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박 농사

단호박 관리해 주기 : 게으름은 죄

mamuli0 2020. 5. 29. 09:39

단호박 포장에 덕장을 만들어주고 친환경 방법으로 방제를 해 주고 있다. 병꽃 군자란도 피고 석류꽃도 피려고 한다. 사랑초는 동산을 꽃밭으로 만들었다.

 

사랑초꽃이 동산을 채우다

게으름은 죄

유한계급은 죄진 사람이다. 게으른 생활은 큰 죄다. 시골에 가려면 삼대(三代)까지 어렵게 살 각오를 해야 한다. 나라 일 생각하면 삼대 구차해도 삼대 무식해도 괜찮다. 내 손자 무식해도 좋다. 세상에 자기는 놀면서 남만 일시키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관청에 가면 그것이 더 심하다. 이런 사람들은 다 유왕이나 여왕이요, 스타린, 김일성 같은 자들이다. 예날 예수교를 쌍놈의 교라고 하였다. 유교를 양반의 교라고 한데 대해서 하는 말이다. 쌍놈의 종교가 좋다. 어디까지나 봉사하는 종교라야지 종교가 양반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남을 짓밟는 종교가 되지 않겠는가. 자기가 일하지 않고 남을 시켜먹겠다는 사상은 다 김일성이지 별것인가?

 

세상에 예수처럼 내가 십자가를 지겠다고 하는 이는 하나도 없고 남에게 십자가를 지우겠다는 놈만 가득 찼으니 우리가 다 김일성이지 무엇인가? 손끝 발끝이 달아 뚫어지도록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쓰라림은 피로써 월(章)을 냄과 가까움을 알았다.

 


농사를 밑지면서도 하는 것은 생명을 사랑하고 천명(天命)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농사꾼뿐이다. 농부는 때를 잘 지키어 할 일을 한다. 그것이 사명이다. 씨 뿌릴 때 씨 뿌리고 거둘 때 거둔다. 농촌사람들이 바로 마음을 쓰며 살려고 애쓰는 이에게는 전도(傳導)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사람은 욕심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농사짓는데 심어놓은 사람과 거두는 사람이 함께 참여한다. 심었으니 내 것이라 할 수 없고, 거두었으니 내 것이라 할 수 없다. 그저 먹고 지내겠다는 생각도 잘못이고 평안히 먹겠다는 것은 착각이다. 사람은 무엇이나 소용이 있어서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틀린 소견이다. 자기가 먹고 입는 것이 모두 자기 혼자의 힘으로 된 것은 아니다.

 


무한한 시간 공간에서 모든 것이 다 합쳐서 공급해 준 것을 우리는 받아서 산다. 우리는 여기 참여하여 조금 일한 것뿐이다. 그리고 장차를 위해서 한다. 자기가 다 먹고 쓸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생각을 가지면 미끄러지는 일은 없다. p145-p146

 

껍질과 속알

예수만이 말씀으로 된게 아니다. 개똥도 말씀으로 됐어요. 예수교인의 생리란 이상한 거라 생각됩니다. 예수만 말씀으로 되었고 우리는 딴 데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겸양입니까?

 

그리스도는 전체의 것이지 어떤 시대 어떤 인물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따르고 그를 쳐다 보는 것은 빛깔 얼굴 몸 껍질을 보고 따라 가는게 아니라 예수의 속 알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의 속알만 말고 먼저 제 속에 있는 속 알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의 몸도 껍질이지 별 수 없습니다.

 


사람 사귀는 데도 버릇으로 친해서는 못씁니다. 사람 숭배해서는 못씁니다. 그 앞에 절을 할 것은 참과 한아님뿐입니다. 종교는 사람 숭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아님이 한아님 안 되니까 사람더러 한아님 되어 달라는 게 사람 숭배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를 한아님 자리에 올려놓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카도릭이 마리아 숭배하는 것도 이 이유입니다.

 


예수의 혈육은 다른 사람과 똑 같은 혈육입니다. 마음은 목마르지 않으나 몸은 목마릅니다. 목마르고 아프지만 이 육체에 어떤 의미를 위하여 육체가 있다면 나타낼 상징은 빠뜨리지 말고 들어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거저 되는 게 없습니다. 예수라고 해서 저절로 되었습니까? 밤잠 제대로 자지 못하고 온 정력을 다 쏟아야 작품 하나라도 내 놓을 수 있습니다.

 


꽃피는 기독교에서 십자가의 꽃다운 피를 흘리는 것으로 들어납니다. 의의 피를 흘리는 것이 한아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숙의 표입니다. 성숙이란 한아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한아님의 아들이란 죽음을 넘어선 이이입니다. 진리를 깨닫는다는 말과 죽음을 넘어서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것은 미성년을 넘어서는 것이요, 진리를 깨닫는 것은 지식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지식에 사로잡힌 사람이 미성년입니다.

 


나와 한아님이 하나 요 성령과 내가 하나입니다. 내 생명과 한아님의 생명이 하나입니다. 나와 한아님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유한(有限) 무한(無限)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 석가, 노자 등은 정신적으로 영생합니다. 나도 그렇게 되고파서 그들의 말을 듣지 그렇지 않으면 그들하고 상관없습니다. 예수가 인간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린 것을 믿으면 영생한다고 믿는 것은 나와 상관없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빛으로 왔다. 빛을 얻으라(요한 8:12) 참 적극적입니다. 속죄가 아닙니다. 빛입니다. 속죄는 너무 소극적입니다. 밥없이 사는 것이 정신입니다. 그것이 마음의 본능입니다. 죽어 사는 것이 영생입니다. p133-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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