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동광원 유적지 탐방3 : 오감산 기도처

mamuli0 2022. 11. 2. 01:25

수지면 갈보리에서 구례군 산동면 수기리에 있는 오감산에 다녀왔다. 자동차를 길가에 두고 가시덩굴르 혜치고 힘겹게 올랐다. 내려올 때는 쉽게 견두산 위에 지는 해를 보면서 왕복 한시간 10분 걸렸다. 옛날에는 더 먼길을 다녔으며 이현필 선생께서 쑥떡을 가지고 40여리 추운 눈길을 길없이 산능선으로 서리내에서 이곳 까지 다녀가셨다는 기도처를 너무도 쉬운 길을 힘들어 했으니 나이 탓만은 아니다.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아래 글은 김준호 선생의 증언 한 대목입니다. 오감산 기도처를 만들고 수도를 시작한 김광석장로와 이현필선생의 실화입니다.

 

지금 살아계신 곡성계신 김광석 장로님이 들려준 말씀입니다. 그분도 참 죄인으로서 참회의 길을 떠났을 때 자기 문전옥답이 있고 모를 심을 때도 너무 마음이 벅차고 터질 것 같이 아프면 처자를 버리고 농사를 집어 던져버리고 지리산 속에 숨어가지고 울고 또 울었답니다. 

 

용바위 계곡쪽으로 가다가 우회전

 

그게 통회의 불이지요. 회개의 불이지요. 사랑하는 처자를 내버리고 누가 가고 싶었겠어요? 마음이 괴로우니까 그랬지요. 그러니까 이 선생님도 회개하는 사람으로서 회개하는 친구가 있던 곳이 얼마나 되느냐고 어제 물어봤어요. 몇 리나 떨어져있냐? 그러니까 서리내에서 오감산이 사십리는 떨어졌다. 그러시더만요.

 

주차하고 걸어올라간 곳

 

오십 리란 말이 있지만, 사십 리가 정확하겠다. 4x4=16km. 그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무릎이 빠진 겨울이었답니다. 여기아마 어머니들 와계실거에요. 선생님이 아무것도 안 잡수시니까 쑥떡을 해다 드리면 잡수시려나 생각해가지고 어느 교인들이 쑥떡을 해가지고 음력설이나 되려는지 알 수 없어요. 그걸 갖다가 식구대로 나누니 한 사람 앞에 세 개씩 똑같이 분배하신 것 같아요.

 

산 오를때 본 주변 풍광
수락 폭포쪽 풍광

선생님 쑥떡이지만 잡수세요. 갖다드리니까 서리내산에서 혼자 통회하시고 자복하시던 분이 자기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십 리밖에 김광석 장로님을 생각했던지 불끈 일어나서 그걸 가지고 사십 리 길을 나설 때 초저녁 사십 리 길을 눈길을 가다보니까 새벽인지 장장 사십 리길을 길도 없는 산 능선을 따라가지고 사십 리를 갔다는 것은 살아계신 김 장로님께 물어보시면 아십니다.

 

복집사님이 앞장서서 안내하시다

 

그것은 발자국마다 눈물이요. 통회요. 항아리입니다. 사람이 잘못했다고 통회 자복할 때 기쁨이 충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은총의 감격 없이는 어떻게 사십 리길을 친구를 찾아보자고 갈 수 있냐 그겁니다. 선을 하자고 친구를 사랑하는 정신으로는 못 갈 줄 압니다.

 

 

가슴에 벅찬 그 은총의 감격, 죄 사함을 받았다는 그 기쁜 마음 내 친구가 회개하고 있다. 나는 그 친구를 찾아봐야겠다. 나 어찌 이 쑥떡을 나 혼자 먹으랴. 그분께 갖다드려야겠다는 그 불타는 정열, 그 은총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그 말씀입니다.

 

 

지금도 살아계신다 그래요. 한두 명인지, 세 명인지 젊은 자매들이 선생님이 따라오면 꾸지람할까봐 몰래 뒤 쫒아갔다고 그러니까요. 그런데 그 전전기대를 들어보면 자꾸 그 눈이 신속에 들어가면 걸어갈 수 없으니까 쪼끔 가시다가 눈 속에서 신을 벗으시더라 그래요. 그래야 가기가 쉬우니까 맨발벗고 눈길 누가 걸어보셨어요? 얼마나 발이 아리고 쓰리고 아픕니까? 한 걸음 한 걸음 사십 리길을 걸어가던 그 광경이 눈에 보여요.

 

 

그것을 그 피 흘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그 사랑의 감격, 죄 사함의 감격,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거는 피가 뭍은 발자국 같아요. 사랑과 감사와 감격과 죄 사함과 평안과 기쁨, 그 기쁨을 그 친구한테 나눠주려고 그렇게 가는 길이 아니었던가?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갈 길이 못된다. 그 말씀이에요.

 

 

구원의 감격이 아니고 우리가 말하는 선행 때문에는 갈수가 없습니다. 발이 얼어붙어요. 피가 얼어붇습니다. 그러니까 거기를 갔을 때는 새벽인지, 벌써 그 김 장로님은 새벽에 깨어 있는데 새벽마다 그 젊은 나이에 삼십대 두 분 다 삼십대에요. 젊은 청춘에 깊은 산중에 있는 분들인데 아무리 엄동설한이라도 꼭 목욕재개해요. 찬물로 얼음물을 깨고 하세요.

 

 

김 장로님이 새벽에 목욕을 하려고 얼음을 깨려고 할 무렵 어디선지 모르게 그 찬송소리가 산꼭대기서 들렸을 때는 그야 참말로 천산 줄 알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적설이 만곤곤 한데 사람이 올 수 없다. 이건 천사다. 퍽퍽 울었다 그래요. 감격해서, 이 천사가 나 같은 죄인을 찾아오시다니 아 천사가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노래를 부르시다니 감격하셨다. 그래요.

 

 

초막에는 죄인의 막이니까 눈이 와도 눈이 새들어와 눈이 쌓이더랍니다. 먹을 것은 그 호밀 무 토란을 한꺼번에 찧어가지고 지붕위에 널어놓았는데 얼었는데 언 것을 한바가지 물에 풀면 그 뜬 물이 되고 그것을 마시고 계셨어요. 거기 새벽에 찬송소리가 났을 때 문득 이 선생님이 나타났는데 천사는 아니었다. 그 점이에요.

 

기도처가 보인다

 

그래서 감격스러워서 아 선생님 이건 웬일입니까? 그러니까 발이 뻣뻣해 가지고 퍽 쓰러지면서 아 뜨건 물 뜨건 물 그러시더라고, 사람이 얼어 죽어 가는데 뜨건 물 마셔야 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 얼어붙은 별미지요. 그걸 한바가지 꺼내가지고 드리니까 마시시면서 퍽퍽 우시면서 감격하시더라. 그래요. 너무 감사해서, 그러면서, 그때는 공이지요.

 

 

김 공, 내가 쑥떡을 얻었는데 갖다드리려고 왔습니다. 눈물 없는 찬양이고 통곡이지요. 찬송이고, 두 분이 쑥떡 세 개를 갖다 친구를 줄 량으로 사십 리 얼음길을 맨발로 찾아왔다. 그 다리는 뻣뻣해가지고 죽어가고 있다. 그 시체같이 된 사람을 보듬고 그걸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살이요, 피지. 그래 친구사이가 그렇게 밀접한 관계로서 친구를 얻었답니다.

 

 

그래서 그 지금은 김 장로님이지만 그 젊은 삼십대 청년이지만, 다시는 세속을 돌아볼 수 없게 되었답니다. 그 친구 사랑에 감격해서 피차간 참여하는 동기지요. 피차간 죄인으로서의 회개하는 정으로 만난 친구들이에요. 

 

기도처 좌표 : 북위 35,35634. 동경 127,46973.

 

해방 전 일정 말 그 무렵에 오북환 장로님 만나시고 거기서 동광원 초창기지요. 발상지 아니겠습니까? 서리내 계신데 그 여세를 몰아가지고 30대 젊은 청춘에 곡성 김광석 지금 장로님입니다. 김 공님이시지요. 김 공님이 30청춘에 출가를 한 겁니다. 그러니까 오감산이라고 지리산 오감산에 막을 치고 계셨습니다. 그때 상황을 들어보면 밭을 파가지고 콩과 옥수수와 밀 호밀을 갈아버리면 꿩이 다 먹어버리고 호밀만 조금 지었답니다. 무 조금되고 그러면 절구통도 없고 그래서 해먹는 법을 발견했는데 무 또 무 잎 호밀 이것을 삶아가지고 얼려버린답니다. 한번 언 것을 돌로 쿵쿵 찧으면 잘 풀어진답니다. 그걸 하루에 한 끼씩 잡수시고 계실 때였는데 눈이 얼마나 왔는지 허리가 빠지도록 눈이 쌓였답니다. 그 겨울에 그러니까 젊은 청춘에 자기를 닦는 법이 있지요. 새벽 4시에 냉수마찰 꼭 눈길을 치우고 냉수마찰을 하기위해서 새벽 한시나 두시에 깨어서 냉수마찰하고 이렇게 막에 들어오면 막 속에 눈이 쏟아진다고 막이 새서요. 막 속에서 이불을 덮어야 이불로 몸을 가리고 앉아서 그렇게 져놓은 막이하나 있었답니다. 그런데 새벽냉수마찰을 끝내고 와서 기도를 하고 있으니까 산꼭대기에서 찬송소리가 들렸답니다.

 

 

이 눈이 이렇게 허리 닿게 무릎 팍이 차도록 눈이 왔는데 깊은 그 산중에 사람이 올리는 만무하다. 그래서 자기 같은 죄인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천사를 보내서 찬송을 불러준다 싶어서 퍽퍽 울었다는 겁니다. 감격해서, 세상에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찬송을 불러주시다니. 그리고 엎드려서 울고 있는데 노크, 문이 있는지 없지 ‘김 공, 계시오?’ 문 열어 보니까 이 선생입니다. 그런데 다리가 벌써 얼어가지고 뻣뻣했는지 턱 걸터앉으면서 ‘따슨 물 좀 주세요.’ 목이 맥히더라 그래요. 속이 얼었든지, ‘네’하고 빨리나가서 불을 때고 아까 참에 자기가 먹던 지붕위에 얹어놓았던 시래기 하고 호밀 찧어놓은 걸 한주먹 넣고 푹푹 쪄가지고 가져다 드리니까 마시고 ‘아이고 이젠 살겠소.’

 

 

그런데 이 품속에서 부스럭 부스럭 소리가 나는데 쑥떡 두 개, 세 개인지 개수는 알 수 없어요. 오늘 초저녁에 저를 이걸 먹으라고 가져다줘서 서리내 산중이지요. 깊은 산막에서 이걸 먹으려고 생각하니 김 공 생각이 나서 가져다주려고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김 공님이 직접 말하니 감개무량하지요. 목이 맺히지요. 그게 쑥떡이겠습니까?

 

 

그런데 따라간 분이 자매님이 한두 분 절대 남녀 분별하니까 옆에 가도 못하는 선생님이지만 깊은 산중에 눈길을 가니까 몰래 따라간 사람이 있었다고 그래요. 멀리서 혹 쓰러지시면 구원하려고 그런데 눈이 그렇게 많이 온 겨울 엄동설한 밤중이지만 신을 딱 벗으시더라 그래요. 눈 속에서 평상시와 같이 신을 벗고 맨발로 가는데 물론 자매들도 벗고 갔겠지요? 안 물어봤지만, 그러니까 물론 처음에는 아프지만 죽어버리지요. 발이, 그러니까 나무덩어리가 되어가지고 턱 쓰러지더라고 지금 물어보면 30리 더된다는데요. 그 거리가 이 능선을 넘어 가는 길입니다.

 

 

서리내 산 능선에서 오감산 능선까지 가는 게 능선 길은 대개 사람이 다닌 흔적은 있지요. 눈 온데니까 그러니 초저녁에 나서서 새벽 2시 3시경에 거기에 오셨겠지요. 지금도 김 장로님은 그 일을 생각하면 우십니다. 감격해서, 그래 나는 그런 사랑을 받은 이후에는 한 번도 뒤돌아볼 마음을 생각해보지 않았답니다. 내가 어떠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냐? 그리고 한 번도 뒤돌아본 일이 없다는 그런 말씀을 서울서 오신 수녀 한분이 들으시고요. 아, 나 이제 여러분들의 생활을 알겠다. ‘이 현필 선생님은 무아의 삶을 살은 분이다.’ 라고 정의를 내렸다. 그랬어요. 나는 우리는 무엇인지 모릅니다. 아 이 현필 선생님은 무아의 사랑을 하신 분이었다. 그래 우리 선생님은 무아의 사랑을 하신 분이었구나. 그쯤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또 그런 생각이 엊저녁에 생각이 나서 그런 말씀 드렸습니다.

기도처 좌표는 북위 : 35,35634. 동경 127,46973.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