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부산 태종대 돌아보기

mamuli0 2017. 7. 17. 09:13

부산 영도 목장원에서 점심을 먹고 한마음 선원에서 차를 마시고 태종대로 갔다. 걸어서 표를 사서 20 여분 기다려 두 번째 순환 차를 타고 전망대에서 내려 전망대와 태종대를 둘러보고 차에 올라 나왔다.


 장마가 소강 상태로 날씨가 좋아 사람이 많았다. 외국인들이 많다.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그리스도의 부활. 형제 여러분 전에 내가 전해준 복음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되새겨 주려고 합니다. 이 복음은 여러분이 이미 들었고 또 여러분의 믿음의 기초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헛되이 믿는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 내가 전해준 복음 그대로 굳게 지켜나간다면 여러분이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는 내가 전해 받은 가장 훌륭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드렸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서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서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 그 후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뒤에 다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또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교우들에게도 나타나셨는데 그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그 뒤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또 모든 사도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팔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사도들 중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교회까지 박해한 사람이니 실상 사도라고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오늘의 내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총의 덕분입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총을 헛되지 않습니다. 과연 나는 어느 사도보다도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되는 것입니다. 내가 전하든지 다른 사람들이 전하든지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고 있으며 여러분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여기까지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부활 우리들의 부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우리가 전파하고 있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만일 죽은 자가 부활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셨을 리가 없고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하는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들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는 증언은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는 우리는 결국 하나님을 거슬리는 거짓 증언하는 셈입니다.



     



 만일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여러분들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만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가련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이 되셨습니다. 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것처럼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모두 죽은 것과 마찬가지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마지막 날이 올 터인데 그때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위와 세력과 능력의 천신들을 물리치시고 그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실 때까지 군림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물리치실 원수는 죽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를 당신 발아래 굴복시키셨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굴복시켰다고 할 때에 굴복시키신 그분은 그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리하여 모든 것이 그분에게 굴복당할 때에는 아드님 자신도 당신에게 모든 것을 굴복시켜 주신 하나님께 굴복하실 것입니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완전히 지배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이들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왜 그런 일을 하는 것 입니까? 만일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습니까? 또 우리는 무엇 때문에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면서 살고 있습니까?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여러분들을 나의 자랑으로 생각하고 이 말씀을 드립니다. 나는 날마다 죽음의 위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내가 설혹 에베소에서 맹수와 싸우는 위험을 겪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적인 동기에서 당한 일이라면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내일이면 죽을 테니 먹고 마시자 해도 그만일 것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나쁜 친구를 사귀면 품행이 나빠질 뿐입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여러분 중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 부끄러운 줄을 알라고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지극하시지만 육체의 부활 육신이 다시 사는 것과 아까 했어요. 육체가 다시 사는 것 육체가 다시 살아나요. 죽으면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떤 몸으로 살아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심은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심은 것은 장차 이루어질 그 몸이 아니라 밀이든 나락이든 또 보리든 다른 곡식이든 다만 그 씨앗을 심는 것뿐입니다. 몸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끝으로 지어주시는 것으로 씨앗 하나하나에 각각 알맞은 몸을 주십니다. 모든 육체가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육체가 다르고 동물의 육체가 다르고 새의 육체가 다르고 물고기의 육체가 또 다릅니다. 하늘에 속한 것들이 있고 또 땅에 속한 것들이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것들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땅에 속한 것도 영광이 있습니다.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릅니다. 별의 영광이 다르면 또 별과 별 사이에도 그 영광이 다릅니다.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몸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약한 자로 묻히지만 강한자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체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체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44절에 결론이 나옵니다. 같이 읽으십시다. 육체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체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 말씀. 



 



성서에 기록된 대로 첫 사람 아담은 생명 있는 존재가 되었지만 나중 아담은 생명의 영적 존재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것이 먼저 있었고 그 다음에 영적인 것이 왔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예수님이 무덤에 묻히시고 3일 만에 다시 사신 다음에 유대사람들이 두려워서 제자들이 문을 잠그고 방에서 기도 할 때에 예수님이 들어오시지 않았어요. 신령한 몸인데 영적인 몸이에요. 육체적인 몸으로 묻히셨지만 예수님은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첫째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진 땅의 존재이지만 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흙의 인간들은 흙으로 된 그 사람과 같고 하늘에 인간들은 하늘에 속한 그분과 같습니다.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또한 지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또한 지니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몸이 아담 흙으로 된 아담의 형상을 지녔듯이 이제 우리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면 하늘에 속한 예수님의 형상을 또한 지니게 될 것입니다. 두벌로 우리가 흙으로 된 사람의 형상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또한 지니게 될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이 말을 잘 들어두십시오 살과 피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썩어 없어질 것은 불멸의 것을 이어 받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이제 심오한 진리를 하나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고 모두 변할 것입니다. 마지막 나팔소리가 울릴 때에 순식간에 눈 깜짝할 새도 없이 죽은 이들은 불멸의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 이 썩을 몸은 불멸의 옷을 입어야하고 이 죽을 몸은 불사의 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썩을 몸이 불멸의 옷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불사의 몸을 입게 될 때에는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갔느냐? 죽음아 네 독침은 어디 있느냐? 라는 성서 말씀이 이루어 질것입니다. 죽음의 독침은 죄요.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든지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주님을 위해서 하는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 하십시오. 이 성경의 해설을 다음 누가 다시 더 설명할 것 없이 해설을 다 했습니다. 그 전에 우리 이 선생님이 처음에 갈보리 선인래 에서 소년들을 몇 사람하고 모여서 예배보실 때 광주 오셔서 모여 계실 때 불과 한 10여명이 모여서 찬송 부르실 때는 갈보리 산 그 찬송하고 산곡에 백합화 그거 한번 부르십시다. 옛날 옛날에 그때 계시던 분들은 그 찬송이 그 노래가 귀에 익어요. 부르십시다. 



    
   

갈보리 산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예수는 귀중하신 보배피를 흘리사 
구원받을 참 길을 열어노셨느니라. 갈보리 십자가는 저를 위함이요. 
아 십자가 아 십자가 갈보리 십자가는 저를 위함이요. 



   



그와 같은 끝없는 사랑을 알고서는 영과 육을 아울러 산 제물로 바치며
주님 기뻐하시는 종이 될 뿐입니다. 갈보리 십자가는 저를 위함이요. 
아 십자가 아 십자가 갈보리 십자가는 저를 위함이요. 
예수님 보배 피를 저에게 부어 주사 지금으로 이 몸을 거룩한 성전삼아 
영원무궁하도록 살아주심 빕니다. 갈보리 십자가는 저를 위함이요. 
아 십자가 아 십자가 갈보리 십자가는 저를 위함이요. 



   

 

 아프신 분들 앞에서 무슨 긴말을 하겠습니까? 그분들을 위해서 따뜻한 마음으로 기도 하십시다. 한분만 아프신 것이 아니고 나이들이 드시니까 다 아프시지요. 다 아프셔. 여기 방에 우리가 같이 모여 있는 것은 몸만 의지한다면 내 서러움 들어보라고 할 것뿐이야. 내가 더 아프고 내가 더 아프다. 다 그럴 거예요. 그러나 이 몸만 가지고 사는 것 아니고 이 몸은 이왕 흙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끝나버리면 예수님과 같이 그분의 형상을 또한 지니게 될 것이다. 그랬어요. 결국은 이 몸을 몸으로 살다가 끝나면 영적인 몸으로 다시 이루어 주신다는 아까 49절이지요. 따라 읽읍시다. 



   



아까 44절 봤고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또한 지니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9절 말씀. 48절은 흙으로 된 인간은 흙으로 된 사람과 같고 그것은 아담이지요. 하늘에 인간들은 하늘에 속한 그분과 같다. 누구 예수님 그러면 우리가 장로님 공부 가르쳐 주실 때에 인성과 신성은 예수님이 완전하게 지녔듯이 우리들도 인성뿐만 아니고 신성까지 동참해야 한다. 그런 말씀 하셨지요. 그러면 이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담처럼 인성을 지녔듯이 그 말이지요. 



     



또 예수님처럼 신성을 속해서 살아야 합니다. 흙의 인간들은 흙으로 된 그 사람과 같고 아담의 인성을 지녔다는 것은 흙으로 되었다는 뜻이고 그러니까 아담처럼 인성을 지녔듯이 우리는 인성을 지녔고 또 하늘의 인간들 성령을 받고 예수님께 귀화한 영혼들은 예수님처럼 신성에 속한다는 말이야. 하늘의 인간들은 하늘에 속한 그 예수님과 그분과 같습니다. 신성도 그렇게 되어야해요.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녔듯이 우리가 인성으로 된 그 아담의 형상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신성의 형상을 예수님처럼 그분의 형상을 또한 지니게 될 것입니다. 이건 조금 생각하는 사람들하고 같이 생각 하십시다. 예수님이 하늘나라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데 인성으로 앉아계십니까? 신성으로 앉아계십니까? 지금 오늘 밤에 신성으로 앉아계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사람이 되기 전에 성모님 배속에 잉태되기 전에 인성으로 계셨습니까? 신성으로 계셨습니까? 신성으로 계셨지요? 그러면 언제부터 예수님이 인성을 지니셨습니까? 예수님이 어머니 배속에 잉태되심으로 인성이 시작되시고 열 달 되어서 낳으심으로 인성이 확실히 인성을 입으셨지요. 그러면 하나님은 신성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은 신성이신데 그러면 그 하늘나라는 초자연 세계라고 그럽니다. 초자연 자연이 아니야. 흙이 없는 세상 하늘나라는 흙도 없고 밥도 없고 간장도 없고 된장도 없고 그래요. 수저도 없고 밥그릇도 없고 그 사람이 먹는 살림은 거기에 없어요. 신성으로만 계시기 때문에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늘나라에 계실 때 신성으로 계실 때 이 땅위에 오시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야. 왜 인성을 입어야 오실 텐데 이 초자연 세계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는 자연계라고 자연계 그런 흙으로 된 세상인데 여기를 뚫고 들어온다는 것이 기적이지요. 하나님의 전능이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오신 것이지 어떻게 오시겠습니까? 그런데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의 신성을 지니신 예수님이 인성을 입게 될 때에 누구 도움을 받으셨습니까? 여자의 도움을 받았지요. 여자 그러므로 여자는 예수님을 낳았다는 공이 크므로 여기 앉아계신 장로님하고 저를 빼면 모두 여자인데 그러니까 그 성모님이 예수를 낳아주신 덕분으로 그 은혜로 여러분들이 복을 받지 않습니까? 여자의 대표가, 



    




그러므로 우리가 신교에서 쭉 교리를 배워가지고 머리가 굳어진 사람은 조금 어떠한 의미에서 겸손해 져서 실제 성모님의 공을 인정해야 할 것을 봐야 할 것입니다. 그냥 보통 어머니가 애기를 낳은 것으로 알고 있지 않아요? 우리들이 그러면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인성을 지니실 때 인류 여자 가운데 다시 말하면 창조이후에 오늘날까지 여자가 몇 억이나 태어났을까요? 현재도 여자가 40억이면 20억은 여자거든요. 그러면 사람이 주기적으로 한 30년 만에 대가 갈리지 않아요? 확실한 것은 한 90대면 손자가 낳아버리지 않아요? 자꾸 세대가 갈렸으면 백억이 되니까 사람이 셀 수없이 태어나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그러면 여자가 수억 억 수억 억이 태어났지만 어떤 여자를 엄마로 택해서 인성을 입을 것이냐가 문제야. 하나님 아들 예수님이 다시 말하면 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고 꼭 역사의 한복판에 20세기 전에 2천 년 전에 과거에도 수천 년이 있고 앞으로도 수천 년이 있지만 가장 여자가운데 한 여자를 택해서 인성을 취하시는 것 그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요.


 

   



 낳고 싶어서 낳은 것이 아니다. 여기 수녀들이 많지만 이 처녀들의 몸을 입고 싶었으면 오셨겠지요. 입고, 그런데 다 아셔. 수천 년 수만 년이 지나가는 동안에 내가 어떤 처녀의 몸을 빌려서 내가 사람의 몸을 입을 것이냐 하고 또 생각하시고 또 기다리시고 또 생각하시고 또 기다리시고 부잣집 처녀를 택할 것인가? 또 명문 가정 처녀를 택할 것인가? 또 부모도 없는 고아의 몸을 택할 것인가? 신분 빈부 또 민족 어느 민족의 여자를 택할 것인가? 보통 생각이 너무 깊지 않고야 어떻게 엄마를 택하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인류 역사가 생긴 다음에 여자가 수 수억 억이 낳았지만 하나님의 엄마로 택할 때 비밀히 생각하시고 택했겠냐? 그것입니다. 그냥 경솔하게 그냥 우연히 가다가 애기 배어서 낳았다. 그럴 수 있겠어요? 그러면 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고 꼭 한번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엄마를 택하실 때 유대나라에 베들레헴 입니까? 어디입니까? 그거 어디입니까? 나사렛 입니까? 그때 나이가 열다섯 살 자셨다고요. 성모님이 아기 밸 때 열다섯 살이야. 



   



그 나라 나이로 우리나라 나이로 하면 열일곱 살이나 된다고 합디다. 조숙, 빨리 그 사람들은 빨리 크니까 또 일찍 조실부모했어요. 일찍 부모도 죽어버리고 그러니까 따뜻한 부모님 밑에 큰 것도 아니야. 또 따뜻한 아버지 밑에 학교도 다닌 것 아니야. 그러니까 학교도 못 다니시고 부모 사랑도 못 받고 가난하고 이름도 성도 없고 비천한 자기가 자기 자신을 설명하기를 나는 비천한 계집종이라고 그랬어요. 나는 낮고 천한 계집종인데 나를 하나님이 은총을 입혀주셔서 나는 예수님의 하나님의 엄마가 자기가 되었다고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보기에 비천하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가장 귀한 영혼이야 가장 귀한 영혼이야. 그러니까 예수님이 인류를 찾아오심으로 인성을 입으시는 것 예수님이 신성이신데 역사를 뚫고 들어오실 때 성모님 몸을 빌렸다는 사건이 엄청난 대 사업이란 말이야. 보통일이 아니에요. 거룩하다면 너무나 거룩하시고 위대하다면 너무나 위대하기 때문에 성모님이 예수 낳았다는 이야기를 그냥 잠깐 생각하고 말 일이 아니란 말이야. 우리는 일평생 생각해도 그 은혜는 못 갚아 드려요.



   



 그러니까 부잣집 딸이나 권세 있는 집 딸이 예수님을 배었다면 정정당당하게 예수님을 키우지만 약소민족으로서 또 남의 나라에 속국 된 포로 신세로서 또 국법이 있어가지고 처녀가 아이를 배면 사형 당하는 국법이 있는 시대에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배어서 키운다는 것은 그건 생명을 열 번 백번 내놓은 순교정신이야. 순교정신, 자기 영을 자기 몸을 완전히 희생 제물로 바쳐드린 것이야. 아이를 밴 다음에 학살당할는지 돌 맞아 죽을지 오해를 받을 런지 큰 생명의 위험이 뒤따르는 건데 모험을 한 거라고 모험을 했어요. 보통 생각하고 승낙을 한 거 아니라고 사랑은요, 하나님도 우리가 안 해주면 못 빼앗아 가신다고요. 이 우리를 죽일 수도 있는 하나님이 우리 재산도 다 빼앗아 갈수 있지만 우리가 사랑 갖고 있는 사랑만은 못 빼앗아 가시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능력으로도 우리 못난 사람의 사랑을 빼앗아가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님이에요. 그것만은 불가능이야. 그럼 성모님께서 열다섯 살 먹어서 어머니로서의 승낙,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자기가 잉태된다는 것을 승낙을 안했으면 안 되어요. 하나님의 권리로도 마리아 너 아이 배라. 명령 못하실 것이라는 겁니다. 자유의지에 의해서 자기가 승낙하신 거예요.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님 말씀대로 순종하겠습니다. 그렇게 허락했지요. 주님 말씀을 제가 순종하겠습니다. 보통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얼른 생각하면 쉬운 일이지만 그렇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 성모님이 예수를 배어서 성공시켰다는 거 그 엄마가 짜잔 하면 죽여 버리지 않아요? 병이 들면 애기가 그렇지 않아요? 얼마나 그 애기를 잘 키웠으면 전염병도 안 걸리게 요새 같으면 천연두도 않고 우두도 않고 그런 시대에 얼마나 잘 키웠으면 33세 먹도록 건강한 청년이 사형을 당하도록 그렇게 보호했을 것인가요? 보통 총명한 어머니가 아니에요. 생각을 해 보십시오. 무식하니까 그냥 무시한 거예요. 보통 부인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2천년동안 연구를 해봐요. 과연 그 처녀는 얼마나 똑똑하며 얼마나 위대한 여자인가 하고 연구하고, 연구하고 연구해 보니까 친정 엄마가 거룩했다. 그런 결론이 나와요. 마리아의 친정어머니가 거룩하지 않고는 어떻게 그런 딸을 낳느냐? 그렇게 역사는 연구를 해가지고 우리가 이 시간에 그건 자유에요. 제가 드린 말씀을 긍정하던지 부정하던지 그건 자유에요. 그러나 2천년동안 교회 학자들이 신학자들이 이렇게 뒤집고 저렇게 뒤집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죄녀가 성모를 낳았다면 더 죄인이 되요. 



     



팥 심으면 팥 나고 콩 심으면 콩 나고 깨 심으면 깨나고 여기도 밤나무가 굵은데 좋은 가지를 접붙여서 밤이 굵어요. 재래종 심어 좋으면 다시 재래종 되어버려요. 성모님의 엄마가 안나신데 이름이 그 할머니가 안나가 보통 여자가 자기 딸 마리아를 낳았다면 보통 여자야. 그러니까 성모님이 그렇게 고결하고 깨끗한 것 보면 그 친정 엄마 안나가 성스러웠다. 그래 지금 안나를 성녀 대접을 해요. 안나 성모님의 어머니가 이름이 안나인데 성녀에요. 성녀, 교회학 적으로 성녀야. 그러니 안나가 친정 엄마 안나가 나이가 70 80 늙어서 성령으로 성모님을 배어가지고 죄에 물들지 않고 성모님을 낳았다면 실패해요. 엄마의 죄를 마리아의 피 속에 유전이 안 되었다. 그렇게 결론이 내려져요. 그러면 마리아가 친정 엄마 죄를 유전 받았다. 하면 예수가 죄가 묻어나요. 엄마가 죄가 있으면 그 피로 애기를 키우니까 젖을 먹이니까 예수가 죄가 있어버리면 구주가 못되지요. 아무리 하나님 아들이라도 죄가 있고서야 어떻게 우리 죄를 대속합니다. 죄를 대고 죽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연구하고, 연구하고 연구해보고 예수님이 참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죄가 없어야 하지 않아요? 죄가 없어야 하는데 엄마가 죄가 있어버리면 아들도 죄가 있는 거예요. 그것이 유전 죄 거든. 원죄이고 그러니까 예수님이 참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전능하시니까 은총으로 바울도 자기가 은총으로 사도되었다고 그랬는데 안나 할머니의 은총으로 죄 없이 일단 기적을 베푸셔가지고 자기 엄마 마리아를 잉태케 했다. 그런 귀감 그런 귀감이 돼.



        

  


 지금 20세기에 밝은 학자들이 연구해보면 그렇지 않고야 예수는 가짜다.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예수님의 외할머니가 깨끗해야 예수님의 엄마도 깨끗하고 깨끗한 마리아가 자기를 낳아줘야 자기도 죄가 없다. 그런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예수님이 참 예수님이라고 믿고 보니 할머니 외할머니가 성령으로 성녀 죄 없이 마리아를 잉태해서 낳았기 때문에 성모님은 피 속에 아담의 유전 죄를 받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것은 상식이요. 깊이 연구한 분들은 그렇지 않고야 어떻게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냐 말씀입니다. 그렇게 생각해보고 그러면 예수님이 신성으로 계시다가 인성을 입으실 때는 여자의 힘을 빌렸는데 이름은 마리아 그럼 마리아라는 열다섯 살 먹은 처녀가 예수님을 낳았다는 사건은 그 공으로 하면 하늘이 생기고 하늘이 끝나버려도 더 큰 공을 이룬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남자가 그렇게 큰 공을 바친 사람이 없다. 남녀가 합해가지고 성모님 예수를 낳았다는 공은 하늘도 인정해야 하지만 천하 인류가 그것을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해. 고맙습니다. 성모님 아니면 우리는 지옥에 갈 텐데 당신 마리아 당신이 아니면 우리는 하늘나라 못 갈 텐데 그러니까 이 어머니가 예수 믿고 천국 가더라도 물론 예수 덕분이지만 생각 깊이 하려면 예수를 낳으신 마리아의 은혜를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같은 여자들끼리니까 그러면 하늘나라 가면 만나요. 만나실텐데 지금부터 조금 안부를 알아갖고 가셔서 친하세요. 갑자기 모르고 가면 성모님도 몰라보면 불효자식이야.