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꽃이 지고 낮기온이 20도를 넘어 선다. 밭갈이는 모두 마쳤다. 수선화를 옮겨주고 있다.
이현필 선생 참회록을 소개한다.
3. 참회록(懺悔錄)
1957. 9. 1.
참회록(懺悔錄) -標題: 반성록(反省錄) 副題: 再考, 熟考, 一日三省
싻뿌리, 헌신짝, 버린 것
아까운 십이년(十二年)이란 세월(歲月), 극기(克己) 고행(苦行)의 자기(自己) 수련생활(修練生活)에서 이탈(離脫)하여 사업(事業)이란 허울 좋은 방랑(放浪)의 생활(生活)에 미혹(迷惑)된 채 귀한 십여성상(十餘星霜) 흘러가고 후회(後悔)와 찾을 길 없는 자기(自己) 수양(修養)이 내버려진 체 하늘만 우러러봅니다. 오장치를 걸머지고 왜경(倭警)의 눈초리를 피(避)하여 배회(徘徊)하던 그 시절(時節)의 아름다운 행색(行色). 해방(解放)의 즐거움을 가뜩 가슴 속에다 간직한 체 그대로 지내올 저였건만, 무턱대고 또 그런 기회(機會)가 늘 붙잡힐 줄만 알았든 서글픔과 함께 귀(貴)한 때는 다 흘러가고 부질없는 지도자(指導者)란 명의(名義)를 걸머지고 그릇된 지시(指示)와 맹목적(盲目的)인 가르침에 가뜩이나 영(靈)과 육(肉)들의 원망(怨望)과 시비(是非) 속에 자탄(自歎)으로 움치려집니다(움츠려집니다).
어찌할까? 이 강산 행로(行路). 인생(人生)길에 피곤(疲困)해 빠진 생각(生覺)과 지쳐 빠진 몸을 끌고 초조(焦燥)한 생각에 어리둥절하여 얼마 남지 않은 짧은 시간(時間) 부스러기를 어떻게 활용(活用)한단 말인가? 가련(可憐)도 합니다. 제 자체(自體)를 응시(凝視)할 때 애처롭습니다. 제 영혼(靈魂)을 응시(透視)할 때, 이 꼴 이 상태로 현세(現世)나 내세(來世)에 어리석은 저 어딜 갈까? 누구를 바로 쳐다볼까 하는 생각뿐입니다. 사랑하는 성인(聖人)들의 간절한 기구(祈求)와 높은 지도(指導)와 밝은 교훈(敎訓)을 앙청(仰請)합니다.
사랑하는 벗들이여, 손을 잡어주소서. 무신(無信)한 저를 영원토록 뿌리치지 말아 주소서. 어린 아우들이여, 누이들이여, 이 거짓을 위해 울어주소서. 용서(容恕)하소서. 살려 주소서! 빌어주소서.
4278년(四二七八年, B.C. 1945년) 팔월(八月) 십오일(十五日)의 이전(以前)을 묻는다면, 4246년(四二四六年, 1913년) 2월(二月) 3일(三日) 음(陰) 임자( 壬子) 12월(十二月) 28일(二十八日) 저녁에 권동(權洞)이란 평화스런 한 마을에 태어난 듯합니다. 한일합방(韓日合倂)의 일천(日殘)한 그 시절(時節), 아직도 구식(舊式) 도덕(道德)에 젖은 가문(家門)에서 신사조(新思潮)에 깨지 못한 두메에 나서 자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상세(詳細)치는 못하나 사(四), 오세경(五歲頃)인가 합니다. 누님과 형님(兄)님이 종잇조각을 아버지께 받는 것을 눈이 뚫어지게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는 글공부를 잘하면 저도 그런 종이를 줄 것이란 바람에 글공부를 어서 하고파서요. 형님은 먼데 마을로 한문서당(漢文書堂)에를 다니시지만 저는 어리다고 보내주시지는 않고, 국문(國文)은 그 당시 별로 보급(普及)되어 있지 않았는가 봅니다. 당고모 한 분이 국문(國文)을 깨쳐서 화룡도(삼국지三國志의 일)라는 국문판(國文版)을 들고 읽으시는 것을 보며 매우 신통(神通)하게들 여겼던 때이니까요. 자상(仔詳)하지는 못하지만 혹은 그 후인지 그 전인지는 모르지만, 저도 ㄱ, ㄴ을 익혀서 국문(國文)(그 때는 모르고 언문諺文이라고 불렀지요)을 깨쳐서 읽을 줄을 알았습니다. 학교(學校)란 것은 있는 줄조차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형님에게서 학어집(學語集)이란 책도 배웠습니다.
저의 종교관(宗敎觀)
제가 하나님 계심을 믿는 것은 하나님이 참으로 계시옵신 연고(緣故)입니다.
제가 죄(罪)에서 떠나짐은 주님이 죄를 벗겨주신 까닭이로소이다.
제가 선행(善行)을 할 수 있음은 성령(聖靈)의 역사(役事) 소치(所致)입니다.
바른 신앙(信仰)이라면 죄(罪)에서 벗어나지고 좋은 소원(所願)이 생기고 그 소원(所願)이 성취(成就)도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잘못 신봉(信奉)한 소치(所致)입니다. 이 밖에 다른 것은 다 잘못입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천사(天使)라도 다른 것을 말한다면 저주(咀呪)를 받겠습니다. 사람이 제 스스로 죄(罪)를 이길 수 있다거나 자기 힘으로 선(善)을 행(行)할 수 있다거나 사람이 할 수 없으니 그냥 죄(罪)대로 산다는 것은….
국가(國家) 현상(現狀)
법(法)을 세우는 민의원(民議院)도 법(法)을 쓰는 행정관리(行政官吏)들도 법으로 다스리는 사법관(司法官)도 법을 어기고 법을 속이고 법을 범(犯)하자는 것이라면 법은 누구를 위(爲)해서 누구를 보호(保護)하자고 무엇 때문에 세워지는 것일까? 백성(百姓)은 법의 보호(保護)를 감사(感謝)하기는커녕 법을 도리어 꺼리고, 국법(國法)은 누구를 옭아매고 누구를 압박(壓迫)하고 누구를 착취(搾取)해 먹자는 목적(目的)과 이념(理念)에서 세워지는 근원(根源)은 아니건만, 법을 어김으로 제게 해당(該當)하는 죄(罪)와 벌(罰)을 둘러쓰면서도 죄(罪)의 엄(嚴)한 결과(結果)들을 모으고 서로 법(法)을 우선적(于先的)으로 범(犯)하는 것이 유익(有益)인 양 생각(生覺)들을 가지니 이 민족(民族)의 장래(將來)가 마침내 어찌 될까요? 이 국가(國家)가 어찌 될까?
이 백성(百姓)의 장래(將來)가 열리려면 첫째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겠습니다. 엄위(嚴威)하심을 깨달은 자가 분명(分明)히 하나님의 엄위(嚴威)하심을 가르치고 그 위대(偉大)하옵신 업적(業績)을 알려야겠삽나이다. 가르쳐야겠습니다.
둘째는 하나님만 믿고 살 수 있음을 증거(證據)하는 이가 있어야겠습니다. 협잡(挾雜)부림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과 주 예수를 믿고 살 수 있음을 뚫어지게 가르치는 이가 일어나야겠습니다.
셋째, 성령(聖靈)의 밝은 빛을 비추임 받는 이가 일어나야겠습니다. 성령(聖靈)께서 밝혀주시고 가르쳐주시고 인도(引導)하시고 주장(主張)하시고 도우심을 확실(確實)히 깨닫고 느끼고 사는 자가 있어야겠습니다. 천군천사(千軍天使)들의 활약(活躍)이 큼을 인식(認識)하는 자가 있어서 굳혀져 살아야겠습니다. 성도(聖徒)들의 세계(世界)가 아름답고 찬란(燦爛)하다는 것을 아는 이가 있어야겠습니다. 악인(惡人)들의 세계(世界)가 비참(悲慘)하고 두렵고 떨리고 어두운 것을 잘 아는 이를 필요(必要)로 하옵니다.
이상 꼭 믿고 그대로 살면서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설명(說明)하고 모르는 이들에게도 잘 가르쳐주는 이가 참으로 필요(必要)하옵니다. 오! 이 땅에 주의 선지자를 하나만이라도 보내주소서 아-멘!
지옥편(地獄篇) 28:115-117 좋은 벗이야말로 양심인지고! 스스로 맑음을 느끼는 갑옷 밑에 아무도 두려울 것 없는 것.
한번을 닭도 후려갈겼습니다. 거의 죽을 정도로 쓰러졌습니다. 무자비(無慈悲)하고 무동정(無同情)한 저올시다. 도야지 새끼도 개에게 물린 것을 약(藥)을 발라 치료(治療)해 보려다가 안 될까 해서 죽이도록 했습니다. 논게, 물고기도 잡았었습니다. 동정(同情) 없는 저임을 절감(切感)합니다. 겉으로는 인정(人情) 있는 듯하지만 실지(實地)로 잔인(殘忍)한 저올시다. 빈대, 모기 등도 사정(事情)없이 죽입니다. 가련(可憐)합니다. 저의 행사(行事)가 참으로 딱합니다. 고신극기(苦辛克己)를 남에게는 권(勸)하면서도 제 스스로는 조금만치도 감당(勘當)을 못합니다.
※ 기독교동광원수도회서 펴낸 『맨발의 사랑 이현필의 삶과 신앙』에 이미 발표되었으나 원본에 가깝게, 그리고 끝부분이 더 첨부되었습니다.
'그때 그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갓바위 : 이현필 선생 전기 (2) | 2024.04.20 |
---|---|
산들네 저온저장고 설치 : 이현필 선생 제자가 쓴 기록 (2) | 2024.04.18 |
노란수선화 옮겨 심기 : 이현필 선생 일기 한토막 (0) | 2024.04.09 |
벗꽃 필때 숭어 뜨기 : 이현필 선생 일기 한토막 (1) | 2024.04.08 |
다시 찾은 도솔암 : 이현필 선생 일기 한토막 (1) | 2024.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