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손자 인이와 해남 우수영에서 드림아일랜드 카 페리호를 타고 신의면 상태 동리에가서 내려 차편으로 신의면과 하의면을 잇는 삼도교를 건너 고김대중 대통령의 생가와 얼굴바위 많은 염전 상수원지를 돌아보고 돌아왔다.
울어도 못 한다
1998. 6. 17
부정한 사람들에게 염소나 암송아지 황소 황소의 피나 암송아지의 재를 뿌려도 그 육체를 깨끗하게 하며 그들을 거룩하게 할 수 있다는 그 말은 없다 그 말입니다. 하물며 성령을 통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흠 없는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 게 하는 데나 죽음의 행실을 버리게 하고 살아계신 하느님을 섬겨야 하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큰 힘이에요. 그 세 가지 중에 다 들어 있잖아요?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니까. 양심이 깨끗하면 다 알 것이니까. 양심이 깨끗지 못하니까 뭐 분별을 못하잖아요? 첫째는 양심이 깨끗해야 하는 거. 스스로 인간 스스로 아무리 깨끗하게 한다고 해도 안 된단 말이여. 먼저 요거 ~~~~. 찬송가343장인데요. 1절서 3절까지는 ~~~~.
찬송가343장
울어도 못하고 눈물 많이 흘려도 못한다. 울어도 못한다는 거는 아무리 인간 스스로 회개를 해도 통회를 해도, 눈물을 흘리면서 원통해 하면서 후회한다하더라도 겁을 없게 못한다고, 겁.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는데 두려움이 있는 것은 징벌을 제거한다. 징벌을 받을 거를 안 받았으니 겁이나요. 죽을 것이 안 죽었으니까 놀라죠. 안 죽으려고 하니까 더 놀라죠. ~~~. 죄를 씻음으로써 암만 그래도 죄가 씻어진 것이 아니 여. 예수의 보혈이라야지. 죄를 씻지 못하니 울어도 못한다.
또 둘째 절이요. 힘써도 안 돼. 인간이 자기 노력 율법적인 노력 아무리 힘써도 안돼요. 힘써도 못하네. 말과 행실이 착해도 안 되어요. 그 인간적인 착함이니까. 예수의 보혈을 통해서 깨끗해진 양심이 아닌 이상 안 된단 말이여. 깨끗하고 착해도요. 착해도 다시 나게는 못해요. 거듭나야 되는데. 항상 아담의 성품 그대로 훈련만 한 것뿐이지. 예수의 몸으로 바꿔져야하는데 항상 땅에 속한 마음이야. 긍게 아무리 그 노력을 해봐도 끝도 없고, 해결이 없다는 거야. 회개한 탕자가 일단 죽어야지. 옛사람은 죽고 그리스도 부활하신 예수의 마음을 갖기 전에는 안 된단 말이여. 긍게 아무리 힘써도 안 되고.
또 셋째 번. 또 아무리 참아도 인간의 인내에는 한도가 있잖아요? 목숨이 죽게 되면 못 참거든요. 그리스도의 인내라야지 인간의 인내로는 안 되어요. 참아도 못하네. 할 수 없는 죄인이 흉악 죄에 있어서 흉악 죄에 빠져. 빠져서 어찌 아니 죽을까. 죽을 것이 안 죽었단 말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 가운데 똑같이 자고 똑같이 깨는데 슬기로운 처녀는 신랑 맞을 준비가 되었어요. 신랑 맞을 때 등불이 꺼지지 않을 밤이 되었어요. 그 기름은 뭐이냐면 성령이거든, 성령. 성령을 받으면 죽게 되는데 성령 안 받으면 그 사람 옛사람 그대로여. 성령으로 거듭나야 되는데 그 과정이 없이는 안 된단 말입니다. 긍게 어찌 아니 죽을까. 참아도 못하네.
네 번째는 인자 그거여. 네 번째는. 믿음으로만 되어요. 믿음. 또 이 믿음이라 하면 우리는 항상 뭐 의식적인 거. 뭐. 학습 받고 세례 받고 직분 얻고 목사 장로 되면 그것이 믿은 걸로 알거든요. 믿지 않아도 그거 다 될 수 있거든. 시험 합격하면 되잖아요?
믿음이 뭐이냐 하면 갈라디아2장19절 20절이란 말이여. 나는 율법의 손에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았다. 그리스도가 살았으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닙니까?
인자 고린도전서 개역으로 봐요. 고린도전서2장16절이요. 개역성경이 없어요. 여기는. 예수의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빌립보2장5절에는.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그리스도가 있으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이란거야. 예수의 마음. 그러면 그 마음을 가지면 어떻게 돼?
6절.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이 양심과 순종과 두 문제를 다 보려는데. 뭣이 순종이냐? 죽기까지 순종이여.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겻이 순종이야. 아담의 성품은 죽고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바꾼단 말이여. 우리는 항상 땅에 속한 몸을 의지하니까 몸만 생각하니까 아담의 성품이에요. 땅에 속했어요. 예수의 마음을 가지라. 예수의 성품 그리스도의 성품. 가진 것은 십자가에 죽는 것이 순종이라.
또 히브리5장7절서9절까지는 아까.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 주실 수 있는 분에게 큰 소리와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하고 계셨어. 하셨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곧 하느님 아들인데, 창조주이시라도 고난을 겪음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어. 그 배운 것을 어떻게 썼느냐?
아까 빌립보2장이란 말이야.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했다. 죽는 것이 순종이지. 살아갖고는 순종은 없어요. 몸이 죽는다는 말이 아니고 자기란 거. 나다 하는 거. 그러면 요 문제와 순종과 양심과 순종의 문제를 겸한다면 이겁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2절이거든요. 공동번역으로 봅니다.
마지막으로 교우 여러분 아폴로에 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다른 교우들과 함께 여러분한테 찾아가라고 간곡히 부탁했지만 개역에는 많이 또 저쪽에는 여러 차례 여러 차례 간곡히 부탁했어요. 했지만 그는 지금 갈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적절한 때가 오면 가게 될 것입니다. 희망을 주는 거여. 적절한 때가 오면 가게 된다. 지금은 전혀 갈 마음이 없지만은 적절한 때가 오면 간다. 그러면 그 적절한 때가 어느 때냐 그거에요. 그럼 봐요. 그걸 미리 성경으로 답을 해보고요. 적절한 때가 언제냐?
데살로니가전서2장 2장인데 띄엄띄엄 석절 보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4절을 봅니다.
4절. 우리는 하느님께 인정을 받는다. 인정. 인정을 받아 복음을 전할 사명을 띤 사람으로서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택함을 받았다 이거야. 인정을 받은 사람으로 써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 아니에요. 그거는 복음이 아니거든요. 사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말은 기쁜 소식이라 그러죠? 기쁜 소식. 하느님도 기뻐하고 영혼도 기뻐하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드리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12절.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생활을 하도록 복음내용이 그거단말이야.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생활. 하도록 생활을 하도록 권고하고 격려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을 부르셔서 당신의 나라와 영광을 누리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대로만 살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하면 영광의 나라 있단 말입니다.
13절. 우리가 늘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에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뭐입니까?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이나 다른 시간도. 듣는 편도 듣는 편에서. 설령 말하는 사람은 자기 생각 자기 말을 하더라도 하느님의 그 말은 뜻이 있어야 되어요. 듣는 편에서는 믿음만 있으면 깨달아진다고. 말하는 편에서는 자기 말 하더라도 하느님 그것이 언어이니까. 또 이 바울사도 말 대로면 바울사도가 전한 말이 살아있는, 사람 말이 아니고 하느님 말씀이다. 받는 사람이 하느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면 그 말씀이 믿는 자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말입니다. 이게 그 말이에요. 지금 이 시간에도 말씀을 들으려고 다 모이셨는데 여러분 오시기 전에 과거에 얼마나 말씀을 갈망했느냐에 따라서 여기서 그 결과가 나타나요. 이 시간에.
그것의 하나 예를 들면요 사도행전22장14절 보면요. 14절.
그때 아나니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뜻하신 바를 깨닫게 하시려고, 깨닫게 하시고 그 죄 없으신 분을 알아보게 하시고 또 친히 하시는 말씀을 듣게 하시려고 당신을 택했습니다. 이거여. 이거 또 친히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지. 사람이 말을 받아갖고는 백년만년 들어봐도 소용없다는 거여. 사람의 말이니까. 하느님말씀. 누가 말하던지 그 말씀 말하는 사람 말인데.
고린도전서14장7절10절 보면 소리는 많아요. 그런데 뜻 없는 소리는 없다. 그 말은 여러 가지 소리가 있지만은 어떤 교훈이 들어있지 않은 소리는 없다 그 말이여. 양심이 맑으면 소리를 듣는단 말이여. 영안이 있으면 소리를 듣는다. 영안이 귀가 있으면. 영적 귀가 열려있으면 그 소리 하느님 말씀을 듣는다. 그 말이에요. 만물 속에 하느님 말씀이 있다. 하느님 말씀은 창조에 피조 되었으니까. 그러지 않아요? 만물 속에 하느님 신세계 있다 아닙니까? 맑으면 본단 말이여. 근데 어두우니까 못 봐요. 이 바울사도는 그 영안이 있고 긍게 영안을 마음의 눈을 띄우는 거를 기도. 마음의 눈을. 에베소서 1장18절에 있잖아요? 이게 다 안단 말이야.
가령 이현필 선생이나 이공선생이나 다 영안이 있거든요. 누가 오도 안하는데 저기 누가 오는 것도 알고, 뭔 놈을 가져온다. 별 놈으로 오냐 알아보러 오냐 안다 그거에요. 영안이 있다고요. 또 친히 하신 말씀 들으면 우리 형제가 어디서 뭔 맘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고 있다. 그게 지도자란 거여. 안 봤는데요. 이제 그걸 경험한 사람은 깜짝 놀라죠. 실제 그런 일이 있으니까. 제가 가서 무엇을 물을까 하고 문제를 갖고 가요. 갖고 가서 가만히 있으면 물어보지도 안하고 이렇게 하시오. 그래요. 제가 속에 있는 걸 알지 않습니까? 물어볼 것이 없다 그거야. 나는 그분이 역사하는 걸 모르지만은 그분은 아신다고. 각자 마음을. 여기도 세 가지죠. 세 가지.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뜻하신 바가 무어냐? 한 사람 한 사람의 계획이 있단 말이여. 다 똑 같지 않아요. 똑같이 방법으로 인도하지 않고 그 영혼에 따라서 각각 다른 방법으로 인도한다. 이 동그란 단체가 해가지고는 다 비슷하게 모아진 거여. 또 더 가까운 사람 인자 같이 살고 조금만 멀어도 달리 살고 그래요. 또 늘 달라짐에 따라서 또 같다고 못해. 다르단 말이여. 하느님의 섭리가 다 달라요. 나같이 않다고도 못한다. 이단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요. 다 다르다고요. 하느님께서는 뜻하신 바를 깨닫게 하시고 그 죄 없으신 분을 알아보게 한다. 예수를 바로 알아보게 한다. 여. 하고 또 친히 하신 말씀을 듣게 하시려고 당신을 택했습니다.
긍게 인제 여기서 이제 그 15절 보면요.
당신이 보고 들은 일을 그분을 위해서 모든 사람 앞에 증언하게 하시려고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어서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깨끗이 씻어버리시오.
17절. 이방인의 사도가 된 바울. 그 뒤에 나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내가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무아지경이다. 무아지경. 자기가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여. 자기가 없어요. 없어. 무아지경에 빠져 주님을 뵈었습니다. 무아. 믿었으니까 자기는 없지요. 그리스도가 있어요. 뵈었습니다. 그때에 주님은 어서 빨리 예루살렘을 떠나거라. 계시가 있어요. 그 뭔 말인가?. 모든 제도와 의식을 초월하라. 그 말이에요. 예루살렘은 예배드리는 곳이니까. 예루살렘. 예배만 보고 그 의식만 갖추지 말고 그걸 초월해서 이제 살아가, 실지 서로 사랑하면서 살 일이지. 안다고 모양만 갖추고 있지 말란 말이에요. 살아가라. 그걸 초월해라 이거야.
다시 또 이 현대어성경으로 보면 로마서 7장 6절입니다. 6절. 4절서부터 봐야죠.
4절 보면 지난날에는 유대교의 율법이 여러분의 남편이요 주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위에서 죽었습니다. 옛사람은. 죽었으므로 여러분이 율법과 한 결혼은 무효가 돼버린다 여. 무효가 된 것입니다. 이제 율법은 더 이상 여러분을 지배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여러분도 새로운 인간으로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말하자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분과 결혼한 것이란 말이여. 이 그리스도가 부활해서 예수가 이제 하나가 되었어요. 정배가 되었어요. 결혼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선한 열매를 맺게 하려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자고, 하자고 다시 말하면 하느님을 위해서 선한 일을 하게 하려고 이 결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요 개역으로 보면 죽은 자 가운데로 가서 그 말이 있어요 가서. 간단 말은 우리 한문글자로 쓰면 ‘갈 거(去)’ ‘댕길 행(行)’ 또 ‘갈 왕(往)’도 두 가지로 쓰고 많죠. ‘갈 거(去)’자는 ‘버릴 거(去)’자여 또 ‘제할 거(去)’자여 제해버린단 말이여. ‘제할 제(除)’자는 어떻게 쓰냐면 ‘나 여(余)’자가 들어갔거든요. 나를 부정한다는 말이야. 그런데 또 우리가 보통 쓰지 않는 ‘갈 적(適)’자가 있어 ‘갈 적(適)’ 적당하다는 그 적자가 ‘갈 적(適)’자인데. 그것이 옥편에가 있어요. 지어낸 것이 아니에요. ‘시집갈 적(適)’자여. 그리스도로 갔다면 그리스도 정배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우리 한문에 글자는 없어요. 일본말 성경에 보니까 그 ‘적’자를 썼더란 말이여 그래서 옥편에 찾아보니까 ‘시집갈 적’자로 되어있다.
그러면 인자 그 성경이 어디가 맞느냐면 사무엘상25장이여 25장.
나 버리고 아비가일이 있는데 아비가일은 이전에는 나발의 아내요. 그 남편은 정욕적인 남편이란 말이여. 그 죽었을 때는 이제 다윗의 아내가 되었어요. 이 다윗은 인제 그리스도를 상징하니까. 이제는 예수의 정배가 된다. 옛사람이 죽으면요.
5절요. 우리가 육신에 매여 살 때는 육신에 매여 살 때는 죄 많은 욕망이 아직 우리 안에 있어 있어서 하느님께서 명령하는 것은 무엇이나 거역한단 말이여. 거역하고 죄에 물든 행실 즉 죽음 죽음에 이르는 썩을 열매만을 맺었습니다.
이제 6절. 그러나 이제는 주님 죽었으니까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이나 관습 관습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의식이라는 건 어린애 걸음마 시키는 것 이니까. 어른이 되었으면 어른같이 걸어야지요. 율법이나 관습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것에 사로잡혀 있던 우리는 이미 죽고 지금은 하느님을 섬기는 참다운 인간이라 하느님을 섬기는 참다운 인간. 양심이 깨끗하니까 죽음의 행실을 버리고 하느님을 섬기는 데에 큰 힘이 된다는 거여. 섬기는 참다운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전처럼, 예전처럼 정해진 규칙에 무조건 복종하기 보다는 뜻도 모르고 복종하기 보다는 복종하며 살기보다는 새로운 방법이에요. 새로운 방법. 예수 마음이라는 거여. 복음적인 생활이라. 새로운 방식으로 여러분의 마음과 뜻을 다해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거여.
그럼 아까 찬송 거기 4절에 다시 보면 4절에. 믿으면 하겠네. 주 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입어야한다. 은총을 입어야 돼요. 긍게 인간 스스로 은총 입지 않고 은총이라 함은 내게 없는 타력이여 타력. 하느님이 주신 힘이에요. 그래놓고 고 힘은 어떤 역사인가 말이야.
출애굽기15장13절. 개역으로 봅니다. 13절입니다.
주께서 오른 손을 드실 때.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해 은혜로.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 그 은혜는 주의 힘.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시키는 능력이란 말이여 능력. 능력 힘. 복음은 능력이에요.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어디로 인도하시냔 말이여.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더러운데 들어가지 않아요. 주의 처소. 은혜에 힘입어. 오직 주께 나아가면 영혼이 사노라니. 은총에 힘입어서 주께로 나아가면 영생을 한다. 그 말이여. 그 말입니다. 인자 그 아볼로 그 불순종. 해서 인자 요렇게 결론을 내려야 되거든요. 불순종의 원인을 알아야해. 원인을. 뭣 때문에 불순종 하냐. 그거 모르면 안 되잖아요. 그럼 인자 그 원인을 알았으면 이제 순종할 길이 무엇이냐. 그 길만 알면 되잖아요. 근데 이건 뭐 다른 거 없어요. 양심이 깨끗하면 하느님 섬긴다 했으니까 죽음의 행실을 버리게 되고 섬긴다 했으니까 고 다 있잖아요. 그러면 아볼로가 불순종했다는 말은 뭐시냐. 간곡히 수차례 부탁했지만은 왜 안 되느냐. 아까 그거 보다가 덜 봤는데 그거 다시 봐야 돼. 데살로니가전서2장13절 봐요.
데살로니가전서2장13절(공동번역)
우리가 늘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에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에요. 그럼 그 결과가 어떠냐. 하느님 말씀을 받았으면. 이 하느님의 말씀은 믿는 여러분의 믿는, 믿는 것이 어떠냐.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사람은 양심이 깨끗한 사람은 믿는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긍게 이 말씀이 생활 지도를 해요. 우리는 내가 모든 걸 지도 할라고 하지요. 말씀에 붙잡히지 않고. 말씀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데 내가 말씀을 이용해버린단 말이여. 이렇게, 이렇게. 하니 내가 살아있다. 아볼로는 이제 자기가 강해요. 아볼로 자신이 불순종한 거여. 뭣을 불순종했어요. 뭣을 불순종해?
마태복음16장21절서23절이요.
그때부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주셨다.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말리자 말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보시고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구역에는 하느님의 뜻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뜻만 생각한다. 사람의 뜻이 뭐이냐. 인정이란 말이여. 인정(人情). 한문으로 하면 인정(人情). 한문으로 하면 알아들어도 사람의 뜻이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단 말이야. 한국 사람이 한국말을 못 알아봐. 중국말 한문이잖아? 인정(人情)이란 말 알지요? 인정(人情). 이거를 사람의 뜻이라 하면 몰라. 긍게 사탄이여. 뭣이 사탄이냐? 그 인정(人情)이 사탄이란 말이여. 죽기 싫어하는 마음이여.
긍게 인자 24절.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거든 따라오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란 말이여. 그 아볼로는 불순종한 것 아녀. 자기를 안 버렸어. 자기가 있어.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그럼 우리도 다 이거 순종하자 그 말이에요 다. 왜 불순종한데 예수 제대로 순종 되겠습니까? 자기한테 이로우면 순종이고 해로우면 불순종이고 그런 것뿐이지.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 있겠느냐?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 말이여. 바꿀게 없다. 그러죠. 자신이 불순종했고 또 쉽게 말하면 그 아볼로 형편은 그거에요. 고린도교회를 지금 바울사도가 맡겼죠. 물론 개척은 바울사도가 했겠죠. 근데 이거 맡겼는데 자기가 보는 중에 자꾸 파당이 생겨요 파당이. 몇 가지 파냐 하면 네 파가 생겼거든. 바울 파 베드로 파 아볼로 파 자기파도 있어요. 그리스도 파. 네 파가 생겼는데 자기파가 제일 약했던 거지요. 긍게 겁이 나서 피한 사람이야. 그런 사람보고 가라고하니까는 좀 무리는 무리죠. 그러니까 우리가 교회를 본다. 교회를 목회를 한다. 자기 영혼을 위해서 보란 거예요. 에스더가 왕후가 되는 까닭은 무엇이냐. 지금 이때를 쓸려고 든 것인데 네가 지금 이때 왕 앞에 나가지 않으면 유대인들을 다른 방법으로 얽매여 구원할 수 있다 하느님은. 에스더는 그 말을 듣고는 죽으면 죽으리라 각오를 하고 나갔잖아요? 우리가 어느 무슨 직분을 가졌으면 자기 영혼 때문에 하는 거지 그 사건 자체가 아니란 거예요. 그 사건을 통해서 나 배우라고 깨달은 거예요. 그것이 단체라면 단체 하나하나 내 영혼을 위해서 요 단체가 있는 거다. 그렇게 봐야 됩니다. 그러니까 이제 자기가 거기에 가서 당파가 생겼으니까 자기가 가서 당파가 인자 없어지도록 해야 자기가 되는 거 아니냐? 그거여. 그러니 가란 것인데 거역한다는 거여. 인제 그 권능의 말이 사람의 말로 본다. 사람의 말로. 누가 말했든지 바울사도가 누가 말했든지 그 사람은 뭔 뜻으로 했든 상관없어. 그 사람 그 말 속에 하느님께서 교훈이 있다고 받아들인 거예요. 말한 사람은 상관없다니까. 긍게 그런데 그렇게 무서움이 있고 하는 것은, 목숨을 아끼고 그것은 아직 사랑을 완성한 것이 아니잖아요. 두려움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만큼 얼마나 어둡냐. 자기 영혼이나 이 고린도교인들의 영혼에 대해서 무책임한 거라. 무책임. 바울사도는 그만큼 실력이 있는 것은 뭐이냐. 사도행전20장. 요것이 인자 고 결론적인 거예요.
사도행전20장19절
19절은 요거 빠졌는데. 사도행전20장19절이요. 모든 겸손이죠. 겸손.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끊김>
이제 나는 22절. 성령에 지시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인데 거기에 가면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모릅니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어느 도시에 들어가든지 투옥과 고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성령께서 나에게 일러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태도라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끊김>
기적적인 능력을 체험하고 거기서 더 살아나니까. 나에게 계신 성령께서 이르십니다. 그러나 내 사명을 완수하고 하느님의 은총의 복음을 전하라고 주 예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임무를 다할 수만 있다면 나는 조금도 목숨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죽으면 더 사는 경험을 했거든요. 않겠습니다. 계속. 나는 이제 분명히 말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내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과 함께 지내는 동안 하느님 나라를 줄곧 선포했어요. 선포했으니 앞으로 여러분 가운데 누가 멸망하더라도 나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어요. 요 26절만 아니고 왜 그런 책임을 어떻게 했냐.
27절. 나는 하느님의 모든 계획을 남김없이 여러분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여러분은 늘 자신을 살피며 성령께서 맡겨 주시는 양떼를 잘 돌보십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값을 치르고 얻으신 당신의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습니다. 내가 떠나가면 사나운 이리떼가 여러분 가운데 들어와 양떼를 마구 헤칠 것이며 여러분 가운데서도 진리를 그르치는 말을 하며 신도들을 이탈시켜 자기를 따르라고 할 사람들이 생겨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왜 떠나느냐? 그거여. 왜 이리 무책임한가. 다른 때에 떠나더라도 이때는 안 떠나야 되죠. 근데 이때니까 떠나는 거여. 왜 그러냐. 그러므로 여러분은 언제나 깨어있으란 말이여. 깨어있으라 그거여. 있으시오. 그리고 내가 삼년동안이나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각 사람에게 개인 개인에게 쉬지 않고 훈계하던 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기서 어떻게 책임을 해야 합니까. 사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보통 사람은 못해요. 이거는. 성령으로 힘입은 사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 이상 더 할 수도 없어요. 성령을 입었더라도. 삼년동안 밤과 낮.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했단 말이여. 그 이상 사람이 어떻게 배기겠습니까. 이 건 영의 사람이지.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사람은 하룻밤만 잠을 못자도 피곤 표현 하는데 어떻게 업신여겨요. 완전히 성령을 입은 양심을 가졌단 말이여. 로마서9장. 삼년동안 눈물로 밤낮으로 쉬지 않고 훈계했단 말이여. 그 이상 할 수는 없어요. 이만큼 했은 게 하느님 멸망해도 책임이 없다는 거여. 그 이상 사람 할 일은 다했으니까. 이쯤하고 생명을 얻는 겻이지. 보통 나 책임 없다 그럴 수가 없어요.
이 아볼로는 거기다 대면 무책임한 거라니까 그거. 자기 목숨 땜시 피해갈라고 했단 말이여. 교회의 영혼을 생각 안한다니까요. 한사람, 한사람 영혼을 생각 안 해요. 자기 영혼도 모르니까. 그것이 문제 아닙니까. 목숨이 안 죽을라고 피하려는 사람이 그걸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삯꾼이지. 삯꾼. 나는 이제 하느님과 그의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여. 이제 사람이 할 일은 다했으니까. 밤낮으로 쉬지 않고 삼년동안 밤낮으로 눈물로 훈계를 다 했으니까 그 이상 더 할 수는 없잖아요? 했으니까 인자 은총의 말씀에 맡긴 거예요. 직접 하느님과 그 은총의 말씀에 맡긴단 말이여.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여.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을 완전한 사람 완전한 사람 하느님 앞에 완전해져요 한데 본인은 항상 불완전으로 생각해야 되요. 내가 완전하다 하면 그건 벌써 병든 것이야. 병든 것. 스스로 완전할 수는 없으니까. 욥에 있잖아요.
네가 스스로 의롭다 함으로 나를 불의하다하느냐? 욥기40장8절에 있단 말이여. 10절인가. 스스로 어떻게 완전할 수 없어요. 하느님의 은총이지. 은총으로 된 것 뿐이지. 자기 스스로는 안 된다 말이여. 여러분을 완전한 사람으로 키울 수 있으며 모든 성도들과 함께 유산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까 22장도 덜 봤네. 크크. 그건 그렇고. 인자 요것이 인자 벌써 결론은 된 거여. 순종. 됐어요. 이거 더 자세히 하려면 인자 시간은 그만 해야겠네. 이제 한 시간이 구만. 자 인자 양심에 대해서는 개역으로 한번 해봅니다.
고린도후서1장12절(개역)
개역이 잘된 거예요.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느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거 하는 바다. 양심.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니라. 양심. 그 말 있고. 또 양심은 인자 로마서 9장
로마서9장1절서3절 봅니다.(공동번역)
성령에 이끌린 양심. 9장. 나는 그리스도 사람으로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진실. 성령으로 움직이는 내 양심도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줍니다. 나에게는 큰 슬픔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영혼을 위해서 슬픔이에요. 그리고 마음으로 끊임없이 번민하고 있습니다. 나는 혈육을 같이하는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나는 조금도 한이 없겠습니다. 이것이 성령께 이끌리는 양심이에요. 자기 몸은 생각 안 해요. 저주받고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요. 동족이 구원받기를 바라는 거예요. 이것이 진짜 양심이에요. 그러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겠습니까? 다 지옥가도 나만 천국 간다. 그 사람이 떨어진 거지. 나는 저주받아도 좋다. 이미 받았으니까. 또 그러면 인자 예수님의 저주. 저기 여러분 말씀 드렸지만은 또 잊어버리니까 잊어버려요.
마가복음11장12절14절20절26절
12절입니다. 저주받은 무화과나무.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아 에서 나올 때에 예수께서는 시장하시던 참에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열매가 있나 하여 가까이 가 보았으나 잎사귀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철이 아니에요. 아니 철이 아니니까 없죠. 예수께서는 그 나무를 향하여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여 아무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할 것이다. 하고 저주하였다.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었다.
그러면 이거 왜 철이 아닌 것을 철이 되면 다른 사람이 따먹게 나둬야 할 거 아닙니까. 근데 왜 이렇게 무자비하게 저주해부냐 말이여. 영원히 맺지 못한다 했는데. 저번에 한 며칠 전에 무화과 먹었거든요. 영원히 안 맺는다 했는데 있거든요. 지금도 진도에 가면 있을 거여. 함평도 있고. 함평은 모르겠어요. 인자. 있어요. 그러면 예수님이 거짓말했냐? 그거 뜻이 뭐냐 그거여. 인자 20절을 봐야 돼요. 믿음의 힘이란 거지. 믿음의 힘. 제목에 그렇게 붙어있어. 이른 아침 예수의 일행은 그 무화과나무 곁을 지나다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는 것을 보았단 말이여. 그럼 우리도 지금 무화과나무 무화과는 무엇을 말하느냐. 율법을 말해요. 율법. 뿌리째 말라버린 데서 뭣이 열매를 기대한단 말이야. 뭣을 행해가지고 아까 찬송가 있잖아요.
베드로가 문득 생각이 나서 선생님 저것 좀 보십시오! 선생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렸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을 믿어라 그랬어요. 하느님을 믿어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마음에 의심을 품지 않고 자기가 말한 대로 되리라고 믿기만 하면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예수님은 살아계실 때 요 기적은 안보였거든요. 근데 당신도 보지도 않은 기적이 이루어진다고 그 말해. 믿기만 하면. 그거는 무엇을 뜻하는가.
그러므로 내 말을 잘 들어두어라. 너희가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대로 다 될 것이다. 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럼 인자 입으로 지금 뭐 줍쇼. 하는 것은 이미 받아있는 거여. 인자 지금 생각이 나서 구한 것이지. 인자 구할 생각이 난 것은 이미 받아있으니까 난거여. 긍게 받아있는 줄 알아. 근데 우리는 받아있는 것을 있는 줄도 모르고 자꾸 달라는 거여. 받아있다. 또 그러고. 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대로 다 될 것이다. 25절. 너희가 일어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있거든 그를 용서하여라. 용서하여라. 그래야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주실 것이다. 용서. 그럼 이제 무화과나무의 저주는 인자 성경에 도로 성경에 돌아오면요. 갈라디아3장13절에 있단 말이여.
갈라디아3장13절(공동번역)
나무에 달린 자는 누구나 저주 받은 자 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저주받은 자가 되셔서 율법 우리를 율법 무화과나무는 율법인거여.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해내셨습니다. 이거여.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이방인들에게까지 미치게 되었고 또 우리는 믿음으로 약속된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럼 인제 무화과나무저주는 예수님이 당신이 십자가 질 것을 보인 것이고 무화과나무 하나 가지고. 보인 것이고 둘째는 율법을 행하는 것으로는 절대 구원이 없다는 겻입니다. 아까 찬송가에 같이. 아무리 행실이 착하고 선해도 구원 없어요. 거듭나야하고 옛사람은 죽어야하지. 새사람이 부활한 예수하고 하나가 되어야지. 아담하고 형상을 해가지고는 안된단 말이여. 아담 화에서 별 훈련을 해봐도 소용없어요. 예수님 마음을 가지면 인자 훈련을 하든지 어쩌든지 몰라도 사랑하고만 살지, 사랑하고. 무조건 예수는 왜 오셨냐. 인자 용서로 오셨지 죄 종교로 오신 것이 아니거든요. 아무리 선지자를 보내 봐도 다 불순종하니까. 이제 당신이 에이 이제 할 수 없다. 이제 용서밖에 없다. 용서밖에 길이 없으니까 온 것이여. 용서로 있으니까 뭐 죄를 죽인다. 그래도 벌하지 안 해. 긍게 복음은 뭐이냐. 용서니까 다 하나로 본거라 하나로. 너나가 없는 거야. 긍게 내가 너나 있어 보는 것은 아직 복음 것이 아니고 율법도 본뜻으로 못하는 거여 율법도. 율법의 역할은 세 가지에요 세 가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고 또 로마서5장 같으면 20절 같으면 용서하신 하느님의 넘치는 은혜를 깊이 깨닫는단 말이여. 자기 죄를 깨달으면 죄만 깨달으면 절망해 벼리지 않겠어요. 용서받을 길이 있어야지요. 죄를 깊이 깨달았다면 용서의 길이 보인단말이여. 용서하신 하느님의 은총 넘치는 은총이 은총을 더 깊이깊이 깨달아야한다. 그것이 두 번째고요. 희망을 줘요 희망을. 용서받는다는. 그러고 세 번째는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안내자.
그것이 아까 갈라디아3장19절부터 끝 절까지거든요.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안내자. 그럼 안내자는 어떻게 하느냐. 죄를 깨달았으면 스스로 갇히는 거예요 갇혀.
그럼 봐요. 갈라디아3장23절.
믿음의 시대가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의 감시를 받았으며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어요. 갇혀. 자유 말라는 거여. 감정적인 자유를 억제 하란 거여. 이거 수도원에 안 들어가도 스스로 해야 한단 말이야.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지기까지 훈련을 해야 한다고.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믿음의 시대가 오기 전에. 개역으로 보면. 계시된 믿음이 올 때까지. 말하자면 그리스도가 실제 올 때까지. 와서 옥문을 열어줄 때 까지. 참고 기다리고 주여 어서 오소서. 자기 자유를 말라는 것인데. 감정의 자유를 해버리니까 성령을 거슬러버리잖아요. 그랑게 억제 하라는 거여.
사도들이 어느 때 율법을 지켰냐면. 요한복음20장19절에 지켜요. 스스로 갇혀가지고 벌벌 떨고 있잖아요. 밖에도 못나가고. 자기들도 죽을까봐서. 그럴 때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먼저 시켜했어요. 예수 살아났다. 그 소식 전하게 하시고는 갔잖아요. 그래가지고 성령을 받아라. 해서 19절서23절까지 성령을 받으면 누 죄든지 네가 살려주면 사면 받는다. 그런 사죄권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왜 21장에 가면 도로 어제 낮의 말씀이 어때. 고기잡이가 하는 말. 그 말이여. 성령 받았으면 인자 복음 전하는 일을 해야지 도로 그 전에 버렸던 거는 뭘 하려고 챙기느냔 말이여. 거기 누가복음24장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너희들이 먹을 것이 있느냐 그랬잖아요? 인자 영이 아니고 유령이 아니고 시킨 나다. 부활한 나다. 몸이 다 보인단말이여. 긍게 뭐 내놨어요. 구운 생선 토막 하나. 구운 생선. 안 구운 것은 비린내나 못 먹어요. 구운 생선이여. 잘했죠. 또 요한복음20장에는 예수님은 당신 떡 당신 고기 가져왔어요. 굽고 제자들 잡은 것도 갖다 함께 구웠어요. 그래서 조반을 먹였어요. 조반. 돌이킬 반. 깨달았다 예요. 인자 힘을 얻었으니까 인자 먹여라. 네가 정말 사랑하느냐 세 번 물었잖아요? 세 번째는 근심을 했죠. 왜 그런가요? 세 번 부인 했으니까 뭐 그대로 될 런지 모르지만은 세 번째 물을 때 근심했어요. 대답은 똑같이 대답했죠. 이제 근심을 했어요. 인제 18절 보면 젊었을 때는 내 자유로 하지만은. 가고 싶을 때 갔지만은. 늙으면 못한다. 그 말은 뭐이냐. 몸이 젊고 늙고는 아니에요. 혈기가 강할 때죠. 강할 때는 마음대로 했어요. 그렇지만은 인자 성령 받으면 늙어서 힘 매우 못써요. 그럴 때는 감정으로 원치 않는 데로 간단 말이여. 그러니까 그 말 하시고는 나 따르라. 너희들이 머리가 되니까는 못 잡는다. 아무리해도 못 잡았잖아. 예수의 명이 깊은 데로 던져라. 오른편에 던져라. 오른편에. 그 순종의 결과 백 쉰 세 마리. 그 숫자는 뭐인가. 어떤 신학자가 그랬어요. 한국에서. 백 쉰 셋. 하나서 둘 셋 넷 열일곱까지 곱하면 백 쉬흔 셋이라는 거야. 주판 있으면 세보면 돼요. 그거는 뭐이냐면 동양 서양 열은 동양, 일곱은 서양 완전수야. 완전하다. 그런 뜻으로 설명을 합디다. 아 진짜 그래도 될련가? 숫자.
그라고 인제 나를 따르라는 건 19절22절 두 번 있어요.
저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 다른 사람 간섭 말고 너는 나만 따라라. 무엇보다도 먼저 할 것은 자기 회개지 다른 사람 어쩔랑가? 자기 회개도 안하고 다른 사람 걱정 그거 안 된다는 거야. 원리가 틀렸어요. 자기를 회개를 해놓고 봐야지. 자기할 일이 급선무인데 회개할 일이 급선무인데 고 회개할 거는 안하고 맨 엄한데다가 정신 다 팔아버린다. 긍게 이 현필 선생이 그런 말 했단 말이여. 나쁜 이는 나뿐이다. 제 일 잘하는 겻이 제일이다. 제 일이 뭐에요. 회개하는 일이다. 긍게 어느 성자 성인들의 공통되는 겻이여. 항상 자기 불완전 발견하는 거 입니다. 날마다 그거여. 자기 약점을 발견하는 거예요. 발견된 만큼 고것이 회개하는 거예요. 내가 강해버리면 의지할 필요가 없잖아요. 인자 그거를 저기도 하나 보고. 현대어 성경으로요.
고린도후서12장7절 (현대어성경)
다만 이 말을 덧붙여 두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그 놀라운 경험 때문에 교만해질까봐 내 몸에 가시로 찌르는 것 같은 가시로 찌르는 것 같은 병을 주셨습니다. 병.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병은 사단의 사자가 되어 내가 교만해지지 않도록 나를 괴롭히고 고통을 주었습니다. 나는 이 병에서 회복되기를 세 번이나 간절히 하느님께 빌었습니다.
9절. 그때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 된다. 기도는 다 응답을 받으면 다 된 건 줄 알아요. 이게 응답 안 받는 응답 되는 것이란 말이여. 안 된다. 근데 이렇게 되어버리면 실패죠. 안 된다. 그러나 안 되는 대신 그러나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마. 하느님 함께 있으면 그거는 뭐 다 된 거지. 하느님 없이 다 좋아봤자 그거 다 허망한 거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마. 네게 내리는 은총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느님이 함께하니까 그것이 충분하다. 내 능력은 약한 사람에게 가장 잘 나타난다. 약한 사람. 약한 사람은 겸손. 겸손. 나타난다. 이제 나는 내 약한 것을 기쁘게 자랑합니다. 나의 힘이나 능력을 나타내 보이기보다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생활로 증거 한다. 증거 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습니다.
10절. 나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위한 것임을 알기에 그 가시도 모욕도 고통도 박해도 어려움도 온전히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내가 약할 때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 무력해 질수록 무력해질수록 자기 힘이 점점 없어질수록 질수록 그만큼 더 그리스도를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강한 만큼 아까 아볼로나 지금 아볼로가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 아볼로를 거울삼아서 각자 내가 자기가 강하다. 자기가 강해요. 그렇게 간곡히 수차례 부탁했더라도 아볼로와 그리스도의 관계는 동력자도 되지만 후배여 후배. 후배고 또 아들이나 손자뻘 밖에 안 되어요. 그런 정도인데. 그것도. 다른 거 보겠습니다.
그러면 인자 이쯤 되었응게 15절 봐요. 고린도후서12장15절. 요 은혜를 갚은 다는 것에 대해서요. 고린도후서6장11절13절 봅니다. 보면 마음을 넓히라 그 말이 있어요. 고거 개역으로 보지요.
고린도후서6장11절(개역)
고린도 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이 좁아진 것이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그거야. 보답함에 따라서 넓혀진 거야. 자꾸 욕심 부리면 마음이 자꾸 좁아져요. 싹 버려버리면 넓어진다야. 예를 들면 나사로 마음은 한도 없다 여. 확 커져. 하느님 안에 있으니까. 부자의 마음은 조그만 해요. 좁은 거죠. 그러니 결과가 어떠냐는 거여. 좁아서 비양심적이야. 요 말도 인자 나오잖아. 나사로가 뭣 때매 구원받아 천국에1등으로 갔냐. 양심을 지켰다 여. 그 말이 없는데? 있어요. 29절 31절에 있다 여. 마음에 새긴 법을 지켰어요. 율법. 율법은 마음에 있는 거여. 다 마음에.
로마서2장15절16절
대저 저들은 율법의 본질이 그 마음에 새겨졌음을 표명하나니 나타낸단 말이여. 저들의 양심이 저들에게 이것을 증거하고 그 생각이 서로 혹은 고소하고 혹은 변호하는지라 이것은 하느님이 내 복음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실 그날에 똑똑히 보이리라. 양심이 생긴 거죠. 그럼 인자 거기다 조금 대면은. 양심.
예레미야31장33절
그러나 이제 내가 이스라엘 백성과 체결하려는 새 계약은 계약 자체가 완전히 옛것과 다른 것이다. 이 계약은 내가 각 사람과 개인적으로 체결하겠다. 나는 이제 나의 새 계약을 돌 판에 써서 그들에게 주지 않고 그들 각자의 마음 각자의 마음과 양심 양심에 새겨놓았다. 나는 이렇게 내 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새겨 놓았단 말이여. 가슴 속에. 누구든지. 놓고. 그들의 부드러운 살과 피 속에 넣어주어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도록 하겠다. 그러면 아무도 다른 사람을 훈계할 필요가 없어요. 양심에 새겨졌으니까. 훈계할 필요가 아무도 필요가 없고 아무도 자기형제에게 주님을 알고 두려워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된단 말이여. 요것이 히브리8장8절 끝 절까지 있고요. 히브리10장16절 이하 있고요. 또 22절에 가서는 히브리10장22절에 가면은 양심이 자책하는 죄를 깨닫고. 긍게 우리 죄는 누가 가르쳐줄 필요가 없어요. 스스로 자기 양심이 가책을 받아요. 긍게 요한복음8장9절에 그 간음한 여자를 잡아다놓고 예수를 시험하는데 말이여. 아 누구든지 죄 없으면 치라. 그 말 듣고는 하나씩 하나씩 물러가버리잖아요. 양심에 가책을 받아서. 가책을 받았으면 이제 예수께 와서 자복을 해야 할 텐데 가버렸어요. 가책만 느낀 거여. 그거는 안 되거든. 가책을 받았으면 예수님 앞에 와서 내가 죄인이다. 나를 벌해주십시오. 그래야 쓸 텐데. 그러고 아까 로마서2장 마음에 새겨졌으니 우리 핑계할 것이 없어요. 저기 하나 보고 이제 그만해야겠네. 저기 사도행전 아니 로마서1장
로마서1장19절20절
사람들이 하느님께 관해서 알만한 것은 하느님께서 밝게 보여 주셨기 때문에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무슨 핑계를 대겠습니까. 핑계 댈 길이 없어요. 깨달을 놈은 알게 되어있어요. 근데 저기 인자. 24절 봅니다.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 욕정대로 살면서 더러운 짓을 하도록 서로 몸이 더러운 짓을 하며 서로 몸을 욕되게 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셨습니다. 그럼 이건 무책임한가? 이 타락 성 그대로 내버려 자유를 준거여. 탕자에게도 자유가 있잖아. 자유 줬는데 깨달았거든요.
인자 26절 보면요.
인간이 이렇게 타락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욕정에 빠진 이를 그대로 내버려두셨습니다. 긍게 사람은 인자 이것을 교육으로 고치겠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하느님은 내버려두는데. 그럼 하느님보다 사람이 더 능력이 있다 그 말입니까? 내가 고쳐야겠다. 버릇 고쳐야 되겠다. 안 된단 말이여. 내 버릇부터 고치면 되는데 남 버릇을 고친다고 되겠어요. 내 버릇도 내가 스스로 못 고친단 말이여. 또 28절. 인간이 하느님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아요. 알아보려고도. 뭐 아나 모르나 다 그렇죠 뭐. 헛수고 시간낭비를 한다. 시간낭비. 알아보려고도 않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올바른 판단력을 잃고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하게 내버려 두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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