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금농사

삼일째 울금 수확 : 이 현필 스승의 생애

mamuli0 2021. 12. 3. 11:00

 비가 내려 중단했던 울금 수확을 삼일째 하고 있다. 뒷밭 아래 소나무밭도 울금대를 베어낸다.

 

 

 

이 현필 스승의 생애
 
 1989.05.12. 김준호 선생
 
 회개 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하고 선포하였다. 그런데 마음으로 무얼 느꼈어요. 그래 이 선생님을 따라 가면 시간이 많이 갑니다만 흠모되기 때문에 광주 올라와서 최 목사님하고 친구라는 말 들었거든요. 최 목사님 별장이 꼭 이런 지대입니다. 무등산 저쪽에 있습니다. 찾아가서 뵈었더니 계십디다. 나는 같은 친구라니까 이 선생님이 거기 사는 줄 알았어요. 그렇지 않겠어요? 아 이 선생 여기 온 일 없습니다. 해방 후니까 제가 알기에는 오 복희씨하고 친구라는 말 들었다고, 오 북희씨 그 사는 곳이 동북입니다. 동북 찾아가 보라고  그러면 이 선생님은 해남 왔을 때 맨발벗고 바지저고리 입고 오셨거든요. 그 이 선생님을 뵈려면 양복 벗어버리고 구두 벗어버리고 맨발 벗고 바지저고리 입고 찾아가야 쓰겠다고 생각이 듭디다. 그래 무명 바지저고리 입고 참 맨발 벗고 무등산을 넘어갔지요. 여기 이서쪽 동북을 찾아 갔어요. 그래 처음으로 맨 발을 벗었기 때문에 그 발바닥이 얼마나 아픕니까? 그래도 마음이 아픈 거에 비하면 아무렇지 않아요. 그 정신고통이 심하니까 평화를 찾아가는 이 마당에 정신이 해결 나야지. 이 발바닥이 아픈 게 무슨 상관이 있냐?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걸어갔지요. 뭐 동복이 상당히 길을 모르니까 재를 넘어 길도 없는 산을 넘어서 무등산이 상당히 높지 않아요? 그래도 희망이 있지요. 아 국화 한 송이를 그렇게 사랑하시던 선생님 이라면 내 영혼도 좀 사랑 할 수 있겠지. 그러고 정작 동북을 가서 복희씨 어머니를 찾으니 시집 간지가 수 이십년 전이야. 그 분을 누가 알겠어? 그렇게 말했어요. 행방이 요원해요. 복희씨 어머니라는 분이 예수를 믿는 분인데 집사를 찾았어요. 교회 집사를 복희씨 어머니가 어디계시냐 그랬더니 아이고 그분 객지에 계신다고. 그럼 이 현필 선생님이라는 분 이쪽에 오시냐고 그랬더니 아 수소문 들었습니다. 여기서 한 십리를 물 따라 내려가서 거기가 물어보라고 그 청담, 그래 캄캄한 밤중에 길도 모르고 참 요행 이지요. 물 따라 가서 등불을 찾아들어가서 물어 봤어요. 아니 여기 혹시 오 북희씨 아시냐고 무작정 말한 거예요. 거기가 부인들이 과부들이 2-3명 모여서 집회하던 기도처에요. 그런데 그 분이 예배 보러 오시다 저를 만났어요. 아이고, 제가 압니다. 제가 모시고 가지요. 하고 거기서 청담이라는 마을이 1키로 되어요. 이 강가에 캄캄한 밤중에 맨발을 벗었어요. 돌이 많아요. 돌이 발가락에 채이거든요. 눈에서 불이 팍 팍 나요. 어떻게 발가락이 아픈지 불이나 가지고 돌에 탁 채이고 탁 채이고 그래도 영혼이 희망이 있는 것이지요. 아 그 스승을 만나면 내 마음에 등불을 켜주시리라. 이 고통을 면제해 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리라. 그리고 이 댁에 계십니다. 들어가세요. 그 분은 자기 예배시간이 되니 가버리지요? 들어가 보니까 지금은 그런 막이 없어요. 땅에 붙은 막인데 예수 믿는 예수 할머니라는 별명이 붙은 할머니 집인데 아무 소리가 없어요. 죽석을 한 40년 깔았던지 그 대가 달아져가지고 흙이 나와 있어. 흙뿐이야. 방바닥이, 그런데 전 살림은 큰 독아지가 반 틈이 깨졌어요. 한쪽 깨진 걸 들여놓고 거기 바가지 하나 수저하나 그 나무 목기하나 꺼먼 뚝배기 하나 총 살림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 집인데 할머니는 마을에 주무시고 이 선생님이 거기 그 방에 들어와 계세요. 그렇게 찾아왔으면 사람이 선생님 찾아왔습니다. 이 말을 못 했어요. 그래 얼굴 보고 이렇게 앉아있으니까 묵묵부답이야. 왜 왔냔 말도 없고, 왜 왔습니다. 말도 안하고 그래 인제 또 예배 봤지요. 거기 한 5-6명이 모였어요. 잤어요. 아침에 말도 없이 선생님이 떠나요. 그때 따라나선 분이 한나 어머니 수레기 어머니가 따라나섭디다. 그래 선생님을 찾아갔는데 떠나 버리시니 거기 있을 필요가 없지 않아요? 그래 따가 가겠습니다. 허락도 없이 무작정 떠난 거예요. 그렇게 해서 인제 곡성을 당도해서 아 조금 그 이야기 한번 했지요? 가다 누구 집을 들어가요. 동록씨 어머니가 사시던 집이에요. 동록 씨라는 분 지금  의사서 계시지요. 그 집에 아마 들어가 앉아있으니까 찰떡이 쑥떡이 찰떡이 닷 되는 되었을 거예요. 큰 바구리에 가득 가져다가 잡수시라고 차려놨어요. 그것은 어제 밤에 청당 밑에 마을에 후실로 계신 신자예요. 이 선생님 만나면 나와라 어떻게 남의 후실로 있는가, 나와라 충고를 했던가 그분이 울며불며 밤새도록 이 선생님을 차마 뵙기가 부끄러워 황송해서 못 뵙고 떡을 밤새도록 해서 그 길처에 갖다 잡수시라고 다음에야 알았어요. 선생님은 내가 선생님 신분도 모르는 사람이 그 상황을 알 수 없지요. 선생님은 늘 지나다니던 전도길 이니까 그 마을 사람이 어디 가시는지 누구 집에 가시는지 다 아니까 미리 떡을 해다 놓은 거지요. 우리 기도합시다. 참 이 선생님 기도하는 것 처음 봤어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못난 자식에게 이 떡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이놈이 떡이나 얻어먹고 돌아다니는 놈이라면 이놈의 이빨이 썩어서 썩어 내려앉게 해 주십시오. 뭐 요런 사연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립니다. 아멘’ 하고 눈을 떴어요. 그래 누가 이 떡을 바라볼 사람이 없어요. 벌써 굶은 지 한 이틀이 더되었는데 배는 고파. 너무 엄숙해서 하나님이 임재 해버려. 하나님이 거기 계세요. 그러니까 후실로 계신 자매가 얼마나 정신 고통이 심하겠습니까? 이것이냐? 저것이냐? 결단을 못하고 영혼이 괴로워서, 밤새도록 눈물로 떡을 해 왔는데  참 그 떡을 먹을 때가 아니거든. 알고 보니까 이 선견지명이 계세요. 사람을 안 만나 봐도 투시력이 있다. 누가 한 떡이냐 그거에요. 내가 이렇게 전도자로서 떡이나 얻어먹고 돌아다니겠냐? 자기를 질타해. 그 말씀이 거기가 울리지요? 그 말이 들어가겠지요? 그 부인 후처로 있다가 나왔어요. 그때 아마 만석 아니 백석 꾼의 부인, 부자였지요. 아주 별장 짓고 농촌에서는 호강하던 부인이라고요. 정색하고는 회개하고 나왔어요. 광주 어디 정착 하셨어요.  광주에서 혼자 사셨습니다. 예배당에 다니시고, 

 

 

그래 누구 집에 가시던지 선생님이 들어가시면요. 진수성찬이야. 고기 안 잡수시는 건 아세요. 산채 상이 쓰러지도록 그렇게 나와요. 그래도 이렇게 얼굴 쳐다보고 그냥 일어서버려. 퍽퍽 우세요. 대개는 과부 집안이야. 가난한 집인데 오신다는 소문 듣고 미리미리 준비했다. 밤새도록 잠 안자고 장만해 놔요. 전혀 입을 안 댔어요. 그래서 인제 그 안 잡수시고 가시므로 더 애절한 인격적인 존경과 사랑과  신의가 생기지요. 선생님께 대해서 생명을 다 드려도 아깝지 않아. 그래 어디가든지 그냥 감격이야. 그래서 하나님께서 한 것같이 위로가 되고 그래서 희망이 생겨. 아 이런 분이라면 내 영혼을 분명히 하늘나라로 인도할 지도자시다. 그야말로 무아의 사랑입니다. 절대의 희생의 사랑이시거든요. 그 변증한다는 논설이 아니에요. 뭐 성경 해설을 잘하는 것이 아니에요. 성경을 데살로니가전서 5장 보세요. 다 읽어요. 해설 안 하세요. 나 지금 어디 가겠습니다. 하면 모두 눈물 밭이에요. 그리워서, 그냥 그리워서 말씀은 성경에 있는데 무슨 해설이 필요해요? 성령이 인도하면 성경이 알아집니다. 사람이 해설해서 알지만 이거 괜히 가르친다고 하면 사람 엉망이지요? 머리가 그냥 커져버려. 사람이 병신이 되어버려, 인격이 기형아가 되어버려. 머리만 커져, 성령은 참뜻이 알아져버려. 이제 그렇게 그 분 주변에서 평화를 얻어가지요. 그래서 그리고 선생님이 행방불명 되어버리면요. 잠깐 며칠 한 일주일 그렇게 뵙고 다시 광주 와서 있으면 김 천배선생님이 저를 친 자식이상으로 사랑했습니다. 그 분도 젊은 나이에 일본가 고학한 사람이라 젊은 사람의 심정을 알아요. 자기가 뒤 밭침 해서 신학을 하면 보내 주마고 완전히 자기 서재로 저를 잡아다 놨어요. 증심사 별관을 하나 얻어놔 가지고 자기도 거기서 공부하시고 기도해요. 가정이 있지만 가정에 안가세요 거기서 출근하시고 별장에서 저더러 거기서 공부하라고 파스칼을, 팡세를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런 책을 주면서 읽어보라고 그래. 머리가 아파 정신고통이 다시 심해져요. 이 그 병이 다시 도져. 세상을 탐하게 되요. 아이고, 공부해야겠다. 욕심이 동하고 허영이 동하고 또 정신 고통이 심해져요. 그 선생님은 그렇게 사랑하시는데 내가 어떻게 떠날 수가 없어요. 한 육 개월 같이 있다가 그래 이 선생님이 그때야 애기들 데리고 남원에서 광주에 오신거지요. 그런 같이 애기들 데리고 온지 몰랐지만 그러고 오셨다는 말 듣고 찾아가 뵈었어요. 제가 인제 김 천배선생하고 같이 있는 거 알지요. 그래 제가 그랬어요. 김 천배 선생님은 대기만성이다. 너는 아직 나이가 아직 20대니까 늦었지만 학구적으로 공부하라. 그거에요. 학교 졸업하고 그리고 예수 믿자 그러십디다. 그랬더니 간단하게 이야기 하세요. 대기는 만성입니다. 먼저 마음에 평화를 얻으시고 시간이 남으시면 공부하세요. 그러시더라고요. 그래 육 개월 동안 이렇게 마음이 부풀어가지고 정신 고통이 심했거든요. 다시 세속이 된 욕망이 강해졌거든요. 그런데 그 말이 폭탄 같아요. 먼저 마음에 평화를 얻고 시간이 남으면 학문을 하라. 그래 그 순서가 맞아. 그 대기는 만성이라는 말은 문자는 같거든. 대기는 만성이니 예수는 다음에 믿고 먼저 세상공부를 하고 믿어라. 그쪽이고. 이쪽은 대기는 만성이니 먼저 예수 믿고 평화 얻고 시간이 나면 학문하라. 그리 순서가 바뀌어버려. 

 

 

그래서 역시 이 선생님 말씀을 선택 했습니다. 우선 정신고통이 심하니까요. 내가 공부 많이 하고 학자 되어가지고 죽으면 뭐하냐? 우선 마음에 평화를 얻어야 쓰겠다. 급선무는 정신 고통이에요. 어떻게 정신이 평안해지냐? 그러려면 역시 이 선생님 돈이 없고 거지거든. 그쪽을 따라가야 영혼이 편해지지, 저쪽은 돈이 있고 학자인데 저 선생님 따라가려면 번민이 일어나요. 그래 분별이  딱 서요. 번민을 택할 거냐? 평화를 찾을 거냐? 평화를 찾는데 기울어졌지요. 그래서 서로 말 못해요. 이 선생하고는 경우는 말 못했어요. 그런데 우물쭈물하고 안가요. 가서 공부하라고 그러세요. 등을 밀어내요. 가서 공부하라고 거기가면 마음이 괴로우니까 안 가요. 그래서 어린 소년들을 맡겨줬어요. 한 10명 15명 그런데 그때 그 아이들 같이 가 양림교회 아래 유치원을 우리가 빌려 썼어요. 그때 와서 음악도 같이해준 친구가 있었어요. 정 라 지금 장로님 입디다. 이렇게 머리가 다 벗겨졌나? 의성에 찾아와서 밤중에 입원해요. 저를 만나겠다고 만나보니 어린 시절 그 20대 아이들 가르치던 선생님 이예요. 그분은 장로님 되셨지요. 그래가지고 밤중에 찾아 오셨습니다. 만은 어찌되었든 그런 사연으로 해서 마음을 우선 마음이 평안하게 길을 얻자보니까 이 선생님하고 같이 살았어요. 그런데 그 속에 마음속에 희망 예수님만 사랑할 수 없을까? 그런 마음속에 요령이 딱 생깁디다. 모든 거 다 그만두고 어떻게 예수님만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그런데 가만 그때 자꾸 나대니까요. 목사님들만 모이는 수양회가 있었어요. 광주에서나 여수에서나 자꾸 찾아다니지요. 그래서 목사 사회에서 마음에 딱 무엇이 와요. 저렇게 마음이 학문을 하시고 목사가 되시는 어른들이 살아갈 때 보면 번민이에요. 그래 인제 이렇게 설교할 때 다 듣고 다 개인 반에 가서 상담하거든. 그럼 이 목사님 말 들어봐도 다 정신 고통이 있어요. 그래서 거기서 아하 신학을 해도 저렇게 되겠구나. 결론이 나옵디다. 신학교 졸업하면 어떻게 되느냐? 목사가 되기는 되는데 자기 정신이 괴로워요. 가정문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어요. 그렇다면 그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는 곳이 산이라면 산으로 갈라고 그랬어요. 제 심정에요.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 신학 이라면 신학 갈라고 그랬어요. 그거에요. 요령은 그런데 신학을 한 목사님을 수십 명 만났는데 다 정신 고통이 세속에 대한 미련 자녀에 대한 걱정 그렇다면 신학을 가면 예수님 만나기가 어렵다. 그런 결론이 나옵디다. 그럼 바다에 있으면 바다에 찾아가던지 영혼에 효과 있게 지도하는 스승을 내가 찾아가야지. 신학교에 그런 번민을 해소해주고 내 영혼에 평화를 줄 수 있는 스승이 있다면 신학교를 가고, 산 속에 거지라도 길가에 거지라도, 그 분이 내 영혼에 예수를 가르쳐주고 평화를 줄 수 있다면 그 등불을 내가 찾아가야 되겠다. 그 요령을 찾은 거지요. 그래 신학교 갈라하는 욕망이 없어져버려. 거기가도 내 영혼의 불은 안 꺼지겠다. 어떻게 해서 이 청춘의 불을 끄느냐? 누가 이 불을 꺼주느냐? 예수님이 꺼 줄 텐데 예수님은 아직 모르지 않아요? 사이에 예수님 만나게 하는 전도자가 있어야하지 않아요? 그래서 아무리 봐도 이 선생님은 예수님을 바로 지도해줄 분이다. 그 신빙성이 자꾸 신용이 생겨요. 신용,  그럼 이제 그때 생활주변이 내가 이 이야기는 여기 여러분들이 굶고 있기 때문에 이 생활 주변을 연상  하기 위해서 이야기 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해온 이야기는 그 과정이고요. 한나 어머니 찾아 갔어요. 능주 교회 종치는 집사님 이라고 그랬지요? 거기 이 선생님이 가신다고해서 따라 갔어요. 첫째 먹을 것이 없어요. 참 청빈낙도에요. 벌써 탈속을 했어. 그 분도 벌써 세속을 떠났어요. 그러니 끼니때가 되면 보리밥도 한술이지만 반찬이 있어야지. 점심은 없고요.  그때도  손님이 오시면 무를 한쪽 깎아 내 드립디다. 그래 손님이 삼십 명이 왔어요. 무 한쪽씩 나눠 잡수세요. 무가 없을 때는 콩을 좀 볶아놔요. 그럼 서로 양보해요. 안 잡수시고  콩을 먹되 굵은 콩만 남아요. 이렇게 세상에서 콩을 먹다보면 작고 병든 것만 남는데 분위기가 그런 게 청빈낙도에요.

 

 

 한 3일 동안 이 선생님 가만가만 말씀해요. 모기소리 같이 한데 거기 교장도 오시고 장로도 오시고 모든 양복 입은 사람들이 많이 와 계신데 그래 앉아있는 이야기를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공자님이 비루한 다시 말하면 허술한 막 속에 살면서  옷은 거친 옷을 입고, 자리는 거적이에요. 또 밥을 먹을 때는 밥그릇이 없어서 도사리에 밥을 담아먹고 도토리 같은 것 주워 다가 물은 따뜻한 물마시지 않아요. 찬물을 마셔요. 아 인재라 해요. 인재라 해요. 그 선생님이 제자에 대해 그렇게 존경하고 흠모하는 거예요. 아 어질다 내 제자여. 해라 그거지요. 아 어질도다. 해요 어질도다. 해요. 그런 거적에 자고 떨어진 옷을 입고 움막에 살고 표주박물에 도사리 밥을 먹어도 그는 마음이 평안 하도다. 그는 마음이 평안하도다. 그런데 그 낮은 자리를 고치지 않는다. 한번 자기가 저절로 받아들였으면 권고는 보고 가슴에 안고 놓지를 않아. 이것이 행복이다. 그 가난의 경지가 이것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자리이다. 한번 깨달으면 확 가슴에 안고 놓지를 않는다.  그 공자님 자기 제자를 그렇게 평하지요. 그러니 이제 예수님을 설명하시다가 또 세례요한 설명하시고 그는 들에서 주무시고 꿀이 있으면 조금 따먹고 없으면 굶고 찬물 마시고 그 상황을 또 예수님도 밤에는 방이 없으면 산에 주무시고 새소리 들으시고 기도하시고 찬송 부르시고 사람만나면 복음을 전하시고 배경 설명하시고 안자 설명하시고 고증이지요. 동양역사 그래 따복따복 3일 들었어요. 말씀을 듣는 동안에 학교 다니고 싶은 허욕 출세욕 같은 게 전부 이렇게 그냥 뭐랄까 힘을 못 쓰고 죽어지고요. 그 평안하게 사는 천사의 생활이 흠모됩디다요. 아 사람은 태어나는 것은 평화를 얻고 살 일이지 이렇게 고통당하고 살게 무엇인가? 그런 기적이지요? 영적 기적이 일어났는데 하늘땅이 꽉 거꾸로 변해요. 이렇게, 이렇게 모든 것이 정 반대에요. 그래서 막 천지가 춤을 춰. 해도 웃고 별도 웃고 나무도 웃고  바람 소리도 웃음소리야. 천지 만물이 어떻게 행복 평안해. 참 천지가 이렇게도 참 따뜻하고 아름답고 행복할까? 그래 제가 한번 이야기 했어요. 이 깨달음을 어떻게 표현하면 되나?  재림 예수님이 재림 하셨어요. 그러면 지금 50억 이라니까 일렬로 서야 예수님 만나지요. 저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이 다 예수 앞에 서버리고 돈 없고 짜 잔 하고 거지는 밀리고, 밀리고 제일 약한 사람이 제일 끝에 섰어요. 예수를 만나려고, 천국 문이 딱 열리고 예수님이 어서 들어오십시오. 그럼 제일 부자 돈 많은 사람이 먼저 갈라고 일등 들어갈라 하는데 예수님이 이렇게 여러분, 내 호령대로 하세요. 뒤로 돌아. 예수님이 제일 뒤로 가서 제일 거지 나사로가 일등이야. 제일 땅위에서는 버림당한 사람이야. 자 들어갑시다. 그분 손목을 잡고 천국으로 들어가요. 환상이 보여요. 쭉 그렇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아 가장 못 입고 못 먹고 가난하고 고생하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 표준이 그렇게 잡힙디다요. 가장 잘 먹고 잘 입고 출세하고 높은 자리가 제일 불행하고 제일 지옥이고 낮아지고, 낮아지고 제일로 이렇게 가난해지고 이렇게 고생하고 사는 것이 인생의 행복이다. 그래, 모든 자기의 욕망이 바꿔 집디다요. 그래 찬송을 부릅시다. 찬송을 부르는데 목구멍이 근지러워서 막 웃음이 나오려고 그래서 입을 꽉 막고 참을 수가 없어요. 예수님의 맛을 본 것이지요. 이 성경의 원 뜻은 무엇인가? 예수님 말씀은 전부 그 뜻 아닙니까? 낮아져라. 낮아져라. 겸손해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내 마음을 배워라. 예수를 따라가려면 마음이 따뜻해야 되지. 나는 온유하다. 따스러운 온(溫)자 부드러운 유(柔)자 내게 와서 따뜻하고 부드러움을 배워라. 나는 내 마음이 온유하다. 내 마음을 배워라. 그러면 네 영혼이 쉼을 얻으리라. 허영이 물러가요. 고통이 물러가요. 정신 번민이 물러가요. 나는 겸손하다. 내 마음은 겸손하다. 내 마음을 배워라. 그리하면 네가 안심을 얻으리라. 그래, 그런 말씀을 이 선생님이 고증할 때 안자를 들어 이야기 하니까 딱 알아듣겠어요. 아 그 뜻이다. 그 청빈낙도라는 말이 그 말이야. 깨끗하게 겸손하게 가난할 수만 있다면 깨끗하고 가난 할 수만 있다면 영혼이 거기 즐거운 보화가 있다. 그게 길이야. 거기에 길이 있어. 그렇게 해서 자각했어요. 깨닫게, 열쇠를 틀어쥐었거든요. 제일로 흠모되는 것이 걸인이야. 얻어먹는 사람이 어떻게 부럽고 행복스럽고 좋아보이던지 그래 인제 같은 식구들이 몇 분계시니까 이야기 합니다만 제가 식구 노릇을 못해본 겁니다. 그때부터 마음이 괴로워요. 그 안에 항상 뒤로 쳐져 가지고 자기 소원대로 되어, 다리 밑으로 내려간 겁니다. 어떻게 평안하고 좋은지 지금 생각하면 기적입니다. 뭐 방이 있어요? 요가 있어요? 이불이 있어요? 겨울이나 봄이나 여름이나 땅바닥에 들어눕고 그 부자 집 사람이 방 뜰 때 내버리면 가을에 그러면 기름먹은 종이 습기가 안 올라와. 그걸 열 개나 깔아놓으면 습기 안 올라와. 어찌되었던 그 이 선생님이 지도한 건 그렇게 지도한 겁니다. 

 

 

너 그렇게 하라. 그런 말씀 안 했어요. 본인이 자원하도록 유도만 하시지. 암시만 주시지 그렇게 하라. 명령은 안하시거든요. 그때 벌써 저는 오른손 못써요. 결핵이 여기 관절염이 생겨가지고 왼손 이빨로 물어서 헝겊을 찢어가지고 똥을 그때는 집집마다 똥을 가마니에 싸서 버려요. 그 냇물에 내려가면 광주천에서 전부 똥 닦아놓고 빨아놨다가 말려가지고 그걸 이제 벽지로 만들고 헝겊으로 쩜매(묶어)요. 기둥은 해바라기 대고, 무엇이 있어야지요. 그래 가지고 막을 쳤어요. 그래도 겨울 어떻게 나요? 지혜가 생겨요. 그럼 자동차 바퀴 둥그런 쇠 덩어리 있지 않아요? 그걸 고물상에 쓰레기 주워 다가 딱 엎어놓고 모래를 깔고 지금 생각하면 지엄지설이야. 그때는 연탄 안 때는 때입니다. 광주서 여관집에서 이제 주먹 탄 때요. 그걸 타고남은 찌꺼기 그걸 주워 다가 모아놓으면 불기가 올라와요. 그럼 양철이라 닿아요. 불기가 그럼 사람 조금 앉을 자리만 따뜻해요. 그래 그것이 겨울나는 비밀입니다. 거기가 따뜻하니까 이렇게 발이 얼지 않거든요. 그러면 혼자나 들어갈 수 있는 막인데 밤에 이 선생님이 오시거든요. 그때 이 선생님이 여기 정신, 도립 정신병원 있었지요? 거기서 사실 때인데 그 건물 쓸 때니까 거기서 밤중에 걸어오시면 제 막에 와서 계시거든요.  또 그렇지 아니하면 그때 장로님이 오세요. 그러면 한분이 오시는 거 아니에요. 여러분이, 손님이 오세요. 앉아도 방이 좁아요. 그런데 다행인건 벽장이 늘어나요. 죽 가마니니까 죽 늘어나요. 그럼 밤중에 어떻게 되요? 새벽 네 시 되면 그 백 장로님이 빌딩이라고 항공 빌딩 이라고 3층에서 이 선생님이 예배인도를 하거든요. 그러면 사이렌이 네 시에 부는가, 사이렌 소리를 듣고 거기를 가요. 걸어서 새벽예배 참석하기 위해서 저한테 와서 주무시는 거예요. 밤새도록 잠은 잘 수 없지요. 벽에 앉아있어요. 이렇게 다시 말하면 청빈낙도, 그 배경이야. 뭐 먹을 것이 있을까? 입을 것이 있을까? 그저 그야말로 평안한 거예요. 그럼 그 영웅심 많고 의사되고 싶고 목사 되고 싶고 분수에 지나친 생각을 할 때 정신 고통이 심했지요. 모든 것 포기하고 그냥 걸인들하고 살고 낮아졌으니까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요. 가난하니까 환경이야 땅에 드러누워도 천국이야. 몸에는 병이 들어 죽어가도 천국이야. 이 병을 나서볼까 하는 동기가 안 일어나요. 얼마나 행복해요? 손은 덜렁덜렁하고 고름이 나오고 폐로 이렇게 많이 피해를 받아가지고 열이 나지만 그 자체 영혼이 평안하니까 아무지장을 안 일으킨다고 제가 직접 어떻게 예수를 만나고 있어요. 지도자가 있지요. 자꾸 선생님이 암시를 하는 거예요. 자꾸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이렇게 낮아지는 거다. 세속을 포기하는 거다. 허욕을 포기하는 거다. 무슨 일이든지 이렇게 깨끗하게 사는 거다. 주장을 안 해도 품위가 선생님이 지도를 그 모범을 그렇게 보여주시니까 나는 이 선생 일평생 돈을 손으로 만져보는걸 못 봤어요. 선생님 써보시라고 누가 갖다 드려도 거기 두라고 하시지. 자기 손으로 받지 않아요. 그럼 누구든지 들어오면 먼저 들어오는 사람보고 돈 가져가라. 그러지. 이 누구를 찾아 주지를 않아요. 누구든지 이 선생님 보고 싶어서 와버리면 돈 필요하시면 가져가시오. 저 필요 없어요. 그러면 항상 돈이 있어요. 손님이 하루에 항상 한 30명이 지나가면 필요 있는 사람이 가져가버려요. 아 필요 없어요. 다 나가지요. 그럼 없어졌어. 누군가 가져갔어요. 누가 필요한 사람이 가져갔겠지요? 차 탈 때는 제 3자가 차표를 끊어 줘서. 가셨지. 본인이 가서 돈 주고 차표 사는 일 그런 일 없거든요. 그래 차표를 누가 사주면 가시는 거고 또 차표를 못 사면 하나님이 허락 안 하시는 걸로 알고 안가시지요. 자기가 무리하게 가시는 걸 못 봤거든요. 참 청빈낙도에요. 아무 구애가 없어요. 일평생 부족함도 없으시고 그러나 영혼이 흔들리는 제자들의 영혼이 괴로워 할 때는 같이 밤새도록 고통을 당해요. 영혼이 흔들리면 같이 마음이 괴로워서 식사를 전폐 하시지요. 그런데 아이고 선생님 굶으시고 기도하시니까 속이 잡히지요. 시험이 잡히고 선생님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 마음잡고 살겠습니다. 아 고맙소. 예수님 감사합니다. 그럼 나가지요. 식구가 많으니까 또 다른 사람이 시험이 들어요. 교대로, 그럼 선생님은 일 년 열두 달 시험 드신다고, 일 년 열두 달 고통을 당하신다고 이사람 마음 흔들리면 저사람 마음 잡히고 이사람 마음 잡히면 저사람 흔들리고 그래 고난에 동참해요. 다른 사람을 너는 너고 나는 나다가 아니야. 누구든지 내 몸이야. 그래 사도바울 말씀 같지요. 나는 누가 볼 때는 가장 버림받은 자 같지만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남이 나를 볼 때는 무소유, 소유 없는 것 같지만 나는 천하를 소유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껍질을 보기에 고통을 당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평화가 가득한 분이었지요. 하나님이 주신 은총은 본래 자기 영성은 평화가 가득한 분이에요. 그러나 누가 울면 같이 우시고 누가 시험 들면 같이 시험당하셨어요. 누가 괴로우면 같이 고통당하시고 그러니까 이 사랑으로 하셔 사랑으로 하신다. 그래 이론이 아니다. 신앙의 길은 성경을 배운다. 무슨 요절을 외운다. 그것도 아니야. 그렇게 하지 말자. 그 말 아니에요. 

 

 

사랑이요. 성령이요. 하나님이 같이 동거동락 하는 거예요. 천주의 현존 이야. 하나님은 하늘나라 계시지 않고 우리와 같이 사세요. 예수님은 우리하고 일상생활을 같이해요. 그러면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그때 생활이 이렇게 단식한 것이 아니에요. 일 년 열두 달 단식 분위기에요. 먹을 것이 있을까? 걱정을 할까? 돈을 누가 벌까? 돈이 없다고 걱정을 할까? 자연히 분위기가 좋아요. 자연히 분위기가 가난해요. 그래도 누가 무얼 먹을까? 그런 시험을 안 받았어요. 그래 이 기쁨이 충만하고 평안이 충만하니까 극도의 가난 속에서 그대로 사는 거예요. 제가 인상 깊게 본거에요. 갈보리 산에 게실 때 처음 봤을 때 선생님이 예배 시간이 되면 오실 텐데 해가 졌으니까 어디가 계신가? 계신 데가 없거든. 이렇게 달밤에 보니까 그 소나무 속에 서계세요. 이 날이 차지 않아요? 초봄이던지 늦가을이던지 아 예배시간이 되면 오시겠지. 안 오세요. 나가보면 거기 서계세요. 추운데 소나무 밭 속에서 그런데 이렇게 별이 뜨면 별을 쳐다보는데 한 10분 전에 봤어요. 10분 후에 보면 아직도 고개를 하늘로 두고 서 계세요. 별을 쳐다보고 10분 15분, 초기에 식사하는 걸 못 봤거든요. 손님으로 가서 일주일 있어보면 식사를 한 흔적도 없고 할 시간도 없고 쌀가루만 나중에 보면 널려있어요. 귀퉁이 조금, 어째 되었든지 굶는 것이 그분의 식사였고 잡수시는 것을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조금 드셔. 너무 식구들이 선생님 안 잡수신다고 걱정을 해 싸면 조금 그 냉수에타서 따뜻한 물 아니야. 냉수에 쌀가루 한 수저 타놓고 먹는 시늉하다 보면 그대로 있거든. 물에다 딱 개놓고, 그러면 어떤 분이 그때 와서 봤다고 그래요. 저분이 남 안보면 먹을 테지. 뒤에서 재봐. 쌀가루를 타서 먹는데 그냥 먹은 줄 알았어. 나중에 보면 그게 쉬어있어요. 며칠 안 먹었기 때문에 쉬어버렸어. 벌서 그걸 보고 막 퍽퍽 울고 회개했어요. 아 내가 선생님 불신한 큰 죄인이라고. 그래 선생님이 안 잡수시고 못 잡수시고 떨어지면 안 입으시고. 가난한걸 보고 감화를 받고 모두 위로를 받고 살았지, 언변이나 성경을 아주 통달해서 그렇게 하시지 않았어요. 사신 거예요. 예수님처럼 살아 보이셨어요. 예수님처럼 기쁨과 영이 가득했지요. 평화의 영이 가득했지요. 그러니까 한번 만나 보면 자기 남편이나 자기 식구가 왜 사치안하냐고 매를 때려도 사치를 못했어요. 사치를 안 한 것이 아니에요. 사치를 안해야 마음이 편치 않아. 그런데 지금 그럽디다. 아 나는 옛날 그때 모습이 그립다. 파마하지 않은 그대로 자연스럽게 딱 빗고 그렇게 사는 때가 있었는데 어찌하여 지금은 아니 그래. 지금은요 자연주의 사상이 주장하는데 파마약이 얼마나 독한지 아주 인체에 해롭다고 그래요. 몰라 그렇지. 그걸 늘 했어요. 농약도 많이 쓰면 땅이 나빠지지 않아요? 그럼 독한 약을 파마 했으면 몸이 아주 해롭다고, 우선 위생 때문에 했다고 자연히 또 염색약이 독하다고 합디다요. 여간 인체에 해롭다고 그러니까 왜 사람들이 죽을 짓 하는가 몰라. 그대로 흰머리 그대로 파마안하고 그대로 사는 것이 자연요법 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몇 끼 굶어본 것도 자연요법이지요. 그러니까 자연히 내 몸이 회복하기를 바라요. 다시 말하면 제초제 안하고 파마 안하고 그것도 자연요법이야. 자연히 우리 음식에는 자꾸 많은 약을 했어요. 그랬더니 인제 소위 말하면 제초제 금비 농약 많이 했기 때문에 음식을 먹고 몸에 독이 가득해. 그래 파마해서 파마 약 독이 들어왔어. 그래 이 며칠 굶으면 싹 독이 빠진다고. 근본 치료가 되요. 이 몸이 회생하는 거예요. 회생 청춘회생 다시 젊어져요. 그러니 이 선생님 살아계실 때는 설명은 안 하셨어요. 껍질로 보면 못 먹고 안 먹고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러나 그것은 자연이치야. 가령 토끼나 호랑이나 돼지나 산에 돌아다니면 항상 먹는 것이 아니거든. 먹는 것이 있으면 한 끼 먹고 없으면 굶지 않아요? 가사 산에 사는 모든 동물이 다 그렇지 않아요? 새들이 그렇지 않아요? 날라 다니다가 눈 속에 있으면 먹고 없으면 며칠 굶는 거예요. 자연 생활이지요. 그럼 이 선생님은 분명히 초기에 자연으로 살도록 지도하셨고 명철한 분이 예수님처럼 세례자 요한처럼 살도록 지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느 때 차츰 차츰 현대문명에 눈이 떠져버렸어. 세속을 따라간다고, 그래 우리 몸에는 병이 많지요? 아직 사십 오십 대에 몸이 약해요. 그게 소위 말하면 해독이야. 문명해독이라고, 그럼 지금 참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우연히 자연을 사랑하게 하시고 또 이렇게 밥을 안 먹는 게 더욱 좋다. 냉수 마시면 더욱 좋다. 그런 쪽으로 계몽을 해 주세요. 알고 보니 고향이야. 옛 고향을 찾았어요. 옛 고향, 가사 인간적으로 감사합니다. 장로님 오시고 다 걱정하세요. 나이가 80 이신데 그 분은 안 된다. 저보고 충고하라고 하세요. 찾아와서 장로님은 안 되어요. 안 돼. 그런데 제가 말씀했어요. 우리는 지금 단식을 조금 해볼 기회를 가지려고 하는데 아 나도 해 본다. 그래 차라리 장로님 안하셔야 할 텐데, 그냥 앞서버리지요. 그리고 모범을 딱 보여 버리시니까 힘이 든든해 가지고요. 어떻게 평안한지, 그래 나 장로님 나오시라는 거예요. 말씀 안 하신다. 그게 참 말이지요. 말씀 안 하시는 게 참말인데 얼굴이라도 보여줘야 든든하지 않아요? 든든해요. 그래 제 말은 제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굶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주님이 주신 축복인가? 크신 은총인가? 이것이 벌을 받아가지고 죄가 있어서 감옥에 갇혔다면 통곡할 일이지요. 하나님의 아들딸이 자유를 찾아서 예수님 품에 앉아있는 거예요. 안 먹어도 먹고 싶지가 않아. 아무것도 안 먹어도 이렇게 평안한데 우리가 괜히 나댔다고, 저부터 안 먹으면 죽을 줄 알고 얼마나 주워 먹었나 항상 배가 아프니까요. 세 때를 먹으려면 그런 지옥이 없어요. 배가 좀 평안하면 또 먹고 평안하면 또 먹고. 먹으면 산다니까 안 먹어도 산다는 것이 지금 이야기가 아니거든. 이 선생님 처음에 만났을 때 첫날부터 안 먹는 훈련했는데 왜 그걸 버렸냐? 그거에요. 지금 요즘 그걸 말하는 거예요. 세례요한을 보나 예수님을 보나 자연생활 했는데 이 현필 씨를 보나 다 자연생활 했는데 우리는 어째 그렇게 현대문명에 도취되어가지고 현대문명에 따라가다 보니까, 이제는 우리에게 반성을 
(끊김)
 이제는  우리에게 반성을 축구해요. 첫사랑을 보여주라 그거에요. 첫사랑을 회복하라.  
(끊김)

 


 명령한 일 없거든. 그런데 이것은 먹는 잔치가 아니잖아요? 일 년 전에 우리가 굶자. 모두 이해도 안 되고요. 이해가 되었다 해도 안 되어요. 그래 이렇게 우연히 되고 자연히 되었지, 억지로 된 일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신 손님마다 다 굶네. 다 기뻐하세요. 불평이 없어요. 우리가 밥 먹고 있으면 손님 밥 안주면 얼마나 실망하고 가실까? 많이 절망할 거예요. 그래서 이 참 성스러운 주님의 축복을 참 우리만 나누기는 참말로 부끄러워요. 참, 안 먹으면 이렇게 행복하고 모든 걸 잠깐 쉬지 않아요. 하루라도 모든 걸 놓고 관상을 하던지 기도를 하던지 오해할까봐 이야기 합니다만 요가를 우리말로 하면 기도라는 뜻이고 그 외국말 이지요. 요가는 우리말로 하면 신인일치다. 하나님과 내가 하나 되는 것이다. 그 관상, 관상한다는 뜻이고 그래 보일시 호상 홀로 남는 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나와 홀로 남는 거 그게 서로의 경지는 하나님을 만나는 거예요. 요가의 경지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관상은 예수님을 만나는 거예요. 예수님과 내가 하나 되는 거, 요가라는 말이 세속의 말은 요가이다. 그 우리가 깨달았어. 그러면 몸이 앉아서 울고 열시고 스무 시고 앉아도 괜찮아요. 피가 안통하면 나중에 돌아오지요.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이거 영구적으로 일생을 하려면 몸이 흐느적거려. 자연적으로, 모든 새가 날라 가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하라. 굶더라도 몸을 흔들라고 조였다 늦췄다 자꾸 몸을 흔들어줌으로 피가 잘 통하면 정신이 깨끗하지 않냐? 이 독소 먹는 것에 독이 들어있는데 농약 그걸 안 먹으면 몸이 해방을 받고 몸이 축적된 쓰레기가 나가버리고 그래 자꾸 냉수를 마시라고, 냉수를 될 수 있으면 한 되 이상 자시라고 그래요. 그러면 속에 있는 찌꺼기를 내보내지 않아요? 바깥으로 영혼도 육체도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래, 요가 한다는 뜻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만난다는 뜻으로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지금 여기도 운동하십니다. 테이프 틀어놓고 배운 대로 하십시다. 그럼 찬송 부르시고 마치겠습니다. 
‘오, 예수님 온유하고 겸손하게 하시니’ 

 

 

 

 

'울금농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울금밭 한바퀴  (0) 2022.10.23
오일째 울금 캐기 : 나는 참 포도나무  (0) 2021.12.05
울금 캐는 날 : 이발소 부인 이야기  (0) 2021.11.29
울금 수확 시작  (0) 2020.11.19
울금 단풍 들다  (0) 2020.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