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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산성 행궁터 보기 : '맨발의 성자' 이현필

mamuli0 2024. 5. 7. 15:06

 세계 곳곳에 많은 비가 내려 인명피해까지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제주도와 남도에도 많은 비가 내렸다. 입하(어린이 날)를 지나고 날이 개어 용장산성 행궁터를 다시 찾았다. 진도에 1984년에 내려옸을 때 보다 이제는 많이 정리정돈이 되어있다. 마침 잡초도 베어주고 계곡에 맑은 물도 흐른다.

 

 

‘맨발의 성자’ 이현필

 

이옥연 기자 coollee@googood.com

 

맨발의 성자’라 불리는 이현필(1913~1964) 선생은 예수님처럼 거룩한 삶을 동경하며, 고아와 걸인 등 어려운 사람들을 섬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신학자들은 이현필 선생이 신학자나 목회자, 장로는 아니었지만, 예수의 삶과 성경 말씀을 실천했던 ‘신앙의 뿌리’였다고 평가한다. 이 선생이 사랑과 순결, 초월 등을 몸소 실천하며 청빈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또한 신학자들은 이현필 선생을 통해 ‘고난의 예수․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간 비천한 예수․청빈의 예수’를 볼 수 있다고까지 칭송한다.

 

 

온몸으로 모범 보인 삶 살아

 

이현필 선생은 13세 때 일본인 목사 ‘관파’(官波)에게 복음을 접한 후, 1928년 광주농업실습학교에 다닐 때 숨은 성자 이세종 선생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

 

이현필 선생은 이세종 선생의 수제자가 되면서 거룩한 삶을 동경하며 몸소 실천했다. 이후 그는 제자들에게도 자주독립정신과 청빈을 가르쳤다. 특히 그는 예수의 정신을 본받는 경건 훈련에 매우 철저했다.

 

이현필 선생과 15년을 동고동락한 전남 동광원의 김춘일 씨는 “이 선생님은 기독교를 지식이나 이론으로 믿지 않고, 성경말씀 그대로를 믿었다”며 “그는 예수님처럼 온몸으로 모범을 보인 ‘성인의 삶’을 살았다”고 전했다.

 

또한 이 선생은 성결․독신․정절․순결 등으로 항상 거룩한 삶을 강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씨는 “이 선생님은 ‘깨끗하고 거룩한 삶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며 “‘이런 삶은 신앙으로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늘 강조하셨다”고 밝혔다.

이렇듯 이현필 선생은 철저한 ‘자기 비움’을 실천하면서 살았다. 그는 추운 겨울에도 맨발과 단벌옷으로 다녔으며, 불을 때지 않은 차가운 방에서 지냈다고 한다. 더구나 그는 ‘일식주의자’여서 하루에 한끼를 먹었으며, 금식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고아와 걸인 섬기는 삶

 

이현필 선생은 6․25 동란 이후 가난에 허덕이는 민족의 아픔을 제자들과 함께 나누며, 동광원이라는 수도공동체를 만들게 되었다.

 

이 선생은 동광원에서 고아와 걸인, 나그네들을 위해 ‘하룻밤 재워주기 운동’과 ‘십시일반 운동’ 등을 펼쳤다.

 

김춘일 씨는 “이 선생님은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면서 어려운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항상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렇듯 성인의 삶을 실천하는 이현필 선생을 보면서 부녀자 청년 할 것 없이 가족을 버리고 그를 따랐다. 하지만 이로인애 이 선생에게 시련이 닥쳐왔다. 교회의 일꾼들이 빠져나가자 목회자들이 분노해 경찰에 신고하는 등 원성이 잦아졌고, 이 때문에 이 선생은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그를 찾아와 대면한 목사들이라면 “이 길이다”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분은 참 믿음의 사람이다’, ‘참 사랑의 사람이다’, ‘성경말씀대로 살면 이렇게 된다’, ‘이런 것이 믿는 것이요 사랑이다.라고 하면서 감격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섬겨야 한다고 강조해

 

이현필 선생은 1964년 3월 17일 마지막 예배시간에도 ‘만물은 내 지체요 인류와 이웃은 내 몸’이라고 강조하면서 신앙고백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현필 선생의 임종을 지켜본 김춘일 씨는 “이 선생님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농사로 자급자족하면서 불쌍한 사람들을 섬기며 살라고 교훈 하셨다”며 “‘가난과 순결은 믿는 사람들의 복’이라고 하셨다”고 밝혔다.

김 씨는 “이 선생님은 인류를 당신 몸처럼 사랑하시고, 예수님 발자취를 그대로 따른 삶을 사셨다”며 “15년 동안 성인 같은 분을 모시고 살아서 정말 행복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제는 이현필 선생과 같은 삶을 배우러 목회자나 신학생, 평신도 등이 많이 찾아온다고 전한다.

 

이 기사는 블로그에서 검색한 것으로 작성 시기와 게재된 언론사를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