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금골산에 오르다 : 샘물과 같은 보혈

mamuli0 2021. 11. 21. 12:51

 소설 전날 용기가 나서 금골산에 올랐다. 미세먼지로 흐렸으나 내려다보는 경관은 좋았다. 울금과 은행나무 잎이 황금색으로 변했고 무우 밭은 청색으로 진도는 사계절 푸르르다.

 

 

 

샘물과 같은 보혈 

1986. 08. 12.  김준호 선생 

 말씀은 공동번역 스가랴 13장 1절 말씀입니다. 1590페이지 구약성경 스가랴 13장 1절 말씀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그 날이 오면 샘이 터져 다윗 가문과 예루살렘 성민들의 죄와 때를 씻어 주리라. 샘물과 같은 보혈 찬송가 요절이 스가랴 13장 1절입니다. 그날이 오면 샘이 터져 다윗 가문과 예루살렘 성민들의 죄와 때를 씻어 주리라. 그러니까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이 찬송가는 스가랴 13장 1절 말씀을 풀어서 하신 말씀으로 보입니다. 그날이 오면 샘이 터진다는 말씀은 스가랴의 예언은 앞으로 예수님이 오실 것을 예언 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오시면 예수님의 그 사랑이 샘과 같고 예수님의 보혈은 샘과 같다는 예언으로 압니다. 샘물과 같은 보혈이라고 그랬어요. 샘물과 같은 예수님의 그 보배스러운 피는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에 죄를 씻으면 예수님의 피에 죄를 씻으면 곧 피는 사랑입니다. 피는 곧 희생입니다. 피는 곧 대신 죽어주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에 죄를 씻으면 죄가 씻어지는 것이 아니라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그 크신 사랑은 못 용서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 샘에 사랑의 샘에 우리의 죄가 용서된다면 깨끗해집니다. 용서하면 깨끗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나를 용서했다는 것을 믿으면 우리는 곧 깨끗합니다.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이 크신 사랑에 죄를 용서 받으면 그 큰사랑에 그 큰 눈물에 우리가 회개 할 수만 있다면 죄를 씻으면 깨끗하게 되겠네.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예수님께서 오시는 그 날이 오면 사랑의 샘이 터져 생수의 강이 터져 다윗 가문과 여기 생각해 봤습니다. 다윗 혈통은 왕통입니다. 스가랴 13장 1절 봤습니다. 다윗 가문은 왕통인데 누구든지 그 믿음으로 다윗 가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사랑에 있어서는 예수님은 사랑의 왕이십니다. 이 정신적 의미에서 사랑의 자손은 예수님의 왕통을 이은 왕자입니다.  또 왕녀입니다. 그러므로 이 뜻은 택함 받은 백성 누구든지 여기도 자선사업체지요. 누구든지 왕통을 이어서 왕이 된다면 어떠한 책임자가 되고 보면 죽는 마당에 쳐지는 것은 죄뿐입니다. 일평생 했다는 자선사업도 따지고 보면 죄뿐이에요. 다윗의 위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사람보다 선하지만 예수님 앞에 서면 죄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설 때는 잘못 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을 때 일생은 쳐지는 것은 죄 뿐인데 그 예수님이 오시면 그 죄를 씻어주신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 없이 선한일 한다면 그 사람이 죽을 때는 그 죄를 책임질 것 없을 것입니다. 그런 뜻으로 예수님의 그 죄 씻음을 받은 사람들은 그 임종하는 마당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다윗 가문이라는 것은 정신적 의미에서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 자기 부모형제 친척 고향을 다 버렸다하더라도 일생을 몸을 바쳤다하더라도 고작 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예수님의 제자인데요.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보면 쳐지는 것은 죄와 허물뿐입니다. 또 예루살렘 성민들의 죄를 씻어 준다고 그랬습니다. 종교적으로 예루살렘은 서울입니다. 믿는 사람의 정신적인 서울입니다. 그러면 택함 받은 선민들 거룩한 이스라엘 민족 또 우리들은 예수님의 피로 씻음 받은 거룩한 성민 그러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택함 받은 사람들은 믿고 쳐진 것도 죄 뿐입니다. 가사 오늘 아무리 생명을 바쳐 선했다하더라도 시간이 흘러가면 비유적입니다. 아무개 보다는 죄가 있습니다. 누구 보다는 잘못했습니다. 절대의 선은 없습니다. 그런 뜻으로 선택 받은 선민들의 임종하는 마당에는 죄와 허물 뿐입니다. 일평생 예수님 믿고 선한일 했다하지만 병들어 죽은 마당에 쳐진 것은 죄와 때뿐인데 그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 선민도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더라면 차라리 죄도 모르고 때도 없겠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사람들은 죄와 때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럼 비교를 예수님과 했기 때문에 비교적인 죄가 드러납니다. 아무리 사랑을 했다 해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처럼 너희도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을 완성한 사람은 드물 겁니다. 또 자기 생명을 주는 것이 사랑의 완성이라고 그러는데 임종하도록 생명을 바쳐 사랑했다하더라도 그 사람이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것뿐입니다. 그러면 성민들의 죄와 때를 씻어 주시리라는 것은 예언인데 바야흐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오신 다음에 예수님도 그런 뜻을 보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보면 사마리아 우물가에 어느 때 묻은 여인 죄 많은 여인을 만나서 예수님은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그 다 볼 수 없고 12절부터보면 이것은 샘물입니다. 이 우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마셨고 그 자손들과 가축까지도 마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우물을 우리에게 주신 야곱보다 더 훌륭하시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13절부터 예수께서는 이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강같이 흐르리라.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하셨다. 그러면 예수님이 상징적인 샘을 말하는 것은 자기의 뜨거운 사랑이고 자기가 흘릴 피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다시 보면 예수께서는 이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하셨다. 그 우리가 그냥 이렇게 성경말씀 보고 회상해 봅시다. 

 

 

그 옛날 우리를 지도하시던 현 동완 선생님께서 30세까지 일생을 홀로 사시다가 결혼하신 다음에도 못내 예수님의 거룩하신 생활이 흠모 되어서 가정을 갖은 다음에도 자기가 그리워하던 예수님의 그 깨끗한 생활이 그리워서 그 수녀원 수도원 세계 각각 어느 나라를 가던지 수녀원 수도원을 순례하시고 그렇게 방문하실 때 어디가면 참 샘물과 같은 마음이 시원한 말씀을 들어볼까? 하시고 많이 찾아가 봤지만 그렇게 마음에 평안을 얻지 못하시고 그분이 일평생 잊지 못할 추억은 그것이 지금 샘물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여비를 장만하면 몇 년 만에 각국을 돌아다닐 때 성지를 순례도 하였거니와 그리워 자기가 평생에 그리웠던 수도원도 찾아가보고 수녀원도 찾아갔을 때 반드시 거기가면 면회를 신청하시고 덕 있는 수녀님이나 수사를 만나서 그 일문일답 자기의 심정을 말씀하시고 위로를 받고자 했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70이 넘으신 수녀님을 만났을 때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수녀님은 이렇게 수녀원에서 나이가 70이 되도록 회개하시고 영혼을 닦으셨으니까 지금쯤은 마음에 평화가 있으십니까? 지금쯤은 가슴에서 생수가 강같이 흐르십니까? 지금쯤은 마음에 목마름이 없으십니까? 그렇게 질문이 아니고 호소하셨답니다. 그러니까 그 수녀님은 이렇게 대답했어요. 저는 제 가슴에 아직 샘물이 터져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내 가슴이 아직 괴롭습니다. 저는 아직 죄가 있습니다. 시원스럽게 나는 예수님을 만났다든지 나는 해결을 받았다든지 내 마음이 평안하다. 나는 성령을 받았다. 그럴 줄 알았는데 전혀 70평생 수양하신 분이시지만 아직도 자기는 보혈을 힘입지 못했다고 솔직히 자기 고백을 하신 것을 듣고 그러면 수녀님은 후회  하시겠지요? 70이 되도록 수양을 하셨는데 아직 죄가 있다면 후회하시지 않습니까?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러시더래요. 아니 아직도 70이 되도록 죄를 해결을 못하셨는데 어떻게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후회 안하십니까? 물어보니까 저는 내 주님의 힘 내 주님의 보혈 내 주님의 사랑의 강은 제가 임종할 때 바늘귀만큼 은총이 내 가슴에 접어든다면 저는 능히 구원을 받고 천국 갈 것이고 저는 성호를 받을 것을 믿기 때문에 아직도 내게는 희망이 있고 후회는 없습니다. 그런 말씀을 해주셔서 아 나도 희망 있다. 그러셨다고 그 현 선생님이 나도 임종 순간이라도 내 주님의 보혈이 내게 저를 사랑해 주실 때는 나도 구원받겠다는 희망을 품으셨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러면 이 이야기는 제가 어디서 들었냐하면 이 현필 선생님이 초창시기에 얼마나 남녀분별이 엄했던지 남자들은 이쪽 감나무동산에서 예배를  따로 보고 여자들은 저쪽 밤나무동산에서 예배를 볼 때 남자들은 참석 못합니다. 여자들의 예배 시간에 현 선생님이 여름이든가 꼭 지금 같아요. 8월 달에 오셔서 특별 강연을 하시는데 남자 반에서 기다리기가 초조해서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요리 구멍에서 들어가서 저쪽 화단이쪽 저쪽에서 그 가시나무 밑에서 몰래 들었어요. 가만히 들을 때 그 이야기를 하실 때 가슴을 울립디다. 어느 성인이 어느 죄인이 가서 어느 누가 잘 믿었다는 것은 실망뿐입니다. 아 나는 믿음도 없고 어찌할까? 절망이에요. 그런데 평범한 그 수녀님이 70세가 먹도록 수양을 했지만 아직도 죄가 있다는 번민을 이야기 했을 때 아주 나와 똑같은 사람 나와 똑 같구나. 위로가 있어요. 동시에 그 수녀님의 소신 내가 임종할 때라도 내 주님의 보혈의 생명수 강이 내 가슴에 터질 수만 있다면 나는 바늘귀만한 혜택을 받아도 내 영혼은 구원을 받고 성은을 받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 믿음 확실한 믿음이지요. 그래 선생님이 다시 질문했다고 그래요. 수녀님 그러면 보혈을 힘입지 못하고 임종하고 지옥으로 가서 다시 사람이 된다면 또 수도원에 들어오겠느냐고 그러니까 나는 다시 사람으로 보내준다면 다시 이 수녀원에 들어와서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하고 기도하겠다고 천번만번 내 주님의 보혈을 믿기 때문에 내게 일찍 그 성령을 주든지 안주던지 그것은 주님의 자유시고 하나님의 뜻인 이상 내 쪽에서 욕심 낼 수는 없고 그 보혈을 믿기 때문에 나는 다시 수녀가 되어가지고 여기서 구원을 기다리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 그 말씀을 전해 듣고 참 희망이 생겼지요. 그러면 그 설명도 보혈입니다. 보혈의 능력 그 수녀님의 말씀도 주님의 보혈이 내 가슴에 바늘귀만큼만 그렇게 혜택을 주신다면 저는 능히 구원을 받겠다고 믿는다고 하시던 그 말씀도 샘물과 같은 보혈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러면 보십시오.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자도 평민도 아니고 인간적으로는 참 다섯 번 여섯 번 결혼을 했으니까 얼마나 상처가 많은 여자이겠습니까? 그런데 이 부인은 예수님을 만나가지고 샘물을 마셨지요.  그래서 구원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지금 요한복음 4장은 익히 아신 말씀입니다.   그날이 오면 샘이 터져 다윗 가문과 예루살렘 성민들의 죄와 때를 씻어 주리라. 지금 이 성경 말씀이랄지 제가 설명하는 것은 하늘 높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옛날이야기도 아니고 현재 여기 대체로 지금 40 50 60 70 이런 그 아주 장한 영혼들이 모였어요. 우리의 실상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아직은 죄가 있고 생명수 강가에 가서 샘은 못 치지만 희망이 있다. 소망이 있다. 보혈의 능력은 우리를 능히 구원하고 있다는 그 이야기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 도적 회개하고서 이 샘에 씻었네. 예수님 그 십자가 옆에 있었던 도적은 얼마나 죄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 사람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우리도 이 상황이 되면 아마 그렇게 십자가에 매달릴 수 있는 사람들이지요. 저 도적 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하게 저 도적 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하네. 속함을 얻은 백성은 망하지 않겠네. 아까 수녀님 말씀이 그렇지요. 예수님의 보혈을 그 속함을 제가 받게 될 것을 믿기 때문에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이 속(贖)자는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옛날, 옛날 고전 옥편을 떠들어 보면 소를 대신 죽이고 사람을 살려줄 속 그렇게 글자 이름을 써놓았습니다. 죄는 사람이 지었는데 죄 없는 소를 대신 죽이고 사람은 살려준다는 속자의 뜻은 이제 예수님이 땅위에 오신 이상은 예수님이 곧 가축입니다. 생축이 되셔가지고 사랑 때문에 대신 죽으심으로 죄지은 자기 백성을 해방시켜 주시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속함을 얻은 백성은 망하지 않겠네.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한없이 있도다. 그 아까 보혈이다. 샘물이다. 그랬지요?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피의 그 사랑의 능력 사랑의 만능 피 권세 한없이 있도다.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한없이 있도다. 나를 정케 하신 피 보니 내 영혼을 깨끗케 하신 그 보혈을 보니 예수님의 사랑을 우러러보니 그 사랑 많도다. 살 동안 받은 사랑을 옛날 찬송은 인애를 어질 인(仁)자 사랑 애(愛)자 인애를 늘 찬송하겠네. 살 동안 받은 인애를 늘 찬송하겠네. 이 후에 천국 올라가 더 좋은 곡조로 나를 구속하신 은혜를 늘 찬송하겠네. 그 다음에 구속이라는 말도 다 아시지요? 구속,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을 살려주고 자기가 대신 죽은 사람이 있습디다. 며칠 전에 여러분 들으셨는지 몰라요. 아홉 살 먹은 동생이 물에 빠졌으니까 열두 살 먹은 형이 물에 뛰어 들어가서 아홉 살 먹은 동생은 밀어서 살려놓고 자기는 못나오고 거기서 임종했어요. 참 좋은 형이지요. 그러면 동생을 대신 살려주고 자기는 대신 죽었습니다. 그러면 구할 구(救)자는 그런 구자입니다. 동생을 자기가 살려주고 자기는 대신 죽은 형이 있듯이 예수님께서 죄악의 바다에서 우리를 건져내시고 죄의 강 속에서 우리를 구해주시고 자기가 생축이 되어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려주신 그 은혜를 늘 찬송하겠네. 늘 찬송하겠네. 날 구속하신 은혜를 늘 찬송하겠네. 그래 이 그 아까 말씀 했어요. 스가랴 13장 1절 말씀을 풀어서 찬송을 지어서 부르고 있습니다. 다시 부릅시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제가 혼자 보겠습니다. 다음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한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 한번 따라 읽으십시오.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 그러니까 이 이스라엘 민족이 지금까지 5천년 역사를 가지고 있고 예수님이 오시던 날로 삼천년이 되었습니다. 오신다. 오신다. 창세기 1장 2장 3장에서 오신다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오신다. 오신다. 하던 하나님의 어린양이 삼천 년 만에 세례요한이 요단강가에서 예수님을 보고 하신말씀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3천년이나 기다려서 오셨는데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 생각만 해봐도 참 감격스럽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 어린양이 오시는데 목적이 확실해요. 죄를 없애시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목적이 확실해요.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 아까 구속이라는 말씀은 소를 대신 죽이고 사람을 살리는 그런 글자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양입니다. 어린양을 키워가지고 33년 키워가지고 잡아 죽일 것입니다. 양이니까 소와 같이 그렇게 해서 피를 흘리시고 사랑을 완성하는 날 모든 인류의 죄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 생각만 해봐도 가슴이 설레 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오신지가 2천년이 되었습니다. 우리 죄를 없애시러 오신분이 일 하신지가 2천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성경 말씀은 옛날이야기가 아니에요. 오늘 이 장소에 오신 한분 한분의 영혼의 문제입니다. 나는 죄가 없으면 예수님이 대신 죽을 필요도 없지요. 예수님의 사랑을 빌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죄가 누가 있다면 문제는 있습니다. 내가 회개가 안 됩니다. 그런데 그 인류의 문제 가운데 죄의 문제만은 사람이 어떻게 할 수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을 보내십니다. 죄를 없애시기 위해서 제가 편지를 많이 받지를 않습니다. 일평생에 몇 통 편지를 받았는데요. 참 잊지 못 할 편지를 한 장 받은 일이 있습니다. 15세 이런 공동체 여기 들어오셔서 한 20이 되도록 커가지고 여기 살지 못하고 나갔습니다. 세상에 살다보니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편지가 왔습니다. 그 여기 이 공동체에 예속되어서 어린 나이에  거기서 커서 20이 되도록 조석으로 듣던 말씀은 성경 말씀을 많이 귀로 들었답니다. 많이 들었는데 자기한테는 다 쓸데없는 말이고 꼭 한 말씀이 자기한테 들어왔어요. 예수님이 죄인을 위해서 죽으러 오시고 내 죄를 용서하신다는 그 음성은 자기가 세상에 살아갈 때 꼭 그 한자리가 필요하다고 자기는  그러니까 그 좋은 말씀 다 잊어버렸지만 죄를 용서해준다는 말씀을 제가 기억하고 하루하루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 자기 소망이요. 재산이요. 기쁨이요. 총 재산은 내 죄를 용서하신다고 하시는 말씀을 자기가 아주 잊지 않고 있노라고 그것이 세상에 사는 자기 소망이라고 그런 편지가 왔어요. 그것은 참 가슴에서 깊은 가슴에서 참말을 한 것이지요. 모든 말이 다 좋지만 죄를 용서해 준다는 말씀은 나이가 늙던지 세상을 많이 겪고 병이 들었던지 그때는 꼭 자기한테 절대 필요한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생명수에요. 생명수 생명의 보혈 보혈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지도하신 이 선생을 보십시오. 몸이 건강하시고 30대에 참 천하가 무섭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그렇게 다니시다가 인제 병이 들어서 한 그때 석 달 동안을 물이 안 넘어갔다고 하지 않습니까? 얼음을 입에다 머금고 녹여 피를 뱉었지, 목으로 안 넘어가요. 그래 죽음이 가까웠을 때 이 동산에서 임종을 한다면 젊은 사람들 앞에서 평생에 상처를 지우는 것 보다는 홀로 가서 임종을 해야겠다는 결사적인 각오를 가지고 서울 수색 저쪽에 그 다시 말하면 일정시대 때 파놓았던 기차 굴에 들어가셔서 임종을 기다리고 계셨지요. 손톱도 피가 까맣게 멍들어 가지고 손등이 까맣게 되었어요. 피가 안 통하니까 그리고 이 모든 얼굴이 파래지고 임종이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그때 인제 원장님께 무슨 부탁을 했는가 하니 그 안식교에서 경영하는 그 병원은 무료병동이 있다하니까 거기 입원시킬 수 있는지 저를 입원 시키려고 했던 것 같아요. 물어보라고 하시고 오셨어요. 현동완 선생님을 통해서 물어보니까 거기는 정신 환자만 입원이 되지 결핵 환자는 입원이 안 된다는 소식을 듣고 오셨어요. 그러니까 이 선생님이 필담 종이에다가 연필로 쓰기를 원장님이 옆에 계신데 저는 옆에서 엿보지요. 옆에서 엿봐. 옆에서 엿보는 그 말씀이 맛있는가 봐요. 아까는 엿보는 말씀하지 않았어요? 그때 제가 개구멍 뚫고 몰래 들어가서 듣지 않았으면 그 말 못 전하지요. 잘못은 잘못이지만 원장님께 뭐라고 쓰시는 고 하니 제가 오늘날까지 선행이 귀한 줄 알고 이 보혈이 귀한 줄을 몰랐습니다. 그렇게 쓰십디다요. 그 말 쓰기 전에 제가 건강했을 때는 밥만 귀한 줄 알고 물이 귀한 줄 몰랐습니다. 그 말을 먼저 썼어요. 제가 건강할 때는 밥이 귀한 줄 알고 물이 귀한 줄 몰랐습니다. 오늘 제가 물을 못 먹은 지 한 백일이 가까운 이때에 제게 있어서는 오늘 밥 안 먹어도 삽니다만 오늘 제가 물을 못 마시면 저는 죽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물이지만 제게는 생명수입니다. 다른 사람은 저것이 찬물이면 제게는 보혈입니다. 보배스러운 피 입니다. 물을 마시면 저는 오늘 살고 못 마시면 저는 죽습니다. 그런데 제가 깨닫는 것은 평소에 내가 선이 귀한 줄 알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내가 죽는 이 마당에 선행은 내게 아무 도움이 안 되고 보혈만이 내게 필요합니다. 보혈만은, 임종이 가까워진 이 마당에 일평생에 뭐 선한일 많이 했다지만 내 영혼은 아무 효과가 없다는 말이에요. 내가 천국 가는 이 마당에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나는 이제 예수님의 보혈을 내게 힘을 주시면 예수님의 보혈이 내게 효과를 일어나면 내가 천국에 가지만 예수님의 보혈이 내 죄를 못 닦아 준다면 나는 지옥에 갑니다. 이 마당에 나는 선행보다 보혈이 내게는 절대 생명수입니다. 아주그냥 피를 토하는 호소를 하십디다요.

 

 

원장님 그 옆에 모시고 마지막 임종 순간에 그렇게 필담을 하세요. 그래 지금 생각하면 그 말씀이지요. 샘물과 같은 보혈을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건강해서는 이것을 몰랐다는 거예요. 아주 자선사업하고 선한일하고 좋은 일 하고 그렇게만 전부인줄 알았는데 죽는 이 마당에는 속함을 얻은 백성은 망하지 않겠네.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한없이 있도다. 한없이 있도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보혈의 샘이 터져서 나를 구원시키지 않으면 내 선행으로는 아무 가치가 없다. 그걸 깨달았습니다. 그 말씀을 선포하시고 그 오늘날 우리가 지금 이렇게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살 수 있도록 어떠한 뜻으로는 복음을 전하신 선생님 이십니다. 그 날이 오면 샘이 터져 어떤 뜻으로 이 현필 선생님은 그날, 그날에 보혈이 터졌어. 그날 평생에 고집하시던 자기 선행을 다 오히려 죄라고 회개하시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천국을 가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날이 왔지요. 그 선생님은 그날이 오신 거예요. 그날 샘이 터진 겁니다. 그날 밤에 조기 한 마리를 사오라고 해서 끓여서 드렸더니 잡수시고 물이 넘어갔어요. 그것은 상식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기적이 아니라 자기 그 강인하던 자기 선행을 자기의지 자기를 포기하시고 예수님의 사랑에 귀의 했을 때 예수님의 보혈에 겸손히 귀의했을 때 자기 목에 혈관이 통하고 이제 피가 통하고 물이 넘어가시고 살아나셨지요. 그렇게 해서 살아나시고 한 근 10여년 몇 년 더 사셨지요. 그러니까 이 선생님은 그 날이 온다면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우리가 지금 병이 들었던지 나이가 많았던지 임종하는 이 마당에 일평생에 이렇게 좋은 일했다하더라도 이제 영혼이 다 깨끗해서 임종을 바라보면 자기가 했던 선행은 다 버릴 것뿐이에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어요. 예수님의 사랑이 나를 용서하시면 천국이 용납되는 것뿐이고 그분이 용납 안 해주시면 나는 아무 무가치한 죄인이다. 그거지요. 어느 교황님도 임종 석상에 그때야 비로소 깨달으시고 저는 죄인입니다. 임종하시면서 그 말했지요. 그래서 그분은 성인이지요. 구원받았으니까 임종 석상에서 저는 죄인입니다. 고백을 해요. 그러면 즉석에 그분은 성인이 되신 것이지요. 깨끗해 졌다고,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보혈을 의지하고 임종했을 때는 그 생명이 부활하고 깨끗해 졌지요. 그러니까 그 날이 오면 샘이 터져 다윗가문 교황을 해먹었던지 뭘 해먹었지요? 다윗가문 왕통 왕이 되고 예루살렘 성민 그러면 수녀랄지 수사는 성민이라고 하겠는데요. 또 종교적으로 지도자들은 성민들이시고 성민이 했다는 것은 허물뿐이에요. 죄뿐이야. 그 영혼이 겸손하고 회개할 수 있다면 자기는 죄 뿐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본성이고 본질이지요. 그러니까 그러면 그 죄와 때를 예수님이 씻어 주시마고 하신 예언이 이제 이루어진다는 말이에요. 어느 때 그 날이 오면 그런데 아까 그 날이 왔어요.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 이 시간에 오셨지요. 여기 오셨어요. 누가복음 7장 36절 한 예화지요 한 여자의 경우 예수님이 어린양이 오셔가지고 한 죄 녀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시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지요. 누가복음 7장 36절 이하의 말씀 여러분 다 아시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위해서 다시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어떤 바리사이파 사람의 초대를 받으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다. 마침 그 동네에는 행실이 나쁜 여자가 하나 살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예수님께서 그 바리사이파 사람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신다는 것을 알고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예수 뒤에 와서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었다. 그리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발에 입 맞추며 향유를 부어드렸다. 예수를 초대한 바리사이파 사람이 이것을 보고 속으로 저 사람이 정말 예언자라면 자기 발에 손을 대는 저 여자가 어떤 여자이며 얼마나 행실이 나쁜 여자인지 알았을 텐데 하고 중얼거렸다. 그때 예수께서는 시몬아 너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하고 말씀하셨다. 예 선생님 말씀하십시오.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돈 놀이꾼에게 빚을 진 사람이 둘이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졌고 또 한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이 두 사람이 다 빚을 갚을 힘이 없었기 때문에 돈놀이꾼은 그들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은 더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겠지요. 하였다. 예수께서 옳은 생각이다. 하시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면 시몬에게 말씀을 계속하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내 발을 닦아 주었다. 너는 내 얼굴에도 입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 곳 내 발에 입 맞추고 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라주었다. 잘 들어두어라.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 받았다. 사랑이 곧 용서입니다. 사랑이 곧 용서야. 피가 용서가 아니라 샘물이 용서가 아닙니다. 죄 사람은 샘물과 같은 보혈이고 샘물이 죄를 씻어준다. 할 수 있지만 때를 씻어주지요. 그러나 윤리적으로 말하면 용서가 죄를 닦아 줍니다. 용서가 죄를 씻어줍니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죄는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예수와 한 식탁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인데 죄까지 용서해 준다고 하는가? 하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셨으니 평안히 가라. 하고 말씀하셨다. 사랑은 용서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용서 하는 것을 믿는 것이 구원입니다.

 

 

따라 읽으십시오. 저 사람이 누구인데 죄까지 용서해 준다고 하는가?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사랑이 그 여인의 죄를 용서하셨던 것입니다. 그 여자는 그 용서를 믿었던 것입니다. 용서해준 것을 믿는 것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믿음으로 의화 된다고 믿음으로 자기가 완전한 것을 믿습니다. 내 죄를 용서하신 것을 믿는 것이 곧 사랑입니다. 용서하신 것을 믿는 것이 만일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라주었다. 잘 들어두어라.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무엇을 뜻하는가? 그만큼 죄 용서함을 받은 것을 믿는 것이다. 죄 용서해준 것이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향수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렸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것은 한 일례라 하겠어요. 이 예는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날이 오면 이 시간이에요. 이 시간 이 시간에 예수님이 나 같은 죄인을 보혈로 씻어주시면 내 죄를 씻어 주시면 우리는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구속을 받는 것입니다. 건짐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임종을 하면 하늘나라 갈 것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그렇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기 서요. 죄를 씻어주셨다는 말씀이야 우리가 익히 알고 교리로 배웠습니다. 이 시간에는 교리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 문제를 봅시다. 한분, 한분 여기 모인 사람들이 자 예수 믿고 선한일 하면 천국가고 좋은 일 하고 했는데 실제 사람의 경험은 오늘 여기 오실 때 이 시간까지 했던 것이 마음이 편치를 못해요. 다 마음이 괴로워요. 무엇인지 모르게 불안해요. 그건 내가 잘못했다는 죄책감입니다. 사람은 영원히 그런 미완성품입니다. 아무리 선해도 만족할 수가 없어요. 사람 영혼은 영원히 크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아무리 선한일 했다 해도 만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소망입니다. 만일 선한일 했다고 안심하고 만족하다면 그는 썩은 물이요. 교만한 영혼이요. 저주받은 영혼입니다. 그러면 이런 장성이 그쳤다고 하겠어요. 장성이 그쳐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만 병이 들지 않아요? 교만 병이 들고 그러니까 아무리 선한일 하고 선한일 혼자 다 했다 해도 영혼이 건재하다면 괴롭습니다. 자기는 죄 뿐이에요. 자기는 허물뿐입니다. 잘못뿐입니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 떠주면 내가 결단코 상을 주시마고 하신 주님 여기 오시기 전에 찬물 누구 떠주고 왔다하더라도 그 양심이 괴로워요. 왜 나는 사랑으로 못 떠 주고 귀찮은 마음으로 귀찮은 마음으로 그냥 의무적으로 부득이해서 떠주고 왔는가? 양심이 괴로워요. 때가 묻었어요. 그래서 그렇습니다. 자 보십시오. 그렇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던 왕통을 보십시오. 다윗의  왕통 사울이 왕을 입고 하나님 앞에 꾸중을 들었지요? 다윗도 왕을 해먹고 말년 죄가 괴로웠습니다. 시편에 보면 절절이 노래입니다. 자기 서러움을 노래한 것은 죄에요. 시편 50편 51편 보면 울지 않습니까? 대성통곡을 하고 그러면 가장 축복을 많이 받았다는 왕인 솔로몬을 보세요. 말년에 노망이 들고 얼마나 실수를 많이 하고 죄를 짓습니까? 다윗의 가문에 왕이 되었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에 죄 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시면 사울 다윗 솔로몬 왕통의 죄를 용서해 주마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또 선민 이스라엘 민족이 택함을 받았지만 아브라함이 왜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무엇이 그렇게 선합니까? 사람들을 많이 죽이고 전쟁을 많이 하고 죄 뿐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이 왕통과 선민의 죄를 내가 씻어주마 샘물이 터져 씻어주마. 그 고작 약속에 대한 축복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약속이 없다면 누가 나를 선했다고 안심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 말씀입니다. 그런 뜻으로 선도 못해보고 예수 안 믿었다면 죄도 없고 번민도 없어요. 그러나 선택을 받았던지 자기가 왕위를 얻었던지 선한일 하다보면 나이만 많아지고 죄만 많아져요. 허물만 쳐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예수 믿고 하늘나라 가자고 예수 믿고 하다 보니 내 신세는 죄만 터지니 내 신세는 어떻게 되느냐? 그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해결이 있지 않습니까? 해결 그날이 오면 샘이 터져 다윗가문과 예루살렘 성민들의 때를 씻어 주리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아까 보시니까 그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지요? 그 약속을 예수님께서 완성하고 계시는 장면을 봤습니다. 자 그러면 보십시다. 우리 우리차례 우리의 희망 성경말씀이 관련되지 않지만 제가 뜻을 말씀하기 위해서 인용합니다. 누가복음에서 마르다와 마리아 10장 38절 이하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책을 보시기보다 제가 읽을 때 들으십시오. 마르다와 마리아 예수 일행이 여행하다가 어떤 마을에 들렸는데 마르다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예수를 모셔 들였다. 그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던 마르다는 예수께 와서 주님 제 동생이 저의(끊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을 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것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이런 말씀을 했어요. 자 오늘밤에 이 시간을 기념하기 위해 따라 읽으십시오. ‘마르다, 마르다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사랑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인류에게 꼭 필요한 것은 한 가지 사랑뿐입니다. 그것뿐이에요. 뭐 돈이 좋네. 무엇이 좋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사막 같지 않아요. 자 보십시오. 그러면 예수님과 이 마리아의 사이에 이번에 제가 죄를 얻은 것을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두 사람 사이가 어떤 것인가? 해와 달 같지요. 한분은 해이고 한분은 달입니다. 예수님은 해와 같으시고 마리아는 달과 같으십니다. 달에는 빛이 없습니다. 햇빛을 반사하면 달과 해와 똑같은 둥근 빛을 발합니다. 마리아는 본래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태양이신 예수님께 이렇게 둘이 앉아있어요. 예수님께서 사랑을 비춰주실 때 마리아의 가슴에는 달같이 사랑이 빛났습니다. 그 예수님을 쳐다본다는 것 관상 생활한다는 것이 그겁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쳐다보고 앉아있듯이 앉아있는 것이 관상입니다. 아무생각 안하고 사랑스러운 예수님을 쳐다보고 앉아있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아무 능력이 없고 예수님의 보혈이 샘 같은 사랑이 그 뜨거운 사랑이 달을 비춰요. 마리아를 비추기 때문에 마리아는 저절로 성스러워져요. 빛이나요. 후광이나요. 그런데 이번에요. 젊은 사람들 그 책 보셨어요? 지금 이 해인 수녀님이 시를 써가지고 인기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 시에 지금 3집인가 4집에 민들레의 연가라는 제목을 제가 봤어요. 여기 나오기 전에, 민들레의 사랑의 노래 민들레 꽃 민들레꽃이지요. 그 사연을 읽어 보니까 참 마음이 더 동감이 됩디다. 개성이 강해가지고 수녀생활 하다가 번민이 커요. 세상에 대한 여러 가지 번민이 많으니까 자기 장상에게 웃어른께 나 집에 갔다 오련다 고 그것참 말도 안 되는 말을 수녀가 어떻게 집에 갔다 와요. 그러니까 너무 마음이 괴로우니까 저는 아무래도 세속에 한번 갔다 와야 할 모양입니다. 그렇게 품했더니 눈에서 불이 나도록 꾸중을 했다는 거예요. 윗사람이 정신없는 소리한다고 수녀가 어떻게 집으로 가냐고 꾸중만 듣고 참 괴로운 마음으로 그 수녀원이 바닷가에 있었습니다. 그래 인제 바닷가에 있는 돌산을 거닐어요. 봄인데 꾸중을 들었으니까 얼마나 가슴이 괴롭겠습니까?  가고 싶은 집도 갈수가 없고 갈등, 영혼의 갈등 아닙니까?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바닷가를 이렇게 서성대는데 돌만 있는 돌 틈바구니 속에 민들레가 하나 피어서 꽃이 피었다는 거야. 노랗게 그건 기적 같은 꽃입니다. 거기 어떻게 민들레꽃이 떨어져가지고 꽃이 피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 퍽 주저앉았어요. 그 꽃을 보고 민들레가 시인은 음성을 듣습니다. 민들레꽃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요. 그것이 시인이지요. 수녀, 수녀 어쩌면 그렇게 마음 아파하시냐고 나 좀 보라고 나는 친구도 없이 이 바닷가에 이 북풍 차가운 바다바람을 혼자 쐬고 이렇게 모질게 봄에 커서 꽃을 피우지 않느냐고 나는 해님만 나를 비춰준다면 이 돌 틈사이 속에 아무도 없는 나 홀로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데 꽃이 그런다는 거예요. 나 민들레는 친구도 없이 이렇게 외로운 바닷가에 피어서 해님만 나를 내려 비춰준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쉬운 것도 없고 행복합니다. 그런데 수녀는 무엇이 부족해서 불평이냐고 그렇게 민들레가 자꾸 말을 해요. 그래 주저앉아 가지고 아이고 그냥 그 말에 감심을 하고 그 민들레의 설교에 자기가 굴복되어 가지고 수녀원 원장님 선생님의 말은 자기 마음에 안 들어와도 민들레의 음성은 자기 가슴을 찔렀어요. 그래서 민들레가 항복을 받아요. 수녀를 아 나도 민들레 당신처럼 고요히 이 수녀원에서 잘 살겠다고 마음을 잡았답니다. 그리고 그분은 시인이니까 시를 멋지게 썼습니다만 시야 뭐 그런 정신 아니겠습니까? 무엇이라고 썼는가 하니 해는 민들레를 비춰줬고 민들레는 태양만 쳐다봄으로 행복했다. 그렇게 글을 썼습디다. 그것이 수녀 생활이지요. 예수님만 사랑하겠다고 수녀 되었으면 예수님만 쳐다봐야지 무엇을 쳐다봐요? 옆에 것을 봐야 쓰겠습니까? 그런데 그 말씀이 영감을 주었어요. 저에게 아 우리 앞길이다. 우리의 공동체의 어떤 소망 희망이다. 보십시오. 그 상징적인 그분의 깨달음은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와 똑같은 비교적인 교훈입니다. 예수님은 태양 같으시고 마리아는 민들레와 같으십니다. 한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여러 나라에서 왕 중 왕이 될 것이고 한분은 영원이 유리하는 별이요. 참 떠내려가는 꽃 한 송이이고 이름 없는 꽃 아니겠습니까? 피조물이거든. 예수님이 사랑 안 해주면 영원히 불행한 여자야. 아무 쓸모없는 여자거든. 죄만 많이 지었고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그날부터 행복해 누구보다 제일 행복해요. 그런데 죄가 제일 많아요. 그 점이 우리에게 희망을 줘요. 그 민들레가 유명한 사람이랄지 마리아가 유명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 축에 못 들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사랑한 마리아야말로 평범한 죄녀요, 뭐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야. 또 수녀가 발견한 민들레는 길가에 핀 이름 없는 꽃이거든요. 그런데 꽃이 수녀의 마음을 회개 시킬지 누가 알아요? 그 이름 없는 꽃 한 송이가 고집 많은 수녀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집어가지고 마음을 편케 해줬어요. 그러면 이 이름 없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가슴을 울려요.

 

 

 이 기사는 누구든지 한번 씁니다. 뭐라고 썼는가 하니 이 땅위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사랑을 호소했어요. 땅위에 와서, 나 좀 사랑해다오. 그런데 다 예수님을 몰라봤어요. 그런데 마리아만이 예수님이 불쌍한 줄 알고 사랑해 줬다고 그래, 배고프면 이 집에 가서 밥 얻어먹거든, 마리아는 예수님을 친구같이 사랑했어요. 높은 하나님의 아들로 사랑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마음이 괴로울 때는 위로받기 위해서 마리아를 찾아갔다.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를 도와주러 간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도 몸을 입었으니까 괴롭고 번민이 많아요. 슬프기도 하고 외롭고 배가 고파요. 그러니까 가장 부끄럽고 어디 가서 말 못 할 때는 마리아를 찾아가요. 마리아한테는 못 할 말이 없어요. 부끄러운 말이 없어요. 왜 사랑하니까요, 사랑하는 데는 죄가 없어요. 허물이 없어요. 사랑하는 데는 아무 흠이 안 잡혀요. 그러니까 다른데 가서 예수가 말하면 흉이 잡히지만 마리아를 찾아가서 말하면 속에 말 다해도 아무 험이 없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땅위에서 하룻밤 쉬어갈 곳은 마리아의 집뿐이었다. 그렇게 설명하거든요. 옛날 학자들이 성령 받은 다음에야 어디를 가든 다 환영하지만 그 당대 살아계실 때 예수님이 육신 갖고 계실 때는 마리아의 집을 찾아가서만 속에 있는 말씀도 이야기 하시고 십자가도 이야기 하시고 죽음도 이야기 하시고 부활도 이야기 했답니다. 다른데 가면 그 이야기 못해요. 오해하니까 죽지 말라고만 하고 이해를 안 해줘요. 그러면 예수님이 인류를 쳐다봤을 때 이스라엘 민족을 쳐다봤을 때 마리아 여자 하나를 찾아갔을 때 얼마나 슬프냐? 그 점입니다. 이거 실제적인 문제에요. 이 똑똑한 사람 많이 있는데 유대 나라에 헤롯 임금도 있고 장관도 있고 똑똑한 부자도 있고 아가씨도 있고 처녀도 있고 많은데, 마리아는 소문난 여자야. 막달라로 여행 나갔다가 돌아왔거든. 그러니까 막달라 여자 막달라 여자 항상 그러는데 그렇게 이름 없는 여자를 찾아갈 때 아 이 여자가 인류를 구원시키는데 도움이 되려는가? 의심을 안 해요. 인류를 구원하는 데는 이 이름 없는 막달라 마리아는 능히 내 일을 완성해 줄 다시 말하면 조수다. 후보자다. 제자다. 믿고 찾아갔다. 그걸 우리가 받아들여야겠다는 것입니다. 이 요 공동체도 앞을 내다봐요. 원장님도 나이가 많으시지요. 어떻게 하겠소? 자 누가 그러면 계승 하냐? 이 집에서 누가 일을 다 하냐? 똑똑한 사람이냐? 얌전한 사람이냐? 그렇지 않아요. 예수님과 똑같아 여기서 이름도 없고 성도 없고 꿈도 못 꾸는 사람인지 몰라요.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가지고 원장님의 대리로 이 일을 전부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걸 믿습니다. 그걸 지금 믿고 여기올 때 왔어요. 산에서 현재 똑똑한 사람 누가, 누가 원장님 가신 다음에 이것을 계승해서 일을 잘 할 것이다. 그것이 아니야. 지금 보기에 똥도 못 가리고 말도 못하고 병자고 그러지만 하나님이 예수님이 그 사람을 사랑했을 때 무명한 그 환자 한사람을 일으켜가지고 이 많은 자선사업도 다 능히 어거하고 다 구할 수 있는 영적 지도자를 주실 수 있다. 막달라 마리아를 찾아가지고 예수님이 인류에 희망을 주고 모든 죄인들을 구원시키는데 앞잡이가 되게 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것이 지금 제가 여기 찾아올 때 총 희망입니다. 이 희망은 다 남고 싶어요. 자 보세요. 구체적으로, 한나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 대전에 정신 요양소에 우리 집에 와서 계십시오. 해서 한 달인가 사신 적이 있어요. 거기서 계시고 돌아오셔서 일러준 말씀을 제가 들었어요. 무슨 말인고 하니, 그때 거기 정신 요양소가 사람이 한 400이나 되었다고 300 되었는데 그 기둥이 누구냐? 그 여자 원장도 있고 남편도 일을 도와줬지만 남편이 안도와 줬을 때 수 백 명의 그분을 누가 어떻게 통솔하고 사냐하면 그 대전에서 길가에서 몇  십년 전에 길가에서 어떤 처녀 미쳐가지고 돌아다닐 때 하도 불쌍해서 산 밑에 데려다놓고 밥을 얻어다 먹고 같이 살았답니다. 가정에서는 싫어하니까 굴 파고 살 때 얼마나 그 아줌마가 머리카락을 뜯어 버렸는지요? 몇 번 이 머리가 다 빠졌다고 그래요. 그 처녀를 도와주고 밥 얻어먹고 살 때 그 똥 못 가리고 머리카락 뜯어 버리고 어쩌고 물어뜯고 그래도 그 어쩐 일인지 그 처녀가 불쌍해서 그 사람하고 살다보니 나아졌답니다. 그분이 나았어요. 나앗는데 300명이 될 때 그 식당 책임자가 그 사람이야. 길가에서 그 어머니 머리카락 뜯어 버리고 물어뜯고 똥 누고 막 발로 차버리고 그러던 사람이 은혜를 받아가지고 300명 400명 그 많은 사람들의 밥을 그 자매가 총 책임자가 되어가지고 그렇게 사랑하는 부모형제같이 밥을 먹이고 통솔하고 살더라고 그 말씀을 합디다. 그것이지요. 그거에요. 

 

 

하나님의 종이 어디서 옵니까? 하늘에서 떨어집니까? 지극히 땅위에서 버린다고 몹쓸 사람을 택해가지고 가장 귀한 사람을 만들지 않습니까? 막달라 마리아를 봐서라도 그래 희망이 있어요. 각 반의 보모들은 데리고 있는 어린 애기들이나 그 정신 병든 자매들 가운데 똥오줌을 못 가려도 사랑으로 감싸고 똥오줌을 가리고 그 병이 낫고 참 예수님의 보혈이 강같이 터질 때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주고 그 사람의 병을 고쳐줬을 때 그 가슴에서 예수님의 보혈이 터진다면 예수님의 그 샘물이 터진다면 사랑의 샘물이 터질 수만 있다면 능히 그 사람의 하는 일을 막대기같이 쓰시거든요. 그러면 모든 사람을 보호하고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인재를 하나님이 보내줄 수 있다. 그겁니다. 그것이 믿음이에요. 믿음 또 고 원장님이 광주 계실 때 저하고 건모형제하고 정신 환자들이 하도 찾아오니까 연구해보라고 부산을 보내줘서 제가 다녀왔어요. 그 구원성 거기도 정신 요양소인데 거기 원장이 부인이에요. 그때 40대 부인인데 그분 말씀 들어보니까 이 일을 내가 한답니까? 저 애들이 합니다. 저 애들이 한다고 그 병 나은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이 다 그일 맡아 한다고 그래요. 어떻게 했는가 하니 옛날에 걸인들하고 살 때 산비탈입니다. 일본사람들 공동묘지를 깎아가지고 집을 지었는데 자동차 길이 없어요. 그냥 걸어서 산길로 쭉 올라옵니다. 그래 밥만 먹으면 식구들이 깡통에다가 모래를 날라서 그렇게 지었다고 집을 지었습디다. 차가 안 들어오는 곳입니다. 산꼭대기라서 눈물과 지성과 그렇게 집을 지었다고 그런데 거기 사시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십디다. 정신이 약한 자매를 데리고 사는데 옷이라는 옷은 주면 다 찢어 버린다고 이불을 줘도 찢어버리고 옷을 줘도 찢어버리고 한 번도 왜 찢어 버리느냐? 그 말 안했다고 그래요. 아이고, 내 딸아 추운데 옷 찢어 버렸냐하고 쓰다듬어주고 사랑만 했지, 왜 옷 찢어 버렸냐하고 꾸지람 안했다고 그래요. 왜 이걸 찢어버렸냐? 그 말 안 했답니다. 그래서 한 채, 두 채, 세 채, 이불 있는 것 다 줘버리고 옷 다줘버리고 아이고 추운데 어찌 살라고 옷 찢어 버리느냐? 그러지, 왜 찢어버렸냐? 꾸중 안했다고 그랬더니 나중에는 턱턱 울면서 어머니 내가 이불 안 찢어 버리렵니다. 하고 막 울고 회개하더라고 그 사람이 나아가지고 그 일 다 본다고 그래요. 그 모든 일 본다고, 또 한 자매는 나이도 젊은것이 밥만 먹으면 꾀를 벗고 똥을 누는데 밥만 주면 밥그릇에 똥을 눠, 오줌도 싸고 어떻게 심사를 부리는지 한 번도 꾸지람 안했다고 그래요. 아 사랑하는 내 딸아 그러고 밥그릇을 갖다가 깨끗이 씻어서 밥 주고, 밥 주고 보는데서 똥 누면 딱 씻어서 밥 주고, 자꾸 그렇게 몇 달 했더니 퍽퍽 울더라고 그래요. 엄마 나 밥그릇에 똥 안 누렵니다. 그 사람이 감화 받아가지고 예수 믿고 그 일을 본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문제는 그래요. 사랑이 만능이지요. 사랑이 만능이야. 사랑이 용서야. 열 번이고 백번이고 밥그릇에 똥 눠도 용서해야해. 그것이 사랑이야. 그것이 보혈이에요. 용서할 때 엄마는 피가 말라지지 않아요. 돈도 없는데 어디서 이불을 사와요? 먹을 것도 없는데 어디서 쌀을 사와요? 그러니까 얻어다 먹을 지언 정 끝까지 사랑하고 용서한 것이에요. 그래 그 가슴에서 아픈 사람 가슴에서 생수가 터진 거예요. 사랑의 강이 터져요. 그러니까 수백 명 밥을 하라고 해도 피곤하지 않아요. 저 엄마가 나를 이렇게 살려줬다. 예수님이 나를 용서했다는 감격이 그냥 강같이 가슴에 흐르기 때문에 그 많은 자기 친구들 다 밥해주고 옷 빨아주고 피곤하지 않다. 그 말씀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공부를 많이 하고 박사가 되고 신학을 하고 그것이 일꾼이 되는 것 아니고 사랑이 사랑을 낳는다. 보혈이 사랑을 낳아요. 인격을 낳고 역시 그렇구나 싶습디다. 그래서 아까 말한 대로 희망은 그겁니다. 해와 민들레 이야기 해는 민들레를 비췄고 민들레는 해를 쳐다보고 해도 행복하고 민들레도 행복했다. 그런 상징적인 이야기인데 예수님이 인류가 수억이지만 다 찾아가봐야 기대가 안 돼. 땅위에서 버림받고 울고 있는 베다니 마리아를 찾아가서 희망을 거는 거예요. 이 사람에게 내가 비춰주면 빛을 비춰주면 달과 같이 비출 것이다. 그래 마리아의 가슴에 달빛이 오늘날 까지 우리 가슴에 비춰주지 않습니까? 희망, 마리아가 깨끗하고 본래 유명한 여자라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어요. 오빠는 병신이고 나사로고 마르다는 과부 언니고 자기는 돈 벌러 막달라에 돈 벌러 갔다고 흉봐쌓고 손가락질 당하고 그런 여자 아닙니까? 성녀시지요. 성녀, 햇빛을 받은 달은 빛을 발하듯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죄녀는 성녀가 되요. 깨끗해져, 사랑하면 용서가 되지요. 용서하면 깨끗해요. 성녀가 따로 없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용서해주면 성녀가 되요. 누가 예수님께서 용서해주면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날이 오면 샘이 터져 사랑의 강이 터져 예수님의 피가 터져서 다윗 가문과 예루살렘 선민들의 죄와 때를 씻어 주리라. 그 예언이 예수님 대에서 마리아에게서 응해지지 않아요? 구체적으로 오늘날 우리 사이에도 이 시간에도 그래요. 우리 처지가 민들레만큼 딱하게만 되었다면 자랑할 것도 없고 혼자 신세가 되었다면 예수님을 쳐다봐요. 자기는 행복하지요. 행복하지 않아요? 그런 그 상징적은 땅위에서 제일  잘 그린 그림 그림하나 있다지요. 어느 죄녀가 그것도 하필이면 남자아니고 죄녀에요. 죄녀가 얼마나 죄가 많이 있었던지 이 발목에다 쇠 착고를 채워놨어요. 어디다가 그 말뚝을 박아놨냐 하면 지구에다 말뚝을 박아놨어. 영원히 지구에서 벗어나지를 못해. 쇠로 착고를 채워놨어요. 그런데 비가 오나 눈이오나 비를 맞고 사는데 그렇게 앉아있는데 그 사람이 사랑하던 거문고가 비가 맞으니까 줄이 썩어서 다 떨어졌어. 하나 그 쇠줄 하나가 있는가요. 거문고 쇠줄 없지요. 외국 무엇은 쇠줄 있습디다. 기타 같은 것 그것만 안 썩어서 안 떨어졌어. 열두 줄은 다 떨어지고 하나만 선이 남았는데 그것만 이렇게 퉁기면서 눈물 흘리면서 올려본다지 않아요? 곡은 아니야. 다 줄이 떨어지고 줄이 하나만 이렇게 붙잡고 퉁기면서 찬송을 부르고 희망을 품고 있는 그림을 누가 그렸다고 그러는데 그러니까 다윗의 신앙은 다 떨어졌어도 몸은 아프지 건강도 물러가지 나이도 먹었지 자식도 없지 고향도 없지 아무것도 없고 병들어서 몸 하나 채였다고 합시다. 그러면 세상은 길이 다 끊어졌지만 예수님의 보혈은 남아있다는 그 말입니다. 내가 죽으면 예수님께서 나를 죄를 씻어 주시고 나를 하늘나라로 맞이한다. 나는 부활할 수 있다. 하는 내 죄를 씻어 주시고 나는 성녀가 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은 한 가닥 있지 않냐? 그런 그림이라 합디다. 참 잘 그렸다고 그래요. 그 그림을 그러니까 지금은 건강하시고 지금 출세한 사람은 무엇이 아쉽습니까? 아무 아쉬운 것이 없어요. 그러나 그렇게 어떠한 사람은 어느 날이 그 날이 오거든요. 모든 희망이 다 무너지고 꼭 하나님의 사랑 한 가닥만 남았을 때는 그렇게 희망이 있다. 그 말씀입니다. 소망이 있어요. 그렇게 생각을 해봤다. 그 말씀입니다.

 

 

 그러면 제가 잊지 않기 위해서 민들레 이야기를 한 겁니다. 그러면 민들레 이야기를 인제 그걸 동냥을 더 들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민들레 아느냐고 물어봤어요. 어느 자매가 수녀원에 가서 서원하고 수녀가 되었답니다. 아버지가 70이 넘으셨는데 이제 아버지가 세상 떠날 날이 가까워요. 수녀원에 갔으면 보장이 안 되지 않아요? 일생을 수녀로 성공하려는지 모르니까 불렀어요. 세상 떠나시기 전에 불러가지고 유언이지요. 내 딸아 내 이야기를 들어보아라. 500년 전에 민씨, 민 씨 집안에 된 일이다. 그때 500년 전에 중국, 중국 세력이 가장 크지 않습니까? 이 한국이 이조시대 같으면 속국 속국이 아니지만 그 중국세력에 억눌려 버렸어요. 그러니까 신라시대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어느 시대인지 몰라도 그때 상황이 중국 임금이 한국 임금에게 후궁을 한사람 추천해 보내라. 그것도 일종의 세력이 약하니까 그렇게 기가 막힌 서러움을 당했지요. 그래 한국 조정에서는 중국 임금의 후궁을 하나 선발하는데 전부 재상의 딸 가운데서 후보자를 내야해요. 양반 집안에서 그러면 각 재상들이 자기 딸을 다 후보자를 내보내는데 중국 사신이 실제 남의 집 딸을 볼 수는 없어요. 여기고 국가이고 나라고 재상의 장관의 딸들을 함부로 보겠습니까? 그러니까 각각 자기 딸을 초상화를 그려오시오. 그랬다는 겁니다. 그때, 그림을 보고 선발할 양으로 그래 사신이 와서 기다리는데 그걸 상식으로 생각해 봐요. 내 딸을 어여쁘니 데려가시오. 그럴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까 그 화상을 불러오는데 그림 그리는 사람을 불러올 때 자꾸 사정해요. 우리 딸 밉게 그려주시오. 우리 딸 밉게 그려주시오. 자기 딸 선발 안 되기 위해서 그러니까 집집마다 자기 딸을 근사하게 그리되 코가 쑥 나온다던지 눈이 삐죽하다든지 보기 싫게 그렸거든요. 그러니까 그려준 사람이야 돈 받고 그리니까 소원대로 그려줬지요. 그런데 민 씨는 옛날에 장관이야. 지금 장관이 아니야. 은퇴한 장관이신데 이분은 덕망이 높아요. 아주 덕이 높고 참 임금님 다음가는 존경을 받던 재상이신데 일찍 어머니가 죽고 딸 하나있어요. 그러니까 아버지하고 딸하고 둘이 사는데 그 재상 딸만은 선발이 안 되기 위해서 그 화공이 그림 그리는 사람이 돈 안 받고 그 민 장관 민 재상을 너무 존경한 나머지 그 딸만은 선택 안 되게 하기 위해서 눈도 뱁새같이 코도 쥐같이 아주 나쁘게 그렸어요. 이 딸만은 선발 안 되게 하겠다고 자기가 그린 사람 가운데 제일 못나게 그려서 가지고 왔어요. 그런데 참 어떻게 된 일인고하니 중국에서 화상을 보고는 제일 못 그린 것 그 상을 탁 골라가지고 이 사람으로 선택한다. 이래버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사신이 혼자오지 않거든. 영리한 서기관들이 충고를 해요. 안 됩니다. 이 화상가운데 어여쁜 처녀들이 많은데 왜 이렇게 못난 처녀를 택하십니까? 이 사람만은 택하면 안 된다고 반대가 일어나요. 자기들끼리 그러니까 그 대표 사신이 아주 지각이 있어요. 겸손한 사람은 자기가 어여쁠수록 추하게 자기를 그려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이 처녀가 제일 겸손한가 보다. 자기가 어여쁘고 겸손하고 덕이 높으니까 자기 얼굴을 이렇게 추하게 그려달라고 부탁한 것 같으니 이 사람을 데려오라. 그러더래요. 데려다보니 그 민 씨 딸인데 달이 뜬것보다 더 예뻐요. 거봐라. 거봐라. 이 처녀가 겸손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나쁘게 그린 것이다. 그러고는 가마를 태우고 요동성을 돌아서 중국으로 갔어요. 그런데 슬프게도 이 민 씨 처녀는 약혼자가 있어요. 남자가 그러나 국법이고 중국의 세력에 억눌려 가지고 별수 없어요. 그래서 아버지도 울고 딸도 울고 그 존경한 다른 신하들도 울고 울면서 이별하지요. 그것이 영광이 아니야. 중국 임금의 후궁이 된다는 것이 영광이 아니고 수치이고 부끄러운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다른 처녀들 아끼기 위해서 자기가 대신 죽어가는 것 자기가 희생하고 가는 겁니다. 

 

 

덕이 높은 처녀인데 보십시오. 아버지보고 아버지 제게 소원이 있습니다. 무엇이 소원이냐? 대추 한말 한국 샘에서 나는 정화수 한말 모래 한말을 싸주시오. 아 그거 왜 그것을 못해주겠냐? 해서 한국을 떠날 때 한국 대추 한말 물 한말 모래 한말을 싣고 가요. 그리고 인제 중국을 들어갔으니 얼마나 큰 잔치가 일어나지 않아요? 후궁이 왔다고 아 큰 잔치를 며칠을 하고 임금님이 후궁 집을 오셔서 첫 날밤이지요. 그러니까 중국 한국서 간 민 씨 처녀가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셔 저는 어머니 상을 받았습니다. 우리 한국 규례는 아버님이나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삼년상 삼년은 처자가 있더라도 가까이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 상이 3년이 다 가고 백일이 남았습니다. 그러니까 백일만 저를 어머니 상을 채우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니까 그 임금이 아주 덕이 높아 이렇게 어여쁜 후궁께서 원하신다면 내가 왜 허락을 못하겠냐고 그리고 백일을 삼가고 나와 버렸어. 임금이 백일 동안을 자기가 이렇게 홀로 사는 거지요. 자기 몸종을 데리고 갔어요. 백일동안 대추를 한 알씩 먹어요. 아 대추를 먹지 않아 모래를 가던 날 시종 자기 시녀를 시켜가지고 내가 밟을 수 있는 이 뜰에다가 뿌려라. 뿌리니까 한국 땅이 되어버려. 한국 모래를 뿌려버리니까 중국 땅이 아니야. 그러니까 자기는 중국 땅이 아니고 한국 땅에 사는 거예요. 그리고 한국에서 싣고 간 정화수 한 방울 한 방울씩 마셔요. 그것이 자기 생명수야. 그것 떨어지면 안 먹고 죽을 작정이야. 그 대추를 며칠 먹었더니 떨어져 버렸어요. 그러니까 아무리 그렇게 좋은 음식 천하에 없는 좋은 음식 차려줘도 중국 음식이 아직 안 맞으니까 다음에 먹겠다고 사양하고 안 먹어요. 그러니까 백일동안 물도 떨어졌지 대추 떨어졌지요. 그러니까 그 시녀가 자기 아가씨를 살려볼 양으로 중국 대추를 사다가 몰래 드렸어요. 맛을 보더니 알아요. 막 꾸지람을 해요. 내가 안 죽으려고 대추를 먹겠니? 내 고향 내 땅 대추가 떨어졌는데 왜 남의 나라 대추를 네가 나를 주냐? 하고 막 꾸지람을 하고 경계 했지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랬대요. 그러니까 대추 한말을 가지고 백일 먹었으면 피가 말랐겠지요. 백일이 되어서 그 임금님이 와봤어요. 후궁 집을, 벌써 임종 했어요. 피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요? 물도 안 먹고 백일동안 먹을 것도 없고 한 백일 굶으면 죽어요. 아무리 건강해도 그때 그 임금이 정신이 나요. 아 내가 권리를 가지고 남용했구나 하고 막 울어요. 회개를 해요. 절대 이런 권리를 내가 부려서는 안 되겠다. 사랑은 돈 주고 못 빼앗겠구나. 나는 절대 이 중국 사람으로서 자기가 한국 처녀를 내가 욕심내지 않겠다하고 그 후에는 그것을 회개했어요. 그 임금이 그랬답니다. 그런데 그 마당에 그 시녀가 한국에 돌아와야 하지 않아요? 마당에다 무덤을 묻었는데 무덤에서 무엇이 올라와요. 풀이 그 시녀가 몇 달을 중국에 머물렀는지 몰라도 한국 오도록 머물렀지 않아요? 거기서 일 년을 머물렀는지 봄이 돌아왔겠지요? 봄, 무덤에서 봄에 꽃이 피었는데 민들레에요. 민들레, 그런데 그 아가씨 이름이 들레야. 성은 민 씨이고 꿈에 그 아가씨가 나타나서 그 꽃을 캐다가 아버지한테 드려라. 그랬어요. 꿈에 그러니까 꽃이 죽은 사람의 넋이지요. 민들레의 넋이야. 본래는 성도 이름도 없는 꽃인데 그러니까 민들레의 무덤에 핀 꽃을 캐다가 아버지를 드렸어요. 고향에 한국에 와서 아버지가 그 꽃을 심어놓고 위로를 받아요. 너는 죽었지만 꽃이 되어 왔구나. 바로 네가 민들레다 성은 민 씨고 이름은 들레라니까 그 꽃씨가 막 날아가요. 사방에, 한국으로 바닷가로 광주 날아오지요. 뒷산에 그래가지고 꽃만 피면 익으면 너울을 쓰고 날지 않아요? 막 그러니까 그 민들레의 넋이 날아간다. 자꾸 이렇게 자기 정신 얼마나 절개 깊은 처녀입니까? 그 아버지가 70먹은 아버지가 수녀 된 딸한테 그 이야기를 했어요. 

 

 

아버지가 이번에 돌아가셨어요. 이번에 와서 그 이야기를 해요. 아버지가 죽기 전에 그 이야기 나한테 해주시더니 아버지 먼저 가셨는데 그 이야기는 자기한테 한 송이 민들레로 있다고 그런데 그 민들레가 아까 이 해인 수녀님이 써있다고  민들레가 수녀님 내말 들어봐요. 나는 이 바닷가에 홀로 피었어도 만족하고 행복한데 해님만 나를 비춰준다면 나는 행복한데 예수 사랑하는 사람이 그 모양이냐고 아이고 부끄러워. 나도 너와같이 살겠다. 다시는 옷 벗지 않고 수녀로 살겠다. 그러고 민들레하고 둘이 서원했다고 상징적이에요. 자 보십시오. 그러니까 사랑은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를 사랑했다는 것이 해가 민들레를 비췄다는 것과 같아요. 또 마리아가 예수를 사랑했다는 것은 민들레가 해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과 똑 같다면 예수님 쪽에서도 그래요. 사람이 많고 많지만 그렇게 죄가 많이 있고 버림받은 사람을 예수님이 사랑해줘요. 실상은 선한 사람은 예수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자기 선으로 멋지게 살지 예수님도 참 불쌍한 사람이에요. 지금도 모든 인류가 사랑에 자유야. 하나님은 모든 것을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사람에게 허락된 자유의지의 사랑만은 어쩔 수 없어요. 죄인 쪽에서 사랑을 받으시거든. 진심으로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자기 앞길이 콱 막히고 죄가 많이 있어가지고 벌벌 떠는 사람이 아니고 누가 예수님을 사랑하겠습니까? 그런 뜻으로 예수님과 마리아의 사이에는 전부라. 마리아 한사람이 예수를 사랑했다는 것도 인류를 대표해서 전부이지만 가장 약한 여자를 예수님은 기대했다. 우리들도 아이고 어떻게 살아, 일은 많고 손발도 없고 그런데 내가 데리고 산 제일로 불쌍한 아픈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마리아야. 자기가 예수 같이 생각한다면 자기가 지도자라면 기도할 사람은 제일로 어린 사람 제일로 버림받은 사람 그 사람에게 사랑을 주고 용서하고 뜨겁게 예수의 보혈이 터지는 때 보혈이 거기서 잠길 때 기적이 일어나요. 거기서 기적이, 사랑의 기적 거기가 천국이 되어요. 바로 거기에 예수님이 계세요. 그러니까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의 피로다. 그 말은 이 가사가 이 말이 과장된 글이 아니더라. 그 말씀입니다. 이 가사를 지어가지고 노래를 부른 분이 그 감동으로 불렀겠지요. 이 샘물과 같은 보혈을 다시 한 번 불러봅시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속함을 얻은 백성은 영생을 얻겠네.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한없이 있도다. 
한없이 있도다. 한없이 있도다.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한없이 있도다. 
날 정케 하신 피 보니 그 사랑 한 없네. 살 동안 받은 사랑을 늘 찬송 하겠네. 
늘 찬송 하겠네. 늘 찬송 하겠네. 날 살 동안 받은 사랑을 늘 찬송 하겠네. 
이 후에 천국 올라가 저 높은 노래로 날 구속하신 은혜를 늘 찬송 하겠네. 
 요한복음 15장 9절 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왔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11절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다 알려주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아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실 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  

 


 제가 여기 나오기 전에 그 이 세종 선생님의 부인 사모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회상했습니다. 그런 말씀은 제가 전하지 않고는 여러분이 책에서 볼 수 없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이 세종 선생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게 된 후 부인은 너무 적적하고 고독해서 재가를 한 두 번 하시고 돌아오신 후에 그 때는 일정 말이에요. 또 신사참배가 아주 박해시절 신사참배 안하면 감옥에 투옥하고 그러던 시절에 이 세종 선생님께서 신사 참배를 하라고 찾아오기 전에 미리 깊은 화학산 속에 은둔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이 남의 집 개가해 계시는 사모님에게 들려왔어요. 이 공님께서 깊은 화학산에 들어가서 초근목피 풀뿌리를 캐서 잡수시고 그것도 캐줄 사람이 없어서 굶어 죽어간다. 그런 소문을 들으셨다. 하십디다요. 생각을 가만히 해보니까 옛날에 내가 그분을 섬기고 가정을 이루었을 때 자기는 백 석궁 그렇게 부자이지만 못 먹는 사람을 생각하시고 밥을 해드리면 안 잡수시기 때문에 쑥을 뜯어서 해주시면 잡수시던 것을 기억하셨답니다. 내가 옛날에 집에 있을 때  그분이 불쌍한 사람을 생각하고 밥을 못 잡수시던 때 내가 먹는 밥 위에 쑥을 얹어드리면 잡수시더라. 생각을 하고 하염없이 이 세종 선생이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고 하십디다. 불쌍하시다. 그러면 내가 가서 쑥을 뜯어서 옛날처럼 해드려야겠다. 그 마음에 사랑이 동하신 다음에 찾아 오셨다고 그러십디다. 밖에서 소문 듣기에는 이 세종 선생님은 예수를 잘 믿었고 부인은 강태공 부인마냥 남편을 버리고 떠났다. 그렇게 다시 말하면 나쁘게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어요. 그러나 그 사모님이 직접 이야기 하신 것을 보면 이 공님이 불쌍해서 굶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랑이 가슴에서 물밀려왔기 때문에 쑥을 뜯어서 해드리기 위해서 다시 돌아오셨다. 그러면 제가 듣기보다 다릅디다. 이 세종 선생님이 사랑이 있으셔서 부인의 죄를 사하신 것도 사실이지만 부인 쪽에서는 이 세종 선생님이 사랑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본인의 가슴에서 사랑이 터져가지고 이 공님이 불쌍하기 때문에 사랑이 북 바쳐서 돌아와서 사랑하신 것이다. 완전히 해석이 달라져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대신 피 흘리시고 대신 죽으시고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 그것도 사실이지만 피조물이고 죄인인 우리 쪽에서는 예수님이 사랑스러워 예수님이 불쌍해서 예수님께 물 한 그릇 떠드리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