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전북대학교 구강악안면외과에 다녀오다 : 숨, 마지막 인사

mamuli0 2020. 1. 8. 17:20

 삼일 전 산책하다가 미끄러져 넘어졌다. 젊을 때라면 문제 될게 없는데 타박상은 그런대로 좋아 졌으나 턱관절에 이상이 생겨 치과ㅔ 갔는데 대학병원에 다녀오라 했다. 전북대학 치과 병원 구강 내과와 구강악안면외과에 다녀왔다. 의학의 발달로 세분화된 전문의와 전문과가 생겨났음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숨, 마지막 인사


 1971.08.17.  유영모 선생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겁니다. 오늘 새벽에도 아주 죽어, 죽어. 그리고 생명줄을 붙잡고 살릴 거는 살려. 살릴 거를 살리는 거, 길이 험하지만 문도 조그마하지만 그게 정말 순하게 영생의 참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는 겁니다. 이것만은 오늘 한 날을 보내는데 이것만은 새벽 깨면서 사망의 법은 버리고 생명의 법으로 살아 나가라는 것으로 지금 다시 하루 다 살았는데 저녁에 자기 전에 또한 그 율법을 그걸 맞춰 나갔다는 거 그거 맞춰 버려야해. 그 틀리고 또 틀리는 그거  아주 없애 버려야 해요. 세상 걱정은 아주 없애 버려야해. 그건 죽는 겁니다. 이때까지 걱정 하면서 산 그거 죽어야 해요 아주 죽어야 해요. 그 사망의 법은 내 던지고 이제 생명줄을 붙잡는 그 길로 가야 하는데 그건 그리스도의 길이에요. 기름 바른 길이에요. 닦고, 닦고 놓아지는 길이에요. 그 길로만 가요. 그런 길이 험한 거 같으나 차곡차곡 올라가면 아주 틀림없이 가 져요. 나중에 나갈 구멍이 발견 되어도 환히 뚫리지 않았어요. 갑갑해요. 그러나 믿음으로 그냥 딛고 나가봐요. 그렇게 좁은 데가 아니에요. 가장 순하게 나갈 수 있는 겁니다. 나는 그런 거 꼭 그렇게 믿습니다. 나가 탁 서면 할렐루야 아멘. 꿈을 깨니까 이렇습니다. 우리 이 시간은 하루 밤 꿈꾸는 거예요. 이 걱정 많은 세상이라는 밤새도록 꿈꾸는 거예요. 험한 길을 지나서 마지막 문을 턱 나가면 깨는 겁니다. 간밤에 꿈 에잇, 그 애썼구나. 그 꿈인 줄 알았으면 깨면 될 걸, 그렇게 애를 썼는데 깨고 보니까 꿈이로구나. 그 왜? 그 꿈에 왜 그랬어? 아휴 땀이 이렇게 났네. 꿈도 사나운 꿈 땀을 못 참네요. 글쎄 뭣이라고 할까? 기도를 한다고 하는데 기도를 한번 도 안 한 셈 아니야. 그럼 이쯤하면 안했으니 꼭 해야겠다고 또 이런 마음이 서. 그건 아니에요. 마음먹은 말 하는 데는 이번 말하는 동안 저런 다른 생각 없이 가는 것은 나는 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자꾸 이전에 잘 갔으면 내 버렸어요. 그리고 많이 가지 않는 좁은 길 좁은 길로 가자요. 험해 못갈 것 같은데 턱 디뎌 보니까 차례차례 올바로 조금씩 올라서는 것을 느끼게 살아 걸어 왔어요. 실상 그리스도의 길이라는 건 밟아보면 그런 거예요. 기름 바른 길 이라니까 닦은 길이니까 그렇게 되요. 어떻겠어요? 이렇게 간단히 정리를 하면 하늘 길을 가는 요령을 자세히 간단하게 알아가지고 참 크리스챤의 모습 할 것입니다.


 


하늘 계신 아바께 이름만 거룩히 참 말씀이니 이다. 이에 숨 쉬는 우리 밝는 속 알에 더욱 나라 찾음 이어지 이다. 우리의 삶이 힘씀으로 새 힘 솟는 샘이 되었고 진 짐에 짓눌림은 되지 말아 지이다. 사람이 서로 바꾸어 생각을 깊이 할 수 있게 하옵시고, 고루 사랑을 널리 할 줄을 알 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와 임께서 하나이 되사 늘 삶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모두 하나이 될 수 있는 성언을 가지고 참 말 삶에 들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뜻이 위에서 된 것과 같이 우리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아멘.
 하느님 계 계셔서 날 내셨으니 내 날 가져 계 받들어 섬기시도록 이제 내 속 알과 삶의 목숨과 내 나위 힘과 얼 되 받들어 들어 아버지 뜻 맞고 아버지 말 숨 쉬어 나와 모든 사람 속 알라 나 외 이 더욱 되기만을 가장 비나이다. 우리 조임 살에 조임이 크고 몬지 무거워 드린바 못되오나 되 불쌍히 바라며 제 섬기 울 나들이 되게 비나이다. 아멘. 이걸로 저는 기도를 마친다고 합니다. 


 


308장
350장 ‘주의 곁에 있을 때’
이 시간을 마칩니다.


 


 하느님 계 계셔서 날 내셨으니 내 날 가져 계 받들어 섬기시도록 이제 내 속 알과 삶의 목숨과 내 나위 힘과 얼 되 받들어 들어 아버지 뜻 맞고 아버지 말 숨 쉬어 나와 모든 사람 속 알라 나 외 이 더욱 되기만을 가장 비나이다. 이건 저 받들어 빈다는 기도를 요새 따로 외우는 거 그게 있는데 지금은 여기 앉아서 이렇게 그걸 생각하고 그대로 내 속으로 시작을 하니까 맨 먼저 처음에 시작을 하는 그게 나와요. 지금 그대로 외운 겁니다. 부득이해서 여러분 앞에 같이 하고 그렇게 하려고 하니까 그런 걸 하는데도 고치고 또 고치고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그쯤  좋게 구비하게 된 걸 가지고 같이 외우고 했으면 좋겠다는 그것이 그렇기 되기 때문에 그걸 고치고 말을 바꾸고 여러 번 그렇게 하는 건데 원 거시기는 좋거나 안 좋거나 첫 번, 즉흥적으로 쑥 나와서 된 거 그것이 정신이 제일 거기 다 담긴 거예요. 거기 모양이야 그거보다 더 좋게 될 수도 있고 하지만 뜻을 찾아 첫 번 쑥 나와서 그렇게 된 거 거기에 제일 생명은 완전히 생명길이 완전히 힘 있게 들어있는 거예요. 그것을 봉지 하나가 훅 하면 순하게 미끈하게 나와요. 원 사는 건 그런 겁니다. 그런 기세로 그 사는 기운이 발작을 하는 거예요. 첫 번 나올 적에는 그런 기세로 나오는 김입니다. 정말 성신이라는 건 그렇게 발동을 하는 겁니다. 주저앉아서 기도를 한다 해도 복음 경 그 식으로 되든지 주기도문 같은 그런 뜻으로 되든지 그렇게 나와요. 그렇게 할 적에는 이 기도는 같이 부르는 이는 새벽하면 새벽에 일어났어요. 나도 일어나는 거와 같이 그 분들도 일어납니다. 그 분들도 기도를 하면 나와 같이 이런 기도를 할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시간에 기도를 드리는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나요.


 


같은 시간에 그렇게 한다면 이 동안이 좀 떴지 한자리에 앉은 거와 똑 같은데 그럼 한 자리에 앉아서 같은 기도를 한다. 그렇게 생각을 해요. 어떤 때는 아무개도 지금 일어났을까? 일어나서 숨을 쉴까? 내가 일어나서 숨을 쉬는 거 모양으로 숨을 쉴까? 숨을 쉬어서 나는 지금 이거 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도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을 하는데 과연 무슨 생각을 하는가? 나도 일어나 숨을 쉬는데 아무개도 일어나서 숨을 쉬나 숨은 무슨 숨을 쉬나? 숨 쉰다는 건 한문으로 소식(消息)인데 소식(消息)이라는 건 이 숨을 소비한다는 말인데 숨을 소비(消費)하는데 내가 아무개도 일어났나? 그는 무슨 숨을 쉬나? 무슨 생각을 하나? 하나님하고 연결 하는 그런 숨을 쉬나? 그것을 그 소식(消息)하는 것을 몰라서 궁금해 하는 건데 그래 그거 아는 걸 소식(消息)을 알았다. 그걸 도무지 여러 달 모르는 걸 소식을 못 들었다. 그건 실상은 아무개의 숨 쉬고 사는 게 무슨 생각을 가지고 무슨 일을 가지고 숨을 쉬는가? 그걸 몰라 궁금해서 그걸 갖다가 소식(消息)이라고 하는 거예요. 숨을 쉬면서 숨 바퀴가 돌아가면서 영혼의 바퀴가 돌아가는 거니까 아무개 소식을 못 들었다. 아무개가 숨을 무슨 숨을 쉬면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께 가깝게 돌아가는 그 생각을 하나 마귀에게 가깝게 되는 거기에 바쁘게 숨을 쉬나? 그걸 알고 싶다고 그걸 모르는 소식을 도무지 통치 못해서 여러 달 아무개 소식(消息)을 모른다는 겁니다. 사실 소식(消息)이라는 건 숨을 소비한다는 말이에요. 아무개 소식(消息)을 요새 못 들었다. 아무개 숨을 요새 어떻게 쉬는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쉬는지 그걸 몰라서 답답하다는 겁니다. 그래 소식(消息)을 못 들었다고 그럽니다. 그 숨 쉬는걸 알지 못한다는 거예요. 숨 쉬는걸 알지 못하는데 숨 쉬는걸 좀 알아야만 하겠다는 거야. 그걸 모르면 답답하단 말이야. 편지를 못 받았다. 요새 뭘 하는지 모르겠다. 그게 답답한데 그게 다른 말이 아니야. 숨을 쉬는 걸 무슨 생각을 하면서 숨을 쉬는가? 위로 꼭대기로 해서 아버지하고 통하는 생각을 하면서 숨을 쉬는가? 아래로 수그러져서 마귀하고 속살거리는가? 그게 궁금해서 하는 거예요.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한 번 더, 여기 이 마루를 예라고 하고 숨을 쉬고 앉았습니다. 그 예 라는 재력을 이제 예 나가게 되었습니다. 다른데 앉아서 예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예라고 하는데도 여기 예라고 하고 앉았던 거니까 여기 예라고 앉았는데 좀 길게, 길게 앉았으면 하는 그런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를 이어서 다른 데를 옮겨서 예, 예하고 하게 된 것이 오늘 이 때에 저희의 마음속에 김이 돌아가는 겁니다. 지금 여기를 떠난 다는 겁니다. 그 예라는 자리가 다른 데로 옮긴다는 겁니다. 그러면 저희는 이 떠나는 게 섭섭하다고 그럽니다. 아버지께서 다시 앉혀 주시는 자리에 가서 예, 예하고 저희는 살 거니까 아버지와 예라는 것은 늘 일치 합니다. 일치 합니다. 



저희가 떠나서 각각 아버지와 일치한 예에 움직여 나가거나 앉았다고 생각하는 거나, 그 예라는 자리는 다른 게 없습니다.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할 때는 넓은 우주가 온통 한 예입니다. 예가 옮겨서 예 같이 있던 각각 헤어져서 각각 다른 사람이 한 예에 만나서 다른 사람이라고 하면서 한 자리이라고 하는 예 만나서 또 저희는 저희의 김을 벌릴 것입니다. 벌리게 하여 주실걸 믿습니다. 그 우리 여기 각각 헤어져서 예를 옮겨서 각각 그렇게 숨을 벌려 주시는 걸 받들고 있을 것을 믿습니다. 그걸 믿어 깨달으면 건강한 숨 돌림이 항상 저희들 함께 하여 주실 줄을 믿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예를 나가는 대로 성신의 중보하심이 저희들 늘 함께 함을 저희가 깨달으면서 저의 숨을 돌리고 저의 말씀을 돌리고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을 아버지 앞에 간절히 빌어가지고 아버지와 함께 성신이 벌리시는 목숨을 벌리고 말씀을 벌리고 움직여 나가는 예에서 이제는 때, 때를 온전히, 온전히 깨닫고 이제, 이제 영원한 과거가 통과하는 이제, 이제 한 가지 해가지고 영원히, 영원히 이제를 예라는 자리에 두고 늘 즉시, 즉시 살고, 살고, 살고 그렇게 나가서 천년도 만년도 그렇게 살고 아주 아버지 앞에 들어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영원한 온 우주를 통해서 한 예, 함께 모여서 직접 성신 속에서 참 빛 속에서 아버지 모시고 아버지가 저희 속에 잠겨 계시고 그러한 그 참 목숨에 들어감을 얻어 지이다 오직 이것을 빕니다. 아멘.



 기도 떠날 기도는 저는 다 올렸습니다. 이걸로 기도는 마칩니다. 이 사람 마음은 벌써 떴습니다. 벌써 예 나가기를 시작했습니다. 벌써 옛날에 떠난 거예요.
찬양 ‘온 천하 만물 우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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