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 전 날 모처럼 미세먼지가 걷히고 햇볕이 반갑다. 모처럼 금평저수지를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저수지 주변에 나와 있다. 제2금평저수지 공사가 궁금해 찾아 보았다. 몇년 째 이어진 공사로 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 인 듯 금년에는 공사가 완공 될 듯 하다.
말씀의 존재
1971.08.16. 유영모 선생
요한복음 첫 장에서, ‘맨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 부터 말씀이계셨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과 똑 같은 분 이셨다.’말씀 그것은 하나님과 똑 같은 분이야. 이거 이상한 소리 아닙니까? 그 바로 이렇게 번역을 하면 애초에 나는 60년 동안을 본 성경 거기에 애초에 이렇게 번역이 되었으면 훨씬 60년 동안 성경보고 내 영혼을 기르는데 훨씬 더 힘 있게 길러졌을 런지 몰라요. 맨 처음에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계셨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과 똑 같은 분이시었다. 우리가 전에 보던 성경에 말씀하고 우리 아버지 관계가 이렇게 밀착된 관계가 되어져 있는 걸 느끼지 못했어요.
이 사람이 60년을 외우고 읽은 성경인데 이번에 공동위원 카토릭 위원들과 우리 개신교 위원들이 모여서 이 신약전서를 번역을 했다는데 이렇게 된 거 맨 처음 맨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계셨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과 똑 같은 분이시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하나님 아드님으로 우리에게 왔다는 것은 일찍부터 우리가 분명히 보고 읽고 그랬지요. 그런데 하나님과 말씀의 관계가 이렇게 까지 되는 것은 우리가 이때까지 본 성경에는 그렇게까지는 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된 것은 참 감사한 일이지요. 말씀이 귀한 거 말씀이 높은 거 말씀이 곧 영원한 거 이걸 도무지 느끼지 못했는데 여기 이렇게 번역을 해 놓으니까 곧 느껴. 곧 느낍니다.
맨 처음에 천지가 창조되기도 전에 말씀이계셨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과 똑 같은 분이시었다. 그 우리가 말씀을 얼마나 이 번역으로 읽을 때 얼마나 우리가 다시 말씀을 더 가까이 친해지지 않아요. 말씀이 전에는 귀한 줄 알아도 먼저 하나님이요. 그 다음에 말씀입니다. 이쯤 되었지. 이 말씀이란 이런 거예요. 그러기에 예수님은 말씀 그 말씀이 우리 옷 입듯이 우리의 모양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아들 영생의 소식 그것을 주시려고 오셨다는 거예요. 좀 기도하고 싶은데 인제는 그만 그치는 게 옳지 않아요. 여기 기도하지 않아요.
찬송가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지금 헤어 질 때니까 그 찬송 부르지만, 그렇지만 정말, 정말 다시 만날 때는 아버지 모시고 들어앉아서 거기서 꼭 바로 다시 만나는 거 아닙니다. 죽일 거 다 죽여가지고 정말 생명 속에 들어가서 같이 아버지 안에서 아버지는 또 그 아들들 속에 모시고 이렇게 되면 생명을 온전히 이루는 거기서 만나는 게 참 만나는 거예요. (끊김)
말씀 조금 더 나온다고 합니다. 오늘 몹시 덥게 알고 지냈어요. 오늘 세군데 요양하시는 형제들을 참 오래간만에 만나 봤어요. 그 작년 그러께 있던, 이 세상 떠난 이 다는 제가 말씀 못 들었지만 몇 몇 분을 요전에 서울 오셨을 때 나더러 자세히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갔다 오는데 가면서도 저기 저 집에 있는 어떤 할머니 어떤 이 그 이는 말씀 들었으니까 아무 할머니 세상 떠났다. 또 어떤 젊은 거기 일을 하던 젊은 사나이, 그 사람 아마 20 안짝일 걸, 한 20되나요? 그런 사람이 세상 떠났다는 걸 말씀 들었는데 그 집 가까이 가서 저기 보이는데 그 할머니 그 도령은 세상을 떠났다니 지금 여기 들어가더라도 그분 의례 못 뵙는 거 그리고 갔었고 그 세군 데를 다 돌아서 왔어요.
왔는데 아마 더위가 모서가 돼서 그런지 더위가 아주 덥다. 그런 생각이 나요. 그리고 여기 와서도 자꾸 더워요. 저녁이 돼서 저녁을 먹는데 저녁을 먹는데 더워. 나 밥 잘 한 그릇 안 남기는데 너무 더워서 그 다 들어만 가야 하는가? 좀 남겼지. 그리고 나서는 저녁에도 여기도 그냥 앉았는데 어떻게 더운지. 그래 저녁에는 나와서 목사가 기도해 주시는데 나는 같이 기도드릴 것만 가지고 들어왔는데,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우리는 기도를 드릴 줄을 몰라요. 그래 기도를 생각 했어요. 이왕 여러분들과 함께 기도를 생각을 한 겁니다.
모든 걸 생각 한 뒤에 해요. 생각 한 뒤에 해. 그래 그런지 이제는 더위도 달아나고 속이 갑갑하던 게 다 없어졌습니다. 온전히 가라앉았습니다. 이제 드러누우면 잠을 아주 썩 달게 잘 겁니다. 세상을 온전히 잊어버릴 겁니다. 감사 합니다. 아멘. 나는 동이 기도생활을 이렇게 해요. 나 혼자 살아도 이렇게 하고 여러분하고 만나도 이렇게 해요. 누구누구에 기도를 인도 한다는 생각은 손톱 끝만큼도 없어요. 그러니까 누가 나더러 기도 인도 하라는 건 그건 나를 푸대접 하는 거야. 오히려 오래간 만이라고.
찬송가 ‘세상 모든 수고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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