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봄에 들어서 추운 날이 계속 이어진다. 신종 코로나 독감으로 매일 세계가 시끄럽고 춥다.
깨 달 음
2003.01.02. 김익선 집사
성경 구약 보겠습니다. 아모스 8장 11절. 개역성경으로 제가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땅에 주림이 아니라.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그 음식도 우리가 먹는 음식도 한 끼 먹고는 만사가 해결이 안 되지 않아요? 같은 음식이지만 잘 만든 것도 있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도 항시 그 말씀 이어도 맛있어야 돼. 그러니까 성경이라는 것은요, 한번 보고 그냥 덮어둬서는 안돼요. 예를 들어서 보고 또 보고 그 자리를 보고 계속 봐도 괜찮아요. 좋아요. 노래 부르는 가수들도 잘 부르는 사람 노래는 계속 듣거든요. 오늘 듣고 내일 듣고 그래도 듣기 좋아.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 말씀이 그렇게 듣기 좋아야 되요. 음성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아야 해요. 그래야 돼. 그렇게 듣기 안 좋으면 말씀이 안 들어가요. 예를 들어서 물이 같은 물에도 목이 말라서 먹는 사람과 목이 마르지 않은데 먹는 사람과 다릅니다. 그렇지 않아요? 목이 말라서 먹는 사람은 물이 맛있거든 같은 물이라도 그래서 목이 마르지 않은 사람은 맛이 없어요. 그것도 그렇습니다. 이 진리라는 것이 신의 뜻이라는 것이 말입니다. 저 운동선수 박 찬숙 이라는 분이 있어. 농구선수, 그분이 뭐라고 했는가 하면 처음에 농구를 시작할 때는 공이 따라오지를 않는답니다. 자꾸 도망간다고, 내게로 오지를 않는답니다. 품안으로 안 들어와요. 그런데 그 많은 고통을 당해서 공을 다루면 공이 내 앞으로 온다는 거예요. 따라와, 그러니까 고통 없이는 성경 못 보게 되어있어요. 고난 없이는 성경 못 봐. 성경은 고난으로 이루어진 책이야. 그러니까 온다는 거예요. 자꾸 내게로 온다는 것이야. 도망가지 않고 내게로 온다. 그런 말씀이야. 우리도 예수님을 우리 마음속에 모셔 들이려면 예수님과 같은 그런 실력을 갖추어야 돼. 고난으로 이루어져 고난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야. 고난 안 된 것은 못 봐요. 아무리 보고 싶어도 못 봐. 서늘한 그늘 밑에 앉았다가 물 줘보세요. 물이 들어가는가 안 들어가거든.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현재 여기 온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이야. 목이 말라서 왔느냐? 우리가 현재 그렇지 않아요? 먹고 사는 것이 아무 걱정 없지 않아요? 그것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해봐야 그러니까 성경이 경험한 사람들의 한 말이에요. 그런 것 먹어서는 행복하지 않아. 이것이야. 그런 것 가지고는, 그러니까 경험한 사람이 말씀을 듣지 못해서 인간은 행복이 없다. 이것입니다. 신의 뜻을 못 찾아서 행복이 없다. 그 말이야.
그러면 말씀이 무슨 역할을 하냐? 봅시다. 묵시록 19장 13절 봅시다. 예수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분은 피에 젖은 옷을 입으셨고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예수님이에요. 말씀 자체가 예수님 이라고 예수님을 사모하면 성령을 좋아해야지. 진리를 좋아 해야 돼. 말씀을 좋아하고 사모해야 하는데 말씀을 어디다 집어던져 버리고 생활하면 마음이 편치 않아요. 인제 여기를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데 보렵니다. 이제 내 신앙생활 했던 것을 체험 했던 것을 말씀 드립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신앙생활 하기 때문에 체험 했던 것이 내가 체험 했던 것이 맞는가? 나도 저런 체험을 했는가?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체험이에요. 자기가 실질적으로 체험해서 깨달은 것이 신앙이야. 남의 말도 듣는 것도 좋기는 좋지만, 첫째 자신이 깨달아서 체험하고 해서 노력해야 돼. 예를 들어서 그렇습니다. 이 신앙생활 이라는 것이 무엇과 같으냐하면 우리가 이 산에 들어오지 않아요. 산에 들어오면 말하자면 내가 예수님 이라고 합시다. 그러면 각자에게 내가 무슨 연장을 내준다고 괭이하고 삽하고 주면서 땅을 파라고 그래, 그러면 자기가 부지런히 땅을 파면 물이 나올 것이고 게으르면 물이 안 나올 것이야, 이것이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게으르면 자기가 손해고 찾으면 자기가 이익이에요. 그러니까 신앙 좋은 사람 덕도 봅니다. 그것은 아셔야 해. 물 나오는 사람 한사람이 들어와서 우물을 파서 물이 나오면요. 그 사람도 다 받아먹고 살아요. 그러니까 체험적인 신앙이어야 돼. 체험을 해야 돼. 만사에 있어서 고난 없이는 안 되는 거예요. 힘쓰고 애쓰는 자가 찾는다고 하니까 고난도 어디까지 고난이냐? 그러면 우리 이 화가들 말이에요. 봅시다. 처음에는 어릴 때 그림 그릴 때는 참 나빠요. 형상이 보기 싫지 않아요? 그러면 고생으로, 고생으로 자꾸 그리거든 그러면 아름다운 형상이 나오거든. 고난 없이는 자기의 형상이 나오지 않아요. 절대적으로, 그러니까 체험해야 돼. 체험, 고생을 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체험해 봐야 돼. 그러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줄 깨달아야하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면 나는 어떤 사람이냐 깨달아야 돼.
인제 사도바울이 경험했던 것을 말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7절에 있네요. 그거 찾았으면 읽어 보세요. 예, 거기만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려갈 것을 달리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월계관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 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실 것입니다.’ 거기에 대조해서 봅시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디까지 달리느냐 이것이야. 사람이 할 일 안하면 하나님이 절대 안 해요. 그걸 아셔야 돼. 절대 안 해. 내 경험적으로 그렇습니다. 히브리서 4장, 거기 들어가야 안식 있어요. 사람 할 일 안하면 안식 없어. 절대 쉬지 못해. 영원히 쉬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모셔 들이지를 못해요. 4장 10절 한번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마치고 쉬신 것처럼 하나님의 안식처 에서는 그의 일손을 놓고 쉬는 것입니다.’ 11절까지 읽어요. ‘그러니 우리도 안식을 누리도록 힘써야 되겠습니다. 옛사람처럼 순종하지 않다가’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디까지 우리가 할 일이냐 이것이야. 제가 확실히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미국이 천국이라 하면 우리일이 우리가 어디까지 가냐? 이것이야. 미국이 천국이라 하면 우리가 어디까지 가야하겠는가? 김포공항까지 가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야. 거기 안가면 못가요. 천국에, 사람이 할 일이 있고 하나님이 할 일이 있어. 사람이 할 일 안하면 절대로 하나님이 일 안합니다. 각자가 이것이 책임이 있어요. 그러니까 거기 가서는 거기가야 안식처가 있다고,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그 말이야. 나는 달릴 길을 다 달렸다.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이것이야.
저 성경에 베드로보고 베드로가 예수님께 뭐라고 했는가 하니 ‘선생님, 형제가 잘못하면 하루에 몇 번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일곱 번을 칠십 번이라고 그랬거든. 그러면 여기 계신 사람한테 한번 물어봅시다. 용서 한번 하신 적 있어요? 사람은 용서 한번 못해요. 절대적으로 용서 못하는 게 사람이야. 그것 알고 사시라고 그러니까 김포공항까지 밖에 못가요. 사람이 그걸 깨달아요. 사람이 거기 더 가지 못해요. 거기가 안식처에요. 그러니까 소화 테레사 성녀가 그것을 깨달은 것이에요. 내가 이걸 갖고 왔는데 오늘이 무슨 날이냐 하면 소화 테레사 성녀 생일날이야. 1월 2일 날이야. 목요일 날, 그러니까 진리를 깨달은 게 그걸 깨달은 거예요. 내가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거라고. 내가 예수면 뭣 하려 예수 믿느냐? 그 말이야. 내가 선하고 내가 잘하면 뭣 하러 예수 믿어? 자기가 다해버리지. 사람은 못하게 되어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씀도 잘못 들으면 잘못 가르치면 고생만 실컷 합니다. 편하지를 않아. 잘못을 하면 편치를 않아. 자기가 못하는 것을 알아야 깨달아야 편안해요. 그렇지 않아요? 사도바울은 거기까지밖에 못 간다. 그 말이야. 나는 내 선에서 여기까지 딱 잘라진다. 이것이야. 내 악으로 끝난다. 이것이야.
그래야 예수님이 하신다고, 여러분들이 선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안 해. 예수님이 그것을 깨달으라는 것이야. 자기 악을 깨달으라는 것이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데 어떤 사람이 뭐할 수 있겠소? 소화 테레사 성녀가 이 말을 했어요. ‘오늘 오후에 병세를 묻는 자매에게 누군가가 아주 지쳐서 피곤한 모양이라고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정말 그렇다. 꼭 그대로 나는 지쳐빠져서 목적지에 이르자마자 쓰러지는 나그네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쓰러지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품’ 품이란 말이지, 거기가 품이에요. 하나님의 품이야. 그러니까 김포공항 가는 자체가 거기서 쓰러져야 돼. 사람이 쓰러져야 돼. 사람은 자기는 한계가 있어. 더 이상 해서도 안 돼. 여기서는 헛수고야. 거기가 안식처라고 그렇지 않아요? 사람은 할 말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거기 가면 자기가 선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야 돼.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되요. 이 사람도 도와줘보고 저 사람도 도와줘보고 남을 위해서 일도 해보고 그러고 깨달으라는 것이야. 그것이 참으로 진정으로 선한 생활인가? 절대 아닙니다. 그거 잘못 생각하면 큰일 나요. 남을 도와주고 그것이 예수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경지에 들어가면요. 저도 한번 그런 경험 해봤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라는 것을 봤기 때문에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율법이라는 것은 어디까지가 율법이야. 구원 못 받는 다고, 자기가 잘 해가지고는 절대로 구원 못 받아요. 해보라는 거예요. 내 노력에 대해서 구원이 있는가? 해보라는 거예요. 그것도 안하면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몇 년 전에 나 곡성 가서 살 때요. 그때 선생님이 곡성 오셨어. 그때 누가 계셨냐하면 백야 어머니 그 어머니가 계실 때에 뭐라고 하셨는가 하니 그 어머니가 딸이 광주가 계시거든. 광주가 계신데 인제 고생하지 않아요? 세상 적으로 하면, 그렇지 않아요? 자녀들 키워 살릴라 그럼 고생이거든. 그러니까 인제 어머니한테서 그 하소연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뭐라고 했는가 하니 말하자면 ‘나처럼 살아버려라.’ 나처럼 동정 지키고 살아보라고 했어. 나는 그런 식이에요. 그런 말씀을 선생님한테 하셨는지. 선생님 들었거든. 들었는지 몰라요. 그때 선생님 그랬어. 나 기억해요. 그러니까 말씀이란 자꾸 들어야 돼. 그래야 무엇이 깨달아지지, 말씀을 못 들으면 깨달음 이라는 게 없어요. 자꾸 말씀을 들으려고 귀를 기울여야 돼. 말씀을 들어야 사람이 깊어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인제 선생님이 뭐라고 했는가 하니 어머니한테 어머니 돈 갖고 천국 가시려요? 그랬거든. 그게 율법이에요. 예수님의 자비의 경지에 들어가면 다 무너져 버려요. 그런 것이, 그런 것도 소용이 없어. 그러니까 소화 테레사 성녀를 왜 내가 존경 하냐? 하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자비만 믿어요. 이분같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자비를 믿는 분이 없어요. 성경을 뒤져봤습니다만 그렇게 예수를 사모하게 믿어요. 어째 그렇게 예수를 잘 믿을까? 그것이 성신의 역사랍니다. 예수 잘 믿게 한 것도 성신의 역사에요. 하나님이 믿게 해주니까 믿었다고 그래요. 그 양반 사도바울이 그랬지 않아요? 내가 사도가 된 것이 아니다. 이것이야. 하나님이 이렇게 나를 사도로 만들어 주었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여기 계신 분들도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살게 해 주셔서 산다. 이래야 돼. 그래야 그것이 행복한 것이지. 내가 이길 선택했다. 이것도 문제 있어요. 그것도 하나님의 신의 뜻을 모른 상태에요.
그러니까 우리 인생이 어쩌느냐? 어떤 사람이냐? 그러니까 모르면 안 돼. 알아야지. 성령을 알아야지. 깨달음으로 성령도 알아야 되요. 사도바울이 이말 했어요. 개역성경에 보면 고린도전서 12장 1절에 있어.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들이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원치 않는다는 것이야. 아는 것을 모르는 것을 원치 않아요. 알아야 돼. 저는 그렇습니다. 남한테 들어도 진리라 하면요. 그 말을 또 새기고 또 새기고, 어따 종이에 기록해 놓는다고. 그리고 또 읽고 도 읽고 그래야지. 한번 읽고 휙 던져버려. 한번 귀로 듣고 흘려버린다고. 이러니 무엇이 해결이 되냐 이것이야. 내 생명체를 살리고 죽이고 하는 것이 말씀인데 그걸 가르쳐주기 위해서 이 말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뜻을 알고 있어요. 우리에게도 있고 상대방에도 있고 이 세상 보이는 물체에게도 있고 하나님은 시시로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고 우리가 모르는 것뿐이지. 항시 하나님은 설교하세요. 이 세상 움직이는 자체가 하나님의 설교에요. 성경만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에서 하나님은 설교하신다고. 그러니까 이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 학생들도 그렇지 않아요? 모르면 좋은 학교 못 들어가거든. 알아야 정확성 있게 알아야 좋은 학교 들어가지. 그러니까 우리도 신의 뜻을 알아야 어떤 경지로 들어간다고. 모르면 못 들어가. 그러니까 알고 살아라. 그 말이야. 까치가 말이요. 나무 높은데다 새끼를 까 놨거든. 까놨는데 호랑이가 무섭지 않아요? 호랑이가 밑에 내려와서 밑에서 인제 까치보고 말한다고 새끼를 한 마리 달라. 이것이야. 안주면 올라가서 딱 잡아먹겠다. 그러니까 무서우니까 위에서 하나를 던져 주지 않아요? 모르니까 던져주는 거예요. 또 하나먹고 또 하나 주라고 안주면 다 잡아 먹을 거라고. 또 하나 줘. 한 두 세 개 있지요? 다섯 마리 있다면 그러면 가르쳐 주는 사람이 옵니다. 말하자면 토끼가 온다든지 노루가 온다든지 와서 그러거든. 까치보고 주지 말라는 거야. 호랑이는 너 있는데 못 올라간다. 그렇지 않아요? 아무것도 생명체가 살아 알고는 안 죽습니다. 그러니까 모르면 안하니까 알라 그 말입니다. 내가 그 말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알고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제 잠언 봅시다. 27장 7절.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느 정도 목이 말라 있느냐? 이것이에요. 사람은 쓴 것 싫어해요. 절대 사람은 쓴 것 싫어해요. 쓴 것을 싫어해. 쓴 것 안 먹으면 사람은 죽어요. 살 방법이 없어요. 방법이 없어.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내놓은 겁니다. 주린 자에게만 받아들여요. 쓴 것을 받아들여요. 배부른 자는 안 받아 들여요. 단것도 안 받아요. 그러니까 왜 십자가를 못 먹느냐 그것이야. 그 원리를 알라고, 단것 먹으면요. 쓴 것 못 먹습니다. 절대 그것 못 먹어. 하나님은 아세요. 다 아셔. 하나님은 다 알고 말한다고. 선악과 내놓은 것도 선악과 따 먹을 줄 알고 따 먹으라고 내놓은 거예요. 사람이 손 안댈 수가 없어. 그것 안대는 실력이 없어요. 손대게끔 되어갖고 있어. 그러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요? 이제 내가 비유를 들어서 말씀 드립니다만 이 나무가 나라는 큰 나무가 있어요. 큰 나무가 있는데 그것은 깨끗한 것을 갖다 주면 죽습니다. 나무는, 그렇지 않아요. 똥이나 소똥이나 이런 지저분한 것을 갖다 줘야 그것이 살지. 깨끗한 것 갖다 주면 그건 죽어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더러운 것도 이 세상에 내놓았어. 그렇지 않아요? 그것 없으면 예수가 죽어요. 하나님의 자비가 죽는다. 이것이야. 여러분이 잘못을 안 하면 하나님의 자비가 죽어. 하나님의 사랑 자체가 죽어버려요. 이 과일 나무가 죽어버린다고. 거름을 안 갖다 주면 더러운 것을 안 갖다 주면 죽어요. 죽어. 그러니까 우리 자신이 어떤 것을 원하느냐 이것이야. 지금, 전에 우리 집 남반 우리 집에 은행나무 하나 심어놨는데 은행나무를 세 개 네 개 변소 간에 하나 갖다놓고 마구간에 하나 갖다놓고 내 집에 하나 갖다놓고 또 도랑에 하나 내 집의 것은 하나도 안 자라요. 십년이 되었어도, 그런데 그 밑에 변소 옆에 있는 나무는요, 우리가 보듬을 정도로 커버려요. 왜 그랬을까? 더러운 것을 먹었기 때문에 부푼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도 내놓은 것이 신의 하나님의 뜻입니다. 죄를 범하라는 것이야. 사람은 다 더러워, 따지고 보면 여기 깨끗한 사람 하나나 있는 줄 아세요? 사도바울도 얼마나 말씀 해.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그래 여러분 깨끗하세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못 만나요. 내 집 옆에 깨끗한데 심어놨더니 죽는다고 죽어 생명만 겨우 유지해 나가요. 그런데 더러운 것을 받아들인 사람은 무럭무럭 크거든. 사람이 못 받아들입니다. 못 받아들여. 여기서 내가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절대적으로 못 받아들여, 이따가 그 뜻이 나오지만 사람은 남의 잘못을 절대적으로 못 받아들여요. 받아들이지 못해. 그러면 베드로보고 일곱 번씩 칠십 번을 용서해 주라니까 그 사람보고 용서해 주라는 줄 아시오? 여러분 그렇게 들어보면 성경 잘못 본 것이야. 내가 네 속에 들어가서 칠십 번이든 칠백 번이든 용서하라는 그 말입니다. 사람은 힘을 상실했어요. 용서할 수 있는 힘이 빠져나가 버렸어. 사람에게서 빠져나가 버렸다고. 어디서 빠져 나갔냐? 이것이여. 빠져나가게 한 것이 하나님 신의 뜻이라고, 하나님이 스스로 나가요. 사람에게서, 창세기 6장 1절에 보면 거기 나오지 않아요? 어쩔 때 나는 너와 영원히 함께 안하겠다고 했거든. 그러면 우리가 깨끗이 산처녀나 총각이면 하나님이 함께하게? 천만의 말씀 올 시다. 누구든지 다 떠나버렸어. 불완전한 것이 사람이야.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야. 그러니까 자기가 하냐못하냐 그거를 깨달으라는 것이야. 못하는 것을 깨달을 때 안식처가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일을 그만하는데 안식, 편안한데 뭐가 힘들겠어? 어디까지만 노력하라는 그 말이라니까 더해도 헛수고, 헛수고 죽도록 수고해도 못 깨달으면 헛수고이고, 그렇지 않아요? 6장 1절에 있어요. 그거는 여러분들이 생각을 하고 성경을 봐가면서 하렵니다.
그러니까 율법이라는 것이 어디까지 사람의 힘이 미치느냐? 그것을 잘 알아야 돼. 불교에 스님이 말이요, 총각으로 사는 스님이 거기는 절의 밖에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지 않아요? 어린애도 들어가고 어른들도 들어가고 어린애가 여 나무 살 먹은 여자 어린애가 들어가서 남자 스님 승복인가 두루마기인가 그거를 잡았거든. 잡으니까 내가 책을 봐서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어디까지 요정도 뿐이라고, 그 말이야. 그러니까 옷을 잡았거든. 이거 속인이 잡았다고 칼로 갖고 딱 베어버렸어. 그것이 사람이다. 그래가지고 들어가서 밥을 먹는데 스님이 밥을 먹고 잡숫고 식사를 하는데 어린애가 꼬마가 가서 모가지를 끌어안아 버렸어요. 애기가, 그러면서 애기가 뭐라고 하는 고 하니 그러면 모가지는 어떻게 하느냐? 그것이야. 그렇지 않아요? 어쩌겠어? 사람은 거기까지 밖에 못하는 거야. 죽이지 못해요. 사람은 절대적으로 못해요. 없어요. 없어. 여러분이 그것이라 그 말이야. 우리가 전부가 그것이라 그 말이야. 그 사람만 그렇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다 그렇다는 것이야. 그러니까 나 한사람 사랑만하면 이 세상 인간 정신 다 알아버려요. 남의사랑 다 알게 되어버렸어. 하나님은 하늘의 인간은 하늘과 같고 땅의 인간은 땅과 같다. 똑같은 놈들이라 그 말이야. 어떤 놈이라고 깨끗하게 되어버리면 나는 어떻게 되요? 나 심판 못해버려.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심판 못합니다. 그것이 사람이야.
잠언 30장 봅니다. 성경이 끝도 없어요. 대강 내가 아는 데만 적어가지고 왔으니까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그렇지 않아요? 왜 없냐? 이것이야. 신의 뜻을 찾고, 찾고 자기가 해보려고 노력 한 사람만이 깨닫는 거라고. 내가 어떤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요. 신이 나에게서 떠나갔다는 것을 깨달아요. 그러면서 그때부터 사모하게 모시게 해달라고 노력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모해. 모시게 해달라고 말씀이 예수기 때문에 말씀을 모시게 해달라고 사모해요. 밤이나 낮이나 사모해야 돼. 내 사랑하는 임을 사모해. 소화 테레사는 예수님을 3분도 안 잊어. 그렇게 말했어요. 왜 그렇게 하냐? 내 사랑하는 임을 왜 내가 잊어? 스스로 내 마음속에서 우러난다고, 사랑하는 마음이 우러난다.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이냐? 그걸 보기위해서 봐야겠습니다. 공동번역으로 사도행전 17장, 여러분이 예수 만나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하느냐? 아 19장, 그때 마귀 들린 사람이 나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안다. 마귀가 들리니까 바울도 알고 예수도 알아. 마귀 안 들리면 예수 몰라요. 사람이 그런답니다. 저 영화배우들도 말이요. 일류 배우들은 제일 늦게 나와요. 연극할 때 처음에 조 연극 하는 사람이 주연극과 조 연극이 있거든. 주 연극은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고, 조 연극은 우리를 말하는 것이야. 조 연극이 잘해버리면요, 주 연극이 임금이 하는 것이 나빠 버린대요. 빛을 발휘 못해. 그러니까 우리는 연극을 잘못해야 돼.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잘해버리면 예수님 뭣하라고? 예수는 안 나타난다니까. 자기 영광을 안 나타나버려요. 내가 잘해버리면 예수가 내 앞에 절대로 안 나타나. 그러니까 이 말이야. 그때에 마귀 들린 사람이 나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안다. 너희들은 아냐? 이 말이야. 예수 아냐? 이 말입니다. 모르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 사람만도 못해. 마귀 들려야 예수 알아. 전에 누가 그 말합디다. 극악극선이라고 최고 악에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예수님이 보여. 아주 자기가 나쁜 놈인 걸 깨달아야 돼. 자기 자신이 더럽다는 걸 깨달아가지고 그래야 좋은 사람 보면 사모해. 그렇기 때문에 소화 테레사를 나는 존경한다고. 내 생활 자체를 봐가지고는 나는 이름만 총각이지, 더럽거든. 그렇지 않아요? 그러기 때문에 처녀인 여러분을 존경한다고 내가 더럽기 때문에 깨끗하면 나는 절대 존경 안 해. 그러니까 자기가 더러운 경지에 내려가야 나 깨끗한 존경할 사람이 보여요.
인제 여기서 하나님의 심판에 들어갑니다. 심판을 다 받아야 돼. 하나님의 심판을 다 받아야 돼. 안 받을 거 같아요. 다 받아야 돼. 거룩해지면 하나님 앞에 못 간다했어. 히브리서 10장 31절, 살아계신 하나님의 심판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의 손 안에 들어간다고 불가마에 들어가야 된다고 여러분 안 들어간다고 한번 해보지. 살아계신 하나님의 심판의 손에 빠져 들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소화 테레사 성녀가 그 말했어요. 심판의 손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요, 여러분이나 나나 못 살아요. 못살겠다는 소리가 입에서 나온다고. 그런데 왜 이 말씀이 우리에게 안 붙는가? 그럼 한군데 더 보고, 이제 심판에 대해서 나왔고, 예수님이 이걸 우리에게 소원합니다. 누가복음 12장, 시간이 많이 있으니까 성경 봐요. 무엇을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가? 무엇을 원하는가? 읽어 보시지요. 누가복음 12장 49절, ‘불을 지르러 왔다.’ 이렇게 해요. 불이 심판이여. 다른 현대어 성경이 뭐라고 했냐? 이 불이 붙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거든.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네가 받아야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을 다 겪어낼 때 까지는 네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괴롭다고, 심판이야. 심판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줄 아느냐? 아니다. 평안하게 살라고 여러분 평안하게 살라고 오신 줄 아시오? 이 선생님 뭐라고 한줄 아시오? 평안한 집구석에 불 질러 놨다고 그랬어. 편하게 사는 사람한테 불 지르러 왔다고 그랬어요. 소화 테레사 성녀는 뭣이라고 한줄 아시오? 만성병 이라고 했어요. 만성병 만자가 게으를 만(慢)자여. 그 병 못 고친다고 했어. 불충실한 불행에서 나를 구하소서. 그랬어요. 충실하지 못한 거기서 나를 구해줘라. 제일 병중에 무서운 병이 그 병이야. 부처님도 뭐라고 한줄 아세요? 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나는 도를 깨달았다고 그랬어요.
아무것도 안하고 어영부영 해버릴라고 내가 이 세상을 평안하게 하러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려 왔다. 한 가정에 다섯 식구가 있다면 이제부터는 세 사람이 두 사람을 반대하고 두 사람이 세 사람을 반대하여 갈라질 것이다. 원수가 되어요. 원수가 둘이도 못 사귀는 거예요. 사람은 사귀고 살고 사는 것이 잘못 되었어. 살면 하나님의 은총이야. 그것은 못살아. 신의 뜻을 내 마음속에 받아들여서 성신이 역사하기 전에는 두 사람도 못 살아요. 절대적으로 못 살아. 이런 경험을 하고 이런 단체에서는 그런 경험을 하기에 그렇게 좋아요. 왜 이 불이 안 붙느냐? 안 붙는 원인이 어디가 있느냐? 초 꽃이 있지 않아? 등초 꽃에 심지가 빠져버렸어. 심지가 빠져버리면요, 절대 불이 안 붙어요. 그러니까 무엇 때문에 내 마음속에 신이 역사안하냐? 그걸 깨달으라고. 근본을 알아서 찾아들어가 근본을 알고 정확성이 있이. 근본을 알아야 성경이 깨달아지지, 정확성이 없으면 성경을 몰라요. 안다고는 하나 요상하게 알아버려. 어디서 심지가 빠졌냐? 이것이야. 우리 인생에는 다 심지가 빠졌어. 그러기 때문에 불이 안 붙어. 절대적으로 안 붙어. 그러기 때문에 근본을 빨리 찾아라. 중심에 심지를 빨리 찾아라. 그래야 불이 붙어. 그래야 성신이 우리에게 붙지, 그걸 안 찾아내면 불이 안 붙어요. 소화 테레사는 성경을 뭐라고 한줄 아시오? ‘이 아름다운 불꽃을’ 그랬어.
한군데 더 보고 좋은 말씀 듣고 또 듣고 또 들어도 자꾸 행복하게 들려야 되요. 말씀이 그래야 성경이 보고 싶어요. 싫증이 나면 못 봐. 성경은 다른 책하고 틀려서 솔직히 성경 보는 것이 하나님 은총이여. 캄캄한 밤인데 성경이 봐져요. 불이 와야지 보여. 주님이 먼저 와야 성경 봐요. 하늘이 보게 해 줘야 봐요. 열어보고 보란말도 안 합니다.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말은 솔직하게 합니다. 거짓말 안 해요. 거짓말 할 때가서 해야지. 아무데나 가서 거짓말하면 안 되니까. 누가복음 19장 41절, 예루살렘이 불행 해. 말씀 안 받은 사람이 불행에 있다고, 화를 입을진저. 그랬어요. 네가 말씀을 배반하면 화를 입을 것이다. 그랬어요. 예를 들어서 고기가요, 그러더랍니다. 옛날에 유 선생님한테서 들었거든. 들으면 진리를 들으면 안 잊어버리려고 노력해야 된다고. 그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또 새기고 또 새기고 그래야 하는데 듣고 그냥 우물가에서 고기들이 많이 있더랍니다. 그런데 물이 작아. 째질째질 하고 작거든. 그런데 요놈 새끼가 들어가지고 막 물에가 쳐버려. 사람이 보기에 불쌍하거든. 불쌍하니까 끌어서 밖에다 내놔. 그거 밖에 내놓으면 살아요? 죽어요? 죽는다고 죽어. 오히려 그건 안 돕는 게 나아. 그 목사님이 그 말씀하시더랍니다. 그러고 뭐 라는 고 하니 오늘날 이 교회가 사람은 끌어 내놓으나 다 죽는다는 것이야. 차라리 내둬버리라고 그 목사님 그렇게 설교했대요. 내가 들었어. 우리 마음이 무엇과 같으냐? 예루살렘 불행 말씀 안 받아 들이면 사람은 불행해요. 우주 공간은요, 우리의 마음을 상징한 거야.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커요. 그런데 그때는 신이 있을 때 신이 역사할 때 큰 것이지. 신이 떠나면 바늘귀도 안보여. 그렇지 않아요? 안보여요? 안보여. 신이 떠나면 그러니까 아무 지척이 분간이 안 돼. 이것도 저것도 모르고 자기가 큰지도 작은지도 모르고 참 자기라는 것이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불행해요. 예루살렘 불행. 말씀을 안 받아 들이면 불행해요. 예루살렘 불행.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 (끊김)
못 본다는 거야. 못 본다는 거야. 예수님이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른단 말이야. 네가 알았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것이야. 신의 뜻을 알았으면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니까 자비의 경지에 들어가면 막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요. 성경말씀도 하기 싫어요. 하나님의 자비의 경지에 들어가면 성경말씀도 하기 싫어버려. 왜 그럴까? 전에는 내가 잘해서 천국 간다. 할 때는 설교도 하고 싶은 마음 있어요. 저 사람들한테 가서 설교해야겠다. 저 사람들 이런 식으로 살아야겠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비의 경지에서 세상을 봐버리면요, 전부가 구원받게 되어있어. 구원 안 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어. 그렇지 않아요? 그럼 누가 설교를 해요? 너 구원 받은데 무엇을 하느냐? 이것이야. 그러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경지에 들어가면요, 다 용서가 되어버려. 자비의 경지에 들어가면 거기 못 들어가서 볼 때에 ‘너 잘 했네, 나잘못했네, 너 천국 가네. 나 지옥 가네.’ 그따위 소리하지. 자비의 경지에 들어가면 그 말 못해요. 그러니까 이 성직자들이 말이에요, 자비의 경지를 보면 설교 못해요. 못해. 그러니까 왜 교회 나온 사람은 천국가고 교회 안가는 사람은 지옥가고 그거 잘못 되었어요. 저도 여기 들어오기 전에 10년간 교회 다녔습니다. 거기서 무엇을 발견 못했기 때문에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단체만 구원받는다. 그래요. 율법적으로, 우리 동정 지킨 사람만 천국 간다고 그래요. 그 내말 잘못 들으면 큰일 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행동해도 큰일 나요. 그런데 자비의 경지에 간 사람은 그것이 없어. 구원 못 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어. 다 구원이야. 천국 문 딱 열어놔 버려요. 다 들어오라고 누구 잘한다. 못한다. 그거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오전에 일간 사람 있지 않아요? 오후에 일간 그러니까 그 품삯가릴 때 따진 사람 있거든. 그러나 하나님은 안 따졌어요. 늦게 온 사람 일찍 온 사람 똑같이 주거든. 하나님의 자비는 평등하게 차별이 있는 것은 자비는 아니야. 차별은 사랑이 아니야. 어디 한 구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전체적이지 일부분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가 일부분이지. 전체적으로는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도 어떤 경지에 들어가면 신을 모시면 신이 된다. 이것이야. 내 마음속에 신이 역사하시면 신이에요. 성령이 들어가면 소화 테레사도 그렇게 말했거든. 나는 신이 되어야 한다. 성녀가 되어야한다. 그 말이에요. 꼭 믿어요. 성녀 테레사는 소화 테레사는 예수 잘 믿었어요. 저는 솔직히 해서 그 자서전을 계속 읽습니다. 그래도 못 깨달아요. 그 어렸을 때 깨달아 해놓은 말을 못 알아들어. 그러니까 그렇습니다. 동물에 거시기를 보면요, 연극을 보면요, 곰이 곰 잡으러 간 사람이 있거든. 곰 잡으러가서 뭐로 잡느냐 하면 마취제를 놉니다. 총으로 마취제를 한방 딱 놓으면 넘어지거든. 그러면 그 마취제를 한방 맞으면 완전히 쓰러져버려. 그러니까 하나님은 마취제와 같다. 마취제와 같이 우리에게 온다. 그때에는 어른도 손 못 대는 것을 어린애도 가서 손대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순해버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리가 뭐 잘해서 우리가 죽어져서 우리가 침묵을 지켜서 그런 것을 갖고는 되도 안 해. 나도 경험을 별짓을 다했다고 안 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어. 인제는 편해요. 왜 김포공항까지 가는 것이 내 안식처야. 이것이 그러니까 사도가 그래요. 나는 할 일 내가 할 일 다 했다. 나 달릴 길 다 달렸다. 인제는 비행기 탈일만 남았다. 그것이야.
편한 일만 남았다. 그래서 안식이 사도바울이 안식을 말한 것이야. 히브리서에서, 그러니까 우리도 어디까지 갔느냐? 그것이야. 내 할 일을 다 했는가? 그러면 안식이여. 편안해. 나 솔직히 남반에서요. 나도 남 간섭하는걸 보통 간섭하는 거 아닙니다. 생각해 보니까 싸움도 내가 많이 해봤고, 시기도 해봤고 간섭도 해봤고 모든 것이 지옥이라고, 그런 것이 지옥이야.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 돋친 채찍으로 봐야 너만 다칠 뿐이다. 그랬거든. 그러면 형제를 내가 때렸는데 왜 내 마음이 아프냐? 이것이야. 여러분 그런 경험 안하시오? 상대자에게 내가 욕을 했는데 왜 내 가슴이 솟구치냐? 상대자가 나고 상대자를 때린 것이 내 가슴에다 내가 못 박은 것이야. 그것을 깨달았어. 아무리 우리가 말해도 안 돼. 자기가 경험을 해서 형제를 건들 적에 형제들 못살게 할 적에 괴롭힐 적에 내 심정이 찢겨지더라. 이것이야. 이것이 신앙 체험이라고. 그래서 자기가 거기서 뜯어 고칠라고 노력을 하고 하나님을 부르짖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려고 노력해야지. 내가 이 말해서 여러분 해결 안 되요. 나는 이것이 내 신앙 체험이라고. 여러분한테 말한 것뿐이고 진짜는 여러분이 경험해서 얻어내라 그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반에서요. 가을부터 여기 일 끝나고부터 공부 했습니다. 성경도보고 간섭도 하기 싫고 그렇지 않아요? 지칠 대로 지쳐버렸어. 그러니까 소화 테레사도 그랬어. 쓸어 진 곳이 하나님 품이라고, 가만 놔둬버려. 동으로 가던지 서로가든지 밥을 먹던지 안 먹든지 나 밥 한 그릇 얻어먹으면 그 다음은 나둬 버려요. 하기도 싫어요. 하고 싶은 마음이 속에서 없어져버려. 힘이 없어. 다 탈진해가지고 그것이 안식이야. 편안한 안식,
그랬다고 해서 아직 실천은 한 거 아닙니다. 그런 경험만 한 것뿐이지 실천은 사람이 못해요. 인제 신을 모셔 들이면 신이 하는 것이여. 사람은 못해. 그러니까 마취제라는 거여. 마취제라는 건 성령이 하는 거야. 그때 나한테 욕을 해도 욕이 욕인 줄 모르고 남이 때려도 내가 맞은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맞은 것이에요. 내가 네 속에 가서 마취제라는 내가 네 속에 가서 네 고통도 덜어주고 네 불행도 내가 청산해 주고 내가 다 하겠다. 그 말이지 네가 하라. 그 말이 아니에요. 성경은 절대 우리보고 하라는 말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한다고 서둘러보니까 자기가 자랑하게 되요. 그러니 무엇이 되냐? 그러니까 한번 해보고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거야. 나는 그것이 아니라 계속 그것이 좋다고 하면 그것이 실패에요. 그러니까 소화 테레사는 자기 약함을 깨달아요. 나는 독수리가 아니라 독수리 눈 밖에 안 가졌다. 그랬어요. 나는 아무 힘이 없는 존재다. 동정을 지키는 것도 하나님께서 해줘야 지킨다고 했어요. 자기는 못 지킨다고 했어요. 갈멜 수도원에 들어간 것도 신의 뜻이라고 그랬어요. 그것도 축복받은 것이에요. 그런 산골짝에 들어가서 숨어 살았어도 요. 훌륭한 성녀가 되었다고, 이 세상에 앉아서 복음을 다 전파했어요. 이 사람은 아무리 돌아다녀도 한사람도 복음을 전파 못해요. 사람이 하려고하면, 그러니까 베드로가 뭐라고 했는가하니 밤새도록 애써 수고만하고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한 사람에게도 전파 못했다. 그 말이야. 돌아다녀도 안 돼. 자기가 말씀을 들어서 전파한다고? 새까만 거짓말이야. 그런 거는 이번에 거시기를 봤습니다. 눈사람을, 얼음으로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얼어버렸어. 아름답게 만들었어. 눈사람을 우리가 무엇과 같은가하면 눈사람과 같다고 눈사람과 같아. 아무 힘이 없는 존재야. 어째 눈사람이 되어가지고 얼음 사람이 되었냐? 얼음 꽃 보세요. 얼음 꽃 아침 드라마 보는가 모르겠네. SBS에 나오는 거 거기는 계속 싸워요. 그래서 얼음 꽃이라고 그래. 우리 사람이 얼음 꽃이여. 얼음 꽃 모란꽃 은 아름다우나 향내가 없다. 향내가 없어요.
향내는 예수님뿐이에요. 그 말씀이 고린도전서에 가있는데 얼음 꽃 그렇지 않아요? 모란꽃, 꽃은 아름다우나 향내가 없어.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처녀가 아름답게 꾸미고 나와도 향내는 없어요. 사람같이 멍청한 것도 없어요. 멍청하네, 멍청하네. 사람같이 멍청한 게 없어요. 왜 그것을 아냐? 우리는 신의 뜻이라는 것이 찾으려고 보면 다 있어. 나는 무엇을 비유로 해서 말했냐 하면 남녀 간에 여. 무엇을 비유로 해서 말했냐 하면 여자 편에서는 남자가 고양이고 여자는 쥐여. 그런데 꽃단장을 잘하고 고양이 앞에 가거든. 그렇지 않아요? 얼마나 멍청하냐? 이거야. 고양이한테 뭐하려고 가냐? 이것이야. 젊은 사람들 잘 생각해. 늙은 사람들이야 다 늙었으니까 차도 말이요. 앞에 온 차와 서로 차가 부닥쳐 보세요. 박살나가지고 흉측해져버려. 흉측해도, 흉측해도 그렇게 흉측할 수가 없어. 비켜 가면 되요. 그렇게 갈 필요가 없어. 편하게 갈 길을 무엇 때문에 그렇게 복잡하게 가냐고 여기 분재원에 가면 그 건너가는 도랑이 있습니다. 그건 뭘 로 해 놓았냐하면 물 내려가는 것을 높여가지고 부록으로 쌓아가지고 있어. 그래서 높아. 옆에 걸어가는 모서리는 부록 6인치짜리로 쌓을 정도로 그렇게 밖에 안 높아, 그리고 40센치 50센치 쌓아요. 그 도랑을 오십 미터 정도는 쌓았거든. 그런데 우리 집 밑에 집사님하고 나하고 등산을 갔어. 등산을 가서 가만히 생각했어. 그 집사님은 그 위로가고 나는 밑으로 가고, 밑으로 간 것이 물 내려가는데 물이 없거든. 그런데 요리 가면 자빠진다고, 자빠지면 병신 되어요. 그렇지 않아요? 병신 돼. 뭣 하러 그리 가냐? 그 말이야. 그리 건너 갈 바에는 가운데로 가면 편하게 갈 건데 안전하게 갈 건데 뭣 하러 가냐? 그것이야. 그러니까 소화 테레사가 그 말이야. 나는 항상 안전한 길을 찾는다고 그랬어. 불행한 길을 안 찾는다. 그랬어. 그러니까 자기 야망을 깨고 약하게 자꾸 숙여야 온다고 약한 자 약한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은총이 계속 내려부어요. 그러니까 소화 테레사는 하나님의 은총이 계속 내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해봐요. 오는가 안 오는가? 강하기 때문에 못 받아. 자기가 강하니까 뭣 하러 갈 바에 그렇게 가느냐? 그것이야. 그 다음에 나보다 빨리 오냐? 빨리 못 와. 내가 더 빨리 가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얼음 얼음 살아. 그거하나 내가 말했지. 또 나는 여자를 뭐로 보는 줄 아세요? 고양이로 보거든. 상호간에 그렇게 봐서 자기를 약한 것을 깨달으라고. 그래야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세상 멍청한 것이 사람이야. 그거 알고 사시라고, 그거 한마디 명심 하시라고, 비껴가면 되요. 비껴가면 여러분 율법은 하나님이 깨요. 여러분 할 일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다 깨버려. 그리고 하나님이 자비로 구원시켜요. 여러분이 구태여 가서 깰 필요 없어. 나는 하지마라는 것이야. 경험 했으니까 예를 들어서 어린애가요, 어려서 오줌 쌀 때는 부모가 가만있습니다. 참아주고 용서해요. 철들어서요. 오줌 싸 봐요. 그거 매가 따라가. 또 더 커서 더 커서는 철이 완전히 들면 그만 나둬 버려요. 그때는 누가 괴로운 줄 아세요? 오줌 싸는 본인이 괴로운 것이여. 그렇지 않아요? 죄를 범하는 여러분 자신이 괴롭다 고, 하나님은 자비인데 전체적으로 용서해놓고 있는데 자신이 괴로워요. 자신이 못 살겠어. 내가 못 살겠어. 내 양심이 괴로워서 못 살아요. 죽어도 나쁜 짓 하지마라는 것이야. 내 양심은 하지 말라는 거예요. 같이 죽자는 것이여. 내 양심이 살아 움직이면요, 조금만 잘못 해봐요. 곧 죽는다. 그래요. 곧 죽는다고. 남이 헐뜯어 봐요. 곧 죽는다. 그래요. 그것이 참 나여. 그것을 살려내야 돼. 어째 모르냐? 이것은 익은 곡식은 그런 농사를 하면서 성경은 다 보거든. 콩 같은 것도 익어보세요. 밤 같은 것도 익어봐. 알맹이가 쑥 빠지거든. 영혼이 속사람이 익으면 성경에도 있어요. 그 말이, 그러면 고린도전서 한번 보고 합시다. 맞는가? 모르겠소. 42절 찾아보세요. 고린도전서 15장 42절로 차근차근 읽어가 보세요. 여기 있고만, ‘썩을 몸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우리의 속이 살아난다고 육체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육체가 죽어서 묻는 거 그런 거 아닙니다. ‘육체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체적인 몸도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있지 않아요? 하물며 하나님이 세상에 곡식 같은 것도 우리가 먹고 살라고만 지은 거 아니라고 우리가 보고 배우라고 한 것이지, 먹고 똥 싸려면 뭐 짐승과 똑같지 다른 게 있어요? 그런 거 보고 우리보고 공부하고 깨달으라고 곡식도 알맹이 껍질을 만들어 놓았는데 왜 사람 육체를 만들어 놓은 것이 무엇이냐? 이것이여. 하나님 곡식을 위해서 사람을 만들은 것이여. 사람을 위해 곡식을 만들어 놓았지, 그렇지 않아요? 사람같이 귀중한 거 없어. 그러니까 자기 영혼이 그만치 귀한 걸 깨달아 알맹이가 쏟아 나와서 매를 맞고도 나오고 안 맞고도 나와요. 콩도 그렇거든. 못나오면 도리깨질을 해. 도리깨질을 한다고 매를 때린다고 그러면 알맹이가 그러니까 여러분에게 고난이가도 영혼이 익어야 고난이 가지. 고난이 영혼이 안 익으면 매도 안갑니다. 선 곡식에는 절대 매질 안 해요. 편안한 게 좋은 거 아니에요. 콩이고 설어보세요. 그 껍데기하고 알맹이가 딱 붙어버렸어. 그렇기 때문에 육체가 알맹이가 못쓰게 되어버려. 그렇지만 알맹이가 익은 사람은 알맹이가 밖으로 나와서 육체를 쳐다봐요. 그래서 자기 육체를 한번 구경한다고 이 인물이 무엇이냐고 여러분 차타고 앉아서 보지 않아요? 차는 내 육체고 속사람은 나여. 그러니까 내 영혼을 보면 상대방 영혼도 다 본 것이야. 그러니까 자기를 알아야 돼. 자기를, 자기를 알면 세상을 다 아는 것이여. 자기를 이기면 세상을 다 이기는 것이고 자기를 못 이겨요. 그래도 하나님이 나를 이겨주니까 못 이겨. 절대 못 이겨. 오늘 그 말씀 들으면 편할 것이 구만. 이런 말씀 어디가 듣지도 못해 그러니까 인제 성경을 또 한 번 봐야겠소. 요한복음 참 좋거든. 성경이 나는 이렇게 좋아. 이 선생님도 그랬어. 깨달으면 행복하다고. 참 행복해 깨달으면요. 마음이 황홀해져버려. 불교에서는요, 깨달은 사람을 부처라고 그럽니다. 부처 불자가 깨달음이에요. 깨달음, 요한복음 1장 27절,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 그거지요. 29절, 하나님의 어린양 다음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한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 죄를 ‘없애시는’ ‘지고 가는’ 그랬지만 없애시는 그랬어. 아시겠어요? 인제 잘 설명을 들으라고요. 얼음사람 얼음으로 얼음사람은 아무것도 못해요. 그렇지 않아요? 아무것도 못해. 자기 죄도 짓지를 못해. 남도 못 할뿐만 아니라 자기도 마음이 편치를 못해. 그렇지만 빛이 내려오면 눈사람 형태를 싹 없애버려.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이 물이 어디로 가느냐? 바다로 간다고 바다로 변화 받지 않아요? 이래서 사람은 안 죽어요. 이제 다음에 설명하는데 사람은 죽을 수가 없어. 절대 죽지를 않아. 여러분 죽는다고 생각하시오? 나는 죽는다는 말 안 해. 내 눈에는 죽은 사람이 안보여. 사람 마음 한번 어떤 방법으로 쓰느냐에 따라서 행복하고 불행합니다. 마음 한번 바꾸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시오? 그것을 안 갖고 왔고만. 왜 안 갖고 왔어. 거기 뭐라고 쓰여 있냐하면 하나님 앞에는 하나님 보시기에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다고 했어요. 죽은 거 아니에요. 죽어 있는 사람에게만 죽은 것이 보이는 것이야.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절대 안보여. 죽음 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 부처님 진리도 보면요, 지수화풍이라는 게 있어. 그것만 봐도 세밀하게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죽지를 않아. 안 죽어. 이것이 분해되어서 각자 갈 길로 갈 뿐이지. 육체도 안 죽는다고 지수화풍 이라는 말 아세요? 땅 지(地)자 물 수(水)자 불 화(火)자 바람 풍(風)자 네 가지가 사람이 만들어 졌습니다. 그것이 분해되어가지고 분열해가지고 나가는 것뿐이지 죽는 게 어디 있냐 말이야. 죽음 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요. 육체도 그러니까 얼음이 죽느냐 이 말이야. 얼음이 살아서 거기서 나가서 분해되어 변화를 받아서 가는 것뿐이지 죽음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랬어. 그렇지 않아요? 바다로 가면 바다가 뭔 말이냐면 받아들인다고 해서 바다여. 신이 와서 신하고 합쳐버리지 않아요? 합쳐서 무슨 역할을 하느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봐라.’ 남의 물음에 그렇지 않아요? 물은 더러움을 다 씻어 버려진다고. 신이 오면 나도 그 역할을 한다. 그 말입니다. 나도 물이 되어서 남의 죄를 다 씻어줘.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와서 하나님하고 합쳐야 그것이 되지. 하나님 떠나 그것이 하나님도 그랬지 않아요? 네가 나를 떠나 아무것도 안 된다. 그 말이야. 그런데 사람이 한다고 그걸 잘 깨달아봐. 사람이 그 분명하지요?
인제 한 서너 군데 더 볼 데 있소. 고린도후서 10장 17절, 거기 뭔 말입니까? 내가 적어갖고 오기는 왔는데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십시오. 내가 자랑할 것이 무엇이냐? 이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나 자랑할 것이 없어져버려. 자랑 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십시오. 참으로 인정받을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내세운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세워 주시는 바로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자랑할 것이 없어요. 사람은 자랑할 것이 없어. 그러니까 소화 테레사 성녀가 뭐라고 한지 알아요? 하나님의 자비만 노래한다고 했어. 당신은 성녀입니다. 그랬거든. 옆에 언니가, 자기는 성녀다운 행실을 한 번도 한일이 없다고 했어요. 그리고 자기는 나는 일분도 참은 적이 없습니다. 그랬어요. 그것이 정답입니다. 사람 측에서 우리가 할 것은 그것이에요. 이걸 공부하라고 이정도 가야 신을 체험하고 모셔 들이고 사모하고 흠모하고 그러지 이런 체험 없이 쓸데없이 하면 뭣 하냐? 그것이야. 잡으면 하나님이 좋아하는 줄 아시오? 마르다와 마리아 두 형제가 언니는 예수님 위해서 음식 만들었답니다. 소화 테레사 성녀가 설명해 놓은 거예요. 동생은 말씀 듣고 있었고 칭찬한 것은 동생이 되었어요. 음식 장만한 것이 잘못한 거 아니야. 왜 그런 것에 모든 신경을 걱정을 다 거기다 써 버리느냐? 그것이야. 그런 것을 하면서 하나님을 사모하고 진리를 찾는 그런 마음으로 무엇이든지 해라. 그렇지 않아요?
참 이 마지막 남긴 말씀은요, 늙은 어머니들에게 좋아. 놓고 보시라고. 그렇게 좋아요. 나는 솔직히요, 이 나이 정도 되고 얼굴도 이렇게 곱고 어떤 사람이라도 사모한번 하겠어요. 그것이 일체 없어요. 그렇게 단절해버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자기를 만들어 줬다고. 그래 자기공은 절대 안 들어. 바다가 된다. 바다가 되어서 모든 쓰레기 같은 세상 것을 다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배부른 자들은 다 쓴 것이라도 다니라. 인제 여기서 갈등을 느껴요. 형제간의 잘못을 다 받아들인다고 받아 들여. 전에는 그렇게 맛없게 생각이 들던 것이, 음식이 배가 고프니까 똑 같은 음식이 배부를 때는 맛이 없고 멀리하거든. 밉고 짜증나고 27년간이나 요리사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아무리 요리를 잘해놔도 배부를 때 먹으면 맛이 없다는 것이야. 그러나 아무리 맛이 없어도 배고플 때는 그렇게 맛있다고, 그러니까 그 말이야. 배부른 사람에게는 음식이 멀리가요. 배가 고파야 굶주려야 음식이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려야 그래야 형제의 잘못도 감사로 받아들일 때가 있을 거예요. 나는 아직 실천을 못 했어. 이런 방법론을 깨달았을 뿐이지. 아직 실천한 경지에는 못 들어갔다. 이 말입니다. 그렇지요? 배고픈 사람이 무엇을 가리겠어요? 막 받아들여. 금식해 본 사람 알거에요. 맛없는 음식이 없어요. 생선 아무리 고기가 아름다워도 비린내 나거든. 더러운 냄새 난다. 그 말이야. 아무리 예쁘게 단장했어요. 쥐는 쥐여. 저는 아름답게 꾸며놨다고 했어도 사람이 보기에 쥐는 쥐라고. 개는 개고 고양이는 고양이고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우리가 육체를 아름답게 꾸며놨어도 영적인 경지에서 보면 짐승은 짐승이라 그 말이야. 그러니까 자기 영혼을 들여다보라. 그 말이야. 네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과 닮았거든. 얼마나 아름답냐? 이것이야. 그러니까 그것을 보라. 그리고 그것을 보고 네 육체를 쳐다보라. 어떤 방법으로 어떤 꼴로 생겼나?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육체와 영혼이 분간 되어야 해요. 그러니까 아까도 말씀같이 내가가도 익은 곡식에 가지, 익지도 않은 곡식에는 안 간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고린도후서 2장 14절에 그리스도의 향기, 인제 향기가 나와요. 거기서 향기 우리는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고기 자체로는 향기가 안나요. 그렇지 않아요? 고기 자체로는 아무리 고아도 냄새뿐이야. 비린내뿐이야. 아무리 아름다운 모란꽃이라도 향내가 없다고. 그러면 이 고기가 어디로 가느냐? 심판 받으러 들어간다고, 불가마 속으로 심판받으러 불속으로 들어가는 거야. 불속에 들어가면 무슨 냄새가나요? 향내가 나거든. 향내가, 그것이 복음 전파하는 것입니다. 말로 씨부렁거리는 게 복음전파 하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소화 테레사는 가만히 앉아서 복음전파 하는 거예요. 지금도 그렇고, 사람은 아무리해도 안 돼. 그렇지 않아요? 우리 스스로 우리는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이 향기는 구원받은 사람에게나 멸망당할 사람이나 다 같이 풍겨나가지만 멸망당할 사람에게는 역겨운 죽음의 악취가 되고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는 감미로운 향기의 감미로운 생명의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랬어. 그러면 한 번 더 보렵니다. 거기가 또 생각나요. 내가 거기를 잘 보거든. 우리 인생이 어디냐? 자기 신세를 그렇게 안 본답니다. 이 말씀 받으면요. 거지되어버려. 솔직히 이야기해서 거지되어버려. 마음대로 못살아. 자기 마음대로 못살아. 자기 마음대로 산다는 거 다 거짓말이야. 될 수 있는 거 아니야.
요한복음 3장 19절,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다. 절대 안 받아 들여요. 받아들이면 마귀의 생활이 다 깨져 버리는데 육적인 생활이 다 부서져 버려요. 자기 마음대로 못산다고, 그거여. 안 받아들여.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지 않아요? 고양이, 고양이가 그런 걸 더 사랑한다고 화장하고 그런 걸 더 사랑해. 그걸 좋아해. 세상 쾌락을 좋아한다. 그 말입니다. 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 받았다고 하는 것을 말해 줍니다. 과연 악한 일을 일삼는 자는 누구나 자기 죄상이 드러날까 봐 그거 드러나면 난리나 버려. 그러나 심지가 드러나야 불이 붙어. 심지가 빠져있는 동안에는 아무리 하나님을 하려고 해도 안 돼. 양이 말이요, 물속에 들어가면 못나온 답니다. 왜 양 털이라는 것은 물을 겁나게 먹어버려요. 이 사람의 양심이라는 것은 빠져놓으면 못 나와요. 못나와, 우리 양심이라는 것은 어느 구덩이에 빠져 버리면 못나온다고. 그리고 힘 못써요. 사람이 양심 이라는 건 어디 가서 힘을 쓰냐? 십자가 안에 가서만이 힘을 쓰고 십자가 안에 가서만이 행복해요. 육체가 고난을 당할 때 양심은 편안해 행복해. 이 선생님이 그랬거든, 육체가 편하면 양심이 괴롭고 육체가 괴로우면 양심이 편안하다고 그러니까 육체가 부셔질까 무서워서 십자가 못 믿겠거든요. 육체덩어리가 부셔질까봐 십자가 못 믿겠냐? 못 믿으면 마귀가 된다. 성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마귀에요. 십자가는 말씀이고, 말씀은 십자가여. 인제 조금만하고 끝날 랍니다.
인제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아가씨가 아름다운 아가씨가 말이요, 불맞아버렸어. 누가복음 18장, 아 좋은 말씀이여. 이 선생님 여기서 거시기가 나옵니다. 저 기도문이 나와요. 항시 자기 더러움을 깨달은 것이야. 죄인 됨을 깨달아. 바리새인 기도와 세리의 기도, 9절 18장, 아주 예쁜 아가씨가 이 말이요, 화상을 입었어. 화상을 입었다고. 무엇이 와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소화 테레사가 화상을 입었어요. 그러기 때문에 사람 틈바구니에서 못살게 되니까 산속으로 들어가 버려. 불 받으면 그렇게 된다고. 하나님의 불을 받으면 잃어버려. 아름다운 아가씨가 화상을 입었어. 배운 것도 많고 돈도 많고 그렇게 잘났다. 남자는 줄 따르고 그런데 예수님은 이 아가씨를 꼬여야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꼬여야 하는가? 그렇지 않아요? 방법은 그 방법 밖에 없어요. 불 질러 버려야 되요. 화상을 입혀버려야 돼. 그래야 거기서 나오지, 그리 안하면 못나와. 소화 테레사 성녀는 어려서부터 성신 받았어. 성령 받았어. 두 살 먹어서부터 수녀가 되었다. 그거 아무나 한 것 아니야. 여기 나옵니다. 이런 기도가 나와. 얼마나 그 잘난 척하고 이리 쫒아 다니고 저리 쫒아 다니고 고개를 들고 이리저리 다니는데 불을 맞고는 부끄러워서,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드는 것이 예수 믿는 거야. 그래 여기 기도한다고, 여기 기도가 나와. 예수께서는 자기네만 옳은 줄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에게 이런 비유를 말씀 하였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는데 하나는 바리새파 사람이고 하나는 세리였다. 바리새파 사람은 보라는 듯이 서서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불을 받지 못했어. 익은 곡식은 머리를 숙인다고 그 아가씨는 자기 죄를 깨달은 자체가 익은 거예요. 여물은 곡식이여.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어. 머리 숙여 수그린다고, 그렇지 않아요?
부끄러우면 머리 수그려야지. 뻔뻔스럽게 되는 것도 좋지 못한 거야. 그거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과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뭐 특별히 다른 사람을 비난할거야? ‘저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에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하고 기도하였다. 한편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사람을 쳐다보지 못한다. 그 말이여. 한편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쳐다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오 하나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기도하였다. 그렇지 않아요? 할 기도 없어 인제 다 끝난 거야. 그러니까 이 선생님이 그러지요? 얼굴 데어버렸는데 항시 부끄럽지 않아요? 그러니까 항시 죄를 깨달으라는 것이여. 그걸 깨달으면 부끄럽지, 그러니까 오 장로님 뭐라고 그런지 알아요? 그것 알면 다 알았다. 그거야. 죄다 알았다는 것이여. 죄다 깨달았다는 것이여. 그것이 은총이여야 깨닫지, 자기는 못 깨달아요. 그러니까 소화 테레사가 사람의 애정에 빠지는 거 조금도 내공이 아닙니다. 애정에 빠지지 않는 것은 조금도 내 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요렇게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총인 줄 알고 살아가시라는 그 말입니다. 이제 그만합시다. 찬송 부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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