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경자년 제헌절 날 : 동광원의 뿌리

mamuli0 2020. 7. 17. 12:20

초복 다음 날,  경자년 제헌절 날, 코로나는 여전하고 장마도 끝나지 않았다. 백일홍 실난 능소화가 피고 하국 글라디오라스 물레꽃 이차 만개했다. 금년 산 옥수수와 단호박을 먹었다.

 

 

동광원의 뿌리

 

2001.01.03. 김준호 선생

 

 

 

야고보서 1장 27절 말씀을 다 아신 말씀인데 제가 읽겠습니다. 공동번역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떳떳하고 순수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이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우리들 보다는 밖에 계신 어른들이 여기 사정을 속속들이, 혹은 신문 혹은 잡지 혹은 스스로 증거 하신 것을 들을 때 참 부끄럽습니다. 저희들은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잡지에 보니까 이 광주시 전라남도 도청이지요. 관과 민이 광주거리에 흩어져있는 그 부랑아들 혹은 고아들 혹은 과부들을 너무 문제가 크기 때문에 이대로 둘 수 없지 않느냐? 그렇게 해서 군 관 모두 합의를 하고 소위 말하는 구제, 구제기관이지요. 그렇다면 무엇을 줄까? 그럼 광주시내에 고아원을 두자. 이렇게 모든 결정을 한 다음에 그럼 누가 그 구제 사업을 맡도록 할 것인가? 그럼 김천배 선생이란분이 이야기 하시기를 이일 할 사람은 정인세 선생밖에 없소. 추천하셨다. 그래요. 그렇게 해서 모두 가결해가지고 정 선생님께 고아원 원장이 되어 주십시오. 그렇게 청탁이 들어왔다. 그럽니다. 그래서 정 원장님이 이현필 선생님께 품하기를 저더러 이 일을 보라하는데 맡아야합니까? 거절해야 합니까? 물어봤을 때 맡으십시오. 하면서 맡으십시오. 그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야고보서 1장 27절’ 적어서 드렸다고 그렇게 적혀있어요. 우리는 모르는데 무슨 일이든지 숨어서 된 일은 천하에 드러나고,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밝혀지는가 싶습니다. 한번은 동광원은 시작할 때 야고보서 1장 27절 때문에 이렇게 공동체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념으로 한번 따라 읽으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떳떳하고 순수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 말씀.’ 그 잡지에 글을 쓰신 분이 지금 현재 교수시고 대학교 교수시고 또 목사님이신데요. 그분 나름대로 해석하시기를 이 선생님과 정 원장님 두 분이 이 일을 맡았을 때 자기를 지키는 분야는 자기 영혼을 위해서 영성 영혼을 닦는 일은 이 현필 선생님이 담당하시고, 구호사업 구호를 담당하시는 분은 정 인세 원장님이 담당하시고, 그 두 일을 각각 맡았다. 한분이 두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하심으로서 이 일을 완성하셨다고 적혀있어요. 그렇게 보신 것 이지요. 그 말이 얼마나 확실한 것인지 알 수 없어요. 저는 들은풍월 이니까, 2인 합심에 길이 담금이라.

 


그건 주역괘사지요. 두 사람이 합심을 하면 금을 자를 수 있다. 그런 말씀을 제가 이 선생님한테 품 하면서 동광원은 이 선생님과 정 선생님이 합심해서 된 것입니다. 그렇게 제가 증언 했어요. 두 분이 각각 따로 있으면 그건 안 될 일인데 두 분이 합심해서 있을 때 이 공동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 말씀 안 해요. 빙긋이 웃으세요. 뭐 대단히 좋게 생각 하셨어요. 그 일전에 들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선생님이 홀로 있으면 일체 먹고 입고는 이야기가 안 되어요. 하루 굶고 열흘 굶고 백일 굶고 영원히 굶고만 앉아계시지, 그래 혼자 살다 죽는 것이지, 별수 없지 않습니까? 정 원장님이 합심함으로 오늘 몇 사람입니까? 양식은 몇 되가 있어요? 물어보시고 이렇게 하십시오. 그래 생활을 하신 것이지요. 아주 구체적으로, 그래 정 원장님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렇게 이야기 했어요. ‘저는 이 선생님이 하라고 한 일을 나는 심부름 했을 따름이오. 나 개인은 종이 한 장 들었다 놨다 한적 없습니다.’ 일체 이 선생님이 이상을 품으시면 정 원장님은 손발이 되어가지고 실천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생각이 들고요. 지금 선생님께서 친히 쓰신 이 책을 실상은 등하불명입니다. 우리는 안봅니다. 밖에 계신 분들이 그렇게 보세요. 어제 어느 수녀원장님이 오셨는데 이 책을 늘 본 것이 아니어요. 매일 봐요. 모두 암송하고 계세요. 밖에 사람들은 그렇게 선생님의 글을 참고하시고 산다는 것을 볼 때 참 부끄럽습니다. 여기 이런 말이 적혀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 목적을 바로 알았는가? 참 목적은 무엇인가? 성경이 가르치시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자기를 깨끗이 하는 일입니다. 이 말씀이 적혀있어요. 전전 전해지는 야고보서 1장 27절을, 이 선생님이 정 선생님에게 쪽지를 줌으로서 이 말씀이 생활화 되었다. 그걸 일러서 동광원이라 한다. 그렇게 밖에서 해설하시고 와주신 것 같아요. 성경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자기를 깨끗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도 목적이 있고 인생은 목적이 있고 이 공동체로서의 목적이 있으며 동광원도 목적이 있고 저 개인에게도 목적이 있습니다. 구제하는 일과 사업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이 모두가 성결, 성경이 가르친 대로 참된 신앙이라는 것은 성결에 이루는 목적입니다. 목적이 달성된 이는 심령이 편안한 법입니다. 이때가 그때이고 그때가 이때입니다. 목적만 알았다면 다 이룬 것입니다. 사업은 실패해도 좋고, 다만 마음에 안심만 얻었으면 성취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목적을 성취하는 일이요. 그 밖의 일은 유익이 없습니다. 그런 말씀이 적혀있고요. 현 동완 선생님의 말씀이 아무리 목적이 있는 사업이라도 십년쯤 지나면 그 목적이 없어진다고 하는 말씀을 증언 하셨어요. 오셔서, 그러니까 ‘십년쯤 세월이 가면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하신 현 선생님의 말씀이 옳은 것입니다. 동광원의 목적은 가난함과 몸이 약한 병에 걸린 사람을 이렇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씀이 있어요. 그럼 현 선생님이 해방 후에 그때는 어디 가서 그 말씀하셨냐하면 일반 광주 시민들이 모였을 때 강연 하셨어요. 그 일본 시대에 있던 사건인데 항상 들리기를 미국가면 걸인이나 왕이나 절대 차별 없이 한 상에 밥을 먹도록 차려주는 식당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그 식당을 가서 보면 하고 그 소원을 품으신 10년 후에 참 바라고 바라던 그 식당을 미국 가서 찾아갔단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식당은 거지와 신사가 한 상에 밥을 먹도록 그렇게 배려하신 참 목적 있는 식당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자기 신사 혼자 간다는 것은 면목이 없고 그래서, 거리를 많이 돌아다니다가, 다행히 얻어먹는 소년을 발견 하시고 깡통을 찬 소년의 손을 잡고 식당 문을 척 들어서는데 그 지배인이, 지키는 사람이 ‘안 됩니다. 이 아이는 여기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요?’ ‘우리 할아버지께서 시작하기는 그렇게 하셨지만 지금 3대가 갈렸는데 이미 와 계신 신사들이 이 걸인 소년이 들어가면 모두 비위가 돋는다고 음식을 못 먹는다고 그렇게 되기 때문에 옛날이야기지 지금은 이 소년을 데리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이야기 하시더라 그래요.

 

아 내가 십년 전에 그 소식을 듣고 이제 십년 후에 왔는데 그렇게 되었냐고 그럼 그렇게 합시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자기가 갖고 있었던 여벌의 넥타이를 그 걸인 소년 목에 매었답니다. 그리고 손목을 잡고 들어가려고 그래요. 안 됩니다. 막아요. 아 신사라야 들어간다면서 웬 일이오? 이 아이가 신사올시다. 억지로, 그리고 들어가니까 그 지배인이 문제가 일어났다고 절대 안 됩니다. 라고, 그 이야기를 하세요. 그럼 할아버지가 십년 전에 식당을 하실 때 미국이라는 이 세상에서 걸인과 왕이 겸상할 수 있는 식당 이라고 해서 유명했는데 그 유명하니까 어떻게 손님이 많이 오는지, 너무 손님이 많이 오는데 결국은 부자의 요구대로 돈 있는 사람들의 요구대로 가난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도록 결과적으로 되었다. 이것이 사업이라는 약점이다.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오래 하노라면 변질 한다. 그런 강연 하셨어요. 선생님 말씀이 그 말입니다. 현 선생님이 증언 한 대로 사업이라는 것은 시작은 잘하지만 오래 계속하면 그 목적이 희미해진다. 사업만 잘하고 목적이 없어진다면 그 얼마나 그것이 잘못된 일이냐? 그 말씀하고 계십니다. 선생님 말씀은 그런 말씀이 있기 때문에 같이 봤습니다. 이런 말씀이 또 있어요. 지금 자기 생명이 다해간다는 뜻입니다. 이 봄도 또 봄입니다. 이 땅에서 이 귀로 종달새 소리를 듣습니다. 날이 저물어 집니다. 쉬어가겠습니다. 다들 잘 쉬어 오십시오. 저만 먼저 떠나렵니다. 떠나려는 저를 멈추게 하지 마십시오. 갈 준비 빨리해야겠으니 속히 마음 준비 도와주소서. 부디 제 준비를 조력해 주소서. 모든 차림 다 꾸리도록 빠짐없이 일러 주소서. 잊어버림 없도록 일러주는 이가 은인입니다. 늘 실수 있으나 육억 번이라도 다시 고치도록 힘을 주소서. 이 마음 돌이키게 해 주소서. 두렵건대 이 몸이 주님께 버림을 받을까 두렵습니다. 이 심정이지요.

 

 

서울의 걸인 굴이라고 유명하지요. 광주 시내서 사실 때 저쪽 이지요. 저쪽 감나무 동산, 임종이 다가섰어요. 그러니까 물을 못 잡수신 지가 두 달 석 달이 가까우니까 너무한다 해도 목에 불이나지요. 그 수종을 누가 하냐하면 참 여자 순경으로 귀화하신 여자 순경 하시다가 동광원에 들어오신 그 자매 그때는 그분이 총무에요. 그 분이 자전거를 타고 시내에 가서 얼음을 사옵니다. 얼음을 깨서 꼭 엿 모양으로 입에다 물어야 해요. 속이 불이 나니까 물이 안 넘어 가지요. 목이 잠겨가지고 종일 얼음을 입에 넣고 녹이면 뱉으시지요. 안 넘어 가니까 그게 치료법이랄까? 임시방편인데 급기야 생명이 위독한 겁니다. 물이 안 넘어 간 것뿐이에요. 지금 그러기 때문에 심각해지지요. 너무 말을 못하시기 때문에 서울로 말은 안하시니까 자꾸 서울 쪽으로 손을 가르킵니다. 아, 서울 가시잔 말씀입니까? 그러자고, 그렇게 해서 지금 살아계시지요. 오 장로님 정 선생님 정 원장님이지요. 저, 세 사람 네 사람이 기차를 탔어요. 혼자는 앉을 힘이 없지요. 너무 기진해 가지고, 그런데 혼자 앉을 수가 없어요. 그때 다 젊으신 분들 아니에요? 그때만 해도 정 원장님이 한쪽, 오 장로님이 한쪽, 두 분이 안아요. 안아서 기차에 올라가지요. 서울 갈 때까지 꼭 애기를 안듯이 두 분이 몸을 잡고 올라가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옆에 따라가고 급기야 계명산에 들어가시기 전에 걸인 굴로 들어가신 거예요. 참 거기서 임종이 가까운 겁니다. 본인은 임종을 기다리고 있어요. 이 광주에 그때 십대 이십대 자매들이 백 명이 한 오십 명이 있는데 나이 어린 자매들이 저 사람이 선생이란 사람이 죽는 것을 눈으로 보고 얼마나 그 가슴들이 메어지겠느냐 그것뿐이에요. 젊은 사람들이 임종을 보는 것은 못할 노릇이다. 이것은 보여주지 않아야겠다. 그래 죽으러 가신 것이지요. 목적이 단순해요. 여기서 죽으면 좋지만 나 혼자 죽으면 될 것을, 이 어린것들이 죽음을 보면 그 치명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이 어린 사람들이 내 죽음을 안보는 곳에서 죽어야겠다. 그렇게 가셨다고 자기 소원을 말씀 하셨어요. 아무 다른 뜻이 없다고 막상 임종이 가까운 겁니다. 걸인 굴에서 다 아시지요? 거기는 걸인 사회라는 것이 먼저 사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다 걸인들이니까 거기 걸인들이 7-8명 있었어요. 모두 불을 피우고 여기 못 들어온다고 거절할 수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들어간다고 다 비켜간 겁니다. 자기 터를 양보했어요. 그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요. 엄동설한에 엄동설한은 아니지요. 가을이니까, 어찌되었든지 거기 들어가 임종을 기다리는데 그 말 그대로에요. 여기와 계신 한 집사님이 사람이 땅에 뭍을 때 칠성판 있지 않아요? 판자 그걸 주워 다 놨어요. 사람이 묻을 때 나왔겠지요? 묘소를 팔 때 꺼먼 그것을 깔아 드려야해요. 흙이니까 칠성판 위에 누워있는 겁니다. 그런데 무슨 준비가 있어요? 담요도 없고 이불도 없고 그 쓰레기 주워 다 놓은 걸레 덩어리지요. 쓰레기통에서 주워왔다는 홑이불 껍질, 그걸 덮어드렸어요. 그러니까 얼굴 손발이 꺼머니 날이 추우니까 말라 들어가지요. 아주 참혹해요. 얼굴이 그런데 임종이 안 되어요. 본인은 곧 떠나고 싶은데 임종이 안 되는 겁니다. 상황이 그렇게 되니까 이제 아까 그 말씀이에요. 나 고쳐야 되겠다. 늘 실수 했으나 한번 두 번 세 번 억이 아니야. 육억 조 육억 번이라도 다시 고쳐서라도 다시 고쳐서라도 다시 고치도록 힘을 주소서. 자꾸 고치고 가고 싶은 겁니다. 코에 숨이 남아 있으니까 그대로 가고 싶지 않아요. 뭐든 가르쳐 주면 고치고 가겠습니다. 육억 번이라도 다시 고치도록 해 주십시오. 이 마음 돌이키게 해 주십시오. 두렵건대 이 몸이 버림당할까 두렵습니다. 잘한다 했어요. 죽음이 가까웠는데 잘못 되었다면 남은 5분 3초라도 고치고 죽으렵니다. 그 심정이지요. 그런데 사연은 다 알고 계세요. 똑같은 사연입니다. 우리들의 일정은 복음이지요. 간호는 제가 하게 되어있어요. 옆에는 24시간, 임종이 안 되어요. 그런데 선생님 심부름을 하지요. 대소변 본다든지 대변은 안 봐도 소변은 봐야 잖아요? 제 오른손이 그때 다시 말하면 결핵이지요. 얼마나 부어가지고 고름이 뚝뚝 떨어져요. 누런 고름이 보여요. (끊김)

 

 


뭐를 고칠까? 기도하고 있는데 저 사람이 왜 이렇게 손이 부어가지고 고름이 뚝뚝 떨어지고 있나? 이것은 계율이다. 이거에요. 약을 안 먹는 것이 좋다. 그 은혜를 받은 분이 이공님 이지요. 절대 그분은 살이 썩어도 약을 쓰지 않았다. 그 교훈이지요. 그 이 선생님이 그걸 가지고 있는 거지요. 배우신대로, 그걸 실천했어요. 그런데 이 죽기 전에 곧 죽을 때 보는데 가장 사랑하던 사람이 손이 뚱뚱 부어가지고 고름이 누렇게 나오는데 내 이대로 죽으면 저대로 저 사람이 죽는다 이거에요. 그러면 이 사람은 내가 본사람 하나다. 그럼 이 고집이 전통, 이 교훈을 밀고나간다면 천 만 모든 사람이 저렇게 죽을 거 아니냐? 이거에요. 이것은 내가 고쳐야겠다. 그러면 내가 이걸 이 계율을 지켰기 때문에 종교 영웅이에요. 자기가 이걸 지키기 때문에 성인이 된 것입니다. 자기가 영웅이 되어있는데 내가 이걸 안 고치고 죽으면 나는 죄인이야, 범법자이고 법을 어겨. 그러고 타락한 사람이고 그리고 몹쓸 사람이 된다. 그걸 아셨어요. 곧 죽을 텐데 죽으면 되는 거예요. 내가 이걸 고치고 죽어야겠다. 고치는 방법이 그 병원에 데리고 저를 들어간 거지요. 내가 일전에 이야기 했어요. 새벽에 정 원장님이 달려왔어요. 거기서는 잘 곳이 없지 않습니까? 캄캄할 때 돌아 가셨는지 안 돌아가셨는지 모르지 않아요? 쪽지에 적었어요. ‘원장님 인천에 가봐 주십시오.’ 왜요? ‘거기 안식교 병원이 있어요. 거기는 무료실이 있습니다. 무료 병동에 가서 물어 보십시오. 환자를 받아주겠는가?’ 그래 눈치를 채셨지요. 빨리 갔다 오셨어요. 거기는 결핵 환자는 길이 없습니다. 무료실이 없다고 합니다. 그럼 광주로 속히 광주 제중병원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라고, 그 임종이 가까운 분이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렇게 해서 내려왔다는 거고요. 저만 입원시켜 놓고 본인은 나가버린 거예요. 상황이 어찌되었든지 그래 설명을 안 해요. 아무도 짐작만 하는 것이지 설명은 안 해요. 추측만 해요.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어요. 본인은 설명을 안 하는데 그런데 이번에 제가 목포에 계신 여 성숙 의사님 찾아갔어요. 그때 이 선생님이 급성 후두 결핵인데 나는 의사로서 의사 말씀에 순종만 하셨다면 곧 나을 수 있었다 그러세요. 그냥 그 병 낫고 오래 지금도 살아 계실 것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의사의 양심상 너무 애석하다고 난 그분의 신앙을 알 수 없다는 거예요.

 

다들 성인이라고 그러는데 나는 성인이라 볼 수 없다는 거예요. 여 의사 생각으로는 그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무슨 고집이 의사가 당신 이 약 먹으면 낫소. 그러는데 왜 자기가 거절 하냐는 거예요. 그리고 어떤 못 된 놈의 공동체가 광주에 있는데 어린 애기들이 죽어 가는데 약을 안 먹인다고 병원에가 들으니까 그놈의 공동체가 매일 애기들이 몇 십 명씩 죽어가, 그래도 병원에 안 데리고 온다고, 그런 놈의 공동체는 망해버려야 한다고 그랬다는 거예요. 그 선생님 생각에, 그래 알고 보니까 그 공동체가 이 선생님의 공동체라는 거예요. 나는 지금도 이해 안 된다는 거예요. 지금도, 이 선생님이 완전히 잘했다 뭘 잘했다 그거 아니에요. 그 책을 우리가 그랬어요. ‘한 20권 주세요.’ 그러니까 안준다는 거예요. ‘나는 이 선생이 성인이 아니라고 그랬는데 이 책을 그 사람들이 봐요?’ ‘아니, 봅니다.’ ‘절대 이 선생이 그런 분이 아닙니다. 지금 선생님 말씀하면 그냥 순종할 분이에요.’ 사연이 있지요. 이 선생의 사연이 있어요. 그래서 그 말씀입니다. 이 선생님은 죽기 일각까지도 곧 깨달으면 고치는 분이었지. 자기가 뭘 깨달았다고 고집하는 사람이 아니었지요. 이 글도 지금 본 글입니다. 제가 미리 본 글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늘 실수했으나 육억 조 육억 번이라도 다시 고쳐 살아도 고치도록 힘을 주십시오. 이 마음 돌이키게 해 주십시오. 두렵건대 이 몸이 버림받을까 두렵습니다. 그때 그랬다 그래요. 훗날 이야기여요, 그럼 왜 그때 기억을 했냐? 병원에 사람을 데리고 가고 고기를 입에 대고, 그때 임종 직전에 그건 추상이지요. 예수님을 만났어요. 예수님이 아주 눈살이 노하세요. 확 만났는데 아니꼬우셔. 예수님이 ‘네 이놈, 왜 분열시키고 왔냐?’ 그러더라는 거예요. 무엇이 네가 잘났다고 분열 시키고 왔어? 그럼 내가 죽기 전에 이 분열을, 이 죄를 내가 막아야겠다. 모든 신자들이 약을 먹고 고기를 먹고 천국 가는 길에 나만 약을 안 먹고 고기를 안 먹고 이 교파를 만들어 놨어. 이대로 죽는다면 예수님께 못할 노릇이다. 이거에요. 내가 이것을 고치고 죽어야지, 내 예수님의 가슴에 못을 박고 설움을 드리고 왜 내가 이 짓을 하고 죽느냐? 그러니까 나는 주님 앞에 버림당할까 두려워서 나는 고쳐야겠다. 프란치스코 발자취라는 책이 있어요. 이거는 직접 같이 24시간 같이 살았던 간호원이고, 고해 신부고, 내외가 쓰신 기록입니다. 당신이 회개하신 때부터 성 프란치스코는 현명하게도 주님의 도움을 얻어 자신의 생활과 이집 곧 작은 형제라 불리 우는 당신의 형제회를 든든한 바위위에 말하자면 극도의 겸손과 하나님의 아들의 가난을 기초삼아 세우고자 결정 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형제회를 극도의 겸손위에 세우셨습니다. 형제들이 증가하기 시작하던 초창기부터 성인은 형제들이 나환자를 돌보기 위하여 나병원에 살도록 분명히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래 아무 이유 없이 이렇게 예임 한다. 그건 공허한 것이지요. 어떻게 제자들을 겸손하게 키우느냐? 나환자를 섬기게 해야겠다. 동시에 지원자가 들어오면 그들이 귀족이거나 평민이거나 막론하고 나환자들 에게 봉사하고 그들의 병원에서 생활하는 등등 기타, 다른 일에 종사 하도록 배려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지금 소위 말하면 내외가 자기 스승을 전한 것입니다. 말씀을 자기 선생의 말을 쓸 때 서두가 그래요. 당신이 회개하신 때부터 그 성인 프란치스코도 임종할 때 까지 회개하신 겁니다. 결코 그분이 죽기 전에 성인 아니거든요. 후인들이 자기 스승이 성인 이라고 말해 준 것뿐이지요. 내 당신이 회개하신 때부터 성 프란치스코께서 현명하게 주의 도움을 얻어 자신의 생활과 작은 형제라 불리 우는 공동체를 위해서 극도의 겸손과 하나님의 아들의 가난을 기초삼아 그 공동체를 세웠다. 그거지요. 그럼 가난하단 것이 뭐에요? 제일 돈 없는 사람들이 그때는 나환자들 입니다. 버림당한 사람들, 그럼 자기가 공동체를 세울 때, 한 발자국이 자기 제자가 생기면 나환자를 섬겨라. 그렇게 지도했답니다. 그래서 그 말씀입니다.

 


저는 선생님께 지도 받기를 첫날에 밥을 얻어오라. 그렇게 가르쳤어요. 성경 몇 장 몇 절을 그렇게 안 가르쳤어요. 초면에 찾아왔습니다. 저기가 밥을 얻어오세요. 그런 인정사정이 없어요.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여름입니다. 밥상을 받고 있을 때 오셨거든요. 밥을 먹으려는 사람한테 밥이나 먹은 다음이던지 밥을 먹기 전이던지 그게 아니에요. 밥상을 받았는데 비는 쏟아지는데 ‘준호, 저기가 밥 얻어오세요.’ 그래. 그때 저는 순종했어요. 대체로 말을 들어보면 저만 그런 것 아닙니다. 상당히 열의를 품고 찾아온 사람 있으면 반드시 철칙이 밥을 얻어오라, 그래요. ‘밥 얻어오라’ 그러니 그때는 타의에 의해서 밥을 얻었지요. 그렇게 하신일이 있기 때문에 한 몇 달 후에 자원해서 밥을 얻으러 간 겁니다. 화학산에 있다가 그럼 8월이 가까운 때 기독청년회에서 여수에서 여름 수양회를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짐작삼아 산속에는 달력이 없어 모릅니다. 짐작이 8월이 가까운 가해서 여수를 가는 거지요. 무전여행이니까, 처음에 밥을 얻는데 선생님이 시킨 것 아니지요? 너무 부끄러우니까 새벽 어둑어둑해서 걸어가는데 해가 9시가 되도록 못하겠어요. 자꾸 마을이 또 마을이 오면 들어가려고 하는데 못 들어가겠어요. 부끄러워서, 또 그 마을 지나가면 다른 마을이 나오고 다른 마을이 나오고, 전혀 못가겠어요. 그런데 이대로 가면 종일 굶을 수밖에 없다 싶어서 아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한집에 가서 밥을 달라고 할 때 주었어요. 그 한 40대 어머니신데 상에다 밥을 차렸어요. 수저 밥그릇 국그릇 다해서 상을 갖고 나오시는데 아주 안집이 멀어요. 그 길가인데 놓고 가시더라고요. 어디서 앉아 먹을까 아주 당황했어요. 어쩔 수 없어요. 길바닥에 앉아서 그걸 먹는데 참 마음이 감격스러워요. 너무 감격스러워. 그때 자원해서 밥을 얻어먹고 그날부터는 천지가 내 것이야. 하늘땅이 바로 제 소유가 되더라고요. 인제 월급 받고 취직할 생각이 없어졌어요. 아 이렇게 사는 거, 이렇게 사는 거다. 인생이라는 게, 길가다 배고프면 한술 얻어먹고 가는 길인가보다. 그래 천지가 자기 소유가 되더라고요. 느낌에 감성이 아주 벅차더라고요. 야, 이 비밀을 선생님이 가르쳐 줄라고 그렇게 비 오는 날 밥 얻어오라고 했구나. 그 이해가 됐어요. 그때서야, 처음에 한번 얻기가 무섭고 두렵지, 한번만 자기가 스스로 우러나서 얻으러 갈수만 있다면 그건 소유 없이 살 수 있는 자신을 주시더라고요. 자신을, 완전 자신이야. 본인이 그런 경험을 하셨기 때문에 옆에 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가르쳐 주는 거예요. 비밀을, ‘밥 얻어오라.’ 그 안 가버리면 교제는 끝난 거지요. 그분과 어떻게 교제를 해요? 첫말에 순종 안 해버리는데 서로 눈치보다 끝나버리지요. 그래 여기 정월에 해방이 되었으니까. 유 영모 선생님 현 동완 선생님 여기 오신 겁니다. 여기 아닐지라도 광주 시내 왔지요. 그러니까 꼭 지금 같아요. 이렇게 모여 있어요. 현 선생님 들여다보셨어요. 청년들한테, 여러분 언제까지나 그렇게 이야기나 하고 듣고만 할 거요? 동포는 굶어죽어 가는데, 어떻게 그 말이 무색하고 부끄러워서, 오늘 지금 성경 말씀 들었으면 오늘 밖에 나가 봉사 할 사람 손들라고 하더라고요. 현 선생님이 청년보고 다 손을 안 들어요. 그러니까 너무 황송해서 대접으로 김 준 선생이 손을 들었답니다. ‘제가 가렵니다.’ 그것이 촉진제가 되어가지고 한번 손든 사람이 어찌 하겠어요? 그래 대학 교수직을 포기하고 인제 소위 말하면 함평으로 발령 받은 거예요. 고아들 30명을 데리고요. ‘언제까지 이론이나 하고 앉아있을 거요?’ 실천을 하지 않고? ‘아, 제가 가렵니다.’ 그건 서울서 온 현 선생님 대접, 말씀 대접으로 그렇게 한번 한 것이 어쩔 수 없다는 거예요. 한번 한다고 한 것을 어떻게 안하냐는 거예요. 그러니 소위 말하면 현 선생님의 응원이지요.

 

 

 

이 선생님이 예수 믿는다고 찾아와서 말이나 듣고 앉았고 그게 전부면 되냐는 거거든. 그럼 이 선생님을 알기위해서 찾아오시는데, 제가 그랬어요. 그 수도원 창설하신 대표가 오셨어요. 일전에 목사님이 수녀원 창설하신 대표, 이 선생님이 성인이신데 우리 수도회서 그 전기를 따로 만들랍니다. 우리 사표, 누구를 본받을 것이냐? 성인 열 분을 정해서 이 선생님도 우리가 모시고 그 분 지도를 받게 우리가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만들겠지요. 교정하시겠다고 제가 그랬어요. 우리는 이 선생님이 누군지 모릅니다. 전혀 성인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본 것은 떨어진 거지 옷을 입었는데 자꾸 몸이 약하시고 성경 말씀 할 때면 자꾸 콧물이 나와요. 그러니까 옷소매로 코를 닦아요. 그것을 봤기 때문에 우리 선생님은 옷소매로 코를 닦고 그것이나 알지. 그걸 목격해서 그분이 성인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이야기 했어요. 등잔 밑이 어두워요. 같이 사는 사람은 너무 굶었습니다. 지긋 지긋해요. 너무 굶어서 배고파서 선생님은 굶기는 사람이야. 그것뿐이지, 이 선생님이 성인이 아니란 말이야.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나 굶어서 음식이 있으면 다 나누어 먹어. 밥은 열사람 분 했는데 손님이 20명이 오면 물 타가지고 끓여가지고, 그 너무 건 데기가 없으면 풀 넣고, 열이 먹으려고 한 밥을 30명이 먹으니까 항상 배고파요. 그럼 50명 밥 해놓으면 또 사람이 와요. 또 물 타요. 또 나눠먹어요. 그러니까 이 선생님 밑에 있는 식구는 매일 희생을 당해. 매일 죽이나 먹고 말아요. 왔다 가신 손님은 기념이 되려는지 몰라도 본 식구는 희생이 되어버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이 선생님이 좋은 사람이 아니지요. 그냥 귀찮은 인물이란 말이지요. 저는 그래요. 이제는 병을 앓았고 또 병원이 예산이 모자라니까 직원이 모자라요. 그래서 이렇게 눈을 아래로 내려다보고 무릎 꿇고 듣던 자매들, 전부 십대에요. 한 20명, 30명을 전부 병원에 보내버려. 치마가 땅에 끌리도록 남자는 쳐다보지 못하도록 가르쳤는데 갑자기 병원에 가서 심부름하라. 학교도 안다닌 사람들, 그거는 불순종 한 사람은 다 나가버렸지요. 순종하는 사람은 울며불며 가요. 병원은 직원들 이니까 밥 먹고 와서 일하는데 이 식구는 밥이 없어요. 근무할 때, 그러니 근무 한다고 대접한다고 나물죽은 안 먹이고 보리밥 한술 먹였지요. 그거도 죽이지요. 그럼 병원에 근무해요. 점심을 싸가지고 갈라고 하는데 보리밥이여. 직원들이 보는데 먹을 수가 없어요. 숨어서 먹던지 굶고 오던지 병원 당국은 여기가 배부른 줄 알아요. 배우러 온 사람이다 하고 부려먹기만 하지 굶고 심부름 하는 줄 모릅니다. 절대 그 분위기에서는, 선생님한테 밑에서 일 배운 사람은 굶고 희생당하고, 그것뿐이지, 선생님이 무슨 성인 입니까? 폭군이에요. 폭군, 밖에 사람들이 와서 자꾸 칭찬해요. 우리는 피해잔데, 그런데 보면 자꾸 고친단 말이에요. 매일 들으면 고쳐요. 그 시간에 자기가 좋은 말을 듣더라도 딱 잘못이다. 그 시간에 거쳐버려. 해가지기 전에 그러니까 매일 고치고, 고치고 고치다 가신 분이고 지금도 계시다면 고칩니다. 절대로 이대로 두지 않아요. 훨씬 편리하게 살기 좋게 평안하게 해주실 분이지.

 

그럼 밤이 되면 제가 꼭 보고를 합니다. 무등산에 그때 여름입니다. 결핵환자는 모두 무등산에 다 데려다 놓았습니다. 왜 광주시내에는 싫어하니까 일원이 되고 싶어요. 선생님 일원이 되고 싶어. 이 사람들이 전부 건강하거든, 전염이 되니까 둘 수 없는 겁니다. 시에서는 싫어하지요. 그러니 국유림에다 둔 것입니다. 사유지에다는 못 있게 해요. 막을 못 치게 하지 않습니다. 정부 땅이니까 막을 친 거지. 거기가 구백고지요. 여름에도 추운 곳이에요. 거기다 환자를 갖다놓고 여기서 밀가루 강냉이를 얻어서 보낸 겁니다. 거기서 끓여먹다가 죽으라. 그거에요. 그게 사회 실정이에요. 그것이 무슨 사업이 아닙니다. 실제 사건이 그래요. 그래 인제 제가 무슨 자동차 길도 없었습니다. 광주에서 무등산 올라가는 길이 없어요. 걸어 다니는데, 그런 사건이 있어요. 이 선생님이 12월 25일 날 삼밭실에 계셨습니다. 그러니 광주 살던 어느 자매가 선생님이 존경스러워서 그러면 걸어가야 하니까 3시간 걸어가야 하거든요. 크리스마스 송년 찬송을 불러 드리기 위해서 아마 일찍 올라갔어요. 삼밭실에 계신데 찾을 수가 없어요. 새벽에 당도했는데, 막이 어디 보이겠어요? 새벽에, 그래 못 찾고 말았어요. 광주 시내 살던 자매들이 선생 막에 가서 찬송 불러 드리러 갔어도 산에 숨어계시니 어떻게 누가 찾겠어요? 그런 사건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야기 하려는 것은 무등산에 환자가 있어서 왔다 갔다 하는데 해는 져가는데 배나무 골 이라는 데가 있어요. 산소 돌아오는데 할머니가 나무다발 하나를 놓고 앉아계세요. 저도 옆에 앉아있었어요. 할머니 말이 ‘저는 며느리가 오기 전에는 내 아들하고 화목하게 살았소.’ 며느리가 온 다음에는 아주 그 자기를 싫어한다. 이거에요. 왜 놀고먹는다 그거에요. 그러면 너무 며느리가 미안해서 새벽에 굶고 무등산에 나무하러 왔답니다. 그러니 나무가 없어요. 광주 시내가 다 나무를 때니까, 연탄 때는 데가 없으니까, 구백고지를 가도 나무가 없어요. 거기도 사람이 다 가니까 깨끗해요. 뭐 무등산에 나무가 없어요. 낙엽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얼마나 상상봉에 가서 나뭇가지 한 쪼금 주웠답디다. 그걸 이고 오는데 배가 고프니까 빨리 갈 길을 못가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소나무밭 옆에서 신사들이 여름이니까 수박을 먹고 가버렸어요. 껍질이 거기 있어요. 껍질 한참 주워 먹으니까 눈이 보여요. 그래요. 나 여기 앉아서 수박껍질 주워 먹으니까 이제 눈이 보입니다. 그래 인제 가렵니다. 그러시더라고요. 할머니가, 그러면 선생님은 그걸 보고 보고하라 그거지요.

 

광주 시내 눈이 많이 오면 저를 보내요. 광주 시내 어디서 누가 얼어 죽었는가 보고오라. 와서 보고해야지. 어디가면 이런 사람 있습디다. 즉각 이여, 들으면 그냥 그래요. ‘이것 갖다 주고 오너라.’ 자기 이불 갖다 주고 오라는 거지요. 자기도 엄동설한에, 또 이건 여름 이야기니까, 아 그런 할머니를 목격했어요. 그분 사시는 곳은 월산동입니다. 아, 그래. 그런데 그 집을 알겠는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면 김은연씨 어머니 속히 오시라. 그래요. 총무님 오시라고, ‘우리 집에 밀가루 강냉이 지금 십일조 받은 것 얼마나 됩니까?’ ‘강냉이 한포 있고 밀가루 한포 있습니다.’ ‘가서 곧 빵을 찌십시오.’ 즉석에서 명령하세요. 전혀 몰라요. 왜 찌라고 하는지? 전부 빵을 만들라고, 그럼 해가 지기 전에 산수동 문턱이지요. 작고개가? 거기에 빵을 갖고 가 서있으라. 그래요. 그 할머니가 나무를 오늘도 하는지 안하는지 모르지만 할머니를 찾아야지요. 여기 아리랑고개 여기서 빵을 안고 기다리고 있다가 나무꾼이 가면 점심 자셨소? 물어보고 빵을 주라. 그래요. 물도 떠다놓고 드리고, 그러니까 이제 산수동 골목하고 아리랑고개하고 빵을 나눠 준겁니다. 나무꾼한테, 아주 개미같이 나무꾼이 올라오지요. 무등산에서 해가질 때 그 양식을 누가 대요? 십일조는 다 끝나버리고 양식이 우리는 없으니까 병원 원장을 찾아가셨어요. 나무꾼이 오다가다 배가고파서 길가에 쓰러진단 말 들었습니다. 선교부에서 양식을 대 주십시오. 그럼 하루에 얼마나 대 드릴까요? 빵으로 하면 몇 개를 쪄 드릴가요? 하루에 천 덩이 쪄주십시오. 모자라면 더 쪄드리겠습니다. 그런 거예요. 카링톤 원장이지요. 여기 자매들이 가서 봉사하니까 고마워서, 월급도 안 받고, 와가지고 빵을 쪄달라니까 그래 인제 빵 기계를 주문을 해요. 빵 기계를 자기 직장에 갖다놓고 빵을 찐 겁니다. 이 선교사가 직원은 몰라요. 영문을 모르는 겁니다. 그럼 동광원 사람이 가면 빵을 내줘요. 한 천 덩이씩, 전 직원이 반대합니다. 무슨 소리냐? 이 밀가루는 세계봉사회에서 제중 병원에오는 환자들 주라고 준 밀가루야. 그런데 왜 동광원에 가냐고, 그때 사무실에 총무, 지금 그 사람 미국 갔어요. 박씨라고, 제가가면 항의를 해요. 당신이 뭐냐고, 왜 우리 환자들의 양식을 당신들이 가지고 가냐고, 문제가 컸어요. 그래서 산림청에 고발을 했어요. 무등산을 망해먹는 도벌꾼인데 이 길가에 서서 빵을 나눠줘. 나무를 더하라고, 도벌을 더하라고, 이건 산림법에 방조죄에요. 이것이 문제가 되어가지고 세계 봉사회에 진정이 된 것입니다. 밀가루를 제중 병원에 불쌍한 사람 주라고 보냈는데 안 쪄주고, 나무꾼을 쪄줬다. 이거에요. 추적을 해보니까 이래서는 안 되겠다. 그러니까 법률에 의해서 빵을

 


지금은 우리들 보다는 밖에 계신 어른들이 여기 사정을 속속들이, 혹은 신문 혹은 잡지 혹은 스스로 증거 하신 것을 들을 때 참 부끄럽습니다. 저희들은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잡지에 보니까 이 광주시 전라남도 도청이지요. 관과 민이 광주거리에 흩어져있는 그 부랑아들 혹은 고아들 혹은 과부들을 너무 문제가 크기 때문에 이대로 둘 수 없지 않느냐? 그렇게 해서 군 관 모두 합의를 하고 소위 말하는 구제, 구제기관이지요. 그렇다면 무엇을 줄까? 그럼 광주시내에 고아원을 두자. 이렇게 모든 결정을 한 다음에 그럼 누가 그 구제 사업을 맡도록 할 것인가? 그럼 김천배 선생이란분이 이야기 하시기를 이일 할 사람은 정인세 선생밖에 없소. 추천하셨다. 그래요. 그렇게 해서 모두 가결해가지고 정 선생님께 고아원 원장이 되어 주십시오. 그렇게 청탁이 들어왔다. 그럽니다. 그래서 정 원장님이 이현필 선생님께 품하기를 저더러 이 일을 보라하는데 맡아야합니까? 거절해야 합니까? 물어봤을 때 맡으십시오. 하면서 맡으십시오. 그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야고보서 1장 27절’ 적어서 드렸다고 그렇게 적혀있어요. 우리는 모르는데 무슨 일이든지 숨어서 된 일은 천하에 드러나고,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밝혀지는가 싶습니다. 한번은 동광원은 시작할 때 야고보서 1장 27절 때문에 이렇게 공동체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념으로 한번 따라 읽으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떳떳하고 순수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 말씀.’ 그 잡지에 글을 쓰신 분이 지금 현재 교수시고 대학교 교수시고 또 목사님이신데요. 그분 나름대로 해석하시기를 이 선생님과 정 원장님 두 분이 이 일을 맡았을 때 자기를 지키는 분야는 자기 영혼을 위해서 영성 영혼을 닦는 일은 이 현필 선생님이 담당하시고, 구호사업 구호를 담당하시는 분은 정 인세 원장님이 담당하시고, 그 두 일을 각각 맡았다. 한분이 두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하심으로서 이 일을 완성하셨다고 적혀있어요. 그렇게 보신 것 이지요. 그 말이 얼마나 확실한 것인지 알 수 없어요. 저는 들은풍월 이니까, 2인 합심에 길이 담금이라.

 


그건 주역괘사지요. 두 사람이 합심을 하면 금을 자를 수 있다. 그런 말씀을 제가 이 선생님한테 품 하면서 동광원은 이 선생님과 정 선생님이 합심해서 된 것입니다. 그렇게 제가 증언 했어요. 두 분이 각각 따로 있으면 그건 안 될 일인데 두 분이 합심해서 있을 때 이 공동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 말씀 안 해요. 빙긋이 웃으세요. 뭐 대단히 좋게 생각 하셨어요. 그 일전에 들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선생님이 홀로 있으면 일체 먹고 입고는 이야기가 안 되어요. 하루 굶고 열흘 굶고 백일 굶고 영원히 굶고만 앉아계시지, 그래 혼자 살다 죽는 것이지, 별수 없지 않습니까? 정 원장님이 합심함으로 오늘 몇 사람입니까? 양식은 몇 되가 있어요? 물어보시고 이렇게 하십시오. 그래 생활을 하신 것이지요. 아주 구체적으로, 그래 정 원장님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렇게 이야기 했어요. ‘저는 이 선생님이 하라고 한 일을 나는 심부름 했을 따름이오. 나 개인은 종이 한 장 들었다 놨다 한적 없습니다.’ 일체 이 선생님이 이상을 품으시면 정 원장님은 손발이 되어가지고 실천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생각이 들고요. 지금 선생님께서 친히 쓰신 이 책을 실상은 등하불명입니다. 우리는 안봅니다. 밖에 계신 분들이 그렇게 보세요. 어제 어느 수녀원장님이 오셨는데 이 책을 늘 본 것이 아니어요. 매일 봐요. 모두 암송하고 계세요. 밖에 사람들은 그렇게 선생님의 글을 참고하시고 산다는 것을 볼 때 참 부끄럽습니다. 여기

 

 

이런 말이 적혀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 목적을 바로 알았는가? 참 목적은 무엇인가? 성경이 가르치시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자기를 깨끗이 하는 일입니다. 이 말씀이 적혀있어요. 전전 전해지는 야고보서 1장 27절을, 이 선생님이 정 선생님에게 쪽지를 줌으로서 이 말씀이 생활화 되었다. 그걸 일러서 동광원이라 한다. 그렇게 밖에서 해설하시고 와주신 것 같아요. 성경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자기를 깨끗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도 목적이 있고 인생은 목적이 있고 이 공동체로서의 목적이 있으며 동광원도 목적이 있고 저 개인에게도 목적이 있습니다. 구제하는 일과 사업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이 모두가 성결, 성경이 가르친 대로 참된 신앙이라는 것은 성결에 이루는 목적입니다. 목적이 달성된 이는 심령이 편안한 법입니다. 이때가 그때이고 그때가 이때입니다. 목적만 알았다면 다 이룬 것입니다. 사업은 실패해도 좋고, 다만 마음에 안심만 얻었으면 성취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목적을 성취하는 일이요. 그 밖의 일은 유익이 없습니다. 그런 말씀이 적혀있고요. 현 동완 선생님의 말씀이 아무리 목적이 있는 사업이라도 십년쯤 지나면 그 목적이 없어진다고 하는 말씀을 증언 하셨어요. 오셔서, 그러니까 ‘십년쯤 세월이 가면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하신 현 선생님의 말씀이 옳은 것입니다. 동광원의 목적은 가난함과 몸이 약한 병에 걸린 사람을 이렇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씀이 있어요. 그럼 현 선생님이 해방 후에 그때는 어디 가서 그 말씀하셨냐하면 일반 광주 시민들이 모였을 때 강연 하셨어요.

 

 

 

그 일본 시대에 있던 사건인데 항상 들리기를 미국가면 걸인이나 왕이나 절대 차별 없이 한 상에 밥을 먹도록 차려주는 식당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그 식당을 가서 보면 하고 그 소원을 품으신 10년 후에 참 바라고 바라던 그 식당을 미국 가서 찾아갔단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식당은 거지와 신사가 한 상에 밥을 먹도록 그렇게 배려하신 참 목적 있는 식당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자기 신사 혼자 간다는 것은 면목이 없고 그래서, 거리를 많이 돌아다니다가, 다행히 얻어먹는 소년을 발견 하시고 깡통을 찬 소년의 손을 잡고 식당 문을 척 들어서는데 그 지배인이, 지키는 사람이 ‘안 됩니다. 이 아이는 여기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요?’ ‘우리 할아버지께서 시작하기는 그렇게 하셨지만 지금 3대가 갈렸는데 이미 와 계신 신사들이 이 걸인 소년이 들어가면 모두 비위가 돋는다고 음식을 못 먹는다고 그렇게 되기 때문에 옛날이야기지 지금은 이 소년을 데리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이야기 하시더라 그래요. 아 내가 십년 전에 그 소식을 듣고 이제 십년 후에 왔는데 그렇게 되었냐고 그럼 그렇게 합시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자기가 갖고 있었던 여벌의 넥타이를 그 걸인 소년 목에 매었답니다. 그리고 손목을 잡고 들어가려고 그래요. 안 됩니다. 막아요. 아 신사라야 들어간다면서 웬 일이오? 이 아이가 신사올시다. 억지로, 그리고 들어가니까 그 지배인이 문제가 일어났다고 절대 안 됩니다. 라고, 그 이야기를 하세요. 그럼 할아버지가 십년 전에 식당을 하실 때 미국이라는 이 세상에서 걸인과 왕이 겸상할 수 있는 식당 이라고 해서 유명했는데 그 유명하니까 어떻게 손님이 많이 오는지, 너무 손님이 많이 오는데 결국은 부자의 요구대로 돈 있는 사람들의 요구대로 가난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도록 결과적으로 되었다. 이것이 사업이라는 약점이다.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오래 하노라면 변질 한다. 그런 강연 하셨어요. 선생님 말씀이 그 말입니다. 현 선생님이 증언 한 대로 사업이라는 것은 시작은 잘하지만 오래 계속하면 그 목적이 희미해진다. 사업만 잘하고 목적이 없어진다면 그 얼마나 그것이 잘못된 일이냐? 그 말씀하고 계십니다. 선생님 말씀은 그런 말씀이 있기 때문에 같이 봤습니다. 이런 말씀이 또 있어요. 지금 자기 생명이 다해간다는 뜻입니다.

 

이 봄도 또 봄입니다. 이 땅에서 이 귀로 종달새 소리를 듣습니다. 날이 저물어 집니다. 쉬어가겠습니다. 다들 잘 쉬어 오십시오. 저만 먼저 떠나렵니다. 떠나려는 저를 멈추게 하지 마십시오. 갈 준비 빨리해야겠으니 속히 마음 준비 도와주소서. 부디 제 준비를 조력해 주소서. 모든 차림 다 꾸리도록 빠짐없이 일러 주소서. 잊어버림 없도록 일러주는 이가 은인입니다. 늘 실수 있으나 육억 번이라도 다시 고치도록 힘을 주소서. 이 마음 돌이키게 해 주소서. 두렵건대 이 몸이 주님께 버림을 받을까 두렵습니다. 이 심정이지요. 서울의 걸인 굴이라고 유명하지요. 광주 시내서 사실 때 저쪽 이지요. 저쪽 감나무 동산, 임종이 다가섰어요. 그러니까 물을 못 잡수신 지가 두 달 석 달이 가까우니까 너무한다 해도 목에 불이나지요. 그 수종을 누가 하냐하면 참 여자 순경으로 귀화하신 여자 순경 하시다가 동광원에 들어오신 그 자매 그때는 그분이 총무에요. 그 분이 자전거를 타고 시내에 가서 얼음을 사옵니다. 얼음을 깨서 꼭 엿 모양으로 입에다 물어야 해요. 속이 불이 나니까 물이 안 넘어 가지요. 목이 잠겨가지고 종일 얼음을 입에 넣고 녹이면 뱉으시지요. 안 넘어 가니까 그게 치료법이랄까? 임시방편인데 급기야 생명이 위독한 겁니다. 물이 안 넘어 간 것뿐이에요. 지금 그러기 때문에 심각해지지요. 너무 말을 못하시기 때문에 서울로 말은 안하시니까 자꾸 서울 쪽으로 손을 가르킵니다. 아, 서울 가시잔 말씀입니까? 그러자고, 그렇게 해서 지금 살아계시지요. 오 장로님 정 선생님 정 원장님이지요. 저, 세 사람 네 사람이 기차를 탔어요. 혼자는 앉을 힘이 없지요. 너무 기진해 가지고, 그런데 혼자 앉을 수가 없어요. 그때 다 젊으신 분들 아니에요? 그때만 해도 정 원장님이 한쪽, 오 장로님이 한쪽, 두 분이 안아요. 안아서 기차에 올라가지요. 서울 갈 때까지 꼭 애기를 안듯이 두 분이 몸을 잡고 올라가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옆에 따라가고 급기야 계명산에 들어가시기 전에 걸인 굴로 들어가신 거예요. 참 거기서 임종이 가까운 겁니다. 본인은 임종을 기다리고 있어요.

 

 

 

이 광주에 그때 십대 이십대 자매들이 백 명이 한 오십 명이 있는데 나이 어린 자매들이 저 사람이 선생이란 사람이 죽는 것을 눈으로 보고 얼마나 그 가슴들이 메어지겠느냐 그것뿐이에요. 젊은 사람들이 임종을 보는 것은 못할 노릇이다. 이것은 보여주지 않아야겠다. 그래 죽으러 가신 것이지요. 목적이 단순해요. 여기서 죽으면 좋지만 나 혼자 죽으면 될 것을, 이 어린것들이 죽음을 보면 그 치명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이 어린 사람들이 내 죽음을 안보는 곳에서 죽어야겠다. 그렇게 가셨다고 자기 소원을 말씀 하셨어요. 아무 다른 뜻이 없다고 막상 임종이 가까운 겁니다. 걸인 굴에서 다 아시지요? 거기는 걸인 사회라는 것이 먼저 사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다 걸인들이니까 거기 걸인들이 7-8명 있었어요. 모두 불을 피우고 여기 못 들어온다고 거절할 수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들어간다고 다 비켜간 겁니다. 자기 터를 양보했어요. 그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요. 엄동설한에 엄동설한은 아니지요. 가을이니까, 어찌되었든지 거기 들어가 임종을 기다리는데 그 말 그대로에요. 여기와 계신 한 집사님이 사람이 땅에 뭍을 때 칠성판 있지 않아요? 판자 그걸 주워 다 놨어요. 사람이 묻을 때 나왔겠지요? 묘소를 팔 때 꺼먼 그것을 깔아 드려야해요. 흙이니까 칠성판 위에 누워있는 겁니다. 그런데 무슨 준비가 있어요? 담요도 없고 이불도 없고 그 쓰레기 주워 다 놓은 걸레 덩어리지요. 쓰레기통에서 주워왔다는 홑이불 껍질, 그걸 덮어드렸어요. 그러니까 얼굴 손발이 꺼머니 날이 추우니까 말라 들어가지요. 아주 참혹해요. 얼굴이 그런데 임종이 안 되어요. 본인은 곧 떠나고 싶은데 임종이 안 되는 겁니다. 상황이 그렇게 되니까 이제 아까 그 말씀이에요. 나 고쳐야 되겠다. 늘 실수 했으나 한번 두 번 세 번 억이 아니야. 육억 조 육억 번이라도 다시 고쳐서라도 다시 고쳐서라도 다시 고치도록 힘을 주소서. 자꾸 고치고 가고 싶은 겁니다. 코에 숨이 남아 있으니까 그대로 가고 싶지 않아요. 뭐든 가르쳐 주면 고치고 가겠습니다. 육억 번이라도 다시 고치도록 해 주십시오. 이 마음 돌이키게 해 주십시오. 두렵건대 이 몸이 버림당할까 두렵습니다. 잘한다 했어요. 죽음이 가까웠는데 잘못 되었다면 남은 5분 3초라도 고치고 죽으렵니다. 그 심정이지요. 그런데 사연은 다 알고 계세요. 똑같은 사연입니다. 우리들의 일정은 복음이지요. 간호는 제가 하게 되어있어요. 옆에는 24시간, 임종이 안 되어요. 그런데 선생님 심부름을 하지요. 대소변 본다든지 대변은 안 봐도 소변은 봐야 잖아요? 제 오른손이 그때 다시 말하면 결핵이지요. 얼마나 부어가지고 고름이 뚝뚝 떨어져요. 누런 고름이 보여요.
(끊김)

 

 


뭐를 고칠까? 기도하고 있는데 저 사람이 왜 이렇게 손이 부어가지고 고름이 뚝뚝 떨어지고 있나? 이것은 계율이다. 이거에요. 약을 안 먹는 것이 좋다. 그 은혜를 받은 분이 이공님 이지요. 절대 그분은 살이 썩어도 약을 쓰지 않았다. 그 교훈이지요. 그 이 선생님이 그걸 가지고 있는 거지요. 배우신대로, 그걸 실천했어요. 그런데 이 죽기 전에 곧 죽을 때 보는데 가장 사랑하던 사람이 손이 뚱뚱 부어가지고 고름이 누렇게 나오는데 내 이대로 죽으면 저대로 저 사람이 죽는다 이거에요. 그러면 이 사람은 내가 본사람 하나다. 그럼 이 고집이 전통, 이 교훈을 밀고나간다면 천 만 모든 사람이 저렇게 죽을 거 아니냐? 이거에요. 이것은 내가 고쳐야겠다. 그러면 내가 이걸 이 계율을 지켰기 때문에 종교 영웅이에요. 자기가 이걸 지키기 때문에 성인이 된 것입니다. 자기가 영웅이 되어있는데 내가 이걸 안 고치고 죽으면 나는 죄인이야, 범법자이고 법을 어겨. 그러고 타락한 사람이고 그리고 몹쓸 사람이 된다. 그걸 아셨어요. 곧 죽을 텐데 죽으면 되는 거예요. 내가 이걸 고치고 죽어야겠다. 고치는 방법이 그 병원에 데리고 저를 들어간 거지요. 내가 일전에 이야기 했어요. 새벽에 정 원장님이 달려왔어요. 거기서는 잘 곳이 없지 않습니까? 캄캄할 때 돌아 가셨는지 안 돌아가셨는지 모르지 않아요? 쪽지에 적었어요. ‘원장님 인천에 가봐 주십시오.’ 왜요? ‘거기 안식교 병원이 있어요. 거기는 무료실이 있습니다. 무료 병동에 가서 물어 보십시오. 환자를 받아주겠는가?’ 그래 눈치를 채셨지요. 빨리 갔다 오셨어요. 거기는 결핵 환자는 길이 없습니다. 무료실이 없다고 합니다. 그럼 광주로 속히 광주 제중병원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라고, 그 임종이 가까운 분이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렇게 해서 내려왔다는 거고요. 저만 입원시켜 놓고 본인은 나가버린 거예요. 상황이 어찌되었든지 그래 설명을 안 해요. 아무도 짐작만 하는 것이지 설명은 안 해요. 추측만 해요.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어요. 본인은 설명을 안 하는데 그런데 이번에 제가 목포에 계신 여 성숙 의사님 찾아갔어요. 그때 이 선생님이 급성 후두 결핵인데 나는 의사로서 의사 말씀에 순종만 하셨다면 곧 나을 수 있었다 그러세요. 그냥 그 병 낫고 오래 지금도 살아 계실 것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의사의 양심상 너무 애석하다고 난 그분의 신앙을 알 수 없다는 거예요. 다들 성인이라고 그러는데 나는 성인이라 볼 수 없다는 거예요. 여 의사 생각으로는 그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무슨 고집이 의사가 당신 이 약 먹으면 낫소. 그러는데 왜 자기가 거절 하냐는 거예요. 그리고 어떤 못 된 놈의 공동체가 광주에 있는데 어린 애기들이 죽어 가는데 약을 안 먹인다고 병원에가 들으니까 그놈의 공동체가 매일 애기들이 몇 십 명씩 죽어가, 그래도 병원에 안 데리고 온다고, 그런 놈의 공동체는 망해버려야 한다고 그랬다는 거예요. 그 선생님 생각에, 그래 알고 보니까 그 공동체가 이 선생님의 공동체라는 거예요. 나는 지금도 이해 안 된다는 거예요. 지금도,

 

 

이 선생님이 완전히 잘했다 뭘 잘했다 그거 아니에요. 그 책을 우리가 그랬어요. ‘한 20권 주세요.’ 그러니까 안준다는 거예요. ‘나는 이 선생이 성인이 아니라고 그랬는데 이 책을 그 사람들이 봐요?’ ‘아니, 봅니다.’ ‘절대 이 선생이 그런 분이 아닙니다. 지금 선생님 말씀하면 그냥 순종할 분이에요.’ 사연이 있지요. 이 선생의 사연이 있어요. 그래서 그 말씀입니다. 이 선생님은 죽기 일각까지도 곧 깨달으면 고치는 분이었지. 자기가 뭘 깨달았다고 고집하는 사람이 아니었지요. 이 글도 지금 본 글입니다. 제가 미리 본 글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늘 실수했으나 육억 조 육억 번이라도 다시 고쳐 살아도 고치도록 힘을 주십시오. 이 마음 돌이키게 해 주십시오. 두렵건대 이 몸이 버림받을까 두렵습니다. 그때 그랬다 그래요. 훗날 이야기여요, 그럼 왜 그때 기억을 했냐? 병원에 사람을 데리고 가고 고기를 입에 대고, 그때 임종 직전에 그건 추상이지요. 예수님을 만났어요. 예수님이 아주 눈살이 노하세요. 확 만났는데 아니꼬우셔. 예수님이 ‘네 이놈, 왜 분열시키고 왔냐?’ 그러더라는 거예요. 무엇이 네가 잘났다고 분열 시키고 왔어? 그럼 내가 죽기 전에 이 분열을, 이 죄를 내가 막아야겠다. 모든 신자들이 약을 먹고 고기를 먹고 천국 가는 길에 나만 약을 안 먹고 고기를 안 먹고 이 교파를 만들어 놨어. 이대로 죽는다면 예수님께 못할 노릇이다. 이거에요. 내가 이것을 고치고 죽어야지, 내 예수님의 가슴에 못을 박고 설움을 드리고 왜 내가 이 짓을 하고 죽느냐? 그러니까 나는 주님 앞에 버림당할까 두려워서 나는 고쳐야겠다. 프란치스코 발자취라는 책이 있어요. 이거는 직접 같이 24시간 같이 살았던 간호원이고, 고해 신부고, 내외가 쓰신 기록입니다. 당신이 회개하신 때부터 성 프란치스코는 현명하게도 주님의 도움을 얻어 자신의 생활과 이집 곧 작은 형제라 불리 우는 당신의 형제회를 든든한 바위위에 말하자면 극도의 겸손과 하나님의 아들의 가난을 기초삼아 세우고자 결정 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형제회를 극도의 겸손위에 세우셨습니다. 형제들이 증가하기 시작하던 초창기부터 성인은 형제들이 나환자를 돌보기 위하여 나병원에 살도록 분명히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래 아무 이유 없이 이렇게 예임 한다. 그건 공허한 것이지요. 어떻게 제자들을 겸손하게 키우느냐? 나환자를 섬기게 해야겠다. 동시에 지원자가 들어오면 그들이 귀족이거나 평민이거나 막론하고 나환자들 에게 봉사하고 그들의 병원에서 생활하는 등등 기타, 다른 일에 종사 하도록 배려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지금 소위 말하면 내외가 자기 스승을 전한 것입니다. 말씀을 자기 선생의 말을 쓸 때 서두가 그래요. 당신이 회개하신 때부터 그 성인 프란치스코도 임종할 때 까지 회개하신 겁니다. 결코 그분이 죽기 전에 성인 아니거든요. 후인들이 자기 스승이 성인 이라고 말해 준 것뿐이지요. 내 당신이 회개하신 때부터 성 프란치스코께서 현명하게 주의 도움을 얻어 자신의 생활과 작은 형제라 불리 우는 공동체를 위해서 극도의 겸손과 하나님의 아들의 가난을 기초삼아 그 공동체를 세웠다. 그거지요. 그럼 가난하단 것이 뭐에요? 제일 돈 없는 사람들이 그때는 나환자들 입니다. 버림당한 사람들, 그럼 자기가 공동체를 세울 때, 한 발자국이 자기 제자가 생기면 나환자를 섬겨라. 그렇게 지도했답니다. 그래서 그 말씀입니다.

 

 

 


저는 선생님께 지도 받기를 첫날에 밥을 얻어오라. 그렇게 가르쳤어요. 성경 몇 장 몇 절을 그렇게 안 가르쳤어요. 초면에 찾아왔습니다. 저기가 밥을 얻어오세요. 그런 인정사정이 없어요.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여름입니다. 밥상을 받고 있을 때 오셨거든요. 밥을 먹으려는 사람한테 밥이나 먹은 다음이던지 밥을 먹기 전이던지 그게 아니에요. 밥상을 받았는데 비는 쏟아지는데 ‘준호, 저기가 밥 얻어오세요.’ 그래. 그때 저는 순종했어요. 대체로 말을 들어보면 저만 그런 것 아닙니다. 상당히 열의를 품고 찾아온 사람 있으면 반드시 철칙이 밥을 얻어오라, 그래요. ‘밥 얻어오라’ 그러니 그때는 타의에 의해서 밥을 얻었지요. 그렇게 하신일이 있기 때문에 한 몇 달 후에 자원해서 밥을 얻으러 간 겁니다. 화학산에 있다가 그럼 8월이 가까운 때 기독청년회에서 여수에서 여름 수양회를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짐작삼아 산속에는 달력이 없어 모릅니다. 짐작이 8월이 가까운 가해서 여수를 가는 거지요. 무전여행이니까, 처음에 밥을 얻는데 선생님이 시킨 것 아니지요? 너무 부끄러우니까 새벽 어둑어둑해서 걸어가는데 해가 9시가 되도록 못하겠어요. 자꾸 마을이 또 마을이 오면 들어가려고 하는데 못 들어가겠어요. 부끄러워서, 또 그 마을 지나가면 다른 마을이 나오고 다른 마을이 나오고, 전혀 못가겠어요. 그런데 이대로 가면 종일 굶을 수밖에 없다 싶어서 아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한집에 가서 밥을 달라고 할 때 주었어요. 그 한 40대 어머니신데 상에다 밥을 차렸어요. 수저 밥그릇 국그릇 다해서 상을 갖고 나오시는데 아주 안집이 멀어요. 그 길가인데 놓고 가시더라고요. 어디서 앉아 먹을까 아주 당황했어요. 어쩔 수 없어요. 길바닥에 앉아서 그걸 먹는데 참 마음이 감격스러워요. 너무 감격스러워. 그때 자원해서 밥을 얻어먹고 그날부터는 천지가 내 것이야. 하늘땅이 바로 제 소유가 되더라고요. 인제 월급 받고 취직할 생각이 없어졌어요. 아 이렇게 사는 거, 이렇게 사는 거다. 인생이라는 게, 길가다 배고프면 한술 얻어먹고 가는 길인가보다. 그래 천지가 자기 소유가 되더라고요. 느낌에 감성이 아주 벅차더라고요. 야, 이 비밀을 선생님이 가르쳐 줄라고 그렇게 비 오는 날 밥 얻어오라고 했구나. 그 이해가 됐어요. 그때서야,

 

처음에 한번 얻기가 무섭고 두렵지, 한번만 자기가 스스로 우러나서 얻으러 갈수만 있다면 그건 소유 없이 살 수 있는 자신을 주시더라고요. 자신을, 완전 자신이야. 본인이 그런 경험을 하셨기 때문에 옆에 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가르쳐 주는 거예요. 비밀을, ‘밥 얻어오라.’ 그 안 가버리면 교제는 끝난 거지요. 그분과 어떻게 교제를 해요? 첫말에 순종 안 해버리는데 서로 눈치보다 끝나버리지요. 그래 여기 정월에 해방이 되었으니까. 유 영모 선생님 현 동완 선생님 여기 오신 겁니다. 여기 아닐지라도 광주 시내 왔지요. 그러니까 꼭 지금 같아요. 이렇게 모여 있어요. 현 선생님 들여다보셨어요. 청년들한테, 여러분 언제까지나 그렇게 이야기나 하고 듣고만 할 거요? 동포는 굶어죽어 가는데, 어떻게 그 말이 무색하고 부끄러워서, 오늘 지금 성경 말씀 들었으면 오늘 밖에 나가 봉사 할 사람 손들라고 하더라고요. 현 선생님이 청년보고 다 손을 안 들어요. 그러니까 너무 황송해서 대접으로 김 준 선생이 손을 들었답니다. ‘제가 가렵니다.’ 그것이 촉진제가 되어가지고 한번 손든 사람이 어찌 하겠어요? 그래 대학 교수직을 포기하고 인제 소위 말하면 함평으로 발령 받은 거예요. 고아들 30명을 데리고요. ‘언제까지 이론이나 하고 앉아있을 거요?’ 실천을 하지 않고? ‘아, 제가 가렵니다.’ 그건 서울서 온 현 선생님 대접, 말씀 대접으로 그렇게 한번 한 것이 어쩔 수 없다는 거예요. 한번 한다고 한 것을 어떻게 안하냐는 거예요. 그러니 소위 말하면 현 선생님의 응원이지요. 이 선생님이 예수 믿는다고 찾아와서 말이나 듣고 앉았고 그게 전부면 되냐는 거거든. 그럼 이 선생님을 알기위해서 찾아오시는데, 제가 그랬어요. 그 수도원 창설하신 대표가 오셨어요. 일전에 목사님이 수녀원 창설하신 대표, 이 선생님이 성인이신데 우리 수도회서 그 전기를 따로 만들랍니다. 우리 사표, 누구를 본받을 것이냐? 성인 열 분을 정해서 이 선생님도 우리가 모시고 그 분 지도를 받게 우리가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만들겠지요. 교정하시겠다고 제가 그랬어요. 우리는 이 선생님이 누군지 모릅니다. 전혀 성인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본 것은 떨어진 거지 옷을 입었는데 자꾸 몸이 약하시고 성경 말씀 할 때면 자꾸 콧물이 나와요. 그러니까 옷소매로 코를 닦아요. 그것을 봤기 때문에 우리 선생님은 옷소매로 코를 닦고 그것이나 알지. 그걸 목격해서 그분이 성인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이야기 했어요. 등잔 밑이 어두워요. 같이 사는 사람은 너무 굶었습니다. 지긋 지긋해요. 너무 굶어서 배고파서 선생님은 굶기는 사람이야. 그것뿐이지, 이 선생님이 성인이 아니란 말이야.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나 굶어서 음식이 있으면 다 나누어 먹어. 밥은 열사람 분 했는데 손님이 20명이 오면 물 타가지고 끓여가지고, 그 너무 건 데기가 없으면 풀 넣고, 열이 먹으려고 한 밥을 30명이 먹으니까 항상 배고파요. 그럼 50명 밥 해놓으면 또 사람이 와요. 또 물 타요. 또 나눠먹어요. 그러니까 이 선생님 밑에 있는 식구는 매일 희생을 당해. 매일 죽이나 먹고 말아요. 왔다 가신 손님은 기념이 되려는지 몰라도 본 식구는 희생이 되어버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이 선생님이 좋은 사람이 아니지요. 그냥 귀찮은 인물이란 말이지요. 저는 그래요. 이제는 병을 앓았고 또 병원이 예산이 모자라니까 직원이 모자라요. 그래서 이렇게 눈을 아래로 내려다보고 무릎 꿇고 듣던 자매들, 전부 십대에요. 한 20명, 30명을 전부 병원에 보내버려. 치마가 땅에 끌리도록 남자는 쳐다보지 못하도록 가르쳤는데 갑자기 병원에 가서 심부름하라. 학교도 안다닌 사람들, 그거는 불순종 한 사람은 다 나가버렸지요. 순종하는 사람은 울며불며 가요. 병원은 직원들 이니까 밥 먹고 와서 일하는데 이 식구는 밥이 없어요. 근무할 때, 그러니 근무 한다고 대접한다고 나물죽은 안 먹이고 보리밥 한술 먹였지요. 그거도 죽이지요. 그럼 병원에 근무해요. 점심을 싸가지고 갈라고 하는데 보리밥이여. 직원들이 보는데 먹을 수가 없어요. 숨어서 먹던지 굶고 오던지 병원 당국은 여기가 배부른 줄 알아요. 배우러 온 사람이다 하고 부려먹기만 하지 굶고 심부름 하는 줄 모릅니다. 절대 그 분위기에서는, 선생님한테 밑에서 일 배운 사람은 굶고 희생당하고, 그것뿐이지, 선생님이 무슨 성인 입니까? 폭군이에요. 폭군, 밖에 사람들이 와서 자꾸 칭찬해요. 우리는 피해잔데, 그런데 보면 자꾸 고친단 말이에요. 매일 들으면 고쳐요. 그 시간에 자기가 좋은 말을 듣더라도 딱 잘못이다. 그 시간에 거쳐버려. 해가지기 전에 그러니까 매일 고치고, 고치고 고치다 가신 분이고 지금도 계시다면 고칩니다. 절대로 이대로 두지 않아요. 훨씬 편리하게 살기 좋게 평안하게 해주실 분이지. 그럼 밤이 되면 제가 꼭 보고를 합니다. 무등산에 그때 여름입니다. 결핵환자는 모두 무등산에 다 데려다 놓았습니다. 왜 광주시내에는 싫어하니까 일원이 되고 싶어요. 선생님 일원이 되고 싶어. 이 사람들이 전부 건강하거든, 전염이 되니까 둘 수 없는 겁니다. 시에서는 싫어하지요. 그러니 국유림에다 둔 것입니다. 사유지에다는 못 있게 해요. 막을 못 치게 하지 않습니다. 정부 땅이니까 막을 친 거지. 거기가 구백고지요. 여름에도 추운 곳이에요. 거기다 환자를 갖다놓고 여기서 밀가루 강냉이를 얻어서 보낸 겁니다. 거기서 끓여먹다가 죽으라. 그거에요. 그게 사회 실정이에요. 그것이 무슨 사업이 아닙니다. 실제 사건이 그래요. 그래 인제 제가 무슨 자동차 길도 없었습니다. 광주에서 무등산 올라가는 길이 없어요. 걸어 다니는데, 그런 사건이 있어요. 이 선생님이 12월 25일 날 삼밭실에 계셨습니다. 그러니 광주 살던 어느 자매가 선생님이 존경스러워서 그러면 걸어가야 하니까 3시간 걸어가야 하거든요. 크리스마스 송년 찬송을 불러 드리기 위해서 아마 일찍 올라갔어요. 삼밭실에 계신데 찾을 수가 없어요. 새벽에 당도했는데, 막이 어디 보이겠어요? 새벽에, 그래 못 찾고 말았어요. 광주 시내 살던 자매들이 선생 막에 가서 찬송 불러 드리러 갔어도 산에 숨어계시니 어떻게 누가 찾겠어요? 그런 사건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야기 하려는 것은 무등산에 환자가 있어서 왔다 갔다 하는데 해는 져가는데 배나무 골 이라는 데가 있어요. 산소 돌아오는데 할머니가 나무다발 하나를 놓고 앉아계세요. 저도 옆에 앉아있었어요. 할머니 말이 ‘저는 며느리가 오기 전에는 내 아들하고 화목하게 살았소.’ 며느리가 온 다음에는 아주 그 자기를 싫어한다. 이거에요. 왜 놀고먹는다 그거에요. 그러면 너무 며느리가 미안해서 새벽에 굶고 무등산에 나무하러 왔답니다. 그러니 나무가 없어요. 광주 시내가 다 나무를 때니까, 연탄 때는 데가 없으니까, 구백고지를 가도 나무가 없어요. 거기도 사람이 다 가니까 깨끗해요. 뭐 무등산에 나무가 없어요. 낙엽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얼마나 상상봉에 가서 나뭇가지 한 쪼금 주웠답디다. 그걸 이고 오는데 배가 고프니까 빨리 갈 길을 못가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소나무밭 옆에서 신사들이 여름이니까 수박을 먹고 가버렸어요. 껍질이 거기 있어요. 껍질 한참 주워 먹으니까 눈이 보여요. 그래요. 나 여기 앉아서 수박껍질 주워 먹으니까 이제 눈이 보입니다. 그래 인제 가렵니다. 그러시더라고요. 할머니가, 그러면 선생님은 그걸 보고 보고하라 그거지요. 광주 시내 눈이 많이 오면 저를 보내요. 광주 시내 어디서 누가 얼어 죽었는가 보고오라. 와서 보고해야지. 어디가면 이런 사람 있습디다. 즉각 이여, 들으면 그냥 그래요. ‘이것 갖다 주고 오너라.’ 자기 이불 갖다 주고 오라는 거지요. 자기도 엄동설한에, 또 이건 여름 이야기니까, 아 그런 할머니를 목격했어요. 그분 사시는 곳은 월산동입니다. 아, 그래. 그런데 그 집을 알겠는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면 김은연씨 어머니 속히 오시라. 그래요. 총무님 오시라고, ‘우리 집에 밀가루 강냉이 지금 십일조 받은 것 얼마나 됩니까?’ ‘강냉이 한포 있고 밀가루 한포 있습니다.’ ‘가서 곧 빵을 찌십시오.’ 즉석에서 명령하세요. 전혀 몰라요. 왜 찌라고 하는지? 전부 빵을 만들라고, 그럼 해가 지기 전에 산수동 문턱이지요. 작고개가? 거기에 빵을 갖고 가 서있으라. 그래요. 그 할머니가 나무를 오늘도 하는지 안하는지 모르지만 할머니를 찾아야지요. 여기 아리랑고개 여기서 빵을 안고 기다리고 있다가 나무꾼이 가면 점심 자셨소? 물어보고 빵을 주라. 그래요. 물도 떠다놓고 드리고, 그러니까 이제 산수동 골목하고 아리랑고개하고 빵을 나눠 준겁니다. 나무꾼한테, 아주 개미같이 나무꾼이 올라오지요. 무등산에서 해가질 때 그 양식을 누가 대요? 십일조는 다 끝나버리고 양식이 우리는 없으니까 병원 원장을 찾아가셨어요. 나무꾼이 오다가다 배가고파서 길가에 쓰러진단 말 들었습니다. 선교부에서 양식을 대 주십시오. 그럼 하루에 얼마나 대 드릴까요? 빵으로 하면 몇 개를 쪄 드릴가요? 하루에 천 덩이 쪄주십시오. 모자라면 더 쪄드리겠습니다. 그런 거예요.

 

 

카링톤 원장이지요. 여기 자매들이 가서 봉사하니까 고마워서, 월급도 안 받고, 와가지고 빵을 쪄달라니까 그래 인제 빵 기계를 주문을 해요. 빵 기계를 자기 직장에 갖다놓고 빵을 찐 겁니다. 이 선교사가 직원은 몰라요. 영문을 모르는 겁니다. 그럼 동광원 사람이 가면 빵을 내줘요. 한 천 덩이씩, 전 직원이 반대합니다. 무슨 소리냐? 이 밀가루는 세계봉사회에서 제중 병원에오는 환자들 주라고 준 밀가루야. 그런데 왜 동광원에 가냐고, 그때 사무실에 총무, 지금 그 사람 미국 갔어요. 박씨라고, 제가가면 항의를 해요. 당신이 뭐냐고, 왜 우리 환자들의 양식을 당신들이 가지고 가냐고, 문제가 컸어요. 그래서 산림청에 고발을 했어요. 무등산을 망해먹는 도벌꾼인데 이 길가에 서서 빵을 나눠줘. 나무를 더하라고, 도벌을 더하라고, 이건 산림법에 방조죄에요. 이것이 문제가 되어가지고 세계 봉사회에 진정이 된 것입니다. 밀가루를 제중 병원에 불쌍한 사람 주라고 보냈는데 안 쪄주고, 나무꾼을 쪄줬다. 이거에요. 추적을 해보니까 이래서는 안 되겠다. 그러니까 법률에 의해서 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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