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 민이가 해외 근무로 출국이 예정되어 인사차 다녀갔다. 친구와 동생들과 같이 와서 하루밤 쉬고 갔다. 농장 산소와 쏠비치 해안을 돌아보았다.
살구꽃이 피기 시잣한다. 노란 수선화가 지기 시작하고 겹동백이 핀다. 머지 않아 벛꽃 자두 복숭아 꽃들이 피면 봄꽃 절정에 들것이다. 동백 아래 상사와 순이 난초처럼 많이 자랐다. 산소 옆 진달래도 피고 노란 수선화 꽃이 농창 곳곳에 사랑초잎과 수놓았다.
참 평화는 어디 있나
1980.11.30. 정인세 원장
먼저 요한복음 14장 27절서부터 봅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평화를 주고 갑니다. 내 평화를 당신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릅니다. 불안해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마시오. 내가 떠나갔다가 당신들에게 되돌아오겠다고 한 말을 당신들은 듣지 않았습니까? 아버지께서는 나보다 훌륭하십니다. 만일 당신들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할 것입니다. 내가 이 일을 미리 당신들에게 말해주는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당신들이 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당신들과 더욱 오래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권력자가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내게 대하여 아무런 권한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나는 아버지께서 분부한 그대로를 실천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만 하겠습니다. 그러니 자 이제는 일어나 갑시다.
빌립보서에서 한군데 더 읽겠습니다. 빌립보서 4장 4절 이하입니다.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 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십시오.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와 간구를 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인간의 생각이 감히 미치지 못하는 하나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끝으로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고상한 것과 옳은 것과 친절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명예로운 것과 덕스럽고 칭찬할만한 것들을 마음속에 품으십시오. 그리고 내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들은 것과 본 것을 실행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참 평화는 어디 있나’ 하는 문제를 이 시간 같이 생각해 보려고 그럽니다. 한마디로 거기대한 대답을 먼저 하라고 하신다면 참 평화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만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시고 예수님은 평화의 근원이시고 예수님만이 평화를 주실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주인이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오셔서 하늘나라를 회복하러 오셨습니다. 영원한 평화는 하늘나라에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평화를 잃어버린 인생들이 평화를 회복 할 수도 없고 예수님 안에서 찾지 않고는 그 외에 다른 곳에는 아무 곳에도 평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를 쳐다보면서 또 마음속 깊은 곳에 우리가 하늘나라를 찾아보면서 하늘나라는 어떤 곳인가? 한번 잠깐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곳은 빛과 생명이 충만한 곳이라고 그랬습니다. 하늘나라는 눈물도 없고 고통도 없고 아무 괴로움이 없는 곳이라고 그랬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겨주시고 거기는 이 불행과 모든 울부짖는 눈물의 뿌리 결과요. 또 근원이 되는 죽음 그 죽음도 없고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묵시록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런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런 곳이 참 평화를 이룩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눈물도 고통도 죽음도 그 모든 것은 죄로 말미암아서 온 것인데 그 문제가 해결이 되기 전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눈물이요, 고통이요. 모든 죄 죽음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이는 예수님 한분 뿐 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인생은 평화를 회복할 수도 없고 바랄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아까 요한복음 14장 27절 말씀을 읽었습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평화를 주고 갑니다. 내 평화를 당신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내 평화라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평화의 주인이십니다. 내 평화를 너희들에게 주고 간다. 지금 이 예수님은 객관적 상황으로 봐서는 평화 하실 수가 없는 때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을 향해 상경을 하시는데 그것은 죽음의 길입니다. 주위에는 원수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죽일까? 하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그때 십자가를 향해서 죽음을 향해서 가시고 있는 길인데 이런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근본적으로 예수님이 말씀 하시는 평화는 오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평화나 우리 육체를 갖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평화와는 질적으로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릅니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이 잘못된 평화를 오늘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평화롭지 않은 곳에서 평화를 찾고 평화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비켜놓고 평화를 찾기 때문에 그렇고 어째서 사람들이 평화를 잃어버렸는가? 그 원인을 근본적으로 파헤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화를 근본적으로 해치고 있는 그 문제의 씨앗은 없애지 않고 그 죄 그것은 그대로 놔두고 평화를 찾으니까 정치적 방법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부유함으로서 오늘 또는 자식을 많이 얻음으로서 또 가정적으로 이렇게 단란한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서 그곳에서 평화를 찾으려고 하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내가 지금 말하는 이 평화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 평화와는 너희들이 말하고 너희들이 지금 열심히 평화, 평화 하고 떠드는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릅니다. 이렇게 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때에 제자들은 오늘 이 시대 사람들과 같이 모두 불안에 싸여있었습니다. 아 메시야인줄 알고 우리가 기다렸더니 예수가 자꾸 죽는다는 소리만 하니 불안하고 지금 예루살렘 분위기를 번연히 아는데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하는 그 분위기 속으로 파고 들어가니 불안하고 막상 결과가 그렇게 되면 자기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이것 때문에도 마음이 불안하고 오늘 이 시대 사람들과 같습니다. 오늘 이 시대 사람들은 3차 대전을 앞에다 갖다놓은 밥상 모양으로 보고 앉아있기 때문에 불안하고 모든 공해문제 때문에 불안하고 요새는 또 이상스럽게 지진까지 들볶는지 이태리 나라에서도 지진 가까운 일본에서도 지진 남아메리카에서도 지진 어떻게 이렇게 사방에서 지진 문제는 일어나는지? 이래저래 불안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이 되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정치적 불안이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깔려있습니다.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에요 불안해하지 마시오. 그렇게 말해. 불안해하지 마시요.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시오. 뭐 굶어 죽을까봐 두려워한다던지 전쟁을 두려워하던지 내 질병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그 말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내가 지금은 떠나지만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 그것을 너희들이 듣지 않았느냐? 아버지께서는 나보다 훌륭하다 만일 당신들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떠난다. 일단 떠나야겠어. 그래야만 너희들에게 참 평화를 줄 수 가있다.
이것을 그때 제자들은 아마 이해를 잘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떠나시면서 육신으로는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그 평화를 주고 간다고 그러셨는데 주고 간다. 내가 주는 평화다 하는 그 평화 그것을 우리가 조금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건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다. 그것을 먼저 우리는 염두에 두고 이 시간을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로 생각할 것은 평화를 파괴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여러분도 다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죄다. 평화를 맨 먼저 파괴한 것은 에덴동산에서 아담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불순종하고 불신앙 한 것이 평화의 파괴의 시작 아닙니까? 아담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에덴동산은 평화로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거니시고 아담 하와는 영원히 그곳에 주인 노릇을 할 것이고 거기는 뭐 땀 흘려서 일할 필요도 없고 원망이나 저주나 시기나 질투나 그런 것이 있을 수 없는 영원한 평화가 깃들고 있는 곳이 에덴동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오직 한 가지 아담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한 것 그것 한 가지가 평화를 파괴시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잘 아시겠지만 우리가 그 장면을 다시 한 번 상상해 보십시다. 이제 뱀의 말을 듣고 죄를 짓고 난 후에 하나님은 이렇게 인생들에게 이렇게 선고를 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원수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오지 않습니까?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 하시고 잘 들으시오. 이 죄가 이런 관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어왔어요. 그럼 그 문제는 비켜놓고 평화를 찾는다던지 뭐 마음이 편하기를 구한다는 것은 안 된다는 그 말을 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여자는 인생의 반쪽이 아닙니까? 그래 어떤 의미로는 전체이지요.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이건 공동책임이지요. 남녀의 여자들만 혼자 잉태할 수 있는 겁니까?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거기는 여자의 제2죽음이라고 하는 진통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었고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왜 사람이 혼자 정당하게 살지 못하고 밤낮 남편에게 끌려 다니고 남편을 사모하게 되고 그렇게 병신이 되어버렸냐 말이지요. 거기 인격의 결함이거든요. 또 왜 남편은 아내를 지배하게 됐어. 지배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옵니다. 왜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게 되었냐 그 말 이지요.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를 인하여 저주를 받고 저주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요? 그런데 아담 하와의 죄로 말미암아서 온 지구덩어리가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저주받은 땅덩어리위에 사는 인간의 마음이 편할 리가 있습니까? 지구 밖에 나가서 산다면 몰라도, 그래서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한다. 종신토록 숨이 그치는 날까지 수고를 해. 그런데 이 얄팍한 인간들은 편할 자리를 찾아요. 여기가면 편할까? 저기가면 편할까? 그냥 조금만 괴로우면 찌푸리고 신경질들을 부리고 그러거든. 평생토록 수고하라고 그러셨는데 그걸 망각들을 하고 있어 무엇 때문에 그런지 원인을 몰라서 그래 이것이 누구의 명령인지 몰라서들 그러는 거예요. 잘 들읍시다.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먹게 된다. 그러면 수고하지 않으려면 밥도 먹지 말아야지 수고하지 않으려면 아예 물도 마시지 말고 밥도 먹지 말아야지 어떻게 되지요 죽으라는 말이야. 수고하지 않으려면 말은 엉뚱한 데로 뛰어갑니다마는 그러면 죽으면 평안 하냐? 아 그대로 죽으면 못쓰지요. 이 세상에서 육신은 쉴 런지 몰라도 지옥에 가서 영원한 불구덩이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걸 종신토록 수고하고 그랬지요?
그냥 지나치지 마시오. 여러분도 무엇이든지 여러분 나름대로 하나님께 소원이 한가지 씩 있을 거예요.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무슨 소원을 한 가지씩 가지고 있으면 열심히 간구하라. 간절히 기도하라는 거예요. 하나님께 간구를 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7절 말씀에 인간의 생각이 감히 미치지 못하는 하나님의 평화가 이렇게 해야 하나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여기 평화가 있어요. 그 평화로 가는 길을 요렇게 어떻게 해야 너희들 마음에 평화가 오느냐? 하는 그 길을 가르쳐 주고 있지 않소? 잘 들으시오. 어떻게 해야 마음에 평화가 와요? 어디 대답을 해봐요. 어떻게 해야 마음에 평화가 와요? 왜 여러분들의 마음에 평화가 없는가? 그걸 이 시간에 찾아내야 한다니까요. 그 평화를 얻으신 분은 말 할 것 없고 아직도 마음에 평화 깊은 평화가 없다면 어떻게 찾아요? 다시 봐요. 거기 지금 이렇게 한 다섯 가지 조건을 들었어요.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첫째입니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십시오. 둘째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리고 아무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와 간구를 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그랬어요. 이렇게 살면 인간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평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 평화가 아니고 인간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하나님의 평화, 영원한 평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러고 인제 그 다음에는 부탁이에요.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참되고 고상하고 옳고 순결하고 사랑스럽고 명예롭고 덕스럽고 칭찬 할 만 한 것들을 마음속에 품으라. 그런데 평화의 사도들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요.
또 그 다음에 평화의 길을 가르쳐준 데가 또 한군데 있어요. 골로새서 보면 또 하나 나옵니다. 1장 19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본질을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주시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이 평화의 시작이에요. 하나님과 화해 평화하지 않고는 화목하지 않고는 평화가 없으니까 먼저 만물을 만물이 저주를 받았다고 그랬지요? 아까 창세기에서 그걸 화해시키신 거야. 그리스도를 통해서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곧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를 통해서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 예수의 피를 통해서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 우리가 이걸 붙들고 늘어져야 합니다. 예수의 피를 통해서 평화를 회복한다는 이 문제를 참 죽어도 이것을 놓치지 말아야 돼. 그렇지 않으면 우리 마음에 평화를 이룩할 수가 없어 하도 미운 사람이 많고 하도 보기 싫은 것이 많으니까 자꾸 내 마음에 평화가 깨지려고 그런다니까요. 혹시라도 흔들렸다가도 얼른 예수님의 피를 생각해 예수님의 피를 생각해. 그것으로 회복하십시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를 통해서 평화를 이룩하신 것입니다. 저는요, 항상 이 자리에 앉기를 두려워하고 참 피하려고 애를 써요. 저녁에도 잘 나오지를 않아요. 왜 그러냐? 하도 많이 해서 같은 말을 또 하고 같은 말을 또 하고 그렇게 그 듣는 사람은 이만저만 괴롭겠소?
저 소리 백번은 들었겠다. 그러면서 듣는 거지. 그러면서도 또 하고 그런 것 많이 있지요. 평화를 지켰다는 것 화목을 지켰다는 것 거기는 꼭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피가 꼭 그걸 제가 도밍고스 아리오스의 성인의 전기를 통해서 여러 번 이야기 했어요. 동무 싸우면 12살 밖에 안 된 아리오스가 예수님이 너희들을 위해서 피 흘리셨는데 너희들이 싸울 것이냐? 그 어린 소년이 그럼 그 동무들이 그 말을 듣고 들었던 돌맹이를 놓고 그 싸움을 그쳤다고 그래서 꼭 그 어린영혼들 이지만 그렇게 예수님의 피를 생각할 적에는 감히 누구를 때리려다가 때리지를 못하거든. 싸우려는 마음이 없어져버려 예수님은 너를 위해 죽었다. 예수님은 아무개를 위해 죽었다. 그 말씀 한마디가 사람들의 영혼들의 마음에 화해를 조성시켜 준 것 아닙니까? 그래서 흘리신 예수의 피를 통해서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서 하나님께 적의를 품고 사악한 행동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의 목을 희생시키셔서 여러분과 화해하시고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 없고 탓 할 바 없는 사람으로서 당신 앞에 설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죄만 짓고 살던 우리들을 이렇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 것 아닙니까? 물론 여러분은 믿음의 기초위에 굳건히 서서 여러분이 이미 받아들인 기쁜 소식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고 신앙생활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 기쁜 소식은 하늘아래 모든 사람에게 전파 되었고 나 바울은 그 소식을 전하는 일꾼입니다. 그래서 평화의 일꾼이라고 그랬지요?
그걸 사도바울은 말 했지요? 너희들은 화해의 임무를 띠었다. 화해의 이치를 전하는 사람이다. 그래 하나님의 자녀들은 신자들은 평화의 사도라고 그래. 예수님이 이 땅에 잃어버렸던 평화를 회복시키시고 그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예수님의 제자들 평화의 사도로서 나타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 마지막으로 성경 한군데 더 봅시다. 로마서 7장에 이런 말씀이 있지요? 5절 근처에서 또 드문드문 볼까요?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며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성령께서 요구하시는 것에 마음을 씁니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죽음이 오고 성령께서 요구하시는 것에 마음을 쓰면 생명과 평화가 옵니다. 우리가 성령을 의지해서 내 마음을 기쁘게 애쓰고 믿으려고 해서 되는 것만이 아니야. 꼭 이 말이 들어가야 해. 성령이 도와주신다. 그러니까 나를 없애버리고 나를 죽이고 ‘성령이여 도우소서. 성령이여 도우소서.’ 그리고 기도를 해야 돼. 그래야 그 마음에 평화가 회복됩니다. 그래 성령께서 요구하시는 것에 마음을 씁니.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죽음이 오고 성령께서 요구하시는 것에 마음을 쓰면 생명과 평화가 옵니다. 평화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고 평화의 사도는 예수님 이십니다. 그걸 우리 안에서 성취시키시는 건 성령님이시고 그래서 여기는 이렇게 말씀 한 것입니다. 생명과 평화가 옵니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는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 하지도 않고 또 복종 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9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의 속에 계시면 여러분은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됩니다. 이제 그때는 강하고 혈기 덩어리이고 죄악 덩어리인 이 육체가 맥을 쓰지 못해. 그 강력하신 성령 그 위대하신 성령이 나를 막 이끌어대요. 그걸 여기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은 이제 그때는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면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와 반대로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혈기로 살거나 육체로 살적에는 마귀의 자식들이지,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신자는 아닙니다. 오늘 그리스도인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걸 다 한 번씩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이지 그 말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속에 계시면 여러분은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여러분의 육체는 죄 때문에 죽었을 지라도 우리 육체는 죄로 말미암아서 이미 죽은 것 아니에요?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속에 계시면 여러분은 이미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내 속에 새 생명을 주셔. 죄로 물들어 죽은 이 육체는 이제 송장이 돼서 맥을 쓰지 못하게 됐어. 성령이 들어오시면 그 시간 예수를 죽음으로부터 다시살리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의 속에 계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죽을 몸 까지도 살려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리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속에 살아계신 당신의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띄어가서 또 봅시다. 14절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딸이야. 그때부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이 있어. 육체적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아버지라고 부르겠어? 성령으로 사는 사람이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실 적에 그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 말이지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노예로 만들어서 공포에 몰아넣으시는 분이 아니고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바로 그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자녀가 맺어지는 것이고 평화가 조성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시작이에요. 그것이 참 기독교인이지요. 그 아래 가보면 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다. 우리는 이것을 갖은 사람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계세요. 28절 가봅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잘 되게 해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택하신 사람들을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갖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가 되도록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어려운 이야기가 나왔는데 예정에 대한 문제가 사실 예정에 대한 문제가 언제든지 한번은 같이 기도하면서 생각해야 될 문제에요.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 부르신 사람들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고 무엇으로 믿음으로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된 사람들에게 영광과 평화를 주신다. 이제 하나님과 우리가 올바른 관계에 놓아질 적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그 사도바울의 편지를 보면 언제든지 첫머리에 가서 평강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꼭 그 말씀해요.
이 평강은 하늘나라로부터 오는 평화, 속죄를 받은 사람들이 누리는 평화, 이 하늘나라의 평화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이 간직해야 합니다. 이 평화를 그리고 제가 시간이 없어서 그 다음 이야기를 더 못합니다만 이 평화를 간직한 사람은 어떠한 환난을 당하여도 두렵지 않고 이 평화는 이 세상 그 아무것도 깨지를 못해요. 나를 목을 잘라도 왜 그런가 하니 그 평화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에서 성립되었고 하나님과의 믿음의 관계에서 성립되었기 때문에 이 세상 아무것도 그것을 해치지 못해. 그걸 말하는 데가 로마서 8장 끝머리이거든요.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겠느냐? 그랬거든. 또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가 하나님이 내 마음가운데 심어주신 평화를 이 세상이 무엇이 깨뜨리겠느냐? 헐벗음이냐? 굶주림이냐? 칼이냐? 불이냐? 아무것도 이 세상에 그 무엇도 죽음도 내가 종일 죽임을 당해도 이 내 마음가운데 있는 깊은 평화는 교란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거지요. 이것이 성도들이 갖은 큰 평화 절대적인 이것이 이룩되어야 되요. 내 마음속에 먼저 이것이 이룩되어야 해요. 그리 고 나서 우리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그 평화의 복음 전해야 해요. 그 사명을 우리들이 받았다고 그렇게 성경에는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들에게는 전부 그 평화를 전해야하는 그러면 먼저 우리 마음가운데 그 평화가 없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그런 평화를 전할 수가 있겠어요?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해주셨고 사람들을 당신과 화해시키는 임무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곧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물으시지 않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과 화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화해의 이치 평화의 이치 그것을 전하는 일을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호소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십시오.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거기 평화가 임해요.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속죄 제물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찌하던지 이룩해야 해요. 어찌하던지 이 평화를 우리가 이룩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 우리는 이 어지러운 세상 괴로운 세상 괴로운 세상 가운데서 이 도탄가운데 있는 이 인생들을 평화의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한사람, 한사람 마음가운데 평화를 조성시켜야 합니다. 성령을 의지해서. 536장 부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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