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농사

보리 수확 : 압살롬의 모반

mamuli0 2019. 6. 22. 14:54

 하지 전날 보리 수확을 마쳤다. 농기계의 발달로 쓰러진 보리를 무사히 수확 할 수 있었다. 비파와 살구 자두 보리수가 익어 사람과 새들에게도 풍요롭다. 호박도 매일 다르게 넝쿨이 벋어나간다. 불청객 꿀벌들에게 소초광을 넣어 주었다.가장 년중 해가 길다는 하지, 이제 뜨거운 여름이 열매의 계절로 들어섰다.


 


 압살롬의 모반


1983. 07. 01.  김준호 선생


 압살롬이 모반하여 다윗이 도피하다. 라는 제목입니다. 그러면서 4년이 지난 어느 날 압살롬은 왕에게 이렇게 청을 올렸다. 소자는 일찍이 야훼께 서원한 바가 있습니다. 이제 그 서원을 이루게 헤브론으로 보내 주십시오. 소자가 아람의 그술에 있을 때 만일 야훼께서 저를 예루살렘으로 무사히 돌아가게만 해주신다면 헤브론에 가서 야훼께 예배를 드리겠다고 서원한 일이 있었습니다. 왕이 그에게 말하였다. 그럼 잘 다녀오너라. 그리하여 압살롬은 길을 떠나 헤브론으로 갔다. 한편 압살롬은 이스라엘 모든 족속에 첩자들을 보내어 나팔소리를 신호로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고 외치도록 일러두었다. 그때 압살롬의 청을 받고 예루살렘에서 헤브론으로 같이 내려간 사람이 200명이 있었다. 그들은 아무 영문도 모르고 따라갔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아무런 허물이 없었다.


 


실로 사람으로 다윗의 고문이 된 사람이 있었다. 이름은 아히도벨이었다. 그가 고향에 가서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을 압살롬이 불렀다. 압살롬을 따르는 무리의 수가 불어나면서 반란세력이 커져갔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민심이 압살롬에게로 기울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윗은 예루살렘에 있는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당장 여기에서 빠져나가자 머뭇거리다가는 압살롬의 손에서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가 달려들면 우리만 참변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성에 남은 백성들까지 해를 입을 터이니 어서 서둘러라. 하나님의 계약 궤를 멘 레위인 가운데서 사독도 있었다. 그들은 온 백성이 성에서 나와 개울을 건너기를 기다리자 기다리느라고 하나님의 괘를 아비아달 앞에 내려놓고 있었다. 왕이 사독에게 일렀다. 하나님의 괘를 다시 성안으로 모시도록 하오. 만일 내가 야훼께 은혜를 입는다면 다시 돌아와 제 자리에 놓이신 이 괘를 보지 않겠소.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싶지 하지 않으신다면 어떤 처분을 내시던지 받아야지요.


 


왕은 다시 사독을 다시 찾으셨다. 그대는 아비아달과 함께 성으로 돌아가시오. 부디 무사히 들아 가기를 바라오. 그대의 아들 아히마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도 데리고 가시오. 나는 그대들이 소실을 보내올 때까지 광야 나루터에서 기다리겠소. 그래서 사독과 아비아달은 하나님의 괘를 모시고 예루살렘에 돌아가 거기 머물러 있게 되었다. 다윗은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맨발로 올리브산 등성이를 걸어 올라갔다. 백성들도 모두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뒤 따라갔다. 다윗 왕이 그곳에 다다랐을 때였다. 사울의 친척 하나가 거기에서 나오면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게라의 아들로서 이름은 시므이였다. 그는 왕과 신하들 그리고 좌우에 모시고 선 군인들과 장교들에게 마구 돌팔매질을 하면 이런 말로 다윗을 욕하는 것이었다.


 


꺼져라. 이 살인자야 꺼져라. 이 불한당 같은 놈아 사울의 일족을 죽이고 나라를 빼앗은 놈, 그 원수를 갚으시려고 이제 야훼께서 이 나라를 네 손에서 빼앗아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신 것이다. 이 살인자야 네가 이제 죄 없는 사람 죽인 죄를 받은 줄이나 알아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보다 못해 왕에게 아뢰었다. 이 죽은 개만도 못한 놈이 무엄하게도 임금님을 욕하는데 그냥 내버려 두십니까? 제가 당장 건너가 목을 자르겠습니다. 내가 욕을 보는데 그대 스루야의 후손들에게 후손들한테야 무슨 상관이 있소? 야훼께서 나를 욕하라고 저 사람을 보내신 것이라면 내가 어찌 감히 왜 이러시냐고 하겠소? 이렇게 말하고 나서 다윗왕은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나의 핏줄에서 태어난 친 자식마저 나를 죽이려고 날뛰는 판에 베냐민 사람이야 더 말해 무얼 하겠소? 야훼께서 시키신 일이니 욕하게 그냥 내버려두시오. 혹시 야훼께서 내가 당하는 이 비참함을 보시고 오늘 받은 이 저주 대신에 복을 내려주실지 알겠소? 다윗이 일행을 거느리고 걸음을 옮기는데 시므이는 다윗이 가는 길을 따라 산등성이를 타고 오면서 먼지를 일으키고 돌을 던지며 대놓고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이 말씀 다들 아시는 말씀이지요? 그 사랑하는 친 자식이 아버지 임금의 왕위를 빼앗기 위해서 반란을 일으켰던 그때 설상가상으로 자식은 왕위를 빼앗기 위해서 군대를 거느리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전쟁을 시작했는데 내빼는 그 마당에 또 자기 선왕의 친족 사울의 친족이지요. 옛 임금의 친족들이 도망가는 다윗에게 저주를 하는 거지요. 이리가도 저리가도 얼마나  참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그런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 우리라면 다윗은 어떻게 했을까? 사울의 친척 하나가 거기에서 나오면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게라의 아들로서 이름은 시므이였다. 그는 왕과 신하들 그리고 좌우에 모시고 선 군인과 장교들에게 마구 돌팔매질을 하여 이런 말로 다윗을 욕하는 것이었다. 사울이 자기 친척이니까 사울 자기 친척이 망하고 다윗이 빼앗은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분해서 욕을 하겠지요.


 


꺼져라. 이 살인자야 꺼져라. 이 불한당 같은 놈아 사울 일족을 죽이고 나라를 빼앗은 놈아 그 원수를 갚으시려고 이제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네 손에서 빼앗아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신 것이다. 이 살인자야 네가 이제 죄 없는 사람 죽인 죄를 받은 줄이나 알아라. 그러니까 참 땅땅 거리고 그 욕을 할 때 빈틈없지 않아요? 그때 임금 다윗은 조금치도 그 말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않은 점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야훼께서 나를 욕하라고 저 사람을 보낸 것이라면 내가 어찌 감히 왜 이러시냐고 하겠소? 그렇게 말했어요. 저 사람이 내게 욕하는 것이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것이라면 내가 하나님 왜 나한테 욕하시고 그렇게 말 할 수 있겠느냐? 그 말씀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우리들은 무슨 말을 누구한테 들으면 하나님이 말씀 하신다는 말 하지 않고 그 사람이 말하는 줄 알고 오해하고 섭섭하게 생각하지요. 그 점을 우리가 배워야지요.


 


다윗의 그 마음을 우리가 배워야겠습니다. 야훼께서 나를 욕하라고 저 사람을 보낸 것이라면 내가 어찌 감히 왜 이러시냐고 하겠소? 자 나의 핏줄 내 자식도 나를 죽이려고 하는 세상인데 나의 핏줄 나에게서 태어난 내 친 자식마저 나를 죽이려고 날뛰는 이 판에 베냐민 사람이야. 사울의 친척이 분해서 그러는 것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소?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이니 욕하게 그냥 내버려 두시오. 자기는 친 자식한테 버림당해서 쫓겨 가는 신세 또 내빼는 순간에 원수가 나타나서 욕하는 그 판에 그 말이야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이니 욕하게 그냥 내버려두시오. 혹시 하나님께서 내가 당하는 이 비참한 꼴을 보시고 오늘 받은 이 저주 대신에 복을 내려 주실지 알겠소? 조금이라도 저 욕이 내게 억울하다면 하나님이 복으로 갚아 주실 테니 감사하지 않냐?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런 점을 우리가 언제나 배워서 우리 것이 되려는지 그런 말씀을 보고 우리가 그런 마음을 품게 될 때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준수성범 3권 50장 180페이지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당신이 내게 죄악을 아끼지 않으시고 고통을 끼치시며 안팎으로 근심을 보내시어 매운 매로 나를 부서트렸사오니 감사하나이다. 다윗의 심정이 그것 아니에요. 당신이 내 죄악을 아끼지 않으시고 고통을 끼치시며 안팎으로 근심을 보내시어 매운 매로 나를 부서트렸사오니 감사하나이다. 안과 밖으로 근심을 보내시어 매운 매로 나를 때리신다. 그러니까 감사하다고 그랬어요. 감사합니다. 저의 하나님 영혼을 낫게 하시는 의사이신 아버지 그 왜 그렇게 매를 때리실까요? 영혼을 낫게 하시려고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교만 병을 고치시려고 고집 병을 고치시려고 그러지 않아요? 편협한 마음을 고치시려고 고집스러운 마음을 꺾으시려고 저의 하나님 영혼을 낫게 하시는 천상적 의사이신 아버지 하늘밑에 있는 그 모든 것이 모든 사람 중에서 아무도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나이다.


 


하나님께 매를 맞고 있는 시간인데 사람한테 위로를 받을 수 있겠어요? 하나님의 용서해 주심을 기다려야지요. 당신은 나를 때리시고 또 나를 낫게 하시며 지하로 끌어내리시기도 하시고 다시 끌려 올리시기도 하시나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나를 벌하시면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시고 위로할 사람은 하나님이시지 사람에게 위로를 받을 길은 없다. 하나님이 용서 하실 때에 위로가 있는 것이지 사람이 위로한다고 위로가 있겠습니까? 젊은 날의 자기 본성 자기 학문 자기 종교에 집착하던 바울 그때는 사울이지요. 내가 제일 잘 믿는다. 이렇게 내가 제일 잘 믿는다. 그 마음이 꽉 들어차있는 그때 예수님의 이야기만 들어도 미워하던 사람 예수님이 그 이랬다 저랬다 하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미워 죽겠는지 예수님이 옆에 있으면 주먹으로 때리고 싶고 죽이고 싶었겠지요? 그것이 자기 종교에 집착한 것이지요. 내가 제일 잘 믿는다. 앞이 캄캄하니 아무것도 안보여요.


 


또 예수님을 믿고 자랑하던 스데반을 돌로 때릴 때 예수님 자랑한다고 스데반을 때려 스데반이 돌로 맞아 죽을 때에 옷을 지켜주며 때려라, 때려라, 때려라. 하고 지휘하던 사람이야. 불쌍한 스데반을 사울이 죽였지요. 심부름꾼에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그러나 예수님의 은총에 녹아난 후에는 사람이 열두 번 된다는 말도 있지만 예수님을 그렇게 미워하는 사람인데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난 다음에는 내 자랑은 예수님의 십자가뿐입니다. 그런 말을 했지요. 고린도전서 2장 2절로 3절 내 자랑은 예수님의 십자가뿐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래요. 지금은 고집스럽고 교만해도 예수님의 은총에 녹아나면 사람이 아주 180도로 딴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감사할 수 있어요. 누가 욕하면 어떻게 감사한지 욕한 사람이 밉지 않아요. 감사할 수 있어요.


 


고린도 전서 2장 2절로 3절 읽으십시오. 그것은 내가 여러분과 함께 지내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 특히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자랑은 무엇이냐?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어요. 그 자랑은 오직 십자가의 뜻, 나는 십자가를 자랑 하렵니다. 그랬는데 십자가의 뜻은 무엇일까? 고린도후서 12장 7절로 8절 말씀, 곧 약한 것 능욕 받는 것 궁핍한 것 핍박받는 것 고난당하는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읽으십시오. 7절로 8절 내 자랑은 죄인의 십자가 뿐 그 자랑 그 십자가의 뜻은 곧 약한 것 능욕 궁핍 핍박 고난 이라고 하였습니다. 읽으세요.


 


 네가 굉장한 계시를 받았다 해서 잔뜩 교만해 질까봐 하나님께서 네 몸에 가시로 찌르는 것 같은 병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서 나를 줄 곳 괴롭혀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교만에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고통이 내게서 떠나게 해주시기를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이미 내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들어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게 머물게 되도록 기쁜 마음으로 나의 약점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약해지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며 모욕과 빈곤과 박해와 곤궁을 달게 받습니다.


 


 자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옛날에는 자기가 예수님을 때리고 스데반을 때렸지요. 그런데 이제는 뚜드려 맞는 것이 감사에요. 거꾸로, 약한 사람이 되어가지고 누가 나를 때리면 감사  나를 발로 차고 능욕하면 감사 또 내 재산을 빼앗아 가버리고 굶으면 감사 또 나를 칭찬하기 전에 핍박하면 감사하고 내가 편히 살자면 고생함에 감사하고 이렇게 내 마음은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십자가라는 뜻이야. 십자가는 무엇인가 나는 십자가를 자랑하겠습니다.  십자가는 약해지는 것 능욕을 받는 것 궁핍 하는 것 핍박받는 것 고난을 당하는 것이 십자가지요. 죽음이 십자가 아니겠어요? 죽음 내가 죽게 된 것이 십자가 아니겠습니까? 내가 죽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왜 내가 예수님 미워하고 스데반을 때릴 때 같이 공모하고 지휘하던 사람이니까 이제는 내가 맞을 때 감사해요. 그게 하나님의 사랑이니까 다윗도 그러지 않습니까?


 


자기가 사울에게 쫓겨 가는 것도 물론 임금이 되신 다음 사울에게서 빼앗은 것은 아니겠지만 그 사울의 친척들이 오해한 것도 이해를 해요. 사울이라는 임금이 왕위를 다윗한테 빼앗겼다. 그래서 그쪽에서는 욕 하겠지요. 그것도 다 이해가 되고 자기를 아무리 욕해도 달게 받는다. 그것이 십자가 아니겠습니까? 그게 십자가를 달게 받는 것이지요. 자 그러면 우리 우리들 우리들은 어떤 사람인가? 주님 제게도 자기 혈기 자기정욕 자기탐심 자기에 집착하던 때 그 얼마나 그와 똑같은 죄를 범했던 것입니까 누가 살인하던 사람이 있으면 미워지고 누가 간음한 사람이 있으면 미워지고 누가 도적한 사람이 있으면 미워지고 누가 분당한 사람 분열한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미워했을 것입니까? 그것이 본성 사람의 마음은 본성이 그런 것이지요. 누가 죄를 지으면 불쌍히 봐야할 처지임에도 미워지는 것은 왜 그럴까? 사울의 친척이 다윗이 아들한테 쫓겨 가니까 불쌍히 볼 것이 아니고 미워질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있는 심정이에요.


 


아 임금이 쫓겨 가니까 그 참 불쌍하다. 이렇게 볼만한대도 미워 욕을 해. 그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본성입니다. 누가 못되면 불쌍하게 보는 것이 아니고 더 흉을 봐. 그러나 주님께서 차차 제 눈을 여시고 은혜로 제 마음을 여시고 조금씩 은총의 빛을 비춰주시던 그 날에는 그 미워하던 죄가 그 허물이 바로 내 가슴속에 숨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얼마나 부끄러워했었습니까? 예수를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고 보면 아이고 내가 참 죄인이다. 모든 죄가 바로 내가 그렇게 살았구나. 내가 참 죄를 지었구나 하는 그러니까 자기 마음에 새로운 하늘땅이 열리지요. 나만 잘못했고 나만 죄지었고 저 사람은 아무 죄가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모든 판단이 거꾸로 판단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죄인이 바로 저입니다. 누가 죄 지었다면 제가 그 죄를 지었습니다. 내게 붙여서 깜짝 놀라고 눈물이 나지,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은 참 불쌍한 사람이다. 용서하시옵소서.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자비의 은총을 내려주시옵소서. 불쌍히 봐주시옵소서. 벼락을 때려 주십시오. 그러던 시절이 있었지만 아이고 벼락은 내가 맞아야 할 텐데 행여 라도 불쌍히 봐주십시오. 그렇게 심정이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제 영혼이 주님의 자비의 은총을 받은 그 날에는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형제들을 불쌍히 보고 축복하고 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어떠한 얌전 지식 학문 무슨 좋은 마음씨로 그렇게 잘못한 사람을 불쌍히 봐지지 않습니다. 본성이 회개를 하고 예수님께서 새 마음을 주신 다음에야 은혜를 받은 다음부터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령을 받은 후에야 죄 지은 사람이 불쌍히 봐지고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과 자비와 평안을 내리시옵소서. 그렇습니다. 똑같이 밤중에 있었으므로 동질성 본성이 공명이 되어 이 말씀은 저도 모르는 말씀인데 동질성이다. 이 이거 보시오. 여기 안경테가 둘이 있지요? 이거 동질성이야. 이거하고 이거하고는 똑같아요. 여기다 유리컵을 두 개 똑같이 두고요. 때리기는 한쪽을 때려요. 탁 때리면 안 때린 놈까지 띵 울리는 것 그것이 공명인데 때리기는 여기를 때렸는데 여기 있는 놈이 뎅 울리는 것이 함께 울린다. 하는 것이 공명이에요. 왜 그러냐하면 모양도 같고 이 테두리도 같고 모든 형편이 똑같으니까 하나만 때리면 옆에 놈이 같이 울어버린다는 그런 물리의 원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누구를 때렸다. 그러면 왜 미워지냐? 나도 때릴 사람이니까 내가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하고 나하고 마음이 똑같기 때문에 저 사람이 죄를 지으면 나도 저 사람하고 똑같이 죄를 지을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 마음이 끌려가지고 같이 미워하는 겁니다. 똑같은 사람이다. 그 말입니다. 누가 죄 지었다면 미워지는 것은 내가 그 죄인이라는 뜻이 그 속에 함축되어 있어요. 나와 똑같은 죄인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 동질성 본성이 공명이 되어 똑같은 사람이니까 똑같이 그런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누가 죽였다. 그러면 괜히 미워지는 것은 나도 사람을 죽일 사람이라는 그 말입니다. 남의 혈기에 맞장구치고 성은 저 사람이 내는데 나고 그냥 화를 내고 그러지 않아요. 똑같은 사람이 되지요 남의 정욕에 미움이 발동하고 미움이 정비례되고 남의 탐심에 죄지을 때 미워지고 누가 욕심냈다. 그러면 괜히 미워지는 건 나도 욕심이 나서 그런 것이라고요.


 


또 남이 분열의 이해관계가 되어 그냥 질시를 해. 욕을 하고 싫어하고 미워하고 분히 생각해 누가 조금 그런 것이 다 똑같은 사람이 아니냐? 그것을 정리한 것입니다. 남의 흉을 보는 사람이 자기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주님 은총을 내리시옵소서. 제게 주님의 은총이 내리는 날에는 주님과 똑같이 불쌍히 보고 그러니까 예수님과 마음이 똑같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그러면 괜히 죄 지은사람을 보면 눈물이 나고 기도가 되고 불쌍하게 봐지는 것, 왜 예수와 똑같으니까 예수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제게도 은총을 내리신 후에는 주님과 똑같이 공명을 해 예수님과 성질이 같아지니까 불쌍히 보고 저들이 몰라서 그럽니다. 아버지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빌 수 있게 되겠나이다. 그런 말씀 언제든지 우리가 예수님의 성령을 받아야 모든 세상 사람을 보고 기도하고 불쌍히 볼 수 있는 자비심을 얻는 것이다.


 


예수님의 성령을 받기 전에는 똑같은 사람, 누가 죄를 지었던지 같이 죄인인 것을 깨달아 똑같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겸손해 져야겠다. 똑같은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살아야하겠다. 그 말씀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내 죄악을 아끼지 않으시고 고통을 끼치시며 안팎으로 근심을 보내시고 매운 매로 나를 부서트렸사오니 감사합니다.  자 뒤에서는 사울의 친척이 막 욕하고 쫓아오지요. 또 앞에서는 압살롬이 아들놈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막 찾고 다니지요. 어디 가서 숨을 데도 없지 않아요? 그 마당에 자기가 깨져버린다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고 이것은 사람이 나를 그러지 않아 바로 하나님께서 그러신다.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거에요. 내 아들이 나를 미워한다. 그러면 얼마나 분하겠소? 하나님께서 내 아들을 시켜 나를 이렇게 배반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왜 내가 아들같이 살던 놈이니까 옛날에는, 나도 우리 압살롬같이 나쁜 놈 나쁜 시절을 내가 겪었으니까 내 아들이 내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렇게 그런 마음씨를 갖은 사람은 은혜 받은 사람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욕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런다고 받아들이는 것 하나님이 나를 매 때리신다. 그렇게 당신이 내 죄악을 아끼지 않으시고 고통을 끼치시며 안팎으로 근심을 보내시어 매운 매로 나를 부서트렸사오니 감사 (끊김)


 


시편 84편 만군의 야훼여 계시는 곳 그 얼마나 좋으신가? 야훼의 성전 뜰 안을 그리워하여 내 영혼이 애타다가 지치옵니다. 나의 마음 나의 이 몸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쁜 소리 지르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야훼여 당신의 제단 곁에는 참새도 깃들이고 제비도 새끼 칠 보금자리 얻었사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사람 복되오니 기리기리 당신을 찬미 하옵니다. 최 민순 신부님 번역으로 읽어보면 만군의 주님이여 계시는 곳 그 얼마나 사랑하오신고, 그 안이 그리워 내 영혼 애태우다 지치나이다. 내 마음 이 살이 생명이신 하나님 앞에 뛰노나이다. 이 선생님이 항상 이 몸둥어리를 살이라 했는데 살 육신을 살이라고 번역했어요. 육신의 뜻대로 살지 마라. 살의 뜻대로 살지 마라. 그 번역을 참 잘했군요. 이 마음 이 사리 생명이신 하나님 앞에 뛰노나이다. 지금 공동번역에는 이 마음 나의 이 몸이 나의 마음 나의 이 몸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쁜 소리 지르옵니다. 그 번역인데 이 마음 이 살이 생명이신 하나님 앞에 뛰노나이다.


 


그전에 유 선생님 그 말씀 잘하셔 내 영혼이 살 속에 빠졌다. 그런 말씀 잘하셔. 육신대로 산다는 말을 육신의 소욕대로 산다는 말을 내 영혼이 살 속에 빠져 신음합니다. 얼마나 좋아요? 육신이라는 말 보다는 살이라고, 사람이 살 욕심 때문에 죄를 많이 짓지 않아요? 만군의 주님이여 계시는 곳 그 얼마나 사랑하오신고 내 안이 그리워 하나님 계신 곳이 내 안이라고 내 안 안집 내 안방 그 안이 그리워 내 영혼 애태우다 지치나이다. 여기 이 세상은 바깥이고 하늘나라는 내 안이라고 안집이야. 하나님이 계신 곳이 안방이지요. 계시는 곳 그 얼마나 사랑하오신고, 그 안이 그리워 내 영혼 애태우다 지치나이다. 이 마음 이 살이 생명이신 하나님 앞에 뛰노나이다. 참새도 집이 있고 제비도 새끼 두는 둥지가 있아와도 내게는 당신의 제단이 있나이다. 만군의 주시여 내 임금 하나님이시여 주여 당신 집에 사는 이는 복되오니 기리기리 당신을 찬미하오리이다. 내게는 당신의 제단이 있나이다. 얼마나 복 될까요? 혼자 골방에 앉아서도 자기 가슴에 예수님이 계신다면 얼마나 복 되요? 내게는 당신의 제단이 있나이다. 그럼 제단이 없는 마음같이 얼마나 쓸쓸하겠소? 쓸쓸할까요? 만일 마음속에 제단이 없다면 얼마나 쓸쓸할까요?


 


그런데 산에 사나, 들에 사나, 논두렁 밑에 살더라도 제단 있는 곳이 천국 아니겠습니까? 제단 길거리에 얻어먹고 남의 집 일을 하고 품팔이를 해도 가슴속에 예수님이 계신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어? 내게는 당신의 제단이 있나이다. 참새도 집이 있고 제비도 새끼 두는 둥지가 있사와도 내게는 당신의 제단이 있나이다. 한번 따라 읽어 주실까요? 만군의 주님이여 계시는 곳 그 얼마나 사랑하오신고 그 안이 그리워 내 영혼 애태우다 지치나이다. 이 마음 이 살이 생명이신 하나님 앞에 뛰노나이다. 참새도 집이 있고 제비도 새끼를 기르는 둥지가 있사와도 내게는 당신의 제단이 있나이다. 만군의 주시여 내 임금 하나님이시여 주여 당신 집에 사는 이는 복되오니 기리기리 당신을 찬미하오리이다. 이 깊은 산속에 살면서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하루도 못 살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저는 여기 이런 말을 하나 적었습니다.  


 


 ‘주님 이곳은 지지리의 깊은 산골짜기입니다. 지금은 한낮이 기울어졌습니다. 집 모퉁이를 흐르는 물은 무어라고 말을 하고 흐릅니다. 물은 쉬지 않고 말을 하고 흘러갑니다. 터질듯 푸르른 칠월의 나무 숲속에서는 새들과 매미들이 노래합니다. 너무나도 화려하게 차려입은 이름 모를 나비가 날라 왔다 갔습니다. 욕심이 동하여 하마터면 잡을 뻔 했습니다. 주님 용서하시옵소서. 시냇가에 서있는 자생한 목련 한그루 오월 유월이 다 가도록 날마다 피어난 목련꽃은 홀로 보기에는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은은한 향기를 풍기며 백옥같이 희 꽃잎 속에서 보름달의 후광인 듯 내다보는 꽃술들 그러나 먼데서 보면 넓은 잎새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것이 어쩌면 그 옛날의 어느 은수녀의 자태인 듯 신비한 영감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여기 지지리 라는 뜻은 공자님 말씀에 군자는 그칠 줄을 안다. 무슨 일을 하다가 그칠 줄을 안다. 그랬는데 옛날에 군자들이 여기 와서 피신한 곳이어서 나라에서 관리직으로 있다가 깊은 산으로 와서 숨어서 살던 곳이라고 그래요.


 


그런 뜻으로 여기가 지지리 인데 그칠 줄을 아는 곳이다. 그칠 줄을 안 다음에 능히 생각을 하고 능히 생각을 한 다음에는 능히 고요해진다. 그런 말씀이 있어요. 깊은 산속에 와서 깊이 생각을 하고 그러면 마음이 조용해지지요. 그칠 줄을 안 다음에 능히 생각을 하고 생각을 능히 한 다음에는 능히 고요해진다. 그래 하나님은 고요한 가운데 오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고요함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런 산골이 좋지요. 어찌되었든지 지금 이 시를 부르는 분은 그 예수님 계신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나님 계신 곳에 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나님 모시고 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가? 예수님 사랑하면서 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가? 그것을 노래했어요. 하나님 계시는 곳 주님 계시는 곳 그 얼마나 사랑하오신고? 그 예수님이 계신 방 예수님이 앉아계신 그 방이 그리워 내 영혼이 애태우다 지치나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계신 방이 어디 있을까요? 그건 내 영혼이지요.


 


내 마음 이 마음 이 살이 생명이신 하나님 앞에 뛰노나이다. 이 마음이 기쁘고 내 육신이 기쁘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뛰어 논다고 했거든요.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곳이 바로 거기가 천국이지요. 여기 1절에 이것도 시편 34편 18절인데 최 민수 신부님이 번역한 말씀이 이렇게 되어있어요. 마음이 부서지기를 주는 가까이 하시고 넋이 꺾인 이들을 구하시는 도다. 구하시도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받으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그런 말씀도 있지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통회하는 마음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꼭 그쪽으로만 마음을 좋게 하시는 것 같아.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것이 어떤 뜻으로는 눈물 흘리고 통회 할 때만 하나님이 보시기 아름다우신가 보지요. 사람 본래가 그런가 봐요. 사람이 잘한다할 때는 교만하고 보기 싫고 사람이 잘 못했습니다하고 뉘우치고 눈물을 흘릴 때는 아름답고 그렇게 생긴 것이 사람인가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뉘우치는 사람을 하나님은 가까이 하시고 또 기꺼이 가까이 하시고 넋이 꺾인 이들을 구하시는 도다. 넋이 꺾인다. 넋 나갔다. 혼이 빠졌다. 정신 빠졌다. 정신이 나가버렸다. 넋이 꺾인 사람들을 하나님이 불쌍히 보시고 구해주신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의 신앙을 가만히 들여다봐도 자기가 똑똑할 때는 하나님이 멀리하시고 자기가 참 넋이 꺾였다할 만큼 정신이 부셔졌다. 할 만큼 완전히 자기가 무너진 사람을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성령을 주신다는 말씀을 우리는 들어볼 수 있지요. 그 말씀이 참 옳아요. 왜 그러실까? 하나님은 살아계시니까 그렇지요. 사랑이 없으면 잘못하면 미워하실 텐데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 잘못한 자식을 그렇게 사랑하시고 구해주시는 것 얼마나 좋아요? 여기 이런 말씀 하나 있습디다. 주님은 당신 땅을 강복하셨고 당신 백성의 잘못을 용서하셨도다. 예수님의 땅 어디 있을까? 그 말이에요.


 


예수님은 어디가 서계실까? 자기 땅을 복을 주신다고 그러는데 자기 땅은 어디 있을까? 당신 백성의 잘못을 용서하셨도다. 용서 하실 수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님이 계셔. 잘못한 사람이 있을 때 예수님이 옆에 있지 잘하는 사람만 있으면 예수님이 서 계실 데가 없는가 봐요. 어디가 서계실까? 예수님은 뭐하고 계실까? 그러니까 예수님의 땅은 어디냐? 당신 백성의 잘못을 용서하신다. 용서 하실 수 있는 사람 마음 옆에 예수님이 계신다. 막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하는 사람 옆에는 예수님이 안계세요.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 옆에 예수님이 와계시고 그 마음을 복을 주신다. 그 땅을 복을 주신다. 그런 말씀이 있어요. 당신 백성 잘못을 용서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어주셨나이다. 85편 2절 말씀인데 시편 85편 2절 찾아보십시오. 이렇게 안 되었을 거예요. 당신 백성 잘못을 용서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어주셨나이다. 읽어보십시오. 당신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시며 저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셨으니 그만큼 이것은 최 민수 신부님은 이렇게 번역했어요.


 


당신 백성 잘못을 용서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어주셨나이다. 얼마나 사랑이 많으시면 모든 죄를 덮어주셨다. 얼마나 좋아요? 사람은 죄가 하나뿐일까요? 죄가 많이 있기 때문에 셀 수가 없지요? 모든 죄를 덮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주님은 백성의 죄를 사하시고 저의 모든 죄를 덮어주셨나이다. 그렇게 번역하는 것도 좋군요. 자 일전에 한번 말씀 했지요. 사람의 죄는 얼마나 많이 있는가? 머리카락보다 많다. 그랬지요? 주여 자비하심을 내게서 멀리하지 마시고 그 사랑 그 진실하심이 언제나 나를 지키게 하소서. 이루다 셀 수없는 불행이 나를 둘러싸고 머리칼보다 많은 죄악에 이 몸이 사로잡혀 이렇게 마음이 겸손해지고 자기 죄를 자복할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해요? 복 있는 영혼이에요. 내 죄는 머리칼보다 많이 있습니다. 이런 말은 무슨 어떠한 무슨 신자라고 그랬는데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얼마나 좋아요? 성경이 머리칼보다 많은 죄악에 이 몸이 사로잡혀 내 감히 우러러 볼 기운이 없사오니 마음은 꺾이고 말았나이다.


 


 얼마나 그 적나라한 사람의 심정을 그렸어요? 좋지요? 머리칼보다 많은 죄악에 이 몸이 사로잡혀 한 가지 죄에 영혼이 더럽히나요? 여러 가지 죄를 지었을 때 영혼은 꼼짝 못하지요. 머리카락보다 많은 죄악에 이 몸이 사로잡혀 나이가 70 80을 먹도록 살아온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머리카락보다 많은 죄가 있지요. 머리칼보다 많은 죄악에 이 몸이 사로잡힌다. 그런데 예수님은 해방시켜 주신다니 얼마나 고마워요? 내 감히 우러러 볼길 없사오니 마음은 꺾이고 말았나이다. 주여 저를 기꺼이 구하여 주소서. 어서 빨리 오십시오. 주여 나를 도우소서. 내가 죽게 생겼으니까 어서 와서 나를 살려주십시오. 그 기도가 얼마나 다 죽게 생겼습니다. 죄가 머리칼보다 많습니다. 어찌할까? 예수님 살려주십시오. 나 살려주십시오. 그러니까 당신 백성 잘못을 용서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어주셨나이다. 그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 최 신부님 번역은 꼭 시편 한편이 앞섭니다. 그 시편은 84편인데 따라 읽읍시다.


 


당신백성 잘못을 용서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어 주셨나이다. 이 말씀 좋지요. 덮어주셔야지 누가 깨끗해가지고 하늘나라 갈사람  있어요. 덮어주셔야 깨끗하지. 예수님이 구해주셔야 하늘나라가지 어떻게 내 힘으로 천국을 간답니까? 소화 테레사 심정은 그렇지요? 2층에 있는 엄마가 아래층에 눕혀놓은 애기가 울 때 엄마소리가 2층에 있으니까 애기는 올라 갈 양으로 그 난간 계단을 한 계단 올라가다가 뒤로 떨어져서 울 때 엄마가 내려와서 그 어린것을 불쌍해서 품에 품으시고 2층에 올라간다. 그런, 그런 말씀 하시면서 우리가 너무나 불쌍하니까?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우리를 보듬고 천국 가는 것이지 내가 날개가 나가지고 내가 날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복음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그런 설명 하셨지요? 예수님의 그 은총으로 천국 가는 것이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늘나라 가는 것이지 사람의 의로 가지고는 하늘나라 갈 수 없다. 그런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참 어린나이에도 어쩌면 그렇게 잘 깨달았을까요?


 


그래서 일전에 제가 말씀드렸지요? 내가 드릴 말씀은 이 한마디 야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고쳐주소서. 당신께 죄를 지었사옵니다. 사람은 그런 심정을 가질 때 가장 겸손한 심정을 갖은 사람이다. 뭐 사람이 일평생 살다가 죽어가는 마당에 할 말이 뭐 있어요? 꼭 이말 한마디 나를 불쌍히 보십시오. 저를 불쌍히 보십시오. 저를 고쳐주십시오. 저는 주님께 죄를 지었사옵니다. 이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그런 말씀 드렸지요? 에베소 2장 찾아보십시오. 에베소 2장 14절로 15절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세상에 어디가 마음이 편해요? 예수님 만나야지요.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때 마음이 평안해지지 다른 데는 평안이 없어요. 예수님이 용서해줄 때 우리 마음이 평안하지 용서 안 해 주시면 어떻게 평안해요?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치셔서 왜 대신 죽어서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치셔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율법조문과 규정을 모두 폐지하셨습니다. 예수님 아니고는 전부 따지지 않아요.


 


너는 무슨 죄 있다. 무슨 죄 있다. 무슨 죄 있으니까 지옥 간다. 구원 없다. 그것이 유대사람들의 율법 아닙니까? 이방 사람들은 전부 죄인 아니에요? 그렇게 한계를 두고 구별했던 것을 예수님이 몸을 바치셔서 화목 시켰다. 그래서 율법조문과 규정을 모두 폐지하셨습니다. 율법을 초월했을 때 천국 가는 것이지 율법을 우리가 다 이해하고 하늘나라 갈 사람이 없지요? 에베소 2장 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지요.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있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심으로서 피, 피소리가 마음을 찌르르 울리지 않아요? 피, 사랑은 대신 죽는 것이지요? 사랑을 대신 죽는 거야. 우리 대신 피를 흘리심으로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가까워 졌습니다. 이 말씀 피라는 말씀이 참 힘이 있어요. 한번 따라 읽읍시다.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심으로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가까워 졌습니다. 에베소 2장 13절 말씀. 자 그러면 여기서 시에 나오는 말씀 하나 보십시다. 시편 121편에 나오는 말씀인데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화를 빌어주라. 너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너희의 성 안에 평화가 있기를 너희의 궁 그 안에 평화가 있기를 내 형제 벗들을 위하여 말하노라. 평화가 너와 함께 있기를 평화가 너와 함께 하기를 우리 주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너희 모든 행복을 나는 비노라. 이것도 최 민수 신부님이 번역인데요. 역시 평안은 예수님께 있는 것이지요. 평화는 예수님께만 있어 하늘 가까이 찾아가 봐도 평화는 없지요. 예수님의 그 사랑의 품안에 숨었을 때 우리는 평화를 얻지요. 이런 말씀이 있습디다.


 


시편 106편에 주께서 그들 마음을 고생으로 굽히시니 돕는 이 아무도 없어 쓰러질 것 같더니 곤경 속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부르짖을 때에 야훼를 부르짖을 때에 당신은 그 고생을 면하여주셨다. 어찌되었든지 사람은 고생을 받아야해. 고생을 해야 해. 고생을 해가지고 마음을 굽혀야해 자기 교만을 굽혀야해. 자기 고집을 굽혀야 해요. 자기의 교만이라는 것은 무서운 죄이지요. 그것을 굽히게 되려면 고생을 해야 해. 고생을 해야 마음이 굽혀져요. 그들 마음을 고생으로 굽히시며 그 말이 제일 높다 마음에도 고생을 하다하다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조금만 고생하면 뻣뻣해가지고 항복을 해야지 그러니까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자복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고생을 면해 주셨더라. 그런 말씀이 있고요.



 


저희 죄 때문에 병을 앓는 그들이 악을 지은 탓으로 고생하더니, 꼭 저를 두고 하는 소리에요. 어찌 그 말이 좋은가? 죄 자기 죄 때문에 병을 앓는 그들이 악을 지은 탓으로 고생하더니 온갖 음식이 싫증이 나고 죽음이 문 앞에 다다랐더니 곤경 속에서 그들이 야훼께 부르짖을 때에 당신은 그 고생을 면하여 주셨도다. 아이고, 죽으려나보다. 죽으려나보다. 마음이 처량해지고 예수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그쯤 되면 병도 낫고 마음도 평안해지고 죄 사함도 받고 평안해 하지요. 영혼도 기쁘고 힘을 얻고 그런 경지를 우리가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을 보내시어 그들을 그를 낫게 하시고 어떻게 해서 병을 낫게 해주냐? 말씀을 보내셔 말씀에 힘을 얻게 해요. 뭐 약 먹고 낫는다는 것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로를 받고 마음에 평화를 얻으면 병이 낫지요.


 


그 말씀을 보내시어 그들을 낫게 하시고 죽음에서 그들을 건지셨도다. 하나님께 감사하라.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자비하심을 중생에게 베푸신 그 기적들을 찬미의 제사를 올려 바치고 기쁨도 벅차게 그 하신 일을 알려라. 내가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고백하였더니 내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렇게 자복하라고 내가 죄를 짓고 병이 들어 죽게 생겼다. 싶을 때 하나님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자복했더니 내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꼭 저한데 하신 말씀입디다요. 그만큼 말씀 그만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