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고개숙인 기장 : 공순언님 증언

mamuli0 2024. 6. 25. 12:13

오늘은 6월 25일 6.25를 겪은 세대들이 많이 갔다.  세상은 언제나 시끄럽고 불편하다. 경기도 화성에서 화재로 많은 사람이 숨졌다. 이상기후로 세계가 재변이 많다. 외국인 숙소 기초공사를 한다. 오늘에야 밤콩을 심었다.

 

 

공순 언님 증언

이 시간에는 공순 언니가 나오시는데요. 희옥 씨 어머니하고 같이 계명산에서 오셨습니다. 한 짐작으로 한 30년 좀 넘었는가 싶었는데 그때 한나 씨 어머니 희옥 씨 어머니 모시고 계명산에 들어가셔서 한 30년 이상을 거기 어머니들 모시고 수고한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수고와 희생을 치르시면서 수고하신 언니입니다. 이 선생님 시간제한 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말씀 드릴 줄도 모르고 말씀은 드린다 해도, 동으로 왔다 서쪽으로 왔다 그럴 겁니다. 선생님 만난 동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제가 선생님 만나기는 19살 때 6.25전에 만났습니다. 뵈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6.25 직전에 선생님이 저를 찾아 오셨어요. 그 전에 두어 번 뵈었는데 뵈옵고 6.25 직전에 찾아오셔서 그때 제가 외롭게 지내던 판인데 선생님 만나 뵈옵고 얼마나 반갑고 참 눈물로 뵈옵고 선생님 떠나시면서 저한테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갖으시는 것 같아요. 가시다가 길을 못가시고 도로 가자고 하시더래요. 그러다가 쉬고 앉아 계시다가 그 길을 떠나셨는데 그 후로 6.25가 났는데 제가 6.25후에 선생님을 아무리 뵈려고 해야 뵈올 길도 없고 내가 예수는 잘 믿고 살아야겠는데 어느 길을 가야할까 방황중인데 어머니께서 교회를 다녀오셨는데 광주는 여자들만 모여서 사는데 직조도 짜고 남자 하나도 없이 그런 데가 있다더라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래서 이야기가 얼마나 귀에 번쩍 뜨이던지 교회도 안 나가고 있다가 그런 다음부터는 이 선생님만 생각하고 그래서 교회도 안 나가고 있었어요. 어머니만 나가시고 그 소리 듣고 귀에다 붙어서 여기저기 알아봐가지고 광주를 나와 가지고는 시골에서는 살수가 없어요. 젊은 사람이, 그래서 시내에 나가서 살면 누가 누군지 모르니까 공장 생활이라도 하면서 예수 좀 잘 믿고 살아야지 이 선생님을 만나면 다행인데 못 만나면 어쩌나 그리고 나왔는데 그때 수피아 학교 정문 앞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때 참 어려운 때인데 선생님이 아주 어떻게 반가운지 그때 YMCA 양림동 회관인데요. 거기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가지고 선생님하고 어떻게 살겠냐고 그래서 쑥 죽만 먹고 사는데 어떻게 살겠냐고 그래서 ‘그래도 살아요.’ 하니까 막 웃으시면서 그래도 살겠냐고 그래서 그때부터 살게 되었는데 그때 고아원이 시작이 되었는데 고아원을 하는데 제가 시골에서 자라서 배운 것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아주 험한 학생들을 한 16명을 저한테 맡기셨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하고 같이 사는데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는데 더 잘하시는 언니들이 있는데 왜 저한테 이런 일을 맡기시냐고 금남언니한테 늘 말씀을 드리면 또 바꿔도 봤다가 또 제가 들어가고 그런데 그 천사들 덕분에 제가 사랑을 선생님한테 특별히 많이 받았습니다. 그분들이 늘 사회에서 살면서 잘못 된 일이 많아가지고 저녁이면 각 반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예배드리면 그 사람들이 다 자복을 해요. 자복을 듣고 이 선생님한테 가서 말씀을 드리면 다 옛날에 잘못된 것들 무엇 좀 가지고 가서 그 댁에 가서 사과하고 오라고 그러고 제가 처음 만나 뵈올 때에도 육이오 직전에 나가시면서 제가 다른 말씀은 기억이 안 나고 나가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참 쓸 나무가 되어야 할 텐데 쓸 나무가 되지 못해서 지금까지 의인들의 기도로 제가 오늘 이만큼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나무를 비유 하세요. 그 말씀만 기억이 납니다. 그때 하신 말씀은 넓은 들판에 큰 나무가 있는데 그 사막 같은 길을 가다가 그 나무 밑에 가서 쉬면 얼마나 좋겠냐고 그런 말씀도 하셨고 그 안에 받은 사랑도 많지만 제가 다 말로다 할 수 없고 그리고 선생님이 항상 제가 계명산에 간지가 37년이 되어 가는데 선생님이 세상 뜨시겠다고 소식이 오면 저 같은 사람은 뵈옵지도 못하고 세상 뜨시겠다고 해도 눈물로 기도를 드리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계명산에 오셔서 가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윗집에서 세상 뜨셨는데 유언하시기 전에 세상 뜨시러 오셨는데 그 안에 주일날 예배를 드리시면서 고린도전서 7장을 사람들보고 다 돌려가면서 읽으라고 그러셨어요. 그래서 맑은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주셔서 참 내 마음이 시원하다고 그러시면서 여러분들은 동정 잘 지키라고 가난과 동정을 사랑하고 동정을 잘 지키라고 그런 말씀을 하시고 아 기쁘다고 하시면서 찬송을 부르면 손이 무릎에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시고 그러시는데 그때 세상 뜨시기 전에 유언을 하시는데 제가 아랫집에서 올라가고 싶어요. 막, 올라가다가 캄캄하니 암흑 속인데 올라가다가 도로 내려오다가 또 언덕에 올라가니까 그쪽에서 환한 광채가 그렇게 밝을 수가 없어요. 환하게, 제가 넘어졌어요. 그랬다가 또 다시 용기를 내서 올라갔어요. 선생님은 숨이 차서 그렇게 하시면서도 그때 유언을 하셨다고 그래요. 식구들 다 둘러 앉아 있는데 모아놓고 저는 그것도 모르고 가서 봉창에서 가만히 듣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냐 하면 내가 살아도 영혼이 여기서 살고 죽어도 영혼이 여기서 산다고 그 말씀을 듣고 얼마나 기뻐서 아래채로 뛰어 내려왔는데 듣자니까 18일 새벽에 3시에 간다는 말씀이 들려요. 그래서 그날 저녁에는 이것이 참말인가? 참말 가실까? 그러면서도 가서 꼭 지켜봤어요. 그날 저녁에 하루 밤이라고 내가 선생님한테 가서 새워야지 하고 지켜보고는 정말 3시 되니까 가시대요. 정말 선생님 세상 뜨시니까 다 그렇게 마음이 칼로 이어내는 것 같이 마음이 아프고 이런 죄인을 위해서 희생하신 것이 생각할 때 이렇게 참 그 시간만큼이라도 무척 마음이 아팠습니다. 말씀을 잘 못하고 이만 그치겠습니다.

(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