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는 내리나 낮은 영상의 날씨 포근하다. 매일 울금 손질을 하고 있다. 종자와 가공 용도로 다듬고 있다. 나는 잠간씩 꽃밭을 가꾸어주고 땔감을 날랐다. 숨이차고 힘에 겨워 조금씩 쉬면서 소일하고 있다. 온돌방에 하루에 한번씩 불을 지피고 사는데 보일러 온풍기 새집 보다 훨씬 좋다.
대 아 大我
1981. 8. 15
밥상 앞에는 잊어버렸어. 잠결에서 인자 밥을 먹는데 잠새는 날아갔죠? 먹새가 왔어요. 먹새가 오고 또 잠새가 옵니다. 왔다갔다 이렇게 제대로 잘 먹새하고 잠새 하고 어디로 왔다 갔다 합니다.
내가 갚을 테니 무슨 걱정이야? 긍게 내가 할 랑게 늘 이거 있기 때문에 못 한 거여. 이거 치워버려. 내가 갚을 테니. 내 안에 대아가 있다. 큰 나가 있다. 그걸 알아라. 자기가 하려는 거안된다. ‘나 없이는 암 것도 못한다. 포도나무 가지가 잘려져 가지고는 몸에서 끊겨가지고는 아무것도 못한다.’ 붙어야 된다.
그 네 번 나란 것은 설명 안 해도 알겠죠? 설명해서 안데 안 해도 알 수 있어요. 해필 이면 세 번도 아니고 네 번 하고 다섯 번도 아니고 네 번 한 번이면 고만이고. 두 번이면 고만이지. 또 세 번까지 하면 고만이지. 삼세판 아니요? 삼세판, 아 죄는 삼사 대 까지만 가니까 그런가? 삼사 대, 그것도 설명이 어렵죠. 사 대 사 대 사 대는 뭐이냐? 모다 들어볼까요?
초대 예수, 이대 사도, 삼대 성경, 성경에서 깨달은 누구한데 전도 안 받고 직접 성경 받아 깨달은 거 사대, 그 깨달은 사람의 말을 듣고 자기도 깨달은 사람, 그러면 죄는 끝나 버려.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났어. 그래서 은혜는 수 천대 가도, 죄는 삼, 사대 이상 가지마라. 사대 뭣이냐? 깨닫고, 그러니까 이 책 이 선생이 직접 하신말씀 들은 것이죠? ‘성령 받은 사람을 만나보지 못 하고는 자기도 성령 못 받는다.’ 성령 받은 사람의 생활과 정신을 접촉해야 된다.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들은 말씀
지도자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어디서 무슨 일을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다. 그 쯤 알아야 지도자야. 대놓고 얘기해도 몰라 우리는. 저 우리 성경만 보고 있잖아요? 짐작으로 알지. 나타난 행동만 보고 알지. 그렇게 누가 더 친하면 누가 친하냐? 서로 내 맘을 서로 알아주는 그게 친구 아냐? 이 선생을 사람이 그 신앙 믿고 따라간다. 하지만 이 선생을 바로 아는 사람 없어요. 없어요. 정신은 그런다는 말이야. 이 선생 긋지 마라여. 어떻게 아냐? 나 말 안 해.
제가 한 두어간데 서너 간데 어디로 갈까 하는 길이 있습니다. 여기도 가고 어디를 먼저가야. 어디로 가야, 무등산에도 계신데 아파서 인제 세상 뜨신다고 그렇고 저도 인제 인사를 한 번 가보니 긍게 저 삼밭인가 누워계셔, 호도 파는 사람도 있고. 간께 눈 떡 이렇게 떠계시더니 내가 가니까 도로 감아버리셔. 그게 뭐 내 문제를 내놓겠어요? 뭐 물어보겠어요? 가만히 한참 가만히 있었죠. 눈을 뜨시더니 뭐더러 왔냐? 물어보지도 않아. 어디로 가라. 내 그리로 갈까? 그럼 또 다른데 갈까? 두 군데를 꼽아도, 다른 데로 어디로 갈까? 물어 보려니까, 그리 가라는 거야, 말이야. 앗~ 따 그리 되어버려요. 그렇죠? 어디냐? 기도실 한 번씩 더 올라가요. 기도실 더 올라가라는 거여. 그 때 마침 거기서 기도하신 분이 책도 싸고 짐을 가지고 가. 비었으니까 가라 갔어요. 한 열흘이나 됐지, 뭐 있었어요. 거기 뭐 남은 것이 김치 담아 간 거 그런 거 조금 주서서 먹고 그러고 있었죠. 그런데 또 내려오라면 오고. 긍게 또 그리로 가라. 그게 내가 갈라는데 딱 지적해요. 아 아 과연 성령 받은 분이시오. 어째 그렇게 아십니까? 또 나중에는 우리 도암, 또 어절 때는 저기 가면 쓸 가요? 갈까요? 간다고 그래. 아주 기쁘게 승낙을 했어요. 그렇게 기쁨으로 충만 한 게 발이 안 닿아. 걸어 다닐 때 막 날아 간 거 같아요. 승낙을 받았다. 그런 기분이니까 그러고요.
또 어쩔 때는 어떻게 할까요? 그럼 예수님한테 물어보시오. 너무나도 그거 미신적으로 돌아갈까 봐 직접 물어 보세요.
내가 나란 것은 나는 예수님의 뜻만 받들어. 내가 말해준거지 내가 말한 거 아니다. 내 능력으로 받지 마라. 그런 말 아니요? 이 선생이 아니요, 그것은 예수님 속에 영혼의 예수요. 예수, 그 모두 예수만 보란 것 아닙니까? 이 예수를 못 보죠. 그 사람 속에 내 몸같이 사랑하라 한 게. 내 몸이 예수가 내 몸이 아니오, 그것이 아니요, 그 사람 속에 예수계시다. 다 예수로 대할 턴데. 그렇지 안 해요? 너 나다. 차례
결코 불안해서는 안 된다. 정말 결코 안 돼. 내가 불안해지면 악마는 만족케 해서 거기서 만족하고. 거기서 확실히 승리를 얻을 것이다. 악마가 승리한다. 불안 하면 라고 말씀하셨다. 불안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뢰를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항상 다 모든 염려를 다 맡기고 의지해 버리니까 편안 하다. 안 맡기고 내가 처리 하려니 깐 아무 문제가 무거운 거지. 예수께서 무거운 짐을 다 지고 그대로 지고 오라. 그러셨죠? 버리고 오라 그랬지? 버리고 오라. 나 따라 오려면 집이나 전토나 다 버리고 오라 그랬죠? 자기가 왜 짐을 지느냐? 자기몸 하나도 자기가 감당 못 하면서 다 주님께 맡기고 오라. 맡기고 다 바쳐버려.
그렁게 ‘너희도 나의 완전한 것 같이 너희도 완전 하라.’처럼 우리가 완전하지 않으니까 지금 너도 완전 하라. 그 말은 완전하신 하느님께 맡겨버려라. 그 말 아니오? 완전하신 하느님 속에 들어가 버리면 완전하죠. 떨어져 가지고 어떻게 완전 할 수 있어? 하느님과 맞대고 나도 하느님같이 되어야겠다. 그렇게 돼요? 완전하신 하느님 속에 살아라. 들어오라. 한 살림하자.
‘일단 불안해지면 반드시 낙심하게 되고 낙심하게 되면 심전이 중지 된다. 마음싸움 자기 경력과 자기양심과 싸움입니다. 심전은 중지되고 진보는 진보하는 대신 퇴보하게 된다. 진보는 경험, 무작정 뒷걸음 퇴보야. 그러니 이득이란 아무것도 없고 손해만 있을 것이니 적어도 시간은 하느님의 사랑의 시간은 손해 보게 되는 것이다. 등산하는 사람이 조금 미끄러졌다고 해서’ 이 다른 책에 보면요. 죄보단 더 나쁜 것이 있다. 그래요. 죄보다 더 나쁜 것이 뭐 있겠어요? 왜 더 나쁘냐?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이 나쁘다. 다 죄인이면 뭐하냐? 긍게 일어서면 돼요. 죄의 탓 할 것이 없어, 죄임을 드러났으면 좋아요. 예수님은 죄인 보러 오셨으니까. 죄가 많이 드러날수록 좋아. 예수님은 더 좋게 여기시니까.
그 성경은 디모데전서1장12~15절에 있는 말씀이요. 16절까지를 나중에 보십시오.
‘등산하는 사람이 조금 미끄러졌다고 해서 깜짝 놀라서 등산을 중지하고 산정을 쳐다보기조차 아니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현명한 등산가는 미끄러지더라도 시간을 모두 허비하지 않도록 결심하며 조금도 불안한 생각이 없이 신뢰하는 마음으로 즉시 일어나 다시 올라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또다시 미끄러지더라도 또다시 즉시 일어서서 앞으로 전진 하고 하곤 할 것입니다. 라고 적혀있다.’
또 요것은 95페이지 하반서 96페이지 시간낭비
‘곤소라따야, 성의를 가진 영혼은 다음에 예수님의 말씀을 잘 묵상할 것으로 안다. 이제 내가 말하려는 두 가지 영혼 중에서 어느 편이 더 완전한가를 생각해봐라. 예를 드는데 두 가지 영혼을 예를 들어 예수님이 들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한 영혼은 나를 향해 언제나 나는 불안전합니다.’ 하고 탄식만 해, 아휴 나는 불안전해요. 나는 예수 잘 못 믿어 어찌할까요? 나는 항상 이래요. 나는 항상 약해요. 그러고는 무장 실수만하고 있어 불안전합니다. 하고 탄식하는 말만 하고 거듭 실수만 되풀이 하면서 결심 한 것을 충실히 이행치 않았다.’ 자기가 결심했으면 그대로 넘어지면 또 일어나서고 해야지. 죽기까지 해야지. 숨 끊어진 순간까지 해야지. ‘다른 한 영혼은 내게 탄식하는 소리를 들려주는 대신 탄식 안 해.’ 무한한 만족과 감사로 죄가 드러날수록 기뻐요. 예수님 앞에 인자 자랑꺼리가 있으니까 내 죄 여기 있습니다. 죄가 드러나면 인자 예수님 앞에 자랑꺼리에요. 예수님은 죄를 받아주시니까 처분해주시니깐 아이고 어서 갖고 오너라. 그러니까 죄가 드러나면 우리는 걱정하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죄가 드러나면 아이고 인자 예수님한테 갖고 가요. 저 보배다 내겐 죄, 예수님은 보배로 받으시니까 인제 보배 드려야겠다. 그러면 당신의 내게 있어는 진짜 보배하고 바꿔버려. 예수님의 보배하고 예수님이 좋아하신 죄하고 내 영혼에 가장 필요한 예수님의 보배하고 바꿔버려요. 죄 내어놓으면 보배로 깨끗이 이렇게 귀한 것이 있나? 그렁게 인자 죄 드러났다고 걱정하지 말아요. 그건 예수님에게는 보배니까 갖다 바쳐요. 그러면 보배하고 바꿔줘. 죄를 깨끗이 씻어줘.
요한일서1장7~9절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그대들에게 전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하느님은 빛이시고 하느님께서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네 어둠이 없어요. 빛이 또.
‘만일 우리가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하느님과 사귀고 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쫒아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가운데서 살고 있으며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친교를 나누게 된다. 빛 가운데 있으면 친교를 나누게 됩니다. 이유가 없어요. 이유가 없어요. ‘빛 가운데 있으면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됩니다.’ 또. ‘그분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실 것입니다.’ 예 깨끗이 씻어 근데 모든 죄를 내놓고 오시오. 그러면 예수님이 깨끗이 보여서 씻어준다 게요. 아 그렇게 좋은 일인데. 왜 죄를 가지고 걱정을 해요?
한 사람 나와 가지고 여러 사람 불러갖고 안됐네요.
‘다른 한 영혼은 내게 탄식하는 소리를 들리는 대신 미소를 지으면서 미소를 지으면서 할 수 있는 대로 힘껏 언제나 나를 사랑하는 일에 계속적으로 몰두 하는 고로 자기가 의식적으로 범한 것이 아닌 결정을 깊이 생각해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었다.’ 어서 예수님 앞으로 갖고 나가요. 그걸 가지고 붙들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예수님 앞에 얼른 가서 펼쳐놔요. 저는 열 개 벌었습니다. 죄를 열 개 벌었습니다. 다 펼쳐놔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봐라.’ ‘예수님, 저는 둘째 영혼이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꾸 자기 죄 걱정만 하고 불안전합니다. 탄식만 하고는 거듭거듭 실수만 하고 있는 대신 죄가 들어가더라도 죄를 가지고 주님 앞에 솔직히 가서 내놔 버리면 얼마나 좋으냐 말이야. 그건 자유에요. 그 죄가 아니다. 영혼이 해방이야. 영혼이 해방받아야지. 영혼이 죄에서 해방 받아야죠.
‘그러니까 할 수 있는데 까지 힘을 내서 나를 사랑하라는 말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나를 거슬렸다고 느끼게 되면 더욱 열심히 사랑의 마음을 바라고 또 새로운 사랑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라.’
사랑의 노래 사랑의 기도
‘나는 학대하는 자는 아니다. 나는 항상 사랑하는 자다. 죄인일수록 나는 사랑한다. 죄인이 내게 나온 것을 가장 좋아한다. 나는 누구든지 한 번만 사랑한 마음을 바란다면 한 번이라도 당신을 사랑한 마음이 바란다면 그의 일생에 가득 찬 죄를 다 사해주는데 한 번 죄를 고백해 버리면’ 우리평생 지은 죄를 싹 사해요. 죄짓는 동안데 시간이 많이 결렸는데 사한 건 순식간 깜짝 할 사이야.
얼마나 전능하십니까? 죄짓는데서 다만 하루 동안 자유지도 없이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마음의 불안을 느낄 이유가 뭐이냐? 예수여, 내가 잘 못한 것을 살펴보십시오. 얼마나 불안전한가를 하고 탄식만 하는 것은 시간의 낭비다. 시간낭비여. 걱정마라고 해요. 그와 반대로 더욱 열심히 한 가지라도 사랑의 마음을 바라면 네 영혼은 은혜로 충만하게 되고. 네 영혼은 은혜로 충만하게 되고, 네 성심은 기쁘게 될 것이다. 알아들었느냐?
자유의지 없이 생겨난 결정에 착안하는 일은 없도록 하라. 무한히 자비하신 예수 성심은 사랑과 은혜와 친절을 항상 영혼 안에 보여주는 고로 여러 번 실패하더라도 결코 낙심해서는 안 된다. 여러 번 실패하더라도 낙심해서는 안 된다. 낙심은 금물입니다. 해선 안 된다. 예수는 약자에게 끌려오신다. 요건 조금 참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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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심은 너희 덕보다도 너희 나약함과 가련함 때문에 그만 이끌리게 된다.’ 에 우리는 예수 나 약해서 못 믿고, 죄가 많아서 못 믿고, 그 말이 안 된다. 약할수록 약함을 의식 할수록 예수님은 끌려온다는 말이야. 전능하신 예수님과 싸움을 하려면 누가 이긴가 보려면 딱 하면 내 힘으로 되겠습니까? 하느님을 이겨요? 약한 것이 이겨요. 하느님도 끌려와버려요. 못 배겨요.
‘예루살렘 성전에서 나올 때는 두 사람 중에 어느 사람이 사죄를 받았는가? 세리가 아니었던가? 겸손하게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는 영혼을 보면 나는 즉시 지고 만다. 끌리고 만다. 져버려. 예수님 이기려면 인자 약해야 됩니다. 언제나 예수님 의지해야 됩니다. 나는 언제나 그렇다. 잘 기억해 두라.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어리석다 하리만큼 사랑한다.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사랑해주겠다.’
‘네가 네 자유의지로 과오를 범할지라도 사랑해주겠다. 요래요. 자유의지로 범했다. 하더라도 고의적으로 범죄 했다 하더라도 나는 사해주겠다. 그렇게까지 얼마나 너그럽습니까? 우리는 잘 하려다가 실수한 것까지도 아니고 걱정한다. 걱정해도 내가 걱정 할 것이다.’ ‘네 자유의지로 과오를 범할지라도 생각해 주겠다. 주겠단 말이다. 그러니까 네 과오 때문에 내가 약속을 어기겠다는 말은 결코 아니니 조금도 의심해서는 안 된다. 단 한 번이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돼. 안할게. 한번이라도 약속어긴 일이 없을 때 곤솔라따 만일 네가 의심을 품는다면 내 성심이 대단히 상한단말이다.’ 긍게 의심품은 것, 예수님은 약속을 지켜주실 것인가? 왜냐면 몸 바치면 날 받아주실 것인가? 그런 의심을 한다면 예수님은 슬퍼진답니다. 나만이 네 약점을 속 깊이 알고 나만이 인간성의 유약함을 바로 그대로 알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제 마음을 안다면 한 분도 저 접촉할 사람이 없어요. 하느님이 의복으로 감춰놓아서 그렇지, 또 고대로 제 마음이 고대로 드러내면 한 사람도 상대를 안 해줘요. 그걸 내 알아요. 그러나 할 수가 없어요. 안하면 아침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어요. 쫒 겨 나요. 이런 것이 여기서 말도 하고 있어요.
곤솔라따, 너는 결코 내가 약속을 지킬 것인가? 아니 지킬 것인가? 하고 의심하는 죄를 범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의심이 죕니다. 죄, 믿지 않는 것이 죕니다. 예수를 믿지 못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의심하는 거 큰 죕니다. 믿은 것이 겸손이요. 믿은 것이 사랑이고 믿은 것이 존경입니다. 예수님을 무조건 믿어드린 것이 그 이상의 예수님이 기쁜 것이 없고요.
‘내가 네게 약속을 했으면 네가 내게 약속을 했으면 좋겠다. 그런 모독은 내게 주어서는 결코 안 된다. 그런 것을 하면 나를 심히 괴롭히는 것이 되니까 말이다.’
무조건 믿어야 됩니다. 결점, 약점 많이 적어졌어요. 언제 시간 있습니까? 알고 싶으면 인제 오시야지. 요거 순서가 거꾸로 됐습니다만.
예수님 말씀 59페이지
너는 사리따 신부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를 볼 때 나만을 보아라. 신부에게 대해서는 사랑이나 경외를 도무지 가지면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내게 충실치 못한 것이 된다. 그렇게 완전히 절대적으로 신부 그 자신이 될 때 체험하지 않으면 신부는 너를 사랑의 절정에 까지 인도해 주는 조력자가 되기는커녕 도리어 방해물이 되어 애착심을 가지는 시간은 완전히 허무한 시간이 될 것이다.
사제에게 보고서를 작성할 때나 회답을 받을 때에도 언제나 사제 안에 계신 예수님만 봐야 되고 누구를 보느냐? 그 사람만이 예수 화다. 우리 대화를 할 때도요.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할 때도 언제나 예수님을 중간에 모셔야 됩니다. 사람끼리만 대하니까 원수를 대하는 오해하고, 오해. 예수님을 모셔야 그 사람을 통해서 그 하신 그 예수님이 하신 그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이 내가 하신 말씀인데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이냐? 좀 겸손하게 알아봐야지, 무조건 오해하고 안 됩니다.
누구를 대해도 그러니 자꾸 사람끼리 그냥 같이 살아도 한 솥에 밥 먹고 한 방에 자도 악업의 덩어리에요. 그냥 싸우고 왜 그러냐? 예수님은 조금 제쳐놨어요. 모두 사랑 없는 생활이야. 그러니 사람끼리 따져요. 아 나는 자기를 그랬는데 자기는 나한테 그래? 그렇게 갚아? 따져요.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그를 통해서 예수님이 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말씀을 해요. 대언자요. 지금 여기 여러분 앞에 대언자 아닙니까? 긍게 하느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이 받아야지 감화가 되지. 내 말이라고 하면 여기서 나가면 그만이여.
예수님 말씀이 아니면 사탄의 말씀이야. 분별해야지 주는 사람이 있으면 내려야 사탄의 말인지 예수님의 말씀인지 여러분이 믿음으로 분별할 것입니다. 그 분별력.
‘내가 여러분을 위해서 기원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참 된 지식과 분별력을 갖추어,’ 예, 참 된 지식에서 분별력이 있습니다. 참된 지식에서만이 분별력이 거룩에 관한 성화에 관한 참된 지식이 있어야 해요. ‘참 된 지식과 분별력을 갖추어 점점 더 풍성해져서 가장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가장 옳은 것은 무엇이냐? 가장 그 중에서 옳은 것이 무엇이냐? ‘분별력을 가져야 되고 또, 그래서 여러분이 순결하고 나무 랄 데 없는 사랑으로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게 되고 또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올바른 일을 많이 하여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가장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여러분을 위해서 기원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뭔지 들어 있구만요. 사랑이 참된 지식이 있어야 해요 참된 지식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사랑이란 참된 지식과 분별력이 있어야 돼요. 분별력을 갖추어 점점 더 풍성해, 무엇이 풍성해? 사랑이, 사랑이 풍성해,
예를 들어서 가장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가릴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순결한 사랑이 되어야지. 속된 사랑이 아니에요. 순결한 사랑, 순결하고 나무 랄 데 없는 사랑으로써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게 되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올바른 일을 많이 하여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최대의 목적이 뭐냐? 하느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지도신부의 말이 한마디라도 필요하다면 내 생각대로 지도신부가 편지를 쓰도록 하겠다. 예수님이 지도신부에게 예수님이 당신생각대로 지도신부의 영혼에다가 일러주셨다. 영혼의 곤솔라따, 영혼에게 우리 영혼에게 필요한 말씀은 지도신부의 영혼에다가 일러주셨다. 편지를 쓰도록 하겠다. 그러니 너는 지도신부에게 어떻게 쓰면 좋을까하고 생각하지도 말아라. 않아도 된다. 꼭 마땅할 때 써야 할 말을 내가 네게 알려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마땅한 시간.
사막에서 온 편지20~21페이지
하느님은 일을 하실 때 조금도 서두르지 않으신다. 당신의 시간이니까 마음대로 하신다. 시간은 그분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분은 그의 신성에 참여하면서 하느님으로 변형시키는 일을 하셔. 성화 성화의 길 변형되도록, 당신과 똑같이 되도록 처음에 당신형상대로 만든 인간이 타락해버렸으니깐 인자 더 완전한 형상으로 변화, 인자 그리스도같이 완전한 형상, 아담의 형상 도로 닮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도로 본전이에요. 인자 그리스도의 형상 참사랑인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다.
하느님으로 변형되도록 연약한 피조물인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 나를 변형시키는 것은 하느님이 내 존재 안에 놓아두신 사랑이다. 내 안에 우리 마음속에 다 사랑이 있다. 있는데 그 사랑이 사랑으로 하느님으로 변형시킨다.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변형시킨다. 하느님이 놓아두신 사랑으로.
제일 끝에 166페이지
이 때야 말로 기도에 가장 좋은 때이다. 나는 천막을 떠나 모래언덕위로 간다. 유유히 흐르는 시간도 유유히 여유만만하게 유유히 흐르는 시간, 나를 방해하거나 귀찮게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대문간에 있는 나사로를 귀찮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유유히 흐르는 시간이죠. 다만 평화와 침묵, 침묵이 있는 가운데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하느님의 시간이 사랑의 하느님 시간 은총의 하느님의 시간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하느님 속에 들어갔어. 평화 속에 유유히 흐르는 시간은 완전히 나의 것이 된다. 하늘의 별은 더욱 빛나고 기도와 침묵 속에 마음은 풍요롭다. 이 마음가지고 인제 집으로 들 돌아가시라고 푸근한 마음으로 모두 내게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의 시간이다. 사랑의 하느님의 시간이다. 그리스도가 같이 있기 때문에 물론 예수님 속에 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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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사랑의 빛으로 생명에 휴식을 주는 침묵의 밤. 그 밤에 나의 내적활동은 아무 장애 없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내적활동. 우리 몸만 활동 한 것이 활동인줄 알아요. 가만히 있어도 정신활동. 마음의 자유.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 그러죠? 몸은 움직여도 마음은 고요하고 마음은 고요한데 정신은 움직인다. 영은 활동을 해요. 마음은 사방에 흩어 진 영혼 안에 가서 모두 심방을 해요. 그 그것이 참기도고 그것이 참 친교라 말이요. 우리 이렇게 만나고 있을 때 반갑죠? 떨어져버리면 또 잊어버리죠? 그러지만 참으로 인자 영안 속에 신앙생활은 기도는 수만리 떨어져 있어도 그 마음과 마음은 통한다는 거. 그이 진짜 보는 거요. 진짜 친교를 하는 게요. 신앙이 친교예요. 또 몸으로 만날 때는 서로 껴안고 아무 말 없어. 잡고 있으면 서로 통하죠? 그립죠. 아무 말 없어. 장시간 마음과 마음을 보여주자 하는 거 에요. 참 친교는 그러니까 말로 하는 것은 손해가 많지만은 얼마나 많은 말을 했고 가장 필요한 은혜를 서로 주었다는 거야. 말없이. 서로 서로 그 것이 완벽하게 돌아가지 않습니까? 그게 진짜 말입니다. 진짜 친교입니다. 또 몸으로 대해서도 마음과 마음이 통한다 말이야. 그게 성도의 교통이다. 교제 교제입니다. 합하더라도 마음으로 통해야 하고, 갈라져도 마음으로 통해야지. 지척이 천리여. 몸은 같이 있지만 마음은 천리여. 탕자 아버지하고 탕자 형하고, 형하고 아버지하고는 지척이 천리여. 한 집에 살아도 천리여. 탕자하고는 인자 천리가 지척이 되어버렸어. 마음이 인제 통해버렸어. 아버지하고 탕자 하고는 통해버렸어. 그에 그 비유는 하나입니다. 그것이 탕자 따로 있고, 형이 따로 있고, 아버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탕자 형 자리에서 형자리가 탕아입니다. 형 하나가 탕아여. 방탕아요. 정신적으로, 그것이 인자 죄를 깨달았어요. 그러니깐 인자 탕자여. 탕자 형이 죄를 깨달을 때가 탕자 라요. 그러면 인자 아버지께 돌아갈 때는 인자 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살아요. 한 인격이에요.
요번에 남원서 열 네 분이 왔다 그래요. 아마 지방에서 난 진도가 먼저 왔을 때는 요번에 진도가 제일 많이 올랑 가 다섯 분인가 몇 분인가 많이 오련 가 보다. 많이 안 갔다. 그랬더니 나중에 온 게 몇 분 왔냐? 그랬더니 열네 분 왔다 그래. 그 가서 보고를 들었어요.
탕자 인자는 그 전에는 남편과 싸웠잖아요? 그러고 여기 갈라면 거짓말 하고 뭐하고 어디 저 딸네 집에 간다고 어디 좀 다른데 간 다 하고 와야지. 여기 간다고 하면 못 가게 해서 그러고 왔는데 인자는 뭐 당당하게 알아서 갔다 오시오. 한다고 얘기를 하 더 라니까요. 탕자얘기를 해요. 그렇게 언제 한 번 다 들으셨는지 다 기억하고 있어요.
침묵의 밤은 내 영혼을 무한한 안식으로 이끌어 주었다. 밤은 내 편안한 작은집이었다. 이렇게 몇 시간이고 머무르면서 시간은 모자란다는 걱정 할 것도 없이 인제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고, 유유히 흐르는 다 하느님의 시간 속에 사니까 하느님의 은혜 속에 사니까, 모두 자기시간이고 하나도 방해꾼도 없고 거치는 것이 없다는 말이야. 모자라는 것이 없다.
모자라는 것이나 걱정할 것도 없이 내 안에 내 안과 밖에 있는 진실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이 모든 것들을 깊이 생각하고 싶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보아요.
‘삶의 모든 것’ 책자 중에서 170페이지
주여 시간은 있습니다. 시간은 있어요. 거기에 사람들은 다시 시간이 없다고 투덜거린다. 우리 다 시간이 모자라요. 시간이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시간이 있는데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항상 시간이 모자라요. 그러면 인제 우리들은 거기에 시간이 좀 모자라는 축이지 여유만만이잖아요? 그럼 왜 그러냐? 이거에요. 이것은 그들이 자기네 인생을 너무나 인간적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이 몸에 관한 일에는 시간이 모자라요. 의식주문제를 해결하려면 시간이 모자래요. 해결도 안 되고 해결해보자는 것인데 해결도 안 돼. 항상 시간에 쫒 겨요. 모자란다. 그러나 이 허물을 깨닫고 인간적인 거 이 세속적인 거 허물을 깨닫고 영의 세계로 넘어갈 때는 시간이 아니 여. 계속해서 평화 속에 그대로 하느님 안에 그대로 가고 오고 뭐 그것도 없어. 무한히 그냥 사랑 속에 있는 것이지 평화 속에 사는 겁니다. 뭐 시간의 제재 공간의 제재 사랑은 공간과 시간의 제재를 안 받는다. 그래요, 수만리 수 천리 억 만 리라도 갈라면 번개보다 빠르게 어디든지 또 몇 천 년 전에 일이 지금 그대로 똑 같아요. 사랑, 너무나 인간적으로만 보기 때문에 시간이 항상 부족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처리할 시간은 언제든지 있다. 하느님이 맡겨주신 시간이니까 하느님이 내안에서 처리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순간마다 순간, 순간 시간 아닙니까? 딸깍 딸깍 시간 아닙니까?
나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순간마다 우리들은 자신을 송두리 째로 바쳐야 한다. 그리되면 걱정이 없다. 이것뿐이요. 송두리 째로 바쳐라.
주여 그들이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아십니까?
아이들은 노느라고 시간이 지금은 시간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숙제를 하느라고 지금은 시간이 없습니다. 대학생들은 강의를 듣고 학습거리가 너무 많아서 지금은 시간이 없습니다. 다 볼 수 없고.
시간은 시간을 초월해계시는 주여, 주님은 사람들이 시간과 다투고 있는 것을 보시고 웃음이 나실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이 하신 일을 알고 계십니다. 누구를 통해서 누구 안에서 하실 일을 다 알고 계신다말이야 깨우면 맡겨주신 일만 하고 맡기시는 시간에 할 일이지 내일 하려니깐 걱정이고 시간이 모지라지, 주님이 내게 맡기신 시간 주님의 시간에서 이 시간 이 시간 이 시간에 일을 하라. 할만치 맡길 것 아닙니까? 걱정을 왜하냐? 자기가 하려니까 걱정이다. 시간을 사람들에게 배정하신 그 일을 잘못 하실 리 없다. 당신이 잘못 하셨겠어요? 내가 하니까 잘못하지, 당신이 맡겨서 당신의 시간에서 당신의 일을 당신이 하시는데 내 몸 안에서 하시는데 잘못 하실 리 없거든요.
시간을 사람들에게 배정하시는 그 일을 잘못 하실 리 없고 주님의 안배대로 적당히 나눠 준대로 시간을 넉넉히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시간을 잃지 말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시간을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 시간은 주님이 주시는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주님이 주시는 은총이에요. 그러나 은총이긴 하여도 은총은 은총이라도 쉽사리 잊어버린다. 곧 잊어버려요. 말씀 듣는 순간은 좋은데 나가면 잊어버려. 그러나 은총이기는 하여도 쉽사리 잊어지고 보존하기가 어려운 그런 은총입니다. 보존하기 어려운,
주여, 제게는 시간이 있습니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습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시간은 길기도 하여 일생의 횟수, 일생의 날 수, 일생의 시간 수, 모두가 다 내게 주신 시간입니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은 이것들을 주님께 드릴 수 있게 조용하고 침착하게 그리고 완전무결하게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옛날 가나에서 혼인 잔치 때처럼 저 싱거운 물 같은 시간을 향기로운 술로 만들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늘 밤 나는 주님께 이것을 할 시간이나 저것을 할 시간을 주시기를 청하지 않습니다. 내가 청할 필요가 없어요. 이미 주신 내게 주신 것도 내가 지금 충성이 허약한 문제지, 주께서 나에게 주신 시간에 내가 하기를 원하시는 일을 성심 성의껏 성심성의껏 잘 할 수 있는 은혜를 청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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