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덕장 공사 마무리 단계 : 동기, 목적, 방법

mamuli0 2023. 8. 1. 08:53

 장마가 그치고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자재구입 휴가철로 늦어져 덕장 공사를 끝내지 못했다. 기장 수확한 포장 뒷그루 작업을 기계를 빌려 햇다.

 

 

 

동기, 목적, 방법

1999. 1. 1

로마서 520절서 6

십계명을 받은 결과 모든 사람은 스스로 하느님의 율법을 지켜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요 계명이 많은데 그 중에 열 가지만 택했답니다. 십계명, 열 가지, 또 십계명에서 줄이면 둘이죠. 하느님을 사랑,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 두 갠데. 결국 하나입니다. 하나, 사랑 하나, 하난데. 그것도 못 지켜요. 근데 열을 어떻게 지킵니까? 그것도 못 지킨데. 그렁게 이 계명을 인자 못 지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전연 지킬 수 없는가? 지킬 수 있는 길은 있는데 방법이 틀려서 못 지켜요. 긍게 우리가 먼저 오늘은 정월 초하루라고 그럽니다. 하루인데 다른 달은 정월이라고 안 합니다. 그 해 첫 달은 정월이라고 그래요. 그건 바를 정(), 달 월()자 아닙니까? 달 월()은 이 몸을 가르칩니다. , 몸의 행동이 처음에, 한문자는 한 일(), 그칠지(), 바를 정() 자는 첫 출발이 발라야 된다 말이다. 방향과 목적이, 어데 어디 목적지를 가려면 방향부터 알아야 되지. 방향, 여서 서울을 갈 란데 저 남쪽이나 목포나 하면 틀리죠? 게 방향, 방법, 동기, 방법, 목적입니다.

 

그러면 동기가 틀려놓으면 방법도 틀리고 목적에도 다 갈수 없어요. 첫째 동기가 발라야 돼요. 초하루 그러면 한문으로 보면 처음 초() , 처음, 옷 의()변에 칼 도(), 칼 도 말씀입니다. 말씀, 옷을 만들려면 가위로 잘라야죠? , 그 잘못 잘라버리면 옷이 안 되지요? 가위, 처음, 말씀을 따라가느냐? 말씀은 하느님의 삼위인데 긍게 말, 구역에는 말쌈 그랬거든, 말은 말란 것 이 말이에요. 소리는 말고 그 뜻을 말해, 말씀은 하느님인데 소리만 내. 흉내만 내면 안 되지요? 그 하느님인지, 하느님의 소린지, 사탄의 소리인지 분별이 돼야지. 여 사탄 따라 가면 안 되지. 사탄, 그 사탄이 뭐인가? 베드로사도 보고 어느 때 사탄아 그랬죠? ‘죽지 마시오.’ 사탄이라는 게야. 사탄이 뭐냐면 사랑을 사적(私的), 사적, 우리말로도 돼요. 사탄은, 사단, 악마, 마귀, 뭐 여러 가지 인데 사()라 말이요. (). ()냐 공()이냐? 공은 사()를 여덟 팔()은 깨칠 팔() 자거든. ()를 딱 깨쳤냐? 그 말이야. 거기 공()이 되는데 항상 사()에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돼. 사에서, 뭐와 같냐면 개구리가 우물 안에서 세계를 보려고 한 것이 무엇을 알라고 하면 우물 안에 그 밖에 뿐이지. 나와 봐야 뭐 좀 멀리 보이잖아?

긍게 사()와 공, 게 처음, 처음, 말씀 펴주죠, 말씀 하느님이야. 하 자는 어찌 하() , 어찌 하 자는 사람 인() 변에 올 가(), 무엇이 옳을까? 사람으로서는 어떤 것이 옳을까? 그 어찌 하 자여. 처음에 물어요. 너 어찌 사냐? 뭐 헐라고 사냐? 너 뭣하지? 어디로 가냐? 말이야. 아무 목적도 방법도 없이 어떻게 살 것도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산 게 산다.

 

아 살려 주시니까 살기는 사는데, 옳고 그른 것이 분별을 못한다. 말이야. 이 저 분별하라. 마라. 무엇이 옳으냐? 어느 길, 하로는 표준어는 하루 인가 모르겠습니다만 하로, 길 로() 자라, 길 로 자(). 어느 길로 가야 바로 간가 에요. 목적에 다가서는 길인가? 전연 방향을 달리해버리면 반대목적으로 간다 말이야.

 

그러면 예를 들면 부자와 나사로가 동기도 틀렸고 방법도 틀렸고 목적도 틀려버리잖아요? 부자는 목적은 땅에만 생각하지. 영계는 모르거든. 영계, 땅에 것만 생각한 목적에 있고 이 방법도 땅의 것만 찾지. 영계를, 처음에 동기가 틀렸다 말입니다. 땅에서 몸으로만 잘살자. 그러니깐 방법, 목적 다 틀려버려.

거지는, 거지는 나사로는 거지는, 살 거(), 살 거자를 어떻게 했냐면 살라면 주검 시()에다가 예 고() 있죠? 예 고(), 예 고()는 열 십() 밑에 입 구()있죠? 열서 열은 말란 것 아닙니까? 죽는다. 그 말이에요. 먹으면 죽는다. 그 소리에요. 먹어서는 안 된다. 다 먹되 하나는 먹지 말라. 그랬거든요 게 그것마저 거역해버린 거여. 아가미, 이 우는 아담의 자손 아니냐? 몸은 아담에 속해있다. 긍게 땅의 것밖에 몰라요. 먹지 아니하면 사는데 먹어버리니까 못살아요. 그리잖아요? 긍게 거지는 이미 세속은 죽고 죽기로 내놓고 신앙도 그래. 신앙, 신앙 표준은 갈라디아 219, 20절이죠?

 

율법의 손에 죽고 나는 율법의 손에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다 한다. 죄는 죽고 자기는 부정하고, 고만 살고, 자기 육적생활은 그만 허고, 영적 생활 한다 입니다.

인자 길 로() 자는 발 족(), 만족, 만족에서 발 족() 자지. 발 족()자는 입 구()밑에 그칠 지(), 말씀대로 순종한다. 게야. 또 오른쪽에다 각각 각(), 각각, 각각이면 두 사람 이상 아닙니까? 그먼 너나, 나나, 또 남녀죠? 남자나 여자나, 각각, 말씀대로 먹지 않고 사는 것은 길이다. 옳은 길이다.

그걸 인자 성경을 하나 대면 아까 20절도 다 못 읽었는데.

 

 

 

이사야 3018-21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대저 하느님이시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온에 거하며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 그가 너희 부르짖는 소리를 인하여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할 것이라.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내 뒤에서 말소리가 내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라. 바른길이라 말이야.

바른길, 정로(正路), 하로 어느 길로 가냐 정로로 가야 된다. 정로, 잘못 가분 면, 반대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 정로, 나사로 가는 길을 가야죠? 거지 나사로 가는 길로 가야지. 부자 가는 길로 가면 목적지 틀려버린다. 정반대로 되어버린다. 방법도 틀리고 동기도 틀린다 말이야. 땅에서만 생각 같으면 거지는 이미 땅에서는 희망이 없어. 스스로 버렸어요. 그렇게 살 필요가 없어. 깨달았어요.

이 항상 땅에서는 죽는 생활이야. 죽어 창. 날로, 날로 몸은 죽고 죽어지고 죽음으로 가고, 영은 올라가는 거여. 이 방법이야. 자꾸 죽으면 살아. 말씀, 말쌈, 말씀, 말씀은 마음에 씌어졌어요. 말면 살고 또 말씀 그러면 섰다. 그래서 살 거() 자가 주검 시 밑에다 예 고()한자 있고 그게 살 거() , 보통 쓰는 거는 또 주검 시 밑에다가 설 립(), 그것도 살 거자여. 죽으면 와서 바로 서요. 그 말씀이 서요. 권위가 있어요. 능이 있어요. 말씀에, 이 말씀, 또 주검 시 밑에다가 요렇게 기댈 상, 기댄다. 책상에다 기댈 상 궤 궤합니다. 딱 죽음으로 내놓고 하느님께 기대고 의지한다 말이야. 신뢰, 믿고 맡겨버려. 부탁해버려. 하느님께, 알아서 해주시오. 그 방법이야. 하느님의 뜻에, 죽으나 사나 뜻대로 맡겨버려야. 내 방법으로 하려고 해봤자 소용없다. 하느님의 방법은 그리스도와 함께, 나 혼자는 안 되고 믿음은 그리스도와 함께입니다.

 

이 동기, 방법, 목적이 순수해야지. 하나도 동기도 틀리면 방법도 목적 다 틀려요. 이 첫 동기.

 

우리가 믿는 것은 어떤 목적에서 출발했냐? 그거에요. 목적이 분명한데다 동기, 이게 동기와 목적과 첫째가 중요합니다. 이게 동기가 바르면 동기와 목적이 바르면 방법은 필연적으로 따라와요. 이래 목적과 동기가 다르면 또 방법도 틀려요. 아무리 해봤자 헛수고여.

긍게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그먼 요 21절 봐요. 18절과 그 18절은 동기라면 21절은 인자 구체적으로 방법이죠? 바른길을 가죠? 그럼 인자 목적이 달라요. 목적, 그 여기서 목적을 이제 하면 26절이 돼.

그 처음에 18절에서 다시 봐요.

쌍방에서 기다려요. 하느님도 인간의 마음 태도, 마음먹는 태도를 기다립니다. 또 사람은 어떤 하느님을 기다리느냐는 거야. 육으로만 좋게인 하느님을 기다렸냐? 영이 살 수 있는 길을 목적하고 기다렸냐? 말하자면 천국이냐? 지옥이냐? 거야 누구든지 양심으로 지옥을 원한 사람 없어요. 목적은 천국 간다고 똑같아. 가지만은 방법과 그 궁극목적은 틀려요. 생각은 천국에 간다. 하지만은 이 땅이 천국인 줄 알아버린다. 땅이, 이 땅에서는 탕자같이 돼 버려야는데 말이야.

 

허무를 깨달아야 하는데 말이야. 여기서만 참을 찾으려고 하니 있겠어요? 그 그림자 그림자를 보고 그 사람을 만나려고 하니 되겠냐 말이야.

이름은 예수를 부르고 예수와 같이 산다고 하면서 항상 아담하고 짝한다. 말이야, 땅에 속한. 근데 하느님은 어떤 인간을 기다리느냐? 사랑해서 기다리는데 공이 하느님이라 오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기다려요. 하느님은 공평히 하신다. 하느님은 아아 어쩌면 나만 사랑한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걸 믿는 사람, 사랑이니까 무엇을 지시하더라도 순종한 거야. 사랑이니까. 사랑이여.

하느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가장 바른 방법이에요. 또 예수와 함께 하는 것이 가장 바른 방법이야. 나 혼자 헐하려면 안 된다. 말이야. 예수 함께 한다하면서 항상 내가 있거든. 내가, 자기를 버리고 예수님 말씀이 다른 방법으로 할 말씀이 있다면 첫 째 나 따러 오려면 자기를 버리라 했거든요. 인제 그 방법이 옳은데 예수님이 방법대로 안 해요. 아직까지 내방법대로 해요. 그게 틀려요. 목적에 다다를 수 없어. 긍게 먼저 하느님은 공평히 하신다는 걸 믿는 믿어요. 그러면 그 신앙은 내게 주어진 환경 뭐 사건, 다 받아들인 거여. 그 환경에서 자꾸 깨달아가는 거예요. 하느님이 내 영혼을 사랑해서 이런 환경을 허락했다. 또 내 실지 영혼은 그걸 구한 거, 원한 것이다.

 

이 영과 하느님과는 통하거든요. 그런데 영이 불순종했기 때문에 하느님하고 통하는 길이 막혀버렸어요. 인자 사탄하고 통해요. 사탄, 사탄은 뭐냐? 이 감정이에요. 감정, 사람은 세 가지 있잖아요? 몸이 있고, 혼이 있고, 영이 있다 말입니다.

사람도 삼위가 있어요. 그런데 영이 하느님께 불순종한 결과로 그 영의 기능, 말하자면 신, , 신의 권위를 상실했어요. 그러니까 언자 혼은, 영은 진리라면 혼은 지배인이라고 본다. 지배인, 몸을 부리는 지배인이에요. 그러니까 주인이 자기 본분을 잃어버리니까, 말씀을 거역해버리니까 영이, 그러니까 언자 혼이 주인 노릇을 해요. 몸을 쓰고, 예를 들면 부자는 혼이 주인노릇이고 거지인 나사로는 하느님이, 그리스도가 주인이여. 하느님이 주인이여. 자기는 없어요. 아무 자기권리 없어요. 자기 권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 말이야. 온전히 하느님의 뜻대로 또 하느님의 지시대로 말씀대로 순종하고, 그게 목적에 달했지만은 부자는 땅에 속한 거 목적하고 이 혼적인거 육적인, 감정적인 거 거기에 매였기 때문에 다 틀려버린다. 세 가지다, 동기도 잘못 됐고 방법도 틀렸고 목적도 반대방향으로 갑니다.

 

이게 말씀은 간단하게 하면 아주 간단해요. , 쪼금 더하면 씀, , , 섯다, 쓰다, , 그러면 마음에 양심 씌어졌다 그래요. 썼다 또한 세 가지 네 가지를 하면은 쓰다. 쓰다, 괴롭다, 쓸 고() 자 쓸 신(), 여그 쓴 것을 단 것으로 바까진 거 신앙이에요. 쓴 것은, 게 믿음은 고통이 달고 안 믿으면 쓰고 그것 뿐이여. 그리스도에게서는 십자가가 달고, 아담에게서는 십자가 싫어. 내게도 두 가지 항상, 그리스도 아담, 유다 그리스도 예수, 에서 야곱, 둘이 있어요.

 

이기 첫째 인자 믿음이냐? 믿음이 중요하다. 방법은 믿음이야. 언자 그러면 자꾸 인자 복습합니다만, 그러면 사람이 어떤 하느님을 바라냐? 하지만 공평히 계신다.

그것이 예를 들면 부자와 나사로를 말한 것이 된다 말이야. 나사로 생활은 그저 하느님이 주신대로 병을 주시든지. 무엇을 주시든지. 그대로 감사히 받아들인 것이고 부자는 땅의 것만 목적하고 땅의 것만 찾으려고 하는 방법이라 말이야. 이 다 틀렸어요. 공이 하느님을 믿지를 않아요. 자기감정에 혼에 맞는 감정에 맞는 것만 찾다가 영하고는 틀려버린다. 목적지에 달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 18절에서 길이 달라진다 말이야 .어떤 하느님을 지금 바라냐? 올 초하로 어느 길로 가야 옳은 것이냐? 사람의 가는 길이 무엇이 옳으냐? 길 로() , 각각, 진리에 순종하겠냐?

그러면 인제 그것이 정로를, 이 감정적으로나 몸과 영이 다 관련이 된다 말이야. 환난이 떡이 돼. 어떤 환난이 닥치더라도 엇 저녁에도 떡 먹었지? , 아 처음 먹은 떡도 있데. 아 이거 적다, 참 좋다, 이 감정의 요구대로 하면 그 나 한 대접 다 먹어도 양이 안 찬데. 아 그렇지만 그럴 수는 없죠?

 

근데 이 감정은 좋아하는데. 언자 그 값을 치르려면 공짜는 없거든요 여 떡, 찰떡은 언자 쳐야 돼요? 쳐서 메로 쳐서 되지. , 벌떡, 벌떡, 꿀떡, 벌떡 그래요. 꿀떡, 마음대로 꿀떡 삼켜버려. 놀래요. 벌떡, 그러니까 떡도 좋지만 떡에다가 꿀을 찍으면 얼마냐 좋냐? 근데 인자 여 방법을 찾습니다. 방법은 정로, 21,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를 행하라. 예수께서도 나 따라 오려면 자기 버려라. 그 바른 거 그거 순종이야.

 

오늘 초하로부터 뜻을, 방법을, 예수님의 하느님의 뜻에다가, 방법에다가 오라, , 오지 말라, , 이 순종만 하면 되는 거여. 순종,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지시대로, 머리에 신대로 순종하는데 그건 예수는 교회의 머리 아닙니까? 머리, 교회는 우리 몸인데 우리 머리는 말이야. 이 머리의 지시대로 하는데 이 발이나 몸의 지시대로, 거꾸로 됐다. 발이 수월한 길, 몸도 편한 길, 십자가 싫어한다고 이 예수님은 십자가 지고 따라오라. 날마다 자기 십자가지고 따라오라. 그것이 가장 옳은 방법인데 그 방법은 싫어, 감정은 싫어해요. 쓰다 말이 쓰요. 이 말씀 씌어졌는데 행하려면 쓰다. 안 맞아요?

성경의 진리, 예수의 말씀은 감정으론 다 반대여. 역설이라 말이야. 감정에 맞는 말이 없어요. 맞는데 구체적인 방법은 틀리거든. 맞는 것은 인자 내 길은 내가 깨어진 머리는 쉽다. 아 그 말은 좋아. 근데 멍에는 엄한 멍에를 메고 자, 가볍고 쉽고 편하다. 근데 고 길은 안가요. 우리는, 편히 자기 방법으로 갈라고 그래. 틀려. .

 

그런 여기 22절은 또 너희 조악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진 것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요것은 완전 자기부정, 버리고 따라오라. 이거 순종이거든요. 정로로, 정로를 걸으면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거, 자기 버리고 따라오라. 그게 순종입니다.

 

 

인자 목적은 26

여호와께서 백성의 상처를 상처, 얼마나 상처가 있겠소? 죽을 고생을 했고 맞고 그랬으니까,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 뺨도 맞고 막 발질로 채이고. ,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이거 목적이래.

햇빛이 칠 배나, 칠 배나, 그 아주 밝은 거 밝아, 이 목적이 천국 아니 여? 천국, 목적에 살란 거야 동기, 방법, 목적, 초하로가 중요하다니까 어느 방향으로, 바로 방향을 돌리냐? 또 어떤 방법으로 가냐, 나 혼자 가냐, 예수 함께 하냐, 성경말씀은 모두 그 내용이에요, 나와 함께.

 

처음에 아담이 그 방법이 틀렸어요. 뭐냐? 창세기 3장에 하느님의 음성이 듣기 싫어요. 그것부터가 지금 불순종의 결과거든요. 말라하는 걸 거역해버렸거든, 그러고 나니까 말씀이 감정에 안 맞으니까 쓸쓸하니 가을바람이 불었다 말이야. 그러니까 이 한문글자 이를 운() 자 이를 운, 두 이()밑에 사사 사(), 아담 하와가 둘이 사로 돌아가지 말라고 일러놨어요. 그런데 거역해버렸어. 그러니까 말씀이 달리 들리는데 쓸쓸하다. 안 맞아, 감정은 싫어요. 얼매나 싫습니까? 자기 버리라 했으니 자기가 좋은데 뭐 어떻게 버리란 거, 또 날마다 십자가 져라 말이야. 그 고생 싫어하는데 감정은, 안 맞다 말이야. 이 건 순종하기 어렵다 말이야.

믿음이 되면 순종이 돼, 예수래야 만, 사랑하라. 그러면 사람은 사랑 못하죠? 사랑하라고는 네가 나를 머리로 맞아들이면 내가 사랑한다. 그 말이에요, 사랑하라, 사랑 못 할 사람을 사랑하라겠습니까? 그러니까 산상설교 수훈은 예언입니다. 예언, 네가 지금 믿으면 내가 나를 머리로 맞아들이면 내가 실행한다, 내가 사랑한다, 사랑이 사랑을 하지, 미움이 어떻게 사랑을 해? 미움이, 이 감정에 매인 거 미움이거든 이 감정에 안 맞으면 미워요. 그것 갖고는 안 되어요. 그 미움이 십자가를 통했어야지. 죽었어야지. 살아있게 안 된다.

 

탕자와 탕자 형을 얘기하면 형은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왔는데 미움만 있어. 미움만 근데 동생은 말할 거 없이 밉지만 그런 놈을 받아주는 아버지가 더 밉다는 거야. 미운 거예요. 그 맘 가지고 무엇이 되겠어? 무엇, 그 마음가지고 어떻게 목적에 다가냐? 언자 회개하고 돌아온 탕자는 누가 아무리 뺨을 때리나 발질로 차나 쫓아내나 천국이지. 이미 죽은걸 죽었으니까 미움이 있을 리 없으니까 미움이 죽었어요. 미움의 뿌리가 죽었어요. 미움의 뿌리는 땅에 속한 나거든요. , 감정적인 나에요. 에 아주 순수한 감정이죠. 인자 사랑뿐이죠. 누구를 대하나 사랑뿐이야. 복음은 그거거든요. 항상 율법정도로 하면 항상 너나가 있어가지고 맞으면 좋고 틀리면 미워하고 그래요. 반대요. 아무 해결이 없어요. 그러면 아까 로마서 인자 도로갑니다.

 

520절 다시 봐요.

십계명을 받은 결과 모든 사람은 스스로 하느님의 율법을 지켜낼 수 없는 존재라 지킬 수 없다. 하나도 못 지킨다. 열 가지는 어떻게 됐냐? 하나도 못 지켜요. 이걸 깨달은 거여. 이거 율법을 지켜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죄가 깊고 깊다는 게야 깊다는 것을 알게 될수록 예수님은 죄인 보러 오셨지. 의인 보러 오신 거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죄가 자기 자신의 죄, 죄가 깊이깊이 발견이 됐어요. 그러면 여기서 죄만 드러나고 방법이 어떤 해결할 방법이 모르면 절망해버리지 않겠어요?

 

죄를 죄에서 떠날 어떤 길이 있거나 방법이 있어야 할 텐데. 그 자리만 있으면 절망해버려요. 길이 없으니까 숨 막혀 죽어요. 그러지만 깊이깊이 깨달을수록 자기 죄를 깨달을수록 어떤 희망이 생기냐? 용서받는다는 게요. 쪼금 깨달았으면 쪼금 용서받고. 많이 깨달았으면 많이 용서를 받고 그래요. 하나도 못 깨달았으면 하나도 용서 그대로고, 깊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자신의 죄가 깊다는 것을 알게 될수록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넘치는 은혜, 넘치는 은혜, 얼마나 죄를 깨달았냐? 따라서 또 그 죄를 없앨 만큼 은혜가 넘쳐야 되잖아요?

 

힘을 받아야 된다. 은총, 은혜는 힘, 일할 힘을 받아, 넘치는 은혜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죄를 물론 안질라면 좋죠? 안질라면, 아무리 안 지려해도 해도 안 지려고 하면 할수록 더 나타나게 된 거야. 뭣과 같으냐면 베드로 장담과 같다는 말이야. 정반대로 세 번이나 부인해버리게 된다 말이야. 자기만이 예수를 따라갔다 왔다 한다고 옥에나 죽는데도 어떤 환경에도 저는 예수만 따라가겠습니다. 근데 그 정반대로 세 번이나 부인해버리잖아요?

베드로는 바보니까 그랬지만은 나는 그렇지 않겠다 하겠어요? 더 반대에요. 더 반대, 더 모든 거를 못하지만 그걸 못 깨달은 거뿐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로마서 520절을 잘 이해를 해야 된다. 그것이 그 아까 나사로 깨달은 태도입니다.

 

 

그럼 인자 61-4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로 란 말은 어느 길로 가야, 하로, 그래서 여 로마서 61절과 15절은 여 520절이 된 그 반문이야. 반문,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더욱더 은혜를 베푸실 수 있게 하려고 계속 죄를 지어야 되겠습니까?

이런 반론이 생긴다 말이야. 아 죄를 깊이 깨달으면 은혜가 많다. 그러니까 하아 그러면 죄 많이 지고 좋겠다. 은혜 많이 받으려면 죄를 많이 지어야 쓰겠다. 그런 반론이 생긴다 말입니다. 다시 짖지 안하더라도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아 깊은 죄의 뿌리까지 드러난다. 그 말입니다.

예를 들면 바울사도가 무슨 죄를 그렇게 지었길래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냐? 도덕적인 죄는 하나도 없어요. 남의 것을 훔친 일도 없고 아주 양심대로 산 사람입니다. 가장 자기는 양심껏 산 사람이야. 근데 단지 하느님의 뜻과 방법을 몰랐어요. 하느님의 뜻, 그래서 인자 그걸 밝히는 데가 어디 있느냐면 사도행전2214절에 있다 말이야. 언자 방법을 찾았어요.

 

그 때 아나니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뜻하신 바를 깨닫게 하시고 뜻, 목적, 하느님의 뜻, 하시고 그 죄 없으신 분을 알아보게 하시고 세 가지입니다. 또 친히 하시는 말씀을 듣게 하시려고 당신을 택했습니다.

이 방법을 바로 갈쳐 준거야. , 하느님의 뜻,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 하느님의 계획이 있어요. 계획이, 요 영혼은 내가 어떤,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훈련시켜가지고 나한테 오게 하겠다. 다 있다는 거야. 이 저 사람하고 나하고 틀린다. 다 틀려요. 틀려도 하느님이 그 사람에 대한 방법과 목적이 있고 또 하느님은 나, 내에 대한 방법과 목적이 있어요. 내게 주신, 처음에 주신 그대로에서 인자 또 방법도 옳게 돼. 그러니까 나하고 틀린다고 해서 아니라고 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언자 뜻하신 바, 계획, 그 다음에는 그

 

<~끊김>

그렁게 우선 요것만 기억한다면 아주 중요한 것은 동기, 방법, 목적, 초하로, 어느 길로 가냐? 그래 꼭 요날만 하루가 아니고 하느님 앞에는 언제나 하로야 하로, 천년도 하루, 말년도 하루 또 하로 중에도 언제든지 현재요. 지금이에요. 지금, 지금 말씀이 들렸느냐 것이죠? 나중에 듣느냐? 전해 듣는 거 소용없고, 지금 들리느냐 가 아주 중요해요. 현재, 이 지금 한 30분 남았는데.

 

또 그 정로를 발견하는데 있고 또 한걸음, 첫걸음, 초하로, 어느 방향 어디로 오려고 생각이 있으면 첫 한걸음을 한 발 이 중요해요. 방향을 어디 짐작해서 서울 간다. 했으면 서울에 간다. 해놓고는 방향을 목포로 딱 돌려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그러면 인자 회개 하려면 아 더디죠? 멀리 갈수록, 한 발 잘못 깨달았으면 돌아와야 하는데 오래 갈수록 회개하기 어렵다요.

 

긍게 저는 지금 육체의 나이는 구십인데 너무 오래 살았어. 저는 오래 살았는데 그러니까 이 회개가 더뎌. 돌아오려니까 시간이 걸려서 그 자꾸 방법을 고쳐 봐요. 언자 80대에 하나로 찾아가자 또 해보니까 또 안돼서 또 둘로 하자. 그러고 살았는데 자꾸 해봤자, 해봤자 워낙 먼데로 방향이 틀리게 가노니까 자꾸 시간이 걸린다 말이야.

그래도 그렇게 스스로라도 정해보고 보니까 쪼금 쪼금 수월한 길이 확실히 발견됐다고는 못했다 해도 그래도 낙심은 안한다. 희망이 있다 말이야. 희망을 가져야,

 

그래서 인자 한걸음에 대해서 사무엘상 20장이야.

다윗과 요나단이 지금 다윗은 지금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이죠? 사울이 죽이려고 하니까 늘 피해 다닌다. 피해, 피해 다닌데 원수의 아들이지만은 아들하고는 다윗하고는 한 몸 같이 살아요. 죽은 자리를 서로 살 자리로 양보하고 서로 죽어주려고 한 몸같이 사랑하는 사이에요. 아버지는 다윗하고는 원순데 그러니까 아버지가 죽이라고 하니까 요나단은 다윗에 대해서 내가 살아 있는 한 걱정 말라고 아버지가 어떤 뜻을 하면 내가 다 알려주마. 그렇게 했어요.

다윗이 라마의 나욧에서 도망하여 와서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가 무엇이며 네 부친 앞에서 나의 죄가 무엇이 간데 그가 내 생명을 찾느뇨?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되 결단코 아니라. 내가 살아있는 한 너 죽지 않는다. 아버지가 죽이려고 하면 내 다 미리 알려가지고 어디가 숨으라고 가르쳐 주겠다, 아니다, 네가 죽지아니하리라 장담한 거야.

내 부친이 대소사를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다 내게 알리고 하지 비밀로 한일은 없다. 지금까지 알게 아니하고는 행함이 없나니 내 부친이 어찌하여 이 일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일은 내게 숨기려 그렇지 아니하리라. 그랬다 말이야. 내가 살아있는 한, 너는 염려마라. 안 죽는다. 내가 다 갈쳐주마.

 

그런데 인자 3절이요.

내가 네게 은혜를 받은 줄을 네 부친이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로 인하여 이를 알게 하지 아니한다. 당신이 죽일 날을 이를 말을 요나단과 한 몸같이 사랑하니까 슬플 것 같으니까 그건 비밀이라. 다른 일은 대소사를 다 알게 하고 할지라도 다윗을 죽이는 일만은 알려주면 그 요나단이 너무 슬플 것 아니냐 게야. 한 몸같이 사랑한 사이인데 그래 그것은 비밀로 한다. 할 것이라. .

이를 알게 하지 아니하리라. 함이더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사심과 내 생명으로 명세하노니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라. 죽고 사는 건 한 걸음, 자 초하로, 어느 방향으로 한 걸음 딛느냐 거야.

 

방향이 바로해서 가지고 들어야지 방향이 틀려가지고 한걸음 잘못 들면 많이 갈수록 시간 낭비가 된다. 목적지 방향을 딱 정했으면 그걸 딱 들이 다니는데. 다른 목적지는 천국 간다고 해놓고는 방향은 다른 데로 가거든. 그러면 인자 회개가 더디다. 이 한 걸음뿐이다. 한걸음, 그 요것도 인자 한문글자로 써보면 자 누구든지 쓸 수 있어요. 한 일() 자 다 쓸 줄 알죠? 한 일(), 하나 쭉, 한 일() , 또 그칠 지() 자 쓰죠? 그칠 지() , 한 일(), 그칠 지(), 바를 정() 자거든요. 그 밑에다가 젊을 소() 자를 써요. 젊을 소() 자도 반드시 쓰면 그칠지() 자여. 젊을 소(), 그러면 젊었을 때 한걸음 그치는 것이 바른 걸음이다. 바르다. 가장 바른 방법이에요. 한걸음에 있다. 한걸음 방향을 정해가지고 한 걸음이 있죠? 방향을 잘못 정해가지고 한 걸음하면 많이 갈수록 시간낭비라 말이야. 그러면 요 성경이나 한문글자나 똑같이 성경이에요. 그러면 인자 21장에 가서는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릭에게 이르니 떨었어. 아이 이 어쩐 일이냐고 깜짝 놀랬어. 다윗을 영접해요. 떨며 영접했어. 떨며, 어이구 큰일 났다. 언자 나 죽겠다. 인자 영접하며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왔느냐? 홀로 왔느냐 여. 큰일 났다.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릭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하여 사울에게 내가 너를 보내는바 네게 명한 이유를 아무것이라도 사람에게 알게 하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 소년, 젊을 소(), 소년들을 여차 여차 한 곳으로 약정하였나이다.

 

요것도 이 실지 사건 대로면 거짓말이 돼요. 정신적으로는 맞지만은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손에 주소서. 나 지금 시장합니다. 시장, 배고프니까 우선 있는 대로 주십시오.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항용, 항상, 항용, 보통, 항용 먹는 떡은 내 수중에 없어요. 아무라도 먹을 수 있는 떡은 없어요. ~~나니 거룩한 떡이 있다 말이야. 이건 제사장만 먹는 거예요.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했으면 주리라. 소년들이, 그 여 뭔 뜻인가 말이야. 아까 거짓말같이 했는데 혼자 지금 피하고 도망 왔는데 소년들은 어쨌냐? 여차 여차 약정했다. 거짓말인데, 근데 여기는 그래 안 해요. 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했으면 주리라. 제사장외에는 먹을 수 없는 떡인데도,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참으로 3일 동안이나 지금 목숨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 무슨 그런 생각이 있겠냐 말이야. 3일 동안이나 부녀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도다. 얼굴도 본적이 없다 하나니 나의 떠난 길이 보통 때라도 여행이라도 그 나그네 여 자요, 약자는 어떻게 했냐면 그칠 지 밑에 그 사람인 둘을 해요. 나란히, 그건 순종이란 순 자입니다. (), 쫓을 종() , 약자가 사람 인 둘을 나란히 한 거야. 그 나그네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이 그릇이 성결하였거든 하물며 오늘날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럼 인자 로마서 6장 다시 봐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더욱더 은혜를 베푸실 수 있게 하려고 계속 죄를 지어서야 되겠습니까? 죄 많은 곳에 은혜 많다. 고렇게만 보면 요 반론이 나올 수 있지 않느냐? 아 그럼 은혜 많이 받으려면 죄를 많이 지어야겠다. 그런 반론이 나온다. 23절이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도 살게 해 주셨는데 계속 죄를 지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세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 한 부분이 되었을 때 이미 우리를 지배하던 죄의 세력을 부셔졌다 말이야. 죄의 세력, 세례는 죄를 회개했다는 표고, 또 양심대로 살겠다는 서약이고, 또 완전히 자기 죽는 것이 세례에요.

물속에 풍 빠졌으면 옛사람 죽었다. 건져 낸 거 부활했다. 그런 뜻이거든. 침례교나 안식교나, 근데 이렇게 물속에 풍 들어갔다 나온다. 그 건 의식뿐이니까 백번 들어갔다 나와도 죄는 안 죽어요. 의식이에요. 그거는, 좀 마음만 조심만 해버리다가 도로, 도로 묵이야. 마음은 변하지 안했으니까 성령세례를 안 받았으니까 건 의식세례만 갖고는 안 된다.

 

성령을 받아야 인자 죽지. 빛이 와야 어둠이 없어지지. 빛이 없는데 어둠은 그대로 있는 거야. 죄의 뿌리는,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산산이 부서졌다. 말이야. 산산이, 이 세례에요 돌아온 탕자 산산이 부서진 거예요. 세상일은 산산이 부서진 것입니다.

 

4

죄를 사랑하던 우리는 세례를 받았다. 죽었다 말이야. 받을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어요. 묻어버렸어요. 그리스도와 함께, 묻혀서 그분과 더불어 장사됐어. 완전히 장사돼, 땅에다 묻어, 됐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같이 우리도 그분의 새 생명, 새 생명, 우리의 표어가 새로워지자 암만 새로워지자 해보도 방법이 틀렸다 말이야. 안 죽으니까 죽을죄가, 탕자같이 죽을죄가 죽어야 되는데, 죽어야 새것이 되는데 그건 그대로 두고 새로워지자, 새로워지자만 번 해봤자 소용없어요. 죄를 물에다 씻어봤자 소용없어요. 이거 뭔 양잿물이나 빨래비누나 세수 비누로 안 된다. 말입니다. 죄라는 건, 물로 씻어서는 안 된다는 거야. 성령의 성령을 씻어야 성령으로, 불과 성령으로, 그럼 요 4절이 새로운 거 있고요.

 

여기 인자 하나 더 보고 베드로전서 41-2절이요.

죄가 산산이 부서졌다. 베드로전서 41-2절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생활 언자 내 뜻대로 사는 생활은 청산하고 감정의 요구는 청산하고 영의 요구,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생활,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우리도 그분과 같은 각오로 언제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견디어 낼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 두십시오. 오늘부터, 초하로부터, 이 시간부터, 준비, 어느 어떤 역경에 부딪쳐도 믿고 감사할 수 있어야 된다. 죽으면 더 감사, 성공, 졸업 했다는 게야.

 

목적이 천국이라면 방법은 죽는 거예요. 어떤 고난이 닥쳐오더라도 견뎌낼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 두십시오.

여러분의 육체가 고난을 받을수록 안 받을수록 어쩌고 받을수록 죄악 그 힘을 잃어버리고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힘을 잃어버린다.

이 안 받으려고 하니까 죄는 아 네가 내 말 잘 들은 게 좋다. 그렇다는 게야. 이 감정의 요구에 잘 맞는다. 이 감정적인 것은 항상 사탄이 지배를 하거든 죄가, 성령에 순종해야 돼. 성령께 순종하느냐? 성령을 거스리고 감정이 따라가느냐?

 

 

2

여러분의 남은 생애, 앞으로, 또 이 시간 다음에 곧. 여러분의 남은 생애를 악한 욕망으로 허비하지 말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애쓰십시오. 하느님의 뜻, 이 방법이 하느님의 뜻이냐 내 뜻이냐 감정의 뜻이냐 영의 뜻이냐 영의 요구냐 감정의 요구냐 인자 요대로고.

갈라디아 516절이요. 인자 거기 바른 방법이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 어느 길로 가냐 어떤 방법으로 가냐?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 가야지. 감정의 요구대로 가서는 안 된다. 인도 하는 대로 따르십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이 어디로 가야할지 성령에, 성령이 시키는 대로 가야하는데 내가 어디로 가야할까? 하로를 해놓고는 내 감정의 요구로 가버리면 안 된다는 거야. 성령이 요구에 따라서 감정의 요구를 거슬려야 된다. 요기 가장 바른 방법이에요. 어디로 가야할지 또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성령이, 줄 것입니다.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만 따라 살면 여러분은 육체의 욕망에 끌려 다니는 짓 따위는 하지 않게 됩니다.

 

17

우리는 성령께서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로 악한일 하기를 좋아하는 본성, 타락한 본성, 아담이 아담이야. 타락한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 인도하는 길을 따라 살며 선한 일을 하고자하는 마음은 우리 본성의 욕망과는 반대라 말이야. 반대의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두 힘, 두 힘, 감정대로 따라 살고 싶은 힘, 성령 따라 살고 싶은 힘, 그러면 어느 힘이 이기느냐 거야. 이 성령의 힘에 절대 순종이 인간의 자유가 있어요. 성령 따라 살고 싶은 마음도 사람에게 있고요. 싫은 마음도 사람에게 있다 게요. 이 인간의 자유가 있어요. 그러면 어느 때 따라 사느냐에 따라서 성령 따라 살면 길이 생기고 감정 따라 살면 성령 거슬려야. 하니까 항상 길이 막힌다는 거야. 항상 방황하다 말아.

두 힘은 서로 우리를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싸움, 그리고 우리는 양쪽 틈에 끼어서 자유롭게 원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자유롭게, 오늘 아침에 말씀은 요

 

16절 갈라디아 516, 18. 그러고 그 다음에는 인자

그러나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만 따라 살면 돼요. 어느 길로 가냐? 방향을 바로 정했으면 성령 따라 사느냐 감정 따라 사느냐 여. 길이에요. 여기서 인자 길이 달라져버려. 나사로는 성령 따라 산 사람이고 이 비유고 부자는 감정 따라 산사람의 그 방법이야. 그 결론이 목적이가 틀리다. 목적이 달라져 버리잖아요? 반대방향은.

더 이상 억지로 율법에 복종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만 따라 살면 무엇에 방법을 지키려고 무엇을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 이미 그 죽었으니까 인자 새 생활해야죠? 성령만 따라 살아야죠. 여러분의 본성이 시키는 대로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살면 여러분의 생활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어떤 결과냐?

곧 더러운 생각, 육신의 쾌락, 쾌락을 찾는 마음, 육신의 쾌락을 찾는 마음, 엇 저녁에 한번, 마음껏 한번 겁나게 한번 풀어봤죠? 다 풀어 버려야지. 인자 초하로(初何路)부터가 초하로(初何路)부터 바른 마음으로 돌려야죠? 그믐이라 그믐, 섣달그믐, 초하로(初何路)에 하롯 날 먹었던 마음을 섣달그믐날 가서 청산한 날이야. 청산, 생각해보는 거야. 어떻게 살았냐? 그 인자 다음 시간에 ~~~

 

우상숭배, 이건 몸 따라 사는 몸의 우상이야. 몸이, 형상이 되지 우상숭배, 마술, 자기방법, 베드로방법, 죽지 마시오. 사탄아, 이거 마술이야, 헐뜯음과 싸움 질투와 분노, 언제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일. 이거 다 방법에 틀린 거여. , 불평과 비판적인 태도, 자기의 작은 당파, 당파 외에는 모두 나쁜 것으로 인정하는 배타주의, 내 뜻에 안 맞는 건 무조건 배타야. 배타라니까 배타 분다, 침을 뱉는다, 더럽다, 침 뱉으면 더럽다는 표현 아닙니까? 배타주의, 거역하는 주의, 늘 감정은 성경을 거슬려 안 맞는다고, 성령은 감정을 자꾸 거슬리라는데 순종을 안 해. 이이 사람 자기 있어요. 배타주의와 거기서 나오는 잘못된 교설, 잘못된 교설, 시기, 살인, 주장,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따위, 따위입니다.

전에는 말을 했지만 한 번 더 당부합니다. 누구든지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를 물려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 천국, 정반대라 말이야. 언자 마지막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생활을 지배하실 때 그분은 우리 속에서 다음과 같은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의,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자기감정을 지배하는 거 절제요. 자제라 말이야. 여기에서는 율법에 반대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들은 악한 욕망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은, 가장 옳은 방법이야.

만일 우리가 지금 성령의 능력으로 살고 있다면 모든 생활 역시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성령에 따르면 죽고, 항상 과거는 보내고 또 앞으로 새 것, 새 것, 그렇게 하면 명예와 인기를 얻고자 질투하거나 악한 감정을 가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자 다했어요.

 

 

 

이사야 3018-21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대저 하느님이시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온에 거하며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 그가 너희 부르짖는 소리를 인하여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할 것이라.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내 뒤에서 말소리가 내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라. 바른길이라 말이야.

바른길, 정로(正路), 하로 어느 길로 가냐 정로로 가야 된다. 정로, 잘못 가분 면, 반대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 정로, 나사로 가는 길을 가야죠? 거지 나사로 가는 길로 가야지. 부자 가는 길로 가면 목적지 틀려버린다. 정반대로 되어버린다. 방법도 틀리고 동기도 틀린다 말이야. 땅에서만 생각 같으면 거지는 이미 땅에서는 희망이 없어. 스스로 버렸어요. 그렇게 살 필요가 없어. 깨달았어요.

이 항상 땅에서는 죽는 생활이야. 죽어 창. 날로, 날로 몸은 죽고 죽어지고 죽음으로 가고, 영은 올라가는 거여. 이 방법이야. 자꾸 죽으면 살아. 말씀, 말쌈, 말씀, 말씀은 마음에 씌어졌어요. 말면 살고 또 말씀 그러면 섰다. 그래서 살 거() 자가 주검 시 밑에다 예 고()한자 있고 그게 살 거() , 보통 쓰는 거는 또 주검 시 밑에다가 설 립(), 그것도 살 거자여. 죽으면 와서 바로 서요. 그 말씀이 서요. 권위가 있어요. 능이 있어요. 말씀에, 이 말씀, 또 주검 시 밑에다가 요렇게 기댈 상, 기댄다. 책상에다 기댈 상 궤 궤합니다. 딱 죽음으로 내놓고 하느님께 기대고 의지한다 말이야. 신뢰, 믿고 맡겨버려. 부탁해버려. 하느님께, 알아서 해주시오. 그 방법이야. 하느님의 뜻에, 죽으나 사나 뜻대로 맡겨버려야. 내 방법으로 하려고 해봤자 소용없다. 하느님의 방법은 그리스도와 함께, 나 혼자는 안 되고 믿음은 그리스도와 함께입니다.

 

이 동기, 방법, 목적이 순수해야지. 하나도 동기도 틀리면 방법도 목적 다 틀려요. 이 첫 동기.

 

우리가 믿는 것은 어떤 목적에서 출발했냐? 그거에요. 목적이 분명한데다 동기, 이게 동기와 목적과 첫째가 중요합니다. 이게 동기가 바르면 동기와 목적이 바르면 방법은 필연적으로 따라와요. 이래 목적과 동기가 다르면 또 방법도 틀려요. 아무리 해봤자 헛수고여.

긍게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그먼 요 21절 봐요. 18절과 그 18절은 동기라면 21절은 인자 구체적으로 방법이죠? 바른길을 가죠? 그럼 인자 목적이 달라요. 목적, 그 여기서 목적을 이제 하면 26절이 돼.

그 처음에 18절에서 다시 봐요.

쌍방에서 기다려요. 하느님도 인간의 마음 태도, 마음먹는 태도를 기다립니다. 또 사람은 어떤 하느님을 기다리느냐는 거야. 육으로만 좋게인 하느님을 기다렸냐? 영이 살 수 있는 길을 목적하고 기다렸냐? 말하자면 천국이냐? 지옥이냐? 거야 누구든지 양심으로 지옥을 원한 사람 없어요. 목적은 천국 간다고 똑같아. 가지만은 방법과 그 궁극목적은 틀려요. 생각은 천국에 간다. 하지만은 이 땅이 천국인 줄 알아버린다. 땅이, 이 땅에서는 탕자같이 돼 버려야는데 말이야.

 

 

허무를 깨달아야 하는데 말이야. 여기서만 참을 찾으려고 하니 있겠어요? 그 그림자 그림자를 보고 그 사람을 만나려고 하니 되겠냐 말이야.

이름은 예수를 부르고 예수와 같이 산다고 하면서 항상 아담하고 짝한다. 말이야, 땅에 속한. 근데 하느님은 어떤 인간을 기다리느냐? 사랑해서 기다리는데 공이 하느님이라 오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기다려요. 하느님은 공평히 하신다. 하느님은 아아 어쩌면 나만 사랑한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걸 믿는 사람, 사랑이니까 무엇을 지시하더라도 순종한 거야. 사랑이니까. 사랑이여.

하느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가장 바른 방법이에요. 또 예수와 함께 하는 것이 가장 바른 방법이야. 나 혼자 헐하려면 안 된다. 말이야. 예수 함께 한다하면서 항상 내가 있거든. 내가, 자기를 버리고 예수님 말씀이 다른 방법으로 할 말씀이 있다면 첫 째 나 따러 오려면 자기를 버리라 했거든요. 인제 그 방법이 옳은데 예수님이 방법대로 안 해요. 아직까지 내방법대로 해요. 그게 틀려요. 목적에 다다를 수 없어. 긍게 먼저 하느님은 공평히 하신다는 걸 믿는 믿어요. 그러면 그 신앙은 내게 주어진 환경 뭐 사건, 다 받아들인 거여. 그 환경에서 자꾸 깨달아가는 거예요. 하느님이 내 영혼을 사랑해서 이런 환경을 허락했다. 또 내 실지 영혼은 그걸 구한 거, 원한 것이다.

 

이 영과 하느님과는 통하거든요. 그런데 영이 불순종했기 때문에 하느님하고 통하는 길이 막혀버렸어요. 인자 사탄하고 통해요. 사탄, 사탄은 뭐냐? 이 감정이에요. 감정, 사람은 세 가지 있잖아요? 몸이 있고, 혼이 있고, 영이 있다 말입니다.

사람도 삼위가 있어요. 그런데 영이 하느님께 불순종한 결과로 그 영의 기능, 말하자면 신, , 신의 권위를 상실했어요. 그러니까 언자 혼은, 영은 진리라면 혼은 지배인이라고 본다. 지배인, 몸을 부리는 지배인이에요. 그러니까 주인이 자기 본분을 잃어버리니까, 말씀을 거역해버리니까 영이, 그러니까 언자 혼이 주인 노릇을 해요. 몸을 쓰고, 예를 들면 부자는 혼이 주인노릇이고 거지인 나사로는 하느님이, 그리스도가 주인이여. 하느님이 주인이여. 자기는 없어요. 아무 자기권리 없어요. 자기 권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 말이야. 온전히 하느님의 뜻대로 또 하느님의 지시대로 말씀대로 순종하고, 그게 목적에 달했지만은 부자는 땅에 속한 거 목적하고 이 혼적인거 육적인, 감정적인 거 거기에 매였기 때문에 다 틀려버린다. 세 가지다, 동기도 잘못 됐고 방법도 틀렸고 목적도 반대방향으로 갑니다.

 

이게 말씀은 간단하게 하면 아주 간단해요. , 쪼금 더하면 씀, , , 섯다, 쓰다, , 그러면 마음에 양심 씌어졌다 그래요. 썼다 또한 세 가지 네 가지를 하면은 쓰다. 쓰다, 괴롭다, 쓸 고() 자 쓸 신(), 여그 쓴 것을 단 것으로 바까진 거 신앙이에요. 쓴 것은, 게 믿음은 고통이 달고 안 믿으면 쓰고 그것 뿐이여. 그리스도에게서는 십자가가 달고, 아담에게서는 십자가 싫어. 내게도 두 가지 항상, 그리스도 아담, 유다 그리스도 예수, 에서 야곱, 둘이 있어요.

 

이기 첫째 인자 믿음이냐? 믿음이 중요하다. 방법은 믿음이야. 언자 그러면 자꾸 인자 복습합니다만, 그러면 사람이 어떤 하느님을 바라냐? 하지만 공평히 계신다.

그것이 예를 들면 부자와 나사로를 말한 것이 된다 말이야. 나사로 생활은 그저 하느님이 주신대로 병을 주시든지. 무엇을 주시든지. 그대로 감사히 받아들인 것이고 부자는 땅의 것만 목적하고 땅의 것만 찾으려고 하는 방법이라 말이야. 이 다 틀렸어요. 공이 하느님을 믿지를 않아요. 자기감정에 혼에 맞는 감정에 맞는 것만 찾다가 영하고는 틀려버린다. 목적지에 달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 18절에서 길이 달라진다 말이야 .어떤 하느님을 지금 바라냐? 올 초하로 어느 길로 가야 옳은 것이냐? 사람의 가는 길이 무엇이 옳으냐? 길 로() , 각각, 진리에 순종하겠냐?

그러면 인제 그것이 정로를, 이 감정적으로나 몸과 영이 다 관련이 된다 말이야. 환난이 떡이 돼. 어떤 환난이 닥치더라도 엇 저녁에도 떡 먹었지? , 아 처음 먹은 떡도 있데. 아 이거 적다, 참 좋다, 이 감정의 요구대로 하면 그 나 한 대접 다 먹어도 양이 안 찬데. 아 그렇지만 그럴 수는 없죠?

 

근데 이 감정은 좋아하는데. 언자 그 값을 치르려면 공짜는 없거든요 여 떡, 찰떡은 언자 쳐야 돼요? 쳐서 메로 쳐서 되지. , 벌떡, 벌떡, 꿀떡, 벌떡 그래요. 꿀떡, 마음대로 꿀떡 삼켜버려. 놀래요. 벌떡, 그러니까 떡도 좋지만 떡에다가 꿀을 찍으면 얼마냐 좋냐? 근데 인자 여 방법을 찾습니다. 방법은 정로, 21,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를 행하라. 예수께서도 나 따라 오려면 자기 버려라. 그 바른 거 그거 순종이야.

 

오늘 초하로부터 뜻을, 방법을, 예수님의 하느님의 뜻에다가, 방법에다가 오라, , 오지 말라, , 이 순종만 하면 되는 거여. 순종,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지시대로, 머리에 신대로 순종하는데 그건 예수는 교회의 머리 아닙니까? 머리, 교회는 우리 몸인데 우리 머리는 말이야. 이 머리의 지시대로 하는데 이 발이나 몸의 지시대로, 거꾸로 됐다. 발이 수월한 길, 몸도 편한 길, 십자가 싫어한다고 이 예수님은 십자가 지고 따라오라. 날마다 자기 십자가지고 따라오라. 그것이 가장 옳은 방법인데 그 방법은 싫어, 감정은 싫어해요. 쓰다 말이 쓰요. 이 말씀 씌어졌는데 행하려면 쓰다. 안 맞아요?

성경의 진리, 예수의 말씀은 감정으론 다 반대여. 역설이라 말이야. 감정에 맞는 말이 없어요. 맞는데 구체적인 방법은 틀리거든. 맞는 것은 인자 내 길은 내가 깨어진 머리는 쉽다. 아 그 말은 좋아. 근데 멍에는 엄한 멍에를 메고 자, 가볍고 쉽고 편하다. 근데 고 길은 안가요. 우리는, 편히 자기 방법으로 갈라고 그래. 틀려. .

 

그런 여기 22절은 또 너희 조악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진 것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요것은 완전 자기부정, 버리고 따라오라. 이거 순종이거든요. 정로로, 정로를 걸으면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거, 자기 버리고 따라오라. 그게 순종입니다.

 

 

인자 목적은 26

여호와께서 백성의 상처를 상처, 얼마나 상처가 있겠소? 죽을 고생을 했고 맞고 그랬으니까,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 뺨도 맞고 막 발질로 채이고. ,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이거 목적이래.

햇빛이 칠 배나, 칠 배나, 그 아주 밝은 거 밝아, 이 목적이 천국 아니 여? 천국, 목적에 살란 거야 동기, 방법, 목적, 초하로가 중요하다니까 어느 방향으로, 바로 방향을 돌리냐? 또 어떤 방법으로 가냐, 나 혼자 가냐, 예수 함께 하냐, 성경말씀은 모두 그 내용이에요, 나와 함께.

 

처음에 아담이 그 방법이 틀렸어요. 뭐냐? 창세기 3장에 하느님의 음성이 듣기 싫어요. 그것부터가 지금 불순종의 결과거든요. 말라하는 걸 거역해버렸거든, 그러고 나니까 말씀이 감정에 안 맞으니까 쓸쓸하니 가을바람이 불었다 말이야. 그러니까 이 한문글자 이를 운() 자 이를 운, 두 이()밑에 사사 사(), 아담 하와가 둘이 사로 돌아가지 말라고 일러놨어요. 그런데 거역해버렸어. 그러니까 말씀이 달리 들리는데 쓸쓸하다. 안 맞아, 감정은 싫어요. 얼매나 싫습니까? 자기 버리라 했으니 자기가 좋은데 뭐 어떻게 버리란 거, 또 날마다 십자가 져라 말이야. 그 고생 싫어하는데 감정은, 안 맞다 말이야. 이 건 순종하기 어렵다 말이야.

믿음이 되면 순종이 돼, 예수래야 만, 사랑하라. 그러면 사람은 사랑 못하죠? 사랑하라고는 네가 나를 머리로 맞아들이면 내가 사랑한다. 그 말이에요, 사랑하라, 사랑 못 할 사람을 사랑하라겠습니까? 그러니까 산상설교 수훈은 예언입니다. 예언, 네가 지금 믿으면 내가 나를 머리로 맞아들이면 내가 실행한다, 내가 사랑한다, 사랑이 사랑을 하지, 미움이 어떻게 사랑을 해? 미움이, 이 감정에 매인 거 미움이거든 이 감정에 안 맞으면 미워요. 그것 갖고는 안 되어요. 그 미움이 십자가를 통했어야지. 죽었어야지. 살아있게 안 된다.

 

탕자와 탕자 형을 얘기하면 형은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왔는데 미움만 있어. 미움만 근데 동생은 말할 거 없이 밉지만 그런 놈을 받아주는 아버지가 더 밉다는 거야. 미운 거예요. 그 맘 가지고 무엇이 되겠어? 무엇, 그 마음가지고 어떻게 목적에 다가냐? 언자 회개하고 돌아온 탕자는 누가 아무리 뺨을 때리나 발질로 차나 쫓아내나 천국이지. 이미 죽은걸 죽었으니까 미움이 있을 리 없으니까 미움이 죽었어요. 미움의 뿌리가 죽었어요. 미움의 뿌리는 땅에 속한 나거든요. , 감정적인 나에요. 에 아주 순수한 감정이죠. 인자 사랑뿐이죠. 누구를 대하나 사랑뿐이야. 복음은 그거거든요. 항상 율법정도로 하면 항상 너나가 있어가지고 맞으면 좋고 틀리면 미워하고 그래요. 반대요. 아무 해결이 없어요. 그러면 아까 로마서 인자 도로갑니다.

 

520절 다시 봐요.

십계명을 받은 결과 모든 사람은 스스로 하느님의 율법을 지켜낼 수 없는 존재라 지킬 수 없다. 하나도 못 지킨다. 열 가지는 어떻게 됐냐? 하나도 못 지켜요. 이걸 깨달은 거여. 이거 율법을 지켜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죄가 깊고 깊다는 게야 깊다는 것을 알게 될수록 예수님은 죄인 보러 오셨지. 의인 보러 오신 거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죄가 자기 자신의 죄, 죄가 깊이깊이 발견이 됐어요. 그러면 여기서 죄만 드러나고 방법이 어떤 해결할 방법이 모르면 절망해버리지 않겠어요?

 

죄를 죄에서 떠날 어떤 길이 있거나 방법이 있어야 할 텐데. 그 자리만 있으면 절망해버려요. 길이 없으니까 숨 막혀 죽어요. 그러지만 깊이깊이 깨달을수록 자기 죄를 깨달을수록 어떤 희망이 생기냐? 용서받는다는 게요. 쪼금 깨달았으면 쪼금 용서받고. 많이 깨달았으면 많이 용서를 받고 그래요. 하나도 못 깨달았으면 하나도 용서 그대로고, 깊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자신의 죄가 깊다는 것을 알게 될수록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넘치는 은혜, 넘치는 은혜, 얼마나 죄를 깨달았냐? 따라서 또 그 죄를 없앨 만큼 은혜가 넘쳐야 되잖아요?

 

힘을 받아야 된다. 은총, 은혜는 힘, 일할 힘을 받아, 넘치는 은혜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죄를 물론 안질라면 좋죠? 안질라면, 아무리 안 지려해도 해도 안 지려고 하면 할수록 더 나타나게 된 거야. 뭣과 같으냐면 베드로 장담과 같다는 말이야. 정반대로 세 번이나 부인해버리게 된다 말이야. 자기만이 예수를 따라갔다 왔다 한다고 옥에나 죽는데도 어떤 환경에도 저는 예수만 따라가겠습니다. 근데 그 정반대로 세 번이나 부인해버리잖아요?

베드로는 바보니까 그랬지만은 나는 그렇지 않겠다 하겠어요? 더 반대에요. 더 반대, 더 모든 거를 못하지만 그걸 못 깨달은 거뿐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로마서 520절을 잘 이해를 해야 된다. 그것이 그 아까 나사로 깨달은 태도입니다.

 

그럼 인자 61-4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로 란 말은 어느 길로 가야, 하로, 그래서 여 로마서 61절과 15절은 여 520절이 된 그 반문이야. 반문,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더욱더 은혜를 베푸실 수 있게 하려고 계속 죄를 지어야 되겠습니까?

이런 반론이 생긴다 말이야. 아 죄를 깊이 깨달으면 은혜가 많다. 그러니까 하아 그러면 죄 많이 지고 좋겠다. 은혜 많이 받으려면 죄를 많이 지어야 쓰겠다. 그런 반론이 생긴다 말입니다. 다시 짖지 안하더라도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아 깊은 죄의 뿌리까지 드러난다. 그 말입니다.

예를 들면 바울사도가 무슨 죄를 그렇게 지었길래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냐? 도덕적인 죄는 하나도 없어요. 남의 것을 훔친 일도 없고 아주 양심대로 산 사람입니다. 가장 자기는 양심껏 산 사람이야. 근데 단지 하느님의 뜻과 방법을 몰랐어요. 하느님의 뜻, 그래서 인자 그걸 밝히는 데가 어디 있느냐면 사도행전2214절에 있다 말이야. 언자 방법을 찾았어요.

 

그 때 아나니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뜻하신 바를 깨닫게 하시고 뜻, 목적, 하느님의 뜻, 하시고 그 죄 없으신 분을 알아보게 하시고 세 가지입니다. 또 친히 하시는 말씀을 듣게 하시려고 당신을 택했습니다.

이 방법을 바로 갈쳐 준거야. , 하느님의 뜻,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 하느님의 계획이 있어요. 계획이, 요 영혼은 내가 어떤,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훈련시켜가지고 나한테 오게 하겠다. 다 있다는 거야. 이 저 사람하고 나하고 틀린다. 다 틀려요. 틀려도 하느님이 그 사람에 대한 방법과 목적이 있고 또 하느님은 나, 내에 대한 방법과 목적이 있어요. 내게 주신, 처음에 주신 그대로에서 인자 또 방법도 옳게 돼. 그러니까 나하고 틀린다고 해서 아니라고 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언자 뜻하신 바, 계획, 그 다음에는 그

 

<~끊김>

그렁게 우선 요것만 기억한다면 아주 중요한 것은 동기, 방법, 목적, 초하로, 어느 길로 가냐? 그래 꼭 요날만 하루가 아니고 하느님 앞에는 언제나 하로야 하로, 천년도 하루, 말년도 하루 또 하로 중에도 언제든지 현재요. 지금이에요. 지금, 지금 말씀이 들렸느냐 것이죠? 나중에 듣느냐? 전해 듣는 거 소용없고, 지금 들리느냐 가 아주 중요해요. 현재, 이 지금 한 30분 남았는데.

 

또 그 정로를 발견하는데 있고 또 한걸음, 첫걸음, 초하로, 어느 방향 어디로 오려고 생각이 있으면 첫 한걸음을 한 발 이 중요해요. 방향을 어디 짐작해서 서울 간다. 했으면 서울에 간다. 해놓고는 방향을 목포로 딱 돌려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그러면 인자 회개 하려면 아 더디죠? 멀리 갈수록, 한 발 잘못 깨달았으면 돌아와야 하는데 오래 갈수록 회개하기 어렵다요.

 

긍게 저는 지금 육체의 나이는 구십인데 너무 오래 살았어. 저는 오래 살았는데 그러니까 이 회개가 더뎌. 돌아오려니까 시간이 걸려서 그 자꾸 방법을 고쳐 봐요. 언자 80대에 하나로 찾아가자 또 해보니까 또 안돼서 또 둘로 하자. 그러고 살았는데 자꾸 해봤자, 해봤자 워낙 먼데로 방향이 틀리게 가노니까 자꾸 시간이 걸린다 말이야.

그래도 그렇게 스스로라도 정해보고 보니까 쪼금 쪼금 수월한 길이 확실히 발견됐다고는 못했다 해도 그래도 낙심은 안한다. 희망이 있다 말이야. 희망을 가져야,

 

그래서 인자 한걸음에 대해서 사무엘상 20장이야.

다윗과 요나단이 지금 다윗은 지금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이죠? 사울이 죽이려고 하니까 늘 피해 다닌다. 피해, 피해 다닌데 원수의 아들이지만은 아들하고는 다윗하고는 한 몸 같이 살아요. 죽은 자리를 서로 살 자리로 양보하고 서로 죽어주려고 한 몸같이 사랑하는 사이에요. 아버지는 다윗하고는 원순데 그러니까 아버지가 죽이라고 하니까 요나단은 다윗에 대해서 내가 살아 있는 한 걱정 말라고 아버지가 어떤 뜻을 하면 내가 다 알려주마. 그렇게 했어요.

다윗이 라마의 나욧에서 도망하여 와서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가 무엇이며 네 부친 앞에서 나의 죄가 무엇이 간데 그가 내 생명을 찾느뇨?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되 결단코 아니라. 내가 살아있는 한 너 죽지 않는다. 아버지가 죽이려고 하면 내 다 미리 알려가지고 어디가 숨으라고 가르쳐 주겠다, 아니다, 네가 죽지아니하리라 장담한 거야.

내 부친이 대소사를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다 내게 알리고 하지 비밀로 한일은 없다. 지금까지 알게 아니하고는 행함이 없나니 내 부친이 어찌하여 이 일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일은 내게 숨기려 그렇지 아니하리라. 그랬다 말이야. 내가 살아있는 한, 너는 염려마라. 안 죽는다. 내가 다 갈쳐주마.

 

 

그런데 인자 3절이요.

내가 네게 은혜를 받은 줄을 네 부친이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로 인하여 이를 알게 하지 아니한다. 당신이 죽일 날을 이를 말을 요나단과 한 몸같이 사랑하니까 슬플 것 같으니까 그건 비밀이라. 다른 일은 대소사를 다 알게 하고 할지라도 다윗을 죽이는 일만은 알려주면 그 요나단이 너무 슬플 것 아니냐 게야. 한 몸같이 사랑한 사이인데 그래 그것은 비밀로 한다. 할 것이라. .

이를 알게 하지 아니하리라. 함이더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사심과 내 생명으로 명세하노니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라. 죽고 사는 건 한 걸음, 자 초하로, 어느 방향으로 한 걸음 딛느냐 거야.

 

방향이 바로해서 가지고 들어야지 방향이 틀려가지고 한걸음 잘못 들면 많이 갈수록 시간 낭비가 된다. 목적지 방향을 딱 정했으면 그걸 딱 들이 다니는데. 다른 목적지는 천국 간다고 해놓고는 방향은 다른 데로 가거든. 그러면 인자 회개가 더디다. 이 한 걸음뿐이다. 한걸음, 그 요것도 인자 한문글자로 써보면 자 누구든지 쓸 수 있어요. 한 일() 자 다 쓸 줄 알죠? 한 일(), 하나 쭉, 한 일() , 또 그칠 지() 자 쓰죠? 그칠 지() , 한 일(), 그칠 지(), 바를 정() 자거든요. 그 밑에다가 젊을 소() 자를 써요. 젊을 소() 자도 반드시 쓰면 그칠지() 자여. 젊을 소(), 그러면 젊었을 때 한걸음 그치는 것이 바른 걸음이다. 바르다. 가장 바른 방법이에요. 한걸음에 있다. 한걸음 방향을 정해가지고 한 걸음이 있죠? 방향을 잘못 정해가지고 한 걸음하면 많이 갈수록 시간낭비라 말이야. 그러면 요 성경이나 한문글자나 똑같이 성경이에요. 그러면 인자 21장에 가서는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릭에게 이르니 떨었어. 아이 이 어쩐 일이냐고 깜짝 놀랬어. 다윗을 영접해요. 떨며 영접했어. 떨며, 어이구 큰일 났다. 언자 나 죽겠다. 인자 영접하며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왔느냐? 홀로 왔느냐 여. 큰일 났다.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릭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하여 사울에게 내가 너를 보내는바 네게 명한 이유를 아무것이라도 사람에게 알게 하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 소년, 젊을 소(), 소년들을 여차 여차 한 곳으로 약정하였나이다.

 

요것도 이 실지 사건 대로면 거짓말이 돼요. 정신적으로는 맞지만은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손에 주소서. 나 지금 시장합니다. 시장, 배고프니까 우선 있는 대로 주십시오.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항용, 항상, 항용, 보통, 항용 먹는 떡은 내 수중에 없어요. 아무라도 먹을 수 있는 떡은 없어요. ~~나니 거룩한 떡이 있다 말이야. 이건 제사장만 먹는 거예요.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했으면 주리라. 소년들이, 그 여 뭔 뜻인가 말이야. 아까 거짓말같이 했는데 혼자 지금 피하고 도망 왔는데 소년들은 어쨌냐? 여차 여차 약정했다. 거짓말인데, 근데 여기는 그래 안 해요. 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했으면 주리라. 제사장외에는 먹을 수 없는 떡인데도,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참으로 3일 동안이나 지금 목숨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 무슨 그런 생각이 있겠냐 말이야. 3일 동안이나 부녀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도다. 얼굴도 본적이 없다 하나니 나의 떠난 길이 보통 때라도 여행이라도 그 나그네 여 자요, 약자는 어떻게 했냐면 그칠 지 밑에 그 사람인 둘을 해요. 나란히, 그건 순종이란 순 자입니다. (), 쫓을 종() , 약자가 사람 인 둘을 나란히 한 거야. 그 나그네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이 그릇이 성결하였거든 하물며 오늘날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럼 인자 로마서 6장 다시 봐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더욱더 은혜를 베푸실 수 있게 하려고 계속 죄를 지어서야 되겠습니까? 죄 많은 곳에 은혜 많다. 고렇게만 보면 요 반론이 나올 수 있지 않느냐? 아 그럼 은혜 많이 받으려면 죄를 많이 지어야겠다. 그런 반론이 나온다. 23절이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도 살게 해 주셨는데 계속 죄를 지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세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 한 부분이 되었을 때 이미 우리를 지배하던 죄의 세력을 부셔졌다 말이야. 죄의 세력, 세례는 죄를 회개했다는 표고, 또 양심대로 살겠다는 서약이고, 또 완전히 자기 죽는 것이 세례에요.

물속에 풍 빠졌으면 옛사람 죽었다. 건져 낸 거 부활했다. 그런 뜻이거든. 침례교나 안식교나, 근데 이렇게 물속에 풍 들어갔다 나온다. 그 건 의식뿐이니까 백번 들어갔다 나와도 죄는 안 죽어요. 의식이에요. 그거는, 좀 마음만 조심만 해버리다가 도로, 도로 묵이야. 마음은 변하지 안했으니까 성령세례를 안 받았으니까 건 의식세례만 갖고는 안 된다.

 

성령을 받아야 인자 죽지. 빛이 와야 어둠이 없어지지. 빛이 없는데 어둠은 그대로 있는 거야. 죄의 뿌리는,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산산이 부서졌다. 말이야. 산산이, 이 세례에요 돌아온 탕자 산산이 부서진 거예요. 세상일은 산산이 부서진 것입니다.

 

4

죄를 사랑하던 우리는 세례를 받았다. 죽었다 말이야. 받을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어요. 묻어버렸어요. 그리스도와 함께, 묻혀서 그분과 더불어 장사됐어. 완전히 장사돼, 땅에다 묻어, 됐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같이 우리도 그분의 새 생명, 새 생명, 우리의 표어가 새로워지자 암만 새로워지자 해보도 방법이 틀렸다 말이야. 안 죽으니까 죽을죄가, 탕자같이 죽을죄가 죽어야 되는데, 죽어야 새것이 되는데 그건 그대로 두고 새로워지자, 새로워지자만 번 해봤자 소용없어요. 죄를 물에다 씻어봤자 소용없어요. 이거 뭔 양잿물이나 빨래비누나 세수 비누로 안 된다. 말입니다. 죄라는 건, 물로 씻어서는 안 된다는 거야. 성령의 성령을 씻어야 성령으로, 불과 성령으로, 그럼 요 4절이 새로운 거 있고요.

 

 

여기 인자 하나 더 보고 베드로전서 41-2절이요.

죄가 산산이 부서졌다. 베드로전서 41-2절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생활 언자 내 뜻대로 사는 생활은 청산하고 감정의 요구는 청산하고 영의 요구,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생활,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우리도 그분과 같은 각오로 언제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견디어 낼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 두십시오. 오늘부터, 초하로부터, 이 시간부터, 준비, 어느 어떤 역경에 부딪쳐도 믿고 감사할 수 있어야 된다. 죽으면 더 감사, 성공, 졸업 했다는 게야.

 

목적이 천국이라면 방법은 죽는 거예요. 어떤 고난이 닥쳐오더라도 견뎌낼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 두십시오.

여러분의 육체가 고난을 받을수록 안 받을수록 어쩌고 받을수록 죄악 그 힘을 잃어버리고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힘을 잃어버린다.

이 안 받으려고 하니까 죄는 아 네가 내 말 잘 들은 게 좋다. 그렇다는 게야. 이 감정의 요구에 잘 맞는다. 이 감정적인 것은 항상 사탄이 지배를 하거든 죄가, 성령에 순종해야 돼. 성령께 순종하느냐? 성령을 거스리고 감정이 따라가느냐?

 

2

여러분의 남은 생애, 앞으로, 또 이 시간 다음에 곧. 여러분의 남은 생애를 악한 욕망으로 허비하지 말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애쓰십시오. 하느님의 뜻, 이 방법이 하느님의 뜻이냐 내 뜻이냐 감정의 뜻이냐 영의 뜻이냐 영의 요구냐 감정의 요구냐 인자 요대로고.

갈라디아 516절이요. 인자 거기 바른 방법이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 어느 길로 가냐 어떤 방법으로 가냐?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 가야지. 감정의 요구대로 가서는 안 된다. 인도 하는 대로 따르십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이 어디로 가야할지 성령에, 성령이 시키는 대로 가야하는데 내가 어디로 가야할까? 하로를 해놓고는 내 감정의 요구로 가버리면 안 된다는 거야. 성령이 요구에 따라서 감정의 요구를 거슬려야 된다. 요기 가장 바른 방법이에요. 어디로 가야할지 또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성령이, 줄 것입니다.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만 따라 살면 여러분은 육체의 욕망에 끌려 다니는 짓 따위는 하지 않게 됩니다.

 

17

우리는 성령께서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로 악한일 하기를 좋아하는 본성, 타락한 본성, 아담이 아담이야. 타락한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 인도하는 길을 따라 살며 선한 일을 하고자하는 마음은 우리 본성의 욕망과는 반대라 말이야. 반대의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두 힘, 두 힘, 감정대로 따라 살고 싶은 힘, 성령 따라 살고 싶은 힘, 그러면 어느 힘이 이기느냐 거야. 이 성령의 힘에 절대 순종이 인간의 자유가 있어요. 성령 따라 살고 싶은 마음도 사람에게 있고요. 싫은 마음도 사람에게 있다 게요. 이 인간의 자유가 있어요. 그러면 어느 때 따라 사느냐에 따라서 성령 따라 살면 길이 생기고 감정 따라 살면 성령 거슬려야. 하니까 항상 길이 막힌다는 거야. 항상 방황하다 말아.

두 힘은 서로 우리를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싸움, 그리고 우리는 양쪽 틈에 끼어서 자유롭게 원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자유롭게, 오늘 아침에 말씀은 요

 

 

16절 갈라디아 516, 18. 그러고 그 다음에는 인자

그러나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만 따라 살면 돼요. 어느 길로 가냐? 방향을 바로 정했으면 성령 따라 사느냐 감정 따라 사느냐 여. 길이에요. 여기서 인자 길이 달라져버려. 나사로는 성령 따라 산 사람이고 이 비유고 부자는 감정 따라 산사람의 그 방법이야. 그 결론이 목적이가 틀리다. 목적이 달라져 버리잖아요? 반대방향은.

더 이상 억지로 율법에 복종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만 따라 살면 무엇에 방법을 지키려고 무엇을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 이미 그 죽었으니까 인자 새 생활해야죠? 성령만 따라 살아야죠. 여러분의 본성이 시키는 대로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살면 여러분의 생활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어떤 결과냐?

곧 더러운 생각, 육신의 쾌락, 쾌락을 찾는 마음, 육신의 쾌락을 찾는 마음, 엇 저녁에 한번, 마음껏 한번 겁나게 한번 풀어봤죠? 다 풀어 버려야지. 인자 초하로(初何路)부터가 초하로(初何路)부터 바른 마음으로 돌려야죠? 그믐이라 그믐, 섣달그믐, 초하로(初何路)에 하롯 날 먹었던 마음을 섣달그믐날 가서 청산한 날이야. 청산, 생각해보는 거야. 어떻게 살았냐? 그 인자 다음 시간에 ~~~

 

우상숭배, 이건 몸 따라 사는 몸의 우상이야. 몸이, 형상이 되지 우상숭배, 마술, 자기방법, 베드로방법, 죽지 마시오. 사탄아, 이거 마술이야, 헐뜯음과 싸움 질투와 분노, 언제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일. 이거 다 방법에 틀린 거여. , 불평과 비판적인 태도, 자기의 작은 당파, 당파 외에는 모두 나쁜 것으로 인정하는 배타주의, 내 뜻에 안 맞는 건 무조건 배타야. 배타라니까 배타 분다, 침을 뱉는다, 더럽다, 침 뱉으면 더럽다는 표현 아닙니까? 배타주의, 거역하는 주의, 늘 감정은 성경을 거슬려 안 맞는다고, 성령은 감정을 자꾸 거슬리라는데 순종을 안 해. 이이 사람 자기 있어요. 배타주의와 거기서 나오는 잘못된 교설, 잘못된 교설, 시기, 살인, 주장,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따위, 따위입니다.

전에는 말을 했지만 한 번 더 당부합니다. 누구든지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를 물려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 천국, 정반대라 말이야. 언자 마지막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생활을 지배하실 때 그분은 우리 속에서 다음과 같은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의,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자기감정을 지배하는 거 절제요. 자제라 말이야. 여기에서는 율법에 반대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들은 악한 욕망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은, 가장 옳은 방법이야.

만일 우리가 지금 성령의 능력으로 살고 있다면 모든 생활 역시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성령에 따르면 죽고, 항상 과거는 보내고 또 앞으로 새 것, 새 것, 그렇게 하면 명예와 인기를 얻고자 질투하거나 악한 감정을 가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자 다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