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3차 접종 예정일이다. 날씨가 좀 풀렸다. 유난히 입동 무렵 여러날 비가 내렸다. 넝쿨 강낭콩 수확을 마쳤다.
값없이 주시는 선물
1999.02.14. 김준호 선생
그러니까 육이오라는 것은 6월 7월 8월 9월쯤 되면 다시 서울이 수복되지요. 그러니까 9월쯤 모든 산에 단풍이 들 무렵 저는 도구박 골에서 어린 소년들과 같이 있다가 너무 소식이 종적이 없어서 밤중에 선생님이 계신 곳이 어딘가 하면 아시는 분은 아십니다. 소반바위라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도구박 골에서 소반바위까지 갈라면 큰 구렁 소재마을 옆으로 해서 능선을 둘을 넘고 한 십리 더 되어요. 시오리, 산속이니까 깊은 밤중에 거길 들어갔는데 그 굴을 찾다가 못 찾았다는 말이 있는데 확실히 굴이 있다는 거예요. 유화레 여사는 깊은 굴속에 계시고 그 앞에 금남어머니가 보호하고 계시고 정 원장님과 이 선생님이 동굴 밖에 계세요. 비가 안 오는 날은 괜찮아요. 제가 가던 날은 큰 가을비가 옵디다. 비가 아무리 와도 안 들어오세요. 굴속에 들어가야 비를 안 맞지요. 절대 안 들어갔어요. 저는 손님이니까 어떻게 합니까 밖에 굴 밖에 난간에 바위가 바위 밑은 쪼금 비가 덜 와요. 거기 서있었어요. 세 사람이 그래 비를 다 맞고도 큰 굴인데 안 들어가세요. 그만큼 정절하시고 예의 바르시고 참 덕이 높으신 분이지요. 아, 비 온다. 비 피해 들어가지 않았어요. 엄연히 그 두 선교사님과 금남 어머니 두 분이 계시기 때문에 보호하고 계시지, 뭔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밖에서 수호하고 계신 것이고 그렇게 계신 것을 보고 참 엄숙했습니다. 깊은 밤중이 되었는데 종일 굶었지요. 12시 넘으니까 밥을 가지고 하루 한 끼 먹으니까 밤중에 이렇게 먹을 것을 가져오고 식사를 드리고 선교사님과 금남 어머니 두 분만 식사하시면 두 어른은 집으로 가세요. 거기서 한 300미터 올라가면 우리 집이 있지요. 집에 가서 식사를 하시고 그렇게 되었습디다. 제가 간 날은 몇 달 만에 만나는 거니까 정 원장님은 밖에 계시다가 들어가셨으니까 그렇게 머리가 안 길었는데 이 선생님은 몇 달째 이발을 못했기 때문에 머리가 여자같이 뒤로 넘어가고 수염은 입이 안보여요. 바짝 말라가지고 밤중 비를 맞고 서 있다가 그랬어요. ‘선생님 큰 굴을 어제 들어가 보니까 하늘이 안 보입디다. 숲이 꽉 차 있어가지고 물도 있고 머루도 많이 열고요.’ ‘아, 그러느냐’고 ‘거기 갑시다.’ 그래요. 나는 자랑삼아 어제 큰 굴 숙소에 들어갔다는 걸 자랑했는데 ‘지금 갑시다.’ 그래요. 지금 자꾸 수색해 올라온다는 거예요. 비가 오니까 아직 안 올라오니까 지금 떠난다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청년을 이렇게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가지고 급히 떠날 준비를 했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할까 걱정이 태산이지요. 비가 오기 전에는 수백 명이 밑에서 올라오고 있다가 비가 오니까 못 올라오고 있는 거지요. 어떻게 할까? 길이 막막해 진 모양인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마음을 맞춰주셨지요. 밤중에 이동을 한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시는 분은 아십니다. 소반바위 멀리 지나가야 하는데 소반바위 보다는 우무배기라고 거기 집이 세가구가 있는데 집이 두 채는 위에 있고 한 채는 아래 있고 집은 세 채라도 마을속이에요. 문제는 개야, 거기도 개를 키우는데 일행이 7-8명이 몰래 가는데 개가 울면 어떻게 하냐 이거에요. 그 일대에 공산군 유격대 지방 모두 경비하고 있는 지대인데 모두 기도하고 그러니 붙들려도 한사람이 붙들려야 하니까 띄엄띄엄 가요. 선교사님은 미국분이니까 걸어 못가 업어야 해요. 청년 세 사람이 교대해서 업고가고 캄캄한 밤중에 앞이 안보여요. 그럼 제일 뒤에 정 원장님이 제일 뒤에 따라오세요. 이렇게 밤중에 피난 가는 사람은 지혜가 있어야지요. 잿빛 흰 담요 안 되어요. 눈에 뜨이니까 안 되어요. 밤빛 도 안 되고 어찌되었든 잿빛이야. 그런 홑이불을 쓰고 계시거든, 그걸 딱 쓰면 옆에 지나가도 몰라봐요. 밤이 빛이 같으니까, 홑이불하고 그걸 써버리고 가만있으면 안보여요. 정 원장님이 특별히 그 요를 썼어요. 다 앞세우고 제일 뒤에서 호위하고 가시는데 이 하나님의 뜻이 신비하다는 거예요. 아, 저 마을 개가 짖으면 어찌하나? 그게 숙제인데 앞에 간 사람이 있으면 냄새 맡고 뒤에 가는 사람 있으면 냄새 맡고 짖지 않아요. 그게 하나님이 하신 섭리가 개가 딱 짖지 못해. 그런데 제일 뒤에 오신 원장님이 뒤에 오신 걸 냄새를 맡고 따라오는 거예요. 종일 따라와요. 원장님 뒤를 보 포대가 펄럭펄럭하니까 뒤를 따라와 죽 1키로 까지 따라오며 짖지를 않아. 그래 원장님이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세요. 왜 그렇게 짖지를 않느냐? 아 가슴이 막 앞에 있는 사람을 모시고가는 책임자니까 큰일이 나는데 개가 왕왕 짖어버리면 숨어있는 군인들이 총을 놓던지 그런 때거든, 그런데 개가 안 짖어주고 냄새 맡고 그냥 올라갈 때 어떻게 감사한지, 그렇게 가는 길이니까 빨리 갈수 없어요. 앞이 캄캄해 밤에 비 오던 끝이고 그러니까 그럼 쪼금 가고 쪼금가고 잠깐 가 버릴 데를 밤새 간 거예요. 대강 아시는 분 아실 거예요. 소재마을 앞으로 가거든, 마을이 안보여. 거길 빠져 큰길로 들어섰는데 몸이 피곤하고 잠이 막 잠이 쏟아져요. 밤 내 잠을 못 잤으니까 큰골에 큰 바위가 있고 거기가 논이 나옵디다. 가을이고 논이 깨끗해요. 그러니까 잠깐 쉴 수 있어요. 원장님이 총 대장이니까 쉬어갑시다. 모두 앉았지요. 숨 가쁘고 잠이 오니까 5분만 쉬자 그랬는데 다 잠들어 버렸어요. 와, 잠이 무섭데요. 전부 8명인가 9명이 되는데 다 잠들어 버려. 잠을 깨서 보니까 해가 중천에 떠버렸어. 큰일 났어요. 어떻게 하냐? 그거에요. 이왕 그렇게 되었는데 아주 이 선생님은 지혜 만능 이지요. 억지로 가지 말라. 풀을 밞으면 풀이 자빠지면 쫒아오거든. 그러니까 물로 들어서라. 그러세요. 참 지혜가 있으세요. 명령에 복종하느라 물로 들어섰어요. 그러니까 물로 물을 타고 올라가요. 큰 산속으로, 그럼 우리가 올라가는 발자국이 있어요? 없어요? 야 참말로 이 선생님 지혜가 만능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자연그대로 보존하고 올라가요. 물로 그래가지고 깊은 산간 밑에 캄캄한 숲속인데 거기로 들어갔어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늦잠자도 저 사람들이 안 봤다는 겁니다. 봐버렸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럼 왜 거기가 있냐하면 전라남도 도청직원 그러니까 군 직원이 전부 공산군이기 때문에 지리산으로 가기 위해서 화학산으로 집결했어요. 그래 많이 화학산에 있다가 지리산으로 가버리고 이 사람들은 군인이 들어와 딱 막아버리니까 이 사람들이 거기에 남아있어. 그래 소위 말하는 그 사람들 나라에요. 겹겹이 군인이 지키고 있어. 그 소재마을을 소재가 본부거든. 다시 말하면 군수가 계신 곳 이야. 경찰서장이 계시고 그러니까 자기들이 지키고 있던 그 전통 그 사이를 우리가 뚫고 나온 거예요. 밤중에 그래가지고 산속에서 한 일주일 계셨던가? 숲속에서 아무것도 않고 숲속에 숨어계시니 얼마나 뭣합니까? 그래 선생님이 적어주신 이 노래를 끄집어내 가지고 이제 청년들은 다 떠나버리고 다 밖으로 나갔고, 이 선생님은 저기위에 계시고 위에는 유선교사님 계시고 금남 어머니 둘이 계시고 그러니 적은 노래를 읽어 보고 읽어보고 곡이 없지 않습니까? 곡은 멋대로 불러본 거예요. 그냥 콧노래를 불러 이 풀 속이니까 낮에는 숨어있으니까, 유화레여사가 들어보고 나도 배웁시다. 그래요. 옆에 오셔서 그분도 도와주고 작곡이 된 거에요. 조용히 숨어있으려니 얼마나 무료해요? 말도 서로 못하니까 가만 가만 콧노래로 서로 부르다 보니까 곡이 되어버려. 곡이 또 부르고 또 부르고 이 노래는 이 선생님이 그때 심정을 적은 거예요. 그 무렵에 그러니 예수님이 계시다면 날라서라도 주님 앞에 가서 만나야 쓰겠다고 생각했지요. 바다가 있으면 건너가고 헤엄치고 또 하늘 꼭대기 있으면 날라 가서 뵈어야겠다. 주님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참 열렬한 기도지요. 이 선생님의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늘나라에 가겠습니까? 또 이 환란의 죽음의 고개를 어떻게 넘어가겠습니까? 그래 이 선생님이 참 기도하며 지금도 기도하고 계시지요. 다시 부릅시다. ‘주님가신 길이라면’
주님 가신 곳
1. 주님 가신 길이라면 태산준령 험치 않소.
방울방울 땀방울만 보고 따라 가오리다.
(후렴)오주 예수 주님이여 천한 맘에 오시오면
밝히 갈쳐 주옵시기 꿇어 업데 비나이다.
2. 주님가신 길이라면 가시밭도 싫지 않소.
방울방울 피 방울만 보고 따라 가오리다.
3. 주님계신 곳이라면 바다 끝도 멀지 않소.
물결물결 헤엄쳐서 건너가서 뵈오리다.
4. 주님계신 곳이라면 하늘 끝도 높지 않소.
믿음날개 훨훨 쳐서 올라가서 뵈오리다.
이 인쇄물 글을 봅시다. 제목은 친구 약속 믿음. 한 말씀만 우리가 기억하면 되겠어요. 다 기억 안 하셔도 좋고, 제일 먼저 말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음으로 주께서는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자라고 인정하셨다고 되어있는 성경의 말씀이 이루어졌으며 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라고까지 불렸던 것입니다. 친구, 아까 로마서 4장에도 아브라함이 아무것도 잘한 것이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그렇게 믿어, 그것뿐이에요.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도 그런가 봐요. 하나님 말씀을 믿는 사람이 너무 수가 없어. 아브라함 한 사람뿐이지요. 너무 하나님이 고독하셔. 아 내 말을 안 믿어 주는 구나. 아브라함 하나가 있다. 하나님이 얼마나 고독하셨으면 죄 많은 아브라함을 내 친구라고 했던가? 하나님의 친구 참 감격스러워요. 하나님이 무엇이 아쉽습니까? 무엇이 그분이 부족하시겠어요? 그러나 하나님도 아브라함을 친구 삼도록 사랑하신 거지요. 그 점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드러나고 이 말씀을 야고보 사도께서 시인해요. 구약 성경이기 때문에 구약성경에 있는 말씀이니까 그럼 구약은 베드로도 읽었고 야고보도 읽었지요. 그분 전에 있던 성경 구절이니까 그럼 이사야서 41장 8절 밑에 있지요. 포로생활을 하면서 유대인 공동체에게 여호와께서 구원을 선포하셨다. 야곱의 백성 이스라엘아 나의 선민으로 선택된 백성아, 너는 내가 사랑하는 친구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그러니까 참 이 감정 너는 내가 사랑하는 친구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야곱의 후손이라는 말이지요. 아브라함의 아들이 이삭, 이삭의 아들이 야곱이에요. 아브라함도 죄가 많은 분이지만 야곱은 죄가 많은 사람이지요. 하나님 보시기에 그런데 할아버지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렇게 야곱을 사랑하신 겁니다. 그 말씀으로 누가복음 1장 54절 55절 일전에 봤어요. 그럼 구약은 2천 년 전에 이미 있었던 성서기 때문에 17세 된 성모님이 구약을 읽었거든요. 이런 대목을 읽었기 때문에 그럼 성모님이 17세의 소녀로서 시를 짓는 거지요. 노래를 지어 아까 이 선생님이 노래를 지었지요? 주님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심이요. 자비로 베푸신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셨도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약속하신대로 그분의 자비는 영원히 있으리로다. 이것이 17세 된 소녀의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믿음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우리도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겁니다. 정신적으로, 믿음으로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약속이 성모님이 보시기에 이것이 영화라는 겁니다. 이 영원한 약속은 본인 나 같은 비천한 계집종인데 내게 하나님의 아들을 낳도록 하신 점, 이건 아브라함의 약속이 내게 혜택이 오는 것이다. 그런 것이지요.
야고보도 인정했어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친구라고까지 불렀던 것이다. 누가 하나님이 또 이사야서는 예언서니까 야곱의 백성 이스라엘아, 나의 형제들로 선택된 백성아, 너는 나의 친구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을 예언 하시지요. 그래서 아까 로마서 봤지만 다 봤기 때문에 대해가 안 잡혔어요. 그럼 11절 13절 16절. 가면서 보면 뜻이 잡혀요.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에게 복을 내리겠다고 약속하신 때보다 훨씬 뒤에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전부터 이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받아들이셔서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르고 선한 사람이라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할례의식은 그 확인의 표였습니다. 말하자면 아브라함은 유대교의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믿음으로서 구원받는 사람의 조상이 되는 셈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규례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하는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1절이고 13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온 땅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겠다고 하신 약속, 그러니까 하나님의 선하신 약속이지요. 자비의 약속이지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이 믿었기 때문에 주어졌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죄를 많이 아브라함이 지었어요. 그러나 하나님을 약속하시면 절대 지키실 분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신용한다 그거에요. 나는 못 된 놈이지만 하나님만을 약속을 지키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을 아브라함이 믿었기 때문에 (끊김)
상식으로는 안 믿어지지요. 무슨 애기를 낳겠어요? 그런데 다 늙은 부인이나 자기를 봐서는 하나님이 아들을 주마 그러셨는데 의심을 안 해요. 그것이 믿음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까 나이가 먹어도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신다. 머뭇머뭇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더욱더 강하게 자라 아직 그 일이 실현되기도 전에 자기에게 베풀어질 복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약속도 실현하실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용서하시고 그를 죄 없는 자라고 선언해 주신 것입니다. 옛날 성경은 좀 번역이 어렵지요. 이 번역은 쉽지요. 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친구라고 그랬냐? 아브라함의 이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용서하시고 그를 죄 없는 자라고 선언해 주셨다. 하도 고마워서 친구라고 했으니까 아브라함만 하나님을 그렇게 믿지 옛날에도 지금도 하나님을 의심해요. 그러니까 그 믿음이 귀하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믿음은 절대 하나님이 지키신다.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것 그걸 보시고 하나님은 내 친구 아브라함 내 친구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약속도 실현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용서하시고 그를 죄 없는 자라고 선언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받아들여 의롭다고 인정하신 이 복된 선언이 기록된 것은 단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그랬다. 그랬다,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위한 것입니다. 오늘밤 현대사에요. 오늘밤에도 아 하나님만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 나를 지금도 사랑하신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요. 아브라함만을 하나님이 친구라 하신다하면 우리가 무슨 남의 일인데 이 사건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도 위한 것이다. 그랬어요. 뭔 말이냐? 하나님은 우리더러 친구라고 하신 거예요. 아 내 친구,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아 내 친구 우리가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 아브라함을 받아들인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근데 아브라함은 죄가 많아요. 근데 하나님은 절대 약속을 지키신다. 아브라함이 그걸 믿었을 때 내 친구라고 했는데 그런 아브라함을 받아들여요. 아 아브라함이 나를 믿는구나. 아브라함을 받아들인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도 받아들여 주신다는 것을 보고 가는 겁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오늘밤에 나를 받아들인다. 그거지요. 나 아무 자랑할 것 없어요. 죄 뿐인데, 아 하나님은 절대 나를 사랑하셔. 나는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했듯이 나도 사랑하신다. 그걸 보시고 하나님은 기뻐하신단 말이에요.
아 내 친구다. 내 친구. 그러니까 친구라는 말은 이걸 새벽에 본다면 감흥이 일어나요. 와 하나님이 나보고 친구라고 하시네. 느껴요. 밤보다는 아침에 일찍 보십시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내 친구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인 거와 같이 아브라함이 내 친구야.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은 하나님의 심정으로 아 내 사랑하는 친구 그렇게 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들도 받아들인다는 것을 보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기 위하여 죽으셨으며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해 주려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니까 부활을 증명이지요. 하나님은 분명 나도 사랑하신다는 증명. 이글은 몇 절 안 되지만 하나님은 나를 취급하신다. 그걸 믿어. 또 하나님을 나를 사랑하신다는 약속을 믿어. 그러니까 그 약속을 믿어. 그걸 믿으면 하나님은 그렇게 좋아하셔. 부모되어본 사람은 그걸 믿어요. 아들이나 딸이나 아무리 죄를 지었어요. 엄마를 믿고 밤중에 엄마 나 찾아왔습니다. 그러면 나를 환영할 것이다. 믿고 엄마 나 찾아왔어. 그럼 어머니가 문을 팍 열고 어서 들어와. 아버지 알까봐 무섭게 아버지 몰래 방으로 자식을 불러들인다. 그건 엄마를 믿는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제일 곤란한 것은 엄마 없이 큰 애기들 아무리 말해도 안 믿어요. 체험이 없어. 엄마의 사랑을 못 받은 애기들은 참 불행해. 그 서럽지요? 내 친구 안 믿어요. 믿음이 없어. 그런데 아 내 친구,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걸 아브라함은 믿어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괜히 믿은 것 아니에요. 자기들 부부가 다 늙어버렸는데 단산했는데 하나님은 아들을 주마 그래. 그러니 믿어요. 믿음은 선물이랍니다. 믿음은 지혜로는 안 믿어져요. 그런데 믿어진다는 거 그게 복이 있다는 거예요. 믿는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믿는 여자가 복이 있다. 이것은 신비라고 그래요. 믿음은 신비야. 해설은 못해. 아무도 그걸 해석은 못해. 학문으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다. 그 믿음이 아까 17세의 위대한 처녀 마리아란 이름을 가진 애기가 소녀가 믿었다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을 낳았지요. 믿음으로 예수를 낳으셨어요. 그때 성모님이 믿지 않으면 어머니가 못 되었지요. 아브라함은 의심 없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믿음의 조상 또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를 믿어진 사람이 아까 말한 그 마리아, 그걸 믿는 것이 또 믿음이에요.
지금 로마서의 이야기가 전부 그 이야기 아닙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한 것은 절대 하나님은 지키신다.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그렇게 기뻐하신다. 그 요절만 한번 따라 읽으십시오. 이사야서 41장 8절 따라 읽으십시오. ‘포로생활을 하면서 탄식하는 공동체에게 여호와께서 구원을 선포하셨다 야훼의 백성 이스라엘아 나를 섬기도록 선택된 백성아 너는 내가 사랑하는 친구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이사야 41장 8절 말씀.’ 요 믿음이 참 복이지요. 믿는 여자가 복이 있고, 그런데 아까 이 선생님이 작사했다는 노래도 믿음이지요. 아 사방팔방 쳐다봐야 죽이려고 찾아오는 사람들뿐이고 어디로 가야사냐 그거에요. 하늘로 날아갈까? 바다로 건너갈까? 믿음이 신앙이라는 것 신앙으로 사는 것 의논이 안 되지요.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아내 사라와 의논합니까? 아내가 믿지 못해요. 시인이 안 되어요. 그러니까 아내는 웃었지요. 아브라함이 믿음이 그렇게 귀하답니다. 이 선생님의 믿음이지요. 이 선생님의 믿음이 그렇게 귀해요. 그래서 우리가 기념하기 위해서 노래를 불렀는데요. 오늘 지금은 태평성대 아닙니까? 배가 부르고 사방으로 모두 선생님을 잡아 죽일라는 사람뿐이고 어떻게 하나? 나는 좋지만 미국서 오신 선교사, 그 거룩하신 선교사 유화레 선교사 그런 분을 보호하고 있는데 살길이 없다고요. 팔방으로 잡으려고 했었고 그런 때 이런 노래가 나온 거지요. 하나님께 물어보고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렇게 노래가 작사 되었다는 점 오늘밤도 하신 것 같아요. 이 선생님이 지금도 우리에 대해서 항상 이런 기도를 하시지요.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보호해 주시라고 우리들의 공동체의 하루하루는 매일매일 기적이지요. 하루하루 기적이에요. 믿음으로 이렇게 사는 것을 하나님이 보시고 아 내 친구들이 있는 곳이다. 내 친구들이 사는 공동체다. 그 말이지요. 포로생활하면서 탄식하는 유대인 오늘도 탄식하는 유대인들과 똑같아요. 공동체에 여호와께서 구원을 선포하셔 됐다. 나는 너희들을 구원해주마. 우리도 공동체거든요. 개인 집이 아니란 말이에요. 모든 사람이 모여서 예수님을 섬기는 공동체에요. 그러니까 야훼의 백성 이스라엘아 우리들도 그 후예 아니에요? 정신적으로 신앙적으로 나를 섬기도록 선택된 백성아, 그러니까 이 공동체는 하나님을 섬기도록 선택된 백성들이에요. 부모 형제 친척 다 버리고 예수님만 사랑하라고 선택된 사람들이 여기 모였거든요. 그래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친구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친구 아브라함의 신앙의 가족이라는 말이에요. 그걸 기억하십시다. 다시 한 번 부르실까요? ‘주님 가신 곳’ 뜻을 생각하시면서 부르십시다.
주님 가신 곳
1. 주님 가신 길이라면 태산준령 험치 않소.
방울방울 땀방울만 보고 따라 가오리다.
(후렴)오주 예수 주님이여 천한 맘에 오시오면
밝히 갈쳐 주옵시기 꿇어 엎데 비나이다.
2. 주님가신 길이라면 가시밭도 싫지 않소.
방울방울 피 방울만 보고 따라 가오리다.
3. 주님계신 곳이라면 바다 끝도 멀지 않소.
물결 물결 헤엄쳐서 건너가서 뵈오리다.
4. 주님계신 곳이라면 하늘 끝도 높지 않소.
믿음날개 훨훨 쳐서 올라가서 뵈오리다.
그래서 아까 산속에 있는데 소식이 날라들어요. 밤중에 국군이 광주까지 수복했는데 광주부터 화순은 아직도 인민군이 길목을 지키고 있으니까 기회는 지금 뿐이고 꼭 선교사님 모시고 이 기회에 나오신다면 가능하다. 왜 그러냐면 다시 광주에 있는 국군이 다시 떠나버리면 기회가 없어져 버린단 말이지요. 그래 비상 연락이 왔는데 어떻게 모시고 나가느냐? 도구박 골에서 이양면을 넘으면 고개가 있어요. 고개에서 이 선생님과 정 원장님 두 분이 기도하시고 최후의 결정을 하는데 이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했어요. 정 선생님 원장님 원장님이 교장님을 모시고 나가시겠습니까? 그럼 제가 여기를 지키겠습니다. 그 식구가 아직 백여 명이 있으니까 제가 나갈까요? 원장님이 나가시렵니까? 어느 분이든지 통해요. 아직은 숨어있으니까 남아있는 것이 더 쉽겠지요. 그러니까 더 어려운 것을 정 원장님이 택해요. 아, 제가 모시고 나가겠습니다. 그 생명을 내어놓은 거예요. 그 날 밤 성공하면 좋지만 붙들리면 죽는 거지요. 그때 그러니 유교장님은 모시고 갈 사람이 길을 몰라요. 밤중에 문공이 그때까지는 큰골에 사시거든요. 문공을 조금 만나자고 이 선생님을 만나요. 밤중에 캄캄한 밤중에 숲속에서 문공이 오셨어요. 문공님 참 황송합니다. 어려운 일 한번 해주셔야겠어요. 나가는 길은 문공밖에 모르거든요. 어디로 나가야 마을을 피해 가냐? 이거야. 마을을 가면 안 되거든요. 문공이 믿음 좋은 분인데 선생님 가면 죽을 줄 알아요. 누구든지 내려가면 체포되는 거 아니까 ‘선생님 내 목숨은 아무 걱정 없습니다. 선생님 저는 처자가 있습니다. 아내가 아들이 둘 있고 딸이 하나있고 삼남매 혹시 내가 뭔 일 당하면 이 가족을 선생님 맡아주십시오.’ 그 유언했어요. 참 그야말로 뜨거운 사랑들 하시지요. 부탁하는 분도 믿고 말해요. 난 모르오. 그 말 한마디면 되거든. 나는 처자가 있소. 안 갈라면 그러면 되는데 선생님 말씀 ‘네.’ ‘제가 가겠습니다. 그러나 처자를 선생님 맡아주십시오.’ ‘네, 그렇게 합시다.’ 그렇게 하자. 엄숙한 이야기를 하셨어요. 정 원장님이 유 교장을 모시고 셋이 나가는데 나는 본 대로 말해요. 흉기가 아니요. 원장님 몸이 떨리는데요. 막 떨려, 몸이 떠날 때, 책임이 있어. 원장님 혼자서는 괜찮은데 이 선교사님을 살려야 하거든, 이 모시고 가는 중대 이 생명을 보호한다는 게 보통일이 아니에요. 아무리 믿음이 있지만 생명을 걸고 가는 마당에 막 떨리시더라고, 참 엄숙해요. 이 선생님은 기도하겠습니다. 어서 가시라고, 캄캄한 밤중이니까, 환송하시고 이 선생님은 들어오시지요.
어찌되었든지 생명을 주고받는 다는 거 그럼 성경말씀은 예수의 피 예수의 희생 예수의 제물 이 제물이지요. 그때 살렸으니까 또 살았지, 그때 잡혔으면 다 돌아가시는 거예요. 내려가다가 유교장님은 빠져나가고 그때 다 죽었거든. 확 국군이 밀려 산속으로 나가요. 국군이 올라가면 저기가 확 지배하거든. 그러니까 광주에 국군이 왔다니까 화순까지 온 줄 알고 이 사람들 가다가 다 잡혀 죽었거든. 화순에서 그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거든. 그런데 또 어떤 때는 화순가면 없어요.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빠져나간 사람은 살고, 또 잘못하면 다 잡혀죽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때니까 그런 비상시에 노래도 평상시에 이런 노래가 나오겠습니까? 모든 찬송이 그런 게 있지요. 감격스런 체험을 하시고 가사를 써가지고 노래를 부른 것이 그때 노래라는 거 아까 성모님의 노래도 처녀 몸으로 잉태하라는 명령을 받고 승낙했거든. 믿음이 있단 말이에요. 믿음, 이건 아브라함의 믿음이 내게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믿음은 우리에게 천년만년 오래간단 말이에요. 아브라함과 하나님사이에 믿음은 영원히 계속된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듣는 우리들의 혜택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받아들이면 우리도 혜택이 오는 것이지요. 주기도 같이 올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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