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갑진년 우수 : 성경공부

mamuli0 2024. 2. 19. 10:52

 갑진녀 우수에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렸다. 40~60mm나 내렸다. 수선화가 피기 시작한다. 보름 이상 빨리 개화하고 품종도 수선가 금년에느 다르게 핀다. 평택에서 아들내외가 다녀갔ㄱ다.

 이선생의 성경공부를 올려보았다.

 

 

 

  1. 성경 공부

 

신덕 : 믿음 소망 사랑

인덕 : 동정 청빈 순명

절제 : 겸손 인내 자비 충성

덕성 : 의 성심 건강 지력

① 애천, ② 애인, ③ 애상, ④ 애국, ⑤ 동위, ⑥ 절제,

⑦ 동물애호, ⑧ 식물배양, ⑨ 청결, ⑩ 미

 

진정으로 양심이 개조되어지기 원합니다.

주님! 겸손해지기 원하옵니다. 사랑이 있어지이다. 아멘

 

지도자가 이익을 추구하면 글러 먹습니다. 이익에는 무지해야 하고 또 알아도 초월해야만 하나니 지도자가 이익을 탐하면 그 집단은 강도 소굴 사기단이 되고 맙니다. 이익을 초월한 자 되어지이다.

사랑의 봉사에 생활 빛나고 그리운 생활 언제나 나의 이익과 편리를 모르는 생애가 그립습니다. 남의 짐을 지며 한숨 쉬며 어둡고 춥고 고단한 비탈을 달게 여기는 영적 생활 계획. 주님의 허락 아니시면 머리털 하나 손상치 않음. 주님의 뜻 아니시면 선은 일점일획도 계획치 못함.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름다운 땅 (민13장).

주님이 내 안에 내재하심을 깨닫게 하소서. 사랑을 거짓 없이 진정으로 아버님을 경외하는 자식 삼으소서. 경외함으로 들으심을 얻으심 (모세 민13장, 히5;7). 예수 순종하는 자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심. 예수처럼 순종하심에 이른 자 주님도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습니다. 고난을 받으므로 배워집니다.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나음. (시 118;8-9, 사10;20)

예수를 경외함의 신 (사11;2-3) 가련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를 토색하고 고아를 노략하니 멀리서 오는 환란에서 어찌하려느냐 (사10;1-4). 내 문제가 만만(萬萬) 하옵니다.

어찌하실까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고후13;3)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스스로 시험하고 스스로 살피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심으로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겠느냐? 너희가 버린 바 되지 않았으면 알리라. (고후13;5).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빌 때, 복을 빌고 재앙을 빌지 말라. (롬12;14) 원수는 복을 받게 되고 나는 저주를 원해야 하겠고, 원수는 잘되고 나는 매장당할 것을 원해야 하겠습니다. (롬15). 자기를 기쁘게 안 할 것이요, 이로움과 화평케 하는 것과 덕을 세울 것을 힘쓸지니 (롬14;19).

1. 불화에 대한 책임을 중히 느낄 것입니다.

2. 남의 죄과는 보지 말 것.

3. 자아 과실만 통회할 것.

4. 예수는 화목제가 되셨음을 믿을 것.

5. 부한 자는 하늘나라 못 얻음.

6. 화목시키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 됩니다.

7. 화평하는 일이 가장 큰 일입니다.

8. 희생해야 할 것.

9. 자기가 손해를 배상해야.

10. 힘써 구할 것(상대편은 원수 되어도 나만은 원수 맺지 말 것).

11. 겸손해야 됨.

12. 자기 마음에 먼저 평화를 유지할 것 (골3;15).

13. 남을 헐뜯지 말 것.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롬14;4-13)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 (롬15;33 16;20, 고후13;11 빌4;9 살후5;23 히 13;20) 편이 되면 화해자가 못됨. 누구에게 적의가 없어야 됨. 이해가 충분하고 사리를 분명히 알아야, 근본을 해결지어야 할 것임. 평화를 (謢)획득하라, 그렇지 않으면 (死)사를 택하라. 평화를 획득함이 자유요 승리다. 평화를 승리로 얻지 못하면 그 설움 비절 (慘)참절함. 설움이라 평화는 지상명령.

명예를 구하지 않게 하소서.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만을 기억케 하옵소서. 여태껏 (卑芬)비분케도 명예를 구했삽나이다. 부끄럽게도 은근했사오니 수치스럽습니다. 명리를 칼날처럼 피하게 하여주시옵소서. 명예와 지위와 이욕을 벗어나고 나의 생명도 돌보지 말고 오직 주님의 이 한뜻만 위하여 살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평화, 평화, 이 땅 위에 평화가 건설되기를 소원하옵니다. 주여! 나로 하여금 전심(全心) 전령(全靈)을 바쳐 주를 신뢰하고 의지하고 신봉케 하옵소서. 믿게 하옵소서. 주의 능력과 사랑, 사람의 영혼을 지고(至高), 귀하게 생각하게 하시옵소서. 선인은 진실로 세상에 보구(보배)임을 알려 주시옵소서. 성자는 참 금생 내생의 찬란한 진주보다 보구됨을 알게 하옵소서. 자기의 사정을 (退雜)퇴잡한 선이 아니기를 바라나이다. 세상 사정에 끌리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님 성의만을 궁구케 하여주시옵소서. 천륜과 인륜만 가리는 자가 되고자 원하나이다. 오직 한길 의로운 길만 밟게 하옵소서. 오직 의(義) 도(道)만 궁구케 하소서. 다른 형편을 돌보는 자 안되게 하소서. 거룩한 사랑 아무 아첨이 섞이지 않은 사랑과 거짓 없는 의로 나가게 하여주소서. 그리고 거룩과 사랑만, 의와 선과 인자한 언어 행실을 주소서. 아낌없이 우리 주로 말미암아 주소서. 꼭 주시옵심 빕니다. 교원급 공무원 양성, 기계, 대통령 특인(認) 양심적 자주적 정신 물심면에 교회의 화목을 주시옵소서. 화목 제물이 되신 주님을 믿게 하옵소서. 희생이 되신 주님을 믿게 하옵소서. 희생이 되신 주님! 알려 주소서.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지체를 紛雜(분잡)시키는 죄임을 깨닫게 해주옵소서. 직분의 봉님(책임)을 선물로 주심. (민18;-19) 처음 소산(所産) 곧 제일 좋은 것은 청결한 자 거룩한 자가 받음. 소금 언약 변치 않는 언약 (민19;19) 십일조의 십일조 (민18;26)

자식이 된 도리와 의무만 하면 상속은 필수적인 것이 됨. 일을 했음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자식이 되었으니 상속은 필연적 받게 되는 것이나 (維持)유지할 것이 문제이다. 자식 노릇을 못하면 허락한 것도 못 받게 되는 이유는 유지를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상속을 받는 자이다. 반드시 자식된 도리를 해야 할 이유는 은혜받는 공로다. 삯이 아니요, 은혜는 거저 얻는 것인데 도리를 공로로 삼거나 은혜를 의로운 행동에 대보상 같이 여겨서는 안 된다. 은혜가 삯같이 보이는 것은 도리를 행치 않는 자는 그 은혜를 유지 못하고 즉시 상실해 버리고 태반이나 유실하기 때문이요, 착실한 도리와 임무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은혜를 유지 보존 광대 시키기 때문이다. 결코 은혜는 삯이 아니다. 생명은 절대적인 은혜 이다. 우리는 유지할 자격조차 상실했다. 도리도 의무도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예수님의 고(苦) 행하신 도리와 순종으로 말미암아 내게까지 또다시 분깃(分깃: 유산을 한 몫 나누어 줌. 또는 그 몫)이 오게 된다. 예수님의 행고(行苦)를 힘입어서 유지가 가능하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이 돌아오기까지 유지해 왔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니 시기했었다. 율법은 은혜 시대까지만 계명을 맡아왔다. 이제는 예수로 말미암아 이방인의 구원이 이르렀다. 그래도 그 같은 긍휼로써 율법도 구원을 얻을 것이다. 유대인도 구원을 얻을 것이다. 내가 예수를 모르는 것이 큰 사건 비참한 일이요, 주님이 나를 사랑치 아니할까 의심할 것도 없다. 사람들이 나를 사랑치 아니할까 봐서 걱정할 필요가 없고, 예수의 사랑을 모르는 까닭에 내가 모든 일을 사랑치를 못한 이것이 큰일이다. 지극한 지경에 빠져 주를 잊고 못 믿을까 염려하옵나니, 어떤 지경에서든지 믿도록만 해주시면 참 기복(祈福) 하겠사옵니다. 믿고 참을 힘만 주시면 뜻대로 당하게 하시옵소서. 주의 종을 주님의 뜻대로 이루시옵소서. 주여! 저로 하여금 십자가를 달게 여기게 하옵소서. 제 등에 십자가 떠나지 말게 하여주시고 감당케 해 주시옵소서. 주여! 애욕을 이기게 하여주시옵소서. 힘쓰게 해 주시옵소서. 겸손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저를 정복하도록 힘써 주시옵소서. 힘쓰게 해주시옵소서. 저에게 자비를 베플어 주시옵소서. 나에게 자비가 나타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태도가 자비스럽게 하여 주시옵시고 언어에 자비가 넘쳐나도록 축복하옵소서. 행위에 자비가 있게 해주옵소서. (민20; 고전4;)

모든 것을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아버지, 저는 늘 유실만 하오나 아버님께서는 늘 부어만 주시옵나이다. 감사하옵니다. 주님! 형제를 비방하지 않게 제 입문을 지켜 주시옵소서. (시 141;3). 사랑으로 비옵니다. 누구나 다 나의 채무자입니다. 사랑의 채무자들입니다. 주님은 저로 전 세계 누구에게나 빚진 채무자로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채무를 속히 이(履)행하라고 독촉을 하시나이다. 매일 매시 독촉장이시옵니다. 집달사가 연속 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의 모든 영광이 상속물 차압(差押)처분을 하시겠다고요. 주님! 당신은 나에게 너무 억울한 과중한 책무를 걸머지게 하셨습니다. 도저(到底)히 저로서는 갚을 길이 막혀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늘 촉구(促求) 자를 보내시옵니다. 너무 강압이 심해도 변통을 할 수 없이 만드시옵니다. 그러나 그 책무는 더 수월하고 너무 적게 빚이 졌습니다. 저의 낭비한 것에 비교하면 너무 엄청나게 적어요. 너무 수월해요. 제게 독촉을 오는 이들의 손에다 저의 책무를 이행할 공식의 가치를 가지고 와서 그것을 받아가지고 안 갚는다고 해요. 당신이 중재하시는 책무 이행을 너무나 수월해요. 내가 진 빚에 당신이 집달리를 보내고. 아 영광스런 주여! 또 그보다 모를 것이 있어요. 내가 진 빚에 집달리를 보내고, 집달리 손에 제가 진 빚에 해당된 가치를 보내시고, 책무 이행이 완전히 끝이 나면 당신은 저를 보고 책무자로 주님은 책무자가 되시니 웬일이세요? 세계를 빚진 자를 만드신 주님은 또한 나를 채무자로 삼으시고 내가 갚은 그보다 많은 값의 보구를 갚으시니 이는 모를 일뿐입니다. 이도 또한 저로 받지 않을 수 없는 방법으로 안겨주시는 영광이 아니시나요. 그리스도의 사랑만 체험케 해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만을 찬양케 하옵소서. 다른 소리는 부르지 못해도 그리스도의 사랑만은 크게 부르짖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만은 아름답게 하옵소서. 제게 있는 모든 쾌락 모든 재주 모든 자랑 모든 사망은 다 거두어 가시옵소서. 그래도 한 가지만은 빼앗지 말아 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호신이 될 소망 그 기쁨 그 표현하는 능력만은 더해주소서. 그리스도만 자랑케 용납하소서. 저도 원수를 위해 피 흘려서까지 좋게 해주겠나이다. 사랑은 의를 세우고 의는 사랑을 완전케 함. 의와 사랑 주님과 함께하는 결정되기를 원하옵니다. 주님의 공로 찬송. 주님의 고(苦)로 자랑. 주님의 피 공로 헛되지 않기만을 기원하는 외에 다른 말 다른 일 다른 것은 소원하지 말게 해주시옵소서. 주여! 결정케 앙망하나이다. 주의 뜻대로 하소서. 이 더러운 입술은 감히 주를 찬송할 수 없사옵니다. 미약한 죄인으로써 주를 증거할 수도 없사옵나이다. 더러운 생각이 감히 주의 피 공로 헛되지 않기를 기원할 수도 없사옵니다. 주님의 축복이 아니시면 특허하실 수 없는 사실임은 명백 또한 확실하옵나이다. 주의 사랑에 깨여서 찬송하게 하소서. 주의 사랑에 감격해 살게 하소서. 주님의 사랑에 경악케 하게 하소서. 주님의 피 공로 내게서 무효 되지 않고.

 

11월 1일. 기러기 소리 오늘 아침 갈까마귀 소리 (고전 6; 민22;)

주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까닭은 너무 약한 까닭. 나를 써주심은 다른데 조금도 쓰일 곳이 없는 까닭. 다른 이들이 다 보아 낳은 것을 알려주시니 감사하옵니다. 잊지 말게 하옵소서. 나를 죄의 심연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저에게 오해 욕설 가타(打)까지 사양치 않으신 주께 감사 기도를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저에게 멸시까지도 달게 당해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제가 구원의 길에 섰나이다. 항상 잊지 말고 겸손하게 하옵고, 아무것도 아닌 제가 좀 알아지는 것 같습니다. 더 명백히 알려 주시기 원하옵소서. 내 명예는 생각지 말게 해 주옵소서. 일시적 편익을 도모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저급생활에 능케 해주시옵소서. 경제적으로 가장 저급한 생활을 할 수 있게 은사를 베푸소서. 가난하고 잘못 믿을 터이면 부자로 잘 믿을 수 있다면 그도 좋음. 교만하지 말게 하소서. 기도는 청함이 아니요, 사랑이시고 보호하사 기르시고 하시는 바 일을 잘 아는 일이요, 감사하자는 것이어요. 순종하자는 것임. 기억하고 믿자는 것임.

 

11월2일 (민23; 고전7;)

하나님이 일을 하시나이다.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단련’ 뿐이십니다. 믿음으로 하면 할 것입니다. 불신앙이면 안될 것입니다. 즉 ‘신앙 단련’입니다. 신앙하지 않으면 그만큼 미완성입니다. 신앙만큼 완성할 것입니다. 아버지 나에게 주시면 나의 생의 근본이 되시오며, 생의 의도 낙도 광명도 없사옵니다. 당신 안에 목표가 있사옵고 당신이 생의 의가 되시옵니다. 주여! 제 안에 계심으로 제가 살았나이다. 제가 주께로 가는 것이 저의 목적이요, 주와 같이 되는 것이 저의 희망과 즐거움이옵니다. 지혜 있고 훌륭한 자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보다는 차라리 미련한 자 되어 주안에 있어지기 바라나이다. 죄를 깨닫고 자복하는 자가 될까요? 주를 가르치고 주의 사랑을 증거하는 자가 될까요? 주님의 뜻을 조금도 모르는 자가 아닙니까? 아시다시피 사람과 가까이하는 함으로 얻어질 것은 없고 도리어 신앙의 동요 덕에 손상 있을까 도움은 조금도 없습니다. 단지 아버지께만 가까이 가까이 나아갈 때 담대함과 용기와 능력과 지혜와 덕의 완전과 영생을 얻나이다.

 

11월 3일 민24; 고전 8;

주여! 회개를 주시옵소서. 생명 얻는 회개를 주시옵소서. 주여! 저에게 가슴에 탄식을 주옵소서. 회개를 못해 탄식케 하소서. 부끄러워할 줄 알게 하소서. 저의 죄를 저의 어리석음을 내놓게 하소서. 제 지혜를 버리게 하소서. 제 주장 제 고집 버리게 하소서. 오직 주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주님만 받아드리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만 모셔 드리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주창(主唱)으로 해 주장을 살게 하옵시고 주님의 의사를 받들어 제 의가 되게 하옵시고 주님의 지혜가 제 지혜가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애통이 저의 애통이 되어지이다. 아멘

주여! 언제나 저도 당신의 사도처럼 먹어도 풍성함 없고 안 먹어도 부족함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을까요? 주의 자비의 손으로 저를 끌어올려 주시옵기를 비나이다. 아멘

 

11월 4일 민 25; 고전 10;

비방하지 말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남의 허물이 안보이도록 하옵시고, 제 허물 제 죄과만이 뚜렷이 드러나게 역사하심 빕니다. 생활 개선이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생활이 향상되어야 겠사옵니다. 남을 단속하는 일보다 자기를 단속할 것이 크나이다. 주님을 의지하게 하시옵소서. 원망을 하지 말고 원망함으로 받아지는 것은 악습뿐임을 알 것입니다. 명심케 하여주소서. 믿으면 한편 소망이 있고 믿지 않으면 소망이 없음입니다.

 

11월 5일

주여! 주님 보고자 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사랑이신 주님을 뵈옵고 싶은 마음 간절케 해주시옵소서. 세상에서 아들딸 애인은 보고자 하되 주님은 보고 믿지 않은 이 썩은 마음 수술을 원하옵나이다. 받는 것만 생각하고 사랑할 줄 모르는 이 무지한 무도한 자입니다. 사랑으로 뵈옵고 싶기를 진정으로 소원케 하옵소서. 감사하옵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따님을 통하여 주님 뵙고 싶은 마음 없는 저를 깨우쳐 주시오니 진실로 감사만만 이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한다면 뵙고 싶지를 않겠어요? 주님 뵈옵고 싶게 하옵소서. 나로 하여금 주님이 사랑이심을 알려주소서. 지금까지 여러 가지로 알리셨어도 깨닫지 못한 둔한 마음이옵니다. 주님이 저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줄을 아무 데도 몰랐어요. 오랫동안 뵙고 싶었으면 제 지금까지 안뵈이겠어요? 만일에 뵈옵고 싶으나 안뵈였다면 왜 중한 병이 나지 않았나요? 뵈옵고 싶지를 않았다면 사랑하지를 않은 증거입니다. 사랑하지를 않았다면 사랑하시는 줄을 모르는 증거입니다. 확실하옵니다. 저의 불신과 거짓을 완전히 폭(暴)로시켜 주시는 사랑은 사랑 가운데 큰 사랑에 드는 사랑입니다. 주여! 불신을 용서하소서. 입으로 다른 이에게 전하면서도 전 믿지 않은 죄를 사유하소서. 주님이 사랑이심을 믿게 해 주소서. 그리고 시기와 분쟁으로 뵈옵고 싶지 않고, 사랑과 온유한 감사한 마음으로 뵙고 싶게 해 주시옵소서. 병이 들도록 뵈옵고 싶게만 해주사, 사랑 때문에 저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의 병을 원하옵니다. 미치기까지 사랑해지이다. 사랑에 대한 보답은 사랑일 것입니다. 저를 주를 사랑하다 못해 죽게 하소서. 나를 진정으로 사랑타 못해 병든 이도 있습니다. 이는 주님이 저를 사랑하시는 증거, 확실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를 사랑하다 죽은 이도 있습니다. 이는 주님이 저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표본이 아니고 무엇이어요? 이는 주님이 저를 사랑하사 만물은 다 주시는 증거가 아닌가요. 저를 사랑해 상처를 입는 이 있어요. 이는 주님이 저를 사랑하시어 상처 입으신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어요? 이 모든 일들은 주님이 저에게 사랑을 알도록 쓰시는 종들이 아니시고 누구겠습니까? 주님 은혜를 보답할 생각이라도 가져 볼까요? (민 27; 고전 11;)

 

11월 6일 민 28; 고전 12;

믿음은 은혜 중 은혜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려 주심도 참 은혜입니다. 은혜는 감사할 줄 알면 더 은혜가 되옵니다. 믿음에 대하여 감사할 줄을 알려 주시옵소서.

 

11월 7일 민29; 고전 13;

설교는 하나님의 사랑 허상 낭독에 지나지 않게 되어지이다. 임의 기도가 상달되어 그 크신 허락 받는 것만을 전달케 하시옵소서. 구속의 사랑을 깨닫록도와주소서. 믿음으로 양심의 생활 활동 역사가 서지기 바라나이다. 모두 부패한 세상에 당신만 홀로 높임을 받으소서. 저를 사랑하는 자가 원수임을 깨닫게 하소서. 원수가 참 친구 됨을 알려 주옵소서. 제게 주는 자는 화를 끼치는 이요, 제게 달라는 자가 복을 끼치는 이임을 알려주옵소서. 사람의 도움은 허사로소이다. 주님 사랑의 주는 자가 복된 까닭이로소이다.

 

 

11월 8일 (민30; 고전14;)

주여! 원행하는 종을 사유하여 주시옵소서. 주를 모르고 주님께 묻지 않고 항상 덤비나이다. 나의 구주 되심을 믿게 하시고 조금도 자의로 결정하지 말게 하시옵소서. 구주 되심을 믿는 그 믿음이 앉은뱅이도 걷게 하셨나이다. 믿음으로 알아지겠삽나이다. 믿음으로 주님이 뵈여 지겠고 믿음으로 주님의 음성이 들리겠습니다. 명상할 시간 주시니 감사하옵니다. 명상할 마음 주시니 감사하옵니다. 주님! 주를 알고 싶은 마음을 주시옵소서. 주여! 믿음이 가장 귀중하신 은사인 줄 깨닫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은사는 공로 없이 주심으로 그 가치를 아는 자 없사옵니다. 주여! 모든 은사의 근원 되시는 주님께 밀접히 연결되는 믿음이야 가장 귀중하옵니다. 믿음으로 연결되어야 주님과 하나될 수도 있사옵니다.

주여! 석유는 귀하게 여기나 물의 귀한 가치를 모르는 것처럼 행위만 귀하게 여기고 믿음을 소홀히 여긴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열매만 알고 나무는 모르는 죄를 용서하소서. 나뭇가지만 보고 뿌리는 생각지 못했사옵고 꽃과 잎은 보았으나 뿌리를 못 보는 어두운 눈이었습니다. 홀로 구주되신 주를 항상 모시게 해주옵소서. 주를 믿는 믿음만이 온 세상을 구할 수 있음을 알려주옵소서. 주님의 말씀이 생명임을 알게 하시고 잊지 말게 해주시옵시고 굳게 믿게 해주시옵소서. 부활이 영생임을, 주를 믿을 때 힘을 얻고 선한 마음이 되고 선하게 쓰여지고 구원에 참석할 것입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표현이시고, 내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내 죄를 위하여 살으심을 믿을 때 진실로 변화가 있사옵고, 구속의 은사가 있사옵고, 중생이 있사옴을 믿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름 알리심은 진실로 위대한 성령의 가르치심이며 놀랠 게시임을 알려주시옵소서. 이 종이 믿게 하옵소서. 주여! 주님만 사랑할 수 있기를 빕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케 되기를 원하옵니다. 나를 사랑하지 말게 하시옵소서. 육을 사랑하지 말도록 하시옵소서. 영을 더 사랑케 인도해 주시옵소서. 구속받은 자는 이마에 땀 흘리지 않아도 먹이고 입히심을 알게 하심이로소이다. 새와 같이 자유롭고 꽃과 같이 아름답게 기르심을 믿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욕심이 필요 없사옵고 부족을 모르고. 주여! 진실로 믿는 자에게는 병도 났습니다. 빚도 탕감받습니다. 근심 걱정도 없사옵고 십자가도 달게 질 수 있는 능을 받사옵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주님을 통하여 성령을 베푸시는 크신 은사임을 알았사옵니다. 믿음의 귀한 가치를 충분히 알게 해주시옵소서. 인위적인 신앙, 자기가 스스로 믿는 믿음을 버리게 하소서. 아버지께서 믿게 하셔서 믿는 신앙을 알게 하소서. 지어서 믿는 신앙은 허위로소이다. 궁구하옵니다. 가작이로소이다. 모순이옵고 모독이로소이다. 과장 치상도 있습니다. 아버지로 말미암은 하늘로서 보이신 계시에 의한 신앙은 능력이 있사옵고 사랑이 있사옵니다. 인위적 신앙은 버리게 하시고, 참 신앙 은사로 베푸시는 신앙을 받게 하시옵소서. 주여! 진실로 선이 급하지 않고 신앙이 급함을 공감케 하소서. 세상을 구원하는 것도 이 신앙이옵고 인위적인 노력에 있지 않음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나라는 믿는 자녀들에게 거저 주시는 것이옵고 인간의 노력으로 꾸미거나 건설할 나라가 아니옵니다. 인위적인 것은 조금도 섞일 수 없는 나라임을 알려주소서.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정결함을 얻은 백성들에게 반드시 주시는 나라이옵고 욕심을 품는 자에게 거절하시는 나라로서이다. 믿지 않고 선행을 원하옵고 거룩을 원하고 하늘나라를 원하는 것은 다 욕심이 되나이다. 그리스도 피를 믿을 때 양심이 밝아지고 정결함을 얻고 거룩히 된 자이고 구속함을 얻어서 입참(入參)하는 나라임을 알게 하시오니 감사하옵니다. 주님이 소식을 전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전하는 자가 될 수 있게 만드소서. 이 단순한 구원의 도를 쉽게 명랑하게 설명할 수 있는 지혜 정성 담대한 능력 구변을 주시옵소서. 이 신앙 받는 주부가 구원받는 증거가 밝아지길 기원하옵니다. 이 종으로 하여금 먼저 아버지 주시는 신앙을 받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면 열심도 있고 증거도 되겠습니다. 제가 받지 못했음으로 여태껏 증인이 못되었사옵고, 제가 믿지 못했음으로 증거가 되지 못하였음을 알게 하시옵고, 잊지 말게 성령의 결단을 깨우쳐 주심을 비옵나이다. 주여! 성의에 따라 움직여 주시옵소서. 어디든지 보내어 주시기 바라오며 주님의 뜻대로 쓰실 수 있게 되옵기를 바라옵니다. 중심을 보시는 아버지 제 마음 그릇됨을 치료해 주시옵소서. 나은 바 행위는 가식이 없을 것이로소이다. 진실이 있을 따름일 것입니다. 믿음으로 움직여지는데 불능이 없을 것이로소이다. 주님의 무한하신 힘으로 움직여지는 까닭이로소이다. 아멘

인정은 마땅히 배격할 것이옵고, 천정을 품게 하시옵기 원하옵니다. 인정인 사랑은 반드시 심령을 죽이고 천정의 애는 반드시 영을 살리시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하소서. 영생의 말씀 주께 있사옴을 알게 하시옵소서. 의문은 죽이는 것임을 알도록 하시옵고 성령의 역사만 살리심을 깨닫게 하소서. 인정, 사람의 생각, 규칙, 법규는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영을 살리시는 이는 영이심으로 육신은 무익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날선 검보다 이로와서 골수에 사무친 명근까지 제거하시옵나이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의 소욕을 거슬러 둘이 항상 맹렬한 전쟁을 하는 줄 알려주시옵소서. 반드시 육이 이기면 망할 것이요, 성령이 육을 쳐 복종시키면 살 것이로소이다. 주여! 저를 영에 복종케 해주소서. 영의 소욕이 이루어지고 육의 소욕이 패망당하기를 비옵니다. 이루어 주시옵소서. 아멘

주여! 사람의 도움은 빈약하기 짝이 없고 천하옵나이다. 도움은 받으나 안 받으나 무관하옵고, 받을수록 도리어 해로옵고 안 받을수록 유익하옵나이다. 아버지 구원만이 참 구원이옵고 강하고 위대하옵나이다. 오 주여! 저로 하여금 사람의 도움을 바라지 말게 하옵시고, 주의 도움만을 기대토록 인도하시옵소서. 주여! 주와 더불어 의논하고 육하고 상의하지 않게 해 주실 이는 주님밖에 아무도 없사옵니다. 주님과 같이하면 강하고 담대하지만 사람과 같이하면 약하고 두렵삽나이다. (약 2;1-13) 그리스도의 믿음을 받았은 즉 상속을 받음.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풍성하게 하심. 가난한 자에게 더 주심. 귀한 믿음 사랑하는 자에게 하락하신 나라의 후사가 되게 하심. 가난한 자 지극히 사랑하심. 나라까지 주심. 세상 부와 믿음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할 것임. 믿음이 있노라 하고 실상은 믿지 않으면 스스로 속아서 믿음이 있는 줄 알았음. 그는 긍휼이 없는 것으로 폭로됨. 믿음이 있으면 그 마음에 주가 계심. 너희가 믿음이 있는가 스스로 시험하라. 버린 바 되지 않으면 알리라. (고후 13;5)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나니 실력이 있음. 그 실력이란 경건과 형제 우애에 있음. 말에 있지 않음. 허실과 선전에 있지 않고 경건과 사랑에 있음. 형제 사랑하기를 내 몸같이 하는 데 있음. 참 믿음을 받았으면 자비심이 있음. 마음이 간절하면 행함도 있음. 그리스도의 경건으로 병이 나음. 종으로 하여금 아주 굳세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고, 손을 펴서 병을 낳게 하옵시고 이적과 기사를 거룩한 아들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게 하옵소서. (행4;29-31) 이스라엘 사람들아, 왜 이일을 이상히 여기느냐? 우리 권능과 거룩함으로 이 사람을 다니게 한 것처럼 어찌 우리를 주목하여 보느냐 (행 3;11-12) 예수의 권능과 예수님 거룩하신 인격이 걷게 하심. 그 일훔을 믿는 고로 그 일훔이 성하게 했음.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완전히 낫게 했음.

 

11월 9일. (민3) 발람의 꾀를 좇은 여인들 처단 (16) 한 사람도 축나지 않았음의 감사 (49)

(고전15;) 나와 같이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일 일하셨음. 만물을 그 발아래 셨음. 주를 의지하여 수고함이 헛된 것이 아님을 앎. 하나님의 은혜 은사는 한도가 없으나 그 위에 더 주시면 교만해질 정도에 그치는 은사인 전기의 (사도바울)과 같음(고후 12;7-9)

너희가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간구하노라. (고후 5;12) 이마에 땀을 안 흘려도 살 수 있는 낙원 회복되지를 않습니다. 희생하고 봉사만을 하고 살 수 있는 몸이 이루어질 수는 없을까요? 명상으로 기도와 봉사와 선행으로만 살 수 있는 몸이 이뤄질 수는 없을까요? 주님은 죄도, 죄의 결과인 벌도 다 담당하신 줄로 믿습니다. 안 이루어지는 것은 믿지 않은 세대인 까닭이지요. 믿지 않는 환경에 처해있는 까닭이지요. 다만 주님의 십자가 지고 따르는 것뿐인 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비옵니다. 내 소원이옵고 주님 성의만 좇으려 하면 주의 진실한 종 되겠습니다. 주여! 제 영의 귀에 극기 절제 자아 극복명하시고 승리를 약속해 주시옵소서. 미디안 주님의 뜻대로만 친 이스라엘에 하나도 낙축이 없이 전리품과 승리가 있었던 것처럼, 제 영도 육을 정벌하고 조금의 손실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에 의해서 싸운다면, 완전히 승리의 면류관과 많은 덕의 깨끗한 전리품만이 있을 줄로 아옵니다. 금욕생활 주님의 십자가를 표방하는 생활을 빛내게 해 주시옵소서. 청빈한 생활만 따르는 생활, 주님만 모방케 하소서. 공중의 새도 깃들일 곳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으셨사오니, 저도 머리 둘 곳 없는 생활에 나서게 하옵소서. 언덕으로 벗을 삼는 생활을 흠모케 하소서. 그 가치는 이 세상 부귀영화보다 얼마나 말할 수 없이 월등하옴을 깨닫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피 공로만 우러러보나이다. 아멘

진정으로 사모케 하소서. 불 받아주소서. 이 소원에 심령의 소망의 불 부어주소서. 견딜 수 없도록 재촉해주소서. 롯의 식구를 손잡아 이끄시던 그 인자로운 천사의 팔을 펴게 하소서. 바울 사도를 강권하시든 주의 사랑이 강력히 이 심령에서 활동해 주시옵소서. 주여! 사람들이 법을 제정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옵고 실천할 자가 없어 문제이옵니다. 이 나라 위정자로 하여금 눈 띄워서 법 지키는 자를 양성할 줄 알게 하시옵소서. 자기 자신부터가 법을 중히 여기고 법을 지키는 자가 되면, 다른 이도 따라서 지키겠습니다. 자기 가정이 지키면 이웃집도 역시 지키겠습니다. 법관 자신부터 법 남용치 말 생각을 할 마음을 허락하실 수 있으신지, 주님 성의를 알지 못하는 종은 황공 하옵는 중 생각하는 것뿐이로소이다. 이 생각이 주님이 주신 생각이오면 더욱 감사 망극이로소이다. 의사가 얼마나 영양식을 취해야 할 줄은 알아도 그대로 섭취는 않습니다. 맹목적으로 욕심으로 먹고 욕심으로 생활은 하면서 다른 이에게는 가르칩니다. 과학자 역시 아는 대로 살지는 않습니다. 살 수도 없습니다. 주여! 그것이 제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제가 진리에 즐겨 순종하는 생활, 인내하는 자기를 극복하는 생활에 들어가도록 복 빌려주시옵기 원하옵니다. 이 원도 주님이 깨우쳐 주실 줄 믿고 감사 올립니다. 진실로 영광을 받으시게 이루어지이다. 이 몸 이루어 쓰시옵소서. 주님의 기뻐하시는 그 뜻대로 의 생활로 이끌어 주옵소서. 믿으면 믿음에 부합된 행위가 나타날 것이로소이다. 믿음이 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행하여질 것이로소이다. 믿음과 행위가 다르면 그는 분명 분열된 인격이로소이다. 믿음은 하나님 안에 한 완전한 인격을 조성하시는 줄로 믿어지옵니다. 시간과 물질의 절제보다 힘의 절제, 육의 절제보다 먼저 마음의 절제가 있어지게 깨우쳐 주옵소서. 헛된 생각, 부녀를 탐하는 생각, 사람에게 칭찬받고자 하는 거룩치 못한 생각을 없이해주심으로 정신적인 낭비를 막아주시옵기 비옵니다. 다른 사람들의 낭비를 생각하지 말게 하시고, 제 심령의 시간과 힘과 생각을 절제해서 살 줄 알게 하시옵소서.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옵니다. 참으로 감사와 영광을 받으시기를 복원하옵니다. 주여! 욕심으로 당신을 사람이 모르나이다. 아! 교만과 과장과 허물은 얼마나 무거운 짐입니까?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입니다. 그 짐을 지고 사람들 쓰러져가고 있습니다. 침몰되어 갑니다. 그로 인해 다 쓰러졌나이다. 자기 아는 것과 합작해서.

 

11월 10일 (고전16; 민32;) 남을 낙심케 하는 자가 되지 말게 하소서.

믿다 말면 다른 이를 낙심시킴. 주여! 저로 하여금 주님의 신실한 종들과 같이 주님만 노래하고 주님의 덕만 늘 기리고 주님의 영광만 찬송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만 전심으로 섬길 수 있도록 성령의 역사를 빕니다. 주여! 감사하옵니다. 현재 이 땅 위에 주를 사랑하는 자들을 두셨으니 참말 감사합니다. 저를 곧 주안에서 한 형제된 저들과 함께 주님만 노래케 하소서. 도덕이 서야 국가가 서겠습니다. 신앙이 바로 서야 도덕이 서겠습니다. 산 신앙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열광적으로 주님만 찾게 해주소서. 사신 주님으로부터의 신앙이 흘러나와 순결하고 청결한 신앙이 되겠삽나이다. 능력이 있사옵니다. 어거스틴 참회록 김재준씨와 끝의 말씀, 나는 나의 구속의 은혜를 묵상하오며 그 은혜를 먹고 마시고 또 그 은혜로 당신과 영교하고 있나이다. 나는 당신이 주시는 축복으로만 만족을 얻고자 하는 가난한 자이옵고, 이로 인하여 배부름과 만족함을 얻어 당신을 찬양하는 자가 되고자 하나이다. 주님! 염치 없사오나 욕심 버릴 힘 주시옵고, 믿음 박애 섭리하심 감사하옵니다. 아멘

11월11일 (고후1; 민33;) 크신 권능으로 행진하는 이스라엘 완급 신의 심판 사랑과 은혜. 사랑은 누구에게나 베푸시나 은혜는 택하신 자에게 베푸심. 사랑은 행위에 상관되나 은혜는 행위로 받지 못하고 긍휼로 베푸심. 구원과 도움. 구원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음. 구원은 스스로 살려주시는 것이요, 도움은 산 것을 더 낫도록 도우는 것이다. 인간의 도움은 하나님 구원에 조금도 협력이 되지 못함. 인간의 도움은 잠시적이고 미봉책이나 구원은 근본적이요 영구성을 지니고 있다. 남의 것을 얻어 의지하는 것은 구제가 아니라 전달이다. 잘못하면 전달까지도 되지 못한다. 믿음과 지식. 성서는 믿음을 배우는 것과 지식을 배우는 두 가지 각도가 있다. 지식에 구원의 능력은 없다. 임시적인 행락은 있으나 구원의 영구적인 즐거움이 없다. 믿음에 생명의 권능이 있다. 믿으면 필요한 지식도 따름. 믿음 없는 지식은 교만하다. 불필요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으려 하지 않고 알기만 하려 들면 교만으로 해를 받는다. 복음에 의한 신앙이어야 함. 사신을 섬겨도 도움은 받는다. 그러나 구원은 없다. 구원에 큰 방해 거리가 된다. 구원과 신앙은 둘 다 하나님께로 불러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도 심판하심. 아버님! 무엇이나 아버지 전부를 믿음을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나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형제 화목이 없는 것이 알려지게 하소서. 감사하옵니다. 제게 가까운 것을 더 사랑하고, 하늘 아버지만 공경하지 않는 연고로 이와 같은 현상에 이르렀나이다. 아버지만 홀로 못 공경하는 것이 가장 큰 비참임을 알겠습니다. 잊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제게 사랑과 능이 없음은 아버지 가까이 안 하는 까닭인 것을 알게 하시옵니다. 이 종 주를 항상 가까이 안하는 까닭인 줄 알게 하시옵니다. 이 종 주를 항상 가까이하게 이끌어 주심 비옵니다.

 

 

11월 12일 (민34; 고후2;) 거룩과 신실로 하나님의 주신 은사 (고후2;12)

주여! 탐식을 모면케 해 주소서. 국가도 위태롭습니다. 주여! 처분만 고대하겠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승리와 자유에 영광

 

11월 13일 (민35; 24;9) 나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음이며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으리로다. (창12;3 27;29)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5;44 눅23;34) 아버지여! 이 무리를 구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행7;60) 주여! 이 죄를 저 사람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딤후 4;16) 다 나를 버렸으나 이 죄를 저희에게로 돌리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벧전 3; 9) 도리어 저를 위하여 복을 빌라. 그 구원을 나날이 전할지어다. (시96;2 10;17) 저주를 좋아하여 자기에게 임함이여, 축복을 기뻐 아니하매 복이 멀리 떠났도다. (마10;40-42) 선지자를 존대하는 자, 의인을 선대하는 자. 축복을 싫어하는 자 저주를 받음. 축복을 싫어하면 화를 받음 (마10;14-15)

 

공부 계속

목요일 (7;) 인 떼시는데 = 찬, 존, 영, 농, 부, 존, 힘

령으로 잉태하심으로 동정녀에게 수태했고, 일평생 결혼도 안함으로 이기셨습니다.

정욕을 이기심. 마음만 먹어도 될 것인데 마음도 안 먹음으로 이기셨습니다. 예수의 특이하신 성품 =히7;26 거룩하고, 악함과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올라가셨음. 예수님은 지극히 끝없이 높이 거룩하시다는 말씀. (묵15;4)

하나님밖에 거룩하신 분이 없으심에 예수님께서도 거룩하셨다. (묵5;9)

예수님만이 홀로 거룩하시다. (1,)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시기에 합당하심. 이 책은 하나님 말씀 기록한 책. 거룩치 못하면 주를 보지 못한 까닭. 너희가 보는 눈이 복이 있고 듣는 귀가 복이 있다 하심. 거룩하신 이를 뵈옵고 거룩한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요. (마11;11) 정욕으로 낳고 정욕을 지닌 자보다 커도 예수님 피로 씻고 거듭난 자보다 못하다는 말씀. 거룩하시기 때문에 책도 펴시고 (묵5;9) 다 하실 수 있었음. 다윗의 뿌리가 이겼다는 뜻. 정욕을 이겼다는 뜻. 곧 마귀를 이기었다는 뜻. (롬7;1) 죽음의 열매는 무엇으로 맺는가? 정욕의 몸에서 죽은 것이 나옵니다. 예수의 지체는 거룩해야 함. 정욕이 없어야 함. (롬6;6) 죽음을 합하여 세례를 받아야 함. 정욕이 내 안에 있으므로 세례 못 받음. 그리스도와 합해야 세례를 받음. 우리 옛 몸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되었나뇨? 정욕만이 힘쓰면 죄의 아들만이 나온다. 죽으려고 해야 함. 교회 =예수와 합하여 죽어 장사지내고 하나님의 신으로 거듭난 자들이 모이는 곳임. 거듭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 보지 못함. 거듭나지 못했으니 세상임. 불평불만 시기 분쟁이 있음. 거듭나야 하나님 자녀임. 몸의 행실을 죽이고 성령에 의지함으로 살면, 하나님 나라 백성도 되고 제사장도 되고 왕도 됩니다. (벧전 2;9 3;21 2;11 요3;)

 

금요일 성령을 믿고 알고 따르라. (행19;2) 예수님 말씀 믿어지는 것을 보아서 성령의 역사임을 알 수 있음. 성령의 역사 없이 믿지 못함.

(롬6;3) 하나님 교훈 | 사람= 죽음을 합하여 세례받은 자임. 세레= 죽음

세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는 것임. 죽음을 가르치나 반드시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 죽음 죽어야 다시 삶이 있음. 하나님의 뜻으로 죽어야지 자기가 죽으면 즉 자기 세례는 소용없음. 물과 성신=물은 죽는 것이요, 성신은 사는 것이요. 물= 정욕 죽인 성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영생. 요한의 세례=회개의 세례=죽는 것

죄의 몸은 죽이는 것. 물세례= 죽는 것을 의미함. 죄의 몸 죽어 장사하는 것. 죽지 않고 교회에 들어오면 강도요 절도임. 담 넘어온 자= 넓은 곳으로 들어왔음 (눅15; 7 11)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천사들이 기뻐 노래합니다.

천사들의 노래 뜻= 죽임을 당한 어린 양. 어린 양의 죽음 따라 죽은 자의 수가 많음으로 죄의 몸을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합쳐서 죽으러 오셨다면 은근 분명히 성령의 크신 감동임. (눅 롬8;14 7;9 시 40;6-8 히10;2, 유 20, 갈 5;18-20, 고전 13;8) 마음으로 하나님 모시고 성신 따라감이 예배. 다 믿고 순종하고 알아야 성신 받음. 믿고 순종하고 알아야 성신 받는다. (예배 유: 20)

엎드려 순종 절대복종 (묵7;114;10, 5;8, 7;11, 11;16, 19;4)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묵15;4, 행 5;1, 느1;4, 묵 15; 16;4)

하나님을 경배하라. (묵22;9, 4;7) 6날개 = 복종 감히 경배함. 날개 치는 것아 천사들이 들을 때 찬송임. 두루 눈이 가득함 =지혜와 총명이 충만함 = 하나님을 밝히 알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 (히11;6) 하나님 계신 것을 먼저 믿어야 함. (삼상27;11) 습관 (묵4;8)

 

2/3일 밤

(행 19;) 아침 요지 = 정과 육을 죽이자는 데 있음. 죄에 몸 죽이자는 데 있다. 다시 살 것을 믿고. 홍수= 죄로 죽고 의로 살아나는 것임. 방주 교회 가르침. 믿고 순종하는 자들이 들어감. 꼭 믿고 죄에서 죽은 자들만이 살았음. 자기 회개는 무효임(스스로 죽음은 안됨). 유다의 죽음 가르침. 성령의 권능 못 받음으로 자기 회개로는 못 살아남(성령의 감동을 못 받음). 죽는 상태, 무지한 상태. 무지한 상태, 아무 희망도 낙도 없는 선도 행할 수 없고 죄와 의도 분간도 못하고 마귀 뜻과 하나님 뜻도 분간 못하는 그저 죽는 상태. 죄도 의도 없는 상태뿐임. (롬8;18) 성신으로 죽으면 자랑만 됨. 억지로 죽으면 무효입니다. 성령으로 죽은 상태. 성령으로 죽어야 살아질 것이니, 아직 말 못함. 죽는 것이 당면한 큰 문제임. 바로만 죽으면 살아집니다. 자기 회개는 부분적이어서 불완전하고 성령으로 회개하면 완전한 고로. 자랑할 수 없음= 부분적 한두 가지 것 죄 버리고 다 버린 줄 압니다. 성령은 밝히 아심으로 완전히 죽기까지 회개시키심 (마 3;11, 3;6, 행19;6)

세례 요한의 세례는 예수님 믿게 하려는 능력 없는 세례. 참 회개가 못됨 (행1;8)

불= 권능 (마3;11) 그 권능으로 우리를 중생케 하고 부활케 하심. 율법이 못하는 것을 해서 순종하는 자녀를 만드심. 하나님 뜻을 따르는 성령으로 죽어야 그 권능 받음. (욘 8;14 8;20=23 묵 5;) 끝 절의 찬송. 만물이 찬송하는 이유= 자주장 함에 들어갔음으로 (롬8;2) 뭇 자녀의 영광을 얻어 (삶을 얻어서) 하나님 자녀 성신에 인도함을 받는 자 성령으로 거듭나려면, 성령으로 죽어야 함. 만물이 거듭난 자를 고대하고 있음.

 

3/4 아침

(묵 4;9) 성령으로 예배드리는 법 (히11;6) 경배의 큰 뜻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한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이 항상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함. 거룩하시기 때문에 믿고 살 수 있음. (묵15;3) 오직 주밖에 거룩하신 이가 없음. 거룩하심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선지 성인들이 거룩하심을 믿어 거룩해지심을 보아 확실히 믿을 수 있음. 거룩하신 이가 안 계신다면 아무 소망이 없음. 다 음란하고 도적질하고 편벽됨. 전능하심을 어떻게 믿느뇨? 창조주 되심으로 곧 자기를 지으심을 믿고 지금도 살려주심을 믿음으로. 24장로는 믿는 것이 아니고 밝히 아셨다. 4영물은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뵈옵고 경배합니다. 경배= 하나님을 꼭 믿고 살아계심을 믿고. 어린양에게 경배한 이유= 책을 가지시고 인봉을 떼시기에 합당하심으로(거룩하심으로)

(히7;21) 거룩= 구별되었다는 뜻. 예수와 인간과 다른 점은 정욕에서 멀리 떠나 계심으로 거룩하심. 다윗의 뿌리가 이겼다. 정욕의 침해를 조금도 받으시지 않으시고 물리치셨다는 말(마음만 있어도 간음이라 하셨음) (마 5;8 히12;14) 거룩치 않으면 하나님을 볼 수 없음. 지극히 거룩하심으로 만백성을 사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음. 의인도 죽임을 당했는데 왜 예수님만 높이셨나뇨? 의인은 행할 수 있어도 거룩치는 못함으로 예수님만을 높였음. 의인은 행하려 힘쓰나 거룩은 좇지 않음으로 믿어지지 않음. 예수님 거룩하신 피 믿으면 나를 속량하신 것. 천국 백성 거룩한 제사장 땅에서 왕 노릇 할 것 믿습니다. 천사들 노래의 뜻. 예수 죽으심으로 땅에서 죽은 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눅15;10) 죽는다는 뜻= 완전한 회개 (눅 15;7) 천사들의 노래 어린양의 죽음 (롬8;20-21) 만물이 노래하는 뜻은 만물이 억울함에서 풀림으로 (롬8;31) 하나님의 뭇 자녀는 성신의 인도함을 받는 자 (성신으로 죽은 자가 받음) 어떻게 하여야 성령을 받느뇨? 어떤 이에게 (요7;37)

1)믿고 2)순종하고 알아야 한다. (요 14;16) 성령은 우리의 선생이심. 성령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시는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를 알아야 참예배가 됨. 성령으로 통하지 않고는 예배드릴 수 없음. 만물까지 예배해야 참예배가 된다. 만물을 살해하고는 참예배가 못됨. 노아 방주에는 만물이 다 들어 있었다. (엡1;21) 교회는 만물까지 다 주장하게 하는 하나님의 뭇 자녀의 모임. 노아 방주는 교회가 예수님의 한 가족으로 될 것을 가르침. (노아의 한 가족이)

 

3/5 밤

(눅12; 롬14;17 16;12 빌3;17 14 딤후 3;1-7 디도 1;12 롬14;17-18 눅2;52 18;11 17;11-19 17 행5;8 믁 2;5)

교회는 성령의 음성이 끊임없이 들리는 곳. 그 빛이 끊어지면 생명의 빛이 사라진다. (고전12;2) 성령은 감사할 것을 알게 함. 우리 일에 대해서 우리로 만족케 하심 (고후 3;5)

 

 

3/6 아침

(행20;28) 교회는 예수 피로 값 주고 세상에서 사셨다는 것 분명히 해야 함. 성도의 모임 그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힘 되므로 큰 은혜가 된다. 자기를 피로 사서 즉 마음에서 증거가 확실해 정욕이 벗어짐으로 상쾌하고 감사하고 즐거움을 예수 피가 아니면 도저히 얻지 못할 사실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가 없으면 조금도 정욕이 물러가지도 않고 물러갈까 심히 두려워하고 물러가면 애통하는 것임. 세상과 교회가 분명 분간이 서야 함.

교회는 정욕을 슬퍼하고 예수 피로 모아놓으신 교회 (행20;28 베전 1;18) 세상 정욕을 미워하는 마음.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멀리하라. 정욕을 즐겨하는 마음과 싸우라. 자기가 보배로 오신 피로 사신 몸과 영혼이라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희미하면 확실하기까지 노력하라. 그렇게 되도록 진실히 살아라. (고후1;19, 2;10) 정욕은 지옥을 이긴다. 하나님의 교회는 거룩하심으로 이루어지고 세상은 마귀와 지옥 정욕으로 이루어짐. 정욕의 머리는 음란, 세상은 음란으로 이루어졌음 (약4;) 정욕을 멀리해야 하나님 나라가 가까워짐. 자기와 세상과 차이는 믿는 자, 정욕을 슬퍼하고 싫어함. 믿지 않는 자는 정욕을 이루려고 노력하고 이루어지면 좋아합니다. 은혜를 받았는데 은혜로 여기지 않고 욕심이 만족치를 않아 감사가 느껴지지 않는다. 병은 나았으나 다른 향락 찾아가려고 은혜를 모른다. 믿는 자는 세상일을 못 한다. 하나님이 죽이시면 죽고 살리시면 살고 믿고 나간다. 세상일도 하나님의 권능으로 되어가지 우리의 능력으로 되어지지 않는다. 안 믿고 일하는 것은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망치는 일이니 (묵10;16 마13;44)

밭 산자= 예수 당신 피와 살과 영혼 다 주고 사셨음. (예수)천국은 믿는 자의 마음 또 교회 밭 산 이유= 믿는 마음 얻으시려고 세상을 유지하심.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 벌써 불살라졌음. 믿는 마음은= 예수님에 귀하신 노력과 피로 얻으신 이것이 확실해야 나 하나 얻으시려고 그 피를 한 방울 한 방울 아낌도 없이 남김도 없이 쏟으심이 알아져야 함. 예수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예수님께서 그 교회를 반석 위에 지음과 같음. (마 7;24) 교회 세우신 자는 예수님 반석 믿고 행하는 마음. 피로 사신 교회는 영원히 안 무너짐. 피로 사신 자는 망할 자가 없음. 폭풍우와 이 세상 환란 근심이 사람에게 부딪치되 무너지지 않음 (마7;24) 정욕 벗는 일이 제일 큰일. 지혜 있는 자 예수 반석 위에 선 자, 어리석은 자는 마귀 세상의 관원 (묵13;7) 모래 위에 세운 자는 즉 마귀. 늘 무너트리는 일. 사탄의 교회는 지옥. 사탄의 사도. 사탄의 선지자 (묵18;) 이적으로 잘 미혹함. (고후 3;10) 닦아둔 터 그리스도의 피 (골2;8) 죽어 승리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정욕이 없어짐. 그 피로 십자가로 정욕 씻기신 것으로 승전가를 불렀음. 이 세상 지혜는 스스로 숭배함과 교만함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로우나, 오직 정욕을 쫓는데 유익함이 없음. (구원 얻는 데는 유익함이 없음) 은혜로 구원 얻을 줄만 알면 아무 일도 말고 기다리기만 하면 좋은데 죄는 짓고 욕심부림으로 안됨. (빌3;3)

참 할례당은 자기는 죽이려고 애썼음. 권능을 믿기 때문에 죽으심을 본받아 어떠하던지 죽은 가운데서 부활함을 믿으려고 함. 이적 기사는 초자연적인 일. (묵7;9) 구속받은 자의 노래임. 구속의 찬송임. 흰옷과 종려나무 가지는 예수님 피로 씻음. 받은 의의 옷이며 승리를 표상함. 예수님의 피로 세상과 정욕과 마귀를 이긴 자들의 승리의 노래 노래에 화답한 노래의 뜻, 어린양의 죽음 어린양의 죽으심으로 의인들이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인들 승리자들의 찬송에 같이 화답하는 자들은 수천 천사들입니다.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의인들이 모여서 노래하는 것을 보고 기뻐서 아멘! 그렇다는 뜻. 구속의 노래와 구원하시는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감사와 영광을 돌림을 보고 아멘! 하고 화답하였음. (요16;20-24 고후6;3-13, 4;10)

세상 것은 먹으나 만족 없고 안 누려 봐도 후회 없음. 땅에서 들리면, 십자가에 달리시면 (요8;5) 청결하고 정직함으로 참 겸손이 보여짐. 생명을 귀히 여기고 겸손함은 하나님 두려운 줄 아는 마음. 세상에서 갈 길 모르는 이들에게 길 가르치는 것임. 특별한 일 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비추라. 세상에서 빛 되면 어두움은 쫓겨나 슬피 울고 이를 갈지라.

날마다 꺼꾸러져도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레데인은= (디 1;12) 거짓말만 하고 거짓만 꾸미니 사랑과 온유가 없음. 소원과 믿음대로 되리라. (마9;) 믿으면서도 의심 있는 까닭과 온전히 안 믿어지는 까닭은 우리에게는 참 진실이 없기 때문이다. 진리와 공의를 배우기 목적해야 흑백을 가린다. 옳고 그른 것을 분간하기 위함. 사랑으로 서로 이해만 해도 좋으나 미워하는 마음 풀어서 (5.) 사단= 근본을 풀어야지 일만 풀어가지고는 밤낮 일만 저지름. 각자 자기 생각하는 일은 옳다고 생각하는 데서부터 풀기 시작해야 한다. 일 시작하기 전에 잘 의론을 해서 양편이 다 의견 일치가 되었을 때 행동을 개시해야 한다. 한편이 그르다고 생각되는 것이 한편이 할 때 오해가 생김. 그 일이 늘 되풀이되면 같이 못 살고 갈려짐. 서로 마음이 상해가지고 맙니다. 손으로는 싸우지 않더라도 마음에서는 큰 전쟁이 일어나는 것임. 서로 너그러운 척하고 자기에게는 과히 손해가 없으니까 참아도 서로 애정과 동정 사랑은 없어졌음. 그 무서운 마음 가지고 풀려고 아니함. 단지 일만 풀려고 하니 이다음에는 또 같이 못 살게 됩니다. 풀기 전에는 일도 풀리지 않지만 아무 생각은 없다고 하나 속에는 존경과 이해와 애인한 생각은 없고 또 같이 살면 또 그래질 뿐입니다. 단지 그릇 사랑으로 미운 생각만 없다고 사랑은 아닙니다. 일은 사랑과 협조심이 되어지고 아무 생각도 없는데 사랑 없는데 미움과 노여움이 끼어있어 저분이 하는 일이 그르다고 생각되면 오해 없다는 말이 안 될 말임. 이해가 안 된다면 오해가 없겠는지, 사랑 없으면 미움이 없겠는지, 그르다고 생각하는 일에 이해했다면 참뜻을 모름. 그 사람은 으레껏 그런 사람이라고 멸시했다는 말씀임. 멸시가 있는 곳에 존경이 어디 있으며, 존경이 없는 곳에 사랑이 있다면 이해가 생겨서고, 잘못한 것을 사랑한다면 이해 생각하고 사랑했을 뿐임. 짐승으로 사람을 보았다는 말 (멸시)

그러므로 해결을 원만히 한다면 진정한 사랑으로 이 일은 저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했어요? 하고 진정으로 이해하는 마음으로 묻고 그릇된 생각 고쳐가며 곧 따라가는 것이 진정 순종함이 아닐까요? 자기만 옳다고 덮어놓고 걷질렀으니 오해가 생기고 오해가 있는 곳에 사랑이 달아나 버리고 사랑 없으면 일을 그르쳐버려 실패했음. 사랑 없는 일은 실패임. 일하는 방식? 욕심 없고 사랑만 있어야 함. 일 끝을 보면 가히 알 수 있음. 우리 생활을 고찰해볼 때 하나님 은총을 깨달을 수 있음.

1. 절제력=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은사임.

2. 이자 돈은 빌려 쓰지 않음 = 하나님의 섭리로

하나님의 은혜인 줄 모르고 사람의 지혜인 줄 알면 일초에 망해 버림. 은총을 드러내려다 자랑으로 돌아갈까 봐 무서움. 하여간 욕심 없는 이가 농사지어야 함. 사랑 있어야 함. 그 이유는 사람이 버려두는 자연이 얼마나 무성한가를 보면 알 수 있음. 욕심 없이 식물을 대해야 함.

욕심으로만 해 놓으면 보기 흉함. 그냥 두어도 잘 되는데, 진정으로 사랑해서만 한다면 얼마나 잘될까요? 욕심으로 억지로 키우려니 그렇지 그냥 사랑해서 손만 보아준다면 손 간 그만큼 잘 될 것임.

사랑에는 진정한 동정과 이해가 따라야 하는데, 욕심으로 많이 얻으려는 것을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오해하고 있음. 자기가 꼭 짐승들만 사랑해서 키우는 줄 만 알기 때문에 짐승이 병들어도 어떻게 되는 줄도 모르고 그저 키우고 있음. 자식들을 키우는 데도 사랑인 줄만 알고 억지로 키우고 억지로 가르치고 있으면서도 그저 잘하고 사랑하는 줄로만 안다.

농사지으려면 부지런해야 함. 밤낮도 없음. 저녁도 모르고 식물과 함께 떨고 비도 맞고 가뭄도 타고. 그렇지 않으면 애당초 그만두어야 함. 아무리 장마에 잘 컸으나 가뭄에 버려둔다면 수확기에 고스러져 죽어버림. 과수들은 특히 바람막이를 생각지 않고는 못함. 아무리 잘했어도 바람에 떨어져 버림. 백 가지를 다 잘하고 한 가지만 등한히 하면 전부가 실패되는 일이 많음. 그러니 부지런해서 아침에도 저녁에도 나가봐야만 합니다. 비가 오는 밤중, 서리가 내리는 아침, 새벽안개 낀 아침 쉴 사이가 없다. 자기도 없고 세상도 없고 자연과 하나님만 아는 이가 할 일. 농사는 식물의 성질을 알아서 자연의 은택을 잘 받도록 해야 할 일이고, 절대로 식물의 성질을 거스르거나 자연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마17;14-21)

제자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도 없었던가? 분명하고 겸손해야 배워짐. 용기가 있어야 겸손할 수 있음. 용기가 없으면 비겁이요 아부이지 겸손은 아님. 시원치 않게 많이 아는 것보다 한 가지라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더러운 물에다 아무리 많은 물을 넣어도 더럽기 때문이요, 정확한 기초 위에 정확히 알아야 할 터인데 수많은 지식 새로운 지식만 불려가려 함. 자기 아는 것을 자기가 모르는데, 확실치 못해서 아는 것을 안다고 대답하기 쉬우나 모른 걸 모른다고 대답하기에는 용기가 더 필요함.

희미한 지식 (마23;14 고전8;) 모른 것을 아는 것도 큰 지식이고 모르는 줄도 모르는 것은 더 한층 무식이다. 확실히 그것을 모른 줄 알았으면 한 가지 정확한지 확연 반대가 나오면 거기에 대한 대답을 못한 것을 보아서 (잠10;19 미12;34-37 아가서3; 잠11;9-11 12;13-14 13;3 21;23 26;16)

말조심하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도 없음.

1. 서로 높고자 하는 것 보아

2. 믿은 줄로만 알았음.

3. 그래서 아무리 주님이 가르쳐 주어도 다 잘 믿지 않고 순종하는 줄만 알고 자기 생각만 붙잡고 놓지 않았기 때문에 ‘믿음이 적은 자여 믿음이 적은 자여’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보실 때는 난장판이다. 숙연한 믿음은 겨자씨 한 알만큼도 없어서 외식(外蝕)과 욕심으로 산다. 권능에 영리는 당하지만 생명이 들어있는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소금의 맛이 있는 믿음이 아니다. 권능이 있는 믿음이 아니다. 참 빛을 바라는 불이 아니므로, 유리 조각도 빛은 반사는 함. 적으나 반딧불은 자기 불임. 소금 모양은 있으나 짠맛은 없는 소금임. 무더기가 큰 빛은 있으나 가보면 없고, 심어보면 나지 않는 종자는 생명이 있다고 볼 수 없음. 소금은 적어도 짜서 소금의 가치를 하고, 빛은 어디로 가든지 빛의 직분을 하고, 종자는 물에 담그면 촉이 돋아나는 것이 참 이치가 아닐까요? 참믿음은 그와 마찬가지임. (요8;43-47, 9;35-41, 롬9;10-30, 10;3.) 들은 줄 아나 실상은 오해하고, 보는 줄 아나 실상은 잘 보지 못함. 잘하는 줄 아나 실상은 넘어지고 있음. 어떻게 하여야 바로 되어질까? 바로 보아지고 바로 들어지고 바로 믿어져서 바로 나가야 함. 말이 많으면 틀리기가 쉽고 (고전8;2) 모르는 줄조차 모르는 것은 어두운 깊은 함정에 빠진 것과 같음. 그 함정에서 나와야 밝아짐. 주께서 나를 아시는 것 같이 알아짐. (딤후 3;) 모든 것을 인정함으로 모든 것을 가리어 보려는 생각에서 더 모르는 것을 밝히 드러내는 것임. 설명들을 붙이나 점점 모른 것을 더 나타냄. 모두 희미하게 아는 것 가지고 아는 줄 알고 있음. 옳게 아버지의 삶을 믿고 낙심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성령의 역사인 것을 믿어야 한다. (고전 3;15) 자기 꾀에 둘려서 낙심함. 헛된 생각은 버릴 것임. 믿지 않는 것 믿는 줄 알고 생각하고 교만 부리다 낙심하고 허망해짐. (고전 13;11 3;15)

어린아이의 일 버림. 이중의 무지 속에 잠겨 있으면 눈이 멀어짐. (베후1;5-9.) 바로 보려면? 바로 깨달으려고 바로 믿으려고 눈을 떠도 안 보이는데 눈을 아주 감아 버렸음. 자기 잘못 아는 것 벗으려다가 주님께 책임전가시키려고 함. (마5;37, 요15; ~ 16;)

바른 믿음, 내가 주님을 알고 따르는 것 아니고 주님께서 나를 따르게 하심. (롬 9;16)

제가 주를 믿은 것이 아니라 주께서 나를 이끄심.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끄심으로 염려 없음. 하나님을 위하여 믿었어도 할 수 없음. (요15;16) 제가 선을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이끄심. 제가 믿게 된 동기, 제가 믿으려 해서 믿은 것도 아니고 믿으면 좋은 줄 알아서 믿은 것도 아님. 제가 믿어진 것은 긍휼 많으신 하나님께서 데리고 가주심으로 이 시간까지 그 성호를 부르게 됨. 제가 원해서 주신 것도 아님. (고후 5;12-13) 하나님께서 이만큼 만들어 주셨다고 믿는 믿음은 바른 믿음임. 적은 믿음은 누구의 선물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적고 많고 상관이 없음. 하나님의 귀하신 은혜에 대해서 감사는커녕 적으니 많으니 귀하니 천하니 하는 짜증을 하고들 있음. 자기가 되어서 된 것 아니고 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습니다. (고9;) 제가 믿어서 믿은 것 아니고 믿게 하셔서 믿음. 그러나 듣고 믿지 않음. 믿음은 행실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부르신 이로 말미암음이니 오직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낳기 전에 결정하셨음. 하나님께서 선하신 뜻으로 결정하심. (롬10;4, 10;8-13, 11;17-24, 30-36) 믿었다고 교만 부리지 말라. 자긍하지 말라. 하나님 은혜로 된 일이니 믿음이 적은 연고라는 뜻은 믿음이 없다는 뜻. 예수를 겨자씨 한 알 만큼도 못 믿었음. (다시 살리실 주님은) 하나님 뜻대로 사시니 죽어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못 믿었음. 떡은 먹이시고 병은 고치시나 (롬11;6) 벼 껍질은 아무리 쌓여 있어도 싹이 안 틈. 자기가 믿었으면 아무리 크게 잘 믿었어도 겨자씨 한 알만큼도 믿어진 참 생명 있는 믿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져야 함. 하나님이 뭇사람을 순종치 않는 범위 안에 두는 것은 뭇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시기 위함. 양은 스스로 속이지 말 것. 아는 체 믿는 체 말고 잘 모르는 것은 선명하게 모른다 하고 아는 것은 아는 대로 말하라. (고전 4;7) 어떻게 믿었는가? 1) 세상 2) 자기가 믿은 줄 알았음. 예수님 사랑에 이끌려 가는 줄 모르고 자랑했음. 욕심부리고 사랑도 모르고 덕도 모르고 사는, 안 믿는 이들에 대한 자긍. 없는가? 자기가 믿는 줄 아는 믿음은 즉 자기를 믿는 것임. 예수를 믿지 않았음. 예수는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예수와 같지 않았음. 자기 영광을 구했기 때문에 병 못 고쳤음. 그 병 고쳐서 자기 실력을 나타내서 높이 올리려고 했고 하나님 영광을 구하고 사람을 동정해서가 아님. 자기가 믿고 자기를 위해서 믿는 것은 참믿음과는 다름.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된 신앙이면 더 활기가 있고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어야 할 터인데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신지요? 마음에 불만 불평도 없고 불안과 공포도 없고 자기 권능 말고 주님 권능으로 고쳐야 함. 내게는 권능도 없음. 내 힘 가지고 고쳐서 나를 나타내지 말고 주님 권능 가지고 고쳐야 함. 아버지의 뜻으로 고치려 애써야 함. 자기들 생각으로 말고 여호와께서 좋아하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라는 뜻은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만 이루시려는 것 같이 그 뜻만이 이루려면 다 이루어진다는 말씀. 자기를 믿고 자기 권능으로 선한 일을 이루려 하고 그것이 여의찮을 때 낙심하고 아무 소망도 없고 기쁨도 없어짐. 자기 좋은 것을 해서 자기를 만족하게 하려다가 안 되면 고통이고 믿으려다가 고통이 된 것 아님? 참으로 하나님 권능만 믿고 그 자비만을 매우 의지하고 그의 뜻대로 살고 그의 목적만 앙망해야 함. 자기 힘으로 하려고 말고, 자기 좋은 것 포기하고, 자기 목적 이루려 말고, 자기 목적 없고, 하나님이 내게 향하신 뜻이 크고 선하시니, 우리에게 부족이 없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이루실 것이요,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없음. 내가 나 위해서도 내 몸 하나 간직 못함.

머리털 하나도 나게 못함. 머리털 많으니까 귀하게 여기지 않음. 많으면 없는 사람에게 자기 것으로 자랑하고 적으면 하나님께서 적게 주셨다고 짜증을 내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이다. 없는 이에게는 자긍하고, 없으면 한탄하고 말로는 하나님께 받은 것이라고는 해도 감사히 받아서 잘 쓰려고 아니하고 자기 뜻대로 쓰려다가 안 되면 원망만 함. 하나님께 받았다고 하는 것이 원망하자는 조건이 되어버림. 감사할 일에는 자기 것 삼고 전부가 그러함. 주 여호와여! 주의 은혜 적게 여기시고 이것이 어찌 주의 규례이리까? 다윗이 또 무슨 말 하리이까?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주의 말을 아는 자가 누구며, 함께 의로운 자가 누구며,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얻은 자가 누구며, 만물이 다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 돌아가니 영광은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에서 이미 받았은 즉 어찌 받지 않은 것 같이 자랑하느뇨? (눅17;31=37) 저로 하여금 여호와만 의지하게 하옵소서. 종일 우상을 섬기지 말게 하시옵소서. 탐심은 곧 우상이라 하였사오매 탐심을 품지 말게 하옵소서. 롯의 처를 밤낮 생각케 하옵소서. (마24;15, 골1; 마12;) 의문을 좇지 말라. (곧 월삭과 안식일) 날마다 구별하시는 것이니 거룩 되게 지키라. 의문= 곧 의식 곧 법례 법식 예법을 기록한 글= 율법 (사 11;3)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음. (잠 13;12 23;17) 반드시 소망이 있어서 끊어지지 않음. (시139;13-14) 나를 지으신 이 신묘막측(神妙莫測) 하오이다. (롬12;1) 몸으로 영광을 나타내려는 것은 당연한 율법임. (잠 20;21) 육신은 썩을 것이라 천히 여김. (잠 11;10-13) 제 것 삼아가지고는 귀하게 여기면서 율법 없는 이에게는 자긍하면서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할 때는 원망하다가 제 것 되면 자랑함. (요5;40-43) 영광 돌린다고는 하나 참으로 구하는 자는 없음. (렘 5;1 롬 6;12-13 15;19)

(고전 6;13 엡530 마15;8-10 롬1;21-23 잠22;18) 하나님을 아는 것도 좋으나 영화롭게 하여야 함. 하나님을 알고 의지해야 함. 사람에게 영광 돌리고 사람 의지함으로 (창15;6-9) 진정으로 바치지 않으면 참 생명의 가치를 모름. (롬12;1)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진정으로 아낌없이) (마25;34) 자기를 위하여 예비하신 큰 복을 모른다. (41)

말로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쓸데없는 종이 되지 말기 원함. (히11;6)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

1) 하게 하심을 믿는 일. 2) 찾는 자의 상이 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함. (창15;1)

보호도 되시고 좋은 상급도 되시고 (창5;6) 내가 나 위해 아무 것도 못함. (히11;9)

경영하고 지으신 자는 곧 하나님이심. (롬11;34)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서 출발해야 기쁘시게 놀라운 목적과 경륜에 순복하고 의지할 것뿐, 그 상급 얻게하기 위하여 우리를 세상에서 불러내셨음. 그 크신 복 모르면 진실로 믿어 순복하여 자기를 제물로 바침을 알려주심. 믿지 않고 순종 안하니 모름. (눅17;5-10 고전3;7-9 4;6 9;16 고후12;7-8 사43;2) 1) 면한 것을 다 행하되 2) 무익한 종 3) 마땅히 할 일 한 것뿐 잘못함을 아는 것이 잘되게 함. (딤전6;7-8 고후12;8 딤후1;13-14 4;7 갈6;3 빌4;18 고후 6;10 히7;22 8;6 고후3;5-6 고전 15;9 고후3;5 엡2;8-10)

참으로 약한 줄 알면 강해짐. 마음 은혜대로 아는 이가 있는지, 은혜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은혜만 구함. (마24;) 주신 마음에 감당 못하고 욕심만 부리다가 이미 주신 것까지 빼앗김. 약해서 미련해서 걱정. 약한 데서 온전히 이루어주시는 은혜이심. 미련한 자를 택하사 지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는 지혜이심. 없는 것을 택하사 있는 것을 폐하시는 하나님이심. 안 믿어지는 이유= 자기가 스스로 강해서? 지혜가 있어서? 권능이 있어서? 미련한 줄 알음. 주의 뜻 행하는 데는 약하다고 핑계함. 의식 염려 말고 그 나라와 의만 구하라. 참으로 예수님은 거짓말 없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드님으로 믿으라.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원한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고전 6; 10;10 민15;30-31 삼하12;8-11 잠13;13) 하나님을 멸시한 죄가 없는가? (대하36;15 삼상15;19 잠1;28-33 게22;10 11-13 마12;18-19) 다 가만두시고 심판을 전하는 것뿐. (마12;20 22;34 11;11-12)

하나님을 믿으려고 힘써야 함. (잠1;28) 지식을 심히 미워하고 있으면서 지식을 구하기에 미치기는 함. 옳은 지식 업신여기고 (마11;20-24) 믿음은 접(椄) 부치는 시간 (생명 나무에) 과실은 나무에서 진액이 와서 달려 있는 것이고 과실이 진액을 내서 나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님. 진액을 받으려고 않고 자기가 커보려고 함. 거만함으로 크려고 함. 믿으려고 않고 자기가 커보려고 함. 믿으려고 않고 자기가 일에 힘쓰므로 실패함. 왜 믿음이 크다고 하셨는가요? (마17;) 지극히 겸손한 것은 생명의 주를 안 까닭임. 그래서 그 은혜를 갈급하게 끝까지 청했습니다. 왜 교만한 자를 사도로 부르셨습니까? (마8;10 15;8)

교만한 이가 겸손해지면 은혜가 더 크심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이 믿음이 큰 까닭은 욕심이 있어서. 믿음이 큰 데 예수님께서는 안 쓰셨습니다. 영광이 더 큽니다. 숨은 봉사만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로 드러나 버리면 영광이 감소됩니다. 대접과 존경을 받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이 부러운지요? 모르는 줄 아는 것이 더 잘 아는 것입니다. 아는 줄로 알면 교만해져 버립니다. 그래서 버림받기 쉽고 아무 쓸데 없는 지식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모르는 것은 교만한 까닭입니다. 믿는 줄만 알았기 때문에, 사도들같이 못 믿는 이들도 고집을 내버리고 겸손하니까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이상히 여겼습니다. 권세 있는 자 같고, 서기관과 같지 않음으로, 크게 교만했으나 겸손히 자기가 아신 것을 버림으로 크게 쓰신 바 되었습니다. 바울사도 (딤전 1;12)

믿지 않을 때 알지 못하고 하던 일을 깨끗이 관뒀습니다. 큰 죄인이 회개하면 더 큰 능력이 드러납니다. 자기가 큰 죄인인 줄로만 깨달아지면 큰 믿음이요 구원입니다. 무식하고 아무것도 아니고 가치 없는 것으로 알면 크게 쓰이는 바가 됩니다. 백부장 처지에 제 주제를 아시기 때문에 귀히 여기는 믿음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이 왜 귀한 것입니까? 예수를 감당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권세와 물질로는 도저히 감당 못할 자로 알았음. 생명의 주로 믿었음. (창32;7-10 삼하7;18 창18;27 마3;17 3;11 창12;10) 크신 은혜에 감격함. (삼하7;18) 은혜가 부족한 감사는, 거짓 은혜를 받고도 말 못하는 것은, 참 은혜 부족한, 받은 바 은혜 증거해야 은혜가 되지 진정한 감사가 아님. (마11; 29 행20;19) 주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심. (삼하7;18 마3;18) 바울사도도 크게 겸손하셨습니다. 잘 믿는 이들은 아브라함 야곱 다윗 요한 바울 참으로 크게 겸손하셨습니다. 믿는 일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는 일입니다. 그 크신 사랑에 감동이 없으면 믿는다고는 하나 아무런 기쁨과 감사가 없음. 예수님의 사랑에 접촉해야만 됩니다. 접촉이 없는 한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시원치 않습니다. 물속에 잠기듯이 넓으신 사랑에 잠겨야 합니다. 그것이 믿는 일입니다. 금식하고 절제하는 것도 그 사랑에 감격되어서 하고, 고생도 사랑에 못 이겨서이고, 고기를 안 먹는 것도, 사치를 안하는 것도 그렇고 정욕을 떠나는 것도 그 은혜에 감격 되어서 되어지는 것이고, 그 사랑에 끌리는 것 아니면 억지 짓이고 거짓 짓만 됩니다.

 

 

5/7

그 은혜를 맛보았으면 세상은 멀리 떠나집니다. 그 은혜가 더 좋아서 (골2 ; 20-21)

누가 맛있는 것을 두고 맛없는 것을 먹겠는가요? 참 맛있는 것을 넘치게 두고 생수를 두고 쓴물과 짠물을 먹겠는가요? 절대로 없습니다. 누가 쓴물을 먹고 죽겠는가요? 생수를 먹고 싶지요. 은혜를 무시로 주시지만 간직 못해 잃어버립니다. 욕심부리지 말고 간직 잘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은혜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 귀하신 사랑 너무 몰라서.

자기 할 일만 잘하고 있으면 욕심 안 내도 풍부히 주십니다.

허수히 알아버림 (렘 31;3 호세아 10;15) 범사에 진실만 위주하면 위에서 보호하심으로 아무 염려 없습니다. 적게 갖고 귀중히 여겨 잘 간직하고 살면 자기를 이기고 남을 구원하고 나라와 세계를 구원하는 곧은 길입니다.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빼앗겨 버립니다. 읽을 때 자기감정이나 의문 없이 읽어야 합니다. 자기감정 섞이면 조금도 교훈이나 순수한 이지적인 진리가 못됩니다. 말씀은 참 이치, 참 진리를 참으로 사람들의 양심에 새기자는 큰 목적. 하나님은 참 이치시고. 이치는 참에서 나온 진리가 참 이치인 것입니다. 꼭 자기 행신 않는 것 가져야 합니다. 귀중하신 은총으로 받아진 행신 귀하게 여기지 않다가 다 빼앗겨 버리고 나중에 거지가 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억천만 사람이 그래서 천하고 비루하게 되어집니다. 처음에는 다 타가지고 나왔음. 물질이나 영혼이나 그 이치만은 하나입니다. 둘이 아니심으로 물질의 세계로 안보이시는 신령한 세계를 가르치시려고 보이는 세계 지으셨습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한 이치로 그 두 세계 지으셨음. 잘못 봄으로 멸망 당하는 것이지 그릇되게 뒤죽박죽 지으신 것 아님. 스스로 말하게 하면 망쳐 버림. 타인이 망치려 해도 자기만 잘 지키면 망할 사람 없습니다. 자기 외에 자기를 망칠 자 없습니다.

 

우리의 큰 의무

하나라도 찾아 받아야 할 크고 무서운 책임 있음. (마18 장)

바울 사도는 세계에게 빚진 죄인 곧 죽을 죄인이라고 자인했음. 에스겔은 사람들의 피를 파수꾼의 손 곧 자기 손에서 찾아내실 것이라고 했음. 아브라함의 신앙은 행실에 결함이 없는 것 아니고 결함 천지이나 그 함정에서 한 가지씩 신앙으로 이겨 나온 기록 있습니다. 신앙이 아니면 이기려고 안했을 것이고, 자기 의지로 이기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봄으로써 이겼음(맡김으로).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심으로, 이길 것을 굳게 믿고 흔들리지 않았음. 허락으로 된 이삭은 자기 힘 끊어진 후입니다. 우리는 죄를 끊고 선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바랄 뿐임. 속히 안주신다고 나댈 것도 아닙니다. 크신 허락은 일조일석(一朝一夕)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안 맡겨서 못해 놓고 진리가 아니라 안된다 함. 능력에 맡기면 안 되는 것 같아도 자기도 모르게 이루어 짐. 연조와 공로만 믿다가 낙심 당함. 바른 신앙 찾지 않기 때문임. 능하신 자 팔 아래서 죽었어야 함. 이대로 살아서는 애써도 소용없음. 바울 사도도 자기가 해보려다가, 오호라 괴로운 사람이라 부르짖었음. 권능에만 맡기라. 자기 그릇된 신앙 감추려다가 큰 죄 지음. 주님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심. 주님 없으면 나도 없고 다른 이도 없고 세게도 없음. 아브라함의 걱정 된 점. 다른 이에게 하나님 안계신 줄 알아서, 자기가 보는 데만 계셔서 도와주시고 다른 데는 멀리 떠나계신 줄 알아서, 실패했습니다. 이방에 갈 때는 자기 수단으로 생명을 보존하려 했음. 자기가 복 받은 자인 줄 모르고 스스로 걱정함. 항상 지키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음. 안 지키시면 나는 못삽니다. 크신 권능이 붙으셔야 깨달을 수 있음. 약함을 기쁘게 자랑함. 선생님은 ‘날마다 시간마다 그 크신 보호 알아야 한다’ 하셨습니다. 자기들의 권능으로 나아가는 줄 알고 있음. 자기들의 권능으로 나아가는 줄 알고 있음. 조금도 자기 지혜나 권능으로는 한 시간을 못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함. 풍랑 많은 야곱은 하나님께서 항상 자기와 같이 계심을 알았음. 신앙은 하나님이 같이하심을 체험하는 것임. 같이하심을 모르면 허풍선임. 알맹이 없는 껍질임. 죄 있으니까 더 의지해야 하고, 더 보호하시고 더 사랑하심. (빌1;19-26) 심히 약한 몸을 가졌으나 이것이 오히려 여러분의 간구와 성신의 도우심으로 저의 구원에 유익이 되는 줄 알고 온전히 맡기는 믿음. 약한 몸에 예수 계시면 감사합니다. 내게는 산 것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면 죽는 것도 좋습니다. 양심의 고난을 받으면서 회개함에 이르기를 원함. 누구든지 속인 일이 없음.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여러분을 정죄코저 함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는 같이 고생 받아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살고자 함입니다. 온전히 주께 맡긴 바요 사람의 수단이나 방법으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안 하면 되어질 일이 없고, 하나님의 권능으로는 능하시지 못할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에 맡겨도 안되면 천하 사람 다 힘써봐도 안되는 일입니다. (롬7;24 고후7;10 요16;20 롬8;38-39)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적어 탈입니다. 세상 근심하느라고요.

그 권능을 믿고 온전히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권능에 의해서 쓰이고 있습니다. 쓸모없는 것을 가지시고 조심해서 쓰신 듯합니다. 권능의 크심 심히 크십니다. 사람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보이는 능력보다 보이지 않는 능력 더 크십니다. (삼하17; 마8;23-34)

보이는 은혜보다 보이지 않는 은총이 더 많음. 보이는 것은 잠깐이나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요, 보이는 것은 낡아져 가나 보이지 않는 것은 날로 튼튼해집니다. 마음속 풍파 잔잔해집니다. 보이는 것에 치중하다 보면 주님을 늘 배척하고 쫓아냅니다.

외부적인 권능 보고 마음속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눅5;7)

물질적인 것 보고 신령한 능력과 은혜를 깨달음 (갈4;21-34 29 여24;1-14)

핍박받는 편이 되어지고 핍박하는 편에 속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능력 있으면, 즉 세력 있으면 하나님 나라 못갑니다. 세상 것은 끊고 오직 주님만 섬기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핍박하고 멸시하고 죽이기까지 한 예수님만 따릅니다. (잠15;31-34 4;23 5;21-23 6;26-35) 행실 얌전하다고 믿는 것 아님. 행실만 힘쓰다가 믿음 잊어버립니다. 행실 얌전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믿음으로 예수님 피로 씻어진 행실이라야 합니다. 주님 뜻대로 (알게 살게) 하옵소서. 성신 소멸치 말게 하옵소서. 영이 거급난 얌전이라야 합니다. 그렇기에 성령 인도만 믿어야 합니다.

예수 피로 만든 예복을 안 입었음. (마22;1-14) 자기 옷 더 좋게 여겨서 그 예복 받아 입을 필요를 느끼지 않음. 즉 자기 행실 더 깨끗하니 예수 행실 얻어 입을 필요 없다고 생각함.

자기 의(衣) 좋으니 예수 의(衣) 필요 없다고 생각함. 다 자기가 힘씀으로 의롭다 함을 입은 자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 힘으로 가려고들 힘씀. 택함 받은 자는 적음. 자기 나쁘다는 것 미리 알아두어야 합니다. 아무리 아까와도 자기는 마땅히 버릴 것입니다. 행실 나쁜 이도 부끄러울 것 없습니다. (그것은 버릴 것이니 벗어버리면 그만입니다.)

예수님 옷 많고 좋으니 믿기만 하면 그저 얻어 입어집니다. 믿음으로 의로워집니다. (야곱, 아브라함 의인들) 영의 지도 받으려고 힘쓰라. 범사에 하나님 앞에서 행하라.

자기 안에 선생 계시니 밖에 것이 선생이 아님. 우상을 없이하라. 진정으로 성령의 감동을 소멸치 말고 정정당당한 성령의 감화와 마귀의 유혹 분간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우상 무너트리라. 성령의 탄식 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성령의 감동을 소멸치 말게 하옵시고 깨닫게 하옵시고 분간 주시옵소서. 육의 소리에 속지 말게 하옵소서. 세상에 멸시당하고 돌 맞고 십자가에 홀로 돌아가신 주님만 모시고 따라가게 하옵소서. (롬18;38-39 고전10; 5 빌3;3 창6;5 마23;37 시121;1-) 성령이 우리 연약함을 도우심을 믿고 굳세고 담대하라. 성령만 믿고 그의 인도하심만 따르라.

말씀하신 분이나 깨닫게 하신 분은 한 성령이심. 자기가 말씀하는 것 아니고 자기가 알아들을 수 없음. 성령의 감화를 기쁘게 여기라. 누구에게나 주셨음. 안 받은 줄 알고 망령되이 여기지 말라. (빌3;2-3)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 기쁘게 살 것을 요구하십니다.

무단히 우는 것은 싫어하시고 요구치 않으십니다. 짐짓 우는 모양 꾸미지 말라.

성령이 완전한 지도자이시며 보호자이시며 선생이 되심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성령이 베푸신 은사는 누구나 기회 있고 원하는 자는 값없이 받습니다. 성령으로 주신 생각을 성경 말씀 성경으로 풀어주십니다. 그 사실이 뚜렷이 이루어짐으로 뚜렷이 나타남.

남자들의 찬란한 활동의 배경에는 위대한 여자들의 산물(産物)이 있습니다. (성모님, 요한, 모세의 모친) 여자는 나타나지만 않으면 위대한 공이 됩니다. 나타나려다 실패합니다. 숨어서 일만 하다가 마치면 성공입니다. 드러나면 실패합니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 여(女) 선지자들의 끝이 안 좋은 이유. 나타나려다 좋지를 않았습니다. 숨은 봉사 성모마리아 준비된 후 구세주를 탄생하셨습니다. 어머님이 준비된 만큼 아들이 크게 됩니다. 긴박한 욕구 여자부의 현숙한 숨은 빛나는 활동이 심각히 요구됩니다. 여자부가 살아서 움직이면 남자부는 늦게라도 생장합니다. (이삭처럼) 여자부가 의심이 나서 흔들리면 아무 것도 안됩니다. (아브라함의 위대함도) 사라 만큼은 정절을 지켰음으로 위대한 역사가 나왔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바뀌었으면 썩은 역사 그대로입니다. (갈4;21) 남편 없는 여자가 남편 있는 여자보다 크고 (더 많다) 계집종의 세력이 아무리 커도 하나님 기업 못 얻음. (이사야54;)

그 한 사실로 인하여 구약의 모든 선지자가 모세로부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움직이는 일이 절대로 요구됨. 절대 겸손하게 성령의 역사 따르면 남녀의 하는 일에 구별 없음. 여자는 여자로서 할 일 하고 남자는 남자로서 할 일 함으로 분등 없으나 숨어 봉사하는 일의 공이 더 크다. 남자는 나타나야 해서 자칫하면 과장하기 쉬워짐. 우상을 부수자는 것도 그 뜻이 포함됨.

1. 마음에 스스로 선생이라 하는 것 보여주는 것이나 관념조차도 걷어치워야 함. 성령의 눈으로 보아 과장된 것 발견해야 합니다.

2. 모든 이에게 선생 아니라는 것 역설하시라. 죄인의 하나로 구원을 갈급 해 애걸하면서 살려 합니다. 허울 좋은 선생이란 너울 벗어 버리고 길가에 버려진 헌신짝이 부럽습니다. 다 떨어진 짚신 아무 데나 끌고 다니던 도적이요, 음란자요, 간음자임으로 헌신짝으로 알아주는 것이 사랑이십니다.

 

(약5;4) 삯이 소리 지르며= 성도들의 쓰라린 경험에서 받아진 귀한 하나님의 진리를 순종치 않음. 의로 부자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재물은 불행을 초래합니다.

성현들의 탄식소리= 쓰라린 경험에서 얻은 진리를 받아서 도 멸시 해버리고 자기의 명예와 사랑과 안락만 사랑하고 붙들고 있습니다.

(히13;17) 순종은 마음으로 어려워도 미워도 (묵6;9-11 갈6;6-10) 삯을 안 주면 그만큼 원통한 일 볼 것입니다.

 

 

예수와 저

예수는 전체시고 저는 지극히 적은 한 부분입니다. 전체가 살고 저도 살 수는 있으나 전체는 죽고 저만 살 수는 없는 일이올시다. 전체의 목적에 의해서 움직여 갈 때 산 것이고 저 따로의 움직임은 헛손질이요 헛발질밖에는 안될 일입니다. 예수님의 목적이 제 목적이옵고 제 목적이 따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올시다. 아버지 뜻 떠나서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모쪼록 주님의 뜻 알고 거기 순종할 마음 주옵소서. 능력과 무한 자비로 붙잡아 역사하심만 바라나이다.

거룩한 자가 이 땅을 차지하리라. (사6;11-13)

말씀이 이루어질 때가 올 것입니다. 미구에 예언 미구에 (사10;1-4)

7번씩 70번이라도 용서하라. 하루에 7번씩 70번이라도 자복하고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사(赦)해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론에 있지 않고 오직 권능에 있습니다. 권능 믿지 않으면 생명은 없습니다. 종교에 대하여 변론치 말라. 종교 생활은 신앙생활과 무종교생활과 중간임. 여러 가지 이론이 사람을…. 참으로 믿어서 권능을 얻어 몸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바른길에 들어서기를 원하고 바른길에서 딴 길에 나가지 않도록 애탈 것뿐입니다.

신앙은 정금(正金)보다 귀해서 아무 사람이나 거저 가져가지 못합니다. 참 신앙은 무한히 귀한 줄 알고 밤낮 바른 신앙을 흠모하고 애원할 것뿐입니다. 지금 가졌다고 생각할 수 없고 흠모할 뿐입니다. 나라에서 화폐로 금도 대용커든 하늘나라 참 귀한 보구(보배) 아무에게나 주시지 않습니다. 지금 받는다고 조급히 나댈 것 아닙니다. 멀리 오래 사모할수록 귀한 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히11;13-16) 모세의 어머님도 모세의 준수함을 보고 하나님의 일꾼 될 것을 믿고 보지는 못했으나 기뻐했을 것입니다. 죽어서도 모세의 활동을 보고 믿는 일 = 소망

속히 안 이루어 주신다고 조급히 나대면 참 신앙은 아닙니다. 오래 기다리고 바랄수록 신앙은 위대합니다. 속히 이루어질수록 작은 신앙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고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히11;13;16) 나온 바 본향? 땅에 있는 본향= 살다 온 본향. 외롭게 헐벗고 집 없이 구박받는 생활 아닙니다. 아름다운 본향= 하늘나라 안 보이는 영원한 나라 본향 나그네 생활 구박받는 못난 생활 죽기까지 대를 이어가려 하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 바라서 보이는 것 얻는 것보다 더 고생하였음으로 오래 기다리고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함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천성을 예비하셨습니다. 땅에서는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는 것을 위해서 (히11;25-38 39-40) 우리는 바로 구하면 지금도 얻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아름다우신 구속하신 공로 우리 믿는다 한 그대로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으면 온전함을 얻습니다. 우리의 힘이 아니고 구속의 은총과 성신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자비로 구해야, 끝까지 구하지 않고 (도중에) 말아버리면 서로 낭패입니다.(하나님도 나도) (아4;8, 1;6-8)

걱정과 수단보다 꿇어엎드려 비시기 바랍니다. 풍랑 위로 걸어오신 주님의 은은한 음성이 들려오지 않을까요? 원수는 배가 건너편에 닿지 않도록 할 것이다. 축복을 빌라. 크신 신의 움직임을 빌라. 바람. 종이 주모의 손을 바라듯이 흐트러진 이스라엘을 모으듯이 각각 소원을 놓지 말면 그보다 더 크신 도움 없음을. 소망 없는 세상으로 파도에 밀려가는 것을 참아 볼 수 없는 일입니다. 헤엄 잘 치는 이가, 구원에 능하신 분이 있어야지 별 도리 없습니다. 시급히 구원의 손이 임하시길 원합시다. 주관을 떠나서 냉정히 객관적 사실과 맞춰볼 줄 알아야 합니다. 주관=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보는 것. 내가 마음먹는 대로 되어집니다. 사람을 귀엽게 보면 귀엽고, 천하게 보면 천합니다. 나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사는 것 일하는 것 다 마음먹을 탓이라고 보는 관념을 말합니다.

주인이라면 주인이고 던져 버리면 아니고 하는 객관, 나 외에 다른 사람이 보는 것 마음으로는 밥 안 먹어도 좋다고 하나 안 먹으면 배고파서 운동을 못함. 나 없으면 태양도 없다고는 못함. 내가 좋게 여겼다고 해서 국가의 법률이 없을 수는 없는 것.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을 분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에 영원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야 내일이 있습니다. 조 알 하나에 조 이삭이 전부 들어있음과 같습니다. 그 하루를 찾자고 노력하는 것이고 오늘 하루를 맡기 위해 이 시간까지 살아왔습니다. 영원한 때 전부터 내 일평생 수고와 역경을 돌파하여 살아온 것이 이 시간을 위하여 산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무의미하게 지내면 내일도 모레도 무의미하게 지내게 됩니다. 하루가 귀한데 후일에 잘하려고 미루어 갑니까? 마음만 주님, 주님 피로 완전히 씻음 받았으면 환경은 물불도 상관없습니다. 부정하게 엮인 자에게 깨끗함이 없습니다.

참 생명을 발견 못했다는 뜻입니다. 참 살려주시는 놀라운 이적 못 보았습니다. 그저 떡 덩어리가 5천 명이 먹고 12 광주리에 차도록 부스러기 남은 것만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이적은 세상 사람에게 참 생명 나누어주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믿었으면 그 시간부터 영원한 생명이 얻어지고 묵은 생명은 끝이 났을 것입니다.

병 낫게 하신 것=그것보고 귀한 생명 회복하라 하신 뜻입니다. 빛은 예수님이시고 나눠주신 것은 성령이십니다. 빛 속에 곧 육체 속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을 알려 힘쓸 것입니다. 음란 탐심 간사 능청뿐임. 오! 슬프다 괴롭다 이 죽을 지경에서 건져주시기를 바라는 애원 기적 권능을 사모하고 있을 뿐 믿지를 못했습니다. 교만한 맘으로 안 믿음으로 안 믿어 못 받고 받아도 제 것으로 알고 단 하루를 간직 못합니다. 저는 매장되기를 바라나 성심으로 구하지도 못하고 허송세월해서 주님 애태운 것뿐입니다.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꼭! 꼭! 주님만 바라보고 나갈 것입니다. 전능의 주님만 바라보고 나갈 것입니다. 살아서 움직이시기를 바랍니다. 기계로서 말고 예수 정신으로 생각이 살아야 합니다. 마음이 살지를 못해서 육체뿐입니다. 사람을 대할 때 사람이 움직여 날랜 사람으로 보여지어 쇳덩이나 돌멩이처럼 굳어지지 않을 동물처럼 말하며 움직이고 그렇지 않으면 제멋대로 움직입니다. 자기를 항상 버리고 생각이 나기를 바랍니다. 육체는 움직이나 눈만 깜박거리고 아무 생각이 힘이 없거나 죽은 상태임. 믿어갈수록 그 점이 탈입니다. 믿었다는 생각에 단단히 굳어 갑니다. 믿을수록 생각이 바르게 되고 행동이 민첩해 자기 죄상을 철저히 규명하는 것은 상쾌한 일입니다. 사람 부끄러워할 형편 아닙니다. 사람은 나의 죄에 대해 조금도 상관 못합니다. 평안함 주지 못하고 영원한 괴로움 없게 못합니다. 사람 꺼려서 죄 사함 받을 길을 주저하고 망설이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의 할 일 마음속 깊이 숨어있는 죄를 들춰내는 일. 주 인자하심을 헤아릴 일입니다. 자기 마음에 증거가 있을 것이니 믿기 바랍니다. 믿음대로 되어집니다. 그 한없으시고 두려우신 사랑이 제게 얼마나 풍성히도 소모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인자가, 그 한없는 능력, 도무지 헤아리지도 못하고 생각이 미치지도 못하게 세밀하신 보호, 영원한 사랑, 제게 대한 계획이 어떠하심을 알지 못합니다. 크신 권고 지성으로 감사합니다. (기도의 능력) 무한하신 축복을 끊임없이 내리시는 주님! 미약한 것들이 무엇으로 사례하리이까? 염치는 없으나 성령의 붙으심만을 부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절실히 갈망 됩니다. 먼저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저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자기 먼저 잊어버려야 합니다. 얌전타는 생각, 양반 생각이 너무 짙으면 모릅니다. 쩔어버려서, 깊이 잠들면 잠든 것 모르듯이, 펄렁거리면 다른 사람은 숨 쉴 수도 없어도 자기는 모릅니다. 담배피는 이는 담배 독한 냄새 모르듯이 예사롭듯이, 술 파는 여인이 가장 자기가 얌전한 줄 알고 안심하니까 탈입니다. 아까워 말고 부숴뜨려야 하겠습니다. 천국의 사람 되려면 다시 사람 되어야 합니다. 지금 그대로는 안된다는 것 철저히 알아야 합니다. 저도 되어 보지 못해 잘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17, 요3;5)

 

다른 일 마시고 죄 찾는 일 먼저 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믿는 일입니다. 자기 자비 베풀려 마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자기에게서 찾고 넘침을 깨달아 알아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선 베풀려 말고 그리스도의 사랑 깨달아 먼저 하는 일입니다. 자기가 죄 없고 의로운 사람 되려 말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의의 옷을 입었음을 알려주심을 깨달아야 바로 그 일이 믿는 일입니다. 복종하는 일은 행복한 이들의 택하신 길이란 것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조금도 마음에 불만이나 부족 없는 순종, 어린양과 같은 온유한 심령으로 복종하는 것은 참 행복이라고 몸소 체험하셔야 하겠습니다.

자유 없는 일은 참 자유 얻는 방도입니다. 자유 없는 생활, 주를 생각하는 시간, 아! 얼마나 자유와 참 만족 참 위안 이 마음속에 새들어옵니다. 물 한 그릇 맘대로 못 마시고 먹을 것 입을 것 하나 못 입고, 하고 싶은 대로 못해보고 살고 싶은 데서 못살아보고 자고 싶은 데서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부자유, 그를 불러서 참 복 받은 이의 참 자유라 일컫습니다. 주님을 기억하시고, 갈 데도 못 가고,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보고 못 듣는 생활이야말로 얼마나 자유하는 행복의 생활인지요.

절제의 생활, 모든 것 풍부해도 자기는 아무것도 갖지 않은 것처럼 절약해서 쓰고 아끼는 생활, 그것은 모든 것에 풍요를 부릅니다. 아껴 쓰는 이들에게 모든 것이 풍요롭습니다. 아껴 쓰는 이들에게 모든 것이 쌓입니다. 없는 것이 없고 부족한 것도 없습니다. 물 한 방울 아껴 쓰고 나무 한 개비 아껴 때는 그 모습은 그대로가 바로 풍요와 만족 자족한 생활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존귀보다 겸손이 먼저 있고 풍요가 있기 전에 절약이 먼저 있습니다. 빈핍이 있기 전에 낭비가 있습니다. 패망이 오려고 천하게 여겨집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나무나 풀이나 무엇이나 남을 천히 여긴 것만큼 자기가 비천해집니다. 귀하게 쓸수록 자기 자신이 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을 특히 아껴 써야 하겠습니다. 값없는 세월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손 한번 놀리는 것, 발 한번 걸음 떼어 옮기는 것, 말 한마디도 무심코 하시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특히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사람이 되지 말 것입니다. 쓸모 있는 사람일수록 시간의 소중함을 앎니다. 말씀 한마디를 생명의 귀한 씨로 받아서 간직하는 것과 무심코 들어 항상 떠돌아다니는 말로 허술히 알아듣는 것과는 영원한 세대를 두고 차이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노력의 효과를 잘 나타내야 합니다. 자기 하는 일이 다른 이 하는 일보다 훨씬 더 가치를 나타내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아서 인격을 앎니다. 배추 한 포기라도 정성스럽게 가꾸는 것이 자기 인격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 됩니다.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데는 자기 인격 전부가 반영됩니다. 무슨 종자를 하나 가꾸는 것도 잘 가꾸는 것과 허술히 하는 것과는 헤아릴 수 없는 차이가 발생됩니다. 일평생을 두고 시시각각 크고 작은 일을 총합(總合)해서 생각해 본다면 얼마나 놀랄 만큼의 차이겠는지요. 그 결과가 최후로 그 사람의 일생을 결산짓는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그 사명을 띠고 그 지방으로 출장 간다는 것을 알아서, 주둔하고 있는 동안이 얼마이든 그동안 시일로 발휘하시도록 극히 주의하시어 유효한 인격을 빛내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1954년 12 13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

1. 너희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위함이라. 우리에게 닥치는 문제는 하나님의 뜻으로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환란을 당함도 영광을 받음도 하나님의 뜻임을 믿는 것이 믿음. 환란과 핍박이 어려서는 괴로움이 되고 방해가 되지만 자라서 장성하게 됩니다. 이는 꽃에 나비처럼 도리어 반가운 동무가 됩니다. 믿는 자에게는 괴로움이 올수록 기쁨과 만족함이 될 뿐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몸이 괴로움에 처해도 마음이 편하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앎으로 기뻐하며 움직일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다 가지신 분’입니다. 능치 못하심이 없으십니다. (골1; 요17장 마28; 하 반절 골 3;) 위의 것과 땅의 것, 내 육에 속한 것. 위의 것, 나를 이기고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것.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면 내가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믿어야. 그리스도 안에 있으려면 자기의 목적을 바꿔야 합니다. 이제까지는 세상을 향한 목적이었지만 이제부터는 그리스도를 향한 목적, 천국을 향한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토지 변경을 해야 하겠습니다. 부끄러움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 된다. (골3;5-11)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을 얻습니

다. 그리스도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런고로 택한 바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가 되어 긍휼한 마음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옷 입듯 하는 자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 (골3;12-17)

 

5/1일

성령님께서 병석에서 조금도 아프지 않게 붙으시는 그 인자, 진정으로 찬송하고 싶습니다. 수억 황금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은총을 날마다 베푸십니다. 아프신 분들께 대하여 너무 동정없음으로 이번에 체험 단단히 시켜주십니다. 사람들의 부패한 심정 무엇으로 고칠까? 아무리 은총을 내려부으셔도 그대로 썩고만 있는 심사를. 오늘도 보혈을 소나기같이 퍼부으시건만 그리 한 방울이라도 세례받는 심령이 있는지 없는지 실로 알 수가 없습니다. 그 공로 찬송케 하시려 만세 전부터 택하시고 부르시고 길러 오시지만,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고 보답하려고 하지를 않는 심정입니다. 받을수록 부족해서 원망만 하고 한 가지 은혜라도 감사해서 살아나가지를 않습니다. 오늘도 만 가지 은총도 더 베풀고 계시건만 그중 한 가지에라도 감사해서 울음으로 사례하시는 성남 성녀들이 실로 몇 분이 되신고? 약한 줄 아시는 주님은 저를 안 아프도록 안위하고 계십니다. 하나도 안 아프고 움직일 수 없도록 하십니다. 십자가상의 형상 중에서 움직이시지 못하신 점만은 분리해서 체험케 하시는 주님의 은총이십니다. 약함으로 한꺼번에 다 맛보다가는 쓰러질 줄 잘 아시는 주님의 특이하신 총명으로 배려하심인 줄 알고 감사하는 바입니다. 저만 홀로 당해야 마땅할 이 고난을 여러분들이 짊어지셔서 죄송합니다. 주님이 같이 지고 계심으로 실로 저는 아무 괴로움이 없습니다. 제 무지한 죄로 주님만 괴롭힙니다. 아버지여! 주님을 용서하소서. 주님은 무죄하시옵고 저만 홀로 죄인이 아닙니까? 약하게 천하게 깡그러지듯이 힘없이 낙심 나게 살라는 것도 아니고 그것 보기 싫어서 애타십니다. 당신 믿고 바라고 의지하고 힘 얻어서 재미있게 잘살라고요. 우리는 크신 능력으로 보호해주시니 그 안에서만 지내면 염려 없습니다. 환란도 재난도 우수사려(憂愁思慮)도 한껏 자비요 안위가 되는 것뿐입니다. 짠 것도 매운 것도 잘만 맞추면 양념이 되듯이. 쓴 것도 신 것도요. 교만해질까 염려이고 걱정은 아닙니다. 희망차게 빛나고 힘 있게 사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위에서 바라신 뜻입니다. 자비로 도우시는, 잘살도록 도우시는 것이어서 열심히 일들 하시나 방법 이치를 거스르고 일들 하심으로 헛수고와 고집이 되시고, 겸손과 복종과 덕을 닦으시는 일이 못되신다는 것을 아시지요? 농사일은 은혜로 겸손으로 감사로 받는 일이고 이치를 거슬러 억지로 욕심으로 빼앗는 일이 못됩니다. 잘못되면 어디까지나 통회하는 마음으로 자복하고 애걸하고 잘 되면 어디까지나 영광을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리고 감사하고 자기의 공로는 조금도 내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채소 한 포기 푸르게 있는 것도 다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지혜로 자란 것이고 사람이 한 것은 허사뿐입니다. (고전3;6 왕상8;37 례26;3 25;26 신28;21 22;37 58; 42; 52 대하20;9 사52;9-10 35;1-3 례26;3-12 시64;6 85;12 겔34;26 27 36;3-12 67;6 85;12 곌34;26 36;30 욜2;23-24 례26;26 20 신11;17)

은혜로 땅의 소산을 얻을 것이고, 욕심과 시기로 억지의 것으로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지금 채소가 푸르러 있는 것은 은혜의 비 덕분이고, 저희의 지혜나 기술이나 타낸 공로가 아니라는 것이 절실히 느껴집니다. 일해 놓은 후에 가보면 놀랍게도 자라나고 있으니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위에서 키워주신 것만 믿어지고 감사가 나옵니다. 기술들이 서툴고 거름을 못 했고 어찌 서툴게 종자를 심었던지 며칠만 가물면 종자도 못 찾을 곳에서 푸른 채소들이 너풀거리고 있으니 기적만 같습니다. 전멸되었을 거라고 가보면 정반대로 딴판으로 놀랍게 몰라보도록 자라고 있으니 우에서 키워주셨다고 믿어지고 감사가 나옵니다. 농사는 기도요 자복입니다. 감사와 제사도 됩니다. 우리에게서 저주는 거두어 주시고 축복으로 보호하시는 절대하신 하늘 아버지께 영광과 찬송이 되도록 기도와 자복과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어디를 가나 무엇을 하던지 하늘 아버지의 존재하심 위엄하심을 돌려드리려고 힘쓰고 소원하는 것입니다. 모 한포기 고추 한 개라도 가꾸는 목적입니다. 속에 것 고쳐야지요. 겉모양이 믿는 것 아니고 겉모양 얌전한 것 보고 믿음으로 알면 잘못입니다. 겉모양만 단장하느라고 거짓이 됩니다. 겉모양 얌전으로는 구원 못받습니다. 속 변화가 생겨야 되지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지요. 완전히 한번 죽고 그리스도로 다시 삶을 얻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힘쓰지 않고 얌전들만 힘쓰다가 아까운 세월 다 흐릅니다. 누가 지금 믿었다 할 이가 있어요? 믿으면 좋다는 말에 믿는 것이겠지 하고 욕심낸 것뿐입니다. 믿는 것은 아니고. 믿었다면 안팎이 다 새로 지음을 받은 자 같아야지요. 그리스도의 신이 없으니 그리스의 사람이 아닙니다. 육신으로는 아무리 얌전해도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뿐입니다. 우선 제가 믿어야 하겠습니다. 회개 먼저 하십시다. 행실이 옳다는 것은 나중 문제이고요. 행실은 서로 자기만 생각되는 것입니다. 육신을 따라 난 자가 성령으로 난 자를 잘못한다고 돌로 칩니다. 안 믿는 이는 자기가 더 잘한 것만 같아요. 성령보다 자기가 더 지혜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행실 가지고 내세우지 마시고 믿음을 세우십시다. 금식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행위 아니어요. 행위는 구원 못 얻습니다. 행함만 가지고 말씀하시니,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까가 되고 자랑이 되고, 분간이 안됩니다. 부딪칠 돌에 부딪칩니다. 그 돌은 예수님이 십니다. 행함만 힘쓰면 헛수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가 회개하면 천군천사가 큰 소리로 노래를 하시지요. 천지 만물도 우줄거리고요. 한사람이 회개만 하면 분명히 세계는 밝아집니다. 그 빛이 막혀 그쳐서 메마른 땅이 됩니다. 이슬 내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내리신 은혜로 우리가 사는 것인데요. 이슬이 말라 버려서 영이 시들음 같아요. 막혀있는 동안은 시들어 지지 성장은 없습니다. 갈릴 것을 갈리지 않으면 구원은 없습니다. 온유하고 겸손만으로는 사람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물질과 욕심을 끊고 그른 분간이 서기전에는 애통도 소용없습니다. 영으로 모이질 않고 육의 생각으로 모여오니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제사나 지내러 온 자들 같습니다. 조심들만 하고 의식이나 행하러 왔지, 산 말씀 듣고 영으로 살려고 오신 이들이 아닙니다. 의식에 의해서 제사나 지내고 나가서는 그전대로 그전 생각같이 살려고들만 힘쓰시는 것 같이 보여짐으로 괴롭습니다.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인데 암만해도 겉모양 얌전에 치중하고 영의 생각에 살려하는 것으로는 보여지지 않습니다. 죽은 생활이고 참 사는 생활은 아니어요. 살려주시는 이는 영이시고 육신 얌전은 무익합니다. 하나님 앞에 참 예배는 영과 참으로 드릴 것이고 의문과 거짓으로 드릴 것이 아닙니다. 얌전 꾸미느라고 영의 일은 생각 안 하시는 모양이나 겉모양 조심만 하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은 따라가지 않으신가요? 사람을 보고 모이시지 말라고 해도, 꼭 성령의 인도로만 오신 것 같지 않습니다. 사람이 찬송하라고 해서야 찬송을 부르니 참 찬송이 되겠는가요? 말씀도 욕구 없는 말씀이라 들리지를 않습니다. 기도도 자기 생각으로 하니 기도가 아니어요. 행실이 얌전하다고 믿는 것 아닙니다. 행실 나쁘다고 안 믿는 것 아닙니다. 행실만 힘쓰다가 믿음은 잊어버립니다. 행실 얌전한 것 보고 믿음이라 하지만 그 얌전으로는 천국에 가서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 피로 씻어진 흠 없는 정결한 행실이라야 합니다. 육의 얌전으로는 부끄러워 못내놓습니다. 그렇게 성령 인도받으라는 것이고 사람 조심한 것으로는 감히 그 앞에 부끄러워 못 섭니다. (미 5;17-20 22;1-14) 예복 입은 자가 적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피로 만든 예복을 안 입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입는 이 적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옷 더 좋게 여겨서 그 예복을 입을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즉 자기 행실 깨끗하니 예수 행실 얻어 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부끄러워서 밖이 어두운데 쫒겨나갔습니다. 자기가 힘씀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자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 힘씀으로 가려고 힘씁니다. 그런 이가 많습니다. 택함받은 자는 적습니다. 자기 나쁘다고 하면 겁을 먹으나, 자기가 나쁘다는 것을 미리부터 알고 있어 아무리 좋아도 그대로는 해보다 더 밝은데 나가지를 못합니다. 아무리 아까워도 자기는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이요, 행실 나빠도 부끄러워할 것 없습니다. 그것은 벗어버리면 그만이어요. 예수 옷 많고 좋으니 믿기만 하면 거저 얻어 입어집니다. 벗어버릴 옷 더럽거나 낡아지거나 상관없습니다. 예수님 예복 입어 버리면 그것 아무도 기억 못해요. 아브라함도 실수 많고 야곱도 죄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로워졌습니다. 의인들 다 그렇습니다. 처음은 다 나쁜 사람이에요. 행실만 고치려 힘쓰지 마시고 영의 지도 받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저는 흉측한 도적이요. 지금 믿어보려는 생각은 하나 믿지 않아요. 선생 아닙니다.

 

https://youtu.be/UVHCyQaTh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