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들깨 모종 : '우리의 거울'에서

mamuli0 2024. 7. 27. 21:57

 대서 중복도 지났다. 태풍 개미가 대만 중국을을 지나갔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비를 주고갔다.  평택에서 세째네가 다녀갔다. 상사화와 분꽃이 피었다. 들깨 모종을 가까스로 내었다. 무더운 날씨가 이어진다.

 

 

빚진 자들을 낱낱이 부르셨다. 갚을 수 없는 이들에게 다 탕감(蕩減)해 주었다. 계약서(契約書)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다 불에 살라 버리면서 다 받아 버렸으니 안심(安心)들 하라고 안위(安慰)하셨다. 그 마을 전답(田畓)과 토지(土地)가 거의 전부일대(全部一帶)가 그 문서(文書) 속에 저장(貯藏) 되였던 것이었다. 꾸어간 사람들에게도 다 물시(勿施:꾸어간 것을 무효))해주셨다. 그들에게 그 외에는 한사람의 빚진 자도 없고 꾸어 간 물건이 있는 사람도 없는 것 같이 되어버렸다. 일대(一帶) 희년(禧年) 이였다. 그 마을에는 전무후무(全無後無)한 희귀(稀貴)한 일이였다. 못 믿을만한 일이였으나 사실(事實) 이였다. 생각도 못하는 기쁜 일이였다. 못 믿을 만한 일 이였으나 사실은 그대로 되었다.

 

 

산에나 들에 가셨다가 일군들이 흔히 하는 것과 같이 남의 콩 한포기라도 뽑아 잡수신 것은 다 그 임자들에게 자복(自服)하고 갚으셨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구차(苟且)한대로 무엇이고 도와주셨다. 곡식을 모아 두셨다가 노인과 어린 아이가 있는 가난한 집에 나눠 주셨다. 당신은 콩잎사귀도 아까워 못 잡수시면서도 일 년에 한 두 차례 의례 아프시던 병은 물러가고 기적(奇蹟)은 늘 보여 지기 시작했다. 그는 말씀 하시기를 마을사람들이 소경이 아니면 하나님을 믿으리라고 하셨다. 연보(捐補)를 풍성(豊盛)히 하심으로 사람들이 따라 믿었다. 배부른 까닭이었다. 배부르기를 구하지 아니 하셨다. 그에게는 금식(禁食)이 좋은 식사(食事)였다. 성경(聖經)을 들고 계시면 일출(日出) 일모(日暮)를 모르셨다. 백두 밤중이 없으셨다. 병이 나도 절대 죽이나 숭늉물이나 미움을 안 잡수셨다. 오히려 성하실 때는 죽이 그에게는 별식이었지만 병석에서 일어나시기까지는 통 안 잡수셨다. 선교사(宣敎師)가 순교(巡敎:순회심방) 때에 귤 2개 병석(病席)에 계실 때 드렸더니 회복(回復) 되신 후에 계란을 구해가지고 그 선교사(宣敎師) 댁까지 가셔서 드리고, 순교(巡敎) 때에 대접 못했노라고 사과(謝過)하셨다. 그는 매일 아파도 약을 쓰시지 안했다. 그는 말씀 하셨다. 사람들이 죽고는 싶다고 하나 약을 쓰는 까닭은 무슨 마음이냐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약이라고 믿으셨다. 의(義)의 약이라고 믿으셨다. 이 약을 쓰면 장생불사(長生不死)요, 부활(復活)이요, 생명(生命0이요, 썩지도 않는다고 믿으셨다. 몸이 썩어도 아무 때 썩어도 썩을 것이라고 버려두셨다. 사람들에게도 이 의(義)의 약을 권(勸)하셨다. 매 아프면 죽으리라고 기다리시고 숼(수월:쾌차) 하면 회복 될 거라고 참으셨다. 그는 배부르기를 구하기전에 먼저 오로지 그 나라와 그 의만을 구하셨다.

 

 

첫째 명예(名譽)를 구하지 않으셨다. 진리(眞理)만을 구하셨다. 명예(名譽) 같은 것은 꿈도 못 꾸어 보셨다. 남이 칭찬하느냐 싫어하느냐에 태도(態度)를 달리 하신적은 없으셨다. 성경에 비춰 맞느냐 안 맞느냐 상고(相考) 하고 추구(推究)하고 따라 사셨다. 한마디라도 눈 한번 떠 보시는 것까지도 발 거름 한자취라도 진리(眞理)가 아니면 아니 움직이셨다(가셨다). 어디를 가시되 미리 어떤 마음에서 가고 싶은 생각이 울어나는가 하고 살피셨다. 성신의 생각 곧 자기의 속 사욕(私慾)에서 난 생각이 아니라고 결정(決定)되었으면 그제야 비로소 일어서셨다. 마을에를 가도 그리하셨다. 그 집 밖에 가서도 찾는 것이 옳은지 안 옳은지 하고 한참동안이나 생각 끝에 찾아도 관계치 않으리라 생각이 되셔야 찾으셨다. 그는 오로지 진리(眞理)대로 사셨다.

 

 

명예(名譽)와 칭찬(稱讚)과 치우치면 꿈도 못 꾸어보셨다. 칭찬은 똥으로 아셨다. 마귀의 대접으로 아셨다. 칭찬(稱讚)으로 사람을 시험 한다고 간주(看做)하셨다. 높이는 바를 절대로 싫어하셨다. 마음이 높아진다고 해서 상에서 절대로 진지를 안 잡수셨다. 누가 상에다가 진지를 차려다가 드리면 절대로 싫어하셨다. 남을 도와줌으로 겸손히 사례라도 하면 왜 하나님께 감사(感謝)하다고 아니 하고 당신에게 감사(感謝)해서 사람을 시험 하느냐고 하셨다. 사람에게 사례하면 그것이 사람을 넘어트리는 것 아니냐고 크게 책망하셨다. 걸인 에게 무엇을 주셔도 감사(感謝)타고 하면 하나님께만 감사(感謝)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께서 안 주셨으면 자기들 먹을 것도 없으니 당신들도 못 드릴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에게는 사람을 대접을 하는데 차별(差別)이 없으셨다. 거지에게 무엇을 주셔도 꼭 자기 집에서 잡수시는 대로였다. 귀객(貴客)에게 하듯이 하셨다. 일반으로 하셨다. 만약 한집에 있는 이가 거지에게는 소홀(疏忽)이하고 다른 사람에게 더 낫게 하면 거지에게도 그같이 하라고 화를 내셨다. 그것이 주는 이에게 참 복됨이라고 생각하신 까닭이다. 그렇지 않으면 주는 것이 돌이여 죄 된다고 생각하셨다. 바로 가르쳐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셨다.

 

 

교만(驕慢)하려 하지 아니 하셨다. 옷만 다른 사람 보다 낫게 입으셔도 몹쓸 마음이 교만(驕慢해져서 다른 사람을 나추워 보아진다고 절대로 검정색 무명베옷 홋겉 외에는 안 입으셨다. 잡수시는 것도 낳은 것은 입에 넣어 본적이 없으셨다. 거지에게 시제(施濟:구제를 베품)를 할 때에 당신은 뉘 집 잔치에 가서라도 한때라도 배불리 잡수실 때가 있으실 것이나 이놈은 우리 주의 은혜를 아는 날부터 이제까지 좋은 것을 먹어본 적이 없소 하고 말씀하셨다. 한번은 잡수시고 싶다고 해서 한집에 계시는 이가 찹쌀로 절주를 좀 만들어 드렸더니 두 번 떠 잡수신 후 사시(斜視)를 지으시고(눈을 치켜뜨시고) 크게 통곡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놈이 진즉 나무 끄트랭이 에라도 치여 넘어져 죽지 않고 이제껏 산 것은 이것을 못 잊어 못 죽었던 거라고 우셨다. 찰밥을 한차례 붙들고 앉으셨던 일이 있었다. 잡수시려 하다가 가난한 사람들이 생각나서 찹쌀을 가지고 가난해서 찰밥을 못 해 먹을 만한 집 집 마다 눈밭에 찾아다니면서 돌려 주셨다. 올벼쌀이 생겨도 가난해서 농사 못 지은 사람에게 먼저 각각 돌려주신 다음에야 비로소 당신 입에 넣었다. 무엇이고 좋은 것을 누가 가져다 드리면 꼭 아껴 두셨다가 형편 따라 나누어 주셨다. 한동안은 콩잎사귀도 아까워서 못 잡수셨다. 교만(驕慢)이 일어날까봐서 눈을 감고 길을 다니셨다. 겸손(謙遜)을 배우셨다.

 

 

반드시 고난으로 순종(順從)을 이기셨다. 그는 영리(營利)를 모르셨다. 어디를 가도 이익을 생각하고 갈 것이 아닌 것을 가르치셨다. 영리(營利)는 뜬 구름이요, 허망(虛妄)한 것으로 믿으셨다. 꽃 한 송이를 보고라도 탐내어 가면 넘어지고 허공에 자빠지고 다리가 상할 것을 아르셨다. 덕화(德化)를 일삼으셨다. 덕화(德化)를 끼치는 일이 아니면 절대로 움직이지 아니 하셨다. 그는 빼앗기는 것을 얻은 것으로 아르셨다. 일가친척이 안준다고 살림을 다 부셔도 그 나중에 그들의 욕구(欲求) 이상으로 그들의 편익(便益)을 도모(圖謀)해주셨다. 덕을 위하여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까지 동행하셨다. 송사(訟事)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들에게 겉옷 까지 금하지 않으셨다. 한번은 그의 살림을 욕심 내여 위조문서를 만들고 위증(僞證)을 세우고 그에 살림을 전부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마디 반구(反求)의 변론(辯論)이 없었다. 그는 말씀 했다. 이제는 죽을 때가 당도한 것이라고 자탄(自歎)할 따름이셨다. 길을 가다가 길을 막고 훼방(毁謗)하는 자가 있으면 해 지도록 이라도 그 자리에 붙들려 섰다가 그 사람이 가라고 승낙(承諾)을 해주어야 가셨다. 그는 면류관(冕旒冠)을 받았다고 생각하셨다. 욕을 명예(名譽)로 생각 하셨다. 외식(外飾)이 없으셨다. 예수와 외모(外貌)와는 원수(怨讐)라고 믿으셨다. 나병환자라도 추(醜)하게 보시지 않으셨다. 자기 외에 추(醜)한 것이 없으신 줄 아셨다. 아무리 목사라도 외모(外貌)만이 취할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외모(外貌)를 취한 것은 하나님을 능멸(凌蔑)이 여기는 것이라고 믿으셨다. 악수들을 하나 진실성이 없는 것을 보시고 한탄하셨다. 손을 잡고 흔들면 반가운 척 하나 속에는 시기와 미움이 가득 찼다고 말씀하셨다. 자기가 주는 밥을 먹어서는 죄가 안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겉으로 주고 속으로 미워하지 않는다는 말씀의 뜻 이였을 것이다. 외면으로 반가워하고 속으로 미워하지 않는다는 말씀의 뜻 이였을 것이다. 안 밖이 없는 것이 그의 즐거움이요, 자랑이셨다. 안빈락도(安貧樂道) 하셨다. 속을 다스리는 것이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한다고 굳게 믿으셨다. 남 조심보다 자기 조심이 크다고 믿으셨다. 남이 자기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해치는 것보다 자기 속에 진실성이 없고 남을 미워하고 해하려는 마음이 자기를 해롭게 하는 것임을 아셨다. 잘 입으려고 아니 하셨다. 헌 누더기로 만족하셨다. 조금이라도 좋은 것은 저주스러워 못 입으셨다. 그는 자기의 입은 것이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을 보면 곧 바꿔 입으시지 않고는 못 배기셨다. 한번은 새 옷을 가라 입고 나가셨다. 어떤 남루(襤褸)한 옷 입은 어린 거지를 보시고 곧 바꿔 입으셨다. 그것은 너무 적어서 째여 수족(手足)을 동여 자유스럽지 못하셨다. 이는 심히 괴롭게 물었다(조였다). 그는 더욱 헐벗은 이들에 사정(事情)을 깊이 동정(同情)했다. 걸인에게 무엇을 주실 바에는 가서도 음식은 다른 데 가서도 얻어먹을 수 있으나 의복은 얻어 입을 수 없으니 겨울을 위하여 의복(衣服) 차례(次例)를 힘쓰라고 보태 주셨다. 그의 모자는 검은색 다 쪼그라진 중절모자였다. 여름 겨울 사철 다 이것으로 만족하셨다. 어떤 친구가 그이 몰래 불 없는 아궁이 에 던져 넣고 자기 헌 모자를 대신 드렸더니 조금 쓰고 거리에 나셨다가 조심스러워 못쓰시고 도로 돌린 다음 그 모자를 찾아 쓰고 가셨다. 그는 덕행(德行)으로 좋은 옷을 삼으셨다. 두루마기를 걸쳐 보신 적이 없으셨다. 그러나 의에 두루마기를 입으셨다. 좋은 베띠를 띠지 않으셨다. 그러나 정직(正直)의 허리띠를 항상 동이셨다. 법의 의복을 안 입으셨다. 그러나 천국(天國) 의복(衣服)을 항상 입고 항상 출입하셨다. 무엇을 입을까 염려 하시지 않고 어떻게 못 입어 볼가였다. 삼동(三冬)에도 보선을 신어보신 적이 없으셨다. 단임을 치셨다. 떨어진 고무신짝을 끄셨다. 의(義)를 전하는 발걸음 이였다. 아름다웠다. 그의 용모(容貌)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러 다니셨다. 예모(禮貌)를 중히 여기셨다. 특히 남녀의 사이가 길을 가시다가 부인들과 길을 비껴가게 되면 반드시 모자를 벗고 눈살미를 찌 부리고 겨우 그 사람이 지나갔다는 것을 알정도로 눈을 뜨시고 모자로 눈을 가리 우고 비켜섰다가 지나간 뒤에야 길을 걸으셨다. 믿는 다고 남녀가 한방에 모여 있는 것을 대단히 싫어하셨다. 불신자가 처모와 한방에서 잤다는 것을 들으시고 놀라셨다. 남자는 남자에게 여자는 여자에게 전도(傳導)할 것임을 주장하셨다. 젊은 여자들이 남의 젊은 남자들에게 전도(傳導)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부인들이 찾아 와도 단 둘이 계신 적은 없으셨다. 꼭 누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나가시거나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장소로 데리고 나가셔서 이야기하셨다. 의복(衣服)은 그에게 수치를 가린 법 밖에 안 된다. 예모(禮貌)만이 참 옷임을 아셨다. 그는 청렴(淸廉)하셨다. 주기 좋아 하시나 받기는 대단히 싫어 하셨다. 농구를 빌려 써도 성냥으로 답례(答禮)하셨다. 흙을 써도 일군들을 시켜서 퍼다 쓰실 일 있으시면 반드시 당신 토지에 가서 파오라고 하셨다. 만약 가까운 곳에서 남의 논에서 파오게 되면 기필코 그 자리에다가 다 메워주고 멀어도 당신 논에 까지 라도 가서 쓰게 하셨다. 이웃마을에를 가셔도 잡수실 것을 가지고 다니셨다. 안가지고 가시며 그 집에서 준비(準備) 하려고 하면 미리준비(準備) 되였으니 그만두라고 말씀하여 준비(準備)치 못하게 하시고 그래도 준비(準備) 할 때에는 절대로 안 잡수셨다. 그냥 잡수실 때에는 그것 잡수시고 나자 그 집에 거지가 왔었다. 오늘 점심은 대신 먹었으니 그 값은 이사람 에게 주신다고 하며 전도 말씀 하시고 주셨다. 다른 사람은 대접(待接) 하셔도 당신은 대접(待接)받지 않으셨다. 당신을 위하여 예비 한 것이니 잡수시라고 하면 안 쉴 터이니 다음 끼에 두었다먹으라고 권면(勸勉)하셨다. 쉴듯하다(상하다)고 하면 쉬여도 사랑으로 양보하는 일은 아름답다고 하셨다. 당신을 보시려고 찾아온 손님은 반드시 당신 따로 양식을 주어대접하게 하게하고 교회(敎會)로 미룬 적이 없으셨다. 그는 청백(淸白) 하셨다. 다른 사람의 형편을 잘 살피셨다. 누를 끼치지 않으셨다. 당신 댁에서 대접(待接) 받았으니 한 끼쯤 대접(待接) 하려고 하면 당신 형편이 다르다고 말씀하셨다. 시제(施濟) 하고 손을 거두지 않으셨으나 잔치에 참석 해보신 적은 없으셨다. 잔치에 가셔도 볼일만 보실 따름이요, 음식 먹을 시간에는 밖에 가셔셔 음식 필하기를 기다리셨다. 명절이 라도 이웃집 같은데서 음식을 가져 오면 나를 위하여 준비한 것이 아니니 받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래도 두고 가면 도로 갔다가 그 집에 주셨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먹고 남은 찌꺼기를 버리려고 하면 그것을 거두어 잡수 시였다. 이것은 누가 먹을 이가 없으니 먹어야 한다고 치우셨다. 쉬였다고 버리려 하면 속에 들어가면 더 쉴 것이니 잡수신다고 잡수시었다. 여러 사람이 콩을 먹다가 병든 콩이라고 땅에 버리면 그것을 주워 먼지를 털어 잡수 시였다. 구진 것은 당신이 잡수셔야 한다고 생각 하셨다. 낮은 것도 당신은 못 만드니 귀하다고 하셨다. 구진 것은 없는 것으로 아셨다. 그래서 버린 사람들은 도려 무안하게 하셨다. 조금이라도 남의 도움을 받고 그대로 지나버린 적은 없으셨다. 양식을 사도 시장을 가면 중계인 줄 것은 파러가는 사람보다 이익을 보아 가라고 제 해주셨다. 돈 없이 팔로 온 사람이 있으면 돈 없으면 그저 가시라고 한두 되 그저 주셨다. 많이는 줄 형편이 못된다고 하셨다. 그는 양식을 미리 두셨다가 세금이 할당(割當) 되면 돈 사서 납세(納稅) 하는 것이 의례(儀禮)히 관례(慣例)였다. 나라 토지(土地)에서 난 것이니 나라에 먼저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그러므로 가을이면 분깃을 나누신다면서 1.복음(福音) 전도비(傳道費)로, 2.국세(國稅)로, 3.남의 힘 빌린 것 있으면, 4.구제비(救濟費)로, 5.당신 도리(道理) -친척이나 친구 대접 하실 일 로 나누어 두셨다. 사람의 대접은 변소에만 한 번 더 가게 하는 것밖에 안된다고 해서 조심하셨다. 썩을 것으로 인심 쓰고 영은 썩혀버려서는 안된다고 각심(覺心)하셨다. 주는 데나 받는 데나 서로 조심할 것을 가르치셨다. 그는 심히 청렴(淸廉) 하셨다. 빈민 구제(救濟)할 양식도 미리 제량(劑量)해 두셨다가 긴(緊)한 때 주셨다. 임시로 주는 것으로는 당신 잡수실 것에서 주셨다. 어디까지 청렴(淸廉) 하셨다. 철저 하셨다.

 

 

8. 그는 자비(慈悲)하셨다. 길을 가시다가 당시에 발에 개미가 밟혀도 뒤 돌아 보시고 우시며 길을 멈추셨다. 하나님 앞에 행위로 봐서는 너 한데 밟혀 죽어야 옳을 터인데 네가 나한테 밟혀 고생을 하는구나! 우거진 풀포기를 부어 잡고 좋아라고 하셨다. 인간들의 욕으로는 너를 몇 번 찍었으련만 하나님의 자비가 너를 먹아 주셨으니 너도 조물주(造物主)에 은혜(恩惠)를 감사(感謝)하라 하셨다. 우거진 산천(山川)을 우러러 보시고 한량없이 기뻐하셨다. 만물(萬物)들아 함께 하나님의 은총(恩寵)을 찬양(讚揚)하세 하셨다.

죄인(罪人)을 보시면 애인(愛人)을 보시면 애인(愛人)해서 못 배기셨다. 보실 때에는 꾸지람 돌려 세워 놓고는 울음이셨다. 한사람이라도 믿음에서 떨어지면 밤새도록 우셨다. 하나님 이죄인(罪人) 잊지 말아 주십소서. 해친 자가 있으면 세상 에서도 불상한 사람이라고 안타까워 하셨다. 무엇을 훔쳐 간 사람이 있어 그것 갔다가 유익 못 볼 것이라고 하고 왜 수고 하셨는가 하셨다. 그는 거름 거름마다 눈물방울이셨다. 하나님 이 죄인(罪人)들 어떻게 하시렵니까하셨다. 사람들을 떠나도 하나님의 말숨께 부탁하셨다. 이 백성들을 잊지 마라주소서하셨다. 온전히 하나님의 구원(救援) 베푸시는 자비(慈悲)의 말숨께 부탁 하셨다. 그는 부지런 하셨다. 말숨을 전하는 데는 어심(於心) 새벽이 없으셨다. 말숨 하시는 시간에 밥상이 들어와도 사사(私事)는 뒤에 하고 공사(公事)부터하시자고 말씀 하셨다. 한때도 마음 편히 가져보신 적은 없으셨다. 항상 괴롭다고 말씀 하셨다. 이마를 찌 푸르셨다. 관속에 들어가도 마음 편히 못 놓으신다고 하셨다. 사후(死後) 심판(審判)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항상 진리(眞理)만을 궁구(窮究) 하셨다. 길을 가셔도 밥상을 받으셔도 말숨 생각하시는 것이 일이셨다. 그는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 하셨다. 길을 가시다 피곤(疲困) 하셔도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실 뿐이셨다. 당신 힘으로는 한발자취라도 움직일 힘이 없고 위에서 주셔야만 걸어가실 수 있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욥기를 생각 하신다고 하셨다. 야고보서에는 욥의 말숨이 있으니 좋아라고 하셨다. 앓는 이를 보셔도 하나님은 이제라도 성하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건만 하고 하늘을 우러러 보신 것은 그의 기도(祈禱)이셨다. 식사(食事) 때에 앉으셔도 위를 한번 쳐다보실 뿐이셨다. 사는 것은 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能力)에 있다고 믿으셨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셔도 돌아오고 못 도라 올 것은 온전히 하나님께만 달렸다고 믿으셨다.

그러므로 어디를 가셔도 절망(絶望)이 없으셨다. 언제 돌아오실 기약(期約)도 없으셨다. 사람들이 물으면 당신은 모른다고 하고 하셨다. 가다가 어떻게 될는지 돌아오는 길이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소. 하셨다. 하나님을 의뢰(依賴)하는 것이 힘 이였다. 그는 이렇게 가르치셨다. 세상(世上) 영광(榮光)을 버릴 것을 가르치셨다. 이 세상(世上)에 자기 영광(榮光)은 다 드러내 버리고 예수님만 도와드려야 한다. 내속에 계신 예수를 위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다 장사해버리고 주님만 위할 것이다. 내 생각은 죽을 것뿐이다. 멸망(滅亡) 할 생각뿐이다. 내 생각대로 나가면 멸망(滅亡)하고 영영히 죽을 것뿐이다. 하나님께서 지혜 있고 통달한자에게는 감추시고 어린 아이에게는 나타내신다고 하셨다.

미련한자 곧 세상에게 미친놈 미련한 놈이라고 말 듣는 자에게 나타내신다. 정신(情神)없는 놈이라고 말을 듣고 썩은 놈 이라고 말 듣는 자에게 미련 동이라고 사람들이 버리고 싫어하는 자에게 나타내신다. 세상 사람들은 문둥병 들면 무서워하고 하지마는 어떤 사람 속에든지 문둥병보다 폐병보다도 더 무서운 병들이 들어있다. 그러나 이 병은 누구나 무서워하지도 않고 놀래지도 않고 고치려고도 않는다. 한심한 일이다. 우리 주님께 병고쳐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주님이여야 고치신다. 이병이 낳음 받아야 우리 심령이 정결(淨潔)해 진다. 정결(淨潔)한 심령(心靈) 가져야 온전한 사람이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갔어도 여호와께서 사자 입을 막아 먹지 못하게 하셨다. 사자 입에 들어간 것이나 무슨 고생당하는 것은 다 자기 죄로 당하는 것이다. 육체 병도 그렇다. 하나님을 원망(怨望)할 것 없다. 내 죄로 당하는 것인데 다른 사람 원망(怨望)할 것 없다. 법관(法官)에게 끌려가도 내 죄로 가게 되는 것이다. 채찍을 맞아도 법관(法官)을 원망(怨望) 말고 감옥을 원망(怨望) 말 것이다. 그들은 기계만 되었다. 주님은 내가 세상에 올 때에 믿는 것을 보겠느냐 하셨다. 누가 18장 8절 개미에게 물려도 개미 탓 아니다. 회초리에 눈을 다쳐도 상관없다. 돌에 발을 다쳐도 돌멩이 원망(怨望) 말라. 개미는 나보다 선하다. 개미에게 물려 죽어도 마땅하다. 누구를 원망(怨望)하랴. 죄로 당하는 것을 이 고생 당하는 것 나에게는 가장 행복(幸福) 된 일이다. 육체의 고난을 받음으로 죄에서 벗어나고 마음이 선해진다. 죄만 뉘우칠 것뿐이다. 이 세상에 무엇을 바라랴. 죄를 뉘우치는 것이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일이다. 무슨 행복(幸福)을 바랄 것 없다. 행복(幸福)이 오히려 재앙(災殃)이 된다.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 어디를 가도 하나님의 은혜(恩惠)뿐이다. 하나님의 손이 도우신다. 죄만 없으면 산다. 바위 끝에 가서도 살고 뜨거운 불속에 서도 살 수 있다. 추운 달 속에서 의인들은 살고 뜨거운 불속에서도 의인들은 산다. 아무것도 원망(怨望)도 말고 부러워할 것 없다. 아무 것도 원망(怨望)도 세상 영광 취할 것 없다. 하나님의 원하는 일만 하여라. 그러면 산다. 죄만 뉘우칠 뿐이다. 산에를 가도 하나님의 은혜(恩惠)뿐이다. 가득하다. 우거진 풀잎을 봐도 알 수 있다. 세상 법이 아니면 세상 악마들은 너를 몇 번 욕심내어 살해 했으련만 은혜(恩惠) 시대라 하나님의 명령으로 너를 보호 했으니 너도 하나님 은혜(恩惠)를 감사 하라고 끌어안았다. 너울거리는 풀잎 하나라도 하나님의 공수(空手)로 주시는 은사가 아니면 살 수 없다. 너도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들어내는구나. 성경은 이렇게 가르치셨다. 마태 23 장, 나는 다른 사람을 해하기는 쉬어도 의롭게 하기는 어렵다. 나만 죽으면 다 해결된다. 저 사람이야 알아듣던지 못 알아듣던지 바로 전하는 것이 제 책임(責任)이다. 감당치 못한 사람이라고 바른 대로 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무시 하는 것이다. 그 속에도 하나님이 감화(感化)하시면 알아듣고 깨달을 수 있다. 무식한 사람이라고만 생각 말 것이다. 주 명령대로 바로 전해서 못 깨달으면 그 사람 책임(責任)이다. 바로 아니 전하면 내 책임이 된다. 만일 알고도 그대로 전하지 않으면 그 사람에 흘린 피가 나에게로 돌아온다. 에스겔 39장1-9절, 예수님은 의인의 친구가 아니다. 죄인의 친구가 되신다고 하셨다. 미련한자의 친구다. 모르는 중에 다 쏟아 놓고 은혜(恩惠)를 구할 것이다. 그래야 받는다. 자기가 다 알아가지고 하려는 것은 욕심(慾心)뿐이다. 알고 열심히 들어가면 자기욕심(慾心)뿐이다. 알고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내게 의로운 줄 아니까 욕심이 된다. 고전 10장15-25절, 미련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지혜(智慧) 있는 것이 된다. 고린도후서 3장1절, 예수께서 우리에게 무엇이나 주심으로 풍성하게 하신 것이다. 성전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어 다니라고 하여 고쳐 주었다. 참 구제는 디모데전서 6장18절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는 것은 선한 행실이다. 행실을 보일 것이다. 예수님의 행실을 나누어 줄 것이다. 예수님께서 어떤 집에서 가르치실 때에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 왔었다. 사람들이 문밖까지 많이 있어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사람을 시켜서 찾는다고 하셨다. 주님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시지 않으셨다.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반문 하셨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하는 자가 내 어머니요, 내 형제(兄弟)요, 누이라고 말씀하셨다. 진정한 형제(兄弟) 시(示)였다. 그러시고 여전히 가르치기를 계속하셨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듣고 나누어주기를 즐겨 하였다. 마리아는 듣는 이요, 마르다는 나누어주는 이였다. 라헬은 활동가였다. 부지런히 선을 나타낸 이였다. 연보(捐補)는 내 몸을 희생(犧牲)하는 것이 참 연보(捐補)다. 디모데전서 6장3절 교훈을 받을 것이다. 죄도 모르시는 우리 주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영광(榮光)을 버리시고 제물(祭物)과 생축(生丑)이 되셔 희생(犧牲)하심으로 그 영광(榮光)은 다 나에게 맡겨 주셔서 나는 산다. 이시간도 그 영광(榮光)이 아니면 살 수 없고 부끄러워 살 힘이 없다. 살 힘이 없다. 내자랑은 없다. 내 능력은 없으니 살 수 없다. 예수님의 것 곧 풍성한 영광(榮光), 넘치는 영광(榮光)을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주시면 공평해진다. 평균하려 하신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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