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정방폭포 구경하기 : 36인 성인

mamuli0 2019. 2. 21. 17:35

 천지연 폭포 구경을 하고 정방 폭포를 찾았다. 매표소에서 바닷가로 내려가서 폭포수를 보는데 천지연 포포 보다 더 장엄하다.






36인 성지  


1994.01.27. 김준호 선생


 옛날에는 전염병이 와버리면 갑자기 전식구가 죽은 사람이 많아요.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다 잃고 꼭 한사람 살아나지요. 이 청년도 아주 부잣집 아들인데 전 식구가 전염병이 왔어요. 갑자기 이렇게 혼자되었어요. 그런데 그 상속받을 재산이 어마어마해 아주 재산이 많아요. 그런데 이 소년이 아주 믿음이 있어요. 성경 공부를 많이 해가지고 예수님께서 어느 청년한테 이렇게 말해요. 당신이 참 성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거든 전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 다 나눠 줘버리고 그냥 빈 몸으로 홀몸으로 따라 오라고 그러지요? 나를 따라오라고 그러지요. 그래 이 청년은 그 말씀을 실천해. 전 재산을 팔아가지고 다 모두 불상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그냥 맨몸으로 몸둥이 하나 가지고 길거리에 나가 예수님 따라가는 것이지요. 예수님 본을 받고 꼭 저 산비탈 같아요. 저 산비탈 저 비탈에 와서 용납을 얻어 땅을 용납을 얻었던지 막을 쳤어요. 이 사람의 소원은 무엇이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33년 동안 그렇게 눈물 흘리시고 땀을 흘리시고 피까지 흘리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그  은혜에 감격했기 때문에 나 젊은 몸으로 33사람 예수님이 33년을 와서 수고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내가 33사람을 봉사해야 되겠다. 내 몸으로 받들어야 되겠다. 사랑해야 쓰겠다고 인제 성소를 받지요. 그렇게 해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에 자기가 순종하는 거예요. 33사람이 되도록 막을 쳤다. 물가에다가요. 그러니까 33사람이니까 본인 청년까지 34사람 산다고. 아까 꼭 이 선생이 지도한 것 같이 똑 같아요.









전혀 먹을 것이 없어요. 내일 아침에 먹을 것이 없는 거예요. 오늘 먹을 거 오늘 뿐이에요. 그러니까 아침 기도회보고 기도 끝나면 깡통 들고 나가는 거예요. 시가지에 가서 그날 먹을 것은 그날 얻어 와요. 서양은 좋은 것은 다 익은 밥이 뭐지요? 빵이에요. 빵 한국 같으면 쌀이니까 쌀을 가져다 씻어 솥에 넣어 밥을 지으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그쪽 나라 습관은 빵이 있기 때문에 빵만 얻어오면 국 끓여서먹는 거예요. 아주 쉽지요. 하루 한 끼를 먹어요. 두 끼는 못 먹지요. 33사람이 사는데 다 몸이 이렇게 불편한 사람들이지요. 참 혼자 못사는 사람, 땅에서 버림받은 사람들 33사람을 모시고 사니까 병도 많고 자기 혼자 빵을 얻어다가 국 끓여서 나눠 먹지요. 그래도 아주 사랑이 많고 아주 서로 불쌍히 보고 감격하고 살지요. 식구들이, 그럼 34사람이 살림을 하고 사는데 하루는 또 빵을 얻으러 갔어요. 별장으로 갔던가 봐요. 산비탈에 부자가 와서 사는 별장에 가서 빵 한 덩어리를 구제 하십시오. 그랬다고, 빵 한 덩이를 주십시오. 그 별장 주인이 아주 옛날에 군인 장교였던지 몸이 아주 큰 분이 나오더니 젊은이 왜 왔는가? 빵 한 덩이를 주십시오. 그러니까 주령 아시오? 주령? 그거 뭐야? 지팡이  지팡이를 짚고 옆으로 와, 오더니 확 때려가지고 성성한 놈이 무슨 놈의 빵이야? 일을 해야지. 공장에 가서 일하고 그렇게 돈 벌어가지고 먹고 살아야지, 무슨 얻어먹느냐? 빵빵 두들겨 때린다고 몽둥이로,





그때에 그 할머니는 신자야 성당에 다녀오는 아침인데 미사가 끝나고 오면서 보니까 그 청년은 머리에 환한 빛이나요. 성인이야 할머니가 보기에는 옷이 떨어진 거지인데 후광 머리에 빛이나. 꼭 예수님 같이 보여  할머니의 눈에는 한 30대 청년인데 그런데 할아버지가 패거든. 그래 예수님이 매를 맞는 것 같이 어떻게 마음이 아프던지 쓰러졌어. 졸도해 버렸지. 할머니가 너무 놀래가지고 할아버지가 자기 부인이 땅에 쓰러지니까 겁을 집어먹고 정신 차리라고 그 청년은 가버렸지요? 서 있을 수 없지 않아요? 깨어났어.  그러니까 할머니가 그래요. 아까 그 청년은 거지가 아니라 예수님 이었다. 이렇게 큰 죄를 지었으니 우리는 망합니다. 우리는 인제 할아버지가 그 부인을 아주 존경하나 봐요. 아니 뭔 소리냐고, 그 성성한 놈이 밥을 얻으러 와서 버릇을 고치려고 했다고. 아니요.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쓰겠소? 할머니 속히 그 청년을 데리고 와서 빌자고 잘못을 빌고 그래야 우리가 앞으로 화를 안 받지. 이대로 두면 우리 집이 앞으로 큰 죄를 받습니다. 아 그러냐고. 아 그럼 만일 청년을 안 데리고 오시면 나는 이집 하직하고 간다고. 인제 자기는 혼자 자기길 가겠다고 나는 이집에 안산다고 그러니까 내가 데리고 오마. 할아버지가 나가니 있어야지. 청년이 온데간데없이 어떻게 찾아보니까 다른 마을에 가서 빵 한 덩어리 주십시오. 얻고 있거든요. 아까 할아버지가 오더니 공손히 절하고 청년 내가 아까 잘못 봤소. 용서해 주시오. 우리 집으로 갑시다. 아주 청년이 순해 공손하고 또 매를 맞을 지언 정 따라 왔다고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그러니까 사무실로 들어갑시다. 할머니가 계세요. 셋이 앉아서 이야기해요. 할머니가 울면서 사죄를 해 용서해주십시오. 우리가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예수를 믿지만 할아버지는 예수를 안 믿으니까 판단이 흐려. 그러니까 큰 실격을 하고 잘못했었는데 청년이 절대 할아버지 잘못이 아닙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일을 하고 밥을 먹어야 할 텐데 밥을 얻어먹는 걸 용서해 주시오. 청년이 빌어요. 할아버지가 세상 적으로는 상당히 똑똑한 사람이거든. 사회적으로 경우를 살펴보니까 자기가 부끄럽거든. 자기 행실이 영문 모르는 거지를 때려놨으니 청년은 어찌하여 내 집에 빵을 얻으러 왔는가? 그러니까 청년이 이야기를 해요. 우리 아버지가 아무개입니다. 깜짝 놀라요. 당신 청년 아버지를 아는데 대 부호거든. 부자 집 아들이고 그런데 왜 거지가 되었냐? 부자 집 아들이 예수님 말씀에 ‘모든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 나눠주고 너는 나를 쫒으라.’‘그럼 하늘나라를 주겠다.’는 말씀이 있어서 꼭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젊은 청년이니까 세상에서 불쌍한 사람 33사람을 데리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33년을 고생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모시고 사는데 저 혼자만 건강 합니다. 그래서 농사일을 할 수가 없어서 매일 빵을 얻으러 다닙니다. 할아버지가 나는 이 재산이 많은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 할머니하고 둘이 심심해. 호의호식하고 있어 매일 우리 집에서 빵 기계를 사다가 34사람의 빵을 우리가 찌겠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밥을 안 먹고 빵을 먹으니까 34사람이 먹을 수 있는 빵을 우리가 구울 테니까 이제 다른 마을로 얻으러 다니지 말고 매일 이리로 오라고 그래요.





 할머니가 기뻐서 청년 그렇게 하세요. 그렇게 하세요. 승낙하세요. 승낙하세요. 막 승낙하라고 할아버지 의견을 순종하라고 이 청년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게 이제 화목이지요. 아까 죄지은 거 화목을 했어. 매일 청년은 그 집에 와요. 그러면 빵을 밤새도록 구워 34덩어리지요. 옛날 그쪽 풍습은 한 덩어리가 한 끼야. 그렇게 해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빵을 늘 해주고 그 청년은 빵을 갖다가 먹고 34사람이 잘 살았는데 세월이 흘러가면 어떻게 되요? 아픈 사람이 많으니까 다들 세상을 떠나지요. 그래 뒤에 사람이 묻어줘요. 작년에 할아버지 할머니는 돌아가셨지요. 묻어 드렸지요. 꼭 그렇게 묻어 드리고 묻어드리고 세월이 빨라서 다 묻어 드렸어. 청년도 나이가 늙었어요. 60 넘었겠네. 청년이 아니네. 세월이 흘러갔으니까 이 사람은 건강하니까 오래 살지요. 그 동안에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할머니도 돌아가셨어. 그래서 기념으로 다 모셔다 청년이 뒤 산에다 장례를 했다고요. 뒤 산에 올라가보면 무덤을 세어봐. 하나 둘 셋 넷 세어보면 서른 세 사람하고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몇 사람이야. 무덤이 서른다섯 옳지 서른다섯 이라고 무덤이 딱 있어요. 청년이 마지막 죽었어. 그래 묻어줬어요. 그럼 몇이에요 무덤이 서른여섯이지 그래 36인 성인 성지를 다녀오셨다는 거예요. 그래 인제 그때는 제가 들을 때 스물 몇 살 먹었는데 아주 희망이 생겼어요. 예수 잘 믿던 청년 한 사람이었거든. 그런데 동시에 성인은 더불어 35사람이 다 성인이 되었더라고요. 와 이거 좋겠다. 한 사람이 잘 믿어버리면 전 식구가 성인이 되어버린다. 얼마나 좋으냐? 이 말이야.



 



그때 희망을 품었어요. 아 좋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서른 세 사람은 밥을 얻어다 먹을 수 있겠다. 그때 생각에요. 그래 그동안에 늘 성경적으로 그 말이 과연 맞는 말일까? 그럴 수가 있을까? 늘 생각을 했어요. 물론 예수님 한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 것도 사실이고 프란치스코 한분이 예수를 잘 믿으니까 지금도 얼마나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가지 않습니까? 성인 성녀가 되시고  그럼 맞겠더라고요. 아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이야기겠다. 그 사랑한 요령을 보면 말이요. 사랑을 한사람은 한 사람 뿐이야. 사랑을 받는 사람은 33사람이라고요. 그렇지요? 그 사랑을 이해하고 협력하는 사람은 두 분이에요.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을 한 사람이나 사랑을 받은 사람이나 사랑을 도와준 사람이나 똑같이 상이 같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랬어요. 사랑을 한 사람만 상을 받는 줄 알았어요. 사랑 받는 사람이 성인이 될 수 있을까? 이상하네. 한 사람은 밥을 줬고 얻어먹은 사람이 성인이 되어요. 나사로 천국 갔어요? 안 갔어요? 나사로 얻어먹었어. 나사로는 얻어먹고 천국 갔다고요. 거기는 밥 준 사람도 지옥에 갔는데 오히려 성경에 보면 밥 준 사람이 하늘나라 못가요. 지옥가요. 그렇게 되더라고, 그럼 우리가 생각하기에 상식적으로 준 사람은 존경을 받거든. 좋은 일 한다고, 얻어먹는 사람은 항상 멸시를 받아. 거지, 거지 얻어먹는다고,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얻어먹는 사람이 덕이 높더라고.  거지가 얻어먹다가 하늘나라가 성경적으로 얻어먹어도 성인이 되겠다. 자신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니까 주라고 하는 하나님께서 주라고 하시면 할 수 있어요. 심부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얻어먹어라. 하면 얻어먹는 것도 천명이야.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그러니까 무엇이 더 선한 것이 없더라고요. 준 것이 선한 거라면 얻어먹는 거는 더 선해요. 이 살아 보니까 그렇더라도 주는 사람은 자세가 당당해요. 자세가 내가 준다. 이러거든. 얻어먹는 사람은 항상 부끄러워요. 항상 부끄럽고 미안하고 그래 얻어먹는 사람이 덕이 높아. 하나님 보시기에 훨씬 영혼이 더 하나님하고 가까워진다고. 그럼 인생의 목적은 구원받고 천국 가는 것이 목적인데 줄려고 할 것 없더라고요. 주라는 것은 할 수없이 명령이니까 주지만 받아먹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왜 어렵냐? 불평하고 얻어먹기는 쉽지요? 그런데 감사하고 먹어. 감사하고 얻어먹는다는 것은 마음이 예수님쯤 되어야 감사하지.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면 항상 불만이야. 먹어도 불만, 먹어도 불평, 모두 그건 안 되지요. 그러면 무얼 주던지 얻어먹을 때 감사할 수 있는 영혼은 성령 받은 사람이야. 예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고 얻어먹는 것도 천층만층 실력이 있어야겠더라고. 그런데 여간 마음이 겸손하고 덕이 높아야 감사하고 먹는 것이지. 그렇지 못하면 언제든지 불평해요. 그런데 없으면 불평하고 역시 얻어먹는 사람이 성인이 되었다는 말이 옳은 말이야. 준 청년이 성인이 되었다면 그 덕을 예수의 사랑을 배워가지고 얻어먹었던 33사람이 다 성인이 성녀가 되었다. 그 말이 믿어지더라고요. 그러니까 절대 그 무덤은 그냥 사람이 만든 무덤 아니라고 사람이 괜히 무덤 성인이다. 하지 않았고 실제로 그 뒷산에 묻힌 얻어먹었던 사람이 다 성인이 되었다. 그 이야기를 했어요. 또 직접 그 선에 종사 안 했어요. 별장 짓고 부자 집 할아버지 할머니는 빵만 볶아줬는데 왜 성인이 되냐? 그 사랑은 더 어려운 거예요. 내가 하기도 쉽고 사랑 받기도 쉽지만 사랑을 하도 않고 받지도 않고 제 삼자로서 그 일을 매일같이 동참한다는 거 그게 하늘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땅위에 오셨거든. 예수님이 오셔서 사랑했지요. 또 우리는 받아먹어요. 사랑을, 우리는 거지들이에요. 하나님은 직접 사랑을 안 해요. 그런데 하나님은 하늘나라에서 보고 다 이해하셔. 자기일 같이 우시고 기뻐하시고 그러거든.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그러니까 그 서울서 여러분들 도와주지요. 서울서 라디오 듣고 도와줘야겠다. 전주시내 어른들이, 사람들 굶고 있다더라. 우리가 좀 도와줘야겠다. 그럼 다 천국 가겠다고 그러니까 한 사람이 선한일 하면 33명이 선하지요. 또 불쌍히 보고 빵 준 사람들 저 시내에서 다 선한 사람이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아 이렇게 되는 것이로구나. 줄때에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이야. 섬겨야 하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해요. 나는 대접 받으러온 것이 아니다. 나는 섬기러 왔다. 희생하러 왔다. 그러지요?





그러니까 예수님 마음으로 주는 거, 심부름 하는 거 또 예수님 마음으로 받아먹는 거 뭐 있어야 주고받지. 시내 사람들은 물질을 준다고 빵이랄지 그래 주는 사람이 동시에 다 천국에 동참하겠다. 다 하늘나라 가겠다고 하는 이제 다 믿음이 들어가요. 믿음 다 좋다. 성인이라는 것은 준 사람도 자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고 받는 사람도 하나님의 것이고 멀리서 직접 와서 살지는 않아도 멀리서 소문을 듣고 같이 걱정을 하고 같이 눈물을 흘리고 같이 마음으로 기뻐하는 거 동참하는 거 그래서 그 사람은 가장 높은 사람이다. 가장 하나님다운 사람이다. 참 성스러운 사람이다. 직접 같이 안아봤지만 마음으로 영으로 동참한다는 거 그렇게 이해가 되면서 부자로 살았다면 할아버지 할머니 왜 천국 갔을까? 왜 성인이 됐을까? 했는데 세상 살다보니 이해가 되더라고, 아 그분들도 성인이 되었단 말이 그렇겠다. 그렇게 이해가 가더라고요. 36인 성인의 성지가 있다는 말은  그냥 그렇게 쉽게 들을 말이 아니고 그 말이 믿어지면서 희망이 생겼다고 희망 한 사람만 바로 예수님 잘 믿고 사랑으로 살면 관계된 사람들 모두 같이 하늘나라 가겠다는 그런 믿음을 주셨습니다. 오늘저녁에 기념으로 한번 따라 읽어 보세요. ‘한결같이 따스한 주님의 사랑 어찌 그리도 고귀한지요. 주님의 따스한 그 품안에 고이고이 품어 주시니 그 사랑 어찌 말로다 드릴 수 있을까요? 시편 32편10절 말씀.’





 이번에는 이 선생님 하늘나라 가신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우리가 오기도하고 또 다녀가셨습니다. 직접 이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이라고 저는 느끼고 있고 확실히 꼭 그렇게 말씀 하지 않으셨지만 뜻은 아마 좋은 뜻을 갖고 있는 말씀을 하셨다. 그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깊은 밤중에 길을 잃었는데 첩첩산중이고 날은 추워지고 갑자기 내가 산중에서 죽겠다. 나는 이제 죽어가는구나. 그렇게 생명이 위태하게 된 때가 있었는데 멀리 불빛이 보였습니다.  아 불빛이 보인다. 저기를 찾아가면 오늘밤 내가 구원을 받겠다 싶어서 그 불빛 찾아서 산에 들어가서 보니 막이 있어. 산막이, 그래 불빛이 있는걸 보면 분명히 방에 사람이 있고 하루 밤 재워주십시오. 아 거 누구시오? 빨리 들어오시오. 이 추운데 누구십니까? 이 깊은 산중에 누구십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신이 썩어져 내려가는 곧 죽어가는 나환자지요. 나병환자 인데 참 사람이 너무 귀한 사람이라서 어떻게 반가운지 아이고 추우신데 이렇게 추우신데 어서어서 아랫목으로 내려오십시오. 이불도 다 떨어져가지고 고름이 묻어 가지고 냄새가 진동하는데 어찌되었든지 방에 들어왔으니까 저는 곧 동이 트면 갈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윗목에 잠깐 앉았다 가겠습니다. 참 감사 합니다. 그래도 젊은 나이니까 전염병 이니까 공포심이 있지 않겠어요? 아 병이 무서운 것인데 병이 전염 되는 것이라면 여기 잠간 앉았다 나가겠습니다. 그런데 그 환자 하시는 말씀이 여기가 참 춥습니다. 벽도 변변히 가리지 않고 이렇게 너무 방이 추운 바람이 들어오지요. 그러니까 곧 방이 식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아랫목으로 내려오세요. 아 여기도 감사합니다. 여기도 좋습니다. 아 차신데 이불을 좀 덮으세요. 냄새가 진동 지독하니까 발만 덮으셨다는 거예요. 윗목에서 아 그러지 마시고 그냥 이불 속으로 쑥 누우십시오. 도저히 그게 허락이 안 된단 말이야. 그러나 밤 열두시 한시 세시가 되가니까 방도 식어간단 말이지요. 그렇게 웃풍이 세고 방이 몸에 얼어붙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반쯤만큼 아랫도리만큼 이불을 덮었는데 아 그러지 마시고 아랫목으로 쑥 내려오세요. 내려오세요. 이제는 결국은 너무 추우니까 인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이 말씀입니다. 결국은 차츰 차츰 이불속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그러니 찌걱찌걱 뭐 고름도 묻고 그러지 않겠어요? 그런데 아침 동이 트면 가리라 싶었는데 참 수 백리를 걸었든지 노독이 심하고 또 밤에 그렇게 떨었기 때문에 감기가 왔는데 물론 감기를 앓고 다니다가 들어갔겠지요? 그러니까 열이 40도 이상이 올랐어요. 그러니 몸이 천근만근 들어지지 않아요. 몸을 부려가지고 목이 튼단 말이야 가슴에서 불이 나고 목이 트는데 물이 먹고 싶단 말이야. 물 좀 주십시오. 그 환자가 기어나간단 말이에요. 기어나가서 그 더러운 바가지에다가 냉수를 떠서 주는데 어떻게 물이 달고 감사한지 꿀떡꿀떡 마시고 인제 살 것 같단 말이지요. 퍽퍽 울었지요. 마음속으로, 너무 자기 자책 심, 내가 환자를 차별 했구나. 그거에요. 내가 은인을 몰라보고 환자라고 멸시 했구나. 내가 아쉬워서 들어와 가지고는 환자인줄알고 괜히 들어왔다. 후회도 했고 내가 얼마나 못된 사람인가? 바로 이분이 예수가 아닌가? 그런데 몸은 안 낫고 일주일인가 그 환자 간호를 받고 병이 나았단 말이지요. 그렇게 보니 결국은 평소에 무시하고 멸시하고 천대하고 괄시하고 차별했던 그 문둥이가 아니면 나는 죽었다. 이분이 나를 살려준 은인이다. 이렇게 결국은 그렇게 되었단 말이지요. 그래 천하에 누가 내 참 은인인가? 나를 살려준 사람이 누구냐? 말이야. 세상에서 버림받은 이 나병환자가 아니면 누가 나를 살려줬던가? 세상일 이라는 건 알 수 없다는 말이야. 누가 내 은인이 될 것인가? 돈 많고 건강하고 잘났고 똑똑하고 학문 좋고 그 사람이 나를 살려줄 사람인가? 평소에 아이고, 저런 것 저런 문둥이 저런 더러운 사람 그렇게 침을 뱉고 그랬는데 그 사람이 나를 살려줄 은인이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을 못했단 말이지. 그런 은혜를 받고 보니 세상을 보기를 소위 말하면 개혁이 일어났다고 개혁, 거꾸로 보기 시작했다고 거꾸로, 그럼 예수님 말씀하고 똑같지요. 회개하라. 그 말이 뭔 말이야? 거꾸로 살아라. 이 세상을 거꾸로 살아라. 마음부터 사는 생활, 모든 마음가짐이 정반대로 살라는 말이야. 정반대로, 그래 예수님 말은 더 쉽지요? 부자는 천국 못 간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가난한 사람은 천국 간다. 그 말도 거꾸로 보는 거지요? 세상일을 거꾸로 보는 거라고 또 배부른 사람은 불행하고 배고픈 사람이 복이 있다. 그것도 거꾸로 보는 거지요? 또 웃는 사람은 불행하고 우는 사람이 행복하다. 그것도 거꾸로 보는 거지요? 전부 거꾸로 보는 거야. 거꾸로 살아라. 이 세상을 거꾸로 살아라. 즉 그런 깨달음을 얻는 것은 체험이지요? 체험 세상을 살다 보니까 그런 경지에서 깨달아. 아 세상은 이렇게 되는 거구나. 평소에 몰랐던 일인데 이렇게 내가 은혜를 받다니 세상에서 버림당하고 깊은 산속에 와서 죽어가는 환자한테 오히려 내가 도와주기는커녕 그 사람한테 내가 구원을 받고 생명의 은인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체험이지요. 체험  그쯤 되고 보면 천하만사를 바로 보는 거지요. 예수님 마음으로 보는 눈을 얻었다 천하만사가 전부 영으로 보는 거지요. 외모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다.





마음으로, 그래 예수님의 친구는 누구야? 전부 환자 버림당한 사람들 아닌가요? 또 기생 잡놈 또 뭣입니까 그 세리라는 말은 세상말로 하면 돈치기 양심도 없고 아주 그냥 철면피 흡혈귀 그런 말을 듣던 사람들이거든. 아주 악당 더러운 놈들 매국노 나라를 팔아먹는 놈 그런 사람을 예수님은 친구로 삼은거야. 세상을 거꾸로 보시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 눈에는 버림당한 사람들이 예수님 친구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볼 때에는 거꾸로 보니까 예수님이 볼 때에는 장로 지금 같으면 목사 그러지 않아요? 제사장 서기관 그런 사람하고는 친하지 않거든요. 오히려 친해야 될 사람하고는 전혀 남이 되어버리고 도 차별대우하고 옆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죄인  환자 하고는 친하시고 그게 거꾸로 사는 것 아니겠어요? 외모로 보시지 않고 영으로 보시고 사신 분이시다. 그러니까 요한복음 6장 63절에 결론을 말씀 하셨어요. 아까 뭐라고 읽으셨지요? 63절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니다.’겉치레가 아니란 말이야. 좋은 집짓고 건강하고 또 뭐 돈 많고 가사 그것이 다 겉치레 껍질이지요? 참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야 마음이지. 마음,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영적인 생명에 관한 것이었다.



 



33년 동안 하신 말씀 전부 영적인 말이에요. 육신에 관한 말이 아니다. 교훈이 영혼에 관한 것을 교훈 하셨지. 육체에 관한 말씀을 한 것이 아니다. 그런 말씀 이지요. 결론이니까 하늘나라 가시기 전 바야흐로 결론으로 하신 말씀 따라 읽으십시오.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생명에 관한 것이었다. 요한복음 6장 63절 말씀.’그렇게 우리가 생각을 하고 여기 우리 계명산 식구들을 쳐다봐요. 세상에서는 다 짜잔한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아요. 그러지 않아요? 뭐 똑똑하고 유명한 사람이 모인 것 아닌데 예수님 눈에 볼 때는 금싸라기들이 모였어요. 금싸라기, 천국 공주 천국에서 여왕 되실 분들이 모였다고, 예수님의 가장 사랑 짝이 될 사람들이 모여계신다고 그런 뜻으로 외모로 보면 참 보잘 것이 없는데 마음으로 영으로 바라보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희망이 보이고 그래서 참 감사합니다. 꼭 이 선생님이 그 이야기 한 거는 아니에요. 이 선생님 그 주변에 이 선생님 모여 계실 때 한 이야기가 또 있어요. 꼭 그건 이 선생님이 창작한 이야기도 아니고 옛날부터 전수 수천 년 전부터 전해오던 이야기인데요. 이번에도 장로님 모시고 몇 사람이 따라왔지요.





그러니까 아주 나이가 많으신 스승을 모시고 청년 세 사람이 길을 떠납니다. 한 1900년 전이나 되려는지 가을이에요. 때는 가을이고 나락이 익었어요. 끝이 아득하게 가사 김제 들 같은 데는 끝이 안 보이지요? 누런 나락이 익었는데 주의를 해요. 그 노인 할아버지께서 따라오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렇게 피땀 흘리고 농사를 지은 그 나락 밭을 우리가 지나갈 때인데 명심하라. 나락 한 톨이라도 이렇게 손에 다쳐서 떨어지면 큰 참 누가 된다. 네, 그러고 따라가지요. 한 청년이 혈기가 많으니까 빨리 가다가 그랬던지 나락 세알이 떨어 졌어요. 손에 받쳐가지고 누렇게 익었으니까 스승이 알고는 깜짝 놀래요. 이것이 웬일이냐? 이렇게 어떻게 길을 이렇게 갈 수 있느냐? 말이야. 생명의 길을 가는 사람이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선 사람이 이렇게 길을 경솔하게 갈 수 있냐? 나락 셋을 네가 여기서 떨친 대가로 보응으로 소가 되어서 이 논에 누워있으면 주인이 올 테니 주인 따라 3년 동안 쟁기질 해주고 오너라. 그랬다고요. 갑자기 소가 되어버려요. 장로님 능력이 많지요. 누가되었는지 우리 세 사람이 따라왔는데 소가 되어버렸어. 한 사람이 그러니까 주인이 해가질 무렵에 오더니 소가 한 마리 있거든요. 자기 논가에 무슨 놈의 소냐? 끌고 자기 집으로 갔어요. 3년 동안 부려 먹었지요. 쟁기질하고 그러니까 그건 모두 비화 아니겠어요? 비유로 한 이야기니까 이제 둘이 따라가지요. 한 사람은 소가 되어버렸으니까 둘이 따라가는데 산을 넘어가요. 태산준령을 넘어가는데 얼마나 땀이 납니까? 그 산을 올라가는데 그런데 다 올라가서 중턱 더 올라갔는데 거기에 우물이 있어요. 목이 마르니까 한 청년이 그래요. 선생님 나 물 좀 마시고 가겠습니다. 그래라. 그랬어요. 그래 물을 먹으러 가버렸지요. 한 청년은 그래 한 청년을 데리고 둘이 올라가요. 산꼭대기로,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기다려요. 물 먹고 오도록 그런데 해가 다 지도록 오지를 않아요. 잠깐 물 먹고 올 사람인데 오지를 않아요. 그래 한 제자가 물어봤습니다. 아니 열 번도 오고 가고 할 시간인데 왜 안 올까요? 글쎄 모르겠다. 그랬어요. 제가 가볼까요? 잠깐이면 가볼 수 있거든요. 우물이 그렇게 멀지 않으니까 그럼 가보고 오너라. 그래 가니까 댓 시간이나 되었든지 상당히 기다렸거든요. 가서 보고 와서 이야기를 해요.






 아 선생님 슬픕니다. 왜 그러냐? 호랑이가 다 잡아먹어 버리고 뼈만 남아 있습디다. 먹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래 스승이 이렇게 이야기해요. 너 아까 우물을 지나올 때 뭐 본 것 없냐? 예, 저는 본 것이 있습니다. 뭘 봤는가? 어여쁜 미인이 거기 우물가에 앉아있습디다. 그것이 미인이냐? 호랑이지. 선생님 말씀이 그러더라고 호랑이가 잡아먹어 버렸다는 거야. 너의 눈에는 미인으로 보이더냐? 내 눈에는 호랑이로 보이더라. 어서 길을 가자. 둘이 하산을 합니다. 산을 내려갔어요. 강이 나와요. 큰 강인데 저쪽 가야하는데 강 가운데 섬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천도, 복숭아가 열려있더랍니다. 천도복숭아 그 복숭아 하나 먹으면 영생을 해. 죽지를 않아. 천년만년 안 죽는 복숭아인데 스승이 강을 건너다보면서 천도복숭아를 우리가 따먹고 싶은데 어찌할까 그러니까 제자가 그래요. 선생님 제가 물을 건너가서 따오겠습니다. 그래라 그랬어요. 청년이 헤엄쳐서 그 섬으로 가다가 갔지요. 능히 갔어요. 가서 천도복숭아 두 개를 따고 허리에 차고 다시 건너와요. 그래 며칠을 굶었던지 힘이 다했어요. 자기 온 힘이 다 빠져 버렸어요. 결국은 못 건너오고 물에 빠져 죽어요. 죽어버려요. 그래 물에 둥둥 떠내려가 한강보다 훨씬 넓은 강이니까 끝이 아득하게 중도에 오다가 그냥 떠내려가 버려. 그래 그 송장이 밀리지요. 저 하류 쪽으로 인천 쪽으로 밀려가겠지요? 가사 여기서 떠내려가면 스승은 강 따라서 내려가. 그래 그 송장이 밀려 쭉 강가에서 밀려서 딱 끄집어냈어요. 스승이 제자 송장을 끄집어냈어요. 몸둥아리를, 그러니까 인제 물을 많이 먹고 죽은 사람도 있지만 물 안 먹고 이 숨이 막혀 죽은 사람은 물을 별로 안 먹지요. 어찌되었든지 인공호흡을 시켜서 살렸어 선생님이 살아났어요. 살아났으니까 강가에 둘이 앉아서 천도복숭아 먹어요. 스승과 제자가 둘이 이제 먹었으니까 이 사람 둘이 안 죽지요. 안 죽었으면 지금 어디가 있을까요? 안 죽었으니까 지금까지 살아있겠지요? 안 죽을 사람이니까. 그래 두 사람은 영생 하는데 그때 둘이 이야기를 해요. 스승이 물어봤답니다. 너 강을 건너오다가 뭐 본 일없냐? 네, 봤습니다. 무엇을 봤냐? 영이 봤지요. 제가 보니 제 몸둥어리, 자기 몸둥어리가 송장이지요? 둥둥 물위로 떠내려가는 것을 봤습니다. 그랬다는 거예요.





죽었지요? 자기는 죽고 영혼이 자기 시체를 봤지요. 그 이야기 전부에요. 이야기 전부이고 해석은 여러분들이 하세요. 각자가 해보세요. 무슨 뜻인지 저는 저대로 세상을 살다 보니까 그런 뜻이 아닌가? 경제에 마음을 이렇게 빼앗기다보면 소 같이 인생이 늙어 버린다고, 소 같이 아무 뜻도 없이 영적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소 같이 살다가 죽어버려. 또 아까 우물가에 미인을 보고 쫒아 갔지요? 그러니까 그건 이제 소위 말하면 인제 세상이라고 합시다. 세상에 눈을 뜨다보면 뼈만 남고 살은 다 빠져버려. 거기에 일생을 자기가 녹아나도록 희생을 당한다고, 세상 화려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하면 그러면 예수님 같이 진리를 따라간다고 진리를 따라가다 순종하다보면 예수님 같이 죽어요. 십자가를 지고 죽는 길이 길이야. 그리고 결국은 죽어요. 그리고 부활 하늘나라 간다고. 참 진리라는 것은 한번은 죽어야해. 한번을 죽어. 그것이 동양 한국 동양에 있는 묵시록이거든. 그런 이야기는 계시록도 되고 묵시록도 되고, 상징이고 비유고 또 일종의 복음이거든요. 그럼 성경이 여기서 다 들어나요. 그 이야기 한마디에서 옛날 비유랄지 그런 이야기들이 다 뜻을 속에 감춰가지고 이야기 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수천 년 전부터 그런 이야기를 해주신 우리 상고 어른들이 계셨다고, 진리를 따라가는 어른들이 옛날 에 사시면서 그런 묵시를 우리한테 전해준 것이지요. 그럼 성경을 찾아보면 분명하지요. 그런 말씀이



 



 이제 성경을 찾아볼까요? 아까도 27절에 그 말씀이 나오시더만요. 예수님의 말씀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눈에 안 보이는 것이지요.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애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 애쓰라.’양식이라는 말도 비유에요.  비유, 입으로 먹는 양식이 아니에요.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애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 애쓰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 이 양식은 예수가 줘요. 예수가 주는데 이 양식을 주고 오너라. 하고 하나님이 보냈단 말이야. 예수를, 그럼 그 양식은 무엇이냐? 결국은 아까 55절에 나오지요? 예수님이 우리한테 주신다는 양식이 무슨 양식이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모두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안에 있다. 결국은 자기 살과 피를 주시겠다는 것이거든요. 그게 썩지 않는다. 그걸 먹으면 안 썩는다. 그러니까 그렇게 이야기 하시다가 63절에 이야기 하시지요. 결국은 생명을 주는 것은 예수 살도 아니고 피도 아니야. 영이에요. 영, 영을 말하는 건데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니다. 예수님 살도 육이 아닙니까? 피도 육인데 그걸 말하는 게 아니라고,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살도 아니고 피도 아니고 영적인 생명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신걸 보면 알아들으라는 말씀인데 뜻을 알아들으면 알아들을 것이고 모르면 영원한 비밀이야. 영원한 묵시라고 영원한 계시이고 항상 감추어 있지요. 이제 깨달은 사람은 깨달으라. 그 말씀이고 깨닫지 못한 사람은 그대로 그냥 할 수 없지요?





그대로 살아야지. 뭘 의미하는 것이냐? 영안이 열려야 돼. 영적 눈이 떠져야 알아듣지, 육신의 귀로는 알 수 없는 말이라고. 56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모두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안에 있다. 57절,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능력으로 내가 산 것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내 능력으로 살 것이다. 살이니 피니 그건 먹으면 뭐해요? 눙력이 생기지. 우리가 두부도 해먹고 밥도 해먹고 먹는 것은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니야. 능력을 얻으려고 먹는 것이지, 힘을 얻으려고 먹는 양식이지, 양식을 먹으려는 것은 목적은 아니에요. 먹고 살과 피를 얻으려는 것이지요. 방법이지요. 그러니까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참 양식은 예수님 살이고 참 음료는 예수 피다. 이 말이야. 그것도 감추어진 말씀이야. 그래 들을 귀 있는 사람이 들을 말씀이지 아무리 들어봐도 그 영원한 비밀이야. 아까 이 선생님 마냥으로 죽을 고비에서 나환자한테 냉수 마시고 산 다음에 깨달았단 말이야. 아 이것이 예수 사랑이다. 그거 깨달은 사람의 이야기지 문둥이한테 물 얻어먹은 이야기가 별 이야기도 아니거든요. 깨달은 사람은 아 그 사람이 예수였구나. 문둥이가 아니고 그분이 내 생명의 주인이고 나를 살린 은인 이었다. 그 사람은 깨달은 것이지, 제 삼자가 들어봐도 이상한 이야기에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능력으로 내가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사람들도 내 능력으로 살 것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참된 떡이다. 너희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고도 죽은 그런 떡이 아니다. 이 떡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다. 이렇게 말씀 하셨다고. 그 말씀 하신다음에 63절이 결론이니까 따라 읽으세요.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생명에 관한 것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 말씀. 그래 요한복음 6장 63절을 우리가 깨달아야지요? 무슨 뜻인지 마음으로 깨달아야지요? 그거 못 깨달으면 그거 예수 살을 먹어도 얼마나 있어야 되겠어요? 한 4-50 먹으려면 뭐 몇 십 근을 갖고도 모자라지 않겠어요? 영혼이 그것도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참 헤맨다고요. 예수 신자가 수백만 이라는데 아니 수백만이 아니라 얼마나 되려는지 수억인가 팔억인가 날마다 예수 살을 먹고 살려면 얼마나 살이 있어야 되겠어? 그래 못 알면 영원히 모르는 말이야. 그거 알아들어야지. 그러니까 내 살을 먹으라니까 참말로 살을 먹겠습니까?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인데 영을 먹어야지, 육이 아니야. 육이 아니야.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생명에 관한 것이었다.‘그렇게 생각을 해보면서 풀어 그 말씀을 풀어서 깨달은 분은 어제 이야기 했지요. 요한1서 2장 2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친히 제물이 되셨습니다.‘제물이라는 게 통상 고기 아닙니까? 고기, 짐승 잡아가지고 삶아야지요? 그래야 제물이 되지, 어떻게 제물이 날것을 드립니까? 제물이지요? 우리의 죄 뿐만 아니라 온 세상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제물 제물이 되셨다. 이 말도 비유고 계시고 묵시고 깨달으라는 말씀이지. 결국은 사랑 사랑을 의미하지 않아요?





사랑, 사람은 사랑의 동물이라고 합디다. 아무리 돈 많고 배불러도 그것 갖고 못 살아요. 허전해서 사람은 사랑을 먹어야 행복하지요. 예수 사랑, 또 히브리서 10장 5절인데요.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당신은 율법의 희생 제물과 봉헌 물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게 제물이거든. 제물이라고 한다면 실제 제물은 소고기 양고기 그거에요.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이 원치 않아요. 제물을 바치라고 해놓고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까 참말로 소 잡아 바치니까 그거 나 싫다. 나 원치 않는다. 그래, 인제 유대교가 2천년 몇 천 년 되는지 몰라도 지금까지도 소 잡아 바치는데 하나님은 그거 싫다. 그러지요. 그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일평생 헤매요. 예수 믿는다고 그래서 저를 참 제물로 받으시려고 인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아, 나를 내 몸둥어리를 제물로 잡수시려고 내가 사람 되게 하셨구나. 그렇게 깨달았어요. 당신은 번제물과 속죄제물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성서에 기록된 대로 제물이 되기 위해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제가 사람이 되었습니다. 깨달으시고 33세에 제물이 되신 것이지요.





깨달으시고, 제가 제물이 되겠습니다. 그건 내 살을 먹으라고 했으니까 확실히 제물이 되어야지요. 되었지요? 그래 이 말씀도 사랑 아니겠어요? 사랑, 하나님께 사랑을 바쳐드렸어요. 하나님께 자기 사랑을 바쳐드렸다고, 말귀 알아들으면 쉬워요. 아, 사랑을 바쳐드렸구나 그럼 이제 그 말씀을 깨달은 분이 로마서 12장 1절에 뭐라고 씁니까? 그 예수 말씀 알아들은 분이 예수님 말씀을 알아들었어. 자기가 아, 예수님 말씀은 이런 뜻이었구나. 그러면 예수 쪽에서는 나라위해 자기 몸을 제물로 주시고 희생의 제물이 되시고 나를 사랑하셨는데 그러면 품앗이요. 부모는 자식한테 그렇게 했으면 자식 쪽에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자식 쪽에서는 부모한테 어떻게 해야 맞느냐? 어떻게 도리 해야 할까?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에게 부탁 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그래 품앗이지요? 우리 쪽에서 제물로 바쳐야지요. 예수께서 우리한테 제물로 바쳐서 주셨으니까 살과 피를 주셨으니까 또 우리 살과 피를 바쳐드려야 해. 드려야해. 그래야 맞지. 여러분의 몸을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일을 생각할 때 이것이 무리한 요구가 요구이겠습니까? 아까 예수님이 사랑하셔서 자기의 살과 피를 주셔서 우리가 먹었는데 그럼 여러분의 살과 피를 바쳐라. 그게 무리한 말이냐? 이 말이야. 억지소리냐? 무리한 요구냐? 무리한 말씀이겠습니까? 그렇게 말씀 했다고요. 그래 우리 몸을 제물로 바쳐라. 그렇게 교훈을 주신분도 있습니다. 이 말도 바로 알아들어야 해요. 이 말도 바로 알아들어야지. 못 알아들으면 형식에 그친다고. 형식에, 예배 봤다. 아 예배 봤다. 그리고 끝난다고 예배 보면 몸을 바친 것입니까? 일평생 헤맨다고. 그것도 몸을 바친다고 하면서 참 예배는 그렇게 드리라고 했으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자꾸 말씀을 요한복음에 자꾸 말씀 하시지요? 요한복음 15장 9절에 그렇게 말씀해요. 알아들을 만한 사람은 바로 알아들으라는 말이에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랬다고. 예수 아버지는 하나님인데 하나님은 몸이 없어요. 손도 없고 발도 없고 눈도 없고 코도 없어. 하나님 사랑을 받았다 하시는 거예요. 그것도 영이 있어야 받아 듣지. 참말로 하나님이 할아버지시고 손이 발이 있고 내 아들아 그러고 하나님이 사탕을 주셨겠어요? 밥을 주셨겠어요? 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 하였으니 내 사랑 안에 살아가라. 내 사랑, 내 사랑 그러니까 하나님은 영이시지요? 영, 몸이 없지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어요. 예수님이 예수님은 또 그 사랑을 받았으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요한복음 4장에 있지 않아요?





 참된 예배는 어떻게 봐야하냐? 참된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하냐?  사랑은 사랑인데 무슨 사랑이냐? 용서의 사랑을 주신다. 용서의 사랑 진리를 주셨는데 무슨 진리냐? 용서의 사랑이 들어있는 진리를 주셨다. 용서의 사랑 그러니까 요한복음 15장 12절에 그러지 않습니까?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많이 하셨지만 참말은 무엇이냐? 바로 직설이, 바로 말한다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그 말이에요. 쉽고 쉬운 말씀,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거에요.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따라 읽으십시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요한복음 15장 12절 말씀, 아, 그러고 보면 그 죽어가는 문둥이가 이 선생님 죽어갈 때 냉수를 떠드린다고 그래 병이 나았다고 뭐 객지에서 죽어가던 사람이 살아났어. 그게 참 사랑 아닐까요? 참 사랑, 평소에 사랑은 건강한 사람이 환자 사랑하는 게 사랑인줄 알아요. 속고 살아요. 죽어가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을 살려내는 거지요. 영적 의미로, 영적의미로, 전부 그렇게 하나님은 일 하세요. 그러니까 우리 자선사업 하는 사람들이 속고 살아요. 건강한 직원들이 환자들 살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