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농사

꽃 바구니 : 무저갱

mamuli0 2019. 5. 13. 10:18

 봄꽃이 거의 지고 여름 꽃들이 피어나고 청록색으로 동산이 변하고 있다. 동광원의 영성을 알고자 하는 옛날 알던 분들이 다녀갔다. 봄보리가 일제히 이삭을 내밀었다. 아직도 봄갈이를 마치지 못했다. 또아리 늙은 호박모를 심고있다. 처음으로 꽃바니 선물을 받았다. 담담하기만 하다.



 


이 현필 스승의 생애 무저갱


2003.08.13. 김준호 선생


 솔로몬도 결코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입지는 못하였다 . 나무는 나 없다. 나 무(無) 임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올립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무아(無我)가 됨으로써 그분께 순명합니다. 나무는 그분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나무는 하나님의 숨은 뜻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숨은 뜻은 하나님의 본질과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씨가 땅에 떨어져서 싹이 트고 자라나는 과정은 생명의 신비이며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 익어가는 과정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거룩한 것입니다. 그들의 청정한 생명은 그들의 거룩함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의 흔적이며 그들 안에 숨어계시는 그분의 진선미입니다. 보십시오. 저 창밖에 피어나는 나무들과 꽃들은 그 아름다움이 성인들입니다. 풀 속에서 피었다가 시들어가는 아무도 보지 않는 작은 꽃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쳐다보며 경배 드리는 성녀들입니다.
사람이 그분의 제자가 되었다는 뜻은 곧 저 나무와 꽃과 함께 무아의 사랑을 완성 했다는 뜻입니다. 불과 물이 상극이지만 저 나무의 생명체 속에서 상생의 사랑을 이루어서 화해와 평화의 산 나무가 됩니다. 태양의 불과 땅의 물이 서로 무아가 되어 희생의 재생으로 산 생명의 사랑의 덕을 꽃피어서 나무들은 성스러운 덕을 완성합니다.


 


 이 현필 스승님께서 57년 전 11월의 어느 새벽에 ‘꽃을 꺾지 마시오.’ 라고 하시던 그 음성이 지금도 들리는 듯합니다. 오늘 머튼의 말씀을 빌려서 생각해 보면 분명히 그 꽃은 성인이었습니다. 만일 오늘 여기 스승님이 다시 오신다면 ‘나무를 심으시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는 섭리라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나무를 심어 주신다고 예언하셨습니다. 성 프란시스코의 제자 성녀 글라라는 ‘저는 작은 나무’라고 하였습니다. 성녀 소화 테레사는 ‘저는 작은 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24세에 세상을 떠난 소화이며 머튼이 말한 작은 꽃이었습니다. 그 꽃은 하나님이 친히 심으신 작은 꽃나무였습니다. 그분은 네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첫째 물을 달라하시던 예수님을 사랑해 드림이요. 둘째 사랑받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을 사랑함이요. 셋째 사랑해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성녀가 되는 것이요. 넷째 예수님의 원하시는 모든 뜻을 완전히 이루는 것 이었습니다. 그분이 가신지 100년인데 사람들은 그분을 성녀라고 부릅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친히 가꾸신 작은 꽃이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먼 길에 지치신 예수께서는 그 우물가에 가 앉으셨다. 때는 이미 정오에 가까워 있었다. 마침 그때에 한 사마리아여자가 물을 길으러 나왔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물을 좀 달라고 청하셨다. ‘내게 물을 달라’고 말씀하실 때 천지의 창조자가 가련한 피조물에게 물을 달라고 하신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분은 사랑이 목마르던 것이었습니다.


 


‘아 예수께서 그 어느 때 보다도 목말라 하심을 저는 압니다.’ 라고 소화는 고백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에게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붙잡지 말고 어서 내 형제들을 찾아가거라. 그리고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희의 아버지 곧 내 하나님이며 너희의 하나님이신 분께 올라간다고 전하여라.’라고 일러주셨다.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희 아버지 곧 내 하나님이며 너희 하나님 이신 분께 올라간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받으신 후 땅속에 묻히신지 3일후 안식일 첫 새벽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후에 깨끗하고 거룩하신 새사람 그분은 처음이요. 마지막 꼭 만날 사람은 친어머니 마리아도 아니요. 제자인 베드로도 아니요. 요한도 아니요. 영원히 살 속에 빠진 여인 죄녀(罪女)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그분의 총재산이요. 그분의 자비의 사랑을 전 인류를 대표한 죄녀(罪女)요. 성녀에게 유산으로 주신 급선무였습니다. 그분이 하늘나라에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요. 절대 사명 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영혼의 의사였기에 병든 영혼에게 살리는 약을 주시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의인을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병든 죄인을 찾아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은 나무요, 무아요, 사랑으로 태어난 생명이요, 꽃이었기에 그 꽃나무에 마지막 절대 자비의 사랑의 물을 주시는 것이 그분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었습니다. 유영모 스승님은 죄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살 속에 빠진 사람이요. 사람이 살 속에 빠진 것을 깨달은 사람이 구도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현필 스승님은 ‘어느 날 내가 빠진 곳이 무저갱이라고 깨닫고 보니 절망이었습니다. 그것은 밑 없는 항아리를 빠져나오는 길은 전무함을 알고 영혼이 구원 받는다는 것은 은총임을 깨달았습니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같은 뜻으로 무저갱에 빠진 것을 자각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절대사랑 그 사랑의 은총으로 성녀가 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죄 있는 분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무죄 선언을 받게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무죄 선언을 받았다는 말은 곧 성인이 되었다는 복음입니다. ‘모세는 우리에게 율법을 주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의 용서를 주셨다.’ 성녀 소화 테레사의 깨달음은 막달라 마리아는 많이 사시고 저는 모다 살았기에 미치도록 감격한다고 말씀하시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많이 사랑해 주셨지만 그분은 미리 모다 사랑해 주셨기에 그 미리 주신 사랑에 감격하셨습니다. ‘미리’라는 말이나 ‘모다’라는 말은 시공을 초월한 직관의 언어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람들에게 내가 함께 있게 하여 주시고 아버지께서 천지창조 이전부터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주신 그 영광을 그들도 볼 수 있게 하여주십시오.’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도록 빌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시공을 초월한 절대의 사랑을 벌써 미리 완성하셨습니다. 유영모 스승님은 ‘될 일은 말고 된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벌써 완성하신 사랑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그 은총, 그 자비, 그 사랑, 그 미리 된 일, 미리 완성하신 그 사랑을 믿읍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결코 단죄 받는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약하기 때문에 율법이 이룩할 수 없었던 것을 하나님께서 이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어 그 육체를 죽이심으로써 이 세상의 죄를 없이하셨습니다. 


 


그 읽으신 글 가운데 저만 아는 글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저로 말하면 스승님 이라고 합니다. 이 현필 스승님께서 확실히는 몰라도 57년 전입니다. 11월 어느 새벽에 ‘꽃을 꺾지 마시오.’라고 하시는 말씀이 지금도 들리는 듯합니다. 그 사연을 아시는 분들은 아시지만요. 설명을 제가 하겠습니다. 이성학 장로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전라남도 해남 교회 장로님이시고 이승만 정권시절에 국회의원에 당선하셨습니다. 그런 분이신데 그 어른이 이렇게 설명하세요. 목사님이나 장로 우리 교회 신자를 보면 청년이 확실히 실망 많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 신자를 보고는 예수 안 믿어도 좋으니까 이번에 예수 비슷한 사람이 우리 교회 옵니다. 그런 분을 보시고 꼭 예수 믿으세요. 그렇게 추천 하셨어요. 그러니까 예수 비슷한 분이 오신다는 분이 11월 국화꽃이 서리가 맞을 때 찾아오셨어요. 너무나 오래 기다린 분이 오셨기 때문에 신비한 분이 오셨기 때문에 딱 쳐다보니까 맨발 벗고 조끼도 안 입은 바지저고리입고 머리 싹 깎아버리고 그건 일본시대에 있던 얼굴이에요. 일본 정부가 한국 사람들 상투를 깎아버리고 아무것도 없이 바지저고리 입혀가지고 살던 그 모습이에요. 그런 분이신데 새벽 예배를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해방 후니까 교회 여자 집사님들이 한 30명 모였어요.


 


그때 담임 목사님이 이 준목 목사님이신데 ‘저 이현필 씨는 높은데 안 올라가시기 때문에 속히 밥상을 가지고 와서 평상을 하도록 하라.’고 준비하셨습니다. 밥상을 갖다놓고 집사님들이 새벽에 뜰에 피었던 국화 한 세 송이 끊어다가 딱 꽂아드렸어요. 이렇게 둥그렇게 30명이 앉았는데 상식적으로 성경을 볼 줄 알았는데 성경은 안보시고 그 꽃을 아주 뚫어지도록 보세요. 그러니까 엄숙하지요. 그런데 음성이 눈물겨운 음성으로 ‘저 때문에 이 꽃을 꺾어 오셨습니까? 그냥 두고 보셔야 하는데’ 그 음성이 너무나 제가 듣기에는 어머니의 사랑이에요. 3초도 안 되어요. 확 영혼이 끌려들어가지고 그분 예수는 아니에요. 저렇게 자비심이 충만한 선생님께 내 생명을 다 드려버려야겠다. 정신력이 귀화를 했다는 겁니다. 그건 묵시에요. 해설이 없지 않아요? 그러면 석가가 육년 고행 후에 새벽별 보고 깨달은 것이 보여야 합니다. 


 


 그럼 이 사람이 3초 동안의 이 선생님이 그것이 오늘날까지 계속되었다는 겁니다.
거기에 예수를 압니까? 그 인물을 압니까? 그 음성에 섞여서 묻어나온 사랑  사람도 아닌 꽃을 보고 저렇게 우실까? 저렇게 마음에 슬퍼하실까? 그러면 내 영혼은 얼마나 사랑하실까? 추리로 해서 제가 믿어졌어요. 그건 성령의 역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감정이 3초인데 그게 80이 되도록 안변해요. 그건 하나님의 신이 같이 하셨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음성이 지금도 들리는 듯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머튼의 책에서 인용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잘 아시는 토마스 머튼 이지요. 그러면 그분도 서양 사람으로서 동양을 소화하시고 동양의 문명을 다 빨아들이시고 하신 말씀이시기 때문에 동양 사람의 감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만일 오늘 여기에 선생님이 다시 오신다고 생각합시다. 오늘은 ‘꽃을 꺾지 마십시오.’ 그 말은 안 하세요. ‘나무를 심으십시오.’라고 말씀 하실 겁니다. 그분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는 섭리라면 반듯이 나무를 심어 주신다고 에언 하셨습니다. 이걸 해석 할라고 해요. 선생님이 병원에서 늘 생명이 위태로울 때는 잠깐 병원에 갔어요. 목에서 피가 넘어오니까 의사가 도와줘야 하거든요. 숨이 막히지 않도록 그러니까 일본 시대부터 이 선생님과 두터운 사교하시던 목사님이 찾아오셨어요. 그러니까 눈물겹게 부탁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임종하기 전에 후계자를 지목하라 이거에요. 곧 돌아가실지 모르니까 반드시 후계자를 지목하라. 그 심각한 목사님의 아주 큰 말이지요.


 


그때 이 선생님이 이렇게 대답했어요. ‘아니요, 동광원의 공동체가 내가 만들었으면 후계자를 두어야지요. 나는 관계없습니다. 이 공동체를 시작하신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내가 죽은 다음에 확실히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업이라면 하나님께서 후계자를 보내주십니다.’ 그때는 후계자라는 말을 하지 않고 인재라고 인재, ‘선생님 인재를 두셔야 합니다.’ ‘이 공동체가 하나님의 일이라면 인재는 하나님이 보내 주십니다.’ 이 사람이 길러서는 질수 없다고 인간적인 욕심으로 안 된다고 그 말씀을 하셨지요. 그러면 이번에 우리가 모이는데 역사적인 모임인데요. 참 어려운 소원 했어요. 몸도 지금은 늙으신데 힘도 없으신데 엄 목사님을 이번 모임에 오셔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냥 말한 것 아니에요. 많이 생각하고 깊은 기도 후에 말씀했는데 오셨거든요. 중심에 그래요. 그럼 이 선생님의 그때 옛날 몇십년 전에 이 공동체가 하나님이 친히 하신 일이라면 내가 염려 안 해도 반드시 하나님은 여기에 나무를 심으실 것입니다.  산 나무이지요. 죽은 나무가 아니지요. 금 보면 황송해요. 살아계시니까  하늘나라에 가신다면 여러분이 인정하십시오. 이 선생님이 기다렸던 인재는 엄 목사님 이십니다. 그게 제 고백이에요. 왜 그러냐?  설명하겠어요. 엄 목사님께서 이 선생님을 자꾸 믿음이 좋다고 자꾸 깨우치거든요. 그러기 전에는 10년 전만해도 이 선생님이 소위 말하는 이단자니까 이 선생님이 관계된 글을 아무도 못 봤어요.


 


큰 어떤 피해를 봤기 때문에, 엄 목사님이 그 전기를 내신 다음에도 교계에서는 손을 못 대요. ‘그 책 보지 말라.’ 금서에요. 그런데 엄 목사님이 서울 일대에서 많은 젊은 목사님들 모시고 한 20년 ‘이 선생님이 믿음이 있다. 믿음이 있다.’ 인정해 주신거지요. 그 말 들은 젊은 목사님들이 인정한 거예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럼 엄 목사님이 이 선생님이 이단이라 하면 지금도 이단이지요. 목사님이 ‘이단이 아니야, 이건 예수님의 제자야, 이것은 참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그렇게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해설하시듯이 엄 목사님이 이 선생님을 신자라고 해설해주심으로서 소위 말하는 흠이 없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일반 예배당에서 그분의 이 선생님의 전기를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이렇게 모여오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이건 부정하지 못할 사실인 이상 제가 이 선생님이 저는 죽더라도 이 공동체가 하나님의 일이라면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산 나무를 심어주실 것입니다. 그 예언이 지금 30년 만인데요. 내일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현재 이루어졌다는 것을 심중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암시만 있지 실지로 없는 뜻을 발표할 글들이 있거든요.


 


그리고 하나 더, 제가 어떠한 의미에서 많이 생각하고 발표한 겁니다. 옛날 같으면 이 말 못해요. 이 선생님이 흠날 것 같아서. 엄 목사님이 전기를 쓴 것만 해도 우리가 한 몇십년 전인데 이 선생님이 흠날 것 같은 것은 절대 감춘 거예요. 완전히 감추고 목사님 듣고 칭찬 들을만한 좋은 것만 보고했어요. 그래 전기에는 좋은 것만 써져있거든요. 흠도 티도 없는 사람으로 되어있는데 그건 우리 잘못이었어요. 이 선생님을 있는 그대로 가 아니에요.  이 선생님이 우리 눈에 보이는 험은 전부 감추어 버린 거예요. 목사님이 알가 봐 그게 우리 인간적인 생각이었지요. 오늘은 그때 엄 목사님한테 말 못했던 저로서는 무서운 소리에요.  그러나 하나님이 명령하신가 싶어서 목사님이 계실 때 이 말 고백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이렇게 말이 나오면 유영모 스승님은 죄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살 속에 빠진 사람이요. 사람이 살 속에 빠진 것을 깨달은 사람이 구도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로마서 8장 1절로 3절에 있어요. 다음에 설명하고요.


 


이 현필 선생님은 어느 날 내가 빠진 곳이 무저갱이라고 깨닫고 보니 절망했습니다. 이것은 평생에 이선생님이 존경하던 목사님이 찾아오셨어요. 아주 몸이 약하신데 마지막 만나보시러 오셨어요. 두 분이 눈물겨운 고백을 한 겁니다. 선생님 저는 어떻게 할까요? 그 목사님이 다그치게 선생님께 질문할 때 이 선생님은 자기 이야기를 한 겁니다. 목사님, 목사님  저는 무저갱에 빠졌든 사람입니다. 그 뜻을 몰랐지요. 제 힘으로는 밑 없는 항아리를 빠져나올 힘은 전혀 없음을 알고 절망했다 이겁니다. 구원 받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뿐이고 성혈(聖血) 뿐이고 은총뿐이고 성령님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거예요. 그걸 옆에서 들었어요.  그건 둘이 이야기 했지만 하늘이 느낄 만큼 시원히 하신 거예요. 외모로 멀리서보고 인생이 성자라고 했는데 와서 보니 무저갱에 빠진 과거가 있다 이거에요 헤쳐날 수 없는 인간의 고뇌를 겪었구나. 그 성경은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오시기 전에 여기 나오기까지 성경말씀이 있을까? 그건 이 선생님만의 성경말씀이 아니잖아요? 그래 찾아봤어요. 빨리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시편 88편 6절로 9절.
먼저 제가 찾아서 읽겠습니다.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 어두운 곳 아까 옥편 찾아보니까 음험한데 두셨사오며 주의 모든 파도로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아는 자로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로 저에게 가증되게 하셨사오니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 그만큼만 보고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말씀하나 더 볼까요? 로마서 7장 22절부터 25절 보겠습니다. 잘 아시는 말씀이지요.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복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거기까지만 보았습니다.


 


그 같은 뜻으로 무저갱에 빠진 것을 자각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 절대의 사랑 그 사랑의 은총으로 성녀가 되었습니다. 하는데 까지 봤습니다. 그러면 실제 이 선생님이 한 37세에 저를 만났으니까요. 53세 땅에 계실 때 옆에서 봤어요. 그래 이것은 감정을 이야기한 표현 이지 마는 무저갱 나는 무저갱에 빠졌다 딱 알고 보니 그때는 절망이요.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자기는 헤쳐 나갈 길이 없다는 거 자기수양 자기 노력으로는 도저히 번민을 없앨 수 없어요. 그런 심고한 이야기를 하실 때 그럼 이선생님이 말씀 하실 때 제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이건 사람의 말로 할 수 없는 특별한 은총인데 그래서 그 말이요. 다른 그래도 쪼금 말하다 잘못 됐는데요. 그 말이 잘 못되었는데 이런 말이에요. 제가 참 예수님의 사랑으로 무저갱에 빠진 사람이 이제 구원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제가 구원을 받았으니까 너도 무저갱에 빠져라. 빠져봐라.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지금 동광원 공동체는 아무 교리도 없고 법이 없어요. 그분이 내가 빠져 보니까 얼마나 괴롭던가? 얼마나 절망했던가? 나는 빠졌더라도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어. 그러나 이 구원이 쉬운 것이 아니라 이거에요. 한번 빠졌다가 다시 밑 구덩이 없는 항아리를 어떻게 기어 올라오느냐 이거에요. 밑이 없는 이 구덩이에 빠졌는데 어찌 기어 올라오느냐? 인간의 힘으로 안 된다. 이거에요. 내가 구원받았으니까 너도 빠졌다가 올라와라.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왜  이것은 한번만 있는 사건이지, 번번이 나같이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겁니다. 빠지지 않고 하늘나라에 가야지, 빠진 사람이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 그건 말이 쉽지, 안 된다. 그 너무 절실한 그분의 경험이 이 젊은 사람을 만나가지고 세상을 맛을 보지 못하는 겁니다. 자기가 너무 고생을 했기 때문에 그 사랑을 자기로서는 알고 어떻게 하냐는 거예요. 알고.. 그분 깨달음을 살다 보니까 이 공동체가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라 그 점을 뜻을 보이고 싶어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 인데 제가 전달이 잘 못되어요. 그 뜻을 썼다 이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목사님도 앞길이 캄캄하니까 나를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목사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저는 내가 빠진 곳이 무저갱이라고 깨달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절망했다는 겁니다. 제 힘으로는 밑 없는 항아리를 빠져 올라간다는 것은 전무함을 알았다 이겁니다. 도저히 길이 없다. 다시 말하면 말은 쉽지요. 수도해가지고는 구원이 없다는 겁니다. 수도로는 구원할 길이 없다. 그럼 이렇게 질문 하셨어요. 우리 어머니들한테 어머니들, 내가 질문 하겠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사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4분, 3분, 2분, 곧 칼로 모가지를 툭 자르면 죽을 텐데 사형수인데 어떻게 하면 살리겠소? 하고 물어봤어요. 누가 대답해 보시지요. 지금 곧 죽습니다. 어떻게 하면 살겠습니까? 곧 죽습니다. 빨리 말씀하십시오. 2분 1분 어떻게 하면 살겠습니까? 대답해 보시지요. 그건 대통령 특사가 오면 삽니다. 그건 대답은 쉽지요. 여러분 아십니까? 김현희 비행기 폭파한 처녀, 백 명을 죽인 처녀를 노태우 대통령이 특사를 내렸어요. 그런데 백 번 사형 받을 사람을, 지금 살고 있지 않습니까? 특사를 받았기 때문에


 


그러면 이 선생님 자기 경험의 보고는 자기는 하나님의 특사에 의해서 구원 받은 사람이지 그냥 수양해가지고가 아니다 이거지요. 그럼 무저갱에 빠졌다는 경험은 그거는 말없는 말이에요. 설명이 안 돼요. 그건 그 사람만이 알겠지요? 자기가 어디에 빠졌는가? 중죄에 빠졌다는 게 사실이에요. 인제 그런 뜻으로 이야기 한 것을 여러분 앞에 말하고 싶지만 엄 목사님이 전기를 쓰신 분이기 때문에 거기에 보충될 만한 말씀을 드린 겁니다. 옛날 보고 드리지 못한 사실을 보고 드리는 겁니다. 이 시간에 이 영성을 파고 들어가신 어른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누구와 같은가 하면 성경 상으로는 막달라 마리아 상(像)과 같겠다. 이렇게 말하면 흠을 느낄지 몰라요. 우리 이현필 선생님은 죄를 모르고 백설같이 희고 천사같이 깨끗한 사람이고 그런 분인 줄 알고 따라오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제가 이 선생님이 절망에 빠져서 특사를 받아서 구원받았다는 걸 보고 할 때는 혹시 섭섭하실지라도 할 수 없어요.


 


그러나 이선생님이 하자니까 그런 사건이 있는데 묻어갈 수 없지 않느냐 이거에요. 그것까지 알고 그 어른을 존경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상은 아까 읽었어요. 고린도후서 5장 21절  공동번역이기 때문에 확실해요. 뜻이,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죄 있는 분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무죄 선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건 말이 아니지요. 이 선생님이 천번 만번 지옥에서 못 나온 분이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의 피 공로로 무죄 선언을 받았다 이겁니다. 타인 이야기가 아니고 이현필 선생님의 영혼이 무저갱에 빠졌던 영혼인데 무조건 용서받았고 구원을 받은 영혼이다. 그럼 성경말씀이 있을 때는 이 선생님이 어떻게 되느냐? 곧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고 막달라 마리아가 경우와 같다. 그랬어요.  그럼 성경에서 말하는 죄인은 대표로 막달라 여자 마리아. 그럼 무슨 말이냐 하면 광주가 도시고 전주가 도시지요. 도회지로 처녀시절에 월급 받으러 취직했던 여자 그런 뜻이거든요. 막달라에 갔던 여자 그 이름은 마리아인데 그러니 젊은 어린 처녀가 도회지로 가서 타락했다. 그 말이지요. 무저갱에 빠졌어요. 헤쳐 나올 수 없는 죄악에 빠졌어요. 그럼 그 여자가 무죄 선언을 받았다는 말은 곧 성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2천년 기독교 역사에는 막달라 마리아는 성녀에요. 우리는 몰랐는지 몰라도 세계적으로 그를 기념하며 예배를 드려요. 성녀니까, 왜 그러냐? 예수님이 죽고 석방해줬다. 무죄선언을 해 주셨다. 그겁니다.  따라해 보세요.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죄 있는 분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무죄 선언을 받았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 말씀. 여러분이 보시는 개역을 보시면 희미해요. 그런데 이건 똑떨어지게 현대어로 번역 했어요. 무죄선언을 받은 것이다. 그러면 김현희하고 똑 같아요. 천번 만번 사형 받을 처녀인데 무죄선언을 받았어요. 그래 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살아요.  똑같아요. 그럼 국법도 예수교 아닙니까? 예수교 사상 국법을 만들었으니까, 어느 처녀는 특사를 내리면 살수 있다는 말입니다. 천번 만번 사형 감일지라도 용서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겁니다.


 


 그건 복음의 혜택이라 하겠어요. 그러면 현대어 성경이 공이 있어요. 그 번역은 요한복음 1장 17절에 이렇게 번역 했어요. 모세는 우리에게 율법을 주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으로 용서해 주셨다. 이렇게 번역되어있어요. 진리와 은혜가 충만했다. 그 말을 사랑의 용서를 주셨다. 그럼 예수님이 왔다는 것은 우리 때문에 대신 죽었다는 것은 우리를 무죄선언 하시기 위해서 죽으셨다. 이렇게 말을 바꾸어 말할 수 있겠지요. 그 뜻으로 이 글을 엮겠습니다. 성녀 소화 테레사의 깨달음은 이분을 소개하고 싶어요. 24에 죽은 성녀가 되었다. 그건 우리에게 혜택이 되거든요. 나이가 많은데 왜 성녀가 못되지요? 나이 어린 사람도 예수 덕분에 성녀가 된다면 나이가 많은 우리가 왜 성인이 못 되는가? 그러니까 이분의 전기를 연구하는 것을 내 몫을 챙기자 이 말이에요. 우리 몫을 그러면 막달라 마리아는 많이 사랑해 주셨지만 성녀 소화 테레사는 깨달음은 막달라 마리아는 많이 사하시고 저는 모두 사하셨기에 미치도록 감격한다. 그런 표현을 했어요. 이 말은 보탤 수 없지만 ‘많이’와 ‘모두’ 어느 것이 큽니까?  모두가 크지요. 모두는 전부고 많이는 어느 부분이니까 어느 부분에 많은 것 이니까. 그럼 막달라 마리아가 죄가 많다고 해도 성녀 죄보다 적다는 뜻입니다. 그 말이거든요. 나는 완전한 죄인이고  막달라 마리아는 부분적인 죄인이었어. 그러니까 부분적인 죄인을 예수님이 사랑했어요. 용서해주셨어요. 완전한 죄인인데 용서받았다. 그 24세 처녀의 고백이에요.


 


그래 성녀는 막 나아서 성녀가 없다 이 말이지요. 자기가 자기 나름으로 수도하고 수녀가 되어도 자기의 힘으로는 성녀가 못되어요. 무죄 선언을 받을 자격 막달라 마리아가 죄가 많고 나는 많이 아니고 전부인데 전부 용서해 주었다. 그래 이 여자가 성녀가 되었다. 이 말이에요. 누가 성녀를 만들어요?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많이 사랑해 주셨지만 사했다는 것은 사랑이지요. 아까 모세는 율법을 법을 따져요. 너 잘했다. 못했다. 지옥에 간다. 예수는 그것을 초월해 사랑하고 용서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용서란 말이 되고 용서했다는 말은 사랑했다는 말이 되기 때문에 사랑 했다 그 말은 용서 받았다 그 말이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많이 사랑해 주셨지만 그분은 미리 모두 사랑해 주셨기에 그 미리 주신 사랑에 감사했다.


 


그럼 미리라는 말은 에베소 1장 4절에 보면 뜻이 나와요. 얼마나 미리냐? 천지창조 이전이 그것이 미리에요.  해와 달 만들기 전이 미리거든요. 미리 용서했다. 미리 사랑했다. 그럼 20세기에 태어난 여자인데 천지창조 이전에 용서한 거예요. 천지창조 이전에 미리 사랑하셨다. 그걸 깨달았다고 해서 성녀인거에요.  범법 후에 용서한 것이 아니고 아주 유구한 천지창조 이전에 용서한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러면 제가 공동 번역으로 에베소 1장 4절을 읽겠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미리 그것은 시간을 초월한 단어거든요. 이미 미리 천지창조 이전에 우리를 사랑해서 이미 우리를 뽑아주시고 여기 원 선생님 와 계시네요. 제가 다리 맡에서 얻어먹을 때 처음으로 광주에 오셔가지고 다리 밑에 오셨어요. 원 선생님이 이 거지를 찾아와서 머리가 닿으니까 엎디어도 그러고는 요한복음 15장 16절을 보셨어요. 네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했다. 그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거지가 이러고 있으니까 당신이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예수가 당신을 택했소. 그 말씀 해 주시더라고요. 원 선생님이 난 그 말씀이 어떻게 감사한지. 아, 내가 예수 믿지 않는구나. 예수님이 나를 믿는구나. 얼마나 감사한지. 난 예수님이 나를 믿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그 말씀이지요.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우리를 믿어요. 미리 우리를 뽑아주시어 당신의 사랑을 그때 이루었어요. 지금 수양하고 수도해서가 아니고 그때 그렇게 해 주셨고 흠 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그때 하나님 앞에 설수 있게 위임하셨다. 그런 말이 나와요. 그때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다. 천지창조를 하시기 전에 미리 정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말씀을 뒷밭침하기 때문에 24살짜리가 아, 나는 미리 용서함 받았다. 벌써 용서받았다. 그렇게 믿고 죽었기 때문에 후인들이 아, 이 사람은 성녀다. 그렇게 말해준 것에 불과하지요. 누가 성녀 됨을 압니까? 그러면 미리 라는 말이나 모두라는 말은 시공을 초월한 언어입니다. 1초에 보는 거지요. 우주기원이 150억년 되었어요. 150억년을 1초로 보는 거예요. 지금으로 보는 거예요. 예수님은 아버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내가 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하여 주시고 아버지께서 천지창조 이전부터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주신 그 영광을 우리들 이 사람들도 깨닫게 예수 사랑을 즉석에서 깨달아 아는 것이 아니요. 예수님을 하나님이 천지창조 이전부터 사랑해요. 그것을 지금 보게 해 달라는 것이에요.


 


예수님이 사랑을 얼마나 받았느냐? 천지창조 이전부터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사랑하시는데 지금도 사랑하신다는 거예요. 아버지께서 천지창조 이전부터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주신 그 영광을 이 사람들도 보게 하여 주십시오. 잠깐 사랑을 깨달은 것이 아니고 영원한 사랑을 눈으로 보게 해달라고 빌었으니까 보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도록 빌으셨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시공을 초월한 사랑을 벌써 미리 완성해서 그 예수님이 오신 것이 2천 년 전이니까 그때 완성한다는 말이에요. 2천 년 전과 2천년 후를 미리 완성했다. 그 말씀이 생겼습니다. 그 말씀을 유 선생님이 자꾸 강조해서 이 동광원이라는 씨가 나니까 나무를 자꾸 거름을 해준 것이지요. 잘 크도록 그러니까 다짐 하세요. 한 번씩 오시면 유 영모 선생님은 된 일을 하라고 될 일을 하지 말라고, 될 일을 하지 말고 된 일을 하라고 열 번이고 백번이고 된 일을 믿어야지 왜 될 일을 찔찔 울며 따라가느냐고 천년만년 기다려봐라. 될 일은 영원히 안 된다. 이미 완성된 일 그걸 따라가야 되지. 예수님의 사랑은 완성되었다 그거지요. 천지창조 이전에 사랑은 완성 되었고 지금 완성 되어 있는데 그걸 보고 믿어야지. 어떻게 사람이 자기가 수양하면 되느냐? 안 된다 이거에요.


 


제가 울면 되냐? 안 돼. 제가 굶으면 되냐? 안 된다. 이거에요. 힘써 보는 거 좋지만 그리스도의 전능을 믿고 하나님의 전능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지 될일을 하라. 이미 사랑은 완성된 것이다  그게 유영모 선생님의 외침이에요. 이 답답한 사람들아 언제까지 하느냐? 안 된다.  이미 완성되어 있는데 그걸 보라. 그러니까 사랑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은총설이에요.  은총.
 하나님의 전능성. 그 은총 자비 그 사랑 그 미리 된 일, 미리 완성된 그 사랑을 믿읍시다. 그렇게 끊났네요. 그러면 여기 유 선생님의 특유한 해설이지요. 죄인이라는 말은 잘 안 쓰셔요. 그분이 번민이니까 죄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살 속에 빠진 사람이라. 그렇게 특유한 선생님의 언어로 푼 것이지요. 사람이 살 속에 빠져 있다.(끊김)
 어느 목사님이 그런 분이 계세요. 예수님이 숨 쉬던 교향을 찾아갔어요. 부인과 자식을 다 버리고 전 재산(끊김)


 


그런 어른이 오늘밤 여기에 온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고파서 그렇게 찾아오신 발걸음이 여기까지 오신 것으로 압니다. 빛이 그리워서 오신분이기 때문에 이 선생님을 존경하는 여러 분들에게 어느 대목을 다시 말씀드려요. 그냥 이 선생님을 찬양하고 칭찬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선생님이 무엇을 고민했는가? 무엇을 절망했는가? 무엇을 피가 말랐는가? 그 대목이지요. 그는 하나님의 진리의 생이기 때문에 우리는 추리를 할 것뿐이지요. 그러면 무저갱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유 선생의 말로하면 사람이 살 속에 빠진 것을 깨달아라. 내 힘으로는 못나오는 거예요. 너무 깊어서 살이. 그 어른의 언어로서 말했기 때문에 성경말씀은 쉽지요. 아는 말이니까 여러분은 성경으로 말하면 저보다 잘 아시니까 제가 보지 않더라도 몇 번 참고해 볼가요? 그러면 로마서 8장 1절로 3절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살 속에 빠진다는 개념이 로마서 8장 1절로 3절 하실 때 이야기 하셨어요.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이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절이지요.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법이 좋고 율법이 발을 찾아서 찾을 만큼 법이 강하다 하더라도 이 살 속에 영혼이 빠져 있는 것을 어찌할 길이 없다는 겁니다. 도움이 안 된다는 겁니다.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 대명사에요.


 


어떤 깨달음으로 알아야지, 그것이 뭐에요? 그것을 하나님이 하시나니 곧 죄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 하사 육을 좇지 아니하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을 이루게 하려 하심이라. 4절가지네요.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육신의 생각을 살 속에 빠졌다 본 것이지요.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 그렇게 성경말씀에 썼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그 어른도 우리를 스쳐 가시면서 하시는 소리니까 제가 알아들었단 말이 아니지요. 살 속에 빠진 것을 깨달은 사람이 곧이 선 것이다. 마음이 불안하니까 여기를 찾아가지 않겠어요? 마음이 허전하고 괴로우니까 예수님을 찾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영혼이 얼이 살 속에 빠진 것이라고 말씀을 하신바가 있습니다. 그러면 아까 18성가를 불렀는데요. 유 선생님의 말씀을 연결해서 제가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여기 18장의 언어는 45년 전인데 그때 정월 초하루부터 4일까지 한 오일동안 몇 번 설교를 하셨어요. 유 선생님이 그때는 엄 목사님이 꼭 유 선생님이 한 시간 이야기하시고 엄 목사님이 이야기 하세요. 서로 두 분이 그렇게 하셨어요. 그때의 줄거리를 처음으로 우리는 들었으니까  얼마나 보배롭습니까? 그 흐름의 단어만 알아요. 다 잊어버리지요. 유 선생님 한번 설교하면 세 시간 네 시간해요. 그때 광경이 이해하겠어요. 그때 이 선생님이 옆에 계세요. 몸은 약해도 우리 자매들은 조석으로 밭을 매거든요. 중노동 하니까 한 시간 되면 거의 자버려요. 그럼 이 선생님은 저 뒤에 계세요. 그럼 유 선생님이 미안하니까 시간되었으니 그만합시다. 그럼 저 뒤 이 선생님이 그래요. 더 계속하십시오. 그럼 식구는 무릎 꿇고 자지요. 그럼 두시간해. 그럼 유 선생님이 미안하니까 아 그만하지요. 그럼 선생님 더 말씀 하십시오. 그럼 세 시간, 말씀은 유 선생님이 하시고 듣기는 이 선생님 혼자 들어요. 식구들은 거저 있는 거예요. 나무같이 가만 앉아있어 그렇게 들었거든요. 근데 되풀이 하세요. 똑같은 말이에요. 그러니까 여기 이야기는 알기 쉽게 하신 말씀을 적었던 것이지요. 왜 그 선생의 말씀이 너무나 신비하니까 북두칠성같이 점을 찍어가지고 우리가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하나만 부릅시다.  3절이네요.  2절부터 부르세요.


 


그치십시오.  소리 없이 고요히 소복하니 피었네. 손을 대지 말고서 멀리 보게 하소서. 하면 손을 대지 말고 멀리보라는 그 외침 백번 말씀 이 동광원이라는 말씀을 축복이지요. 꽃이 있잖아요? 이걸 손을 못 대게 하는 거예요. 남녀 문제의 분별을 말하는 겁니다. 지금 얼마나 손을 댑니까? 함부로, 그때만 해도 남녀 같이 예배를 안 봤어요. 여자 반 따로 예배보고 남자 분 따로 그런 분위기고, 유 선생님이 그걸 좋아해요. 그걸 보여 줄라고 남녀교제를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겁니다. 성숙해서 뜻 없는 것들이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 운동이 이미 이공님이 점을 찍었다 말입니다. 그것이 귀한 겁니다. 전 인류적으로 이것이 귀하다. 그 순을 꺾지 마라. 그러니까 이렇게 쉽게 말 안 해요. 고전을 가지고 오니까 불경 유경 도경 다른 문장을 갖다 대지요. 어느 책에는 이런 글이 있다. 그걸 종합해서 말하면 손을 대지 말고 멀리서 보라. 그런 아주 유명한 글들이 있어요. 옛날에 그렇게 하신 말씀이 가슴을 울렸던 것이고 그럼 여기도 언님 따라 가면 제목인데 이것도 몇 시간 말씀한 거예요. 그분도 처음으로 그 말을 발견해 가지고 흥이 나서 우리나라 말은 중국 사람말로 바꿔버리고 지금은 미국사람 말로 바꿔버리잖아요? 우리 한국사람 거의 없어요. 우리 부모가 쓰던 말을 찾아야겠다. 그러면 종교에서도 중국 사람은 어질 인(仁)자다. 이 제일 높은 글자거든요. 하나님은 인자(仁者)지요. 성인은 인자인데 그럼 우리말은 무엇일까? ‘언짢다.’ 그런 말이 ‘어질지 않다.’인데 좋은 말은 중국 사람이 다 뺏어 가버리고 외국 사람들이  뺏어버리고 쌍놈들이 쓰는 말만 남았어요. 어질지 않다는 말만 남아있어. 언 잖지않다란 말만 남아있고,


 


성경말씀을 우리말로 한다면 ‘예수님’이 ‘언’이라는 거예요. 예수님을 우리말로 한다면 예수님은 언 이시다. 자꾸 그래 싸셔서 제 마음이 안 좋아서 왜 예수님을 언 이라고 하십니까? 그럼 님자를 붙여 줘. 붙여주니 그러니까 임금님 정정 미안하면 님짜를 붙이면 되지않냐? 그래 언님이라는 글을 그 말을 가리킨 겁니다. 오시면 체계적인 이론하시지 않아요. 우리말을 찾아야겠다. 예수는 우리말로 하면 언 이시다. 그러면 인간 상식으로 여자를 언 이라고 하지 않아요? 인간적인 하대니까 남자한테는 안 썼다는 겁니다. 남자는 형 형님 중국말입니다. 여자들이 오니까 언니 여자들끼리 쓰니까 타락한 것이지 원어는 우리말이 남자가 쓰는 말이다. 그거에요. 서울사람 양반은 지금도 언 이라고 그래요. 형님이라고 하면 매를 때려요. 이놈 쌍놈이라고 남자가 남자보고 언 이라 했어요. 확실히 그랬어요. 지금 언어사를 보면 그러니까 예수의 말로 인류지론이시다. 사랑이 많으신 형님이시다. 그런 말을 가르쳐 줬기 때문에 그 말이 죽어버리잖아요? 그 시간에 가르쳤으니까 그걸 없애지 않도록 논리를 만들었지요. 그래 자꾸 부른 거예요. 유 선생님이 가신 다음에 다시 부르고 다시 부르고 그럼 지금 목포 수녀원에서는 그 말이 좋으니까 외국말 수녀라고 하기 보다는 우리말로 언 이라하자. 그래 수녀라 하지 않고 언 이라 부르지요. 얼마나 참된 말이 신가 좋은 말이고 그런 뜻으로 불렀단 말입니다. 그러면 유 선생님이 오시면 해방 후에 제일 많이 가르친 노래 진달네란 노래를 가르치지요. 유 선생님은 그거에요. 똑같은 말이지만 몇 시간 가르치는 거예요. 전 학문이 다 나오지요. 진달네라는 말이 예수라는 뜻이에요.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언니, 날 사랑하시고 대신 죽으신 언니, 진달네란 우리나라 꽃에다가 뜻을 담아 노래를 불렀으니까 노래가 되었던 것이지만.  1절 같이 부를까요?


 


 1절만 부르십시오.
1.전원산촌 언덕에 진달래가 피었네.
저도 언니 본받아 오래참고 지리니
진달래가 되어서 언을 얻게 합 소서
진달래가 되어서 언을 얻게 합 소서
 말이 없이 죽어간 어린양을 본받아
 저는 지금 집니다. 언니 짐을 집니다.
 양과 같이 지면서 참말하게 합 소서
 참말하게 합 소서.


 


제가 3초 동안에 들은 말은 ‘꽃을 꺾지 말라’는 말 꺾지 말라는 말만 하지 않으셨어요. ‘자연으로 꽃을 보라’ 교훈을 받으려니 꽃을 꺾지 말라고 했는데 그럼 꽃에 대해서 오시기 전에 또 저 말 한다고 꽃을 꺾지 말라고 그렇게 한 말이 아닌데 생각해 봤어요. 예수님은 뭐라고 했을까? 아까 처음에 읽었어요. ‘저 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보아라.’ 이것을 예수님의 전 인류를 향하여 꽃은 사랑을 이야기 하거든요 우리가 다 꽃이에요. 다 성인성녀가 자기는 꽃이라고 자청했지마는 유영모스승은 ‘손을 대지 말고 멀리서 보라’ 그냥 밖의 꽃이 아니에요. 인격, 저 사람의 됨됨, 타인 ‘저 사람을 그만큼 아끼라’ 그거에요. 함부로 말하지 말라 많이 생각하고 백번참고 한번 말해야지 툭툭 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좋음을 찾으라. 저 꽃이 어떻게 자라나 보아라. 자연계는 유 선생님은 손을 대지 말고 멀리서 보아라가 그 유 선생님식의 사랑이에요.


 


 인류를 향한 우리를 향한 그분의 언어거든요. 그분이 학문적으로 많은 책이 나오지요. 지금 학자들이 손을 대지 말고 멀리서 보라. 유 선생님의 특유한 언어에요. 함석헌 선생님이 꽃에 대해서 이야기 했어요. ‘절벽에 피어서 가시 옷을 입고 절벽에 피어있으라.’ 왜 아무 나무군도 손이 닿지 않아 조심하라는 거예요. 특히 여자들 사람 조심해야지요. 어른들 사랑이지요. ‘가시 옷을 입고 절벽에 피어라.’ 현 동완 선생님은 ‘반절로 꺾인 꽃을 보거든 무심히 가지 말라.’ ‘눈물을 흘리면서 땅에다 묻어 주고 흙을 발라주고 물을 주어라’ 그분 일생을 그렇게 사셨지요. 건강한 사람 안 도와줘요. 병든 사람 나그네 길가다 쓰러진 사람 그 사람을 도와주는 거예요. 특히 여자들 사창가에 있는 사람들 그 눈물을 흘리신 거예요. 죄지었다고 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피가 나는데 약을 발라주고 감싸줘라. 그의 특이한 현 선생님이 하신일 이에요.
현 선생님의 이야기를 내일할까요? 다음에 하겠습니다. 현 선생님의 것은 제가 많이 가지고 있어요.
 이 세종선생님은 뭐라고 했을까? 뽑힌 풀을 심고 물을 줘요. 그분의 인격이 드러나요.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고추를 사모님이 얻어오셨거든요. 그러니까 마당을 파고 바로 고추를 심어놨어요. 한 두 평쯤, 사모님을 조심하니까 말하지 않지요. 사모님 마을에 가신 다음에 안 계실 때 얼른 방에서 나와서 전부 풀을 갖다가 전부 뒤에 심었어요. 심고 물을 딱 줘놨어요. 사모님이 보니까 참 아니꼬워요. 이공님 고추가 익으면 둘이 먹을 라면서 거기는 물 안주고 아무것도 대가 없는 풀을 왜 물을 주시오? 하니까 매일 물을 줘요. 몰래 그 이공님의 영성이에요. 그 말로 하면 다시 말하면 이세종씨가 누구다 그게 들어나요. 그것도 부인 몰래주지, 부인이 싫어하니까 삼가는 거예요. 부인만 안계시면 빨리 가서 물 줘. 그게 이 선생님의 영성이라고 했어요. ‘꽃은 자연이 핀 그대로 보고 꺾지를 말라.’ 그 음성을 들었던 사람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무슨 말씀 하셨을까요? 모든 천지 만물 우주를 다 창조하신 다음에 사람까지 창조하셨지요.


 


 선을 알게 하는 과실을 따먹지 말라. 그렇게 하나님도 한 말씀 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고 그러니까 꽃을 꺾지 말라는 말이 그렇게 쉬운 거 아니 단 말이에요.  아주 신중하게 들어서 새겨야 쓸 말이지 그냥 귀로 듣고 말, 말이 아니란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이건 여담입니다. 쎅스피어가 쓴 글에 이런 글이 있어요. ‘꽃향기를 코로 맡은 것은 우주 법칙에 허락되어 있지만 그 꽃을 맛보는 날에는 심장이 멎어버린다.’ 유명한 말이에요. 그걸 해석하는데 신부가 등장하고 처녀가 등장하는 이야기인데 신부가 꽃밭에서 독약을 만들려고 하는데 독약을 만들어야 사람을 살리지요. 마을 처녀가 와서 신부님이 꽃밭에 있으니까 쫓아 들어갔어요. 어떻게 꽃향기가 황홀한지 막 취해버려요 그래 너무나 꽃이 향기가 좋으니까 따서 입에다 꽃의 진액을 맛보려고 할 때 신부가 깜짝 놀라는 거예요. 안 된다. 그 꽃에서 나오는 물이 네 목으로 넘어갈 때 너는 심장이 멎어버릴 것이다.  독약이다. 그걸 왜 모르고 맛을 보냐 이거에요. 이 흐름이 성경에 계시되어 있단 말입니다. 


 


시험은 받는 것이로되 시험은 당하지 말라. 똑같아요. 교훈은 그러니까 첫째 예수님이 시험에 들어요. 성경 여러분이 더 잘 아실 텐데 누가복은 4장 1절로 보면 예수님이 시험 받지 않아요? 그러면 맛은 보지 않았어요. 죄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았거든요. 그러면 이 선생님은 빠졌다는 것입니다. 시험은 받지 않아 이 선생님은 빠졌던 겁니다. 완전히 자기는 절망했다가 하나님의 사랑 기적으로 헤쳐 나왔다 이거에요. 그런데 누가 나같이 되겠느냐? 자기를 본받으면 안 된다는 거거든요. 이 선생이 본받으란 말이 아니에요. 나같이 되어서는 불행하다. 나같이 되지 마라. 그래서 이 사람들을 보호한 거예요. 자기같이 못되게 하려고 선생님을 본 받아선 안 되지요. 그렇게 되어있어요. 그분 일생이 그러니까 시험에 들었다는 말은 입으로 맛을 봤다는 뜻이거든요. 삼켜 버렸어. 독이 몸에 들어가 버렸어. 독이 그 독이 인간의 힘으로는 안 빠져요. 하나님의 은총의 힘으로 기적이 일어나요. 그래서 이 속에서 죄가 물러가는 거지요. 이선생의 죄가 그건 기적이고 하나님의 특혜지, 자기 힘으로 되지 않는 다는 겁니다. 내가 아는데 시험 삼아 죄에 빠져봐라.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나를 내가 구원 받았다 해서 나 본받으란 말 못하겠다. 그걸 이 선생님이 자기의 고민이었어요. 어느 목사님과 대화하는 소리거든요. 둘이 목사님은 속도 모르고 이 선생님을 존경하니까 나는 그런 사이는 아니라 나는 이렇게, 이렇게 불행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구원받았다는 이건 사실이라. 나같이 죄에 빠져 구원받을 사람 없다. 이거에요. 몇 사람에 불과하지 다 구원 받았다는 거 아니라 는 겁니다.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데 어떻게 그걸 다 빠져 버리느냐? 그겁니다. 그러니까 이 시련을 많이 받아서 구원받은 사람이 베드로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셨고 시험에 빠지지 않으셨고  그러니까 이현필 선생님께서는 시험을 받으셨고 시험을 맛을 봤다는 결론입니다.  그러니까 그 말을 제가 잘못 해석했는지 몰라요 저는 무저갱에 빠졌던 사람입니다. 그게 이 선생님의 고백이에요. ‘목사님 저는 무저갱에 빠졌던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무저갱에서 구원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은총을 말하는 것이고 내 힘이 아닙니다. 예수님 성혈의 사랑이 기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함부로 이 기적을 내가 받았다고 해서 당신도 기적 받을 테니 죄를 지십시오.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이 선생님이 임종이 가까워 코에 숨이 왔다갔다할 때 이런 말 했어요. 저 선생님 하늘나라 어머니 몇 분모시고 인생은 시금석입니다. 난 처음 들었어요. 그 옛날에 쪼그마한 막 속에서 임종이 가까운데 그 다음 다시 건강해졌는데 인생은 시금석입니다. 제가 예수님의 성혈의 사랑으로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나를 본받으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이야기 그때 하셨어요. 나는 이렇게 구원받았으니까 나를 본받으라고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나가되지 말라 그것이 복음인데 당신같이 돼서는 안 된다. 나같이 나를 본받으면 너희들은 죽는다. 예수를 본받으라. 예수를 따라가라 그 말씀이지 나 현필 나를 보고 따라오라.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에요.


 


나는 구원받았지만 타락하게 된다. 한번 빠지면 멸망하기 쉽지. 그때 그분의 음성이 피 맺혔어요. 통곡하는 소리였어요. 저는 무저갱에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구원 받는 것은 예수님의 은총이지만 그걸 권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선생님 찾아온 사람이 있어요. 애기 때 6살, 8살, 12살  찾아오면 자기같이 안 되라고 가르친 거예요.  그 묵시에요. 그렇게 모여 산 사람이 결과가 동광원이에요. 그것뿐이에요. 그래 공동체를 모을 게 없었어요.  찾아오니까 과부 어머니들이 애기를 업고와요. 애기를 맡겨요.  맡고 있는 이상 보호를 해라. 보호해 주는 것뿐이었지 무슨 힘이 있습니까?


 


그랬다는 것을 오늘 저녁에 목사님들 앞에 고백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여러분들이 찬송가 찾아서 불러주십시오.


언님 따라 가만히


1.전원산촌 언덕에 진달래가 피었네.
저도 언니 본받아 오래참고 지리니
진달래가 되어서 언을 얻게 합 소서
진달래가 되어서 언을 얻게 합 소서
 말이 없이 죽어간 어린양을 본받아
 저는 지금 집니다. 언니 짐을 집니다.
 양과 같이 지면서 참말하게 합 소서
 참말하게 합 소서.


 


2.호수위에 피었네. 여기연꽃 피었네.
 소리 없이 고요히 소복하니 피었네.
 손을 대지 말고서 멀리 보게 합 소서
 손을 대지 말고서 멀리 보게 합 소서


3.푸른 물결 거스려 오른 잉어 와같이
 언을 이룬 님 앞에 순종하고 따라가
 거센 파도 이기고 올라가게 합 소서
 거센 파도 이기고 올라가게 합 소서


4.좁은 길을 갑니다. 가만 가만 갑니다.
꽃과 나비 비웃고 별과달이 웃어도
언니 따라 가만히 따라가게 합 소서
언니 따라 가만히 따라가게 합 소서


 

HTML.진달래

진달래
 
지은이
유영모


진달래야 진달래야



어느꽃이 진달래야지



내사랑의 진달래



너만 홀로 진달래야



진달래 나는 진달래



님의 짐은 내질래




진달래에 앉은 나비



봄 보기에 날 다지니



앉은 나비 갈데 없음



지는 꽃도 웃는 고야



안진꿈 다 늦게 깨니



어제 진달래 도다




진달래서 핀꽃인데



안질랴고 피운다 마소



피울 때에 안 이울랴



웃음 한갖 진달래야



님 때맨 한갖 진달래



봄 앞잡이 하이셔



2010/04/10 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