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큰비 : 사랑의 용서(화순 장태방죽 이야기)

mamuli0 2024. 9. 23. 15:03

 제14호 태풍 풀라산 영향으로 큰 비가 내려 토비를 뿌리고 로터리한 토양이 많이 유실 되었다.

 다음 날 아들내외와 함께 완도에 다녀왔다. 

 

 

 김준호 선생 '사랑의 용서에서 동광원 초창기 생활담을 올려본다.

 

석곡 국민학교의 교장선생님 이십디다. 지금 보면 교장 댁에 자고 갑시다. 하고 들어 가셨어요. 사택인데 해가질 무렵에 교장님이 퇴근하시니까 저 왔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애기같이 취급하세요. 아, 현필이 왔는가? 그냥 그래요. 그냥 아이 취급하세요. 그래 인제 어머니 둘하고 저 네 명이니까 또 밥상이 하나 가득 담아가지고 나왔더라고요. 밥 네 그릇이, 우리는 먹을 것이 있습니다. 밥상을 내가십시오. 먹을 것이 없지요. 눈에 안 보이는 음식이니까. 제일 저는 믿음도 없었고 나이도 젊고 세분이야 도인님들이니까 배가 안 고프던지 몰라도 저는 어떻게 배가 고프던지 밥이 먹고 싶어서, 저녁에 이렇게 늦어서 한방에 네 분이 둘이 남자니까 방하나 따로 주셔서 자러 간다고, 선생님 방이신가 봐요. 교장선생님 방인데 둘이 방으로 들어갈 때 무를 뽑아 놔두었거든요. 부엌 앞에 무, 칼자루만 한 게 하나 있어요. 사모님 제가 이 무 하나 먹어도 좋습니까? 아 잡수세요. 잡수세요. 가지고 들어갔다고, 그날 밤에 그걸 얻어가지고 불 끄고 자는데 제가 자는 줄 알고 잡수신 것 같아요. 새벽 한시나 두시나 되었는데 그래 저는 배가 고프니까 잠이 안 오지요. 무를 시작할 때부터 빨리 잡수시지 않거든. 무 한 개를 십 분이나 한 삼십분 잠수시거든요. 춤이 많이 고여 가지고 부끄러우니까 삼키지 못하고 입에 빵 빵이 있어. 꿀떡 삼키니까 아 이 사람이 잠 안자고 있구나. 아셨다고, 준호 무 먹고 싶소? 캄캄한 밤중이니까 받으시오 받았는데 다 잡숫고 끄트머리 쪼금이에요. 손에 딱 잡혔는데 아무것도 안 잡혀. 쪼금 있어. 어떻게 소원풀이야. 소원풀이, 그 무를 삼킬 때 어떻게 감사한지요! 참말로, 틀림없어. 뭐 떡을 수백 개 먹은 거보다 흡족해요. 아주 만족해요. 그걸 안 먹고 잤으면 얼마나 서러울 거야.

 

2009년 3월 명사십리 해변에서

 

 그렇게 배가 고파도, 권위가 있어. 본인도 먹고 입는 걸 초월하시지만 같이 살고 있는 사람도 감히 밥 먹을 수가 없어요. 황송해서, 그렇게 되어요. 분위기가 항상 그래요. 어찌 감히 우리가 밥을 먹느냐 그거에요. 선생님도 저렇게 안 잡수시는데. 그런 것에 감화 받으신 인제 백 장로님의 어머니시지요. 백 장로님이 그런 인격에 감화 받아 갖고 전 재산을 선생님한테 드리자 그랬다는 것 아니에요? 우리가 처음에 백 장로님이 그랬다 그래요. 저는 큰 아들이고 어머니가 청춘 과부가 되어가지고 손톱으로 베를 짜서 무명베 삼베 그런게 이 치산한 재산을 제가 상속 받는 것을 제가 감당 못하겠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 선생님 드립시다. 그랬다는 거예요. 어머니께서 그러자 그럼 일초도 생각 안하시고 그러자 그러시더라는 거예요. 그러면 평소에 이 선생님이 어머니가 아들을 자기보다 이 선생님을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했으면 1초도 생각 안 해보고 그러자 그러느냐는 거예요. 말이 툭 떨어지기가 바쁘게 그러자 그러더라는 거예요.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자기 평생 자기 손으로 치산한 재산인데 남편이 준 재산도 아닌데 자기가 길쌈해서 모은 재산인데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그만큼 이 선생님을 존경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남동생 있고 제수 있고 장로님 부인 있고 큰아들 둘째 아들 셋째 아들 큰딸 작은딸 셋째 딸 전 식구한테 우리 재산을 이 선생한테 드리자 하니까 한 사람도 얼굴 붉히는 사람 없다는 거예요. 모두 전 식구가 제수까지 동생까지 조카까지 모두 예하지, 한 사람도 반대 안한 것이 이럴 수 있냐는 거예요. 백 장로님 생각에는 사람인데 한 사람이라도 반대해야 이치지. 그럼 이 선생님의 인품이 얼마나 그 사람들 마음을 그렇게 얻었냐? 그 점이지요. 그것은 단지 대신 굶으시고 대신 못 입으시고 대신 잠 못 자시고 대신 근심하시고 대신이야. 대신 아이고 이 선생님은 꼭 예수 같아. 그 말이 틀림없지요. 예수는 아니야. 그래 최흥종 목사님이 제일 걱정한 것은 이 선생은 피조물이다. 절대 예수가 아니다 그것만은 명심하라. 예수 같다는 말은 좋지만 예수로 보면 안 된단 말이야.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인데 이 선생님은 예수를 잘 모방한 피조물이다. 죄인이 회개한 사람이다. 그걸 구별하라. 항상 그렇게 충고 하셨어요.

 

명사십리 해변에서

 

그래서 현 선생님이 삼백만원 얻어왔을 때 거기 땅을 구해놨어요. 귀주 어머니 친정에서 기증한 만평을 해가지고 장대방죽 구해놨습니다. 그런데 그리로 송등원 세우려고 열망하셨어요. 그러나 광주에 어른들이 모두 반대 했어요. 그 이상을, 그 뜻을 세워주지 않아요. 제중병원이 뭔데 어떻게 뭐를 놔두고 환자를 치료 하냐? 그것은 안 된다. 그런데 그 어른은 서러워 하셨어요. 제게 대해서 서러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소극적이냐? 주장을 못하느냐? 그런데 그걸 없애버렸어요. 그 선생님의 뜻을 모른 거예요. 그것이 장대방죽이 거의 만평인데, 그 동안에 아무 것도 못했지요. 전신을 찾고자 하자. 그럼 이 선생님은 자기 스승 장대방죽이 이공님이 다니던 전도길이거든요. 거기다가 유적 뭘 생각하셨습니다. 지금 늦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나이가 있는 사람들의 뜻을 전혀 모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나이가 든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지금 거기 땅 주인이 구해놨어요. 근 삼천 평, 그래서. 어느 공동체든지 정신운동이 일어나야 보전이 됩니다. 그리고 꽃동네를 보전하려면 수도원이 있었어요. 지금 이 자매원도 그렇고 여기 귀일원도 그렇고요. 그 사업체가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지금 인재양성을 해야 해요.

 

할머니들 (2009년 3월 명사십리 해변)

 

 다시 말하면 선생님 계실 때는 성경학교를 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성경학교 그건 재정이 적어서 못했어요. 수녀원을 시작하던지 성경학교를 시작하던지 거기서 젊은 사람들이 양성되어가지고 이 인재들이 나와 가지고 일을 하게 되어야 하지, 현재 나이 많은 사람이 천년만년 어떻게 삽니까? 못살지요? 그러니까 인제 거기 들어가면 정신운동이 되어요. 정신운동, 인재양성 이지요. 찾아온 사람들이 거기서 수양을 해야지요. 조석 기도회 올리고 성경 배우고, 그러면 선생님들이 해 놓으신 재산이 많아요. 이용 할 줄 모를 뿐이란 말이야. 아까 말대로 땅이 있으면 사업체를 늘리기 위해서 이상을 꿈꿀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복음화 학교라도, 가사 정신을 기를 수 있는 도장,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면 거기서 일생을 몸을 바치고 살 수 있는 안정지대, 아, 나는 여기 들어오면 평생이 안심된다. 그런 참 동광원이지요. 빛이 있는 동산이 속히 건설되어야겠다. 선생님이 계실 때는 저쪽에 뜻을 두셨어요. 저쪽 만평을 구하면 저기다 동산을 하려고 그랬어요. 그러면 그때 안 되었어요. 그러니까 자기 고향에다 하시려고 그랬어요. 한번 선생님이 계시를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