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 말복 무렵 전국에 물난리가 있었다. 서울 중부에 이어 남부에도 큰 피해가 있다. 한겨레신문 기사를 올린다.
최고 600㎜…산사태·홍수에 광주·부산 도심도 물난리
섬진강, 낙동강 강둑 터져 주변 주민 3000여명 대피
태풍 장미 한반도 상륙…남부권 300~500㎜ 더 온다
집중호우로 섬진강 제방이 유실돼 인근 농경지 마을이 잠겼다. 9일 오전 전북 남원시 금지면 귀석리 금곡교 인근 마을의 비닐하우스가 물에 잠겨있다. 남원/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중부권과 수도권을 할퀸 수마가 이번엔 남부권을 강타했다. 영호남 등 남부권에 최고 6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산, 강 주변 마을과 도시 가릴 것 없이 큰 피해가 났다.
산사태, 홍수 등으로 주민 15명이 숨지거나 실종됐으며, 큰비로 강물이 불어나 영호남을 대표하는 낙동강과 섬진강의 둑이 터져 2000여가구 30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일주일 사이 최고 700㎜ 넘는 비가 내린 강원, 경기, 서울 등 수도권도 주요 도로가 통제되는 등 피해가 이어졌다. 지난 6월24일 이후 47일째 이어진 사상 최장 장마로 인한 사망 또는 실종자 수는 50명에 달했다. 9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의 발표를 종합하면, 7~9일 전남 담양 612㎜, 전북 순창 561.5㎜, 광주 533.7㎜, 경남 산청 454㎜ 등 남부지방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시간당 최고 71㎜의 집중호우가 몰아치면서 산사태에 주택이 휩쓸리거나 농수로의 급류에 휘말리는 등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소 살려주세요'' (곡성=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9일 오전 전남 곡성군 곡성읍의 한 마을 주택과 축사 지붕에 소들이 올라가 있다. 이 소들은 주변 축사에서 사육하는 소들로 전날 폭우와 하천 범람에 물에 떠다니다가 지붕 위로 피신, 이후 물이 빠지면서 지상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 2020.8.9 pch80@yna.co.kr/2020-08-09 15:27:25/ <저작권자 ⓒ 1980-202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전남 곡성·담양, 전북 장수 등 산간마을에선 산사태가 잇따랐다. 지난 7일 저녁 8시29분께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 마을 뒷산이 무너져 이장 윤아무개(53)씨 부부와 귀농인 강아무개(78)씨 부부 등 5명이 숨졌다. 8일엔 장수군 번암면 권아무개(59)·김아무개(59)씨, 담양군 금성면 김아무개(72)씨, 경남 거창군 주상면 백아무개(83)씨 등이 산사태로 목숨을 잃었다.수마가 덮친 강 주변 마을에서도 인명피해가 잇따랐다. 8일 오전 전남 화순군 한천면 정아무개(66)씨가 볏논의 물꼬를 보러 갔다가 급류에 휩쓸려 숨졌고, 같은 날 오전 전북 남원시 이백면 소아무개(76)씨도 실종됐다가 배수로에서 발견됐다. 같은 날 경남 밀양시 산내면 박아무개(51)씨, 전남 담양군 금성면 류아무개(71)씨 등은 급류에 휘말려 실종됐다. 기습 폭우가 쏟아진 광주 북구에선 8일 아침 지하 배수 작업을 하던 이아무개(36)씨가 숨졌다.
제방 유실과 폭우로 수해를 입은 전북 구례군 구례읍 구례5일장에서 상인들이 폭우로 어질러진 가게를 정리하고 있다. 구례/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전북 남원과 전남 구례 등 강변 마을에선 역류한 섬진강 물에 제방이 터졌다. 섬진강 수계에 사는 주민 3000여명이 범람하는 강물을 피해 황급히 안전지대로 대피했다. 남원시 금지면 귀석리 금곡교 부근에선 섬진강 본류의 제방 120m가 무너지는 바람에 주변 4개 마을 주민이 고립됐다가 구조됐다. 강물이 범람하면서 이 일대는 농경지·비닐하우스 등에 온통 물이 들어찼다. 구례군 구례읍 봉동리 전통시장 부근에서도 섬진강 지류인 서시천 제방 40m가 유실돼 강물이 역류하는 바람에 1만1천명이 사는 구례읍내가 물바다로 변했다.
제방 유실과 폭우로 수해를 입은 전북 구례군 구례읍 구례5일장에서 상인들이 폭우로 어질러진 가게를 정리하고 있다. 구례/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 화개장터는 건물 지붕까지 강물에 잠기는 바람에 주민 130명이 대피했고, 22명이 한때 고립됐다가 구조됐다. 큰비가 이어지는 가운데 상류의 섬진강댐에서 방류를 시작하면서 지천인 요천, 서시천, 화개천 등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강물이 원활하게 흐르지 못하고 역류하는 현상이 빚어졌다. 섬진강의 범람으로 구례 4개 읍·면 주민 1200명, 곡성 3개 읍·면 주민 482명, 하류인 광양과 하동 주민 상당수도 인근 초등학교와 복지회관 등으로 몸을 피해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전북 진안 용담댐 방류로 금강 수위가 높아지면서 충북 영동·옥천, 충남 금산 등 주민 800여명도 높은 지대로 몸을 피했다.낙동강 본류 제방 일부도 터졌다. 9일 새벽 2시께 경남 창녕군 이방면 합천창녕보 위쪽 260m 지점의 장천배수장 진영2배수문 부근 둑이 불어난 강물의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50m가량 무너졌다. 4대강 사업으로 건설한 보 때문에 강물이 하류로 신속히 빠져나가지 못해 수압이 높아지면서 터진 사고로 보인다. 창녕군 장천·송곡·거남리 등 이방면 일대 마을이 물에 잠겼고, 도로가 끊기면서 옥야리 등이 고립됐다. 임채현 창녕군 농업기반계장은 “새벽 4시께 둑이 터졌다는 연락을 받고 현장에 나왔다. 이미 강물이 둑 너머로 쏟아져 들어와 일대 마을과 들판이 물에 잠긴 상태였다”고 말했다.주말 사이 250㎜가 넘는 물 폭탄이 쏟아진 부산에서도 피해가 컸다. 서구 해돋이로 집 축대가 무너져 5명이 대피했고, 사상구청 주변 도로 침수로 차량 5대가 물에 잠기기도 했다.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남부권 폭우로 9일 저녁까지 2205가구 3749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시설 6481곳(공공시설 4361곳, 사유시설 2120곳), 농경지 1만5041㏊ 등에서 피해가 난 것으로 분석했다.안관옥 오윤주 기자, 전국종합 sting@hani.co.kr
“4대강 사업 안해서 섬진강 둑 붕괴?…초등생도 웃을 억지 주장”
등록 :2020-08-10 14:56수정 :2020-08-10 15:22
박창근 대한하천학회장 인터뷰
“4대강 사업을 하지 않았으면
낙동강 둑 붕괴하지 않았을 수도”
“차수벽 설치, 물관리 일원화해야”
섬진강 지류인 전북 남원에서 제방이 붕괴돼 물이 넘치고 있다. 전북도 제공
장기간 이어지는 폭우로 지난 8일 전북 남원시 금지면의 섬진강 둑이 무너졌고, 다음날인 지난 9일엔 경남 창녕군 이방면의 합천창녕보 상류 낙동강 둑이 무너졌다. 4대강 사업을 찬성하는 사람은 “섬진강에서도 4대강 사업을 했더라면 섬진강 둑이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반대로 반대하는 사람은 “4대강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낙동강 둑 붕괴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이에 대해 대한하천학회 회장인 박창근(60) 가톨릭관동대 교수(토목공학과)는 10일 “4대강 사업을 하지 않아 섬진강 둑이 무너졌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웃을 억지 주장이다. 낙동강 둑 붕괴사고는 4대강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섬진강 둑이 터진 것은 불어난 강물이 범람해서 터진 것이 아니고, 강물에 모래흙으로 이뤄진 둑 옆면이 깎여서 허물어진 것이다. 불어난 강물에 짧은 시간 잠겨있었다면 붕괴까지는 가지 않았겠지만, 이번엔 장기간 물에 잠겨있었기 때문에 파이핑 현상도 장기간 발생했다”고 섬진강 둑 붕괴사고 원인을 설명했다. ‘파이핑 현상’은 물이 구조물의 약한 부분에 스며들어 구멍을 만들고 결국 구조물 전체를 무너뜨리는 현상이다.그렇다면 강바닥을 준설하고 보를 건설하는 4대강 사업을 섬진강에서도 했다면 둑 붕괴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까? 박 교수는 “섬진강까지 포함해 ‘5대강 사업’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번에 둑 붕괴사고가 일어난 지점은 상류이기 때문에 사업 구역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상했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한반도 대운하에 섬진강을 어떻게 연결하겠나? 섬진강을 4대강 사업에 포함시켰더라도 금강이나 영산강처럼 중류 아래쪽에서만 사업을 하고, 이번에 붕괴된 지점은 손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 창녕군 이방면 합천창녕보 상류 250m 지점의 낙동강 본류 둑이 지난 9일 새벽 터져서, 관계당국이 긴급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박 교수는 낙동강 둑 붕괴사고 원인에 대해 “보를 건설하면 보를 경계로 상류와 하류에 낙차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보와 인접한 상류의 둑에 수압이 집중된다. 이번에 붕괴된 곳이 바로 그런 곳이다. 지난 9일 낙동강 둑은 강물 높이가 합천창녕보 계획홍수위(18.57m)까지 올라가지 않았는데 터졌다. (둑이 터진 9일 새벽 4시 합천창녕보 수위는 17.56m였다.) 합천창녕보 직상류의 둑이 수압을 견디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또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으로 준설을 하고 보를 건설해서 ‘물그릇’을 키우면 홍수 예방 효과가 있다고 했다. 이것은 정말 엉터리다. 4대강 사업으로 키운 물그릇은 태풍·홍수 앞에선 아무 소용이 없을 만큼 작은 규모이다. 오히려 물을 오래 가둬 파이핑 현상만 장기간 진행시킬 뿐”이라고 덧붙였다.박 교수는 대책으로 ‘차수벽 설치’를 제안했다. 그는 “이번에 붕괴된 섬진강과 낙동강 둑 모두 둑을 보강하는 차수벽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만약 차수벽이 있었다면 파이핑 현상을 더 길게 버틸 수 있었을 것이고, 수압도 더 견딜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우리는 ‘잠깐’ 홍수·태풍만 겪었다. 그러나 이번엔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기상이변인데, 앞으로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선 물관리 일원화가 필요하다. 정부 부처를 넘나드는 업무 조율은 매우 어려우며 효율성도 떨어진다. 홍수 등 재난에 합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물관리 일원화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최상원 기자 csw@hani.co.kr
대한하천학회 회장인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교수(토목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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