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죽에 연잎이 올라왔다. 지난해 밤콩을 심은 자투리 밭에 비닐멀칭을 했다. 러시아컴프리 보라색 꽃이 피고 함박꽃 색갈을 들어냈다. 초하루 일몰이 아름다웠다. 옛날 벼농사 할때가 생각났다.
하느님의 약속
1983.01.04. 김준호 선생
인간의 힘으로 살아봄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몸소 체험하시고 본보기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체험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실수할 것을 예수님이 미리 아셨지요. 그러나 의도를 아셨지만 미리 안 가르쳐주시고 내버려두신 것은 그것이 실제적으로 전 인류를 구원하는데 구체적인 디딤돌이 되겠다. 이 말씀입니다. 베드로선생이 실패를 안했으면 많은 영혼들이 천국 갈 길이 막연해지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앞잡이가 빠지면서 실수를 하고 거기서 일어나는 것을 본보기로 보여줌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 길을 소망을 가지고 따라 가겠다. 그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 베드로가 실패하기 전에 네가 회개한 후 반듯이 네가 회개한 후에는 내 형제들을 붙잡아 주어라. 내 형제들을 위로해 주어라. 네가 회개한 후에 네 형제들을 굳세게 하라고 누가복음 22장 32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네가 죄를 지어보고 네 죄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네가 넘어짐으로 사람들에게 너를 보여주고 네 자신의 경험으로서 인간에게는 힘이 없다. 사람에게는 능력이 없다. 사람은 무능하다. 사람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 사람이 얼마나 약하다는 것을 전 인류에게 보여주라는 뜻이었습니다. 이거는 성령이 이렇게 해석했으니까 얼마나 믿음직해요? 사실 그렇지 않아요?
이 선생님은 그렇게 교훈하셨습니다. 선생님 저는 실수가 많은데 선생님이 안계시면 나는 식구들한테 미움 받고 어떻게 살까요? 그런 뜻으로 질문했어요. ‘네 실수 없는 사람은 사람들 한데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성녀 막달라 마리아를 보세요. 그 성녀가 실수가 많았기 때문에 일어섬으로 전 인류에게 소망을 주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실수 없이 잘 사는 것도 좋지만 실수가 있는 것은 아무 걱정 말라. 반듯이 예수님이 실수 없는 사람보다 배나 더 사랑하시고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걸 믿으시라고 권고하고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러니까 큰아들이나 된 것처럼 실수가 없는 것처럼 뻣뻣하게 사는 동광원 식구들 보다는 동광원 밖에가 계신 분들은 아주 겸손하지 않아요? 저는 실패했습니다. 저는 넘어졌습니다. 저는 이렇게, 이렇게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둘째 아들이나 된 것처럼 구원이 얼마나 희망이 있다고요. 구원이 더 가까워 예수님의 은총을 받게 되는 분명히 확실한 번지수를 갖고 있거든요.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큰 은총이 있는 것으로 믿고 소망을 품는 것입니다. 또 여기 까레토 수사가 증언하는 말씀이 있어요. 이것은 여러분들이 책 사보시면 아시는 거예요. 오시는 주님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239페이지 쪼금만 읽어 보겠어요.
교회를 복음적 가난의 멧세지를 전하면서 곧 잘 뇌물을 구하고 권세 있는 자들과 동맹을 맺었다. 프렌치스코 성인이 가난을 주장했지만 제일로 세계에서 돈이 제일 많아 졌답니다. 이것은 모순이지요? 지금도 동광원을 자랑하려면 옛날에 꽁보리밥에 소금에 김치에 먹은 것만 자랑하고 지금은 어디 그런 김치가 있습니까? 꽁보리밥이 있습니까? 이거는 잘못이거든요. 가난을 자랑하면서도 권세 있는 뇌물을 가진 자들과 동맹을 했다는 거예요. 선교회가 이것은 혁신이 일어나야지요. 젊었을 때에 내가 예수님이 당신을 모른다고 한 베드로를 제자들의 우두머리로 당신의 후계자로 초대 교황으로 삼으려 하셨는지 그 까닭을 젊은 저로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의아스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하녀의 지껄임에도 기겁을 하고 놀랜 배반자 베드로지요. 배반자의 무덤 위에 지금 베드로의 무덤에 얼마나 세계적으로 제일 크다고요? 교회를 세우는 것이 각자에게 겸손하도록 자신의 약점을 의식하게 내 약점을 깨닫게 해주는 끊임없는 경고라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베드로가 약하다면 나는 얼마나 약한가? 다름없는 그 교훈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처럼 약한 반석위에 그처럼 하잘것없는 성 베드로의 반석위에 세워진 교회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저 자신은 분명히 성 베드로보다 더 약한 반석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막에 가서 수십 년 기도하고 깨달은 각이지요. 대각이지요. 큰 깨달음은 그 것뿐이에요. 아 나는 베드로를 흉볼 사람이 아니다. 베드로가 약했다면 나는 백배 천배 약한 사람이 아닌가? 그렇다. 그렇습니다. 반석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약속이요. 도를 응결시키는 즉 성령입니다. 씨멘트라고, 문제는 이것입니다. 여기에서 큰 번갯불 같은 계시를 우리가 받아야 합니다.
우리 식구들이 약하지요? 덕이 없지요? 사랑이 없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세종 스승, 이 현필 스승, 유영모 스승, 현동안 스승, 한국의 최흥종 목사 같은 하나님의 종을 세우시고 하나님이 성령으로 시정하시고 보증하시고 약속이 있다면 이 모임은 예수님의 것이지요. 아무리 사람들이 잘 못을 하고 실수를 해도 반듯이 씨가 있고 하나님이 보내실 인물이 또 있겠지요. 문제는 그렇습니다. 아 베드로가 실수했거니 무능하거니 배반자가 무슨 문제가 되는가? 문제는 예수님이 이 돌 위에 성교회를 세우겠다. 하고 약속이 있는 것 그것입니다. 그건 성령이 스스로 하실 것입니다. 오직 성령만이 우리처럼 오직 은총만이 우리처럼 형편없는 돌 조각들을 교회로 세우실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행여 라도 동광원에 와서 보신 손님들은요. 현대 동광원 사람을 봐서는 안 됩니다. 더 지옥 갈 사람들인지 더 멸망할 사람들인지 알 수 없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나 하나님의 섭리와 성령을 믿을 것뿐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그분 예수님의 교회요. 그분 예수님 자신의 연속이며 그분 예수님 자신의 충만하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교회가 타락 했니 교회가 잘못 했니 그것은 지금 젊은 시절에 수사가 봤던 실망했던 것과 똑같아요. 문제는 예수의 피, 예수의 성령이 약속이 있기 때문에 인류의 구원은 확실한 것입니다. 한사람도 빠짐없이 다 구원하기에 이른다고 구원을 하시고 싶어서 하나님은 이 종말을 연장하시고 기다리시고 계신다는 것이 그 배반자가 되사고 가엽던 베드로가 친히 체험하시고 예수님의 성령을 믿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시도록 하나님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런데 저는 여기 내려오면서 속에 있는 말을 뭐라고 설명하면 한 시간 할 것을 한 일분도 못 되서 설명할 수 있을까? 영시를 주시라고 생각해 봤어요. 영시는 아니지만 이런 생각을 줍디다요. 너 식구들한테 내려가서 이 말을 해봐라. 비유 컨데 요새 정부 양곡이 많이 생기지 않아요? 곡간에다가 정미해놓은 쌀을 천가마를 재고해놓은 곳간이 있다. 그런데 쥐가 아주 요행수가 있는 것처럼 아주 꾀가 있게 그 창고로 들어갔다. 천석이나 되는 이 쌀을 다 내가 먹을 밥이다. 그렇게 자기로서는 큰 다복할 행복감을 느끼고 그 쥐가 살았는데 창고지기가 한 달 후에나 석 달 후에 그 문을 열고 들어 가보니까 그 쥐가 굶어죽었다고 한번 말해봐라. 왜 굶어 죽었는가 물어봐라. 그러시는 것 같아요. 쌀이 천석이나 들어있는 곳간인데 그 주인이 석 달 만에 문을 열고 들어가 봤더니 그 쥐가 굶어죽어 있더라. 왜 그랬겠는가? 질문해봐라. 그러시는 것 같아요.
누가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쌀이 천석이나 있는데 왜 굶어죽었을까요? 아시면서 대답하지 않지요? 아시니까 제가 대답하겠어요. 물이 없어요. 물이, 물이 없으니 쌀을 먹다가 배가 불이 나가지고 먹을 수가 있어야지, 제가 요새 불이 났어요. 성령이 없어요. 성령을 주시라고 빌면 쪼금 불이 꺼져요. 하나님도 참 인색하세요. 쪼금 빌면 켜지고 안 빌면 다시 꺼지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제게는 큰 매를 때리고 계신 게 감사해요. 남은 저보고 아팠다 하잖아요? 하나님이 저를 제일 사랑하셔서요. 네 이놈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자꾸 배가 뜨겁습니다. 기도하면 사르르 식어요. 그러니까 저는 주님의 사랑에 붙잡혀 가지고 남이 모르는 소망 중에 삽니다. 대체로 그런 경험이 많답니다. 쌀이 잔뜩 있는 그 장독에 큰 항아리 속에 쥐가 빠져있으면 빼빼 말라 쥐가 죽어있는 것이 많이 나옵니다. 이유를 몰라요. 물이 없어 그래요. 그런데 우리 식구들 보십시오. 조석 세 시간 설교 듣지요? 왜 빼빼 말랐어요? 이것이다. 그럽니다. 성령을 받아라. 세상에서 말하는 성령 아니고 진실한 사랑, 옛날에 김준 선생님이 얻어 잡수시던 그 물 사랑이 고이고 눈물이 고이고 피가 고인 사랑의 찬물 한 그릇 그 김치 한 그릇 그 보리밥 한 그릇이 지금 다시 회복되어야 하겠어요. 확실히 이 모임은 축복받은 모임인데 너무 부해지지 않았습니까? 왜 보리밥이 안 나와요? 왜 김치에 간한 짠 김치가 안 나와요? 그리고 눈물이 나면서 나무 해다가 불 때서 끓인 나무에다가 끓인 연탄 말고 점심을 굶고 맨발벗고 무등산에 가서 나무를 해왔거든요. 큰 애기들이 그 불을 땠으니 김준 선생님이 녹아나지 않았겠어요? 감격해서,
그러니까 밥이 아니라 얼마나 사랑이 고여 있는지가 문제겠어요. 그 빨래하는 옷이 아니라 얼마나 그 뜨거운 사랑으로 빨래했느냐가 문제에요. 우리한테는 설교나 이론보다는 사랑이 갈급한 때에요. 사랑이, 쌀이 천석이라도 물이 없으면 쥐가 굶어죽듯이 밤낮 성경말씀보고 이래도 그 사랑이 회복되어야지요. 성령의 사랑이 회복되기 전에는 팍팍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구할 것은 역시 순수한 사랑입니다. 그래 제목이 그렇습니다. 금년도 희망은요, 남원에 들어가시면 말씀은 한 시간 듣고 기도는 두 시간 하세요. 피맺힌 호소를 했지 않아요? 깨끗한 사랑을 주시라고 깨끗한 사랑을 회복해 주시라고, 그러면 그 깨끗한 사랑이 회복될 때 이 운동은 얼마나 맛이 있으면 그 소금 맛을 얼마나 세계가 맛이 나지 않겠습니까? 인류가 맛이 나고요. 그런 뜻으로 색다른 성령이 있겠습니까? 지극한 은총, 참 겸손, 참사랑, 첫사랑 첫사랑을 회복해 주시라고 기도할 때가 되었다. 그런 희망을 갖고 또 희망을 품는 것입니다. 아직은 구하지 않았으니까 어제는 소화 테레사가 설명했지요. 베드로 선생이 기도 없이 나댔으니까 실패했다는 거예요. 겸손하게 예수님께 의지하고 기도를 했다면 실수하지 않을 텐데 기도 없이 자기 힘으로 하다가 무너진 것 아니냐? 그렇게 가르쳐 주셨으니까 우리들이 확실히 기도 없는 사업입니다. 너무 자선사업에 쫒기고 이론과 설계에 기회를 다 주고요. 영혼을 예수한테 그렇게 발붙일 시간이 없었다. 그 결점이 확실합니다. 그 단점만 보충한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다. 그 점입니다요.
결코 소망이 없지 않다. 또 안에 있는 식구들이 이렇게 지쳐가지고 있는 이때 밖에 있는 어른들이 베드로마냥 여러 가지 실수도 해보시고 여러 가지 자뿌러지고 일어나시고 그러면 그거 부탁이지요. 밖에서 목사로 계시던지 장로로 계시던지 집사로 계신 분들이 아파하시고 울어버리시고 일어나시면 돌이킨 후에 여기 오셔서 도와주셔야지요. 어떻게 하겠습니까? 네가 돌이킨 후에 형제를 굳게 하라. 희망은 그것뿐입니다. 이 본원의 희망은 밖에 계신 어른들 김준스승이라든지 목사님들 밖에 계신 분들이 세상을 살아보고 자기 힘으로 살아보고 넘어지시고 베드로마냥 배반도 해보시고 또 가엽단말도 하시고 눈물도 많이 흘리시고 그리고 돌이킨 후에 성령을 받으시고 순수한 사랑을 가지고 오셔서 깨우쳐 주세요. 오셔서 타일러 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베드로를 실수시키신 것은 전 인류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사실과 우리에게 있어서 밖에 나가서 미끄러졌다. 실수했다. 하는 사람에게 다시 힘을 주심으로 우리를 굳게 해줄 수 있는 희망이 있다. 이거에요. 굳게 해줄 수 있다. 그래서 이 천주교회 측은 그런 소망이 있습디다요. 나는 수녀가 못되고 나는 교황을 낳을 어머니는 될 수 있다 이겁니다. 그 희망이 있다는 거예요. 천주교는 수녀가 못 되었다고 실망하지 않아요. 나는 기도하고 늘 기도하면 내가 낳은 아들이 교황은 될 수 있다는 희망은 있다 그겁니다. 제2의 희망이지요. 찬송 부르십시다. 성가도 불러 주시고요. 성가 예수님 은총 부름 찬송가 155장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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