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다시 찾은 금산사 : 독생자 해설 2

mamuli0 2019. 11. 20. 08:31

 단풍 철로는 좀 늦은감이 있다. 그래도 빠트릴수 없어 김제에 온 김에 다시 들렸다.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불어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항상 도는 길로 한바퀴 돌아 나왔다.


 

 


 독생자 해설 2


1971.08.13. 유영모 선생


  다시 그래도, 살아나는 수가 없나? 만일 다시 살아난다면 그렇게 똑바로 해두는데, 일어날 때 쉬우니까 그런다는 그 뜻이지요. 그런데 그걸 치우는데 맨 처음에는, 갔다가 멀찍이 그냥 땅에 갔다 둔거예요. 옛날에는 사람이 적으니까 자연에는 세상이 많으니까 깊숙한데 좋은 땅에 나무가 많고 꽃도 있고 그런데, 갖다가 가만히 두는 거예요. 그렇게 두었다가 한쪽으로 썩으면 그렇게 되는데, 그러나 그건 사실 다른 새는 있는데 짐승은 있는데 벌레는 있는데 그것들이 와서 뜯어 먹을 거 아닙니까? 그거 보면 싫으니까 그때는 덮는 거예요. 덮었어요. 그때도 사람마다 그걸 갖다놓고, 그걸 가서 아직 잊어버리고 마는 사람도 있고, 그중에는 그걸 정이 있어서 가끔 가 봐요. 어떤 때는 까막까치가 와서 쪼아 먹는다고, 그래 처음에는 인정에, 무엇입니까? 이 막대기로해서 돌멩이로 이렇게 해서 탁 튀기면  돌멩이를 튀겨서 덤비는 까막까치를 쫒고 그랬다고, 그게 효자 이지요. 그랬던 것이 차차 차차 깊이파고 묻자고 하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중국 사람은 지금도 묘 쓰는데 깊이 파고 깊이 장사 안하고 그냥 갔다가 이렇게 돌멩이 해놓고, 그냥 그 위에다 관을 올려놓고, 그리고 뭘 로 덮어두는 그런 치우는 것이 있어요. 그럼 몇 달 뒤면 썩어버린다고, 그러면 그게 치우는 방법이야. 또 파묻는 법이야. 또 물에다가 띄우는 법이 있어요. 수장이지요. 그렇게 치우는 거니까 치우는 방법이 그렇게 몇 가지가 있어요. 그런데 아주 깨끗하게 치우는 거, 그거 불태우는 거야. 그럼 불태우는 건, 다른데서는 다 안 했어요. 인도에서 했어. 인도에서는 3천 년 전부터 했어요. 치우는 것 중에 제일 깨끗하게 치우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염불하는 사람이 화장을 지내는데, 불의 장사를 지내는데 치워서 태워서 아주 없어지는데, 태운 재라도 어디다 갔다가 물에 갔다 띄우기도 하고, 그야말로 가루를 만들어서 바람에 뿌리기도 하고, 그렇게 아주 안보이게 하는 거야. 그러나 그것을 바람에 날리지 않고 그것을 가루를 만들어서 밥풀에다 이렇게 뭉쳐서 정한 바위 돌 위에다 이렇게 놔 올려놓으면 송장을 까막까치가 가서 뜯어 먹는 건 볼거리 사납지만, 이렇게 해서 까치가 먹는 것은 보기도 덜 흉하니까 그게 대개 그렇게 합니다. 그랬는데 사람의 하는 일이 이라는 것이 재산이 있고 덕망이 있고 이름이 나고 한 사람의 것을 그렇게 태운 끄트머리 재라도 다시 잘 둬두려고 해요.


 


그래 돌로 잘 만들어 가지고, 그 돌 속에다가 타지 않고 남은 그걸 집어넣어 둬요. 이제 그게 좋아 보이니까 보통 사람도 재산이 있으면 그렇게 말리든지, 까치를 먹이든지, 물에 띄우든지 그러지 않고, 또 그걸 그렇게 해서 탑을 만들고 그 속에 넣어줘요. 그런데 그 정성으로는 좋을지 몰라. 그런데 그것 귀찮습니다. 그게 살아있어 그대로 있으면 좋지만 그것이 그걸 두었다가 그게 뭘 로 쓰러지고 두었든 데가 헐러지고 그때야말로 바람에 날려가든지 물에 흘려가든지 이렇게 되고 말건데, 밤낮 그 식이 그 식인데 그걸 어떻게 가지고 하나요?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대개는 죄다 그렇게 해서 바람에 날리거나 밥풀에 뭉개서 놓아서 까막까치가 먹든지 대부분 그러고 말았어요. 그런데 일본사람이 그래서 어쩐지 돈만 생기면 둬 두고, 둬두고 그랬어요. 그걸 본 따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지금 염불 하거나 말거나 화장을 지내고 둬두려고 하는 그것이 또 있지요. 그래 화장이 라는 건 3천 년 전부터 인도사람이 했지. 그 외의 세계 사람들은 화장지낼 일이 없어. 죽은 사람을 가져다 살린다면 아주 큰 죄를 범하는 걸로 생각을 해. 그러던 게 이 세상에는 지금 시대에는 전쟁을 해도 사람이 만 명 이만 명 뭐 십만 명, 이렇게만 죽지를 않아요? 엄청나게 많이 죽으니까, 그걸 지켜 어떻게 둡니까? 화장 지내는 수밖에 없어요. 죄다 불살라야 돼.


 


 죄 화장지내서 그래서 군인이 돼서 죽었으면 화장지내서 그 뼈다귀 가족한테 보내는 거 아닙니까? 뼈다귀를 불태워가지고 재, 거기서 일일이 어떻게 뼈다귀 그 뼈다귀를 보낼 수 있어요? 한꺼번에 해 태워버린단 말이야. 한꺼번에 태운 재를 조금씩 떠서 이거 아무개 집 보내고, 아무개 집에 보내고 이렇게 되지요. 그건 그렇게 모르는 거니까. 서양 사람이 어떤 데는 사람의 뼈다귀만 앙당하게 남아있는 데가 있답니다. 교회에서 맡아둔 게 있는데, 거기 뼈다귀 두는데도 손 발되는 것 모양 골 뼈, 어깨뼈  팔때기 손가락 다리 발가락 꼭 여기 손발 모아놓듯이 그렇게 함께함께 모아 놓는대요. 그거 역시 만일 부활을 한다면 그렇게 정돈해 모아놓은 게 그게 뽀르르, 뽀르르 일어나서 아주 쉽게 들어맞아서 딱 일어설는지도 모르지요. 사람의 생각에는 늘 그러는 거예요. 나는 화장지내는 게 시원한데. 그런데 그렇게 모아놓는 거, 재라도 남겨놓는 거 그거 싫어. 그건 그래도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얼 알아야 하는 고 하니 이게 결코 내가 아닙니다. 이게 내가 아니에요. 이게 내가 아니에요. 이걸 나라고 할 거 아니에요. 어디 가서 언제부터 이게 나입니까? 입었다가 벗어버리는 거야.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가 어떻게 하냐? 어머니 아버지가 아들 딸 잘 길러서 내 놓았는데 남이 보고 아이고 참 잘 도 나셨소. 또 재주가 많았소. 학교에 가서도 우등을 하고 졸업을 하고 또 대학까지 가서 석사가 되고 박사가 되고 이랬다고 야단 아닙니까?


 


그렇지만 똑똑하고 그런데, 이게 못났으면서도 뭐 밤낮 고생, 고생 걱정 부모님 된 사람의 가슴을 태우고 하던 사람이 무슨 곤란한 일도 해결하고 웃어른하고 이웃사람도 와서 잘 했다고 그 인사를 하니까 인사 대답하고 하는데 웃어른한테 이런 말 하니까 고맙다고 하면서도 변명합니다. 자기변명, 하는 거야. 사람은 자기변명입니다. 아이고, 내 자식이 이렇게 망하게 하다가 없어진단 말이야. 이렇게 그럴 때 변명이 뭔고 하니 자식을 거죽을 낳지 속을 낳습니까? 내 자식이지만 내 마음대로 속을 낳는다면 그따위 속을 갖은 자식을 내가 낳을 리가 있습니까? 우리가 자식을 낳는 건 거죽을 낳아? 껍데기를 낳아? 껍데기는 그 자식도 병신은 아니야. 콧대가 오뚝하고 눈이 반듯하고 어려서는 꽤 영악하다고 했어. 그러던 사람이 이 꼴이야. 그래서 자식을 거죽을 낳지, 속을 낳는가? 이게 하나님 앞에 바로 깨닫는 말입니다. 그때 가서야 깨달아. 거죽을 낳지 속을 낳는 게 아닙니다. 거죽밖에 못 낳는 게 왜 해요? 왜 낳는 거야? 여기 이왕 낳은 거 이거 불행이에요. 얼마 있다가 멸망하는 거야. 그런데 그 짓들을 왜해? 어떻게 하다 했으면 자꾸 계속해서 왜 하느냐 말이야. 안 할일을 하는 겁니다. 안 할일을 그럼 안 할일이다. 소리치는 겁니다. 석가모니도 소리쳐. 그래서 어찌되었든지 혼인하지 마라. 혼인하면 그 더러운 껍데기가 자꾸 뽑아져 나와 그 나와야 시원한 거 없어. 그 자꾸 내놓아야 뭐하느냐? 단념해라. 딱 끊어라. 그 깬 소리야. 깬 소리, 그렇게 판단해 버린 게, 그게 깬 사람 아닙니까? 그것이 불교에요.


 


그것이 세상에 알려지는 거, 알려지는 거, 이렇게 따져보면 이거든 저거든 우습기가 한량없어. 정말 딱 깨달으면 석가모니가 그렇게, 깨자. 깨기를 생각합시다. 깨기를 생각합시다. 그게 염불, 그럼 염불. 그러지 말고 깨기 생각합시다. 깨기 생각합시다. 이렇게 해야 확실히 알아듣지. 우리 깹시다. 오늘도 깹시다. 또 깨기를 생각합시다. 그거야. 우리는 구원을 얻어야한다. 구원 얻는 게 뭡니까? 건져져야 한다. 건져져야 합니다. 건지는 게 뭡니까? 빠졌어. 세상에 빠졌어. 수렁에 빠져 들어 갔어. 빠졌어. 그럼 누가 나 좀 꺼내줬으면 좋겠어. 그래 좀 붙잡아줘. 솟아 올라가. 그래 어저께 찬송 올라가, 올라가, 그게 제일 좋습니다. 올라가, 올라가 영원히 그대로 그치지 말고 올라가, 올라가. 깨어지다. 깨어지다. 염불. 깨질 생각 합시다. 깨질 생각 합시다. 생각할 염(念)자에다 이제금(今) 마음심(心)이지요? 이제 이 마음을, 이제 이 마음을 뭘 해? 깨자는데, 이제 이 마음을 깹시다. 깹시다. 더 깹시다. 더 깹시다. 덜 깨서 이러니까 아주 깨지도록 더 깨야 돼. 우리 예수와 같이 하나님을 생각하며 올라가, 올라가. 자꾸 계속해서 올라가, 올라가. 아 등산가들이 떨어져죽기도 해요. 올라가, 올라가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그럼 7천 미터 8천 미터 그래도 기껏 높아야 7천 미터 8천 미터 그래요. 8천 미터 꼭대기까지 내가 발로 가야 시원한 거지. 그걸 올라가야, 그 이상 더 올라가진다. 그건 영생을 얻기 전에는 그치지 못하는 거야. 그것이 생각하는 존재가 자꾸 기도하는 건 그겁니다. 올라가, 올라가 또 올라가, 올라가 그것뿐입니다.


 


그깟 태산이 높다 해도 오르고 오르면 못 오를리 없어. 뭐야 태산이 그러니까 태산에서 또 쳐다봐. 올라가, 올라가 나 몰라요. 내 예수교인지 불교인지 몰라. 나 훌륭한 불교에요. 왜? 깨기를 생각해요. 깨기를 생각합니다. 그럼 불교지요. 나만큼 염불을 부지런히 하는 사람 없을 런지 몰라요. 깨기. 예수는 깰 줄을 모르겠습니까? 깨지 않았을까? 사람이 깨지 않았을까? 예수님이 깨시고, 석가모니하고 예수가 만일 동시에 살았으면 가장 가까이 만났을 거예요. 석가밖에 없다. 예수님 밖에 없다. 천하 인간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못 얻는다. 예수의 이름만 가져야 구원을 얻는다. 불교에는 천상천하 무여 불. 우리가 찬미 모두 하듯이 여럿이 앉아서, 천상천하 무여 불, 천상천하 무여 불. 하늘 위로가나 아래로 가나 부처만한 이가 없다. 부처만한 이가 없다. 천하 인간의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똑 같은 소리지. 똑같은 정신이지. 그거 뭐 다르다고, 어디가 다릅니까? 깨자. 올라가자. 똑같은 소리야. 석가가 빠졌으니 솟아 나가자. 그따위 그 생각이 없겠습니까? 예수께서 이거 흐리다. 깨자. 깨서 생각해라. 그렇게 안하시겠습니까? 속뜻에 가서는 같은데 지극히 높은데 올라가 목숨의 근원되시는 아버지모시고 사는 그가 깨지 않아요? 잠꼬대만 하고 있겠어요? 만일 예수하고 석가가 같은 세상에 있다면 다시없이 잠시도 떠나지 못하고, 서로 법을 위해, 진리를 위해서, 깨지기를 생각하고 솟아 올라가기를 원하고, 그럴 겁니다. 그러니까 원자력으로 우리가 멸망을 할 건지 염불을 해서 깰 건지 올라가, 올라가서 종단 올라가서 닿으려는지, 이렇게 추렴하면 간단합니다. 복잡할 게 도무지 없어.


 


마음 딱 정할 적에 장가를 갈까? 시집을 갈까? 그것도 생각하지. 장가 시집 갈사람 어서 장가 시집가시오. 요새는 장가 시집가기 쉽지. 왜? 혼인은 국수 먹고 했는데 혼인을 국수 없이 곧잘 해. 혼인에 국수 없어도 잘해. 그래 이게 못난 것들이거든. 국수 없어도 곧 잘 하는 건데, 왜 못하고 있다가 혼인을 하지 못했으면 자식을 낳아놓은 뒤에 자식을 돈을 만들어 놓은 뒤에 혼인식을 합디다. 그래 요새야말로 우리 아버지 어머니 혼인하는 거 봤어. 껑충껑충 뛰어다니다가 혼인예식 한다니까, 손님 청한다고 국수도 먹고 술도 먹고 하니까, 나 우리 어머니 아버지 혼인하는데 나 국수 먹었지. 이 담에 그렇게 될 거예요. 뒤죽박죽입니다. 뭐 그거 껍데기 낳으려고 껍데기를, 그런데 지금 와서는 낳지는 않겠대. 나를 위해서 낳지 않겠다고 할 수 있나요? 안 낳는다는데 그래 안 낳아 질까요?


 


원자력은 서로 경쟁을 하고 원자전쟁 안 하련지 모르지만 이 쏟아져 나오는걸 나오지 못하게 하고 좋다하고 사랑이 제일이다. 하고 밤낮없이 년 놈이 부둥키고 그까짓 썩어지고 더러운 껍데기가 썩어져 나오는 거 그거, 그렇게 하고 앉아서 이것이 자식 안 낳는 게 하나님 뜻이냐? 자식 없는 게 무슨 부처의 뜻이냐? 이렇게 하는 부처의 제자들이 예수의 제자들이 그렇게 사는 사람 많소. 나 이 책, 엄 목사 바로 옆에 있으니 이야기 좀 해야지. 어저께 저녁에 말씀하시는데 그거 내가 묻고 싶어요. 교회 요새 교회에 한번 들어가 보니까 전에는 남반 여반 갈랐었는데 이제는 안 갈랐어. 여자 있는데 남자 다 앉아있어. 남자 있는데 여자 다 앉아있어. 그렇게 하는데 음란한 일이 많아지나? 적어지나? 나 엄 목사에게 물어보고 싶어. 이 교회에 음란한 일이 많아지우? 적어지우? 견물생심이야. 보면 마음이라는 게 나오는 거야. 보고 마음이 안 나오는 건 병신이지.


 


 이제 기도시간이 어떻게 이렇게 했습니까? 대단히 잘못 했습니까? 이렇게 여쭈어보고 싶소. 나는 나 믿는데 나 믿는 생활 하는데 이렇게 하고 삽니다. 나 혼자 있어도 이렇게 하고 살고. 나 싫다하면 가지도 않는 거고. 나더러 오라하면 가요. 가서 그 분들하고 같이 지내고 그러는 거야. 기도만 하라니 기도만 아니 하고 말만 하라니 말만 아니하고. 또 노래는 대단히 좋아하는데 나 노래할 줄 몰라요. 그래 노래할 때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속내는 일동과 같이 살지요. 내가 처음에 성경 볼 때 이 책에 지금 쓴 것대로 말씀을 그런 말로 내가 외웠다면 60년 동안 지나오는데 아주 나는 달랐을 겁니다. 먼저 외운 그것대로 외운 것 때문에 별 고생이 많았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이렇게 읽으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 주셔서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셨느니라. 그게 16절 이야. 이게 좋으니까 다시 외워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주셔서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셨느니라. 동명사거든. 해 주셨습니다. 해 주셨습니다.  (끊김)


 


기도회라고 하는데 기도는 조금도 안하니 이제 조금 섭섭한가요? 그럼 기도한번 합시다. 이러고 기도 한번 했으면 좋을까요? 나 안 해요. 싫어요. 이 공 공히 나서서 할 때는 기도 인도를 그렇게 말로 기도하는 것 보다 읽는 게 좋아요. 예수가 떡을 떼실 때에도 팔을 펴시고 하늘을 우러러 보셔 이거 골고루 먹게 해주시오. 그래? 그대로 뚝뚝 떼어서 먹게 그랬어요. 우리 감사 기도해야지. 또 감사 기도는 나는 먹고 나서 하라고 해요. 인사 할 때 오늘 이거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러고 그럼 딥다 먹는데 과식을 하고서 엉덩이가 무거워서 일어나기가 싫다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야. 그럼 감사기도는 나중에 딥다 퍼먹고 나서 감사 기도해. 좋아서 먹었는데 그거 과히 먹지는 않아. 참 감사합니다. 나중에 기도하는 게 좋아요. 먼저 하면 배탈 나요. 배탈 나,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배탈이나 나면 뭘 하게?


 


 ‘하느님 계 계셔서 날 내셨으니 내 날 가져 계 받들어 섬기시도록 이제 내 속 알과 삶의 목숨과 내 나위 힘과 얼 되 받들어 들어 하느님 뜻 맞고 하느님 말 숨 쉬어 나와 모든 사람 속 알라 외 이 내 더욱 되기만 가장 비나이다. 하느님 우리 주위 살에 조임이 크고 몬지 무거워 모아 드리지 못되오나 되 불쌍히 바라며 제 섬기 울 기대어 비오니 나들이 되게 비나이다. 아멘.’ 그렇게 여러분하고 같이 있는데서 한번 읽으면, 거기 아무 다른 생각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세상이 이상한 게, 정성껏 여러분이 있거나 말거나 오직 하나님하고 나하고만 이렇게 해서 말씀 드리겠다. 하나,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 쏙쏙 반짝반짝 다른 생각이 스쳐지나갑니다. 어디든지 많이 모여 놓으면 서로 옆뎅이를 주의합니다. 눈을 뜨거나 말거나 옆뎅이를 주의해요. 무슨 말인지 하는데 하나님이 한다고 하는데, 옆뎅이 귀에 들어갈 적에 꼭 꼭 바른말로 했다. 그건 말이 좀 틀렸다. 이게 있을까봐. 그걸 걱정을 하고 있어. 그 이 노릇을 어떻게 합니까? 말 하는데 이제는 성신 인도 하시는 대로, 기도 인도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는대로 인도해 주시면 좋은데, 어떻게 성신이 인도를 안 하십니까?


 


어떤 때 보면 가만히 있다가 부흥시작을 한다. 그건 왜 성신이 둘씩 나오게 인도를 하셨나? 죄다 이용하는 겁니다. 성신도 이용을 하고 하나님도 이용을 하는 거예요. 하나님 아들도 이용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늘 이 모양이야. 이걸 어떻게 해요? 아무리 천만 중안에 있더라도 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만 통해야 하는 게 소원인데. 그게 안 되는 겁니다. 너희가 기도를 암만이고 자꾸 하는데 많이 기도하는 거 공부하도록 해라. 사람 많은데서 기도 인도하는 거 너무 길게 하는 거 좋은 게 아닌 거를 주님께서도 너희가 기도하는 것을 대개 기도는 이렇게 해라. 그게 주기도 아니에요? 


 


하늘계신 아바께 이름만 거룩 힐 참 말씀 임 생각이니이다. 이에 이어 숨 쉬는 우리 밝는 속 알에 더욱 나라 찾음 이어 지이다. 우리가 이제 땅에 부닥친 몸이 되었사오나 오히려 임을 따라 우우로 솟아 나갈 줄을 믿습니다. 우리의 삶이 힘씀으로 새 힘 솟는 샘이 되었고 진 짐에 짓눌림은 되지 말아 지이다. 사람이 서로 바꾸어 생각을 깊이 할 수 있게 하여 주옵시고, 고루 사랑을 널리 할 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와 임께서 하나이 되사 늘 삶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이 될 수 있는 성언을 가지고 참 말 삶에 들어 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뜻이 위에서 된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아 멘. 이건 무슨 기도? 주기도문의 뜻입니다. 주기도문 뜻 외에 다른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만 바꾸고 이걸로 오늘 내 기도를 여러분하고 같이 했다고 합니다.(끊김)


 


여기 중심이 돼서 그렇게 가다가 그만 마친 건, 내가 잘 모르는 말인지 모르지만 지금 장로님 이라든지 또 지금 말씀하신 오 집사라든지 이 몇 몇 분은 이 세종 그가 중심이 돼서 여기서 수삼십년 되어서 같이 자란 게 아니에요? 같이 자랐어. 그런데 오늘날 오 집사 말씀하시는걸 보면 전에 이 공이 지금 오 집사가 말씀 하듯이 오 집사가 성경을 연구하듯이 그렇게 하지 않았던가? 그런 생각이 나요. 그 제 2의 이 공으로, 이공이 살다가 입었던 옷을 벗어놓고 하늘나라로 간 그이를 중심으로 해가지고 오 집사는 이날 이때까지 이렇게 했는데  그래 오 집사 성경말씀 하는걸 보면 그가 오 집사 성경말씀을 한다는 말보다 오 집사가 모아 갖은 게 같은 성경을 봐도 이때까지 그 그렇게 한 것을 몰라요. 십년인지 이십년인지 삼십년을 갖다가 꼭 본대로 꼭 거저 두지 않고 조직을 했습니다. 조직을 해서 딱 내놓을 것 같으면 모두 아름답게 순결하게 그 만큼 조직을 했어. 저 무엇이 요새는 그런 거 나타내지 않겠지만 또 그런 거 이전에 만드신 거 나는 눈으로 못 봤어. 전혀, 본디 나무 쇠를 가지고 뭐 만들어 내는 걸 잘 하신대요. 이 만들어 놓는 거 나는 못 봤어. 여기 저기 만들어 놓았어, 오형이 손을 대어서 방을 만들었다든지 변소를 만들었다든지, 그거 모두 곱거든. 그런 걸 볼 거 같으면 아 그만큼 짜놓는 양반이다.


 


 나는 잘 모르지만 요새 집을 지어놓는 그 그도 여기서 자라면서 여기서 그 만드는 거 짓는 것을 배워가지고 차차차차 오늘날 완전히 자기가 턱턱 맡아서 하고 다니는데 그것도 직접은 아니지만 간접으로 이 오 집사하고 같은 무슨 연결이 있어. 그래서 오 집사가 능히 짜내놓고 지어 내 놓는 그걸 많이 직접으로는 물론 되지 않았지만 간접으로라도 많이 그 짓고 만드는데 선생과 제자의 관계가 나모르게 있다고 할 거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왕이면 성경말씀이나 하지 뭐 딴소리 이걸 지껄이나 하겠지 이치라는 건 똑 같아요. 지금 저 오 집사 지금 하는 거 보면 꼭 지금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그들이 생각해서 조직한 거, 성경 속에도 꼭 자기네 인생관들 자기네 신앙관들, 이것을 성경말씀에 꼬 짜가지고 앉아있어. 천사람 만 사람을 만나도 늘 그걸 가지고 내어놔요. 그게 조직이 되었거든. 그들도 보통 교인들도 여호와의 증인 말 듣던지 무슨 침례교나 안식교의 말 들어놓으면 과연 꼭 성경을 아주 알짬으로 뽑아서 꼭꼭 잘해놨다는 느낌을 느낀다는 겁니다.


 


나는 그걸 그렇게 말해요. 아주 능란하게 한 것같이 보이나 성경 66권을 전부 그렇게 해 놓았느냐? 천만에, 그건 대부분이 구약에 있는 다니엘서, 신약에는 계시록, 묵시록 대부분이 거기지. 그래가지고 꼭 짜가지고, 교회 안에서 말하고 보는데도 밤낮 그 짜놓은 거 그 줄거리 그걸 보는 거고 나가서 전도한다고 해도 그걸 가지고 나가서 하고, 평생을 목사부인 노릇한 이도 요새 여호와의 증인 거기에 가서 목사부인이 여호와 증인 그 교회에 나가서 말을 해도 책을 잡고서 여호와의 증인 거기서 말씀을 성경 꼭 옳다는 거야. 그리고 하는데 나는 그걸 암만 들어도 밤낮 그 소리인데, 그렇게 짜 놓은 거니까, 밤낮 그 소리를 하면 듣는 사람은 밤낮 그 소리를 듣는데 꼭 무슨 책 몇 장 몇 절에 있는 말씀인데 이렇다고 그렇게 하는데 그럼 그건 참 그건 평생 장로교 목사 된 남편을 가지고 평생을 같이 믿었어도 한마디 여호와의 증인 거기서 가르치는 성경이 참으로 꼭 바로 가르치는 것만 같다고 이렇게 생각이 들어가서 자꾸 그러지요. 말씀하는데 오 집사께서 요새 말씀하는 거 보면 이 공이 글자 몇 자를 안 갖고도 늘 그것을 말씀했다는걸 보면 나는 그걸 직접 뵙지를 못했어요. 또 그 말씀을 듣지를 못했어요.


 


또 그렇게 말씀하는 걸 들을 까닭이 없었어요. 그런데 전해 내려오는 말 들으면 당신이 아는 글자를 가지고 꼭꼭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에 맞춰서 무슨 말을 했다 하는 거예요 지금 자꾸 전해. 나도 몇 번 들었어요. 오 집사도 이제 할 수 없어서 한문자 한자라도 거기에 맞으면 놓치지 않아요. 꼭 붙잡아 가지고 거기 성경구절하고 맞춰가지고 거기다 요긴한 점만 한데 붙여. 그래 그걸 증거 하려고 할 때 쑥쑥 나와요. 요새는 하도 많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거기 어떤데 틀린 게 있습니다. 그래가지고 너무 급히 그랬거든. 그리 마시면 그래 좋겠다. 그래도 안 될 말입니다. 자꾸 돋아나오는데 어떻게 참을 수가 있습니까? 안 되어요. 그런데 많이 이제는 좀 참으시는 게 좋겠대. 옆에서는 이걸 졸르니까 그 생각 또 하지 않을 겁니다. 이왕이면 좀 더 참아서 연구해서 여러분이 앞에 나와서 말씀하실 때 꼭 하시거든.  아주 가장 진지하게 깨끗하게 그렇게 돼서 내어 놓으면 그때 참 좋겠습니다. 아직은 좀 참으시고 둬두시오. 난 그걸 정말 그렇게 느껴요. 그래서 그랬어요. 그랬는데 꼭 나는 오 집사 말씀하는 걸 들으면 여호와의 증인 이라든지 안식교라든지 그렇게 성경을 뽑아서 그렇게 해박하게 뜻을 붙여서 그렇게 증거 하시는 거 같애요. 그런데 그 하시는걸 보면 66권에서 다 해석을 하지. 다니엘 이라든지 묵시록 이라든지 거기 꺼만 짜 가지고 그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 대단히 오 집사는 크게 벌렸습니다. 크게 벌렸는데 그거 아주 꼭 정리만 하면 참 좋은 말씀이에요. 깨닫기 쉽게 합니다. 나는 지금 귀가 어두워서 저기 않아서 지금 말씀 듣는데 대부분은 못 들어요. 어떤데 무슨 자 가지고 어떻게 한다. 그러는데 대강 들어 알아요. 그것이 지금 말씀 들으면 꼭 내 느낌이 여호와의 증인의 성경 절 말하는 거 안식교 인이 성경 절 말하는 거 그와 같이 꼭 성경 절 조직을 해. 그런데 오 집사의 성경은 66권에 있는 성경을 다 뽑아 가지고 당신 사상에 줄거리가 있는데 그 줄거리를 따라서 여기 해당하는 거, 저기 해당하는 거 꼭꼭 맞춰서 이렇게 공부를 하시는 거야. 그걸 가지고 말할 때 그대로 나오니까. 여호와의 증인의 성경말씀 인증하는 것과 안식교의 성경말씀 인증하는 것과 같이 꼭 꼭 듣는 사람은 간단명료하게 참 이치를 깨닫겠다고 듣게 될 겁니다. 그런 의미로, 하나님께 나는 감사합니다. 여호와라는 것은 우리가 점잖은 어른의 부모 조상의 이름자를 직접 부를 수가 없어서 이름자라고 안 해요. 휘자라고해요. 휘자라는 건 우리말에 휘지휘지 한다는 게 있지요? 이제 흐지부지해서 다 잊어버렸다고 흐지부지 라는 건 도무지 말로 못한다.


 


너무 존중해서 아버지 이름을 부르지 못해요. 점잖은 이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이름은 부르라고 지은 건데 이름을 부르지 못하면 어떻게 해요? 그러니까 답답한 일인데, 그러니까 나중에는 흐지부지해서 도무지 못하게 되요. 없어져요. 이름을 이렇게 되는 건데,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데 거기는 어른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이런 생각이 있을 까닭이 없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만은 부르지 않았습니다. 부르지 않아요. 그럼 철저하게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글자를 보고 무엇이라고 읽어야 꼭 옳은지 모르겠는 겁니다. 왜냐하면 거기 글이 우리글과 비슷한데 모음이 있고 자음이 있는데 글을 쓸 때 자음을 도무지 통역을 안 하고 모음만 써놔요. 자음은 간단한 표만 거기 조금씩 찍어놔요. 그런데 대략 이렇게 쓰는데 토를 찍어놓는 그 토도 찍지를 않았어요. 찍지 않았어요. 모음만 써놓은걸 보고 그 글을 잘 아는 사람들이 자음 표를 찍지 않았어도 능히 보고 알고 그래요. 그렇게 하고 갔는데 더구나 여호와 하나님에는 자음되는 표를 도무지 찍지 않았어요. 그런데 부르지 않고 왔으니까 오늘날 와서 부르자고 하는데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 야훼와 여호와 한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히브리 사람들이 여호와를 야훼 그랬는지, 여우훼 그랬는지 모른다고 그런데 현대 이스라엘 나라 사람들은 야하웨 그럴는지 모릅니다. 이건 또 일본 사람들이 이스라엘나라에 가서 한 이태든지 그 사람들하고 살다가 와서 일본 사람들이 일본말로 거기 사람 거기 이야기를 해서 책을 만들어서 그 책이 우리나라로 들어와서 그걸 보는데 이 사람이 본 일본 사람이 이스라엘 나라에 한 이태 있다가 다녀와서 쓴 책에 여호와를 야하웨 야하웨로 나타내졌어요. 그건 여호와도 아니고 그건 일본 가나로 쓰니까 거기 발음하고 꼭 같을 수는 없지요. 그런데 같기는 하겠지요? 야하웨 마침 그 책을 그렇게 보는데, 이 사람이 하이야 라는 거 하이야 하야 여기에 지극이 큰 이치가 있다는 거, 그걸 깨달았어. 하야 하야웨 하고 자꾸 생각하는 게 있는데 이스라엘나라 갔다 온 사람이 야하웨를 여호와라고 우리가 부르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야하웨 그런 말 부른다. 하이야훼 이런 생각이 있는데 내가 하이야훼를 무슨 신의 이름은 아니에요. 그런데 하야훼 지극히 좋은 진리의 알자로 거기 뭐이 박혀있어요. 그걸 자꾸 생각을 하는데 여호와가 야훼로 이렇게 된다는 거 그거 비슷하지 않습니까?


 



(※청강자 ‘야하웨 옛날부터 야훼라고 불렀답니다. 히브리사람들이요. 모세 때도 야훼라고 불렀답니다.’) 
근데 이거 제가 말이라는 건 음으로 되는 건데, 그 말 되는 음이라는 건 이상한 겁니다. 그 바른 말만 거기 신이 함께 하세요. 반드시 신이 함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