 사실은 그 사도바울 자신을 보고 복종하는 것이 아니다. 그걸 밝히십니다.

 

 

 이 점을 우리가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사도직을 갖는다. 선교를 한다.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다 할 때 어디가든지 은혜가 일어나고 모든 사람이 사랑해지고 존경하고 감싸고 그냥 사랑해쌓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의 사건이지 자기에게 일어난 것이 아닌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 차이에요. 타력종교냐? 자력종교냐? 자력으로 이룬 종교는 자기가 가기 때문에 자기가 영광을 독차지하지, 그러나 타력종교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그 종은 사도는 심부름꾼이기 때문에 아무 자랑할 것이 없어요. 그런 그 점을 유의하고 본 받아야겠다. 그 점이고요. 오늘밤에는 2절 7절 13절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이웃의 뜻을 존중하고 그의 이익을 도모하여 믿음을 북돋아 주어야 합니다. 그랬어요. 그담에 3절부터 해설이지요. 누구도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이 좋으실 대로 하시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모욕하는 자들의 모욕을 내가 대신 다 받았습니다. 라는 성서말씀대로 사셨습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이 비가 많이 와도 욕하고 비가 안와도 욕하고 그러지 않아요? 이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는 것을 예수님이 대신 다 받아버려요. 모든 인류역사가 지금 오천년을 이 문헌상으로 오천년이여. 그러나 문헌이 아니고 기록안한 거로는 오만 년 칠만 년 잡지요. 십만 년 잡기도하고 추측인데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래 하나님께 원망하는 것을 아들로서 총 책임을 지고 하강했거든, 성도로 탄생하시고 모든 인류의 한과 죄와 눈물과 원한을 예수님이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 아니겠어요? 큰아들로서 그 큰아들이 무슨 죄가 있어요? 아버지가 죄가 있다면 죄가 있겠지만 자기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다. 사랑을 내보여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했습니다. 그 말씀이고, 

 

 

7절은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 같이 우리가 선을 만분의 일이 있으니까 조건부로 받아들인 게 아니에요. 만에 만 칸이 본질이 악해요. 본질이 반역이여. 사사건건이 거역한 사람이여. 우리 본질이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였어. 무조건 안아 준거에요. 선한작용이 있기 때문에 인정한 것이 아닙니다. 천년만년 영원히 진리를 거역하니까 무조건 사랑으로 포섭해 안아 준거예요. 그게 은총이에요.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처럼, 것같이 우리는 그리스도 제자다. 진리의 제자다. 가사 아, 우리는 진리의 제자다. 은총을 받은 제자다. 한다면 우리도 예수님같이 여러분도 서로 받아들여서 하나님의 사랑을 들어내십시오. 하나님의 자비를 들어내십시오. 하나님의 은총을 들어내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십시오. 그런 말씀이지요. 13절에 아무쪼록, 아무쪼록 희망을 주신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온갖 즐거움과 평화를 만일 받은 것이 희망이고 받아진 은총이 온갖 즐거움이 온갖 희망이 있다든지 평화가 있거들랑 그 개인의 재산이 아니에요. 맡겨진 하나님이 위탁하신 재산이거든, 자기 것이 아니에요. 

 

 

그러기 때문에 즐거움이 있다든지 평화를 얻었거들랑 평화를 여러분에게 가득히 안겨주시고 성령의 힘으로 희망이 여러분에게 넘치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지금 읽는 동안에 마음속에 기록하고 싶습니다. 성경말씀은 이만하고. 제가인제 사연 교무님이 이렇게 와주시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시는 분은 아시지 않아요? 무조건 오시고 우리는 무조건 어떠한 뜻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참 이건 크신 하나님의 자비라고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송죽이 소나무와 잣나무가 같이 심어놓으면 같이 즐거워한다. 그런 문장이 있답니다. 소나무와 잣나무를 같이 심어놓으면 피차간에 해를 안 봐요. 같이 잘 커요. 그 재목이 됩니다. 소나무 하나 심어놓고 잣나무 하나 심어놓으면 가지가 많아가지고 재목이 안 되어버려요. 그래서 송죽이 동련이라 송죽이 동시에 기거한다. 그런 문장이 있듯이 원불교 교무시니까 여기는 다시 말하면 기독교에 말하면 장로님이십니다. 그런데 양쪽이 깊어요. 전혀 피해를 받지 않아요. 서로 도움이 되었으면 되셨지 전혀 손해가 없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제를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은혜는 이번에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그 증거로서 오 장로님께 오신 편지를 좀 읽어드릴라고 그래요. 저는 이 말도 부끄러워서 혼자 속으로 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이 말을 하라는 시간이에요. 이 선생님께서 소망실을 세울 때, 결핵환자 촌입니다. 제가 너무 그쪽에 지나치게 관심을 쏟으니까 이 선생님이 충고하셨어요. 준호 동광원이 바로 되어야 요양소가 바로 되는 거다. 까불지 마라. 동광원이 망하고 잘 될성부르냐? 그 뜻이에요. 모체가 서야 지엽이 서지, 모체를 등한히 하고 그 가지가 잘되느냐? 그런 충고를 한번 하셨어요. 

 

 

그 참 기억했습니다. 임종하시기 전 한 30분 전에 동광원을 돌아봐라. 그랬어요. 너무 지나치니까 사람이 딴 데 정신을 쓰니까 그걸 저는 기억하고 있어요. 그러나 미련하게 힘이 모자라 그래 항상 마음에 그 어른의 유언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모원을 볼 때에 소나무 하나 심어놓은 것 같이 자꾸 가지가 많아, 그래 항상 열망 하나님께서 주신 희망은 그 옆에 다른 나무가 심어져야겠다. 그런 평소에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10년 전에 이 선생님 전기를 보고 서울서 두 청년이 오셨습니다. 오셔서 헌신하겠다. 저는 운전해 드리고 저는 사무실 담당해드리겠습니다. 두 청년이 왔어요. 그때 우리는 장로님이 아파계셨고 방에 제가 사무실에 나가서 인사하고 우리 실정은 그렇습니다. 우리는 대변자가 없어. 속에 있는 그 신앙체험은 있는데 글로써 준다든지 말로 표현해서 삼자가 알아듣도록 설명해주는 다시 말하면 학문을 가진 제자는 우리에게는 없소. 모두 무지한 사람 모였습니다. 그러니까 운전은 우리가 배워서 하고 사무도 우리가 배워서 할 테니까 여러분은 할 일이 있소. 만일 여기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하면 한 분은 천주교에 들어가서 천주교의 모든 신앙과 지혜와 학문을 배우시고 돌아오시면 우리를 도와줄 수 있소. 한분은 기독교지요. 신교에 깊은 연구와 신앙과 수도를 하시고 돌아온다면 여러분들은 같이 안살아도 좋소. 외국에 있어도 좋소. 그러면 이 동광원 이라는 진리가 보호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동광원만 잘 되려면 가지가 많이 생겨가지고 다시 말하면 옆으로 커버려 가지고 완성이 안되겠습니다. 그만두셔야겠습니다. 자, 그것은 지나간 손님한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 입을 통해서 하신 말이에요. 제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손이 모자라고 금덩이 같은 제자가 왔는데 일 봐주시오. 그러지요. 아이고, 꼭 좀 도와주시오. 그런 말이 안 나왔어요. 그 제가 말했다면 제가 그렇게 말할 사람입니까? 어느 분이 그렇게 입을 열어서 말을 시킨 것이에요. 그렇지 않고야 그분들이 한분은 천주교 수도회에 가서 지금 신학교 졸업반인데 외국유학 갔으니까 그건 이제 대학원 코스기 때문에 앞으로 4년을 더해야해. 한분은 20세기의 평화의 동산 불란서 떼제에 가셔서 수양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떼제 원장이 지금 78세 작년에 돌아 가셨는데 이 엄지손가락같이 아끼시거든, 동양서온 청년 하나에요. 그 회원가운데 어느 날 가더니 데리고 다니세요. 견문을 넓히라고 다시 말하면 될 나무는 떡잎 때 알아본다고 딱 심어놓고 입이 쩍 벌어지면 그때 알아보는 것입니다. 아 이놈은 큰놈이 될 것이다. 그래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을 불쌍히 보시고 특별히 이 선생님의 그 참 진실한 기도를 기억하신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또 한 분 있어요. 그분은 불교 신자로서 아주 덕이 높은 청년입니다. 그런데 수도복 입은 수도원에 가면 서원해버리니까 평복입고 숨어서 아무 태없이 순수 종으로서 봉사할 결심을 가지고 대학 졸업하고 지금 다시 말하면 거기도 지금 이태리입니다. 거기서 수양을 쌓고 있거든.

 

 

그런데 이 세분이 서로 지금 만난 거예요. 얼굴은 서로 못 봐도 늘 전화하고 편지하고, 그 사연이 이 편지에 있어요. 그 초면이여. 누군지 몰라도 편지만 봐도 따끔하니 가슴이 울리고 힘이 된 거야. 서로, 그런데 이번에 교무님 편지가 나는 원불교 정론입니다. 그런데 회신이 하나왔어, 다시 말하면 송죽이 같이 기뻐해. 같은 신앙도 아니 여요. 노선이 같은 종교도 아니에요. 같은 구도자로서 같이 뜻이 통하는 거예요. 구도하겠다는 그 진실이 통한 거라고요. 그래서 그럽니다. 근시안적으로 우리 도와줘라. 우리사업 도와줘라. 이렇게 하면 서지를 못해. 내가 설라면 옆에를 도와줘야해. 저 사람이 잘 되어야 내가 잘 되는 거지, 이건 공자님 말씀이에요. 자기가 서고자 할 때는 옆에 사람을 세워야해. 그 예수님의 계명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그 말이에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자할 때는 인류를 사랑해야 해요. 예수님이, 인류를 사랑하지 않고는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 못 되지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도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 서로 그렇게 하라고 나를 사랑하려면 제가 장로님을 사랑해야 해요. 제가 장로님을 멸시하고 장로님을 짓 밞으면 내가 죽어요. 내가 쓰러져요. 내가 망해요. 그렇게 되어요. 이치가,

 

 

옆에 사람을 세워줘야 내가 살지, 자연의 원리고 송죽의 원리고 인생의 원리고 구도의 원리란 말씀입니다. 그런데 현재까지는 우리끼리는 해요. 자기 종파끼리는 결속해요. 남의 종파는 배타를 하거든, 그런데 지금 외국 가 있는 세 청년은 그것이 아니에요. 불교 신자인데 천주교로 귀화해 가지고 천주교의 문헌을 자기가 소화한 거예요. 불교에 대한 애정과 놀라운 사랑이 있어요. 지금 이태리 가있는 청년도, 그런데 공부하기는 천주교 수도회 평복입고 봉사하는데 가서 지금 계시거든요. 이 운동이 한국 청년이 가서 하면 되거든요. 외국 청년이라면 우리는 모르지만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청년들이에요. 그래서 아 우리는 희망이 있다. 이치로 보나 예수님의 계명으로 보나 자연의 원리로 보나 동광원이 안 망하려면 남의 종파를 세워 줘야 해요. 동광원의 본질이 교파가 아닙니다. 순수 인재를 양성하는 어떠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동산입니다. 재목을 키우는 울타리이지, 이것은 교파를 무슨 선전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파가 이미 강대해갖고 너무 커서 썩어 가고 있어. 통솔이 안 되어요. 너무 신자가 많아가지고 그러니까 한쪽이 푹푹 썩어 들어가지. 그러니까 그러면 가사 우리가 단식요법을 했어요. 그럼 본인이 말씀했듯이 이건 나는 오해받기 싫은데 이건 본의가 아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명상하고 요가 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 볼라는 기도 중에 몸을 풀어 주라했다. 지도자가 몸을 풀어주는 운동이다. 운동을 보고 욕을 하는 것은 이건 오해다. 오해하지 말라. 나는 절대 요가선생이 아니다. 나는 구도자로서 하나님을 보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을 못 보면 죽어버린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보면 살아도, 결사적이여.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시면 살고 나 못 만나면 죽어버린다 생명을 걸고 지금 참여하고 있지 않아요?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노력에 여기 오신 것이지 우리를 만나러 온건 아니에요. 하나님의 어떠한 섭리가 여기를 지나가셔야되어요. 그래 하나님을 만나는 섭리지요. 그렇게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요 일전에 누가 그랬어요. 그 말도 나는 충고로 들어요. 선생님은 우리일 안보고 맨 떼제 이야기나 하고 허황한 생각한다고, 내 생각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요. 우리가 설라면 밖에를 두둔하고 밖에를 추앙하고 밖에를 존경하고 받아들여야지 밖의 것을, 우리만 살라면 썩어버려요. 서지를 못해요. 저는 그럽니다. 앞으로 자매원이 살라면 동광원을 세우자 이겁니다. 모체가 서야 자매원이 됩니다. 아 우리는 신부님 지도받으니까 된다. 그 천만의 말씀이여. 하나님이 안계세요. 뿌리가 썩는데 어떻게 몸통이가 살아? 가사 우리 자매들이 몇 분 현신하고 무아에 봉사하는 것은 이건 은총입니다. 지도자가 없어도 되어요. 그동안 누가 지도해줄까? 제 나름대로 학정고투하고 하루에도 몇 번 고통이 심해서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기진하면서 때를 기다렸던 것뿐이여. 하나님 어떻게 하시렵니까? 여기는 수녀복도 안 입고 장래도 보장 안 해주고 하루도 못 믿겠는데 우리 장래를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나님이 불쌍히 보신 거예요. 하나님이 직접 교육하셨습니다. 직접 마음을 위로하시고 붙잡아 주신 겁니다. 한 사람도 보호를 안 해줘요  그렇다면 이것은 은총으로 된 것이지 사람이 했다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재산이나 사업은 사람이 마음 잘 못 먹으면 하루아침에 망해버립니다 하나님이 보전해 주셔야지. 그러니까 우리의 재산은 인재이다. 사람 하나하나가 인재고 그 인재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보배고 우리의 재산이지 사람을 멸시하고 사람을 업수히 보고 사람을 견제하고 사람을 이해 못하면 이것은 썩어진 것이지요. 무용지물이여. 헛것이 되어 사람을 귀히 보는 풍토를 우리가 가져야겠어요. 사업은 망하더라도 사람을 보호해준다는 우리가 어떤 면에서 진실한 인간애가 있어야겠어요.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천국을 포기했는데 우리를 사랑하시려고 그런 뜻으로 결코 이 종도 심부름에 불과하고 제 뜻은 없는 것입니다. 뭔 뜻이 있겠어요? 제게 소견이 달라졌다고 그저 고기나 해주면 좋아하고 먹을 거나 주면 좋아했지 뭔 뜻이 있다는 그 누가 그 심부름을 하신 것입니다. 사도바울께서 은총으로 심부름했다고 한다면 이 종의 말에 천 마디 했는데 한 가지 뜻이 옳다면 그건 주신 하나님의 은총이지 제 속에 그런 말 할 능이 없습니다. 그런 뜻으로 오 장로님께 드린 답서입니다. ‘그간 주님 자비가운데서 안녕하십니까? 일찍 답서 올리지 못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장수에서 보내주신 편지 저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뜻과 자비를 깨닫게 해주시는 글월이었습니다.’

 

 

또한 함께 온 편지들도 그때 그랬어요. 그때 장 선생 편지 읽고 오늘밤에 그때 단식했거든. 우리 식구들이 단식한 우리식구들은 외국 가서 구도자가 얼마나 외롭냐 이거에요. 쓸쓸하고 어떠한 뜻에서는 시험이 많이 오고 너무 외국서 누런 옷을 입은 황인종이 백인종 사이에서 산다는 것이 설움이 보통일이 아니에요. 아이고, 창피하고 나 가버린다. 내가 뭐 한국가면 못 사느냐? 그거 역겨웁고 정 떨어지는 게 있었어요. 그분들 피나고 눈물이 나는 거예요. 그래 교무님이 말했어요. 이 우월한 서양인한테 황인종이 찡겨가 산다는 것이 서럽다면 그렇게 서러울 수 없고 그렇게 한스러울 수가 없다. 나는 왜 이렇게 약소민족이고 황인종이 되었는가? 그런 고통을 느꼈다고 그래요. 극복은 어떤 은혜에서 하나님의 힘이 크게 감싸줘서 어떤 시험을 이기는 것이지 누구하나 붙잡고 이야기할게 없는 객지에 가서 어떻게 살아요? 그래서 그 말이지요. 우리 구도자들이 외로움도 있는 걸 이해하시고 얼굴알던지 모르던지 편지 한 장 씁시다. 그랬어요. 싹 썼어요. 그래서 장로님도 그렇게 쓰셨거든. 그것도 편지 쓴 것도 전에는 그런 일이 없어 금식했기 때문에 정신이 돌아와서 쓰자고 했어요. ‘그러니까 함께 온 편지들도 제 영혼에 기쁨과 사랑을 안겨 주었습니다. 성도의 교제 속에 무한한 주님의 자비가 담겨있어서. 그 향기가 이곳까지 전해왔습니다. 전도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이곳에서는 저에게 많은 은총을 주시고 계시듯이 오직 주님 뜻과 자비를 구하는 계시는 그 한국에 있는 여러분들께도 같은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믿고 빕니다.’

 

 

성 프란치스코 아까 불교신자로서 천주교 가신 것이지요. ‘성 프란치스코 형제로부터’ 아름다운 글을 받았습니다. 평소에 모르는 사이야, 지금 그러나 뜻이 같아. 왜 모든 종교의 탈을 뛰어넘어서 우리는 화해의 제물이 되자. 그런 사람들이야. 그 세분이 다 그런 사람들이야. 그런데 왜 이 교무님을 우리가 들 먹이냐? 화해의 사자 교무님이 온 것이 아니에요. 누가 시켰어? 교파도 다르고 종파도 다르고 전혀 애기 때부터 살아온 환경이 다른 분이거든. 그런데 여기 오셔서 절대 남의 집이 아니야. 남의 집 아니야.  내 집이고 내 어머니집이고 내 아버지집이고 아무 차별이 없어. 그러기위해서 지금 청년 세 사람이 외국 가 있어요. 파벌을 초월해야겠다.  그렇게 해서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젠 외국 가 있을 뿐이거든. 교무님도 외국 가시는데 서로 얼굴을 몰라도 영이 통해.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통해. 각각 자기 위치를 지키면서 하는 일이 따로 있겠지만 구도자가 서로 송백이 동열 해. 나무는 틀려도 같이 보호를 받아요. 비바람이 불면 같이 보호를 받아 같이 커요. ‘그래서 거기 은혜가 충만한 것 같이 한국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같이할 것을 믿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형제로부터 아름다운 글을 받았습니다. 영적으로 깊고 주님 사랑을 전해주는 편지였습니다.’ 확실히 그랬을 거예요. ‘지난여름 며칠간 이곳에는 계속내린 비로 지대가 낮은 곳에는 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언덕 위라 아무 피해가 없었습니다. 4월 말에는 항가리 공산국가에서 떼제가 주관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기적이 20세기 기적이에요. 기독교 신자가가서 공산국가에 가서 수만 명이 모인 거예요. 기도회를 하신 거. ‘공산화가 된 이후로 가지 못했고 종교집회가 이제는 가능하게 되어졌습니다. 그들에게도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성령에게 비쳐지고 있습니다. 성령의 힘으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근의 다른 공산국가 청년들도 그들과 함께 하기위하여 모여들었는데’ (끊김)

 


 공산국가에서 자기나라 법에 걸리면 감옥에 들어가겠지요. 그래서 모여서 하나님을 부르고 통곡했겠지요? 서로 얼싸안고,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유로운 신앙이 그리운 그들에게 우리는 3년 전에 그 정부에 요구했었는데 거절했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 와서는 하나님께서 우호적으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찾아오십시오. 이번에는 소련으로 떼제에 다시 말하면 거기는 절대 밖에서 십 원도 원조 안 받습니다. 그 사람들의 정신이에요. 원조 받으면 우리 떼제는 죽는다. 아무도 거기는 타인이 간섭 못해요. 자기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합니다. 피가 다 닳도록 일해서 먹고 남은 것으로 봉사하는데 이번에 소련에 소련정부에서 허락을 받아가지고 어느 교파도 성경 못 보내요. 아직까지도 그런데 로제의 선생님의 이름으로 부쳐줘라. 그래야 받는다. 백만 부를 부쳤어요. 성경을 백만 부, 자기 사재 누가 자기 세계에서 평화상 주지요. 상에 부속 따라오는 돈 있지요? 그거 안 쓰겠다. 그걸 성경 만들어서 성경 제작하는 회사에 내 이름으로 받겠단다. 도와줘라. 그렇게 돕는 사람도 있었지만 백만 부를 소련에 부쳤다고 합니다. 그건 국가도 못하는 이런 종파를 초월하고 그분은 이   주의를 초월해버렸어요. 공산주의 나라면 누구의 아들이에요? 하나님의 아들들이지요. 소련을 이 사람은 믿어버려요. 절대 정치적인 야심이 아니다. 참 사랑이다. 로제의 원장이 보내주면 우리가 받는다. 그 진실성에 마음이, 그러니까 자유로운 신앙이 그리운 그들에게 이제는 우호적인  되었다 소련도 문이 열리고 있어서 로제 원장님께서는 다시 그곳에 갈 예정을 하고 있습니다. 소련예수교 기념할 때 다녀오셨지요. 그때 정부에서 성경 받겠다는 허락을 받아오시고 다시 들어가신 겁니다. 그러면 요 페이지를 볼 때 절대 이건 남의 일이 아니에요. 우리일이에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제자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시 말하면 아들딸이라면 왜 일이 남의일이에요? 그 일을 도와줘야 우리가 사는 거예요. 그 일을 붙들어주고 그 일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를 해야 동광원도 살고 사는 것입니다. 

 

 

그 일 안 되는데 우리가 되어요. 공산화되어버리는데 같이 이북서 밀고 내려오면 어떻게 예배를 보고 미사를 올려요? 그러니까 내가 못하는 일을 남이 할 수 있으면 하도록 응원을 해야지요.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 속화되기 쉽고 물질화되기 쉬운 경향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그분의 자비와 평화의 착한 진리를 우리 생활과 모범으로 증거 하는 삶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 회원이 여간 불안하지 않아요? 여자회란 말도 만 명 이만 명 되지 않아요? 그 대학 졸업하고 박사학위랑 거의 받은 사람인데 대개의 지성인들인데 세속을 포기하고 일생을 독신으로 지내려고요. 그게 어려운 일이지요. 그게 지금 창설을 동광원과 같이요. 해방 후에 같이 모였거든. 그런데 불과 정회원이 70명밖에 안 되어요. 어찌되었든 어려운 길이지요. 쉬운 일이 아니에요. 거기는 절대 본부나 파송 받은 외국에 있는 수사들은 자유를 갖지 못해요. 땅을 한 평도 자기가 갖지 못하게 했어요. 어디가든지 얻어먹고 초청하면 가고 집에 빌려주면 작업을 해. 집을 안 빌려주면 못해요. 그걸 보면 꼭 부처님 같아요. 부처님의 초창기의 교단은 어디가든지 집에 안자요. 나무 밑에서 자고 병이 들면 정 정 괴로우면 똥 똥물을 먹어요. 개똥물이든 사람똥물이든 그렇게까지 말씀했거든. 실제 그랬고 완전히 맡기는 거예요. 생명을 그분께 맡기는 거예요. 생명의 주인께 맡기는 거예요. 옷도 두벌입지 않았고 나이가 80을 살다보면 20대 얻어 입은 옷 기워 입고 입으면 누덕지가 되어요. 그게 천 조각이 되어요. 그걸 뜯어보고 제자들은 가위로 비단을 천 조각을 잘라 재봉 침 해서 다시 입어요. 그게 인제 의식이지요. 그럼 의식 지키면 구원 있을까요? 물론 구원 있지요. 의식도 있어야 정신을 이해하지요. 모든 종교 의식은 그겁니다. 실체 뭔 사건은 있어요. 그걸 기념하자는 의식이에요. 모든 종교의식이 생명 없는 의식이에요. 거기에 성령이 오고 은총이 와야지요. 

 

 

그래서 현대인들이 돈을 좋아하고 사치를 좋아하고 부를 좋아하지만 그래도 영혼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청년들을 믿어버려요. 아무 계급도 없고 땅위에 그렇게 사는 청년들이지만 공산국에서 믿어버려. 그 청년들을, 오라고 당신들만은 절대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지, 절대 무슨 정치앞잡이나 무슨 종파 앞잡이는 아니다. 그걸 믿었다고, 그래서 오라는 거예요. 아주 작은 수에 형제들이지만 주님께서는 마치 어리석은 어부출신들을 제자로 삼아 하늘나라의 증인이 되는 그 섭리와 같이 그런 은총과 하나님의 섭리와 같이 교회의 기둥이 되는 길을 열어주셨듯이 우리에게도 주님 당신 뜻과 성령을 주고계심을 보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형제가 신임을 얻었다는 것이 우리를 신임한 것입니다. 바로 우리를 불쌍히 본 것입니다. 가사, 씨는 한 씨에요. 저는 그렇습니다. 이제는 이건 이해하겠어요. 외국가면 여기서 잘 믿지 왜 외국 사람을 보느냐? 그것은 다시 말하면 다시 말하면 정신환자다. 그것은 도무지 이해 안 된다. 백에 백이 반대합니다. 저는 그랬어요. 잠을 못자고 있다가 영감을 주셨다. 아니다. 아버지 뜻이다. 소를 봐라. 소가 풀을 뜯어 먹어요. 그러면 똥을 깔겨버려요. 내년 봄에 거기서 그 풀씨가 나요. 소가 먹어버렸어. 그랬는데 이상하게도 그 소똥을 거름하면 그 풀씨가 거기서 나요. 그런 영감을 주십디다요. 설령 타락한다 해도 씨는 여기 씨가 아니야 이거에요. 그 사람이 살다 피곤하면 여기 소문이 여기 이야기를 할 것이다. 나는 그 여기 일이라면 이현필 선생 생각을 했지요. 씨는 여기 씨가 떨어진다. 이거에요. 아니 심지어는 천주교를 믿고 천주교를 믿었다고 섭섭한 사람도 있지만 아니에요. 씨는 이현필씨의 씨에요. 거기 천주교에서 헤매고 이렇게 깨달으면 그래도 이현필씨 한테 그 사람이 감사하면서 군중 수만 명한테 그 사람이 증거할거에요. 나는 이현필씨의 제자라고 절대 천주교가 소다. 그럼 동광원 사랑을 먹어버렸다. 풀같이 없어졌다 하더라도 그건 이득이라 봤어요. 거기 가서 선교사가 될 거예요. 그런 뜻으로 로마가 잡아먹어버린다 하자. 로마에 가면 타락한다. 그러나 거기서 하나님의 은총이 자라므로 이 선생이 빛이 날 것이다. 아니 예수님이 빛이 날 것이다. 그런 신념을 줍디다요. 저는 해명 안 했어요. 다 미친 사람으로 알고 사람을 아주 업수히 보는 줄 알았어요. 그러나 그건 섭섭하지 앉았어요.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진리는 살아있다.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로제의 원장님께서 항가리로 떠나가기 전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일 아무 두려움과 걱정 없이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간다고 하셨습니다. 실상 거기에 가면 혹시 사형 당할지 알 수 없는 나라에요. 얼마나 무서운 지대입니까? 오라해 놓고 말 잘못했다고 감금할 수도 있어요. 두려운 곳이에요. 이것이 믿음이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일 아무 두려움과 걱정 없이 믿음으로 나아가신다고 나아갑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로제 원장님을 하나님이 쓰신 거지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종으로 쓰신 거지요. 은총으로 주신 것에 불과해요. 그럼 그분이 불란서 사람이 아니에요. 스위스 국적을 가지고 있어요. 스위스 태생이에요. 그런데 황토 땅이 박토, 남이 내어버린 땅이 자기는 무전이여. 돈 없는 빈털터리 가난한 사람이니까 남이 내버린 땅이 불란서에 있기 때문에 정착한 거예요. 남이 내버린 땅이 황토 땅인데 지금은 거기가 성지에요. 세계에서 비행기 표가 거의 다 팔리니까 비행기가 그 사람들 때문에 부자가 되어요. 얼마나 사람들이 오고가는지 깊은 산중이에요. 그게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요. 

 

 

우리에게 허락하신일 아무 두려움과 걱정 없이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간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생사 주께서 맡기신 생활 신앙은 그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라고 하신 그분 말씀. 그래 떼제 원장님의 생각은 날마다 순간순간 기적이라는 거야. 아 그냥 큰 초청 안했어요. 그저 광고에 보고해 떼제에서 모인다. 그럼 한 천명이나 모일까 했는데 사만명이나 왔다는 거예요. 공산국에서 한 10년 전에 모였거든. 도저히 자기가 진행할 길이 없어요. 이걸 어떻게 진행 하냐? 다 말이 다른데 말이 안 통하는데 그런데 한꺼번에 모여 버렸어. 집이 있어요? 잘 곳이 없어. 빈들이야. 그런데 어떻게 진행할까? 그래 자기는 기도한 거예요. 주님 어떻게 할까요? 그리고 그게 민주주의여. 꼭 수만 명 청년한테 여론을 물어봐요.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여론에 의해서 진행하는 거예요. 내일 모레 아침에 어떻게 할까? 낼 아침에 기도회 가지십시오. 그럼 말이 안통하면 어떻게 하냐? 한 10분이면 말을 가르쳐.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불란서말로 단어를 가르치고 곡을 붙이면 그걸 열 번 백번 천번 만번 하는 거예요. 

 

 

그런데 성령이 움직여요. 그럼 말이 안 통하는 청년 4만 명이 모두 통곡을 하고 회개하는 거예요. 이심전심 말이 안 통해. 영이 통해. 그리고 모두 기뻐하는 거예요. 그래 이 사람들이 한이 있는 사람들이 오거든. 다시 말하면 국가의 법에 엉켜가지고 말을 못하고 숨 막혔던 사람들, 말 못하고 기가 막혀서 온 청년들인데 서로 말은 안 통해. 사람하고는 말 못해요. 거기서 울며불며 호소한 거야. 하나님께 혼자는 운이 없어 기도가 안 되어요. 4만 명이 기도를 하니까 운이 돌아가지고 자기 통곡을 서로 한 거예요. 아프리카에서 많이 오고 검둥이들 회중에서 많이 오고 공산국에서 오고 각 종파 예수교서 천주교서 오고 누구하고 말 못할 설움을 모두 그렇게 찬송을 하면서 기도를 하면서 소원 없이 거기서 마음에 평안이 온 거에요. 각기 해결을 받아버린 답니다. 각기가 원했던 소원이 이루어져요. 자신을 가지고 돌아가요. 그러니까 다시 그곳이 그리우니까 한 일주일 있으면 본국에 돌아가니까 가난한 집, 거기 온 사람은 부잣집 사람이 아니에요. 다 빈민들의 자식이에요. 그러니까 다시 가기 위해서는 4년 5년 자기가 품팔이해서 저축했다가 비행기타고 오는 거니까 그 희망이에요. 세계 가난한 청년들 그 압제를 받고 신음하는 젊은 청년들은 거기한번 다시 가서 위로를 받기위해서 그렇게  비행기 표를 몇 년 만에 사가지고 온다고 합디다요. 그래서 그 소리이지요. 이분이 거기서 옮긴 걸로 볼 때에 참으로 우리의 생활 주님께서 맡겨준 생활, 주님께서 너 이렇게 하라. 심부름하는 생활 그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라고 하신 로제원장님의 말씀이 주님의 진리와 말씀을 더욱 잘 깨닫게 해주십니다. 문제는 로제 원장님이 70넘으신 것이 확실해요. 그분을 쓰셔야 한다. 그거에요. 심부름시키는 것입니다. 남원이나 당시의 봄이 따듯하리라. 생각합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새로운 창조의 기운을 다시 새롭게 내려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럼 오 장로님 건강하시고 좋은 은혜를 더욱 받으시기를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또 자매님들 또 남반 형제님들 또 어머님들께 아부 전해 주십시오. 요분은 편지할 때 꼭 그럽니다. 그분이 아는 사람들 아니에요. 남반 형제님들 여자 자매님들 또 어머님들한테 꼭 안부해 주십시오. 참 하나님의 아들이에요. 떼제에서 장현우 올림. 그럼 제가 이 편지를 왜 이렇게 열을 내서 읽습니까? 우리를 돌보시는 게 확실해요. 저는 이 청년들이 앞으로 인재로서 득도를 하시고 한 일결 자기가 설 수 있는 때가 되면 꼭 동광원을 안전하고는 안 된다  어디가 있든지 우리를 보호해줘요. 변호해주고 또 전파해줘요. 내 고향은 여깁니다. 우리들도 우리를 가르치신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예수님 이십니다. 한국에 보내주신 예수님의 종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에 희망을 품고 외지에 와서 이 직을 해오게 되었습니다.  그 편지 봤어요. 종신서약을 해야겠는데 문제다. 말하고 있어요. 로제 원장은 바로 이현필씨다. 이현필씨가 뭐 다른 사람이냐? 이 선생이 받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로제원장님이 하고 계시지 않느냐? 이 선생님이 살아계시면 그 일할 텐데 하늘나라 가서 안계시니까 그분 살아생전에는 효자가 되라. 그렇게 강권했습니다. 그 종신 서원할 때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 우리 당면되라고 우리 동광원 도와주십시오. 거기 서원하지 말고 동광원에 오십시오. 그때 그런 시험이 있었어요. 그런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면서 좀 앞으로 미국가시는 교무님께 대해서 소망이 있어요. 새순 원불교에서 인격을 닦으시고 인재가 말이에요. 아직 애기 아닙니까? 떡잎이라고요. 소망이라고, 그러니까 파벌을 초월한 종, 종파를 초월한 종 종교의 껍질을 초월할 수 있는 진리의 제자가 희망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또 외국가의 것도 믿을 수 없어요.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지켜지지, 사람은 전혀 능이 없지 않아요? 병 하나 들면 끝나지요? 하나님께서 사울을 세웠어요. 고맙게 보고 교만했어요. 팍 차버렸어요. 왕을 뺏어 가버렸어. 다윗은 임금이 되었지만 겸손했어요. 왜 죄를 지었거든 자기한테 영원히 부끄러운 죄가 있기 때문에 고개를 못 들었어. 그래서 겸손한 거예요. 예수 믿는 사도바울도 그런 염려가 있었어요. 그래서 가시를 준 것입니다. 단점을 주었어요. 허물을 주었어요. 누가 보면 부끄러움 탈만한 병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간질이라고도 하고 안질 병이라고도 하지만 그렇지 않고 정신적인 무슨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인격적인 결함이 있어가지고 모든 사람한테 멸시를 당했는지도 몰라요. 그러나 주님, 이 가시를 떼어 주시오. 세 번 빌었다. 늘 빌었다. 24시간 빌었다는 뜻이거든. 그러나 예수님은 아니다. 네가 약할 때 내 은총이 네게 강하다. 네가 허물을 갖고 있을 때 네가 겸손하지. 그래서 깨달았어요. 주님께서 내 병을 안 고쳐 주시는 것은 나를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감사합니다. 저는 내가 약하고 가난하고 단점이 있고 수치스러운 내 몸에 병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지 않았습니까? 사람한테 무슨 자랑할게 있겠어요? 그러니까 저는 자랑 아닙니다. 한국에 태어난 형제자매들이 외국에 가서 그렇게 구도를 하고 있는 그 시작이 희망이 있다는 거예요. 순수해. 너무나 순수해. 어느 종파의 그 어떠한 인재양성은 아니에요. 진리의 양성 순수 사랑을 배양하려는 하나님의 접종이지요. 그러니 모두에게 주시는 것 입다. 이는 매년 종파를 이해하고 넘어설 수 있는 그런 인재양성을 하시는가 싶다. 그런 희망이 보인다. 이것입니다. 우리가 봤어요. 그러시면 찬송 부르시고 나머지 시간은 교무님께서 정리해 주시는 것이 가장 중한 때고 이것은 우리가 단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식을 실습해보고 우리 생명을 돈독케 하는 일종의 구도 아닌가요? 도를 닦는 거 아니겠습니까? 수양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