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설 날 곡성 큰 아들 집에서 모였다. 이 번에는 가족이 모두 모였다. 하루 밤을 함께 보내고 새해 인사와 만찬 그리고 할머니 산소에 다녀와 둘째 집에서 오후 2시쯤 헤어졌다.
죄의 못자리, 헌신짝
1992.07.09. 김준호 선생
이 말씀은 여기 앉아서 봤습니다. 물밀듯이 가능성이 일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더라도 은총에 의해서 십자가를 감당했다. 은총이라는 것은 불과 어떤 의미에서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한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그럼 처녀가 잉태했다는 말은 은총의 소치입니다. 은총을 가득 입으신 마리아여 기뻐하라. 그 천사의 축복인데 처녀가 은총을 입으면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전능성이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감당한 것은 극비가 아니야, 참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소치라는데 에서는 우리들도 은총을 받으면 가능하겠다. 그래서 이제 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몇 분은 참 기다리고 계시니까 이 선생님께 대해서 말씀하는 것은 모르지만 오늘 결론은 그렇습니다. 이 선생님이 걸어가신 발자국이 있다면 그건 은총의 소치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완성하심이 은총의 소치였다면 이 선생님의 발길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 아주 이 선생님이 고맙게 생각하지요. 제 마음이, 그렇게 설명을 해봐라. 이건 우리 식구하고는 아직 말 안했던 이 선생님이 가장 기뻐할 수 있는 고백을 이 선생님 대신제가 하고 있거든요. 그 이 선생님이 혼자 했으면 위대한 의일런지 몰라도 예수님이 그분을 은총으로 그렇게 해주셨다면 이 선생은 아무 한 것이 없지요. 심부름꾼이신데 그 이 선생님이 하시고 싶은 말씀을 그 흔적은 있어요. 그분이 말년에 썼다는 일기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 아주 많이 우시고 통곡하신 다음에 잠깐 쓰신 겁니다. 일기를,
‘저는 죄의 못자리입니다.’그 말이에요. 그냥 글이 아닙니다. 피맺힌 자기 고백이에요. 나는 죄인입니다. 가 아니에요. 나는 죄의 못자리입니다. 식구가 백 명 이백 명을 데리고 살 때에 매일같이 불복합니다. 스승을 거역한다든지 죄를 진다든지 불법을 한다든지, 누가 주모였던지 자기 잘못이에요. 밤새도록 자기 가슴을 치고 웁니다. 가지 많은 나무가 바람 잘날 없다고 그분이 일평생 울다 죽었습니다. 누가 잘못했던지 꼭 자기 잘못으로 생각했어요. 내가 죄의 못자리입니다. 한 공동체 안에서 누가 잘못했다면 그 사람 잘못이 아니야. 내가 장본인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통회하시기 시작한 것은 그 씨를 어디서 얻었느냐? 그것도 은총이에요. 그럼 스승이 직접 말씀 안했지만 지금 사모님 살아계십니다. 지금 80노순이 넘으신데 그 어머니의 눈물겨운 고백을 들어봐요. 그 이 선생님의 반쪽이 나오지요. 두 분 관계니까 무슨 사연이 나오느냐 하면 미리 결론을 말씀한다면 이래요, 원효대사가 설총을 낳은 것은 보통사람은 아무렇지 않아요. 평생 독신을 서원한 사람이기 때문에 설총을 낳은 것이 세계적인 화제지요. 그러나 원효대사의 정신상처지요. 그분이 상처를 받아가지고 10년 동안을 걸인 굴에 숨어가지고 은거하고 사신 거는 사실입니다. 맘이 아프니까.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그렇다면 이 선생님은 우리가 알기에는 이렇게 종합해보면 결혼 전에는 평생을 독신서원 한사람이에요. 자기가 평생 독신서원 했다가 결혼하고 보니 그건 얼떨결에 결혼했지만 그다음에는 눈물발자국이에요. 서울 가서도 왜 이 선생은 맨발 벗었소? 그렇게 물어봐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고행은 아니야. 처절한 자기참회의 발자국이야. 참회의 발자국, 피의 발자국이요.
그럼 인제 그 흔적을 더듬어 종합해보는데 사모님께 그 이 선생은 그런 말 안했어요. 사모님이 그 말하지요. 직접 저 보고 한말도 있고 옆에 사람에게 했지만 이 선생님의 스승이 이공님이신데 이 공은 스스로 자기는 아무것도 없다는 무소유지요. 그분이 아들을 낳고 싶어서 산상기도를 3년, 3년, 3년 아무리 10년을 공을 들여도 아들을 못 낳고 그때 절망할 때에 어느 목수가 성경을 드렸답니다. 당신은 이 성경을 보고 위로를 받아야지. 아들을 못 낳는데 왜 그렇게까지 할 것이 무엇이오? 아들을 포기하고 성경을 보시오. 그럼 또 성경을 보기 시작할 때는 춘하추동을 몰랐다니까. 국문도 모르는 분이 스스로 책이 되어가지고 보기 시작했어. 이 식음을 전폐했어요. 그렇게 해서 성경을 전부 외워 버린 겁니다.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그렇게 명철한 일꾼이에요. 농부인데 그때 최흥종 목사가 아마 이 남선에서는 유명한 목사이지요. 이거 성경 문답을 해보면 목사가 져버려. 목사가 항복을 하고 춘추로 와서 무릎을 꿇고 말씀을 들었다 가세요. 그때 조사가 백연흠 목사인데 그때 전도사인데 백연흠 목사가 무릎을 꿇고 배웠지요. 그럼 공부할 때 이 선생 이 현필 선생과 백연흠 목사가 이공님의 문하거든요. 공부를 같이 했다고요. 자처했다고요. 그 백연흠 목사가 자기 사재를 주어버린 거예요. 이 선생을 그걸 옆치기를 했지요. 경솔했지요. 그런데 이공님이 부탁하지요. 내가 자식을 낳고픈 것이 진정이오. 자식을 못 낳고 내가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예수를 좋아하지 않아. 내가 결혼을 해봤고 아내가 있어도 아들을 못 낳고 결국은 성경을 보고 예수를 믿었는데 나는 젊은 청년이니까 내 한을 씻어다오. 내가 아들을 못 낳고 예수를 만났으니 내 한이 풀렸다.
그러니 구태여 이제 결혼을 해가지고 자식을 낳을 것이 무엇이냐? 내가 얻은 이 진리를 네가 대신 이어줘라. 그거지요. 상당히 기대를 하고 철썩 같이 이공님이 믿어버려. 나는 인간 육십 평생 아들하나 낳으려다 실패하고 결국 예수를 믿고 이렇게 평화를 얻었는데 너는 나같이 결혼을 하고 이렇게 하면 실패한다. 내가 결혼해버렸으니까 너는 내 대신 결혼하지 말고 이 말씀을 그대로 전해라. 그럼 그렇게 철썩 같이 믿었던 이 선생님은 왜 결혼을 했냐하면 영산포 예배당에 다녔거든요. 기성교리의 뿌리가 깊었거든요. 기성교회 결혼을 해도 능히 하나님 뜻을 이룰 수 있다. 자기 기성교리를 가지고 이공님을 거역한 거예요. 이공님의 부탁을 묵살해 버렸어요. 그것이 사실인데, 결혼했습니다. 그러면 사모님 말 들어보면 임신을 했어요. 결혼을 했는데 어떻게 행복한지, 그 사연은 그것이 아니에요. 복희씨 어머니 친구 말 들어보면 결혼식 할 때에 서약을 부부간에 결혼식만 하지, 우리는 영원히 깨끗하게 산다. 철저히 둘이 약속했어요. 서로 이성적으로 남녀로 보아주지, 절대 이렇게 깊은 애정을 안 쌓는다. 철썩 같이 둘이 약속을 하고 결혼식을 했는데 살아가는 동안에 부인이 마음이 약해져 24시간 허물었지요. 꼭 창세기와 같아요. 결국은 그 아담같이 부인핑계를 안 해요. 이 선생님은 자기가 책임진 겁니다. 내가 잘못했다고 아담같이 하와 탓이오. 그 말을 안했거든, 책임을 짓고 보니까 무슨 하나님의 섭리를 봤냐하면 아이를 낳게 되는데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아이가 아니고 고름이 들었어요. 배를 째보니 자궁 외 임신이야.
사람이 다 죽었어요. 지금 사는 게 기적이에요. 그래 죽었어요. 부인이, 일본시대에 옛날 농촌 이야기지요. 시아버지께서 절대 병원에 못 가게 아무리 배가 아파도 한약을 지어다 주시고 그래 아들이니까 아버지말씀 절대 순종하지요. 꼼짝 못하고 아내를 손 못 댔어요. 이 선생이, 깊은 농촌인데, 그래 결국은 죽어가니까 아버지 몰래 이 선생이 손 구루마에 실었다 해요. 자기를, 그러면 거기서 광주 제중병원이 70여리입니다. 그때는 돌짝밭 이예요. 배가 뚱뚱해 고름이 든 여자를 그 손 구루마에 끌고 가니까 출렁거리니까 아프지 않아요? 그래 빨리 못갑니다. 그 끌고 갈 때 대성통곡해요. 왜 그럴까요? 보통 부부생활이 아니지 않아요? 평생 독신서원을 하다시피 했고 스승의 철썩 같은 부탁, 너는 결혼하지 말고 성경을 연구하라고 했는데 다 그걸 자기가 배신했거든요. 다 자기죄악이다. 자기 잘못, 그 자기 부인이 죽어가는 시체를 메고 갈 때 그 처절한 통곡, 그렇게 해서 수술해보자 고름이 그득 들었고 부인은 다 죽어가고 하니까 한 석 달인가 한 달인가 알 수 없지만 밤마다 부인 침대 옆에 와서 울었어요. 그런데 지금 보면 왜 맨발 벗었냐? 하면 그때부터 맨발 벗은 거예요. 부인 다 죽어갈 때부터 죽을 때까지 자기의 잘못에 대한 통회에요. 발자국마다 눈물이에요. 그분 일생이, 너무나 큰 기대와 하나님의 그 특별한 주문, 자기가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베드로도 회개 했지만 회개하는 순간이었지요. 실수를 저질러놓고 그런데 부인과는 담화가 안 되어요. 이러니까 나는 마음이 괴롭다. 그게 무슨 잘못이냐? 보통 있는 일 아니냐? 부인은 아무렇지 않고 일생을 살아버려. 남자 쪽은 그것이 아니야. 이건 내 잘못이다. 부인 네 잘못이 아니다. 내가 너를 몰랐고 인생을 몰랐다. 여자마음을 몰랐고 내 마음을 몰랐다. 결국은 내 잘못으로 당신은 이렇게 희생되었습니다.
한 인격, 한 여자의 생명을 자기가 잘못해 불행하게 빠쳤다. 평생 그분이 참회하는 길인데요. 그러니까 넋이 나갔다는 정신이 나간사람이에요. 어디 나간다고 신을 신을 마음이 없어요. 어차피 신을 신을 마음이 없이 정신이 나갔어요. 그러나 사람들 앞에 갈 때는 사람들이 보니까 얼른 조금 신는 거예요. 인간 도리기 때문에 아무리 맨발벗고 길을 가도 자기 고통이 감소가 안 되어요. 자기 죄책이, 자기 설움이 자기 후회가 그럼 그 흔적이 어디서 보냐면 그와 비슷한 영혼이 성 어거스틴 인데 어거스틴이 임종할 때 시편 51편을 벽장에 써놓고 숨이 질 때까지 쳐다봤어요. 누가 오면 읽어달라고 그럼 다윗의 장면과 똑같다. 여자관계가, 다윗도 여자관계로 큰 눈물을 흘렸거든요. 시편 51편에 그럼 성 어거스틴도 여자문제요. 보통사람은 그렇지 않는다. 보통 우리는 그렇지 않은데 특별한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영혼은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고 옆 눈질하고 실족한 것이 그렇게 불안스러운 것이지요. 왜 그랬을까? 지어 만든 말이 아니다. 그거에요. 하나님의 큰 명령이시지요. 그래서 오 장로님이 살아계십니다. 아주 말도 안하시는 분이지만 심경을 한번 고백했어요. 저는 독사 노릇을 했습니다. 답을 했지요. 그래 일초도 안 되어서 나는 독사의 왕이오. 하셨거든요. 그 말 한자리로서 자기는 항상 죄인입니다. 만일 오 장로가 독사의 정도라면 나는 독사 왕이야. 죄에 있어서 자기가 왕이고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했지. 누구 한사람 옆 사람 잘못했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그것도 하나님의 작전이고 하나님의 영적 축복인데요.
그런데 그와 비슷한 고백을 누가했냐하면 성녀 테레사가 했습니다. 그럼 24세에 결핵으로 죽었지만 이런 말 했어요. 막달라 마리아는 많이 사랑하시고 나는 모두 사랑하셨기 때문에 나는 미칠 듯이 기쁩니다.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하신 줄나도 한 30년 살아왔어요. 그러나 어느 날 다시 전기를 보니까 그렇게 쓰여 있지 않아요. 막달라 마리아는 많이 사해주시고 나는 모다 사해주셨기 때문에 나는 미칠 듯이 기쁩니다. 그럼 막달라 마리아는 소문난 죄인 아닙니까? 사람은 율법 상 그 발견된 죄고, 자기 죄는 예수님만 발견한 죄라는 거예요. 신이 홀로아시는 죄가 있잖아요? 그래서 자기는 어머니배속에 잉태할 때부터 임종할 때까지 모두다 죄에요. 그 성녀가 깨달은 게 그런데 15세에 수녀가 되시고 24세에 죽었으니까 윤리 도덕상 죄는 없어요. 영적 자기 깨달음이지요. 그건 아침에 장로님이 보셨어요. 로마서 7장 끝 대목. 아무리 내가 깨끗해도 내 속에는 죄가 2대 2로 똑같이 맞선다. 소화 테레사 성녀는 그래 성녑니다. 자기가 깨끗한 여자가 아닙니다. 완전히 자기는 죄인이니까 그러면 자기를 은총으로 예수님의 피로 씻어주셨다. 그 말씀이지요. 그래 성녀지요. 그렇다면 또 프란치스코도 이렇게 고백한말, 점과 같아요. 아마 엄 목사님이 이 선생님 전기를 쓸 때 옆에다 썼어요. 한국에 성 프란치스코 맞아요. 오늘밤에 제가 생각해 보니까 이 선생님같이 처절하게 불쌍한 남자도 없었다. 참 이 선생 인생이 불쌍하게 살다가 죽었는데요. 밥 한 끼를 맘대로 못 먹고 죽었어. 그 자만심을 맘먹고 자기는 안 먹어. 그렇게 인생을 살아간 양반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제자가 프란치스코 한테 물어봐요. 스승을 이렇게 대중이 다 사랑하고 보고 옆으로 오고 싶어 하고 하는 까닭이 무엇이요? 그래 대답 이렇게 하시지요.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이 나를 봤을 때 인류가운데 프란치스코가 제일 죄가 많은 것을 알겠다. 가장 죄가 많은 사람이고 또 가장 무식한 사람이고 또 얼굴이 얼마나 고양이 같잖아요? 그 사람 사진은 꼭 고양이 같아요. 얼굴이 추남이여. 천하에 제일 나보기가 너무나 불쌍해서 그런 특혜를 받은 것이다. 은총을 주신 것이다. 무조건 나를 사랑하셔서 대중이 나를 고맙게 본 것이지, 나 프란치스코를 누가 고맙게 볼 사람이 어디 있느냐? 그렇게 하시던 말과 흡사해요. 지금 저는 다른 분 모릅니다만 여기 이 목사님이 이 현필 선생은 관심을 하시거든요. 그래서 지금 제가 답을 해드리는 겁니다. 이 목사님 들으라고 그럼 이 선생 일생에 인간적으로 아무 것도 내놓을 것이 없지 않아요? 인물이 좋습니까? 학벌이 좋습니까? 문벌이 좋습니까? 그 가족도 가봤어요. 아주 농촌사람이에요. 무슨 혈통이 좋습니까? 아무것도 좋은 것이 없어요. 자기 스승의 말씀을 떼어먹고 다시 말하면 가룟 유다같이 배반했지요. 무서운 죄를 진 형제거든요. 그런데 부인을 이렇게 불행해놨어요. 불행을, 부인이 살아 계세요. 그렇게 자기가 자기를 볼 때 얼마나 그걸 고뇌를 했으면 그때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를 받은 것이지요. 그리스도의 아까 그 사랑, 말없이 용서하는 사랑 그걸 깨달았어요. 아 주님의 사랑, 나를 용서하신 주님의 사랑, 한번을 이러셨어요. 내가 책을 보면서 ‘선생님, 이 종이 색깔이 참 좋아요.’‘내게는 예수가 좋아, 나를 용서했으니까.’그러시더라고요. 예수밖에는 그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지요.
그런데 선생님이 꾸지람 할까봐 제가 몰래 불경을 봤습니다. 저 몰래 보셨던가 봐요. 그런데 전부 부인들이 벽을 발라버렸어. 일본글이니까 그러니 반야심경 해설인데, 부인 방에 아무도 못 가지 않아요? 혼자 갔다 오시더니 이렇게 좋은 책을 버려버렸다고 없애버렸다고 그러니 나는 몰래 본 책인데 선생님이 봤으니까 아시지요. 내가 속으로 그랬지요. 아 본인도 보셨구나. 반야심경 해석이 이만큼 두꺼웠어요. 일본판인데 반야심경정도는 봤어야 예수가 누군지 알겠지요. 반야심경을 모르는 사람이 그 예수를 어떻게 알아요? 그래서 말씀입니다. 다 보셨지만 흔적이 없어요. 전혀 냄새가 없었거든요. 그러시면 이선생의 일생은 가사 어거스틴이 참회록을 붓으로 썼다면 나는 이 선생님은 회개하신 날부터 맨발로 땅에다가 참회록을 썼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30리길을 이 눈이 한 일척이 온 밤길을 길도 없는 갈보리 산에서 오감산 까지 꼭 30리 길입디다. 이번에 가서 보니까, 그 길을 어떻게 가시냐? 맨발로, 인내심으로는 안 되어요. 자기가 하나님 앞에 두려운 마음으로 참 미안한 마음으로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렇게 참회의 발자국을 간 길밖에는 이해가 안 되어요. 그렇게나 갔으면 갔지, 그때는 몸에 불이 나는 거야. 영혼이 그렇게 신생의 작업, 거듭남의 작업, 새사람이 될 때에는 어떠한 의미에서 기적이 뒤따른다고, 발이 땅에 안 닿을 수는 없겠지요. 추위를 모르지요. 추운 것도 몰라요. 그쯤 되면 사람이, 그러면 그 이 선생님의 말씀의 흔적이 또 있어요. 제가 집을 나오기 전에는 어느 정도 눈치 챘지요.
그 능주 교회 한나 어머니가 아직은 교회의 종지기에요. 그 때는, 한나 어머니가 동광원의 큰 기둥입니다. 청춘과부신데 그분이 종지기로 계실 때 그 집에 가서 삼일 성경공부를 했어요. 그게 제가 처음입니다. 그때 공부를 3일하고 나오니까 세상이 거꾸로 보여요. 몸이 공중에 둥둥 뜨고 찬송을 부르는데 부를 수가 없어요. 감격이 솟구쳐 차올라서 입을 다물고 찬송도 못 불러요. 전부 세상을 거꾸로 살라는 거지요. 세상을 거꾸로 산다는 게 얼마나 쉬워요? 경쟁을 안 하니까 소탈하게 되니까 그래 인제 제가 집을 떠날 것을 그때 눈치 채시고 저를 오 장로님 집으로 데리고 가요. 오 장로님이 그 화학 산이라는 깊은 산속에 계셨거든요. 거기가 한 이십 리 길인가 삼십 리 길인가 그때 제가 따라가는데 능주서 거기까지 둘이 걸어가는 길이지요. 얼마나 걸어갔는지 초봄이에요. 추운데 ‘이놈, 죽일 놈.’본인보고 하신 말씀이에요. 그래 나보고 그러는 줄 알고 놀랬어요. ‘이놈, 죽일 놈.’와 나보고 그러시는가?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어요. 본인 보고 한 말이에요. ‘죽일 놈,’자기가 죽일 놈이야. 항상 죽일 놈이야. 그렇게 인생을 사신 게 확실하고요. 그 천하만사 자기는 죽일 놈이고 몹쓸 사람이고, 잘못한 사람이고, 나는 죄의 못자리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신 그분의 일기가 나오면 전부 암호입니다. 한 삼 일만에 일기하나 나오면 죄를 지었습니다. 그뿐이에요. 연발이에요. 연발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 말뿐이에요. 그러면 살아온 발자국을 세상 떠난 다음에 사모님한테 들어보니까 이렇게, 이렇게 제목이 나와요.
이렇게, 이렇게 사셨겠구나. 그러면 그렇게 할 때 맨발 벗은 것이 이해가 되고 또 안 먹어도 배가 부르고 또 아무리 누가 자기를 얕보고 그래도 흔적이 없지요. 넘어간다고, 우리가 해방 후에 버스가 나오기 전에 한 사오십리는 꼭 트럭이 다녔어요. 도암면에서 광주 나오면 트럭이 나오지요. 막 시작할 때 한 넷이 타지요. 광주 갈 때 제일 의자 뒤에 있어요. 저 뒤에 왜 사람이 못나오고 그러니까 쭉쭉 밀어버려, 쭉 밀리고 쭉 밀리고 쭉 밀리고 제자들이 얼만 부끄럽지 않아요? 항상 그렇게 밀려사셔. 또 서울 가실 때도 그때는 기차가 목포서 서울까지 보통 열차뿐이지요. 특급열차 없으니까 광주에서 타면 텅 텅 비어 있지만 서울 가서 보면 난간에 까지 밀려있지요. 밖에, 그러니까 대전 어디서 농부가 탔는데 난간에서 붙잡고 농촌사람들이니까 우리 인사합시다. 나는 아무개요. 저는 전라도에 사는 이름이 뭐라고 했소? 우물쭈물 하니까 아까 이름이 뭐라 했지요? 성이 뭐요? 헌가올시다. 이름이 뭐라 했지? 신짝이요. 헌신짝, 에끼, 여보시오. 자기가 헌신짝이라. 그래 아, 나는 헌신짝 자기를 한 번도 얼굴 들고 살지 않았어요. 자기가 헌신짝이오. 차타면 저리 밀려나가고 참 못난 거 아니지요. 일생 밥 한술 따습게 배불리 못 먹었다. 그 앞에는 20대 젊은 청춘과부 보면 선생님이 불쌍하니까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그랬지. 참 불쌍한 선생님 내가 좀 도와드려야지.
여기도 20대 과부되어서 애기 막 업고 과부되고 선생님 만난사람 있지요? 이 선생님은 절대 복음적이지, 성령이 아니에요. 첨에는 그랬다고요. 애기업고 방에 딱 들어오니까 들어가 보니까 거지가 앉아있는데 선생님이라고 해요.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쯔 쯔 쯔 혀만 차요. 세 번, 그 혀 친 소리에 감동 되어 지금까지 여기 살지요. 홀로 살아요. 딸도 홀로 살지만 엄마도 홀로 살지요. 청춘과부 깊은 가슴을 뚫어지게 대신 통과해준 거지요. 그래 누구를 막론하고는 사람이 있어도 한사람이에요. 둘이 있어도 한사람이어요, 이 선생님의 그 처참한 가난 속에 빨려들어가요. 돈이 있어 부끄러우면 선생님께 던져버려요. 돈을 갖고 있는 게 부끄러워 재산 있어도 부끄러워, 그러니 아마 한국에서 제일 친한 분이 백 춘성 장로님 인데 자기 총재산을 선생한테 던져버렸어요. 내 맘대로 못하고 당신 하고픈 대로 살아. 그건 자기 어머니의 자수성가한 총재산인데 어머니, 이 재산을 나를 주신다면 나는 밥을 안 먹어버려요. 내가 손 안대고 엄마가 청춘과부로서 배 짜 가지고 일군 재산인데 내가 어떻게 장자라고 그걸 받겠어요? 이 선생 드려버렸대요. 네 맘이 내 맘이다. 엄마가 더 기뻐했어요. 부인더러 우리 이거 어떻게 엄마재산을 상속받겠소? 이 선생님 드려버립시다. 아이고, 옳은 생각이시오. 동생 제수 여동생 여동생남편 아들 딸 다 물어봤어요. 이 선생을 준다는데 한명도 반대 안했어요. 그게 기적이라는 거예요. 이 선생이 잘 먹고 잘살고 부자면 그걸 주겠냐고? (끊김)
그래 동광원 재산은 전부 그분 재산입니다. 백 장로님 어머님 재산이에요. 청춘과부로 이룬 거예요. 그것이 이렇게 여기저기 산재해있지요. 이 선생 일생에는 돈을 손에 안 잡아봤어요. 돈을 누가 설령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돈을 만원 놓는다고 한다면 며칠 동안 거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요. 가만히 ‘그 자리에 두세요.’‘누가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열사람 와가지고 가. 그럼 옛날에는 만 원짜리 없고 천 원짜리 열 개 있잖아요? 아주 양심이 든 사람이, 양심이 든 사람이 와서 하나 가지고가지요. 선생님이 꼭 같다 쓰라했다고 한 장 갖고 가요. 그 어느 때보면 다 없어졌어요. 누가 가지고 갔지요. 어찌되었든지 참 손에 안 잡아보았지요. 그렇게 된 것은 욕심을 억제한 것도 아니고 그 뿌리는 역시 자기, 나는 하나님과 약속을 어긴 놈이고 내 스승의 말씀을 떼어먹은 놈이고 나는 참 하나님과 약속을 어긴 놈이고 무엇으로서 자기보답을 하리요? 무엇으로서 여기서 내 잘못을 고백해? 예수님의 그 뜨거운 피 죽음 아 나 때문에 그는 나 때문에 그가 대신 죽으셨다는 뜨거운 대속의 사랑뿐이었지요. 그러니까 그분이 그렇게 재미있게 하질 안 해. 성경조금 읽고 그 모습이 아까 모습이 누가 보든지 눈물이 나요. 너무 너무 하지요. 바싹 말라가지고 보기가 안타까웠지요. 그런데 식구가 백 명이면 백 명 다 느껴지는 것은 초점은 자기 나 때문에 선생님이 고생하시는구나. 그렇게 봐요.
대중 때문에 그런다. 그러지를 않아 각 사람이 느끼는 것은 아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고생하신다. 이렇게 받아들여 왜 한 사람 한사람 영적 오늘 말씀드렸지요. 비밀이 없어. 백이면 백 선생님 앞에는 평생에 자기 지나온 이야기를 다 고백 했어요. 비밀이 없어. 한 사람 한 사람 숨은 서러움과 부끄러움과 죄는 선생님이 다 들으셨지요. 동참하는 거예요. 개인 개인의 고뇌와 서러움과 아픔을 동참하고 계시거든. 그러니까 어떠한 의미에서 그야말로 공동체지요. 몸은 백이어도 마음은 하나에요. 그럼 그 성령이 지배한 거지요. 오늘밤에 보고하면 이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는 거 같아요. 나는 한 거 없다. 그분이 다 하신다. 내게 은총을 주셔서 그분이 다 내게 그렇게 시키신 것이다. 그 힘을 내게 주신 것이다. 그런 뜻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그렇게 깨달았다고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더라도 예수가 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보면 예수가 했다고 다 믿는데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는 죽음의 고통을 당하심으로서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못하게 되셨다가 마침내 영광과 영예의 관을 받아쓰셨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의 고통을 느끼신 것은 예수님의 뭣이다. 라고 안했더라고 하나님의 은총의 소치라 하셨다. 그럼 히브리기자는 아주 담대하게 나가. 그때시절에 예수님이 했다. 그래야 칭찬을 받을 텐데, 하나님의 은총의 소치라고 했으니 히브리기자가 해고를 당해도 몰라요. 예수를 격하했다고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써요.
나는 이 발견이 동광원의 소망이야. 가사 일전에 목사님들이 찾아와서 그래요. 동광원 찾아봐도 어디가 있는 줄 다 모른다고, 어디가 동광원이냐고 어디가 봐도 동광원이 없다고 그 말이 맞다 고, 왜 동광원은 실은 땅에 없다고, 땅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거라고. 동광원 식구부터 속고 있다고, 그런데 그 말을 비약해서 아주 3대 5대 가 보더라도 없다고, 동쪽에 해가 뜰 때 가보라고 거기 가보면 없잖아요? 동쪽이 저쪽이에요. 이 동쪽이 새 빛이라는데 새 빛이라는 것은 항상 희망이지, 실제로는 없다고, 그러면 동광원 이상은 성령의 역사고 성령이 하신일이고 그건 비유지요. 비유고 상징이고 어떠한 의미에서 그렇게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동광원을 많이 복을 은혜를 주셨다면 환경으로 빌린 거뿐이지 현재의 동광원이, 동광원이 아니라고 모든 사람의 사람에 빛을 주고 싶어 하는 암호지요. 상징이고 비유다. 그렇게 생각하면 되요.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이스라엘 민족이 찾아왔을 때 분명 오셨지만 유대사람들이 몰랐어요. 그래 예수님을 사형을 내렸는데 현재 우리 동광원이라는 땅 동광원의 사람들, 지금 참 빛이 동광의 빛이 여기 산이에요. 참 빛의 종이 오신다면 감당을 못해. 일체의 땅을 초월하고 권리 동광원이라는 권을 초월하고 전부 초탈하는 거거든요. 이걸 집착하면 내버리자. 이걸 못 버리거든. 그래 옛날사람만 실수한 거 아니다. 제2의 실수는 탕자들이 동광원 사람들이니까 참말로 동광원 사람들이 자기가 동광원이다 라고 생각하면 큰일 난다. 그 것은 속은 거다.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고 너희들 가운데 있다고 동광원은 나는 전주로 가신 거긴 계신거지요. 옛날에 선생님이 동광원 글자를 넣을 때 동산이에요. 동쪽 빛이 비취는 동산, 동쪽 빛이 내려 쪼이는 동산 동쪽 빛을 그리워한 것은 역시 인류희망 아닙니까요? 동지는 동쪽 빛이 생기기 때문에 생긴 절기에요. 동지 밤까지는 밤이 깊어버리지 않아요? 하루만 더 깊어버리면 낯은 없어져요. 밤이 깊어버리다가 딱 멈추고 다시 해가 길어지니까 그때 밤을 몸 추고 춤을 추고 떡을 해먹었지 않아요? 동지에 그래 동짓날 삼일 예수가 와요. 빛이 와요. 모두 그 생각이 같지요. 동광원을 그리워한다면 현지 한국에 있는 동광원은 상징에 불과하고 그것은 비유에 불과하지. 실제 이 목사가 찾는 동광원은 한국에 없다. 그렇게 봐야지요. 그렇다면 실망하지 않습니다. 동광원은 어디가도 동광원이야. 그럼 있다면 이 선생님이 혼자 잠깐 빌리신 것인데 예수님께서 쓰신 것이고 달과 같아요. 달은 빛은 비추지만 햇빛을 반사해서 비추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은총이 이 선생님에게 비쳤어요. 그게 반사된 거예요. 그 후광이 오늘 날까지 여기까지 온 거에요. 이 선생이 말년에 자기가 그랬습니다. 원장님을 오시라고 하고 나는 동광원 사람이 아닙니다. 임종하기 전에 그랬어요. 그 말도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나는 동광원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피차 서로 오해를 했던 거지요. 동광원이라고 하는 곳에 이 선생님이 잠깐 머물렀다. 그래서 그때는 이북 못갈 때지요. 중국도 못가고 소련도 못 갈 땐데 소련이나 중국서 저를 오라하시면 저는 그리 갈 사람입니다. 그러셨어요. 그때 떠나시기 전에 나는 왜 여기가 있느냐? 지금은 내가 여기에 필요한 사람이야.
그때 모두 고아들 과부들이니까. 그 말씀 하셨지요. 동광원을 초월해버리니까 스승님이시지요. 동광원은 원치 않는 집단이었습니다. 갈보리산 서리내 오감산에 계시다가 육이오가 안 일어났으면 그리 들어가셨어요. 들어 가실려다가 동란이 일어나니까 잠깐 손을 대신다고 그랬어요. 잠깐 그럼 일 년이면 끝날 줄 알고 손을 댔는데 후임이 안 생겨 일반사회에서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어요. 그래 십년 이십년 늦어 버렸어. 그래 돌아가리라 했지만 나는 못 돌아간다. 그러셨어요.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지금 광주 안계세요. 지리산 골에 계시지요. 항상 소원이 그랬어요. 임종할 때도 임종이 다가왔으면 모두 간호하고 있지 않아요? 수십 명이, 여기 한 삼채 집사님도 계시지요? ‘잠깐 나 업어달라’고 막 각혈할 때 임종이 가까울 때 그러나 순진한 청년이니까 업었지요. 나를 지리산으로 가는 버스 타는데 까지 업어다 주라고 그 탈출이에요. 이 공동체에서 탈출하는 거예요. 죽기 전에 가야지, 그런데 가을비가 막 쏟아졌다고 그래요. 그때 이 선생이 업혀가지고 생각했대요. 나는 죄인이지만 이 청년이 무슨 죄가 있나? 이 폭우를 맞고 업어다주라는 것이 너무나 미안하다. 다시 올라갑시다. 그래 올라갔거든요. 그일 후에 그때 내가 모진 맘을 먹고 쪼끔만 참았더라면 버스를 타버렸을 텐데, 그러면 나는 해방을 얻어가지고 지리산에서 평생 참회생활을 하다가 죽었을 텐데 낸 맘이 인정이 많아가지고 그 청년이 안 되어서 그걸 못 참고 들어가 버린 것이 딱 갇혀서 꽉 지키니까 24시간 형제자매들이, 아주 그걸 후회했어요. 또 한 번은 임종이 가까울 때 도암에서 그 동광원 총회 첫해입니다. 눈이 많이 왔어요. 그 식구가 몰려들었지요. 그러면 저기서 여까지 걸어오지 못해요. 완전히 몸이 풀려졌어요. 업고 와서 앉아서 보지도 못해요. 제 삼자가 발을 궤줬지요. 발 궤어 주면 앉아서 그리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그때 어제 밤에
이야기했던 오감산에서 만났던 김 공님이 오셨어요. 거의임종이 가까워요. 김 공님이 나이가 훨씬 많아요. ‘김 공 나 업고 지리산으로 갑시다.’그날 밤중에 그 약속을 둘이서 했습니다. 그때도 임종이 가까워요. 그래 코에 숨이 조금만 있어요. 나는 여기서 탈출해야겠다. 이 동광원이라는 울타리에서 탈출해야겠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그럼 그렇게 합시다. 내일 저녁에 갑시다. 그리고 김 공님이 업으러 들어갔어요. 밤중에 아무도 없을 때 그럼 계신 곳은 방은 아니에요. 맨바닥에 흙을 파고 짚으로 이엉을 얹어 거기 계셨어요. 왜 방은 없는데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니까 방이 없어. 그 업으러 들어갔습니다. 김 공 참 황송하지요. 그때 여기와 계신 김 승명 장로 김준선생 다 여기 밖에 계시다가 찾아왔어요. 삼온회 이 동광원 수련회가 끝났다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우리들을 위해서 말씀해주세요. 그랬다는 거예요. 김 공님하고 약속한 그 다음에 김준 선생 김 장로 그때는 장로 아니시지요? 저 사람들이 나를 한 삼일 말을 해 달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을 두고 내가 어떻게 떠나겠냐? 김 공 용서하시오. 내가 약속을 못 지키겠습니다. 그랬다는 거예요. 그때도 기회를 놓쳤다고 가족 형제들을 위하여 기회를 놓쳤다고 그래 또 한 번은 밤나무골입니다. 거기가 거기서 임종이 가까울 때 숨을 다잡는데 그때는 정 원장님이 오 장로님 저를 불러가지고 나를 데리고 가요. 무조건이지요. 기차로 갔지요. 서울도 능곡이 있고 계명산이 있고 다 분원이 있지만 나를 그때는 셋째형 이 있는 막으로 데려가세요. 거기 걸인굴이에요.
지금은 집사님이라고 하시는데 셋째한테 걸인 굴로 모셔 그 일본시대에 폭탄 맞지 않기 위해서 기차 머리 굴, 굴이 커요. 거기 걸인들이 있어요. 거기 형제가 있으니까 거기 들어갔어요. 그거 광주서 그 말씀 했어요. 전부 이십대인데 내가 임종하는 걸 볼 텐데 식구들이 그 젊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닌 이것이 선생이라고 임종할 때 그 쳐다보고 일상을 어떻게 감당할까? 그거에요. 나는 이 사람들에게 임종하는걸 보여주지 않겠다. 죽으러 간 거예요. 그거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죽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원해서 한 거 아니에요. 이분은 자원해서 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형제가 걸인생활이니까 주워온 게 송장을 내버린 칠성판 하나 거기서 누워있었어요. 이분이 여기 와서 걸레 천을 한 자락 깔고 한 자락 덮고 얼굴이 까매지고 영양이 없어 덜덜 떨면서 그럼 그때는 이 선생님이 영웅입니다. 성인 대접이었어요. 예수로 보았습니다. 모든 하나하나가 초인이야. 자 일 년 이년 삼년을 같이 살아봐야 밥 먹는 거를 봐야 사람인줄 알 텐데 그때 이 목사 옆에 계셔도 밥 먹는 거 못 봤어요. 계획적은 아니야, 밥 먹을 시간이 없었어요. 너무 불쌍하고 불쌍한 사람이 와서 면회를 하시고 매일 들어줍니다. 본인 말씀 안 해요. 다 그걸 들어요. 그럼 정 원장님 계시지만 안 되어요. 나 바빠요. 대강 말씀하세요. 그래버리지, 그러니까 원장님 앞에 가서는 못하지요. 무서워서 나 바빠요. 쪼금 말씀하세요. 간단히 말씀하세요. 그런데 이 선생님 만나면 하루이틀해도 평생을 살아온 자기설움 다 듣는 것뿐이에요. 지금도 원장이 70객인데 세계에서 서러운 청년들이 모이거든요. 그 압제당한 청년들 그러면 붙잡고 이야기해, 서러운 이야기를 다 들어줘요. 천이고 만이고 다 들어줘요.
그것이 떼제의 재산이지요. 본인이 그걸 말해요. 노래만 부르라고 하고 자기는 듣기만 해. 그러니 세계에서 폭포수같이 가서 말 들어줘. 관세음보살이지요. 그분이 관세음보살이여. 20세기, 천하 인류를 모아서 다 들어주셔. 그런데 이 선생님도 그런 분이여. 본인이 특별한 말 안 해요. 모든 사람의 생각과 말과 형편을 이해해 주시고 들어주시고 그리고 같이 서러워하시고 그러신 것인데 그게 본인이 성공한 사람이냐? 본인도 실패한 사람이니까 실패한 사람끼리는 정이통해요. 과부와 과부가 통한다고 그런데 초점을 그렇게 잡습니다. 그럼 이제 프란치스코 전기를 제가 봤거든요. 우리의 사부님께서 회개하신 날부터 이렇게, 이렇게 했다. 그런 기록이거든요. 속죄는 어디 그래요? 우리 사부님이 회개한날로부터 어느 산에서 이렇게, 이렇게 하셨다. 그 전기를 보고 전기 쓰신 분계시지 않아요? 엄 목사님, ‘목사님 전기를 다시 써야겠습니다.’그 뜻이에요. 그 말이 없어요. 전기에는 회개했다는 말이 없어요. 맨발벗고 굶고 깨끗하고 아주 의인이야. 이건 틀렸어. 이건 전기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생활중심의 전기는 이목사가 써야해. 예수님에 의해서 이분이 회개하신 날부터 이렇게 맨발벗고 굶고 그럼 굶는 것도 아니지 않아요? 밥이 안 들어가지요. 밥이 안 들어가요. 신을 안신은 것이 아니에요. 신을 신은지 안신은지 자기가 몰라 버린 거야.
맨발 벗은 것을 몰랐어요. 그분은 그렇게 사셨어요. 콧물이 24시간 흘러 몸이 약해갖고 종이를 준비안하고 항상 소매 자락으로 이렇게 말씀하다가 코가 나오면 이렇게 하시지. 그 어떤 인간인지 알지요. 언제 양말을 신어봤어요? 언제 바지저고리를 입어봤어요? 그분을 이렇게 초점은 회개하신 날부터 그렇게 사셨다. 그렇게 이해하지 않아요? 우리식구도 처음들을 거예요. 우리 이 선생 장미꽃을 그렸지, 그분이 죄짓고 회개했다는 말은 알고 싶어 하는 거예요. 참으로 알고 싶어 하시는 분이 있었어요. 참으로 진실로 이 선생을 말씀을 해줘야지. 그렇지 않고는 안 되겠다. 언제까지 대중을 속이고 교회를 속이고 모든 사람을 속일 것인가? 우리 선생님은 깨끗했다. 죄를 안 지었다. 깨끗했다. 이게 기만의 끝이 아니냐? 그래 인제 진실로 예수님의 십자가 하나님의 은총의 소치였다면 오늘날 이 목사님이 관심하시고 이 선생님을 관심하시는 건 은총의 소치라고 봐요. 은총의 소치에요. 다른 해석이 안 되더라고요. 그렇게 생각이 되면서, 제가 말씀하나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20장. 제가 이 말씀 보겠습니다. 20장 11절부터 보겠습니다. 마르다와 예수의 이야기인데, ‘한편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던 마리아가 몸을 굽혀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옷 입은 천사가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 시체를 모셨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또한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왜 그러고 있느냐고 물었다. 누군가가 제 주님을 꺼내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뒤를 돌아다보았더니 예수께서 거기에 서계섰다. 그러나 그분이 예수인줄 미처 몰랐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고 있느냐고 물었다. 마리아는 그분이 동산지기인줄 알고 여보세요. 당신이 그분을 데리고 갔거든 어디에다 모셨는지 알려주세요. 내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자 마리아는 예수께 돌아서서 히브리말로 랍오니라고 불렀다. 이 말은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에게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붙잡지 말고 어서 내 형제들을 찾아가거라. 그리고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의 아버지 곧 내 하나님이며 너의 하나님이신 분께 올라간다고 전하여라하고 일러주셨다. 막달라여인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만나 뵌 것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일러주신 말씀을 전하였다.’그럼 사람이 자기가 유산이 있을 때 큰아들을 불러가지고 내 곡간에 어느 분까지는 네 몫이고 어느 분까지는 둘째아들 몫이다. 너는 가져라. 그 최후의 상속을 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예수님도 다윗의 아들의 일을 마치시고 하늘나라로 올라가셔 이제는 죽었다. 부활하시고 쭉 부탁할일이야 천하에 자기의 모든 의사를 상속시키고 주고가야 쓸 사람이 있겠는데 열두제자를 관심 안 두셨더라고요. 예수님의 심중입니다. 몸을 가지고 땅위에서 제일로 불쌍한 사람이거든요. 몸으로 태어나서 몸을 가지고 제일 정신고통을 당하고 제일 괴로웠던 분이 아니에요?
그럼 막달라 마리아가 일곱 마귀가 들렸다고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마귀가 한 마리 들려도 괴롭거든요. 마귀가 일곱 마리라는 것은 사람 몸을 가지고 가장 괴로움을 당했단 뜻이에요. 몸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이 여자만큼 고통을 당한사람이 없다. 제일 고통을 당한여자의 주인공 가장 버림을 받은 여자의 주인공 가장 죄 많은 여자 그때 예수님 살아계실 당시 대표로 이분이 죄인이에요. 그러니까 천상의 상속은 가장 죄 많은 사람한테 몫이 가게 되어있어요. 사랑은 가난한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한테 가는 것이 사랑이지, 배부른 사람한테 무슨 사랑입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의 천국사업에 후계자 어떠한 의미에서 상속받을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다는 게 사실이야. 역설로 보면 그때 상황으로 보나 예수의 상속자여. 그 열두제자가 찾아왔지만 그때는 안 나타났어요. 똑같은 무덤이에요. 그 사랑하는 요한도 왔고 베드로도 왔어요. 그 두 남자가 물러갔어요. 여자가 똑같은 자리에 온 거에요. 왜 울고 있느냐? 거기에 온 거야. 나다, 아 예수님은 나를 만지지 말라. 부탁할 말이 있다. 나의 아버지가 너의 아버지다. 내 아버지가 네 아버지다. 그럼 전부 아니에요? 우주와 천국과 천국의 모든 보배의 주인이 아버지 내 아버지가 네 아버지다. 영원한 천국 또 사람들이 말하는 내 하나님이 네 하나님이다. 이 말을 열두제자에게 전하라. 이 말 전해라. 네 할 일은 이거다. 열두제자는 예수가 누구냐. 하는 것을 증명하는 사람들이에요. 예수가 뭔 일하고 갔냐. 그 인류 대표하는 건 누구냐? 죄인을 대표하는 거니까 막달라 여자 마리아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 오늘저녁에 기념으로 따라 읽어 주십시오.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의 아버지 내 하나님이며 너의 하나님이신 분께 올라간다.’이 말을 전하여라. 이 말을 전한 것이에요. 로마에 전한 거예요. 열두 사도의 증인 내가 증인이오. 내가 봤소. 내가 들었소. 그 말이지요. 사랑의 유산이요. 총 사랑의 유산 막달라 여자 마리아였다.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아까 성가 3절 4절 부릅시다.
언님 따라 가만히
1.전원산촌 언덕에 진달래가 피었네. 저도 언니 본받아 오래참고 지리니
진달래가 되어서 언을 얻게 합 소서 진달래가 되어서 언을 얻게 합 소서
말이 없이 죽어간 어린양을 본받아 저는 지금 집니다. 언니 짐을 집니다.
양과 같이 지면서 참말하게 합 소서 참말하게 합 소서.
2.호수위에 피었네. 여기연꽃 피었네. 소리 없이 고요히 소복하니 피었네.
손을 대지 말고서 멀리 보게 합 소서 손을 대지 말고서 멀리 보게 합 소서
3.푸른 물결 거스려 오른 잉어 와같이 언을 이룬 님 앞에 순종하고 따라가
거센 파도 이기고 올라가게 합 소서 거센 파도 이기고 올라가게 합 소서
4.좁은 길을 갑니다. 가만 가만 갑니다. 꽃과 나비 비웃고 별과달이 웃어도
언니 따라 가만히 따라가게 합 소서 언니 따라 가만히 따라가게 합 소서
언님 따라 가만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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