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가 삼일 앞이고 정월 대보름이 지났는데 눈이 내린다. 드문 일이다. 봄 가뭄이 이어지다가 내리는 눈이라 반갑기는 하다. 제비꽃이 피기 시작한다.
새로 나야 한다
1997.02.03. 정인세 원장
성경 말씀 요한복음 3장에 있는 말씀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인들의 지도자중 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밤에 예수를 찾아와서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고서야 누가 선생님처럼 그런 기적들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니고데모는 다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어머니 배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없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에서 나온 것은 영이다. 새로 나야 된다는 내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듣고서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성령으로 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와 마찬가지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시자 니고데모는 다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이름난 선생이면서 이런 것들을 모르느냐? 정말 잘 들어두어라.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우리의 눈으로 본 것을 증거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너희는 내가 이 세상일을 말하는 데도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늘의 일을 두고 하는 말을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다. 구리 뱀이 광야의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 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죄인으로 판결을 받았다. 하나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다. 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 받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과연 악한 일을 일삼는 자는 누구나 자기 죄상이 드러날까 봐 빛을 미워하고 멀리 한다. 그러나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이 있는 데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그가 한 일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한 일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거기까지,
요한복음 4장. 예수와 사마리아 여자라는 대목에서 조금 더 읽겠습니다. 5절서부터 봅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지방에 수가라는 동네에 이르셨다. 이 동네에는 옛날에 야곱의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곳인데 거기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먼 길을 지치신 예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이미 정오에 가까웠다. 마침 그때 한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러 나왔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물을 좀 달라고 청하셨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시내에 들어가고 없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께 당신은 유대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상종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무엇인지 또 너에게 물을 청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나에게 청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샘솟는 물을 주었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시자 그 여자는 선생님 우물이 이렇게 깊은데다 선생님께서는 두레박도 없으시면서 어디서 그 샘솟는 물을 떠다주시겠다는 말씀 입니까? 이 우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파셨고 그 자손들과 가축까지도 마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우물을 우리에게 주신 야곱보다 더 훌륭 하시 단 말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이 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그 여자는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좀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고 물을 기르러 여기까지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가서 남편을 불러 오라고 하셨다. 그 여자는 남편이 없다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남편이 없다는 말은 숨김없는 말이다. 너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사실은 네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대로 말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과연 선생님은 예언자 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이 저 산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렸는데 선생님 네들은 예배드릴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말을 믿어라. 사람들이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에 이 산이다. 또는 예루살렘이다. 하고 굳이 장소를 가리키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것이다. 너희는 무엇인지 모르고 예배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예배드리는 분을 잘 알고 있다.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하게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때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나님께 예배 드려야 한다.
오늘 두 군데 말씀을 읽었습니다. 하나는 니고데모라는 사람을 만나서 니고데모가 예수님과 문답하던 대목이고 하나는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 하시던 대목입니다.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에 유명한 선생입니다. 예수님을 어느 정도 바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분이라는 걸 희미하게는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성신을 받지 못한 니고데모는 예수님에 대한 걸 똑똑히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걸 예수님께서 그 니고데모의 마음을 계몽시키시는 거, 열어 주시는 것을 지금 하고 계시는 겁니다. 니고데모에게서 우리가 몇 가지 결점을 찾아봅시다. 그는 예수님이 훌륭한 분 인줄 알았으면 왜 대낮에 와서 당당하게 이런 질문을 하지 못하고 밤중에 사람들 눈을 피해서 몰래 왔던가? 그의 마음속에는 세상 사람의 눈을 무서워하는 비겁한 마음과 자기 자신의 지위를 생각하는 쓸데없는 허영스러운 마음이 아직도 벗겨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니고데모가 거듭나지 못한 까닭입니다. 그래서 예수님한테 이렇게 몰래 와서 질문을 하니까 예수님은 그것을 지금 그 마음을 갈라놓으려고 하시는 겁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 나라 일을 내가 말해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거듭난다는 말을 니고데모는 못 알아들었습니다. 대체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인가? 거듭난다는 거, 우리들은 지금 희미하게나마도 짐작은 합니다. 그러나 저부터 완전히 거듭나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거듭난 세계를 밝히 보는 눈은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 니고데모는 그래서 거듭난다는 것을 물질적으로만 해석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이렇게 커다랗게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어머니 배속에 들어갔다가 또 나올 수 있습니까? 그 거듭난다는 것을 육체적으로만 해석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하 네가 이스라엘의 선생이 돼서 그렇게도 말귀가 어두우냐? 이 내 말에 뜻을 통 모르는구나. 뱃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라는 말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육체를 벗어버리고 육체의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네 속사람 영이 깨어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 뜻으로 말씀을 했지요. 예수님이, 바람이 임의로 불어도 당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거와 같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도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사람이 변해져 바꿔진다. 새 사람이 되는 거야. 그 새 사람이 되는 과정을 지금 이야기해서 납득시키려고 애쓰시지만 니고데모는 끝끝내 못 알아들었습니다. 니고데모는 마지막 까지도 그 말귀를 거듭난다는 게 무엇이냐? 하는 걸 못 알아들었습니다. 거기 비교하면 이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자를 이 시간에 중점적으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로 말하면 참 말할 수 없이 타락된 여자입니다. 오늘은 이 남자하고 살다가 또 내일은 저 남자하고 살다가 도 며칠 살다가 그 남자 또 던져 버리고 다른 남자하고 살다가 남편을 수없이 바꾼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동네 사람들 중에서도 지천거리 폐물과 같은 취급을 받던 여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왜 사마리아 길을 택하셨을까? 왜 사마리아 길을 택하신 유대 사람들은 사마리아 쪽으로 가지도 않아. 사마리아 사람들은 아주 잡종으로 더럽게 타락된 인간으로 치기 때문에 유대 사람들은 사마리아 쪽으로 지나가지도 않는데, 왜 하필 사마리아 길을 택하셨을까? 가만히 결과적으로 보면 이 여자 하나를 만나기 위해서 사마리아 길로 가신 것 같아요. 왜 여자 중에도 그렇게 똑똑한 여자 깨끗한 여자도 많을 텐데 이렇게 지저분하게 아주 헌 걸레조각처럼 된 여자 아주 타락한 여지없이 타락한 이 여자하나를 만나러 사마리아 길을 택하셨을까? 그래서 예수님은 그 야곱의 우물가에 앉아서 그 여자 하나를 기다리고 계시 게 되었어요. 여자가 와서 물 긷는 걸 보고 예수님이 이야기를 건네셨습니다. 내게 물 좀 다오. 그러니까 여자가 먼저 깜짝 놀란 건 유대사람과 사마리아 사람은 옷이 벌써 다릅니다. 유대사람이 입은 옷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옷부터 다르게 입습니다. 당신이 유대사람이 돼서 어째 나 같은 이런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건네요? 참 이상한 사람도 다 있네. 그렇게 반문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당신은 유대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고 말을 하였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 인들은 서로 상종하는 일들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그 여자하고 말을 걸기 시작을 하십니다. 그 여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또 너에게 물을 청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나에게 청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네게 샘솟는 물을 주었을 것이다. 이것도 통 못 알아들을 소리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못 알아들을 소리지요. 그래서 그 여자도 못 알아들었습니다. 그 여자는 선생님 우물이 이렇게 싶은데다가 선생님께서는 두레박도 없으시면서 어디서 샘솟는 물을 떠나가 주시겠다는 말입니까? 네가 내가 누군지 알았더라면 내게 샘솟는 물을 달라고 네가 청했을 거야. 그러니까, 선생님 두레박도 없으시면서 이 야곱의 우물은 이렇게 깊은데 어떻게 내게다 물을 줄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물어 본 것입니다. 이 우물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파셨고 그 자손들과 가축까지도 마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우물을 우리에게 주신 야곱보다 더 훌륭 하시 단 말씀입니까? 이 세겜 고을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야곱은 굉장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야곱이 판 우물은 아주 대대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양이 짐승이 마음대로 먹고도 남을 정도로 깊은 셈입니다. 그러니까 야곱보다 당신이 더 크시다는 말씀입니까? 이 여자가 물어보는 것은 예수님의 생각과는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주시겠다는 생명수는 영혼의 양식인데 여자는 어디까지 그 우물물 육신의 물만 생각합니다. 그래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다는 말입니까? 눈에 보이는 샘만 놓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우물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마셨고 그 자손들과 가축까지도 마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런 우물을 우리에게 주신 야곱보다 더 훌륭하시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또 여자의 묻는 말과는 다른 엉뚱한 말을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이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야곱이 판 이 우물물을 너희들은 제일로 알지만 이 물을 먹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을 알아듣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희미하게는 알지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물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또 예수님이 주시는 그 물을 마시면 우리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겠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듯 하지요. 그러나 확실히 그 뜻을 깨닫는 사람은 그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셔봤어야 알지요. 그 물을 마셔본 사람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게 무엇이라는 걸 배에서 생수가 강같이 흐르겠다는 게 무슨 뜻인지 그걸 좀 알겠지요. 그러나 이 여자와 같이 우리도 확실히는 깨닫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을 내가주는 물은 내가주는 물을 마신다면 그 속에서 생수처럼 솟아올라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물을 나는 네게 주겠다. 그런 말씀이지요.
그러니까는 여자는 아 거참 좋구나. 귀찮게 물 길러 오지 않아도 되고 두레박질도 안 해도 영원히 뱃속에서 생수가 솟아나는 그런 물을 이 양반이 줄 수가 있다니 참 굉장한 물이로구나. 그러니까는 이 말씀을 듣고 그 여자는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좀 주십시오. 아마 우리도 그럴 거예요. 지금 예수님이 여기 오셔서 내가 너희들에게 물을 줄 테다. 그런데 이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아이고, 그 물 좀 주십시오. 그럴 것 아닙니까? 그 여자도 아주 반가워서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좀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고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이렇게 귀찮게 물을 길러 다니지 않아도 되겠으니 그 물 좀 주십시오. 인제 여기 와서 예수님의 말씀하는 초점 그것과 이 여자가 요구하는 초점이 딱 부닥쳤습니다. 여자가 그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좀 주십시오. 예수님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목마르지 않겠다. 둘이 맞지 않았습니까? 인제 거기서 문이 열려야 하거든요. 문이 열려 니고데모와 예수님이 문답할 적에 물과 성신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나라를 보지도 못하고 들어가지도 못하겠다. 하는 그 대목에 니고데모는 영 못 알아듣고 말아버려. 그리고 그냥 후퇴해 버려. 그런데 이 여자는 그래도 기어이 그 물을 받아먹으려고 하는 욕구가 있었거든. 어떤지 그 무슨 물인지 니고데모 같으면 세상에 그런 물이 어디가 있겠습니까? 먹으면 또 목이 마르지 목마르지 않은 물이 어디가 있겠습니까? 하고 그대로 물러났을지 몰라. 그런데 이 여자는 순진한 것이 병이야. 그래서 어찌되었든지 그 물을 좀 먹으려고 그랬어. 받아먹으려고 하는 열심히 있었어. 그것이 니고데모와 이 여자가 다른 점입니다. 그러니까는 예수님께서는 그럼 내가 그 물을 네게 주겠다. 주겠는데 네게 그 물을 받아먹을 구멍이 막혔어. 죄가 있어. 죄가, 그 죄를 내놓아라. 그래서 그 죄를 지적하시려고 네 남편을 불러오너라. 그 여자의 문제는 남편이야. 남편을, 이 남자 저 남자 자꾸 갈아치우는 그게 큰 병이야. 이 여자가 생수를 마시지 못하고 영혼이 메말라있고 딱 막혀있는 것은 그 음란한 생각 그것 때문에 지금 이 여자는 막혀있어. 그러니까 그 구멍을 터줘야겠어. 그러니까 남편을 데려 오라고 그 아픈 대목, 제일 중요한 대목을 꽉 찌르신 것입니다. 그 여자가 남편이 그러니까 그 여자는 예수를 만만하게 보고 네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니까 그때 참 잘 못했습니다. 이러고 항복 했더라면 좋은걸, 또 도망을 치려고 그래. 거기서 빠져버리려고 남편이 없다고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하고 거기서 빠져버리려고,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걸 놔주지 않으시고 꽈 붙드신 거예요. 남편이 없다는 말은 숨김없는 말이다. 네 말은 참말이다. 너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사실은 네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대로 말을 하였다. 옳은 말도 돼. 참 남편이 없다는 말도 돼. 그러니까는 인제 이 여자가 속이 들켜버렸거든. 속에 비밀이 폭로되어 버렸어. 우리는 이게 문제입니다. 우리 속에 비밀한 죄가 있는데 그걸 숨겨 놓고 드러내놓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생수를 마시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속에서 생수가 터지지를 못하는 거예요. 이 여자는 이제 그것이 들켜나니까 항복을 해. 여기서 보니까 여자는 항복을 했는데 아주 원체 항복을 해. 그러니까 깜짝 놀라서 남편이 네가 다섯이나 있어. 그런데 지금 있는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야. 그 네 남편이 없다는 말 바로 말했다. 그러니까 여자는 이제는 도망갈 구멍이 없어져버렸어. 꽉 막혀버렸어. 그러니까 여자는 자복을 하고 나선거야. 그래서 그 다음에 자복한 거 보면 그 여자가 그랬더니 그 여자는 과연 선생님은 예언자 십니다. 선생님은 아주 남의 속을 꿰뚫어 보시는 예언자 십니다. 선생님 말씀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동네로 들어가서 동네 사람들에게 모두 광고를 시켰어. 내 과거를 다 들춰내는 분이 저기 한분 나타났어. 저 양반은 정말 예언자시오. 그 다음에는 부끄러운 것도 없어졌어. 여자가 수치스러운 것도 없어졌어. 동네 사람들 중에는 아는 사람은 알았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냥 다 들춰내 버렸어. 내 속을 다 들춰내시는 양반이 저기 오셨어. 이 대목이 우리가 중요하게 이 시간에 찾아보고자 하는 대목이에요. 우리에게도 다 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죄가 비밀히 지은 죄가 있고 나타나게 지은 죄도 있어. 그러나 그걸 그대로 드러내 놓으면 그리고 그걸 쏟아버리면 그 죄를 탁 내놔버리면 샘구멍이 탁 터지는데 마치 샘을 파는데 자꾸 파고 들어가다가 바위가 깔려있든지 하면 물이 안 나오고 말아. 그러면 보통 사람들은 집어던져 버립니다. 그러나 끈기 있는 사람들은 정을 가지고와서 그 바위 돌을 깹니다. 그래서 그 바위가 딱 쪼개지고 그 속에서 생수가 펑 쏟아져 나와야 인제 그게 참 샘이 되지요. 그게 참 샘인데, 이 죄라는 것이 우리들의 양심을 우리들의 마음을 막고 있어. 모두 막고 있어, 그냥 사람마다 전부 그 샘구멍이 속에서 사람 속에는 터져 나올 생수가 있는데,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만들어 놓은 영혼이 있는데, 그 영혼이 그 세상 죄로 막아서 콱 막혀져있어. 모두 가려져있어. 가려져 있는데 그걸 내놓지 못해. 그걸 자복하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해. 회개를 못하기 때문에 속에서 생수가 터지지 않아. 그러니까 맨날 찝찔한 물만 먹어. 그러고 성경말씀을 들어도 밤낮 귀 구멍으로만 듣고 흘려내 버리고 듣고 흘려 내버리고 성경책을 봐도 글자만 보이지 그 속에 뜻을 보이지 않아. 말씀에 뜻은 보이지 않아. 그러기 때문에 밤낮 성경 읽어도 밤낮 생활은 똑같아. 생활은 변해지지가 않아. 말씀을 밤낮 들어도 마음은 변해지지가 않아. 밤낮 그대로 있어. 이것이 문제라고, 이 사마리아 여자들과 같은 것이 오늘 현대 교인들의 심리입니다. 모두 너나 없어. 저도 그렇고 모든 사람들의 심리는 그냥 그 샘구멍을 딱 틀어막고 있는 그 죄, 그 죄악성 남편이 다섯이나 있다는 그것을 털어 내놓지를 못해. 그걸 예수님께서 이렇게 구멍을 뚫으신 거예요. 그 샘구멍을 헤쳐 놓으신 거예요. 그러니까 이 여자는 그냥 깜짝 놀라서 한편으로는 그 영혼이 기뻐서 동네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았어요? 자기 동네에 들어가서 내 과거를 다 알고 있는 분이, 내 죄를 아는 분이 있다고 했어요. 그러고서는 모두 동네사람들이 그 여자를 따라서 나와서 예수님을 만나서 모시고 들어가지 않아요. 우리 동네에 가서 (끊김)
바울만 하더라도 회개하기 전에 그런 악종이 어디가 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기어코 쫒아가서 이 잡듯이 빈대 잡듯이 해서 다 죽여 버리려고 무슨 원수가 졌다고. 그렇게 예수 믿는 사람은 샅샅이 뒤져버리던 그 하필이면 바울을 통해서 사도바울 같은 사람을 통해서 가만히 광주에서 맨 먼저 예수 믿었다는 최 흥종 목사님 같은 분도 그렇지요? 그냥 막걸리 집에 가서 그냥 술만 들어 퍼먹고 사람을 때리지 않으면 그날 저녁에 잠을 자지 못했다고 그러지 않아요? 사람하고 한 번씩 두들기고 싸움을 하고 그런 최 흥종 같은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을 통해서 복음이 들어왔어요. 또 저 같은 이런 인물 어찌되었든지 사람 중에 찌꺼기 걸레조각 같은 똑똑하고 깨끗하고 잘난 척 하고 그런 사람을 통해서 기독교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는 아주 인간 중에서도 약하고 추하고 더럽고 형편없는 또 그 사람 중에서도 더러운 사람을 찾아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꼭 그래.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돌아다니실 적에 보면 항상 절름발이 앉은뱅이 그런 병신들 있는데 세리 모두 창녀 그런 사람들만 찾아다녀. 그러니까 바리새교인이 예수님을 보니까 참 이상한 양반이야. 왜 죄인들을 친구가 되냐? 밤낮 죄인들의 친구가 돼. 왜 사람들 저희같이 바리새교인같이 그렇게 점잖은 척 하고 또 사두개 교인과 같이 그렇게 높은 사람들, 그런 사람은 상대도 하지 않고 저렇게 맨 모두 세리 같은 사람 창녀 같은 사람 그런 사람만 너희 선생은 참 이상도하다. 어째서 그런 사람만 찾아다니느냐? 그렇게 예수님을 비난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대답 하냐?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 아주 세상에서 약한 사람 바보스럽고 몹쓸 사람 그런 사람을 택하셨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기독교가 지금 저런 대학생들이나 박사들이나 그런 사람을 통해서 들어와서 이렇게 잘 퍼지는 것 같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그런 사람들은 상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만 사는 빈민굴 또 무식한 여자 제가 어려서 동네에서 자랄 적에 저는 그때 예수도 안 믿었지만 동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무식쟁이들 또 무식한 여자들 그런 사람들만 모아놓고 예수를 전하고 있다. 그런 말을 저도 들었어요. 의례 예배당에 나가는 사람들보면 그저 늙은이, 그렇지 않으면 무식한 여자들, 그렇지 않으면 아주 가난한 노동자들, 그런 사람들만 그 동네마다 어떤 동네가든지 예배당이 맨 처음 생기기 시작할 때 보면 그런 사람들만 모여 있는데 복음은 낮은 데로 아주 천한 데로 비천한데로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걸 지적을 했어요. 고린도서에 약한 자를 택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무식한 자를 택해서 유식한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가난한 자를 택해서 부한 자를 꺾으신다. 기독교는 그런 종교에요. 아주 약한 곳이야. 우리 마음을 조금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마음이 왜 예수님을 못 맞아들이는가? 나는 깨끗한 척 하고 나는 깨끗하다. 나는 무던히 깨끗하게 살았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그 마음가운데 못 들어가시는 거예요. 너같이 깨끗한 사람은 네 멋대로 살아봐라. 그러시는 거예요. 네가 얼마나 깨끗하냐? 깨끗하면 내 보기에는 천사도 더럽거든. 네가 깨끗하면 얼마나 깨끗하냐? 또 뭘 좀 아는 척 하는 사람, 자기는 똑똑하고 다른 사람은 모두 바보들 같고 자기는 똑똑하고 네가 똑똑하면 얼마나 똑똑하냐?
그런 사람 마음가운데는 예수님이 들어가실 수가 없어. 들어가실 수가 없어. 그 똑똑한 척 하기 때문에 예수를 못 믿는 거야. 영 회개가 되지를 않아. 마음이 녹아지지를 않아. 그냥 자기 똑똑한 척 하고 교만한척 하고 아는 척하고 깨끗한 척 하는 그 마음이 무너져야해. 그 마음이 무너져야해. 이 사마리아 여자가 완전히 예수님의 그냥 마지막에 네 남편을 데려오너라. 그 말에 마음속에 있는 걸 다 털어내놓았다. 그리고 예수님이 네 남편 없다는 말이 옳다.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있는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다. 이제는 도망갈 구멍이 없어. 뒤로 물러날 구멍이 없어. 예수님의 말씀은 양쪽에 날선 칼과 같아서 예리해서 그 양심의 밑바닥을 뚫어뜨리시는 거야. 뚫어, 그래야 눈이 똑바로 떠지고 정신이 제 자리에 들어가. 그것이 그 아픈 대목을 예수님이 메스를 들어서 수술을 하셨어. 수술을 하셨어. 외과의사가 그냥 칼을 들고 종처를 째고 막 고름을 긁어내듯이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 여자의 가장 아픈 대목, 그 상처를 수술을 하셨어. 너는 남편 없다는 말이 옳다. 너는 남편 다섯이나 있었다. 지금 있는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다. 그건 사정을 보지 않고 그 여자의 부끄러움과 아픔을 상관하지 않고 사정없이 그 여자의 아픈 대목을 파서 헤치신 거예요. 그러니까 이 여자는 꼼짝도 못하고 그냥 항복을 해. 항복을 해버렸어요. 니고데모는 그 수술을 안 받으려고 점잔을 빼고 자꾸 피해. 그래서 그 중요한 교리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나라를 보지 못한다. 영혼이 거듭나지 않으면 도저히 살길이 없다. 하늘나라 천국 소식을 못 듣는다. 그 큰 교리를 중요한 대목을 지금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니고데모는 그 자리를 그냥 지나갔어. 물론 니고데모가 나중에는 회개 했습니다만 나중에는 회개해요.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니고데모는 점잔을 빼다가 지가 아닌척하고 깨끗한 척 하다가 그 좋은 기회를 놓쳤고 사마리아 여자는 아주 밑바닥까지 인생의 밑바닥까지 타락했던 이 여자는 도리어 여기서 한 번에 거듭남을 받았고 중생을 얻었고 기쁨을 얻었고 기쁨을 얻었어. 그리고 사마리아 여자 한 개의 여자가 회개 할뿐 아니라 온 사마리아 고을에 기쁨의 복음이 들어가는 길이 열렸어. 그리고 유대 사람들이 그렇게 먼 길을 돌아서 다니던 그 갈릴리와 유대 사이에 그 세겜 고을을 지나다니는 큰 길을 열었어.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적은 죄라도 한 가지가 있으면 내가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 막힐 뿐 아니라 여러 사람의 길을 막습니다. 한 사람이 회개하지 않음으로 그러나 한 사람의 영혼이 회개함으로서 여러 사람이 살 길이 열립니다. 우리가 단체 안에서도 그런 것을 봅니다. 한 사람이 죄를 그대로 품고 있고 전혀 악한 마음을 버리지 않음으로서 여러 사람이 갈 길이 지장을 받습니다. 여러분들이 그걸 단체 안에서 잘 보았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잘못함 으로서 여러 사람이, 이건 구약에서부터 전부 내려오면서 우리가 많은 증거를 봅니다. 아간이 한 사람이 조그만 물건을 도둑질 해다 감춘것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큰 전쟁을 앞에다 놓고 쪼그만 아이 성 같은데 들어가서 치다가 쫓겨 나오지 않았어? 그리고 수백 명의 사람이 죽지 않았어? 한 사람이 쪼그만 욕심 때문에 쪼그만 금덩어리 하나 감춘 그 욕심 때문에 그 큰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가나안땅을 들어가 점령해야 하는데 그 길이 막혀버렸어. 길이 딱 막혀버렸어. 그런데 그 아간 이와 그 족속이 몰살을 당한 뒤에야 그 길이 열려. 우리 마음가운데 있는 죄악의 씨가 죄악의 뿌리가 그것이 무서운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극히 적은 거라도 하나를 내가 품어놓고 그걸 회개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고 껍데기를 적당하게 넘기는 그것 때문에 큰 일이 지장을 받습니다. 하늘나라로 갈 길이 막힙니다. 우리 영혼들이 새 생명을 얻을 길이 막힙니다. 생수가 터질 그 구멍이 막혀버립니다. 생수가 터질 구멍이 막혀버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나도 스스로 생각을 합니다. 사마리아 여자와 같은 내가 지금 큰 길을 막고 있지 않은가? 이걸 생각들을 해요. 찬송가 17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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