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장마중 : '우리의 거울' 일부

mamuli0 2024. 7. 19. 18:03

 장마전이 오르내리면서 많은 비가 내린다. 뚱단지 하국 다알리아가 많이 피고 울금도 많이 자랐다. 오늘은 비가 내리다가 햇볕니 나다 한다. 곡성에서 아들들이 다녀가고 산들이이가 여름 방학을 시작했다.

 

그러므로 어디를 가셔도 절망(絶望)이 없으셨다. 언제 돌아오실 기약(期約)도 없으셨다. 사람들이 물으면 당신은 모른다고 하고 하셨다. 가다가 어떻게 될는지 돌아오는 길이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소. 하셨다. 하나님을 의뢰(依賴)하는 것이 힘 이였다. 그는 이렇게 가르치셨다. 세상(世上) 영광(榮光)을 버릴 것을 가르치셨다. 이 세상(世上)에 자기 영광(榮光)은 다 드러내 버리고 예수님만 도와드려야 한다. 내속에 계신 예수를 위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다 장사해버리고 주님만 위할 것이다. 내 생각은 죽을 것뿐이다. 멸망(滅亡) 할 생각뿐이다. 내 생각대로 나가면 멸망(滅亡)하고 영영히 죽을 것뿐이다. 하나님께서 지혜 있고 통달한자에게는 감추시고 어린 아이에게는 나타내신다고 하셨다.

 

 

미련한자 곧 세상에게 미친놈 미련한 놈이라고 말 듣는 자에게 나타내신다. 정신(情神)없는 놈이라고 말을 듣고 썩은 놈 이라고 말 듣는 자에게 미련 동이라고 사람들이 버리고 싫어하는 자에게 나타내신다. 세상 사람들은 문둥병 들면 무서워하고 하지마는 어떤 사람 속에든지 문둥병보다 폐병보다도 더 무서운 병들이 들어있다. 그러나 이 병은 누구나 무서워하지도 않고 놀래지도 않고 고치려고도 않는다. 한심한 일이다. 우리 주님께 병고쳐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주님이여야 고치신다. 이병이 낳음 받아야 우리 심령이 정결(淨潔)해 진다. 정결(淨潔)한 심령(心靈) 가져야 온전한 사람이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갔어도 여호와께서 사자 입을 막아 먹지 못하게 하셨다. 사자 입에 들어간 것이나 무슨 고생당하는 것은 다 자기 죄로 당하는 것이다. 육체 병도 그렇다. 하나님을 원망(怨望)할 것 없다. 내 죄로 당하는 것인데 다른 사람 원망(怨望)할 것 없다. 법관(法官)에게 끌려가도 내 죄로 가게 되는 것이다. 채찍을 맞아도 법관(法官)을 원망(怨望) 말고 감옥을 원망(怨望) 말 것이다. 그들은 기계만 되었다. 주님은 내가 세상에 올 때에 믿는 것을 보겠느냐 하셨다. 누가 18장 8절 개미에게 물려도 개미 탓 아니다. 회초리에 눈을 다쳐도 상관없다. 돌에 발을 다쳐도 돌멩이 원망(怨望) 말라. 개미는 나보다 선하다. 개미에게 물려 죽어도 마땅하다. 누구를 원망(怨望)하랴. 죄로 당하는 것을 이 고생 당하는 것 나에게는 가장 행복(幸福) 된 일이다.

 

 

육체의 고난을 받음으로 죄에서 벗어나고 마음이 선해진다. 죄만 뉘우칠 것뿐이다. 이 세상에 무엇을 바라랴. 죄를 뉘우치는 것이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일이다. 무슨 행복(幸福)을 바랄 것 없다. 행복(幸福)이 오히려 재앙(災殃)이 된다.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 어디를 가도 하나님의 은혜(恩惠)뿐이다. 하나님의 손이 도우신다. 죄만 없으면 산다. 바위 끝에 가서도 살고 뜨거운 불속에 서도 살 수 있다. 추운 달 속에서 의인들은 살고 뜨거운 불속에서도 의인들은 산다. 아무것도 원망(怨望)도 말고 부러워할 것 없다. 아무 것도 원망(怨望)도 세상 영광 취할 것 없다. 하나님의 원하는 일만 하여라. 그러면 산다. 죄만 뉘우칠 뿐이다. 산에를 가도 하나님의 은혜(恩惠)뿐이다. 가득하다. 우거진 풀잎을 봐도 알 수 있다. 세상 법이 아니면 세상 악마들은 너를 몇 번 욕심내어 살해 했으련만 은혜(恩惠) 시대라 하나님의 명령으로 너를 보호 했으니 너도 하나님 은혜(恩惠)를 감사 하라고 끌어안았다. 너울거리는 풀잎 하나라도 하나님의 공수(空手)로 주시는 은사가 아니면 살 수 없다. 너도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들어내는구나. 성경은 이렇게 가르치셨다. 마태 23 장, 나는 다른 사람을 해하기는 쉬어도 의롭게 하기는 어렵다. 나만 죽으면 다 해결된다. 저 사람이야 알아듣던지 못 알아듣던지 바로 전하는 것이 제 책임(責任)이다. 감당치 못한 사람이라고 바른 대로 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무시 하는 것이다. 그 속에도 하나님이 감화(感化)하시면 알아듣고 깨달을 수 있다. 무식한 사람이라고만 생각 말 것이다. 주 명령대로 바로 전해서 못 깨달으면 그 사람 책임(責任)이다. 바로 아니 전하면 내 책임이 된다. 만일 알고도 그대로 전하지 않으면 그 사람에 흘린 피가 나에게로 돌아온다. 에스겔 39장1-9절, 예수님은 의인의 친구가 아니다. 죄인의 친구가 되신다고 하셨다. 미련한자의 친구다. 모르는 중에 다 쏟아 놓고 은혜(恩惠)를 구할 것이다. 그래야 받는다. 자기가 다 알아가지고 하려는 것은 욕심(慾心)뿐이다. 알고 열심히 들어가면 자기욕심(慾心)뿐이다. 알고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내게 의로운 줄 아니까 욕심이 된다. 고전 10장15-25절, 미련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지혜(智慧) 있는 것이 된다. 고린도후서 3장1절, 예수께서 우리에게 무엇이나 주심으로 풍성하게 하신 것이다. 성전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어 다니라고 하여 고쳐 주었다. 참 구제는 디모데전서 6장18절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는 것은 선한 행실이다. 행실을 보일 것이다. 예수님의 행실을 나누어 줄 것이다. 예수님께서 어떤 집에서 가르치실 때에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 왔었다. 사람들이 문밖까지 많이 있어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사람을 시켜서 찾는다고 하셨다. 주님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시지 않으셨다.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반문 하셨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하는 자가 내 어머니요, 내 형제(兄弟)요, 누이라고 말씀하셨다. 진정한 형제(兄弟) 시(示)였다. 그러시고 여전히 가르치기를 계속하셨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듣고 나누어주기를 즐겨 하였다. 마리아는 듣는 이요, 마르다는 나누어주는 이였다. 라헬은 활동가였다. 부지런히 선을 나타낸 이였다. 연보(捐補)는 내 몸을 희생(犧牲)하는 것이 참 연보(捐補)다. 디모데전서 6장3절 교훈을 받을 것이다. 죄도 모르시는 우리 주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영광(榮光)을 버리시고 제물(祭物)과 생축(生丑)이 되셔 희생(犧牲)하심으로 그 영광(榮光)은 다 나에게 맡겨 주셔서 나는 산다. 이시간도 그 영광(榮光)이 아니면 살 수 없고 부끄러워 살 힘이 없다. 살 힘이 없다. 내자랑은 없다. 내 능력은 없으니 살 수 없다. 예수님의 것 곧 풍성한 영광(榮光), 넘치는 영광(榮光)을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주시면 공평해진다. 평균하려 하신다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