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울금 단풍 : 하나님의 어린양

mamuli0 2021. 11. 23. 10:53

 소설 널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가 내렸다. 다음 날 새벽 까지 이어지고 비가 개었다. 무우 처음으로 수확해서 일부 출하한다고 한다. 울금과 은행나무가 단풍이들고 잎이 떨어진다.

 

 

하나님의 어린양 

1986.08.12. 김준호 선생 

 내 영혼을 깨끗하게 하신 그 보혈을 보니 예수님의 사랑을 우러러보니 그 사랑 많도다.  살 동안 받은 사랑을 옛날 그 찬송은 인애를 어질 인(仁)자 사랑 애(愛)자 인애를 늘 찬송 하겠네. 살 동안 받은 은혜를 늘 찬송 하겠네. 이후에 천국 올라가 더 좋은 곡조로 날 구속하신 은혜를 늘 찬송 하겠네. 구속이라는 말도 다 아시지요? 구속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을 살려주고 자기가 대신 죽은 사람이 있습디다. 며칠 전에 여러분 들으셨나, 몰라요. 아홉 살 먹은 동생이 물에 빠졌으니까 열두 살 먹은 형이 물에 뛰어 들어가서 아홉 살 먹은 동생은 밀어서 살려놓고 자기는 못나오고 거기서 임종 했어요. 참 좋은 형 이지요. 그럼 동생은 대신 살려주고 자기가 대신 죽었습니다. 그럼 구할 구(救)자는 그런 구(救)자입니다. 동생을 자기가 살려주고 자기는 대신 죽은 형이 있듯이 예수님께서 죄악의 바닥에서 우리를 건져내시고 죄의 강 속에서 우리를 구해주시고 자기가 대신 죽으시고 우리를 살려주신 그 은혜를 늘 찬송 하겠네. 늘 찬송 하겠네. 날 구속하신 은혜를 늘 찬송 하겠네. 그 아까 말씀했어요. 스가랴 13장 1절 말씀을 풀어서 찬송을 지어서 부르고 있습니다. 다시 부르십시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요한복음 1장 29절. 제가 혼자 보겠습니다.
 다음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한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 한번 따라 읽으십시오.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 그럼 이스라엘 민족이 지금까지 5천년 역사를 갖고 있고 예수님이 오시던 날은 3천년이 되었습니다. 오신다, 오신다, 창세기 1장 2장 3장에 ‘오신다.’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오신다, 오신다 하던 하나님의 어린양이 그 3천년 만에 세례요한이 요단강 가에서 예수님을 보고 하시는 말씀 얼마나 감격 했겠습니까? 3천년을 기다리다. 오셨는데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 생각만 해봐도 참 감격스럽습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 어린양이 오셨는데 목적이 확실해요. 죄를 없애시기 위해서 오신 것 입니다. 목적이 확실해요.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 아까 구속 이라는 말씀은 소를 대신 죽이고 사람은 살린다. 그런 글자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양입니다. 어린양을 키워가지고 33년 키워가지고 잡아 죽일 것입니다. 양이니까 소와같이 그렇게 해서 피를 흘리시고 사랑을 완성하는 날 모든 인류의 죄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 생각만 해봐도 가슴이 설레 입니다. 그럼 그분이 오신지가 2천년이 되었습니다. 우리 죄를 없애러 오신분이 일하신지가 2천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성경 말씀은 옛날이야기가 아니에요. 오늘 이 장소에 오신 한분 한분의 영혼 문제입니다.  나는 죄가 없으면 예수님이 대신 죽을 필요가 없지요. 예수님 사랑을 빌릴 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죄가 있다면 문제는 있습니다. 내가 해결이 안 됩니다. 그 인류의 문제 가운데 죄의 문제만은 사람이 어떻게 할 수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린양을 보내십니다. 죄를 없애시기 위해서 제가 편지를 많이 받지 않습니다. 일평생에 몇 통 편지를 받았는데요. 참 잊지 못할 편지 한 장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15세에 이런 공동체, 여기 들어오셔서 한 20이 되도록 커가지고 여기 살지 못하고 나갔습니다. 세상에 살다보니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편지가 왔습니다. 그 여기, 이 공동체에 예속되어서 어린 나이에 거기서 커서 20이 되도록 조석으로 듣던 말씀은 성경말씀을 많이 들었답니다. 많이 들었는데 자기한테는 다 쓸데없는 말이고 꼭 한 말씀이 자기에게 필요하더라고,  allow="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allowfullscreen>

 

 

예수님이 죄인을 위해서 죽으러 오시고 내 죄를 용서하신다는 그 음성은 자기가 세상에 살아갈 때 꼭 그 한자리가 필요하다고 자기는 그러니까 그 좋은 말씀 다 잊어버렸지만 죄를 용서해 준다는 그 말씀을 제가 기억하고 하루, 하루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 소망이요. 재산이요. 기쁨이요. 총재산은 내 죄를 용서하신다고 하시는 말씀을 자기가 아직도 잊지 않고 있노라고 그게 세상에 사는 자기 소망이라고 그런 편지가 왔어요. 그것은 참 가슴에서 깊은 가슴에서 참 말한 것 이지요. 모든 말이 다 좋지만 죄를 용서해 준다는 말씀은 나이가 들었던지 세상을 많이 겪고 병이 들었던지 그때는 꼭 자기한테 절대 필요한 생명의 말씀입니다. 생명 생명수  생명의 보혈 보혈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지도하신 이 선생님을 보십시오. 몸이 건강하시고 30대, 참 천하가 무섭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그렇게 다니시다가 인제 병이 들어서 한  석 달 동안을 물이 안 넘어 갔다고 하지 않습니까? 얼음을 입에다 넣고 녹여서 뱉었지 목으로 안 넘어가요. 그래 죽음이 가까웠을 때 이 동산에서 임종한다면 젊은 사람들 앞에서 평생에 상처를 주기보다는 홀로 가서 임종을 해야겠다는 결사적인 각오를 가지고 서울 수색  저쪽에 그 다시 말하면 일정시대 때 파놓았던 기차 굴에 들어가셔서 임종을 기다리고 계셨지요. 손톱도 까맣게 피가 멍들어가지고 손톱이 깜 했어요. 피가 안통해가지고 그리고 이 모든 얼굴이 파래지고 임종이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그때 원장님께 무슨 부탁을 드렸는고 하니 그 안식교에서 경영하는 그 병원에는 무료 병동이 있다. 하니까 거기 입원 시킬 수 있는가? 저를 입원 시킬라고 하셨던 것 같아요. 물어보라고 하시고 오셨어요. 현 동완 선생님을 통해서 물어보니까 거기는 정신환자만 입원이 되지, 결핵 환자는 입원이 안 된다는 소식을 듣고 오셨어요. 그러니까 이 선생님이 필담, 종이에다 연필로 쓰기를 원장님이 옆에 계신데 저는 옆에서 엿보지요. 엿보는 말씀이 맛이 있는가 봐요. 아까도 엿보는 말씀만 하지 않아요. 그때 제가 개구멍 뚫고 가서 몰래 엿보지 않았으면 못 전하지요.

 

 

 잘못은 잘못이지만 그럼 원장님께 뭐라고 쓰셨는가 하니 ‘제가 오늘날까지 선행이 귀한 줄 알고 이 보혈이 귀한 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쓰십디다요. 그 말 쓰기 전에 ‘제가 건강 했을 때는 밥만 귀한 줄 알고 물이 귀한 줄 몰랐습니다. 아 그 말을 먼저 썼어요. 제가 건강 했을 때는 밥이 귀한 줄 알고 물이 귀한 줄 몰랐습니다.’ 오늘 제가 물을 못 먹은 지 백일이 가까운 이때에 제게 있어서는 오늘 밥 안 먹어도 삽니다만 오늘 제가 물을 못 마시면 저는 죽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물이지만 제게는 생명수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찬물이지만 제게는 보혈입니다. 보배스러운 피 입니다. 물을 마시면 저는 살고 물을 못 마시면 저는 죽습니다. 그런데 제가 깨닫는 것은 평소에 내가 선이 귀한 줄 알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내가 죽는 이 마당에 선행은 내게 아무 도움이 안 되고 보혈만 내게는 필요합니다. 보혈만은 임종이 가까운 이 마당에 일평생 선한일 많이 했다. 하지만 내 영혼에는 아무 효과 없다는 말이에요. 내가 천국 가는 이 마당에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나는 이제 예수님의 보혈을 내게 힘을 주시면 예수님의 보혈이 내게 효과 일어나면 내가 천국을 가지만 예수님의 보혈이 내 죄를 못 닦아 준다면 나는 지옥 갑니다. 그럼 이 마당에 나는 선행 보다는 보혈이 내게는 절대 생명수입니다. 아주 그냥 피를 토하는 호소를 하십디다요. 원장님 옆에다 모시고 마지막 임종 순간에 그렇게 필담을 하세요. 

 

 

그래 지금 생각하면 그 말씀이지요.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건강해서는 이걸 몰랐다는 거예요. 아주 자선사업하고 선한 일하고 좋은 일 하고 그렇게만 전부인줄 알았는데 죽는 이 마당에는 속함을 얻은 백성은 망하지 않겠네.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한없이 있도다. 한없이 있도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보혈의 샘이 터져서 나를 구원하지 않으면 내 선행으로는 아무 가치가 없다. 그걸 깨달았습니다. 그 말씀을 선포하시고 오늘날 우리가 지금 이렇게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살 수 있도록 어떠한 뜻으로는 복음을 전하신 선생님 이십니다. 그 날이 오면 샘이 터져 어떠한 뜻으로 이 현필 선생님은 그 날 그날에 보혈이 터졌어. 그날, 평생에 고집하시던 자기 선행을 다 오히려 죄라고 회개하시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천국을 가겠다고 선언 하셨습니다. 그 날이 왔지요. 선생님은 그 날이 오신 거예요. 그날 샘이 터졌습니다. 그 날 밤에 조기 한 마리를 사오라. 해서 끓여서 드렸더니 잡수시고 물이 넘어갔어요. 그건 상식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 되요. 기적이 아니라, 자기 그 강인하던 그 선행을 장차는 자기 의지 자기를 포기하시고 예수님의 사랑에 귀의 했을 때 예수님의 보혈에 겸손이 귀의 했을 때 자기 목에 혈관이 통하고 이제 피가 통하고 물이 넘어가시고 살아나셨지요? 그렇게 해서 살아나시고 수 한 십여 년 더 사셔, 한 몇 년 더 사셨지요. 그러니까 이 선생님은 그 날이 온 다기 보다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가 지금 병이 들었던지 나이가 많아 임종하는 이 마당에 일평생에 이렇게 좋은 일했다. 하더라도 이 영혼이 다 깨끗해서 임종을 바라보면 자기가 했던 선행은 다 그른 것뿐이에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어. 예수님의 사랑이 나를 용서하시면 천국이 용납되는 것뿐이고 그 분이 용납 안 해주시면 나는 아무 무가치한 죄인입니다. 그거지요. 어느 교황님도 임종 석상에 그때야 비로소 깨달으시고 저는 죄인입니다. 임종 하시면서 그 말했지요. 그래서 그분은 성인 이지요. 구원 받았으니까 임종 석상에서 저는 죄인입니다. 고백을 해요. 그럼 즉석에 그 분은 성인이 되신 거지요. 깨끗해 졌다고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보혈을 의지하고 임종 했을 때는 그 생명이 부활하고 깨끗해 졌지요. 그러니까 그 날이 오면 샘이 터져 다윗 왕은 교황을 해먹었던지 무언가 해먹었지요? 다윗왕은 왕통, 왕이 되고 예루살렘 성민 그럼 수녀같이 수사하면 성인이 되겠는데요. 또 종교적으로 지도자들이 성민들이시고 성민이 했다는 것은 허물 뿐이야. 죄 뿐이에요. 참말로 그 영혼이 겸손하고 적나라하게 회개할 수 있다면 자기는 죄 뿐입니다. 그 인생의 본성이고 본질이지요. 그러면 그 죄와 때를 예수님이 씻어 주시 마고 하신 그 예언이 이제 이루어진다. 말씀이에요. 어느 때 그 날이 오면 그런데 아까 그 날이 왔어요.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 이 시간에 오시지요. 여기 오셨어요. 누가복음 7장 36절 한 예화지요. 한 여자의 경우, 예수님이 어린양이 오셔가지고 한 죄녀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장면이 있지요. 누가복음 7장 36절 이하의 말씀  여러분 다 아시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비유하기 위해서 다시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어떤 바리사이파 사람의 초대를 받으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다. 마침 그 동네에는 행실이 나쁜 여자가 하나 살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예수께서 그 바리사이파 사람 집에서 음식을 잡수신다는 것을 알고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예수 뒤에 와서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었다. 그러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고 발에 입 맞추며 향유를 부어 드렸다. 예수를 초대한 바리사이파 사람이 이것을 보고 속으로 저 사람이 정말 예언자라면 자기 발에 손을 대는 저 여자가 어떤 여자며 얼마나 행실이 나쁜 여자인지 알았을 텐데 하고 중얼거렸다. 그때 예수께서는 시몬아 너에게 물을 말이 물어볼 말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 선생님 말씀 하십시오. 그러나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돈 놀이꾼에게 빚을 진 사람이 둘이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졌고 또 한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이 두 사람이 다 빚을 갚을 힘이 없었기 때문에 돈 놀이꾼은 그들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사랑 하겠느냐? 시몬은 더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겠지요. 하였다. 예수께서 옳은 생각이다. 하시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말씀을 계속하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내 발을 닦아 주었다. 너는 내 얼굴에도 입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 곳 내 발에 입 맞추고 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라 주었다. 잘 들어두어라.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 만큼 많은 죄를 용서 받았다. 사랑이 곧 용서입니다. 사랑이 곧 용서야. 피가 용서가 아니라 샘물이 용서가 아닙니다. 비사함은 샘물과 같은 보혈이고 샘물이 죄를 씻어준다. 할 수 있지만 때를 씻어 주지요. 그러나  윤리적으로 말하면 용서가 죄를 닦아 줍니다. 용서하면 죄가 없어집니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리고 네 죄는 용서 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예수와 함께 식탁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인데 죄까지 용서해 준다고 하는가 하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라고 말씀하셨다. 사랑은 용서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용서한 것을 믿는 것이 구원입니다. 따라 읽으십시오. ‘저 사람이 누구인데 죄까지 용서해 준다고 하는가?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사랑이 그 여인의 죄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그 여자는 그 용서를 믿었던 것입니다. 용서해준 것을 믿는 것이 깨끗해 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믿음으로 의화 된다고 믿음으로 자기가 완전한 것을 믿습니다. 왜 죄를 용서하신 것을 믿는 것이 곧 사랑입니다. 용서 하신 것을 믿는 것이 만일 사랑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라 주었다. 잘 들어두어라.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무엇을 뜻하는가? 그 만큼 죄를 용서받았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죄 용서해준 것이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향수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렸다. 하셨습니다. 그런 것은 한 일례라 하겠어요. 요 예는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날이 오면 이 시간이에요. 이 시간 이 시간에 예수님이 나 같은 죄인을 보혈로 씻어 주시면 내 죄를 씻어 주시면 우리는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구속을 받은 것입니다. 건짐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임종하면 하늘나라 갈 것입니다. 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그렇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여기 서요. 죄를 씻어 주셨다는 말씀이야. 우리가 익히 교리로 알고 배워왔습니다. 이시간은 교리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 문제올시다. 한 분 한분, 여기 모인 사람들이 자, 예수 믿고 선한 일 하면 천국가고 좋은 일하고 했는데 실제 사람의 경험은 오늘 여기오신 오실 때, 이 시간까지 했던 것이 마음이 편치를 못해요. 다 마음이 괴로워요. 무엇인지 모르게 불안해요. 그건 내가 잘못했다는 죄책감입니다. 사람은 영원히 미완성품입니다. 아무리 선해도 만족할 수가 없어요. 사람의 영혼은 영원히 크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아무리 선한일 했다 해도 만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게 사람의 소망입니다. 만일 선한일 했다고 안심하고 만족한다면 그는 썩은 물이요. 교만한 영혼이요. 저주받은 영혼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장성이 그쳤다 하겠어요? 장성이 그쳐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월 병에 들지 않아요? 교만 병이 들고 그러니까 아무리 선한일하고 선한일 혼자 다했다 해도 영혼이 건전하다면 괴롭습니다. 자기는 죄 뿐이에요. 자기는 허물 뿐입니다. 잘못 뿐입니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 떠주면 내가 결단코 상을 주시 마 하신 주님, 여기 오시기 전에 찬물 누구에게 떠주고 왔다 하더라도 그 양심이 괴로워요. 왜 나는 사랑으로 못 떠주고 귀찮은 마음으로 그냥 의무적으로 부득이해서 떠주고 왔는가? 양심이 괴로워요. 때가 묻었어요. 그래서 그랬습니다. 자 보십시오. 그렇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던 왕통을 보십시오. 다윗의 왕통, 사울이 왕을 입고 하나님 앞에 꾸중 들었지요. 다윗도 왕을 해먹고 말년에는 죄가 괴로웠습니다. 시편에 보면 절절이 눈물입니다. 자기 서러움을 노래한 것은 죄에요. 시편 50편 51편 보시면 울지 않습니까? 대성통곡하고 그러면 가장 축복 많이 받았다는 왕이었던 솔로몬을 보세요. 말년에 노망이 들고 얼마나 실수를 하고 죄를 많이 짓습니까? 다윗 가문에 왕이 되었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에서 죄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면 그 사울 다윗 솔로몬 왕통의 죄를 용서해 준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또 선민 이스라엘 민족이 택함 받았지만 아브라함 이후에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무엇이 그렇게 선합니까? 사람들 많이 죽이고 전쟁을 많이 하고 죄 뿐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 하셨습니다. 이 왕통과 선민의 죄를 내가 씻어주마. 샘물이 터져 씻어주마. 그러니 고작 약속에 의한 축복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약속이 없다면 누가 나를 선했다고 안심 할 사람 있겠습니까? 그 말씀입니다. 그런 뜻으로 선도 못해보고 예수 안 믿었다면 죄도 없고 번민도 없어요. 그러나 선택을 받았던지 자기로 왕위를 얻었던지 선한일 하다보면 나이만 많아지고 죄만 많아져요. 허물만 차진단 말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믿고 하늘나라 가자고 예수 믿고 선한일 하다 보니 내 신세는 죄만 더 지으니 내가 어떻게 되겠냐? 그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해결에 있지 않습니까? 해결, 그 날이 오면 샘이 터져 다윗가문과 예루살렘 성민들의 죄와 때를 씻어 주리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아까 보시니까 그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지요? 그 약속을 예수님께서 완성하고 계시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자 그러면 보십시다. 우리 우리차례, 우리의 희망, 성경말씀이 관련되지 않지만 제가 뜻을 말씀하기 위해서 인용합니다. 누가복음에서 마르다와 마리아 10장 38절 이하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책을 보시기보다 제가 읽을 때 들으십시오.  

 


 마르다와 마리아. 예수일행이 여행하다가 어떤 마을에 들렸는데 마르다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예수를 모셔 들였다. 그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던 마르다는 예수께 와서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 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르다, 마르다,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것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자, 오늘 밤에 이 시간을 기념하기 위해서 따라 읽으십시오. ‘마르다, 마르다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 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사랑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인류에게 꼭 필요한 것은 한 가지 사랑뿐입니다. 그것뿐이에요. 돈이 좋네. 무엇이 좋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차갑지 않아요? 자 보십시오. 그럼 예수님과 이 마리아의 사이의 이번에 제가 죄를 얻은 것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두 사람 사이가 어떤 것인가? 해와 달 같지요? 한분은 해고 한분은 달입니다. 예수님은 해와 같으시고 마리아는 달과 같으십니다. 달에는 빛이 없습니다. 햇빛을 반사하면 해와 달과 똑같은 둥근 빛을 발합니다. 마리아는 본래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태양이신 예수님께 둘이 앉았어요. 예수님께서 사랑을 비춰주실 때 마리아 가슴에는 달 같이 사랑이 빛났습니다. 그 예수님을 쳐다본다. 는 거 관상생활 한다는 거 그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쳐다보고 앉아있듯이 앉아있는 것이 관상입니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사랑스러운 예수님을 쳐다보고 앉아있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아무 능력이 없고 예수님의 보혈이 샘 같은 사랑이 그 뜨거운 사랑이 그 달을 비춰요. 마리아를 비추기 때문에 마리아는 저절로 성스러워져요. 빛이나요. 후광이, 그런데 이번에는 요, 젊은 사람들, 그 책 보셨을 거예요. 지금 이 해인수녀님이 시를 써가지고 아주 인기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 시 3집인가 4집에 민들레의 연가라는 제목을 봤어요. 여기 나오기 전에 민들레의 사랑의 노래 민들레 꽃 민들레꽃이지요? 그 사연을 읽어보니까 참 마음이 동감이 됩디다. 개성이 강해가지고 수녀생활 하다가 번민이 커요. 세상에 대한 여러 가지 번민이 일어나니까 자기 장상에게 웃어른께 나 집에 갔다 올 랍니다. 하고 그건 참, 말도 안 되는 수녀가 어떻게 집에 갔다 오겠습니까? 그러니까 너무 마음이 괴로우니까 저는 아무래도 세속에 한번 갔다 와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품 했더니 눈에서 불이 나도록 꾸중했다는 거예요. 윗사람이 정신없는 소리 한다고 수녀가 어떻게 집에를 가냐고 그래서 꾸중만 듣고 참 괴로운 마음으로 그 수녀원이 바닷가에 있습디다요. 그 바닷가에 있는 동산을 거닐어요. 그 꾸중을 들었으니까 얼마나 가슴이 괴롭겠습니까? 가고 싶은 집에도 갈수 없고 갈등, 연혼의 갈등 아닙니까? 그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바닷가를 서성대로 있는데 돌 틈바귀 속에 민들레가 하나 피어서 꽃이 피었답니다. 노랗게 그건 기적 같은 꽃입니다. 거기 어떻게 민들레꽃이 떨어져가지고 꽃이 피었는지 알 수 없어요. 그래 퍽 주저앉았어요. 그 꽃을 보고 민들레가 시인은 음성을 듣습니다. 민들레꽃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요. 그게 시인이지요. 수녀, 수녀 어쩌면 그렇게 마음이 아파하시냐고 나 좀 보라고 나는 친구도 없이 이 허허 바닷가에 이 북풍 이 차 거운 바닷바람을 혼자 쏘이고 이렇게 모질게 봄에 펴서 꽃을 피우지 않았냐고 나는 해님만 나를 비춰준다면 이 돌 틈 사이에 아무도 없는 나 홀로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데 꽃이 그러더라는 거예요. 나 민들레는 친구도 없이 이렇게 외로운 바닷가에 피어서 해님만 나를 빛을 내려준다면야 나는 아무것도 아쉬운 것도 없고 행복합니다. 그런데 수녀는 무엇이 부족해서 불평이냐고 그렇게 민들레가 자꾸 말해요. 그래 주저앉아 자기가 아이고, 아이고 그냥 그 민들레의 설교에 자기가 굴복되어 가지고 수녀원 원장 선생님의 말은 자기 마음에 안 들어와도 민들레의 음성은 자기 가슴을 찔렀어요. 그래서 민들레가 항복을 받아요. 수녀를, ‘아 나도 민들레 당신처럼 이 수녀원에서 잘 살겠다’고 마음을 잡았답니다. 

 

 

그리고 그분은 시인이니까 시를 멋지게 썼습디다만 시야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뭐라고 썼는 고 하니 해는 민들레를 비춰 주었고 민들레는 태양만 쳐다봄으로 행복해졌다. 그렇게 써 있습디다요. 그게 수녀 생활이지요. 예수님만 사랑하겠다고 수녀 되었으면 예수님만 쳐다보고 살아야지 무얼 쳐다봐요. 옆을 봐야 쓰겠습니까? 그런데 그 말씀이 영감을 주었어요. 제게 아, 우리 앞길이다. 우리의 공동체의 어떠한 희망이다. 보십시오. 그 상징적은 그분의 깨달음은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와 똑같은 비교적인 교훈입니다. 예수님은 태양 같으시고 마리아는 민들레와 같으십니다. 한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영원한 나라에서 왕 중 왕이 될 것이고 한 분은 영원히 유리하는 별이요. 참 떨어져가는 꽃 한 송이이고 이름 없는 잡초 꽃 아니겠습니까? 피조물이고 예수님이 사랑 안 해주면 영원히 불행한 여자야. 아무 쓸모없는 여자거든. 죄만 많이 지었고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그 날부터 행복해. 아니 누구보다 제일 행복해요? 그런데 죄가 제일 많아, 그 점이 우리의 희망이에요. 그 민들레가 유명한 사람이랄지 마리아가 유명한 사람이면 우리는 그 축에 못 들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사랑한 마리아야 말로 평범한 죄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야. 또 그 수녀가 발견한 민들레는 길가에 핀 이름 없는 꽃이거든. 그런데 꽃이 수녀의 마음을 회개시킬지 누가 알아요? 그 이름 없는 꽃 한 송이가 그 고집 많은 수녀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집어 가지고 마음을 편케 해줬어요. 그러면 이 이름 없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가슴을 울려요. 이 기사는 누구든지 한번 씁니다. 자 뭐라고 쓴 고 하니 이 땅위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사랑을 호소했어요. 땅위에 와서 나 좀 사랑해다오. 그런데 다 예수님을 몰라봤어요. 그런데 마리아만 예수님이 불쌍한 줄 알고 사랑해 줬다. 배고프면 이집에가 밥 얻어먹거든. 마리아는 예수님을 친구같이 사랑했어. 높은 하나님의 아들로 사랑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마음이 괴로울 때는 위로받기 위해서 마리아를 찾아갔다. 그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마리아를 도와주러 간 것 아니에요? 예수님도 몸을 입었으니까 괴롭고 번민이 많아요. 슬프기도 하고 외롭고 배가 고파요. 그러니까 가장 부끄럽고 어디 가서 말을 못할 때에는 마리아를 찾아가요. 마리아한테는 못 할 말이 없어. 부끄러운 말이 없어. 왜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데는 죄가 없어요. 허물이 없어. 사랑하는 데는 아무 흉이 안 잡혀. 다른 데가 예수가 말하면 흉이 잡히지만 마리아에게 찾아가서 속에 말해도 아무 험이 없어. 그러니까 예수님이 땅위에서 하룻밤 쉬고 갈 곳은 마리아 집뿐이었다. 그렇게 설명하거든요. 옛날 학자들이 아 성령 받은 다음에야 어디든지 가지만 그 당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예수님이 육신 갖고 계실 때는 마리아 집을 찾아가서만 속에 있는 말씀도 이야기 하시고 십자가도 이야기 하시고 죽음도 이야기 하시고 부활도 이야기 하셨답니다.

 

 

 다른데 가면 그 말을 못해 오해하니까 죽지 말라는 말만 해 싸고 이해를 안 해줘요. 그러면 예수님이 인류를 쳐다봤을 때  이스라엘 민족을 쳐다봤을 때 마리아 여자 하나를 찾아갔을 때 얼마나 슬프냐 그 말씀입니다. 이거 실제적인 문제에요. 이 똑똑한 사람 많이 있는데 유대 나라에 헤롯 임금도 있고 장관도 있고  똑똑한 부자도 있고 뭐 아가씨고 있고 처녀도 있고 많은데 마리아는 소문난 여자에요. 막달라에 외입 나갔다가 돌아왔거든. 그러니까 막달라 여자, 막달라 여자 항상 그러는데 그렇게 이름 없는 여자를 찾아갈 때 이 여자가 인류를 구원시키는데 도움이 되려는가? 의심을 안 해요. 인류를 구원하는 데는 이 막달라 마리아는 능히 내 구원을 완성해주는 다시 말하면 조수다. 내 제자다. 믿고 찾아갔다. 그걸 우리가 받아들여야 되겠습니다. 요 공동체도 앞을 내다봐요. 원장님은 나이가 많으시지요? 어떻게 하겠어요? 누가 그러면 계승 하냐? 똑똑한 사람이냐? 얌전한 사람이냐? 그렇지 않아요? 예수님과 똑 같아. 여기서 이름도 없고 성도 없고 똥도 못 가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몰라요.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가지고 원장님 대리로 이 모든 일을 전부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난 그걸 믿습니다. 그걸 믿고 여기 올 때 그걸 믿고 왔어요. 산에서 현재 똑똑한 사람 누가, 누가 원장님 가신 다음에 이걸 계승해 일을 잘할 것이다. 그것이 아니에요. 지금 보기에 똥도 못 가리고 말도 못하고 병자고 그러지만 하나님이 예수님이 그 사람을 사랑했을 때 무명한 그 환자 한사람을 일으켜가지고 이 많은 자선사업도 다 능히 의거하고 보호할 수 있는  영적 지도자를 주실 수 있다. 아니 막달라 마리아를 찾아가지고 예수님이 인류에 희망을 주고 모든 죄인들을 구원시키는데 앞잡이가 되게 하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것이 제가 여기 찾아올 때 총 희망이야. 이 희망은 다 남고 싶어요. 보십시오. 구체적으로 한나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 대전에 정신 요양소에 우리 집에 와서 계십시오. 해서 한 달인가 사신일 있어요. 거기서 계시고 돌아오시고 일러주신 말을 제가 들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그때 그 정신 요양소가 사람이 400이나 되었다고 300 되었는데 그 기둥이 누구냐? 그 여자 원장이 있고 남편도 그 일 도와줬지만 남편이 안도와 줬을 때 수백 명 그 식구들을 누가 어떻게 봉사를 하고 사느냐 하면 그 대전에서 길가에서 몇 십 년 전에 길가에서 어떤 처녀가 미쳐가지고 돌아다닐 때 하도 불쌍해서 그 산 밑에 데려다 놓고 밥을 얻어다 먹고 같이 살았답니다. 가정에서는 싫어하니까 굴 파고 살 때 얼마나 그 아줌마가 이 머리끈을 뜯어 버렸던지요? 몇 번 이 머리가 다 빠졌다 그래요. 그 처녀를 도와주고 밥 얻어먹고 살 때 그 똥 못 가리고 머리카락 뜯어버리고 어쩌고, 어쩌고 해도 그 어쩐 일인지 그 처녀가 불쌍해서 그 사람하고 살다보니 나아졌답니다.
(끊김) 
발로 차버리고 그러던 사람이 은혜를 받아가지고 삼백 명 사백 명 그 많은 사람들의 밥을 그 자매가 총 책임자 되어가지고 
(끊김)

 


 지극히 땅위에서 버림받고 몹쓸 사람을 택해가지고 가장 귀한 사람을 만들지 않습니까? 막달라 마리아를 봐서라도 그러니 희망이 있어요. 각 반의 보모들은 데리고 있는 어린 애기들이나 그 정신이 병든 자매들 가운데 똥오줌을 못 가려도 사랑으로 감싸고 똥오줌을 가리고 그 병이 낫고 참 예수님의 보혈이 강같이 퍼질 때에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주고 그 사람의 병을 고쳐줬을 때 그 가슴에서 예수님의 보혈이 터집니다. 예수님의 그 샘물이 터진다면 사랑의 샘물이 터질 수만 있다면 능히 하나님은 그 사람을 일으켜요. 막대기라도 쓰시거든요.  그러면 모든 사람을 다 보호하고 일으키고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인재를 하나님이 보내 주실 수 있다. 그겁니다. 그 믿음이에요. 믿음, 또 고 원장님이 광주 계실 때 저하고 근모 형제하고 정신 환자들이 하 두 찾아오니까 연구해 보라고 부산을 보내줘서 제가 다녀왔어요. 그 구월산 거기도 정신 요양소인데 거기 원장이 부인이에요. 그때 40대 부인인데 그때 말씀 들어보니까 이 일을 내가 한답니다. 저 아이들이 합니다. 저 아이들 그러니 병 나은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이 다 그 일을 맡아 한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어떻게 했는가 하니 옛날에 걸인들 하고 살 때 산비탈입니다. 그 일본 사람들 공동묘지를 깎아가지고 집을 세웠는데 찻길이 없어요. 그냥 걸어서 산길로 죽 올라옵니다. 그래 밥만 먹으면 식구들을 깡통에다가 모래를 날라서 그렇게 지었다고 집을 지었다. 거기는 차가 안 들어오는 곳입니다. 산꼭대기라서 눈물과 지성과 그렇게 집을 세웠다고, 그런데 거기 사시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십디다. 정신이 나간 자매를 데리고 사는데 옷이란 옷을 주면 다 찢어버린다고 이불을 줘도 찢어버리고 옷도 찢어버리고 그러면 한 번도 왜 찢어 버리느냐? 그 말 안 했다고 ‘아이고, 내 딸아 추운데 옷 찢어 버렸냐?’ 하고 쓰다듬어 주고 사랑만 했지. 왜 옷 찢어 버렸냐? 꾸지람 안했다 그래요. 왜 이불 찢어 버렸냐? 말 안 했답니다. 그래서 한 채 두 채 세 채 이불 있는 거 다 줘버리고 옷 다 줘버리고 그 에고 추운데 어떻게 살라고 옷 찢어버렸냐? 그러니 왜 찢어버렸냐? 꾸지람 안 했다고 그랬더니 나중에는 퍽퍽 울면서 ‘어머니 내가 이불 안 찢어버릴 랍니다.’ 라고 막 울고 회개하더라고 그 사람이 나아가지고 그 일을 다 본다고 그래요. 그 모든 일 본다고 또 한 자매는 나이도 젊은것이 밥만 먹으면 꾀를 부리고 똥을 누는데  밥만 주면 밥그릇에다 똥을 눠. 오줌도 싸고 어떻게 심사를 부리는지 한 번도 꾸지람 안했다 그래요. 오 사랑하는 내 딸아 그러고 밥 그릇 가져다가 깨끗이 해서 밥 주고. 밥 주고 보는데서 똥 누는데 싹 털어버리고 밥 주고 자꾸 그렇게 몇 달 했더니 퍽퍽 울더라. 그래요. 엄마 나 밥그릇에 똥 안 눌 랍니다. 그 사람이 감화 받아갖고 이제는 예수 믿고 그 일 본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문제는 그래요. 사랑이 만능 이지요. 사랑이 만능이야. 사랑이 용서야. 열 번이고 백번이고 밥그릇에 똥 눠도 용서해. 그게 사랑이야. 그게 생수에요. 그게 보혈이야. 용서할 때 엄마는 피가 마르지 않아요? 돈도 없는데 어디서 이불을 사와요. 먹을 것도 없는데 어디서 쌀을 사와요? 그러니까 얻어다 먹을지 언 정 끝까지 사랑하고 용서한 것이에요. 그래 그 가슴에서 그 아픈 사람 가슴에서 생수가 터진 거예요. 사랑의 강이 터져요. 그러니까 수백 명 밥을 하라 해도 피곤치 않아. 저 엄마가 나를 이렇게 살려줬다. 예수님이 나를 용서 했다는 감격이 강같이 가슴에 흐르기 때문에 그 많은 자기 친구들을 다 밥해주고 옷 빨아줘도 피곤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공부를 많이 하고 박사가 되고 뭐 신학을 하고 그래서 이렇게 되는 것 아니고 사랑이 사랑을 낳는다. 보혈이 사랑을 낳아요. 인격을 낳고 역시 그렇구나 싶디다요. 

 

 

그래서 그 아까 말씀한 희망은 그겁니다. 해와 민들레 이야기, 해는 민들레를 비췄고 민들레는 해를 쳐다봄으로 해도 행복하고 민들레도 행복했다. 그렇게 상징적인 이야기인데 예수님이 인류가 수억이지만 다 찾아가봐야 기대가 안 돼. 땅위에서 버림당하고 울고 있는 베다니 마리아를 찾아가서 희망을 거는 거예요. 이 사람에게 내가 빛을 비춰주면 달과 같이 비칠 것이다. 그게 마리아의 달빛이 오늘날까지 우리 가슴에 비춰주지 않습니까? 희망 마리아가 깨끗하고 무슨 본래 유명한 여자라면 우리 희망 없어요. 오빠는 병신이고 나사로고 마르다는 과부 언니고 자기는 돈 벌러 막달라는 돈 벌러 갔다고 흉보고 손가락질 당하고 그런 여자 아닙니까? 그래 성녀시거든. 성녀, 햇빛을 받은 달은 빛을 발하듯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죄녀는 성녀가 되요. 깨끗해져. 사랑하면 용서하지요. 용서하면 깨끗해요. 성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용서해주면 성녀야. 누가? 예수님께서 용서해주면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날이 오면 샘이 터져. 사랑의 강이 터져  예수님의 피가 터져서 다윗 가문과 예루살렘 성민들의 죄를 씻어 주리라. 그 예언이 예수님 대에서 마리아에게서 이루어지지 않아요? 구체적으로 그럼 오늘날 우리 사이에도 이 시간에도 그래요. 우리 처지가 민들레만큼 되었다면 자연히 꽃도 없고 혼자 신세만 되었다면 예수님을 쳐다봐요. 자기는 행복하지요. 행복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런 상징적인 땅위에서 제일 잘 되는 명화, 잘 그린 그림 하나 있다지요? 어느 죄녀가 하필이면 죄녀에요. 죄녀가 얼마나 죄가 많았던지, 이 발목에 착고를 채워놨어. 어디다가 그 말뚝을 박아놓았냐? 하면 지구에다 말뚝을 박아놔 가지고 영원히 지구에서 내빼지 못해. 그 쇠로 착고를 채워놨어요. 그런데 비가 오나 눈이오나 비를 맞고 앉아있는데 그 사람이 사랑하던 거문고가 비가 맞으니까 그 줄이 썩어서 다 떨어졌어. 그 하나, 쇠줄 하나가 있는가요? 거문고는 쇠줄 없지요. 그 외국 뭐는 쇠줄하나 있습디다요. 기타 같은 거, 그것만 안 썩어서 안 떨어졌어. 열두 줄 다 떨어지고 하나만 선이 남았는데 그것만 이렇게 퉁기면서 울면서 노래를 부른다지 않아요? 곡은 아니야. 그래도 다 곡이 줄이 떨어지고 줄 하나만 이렇게 붙잡고 퉁기면서 찬송을 부르고 희망을 품고 있는 그림을 누가 그렸다고 그러는데 그러니까 땅위에 희망은 다 끊어졌어도 몸은 아프지 건강도 물러가지 나이도 먹었지 자식도 없지 고향도 없지 아무것도 없고 병들어 몸 하나 치었다 합시다. 그러면 세상은 길이 다 끊어졌지만 그 예수님의 보혈의 줄 하나는 남아 있다는 거예요. 

 

 

내가 죽으면 예수님께서 내 죄를 씻어 주시고 하늘나라로 나를 맞이한다. 나는 부활할 수 있다는 내 죄를 씻어 주시고 내가 성녀가 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희망 하나는 있지 않냐 라는 그런 그림이라 합디다요. 참 잘 그렸다 그래요. 그 그림을 그러니까 지금 건강하시고 지금 출세한 사람이야. 무엇이 아쉽습니까? 아무 그건 아쉬운 것이 없어요. 그러나 그렇게 어떤 사람들은 어느 날이 그 날이 오거든요. 모든 희망이 다 무너지고 꼭 하나님의 사랑 한 가닥만 남았을 때는 그렇게 희망이 있다 그 말씀입니다. 소망이 있어요. 그렇게 생각을 해봤다. 그 말씀입니다. 그럼 제가 잊지 않기 위해서 민들레 이야기를 한 겁니다. 그럼 민들레 이야기를 이제 그걸 말 하고 요새 더 들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민들레 아냐고 물어봤어. 그래 요새 들은 이야기 어느 자매가 수녀원에 가서 서원하고 수녀가 되었답니다. 본인 들었어요. 아버지가 70이 넘으셨는데 이제 아버지가 세상 떠날 날이 가까워요. 그 수녀원에 갔으면 보장이 안 되지 않아요? 일생을 수녀로 성공하려는지 모르니까 불렀어요. 세상 떠나실 때 불러가지고 유언이지요. 내 딸아 내 이야기를 들어보아라. 5백 년 전에 민씨 집안에 된 일이다. 그때 5백 년 전에 중국, 중국세력이 강하지 않습니까? 이 한국이 이조시대 같으면 속국, 속국은 아니지만 중국 세력에 억눌려 있어요. 그러니까 신라시절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만 어느 시절인지 몰라도 그때 상황이 중국 임금이 한국 임금에게 후궁을 한사람 추천해 보내라. 그것도 일종의 세력이 약하니까 서러움을 당했지요. 한국 조정에서는 중국 임금의 후궁을 하나 선발하는데 전부 재상의 딸 가운데서 후보자를 내야해요. 양반 집안에서 그러면 각 재상들이 자기 딸을 다 후보자로 내 보이는데 중국 사신이 실제 남의 집 딸은 볼 수 없어요. 여기도 국가고 나라고 재상의 장관의 딸들을 함부로 보겠습니까? 그러니까 각각 자기 딸을 초상을 그려오시오. 그랬답니다. 그때, 그럼 그림을 보고 선발할 량으로 그럼 사신이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상식으로 생각해 봐요. 내 딸을 어여쁘게 그리시오. 그럴 사람 없어요. 그러니까 그 화상을 불러오는데 그림 그리는 사람을 불러올 때 자꾸 사정해요. 우리 딸 밉게 그려주시오. 우리 딸 밉게 그려주시오. 자기 딸이 그 선발 안 되기 위해서, 집집마다 자기 딸을 근사하게 그리되 코가 쑥 나오게 그린다든지 눈이 삐졌다든지 보기 싫게 그렸거든요. 그러니까 인제 그림 그리는 사람이야 돈 받고 그리니까 소원대로 그려줬지요. 그런데 민씨는 옛날 장관이야. 지금 장관이 아니야. 은퇴한 장관이신데 이분 덕망이 높아요. 아주 덕이 높고 참 임금님 다음가는 존경을 받던 옛 재상이신데 일찍 어머니가 죽고 딸 하나가 있어요. 그러니까 아버지와 딸하고 둘이 사는데 그 재상 딸만은 선발 안 되기 위해서 그 화공이 그림 그리는 그 사람이 돈 안 받고 공으로 그 민 장관 민 재상을 너무 존경한 나머지 그 딸만은 선택 안 되기 위해서 눈도 뱁새같이 코도 쥐같이 아주 나쁘게 그렸어요. 선발 안 되게 쓰겠다고 자기가 그린 사람 가운데 제일 못나게 그려서 인제 가져갔어요. 

 

 

그런데 참 어떻게 된 일인고하니 중국서 화상을, 그 얼굴 처녀 화상을 보고는 제일 못 잘 못 그려진 거 그 사람을 탁 골라가지고 이 사람으로 선택한다. 이러지 않아요? 그러니까 사신이 혼자오지 않거든. 영리한 모두 서기관들이 충고를 해요. 안됩니다. 이 화상가운데 어여쁜 처녀가 많은데 왜 이렇게 못난 처녀를 택하십니까? 이거 이 사람만은 택하면 안 된다고 반대가 일어나요. 자기들끼리, 그러니까 그 대표 사신이 아주 지각이 있어. 겸손한 사람은 자기가 어여쁠수록 추하게 자기를 그려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처녀가 제일 겸손한가 보다. 제일 어여쁘고 겸손하니까 덕이 높으니까 자기 얼굴을 이렇게 추하게 그려달라고 부탁한 것 같으니 이 사람을 데려오라고 그러더라고. 데려와 보니 그 민씨 딸인데 달이 뜬것처럼 이뻐요. 거 봐라. 거 봐라. 이 처녀가 겸손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나쁘게 그린 것이다. 그러고는 가마에 태우고 요동성을 돌아서 중국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이 슬프게도 이 민씨 처녀는 약혼자가 있어요. 남자가, 그러나 국법이고 중국의 세력에 억눌려가지고 별수 없어요. 그래서 아버지도 울고 딸도 울고, 존경하는 다른 신하들도 울고 울면서 이별을 하지요. 그 영광이 아니야. 중국 임금의 후궁이 된다는 것이 영광이 아니야. 수치고 부끄러운 것이지요. 그러니까 다른 처녀들 아끼기 위해서 자기가 대신 들어가는 거야. 자기가 대신 가는 겁니다. 덕이 높은 처녀인데 보십시오. 아버지한테 ‘아버지 제게 소원이 있습니다.’ ‘무엇이 소원이냐?’ ‘대추 한말 한국 샘에서 나는 정화수 한말 모래 한말 싸주시오.’ ‘아 그거 왜 그걸 못해주겠냐’ 그래서 한국을 떠날 때 한국 대추 한말 물 한말 모래 한말 싣고 가요. 그래서 중국을 들어갔더니 얼마나 큰 잔치가 일어나지 않아요? 후궁이 왔다고 아주 큰 잔치를 며칠하고 임금님이 후궁 집을 오셔서 첫날밤 이지요. 그러니까 한국서 간 민씨 그 처녀가 이렇게 이야기해요.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신 분, 저는 어머니 상을 받았습니다. 우리 한국 규례는 아버님이나 어머님이나 돌아가시면 3년 상, 3년은 처자가 있더라도 가까이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 상이 3년이 다 가고 백일이 남았습니다. 그러니까 백일만 저를 어머니 상을 채우도록 허락해 주시오. 그러니까 그 임금이 아주 덕이 높아. 아 이렇게 아리땁고 이렇게 어여쁜 후궁께서 원하신다면 내가 왜 허락을 못하겠냐고 그리고 백일을 삼가고 떠나버렸어요. 임금이 백일 동안 자기가 홀로 혼자 사는 거지요. 자기 몸종을 데리고 갔어요. 백일 동안 대추를 한 알씩 먹거든. 아 대추를 먹지 않고 모래를 막 가던 날, 그 시종 자기 시녀를 시켜가지고 내가 밟을 수 있는 이 뜰에다 뿌려라. 그 한국 땅이 되어버려. 한국 모래를 뿌려버리니까 중국 땅이 아니야. 자기는 중국 땅이 아니고 한국 땅에 사는 거예요. 그리고 한국서 싣고 간 정화수를 마셔요. 그게 자기 생명수야. 그거 떨어지면 안 먹고 죽을 작정이야. 그러고 대추를 그러니까 아무리 그렇게 좋은 음식 천하에 없는 좋은 음식 채워줘도 이 중국 음식이 아직 안 맞으니까 다음에 먹으렵니다. 사양하고 안 먹어요. 그러니까 백일동안 물도 떨어졌지 대추 떨어졌지 그러니까 그 시녀가 자기 아가씨를 살려볼 량으로 중국 대추를 사다가 몰래 드렸어요. 맛을 보더니 알아요. 막 꾸지람을 해요. 내가 안 죽으려고 대추를 먹겠냐? 내 고향 내 땅 대추가 떨어졌는데 왜 남의 나라 대추를 네가 나를 주냐? 그러고 마구 꾸지람을 하고 경계했지요. 제가 잘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시오. 그랬답니다. 그러니까 대추 한말을 가지고 백일 먹었으면 피가 말라지지요. 그래 백일이 되어서 그 임금님이 와봤어. 그 후궁 집을 벌써 임종 했어요. 피가 끊어지지 않아요. 물도 안마시고 먹을 것도 없고 한 백일 굶으면 죽어요. 아무리 건강해도, 그때 그 임금이 정신이 나요. 아 내가 권리를 가지고 남용했구나. 마구 울어요. 회개를 해요. 나 절대로 이런 권리를 부려서는 안 되겠다. 사랑은 돈 주고 못 빼앗겠구나. 절대 이 중국 사람으로서 한국 처녀를 욕심내지 않겠다. 하고 그 후에는 그걸 회개 했어요. 그 임금이 그랬답니다. 그런데 그 마당에 그 시녀가 한국에 돌아와야 하지 않아요?

 

 

 마당에다 무덤을 묻었는데 무덤에서 무엇이 올라와요. 풀이 그 시녀가 몇 달 중국에 머물렀는지 몰라도 한국 오도록 머물렀지 않아요? 일 년을 머물렀는지 봄이 돌아왔겠지요? 무덤에서 꽃이 피었는데 민들레에요. 민들레, 그 아가씨 이름이 들레에요. 성은 민 씨고 꿈에 그 아가씨가 나타나서 그 꽃을 캐다가 아버지 앞에 드리라. 그랬어요. 꿈에 그러니까 꽃이 죽은 사람의 넋이지요. 민들레의 넋이야. 본래는 성도 이름도 없는 꽃인데 그러니까 민들레의 무덤에 핀 그 꽃을 캐다가 아버지를 드렸어. 고향에 한국에 와서 아버지가 그 꽃을 심어놓고 항상 위로를 받아요. 너는 죽었지만 꽃이 되어 왔구나. 바로 네가 민들레다. 성은 민씨고 이름은 들레라고 그 꽃씨가 막 나라가요. 사방, 한국으로 바닷가로 광주로 날라 오지요? 지리산에  그래가지고 그럼 꽃만 피면 여기 지금은 너울을 쓰고 나르지 않아요? 민들레의 넋이 날라 다닌다는 거예요. 서럽게 자기 정신 얼마나 절개 깊은 처녀입니까? 그러니까 그 아버지가 70먹은 아버지가 수녀 된 딸한테 그 이야기를 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이번에 와서 이야기해요. 아버지가 죽기 전에 그 이야기 나한테 해 주시더니 아버지 먼저 가셨는데 그 이야기는 자기한테 한 송이 민들레로 떨어졌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민들레가 아까 그 이 해인 수녀님의 가슴에 떨어졌다고, 민들레가 척 수녀님 내 말 들어봐요. 나는 이 바닷가에 홀로 피었어도 만족하고 행복한데 해님만 나를 비쳐주신다면 나는 행복한데 예수 사랑하는 사람이 왜 그 모양이냐고 아이고 그 부끄러워 나도 너와 같이 살겠다. 다시는 옷 벗지 않고 수녀로 살겠다. 그러고 민들레하고 서원했다고. 상징적 이예요. 자 보십시오. 그러니까 사랑은 예수님이 막달라를 사랑했다는 것이 해가 민들레를 비춘 것과 같아요. 또 마리아가 예수를 사랑했다는 것은 민들레가 해님의 사랑을 독차지 한 것과 같다면 예수님 쪽에서도 그래요. 사람이 많고 많지만 그렇게 죄가 많고 버림받은 사람이나 예수를 사랑해줘요. 실상은 선한 사람은 예수사랑하지 않습니다. 자기 선으로 멋지게 살지. 예수님도 참 불쌍한 사람이에요. 지금도 모든 인류가 사랑만은 자유야. 하나님은 모든 것에 권리를 갖고 있지만 사람에게 허락된 자유의지의 사랑만은 어쩔 수 없어요. 죄인 쪽에서 사랑해줘야 받으시거든. 진심으로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자기 앞길 꽉 막히고 죄가 많아가지고 벌벌 떠는 사람이 아니고 누가 예수 사랑하겠습니까? 그런 뜻으로 예수님과 마리아의 사이에는 전부라. 마리아 한사람이 예수 사랑했다는 것도 인류를 대표해서 전부이지만 가장 약한 여자를 예수님은 기대했다. 우리들도 아이고 어떻게 살아. 일은 많고 손발도 없고 그런데 내가 데리고 산 제일로 불쌍한 아픈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마리아야. 자기가 예수같이 생각한다면 자기가 지도자라면 기대할 사람은 제일로 어린 사람이야 제일로 버림받은 사람 그 사람에게 사랑을 주고 용서하고 뜨겁게 예수의 보혈이 터질 때 보혈이 거기 잠길 때 거기서 기적이 일어나요. 기적 사랑의 기적, 거기가 천국이 되 바로 거기 예수님이 계세요. 그러니까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가사가 이 말이 과장된 글이 아니더라 그 말씀이에요. 이 가사를 지어 노래를 부른 분이 그 감격으로 불렀겠지요? 그러니까 이 샘물과 같은 보혈을 다시 한 번 불러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