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울금 1차 출하 : 새 생활의 법칙

mamuli0 2022. 1. 11. 11:15

 울금을 재배한지 20여년이 지났다. 울금 재배 시작 당시 계약 업체 선농과 20여년 동안 이어온다. 금년에 수확한 울금을 상차하여 올렸다. 간밤에 흐리고 눈이 내렸다. 수송 차량을 구하지 못해 준비 출하가 이틀 걸렸다.

 

 

새 생활의 법칙 

 1982. 02. 07. 정인세 원장 

 에베소 4장 25절서부터 에베소 4장 25절 이하. 새 생활의 법칙.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지 말고 이웃에게 진실을 말 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나는 일이 있더라도 죄는 짓지 마십시오. 해 질 때까지 성난 채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악마에게 기회를 주지 마십시오. 도둑질 하던 사람은 이제부터 그런 짓을 그만두고 제 손으로 일해서 떳떳하게 살도록 힘쓸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29절. 남을 해치는 말을 입 밖에도 내지 마십시오. 오히려 기회 있는 대로 남에게 이로운 말을 하여 도움을 주고 듣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도록 하십시오. 마지막 날에 여러분을 해방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실 것을 보증해 주신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해드리지 마십시오. 모든 독선과 격정과 분노와 고함소리와 욕설 따위는 온갖 악의와 더불어 내던져 버리십시오. 여러분은 서로 너그럽고 따뜻하게 대해주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 하십시오. 5장 1절로 갑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녀답게 하나님을 닮으십시오. 그리스도를 본받아 여러분은 사랑의 생활을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셔서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음행이나 온갖 더러운 행위나 탐욕 따위의 말은 여러분의 입에 담지도 마십시오. 그래야 성도로서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추잡한 말과 어리석은 이야기나 점잖지 못한 농담 따위도 하지 마십시오.  성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성도들에게 어울리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말입니다. 음행하는 자와 더러운 짓을 하는 자와 탐욕을 누리는 자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속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단단히 알아 두십시오. 탐욕을 부리는 자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입니다. 5장 5절까지 읽었습니다. 
 어떤 서신이든지 사도바울의 서신은 대개 처음에는 교리적인 문제 원칙적인 문제를 많이 이야기 하시고 후반에 가서는 대개 교훈적인 거 실제 생활에 대한 이야기 특별히 그 윤리적인 문제를 많이 다루고 계십니다. 오늘은 그 대목을 생각해 봐야겠는데 제목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새 생활의 법칙이라. 그것은 그 위에 에베소 4장 그 위에 보면 22절에 옛 생활을 청산하고 정욕에 속아서 썩어져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여러분들이여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그랬지요. 그 새사람 말이지요. 새롭게 되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 그 새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 새 사람 중생한 사람, 그런 사람들의 생활 법칙은 어떤 것인가? 지금 읽은데 한 열 가지로 조목을 나눌 수가 있어요. 꼭 그렇게 기계적으로 볼 건 아니지만, 

 

 


 첫째는  거짓말을 하지 말고 이웃에게 진실을 말 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랬지요. 거짓말 말라. 진실을 말하라. 그 이유는 우리들은 한 몸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 거짓말은 우리 신앙생활에 제일 방해가 되고 또 적이라 그랬습니다. 양심을 버리면 믿음은 파선한다고 디모데 서에는 바울이 그렇게 가르쳤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여러 가지 신앙생활에 거리끼는 게 많지만 거짓말 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 제일 예수 믿기가 어렵다. 그런 말을 우리가 누누이 해왔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특별히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는 서로 한 몸에 지체들입니다. 한 몸인데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고 또 진리를 같이 준행 하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서로 속일 수 있겠느냐? 서로 속이는 데는 사랑이 없으니까 속이는 것이고 진리가 없을 때는 속이지요. 그러니까 거짓말이 있고 서로 속인다는 것은 우리가 진리 안에서 살지 않는다. 또 서로 사랑이 없다. 한 지체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서 어떻게 서로 속이고 거짓말 할 수 있느냐? 이거 다 알면서도 우리는 도저히 아마 거짓말 하는 습관을 버리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니 우리는 전부가 거짓으로 되어져 있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 속에는 한마디로 하면 진실이 없어요. 아무리 정직한 사람이라 그래도 그 사람이 부모에게서부터 받은 게 거짓을 받아가지고 나왔어요. 에덴에서 죄지으면서부터 거짓말 하지 않았소? 아담도 그러고 이와도 그러고, 그래서 그 피를 받아가지고 내려와서 사람에게는 아무리 훌륭한 사람 정직한 사람 똑똑하다는 사람 심지어 성인이라는 사람도 성신이 계실 때만 거짓말 안하지, 전부가 거짓으로 뭉쳐져 있는 게 사람이에요. 말 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눈 뜨는 것도 옷 입는 것도 밥 먹는 것도 전부 거짓이에요. 우리가 그걸 알아야해. 그걸 알아야해. 나는 절대로 거짓말 안한다. 나는 생각하기에 누구에게든지 정직하다. 그건 그 속에 마귀가 들어앉아서 자기를 속이는 거야. 무엇이 진실이 있겠소? 내가 이 여기까지 이야기해야 할 텐데 이 이야기해 놓으면 안 되겠지만 그전에 우리하고 아주 대단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가르치시고 지금은 저 세상에 가계시지요. 현 선생님 계시지 않아요? 그 분이 일생동안 진리대로 살아보자. 참 으로 살아보자. 아주 그 양반이 참 이라는 거, 진리라는 거, 거짓 없이 산다는 건 어떻게 보면 미친 사람 같아. 저 양반이 진실에 미쳤나 할 정도로 누가 와서 이야기 하다가 거짓말을 한마디만 하면 그 서울 YMCA 큰 회관이 떠나가게 소리 지르고 거짓말 한다고, 그럼 그 양반은 자기는 거짓말 안 했는가? 그 양반 그렇게 말해요. 내가 왜 이렇게 거짓말을 미워하는가 하니 내 속에 거짓이 있기 때문에 그런다. 자기를 미워하는 것이 그렇게 다른 사람 거짓을 미워해. 그 양반 우리 집에 와서도 말씀할 적마다 그러지 않아? 꼭 말하기 저에 제가 지금 여러분 앞에 말씀하지만 아마 열 칸에 일곱 칸은 거짓말일 겁니다. 그러면서 꼭 설교하고 그랬거든. 그 양반 그럼 그 양반 같이 내가보기에 정직하게 산 이가 없어. 제가 열여덟 살 때부터 그 양반을 따라다니면서 거의 그 양반이 세상 뜰 때까지 했는데 참 그 양반같이 정직한 이가 없는데도 그랬거든. 그러고 자기 담벼락에다 커다란 종이에다 ‘참’ 이라는 글자 써놓고 그러고 살았어요. 밤낮 그거 쳐다보고 생활에 거짓이 없나? 그러기 때문에 아주 잡숫는 것도 소박히 절제하고, 우리 한국 대표로 유엔에도 가고, 그런 유명한 사람이에요. 이 박사가 내무장관 시키려고 애쓰고, 그런 사람인데 언제든지 그냥 아주 비천한 생활 양말을 발꿈치를 꿰매서 신고  아주 거지처럼 살아. 그래 사람들이 참 이라는 걸 쳐다보니까 인제 내가 너무 외식이 아니냐? 그런 생각이 나서 장 옷장 뒤에다가 그걸 감춰서 부쳐놔. 제가 이사하는데 갔더니 옷장 뒤에서 참이라고 쓴 게 나오데요. 결국 난리 덕 보이스카우트 창설했지요. 그 아주 유명한데 아니요? 거기 집 지은 것도 그래. 비행기 위에서 집을 내려다보면 지붕에 참자를 이렇게 써놨어. 아주 참에 미친 양반이야. 그렇게 살아보려고 애써. 그럼 그 양반은 참으로 살았을까? 그건 몰라. 하나님만 아시지. 어떻게 알겠소? 하나님만이 알지. 우리는 그런 대접을 했느냐? 우리는 그 양반에 대하면, 우리라면, 미안합니다. 여러분은 맨 거짓말쟁이로 모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우리들 생활에는 훨씬 그런 양반에다 대면 거짓이 많아요. 그런데도 우리는 그 거짓을 깨닫지 못하고 고치려고도 안하거든. 또 그 거짓을 미워하지도 않아요. 내가 왜 이렇게 거짓 덩어리일까? 슬퍼하고 애통하고 고치려고 노력조차도 하지 않아. 노력하기는 고사하고 자꾸 거짓말을 풀풀 죽쒀먹듯이 하고 무서운 거예요. 하나님의 신에 대한 그러니까 성신이 역사를 못하지요. 우리들 거짓 속에 성신이 역사할 수 있겠어요? 우리가 굶어 죽어도 얼어 죽어도 거지가 되어도 맞아죽어도 참말을 하다 죽었으면 좋겠다. 그런 말한 이들이 있지 않아요? 내가 이 제목 하나만 가지고 이 시간 다 보내려는 가 몰라도 그런 것이 수 없이 있어. 인도의 간디도 그러지 않았어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하고 가서 회의할 적에 그때 모두 영국서 그랬거든. 비밀문서에다가 도장 하나 찍으라는 거예요. 인도 대표로, 그 큰 인도 나라를 대표해서 영국 황제하고 하는데 비밀문서에 도장 나 못 찍겠다. 아 그거 누가 보느냐고 여기 도장 하나만 꾹 찍고 돌아가면 웅장하게 대우도 하지요. 그런데, 그때 한 말이 유명한 말이 있지 않아요? 이 말도 여러 번 했어요. 내가 인도 독립을 못해도 인도 독립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 할 때에요. 인도 독립은 못해도 거짓말 한마디는 못 하겠다. 그리고 도장 안 찍었어. 사인을 안했어. 유명한 이야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수억만 리나 되는 인도 백성들의 독립을 못할 지언 정 내가 여기 이렇게 해놓고는 안했다고는 못하겠다. 거짓말은 못하겠다. 아주 그런 이야기가 참 많아요. 위대하게 산 사람들의 전기를 보면, 대개 그런 대목이 나와. 워싱턴의 전기, 우리 한국의 이 상재 씨의 전기에서도 많은 위대한 사람을 보면 거짓말을 안 하려고 애쓴 사람들이라니까요. 중국에 있는 그 천중산 이라든지 전부 그 사람들의 전기를 보면 진실을 산 사람들이야. 거짓말을 하지 마라라. 이거 신앙생활에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마라라. 이웃에게 진실을 말하라. 너희들이 서로 사랑한다면 한 몸이라면 어떻게 네가 네 형제를 속이겠느냐? 요새 세상은 부부간에도 거짓말 덩어리 아니요? 아내는 남편을 속이고 남편은 아내를 속이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껴안고 그리고 또 거짓말들하고 서로 속이고 돈들도 서로 감춰놓고 쓰고 뭐 나가서 하고나서 안했다고 하고, 아 요새 텔레비전에도 맨 그렇게만 나오지 않아? 참 세상 우습지요? 그러니 또 자식들이 뭘 배우겠소? 자식들이 전부 거짓말만 배우고 그렇게 되어요. 아이들 낳고 아버지 들어오면 ‘안했다.’ 그래. 이렇게 가르치고 거짓말을 아주 가르치고, 아 슬픈 일이지요. 
 둘째는 성나는 일이 있더라도 죄는 짓지 말라. 성내는 거는 혈기인데 이거 성내는 거 안낼 수가 없지요. 또 이것이 혼돈되지요.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채찍으로 막 때려서 쫒아내고 상을 엎은 거 그거 뭐에요? 노여워하신 건데 성날 노(怒)자인데 이거 성내, 예수님도 성냈는데 아주 그 핑계들 잘해. 예수님도 성 냈는데 뭘, 그런 거는 의분이라는 건데 의분과 여기 성내는 거와 이건 달라요. 크게 다르지요. 이제 의분은 하나님의 정의에 칼을 내 두르는 것이고, 여기 성낸다는 것은 인간 분으로 혈기를 가르치는 것이지요. 어떤 건 분간이 잘 안 되어요. 그렇지 않아? 사람을 누가 죽인다고 그러면 죽이는 사람에 대해서 울분을 안 느낄 수가 있어? 누구를 해친다던지 그런 사람 나라를 팔아먹는 역적을 본다든지, 그럴 적에 울분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것과 성내는 것과 어떻게 구분해?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실제적인 것 성내지 말라. 어찌되었든지 성내지 말라. 성을 내도 오래 품지 말라는 거예요. 성난 것을 오래 품고 있으면 자기 영혼도 죽지요? 성난 영혼은 그 시간에는 상처를 입고 있는 거니까. 여기는 사람이 성낼 수 없지 않으냐? 그 뜻인 것 같아요. 그러나 얼른 그 성을 성난 것을 풀어버려요. 해지도록 품지 말라. 그래요. 자기 전에는 다 풀어버려라. 그거 참 귀한 거예요. 사람이 화를 내고 큰소리도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얼른 잊어버리라는 거예요. 오래도록 속에다 넣어두고 그 사람을 항상 이렇게 도끼눈으로 보고 그러지 말라는 거지요. 

 

 


 그리고 또 셋째로는 도둑질 하던 사람은 이제부터는 그런 짓을 그만두고 제 손으로 일해서 떳떳하게 살도록 힘쓸 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도록 노력하시오. 물론 도둑질 하지 말라는 건 아마 제가 설명을 하지 않아요. 알겠어요? 그러나 여기 보면 제 손으로 일해서 떳떳하게 살고 또 남을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참 이렇게 가르친 데가 있지요. 거기는 한번 읽기만하고 지나갑시다. 데살로니가후서에 보면 3장 6절 이하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오지요? 여기는 우리가 잘 들어야 되요. 여기는 뭐 게으른 사람은 잘 없는 것 같아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명령합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게으른 생활을 하거나 게으른 생활을 하거나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지 않는 교우는 여러분이 멀리해야 한다. 게으른 생활을 내 생활에서 버릴 뿐 아니라 그런 사람하고 교제도 하지 말라고 그랬어. 우리를 어떻게 본 받아야 할지는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여러분들과 함께 있을 때에 게으른 생활을 하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빵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먹을 수 있는데도 손수 밤이 늦도록 천막을 짓는 작업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우리는 밤낮으로 수고하며 애써 일함으로서 여러분 중 어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요새 자급자족 하는 이들이 여기 많아요. 내가 교회일 하니까 하나님의 일 하니까 얻어먹어도 좋다. 월급 받아도 좋다. 그런 것은 옳지 않다고 이렇게 반대하는 이들도 있지요. 우리가 여러분에게 요구할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여러분에게 우리를 본받게 하려고 우리가 몸소 모범을 보인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 이야기가 많지요? 노는 사람이 더 잘 먹는 사람이 많지 않아? 그러나 그건 하나님 앞에 가서 벌 받지요? 놀고 잘 먹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서 벌 받는다는 겁니다. 아마 저도 그런 축인지도 몰라.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게으른 생활을 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게으르고 일 안하는 사람일수록 일거리를 많이 만듭니다.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사람이 있다. 입만 놀리고 다니면서 이간이나 부치고 말이나 만들고 대개 그러거든요. 바쁜 사람은 그럴 틈도 없지요. 우리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이런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권고합니다. 말없이 일해서 제 힘으로 벌어먹도록 하라. 사실 요새 우리 한국 사람은 너무 부지런하다고 세계적으로 소문났어요. 사실 지나친 경우도 있지만 여기 말없이 일해서 제 힘으로 벌어먹도록 하시오. 이게 신성한 생활입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농장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훌륭하다고 봐요. 죄가 적다 고, 그렇게 해서 이렇게 그런 말도 우리가 참고할 때가 많이 있을 겁니다. 도둑질 하지 말라. 제 손으로 일해서 살아라. 자기 생활을 자립할 뿐 아니라 기독교는 한발 더 나가서 절제를 해라. 당연히 내가 벌어서 내가 쓸 수 있지만 절제해서 나는 조금 쓰고 하나님 앞에도 바치고 또 불쌍한 사람을 구제하기도 하고 이 세종어른 같은 이가 그 모범을 잘 보여주지 않았어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이들 많이 있어요. 교회 안에서 모두 십일조를 바치니 연보를 바치니 그런 거 모두 좋은 풍습이지요. 
 그리고 넷째로는 남을 해치는 말을 하지 말라. 우리가 말로 사람을 많이 죽이지요. 해치는 수가 많이 있어요. 그러지 말라. 그러지 말라고, 거기 남을 해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를 말라. 우리가 이것만 잘 지켜도 참 좋을 겁니다. 남을 해치는 말은, 우리가 말하기 전에 생각을 해야지요. 이걸 말함으로 다른 사람의 인격을 손상시키지 않나,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나, 이건 어떤 사람이지요? 거듭난 사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걸 못한다. 그 말이지요. 그렇지가 않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아직 거듭난 사람이 아니지요. 말로 남을 참 말로 남을 손해를 많이 줘요. 입 밖에도 내지 마십시오. 오히려 기회 있는 대로 남에게 이로운 말로 남에게 도움을 주고 듣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도록 해. 남에게 유익한 말만 하라. 그거지요? 남에게 기쁨을 준다는 건 육적 즐거움을 말하는 게 아니지요? 영적으로 그 영혼에 그러니까 이왕 말을 하려면 남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고 그 영혼을 즐겁게 하는 그런 말만 하면 좋지 않냐? 사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기쁨을 주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다섯째로는 마지막 날에 여러분은 해방하여 우리 영혼을 죄에서 해방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실 것을 보증해 주신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해 드리지 말라. 이 말도 많이 쓰는 말이고 또우리가 항상 명심해야, 성신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러지요. 우리가 죄를 지을 때는 성신님이 슬퍼하신다. 우리가 그걸 망각해요. 죄를 지을 때는 영혼도 어두워지고 양심도 흐려집니다. 그 시간에는 별수 없어요. 그건 굉장한 일생동안 성인으로 살던 이도 모두 넘어지고 죄를 짓고 그럴 때가 있거든요. 그때는 성신이 떠나셨고 내 영혼이 어두워졌을 때는 다 그런 거예요. 우리 사람들은 자꾸 사람을 보고 저 사람 훌륭하다고 거짓말 안한다. 저사람 욕심이 없다. 그건 자기 속이 어두우니까 안보여. 그러는 거지. 사람은 다 그런 거라는 걸 우리는 알아야 해요. 그렇다고 남을 존경하지 말라는 건 아니에요. 여기 있는 가장 악한 사람, 여기는 가장 악한 사람은 없겠지만요. 가장 악한 사람도 성신이 계시면 선인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서 가장 선인이라고 여기서 제일 그 사람은 깨끗하다 정직하다. 잘 믿는다. 그러는 사람도 성신이 떠나시면 마귀 되는 거예요. 그런 게 인간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 게 인간이야. 그러니까 성령을 슬프시게 하지 말라는 말은 항상 우리가 성신을 의지해서 살려고 성신을 따라 살려고 노력할 때만이 그때만이 우리가 죄를 안 짓는 시간이고 또 우리가 조금 사람 노릇을 하는 시간이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단 일분 동안도 숨 한 번도 제대로 못 쉬지요. 숨 들이쉴 때 죄 짓고 숨 내쉴 때 죄짓고 그게 인간입니다. 그게 인간의 본연의 모습입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참 겸손해 질수밖에 없는 거야. 성령을 슬프시게 하지 말라. 그런 뜻이 많지요. 여러분이 성경 가운데서 성령에 대한 대목을 보면 대개 그런데 그건 성령이 인 치셨다는 말이 나오지요. 처음에도 그런 말이 나왔지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표로, 1장 13절 이에요. 이것을 확인하는 표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약속하셨던 성령을 주셨습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걸 꽉 도장을 찍으신다. 성령이 그렇게 또 그 뿐 아니라 성령께서는 우리가 받을 상속을 보증해 주시고 확인한다. 보증한다. 그게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야. 우리들에게 이건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고 우리에게 도장을 꽉 찍어주셔. 그게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야. 그 성령님을 슬프게 하지 마라라. 너희를 하나님 앞에서 보증해 주신 그 성령님이 낙심하게 하지 마라라. 가령 세상 풍속대로 말하면 그러지 않아요? 내가 누구를 보증해 줬어. 그 사람이 빚을 떼어 먹었어. 그 빚을 누가 물어? 내가 물어요? 그 성령님에게 그렇게 참 부담을 드리지 말마라라. 이거 참 중요하지 않소? 또 성령님이 무한한 탄식으로 우리를 도우신다. 아, 이것들이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맨 할 소리 안 할 소리 입에 가서 호박 넝쿨이 달리듯이 쓸데없는 소리만 종일 중얼중얼 하고 있고 그때 성령님은 슬퍼하신다. 성령님이 탄식을 하고 계시다. 우리가 죄를 짓고 나쁜 짓을 할 때 성령님이 탄식으로 하고 계셔. 우리 귀에 들려야지. 성령님이 탄식하는 소리가 가끔 혼자 앉아있을 때 정신없이 이런 일 저런 일 죄를 짓지요. 나쁜, 혼자 가만히 있을 때 보면 아 성령님이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그런 생각이 나요. 분이 나서 말할 때보면 기관총이 쏘듯이 드르륵 해대거든. 나중에 어떨까요? 싸움을 다하고 나서 앉았으면 허탈감이 느껴지고 그냥 부끄러운 생각이 나요. 그때 성령님이 탄식을 하고 계셔. 아이고, 저거 딱한 것 자기가 한 말로 자기가 심판을 받을 텐데, 나중에 저 자기가 한 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저렇게 기관총으로 쏘듯 쏘아댈까? 성령을 슬프시게 하지 마라라. 이것을 기억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섯 번째는 모든 독설과 격정과 분노와 고함소리와 욕설 따위는 온갖 악의와 더불어 내어던져 버려라. 하이고, 이렇게 되면 다 된 거예요. 그 우리 일상생활은 여기 이 쓰레기통에 담아 놓은 거 모양 아주 꽉 차 있지 않아요? 이거 몇 가지 들었소. 독설 독한 말, 싸움을 하던지 분이나면 일부러 제일 독한 말을 골라서들 하지 않습디까? 어떻게 하면 요 한마디로 저놈이 그냥 꺼꾸러지도록 한번 해보나? 이쪽에서 어린아이들이 싸울 때도 그래요. 이쪽에서 한번 욕을 하지 않아요? 그럼 저쪽에서 막 나쁜 욕을 골라서 합니다. 그럼 이쪽에서 더 나쁜 욕을 골라서 서로들 그냥 어른들도 그래요. 어른들도 그래. 생각이 나지 않으면 그냥 씩씩하고 더 지독한 욕을 한번 해야 할 텐데. 생각이 안 나니까 씩씩하고 야단들 아니야요? 그러다가 주먹이 나가고 박치기를 하고 이게 사람이야. 그때 마귀는 옳다. 됐다. 너희들은 내 포로다. 박수하는 거 아니요? 모든 독설 따위 또 격정 분노 고함소리 그 한꺼번에 그런데서 나오는 거 아니요? 속에서 마귀가 자꾸 충동질을 하는 거지요. 그럼 그 고함소리 욕설 따위 온갖 악한 생각에서 전부 나오는 거지요. 모든 온갖 악의와 더불어 내어던져 버리십시오. 사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럴 수가 없지요. 믿지 않으니까 그런 거지. 잘 믿는다고 나는 구원 받았다고 큰소리 꽝꽝해도 그래도 이런 것이 일상생활에 가서 지도자 사이에서도 이런 거 얼마든지 볼 수 있는데 이건 참 조심해야해. 버리십시오. 보통 때는 이게 안 나타나지요. 그러나 자기 이해관계가 있던지 어떤 충격이 나올 적에는 막 쏟아져 나오지 않아요?  
 일곱째로 여러분은 서로 너그럽고 따뜻하게 대해주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끊김)
하나 더 보고 나가야겠어요. 빌립보서 에는 거기 이런 말이 나오는데 이건 사실은 다른 말에 상관이 되니까 다 읽었으면 좋겠는데 빌립보서 4장 4절 이하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오지요? 이것도 사실은 거듭난 사람들, 새사람의 생활법칙입니다.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어디 됩디까? 보통 때는 됩니다. 내가 건강하고 또 내가 배가 부르고 또는 내가 주머니에 돈 푼도 좀 있고 내게 모든 걱정이 없을 때에는 조금만 수양을 쌓으면 너그러운 마음이 가져져요. 조금 그런 아무걱정이 없을 때 그러나 내가 배가 고프던지 아주 내가 몸에 병이 있어서 이럴 때는 그 관용성이 적은 사람 수양이 부족하거나 믿음이 적은 사람은 그 너그럽던 그 너그러운 것 같았지요. 너그러웠던 같았던 마음이 쪼구려듭니다. 그래서 보통 때 같으면 누가 와서 말을 하면 아 그거 참 안 됐다. 이런 말이라도 할 거예요. 그런데 자기가 지금 아파죽겠는데 누가 와서 사정을 지금 가만히 있어 나 지금 아파죽겠는데 저리가. 이렇게 된다니까. 좁아져버려. 그놈이 한발 더 들어가서 자기가 지금 큰 무슨 요새말로하면 어려움에 꽉 빠져있을 때 그때는 마음이 굉장히 좁아집니다. 마음이 아주 그래가지고 담뱃대같이 돼서는 뭐 누구 말이 귀에 들어가지도 않아. 너그럽기는커녕 마음이 아주 좁을 대로 좁아져. 사람들의 마음이 거의 그런 상태야. 이렇게 경제적 불안 모든 세상의 불안 공포에 싸여있을 때는 이 관용성이라는 게, 그 말세가 될수록 이게 심해요. 그러니까 이기주의자들이 되지요. 저밖에 몰라. 어디 관용이 있을 수가 없어. 남을 도와준다든지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든지, 그런 게 없어. 그런 게 인제 마지막 때가 되면 점점 사랑은 식어진다. 결과는 그래. 이 관용이라는 것이 있어야 거기서부터 사랑이 시작되는데 너그럽게 그것도 사랑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거 아니에요? 넓은 마음이라는 거 내가 많이 사랑할수록 다른 사람을 용서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래서 그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라. 그 말은 빌립보서에는 이렇게 되어 있어요. 주께서 오실 날이 얼마 안 남았다. 주님께서 곧 오신다. 다 용서 해줄 것 다 용서해줘라 주님께서 곧 오실 거다.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대해라. 주님께서 곧 오신다. 그 다음에는 이렇게 말 했지요? 아무걱정도 하지 말라. 먹을 걱정 입을 걱정도 하지 마라라. 주님께서 곧 오신다. 약간 배가고프더라도 참고 아프더라도 참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좀 참아라. 주님께서 곧 오신다. 거기는 이렇게 되어있어요. 그렇게 생각 할 때는 우리가 조금 마음이 너그러워 지려는지 몰라요.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와 간구를 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인간의 생각이 감히 미치지 못하는 하나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4절에서 7절까지 말씀 이것도 여러 번 우리가 생각할 적에 꼭 기억하세요. 우리의 마음에 평화가 임합니다. 마음을 너그럽게 먹고 주님께서 곧 오실 테니 다 용서하고 무슨 일에든지 항상 감사하고 그렇게 하라. 

 

 


 그 다음에 여덟째로 5장으로 넘어가지요. 1절에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을 닮으라. 그랬어. 이게 참 어려운 대목인데,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닮으십시오. 이건 논리적으로는 당연한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니 하나님의 아들딸이 하나님을 닮는다는 게 뭐 어려운 일도 아니고 당연한 일 아닙니까? 실제로는 우리 이 흙으로 만들어낸 아주 타락 성을 지닐 대로 지닌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닮으라는 거예요? 그거 너무 엄청나지 않아요? 하나님을 닮으라는 말을 쉽게 풀이하면 하나님과 같이 사랑이 많고 하나님과 같이 지혜롭고 하나님과 같이 능력이 있고 하나님과 같이 좀 무소부재 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뭣이든지 다 아시고 어디든지 계시고 영원히, 영원히 처음부터 끝까지 알파와 오메가인 그 하나님을 닮으라 하니, 그러니 어떻게 내가 그렇게 될 수 있겠소? 그런데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래야 하지 않겠느냐? 그 뜻도 있어. 그렇게 닮으라고. 그런데 성경에 보면 그렇게 되도록 우리를 여기셨다. 그러고 또 에베소 1장에 보면 그렇게 만들어 버리신다. 결국은 그렇게 만드신다. 지금은 엄청나게 거리가 있는 거 같은데 결국은 그렇게 만드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성도들의 긍지라 그럴지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들은 기독교 신자들은 이 높은 이상을 가지고 사는 거예요. 우리 인격을 조성하는데  세계에서 약간 인간사회에서 도덕군자가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그렇다고 엉뚱하게 계룡산에 있는 누구모양으로 내가 하나님이라고 관을 쓰고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앉아 있는 그런 사람이 한국에도 두 사람인가 생겼지요? 그렇게 닮으라는 게 아니지요? 하나님을 닮으라. 그러나 이게 우리 성도들의 생활의 목표지요. 우리 중심에 이 소원이 있어요. 하나님을 닮은 다는 데 한두 가지만 생각을 하고 지나가요. 하나는 부분적으로 닮아가고 점진적으로 닮아져 가는 겁니다. 우리가 한 가지씩 한 가지씩 한 번에 후딱 변해버려서 하나님이 되는 게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 중에서 가령 어떤 이는 지혜를 특별히 한 이가 있어요. 그래서 성신 받으면 하나님과 같이 지혜로워 진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제가 몇 소개를 했었어요. 사실은 성신을 받으면 확실히 총명이 늘어나요. 그래서 생각밖에 뛰어난 지혜와 총명을 갖게 되는 그런 거 그 지혜, 그것만 가르친 걸까? 이 천국지혜 말이에요. 세상 지혜 말고 그런 것도 있지요. 그러나 성경에는 닮으라고 했는데 지혜를 무엇으로 가르쳤는가 하니 사랑이라. 그랬어. 사랑이라. 외쳤지요? 요한1서에는 그것을 강조했지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한1서 4장에 보면 같은 한 장 가운데 몇 번 나와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 안에 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이 말을 자꾸 해요. 이걸 먼저 닮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자꾸 그리스도의 사랑을 연습 하는 거예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조금씩, 조금씩 자꾸 연습함으로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걸 말해요. 또 능력에 대해서도 그러지요. 빌립보서에도 그 말이 나오고 큰일을 하는 하나님의 종 들을 보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게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바울사도가 빌립보서에 한 말을 많이들 자기 생활신조로 삼고 살거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내가 뭔 부담이 있겠느냐? 그 말이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그것도 부분적으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살라는 거예요. 자꾸 내 생활을 거기다 일치시키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 그러면 이게 불가능한 겁니까? 해봤거든, 기독교 2천년 역사를 보면 기라성과 같이 그렇게 산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거든. 그럼 그 사람들은 우리들과 다릅니까? 눈이 하나 더 있습니까? 팔이 하나 더 있습니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야. 그 사람들도 다 부정모혈 속에서 난 사람이야. 하루 세 때 밥을 먹은 사람들이고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위대하게 살았냐? 참 프란치스코 같은 이는 제2예수라고 불리거든. 그렇게 훌륭하게 살았는가? 그렇게 닮아가는 거예요. 자꾸, 그렇게 살라는 거예요. 그렇게 살도록 하라. 그게 인제 구원받은 영혼들이지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닮으십시오. 
 그리고 아홉째로 이번에는 또 그리스도를 예수를 본받으라. 거듭난 사람들 이야기에요. 새 생활, 새 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여러분은 사랑의 생활을 하십시오. 이제 거기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성경에는 그렇게 되어있어요. 예수의 본받을게 많지요. 우리가, 겸손도 본받아야하고 온유도 본받아야하고 진실도 본받아야하고 그런데 여기는 사랑 한 가지만 추천해 썼어요. 그리스도를 본받아 여러분은 사랑의 생활을 하십시오. 그런데 여기에 대한 그 주석이라 그럴지, 많이 나오지요? 특별히 요한 1서 그리스도가 뭐라?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니 사랑했기 때문에 왜 죽으셨어요?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처럼, 이처럼 사랑해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니 너희도 그와 같이 형제를 위해서 죽어야 한다. 이렇게 가르쳐요. 그러면 예수의 사랑을 본받는다는 건 아주 쉬운 일이 아니야. 형제를 위해서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거와 같이 나도 형제를 위해서 피를 흘리고 죽어야 한다. 그렇게 사랑을 본받으라는 거예요. 그럼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그게 완전한 거야.  그러면 완전해 진다. 내 생애는 나를 위해서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서 산다. 나를 위해서 살지 않고 형제나 인류를 위해서 산다. 그런 생활이지, 그러다보면 너무나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게 많거든. 욕심도 많고 맨 자기만을 위해서 산다고 어떻게 하면 밥 먹을까? 어떻게 하면 더 입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무슨 공부나 좀 더할까? 내가 뭐 일등을 할까? 내가 어쩔까? 맨 자기중심이야. 그러면 그리스도의 적이야. 그랬지요. 갈라디아서에 보면 뭐라고 그랬어? 내가 눈물을 흘리면서 너희에게 권한다. 이 세상에는 십자가의 원수들이 많다. 그리스도의 적이 많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고, 하나님으로 삼고, 사는 이들이야. 그럼 둘 중에 하나에요. 내 이기주의나 만족시키고 내 몸통어리만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적이 되느냐? 십자가의 원수가 되느냐?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본받아 여러분들은 사랑의 생활을 하라는 말씀대로 그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셔서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 때문에 하나님 앞에 희생 제물이 되시지 않았느냐? 그렇지 않아요? 그걸 바울사도는 확증할 수 있었으니 참 놀라운 일 아니에요? 바울사도는 자기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했거든. 여러분이 바치는 믿음의 제사와 이건 빌립보서에요. 제물을 더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나는 그 위에 내 피라도 쏟아 부을 생각입니다. 이건 바울사도는 그렇게 되어졌어. 사랑으로서 너희들을 위해서 내가 피를 쏟아놓아도 좋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래도 나는 즐겁고 기쁘다. 내가 기쁨으로 너희들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 거짓말이 아니지요. 또 일시적인 감정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지요. 나는 즐겁고 여러분과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즐거워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이렇게까지 열렬하게 사랑을 했다고, 그렇게 살라는 거예요. 그렇게 살라고, 무엇이 아깝겠소? 무엇이 희생이오? 내 몸통어리를 다 줘도 내게 있는 것을 다 줘도 도리어 부족을 느끼고 그렇게까지 되어져야 해요.

 

 


 그럼 마지막으로 열 번째는 음행이나 온갖 더러움이나 탐욕 따위의 말은 거리낌이나 거리끼지 않아요. 우리가 경험으로 알지요? 그런 말두 그런 말 더러운 말은 입에도 담지 말라.  그래야 성도들로서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추잡한 말과 어리석은 이야기, 우리는 어리석은 이야기 쓸데없는 이야기 많이 하지요. 여기 보니까 점잖지 못한 농담, 그전 성경에는 희롱하는 말이라. 그랬지요. 그런데 우리가 희롱하는 말쯤은 무슨 죄인가 이렇게 말하는데 유모어하고 농담하고는 조금 분간을 해요. 대개 보면 유모어는 죄로 안치고 있어요. 성전에도 테레사 전에도 더러 유모어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런 거는 조금 다르지만, 농담이라 그랬지요? 농담도 지나치면 죄가 된다는 말은 동양 군자들도  많은 말을 했어요. 어찌되었든지 점잖지 못한 농담도 하지 마십시오. 성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마 여러분같이 말이 적은 분들은 이렇게 농담할 시간도 없을 거예요. 원체 바쁜 사람들이니까요. 저같이 말이 많은 사람이 별 말이 다 나오지요. 말로도 죄를 많이 짓지요. 어찌되었든지 점잖지 못한 그런 것들은 성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성도들에게 할 것은 무엇뿐이냐? 성도들에게는 성도들에게 어울리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함입니다. 성도들에게 어울리는 말은 감사와 찬송이라고 그래. 남에게 유익한 말. 남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하고 남의 영혼을 즐겁게 하는 말은 하지만 성도들에게 어울리는 것은 감사와 찬송뿐이라. 그래서 아까 조금 읽어드린 빌립보서에도 그런 말이 나오고 골로새서에도 그런 말이 나오지요? 꼭 그 끝에 가서는 감사와 찬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그게 성도들에게 어울리는 거예요. 골로새서도 보면 처음부터 쭉 감사 찬송 그런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아버지께 감사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되기를 골로새서에서 성도들에게 어울리는 생활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생활을 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께서는 성도들이 광영의 나라에서 상속을 받을 자격을 한나라를 상속받고 영광의 날에 참예할 수 있도록 우리를 자격을 주셨다. 자격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암흑의 나라에서 건져내서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셨습니다. 옮겨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아들을 통해서 죄를 용서받고 그 속박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러니 감사한 생활을 하십시오. 이게 거듭난 사람의 생활 아닙니까? 거듭난 사람의 생활입니다. 지금 한 열 가지 조목을 들어서 에베소서 읽어나가던 데를 조금 생각해 봤습니다. 기도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어 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살아져야 하겠습니다. 찬송 534장 찬송 부르십시다.  

 오늘 오후 한시에 식당에서 직원회 모입니다. 한 가지 광고 드릴게 있는데 이건 일반에게 광고를 드려야 하나 주저되나 한분이라도 참석해도 좋은 분은 하기위해서 광고를 드리는데 2월 15일 월요일이에요. 2월 15일부터 27일 토요일입니다. 그 동안에 남원에서 공부를 좀 하기로 했어요. 여름 수양회 까지는 너무 좀 길고, 또 강당 지은 뒤에 하려고 했더니 그건 조금 늦을 것 같고 해서 우선 그 전에 주로 직원들을 중심으로 하는데 방이 넓지가 않아서 많은 분들이 오시면 곤란하지요. 2월 15일부터 27일 까지 사경 성경공부를 좀 하게 그렇게 됩니다. 못 오시는 분들도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주기도 드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