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우리원과 자연농원 방문 : 돌아온 탕자

mamuli0 2023. 5. 20. 13:08

 곡성에 머물고 있을때 간장 고추장에 관심이 많은분이 찾아와 묻길래 우리원을 소개해 주고 오는길에 순천 자연농을 보고 돌아왔다.

 

돌아온 탕자

1992. 12. 27

탕자의 비유

성경에 세 가지 비유가 있는데 양 잃은 비유. 돈 잃었다 찾은 비유다. 이와 같이 한사람이 회개하는 거 인자 11절 이하는 탕자 형제가 있었는데 하나 잃어버렸다 찾았다. 그 여기도 10절에 보면 이와 같이 죄인 한사람이 회개하면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 한사람 회개 이 우리도 지금 다 한 사람 한 사람 회개하면 다 하늘에서 이렇게 천사들이랑 총동원해서 잔치를 한다. 기뻐서.

그러면 여기 15장에서 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 사람 자신도 기뻐하지 않고 그 아버지도 별로 그걸 기뻐하지 않은 거 누구입니까? 누구죠? 탕자 형 그 아우가 돌아왔으니까 기뻐해야 될 거 아니에요? 아버지 같이는 기뻐하지 못 하더라도 화는 안내야 하고 기뻐해야 할 텐데 말이야. 화까지 내버렸으니 하느님한테 불효요 불효자라 말이야. 효자가 못 된다 말이야.

아우는 살림도 다 탕진해 버리고 알거지가 됐는데도 하느님은 기뻐하신다는 거야. 이 하느님이 기뻐하신 것이 뭐냐? 뭐 몸 건강하고 일 잘하고 모두 그런 것보다도 회개하는 걸 기뻐해요? 죄를 자기가 많이 지은 죄인이라고 하느님 앞에 죄를 내놓은 사람을 기뻐하시지. 뭐 작은 거 가지고 하느님 앞에 나오면 다 퇴짜라 말이야. 그걸 기뻐하시지 않는다. 뭐 슬퍼하지도 않겠지만 어서 회개하기를 바라시어. 하느님은 다 죄인이니까.

 

 

그러면 여기 우리 식구들은 이 세상에서 다 환영할 사람들이요. 환영 못 받을 몸이요? 못 받을 몸이죠? 버렸죠? 버려, 이 하느님께서 여기서 딱 모아줬다 말이야. 하느님께는 기뻐하실 몸들이에요. 마음이 돌아왔으니까 몸과 마음이 하느님께로 돌아와서 하느님만이 기뻐하실 몸이지. 세상에는 쓸모없는 몸들이야. 병도 들고 다 이 하느님이 기뻐하신다고. 우리 모여 있는 영혼들을 기뻐하신다. 세상에는 쓸모가 없으니까.

 

인제 하반에서 좀 봐요. 그 형은 기뻐하지 안했다 말이요. 25절

한편 밭에서 일을 끝내고 돌아오던 큰 아들은 집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자기 집에서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다. 그는 종을 하나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물어 보았다. 종이 대답하였다. 주인님의 동생이 돌아 왔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볼 테면 어서 들어오십시오. 같이 기뻐합시다. 그런 처지 아니에요? 그래서 주님의 아버지께서 무사히 돌아 온 것을 축하하시고자 살진 송아지를 잡아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같이 기뻐합시다. 그럴 처지라 말이야. 그런데 큰 아들은 화가 나서, 이렇게 기뻐할 자리에서 화가 났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그렇지 않지요? 아우가 돌아왔으니 잃어버렸다 찾았고 죽었다 살아난 셈인데 어찌 그럴 수 있을까? 말이야. 우리도 그리 건강하고 일 잘하고 그러면 요 형의 마음과 같아요. 똑같아요. 화내, 욕심이 있으면.

 

 

그러지만 세상의 허물을 깨닫는 사람은 그렇지 않죠? 아아 그 잘 없애버렸다. 그래서 돌아왔다. 그런데 욕심이 꽉 차있는 사람은 그 물질 손해 본 것만 손해로 알아. 영혼 손해는 몰라요. 그것이 영적으로는 소경이에요. 내 욕심이 있으면 그렇게 영혼이, 눈이 어둡다 말이야. 영혼이 눈이 없어. 소경이여. 영적으로는, 그렇게 돌아온 탕자는 영의 눈이 떴어요. 영의 눈, 물론 몸도 소경은 아니었지만은 언자 영적 눈이 떠가지고 영계를 알아요. 영적으로 계신 하느님을 발견한 거예요. 이 아버지는 지금 하느님을 비유한 것이거든요. 비유여. 비유, 실제 있는 거는 아니고, 아버지와 이 두 형제는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 형은 마음으로 안 믿는 거예요. 겉으로는 입으로는 믿을 런지 몰라도 안 믿은 거여. 동생은 인자 회개하고 바로 믿은 거여. 그러니까 마음이 밝아졌어요. 언자 그 사람은 세상에 살아도 천국이야. 천국, 지옥이 없어. 그 사람에게는, 형은 항상 지옥살이를 하고 있어. 무엇을 해봐도 만족이 없어요. 그것이 문제라고. 이 바로 믿는 사람은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여서 믿는 사람은 세상에서도 천국 사리(생활)를 하는 거고, 안 믿는 사람은 세상에다 에덴동산을 꾸며놓고 살아도 지옥이야. 지옥, 하느님이 없어요. 그러니까 인류 시조 아담 하와가 범죄 후로는 에덴동산이 싫어. 싫어. 안 좋아요. 그러니까 그 영혼을 사랑해서 회개하라고 에덴동산에서 쫓아내버렸어요. 너 죄 가지고 이렇게 살면 불행하다 차라리 나가서 이마에 땀 흘리도록 고생을 죽게 하라. 그래서 회개하고 돌아오라. 영혼을 사랑해서 에덴낙원 쫓아낸 거요. 그대로 사는 것은 불행이야. 실상은 괴로워. 그렇게 좋은 데서도 괴롭다 말이야. 죄를 회개안한 마음은 아무리 좋게 낙원을 만들어 놓았어도 그게 더 불안한 거여. 아주 마비 됐으니 우선 그러고 속아 사는 것이지. 영혼이 밝은 영혼은 세상에 못 살아요. 그러니까 데려가 버린 거요. 또 하느님의 그 은혜 안에 그대로 살게 하시면 또 기쁜 것이고 천국 살이 하는 것이라 말이요. 그럼 인자 몇 군데보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몇 군데보고 시간을 마칠 테니까요.

여기 본문에는 29절부터 좀 봐보고요.

 

 

큰 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 하였다. 아버지가 나와서 그를 달랬어요. 설득시켜봤어요. 아무리 그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해도 안돼요. 자기가 회개를 해야지. 아버지가 그 암만 다독거려 봐도 안 된다고. 속에 불이 나있는데 꺼지지도 안 해.

그는 아버지에게 투덜거렸다. 저는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말씀한 것 중 어느 하나도 거역한 일이 없지 않습니까? 언제 거역 합디까? 따지는 거여. 그러면 아버지 편에서 볼 때는 언제 네가 내 뜻을 알았느냐? 내 마음을 알았느냐? 그렇게 말씀하실 거 아니에요? 옳은 거예요. 자기 욕심에 가려가지고 아버지도 없고 동생도 없고 자기뿐이에요. 자기만 배불리 먹고 그저 편안하게 살면 그게 제일인줄 알았다 말이야.

자기만 건강하고, 그런데 또 지금까지 제게는 친구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라고 염소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 언제 주셨습니까? 안 주셨죠? 틀림없죠? 그런데 창녀들에게 아버지의 돈, 이것도 거짓말이에요 자기 몫만 타갖고 없앴는데 아버지 돈 없앴다고 왜 그런 말 거짓말 할까요? 예? 왜 자기양심을 왜 속이냐는 거예요. 자기 몫으로만 갖고 없앴죠? 어디 아버지 돈을 언제 와서 언제 또 가져갔냐 말이야. 그럼 아우가 안 돌아왔으면 아버지가 죽으면 몽땅 자기 것이 될 텐데. 아우가 돌아 왔으니 또 아버지 재산이 좀 줄어질 것 같거든요. 자기 생각으로는, 그럼 자기재산이 몽땅 안 된다 말이야. 아버지 것이 몽땅 자기 것이 될 텐데 아우가 돌아왔으니 또 나눠줄 거 아니냐?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나 여기 아우는 그런 살림은 필요가 없어요. 영의 세계에 사니까 그런 살림은 귀찮을 정도고 다 필요한 사람 나눠 줘버리지. 없애지.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래 자기가 오해를 해놓고 착각을 한 거라도 그러게 항상 그 욕심이 있는 사람은 물질적 그 이해타산을 다른 사람 비판한다. 자기가 욕심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도 그렇게 본다고. 자기 아우는 언자 자기 같은 마음 아니란 말이야. 변했어요. 새사람이에요. 영계의 사람이에요. 인자 이 물질계 사람이 아니에요. 그 살았단 말은 영적 영혼이 깨어났다는 그 말이에요.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시는군요. 아버지가 말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그래도 암만 투덜대도 아들은 아들이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었고 내가 가진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말이야. 아우 돌아와도 안 줄어진다. 나 안 나놔준다는 말이야. 필요 없다고 한다 말이야. 아우는 필요 없다. 그런 세상은 내가 가진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아니더냐? 그러나 네 동생은 육적으로 죽었어요. 죽어요. 세속에는 언자 죽었어요. 옛사람이 아니에요. 집을 떠날 때 그 사람이 아니에요. 죽고, 그 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왔어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고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니 잔치를 벌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이런 기쁜 날을 또 어디서 만나겠느냐? 일평생 이때 한번.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

 

 

 

그러면 저기 인자 로마서 12장가서 조금 봅니다.

그리스도인의 새 생활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거룩하게 하여 하느님께서 기뻐 받으실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몸이 거룩해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제물이라 말이야.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마음과 몸이 거룩하고 경건한 예배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일을 생각할 때 이것이 무리한 요구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이 세상 사람들의 행동이나 관습을 본받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생각이나 행동으로 새로워져서 딴 사람이 되십시오. 그렇게 되면 하느님의 방법이 실재로 얼마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인가를 여러분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될 것입니다.

제일 끝에 가서 봅니다.

 

20절

오히려 원수가 배고 파 하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는 자신이 해온 일을 생각하고 부끄러워하고 숯불을 올려놓는 것처럼 얼굴이 화끈해 질것입니다. 악이 기세를 부리지 못하게 하십시오. 선한 행실로 악을 정복 하십시오. 선한 행실로 악을 정복하라. 그것이 하느님의 제일 기뻐하실 일이에요. 선행으로, 악을 악으로 대하지 말고 악일 수록 원수일수록 더 사랑해버리라고 그 그런 것을 기뻐하셔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을 기뻐하셔. 하느님은 악을 악으로 대하지 말고 선으로 이겨버려. 더 사랑해버려. 원수를 그냥 더 높이고 존경하고 사랑해버리라 말이야. 원수를 자꾸 원수로 세우면 무장 원수가 더 커진다 말이야. 그런데 원수를 사랑해버리면 원수가 은인이 돼버려요. 바꾸어져버린다. 우리가 그렇게 이 세상을 살면 천국이 된다. 천국, 자꾸 내 원수를 없애려고 하면 무장, 무장 원수가 더 많아져. 그런데 사랑해버려. 그냥 원수라도 사랑해버려. 누구든지 사랑해버리면 놀라지고 천국이 된다 말이요,

 

 

또 로마서14장17절,18절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우리가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은 그리스도인으로써 중요한 일은 뭐냐?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우리가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 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아 하느님이 인정해 주셔, 하느님께 인정을 받고 예수의 평화를 이룩하며 성령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기쁨이라지. 이 감정적인 기쁨은 곧 슬픔이 온다는 소식이에요.

감정적인 기쁨을 누린 끝에는 슬픔이 온다. 슬픔을 믿음으로 겪어버리면 기쁨이 오는 것이고. 그러니 이 귀일원 자매들은 식구들은 슬픔을 이 몸으로 살 때. 당해버리면. 내세는 기쁨만 있다는 거야. 고통을 몸으로 기쁨으로 당해. 기쁨으로, 억지가 아니고 내세에 대한 희망이 있으면 현세에서 고통을 기쁨으로 받는다는 말이야. 내세에 희망이 없으면 억지로 당하지. 억지로, 그러지만은 우리가 믿음이 있으니까 내세가 있다는 거 확신하니까 그런 희망을 가진다면 이 고통이란 건 기쁨을 준다는 소식이다. 그렇게 받아들인다고.

그래서 인자 18절을 보면.

 

여러분이 이런 마음을 가짐으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실 때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기쁘게 여기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여러분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아 옳다고 칭찬해. 사람들에게,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는다. 하느님이 기쁘신 일이라면 근데 어떤 사람이냐? 칭찬한 사람들은 자기도 의로움을 받는 사람이야. 피차 의인이라 옳다고 받는 사람끼리 칭찬하는 것이지. 죄인이 어떻게 회개 안 한 사람은 반대요. 핍박이 와요. 바로 믿는 사람은 핍박도 많고. 또 그 바로 믿는 사람끼리는 서로 높이고 사랑하고 한 몸 같이 사랑하고 칭찬도 받고. 그런다.

 

 

15장에 가서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경우에 자신의 기쁨만을 위해 하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일을 해야지. 자기만 기쁘게 하려는 일은 피하라고, 우리는 그렇지 않더라도 그 일에 의문이나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짐을 덜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그에게 유익을 주어 주님 안에서 성장하게 도와주십시오.

그리스도께서도 자신만을 기쁘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시편 기자가 말한 것 같이 그분은 주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모욕을 대신 당하고 고난을 받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 고통 받을 것을 대신 받아주러 오신분이라.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인내를 가르치고 용기를 주어 장래 큰 희망을 가지게 하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성경은,

인내와 끈기와 용기를 주시는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도와 서로가 한마음이 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하시듯 여러분도 또한 서로를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해 주시 듯 우리도 서로 대해주라. 그렇게 해야 우리 모두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한목소리로 찬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 떨어져 있지만은 7절.

서로 영접하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따뜻하게 영접하신 것같이 여러분도 서로를 따뜻하게 교회 안으로 영접하십시오.

오늘 새로 만든 요안으로 들어가니 따뜻하고 참 좋 구만요. 소리가 안 울리고 참 좋 구만요. 하하

소리가 안 울리고 참 좋은데요. 잘 들리고, 따뜻하게 영접하신 것같이 여러분도 서로 따뜻하게 교회 안으로 영접 하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하느님을 기쁘시게 한다 말이야. 서로 따뜻이 환영하고 한 몸같이 사랑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영의 아버지는 서로 싸우는 거 싫어한다. 아까 형, 형이 그렇게 투덜댄 거 기뻐하지 안 한다. 자신도 고통이고 자신도 마음속에 지옥을 품고 있고 하느님에게도 근심을 드려요. 그 탕자는 기쁘게 한 거여. 회개하고 돌아왔으니까.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욕하고 하는 것을 달게 받으면 그건 기뻐 하셔요. 나는 다른 사람 욕을 하면 안 되고, 그럼 인제 품앗이가 돼요. 내가 다른 사람을 욕하면 욕을 얻어먹게 돼 있어요.

남을 욕, 저주하면 난 저주를 받게 돼요. 남을 사랑하면 사랑을 받고 어떤 게 좋겠어요? 미워하고 미움 받는 게 좋아요?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이 좋아요?

그렇게 사랑만 해놓으면 무조건 사랑만 해놓으면 이유 없이 아무리 원수라도 사랑만 해놓으면 사랑받는 거고 미워하면 미움을 받게 돼요. 인자 그만보고, 기뻐하는 거 많습니다. 많은데 다 볼 수 없고.

 

 

저기 요한2서 몇 절 보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지키라. 4절인데

부인의 자녀들이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진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매우 기뻤습니다. 다른 사람의 자녀라도 진리 안에서 산다는 소식을 들을 때 그 이상 기쁜 것은 없다 또 인자 요한삼서, 거기도 4절이 그가 붙었으니까 1절서부터 읽겠습니다.

 

인사

‘장로 요한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그대가 하고자 하는 일이 모두 다 잘 이루어지를 바랍니다. 또 영혼이 건전한 것과 같이 몸도 건강하기를 빕니다.’ 이 꼭 육체만 건강한 것 아닌데요. 그러니까 그렇다면 유명한 그 성인 성녀들 다 건강치 않거든. 육체는. 바울사도와 성 프랜스코나 그런 성인들도 병이란 병 이름 가진 것 다 가졌던 증거니까, 바울사도는 특별히 안질 병 있었고, 또 간질병도 가졌다고 그래요. 그러고 가진 병 다 가졌어요. 그러니까 그런데 그렇게 몸이 약한데도 생명을 다 내놓고 복음 전했거든요.

그러니 정신적인 그 건전한 인격, 몸만 건강한 게 아니야. 몸, 몸은 약해, 약해도 그 의지가 강하고 진리의 입장에서 강하다. 진리, 또 남을 양보하는 그런데는 아주 약하고 져주고, 양보하고 사랑하고 내려가고,

 

 

3절 믿음의 형제들

몇 사람이 여행 중에 이곳에 들려 그대가 언제나 순결하고 진실한 생활을 하며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무엇을 기뻐하냐? 육체 건강하고 뭐 일 잘하고 무슨 살림 부자가 되고 그런 소식은 영적으론 슬픈 소식이고 탕자 형 같이 슬퍼요. 소식이고, 병들어서 곧 죽어 간다 하더라도 그 마음이 나사로같이 마음이 깨끗하면 그걸 기뻐한다. 이 행동가지고 천국 간다면 나사로가 뭔 행동을 잘해서 천국 갔어요? 뭔 행동했어요? 몸으로 뭔 행동 잘 한 거 있어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몸이에요. 자기 먹을 것도 자기가 벌지도 못할 몸이고 떨어진 부스러기나 있으면 먹고, 말고, 그런 것이지. 그건 다 초월했다는 뜻이에요 세상 물질 그거 의지 안 한단거야. 없어도 좋아 부잣집 짐 조금 짐 덜어준 거지. 그 대문간에 있는 것은 대문간에다 용납한, 고만큼 용납한 만큼 그 아브라함 품에 있는 나사로를 쳐다 볼 수 있었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보지도 못 했어요. 꼭 행한 대로 이뤄진 거라고. 대문간에다 용납해서 자기는 높은데서 항상 내려다 봤는데 인제 반대로 거꾸로 돼버리니까 불구덩이에서 저 높은데 있는 나사로를 쳐다봤다 말이야. 근데 그 요구는 이뤄지지 안했지만은 비유인데 그러지만 인자 이뤄지죠? 이뤄져. 그럼 나사로 때문에 구원을 받는 거야. 고만큼 용납했으니까 그러들 안 했으면 길이 없어요.

 

 

구원한 거 다 이뤄주시니까 이뤄주죠. 그러니까 믿음의 형제들 몇 사람이 여행 중에 이곳에 들려 그대가 언제나 순결하고 진실한 생활을 하며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게 우리 성도들의 소식은 이런 소식이에요. 기뻐요. 아 아 누가 뭣을 많이 뭐 벌었다. 몸이 건강하고 뭔 선한 일을 했다. 그런 소식은 신앙에서는 기쁜 소식이 아니에요. 아주 불행한 일을 닥쳐가지고 영혼이 깨어났다. 그럼 그것이 기쁜 것이지. 탕자 알거지가 돼가지고 깨닫고 돌아왔다. 그게 기쁜 일이지. 아버지 기쁨인 거지. 회개한 걸 기쁜 것 이지. 형같이 아무 뭐 잘하고 일도 잘하고 살림도 불어나고, 송아지도 잘 키우고 그거 하느님 하나도 기쁠 것이 아니어요. 그러면은 회개해야지. 그건 안 믿는 사람도 다 잘하잖아요?

내게는 내 자녀들이 사도요한이 뭔 자녀가 있습니까? 육신자녀는 없어요. 독신인데 무슨 자녀가 있어. 영적자녀야. 진리를 증거 해서 받아들인 영혼들이라 말이야. 자녀들이 진실하게 살아간다는 소식을 듣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하늘에나 땅에서는 없어요.

 

로마서7장4절 한절만 봅니다.

지난날에는 유대교회의 율법이 여러분의 남편이요, 주인이었습니다. 주인.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위에서 죽으셨으므로 여러분이 율법과 한 결혼은 무효가 된 셈입니다. 율법하고 결혼했다 말이야. 이제 율법은 더 이상 여러분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여러분도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말하자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분과 결혼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선한 열매를 맺게 하려고 다시 말하면 하느님을 위해 선한 일을 하게 하려고 이 결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요고 길게 되었어요. 근데 현대어성경이고 현대인의 성경에는 어떻게 돼 있느냐?

‘이와 같이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율법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분,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연합하여’ 그 혼인을 연합이라야 해. ‘연합하여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생활을 하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면 하느님만 선하신 분이니까 하느님의 뜻에 맞는 일, 그것이 하느님의 기뻐하실 일. 하느님을 기뻐하시는 일, ‘하느님이 기뻐하시게 하는 생활을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역에는 그리스도에게로 가서 그랬거든요. 그러면 간다는 한문글자가 갈 적(適) 그래요. 갈 적(適), 근데 또 뭐하라고 하냐면 시집갈 적(適)이에요. 그리스도께로 시집간다 말이요. 그리스도께로, 율법이 남편이 아니고 율법이 자기를 지도하는 게 아니고 그리스도가 지도해요. 남편이란 말은 지도자라 말입니다. 영혼의 지도자, 그래서 시집갔다. 이 그리스도께로 언자 시집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참으로 믿으면 독신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거예요. 혼인한 사람도 언자 남매같이 사는 거여. 거기 하느님을 아는 증거여. 이 하나 거기 볼까요?

 

고린도전서15장33절 보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들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여러분도 똑같은 짓을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십시오. 죄짓지 말고 바른 일을 하십시오. 부끄러운 줄 알라고 하는 말입니다만 여러분 가운데는 아직도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모르는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한다. 그리스도인답지 않다 말이야. 세속생활하고 있다는 말이야. 하느님을 바로 몰랐어. 그러면 하느님을 아는 것이 뭐냐?

 

데살로니가전서4장1절서 읽습니다.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생활’ 그랬다 말이야. 그런 제목이 붙었어요.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한 가지 더 덧붙여 당부 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인지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일인가? 이미 들어서 안다 말이야. 바울사도께서 가르쳐 주셨어요. 거기 보기 전에 데살로니가전서2장12절에 있거든요. 2장12절에 보면

그래서 여러분의 일상생활이 하느님께 걱정을 끼치기 보다는 도리어 그분에 영광에 참여하여 그 나라에 초청해 주신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도록 애써 왔습니다.

공동번역에는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하도록 격려하고 권면하고 기도해 왔다. 인자 복음은 그것뿐이에요. 어떤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는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이래야지 하느님께 욕 돌리는 생활이 그리스도의 일하면서 하느님께 욕을 돌리는 생활을 해서 되겠어요? 그리스도인이 뭣이냐? 예수님의 생활과 똑같이 예수님의 가르친 말씀 따라서 하느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생활을 한다 그 말입니다. 예수님의 일평생 생활을, 그 생활을 하다 가신 거예요.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생활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갔어요. 그대로 실천하고 우리가 또 우리도 그렇게 살도록 성령을 허락했다 말이에요.

 

 

그러면 여기 아까 13절 보면

‘여러분의 일상생활이 하느님께 걱정을 끼치기 보다는 도리어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여 그 나라에 초청해 주신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도록’ 지도해왔다, 애써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한 복음을 단순히 인간의 말로 생각하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인줄 깨닫고 하느님의 말씀 그대로 깨닫고 받아들이게 해주신 하느님께 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느님이 역사하러 역사해. 역사하시니까 하느님 말씀으로 믿어진 거지. 사람이 하느님말씀이다 암만 해봤자 그대로 믿어진 거 아니라 말이야.

하느님이 그 이 하느님 말씀자체가 하느님 아니에요. 게 말씀이 하느님이 당신의 말씀인 줄 깨닫고 받아들이게 해 주셨다 게야. 해주신 하느님께 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 말씀을 믿음으로써 그 말씀이 여러분의 생활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생활지도를 해요. 말씀이, 하느님이, 성령이, 그리스도께서 삼위께서 말씀이 되셔가지고 우리를 말씀 화 시켜서 그 생활 전체가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이 되도록 역사하신다 말입니다. 실제 말씀이 역사를 하셔요. 이거 말씀이 또 하느님 말씀으로 믿어지도록 그 믿음을 주시고, 그러면 인제 끝판에 하반에 보면.

 

19절,20절

우리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고 자랑스러운 면류관이 되어줄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 이 말씀 그대로 받아가지고 그대로 사는 것이니까 증거 하는 사람이 면류관이야.

 

<~끊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그 앞에서 우리에게 큰 기쁨을 안겨 줄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입니다.

지금 제게도 기쁨은 뭐냐? 제가 이렇게 대화를 하면은 그 말씀에 탁 순종을 하는 앞으로 오시오. 착 오라기 전에 아아 앞으로 오기를 오면 앞에 딱 와버리면 더 좋고, 이 오라 오라 했으면 조금 덜 좋지만은 그도 거역하고 나오는 것보다 낫지. 증거 하는 사람의 잘 순종하면 그 이상 기쁜 것이 어디 있겠느냐는 거야. 그 불순종은 안됐다 말이야. 그 앞에 우리에게 큰 기쁨을 안겨줄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우리의 영광이며 기쁨입니다. 진리대로 서로 사는 데는.

 

그럼 아까 4장 다시 1절서 읽습니다.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생활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한 가지 더 덧붙여 당부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인지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많이 들었다 말이야. ‘우리가 주 예수께서 일러주신 바를 여러분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에게 부탁 합니다. 아니 주 예수의 이름으로 요청 합니다.’

2절

‘여러분은 그 길을 향해서 더욱 더 열심히 노력하십시오. 뭔 생활을 하도록 요? 하느님을 기뻐하시게 하는 생활을 하도록 열심히 노력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원하신 대로 거룩하고 순결하게 살아가십시오.’ 이걸 기뻐하세요. 거룩하고 순결하게 살게 되는 것을 예수님은 그것이 기쁨이고 희망이고 명예가 된다. 그랬어요. 한 사람 한 사람 깨끗하게 순결하게 사는 것만이 예수님에게 있어서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고 명예가 된다 말이야. 영광이 된다 말이야. 명예, 이름이 들어나, 한 사람 한 사람, 주기도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그러지 안 합니까? 우리 생활로 하느님의 거룩하다는 하느님을 드러낸 말이야. 그 영광이 된다 말이야. 생활은 하느님의 뜻을 거슬리면서 입으로만 그렇게 빌어서 되겠습니까? 입으로는 그래 소리 안 하더라도 생활이 거룩하게 살아야. 아 아 하느님은 저렇게 거룩하신 분인 가보다 알게 된다고. 생활과 말과 틀려버리면 되겠어요? 믿는다는 것하고 생활이 다르면 되겠어요? 생활이 거룩해야죠? 생활이, 평소에 생활이 거룩해야 그것이 하느님에 영광이 돌아가지, 하느님 매개가 되지, 그러게 주기도문이 그거에요.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우리가 살아야한다, 그렇게 살겠습니다. 하는 뜻 아냐? 또 그렇게 살도록 해 주십시오 하는 기도도 되고 우리 생활을 통해서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함을 드러내 주십시오. 우리 생활이 드러나게 해 주십시오. 그 말이거든요.

 

여러분 그 길을 향하여 더욱 더 열심히 노력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원하신 대로 거룩하고 순결하게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하느님 뜻이에요. 거룩하게 사는 거, 더 구체적으로 하면 성적인 모든 죄를 피하는 거 음란한 생활을 피하는, 거 피하고, 거룩하고 품위 있는 결혼생활을 하십시오. 진리와 결혼해, 그리스도와 결혼해요. 그리스도와 짝이에요. 그리스도 정배로서 살아야한다 말이야.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이방인들처럼 더러운 욕정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이건 하느님 욕되게 하는 일이에요. 처음부터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과실은 따 먹지마라. 금단얘기 있잖아요? 그 음탕하게 사는 것은 그 불순종이라 말이야. 따먹지 마라는데 따먹은 것이 돼요. 그 때 창세기 그 때문만은 아니에요. 지금도 따먹지 마라 그런 거야.

 

 

예수님같이 거룩하게 살아라. 순결하게 살아라. 그 말이에요. 음탕하게 살면 그 때 그 계명을 어긴 것이 돼요. 지금, 지금 따먹는 것이 돼요. 그 때만 그 나무가 있고 지금은 없냐는 말이야. 그 나무가 뭐이냐? 사람이야. 사람, 사람이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잖아요? 진리를 거스리면 악하고, 하느님 떠나면 악한 것이고. 만물 법 중에도 제일 악한 것이고, 진리대로 살면 만물의 영장이고 그래요.

하느님의 성전이 되고, 제일 더러운 것도 인간이고, 제일 깨끗한 것도 인간이에요. 성령으로 거듭나면 깨끗한 것이고, 성령을 거스린 생활은 세속같이 사는 거는 더러운 거예요. 한계가 분명하다고. 그것은 하느님을 모르는 것이라 말이야. 아까 고린도전서15장34절의 말씀같이 하느님을 모르는 자가 있기로 내 이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한다. 하느님을 모르는 자가 있기로 내 이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한다. 음탕하게 살지 말란 거야. 예수님같이 거룩하게 살아라. 순결하게 살아라. 그것이 그것만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이에요. 그것이 복음 중심이에요. 그거 빼고는 세상 도덕성이지, 복음이 아니에요. 그거 빼버리고도 복음, 복음, 복음 한 거 그 복음이 아니에요.

 

 

제일 죄 많은 여자가 예수와 짝해버리니까 그것이 복음 아냐? 제일 음탕한 여자가 예수님께 죄를 용서받아버리니까 성녀가 돼 버린다 말이야. 성녀, 그러면 그 여자가 누구냐 말이야. 우리 여자 다 각자여. 죄인의 대명사여. 막달라 마리아라는 말은 실지도 그 때 여성상으로 있는 인물이지만은 지금으로 보면 제일 죄 많은 사람을 그런 이름을 한다 말이야. 막달라 마리아로, 죄인의 대표로 대명사라니까요. 그러니까 죄를 많이 깨달았다 그 말이지. 막달라 마리아가 뭐 그렇게 인륜도덕적인 죄가 아니고 하느님 앞에 자기 뜻대로 살았다. 그 말입니다. 음란이란 말은 함부로 살았다. 그 말 ‘자기 뜻대로 살았다’ 그 말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생각지 안하고 자기고집 대로 살았다. 그 말이에요. 그것이 음란이야. 신앙으로 보면 남녀문제만이 아니라고, 하느님의 뜻을 거스리는 생활이 음란이야, 신앙으로.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거룩하고 순결하게 살아가십시오. 성적인 모든 죄를 피하고 거룩하고 품위 있는 결혼생활을 하십시오.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제멋대로 역시 음탕이야. 제멋대로, 제멋대로 행동하는 이방인들처럼 더러운 욕정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이건 하느님을 모르는 생활이라고, 이 하느님을 알고 모르는 한계가 그거여. 세속대로 음탕하게 사느냐? 예수님같이 사느냐? 막달라 마리아같이 과거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예수님의 뜻만 받들고 사느냐? 그만큼 죄를 많이 깨달았느냐? 그 말입니다.

 

 

가령 바울사도 같은 이도 자기 양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는 흠도 죄도 없는 사람이에요. 단지 왜 죄인의 괴수냐? 예수를 모른 것뿐이에요. 몰랐다는 거여. 인자 안 뒤로는 정반대죠? 자기 자신이나 자기 있는 소유나 모든 것을 똥과 같이 여겨 버려. 아주 천하게 여긴다. 그리스도와 비교가 안 된다. 말이야. 그것이 그리스도를 참으로 안 증거 아니에요? 그리스도 외의 것은 거기다 댈 데가 없다. 말이야. 댈 수가 없다. 그러나 인자 그리스도 안에서 그걸 또 가치가 되죠? 그리스도 없이는 다 배설물이지만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도로 살아나요. 가치가 있어요.

그리스도 밖에서는 아무 무가치한 것인데 세상에서는 제일 좋고 탐하고 싸우고 모두 쟁취하려고 하는 그것도 가장 더러운 거야. 세상 사람들이 감정이 좋아 하는 거 높은 자리 모두 명예 그런 것 영의 세계에서는 아주 천한 것이에요. 세상에는 그걸 좋다고 세상과 하느님의 영광과 세상이 바라는 영광은 정반대면 생각해. 세상영광은 높아지려고 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영광은 낮아지려고 하는 것이고 낮아지면 하느님이 언자 그걸 높여줘요. 그러니까 높아지면 떨어진 것이고 그 가치 없는 것이여. 제일 귀하다고 하는 것이 하느님 앞에는 제일 천한 것이고 제일 사람들이 천하다고 여기는 것이 제일 하느님 앞에는 가치가 있는 거라고 그래. 세상영광을 구원이 어떻게 이끄느냐? 몸입니다. 하늘에 영광을 모르고 세상영광을 탐하면 세상영광을 탐하면 어떻게 나를 믿겠느냐? 그럼 하느님의 하늘영광이 뭐냐? 그거 하나 봅니다.

 

고린도후서4장6절 여기도 인자 2절서 보면요.

우리는 사람들을 믿게 하려고 간교한 행동을 하거나 사람을 속이는 일에 아무 흥미가 없습니다. 사람을 속이는 일에는 아무 흥미가 없습니다. 세상은 그걸 흥미로 여기죠? 속여 먹는 거요. 우리는 성경에 씌어 있지 않은 것을 성경의 가르침인양 믿게 하려는 따위의 수치스러운 방법은 사용하지 않고 사람을 속이는 일에는 아무런 흥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씌어 있지 않는 것을 성경의 가르침인양 믿게 하려는 따위의 수치스러운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하였으므로 하느님 앞에 우리들 모든 사람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모든 사람에게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를 모든 사람들에게 양심에 거슬리는 게 없어요. 그건 양심이라고 말 있는데 이거는 없네요. 하느님 앞에는 사람의 양심 앞에 아무 꺼릴 것이 없다. 만일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이 가려졌다면 그것은 영원한 죽음의 길로 달려가는 사람들에게나 가려졌어요.. 영생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에게는 훤히 드러났다 말이야. 가려지지 않은 거예요.

만일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이 가려졌다면 그것은 영원한 죽음의 길로 달려가는 사람들에게나 가려 졌어요. 영생의 길로 가는 사람에게는 가리원진 거 아니고 그 사람에게는 길이 환해요. 사망으로 가는 길 가는 사람에게는 가려졌어요. 이 그길로 못가죠.

 

이 세상에 신의 사탄이 그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여 그 위에 비추는 하느님의 모습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못 보게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것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이 자신의 것을 전한 거 아니라 말이야.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것을 전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신 그리스도, 입으로만 그리스도, 그리스도 하는 말이 아니고 생활로, 생활로도 자신에 대해서는 다만 예수께서 우리에게 그러 하셨듯이 우리도 여러분을 섬기는 종이 되었음을 알릴뿐입니다. 영혼을 섬기는 종, 육체를 섬기는 종이 아니고요.

 

 

6절

어둠속에서 빛이 있으라고 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광채를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요, 예수의 얼굴에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광체가 뭐인가? 광체를 깨닫게 해주신다. 이거 복음이야. 복음의 빛이에요. 예수의 얼굴에 빛나는 영광스러운 광체가 뭣이겠어요?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모두 못을 박아나서 피가 흘리고 또 받기 전에 뺨을 때리고 침을 뱉고, 예수 할일이 그런 거 있다 말입니다. 가장 천한 피조물한테 창조주가 말이야. 피조물한테 천한 죄인한테 죄인의 손에 뺨을 맞고 침 뱉음을 당하고 창조주가 그랬다 말이야.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에요? 그게 내 죄 때문에 내가 받아야 할 것을 예수님이 받은 거예요.

그 사랑이에요. 실상 예수 얼굴에는 아주 침이야. 더러운 거 모두 뺨 맞은 자리 뭐 발질로 채인 거, 옆구리 창으로 찔리고 못 자욱 막 피가 흘리고 볼품이 없죠? 볼 수가 없죠? 너무 흉측하고 말이야. 너무 잔인한 상태고 말이야. 어째 저래 사람이 저럴 수가 있을까? 그 어째 그 사람이 누구냐? 내가 그랬다. 내가 예수님을 그렇게 저주를 받도록 한 것이에요. 내 죄가, 그때 십자가 지고 실상 그런 사람은 내 대표죠? 내가 할 것을 그 사람들이 한 것이죠? 그 사람들이 나쁜 거 아니라 내가 나빠서 대신 내대로 가서 예수님에게 막 멸시를 줬다.

 

내 죄에요. 그것이 가장 수치를 당했다 말이야. 피조물한테 죄인들한테 뺨을 맞고 발질로 채이고 또 가시관을 씌우고 또 십자가에 매달아 버리고 가장 천대받은 그것이 얼마나 영광이냐는 거야. 전 인류의 대표 짐이니까 가장 천대받고 가장 낮아지고 가장 멸시받는 그것이 하느님의 영광이라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영광이에요. 예수님만이 하느님께 영광을 돌렸지. 우리 사람이 무슨 영광을 돌려요? 무슨, 하느님을 슬프게만 해드리는데 기쁘시게 해드려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는데 어떻게 해? 마음은 그렇게 하고 싶더라도 못 하는 거여. 쉽지도 않지만 막상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되는 건 아니야. 그 예수님이 하실 일이지. 그 사람이 믿고 자기를 없애버리고, 자기 안에 예수님을 모시면 예수님이 하실 일이지. 인간은 못한다고. 옛사람 그대로는 못해요. 그 사람 속에 예수님이 하시는 거지.

 

그런 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느님이 다 하신일로 알고 달게 받는 거예요. 그러게 나 위해서 울지 말라. 십자가 지고 갈 때 뒤에 따라오는 여자들이 말이야. 아 아 울었어요. 슬프죠. 나를 위해서 울지 말고 너희들이나 너희 자녀들 위해서 울란 말이야. 내가 또 너희들 대신 십자가 진 것 아니냐 말이야. 그러면 언자 다시 또 나를 지우는 일 하지 말라는 말이야. 또 잘 되어가지고 또 낳고, 낳고 하면 또 십자가 져야하거든요. 인자 순종하라. 따먹지 말고 순종해라. 그거에요. 너희들이 지금 울 짓을 너희들이 만들어서 내가 우는 것 아니냐? 너희들 땜에 십자가 진 것이니까 나 이제 다시 십자가 안 지우려면 말씀대로 살아라. 순종하라. 거룩하게 살아라. 세속같이 살지 말고 회개하고 세속대로 살면 그건 또 예수님이 십자가 지는 일이라 말이야. 그 제 말인가? 또 봐요.

 

 

히브리서6장4절, 6절 보면요 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지 말라.

여러분은 어찌했던 복음을 위하고 하늘에서 내린 기쁨을 맛보았고 성령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이 얼마나 선하신 것을 알고 앞으로 올 세계의 힘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하느님께 등을 지고 등을 돌린다면 다시는 주께 돌아설 수 없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부인하거나 모욕하거나 뭇사람들 앞에서 욕되게 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을 다시 또, 십자가,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셈이니 여러분은 어떤 회개로도 새사람이 되기 어렵습니다.

다시 막 예수님을 못 박는 생활을 계속 한다면 입으로 암만 회개했다 해도 소용없어요. 생활이 바꿔져 버려야지. 정신이 새로워 졌으면 생활도 새로워져야지. 그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무슨 회개가 되냐 말이야. 세상과 똑같이 살고 있으면서 뭐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이랑 똑같이 살면서 무슨 회개가 어디가 있느냐 말이야. 뭐 다른 것이 있어야지. 똑같은데 오히려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욕심은 더 많은데요. 왜 그래요? 세상서도 잘살고 내세도 잘 가겠다는 거, 그 두 중에 섬기겠다는 말이야. 재물과 하느님을 겸해서 섬기겠다는 거여. 아 그 좋죠? 세상도 잘 살고 내세도 잘산다고 하면 그럼 왜 부자와 나사로는 비유가 있습니까? 왜 그런 거짓말 해놨어? 그러면, 그거 거짓말 아니에요? 어째서 나사로는 천국을 가고 부자는 음부로 갔냐는 말이요. 그게 진리를 말한 거 아니에요? 비유지만은 그게 진리거든요. 세상서 육적욕심, 욕심대로 잘 살아버리면 내세가 없다는 거야.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세상도 잘살고 내세도 잘살고 믿으면 세상도 잘 살죠. 세상 걱정 없이 사니까 잘 사는 거죠. 뭐 재산이 많단 거 아니고, 재산이 많더라도 그건 또 하느님 뜻대로 쓸 수가 있죠? 재물이 있고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 정신이 예수의 마음을 가졌느냐가 문제라 말이요. 그 많이 있어도 뜻대로 쓰고, 없어도 책임 없이 가볍고 좋고, 많이 있으면 책임이 좀 중하죠? 어찌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쓸까? 책임 있지 않겠어요? 또 바로 믿는 사람은 또 많이 있어도요. 하느님이 허락을 해. 그래도 자기 사적인 데는 털끝만치도 없어요. 사는 없으니까 다 영혼을 회개시키는 길로 쓴다 말이야. 큰 영혼들이 걸려 들어오게 한다 말이야. 그 재물이 끌려와요. 그렇게 요쪽에서 당긴 거 아닌데. 자발적으로 하느님이 보낸다고요. 이 현재 그렇다 는 거여. 저를 보니까요. 몇 천 만원을 자선할게 쓰라고 하는 거 쓰라구요. 아니 우리가 써져서는 안 된다. 써서는 안 된다. 명예는 끝까지 갈 거 있고 영혼은 우리가 할 수 있어도 명예는 가지고 있어라. 서서히 그 끌려온다고요. 말로가 인자 신부가 다 나이가 차버리면 쓸쓸하지 안 해요. 인제 그 뒤로도 와서 마음대로 살 수 있게 땅도 다 마련했다 말이야. 이 밖에서 보면 왜 저렇게 믿는 사람들이 뭐 돈이 저렇게 많으면 욕심 부린다고 그래, 오해했죠? 오해, 뭐 모두 구경하고 끌려갔다 하나 됐다. 뭐 그런 오해가 생긴다고 그 만큼 어두운거여. 마음이. 못 보는 거야. 하느님의 섭리를 몰라요. 물질이 많고 적고 그게 아니라 마음이 지금 예수님 마음을 가졌느냐? 그 문제라 말이요. 부자라도 천국갈 수 있다. 회개하면 부자는 없고 부자재산이 자기 것이 아니면 그리스도 것이죠?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드리면 된다는 거예요. 그 히브리6장 다 봤고 아까 저기 쪼금 더 보고.

 

 

고린도후서4장7절 아까 6절 봤어요. 6절하나 보자는 건데 다시 보면

어둠속에서 빛이 있으라고 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광체, 광체를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의 얼굴에는 아주 멸시천대 받는 흔적 밖에 없다 말이야. 피조물한테 죄인들한테 뺨을 맞고 조롱을 당하고 발질로 채이고 침 뱉음 당하고 그거 얼매나 부끄러운 일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당할 것을 당해야 할 것을 전 인류가 당해야 할 것을 예수님이 당해주셨어요. 그렇게 큰 사랑이에요. 그러면 인자 7절.

그러나 이 귀한 보물이요. 이것만이 보물이에요. 성도의 재산입니다. 멸시천대는 성인들의 재산이에요. 그러나 이 귀한 보물을 지금 우리들 속에 빛나고 있는 이 빛과 힘은 깨지기 쉬운 그 그릇, 질그릇, 깨지기 쉬운 질그릇 곧 우리의 연약한 육체 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 육체요. 육체 가지고 있죠? 들어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이 영광스러운 힘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누가 보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닥쳐오는 고통, 고통에 짓눌리지만은 움츠려지지도 쓰러지지도 않습니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이일에 당황할 때도 있지만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박해를 받을 때에도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얻어맞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달려 나갑니다. 우리 몸은 예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부단히 죽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계속 죽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살아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늘 죽음에 이를수록 거기서 인자 생명이 드러난다 말이야.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살아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는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을 섬기는 증거 아닙니까? 계속 그 위험을 당해요. 천대를 받아요. 고통을 받아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는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오히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나타내 보일 기회가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요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어떤 행동은 영광스러운 일이죠. 복음을 증거 하면 모두 대접을 받죠? 높이 보죠? 진짜 복음은 그거 아니에요.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죽음에 직면하고 있어요. 오히려 멸시를 당해요. 죽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주어진 만큼 결과가 있어요. 밀알이 썩어진 만큼 새싹이 자란다 말이야. 썩어진 만큼 그러나 그 결과, 죽음의 결과 죽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영원한 생명이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 쪽에서는 죽음이 역사하고 받아들인 편에는 생명이 움직이고 그게 복음이라고, 말씀을 받아들인 영혼에게는 막 생명이 뛴다는 거야.

시편기자가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말한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께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을 믿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키신다는 거 믿고 그 믿는 것을 담대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들도 예수와 함께 다시 살리셔서 여러분과 함께 하느님 앞에 서게 해 주실 것을 압니다.

 

우리의 이러한 고난은 모두 여러분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사도들이 당하는 고난이 받아들인 사람의 영혼에 유익하다 말이야. 여러분 가운데 그리스도에게 인도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여러분 가운데 그리스도에게 인도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분의 크신 은총에 크신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도 더해져서 주께서 더욱더 큰 영광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16절 믿음의 생활

우리는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 겉 사람은 시들어가요. 시들어, 늙어가고 쇠해가요. 시들어가지만 우리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며 오래 가지도 않습니다. 지금 일시적으로 겪은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 영원한 영혼에다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 여. 아주 가벼운 거라 말이야. 이 짧은 고난은 영원히 다함이 없는 영광을 가져올 것입니다.

얼마나 이해타산으로 보더라도 말이야. 잠깐 당하는 고난이 끝도 없는 영원한 영광하고 바꾸어진다 말이야. 영광을 가져올 것입니다. 짧은 고통은 영원히 다함이 없는 영광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눈에 보이는 어려움에 눈길을 돌리지 않습니다. 물질적인 것이 매이지 안한다 말이야. 우리는 아직은 보이지 않지만 영적인 것은 육안으로 안 보이죠. 하늘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기쁨 우리가 땅에 감정적인 기쁨은 곧 사라져 버리지 안 해요. 조금 기쁘다 가다도 누가 기분을 거슬려 버리면 또 화가 나고 불안하고 불평이나 하고 육감적인 기쁨이 아니에요. 참 기쁨은 영적인 기쁨이니까 오히려 육적으로는 고통이 있을수록 영적으로 기쁜 것이거든요.

환난 속에도 기뻐하는 것이 영적기쁨이요. 신앙으로 기뻐한 거여. 그게 신앙이라는 거, 환난 때 기뻐하는 거, 그게 참 신앙이야. 또 신앙으로 이뤄진 기쁨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눈에 보이는 어려움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아직은 보이지 않지만 하늘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곧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 몸도 곧 사라 질 거요. 그러나 그 기쁨은 영원히 계속 될 것입니다. 몸은 사라지지 만은 기쁨은 영원히 하늘나라. 이거 많이 적어놓기는 했는데 다 못하니까 요만치만 해야 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