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해, 맞이 하는 해
요즘은 매사에서 희비곡선이 폭 넓게 그려진다. 여러가지 자료와 분석표를 보면,
빨간 신호가 대부분이다. 소위 빛 좋은 개살구라,
서로의 얼굴들을 보고 추억과 인연을 담아야 한다.
12월의 일정을 보니, 참 아찔해 온다. 그렇게 일년을 또 마감하며,
가끔 눈을 감아 보노라면, 지나간 세월이 어제의 일같이 떠 오르기도 하고,
먼 옛날의 흐미한 그림으로 각인 되어 옴을 느낀다.
우리는 아직도 남에게 기부하는 삶을 자주 가져보지 못한 민족이라서
지나간 시절에 정부 주도의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각 그룹들에 의존했던
타율적인 기부 문화의 기억이 떠 오른다.
또 한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크리스머스와 송년의 밤.
얼마나 회수를 거듭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사실, 인간은 시한부 인간임엔 틀림없다.
90에서 100세의 장수자가 이젠 주변에서 그리 귀하지 않게 보게되고,
가끔씩 부고 전화를 받고, 빈소를 찾아서 조문을 해보면,
대체로 아흔은 넘어야 호상으로 여기게 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
누구의 말대로, 우리는 세상에 소풍을 왔으니.소풍을 마치고는
어디론가 각자가 떠나야 한단다. 그래서 살바에야 좀더 의미있고, 가치있게
살아야 된다고 강조를 들으며, 산다.
세월은 추억을 먹으며 그 세월을 귀하게 여기면서 사람을 만난다.
년말이 닥아오면, 그동안 못 만나던 친구와 친지와 세월속에서 사회에서,
혹은 해외에서 부딪히던, 그 모든 사람들을 전부 다 만나고 송년의 회포와
세월을 담아 모으는 만남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엔 세월속에서 남에게 자선을 하던 기억이 그래도 보람으로 남는것 같다.
자선은 물질만 주는게 아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시간,
재능, 마음을 나누는것도 자선의 일부이다.
흔히들 모든 모임에서 년말이 되면, 당연히 망년회, 송년회를 갖는 통지가
중복이 되게 모인다. 그렇게 하여, 또 추억을 만들며,
또 한해의 세월을 떠나 보내는 아쉬움에 빠지게 된다.
내가 주관하는 모임도 우편으로, 문자로 통보를 했다.
조금은 부담을 주는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엔 아직 미국의 록펠러같은 자선 사업가가 스스로 출현을 못하고 있다.
꼭히 법적으로 제재를 당한 이후에 큰돈을 사회로 환원 절차를 밟는다.
너무나 유명한 사실을 우리는 실화로 매체를 통해서 잘 알고 기억하고 있다.
미국의 억만장자 록펠러가 암에 걸려서, 1년 시한부 인생을 의사로 부터
통고를 받았다. 본인으로서는 대재벌로서 참으로 암담했을것이다.
록펠러 어머니의 말씀이, " 아들아, 곧 세상을 떠날테니, 네 마음껏 자선 사업이나 하고 가렴."
그 어머니는 강하고 지혜롭고, 세월속의 인생을 너무나 맑게 사신 분이다.
록펠러는 그때부터 자선 사업을 시작했단다.
우리나라의 재벌들처럼 법과 강압에 못이겨 내놓는 자선사업이 아니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아낌없이 보내고, 직접 방문도 하고, 단체에 기부를 했다.
그는 " 아 !! 이렇게 가슴이 확 트이고, 표현할수 없이 행복하구나.!!"라고 했다.
결국 록펠러는 의사의 1년 시한부 생명의 선고에도 불구하고,
그 후로 무려 40년이나 더 살았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인의 자선 사업을 얘기하면, 제일 먼저 록펠러가 떠 오른다.
얘기가 잠시 빗나간것 같다. 이게 60대의 어쩔수 없는 세월속의 내 모습인가 ...
아마도 그날이,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의 초입에 이르는 교대식과 겹쳤는가 싶기도 하다.
아직은 달랑 한장 남은 카렌다가 외롭게 졸고 있는데...
시간은 정한 속도로 돌고 있고, 추억은 매일 매일 쌓아만 가고 있다.
이제는 그 추억이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지고, 보람된 아름다운 추억만 쌓아 갔으면 좋겠다.
그 상대가 우리속에 있어서, 인생의 동무가 늘었으면, 더 아름다운 추억을 품고
세월을 더 소중하게, 값지게 여길수 있을것 같다.
( 2007.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