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곡성에서 동해에 오다 : 진도군 분토리

mamuli0 2022. 9. 9. 17:05

 임인년 추석전 날 곡성에서 동해에 올라왔다. 민이 영주 영인이와 함께 10시경에 출발하여 남원에서 88고속도로로 성주에서 김천, 수시로 교통정보를 참고하여 영덕으로 해서 오후 4시경에 도착했다.

 

 

진도군 분토리

 

19482월과 3월에 남원 식구들이 광주로 이주해 오고 여자 반은 4월에 이동해온 후 광주 YMCA 건물에 많은 식구들이 생활하는 것은 너무나도 불편 하였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본 광주 선교부 운전기사 방안식씨는 진도에 있는 장모에게 연락하여 이들 중 일부가 생활 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진도군 분토리라는 전라남도 선교의 선구자인 유진벨(Eegene Bell : 배유지) 목사가 1898년 목포에 선교부를 세운 후 가장 먼저 해남군 우수영을 거쳐서 선교하였던 곳으로 전라남도 선교의 첫 출발지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분토리(糞土里)라는 지명이 말해 주듯이 진도군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였음으로 초기 기독교 신앙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그리하여 1952년 초에 이현필은 주로 남반에 속한 서재선 집사, 이인옥, 오세휘, 황의용, 복태현, 조성춘 등 몇 사람과 여자 반 에서는 정한나 어머니와 김금남 등 소녀 7,8명을 방안식 집사의 장모(한옥금)씨 초청으로 진도군 읍내리로 이동시켰다. 이들은 진도읍에서 한 달간 생활하였다. 이 시기에 다음날 식사를 위하여 씻어놓은 쌀이 없어진 일이 발생하였으며 동일한 건물 안에서 생활하는 다른 사람들이 훔쳐간 것을 확인하였다. 그러자 이현필은 제자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서 새벽 예배와 아침 성경공부를 진행하였다. 물론 쌀을 훔쳐간 사람들이 찾아와서 사과하고 훔친 쌀을 돌려주었다. 제자들은 이 사건을 통하여 용서와 용서의 대가가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배웠다.

 

 

1952년 봄에 진도읍 향교 생활을 끝내고 연산에 집과 전답을 매입하여 소년들 및 김금남과 철원에서 온 소녀 7,8명이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할 때 일이다. 가뭄으로 지역 주민들은 기우제를 지내고 봉홧불을 올리는 등, 비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어느날 이현필은 주일 예배를 마친 후 제자들과 금골산에 올라가서 두 시간 동안 예배와 기도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이현필은 이제 비가 올터이니 빨리 내려가야 한다고 독려하였다. 제자들은 햇볕이 쨍쨍한데 무슨 비가 오겠느냐고 반신반의하면서 집에 도착했는데 그 때의 천둥번개와 함께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제자들은 이현필이 엘리야선지자와 같은 능력의 하나님의 종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진도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제자들은 이현필의 사랑, 용서, 그리고 능력을 경험하면서 더욱더 신뢰하게 되었다. 이현필은 농사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수박 한 뿌리에서 하나 혹은 두덩이만 자라게 하였으며 또한 감자와 도마토를 접목시켜서 땅 위에는 도마토가 땅속에는 감자가 튼실하게 열매 맺게 하였다. 이현필의 농사 지도법은 밑거름을 많이 주는 것 이였으며 항상 보이지 않는 밑거름이 풍부해야 한다는 성경의 원리를 풀어서 설명 해 주었다.

 

 

이는 진도 분원의 제1차 정착 단계이다. 진도 분원의 제2차 정착은 곽칠금 어머니의 기증으로 연산리에서 생활하는 기간이다. 진도에는 1950년 한국 전쟁이후 많은 피난민들이 몰려들고 그 과정에서 고아들이 발생함에 따라 동광원에도 황해도 피란민 3남매(정금순과 남동생)가 들어왔다.

<성자 이현필의 삶을 찾아서> p209~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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